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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21일 11시 39분 등록


변신이야기 Metamorphoses


오비디우스, 이윤기 옮김, 민음사, 1998.


1. 저자에 대하여 


■ 오비디우스[Ovidius, Publius Naso]

오비디우스.jpg

 

•출생/사망

BC.43.3.20 로마 술모~ AD 17 or 18. 흑해 연안 토미스

 

•활동분야

로마의 시인

 

•발 자 취

기사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누림

 

 

고향에서 초등, 중등 교육 과정을 마치고 12세 때, 로마로 유학

 

 

로마에서 웅변술의 대가 아우렐리우스 푸스쿠스와 포르키우스 라트로에게서 수사학을 사사받음

 

 

아버지의 바람대로 법관으로 잠시 관료 생활함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로원직을 포기하고, 작품 활동에 전념함

 

 

3번 결혼, 2번 이혼, 슬하에 딸을 둠. 마지막 부인은 시인 술피키아라 전함

 

 

A.D 8. 아우구스트 명령으로 로마 변방 흑해 서안 토미스(현, 루마니아)로 유배됨

 

 

A.D 17. 유배지에서 1O여 만에 사망

오비디우스

 

•저    서

BC.20. 사랑도 가지가지Amores

……

로마 문학을 대표하는

자유로운 영혼

……

 

 

BC.1세기 말. 여걸들의 서한집 Heroides

 

 

BC.2~AD.1. 사랑의 기술Ars Amatoria

 

 

A.D 2~8. 변신이야기Metamorphoseon

 

 

AD. 2~? 로마의 축제일Fasti

 

 

AD.8~12. 비탄의 노래Tristia

 

 

AD.12~16. 흑해에서의 편지Epistulae ex Ponto

 

 

여성의 얼굴화장법Medicamina Faciei Femineae

 

 

달력Fast

 

 

사랑의 치료법Remeddia Amoris



■ 오비디우스의 네 시대


 변신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작가에 휘둘린 나는 그의 언어를 따라가고 그가 표현해 낸 세계 속에서 한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부랴부랴 이러한 세계를 그려내는 작가의 실제적 모습을 찾아본다. 나름 머릿속에 그려지는 오비디우스의 자신감 넘치고 유려한 언변은 그의 발걸음마저 유쾌하고 활달했을 것이라 느끼게 한다. 바닥을 치고 끌고 가는 무거움과 진중함이 아니라 발뒤꿈치를 들고 엉덩이마저 약간 흔들며 걸어가는 모습이랄까.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관리직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는 남성의 발걸음으로는 어색하지 않으냐 할 지 모르나 내게 그 발걸음은 오비디우스의 언변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쾌활함과 유쾌함 속에 본질적으로 스며있는 경박함이 코믹스럽기까지 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이미지는 유배지에서 쓸쓸히 생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서도 지워지지가 않으니 그에 대한 첫 이미지가 너무나 각인된 탓이다. 명확히 알려지지 않은 채 여러 갈래로 나오는 추방 원인에 대한 이야기들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유배지에서 애타게 권력자에게 띄우는 그의 시와 서한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그 스스로에게는 피말리는 생존의 문제였겠지만) 변신이야기의 종결이 결국 권력자에게 띄우는 아부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수천 년이 지나 여러 가지 떠도는 이야기들로만 그의 생애를 접한 나이기에 그 세월 동안의 오비디우스의 고통, 슬픔, 분노, 억울함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한다. 내가 어찌 그것을 가늠한다 할 수 있으랴. 다만, 욕심에 그의 말년이 좀더 당당하고 덤덤했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 시대를 ‘오비디우스의 시대’라 칭송받던 그이다. 정말로 그의 추방 이유가 <사랑의 기술>에서 나타난 사랑에 대한 묘사때문이라면 후대뿐만이 아니라 당대에도 뛰어난 문학적인 역량을 칭송 받던 그이기에 <비가>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내가 잘못했소’, ‘다시는 그러지 않겠소’라며 아우구스투스에게 돌려보내달라고 애원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변신이야기>의 끝을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치는 찬가로 둔갑시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다. 그것이 작가적 자존심 아니겠는가.


1) 황금시대 - 그의 문학은 봄이었다    


 오비디우스는 호메로스, 3대 비극시인인 소포클레스・아이스퀼로스・에우리피데스, 베르길리우스와 더불어 로마 시대를 넘어 중세와 르네상스,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작가로서 명성을 드날리고 있다. 루드빅 트라우베라는 학자는 서양의 12~13세기는 오비디우스의 시대라 불릴 만큼 오비디우스의 영향력이 강렬했다고 얘기할 정도이다. 예술가들이 당대에는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후대에 이르러서야 칭송받는 것과 달리 오비디우스는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이었고 그가 죽고 난 후에는 홀로 로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시인이 되기도 했다.

 그가 시인으로서 금방 명성을 얻었다. 그의 탁원한 묘사력과 수사학이 그의 작품에 녹아 있으며 그의 작품은 상상력과 풍부한 독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로마신화 뿐만 아니라 융을 비롯한 많은 작가와 화가,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이 오비디우스의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그들 작품에 인용하거나 새로운 창작을 하기도 했다.


2) 은의 시대 - 계절이 생겨나 집을 만들다 


 사투르누스가 암흑의 타르타로스에 갇히고 세상의 지배권이 유피테르의 손으로 넘어가면서 계절이 생기고 인간들은 집으로 들어가고 곡식을 뿌렸다. 오비디우스는 이 시대를 은의 시대라 말한다. 오비디우스는 자기의 계절을 만들어 집에 정착을 했을까.

 그는 이탈리아 펠리그니의 술모의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나름 유복한 생활을 했다. 대다수의 시인들이 아우구스투스로부터 경제적 후원을 받던 것과 달리 안정된 기반에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뜻에 충실했다. 아버지의 바람대로 아테네로 유학하여 웅변술의 대가였던 아우렐리우스 푸스쿠스와 포르키우스 라트로에게서 수사학과 법률 공부를 했다. 관리가 되기 위한 공부였고 실제로 관리생활도 조금은 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식이 아버지를 이기는 시간이 오는 법,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결국 관리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그가 하고 싶은 작품을 쓰는 것을 선택한다. 물론, 지금과 마찬가지로 정치가, 관료가 되는 것이 안정된 생활과 명예를 주는 직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는 문학을 핍박했던 시대가 아니라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팍스 로마나’가 꽃피던 시절이다. 화려한 문화예술의 번영은 현실적인 여건에 구애받지 않고 문학적 재능을 펼칠 수 있었다. 그의 아내 역시 유명한 여류 시인인 술피키아라고 한다.

 이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은 찾아보기 어려우나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두 번 이혼을 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이혼이 어떤 인식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술피키아가 그의 마지막 부인이라는 것만 전한다. 그리고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딸었고 손자들을 둔 것으로만 알려졌다. 술피키아는 그처럼 문인 보호자인 메살라의 식객이었고 그가 유배로 인해 고통받을 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주었다 한다.

 

3) 청동의 시대 - 무기를 쥐었으나 범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비디우스의 문학적 재능을 주목한 사람은 마르쿠스 발레리우스 메살라이다. 그는 시인이자 장군으로 당시 가난한 시인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경제적 후원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오비디우스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었기에 당대 아우구스투스로부터 경제적 후원을 받는 다른 작가들과는 그 작품의 경향에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오비디우스의 작품은 연애와 사랑을 다루고 있으며 그 경향도 상당히 자유스러운 연애를 주창했다는 것이다.


4) 철의 시대 - 오로지 기만과 계략과 음모와 폭력과 저주받을 탐욕이 들어찼다


 철의 시대에 인간은 순결, 정직, 성실성 같은 덕목을 기피하고 오로지 기만과 부실(不實)과 배반과 폭력과 탐욕만을 좇았다. 기간테스들이 신들에게 도전하자 유피테르는 대홍수를 내려 모든 인간들을 죽게 한다. 신실한 노부부 데우칼리온과 퓌라만 살아남아, 이들이 던진 돌에서 인간들이 다시 생겨난다. 철의 시대의 이 모양은 오비디우스가 겪은 말년의 사건과 유사하다. 이 때의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의 입장에서 보건대 황제가 내린 율리아법을 무시하고 오로지 기만을 일삼으며 황제에게 도전했다. 그리하여 황제는 그에게 추방령을 내리고 그의 작품 역시 외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비디우스는 유배지에서도 그가 가진 필력으로 끊임없이 작품을 쏟아내어 후대에 이르러서도 그의 명성을 이어나갔다.


▷ 이 도시를 떠나라


 추방이다. 원로원 재판이나 다른 정식 재판 절차는 없었다. 오로지 왕, 아우구스투스의 명령에 의해 집행되었고 그 희생자는 오비디우스였다.

 로마로부터 멀리 떨어진 토미스, 지금의 루마니아에서 10여 년을 보내던 그는 귀향을 꿈꾸다 사라져갔다. 그곳의 야만인들 사이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냈다고도 하고 나름 적응을 잘했다고도 전한다. 오비디우스의 시신 매장 장소는 정확이 알 수 없으나 토미스 인근 도시 카나라로 추정된다고 하다. 루마니아의 코스탄차 광장에 오비디우스 동상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아우구스투스의 이 추방원인은 아우구스투스가 율리아 법을 제정한 그 시기, 지나치게 외설적으로 표현한 그의 시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윤리적인 문란을 바로잡으려는 황제에게 이러한 금서를 작성한 오비디우스는 당연히 죄를 물어야 할 것이었다. 그렇기에 금서를 작성한 오비디우스는 그의 작품의 경향 때문에 추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방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론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비디우스는 끊임없이 황제에게 자비와 애정을 갈구하였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시들을 쓰고, 아우구스투스의 건국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변신이야기>를 쓰며 로마로 되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과 염원에도 불구하고 황제는 그를 다시 찾지 않았고 추방당한 오비디우스는 누구도 그를 아는 체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기에 유배지에서 10년을 보내다 혼자 죽어갔다고 전해진다.

 

▷ 네 작품도 함께 떠나라


 그러면 표면적으로 추방의 원인이 된 그의 작품, <사랑의 기술>은 어떠한 내용들을 품고 있는가. 오비디우스의 작품의 전반적인 경향이 ‘사랑’을 다루고 있다. 오비디우스는 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을 이야기했다. 그 사랑의 시는 고귀하다거나 진정성보다는 ‘유혹’과 ‘연애’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초기 작품인 <사랑도 가지가지>나 <여류편지>에서도 여성을 중심으로 한 연애의 노래나 편지를 담고 있는데 상당히 자유로운 연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랑’을 이야기 했고, 사랑에 대한 시를 많이 썼다.  그는 사랑의 고귀함이나 사랑에 대한 진정성 같은 것 보다는 사랑의 ‘유혹’에 대한 부분에 중점을 두어 작품을 써내려 갔다. 율리아간통법은 간통한 자는 서로 다른 섬에 추방하고 재산의 일부를 몰수하며 아버지는 간통한 딸과 상대를 죽일 수 있는 내용의 법이었다. 아우구스투스는 이러한 법을 제정하면서 당시 보수적이고 엄격한 기강을 세우고자 했다고 전해진다.


"여자의 남편을 네 편으로 만들려고 애를 써라. 그녀의 남편과 친구가 되면 너와 그녀의 관계에서도 손해보다는 이득이 많이 생길 것이다. 술자리에서 제비를 뽑아 네가 마실 차례가 되었어도 그에게 양보하라. 네가 먼저 받은 화관도 그의 머리에 씌워주라. 신분이 너보다 못하든 같은 개의치 마라, 그가 모든 일을 항상 너보다 먼저 하도록 하라, 대화에서 발언할 기회도 그에게 먼저 양보하라“ - 사랑의 기술


 그러나 위에서처럼 사랑이 기술은 자유분방한 연애를 다루며 마치 아우구스투스의 이 법을 조롱하듯이 기술되어 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연애의 기술을 알려주지만 실제로는 간통을 부추기는 말들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추방의 원인으로 지목된 이 책은 법 제정 이전부터 발표되었으니 오비디우스의 추방의 이유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된 건 당연할 지 모른다.

 

▷ 유배지에서 보내는 편지


 그는 추방당한 뒤, <비가>와 <흑해로부터의 편지>를 쓰게 되는데 여기에는 변방으로 유배된 시인의 불행과 도시에 대한 귀환을 바라는 간절한 소망이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끝내 귀국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 책에서 그 스스로 추방의 원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비가>에서 자신의 추방은 ‘시와 실수’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중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 살인보다 더 나쁘고, ‘시’보다 더 해롭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의 이 잘못은 대해서는 누구도 알고 있는 문제이지만 아우구스투스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언급하지 않겠노라 말하고 있다. 그는 <비가>에서 발생한 악재들 중 일부는 자신과 더불어 소멸할 것이라며 본인 스스로 그것을 감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모든 비밀들을 다 얘기해왔던 옛 친구에게조차 자신을 파멸시킨 그 비밀에 대해서만은 함구했다는 오비디우스는 그 자신의 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간단치도 안전하지도 않은 일이라면서 자신이 입은 상처의 성격에 대해서나 원인에 대해서 묻지 말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러한 침묵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추론된 이야기 중의 하나는 오비디우스가 유배될 당시 로마 황실에서는 차기 대권과 관련하여 암투가 일어나는 과정에서 오비디우스가 보아서는 안되는 아우구스투스의 외손녀 율리아의 간통 현장을 우연히 목격했거나, 혹은 아우구스투스 자신이 황제 음모에 간접적으로 연루되었다거나, 율리아와 연애를 일으켰다고 보는 추론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황실 내부의 수치스런 사건을 목격했다고 유배를 당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져 정치적 음모에 그 자신이 가담한 것이 아니냐고 하기도 한다. 특히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은 티베리우스 황제가 오비디우스의 사면 복권 요청을 묵살하고 그를 로마로 다시 불러들이지 않은 것도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태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자주 거론되는 것은 시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황제의 공공연한 왕실 위상을 세우는 데 애를 쓰는 있음에도 공공연히 오비디우스가 황제의 손녀 율리아와 연애를 일삼고 황제를 조롱하였다는 것이다.

 어느 이야기가 정확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중요하진 않다. 그저 매우 궁금할 뿐이다. 다만, 황제의 근엄한 사회분위기 조성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방한 영혼으로 당 시대를 살았던 오비디우스가 있었고, 그의 작품이 있었고, 오늘날까지 읽혀지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참고 자료

•오비디우스, 사랑의 기술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신화의 이미지, 살림, 2006

•최혜영, 오비디우스 추방 원인과 언론 자유의 한계, 역사학보, Vol.172, No.0, Startpage 249, Endpage 278, Totalpage 30 , 2001.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변신이야기 1


제1부 ·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p15~16 바다도 없고 땅도 없고 만물을 덮는 하늘도 없었을 즈음 자연은, 온 우주를 둘러보아도 그저 막막하게 퍼진 듯한 펑퍼짐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막막하게 퍼진 것을 카오스라고 하는데, 그 카오스는 형상도 질서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못했다. 말하자면 생명이 없는 퇴적물, 사물로 굳어지지 못한 모든 요소가 구획도 없이 밀치락달치락하고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

p16 만물은 서로 반목하고 서로 방해만 했을 뿐이었다. 한 가지 질료 안에 있으면서도 추위는 더위와, 습기는 건기(乾氣)와, 부드러움은 딱딱함과, 무거움은 가벼움과 싸우고 있었다.

대립되는 쌍이기에 반목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p18 바람에 대해서만은, 천지의 조물주도 대기 속을 제멋대로 불게는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바람은 각기 다른 지대에 거쳐하면서 제 나름의 방법으로 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바람이 온 땅을 부수어버리기로 작정하면 어느 누구도 이를 저지할 수가 없다. 바람의 형제들은 그만큼 사이가 나쁜 것이다. 바람의 형제들이 사는 땅은 각각 이러하다. 에오로스(동풍, 동풍의 신)는 새벽의 땅, 다시 말해서 나바타에아 인들의 나라나 페르시아, 아침 햇살을 처음 받는 산들에 머물고, 제퓌로스(서풍, 서풍의 신)는 베스페르(금성) 근방이나 석양 무렵에 따뜻하게 달아오르는 해변에 살고 있다. 무서운 보레오스(북풍, 북풍의 신)는 스퀴티아 땅(흑해 동쪽과 북쪽, 현 우크라이나)과 북방을 점거하고 그 반대쪽에 있는 땅에는 큰 비를 몰고 오는 아우스테르(남풍, 남풍의 신)가 비구름에 젖은 채 웅크리고 있다.

이러한 모든 사물들을 의인화하고 이미지를 부여하고 명명하기까지, 인간들의 순진한 상상력과 간절한 바람에 경의를 표한다. 바람도 하나의 바람이 아니라니, 동풍, 서풍, 북풍, 남풍..바람도 불어오는 방향에서 그 세기와 느낌이 다르다. 이러한 것들을 포착한 최초의 인간이여, 누구이신지요.

p19 인간은, 세계의 시원(始源)이자 만물의 조물주인 신이, 신의 씨앗으로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고, 이아페토스(티탄 시조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아들)의 아들 프로메테우스가 천공에서 갓 떨어져 나온, 따라서 그때까지는 강물에다 이겨, 만물을 다스리는 조물주와 그 모양이 비슷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늘 시선을 땅에다 박고 다니는 데 비해 머리가 하늘로 솟아 있어서 별을 향하여 고개를 들 수도 있었다. 이로써,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흙덩어리였던 대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품안에 거느리게 된 것이다.

이로써 흙덩어리였던 인간은 제가 마치 만물을 다스리는 것 마냥 고개를 치켜들고.

p21 사투르누스는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스어 <크로노스>는 <시간>이라는 뜻이다. 크로노스는 자식을 낳은 족족 잡아먹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크로노스의 이러한 속성은 태어난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 자체의 속성을 상징한다. 사투르누스는 자기 자식인 유피테르 6남매도 모조리 삼켰다가 다시 토해 낸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는 유피테르 6남매가 이로써 시간을 극변신복했음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뱃속에서 놓여난 유피테르는 아버지 사투르누스를 무한 지옥에다 가두어 버린다. .......역자

삶이 시작하는 순간, 죽음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단명한 삶 속에서 늙어가고 이내 사라지는 비극 속에서조차 신들이 질투할 만한 삶의 방식을 찾아내려 애썼다. 끝날 수밖에 없기에 더욱 절절하고, 사라지기에 더욱 아름다운 몰입과 황홀을 찾아낸 것이다(신화읽는 시간 p29).

   아버지는 과거를, 아들은 현재를 상징한다. 과거는 자신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현재는 과거가 자신을 막아 현재일 수 없게 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시간은 무자비하게 흘러간다. 현재는 과거가 되고, 과거는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아버지의 세대는 사라지고 아들의 세대가 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아들은 다시 아버지가 되고 아들에게 죽임을 당해 사라지게 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아들이 제 아비를 죽이고 권력을 찬탈하게 될 운명’이라는 신탁이 내려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신화읽는 시간 p31).

p20 한 처음은 황금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관리도 없었고 법률도 없었다.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알아서 서로를 믿었고 서로에게 정의로웠다. 이 시대 사람들은 형벌도 알지 못했고 무서운 눈총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았다. ……기후는 늘 봄이었다.

p22 그러나 사투르누스가 저 암흑의 타트타로스(무한 지옥)에 갇히고 세상의 지배권이 유피테르의 손으로 넘어오자 이윽고 시대는 변하여 은(銀)의 시대가 되었다. 이 시대는 황금의 시대만은 못했지만 그래도 이어서 올 퍼렇게 녹슨 청동의 시대보다는 나았다. 유피테르는 늘 봄이던 계절을 뚝 분질러 겨울과 여름, 날씨가 변덕스러운 가을, 짧은 봄, 이렇게 네 계절로 나누었다. 이 시대에 이르자 대기가 메말라 불볕더위가 계속되는가 하면, 북풍이 물을 얼리고 나뭇가지에다 고드름을 매다는 혹한이 오기도 했다. 인간은 처음으로 집이라는 것을 만들어 그 안에서 살았다. 그러나 집이라고 해봐야 동굴이나 밀집한 덤불 속 아니면 나뭇가지를 나무껍질로 엮어 덮은 것에 지나지 못했다. 케레스의 선물이 긴 이랑에 뿌려지고 소가 코뚜레에 꿰여 신음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황금의 시대는 봄. 계절 중 역시 봄에 대한 느낌이 화사롭고 따스하기에 일종의 천국의 시대와 봄의 은유가 어울리는구나 했다. 아예 그때에는 계절이 없었구나. 계절의 탄생이 시대구분의 의미와 연결되는구나. 뜬금없이 유피테르는 봄을 왜 분질러 놓았을까. 변화일까, 변형일까.

p22 이어서 온 시대가 세 번째 시대에 해당하는 청동의 시대다. 청동시대 인간은 은의 시대 인간보다 성정(性情)이 거칠어 더러 무기를 잡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흉악하다는 말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

p22~23 마지막으로 온 시대는 철의 시대다. 이 천박한 금속의 시대가 오자 인간들 사이에서는 악행이 꼬리를 물고 자행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순결, 정직, 성실성 같은 덕목을 기피하고 오로지 기만과 부실(不實)과 배반과 폭력과 탐욕만을 좇았다. ……사람들은,  넉넉한 대지로부터 곡물이나 먹이를 거두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대지에 내장에까지 침입하여 대지가 스튁스 강가에다 감추어둔 배오와 인간에게 악업을 부추기는 보화를 파내었다. 이로써 유해한 철과, 철보다도 더 위험한 황금이 속속 인간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금속이 나돌자 사사로운 싸움은 곧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이 터지자 사람들은 피 묻은 손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렇게 되자, 이 친구는 저 친구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고, 장인은 사위의 손을 안심할 수 없는 사태가 생겨났다. 형제간의 우애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인간을 떠나자 마지막까지 이 땅에 남아 있던 불사(不死)의 처녀신 아스트라이아도 머리를 풀고 이 피 묻은 땅을 떠났다.

철, 천박한 금속의 시대. 철보다도 위험한 황금인데 아름다운 시대는 황금시대라 표현하는 걸까. 마지막까지 이 땅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신이 왜 처녀신이었을까. 모성을 부여한 신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p28~29 뤼카온이라는 이 자는 신심(信心)이 있는 백성들의 기도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겠어요? <저 자가 신인지 이간인지 내 시험해 보리라. 내 시험에 오류가 없을 터이니 이로써 드러나는 저 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혹을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자는, 내가 잠든 틈을 타서 나를 죽이려 했어요. 이게 바로 내 정체를 밝히기 위한 시럼이라는 것이오. 나를 죽여보고 죽으면 인간, 죽지 않으면 신이라는 판정을 내릴 심산이었던 것이지요. 이 자는 내 목숨으로 나를 시험하려 한 데 만족하지 않고, 몰로로스 백성들이 볼모 잡힌 자 하나를 끌어내더니 잘 드는 칼로 그 목을 자르고는 몽이 채 식고도 전에 수족의 일부는 삶게 하고 일부는 굽게 하여 이것으로 잔치상을 마련합디다. ……뤼카온이라는 이 자, 이리로 변신한 것이오. 이 자가 지니고 있던 광포한 성정이 모여 입은 괴물의 주둥이가 되고 말았소. 지금쯤, 타고난 살육의 근성을 못 잊어 그 주둥이로 다른 짐승을 겨누고 있을 것이오. 이리에게는 피를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광기가 있소. 이 자가 이리로 둔갑하고 말았다고는 하나 이 자에게서 원래의 모습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오. 털빛이, 이 자에게서 원래의 모습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오. 털빛이, 이 자의 머리카락 색깔같이 잿빛인 것이 그러하고, 얼굴에 흉포한 기색이 남아 있는 것이 그러하고, 눈빛이 사납고 이 짐승 자체가 잔혹한 성정의 화신인 것이 그러하오.

이리라는 속성은 잔혹성. 잔혹한 인간에 대한 벌은 이리로의 변신. 리카온은

p29 내가 부숴버린 집은 한 채뿐이오만 앞으로 부서져야할 것이 어찌 한 채뿐이겠소? 아실 테지만 저 땅은 한 한치도 예외없이 무서운 푸리아에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오. 나는, 인간이 모두 한통속으로 결탁하여 죄업을 쌓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오만 그대들도 내 의견에 동의할 테지요? 나는 지금 당장, 죄값을 받아 마땅한 이들을 칠 것이오. 이것이 내 뜻이오.

노아의 방주와 같은 이미지. 인간의 시련은 신을 받들지 않는데서 온다. 신을 받들지 않는데서 온다.

p33~34 물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을 즈음 데우칼리온이라는 사람과 그의 아내 되는 퓌라는 조그만 배를 타고 이 산꼭대기에 이르렀다. 데우칼리온 그 많은 세상사람들 가운데서도 가장 바르고 의롭게 살아온 사람이었고 퓌라는 그 많은 세상 여자들 가운데서도 가장 믿음이 깊은 여자였다.

인간의 생존 조건. 바르고 의롭게, 믿음이 깊게 살라! 이것은 너희를 살려주신 유피테르신의 말씀이니라.

p37 신의 뜻은 무류(無謬)하신 법, 죄업 쌓을 말씀은 아니하실 것이다. 내 짐작이 그르지 않다면, 여신의 뜻이 이르시는 어머니는 곧 대지일 것이요, 어머니의 뼈는 곧 돌이 나닐는지……우리에게, 여신께서는 어깨 너머로 돌을 던지라고 하신 것일 게야.

신의 뜻은 늘 그렇게 무류하지 않았다. 변신이야기 속의 신들은 늘 죄업을 쌓을 말과 행동을 했다. 그들의 기준에서는 아니었겠지만, 한낮 인간의 눈으로 볼진대 그들은 늘 무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p39 수많은 피조물 중에는, 종자에서 갓 빚어진 것도 있었고 몸의 일부는 생명체인데 나머지는 흙덩어리 그대로인 것도 있었다. 이러한 피조물들은, 온기와 습기가 알맞게 어울리는 환경에서만 그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물과 불은 비록 상극이기는 하나 습윤한 온기는 만물의 근원이었다. 말하자면 물인 습기와 불인 온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대립의 극복은 조화가 이루어내는 것이구나. 극과 극을 조율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살아가면서 과제이건데, 조화를 찾는 것 역시 과제로.

p45~46 그대에게 반하여 이렇듯이 번민하는 내가 누군지 그것은 물어보고 달아나야 할 것이 아니오? 나는, 산속에서 오막살이나 하는 농투산이가 아니오, 이 근동에서 가축이나 먹이는 양치기나 소치기도 아니오. 어리석어라! 어째서 그대는 뒤따르는 내가 누군지 모르시오? 아시면 그렇게 달아나지 않을 것이오. 나는 델포이 땅의 주인이며, 테네도스 섬의 주인, 파타라 항구의 주인이오. 나는 저 신들의 아버지 유피테르의 아들이오. 내게는 과거, 현재, 미래를 아는 재주도 있소. 수금을 나보다 잘 뜯는 인간이나 신은 하나도 없을 것이오. 내 화살은 백시색중이오만, 나보다 솜씨가 나은 자가 있어서 내 가슴에 치유할 길 없는 상처를 입히고 말았소. 의술은 내게서 비롯되었소.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나를 일러 파이에온이라고 하오.

어리석어라. 사랑은 그가 가진 지위와 재물에 의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니. 사랑한다는 이에게 바치는 끊임없는 내 존재의 자랑. 애달프고 서글프다.

p54 아르고스는 눈이 백 개나 달린 괴물이었다. 아르고스는 잠을 잘 때도 눈은 두 개만 감는다. 즉 나머지 아흔여덟 개의 눈은 뜬 채로 자는 것이다. 이 백 개의 눈은 아르고스의 머리사방에 붙어 있다. 그래서 아르고스가 머리를 어느 쪽으로 두든 언제나 이오를 감시할 수 있다.

충격이지 않을까. 무시무시한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살아야 한다는 건. 요즘의 세상이 그렇다. 무수한 눈들 속에서, 그 눈들을 피하고자 하면 또 기계의 눈이..

p57 사투르누스의 딸(유노)은 이 눈을 수습하여 자기 신조(神鳥)인 공작의 깃과 꼬리에다 달아주었다. 그래서 이 공작의 깃과 꼬리는 지금도 별같이 빛나는 보석이 잔뜩 박힌 듯하다.


제2부 · 신들의 전성시대


p64 너는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난 인간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은 필멸(必滅)의 팔자를 타고난 인간에게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소원은 다른 신들에게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신들이 각기 저희 권능을 뽐내지만 이 수레를 몰 수 있는 신은 오직 나뿐이다.

인간에 대한 정의, 때가 되면 죽을 팔자를 타고난 것들, by 신.

p66 태양 수레는 바퀴 굴대도 황금, 뼈대도 황금, 바퀴도 황금이었다. 바퀴살만 은이었다.

왜 바퀴살만 은이었을까.    

p73 파에톤은 물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의 숨결도 풀무에서 나온 공기처럼 뜨거웠다. 수레는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열기와 함께 올라온 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똥도 그를 괴롭혔다. 뜨거운 연기로 주위가 칠흑 어둠이라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발빠른 천마가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티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리뷔아가 사막이 된 것도 이때였고, 열기가 물을 말려버리자 물의 요정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샘과 호수 없어진 것을 애통해한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보이오티아 땅이 디르케 샘을, 라르고 땅이 아뮈모네 샘을, 에퓌레 땅이 퓌레네 샘을 잃은 것도 바로 이 때였다.

흑인, 백인, 황인종에 대하여 하느님이 굽기 정도를 잘못해서 그렇다는 떠도는 이야기가 겹쳐진다. 처음엔 너무 타서, 그 다음엔 너무 덜 타서, 그래서 신중하게 하여 나온 종이 황인종이라나..이것은 아시아계에서 나와 퍼뜨린 이야기일까.

p74 네일로스 강은 기겁을 하고 땅끝까지 도망쳐 땅 속에다 그 머리를 처박았다. 네일로스 강 원류가 어디인지 모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의 네일로스 강 일곱 하구에서는 먼지가 일었고 물길에도 물은 없었다. 

이것을 그림으로 그려 애니매이션으로 표현한다면 강물 물줄기를 길게 그리고 두 손을 그리겠지. 그리고 머리에다 두 손을 올리고 땅 밑으로 숨는 모습이겠지. 이리하여 강의 원류를 모른다. 참 재미있는 표현이고 생각이다.

p78 아버지의 수레를 몰던 파에톤,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힘이 모자라면 뜻을....펴는데 신중해야 하지 않을까. 특히나 타인의 생명과도 연결이 되는 것이라면.

p78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이 파에톤을 후히 장사 지내준 것은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이 얼굴을 가린 채 숨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날 하루만은 태양이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타오르던 불길이 세상을 비추었더란다. 세상을 태우던 불길이 하루만이나마 세상을 비추었다는 이야기가 묘하다. 그러고 보면, 재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익한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이다.

p79 헬리아데스의 슬픔도 어머니의 슬픔에 못지않았다. 이들도 그래서 죽은 아우의 무덤에 눈물과 애곡의 제물을 바쳤다. 이들은 밤이고 낮이고 파에톤의 무덤 위로 몸을 던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파에톤의 이름을 불렀다. 파에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들은 달이 네 번 차고 기울 동안 무덤 앞에서 우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그런데 헬리아데스 중 맏이인 파에투사가 일어서서 걸으려다 말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하나가, 다리가 나무 둥치로 변한다고 비명을 지르면, 다른 하나는 팔이 나뭇가지로 변한다고 고함을 지르는 식이었다. 헬리아데스 다섯 자매가 이 놀라운 변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동안 나무 껍질은 이미 이들의 허벅지를 덮고 사타구니, 젖가슴, 어깨, 손을 덮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참 이상도 하지. 그저 동생의 죽음을 슬퍼했을 뿐인데, 그들은 왜 나무로 변하였는가? 그렇게 원한 것도 아니고, 신에 대적하여 벌받은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슬퍼하여서라, 슬퍼하면서 신들을 욕이라도 했던가? 극도의 감정 표현은 변신의 사유가 되는 건가?

p81 퀴크노스는 못 보던 새가 된 것이었다. 그래서 이 새는 하늘과 유피테르를 믿지 않는다. 유피테르가 부당하게 벼락을 던지는 바람에 파에톤이 하늘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퀴크노스는 늪지와 호숫가를 좋아한다. 벼락이 일으킨 불을 어찌나 싫어했는지 퀴크노스는 불과는 상극인 물이 있는 곳, 즉, 강을 좋아하는 것이다.

부당하게 벼락을 던져...모든 사물은 바라보는 사람의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해석된다.

p81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은, 일식 때 그러듯이 늘 슬픔에 잠긴 채 기가 죽어 지냈다. 그래서 그는 빛을 싫어했고, 자기 자신을 싫어했으며 화창한 날을 싫어했다. 아들 일로 몹시 상심한 그는, 이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의무까지 심드렁하게 여기면서 더러는 이런 불평도 했다.

     나도, 운명의 여신이 내게 맡긴 일을 이만하면 어지간히 한 셈이다. 이 일 때문에 나는 천지창조 이래로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다. 밑도 끝도 없는 이 일, 이제 신물이 난다. 내 노력이 나를 명예롭게 한 바도 없다.

빛을 싫어했고, 자기 자신을 싫어했으며 화창한 날을 싫어했다. 태양신의 이 행동과 언행, 오, 이 익숙한 느낌.

p82~87 칼리스토

⇒ 칼리스토, 나를 아프고 슬프고 분노케 하는 이름이 되었다.

p88 전능하신 유피테르 신이 이 아르카스와 칼리스토의 손을 잡고는 이 모자를 다른 곳으로 옮겨 아들로 하여금 살모의 대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게 했다. 즉, 돌개바람을 시켜 이들을 빈 하늘로 옮기게 하고 다시 이들을 이웃해 있는 두 개의 별자리(큰곰자리와 작은곰자리)로 박아준 것이었다.

p92 내가 왜 이런 벌을 받았는지 알아? 여신께서는 뭇 새들에게 경고하신 거야. 함부로 입을 놀리면, 혹은 공연히 입을 놀리면 이 꼴이 된다는 걸 나를 통해서 보이신 것이야.

쉿, 입조심!

p95 포에부스는, 코로니스의 부정을 고자질한, 그래서 자신에게 그런 짓을 저지르게 한 까마귀가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포에부스 아폴로는 싸늘하게 식은 코로니스의 시신을 쓸면서 그녀의 운명을 바꾸어 놓으려고 애를 써보았다. 그러나 신유(神癒) 권능도 하릴없었다. 너무 늦은 것이었다. 손을 쓰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안 아폴로는 애통해했다.

귀인. 어떤 사건에 대한 잘못을 다른 것에 돌리는 일, 그로 인한 파장은 사뭇 기가막히다. 그럼에도 보호본능인지 우리는 이와 같은 잘못된 귀인이론을 펼친다. 우습게도 막장드라마의 주인공을 괴롭히는 이들이 이런 일들을 잘한다. 모든 것이 다른 사람 때문에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일을.

p98 운명의 여신들은 저에게, 이제 천기누설은 그만두라고 하십니다. 아, 운명의 여신들이 제 말을 엿듣고 있었군요. 제가 얻은 이 예언하는 능력은 은혜로 얻은 권능이 아니라 저에게 내린 하늘의 분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래를 알지 못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저에게는 보입니다, 인간의 모습이 제게서 떠나는 것이 보입니다. 앞으로는 풀이 제 양식일 것이요, 평원이 제가 뛰노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 말로 둔갑해 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반은 말의 몸인 제 몸이…. 아버지, 제가 왜 말이 되어야 합니까? 반인반마의 딸인 제가 왜 말이 되어야 합니까?

미래를 아는 자는 미래를 알지 않기를 바라고 미래를 모르는 자는 미래를 알기를 바라고. 예언하는 능력을 주었으면 당연 예언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면 왜 그 능력을 주었느냐, 신아.

p104~105 인비디아는, 어둡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집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은, 햇살이 비치기는커녕 바람도 한 점 불지 않는 깊은 계곡에 있었다. 이 집안은, 손가락이 곱을 만큼 추웠지만 불기가 없는 데다, 햇빛이 비치지 않는 곳에 있어서 늘 어둠에 잠겨 있었다. 전쟁의 여신은 이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전쟁의 여신은 이 <질투>의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여신은 창 끝으로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렸다. 인비디아는, 반쯤 남은 배암을 놓고 바닥에서 일어나 발을 질질 끌면서 문간까지 나왔다. 인비디아는, 여신의 아름다운 모습과 번쩍이는 무구를 보고는 비명을 질렀고, 여신의 한숨소리를 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인비디아의 안색은 창백했고 몸은 형편없이 말라 있었다. 게다가 인비디아는 지독한 사팔뜨기였다. 이빨은 변색된 데다 군데군데 썩어 있었고,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이 인비디아의 입술에 미소가 감돌게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고통받는 광경뿐이었다. 인비디아는 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밤이고 낮이고 근심 걱정에 쫓기고, 남의 좋은 꼴을 보면 속이 상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여위어가는 것이 인비디아였다. 맘을 고통스럽게 하면 하는 대로, 자신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저 자신만 녹아나는 게 바로 이 인비디아였다.

젤로스. 인비디아. 이토록 적확한 묘사라니.

p109 사랑을 성취시키려는 마음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은 원래 조화도 양립도 불가능한 법이다. 신들의 아버지이자 신들의 지배자인 이 유피테르가 어떤 유피테르던가. 끝이 세 갈래로 찢어진 벼락을 던지면 태우지 못할 것이 없는 유피테르, 고갯짓으로 능히 만물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는 유피테르가 아니던가.

가만 보면 유피테르만큼 한량이고 딱히 권능이 느껴지지 않는 신도 드물다. 그러나 그것도 이상한 것이 다른 모든 신들이 계속 유피테르는 최고의 신, 최고의 신이라고 하니 타인의 그 언어로 인해 유피테르는 슬그머니 권능을 가진 신으로 보인다.

     

제3부 · 박쿠스의 탄생 외


p112~113 누이를 찾는 데 실패한 카드모스는 고국과 아버지의 진노를 피하여 세상을 주유(周遊)하던 길에 아폴로의 신탁전을 찾아가, 대체 어느 땅에 몸 붙이고 살았으면 좋을지, 아폴로 신의 뜻을 물어보았다.

잃어버린 누이를 찾지 못한 데 대하여 아들을 버린다? 딸을 잃었는데 또다시 스스로 아들을 잃어버리려 하다니. 참 알 수 없는 아비 마음이다.

p117~118 이렇게 선 도시가 바로 테바이다. 카드모스는, 결과적으로 보면, 아버지로부터 추방당함으로써 축복을 받은 셈이다. 그는 마르스와 베누스(아프로디테) 사이에서 난 딸과 혼인했다. 카드모스의 아내(하르모니아)는 아들딸을 여럿 낳아 집안을 융성케 했다. 이 부부의 아들 딸도 손주를 여럿 낳아주었다. 이 사랑스러운 카드모스의 후손들은 집안을 화기애애하게 하는 데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힐 날이 되어봐야, 그 한 살이가 행복한 한살이였는지 박복한 한살이였는지, 드러나는 법이다.

이토록 슬픈 말, 사람은 한 생애가 죽어서 땅에 묻힐 날이 되어야 드러난다는 이 말. 카드모스는 에우로페를 탐한 제우스로 인해 결국은 고국을 떠나게 된 것이고, 테바의 조상이 되었다. 미네르바 여신에게 바친 솥에 페니키아 문자가 적혀 있어 그리스에 문자를 처음 들여왔다고 전해지는 카드모스. 전쟁의 신에게 봉헌된 왕뱀을 죽인 죄로 딸 세멜레, 이노, 손자까지 모두 비참하게 죽었고 아내와 함께 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전생을 기억하는 이 뱀은 사람을 해치지도 도망가지도 않는다고..

p127 그러나 세멜레는 인간이었다. 세멜레의 육체는 인간의 육체였다. 인간의 육체는, 이 천궁의 신이 내뿜은 광휘를 견딜 수 없었다. 세멜레는 이 유피테르의 광휘 앞에서 새카맣게 타죽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유피테르는 이 세멜레의 뱃속에 들어 있던, 아직 달이 덜 찬 아기를 꺼내어 자기 허벅다리에 넣고 실로 기운 뒤, 남은 달을 마저 채워 꺼냈다고 한다. 유피테르는 이 아기를 아기의 이모인 이노에게 맡겨 은밀하게 기르게 했다. 뉘사의 요정들은 행여 유노가 알까봐, 이 유피테르의 아들을 동굴에다 숨기고 우유로 길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자라난 아이가 후일 박쿠스 신이 된다. 박쿠스 신의 그리스 이름은 디오니소스, 즉 뉘사의 제우스라는 뜻이다. 그리하여 디오니소스는 ‘두 개의 자궁에서 태어난 자’가 되어 여성적 생명과 남성적 생명을 함께 갖춘 신으로 형성되었다. 티오네라고도 한다. 테베의 왕 카드모스와 그의 아내 하르모니아의 딸로, 디오니소스의 어머니이다.

    세멜레는 유피테르의 아내 유노의 질투로 인해 유피테르에게 유노에게와 똑같은 모습으로 자기에게 와달라고 부탁하였다가 천둥소리와 번갯불에 의해 타죽은 것이다.

p129 리리오페는, 강보에 싸여 있는데도 보는 사람의 얼을 빼놓을 만큼 잘생긴 이 아기, 그래서 망연자실, 그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게 하는 이 아기를, <나르키소스>라고 이름했다. 리리오페는 점쟁이 테이레시아스를 모셔와서 아이가 장차 어른이 되면 천수를 누리게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지 테이레시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수를 누릴 게요. 이 아기가 저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오.

나 자신을 알게 되면 오히려 천수를 누리게 될 듯한데, 지나친 자기중심을 멀리하라는 것일까.

p134 어리석어라! 달아나는 영상을 좇아서 무엇하랴! 그대가 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서보라. 그러면 그대가 사랑하던 영상 또한 사라진다.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은 그대의 모습이 비춰낸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대가 거기에 있으면 그림자도 거기에 있을 것이요, 그대가 떠나면, 그대가 떠날 수 있어서 그 자리를 떠나면 그림자도 떠는 법인 것을……

p136 아, 그랬었구나. 내가 지금껏 보아오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이었구나, 이제야 알았구나, 내 그림자여서 나와 똑같이 움직였던 것이구나, 이 일을 어쩔꼬,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불길에 타고 있었구나. 나를 태우던 불길, 내가 견뎌야 했던 그 불…… 그 불을 지른 자는 바로 나였구나. 아, 이 일을 어쩔꼬. 사랑을 구하여야 하나? 사랑받기를 기다려야 하나. 사랑을 구하여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구하는 것이 내게 있는데…… 내게 넉넉한 것이 나를 가난하게 하는구나. 나를 내 몸에서 떨어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랑하는 자가 하는 기도로는 참으로 기이한 기도다만, 신들이시여,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내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소서. 아. 슬픔이 내 힘을 말리는구나. 내게 이제 생명의 기운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나는, 내 젊음의 꽃봉오리 안에서 죽어가고 있구나. 죽음과는 싸우지 말자. 죽음이 마침내 내 고통을 앗아갈 것이니…… 그러나 나는 죽어도 좋으니, 내가 사랑하던 것만은 오래오래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우리 둘은,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하나도 따라 죽어야 할 운명……

허나, 세상을 살아가며 사랑하는데 기본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타인만을 사랑하는데서 오는 여러 광기들을 잊지 말지어다.

p142 말하자면 이들의 노력이 사태를 악화시킨 것이었다. 장애물이 없을 때는 조용히 부드럽게 산 아래로 잘 흘러가던 시냇물이, 나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포말을 날리고 소용돌이치면서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제4부 · 페르세오스와 메두사 외


p153 박쿠스 신은, 브로미우스(거칠고 소란스러운 자), 뤼아에오스(시름을 덜어주는 자), <벼락의 아들>, 폴뤼고노스(거듭 태어난 자), <두 어머니의 아들>로 불기기도 했고, 뉘세오스(뉘사에서 자라는 자), 장발의 튀오네오스(세멜레의 아들), 레나에오스(포도나무를 심은 자), 뉘텔리오스(밤에 얼굴을 붉히는 자), <엘레우시스의 아버지(환호하시는 아버지)>, 이아쿠스(부르짖는 자), 에우한(부르짖은 자)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박쿠스 신, 디오니소스. 유피테르의 허벅지에서 길러 진 아들. 정말로 불리는 이름이 많다. 그만큼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아니면, 술의 신이니만큼 술마시면 사람이 달라지나?

p154 박쿠스는 참으로 무서운 신이다. 그는 신들을 업신여긴 죄를 물어 저 펜테오스와, 쌍날도끼를 쓰는 무사 뤼쿠르고스를 죽였고 뤼디아 뱃사람들을 돌고래로 변하게 하여 바다에 처넣었다.

가끔 신들의 처사에 대해 무엇으로 변하게 만들었느냐에 따라 그 악랄함의 정도를 파악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흉폭한 것으로 변하게 하면 나쁜, 그나마 나무나 꽃으로 변하게 하면 좀 착한이라고 해야 할까. 돌고래이니까 좀 괜찮은데 하다가, 나의 이 생각에 놀란다. 괜찮다니, 말이 되는가.

p161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가 익으면 검붉은 색깔로 변하는 것은 신들이 이 티스베의 기도를 들은 증거요, 화장단에서 나온 두 사람의 뼈를 한 골호에 넣은 것은, 부모님들이 이 티스베의 뜻이 이루어지게 한 증거라는 거야.

퓌라미스와 티스베는 바빌로니아에서 으뜸가는 미남 미녀이다. 이 둘의 이야기는 로미오와 줄리엣과 닮았다. 부모의 반대로 벽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속삭였지만 결국 죽게 되었다. 관련 인터넷을 보다 보니 이 두 사람을 대상으로 웃고 싶을 만큼 무정하다면, 이 두사람의 슬픈 사랑이야기가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세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 제5막 1장을 권한다고 되어 있다.  

p169 클뤼티에는 죽었으면 죽었지 땅바닥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대. 앉은 채로 하늘을 지나는 태양신을 눈으로 쫓았다는 거야. 그러다 사지는 대지에 뿌리로 박혔고 살갗에서는 파리한 잎이 돋아났대. 꽃이 되어버린 거야. 발그레한 살빛이 조금 남아 있는 얼굴에서는 제비꽃 비슷한 꽃이 피어올랐어.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도 이 꽃송이만은 태양이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돌려. 클뤼티에의 모습은 바뀌었어도 사랑만은 변하지 않았던 거야.

그리스 사람들은 이 꽃을 헬리오트로프, 즉 태양을 향하는 꽃이라 부른다. 바로 해바라기다. 해바라기가 온 사방에 핀 것을 배경으로 나온 영화가 있었는데, 그 정경이 참 무심히도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였고 여배우의 이미지도 생각나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는다. 여자는 전쟁에 나가지 않고 정신이상자 행세를 하다 발각되어 다시 전장에 나간 남편을 찾으러 가는 길이었는데.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가 기억나는데, 제목이 해바라기였던가. 그러고 보니 오디세우스도 전장에 가지 않기 위해 미친척 했다.

    클뤼티에는 물의 요정이다. 그러나 태양신을 흠모한 이 요정은 물속에 사는데도 불구하고 대지에서 태양을 바라보다 죽었다. 물에서 살아야 하는 운명인데 태양을 바라보니 그렇게 말라 죽은 것이 아닐까. 여기 클뤼티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노래한 이가 있으니,

 

    미치광이 계집 클뤼티에(해바라기)는 그만두련다.

    태양 때문에 머리가 돌았으므로.

    튤립은 예의바른 아가씨

    그래서 이것도 피하련다.

    구륜 앵초는 시골 처녀

    제비꽃은 수녀

    그러나 우아한 장미에게 구혼하리,

    꽃의 여왕이므로.

     - 후드(Hood),『꽃』

p175~176 아틀라스의 외손(헤르마프로디토스)은 있는 힘을 다해 저항하면서, 요정이 그렇게 집요하게 요구하는 사랑의 쾌락을 거절했어. 하지만 요정은 온몸으로 부딪쳐 오면서, 달라붙으면서 이렇게 외쳤대.

     이런, 아둔패기. 몸부림칠 데면 쳐봐. 내게서 빠져나갈 수는 없을 걸. 오, 신들이여, 이대로 있게 하소서. 이 소년이 영원히 저에게서, 제가 이 소년에게서 떨어지지 않게 하소서.

     신들은 요정의 기도를 듣고 이를 이루어지게 해주려고 했던 모양이야. 잠시 붙어 있던 이 둘의 육체를 하나 되게 했으니까. 그래, 신들은 이 두 개의 육체를 하나로 만든 거야. 두 개의 가지가 맞붙어 자라다 거의 한덩어리로 굵어진 게 정원사의 눈에 띄는 경우가 종종 있지? 한덩어리가 된 소년과 요정의 몸이 꼭 이런 가지 같았어. 하지만 이들의 몸은 곧 붙은 자국도 보이지 않는, 진짜 하나가 되었어. 남성이라고 할 수도 없고 여성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하나의 육체, 남성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여성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러니까 양성을 두루 갖춘 하나의 육체가 되었던 거야.

이 상황에서 신들은 요정의 손을 들어주었다. 소년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소년은 신에게 요청하지 않았다. 구하는 자에게만 응답하는 것인가?

    신들의 전령인 헤르메스와 미의 여신 사이에서 태어나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의 합성어인 헤르마프로디토스이다. 세상 구경을 떠나는 15세까지만 해도 남자였으나 호수에 사는 님프 살마키스의 구혼을 거절하였다가 한몸이 되어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신에게 빈 살마키스의 기도로 남녀의 성을 함께 지니게 된 것이다. 파리 루브르미술관에 있는 헤르마프로디토스 조각상은 상체에는 여성의 젖가슴이, 하체에는 남성의 성기가 달려 있다고 한다.

p179 펜테오스의 비극을 통하여 박쿠스는 분명히 내게 한 수를 가르치고 있다. 광기를 이용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임을. 그래, 이노에게 광기를 불어넣어 이 계집을 발광하게 하자. 그러면 이 계집도 제 자매들처럼 자멸하고 말게다.

펜테오스는 펜테우스의 오역이라 변역 지적을 받았다 한다. '펜테우스'라는 '슬픔의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비탄의 감정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뜻하는 'πένθος', 'pénthos'에서 기원하여 그의 비극적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 펜테우스는 테베의 왕. 펜테우스는 이모 세멜레의 아들이기도 한 디오니소스 신의 숭배를 포기하였고, 이모들에게는 의식에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이에 화가 난 디오니소스는 펜테우스의 어머니인 아가베와 이모인 이노, 그리고 아우토노에 그리고 모든 테베의 여인과 함께 술에 취해 키타에론 산으로 달려가게 하였다. 펜테우스는 디오니소스를 가두었지만, 디오니소스는 신이었기에 결박은 무너지고 옥문은 그를 위해 열렸다. 디오니소스는 그 후 펜테우스를 유혹하여 음주 의식을 정찰하게 하였다. 카드무스의 딸들은 나무 위에 있는 그를 발견하고 야생동물로 생각하였다. 펜테우스는 끌려내려와 고문당하고 테베에서 추방되었다(위키백과).

p181 탄탈로스는 물이 가까이 있으나 이 물이 자꾸만 도망치는 바람에 영원히 물을 마실 수 없고, 과일나무 가지가 머리 위에 있으나 손을 내밀면 과일이 도망치는 바람에 영원히 과일을 먹을 수 없다. 시쉬포스도 여기에 있다. 시쉬포스는 여기에서, 굴려올려 놓으면 순식간에 굴러내려오는 바위와 영원히 씨름ㅎ는 벌을 받고 있다. 익시온도 여기에서 영원히 불바퀴를 돌리는 벌을 받고 있다. 사촌이자 지아비인 신랑을 죽였던 벨로스의 손녀들도 여기에서 밑 빠진 독에다 영원히 물을 길어다 부어야 하는 형벌을 받고 있다.

탄탈로스는 부유한 왕이었으나 천상계에서 신들의 음식물을 훔쳐서 인간에게 주었기 때문에 지옥에 떨어져 먹을 수 없는 가책과 머리 위에 거석(巨石)이 매달려 있어 영원한 공포의 벌을 받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만 보면 그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신의 음식을 훔친 듯이 보이기에 애처로워진다. 그러나 탄탈로스는 신들의 지혜를 시험해 보려고 자기의 아들 펠롭스를 죽여 신들의 식탁에 바쳤고 많은 부덕한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 한다. 특히 신들은 탄탈로스의 이러한 만행을 눈치채고 그가 제공한 음식을 먹지 않고 수습하였으나 자신의 딸 프로세르피나가 사라져 정신이 없던 케레스가 어깨살을 먹었기에 펠롭스의 어깨는 상아로 되어 있다고.

p182~183 인정사정을 모르는 티시포네(복수의 여신)는, 피가 뚝뚝 듣는 횃불을 들고, 횃불에서 떨어진 피에 진홍빛으로 물든 옷을 입고는, 배암을 띠삼아 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제 집을 나섰다. 디시포네 옆으로 하나같이 무표정한 <슬픔>, <공포>, <불안>, 그리고 <광기>가 따라붙었다.

복수라는 이미지는 저와 같구나.

p186 이들은 왕비 이노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생각하고 카드모스 일가의 박복한 팔자를 애통해했다. 이들은 가슴을 치고 머리채를 쥐어뜯으면서, 연적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유노 여신의 부당한 처사를 원망했다.

세멜레에 대한 분노가 풀리지 않은 유노 여신이 카드모스의 딸 이노와 남편 아타마스가 디오니소스를 양육하였다는 이유로 복수의 여신을 찾아가 이들을 벌하게 해달라고 했다. 티시포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이루는 뱀들로 하여금 아타마스와 이노에게 달려들어 물게 하였는데, 이 뱀들은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의 침과 히드라의 독을 비롯하여 환각·망각·눈물·광기·살의 등을 버무린 독을 지녔고 이 독에 중독되어 미치광이가 된 아타마스는 큰아들 레아르코스를 벽에 던져 죽였고, 이노도 둘째아들 멜리케르테스를 안고 바다에 투신하였다. 그러니 이들의 팔자를 어찌 애통해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오로지 그대의 남편이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포세이돈이 이들을 안타까이 여겨 레우토노에와 팔라이몬이라는 바다의 신으로 거듭나게 해 주었다.

p188~189 남편 카드모스가 아내의 뺨을 핥으며, 그리워하던 보금자리를 찾아드는 듯이 아내의 가슴으로 파고들어 몸으로 아내의 몸을 감았다. 좌중이 혼비백산했다. 그러나 아내만은 이 배암의 목을 쓰다담고 있었다. 얼마 뒤, 사로의 몸을 감은 두 마리 배암이 바닥을 기어 이웃해 있는 숲속으로 들어갔다. 오늘날까지도 이 배암은 인간과는 사이가 좋은 배암으로 불린다. 이들은 인간을 해치지 않는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p193 아틀라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보는 순간부터 저 자신의 체구만큼이나 큰 바위 산으로 변해갔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나무가 되었고, 어깨는 능선이 되었으며 머리는 산꼭대기가 되었고 뼈는 바위가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해서 산이 된 그의 몸은 사방으로 뻗어나기 시작하여(다 신들의 뜻이었다) 수많은 별이 박힌 하늘이 그 어깨 위에 얹힐 때까지 자라났다.

아틀라스가 이 천형을 잠시 쉰 때가 있다. 황금사과를 따러 온 헤라클레스가 대신하여 하늘을 받쳤던 적이 있다. 그때 그에게는 얼마나 황홀한 순간이었을까. 그러면 이렇게 메두사의 머리를 들이댄 이는 누구인가. 페르세우스다. 페르세우가 괴물 고르곤을 물리치고 돌아오는 길에 잠자리를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자, 화가 나서 메두사의 머리를 디밀었다가 아틀라스가 바위가 되었다 한다. 그리고 이것이 아틀라스산맥이라고 하며 대서양이 어원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이유로 하늘이 왜 떨어지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한 해석으로 보고 있기도 하다. 그저 높은 산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믿는 생각.

p198 영웅은 바닷물로 손을 씻기 전에 뱀으로 덮인 메두사의 머리를 잠시 땅에다 놓았다. 모서리 예리한 바닷가 돌멩이에 머리가 상하지 않도록, 해변에다 부드러운 나뭇잎을 깔고 그 위에 해초를 놓은 다음 이 포르퀴스의 딸의 머리를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페르세오스가 걷은 그 때까지도 살아 있던 이 해초는 이 괴물의 권능을 줄기 안으로 빨아들였다. 이 해초는 메두사의 머리에 닿는 순간부터 굳어지기 시작했다. 잎도 줄기도 돌처럼 굳어진 것이다. 바다의 요정들은 이 해초를 걷어다가 이 메두사의 머리에다 대어보고는 같은 일이 일어나자 이를 몹시 재미있어했다. 요정들은 이 해초의 씨앗을 파도에 실어보내어 이 같은 식물의 종자를 퍼뜨렸다. 오늘날까지도 산호는, 대기에 닿으면 돌이 되는, 이러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물 속에서는 식물인데 수면 위로 나오면 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산호의 기원이라고?

p201 메두사는 한때 아름답기로 소문난 처녀였더랍니다. 수많은 구혼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니까요. 다른 부분도 아름다웠지만 그 중에서도 머리카락은 특히 아름다웠던 모양이지요? 나는, 이 시절에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직접 보았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바다의 지배자가 이 메두사를 미네르바 여신의 신전으로 데려가 사랑을 했다는 이야기를 합디다. 이 유피테르의 따님(미네르바)으로서는 방패로 얼굴을 가려야 할 만큼 무안당하셨던 거지요. 그래서 이 죄값을 물어 이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만들어버리신 것이지요. 요즈음도 여신께서는 당신께서 만드신 이 뱀을 흉갑에다 달고 다니시면서, 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신답니다.

메두사에 대한 이미지는 너무 강해서 그녀의 아름다운 과거는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수많은 뱀머리를 한 모습만 각인이 되어..그러나 그녀도 희생자라는 사실. 현재의 모습만을 기억하느라 잊었다. 잊지 않으리라. 바다의 지배자와 미네르바에 의한 희생자라는 사실을. 


제5부 · 무우사의 탄생 외


p218 음악과 예술을 주관하는 아홉 무사이가 한 자리에서 뛰놀고 있다. 아홉 무사이의 이름은 나팔과 물시계를 들고 다니는 영웅시와 역사 담당인 클레이오. 지구의를 들고 다니는 천문시 담당 우라니아. 가면을 들고 다니는 비극시 담당 멜포메네. 웃는 가면이나 목양신 지팡이를 든 모습으로 자주 그려지는 희극시 담당 탈리아, 합창 담당 텔릅시코레. 연애시와 서정시 담당 에라토, 유행가 담당 에우테르페, 늘 입속에 손가락을 대고 다니는 무언극 담당 폴륌니아, 오르페오스의 어머니이자 서사시와 웅변을 담당하는 칼리오페. 이들의 어머니가 <기억>의 여신 므네모쉬네라는 사실은, 고대의 문학 예술이 주로 인간의 기억을 통하여 구전되어 왔음을 암시한다.

기억에 대한 의인화가 이렇게도 연결이 되는구나. 생각할수록 당시의 사람들의 생각이 재미있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에 따르면 므네모쉬네는 제우스와 9일 동안을 동침했고 그 결과, 시와 음악의 요정들인 9명의 무사이를 낳았다 한다. 또한 므네모쉬네는 지하세계에서 기억의 연못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죽은 사람이 레테 강의 물을 마시면 환생할 때 전생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되고 므네모쉬네의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이 되살아난다고 한다.

p221 이 괴망한 튀폰이 이 무겁디무거운 산을 밀어내고 도시의 산 위를 구르려 하는구나. 그럴 적마다 대지가 몹시 요동했고 그래서 저 적막한 어둠의 나라를 다스리던 저승왕 플루토는 날마다 좌불안석이었다. 행여 그러다 대지가 갈라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날빛이 그 왕국으로 비쳐들어가 망령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것이므로.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큰 반인반수의 거인으로 유피테르의 주권을 침범하고자 천상을 공격하였다가 번갯불에 타 죽었다 한다. 이러한 튀폰의 시체로 에트나 산에 불이 붙어 이 산이 불을 뿜는 화산이 되었다나.

p225 피로와 갈증에 시달리다 못해 입술 축일 만한 샘을 찾아다니던 이 대지의 여신 앞에 오막살이 한 채가 나타난 것은 해질녘. 여신이 문을 두드리자 나와서 응대한 사람은 허리 꼬부라진 노파. 여신의 행색을 보고 허기와 갈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안 이 노파, 물에다 볶은 보리 가루를 풀어 마실 것을 만들어주었다는군.

서양 사람들의 아침상에 자주 나오는 곡물죽 <시리어얼>은 <케레스>의 영어식 발음인 <시어리즈>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데메테르, 케레스 여신이 이 물을 마시어 요렇게 유래가 되었다면, 우리나라는? 우리나라에도 갈증을 느끼는 이에게 버드나무 잎을 넣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왕건인가? 체할까 염려되었다는 처녀에 반한 왕건, 당장 청혼을 하였다는데 이 처녀도 이미 그 전에 황룡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날아와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이러니 계시같은 꿈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p230 저승을 흐르는 아케론 강의 뱃사공 카론(혹은 케이론). 고집이 세기로 유명하다.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그의 배를 탄 사람은 네 사람. 즉 테레우스와 페이리로스, 그리고 헤리클레스와 오르페오스이다. 아니네이아스와 오뒤세우스도 저승을 다녀온 것으로 되어 있으나, 카론의 배를 탔다는 말은 없다.

카론은 저승을 흐르는 강의 뱃사공인데, 그리스어로 ‘기쁨’이란 뜻이다. 저승과 관계되는 이에 기쁨이라니.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여러 개의 강을 건너 저승에 이른다고 믿었다. 비통의 강(아케론), 시름의 강(코키토스), 불의 강(플레게톤), 망각의 강(레테)을 건넌 뒤 극락의 벌판 엘리시온을 지나 증오의 강(스틱스)을 거쳐 하데스의 궁전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 고대 그리스에서는 죽은 자들을 매장할 때 입에 1오보로스짜리 동전을 물려주는 관습이 있었다는데 카론이 죽은 자들을 스틱스강까지 건네줄 때 장례를 치르고 통행료를 내는 사람들만 저승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산 사람도 저승으로 가기도 했는데 헤라클레스와 오르페우스가 그렇다. 특히 오르페우스는 하프 연주로 카론을 감동시켜 강을 건넜고 비너스의 명을 받아 저승에서 아름다움이 담긴 상자를 가져오려던 프시케는 2오보로스와 굳은 빵 2개로 카론을 매수했다 한다.

    우리나라의 저승갈 때 노자돈은 카론 때문에 나온 이야기인가?

p231 아스칼라포스는, 프로세피나가 석류알 먹는 것을 보고는 이 소문을 퍼뜨려 결국 프로세르피나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게 했지. 아레보스의 왕비는 이에 앙심을 품고 이 수다쟁이를 불길한 새로 전신하게 했으니, 보라, 왕비가 이 자의 머리에다 플레게톤의 물을 뿌리자 이 수다쟁이의 입에서 부리가 생겨나면서 몸에는 깃털이 돋았으며 눈이 커지기 시작했어. 오래지 않아 인간의 형상이 없어지면서 날개도 돋았지. 이어서 머리가 엄청나게 커지고, 발에는 꼬부라진 발톱이 생겨나고……. 새가 되었는데도 이 새는 제 힘으로 제 날개를 들지 못한더던가. 무슨 새가 되었는가 하면, 인간에게 불길한 소식이나 전하는 새, 불길한 전조를 보이는 기분나쁜 새, 올빼미가 된 것이지.

⇒ 아스칼라포스는 ‘짧은 귀의 올빼미’라는 뜻이라 하니 그가 올빼미가 된 사연이 위와 같다. 지하로 흐르는 물을 뿌리기만 했는데 불길한 징조를 알리는 새가 되어 버리다니.

p231~232 아스칼로포스가 이런 벌을 받은 것은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럼 아켈로오스의 딸들은? 어째서 아켈로오스의 딸들은 새로 변하였으되 몸은 새 몸, 얼굴은 인간인 괴상한 새로 변하였을까? 이 시레네스(사이렌)가 이런 벌을 받은 게, 프로세프피나와 함께 꽃을 꺾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이들 역시 프로세르피나를 찾아 바다 위를 날면서 바다의 신들에게 기도했기 때문이다. 프로세르피나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전하게 해달라고 바다의 신들에게 조르다가 이 꼴이 된 것이다. 이들의 몸에 금빛 깃털이 생겨난 것은, 바다의 신들이 이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작정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러면 바다의 신들이, 이들을 새로 만들되 인간의 음성, 인간의 얼굴만은 그대로 둔 까닭은 무엇일까? 바다의 신들은 그렇게 소식을 전하고 싶으면 전하여라, 이런 생각에서 인간의 소리, 인간의 얼굴을 남겨놓은 것이지. 인간에게 소식을 전하려면 인간의 소리가 있어야 하고, 인간의 소리가 있으려면 인간의 혀가 있어야 하고, 인간의 혀가 있으려면 인간의 얼굴이 있어야 하니까……. 그래야 아름다운 노래 소리와 뛰어난 말재주로 그 천직을 다할 수 있게 될 터이니까. 유피테르는, 슬픔에 잠겨 있는 케레스와 정든 아내를 내어놓지 않으려는 플루토를 화해시키려고 애썼어. 어떻게? 일년을 반으로 나누고는, 일년의 반은 어머니의 나라인 땅, 나머지 반은 지아비의 나라인 저승에서 지내게 한 것. 그러니까 프로세르피나는 이 두 나라에서 번갈아가면 살 수 있게 된 것이지.

강의 신의 딸들이지만 피해갈 수 없는 또다른 신의 벌.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그 알량함과 치사한 처사가 느껴진다.


제6부 · 신들의 복수


p252 나는 행복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한마디. 자신의 행복을 굳이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바로 질투와 복수를 일삼는 신이라니. 니오베의 벌은 오만때문이라 얘기된다.

p255 설상가상으로 아이들의 아버지 암피온은 이 비보를 듣고는 칼로 자기 가슴을 찔렀다. 그는 이로써 삶을 마감하는 동시에 자식 잃은 아버지로서 앓아야 하는 모진 가슴앓이를 면했다.

암피온의 행동을 슬픔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로 생각해야 될까. 나약하기 그지없는 아버지라고 생각해야 할까. 정말로 암피온은 불행히도 자식 잃은 아버지로 살아야 하는 가슴앓이를 피하는 행운을 누렸다. 암피온, 제우스와 안티오페의 아들임에도 산에 버려져 양치기에게 길러진 암피온, 테바의 왕이 된 그가 리라를 연주하자 신묘한 음에 돌이 스스로 움직여 성벽이 완성되었다고 전하는 그. 어찌 보면 부인을 잘못 만난 죄라고 해야 하나?

p258 남녀 할 것 없이, 사람들은 신들이 이렇게 공공연히 분을 푸는 것을 보고는 겁에 질리어 이 쌍둥이 신들의 어머니인 라토나 여신을 두렵게 여겨 전보다 지극히 섬겼다. 늘 그러듯이, 일이 이렇게 되면 라토나 여신에 관한 옛이야기도 자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 법이다. 말하자면 저간에 있었던 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옛날에 있었던 일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과거의 일이 잊혀지기를 바라는 이들에겐 같은 일이 지속적을 반복되어 얘기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 점에서 요즘의 인터넷의 관련 검색어는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리하여 잊혀질 권리라는 말도 나오지 않겠는가.

p265 그라티아. 그리스어 카리테스. 인간을 기쁘게 하는, 전아우미(典雅優美)의 세 여신. 에우프로쉬네(희열), 아글라이아(빛), 탈리아(개화) 이렇게 셋이 꼽힐 때도 있고, 아우코스(자라게 하는 자), 헤게모네(힘으로 인도하는 자), 파엔자(빛나는 자) 이렇게 셋이 꼽힐 때도 있다(역자).

여러 신들과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여신으로 삼미신으로 보면 될 듯하다. 미술사에서 삼미신은 많이 그려지고 형상화되었는데 어느 순간 나신이 당연한 듯 그렇게 그려지고 있다 한다.

p273 태양신이 태양 수레를 하늘의 12궁 사이로 두루 몰고 지나가자 1년이 갔다. 독자들은, 필로멜라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필로멜라는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었는데다 단단한 돌로 쌓아올린 담은 여자가 깨뜨리기에는 너무 튼튼했다. 게다가 필로멜라는 혀를 잘려 벙어리가 되었는지라 자기가 당한 일을 누구에게 발설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슬픔과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하고 역경과 곤경은 사람을 창조적이게 하는 법이다.

아름다움은 정녕 비극이 되는 것인가. 트라키아의 왕 테레우스의 처제로 테레우스에게 겁탈당하고 혀가 잘린 채 오두막에 갇혀 지내게 된다. 자신의 사연을 옷감에 수놓아 몸종으로 하여금 언니 프로크네에게 전하게 하여 자매들은 복수를 하기로 하고 프로크네는 아들 이티스를 죽여 그 고기를 테레우스에게 먹였다. 식사를 마친 테레우스가 아들을 찾자 필라멜라는 그의 머리를 들고 나타났고 화가 난 테레우스는 도끼를 들고 두 자매를 쫓아다니자 제우스가 두 자매를 불쌍히 여겨 필로멜라는 나이팅게일이 되게 하고 프로크네는 제비, 테레우스는 매 또는 후투티로 변신시켰다고 한다.

     복수의 감정을 알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인 프로크네도 놀랍고. 굳이 테레우스를 새로 변신시킨 제우스에게는 ‘니가 맨날 그러고 다니니 동병상련이 느껴지냐?’라는 말밖엔...

p274 프로크네는, 박쿠스 신의 광란에 쫓기는 신도로 가장하고 있었으나 사실 프로크네가 쫓는 것은 슬픔 뒤에 오는 분노였다.

p279~280 사랑이 실패로 돌아간 게 당연하지. 완력과 폭력, 분노와 위협 같은 내 비장의 무기를 포기하고 내 성격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애원과 호소에 기대를 걸었으니……. 그래, 내게 어울리는 것은 폭력이다. 나는 폭력을 써서 검은 구름을 휘젓고, 폭력을 써서 바다를 둘러엎고, 해묵은 떡갈나무를 뿌리째 뽑고, 눈을 얼리고, 대지를 눈보라로 때려야 한다. 그렇다. 하늘이야말로 나의 무대다. 우리의 무대인 이 하늘에서 형제들을 만나면 이들과 겨루던 내가 아니던가? 우리들 주위의 대기에서 천둥이 치고, 구름에서 번개가 튀어나오도록 겨루던 내가 아니던가? 등을 돌려대고 지하 세계의 나지막한 동굴로 들어가면, 지하세계를 진동시키고 그 망령들까지 벌벌 떨게 만들던 내가 아니던가? 그렇다. 나는 이런 식으로 저 공주를 요구해야 한다. 애원할 것이 아니라 저 에렉테오스를 힘으로 굴복시켜 내 장인으로 만들어야 한다.

에렉테오스 왕의 딸 오리튀이아에 반한 북풍신 보레아스가 사랑을 애원하다 실패하자 하는 말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레우스의 비극을 겪고 난 후 트라키아 사람들을 배척했는데 보레아스는 북쪽 트라키아에 근거지를 둔 신이었다. 보레아스가 온갖 감언이설로 사랑을 속삭이다가 이렇게 변해버린 건 그 기본 성정 때문일 것이다. 결국 그는 오리튀이아를 납치하여 쌍둥이 아들 칼라이스와 제테스를 낳았더, 이들 쌍둥이들은 자라면서 날개가 돋아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었고 황금양피를 찾아가는 이아손과 동행하게 된다.


제7부 · 영웅의 시대


p285 내가 이 땅에다 남겨두어야 할 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들, 내가 좇는 것들은 모두 고귀한 것들이다. 그리스 영웅을 구하는 영예, 이 땅보다 훨씬 나은 나라, 먼 바다 해변에까지 그 이름이 두루 알려진 나라에 대해 내가 얻을 새로운 견문…… 이것이 어찌 고귀한 것들이 아닐까보냐. 그래, 그런 도시의 예술과 문화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메데이아의 갈등에 어린 독백들. 메데이아는 악녀로 얘기된다. 콜키스의 공주이자 마법사인 그녀는 그리스 국가 이올코스의 왕자 이아손에게 매혹되어 그가 황금 양털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 바로 자기 아버지를 배반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동생 압쉬르토스를 죽여 바다에 던지고, 이아손의 나라에서는 마법으로 젊어지는 약초를 만들었다며 그것을 제 아비에게 주도록 한다며 펠리아스의 딸들이 아버지를 죽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결국 이아손에게 버림받는다.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내재하고는 있지만 점차 악녀가 되어 가는 메데이아. 그녀는 독을 바른 예복과 황금머리띠를 새 신부에게 주어 독에 탄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 크레온을 죽게 만든다. 그리고, 이아손과 사이에 낳은 두 아들을 죽여버린다. 그것이 이아손에게 복수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그녀는 변신하지 않는다. 신들은 그녀의 잔혹함을 벌하지 않는지 오히려 그녀는 헬리오스가 보내준 전차를 타고 아테네로 도망쳐 그곳에서 아이게우스와 결혼하였다. 이후에 테세우스를 독살하려다 다시 페르시아로 도망쳤는데 그곳에서 여신이 되었다 하니, 도대체 알 수 없는 변신의 세계...

p307~308 전능하신 테세우스시여, 그대는 그 뛰어난 무용으로 크레타의 황소를 죽임으로써 마라톤 평원에다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이제 그대의 공덕에 힘입어 크로미온의 농부들은 멧돼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에피아우로스 사람들은 무지막지한 쇠몽둥이를 휘두르던 불카누스의 아들이 그대의 손에 거꾸러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웅이시여, 그대는 케피소스 강가에서는 프루크루스테스(두들겨서 펴는 자라는 뜻. 침대를 하나 두고 길손을 붙들어다 눕혀보고는 키가 너무 크면 잘라서 죽이고 너무 작으면 늘여서 죽였다는 괴인)를 죽이셨고, 테메테르의 땅인 엘레우시스에서는 케르퀴온(길손에게 씨름을 하자고 졸라 팔로 상대의 목을 감아 죽이던 망나니)을 처단하시었습니다. 소나무 가치를 휘어 이를 줄로 단단히 묶고, 길손을 붙잡아다 가랑이를 이 소나무에 각각 하나씩 묶었다가 줄을 끊어 길손의 가랑이를 찢어죽이는 저 악명높은 시니스(들도둑이라는 뜻. 별명은 피튀오 캄프테스. 즉 소나무를 구부린은 자) 역시 영웅의 손에서는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영웅께서 저 도둑 스키론을 잡아죽이신 이래로 알카토에와 메가라로 가는 길에서는 이제 근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 자의 뼈는 땅도 바다도 거두어주기를 거절하였다지요. 오랫동안 굴러 다니나 그대로 굳어져 바위가 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바위를 <스키론>이라고 부른다지요. 누가 그대의 나이를 듣고 그대의 공적을 믿으려 하리요.

      그대는 어리신 연치에 참으로 대업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니 영웅이시여, 우리의 찬양을 받으시고 우리가 드리는 잔을 받으소서.

그리스 신화 속의 대표적인 영웅인 테세우스. 미궁 속 괴물을 물리친 이다. 그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로 태어나, 청년이 되어 큰 바위밑 아버지가 숨겨 둔 왕가의 검과 샌들을 찾아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아테네에 도착해 왕자로 인정받는다. 제물의 산 청년이 되어 크레타섬으로 건너가 미궁 속 미노타우로스의 밥이 될 운명이었으나 크레타의 왕녀 아리아드네의 도움으로 괴물을 무찌르고 미궁을 빠져나온다. 그러나 아테나 여신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유로 낙소스섬에 아리아드네를 혼자 떼어 놓았고, 아버지에게 무사함의 표시로 흰 돛을 달기로 한 약속을 잊어 부왕 아이게우스는 비탄한 나머지 바다에 몸을 던져 죽게 만들었다.

p308 역시 이 세상에는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즐거움이란 없는 것인가? 그래서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는 것일까?

p309 아이기나. 들불이라는 뜻. 일설에 따르면 독수리로 둔갑한 유피테르에게 몸을 허락했던,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유피테르와 아이기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아코스는 그리스 영웅들 가운데 가장 경건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다가 죽어 저승에서도 판관 노릇을 하게 된다. 이 핏줄에서 유명한 영웅 텔라몬과 펠레오스가 태어나는데, 이들은 각각 트로이아의 전쟁의 영웅 아이아스와 아킬레오스의 아버지가 된다(역자).

아이기나 섬에 사람의 씨가 끊겼을 때 유피테르는 그의 기도를 받아들여 많은 개미떼를 인간으로 바꾸었기에 이 일이 은 뒤로 아이아코스의 백성을 미르미도네스(Myrmidones:개미족)라고 부른다고 한다. 미노스, 라다만토스 역시도 ‘정의’로 알려져 판관이 되었다 한다.

p322 원래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는 불안이라는 게 도사리고 있는 법입니다.


제8부 · 인간의 시대


p335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의 신이 되어 저 자신의 뜻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의 여신은, 행동하는 인간을 돌보실 뿐, 기도만 하고 있는 인간은 돌보시지 않는다. 누군들 나와 같이하려 하지 않겠는가. 욕망이 내 욕망만큼 강렬하다면 누군들 사랑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깨뜨리지 않겠는가. 그래, 깨뜨리려 할 것이다. 기꺼이 깨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면, 남들은 용감하게 그것을 깨뜨리는데 나는 왜 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나는 할 수 있다. 불길 사이로도 지날 수 있고, 칼의 숲 사이로도 지날 수 있다. 단 한 올의 머리카락만 잘라내면 된다. 내게는 황금보다 더 소중한 단 한 올의 머리카락. 이 보랏빛 머리카락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므로. 이 머리카락이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것을 베풀어 줄 것이므로

미노스에게 반해 조국을 배신한 스킬라 역시, 이렇듯 갈등한다. 참 갈등의 언어는 그 고뇌만큼이나 명언을 남기는듯한데...니소스 왕의 머리카락 속에는 빛나는 자주색 머리카락이 한 올 있는데 이것이 왕의 머리에 붙어 있는 한, 메가라는 공략당하지 않을 운명이라 한다. 그렇기에 스킬라는 저토록 단지, 머리카락 한올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올이 있는 한하지만 미노스는 아버지를 배신한 스퀼라를 거들떠도 보지 않고 그녀의 사랑은 분노가 되어 복수하려 한다. 하지만 새로 변한 니소스의 방해로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그녀는 백로로 변하였다. 자비심깊은 신들이 그렇게 했다 한다.....참, 역시나 알 수 없는 신들의 마음.

p335 스퀼라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동안, 인간의 근심을 치료하는 전능한 의원인 밤이 찾아왔다. 어둠은 스퀼라를 담대하게 했다. 잠이, 인간의 가슴에 깃들인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재우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틈타, 스퀼라는 살며시 아버지의 머리로부터, 아버지의 목숨과 운명이 걸린 머리카락을 훔친 것이다.

p347 다이달로스는 이 생질을 질투하여 미네르바의 거룩한 성채 위에서 아래로 떠밀었다. 다이달로스는 이렇게 생질을 죽이고도 사람들에게는 아이가 발을 헛디뎌 성채 아래로 떨어졌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나 원래 지혜로운 인간을 사랑하는 팔라스 여신은 성채에서 떨어지는 이 아이를 중간에서 받아 새로 둔갑하게 했다. 즉, 떨어지는 아이의 몸에서 깃털이 돌아나게 한 것이었다. 머리 회전이 빨랐던 그는 이로써 새가 되어 날갯짓과 발이 빠른 새가 되었다. 이 새는 그의 이름과 똑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그러나 이 새는 하늘 높이 날지도 않고, 나무 꼭대기에 집을 짓지도 않는다. 오래전에 등을 떠밀려 성채에서 떨어졌던 일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새는 날 때도 지면에서 가까운 곳만 날고 알을 낳을 때도 산울타리 같은 곳에다 낳는다.

페르딕스는 물고기의 등뼈를 보고 날카로운 쇠날에다 이를 내어 톱을 발명하였고, 길이가 똑같은 쇠막대기의 한쪽을 고정시켜 원을 그릴 수 있는 컴퍼스를 발명하였다고 한다. 후에 다이달로스가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크레타섬의 미궁을 탈출하는데, 이카로스가 태양에 너무 가까이 가는 바람에 밀랍이 녹아 에게해에 떨어져 죽는다. 다이달로스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지낼 때 자고새 한 마리가 이를 지켜보며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p359 죽음은 죽음을 통해서 화해를 이루게 하고, 사악한 최악은 사악한 죄악을 통하여 씻기어야 하며, 살육은 살육을 통하여 갚음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러한 죽음과 사악한 최악과 살육이, 마침내 이 집안을 파멸시킬 때까지 쌓이고 쌓이게 하소서. 친정 아비 테스티오스는 자식의 주검 앞에서 슬퍼하고, 지아비 오이네우스는 그 자식의 승리로 희희낙락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둘 다 슬퍼할 거리가 있어야 마땅한 것이 아닙니까?

오이네우스는 디오니소스로부터 포도재배법을 배우게 되는데 그 이유가 기가막히다. 칼리돈을 방문한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게 아내 알타이아와의 동침을 허락하여 헤라클레스의 아내가 되는 데이아네이라가 태어났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보답이란다.

    오이네우스는 풍년의 첫 수확물을 신들에게 제물로 바치며 아르테미스에게는 바치지 않아 아르테미스를 화나게 했다. 화난 여신이 하녀를 거대한 멧돼지로 변신시켜 칼리돈을 쑥대밭으로 만들자, 오이네우스의 아들 멜레아그로스는 그리스 전역에서 영웅들을 불러모아 멧돼지를 사냥하여 죽였다. 멧돼지 가죽을 사냥에 참여한 아탈란테에게 주자 이를 시기한 알타이아 형제들이 빼앗으려 하는데, 아탈란테를 사랑한 그는 이들, 즉 그들의 외삼촌인 톡세우스와 플렉시포스를 죽여 버렸다.

    운명의 여신의 예언에 의하면 난로 안에서 타고 있는 장작불이 다 타버리면 그의 목숨이 다한다고 하였는데 그의 어머니 알타이아는 이 타다 남은 장작을 주워 상자 안에 간직하였었다. 이와 같이 형제와 자식 사이에서 갈등하던 알타이아는 상자 속에 간직했던 타다 남은 장작을 불 속에 던졌고 이리하여 멜레아그로스가 죽었다고 한다. 그리고 알타이아도 자살하였다 한다.

p362 신들께서 나에게, 수많은 입과 수많은 혀를 허락하시고, 시적인 재능과 헬리콘 산 하나와 견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능력을 베푸셨으나, 나는 아직도 슬픔에 잠긴 멜레아그로스의 누이들은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 멜레아그로스의 누이들은 남이야 무엇이라고 하건 퍼렇게 멍이 듣도록 저희 가슴을 치며, 멜레아그로스의 육체가 불에 타 완전히 없어지기까지 이를 껴안고 쓰다듬으며 무수히 입을 맞추었다.

p366 신들이 정말 인간의 모습을 빼앗을 수도 있고, 다른 모습으로 바꿀 수도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신들의 힘을 과신하는 것이 분명하오.

p371 신들을 사랑하는 자는 신들의 사랑을 입고, 신들을 드높이는 자는 사람들로부터 드높임을 받는 법이거니.

오직 신의 이름으로.

p371~372 용감한 영웅 중에서도 출중하신 테세우스시여. 모습을 바꾸는 데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한번 그 모습이 바뀌면 영원히 그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 변신이 있고, 수시로 그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둔갑이 그것입니다. 대지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의 신 프로테오스를 예로 들어봅시다. 사람들 중에는 이 프로테오스가 청년으로 둔갑한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사자로 둔갑하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분은 사람들 앞에, 사나운 멧돼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고, 사람들이 징그럽게 여기는 배암으로 나타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뿔달린 황소로 둔갑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돌, 나무, 때로는 흐르는 물, 심지어는 물과는 상극인 불로 둔갑하는 수도 있습니다.

p377 에뤼식톤은 음식이라는 음식은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면서도, 그릇이 비지 않았는데도 더 가져오라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가 먹어치운 음식은 그의 배를 치운 것이 아니고 그의 식욕을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배고픔의 형벌을 받은 에뤼식톤. 케레스 여신의 신목을 도끼로 찍어 버렸다.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아주 단순하고 어리석다. 곡물과 풍요의 여신인 케레스가 이 나무를 위기에서 구해 줄지 시험해 보기 위한 것이었다. 즉, 그는 사람들의 믿음을 멸시하고 신의 존재를 무시한 것으로 케레스는 기아, 주림의 신 파메스로 하여금 응징토록 하여 이런 형벌을 받은 것이다.

p378 그것은 그렇고 내가 왜 남의 이야기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일상생활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이런 수다를 떨었을 때가 아닐런지.



변신이야기 2


제9부 · 헤라클레스 외


p15 신이 인간에게 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켈로오스는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를 두고 연적이 되어 싸울 때 왕에게 말하면서.

p16~17 그대는 유피테르 대신의 아들일 리 없을 터이거니와 만일에 그대가 유피테르 대신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또한 자랑거리가 될 턱이 없다. 그대가 만일에 유피테르 대신을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대는 이로써 그대 어머니의 간통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자, 어쩔 테냐? 유피테르 대신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테냐, 아니면 유피테르 대신의 아들이라고 우겨 그대가 참으로 부끄러운 짓거리의 씨앗이라고 할 테냐?

p22 참된 것에다 거짓된 것을 섞기 좋아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눈덩이같이 불리기 좋아하는 파마여신.

바로 소문의 여신이다.

p24~26 사투르누스의 따님이신 유노 여신이여. 제가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니 마음껏 보고 즐기소서. 높은 데서, 고통받는 저를 내려다보시되, 그 심술이 가라앉을 때까지 마음껏 보소서. 제 팔자가, 제 적인 여신까지 불쌍하게 여겨야할 만큼 기박하다면 실컷 보신 연후에 제 피를 말리는 이 고통, 이 몹쓸 영혼을 거두어가소서. 저에게 어울리는 선물은 죽음입니다. 이 죽음이야말로 서자인 저에게 주시기에 알맞은 선물입니다. 제가, 저 신전을 이방인들의 피로 물들이던 부시리스를 죽였다고 내리시는 상이 이것입니까? 저 잔인무도한 안타이오스(대지의 아들. 발이 땅에 닿아 있는 한 아무도 이 자를 죽일 수 없다)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죽였다고 내리시는 상이 이것입니까? 머리가 세 개인  히베리아의 양치기(케뤼아)를 죽이고 머리가 세 개인 저 저승의 개 케르베로스를 끌고 왔다고 내리는 상이 이것입니까? 이 손으로 저 무서운 황소의 뿔을 잡아 땅에다 무릎을 꿇렸고, 이 발로 엘리스로 갔고(왕 아우케이아스가 수십 년 묵힌 외양간을 단 하루만에 깨끗이 치움), 스튐팔로스 늪으로 갔고(요사스러운 새를 쫓음), 파르테니오스의 숲(처녀의 숲. 디아나 여신의 성지인 숲으로 들어가 뿔은 황금, 발굽은 청동으로 되어 있는 암사슴을 생포해 옴)으로 갔다고 이런 상을 내리는 것입니까? 아마존의 나라로 원정하여 금을 두드려 만든 허리띠를 가져왔다고, 잠들지 않는 용이 지키는 황금 사과나무에 사과를 따왔다고...

헤라클레스는 그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힘이 세고 가장 유명한 영웅이다. 그의 영웅의 모험은 본인이 말한 바처럼 이와 같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일을 하게 된 것은 유노 여신의 저주로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식들을 죽여 버렸기 때문이다. 이후 델포이 신탁으로부터 티린스의 왕 에우리스테우스를 12년 동안 섬기며 그가 명하는 일을 하면 불사의 몸이 될 것이라 했고 12개 이상의 일을 했다. 어쨌든 유노여신의 지속적인 미움을 받는다.

p31 불카누스가 헤라클레스의 몸으로부터 불에 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털어내자 이 영웅의 형상은 이 영웅을 떠났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영웅의 모습, 오로지 아버지 유피테르로부터 받은 것으로만 이루어진 영웅의 모습은 이제 지상에서 숨쉬던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뱀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 비늘이 반짝이는 새 껍질로 거듭나듯이 티륀스의 영웅도 필멸의 육체를 벗고 불사의 몸으로 거듭났다. 인간의 오체를 벗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는 이전보다 더욱 위엄 있는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전능한 그의 아버지 유피테르는 그를 사두마차에다 태우고 구름으로 가려 천상으로 불러올리고는 반짝이는 별자리 사이에다 박아주었다. 아틀라스는 이 새로운 별의 무게를 어깨로 느낄 수 있었다.

헤라클레스는 원정에서 이올레를 포로로 잡아오고 이에 남편의 사랑을 잃을까 걱정한 그의 아내 데이아네이라가 네소스의 독을 발라 준 옷을 입었다가 죽게 된다. 네소스는 데이아네이라를 겁탈하려다 헤라클레스의 독화살에 죽으며 사랑의 미약이라 속인 독혈을 그녀에게 주었던 것이다.

p33 내가 부리던 하녀 가운데 갈란티스라고 하는 금발 처녀가 하나 있었다. 이 갈란티스는, 신분은 천해도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시키는 일이면 몸을 아끼지 않고 잘했다. 그런데 내가 아기를 낳지 못해 애쓰는 걸 보고는 유노 여신이 심술을 부리고 있다는 걸 알았던 모양이야. 한동안 집을 들락날락하던 갈란티스는, 팔짱을 끼고 제단 옆에 앉아 있는 루키나 여신을 보았어. 갈란티스는 루키나 여신께 이런 말을 하지 않았겠어.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희 마님을 축복해 주세요. 아르골리스의 알크메네 마님께서 방금 기도의 응답을 받으셔서 옥동자를 분만하셨답니다.>

     해산의 여신께서는 뜻밖의 소식에 기겁을 하시고 팔짱을 푸셨는데, 이 분이 팔짱을 푸시는 순간에 나도 아기를 낳을 수 있었지.

알크메네의 하녀. 정말 멋진 한방이었어!

   그리고 알크메네는 헤라클레스의 어머니. 암피트리온의 아내임에도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헤라클레스를 낳는다. 기간테스와의 싸움을 앞둔 제우스가 신들을 도울 영웅을 낳을 여성으로 그녀를 선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리고 훌륭한 영웅의 낳기 위해 밤의 길이를 3배나 늘렸다고도 하고. 남편이 진상을 전해듣고 죽이려 했으나 제우스 방해로 살았다고 한다. 어쨌든 암피트리온과 부부로 지내며 낳은 쌍둥이 중 하나가 헤라클레스와 이피클레스라 한다. 그녀는 죽은 뒤 특별한 인간에게만 허용되는 행복의 섬으로 옮겨졌다 한다.

P34 갈란티스(족제비)는, 입으로 거짓말을 해서 내가 무사히 아기를 낳게 하지 않았니? 그래서 여신은 갈란티스로 하여금 입으로 새끼를 낳게 하셨어.

고대인들은 족제비가 입으로 새끼를 낳는다고 믿었단다.

P36 팔자가 기구한 인간이 하는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면, 내 신들께 맹세코  말하거니와, 내가 이렇게 엄청난 일을 당하는 것은 부당하다. 나는 지은 죄도 없이 이렇게 터무니없는 말을 받고 있다. 나는, 남들의 비난을 받을 만한 짓을 한 적이 없다. 내 말이 거짓이라면, 내 잎은 내 가지에서 떨어질 것이고 내 가지는 말라비틀어질 것이며 내 둥치는 도끼에 찍혀 불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아, 이 아기를 이 가지에서 거두어 가다오. 데리고 가서, 잘 보살펴주고 우유를 먹여주고, 자라거든 내 가지 밑에서 놀 수 있게 해다오. 말을 하게 되거든 이 어미에게, 슬픈 사연이나마 이런 말을 하게 해다오.

     ‘우리 엄마는 이 나무 안에 숨어 있대요.’

참 슬픈 이 말. 정말이지 무슨 죄를 지었는가. 드뤼오페의 이야기다. 드뤼오페와 이올레자매가 강둑으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가 한 그루 대추나무에 자줏빛 꽃이 가득 피어 있는 걸 보고는 무심코 그 꽃 몇 송이를 따서 아기에게 쥐어 주었다. 그런데 그 나무는 프리아포스에게 쫓기다가 스스로 대추나무로 변한 요정 로티스였다. 꽃가지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도망치려 하였으나 드뤼오페는 그 순간 나무가 되어 버렸다. 그때 남편과 아버지와 동생에게 남긴 말이 위와 같다.

P41 팔라스의 딸인 아오로라는, 지아비의 나이가 너무 많은 것을 불평했고.

아우로라, 즉 새벽의 여신은 휘페리온의 딸로 알려져 있으나 팔라스의 딸이라는 전승도 있다. 이 아우로라는 트로이아 왕 라오메돈의 아들 티토노스를 유괴하여 지아비로 삼고는 유피테르 대신에게 청을 넣어 이 티토노스에게 불사의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했다. 유피테르는 이 청을 받아들여 티토노스에게 불사의 은혜를 베풀어주었다. 그러나 아우로라가 유피테르에게 기도할 때 <청춘>까지 베풀어줄 것을 기도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티토노스는 쪼글쪼글 늙은 채로 영원히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역자).

P43 그대들은 모두 운명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신들이오. 그러니까 그대들은 이를 기꺼이 용인하여야 하오. 나 역시 이 운명의 손길은 벗어날 수가 없는 몸인 것이오. 나에게 만일 운명의 물길을 돌린 권능이 있었다면, 아이아코스의 허리는 세월의 무게로 휘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지금은 노경에 들어 온갖 조롱을 받고 있는 미노스도 법을 이런 식으로는 집행하고 있지 않을 것이오.

P46~47 하늘에는 하늘의 법도가 따로 있다고 하실 테지요만, 하늘에 하늘의 법도 따로 있고 땅에 땅의 법도가 따로 있다면, 하늘의 법도로 인간을 다스리시려 하시는 것에 장차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p49 내 가슴의 상처가 비록 깊으나, 미친 욕망의 불길이 내 가슴 속에서 비록 뜨겁게 타오르고 있기는 하나, 신들께 맹세코 나는 내 마음을 온전히 가누자고, 쿠피도 신의 이 무자비한 공격을 피해보고자 저로서는 있는 힘을 다하여 싸웠습니다. 그대는, 여자가 어떻게 그같이 싸울 수 있겠느냐고 하시겠지만, 나는 나대로 그대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싸우면서 버티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싸움에서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대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대만이, 그대를 사랑하는 나를 죽이거나 살리거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소서.

p55 딸은, 우리에게 짐이 될 뿐이오. 불행히도 나는 딸을 먹여살릴 만큼은 넉넉하지 못하오, 그러니 그대가 딸을 낳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오. 만일에 딸이 태어나면 그 아이는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오. 나도 좋아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오. 다 가족을 생각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 나를 용서하기 바라오.

이 황당함. 딸을 먹여살릴 만큼은 넉넉하지 못하다니. 딸을 먹여 살릴 만큼이 안되면 아들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아들을 낳고 싶은 것이지. 그러나, 참 딸이 태어났다고 죽인다는 것이 말이 되나. 더구나 그것이 가족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란다. 딸은 가족에 속하지 않는다.

p59 이피스여! 정신을 차리고 이 어리석은 생각, 쓸데없는 생각일랑 털어버려야 한다. 너 자신도 속이지 말로, 남들도 속이지 말고, 네가 무엇으로 태어났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보고, 여자인 네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여라. 사랑에의 욕망을 낳고 이 욕망을 살찌우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이 땅에서 여자로 살아가기란. 결국 남성이 되어야 하는가.

p60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오직 자연뿐이다. 그러나 이 자연을 누를 자는 이 세상에 없다.


제10부 · 오리페우스의 노래 외


p63 선황색은 환희를 상징하는 색깔이다. 그래서 혼인의 신 휘메나이오스는 물론이고 술의 신 박쿠스, 정욕의 화신인 베누스, 사랑의 신 쿠피도도 이 색깔의 옷을 입는다.

p65 저희들 산 것들은, 산 것들의 동아리들은 모두 이곳으로 와야 한다는 팔자를 타고 태어났습니다. 빨리 오든, 늦게 오든 필경은 모두 이곳으로 와야 합니다. 저희들은 모두 이곳으로 오고 있으며 이곳은 저희들 최후의 안식처입니다. 인간은 이곳에 와서 영원히 이곳의 신이신 저승 왕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p69 오르페우스는 여자보다는 오히려 나이 어린 소년이나 청년들에게 사랑을 기울이는 것을 좋아했다. 말하자면 이들이 어른이 되기까지의 인생의 봄과 갓 핀 인생의 꽃을 사랑한 것이었다. 오르페우스는 트라키아 사람들에게 이런 풍습을 맨 처음으로 전한 사람으로 알려지고 있다(역자).

그토록 한 여자를 사랑하였던 오르페우스가 결국 그 에우리뒤케만을 그리워하다 동성애를 전파한 최초의 사람이 되다!

p71~72 포에부스 신은, 사랑하는 수사슴이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니 슬퍼하는 것은 당연하나 죽어가는 것은 이미 죽어가는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이 소년을 달랬다. 그러나 소년은, 신들께, 마지막 소원이니 수사슴의 죽음을 영원히 슬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 오래 울고 있어서 그랬겠지만 그의 몸에서는 피가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그의 팔다리는 푸른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흰 이마를 덮고 있던 머리카락은 하늘을 향해 뻣뻣하게 일어서기 시작했다. 아폴로 신은 이것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탄식했다.

     “네가 남을 위하여 슬퍼하고, 네가 고통스러워하는 이웃의 벗이 되고자 하니 나 또한 너를 위하여 슬퍼하리라”

키파리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케오스섬에 살던 미소년으로 아폴론의 사랑을 받았다. 금빛 뿔을 지닌 아름다운 수사슴이 자신이 던진 창에 맞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따라죽으려 한 것이다. 그리하여 사이프러스로 변했다. 측백나무과의 사이프러스는 죽음의 상징으로 사용되며, 그리스와 로마에서 주로 묘지에 심었다고 한다.

p74 어느 날, 태양이 시간으로 보아 가버린 밤과 장차 올 밤의 한가운데 들어, 가기도 멀고 오기도 먼 그런 시각이었다.

p74 유피테르가 세계의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한 마리씩의 독수리를 날리자 이 두 마리의 독수리는 바로 아폴로의 신탁전이 있는 델포이에서 만나더라고 한다. 이것은 델포이가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신전에는 <옴팔로스(배꼽)>라고 불리던 원추형 바위가 있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 바위가 세계의 중심, 혹은 배꼽이라고 믿었다. <델포이>라는 말 자체가 <자궁>이라는 뜻이다.

p79 역사상 최초의 매춘부가 된 이들은 수치심까지 잃어 얼굴을 붉힐 줄도 몰랐다. 이들을 돌로 만들어버리기는, 따라서 간단했다.

옛날 이 섬에는 처녀들이 혼인하기 전에 일정한 기간 동안 항구로 나가 몸을 판 습속이 있었다고 한다. 몸 판 돈의 일부는 혼수를 장만하는 데 쓰고 일부는 베누스 신전에 바쳐 외로운 나그네를 보살피는 데 쓰게 했다고 하는데 이런 습속은 <신음(神淫)>이라고 불린다.

    프로포이티데스의 이야기다.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성을 부정하는 말을 했다가 분노한 여신이 그녀들의 수치심을 빼앗고 가슴에는 주체할 수 없는 정욕을 불어 넣어 사람들 앞에 공개된 첫 번째 창녀들로 만들었다. 몸과 마음의 부끄러움을 상실할수록 그녀들의 피는 점차 굳어갔으며 결국에는 모든 생기가 빠져나가 돌로 변했다고 한다.

p83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다. 내가 바라기로는 이 이야기는 듣되, 한쪽 귀로 듣고는 한쪽 귀로 흘렸으면 한다. 내 이야기를 듣고 이를 재미있다고 행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이야기를 믿지 말기 바란다.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만약에 이런 일이 정말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끔찍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반드시 믿어야 한다.

이 끔찍한 이야기가 뮈라의 이야기...

p86 아서라, 이 죄에서 놓여날 수 있을 때, 아직은 죄를 짓지 않았을 때, 마음에서 사악한 생각을 비우고, 전지전능한 자연의 법을 어기는 길에서 물러서거라. 너는 사악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나 네 처지로 보아 이는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뮈라의 이 욕망이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뮈라의 아버니 키뉘라스는 아름다운 자신의 딸을 자랑하다 베누스 여신에 빗대었다. 분노한 여신의 뜻에 따라 에로스는 뮈라에게 화살을 쏘았고 뮈라가 처음 본 이가 그녀의 아버지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후에 에롯도 자기 손으로 뮈라에게 화살을 쏜 것을 부정했을 정도라고..

p87 그러나, 어떻게 해야 좋을 것인지 알지 못했다. 허리를 무수히 찍힌 채, 도끼의 마지막 일격을 기다리면서 어디로 쓰러질지 몰라 사방을 둘러보는 나무처럼, 뮈라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끝없이 망설였다.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을 때, 이렇게 뮈라처럼 갈등하고 망설이지.

p93 한편으로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삶에 염증을 느낀 뮈라는 또라지게 어떤 기도를 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지 못하면서도 신들에게 이런 말을 푸념 비슷하게 했다.

    “하늘에 신들이 계신다면, 그리고 이런 신세 타령도 들으신다면 아뢰고 싶습니다. 저는 무거운 벌을 받아 마땅한 죄를 지었습니다. 아무리 무거운 벌을 내리신대도 몸을 사라지 않겠습니다. 저는 살면 사는 대로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을 죄를 지었고, 죽으면 죽는 대로 저 세상 사람들의 분노를 살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쫓으시되 이 세상에서도 쫓으시고 저 세상에도 들지 않게 하소서. 바라오니, 저를 다른 것으로 바꾸시어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몸이게 하소서.”

뮈라는 참회의 기도를 드렸고 몰약나무가 되었다. 뮈르. 몰약. 아라비아 산 관목인 이 나무의 수액은 방향제나 여인용 머리 기름으로 쓰인다. 따라서 아도니스가 뮈라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사멸하지 않고 해마다 재생하는 아도니스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원래 그리스어 <뮈라>는 <쓰다>는 뜻이다.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가져왔던 세 가지 예물, 즉 황금과 유호아과 몰약의 <몰약>이 바로 이것인데 이 몰약이 그리스도가 당할 고난과 부활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역자).

p95 세월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가는 법이다. 그리고 세월만큼 빠른 것도 없다. 제 누이의 아들이자 제 외조부의 아들인 그가 나무 껍질에서 태어난 것이 불과 며칠 전의 일 같은데 어느새 자라 고운 어린이가 되고 소년이 되었다가는 곧 잘생긴 청년으로 장성했다. 인물은 아기 때의 인물에 못지않게 준수한 청년으로 자란 것이다. 이 청년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건이 시작될 즈음에는 제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사랑의 불길에 복수라도 하는 듯이 사랑의 여신 베누스의 애인이 되어 있었다.

아도니스가 베누스의 애인이 되었지만 페르세포네와 서로 경쟁하였다 한다. 베누스는 아도니스가 태어나자 상자에 넣어 페르세포네에게 보냈는데 아이가 크자 페르세포네가 베누스에게 보내지 않은 것이다. 제우스는 심판이 되어 1/3을 각각 이승과 저승, 그리고 아도니스의 의사에 맡기도록 했다. 아도니스는 베누스와 2/3를 보냈고 이승과 저승을 장애없이 오갈 수 있었다. 마치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몰약나무가 된 어미처럼 그도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이승도 저승도 속하지 않은 듯이....아무튼 베누스 여신이 에로의 활에 찔려 처음 본 남자가 아도니스였고 만사를 제쳐두고 그와 같이 있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가 신들의 모임에 갔을 때 멧돼지에 찔려 죽게 된다. 그리고 아네모네가 되었다.

p98 아탈란테여, 너에게는 지아비가 소용없구나. 너는 남자 겪는 일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쩔꼬, 너는 결혼을 피할 팔자가 아니다. 결혼한 뒤에는, 산 채로 너 자신을 잃겠구나.

아탈란테는 멧돼지 사냥에서 멜레아그로스를 사랑에 빠지게 한 그 여인이다. 그녀는 사냥꾼이자 달리기의 명수였다. 어쨌든, 아탈란테만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결혼은 산 채로 자신을 잃는 일이 아닐까.

    아탈란테를 신부로 맞이하고 싶은 히포메네스는 베누스 여신의 도움으로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여신에게 아무런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다. 그러자 베누스 여신은 이들이 키벨레 여신의 신전을 지나는 동안 남편에게 정욕을 일으켜 욕망을 참지 못한 히포메네스로 하여금 성소를 더럽히게 한다. 이로써 키벨레 여신의 벌을 받아 그들은 사자로 변하게 된다.

p107 소아시아 농사신이었던 아도니스의 운명은 식물의 발아와 생육과 겨울 동안의 사멸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제11부 ·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 외


p116 그는 여전히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한번 당하고도 또 한번 당하게 되니, 어리석어도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p120~121 물의 여신이여, 아이를 가지세요. 그 아이는 장차, 아버지의 명예를 저만치 앞지르는 영웅이 될 게고, 아버지보다 더한 칭송을 받게 될 게요.

     유피테르 역시, 프로테오스의 이러한 예언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바다의 여신들에게 뜨거운 마음이 일어도 아비 될 자기 이상의 영웅이 태어날까봐 자제해 오던 터였다. 유피테르 대신이 테티스에게 손을 대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유피테르가 이렇게 나약하였구나. 그리고 무수한 욕정으로 많은 여성들의 변신을 주도한 그가 자신보다 더욱 잘난 아들은 거부하는구나. 사랑보다 명예가 더 강하구나. 그러나 그와 같이 행동한 것은 명예롭지 못하긴 하다만. 유피테르는 꾸욱 참고 테티스를 인간인 펠레우스의 아내로 점찍었고 여기서 태어난 영웅이 아킬레우스이다.

p126~127 그렇게 성정이 난폭하던 형은 저렇게 새가 되었어도 남에게 온정을 베풀기는커녕 자기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까지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온정을 베풀지 못하는 이, 자신만의 불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니.

p131 바람은,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섭지 않을지 모르지만 잘 아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무서운 것이랍니다.

p137 킴메리아 인들이 사는 나라 가까이에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에 깊숙이 들어앉은 동굴이 하나 있었다. 이 동굴이 바로 잠의 신 솜누스의 은신처인 궁전이었다. 여기에는 햇빛도 비치지 않았다. 이 솜누스의 궁전은 안개에 쌍 있어서 늘 어두컴컴했다. 여기에는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리는 닭도 없었고, 고요를 깨뜨리는 개나 개보다 더 귀가 밝은 거위 같은 것도 없었다. 짐승이 짖는 소리, 가축이 우는 소리도 여기에서는 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는 소리, 입씨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침묵, 오로지 고요가 있을 뿐이었다.

잠에 대한 이미지.

p138 솜누스의 옆에는 수많은 꿈의 신들이 누워 있었다. 꿈의 신들은, 벌판에서 거둔 옥수수, 숲의 나뭇잎 혹은 해변의 모래알만큼이나 그 수효가 많았다.

p138 만물을 쉬게 하시는 잠의 신이시여,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평화로운 신이시여. 산 것들의 마음을 고요하게 하시고, 산 것들의 마음을 근심으로부터 구하시는 신이시여.

이것이 바로 잠!

p139~140 솜누스는 수많은 아들 가운데서 맏아들 모르페오스를 깨웠다. 모르페오스는 인간으로 둔갑하는 데 능하고 인간의 흉내도 잘 내기로 이름있는 꿈의 신이었다. 특정인의 걸음걸이, 표정, 목소리를 모르페오스만큼 완벽하게 흉내낼 수 있는 꿈의 신은 없었다. 이 모르페오스는 그 사람의 옷차림, 그 사람이 즐겨 쓰는 말까지도 그대로 흉내낼 수 있었다. 모르페오스는 사람의 흉내를 잘 재는 꿈의 신인 반면에, 신들 사이에서는 이켈로스, 인간들 세상에서는 포베토르(겁주는 자)라고 불리는 둘째아들은 짐승이나 새나 뱀으로 둔갑하거나 이들의 흉내를 내는 데 능했고, 셋째아들인 판타소스(환영)는 땅, 바위, 물, 나무 같은 무정물로 둔갑하거나 흉내를 내는 데 능했다.

p147 이 청년에게는 자살이 하릴없게 된 것이네. 아이사코스는, 죽으려던 자기 뜻이 그렇게 꺾이자 몹시 짜증스러웠네. 그에게는 삶이라는 게 오히려 불명예스러웠던 것일세. 그래서 아이사코스는 새로 얻은 날개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가 두 번째로 바다로 내리꽂혔네. 이번에도 깃털 때문에 자살이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네. 격분한 아이사코스는 있는 힘을 다해 물 속으로 헤엄쳐 들어갔네. 덕분에 그의 몸은 깊이깊이 가라앉을 수 있었지.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마음속에 깃들여 있는, 사랑하는 마음이 그 몸을 가벼워지게 했네. 아이사코스는 보다시피 목과 다리가 긴 새가 되었네. 이 새는 물을 좋아하네. 물에 뛰어들기를 좋아해서 잠수조라네.

아이사코스는 트로이의 마지막 왕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헥토르와 파리스의 이복형제이다. 왜 이토록 자살을 하지 못해 안달하는가. 그는 황금사과를 지키는 헤스페리아를 사랑하였는데, 강가에서 머리를 말리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자 겁을 먹은 그녀가 풀밭으로 도망치다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 이 죄책감 때문이다.


제12부 · 트로이 전쟁 외


p152 이 세상의 한가운데, 말하자면 땅과 하늘과 바다 한가운데, 이 땅과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려다보이고 이 세상의 모든 소리가 들리는 곳이 있다. 바로 이곳에 소문의 여신인 파마가 살고 있다. 파마가 거하는 처소는 산꼭대기에 있다. 이 집에는 문이 수천 개가 있는데 이 많은 문이 다 항상 열려 있는 것이다. 그래야 사방의 소문이 잘 드나들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p152 이 집에는, <경거망동>, 생각이 깊지 못한 <실수 연발>, 터무니없는 <기쁨>, 소심한 <공포>, 당돌한 <선동>,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속삭임>이 식객으로 붙어  산다. 파마 여신 자신은 하늘과 땅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두루 알아내어 온 세상에 그 소문을 퍼뜨린다.

소문에 뒤따르는 이미지들이 정말 그렇구나.

p158 흐르는 세월이 내 기억을 좀먹는 바람에 옛날에 내가 보고들은 것이 내 머리에서 많이 사라져버렸네. 그러나 아직은 사라져버린 것보다 남아 있는 것이 더 많아.

p159 해신께서는 저를 이렇듯이 사랑하여 주셨으나, 저에게는 이것이 그렇게 견디기 어려운 일일 수가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러니, 여자만 아닐 수 있다면 저에게 더 바랄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카이니스의 이야기다. 남자가 된 여인이다. 해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어떤 무기에도 상처받지 않고 죽지 않는 남자가 되게 해달라고 하여 카이네우스란 이름으로 바꾸었다. 참...안타깝다.

p160 당돌한 익시온의 아들 페이리토스는 구름의 자식들을 잔치상으로 초대했네.

익시온은 에이오네우스의 딸 디아를 아내로 맞았으나 납폐금이 아까워 에에오네우스를 죽인다. 이런 익시온을 유피테르는 불쌍하다고 천상의 잔치에 초대하여 친족살인죄를 씻어주었다 한다. 그런데 익시온은 천상에서 당돌하게 유노 여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죄를 범한다. 유피테르가 이를 눈치채고 구름으로 유노의 형상을 빚어 천궁 안을 걸어다니게 했는데 익시온은 이 가짜 유노를 취하게 된다. 이를 괘씸하게 여긴 유피테르는 이 익시온을 저승으로 보내어 영원히 도는 불바퀴에 매달리게 한다. 그러나 구름으로 빚어진 가짜 유노는 이 익시온의 씨를 받아 자식을 지어내는데 이들이 바로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말인 켄타우로스라는 것이다.

p168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말이네, 보는 눈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달라.

p179 살아 있을 때는 범 같은 장수였던 아킬레오스도 재가 되었을 때는 항아리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영광은 온 세상을 차고 넘쳤다. 아킬레오스라는 이름이 있는 곳으로 마땅한 곳은 넓디넓은 우주뿐이었다. 이 펠레오스의 아들은, 영원히 살 곳으로는 마땅하지 않다고 해서 타라타로스의 나라에도 내려가지 않았던 것이다.

테티스 여신이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고자 스틱스 강에 몸을 담갔는데 이때 손으로 잡고 있던 발뒤꿈치가 물에 젖지 않아 치명적인 급소가 된다. 또, 트로이 전쟁에 보내지 않으려 여장을 시키기도 했으나 오디세우스에게 정체가 들통나 전장에 참여했고 삐져서 전쟁터에 나타나지 않은 적이 있다. 바로 아가멤논에게 브리세이스를 빼앗겨서였다. 그리스가 계속 패배하자 친구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갖추고 출전하였다가 헥토르의 손에 죽고 나서야 다시 전쟁터에 나간다. 그리고 헥토르의 시체를 전차에 매어 돌아왔다.


제13부 · 유민의 시대


p182 오뒤세우스가 왜 도망쳤을까요? 오뒤세우스는 무기로 하는 싸움보다는 말로 하는 싸움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창칼로 싸우는 데 능하지만 오뒤세우스는 세 치 혀로 싸우는 데 능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세 치 혀로 싸우는데 능하지 못하듯이 오뒤세우스 역시 창칼로 싸우는데 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이아스는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차지하고자 오뒤세우스와 겨루는 중이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는 헤파이토스가 만든 아이기스이다.

p191 이 사람이 편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내가 지혜로써 여러분을 자주 이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드리는 말씀을 웅변이라고 할 수 있다면, 나는 내 웅변이 사감(私感)을 지어내는 웅변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자주 여러분을 이롭게 하는데 쓰였던 이 웅변이 지금은 그 주인을 변호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자신이 지닌 재주를 써서 제 주장을 펴야 하는 것이니까요.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와 가족과 함께 하고자 미친척하며 트로이전쟁에 참여하지 않았었다. 트로이를 함락시키는 목마 속에 병사를 숨기도록 하기도 했다.

p193 테티스 여신은, 아들이 전쟁에 참가하면 이름을 떨치기는 하나 단명하고, 전쟁에 참가하지 않으면 이름을 떨치지 못하나 천수를 누릴 수 있다는 신탁을 믿고, 아들을 여자로 전신시켜 스퀴로스 땅 뤼코메데스 왕의 궁전에 숨어살게 했다.

아킬레오스 없이는 트로이아 성을 깨뜨릴 수 없다는 그리스 신탁을 받고 오뒤세우스가 아킬레오스를 찾았는데 여성 분장을 하고서도 여성용 물건보다 창과 방패와 같은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아킬레우스를 단박에 알아내었다.

p209 오뒤세우스는 디오메데스와, 아킬레오스의 아들인 네오프톨레모스를 대동, 이 섬으로 가서 필록테테스를 데리고 트로이아로 돌아왔다. 필록테테스가 이 활로 트로이아 전쟁의 불씨였던 파리스를 쏘아 죽이는 것과 거의 때를 같이 해서 트로이아 전쟁도 끝났다. 

전쟁이 불화의 여신 사과 한알에서 시작되었다면 믿겠는가.

p212 나를 두로 너희 그리스 함대는 떠나는구나. 내 공적에 대한 그대들의 찬사는 나와 함께 묻어버리고 떠나는구나. 이럴 수는 없다. 내 무덤은 내 몫의 공적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다. 그러니 폴뤽세나를 제물로 바쳐 아킬레오스의 혼을 위로하고 떠나거라.

아킬레오스의 유령이 아가멤논 앞에 나타나 하는 말이다. 참, 영웅이라 칭송받는 이가 보상을 요구한다. 한 여성을 제물로 바치라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인가. 프리아모스의 딸이자 헥토르와 파리스의 동생으로서 아킬레우스를 죽음으로 이끈 여인이다. 아킬레우스의 마음을 사로잡아 약점이 발뒤꿈치인 것을 알아내어 신전에서 결혼 서약을 할 때 파리스로 하여금 독화살로 쏘게 하였으니.

p214 아킬레오스가 파리스와 포에부스의 화살에 쓰러질 때 나는, 이제 아킬레오스를 두려워할 일은 없겠다, 했더니, 아킬레오스는 죽은 다음에도 사람을 죽이는구나. 아킬레오스는 무덤에 들고도 이렇듯이 우리 집안에 대한 증오를 버리지 않으니 우리는 이제 그 자의 무덤까지도 두려워해야 하는 구나.

헤카베. 헤쿠바. 남편과 자식을 잃고 개가 된 여인.

p220 요컨대, 다른 사람들이, 개가 되어 온 세상을 떠도는 헤쿠바의 신세를 슬퍼하고 있을 때도 아우로라는 자기 몫의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 아우로라는 지금도 온 세상에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눈물을 뿌리고 있다.

그녀가 슬퍼하는 아들은 멤논. 어머니의 눈물은 아침이슬이 되었고 멤논의 부하들은 새가 되어 멤노니데스라고 불렸는데 후에 제우스의 배려로 불사의 존재가 되었다 한다.

p221 아이네이아스. 베누스 여신과 인간 안케세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는 별로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지지 않는데 후일 로마 신화에서 신화적인 영웅으로 대접받는 것은,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아 유민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 로마 건국의 기틀을 닦게 되기 때문이다(역자).

p229 스퀼라, 저 사랑의 여신 베누스는 한없이 부드러워 보이지만 이 여신이 부리는 조화는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이란다. -----괴물 폴뤼페모스라는 괴물로 사랑을 할고 나니 참으로 희한해지더구나. 사랑을 알고 난 뒤부터 폴뤼페모스는 가슴에 불이 붙었는지 양떼고 동굴이고 도무지 아는 체를 하지 않아. 흉측한 제 외모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고, 남들 눈에 들려고 애를 쓰기 시작한 게 이즈음부터였어.

갈라테이아가 스퀼라에게 하는 말...바다의 요정 갈라테이아와 아키스는 서로를 사랑하는 연인인데 외눈박이 거인인 폴리페모스가 갈라테이아에 반해 끊임없이 애정을 표한다. 그녀가 보고 있다는 생각에 늘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항상 미소지으려고 노력하며, 평생 한번도 하지 않았던 세수를 하고 수염을 다듬는다. 그러나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 갈라테이아가 그 사랑을 받아들이겠는가. 이에 폴뤼페모스의 사랑 역시 집착으로 바뀌게 되고 연인 아키스는 폴뤼페모스에 의해 죽는다.

p236 강의 신 머리 위에는 뿔이 돋아 있는 것이 보통이다. 뿔은 거침없는 강의 역동적인 흐름을 상징하는 듯하다. 강의 신 아켈로오스도 두 개의 뿔 중 하나를 헤라클레스 손에 뽑힌 바 있다.


제14부 · 로물루스와 레무스 외


p241 나는 여신께, 내 사랑병을 고쳐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녀에 대한 이 사랑에 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처녀에게 죄가 있으니, 처녀도 내가 당한 만큼의 고통을 당하게 해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글을 읽자마자 바로 나온 말이, ‘글라우코스, 이런 미친놈’이었다. 기가 막힌 말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오늘날 헤어진 연인에게 복수하며 그 가족까지도 살인하는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글라우코스와 같은 이런 생각 때문 아니겠는가. 어쨌든 글라우코스도 뒤늦게 키르케가 스퀼라에게 한 짓을 알고 도망쳤으나 다시 붙잡혀 천년을 노망과 고통 속에 산다. 다시 바다로 되돌아 온 글라우코스는 자신이 천 년 동안 빠져 죽은 연인들의 시체를 수습해서 살면 신들의 총애를 받은 젊은이가 자신을 구해주리라는 신탁의 뜻을 읽었고 후에 엔뒤미온이 이 예언을 실현하여 그는 젊음을 되찾고 스퀼라와 익사한 연들들 모두를 살려 주게 했다.

p242 천성이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아버지인 태양신 때문에 곤욕을 치른 베누스 여신이 그 분풀이로 태양신의 딸을 그렇게 만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키르케만큼 사랑에 약한 여신도 없었다.

     “그런 여자를 두고 가슴을 앓기보다는, 그대를 원하고 그대를 따르고자 하는 여성, 그대가 사랑하는 만큼 그대를 사랑하는 여성을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남의 짝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니까요. 그대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던질 생각이 있거든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세요. 아직은 늦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혹과 우유부단한 태도를 버리세요.”

키르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딸로 눈이 부실 정도의 외모를 지녔으며 인간을 동물로 바꾸는 마법을 부리는 마녀로 유명하다. 키르케는 ‘독수리’를 의미한다. 전설의 섬 아이아이에(Aiaie)에 살면서 그 섬에 오는 사람에게 마법을 걸어 동물로 변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트로이 함락 후 영웅 오디세우스는 부하와 함께 귀국 도중 이 섬에 배를 대었다. 제비를 뽑아 23명의 부하가 선발되어 에우릴로코스를 대장으로 이 섬의 탐험에 나섰다가 키르케의 저택에 당도하였다. 문 앞에는 늑대와 사자가 있어 그들에게 달려들어 놀라게 했으나, 그녀는 일행을 맞아들여 환대하면서 약을 탄 술을 마시게 한 다음, 지팡이로 때려 오디세우스의 부하들을 모두 돼지로 만들어 버렸다. 혼자만 저택에 들어가지 않고 이 정경을 보고 있던 에우릴로코스의 급보에 접한 오디세우스는 단신으로 부하의 구조에 나섰다. 도중에 제우스의 아들 헤르메스를 만나 모리라는 약을 얻었기 때문에, 그녀의 저택에서 마법의 술을 얻어 마시고도 동물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부하들을 원래의 인간 모습으로 환원시킬 수 있었다. 키르케는 이 과정에서 오디세우스를 사랑하게 되고 1년간 그와 부하들을 섬에 붙들어 머물게 하였으며, 둘 사이에서 텔레고노스가 태어났다. 이후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고향으로 돌려보낼 때 바다 요정 세이렌으로 부터 안전하게 피해가는 방법을 일러주어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다. 서양에서는 지금도 남자가 여자의 육체에 정신을 빼앗겼을 때 '키르케에게 홀렸다'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p244 후일 스퀼라는 오뒤세우스의 배를 난파시키고 수많은 이타가 용사들을 죽임으로써 키르케에게 복수했다. 이 스퀼라가 지금은 바위로 변하여 파도 위에 우뚝 서 있다. 이 스퀼라가 바위로 변하지 않았더라면, 트로이아 인들도 여기에서 무사하지 못했으리라. 바위로 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 스퀼라는 여전히 뱃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스퀼라 역시 원래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한다. 키르케의 심술로 뱀 같은 괴물로 변하고 말았다. 반은 물고기로 변한 글라우코스가 스퀼라에게 반해 키르케에게 영험의 약초로 스퀼라가 자신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글라우코스에게 반한 키르케는 글라우코스에게 사랑을 요청하고 거부당하자 스퀼라를 괴물로 만들어 버린다. 이에 스퀼라는 높은 절벽 위에 뚫린 동굴에 살면서 그 긴 목을 늘여(머리는 여섯 개나 된다고 한다) 가까운 곳을 지나는 배의 뱃사람들을 한 입에 하나씩 물어 잡아먹고 있었다.

p245 디도는 많은 사람들을 속임으로써 버림받은 사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는 한 나라를 건설하고 강인한 모습이었음에도 결국 아이네이아스가 떠나자 절망하여 자살한다. 아이네이아스가 이 디도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유피테르 대신으로부터 새 나라를 건설하라는 명을 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후일 로마와 카르타고가 앙숙이 된 것은 이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디도는 원래 공주로 태어났으나 지아비 쉬카이오스가 오라비 손에 죽는 바람에 재산을 모두 싣고 조국을 떠난 여자다. 두 번째 결혼해서도 실패해서일까. 아무튼 새 나라를 건설하는데 있어 함께 한 부인과 같이 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p250 아폴로 신께서는 온갖 선물을 다 약속하시면서, “쿠라마에의 처녀야.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말만 하여라. 네 소원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시더이다. 나는 순진했는지라, 흙덩어리 하나를 가리키면서, 저 흙덩어리에 든 흙의 낱알 수만큼 생일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만 나는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영원한 청춘을 함께 요구하는 것을 잊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폴로 신께서는, 만일에 자기가 요구하는 사랑을 받아들이면 그만한 수명은 물론이고 영원한 청춘까지 주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처녀의 몸으로 살고 있습니다.

⇒  “시뷜레, 소원이 뭐예요”라고 물으면 그녀는 삶에 지칠 대로 지쳐 “죽고 싶어”라고 대답하곤 했다 한다. 유치하다, 아폴론! 시뷜레는 이처럼 1000개의 모래알을 움켜쥐고 그만큼 살게 해달라고 하면서 영원한 젊음을 함께 원하는 것을 잊었기 때문에 나이만 먹게 되었다. 이것은 그녀가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아폴론이 또한 그렇게 둔 것이다. 보통 사람처럼 늙어가 조금씩 쪼그라들어 나중에는 작은 새장 안에 들어가 살만큼 작아진 그녀의 소원, 참으로 서글프게 들린다.

p261 야누스. 로마의 고대신. 원래는 門의 신이다. 문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종점인 동시에 시발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신에게는, 서로 반대쪽을 향하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이 상징적 성격 때문에 제의때는 늘 신들의 선두를 차지한다. 지나간 해와 새해를 동시에 접하고 있는 달인 1월을 야누아리우스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야누스의 달>이라는 뜻이다(역자).

p269 두려움은 인간을 허약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나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오히려 그 역경을 짓밟을 수 있는 법이다. 우리가 이 역경을 밟을 수 있을 때, 우리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베누스 여신이 내 말을 듣고 있다고 하더라도 할말은 하겠다. 베누스 여신이 디오메데스의 부하들을 증오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이 그렇지만, 나는 할말을 하겠다. 우리는 여신의 증오를 비웃어주자. 우리는 여신의 증오를 비웃어줄 만큼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아크몸의 말.

p286 신들의 세계에서는 한 신이 한 일을 다른 신이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15부 · 카에사르의 승천 외


p296 우리 몸을 살찌우기 위해, 우리의 탐욕스런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동물의 살을 먹다니, 이 어찌 사악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 어머니 중에서도 가장 자비로운 어머니신 대지가 우리에게 모자라지 않게 베풀어주는데도 불구하고 흡사 외눈박이 거인들처럼 사악한 이빨을 다른 짐승에게 박다니요?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고는 탐욕스런 배를 채울 수 없다는 말인가요?

p297 황금 시대가 지나자, 누군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누군가가 고기를 그 탐욕스러운 목구멍으로 삼키는 사자를 보고는 이를 부러워하고 나쁜 전례를 만들면서 인간은 죄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이 자로 인하여 인간이 칼에다 다른 동물의 피를 묻히는 일이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는, 우리 인간을 해치려는 동물만 인간의 칼에 희생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때의 인간은 아무 죄의식도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났어야 했습니다. 죽일 이유는 있었지만 먹을 이유는 없었을 테니까요.

p299 그대들이여, 차가운 저승 땅을 두려워하고 있는 그대들이여. 왜 스튁스의 땅을 두려워합니까? 빈 이름뿐인 어둠의 땅, 시인의 망상에나 존재하는 땅,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땅을 왜 그렇게 두려워합니까? 그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육체라는 것은 화장단에서 재로 화하건, 땅 속에서 오랜 세월 썩어 없어지건, 한번 없어지면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혼은 영원합니다. 이 영혼이라는 것은,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 다른 집을 찾아들어가 거기에 다시 거합니다.

영혼이란 것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늘 살아있기 위한 것일까.

p300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고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니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말랑말랑한 밀랍을 보십시오. 이 밀랍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면 거기에는 그 전의 형태가 남지 않을 뿐더러, 그 전의 형태로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모양만 변했을 뿐, 밀랍은 여전히 밀랍입니다. 이와 같습니다. 영혼은 어디에 가든 처음의 영혼 그대롭니다. 다만 다른 형상 안에 자리를 잡았을 뿐입니다. 그대들에게 경고합니다.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음식으로 삼음으로써, 인간이라는 고귀한 지위를 더럽히지 마십시오. 잔인무도한 살육으로, 인간의 혼과 똑같은 혼을 그 거처에서 쫓아내는 짓을 삼가십시오. 피로써 피를 살찌우면 안 됩니다.

저 말 자체에서는 윤회가 생각이 난다만...

p302 탐욕스러운 미식가신 세월은 모든 것을 부수고 갉아 마침내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세월...오늘 침몰한 여객선이 세월호다...

p303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으로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

p306 더욱 놀라운 것은, 사람의 겉모습뿐만이 아니고 성격까지 바꾸어버리는 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살마키스의 강 이야기, 아이티오피아에 있다는 호수 이야기는 그대들도 들은 바가 있을 것입니다. 아이티오피아에 있다는 이 호수의 물을 마시면, 미치거나 죽음에 이르는 깊은 잠에 떨어진다는 것이지요. 클리토리움에 있는 어느 샘물을 마시면 술을 끊게 된답니다. 이 물을 마신 사람은 평생 물을 술로 즐길 수 있는 것이지요. 이 지방 사람들은 달리 설명합디다만, 이것은 이 샘물에, 술과는 다른 방법으로 마음에다 불을 지르는 어떤 요소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클리토리움에 샘물을 마시러 가야겠다..사람의 성격을 바꿀 수 있는 물이 있다면, 악랄한 성정을 바꿀 수 있는 약이 되었으면..

p310 동물들 가운데 외부의 어떤 도움도 빌리지 않고 스스로 재생하는 동물이, 새 가운데 딱 한가지 있습니다. 아시리아 사람들이 <포이니코스>라고 부르는 새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새는 곡식이나 풀씨를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유향수지나 발삼의 즙을 먹고 삽니다. 이 새는 운명이 정해준 수명인 5백년을 살게 되면,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나무 꼭대기에다 깨끗한 부리와 발톱으로 둥우리를 만듭니다. 그런 다음에는 이 둥우리에다 육계와 감송과 계피와 몰약 같은 향료를 물어다 놓고는 그 위에 누워 한 살이를 마칩니다.

p316 제발 고정하시오. 슬퍼해야 할 사람이 그대 하나뿐인 것은 아니오. 그대가 당한 것과 비슷한 슬픔을 당한 사람들 생각도 좀 하시오. 그러면 그대의 슬픔은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오. 내게도, 내가 당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슬픈 일이 있었소.

슬픔이란 누구에게든 당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일이다.

p330 오비디우스는, 아우구스투스에게 대를 물린 것이야말로 카에사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말한다. 오비디우스는 황제의 비위를 건드려 먼 땅으로 유배되어 있을 동안에 이 책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의도적으로 카에사르의 후계자인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미화하고 있는 것 같다(역자).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추방당한 오비디우스가 결국 되돌아가기 위해 이러한 글을 썼다고 봐야 하는데, 변신이야기의 전개가 2권으로 갈수록 왜 이런지 의아했던 내게 설명이 되었다. 그래서인가, 번역자 이윤기는 변신이야기를 아우구스투스에게 바치는 용비어천가라 비유했다.

p336 이제 내 일은 끝났다. 유피테르 대신의 분노도, 불길도, 칼로,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육체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이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不死)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시인의 예감은 그르지 않았다. 그는 명성을 통해 불사를 얻었으니 영원히 살고 있을 것이다.  


3. ‘내가 저자라면’


■ ‘변신이야기’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변신이야기는 서사시로 천지창조에서부터 작가인 오비디우스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변신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전체 작가는 그리스신화뿐만 아니라 당시에 떠돌던 소아시아 설화, 트로이아 전쟁사, 로마 건국 신화까지를 두루 섭렵하여 전체 15권의 이야기로 엮어 내었다. 1~5권은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6~10권은 영웅에 관한 이야기를, 11~15권은 역사적 인물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천지창조에서부터 거인족의 시대를 거쳐 신과 인간들이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면서 주로 신이나 인간이 동물, 나무, 식물 등으로 변신하는 이야기가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신들과 신들에 의해 ‘변신’된 인간의 모습보다는 전쟁을 거쳐 그리스 문명이 끝나고 트로이 유민들이 로마를 건국하는 과정과 케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를 다루며 이야기를 맺고 있다.

 이 책은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 순간 순간 바뀌는 특징을 가진다. 묘사에 치중하며 작가가 이야기를 서술하다가 등장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제3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서술되고 있다.

 

 


제1권

제1부 ·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1 서사

2 천지창조

3 네 시대와 거인족(巨人簇)

4 이리로 둔갑한 뤼카온

5 인류를 멸망시키는 대홍수

6 새 인류의 조상 데우칼리온과 퓌라

7 왕뱀 퓌톤

8 원계수가 된 다프네

9 암소가 된 이오. 백안(白眼)의 거인 아르고스.

  갈대가 된 요정 쉬링크스

10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

 

제2부 · 신들의 전성시대

 

1 태양수레를 모는 파에톤

2 헬리아데스의 변신

3 백조가 된 퀴크노스

4 칼리스토를 범한 유피테르

5 별이 된 모자(母子)

6 까마귀 깃털이 검어진 내력

7 말이 된 오퀴로에

8 수다쟁이 돌이 된 바투스 노인

9 메리쿠리오스와 헤르세

10 질투의 화신이 된 아글라우로스

11 소로 둔갑한 유피테르와 에우로파

 

제3부 · 박쿠스의 탄생 외

 

1 카드모스의 망명과 테바이 전설

2 디아나와 악타이온

3 유피테르와 세멜레

4 양성(兩性)의 쾌락을 경험한 테이레시아스

5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에코

6 신들을 믿지 않는 펜테오스

7 돌고래가 된뱃사람들. 광란의 박쿠스축제

 

제4부 · 페르세오스와 메두사 외

 

1 미뉘아스의 딸들

2 퓌라모스와 티스베

3 베누스와 마르스의 밀통(密通)

4 레우코토에와 클뤼티에

5 살마키스와 헤르마프로디토스

6 발광한 아타마스와 이노. 티시포네

7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

8 영웅 페르세오스와 아틀라스

9 안드로메다와 바다의 괴물

10 메두사

 

제5부 · 무우사의 탄생 외

 

1 피네오스의 반란

2 프로에토스

3 폴리덱테스

4 무사이를 괴롭혔던 퓌레네오스

5 무사이 아홉자매와 피에리테스의 노래 겨루기

6 플루토의 사랑. 케레스와 프로세르피나

7 아레투사가 샘이 된 내력

 

 

 

제6부 · 신들의 복수

 

1 미네르바 여신과 아라크네의 솜씨겨루기

2 니오베의 아들딸들

3 개구리가 된 뤼키아 농부들

4 산 채로 껍질을 벗긴 마르쉬아스

5 펠로프스의 완쪽 어깨

6 프로크네와 필로멜라

7 북풍신(北風神)보레아스

 

 

제7부 · 영웅의 시대

 

1 이아손과 메데이아

2 이아손의 회춘(回春)

3 펠리아스

4 메데이아의 도망

5 아테나이의 영웅 테세우스

6 아이아코스와 개미족(族)

7 케팔로스와 프로크리스

 

제8부 · 인간의 시대

 

1 니소스와, 조국을 배신한 스퀼라

2 미궁(迷宮)과 아리아드네의 관(冠)

3 하늘을 나는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4 자고새가 된 페르딕스

5 칼뤼돈의 멧돼지 사냥

6 알타이아의 복수와 멜레아그로스의 죽음

7 산비둘기가 된 멜레아그로스의 누이들

8 아켈로오스와 테세우스. 섬이 된 페리멜레

9 필레몬과 바우키스

10 아구병에 걸린 에뤼식톤

2권

 

제9부 · 헤라클레스 외

 

1 아켈로오스와 헤라클레스

2 데이아네이라와 마인(馬人)네소스

3 헤라클레스의 최후

4 알크메네의 해산(解産)과 갈란티스

5 드뤼오페와 로티스

6 되젊어진 이올라오스 테바이 전쟁

7 뷔블리스와 카우노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8 남자가 된 여자, 이피스

 

제10부 · 오리페우스의 노래 외

 

1 오리페우스와 에우뤼디케

2 퀴파리소스의 비극

3 미소년 가뉘메데스

4 꽃이 된 휘아킨토스

5 봄을 파는 프로포이티데스. 케라스타이

6 퓌그말리온의 사랑

7 몰약(沒藥)이 된 뮈라

8 아도니스의 탄생

9 아탈란테와 히포메데스. 아도니스의 변신

 

제11부 ·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 외

 

1 오르페우스의 죽음

2 미다스 왕의 봉변

3 미다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

4 라오메돈과 트로이아축성(築城)

5 프로테오스의 예언. 펠레오스와 테티스

6 케이크스에게 몸붙인 펠레오스. 다이달리온의 변신

7 돌이 된 이리

8 케위크스의 난파

9 잠의 신과 꿈의 신

10 알퀴오네와 케위크스의 전신

11 잠수조(潛水鳥)가 된 아이사코스

 

  

제12부 · 트로이 전쟁 외

 

1 이피게네이아

2 퀴크노스의 전신

3 카이네오스가 남자가 된 내력

4 라피타이와 켄타우로스 족의 싸움

5 넬레오스의 아들 12형제

6 아킬레오스의 죽음

 

제13부 · 유민의 시대

 

1 아킬레오스의 유품

2 트로이아 왕비 헤쿠바의 최후

3 멤논의 주검에서 날아오른 새들

4 아니오스의 식객이 된 아이네이아스

5 스퀼라

6 갈라테이아와 아키스의 슬픈 사랑

7 글라우코스

 

제14부 · 로물루스와 레무스 외

 

1 스퀼라와 마녀 키르케

2 원숭이가 된 케르코페스

3 쿠마에의 시뷜레

4 아이네이아스, 아카이메니데스를 구하다

5 풍신(風神)아이올로스의 선물. 오뒤세우스와 키르케

6 피쿠스와 카넨스

7 새가 된 디오메데스의 부하들

8 아이네이아스의 배 아르데아

9 신이 된 아이네이아스

10 포모나와 베루툼누스. 아낙사레테의 전신

11 로물루스와 헤르실리아

 

제15부 · 카에사르의 승천 외

 

1 뮈스켈로스. 크로톤

2 퓌타고라스의 가르침

3 에게리아의 전신. 히폴뤼토스의 소생(蘇生)

4 타게스. 로물루스의 창. 키포스

5 역질(疫疾)로부터 로마를 구한 아스클레피오스

6 카에사르의 승천

7 결사(結詞)

 


■ 감동적이었던 장절


 변신이야기는 연대기 순으로 신과 인간의 대립을 담고 있다. 늘 신에게 당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는 안타깝고 연민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그것을 묘사하는 오비디우스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다. 작가가 수사학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가 내 앞에서 말하고 있지 않아도 책을 통해 그의 언변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실체적이지 않은 사물에 대하여 구체성을 더하는 묘사들, 안타까움과 사랑을 토로하는 말들, 타인을 설득하는 논리적인 언어 구사 등,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에 존경을 보내게 된다. 그러므로 보통 책에 대해 글귀에 대해 ‘감동적’이라 할 때, 특히 이와 같은 이야기를 읽어 나갈 때의 감동을 무엇으로 정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덜하게 해준다.

 그러니까 내가 감동받는 것이 단지 스토리인지, 작가의 묘사인지를 정하는 것에 고민이 되는 것이다. 문학에 관해서는 스토리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엮어 내느냐가가 필시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그러므로 변신이야기 속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그 내용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글 자체로만 파악하여 감동적인 부분을 찾고자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역시 작가의 탁월하고 세밀한 묘사력이라고 할 수 있다. 잠의 신에 대한 묘사, 복수의 신에 대한 묘사, 질투에 대한 묘사 등. 실체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마치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는 양 적확한 묘사가 놀라웠다. 또한, 구구절절하게 자신에 대한 변명들을 늘어놓는 주인공들의 그 언변들도 놀라움을 안겨줬다. 생각하면 황당한 발언에 답답한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그렇게 수려하게 자기의 심정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힘 아니겠는가.   


■ 보완점


 책을 몇 페이지 읽자마자 ‘그리스로마 신화’이야기를 굳이 ‘변신이야기’라 제목을 바꿔서 다루고 있는가 의아했다. 어떤 차별성을 가지고 감히 그리스로마 신화이야기를 또 떠들어대는가 싶었다. 그리고 이내 신화 속에서의 ‘변신’에 관한 이야기가 주제임을 알고는 넘쳐나는 신들과 인간의 이름에 지쳐, 명칭의 표기 차이에 지쳐 연대기 순이 아니라 일목요연하게 식물도감 동물도감과 같은 형태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변신을 당하는 자가 아니라 변신을 시키는 자를 중심으로 한 구조이다. 변신을 시키는 이들이 신들이므로 각각의 신들이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변신시켰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법은 어떨까. 그리하여 가장 많이 인간을 변신케 한 신은 누구인지도 파악해 보고.

 두 번째, 변신의 형태별로 다루는 구조이다. 동물, 식물, 광물, 무생물로 변신하였는가. 그 중에서도 동물 변신이라면 포유류, 조류, 파충류로 변신하였는가, 식물이라면 꽃과 나무 각각 어떤 꽃과 어떤 나무로 변신하였는가 하는 식이다. 마치 식물도감의 꽃을 다루듯이 그 이야기를 다루는 형태를 생각해 보았다.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이야기로 짜여진다면 좀더 ‘변신’에 초점을 맞춘 일목요연한 내용으로 다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변신이야기의 본질이 변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투스’를 신격화하는, 신의 위치로 격상하기 위한 의도를 가진 책이라면 작가가 정리한대로 연대기적인 서술 형태가 가장 바람직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어찌되었든 일관되지 않은 시점은 산만한 느낌이었다. 그의 탁월한 묘사력과 상상력이 아니었다면 참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번역자가 2인칭으로 된 것을 읽기 편하게 바꾸었다고 하는데 원문을 읽지 못하기에 그러한 번역의 영향인가 싶기도 하다. 기록에 의하면 변신이야기는 작가가 추방되기 훨씬 전부터 쓰여졌다. 그리고 이 작품을 쓰는 동안 오비디우스는 추방된 것으로 나타난다. 변신이야기의 흐름이 후반부로 갈수록 변화를 겪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작가는 작가의 마음이 가는대로 그가 많이 다루었던 사랑과 애욕의 변신 모티브를 뽑아내어 이야기를 다루고자 했을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던 어느 날, 그는 추방되었고 유배지에서 마무리되는 책의 내용이기에 번역가 이윤기의 말처럼 ‘용비어천가’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그가 유배되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생각하며 작가의 처음의 의도대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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