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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13일 08시 55분 등록

사기열전史記列傳1


사마천, 김원중 옮김 / 민음사, 2013.


1. 저자에 대하여 


■ 사마천 ■


사마천.jpg












 

•출생/사망

BC 145? 중국 섬서성 용문(현재 한성현시 하양夏陽)/~BC 86?

 

•활동분야

역사학자, 문학가, 사상가

 

•발 자 취

4세(142년) 부친 사마담을 따라 서원에서 글자를 배우며 7세 무렵에는 고문을 배움


 

8세(138년) 사마담이 태사령이 되자 장안으로 이주하여 천문과 역법을 주관함

 

 

10세(136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함

 

 

13세(133년) 사마담이 잠시 고향으로 돌아와 사마천을 데리고 황하와 위수 일대를 다니며 자료를 수집함. 이로써 사마천의 현장담사가 시작됨


 

17~18세(129~128년) 동중서에게「공양춘추」, 공안국에게「고문상서」배움


 

19세(127년) 장안으로 옴. 「유협열전」 씀

 

 

20세(126년) 학업 일시 중단하고 아버지 권유로 천하 답사를 시작함

 

 

22세(124년) 낭중(황제의 시종)이 되어 처음 벼슬살이에 나섬

사마천 司馬遷

 

 

24세(122년) 사마담과 무제를 수행하여 옹(雍)에 가서 제사를 지냄

자 자장(子長)


 

 

33세(113년) 무제의 지방 순시에 사마담과 동행하여 각지의 민정과 풍속을 살핌

사.jpg

 

 

35세(111년) 무제 명으로 서남지방 문물을 관찰함. 이는「화식열전」저술에 도움이 됨

 


36세(110년) 무제의 봉선(封禪)대제 위해 지방으로 가던 중 아버지의 위독으로 낙양으로 옴. 태사령이 되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마담 사망하자 다시 봉선에 참관함

 

37세(109년) 무제가 치수사업을 벌이는 때 역대 치수사업을 개괄한 「하거서 」를 씀

38세(108년) 아버지 뒤를 이어 태사령이 됨

42세(104년) 사마천 주도하에 역법을 개정하여 태초력(太初歷) 완성하고 이를 계기로 본격적 사기저술에 착수함

47세(99년)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한 이릉 보호하다 황제의 심기를 건드려 사형선고받음

48세(98년) 태사령직 파면됨. 「황제를 무고했다」는 죄명으로 사형 확정됨

49세(97년) 궁형을 자청하여 죽음을 면함

50세(96년) 사면되어 중서령의 직을 받고 사기완성을 위해 힘을 쏟음

51~54세(95~92년) 무제를 수행하여 지방 여러곳을 순시하고 돌아옴

……

아, 아버지 !

……

 

 

 

55세(91년) 친구 임안이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서한문 「보임소경서」를 보냄. (이 편지를 토대로 보아 이 무렵 사기가 거의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편지 중 ‘有怨言, 下獄死'라는 대목이 무제의 심기를 건드려 처형당한 것으로 보임

 

•저    서

《태사공서(太史公書)》- 후한시대에 들어와《사기》라 불림


■ 아, 아버지!


 저를 구차하다 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목숨 부지하는 사내는 없다 하시겠습니까.

 제게 이 기록은 당신께 바치는 것이자 저의 울분입니다.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자 당신에 대한 원망입니다.

 제게 당신이 아버지였지만 세계 또한 아버지였습니다. 당신을 통해 천문과 역법을 배우고 고스란히 태사령을 이어받아야 할 운명, 그것이 관습이었고 또한 그렇게 길들여졌기에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연 태사령이 되어 이 기록들을 이어가야지요.

 당신의 사명을 알고 당신의 책임을 알고 당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당신이 국가의 주요 의식을 담당했으니 봉선대전(封禪大典)에는 참여치 못한 것이 분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이 단지 주남(낙양)에 거주하였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가 없었음이기에 그렇게 화를 이기지 못해 돌아가심은 제겐 모지게 사무쳤습니다. 당신을 걱정하며 부랴 부랴 달려간 제게 또 당신은 마지막까지 사적을 걱정하며 그것을 제게 이루어달라 하셨지요.

 그러니 자, 보십시오. 제 것이기도 하나 당신의 것이기도 한 이 기록을 보십시오. 이것은 저 혼자의 기록이 아니니 다시 한번 보십시오. 당신이 태사로 있으면서 현명한 군주와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신들의 행적을 기록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듯이 저 또한 그러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당신이 시도하셨고 체제만이 아니라 내용도 집필하신 것이 적지 않고 자료도 모으셨으니, 당신의 책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돌아가시고 태사령이 된 그때부터 시작하여 실로 15년이 넘는 세월이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 후련함과 회한이 밀려옵니다. 죽음으로 싸우지 못하고 적군에게 항복한 이릉을 비호한 것은 이릉이 패한 소식에 침울해하고 있는 황제의 뜻을 넓혀주고 이릉을 노리는 참언들을 막아보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마음이었소이다.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할까요.

 그때 격노한 한무제로부터 받았던 죽음이라는 형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죽음에 이르러 애타게 당부하시던 아버지의 뜻을 잇지 못하겠구나, 당신과 나의 세계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사그러드는구나. 좀더 소신있게 죽지 못하고 이렇게 살아나서 이은 가업이라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당연 제게 은전 50만전이 있었다면야 벌금을 내고 풀려났겠지요. 기껏해야 관리인 제게 그만한 돈이 없었으니 제 선택을 치욕스럽다 하지 않으시겠지요. 제가 선택한 궁형이란 벌이 얼마나 치욕적이며 천시를 받았는가를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렇게 천시받은 자가, 벌 받은 자가 쓴 글이라 이 기록도 천시하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궁형에 처한 채 감옥에 갇혀 서럽지 않았다 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못하는 것에 어찌 두렵다 하지 않을 수 있었겠소이까. 감옥을 나오면서 제가 더 이상 제가 아니게 되었음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제겐 울분으로 세상을 보낼 수만은 없었지요. 세상이 다르게 보였음을 세상의 인물이 다르게 보였음을 당신은 아시겠지요. 무제는 당신만큼이나 욱합니다. 제가 다시 환관 최고의 직위인 중서령까지 오른 것을 보십시오. 이 몸으로 이만한 위치에 올랐으니 한편으로는 이룬 것이 없다고는 못하겠지요. 그렇게 오래 써간 기록입니다. 문득 문득 제 속에 들어 있는 울분들을 이 역사서에 쏟아 붓습니다. 나는 그렇게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그 비참하고 처절한 심정이 보이시는지요. 이 심정들을 임안에게 편지로 보낸 적이 있지요. 그도 나처럼 옥에 갇혔으니 동류의식이었겠지요.

 유원언 하옥사(有怨言 下獄死:원한을 말하고 옥에 갇혀 죽는다)라 했습니다. 이것을 빌미로 저는 다시 옥에 갇힙니다만, 이제 더 이상 삶을 이을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구차한 목숨 부지한 이유, 이제 다 끝맺었으니 당신의 이야기, 나의 이야기 세상에 다 내놓았으니 이제 이 한 세상 편히 뜨려 하오. 아버지!


■ 사기의 이해를 위하여


 춘추전국시대는 혼란과 격동의 시대이다. 전쟁은 필요악이었고 나라마다 보다 강한 군대를 양성해 부국강병을 꾀하는데 골몰하던 상황이었다. 이 시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기는 중국 전한 시대 사마천이 지은 역사서이다. 총130편의 구성으로 제왕과 제후들 중심의 역사와 개인의 행적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가 살아 숨쉬는 인간에 의해서 창조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기는 역사적 가치뿐 아니라 사마천의 탁월한 문장과 더불어 문학적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중국은 서적 분류할 때 경사자집(經史子集)이란 분류를 사용한다. 경은 유학, 사는 역사서, 자는 제자백가 집은 개인문집이다. 사기는 중국 역사학을 유학에서부터 독립된 학문분야로 만드는데 역할을 한다. 사기의 역사적 범위는 중국문명 형성기인 오제시대, 신석기말기부터 전한시대까지이다. 사마천은 당시 중국인들이 믿고 있던 삼한에 대한 역사는 실제와 차이가 있다는 생각때문에 배제하였다. 사마천이 살던 시대는 한무제가 황제로 재위하던 기간으로 그 시대는 대외적으로 화친관계였던 흉노와 전쟁을 했고 유학 도입을 통한 국가체제를 형성하던 기간이었다. 새로운 경제정책을 실시했다. 소금과 철 판매와 동전을 제조하는 등 이전의 세대와는 다르게 인식되었다.

 중국전한시대 아버지 사마담은 태사령으로 사마천은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접하게 된다. 청년시절은 옛 성현들의 발자취와 전쟁터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아버지 뜻을 받들어 자료를 수집하였다. 흉노군에게 패한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을 처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지만 2년 뒤 중서령 자리에 오르고 황제의 재신임으로 기원전 90년경 사기를 완성한다.

 사관은 세습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직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인다. 역사서를 쓰겠다고 생각한 것은 사마담이다. 사마담은 천문역법을 관장하면서 당시 5백년마다 세상이 변한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번 한 시대를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고 태사령이던 시절 이 작업을 하고자 했으나 하지 못하게 되면서 사마천에게 물려준 것이다. 사마천이 궁형에서도 이런 작업을 한 것은 아버지의 유언이 가장 큰 영향이었던 것이다. 이릉 사건으로 한무제에게 처형된 이 사건이 사마천의 사기를 기술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이 사건이 없었다면 단순 연대 정리 수준에서 그쳤을 것이다. 즉 평범한 수준의 역사서가 되었을 것이나 이 사건으로 사마천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역사인식 문제에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열전은 사기의 가장 정화로 독창적인 부분이다. 장군 관리도 있지만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 여러 사람의 개인적 전기를 적은 것으로 사마천은 개인뿐만 아니라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 반대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정리하여 기술하고 있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 주변 민족에 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전기문학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필체가 뛰어나고 인물의 이미지를 형상화하여 생동감있고 다양한 어휘를 사용하고 대화체가 많다. 담담한 서술보다는 보다 직접적으로 와 닿게 된다. 역사가 개인의 감정적 애증이 많이 녹아 있어 문학적인 부분으로 인식되고 이것은 열전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사마천이 열전에 공을 들인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에서 표준적 역사서 모범으로 사마천은 공자의 춘추 정신을 이어받아 역사가의 인물과 연혁에 대한 개인평가가 들어가 있다. 후대 역사가들은 개인의 평가를 중요하지 않게 여겨 그런 것을 빼고 있다. 문학적으로는 탁월한데 대체로 비슷한 시대의 역사서들이 체제는 비슷하게 나타나나 문체가 딱딱한데 비해 사기는 그렇지 않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역사책의 전범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후 사기를 뛰어넘는 역사서라고 불릴 만한 것이 없다. 이것은  유학이 사상계를 지배해서라고 보고 있다. 사마천 당시는 유학이 본격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도덕적 명분과 의리를 확장하므로 사마천 정신이 유교적 가치에 의해 묻혀버리게 되는 것이 뛰어난 작품이 나오지 못하는 이유로 보인다.


참고 자료

•마야자키 이치다시, 자유인 사마천과 사기의 세계, 다른 세상

•동서양고전

•사마천의 사기(http://giant.x-y.net/sagi/sa_man_1.htm)


2.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1. 백이 열전

⇒ 백이는 의인이라 생각되는 사람이지만 굶어 죽는다. 이릉 사건을 통해 죄가 없음에도 하늘의 도가 인간에게 공평하다면 자기가 그런 일을 당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여 이것을 처음에 둔 것이 아닐까, 백이․ 숙제와 같은 느낌을 가진 것, 한무제에 대한 비판을 가진 것, 열전 첫 번째 편에 있는 것은 자기가 백이 숙제를 긹하지않으면 역사에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인물을 발굴하여 보여주어 그들의 평가가 올바로 내려지기를 바라는 저작동기

p61 순 임금과 우 임금 사이에 사악과 열두 주의 목들이 다함께 우를 추천하였으므로 시험 삼아 벼슬을 주고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맡겨 공적이 이루어진 다음에 군주 자리를 넘겨주었다. 이러한 절차를 밟는 까닭은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고 왕은 가장 노은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전해 주는 일이 이처럼 어려움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친히 전해줘야 할 이야기.

p62 공자는 “백이와 숙제는 지나간 원한을 생각하지 않으므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라고 했고, “인을 구하여 그것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원망하였겠는가?”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백이의 심경이 슬펐을 것으로 본다.

⇒나도 백이의 심경이 조금은 슬펐을 것으로 본다. 백이가 형이라면 더더욱.

p63~64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神農), 우, 라 때는 홀연히 지나갔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아! 이제는 죽음 뿐,

       우리 운명도 다했구나!

⇒백이숙제가 불렀다는 노래. 은(殷)나라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인 백이와 숙제는 아버지가 죽은 뒤 서로 후계자가 되기를 사양하다가 나라를 떠났고 가운데 아들이 왕위를 이었다. 그 무렵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토멸하여 주왕조를 세우자, 두 사람은 무왕의 행위가 인의(仁義)에 위배되는 것이라 하여 주나라의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수양산에서 몸을 숨기고 고사리를 캐어먹고 지내다가 굶어죽었다. 우리나라 가요 ‘흥보가 기가막혀’ 중에 ‘백이숙제 주려 죽던 수양산으로 가오리까’ 라는 가사가 있다. 어느 곳으로 가오리오~~라고 나오는.

p64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 사마천은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럼 백이숙제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인가. 그들은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했어도 굶어 죽었노라고. 세월호 사건에서도 그렇다. 남을 살리고자 애를 쓴 이들은, 죽었다. 그렇지 않은 이들은...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p66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을 가장 가슴 아파한다. -공자

p66~67 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찬이 있고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 더 드러나게 되었다. 안연은 학문을 매우 좋아하기는 하였지만 (공자라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행동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바위나 동굴 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일정한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나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의 명성이 묻혀 세상에 일컬어지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시골에 묻혀 사는 사람이 덕행을 닦아 명성을 세우고자 하더라도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에 기대지 못한다면 어떻게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가 있겠는가?

⇒ 이러하기에 모두 인맥을 얻기 위해 줄을 서는 것 아닐까. 명성이란 그 명성을 가져다 주는 행위로 인해 얻을 수도 있겠지만, 요즘 세상에선 그저 돈과 명예와 지위를 가진 이의 호가호위로서..


2. 관·안 열전


p71~72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에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나와 함께 규를 도운)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런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 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관중

p72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더 찬미하였다.

p73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이 굳게 결속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네 가지 강령, 즉 예의, 정의, 깨끗함, 부끄러움이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망한다. 수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관중

p73 관중은 정치를 하면서 재앙이 될 수 있는 일도 복이 되게 하고, 실패할 일도 돌이켜 성공으로 이끌었다.

p74 군자는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만 자기를 알아주는 자에게는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


3. 노자·한비 열전


p83 세상에서 노자의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유가 학문을 내치고, 유가 학문을 배우는 이들은 역시 노자의 학문을 내쳤다.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정말 이러한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노자는 하지 않은 것(無爲)으로써 저절로 교화되게 하고, 맑고 고요하게 있으면서 저절로 올바르게 되도록 했다.

p87 유세의 어려움은 군주라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하는 데 있다.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식견이 낮은 속된 사람이라고 가볍게 여기며 멀리할 것이다. 이와 반대로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높은 이름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상식이 없고 세상 이치에 어둡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는 높은 이름을 원할 때 높은 이름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겠지만 속으로는 멀리할 것이며, 만약 큰 이익을 얻는 방법으로 설득한다면 속으로는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를 꺼릴 것이다.

p91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군주가 그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p92~93 노자가 귀하게 생각하는 도는 허무(虛無)이고, 무위(無爲)속에서 변화에 호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지은 책은 말이 미묘하여 이해하기 어렵다. 장자는 노자가 말한 도덕의 의미를 미루어 풀어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펼쳤는데, 그 요지 또한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신불해는 스스로 힘써 명분과 실질에 적용시켰고, 한비는 먹줄을 친 것처럼 법규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일을 결단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였지만 너무나 가혹하여 은혜로움이 부족했다. 이들의 학설은 모두 도덕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그 가운데 노자의 학설이 가장 깊다. -태사공


4. 사마·양저 열전


p102 양저는 병사들의 막사, 우물, 아궁이, 먹거리를 비롯하여 문병하고 약을 챙겨 주는 일에 이르기까지 몸소 보살폈다. 또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재물과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풀고,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이 양식을 나누었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 병사들을 다시 순시하자 병든 병사들까지도 모두 앞다투어 싸움터로 나가기를 바랐다.


5. 손자·오기 열전


p108 군령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다. -손자(손무)

     약속이 분명하지 않고 명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지만 군령이 이이 정확해졌는데도 군법에 따르지 않는 것은 사졸들의 죄이다. -손자(손무)

p112 ‘승리를 좇아 백 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상장군을 잃게 되고 승리를 좇아 오십 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겨우 절반만 목적지에 이른다.’ -<병법>

p118~119 오기가 물었다.

    “이 세가지 점에서 당신은 모두나보다 못한데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요?” 전문이 대답했다.

    “왕의 나이가 어려 나라가 안정되지 못하고, 신하들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백성은 그분을 믿지 못하고 잇고. 이런 때에 재상자리를 당신에게 맡기겠소. 아니면 내게 맡기겠소?”

    오기는 한참동안 조용히 있다가 말했다.

    “당신에게 맡기겠소.”

    전문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있는 까닭이오.”


6. 오자서 열전


p127~128 왕은 오사에게 사신을 보내 말했다.

     “네 두 아들을 불러들이면 살려주겠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면 죽일 것이다.”

      그러자 오사가 이렇게 말했다.

     “오상은 사람됨이 어질어 내가 부르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오운은 사람됨이 고집스럽고 굴욕을 견딜 수 있어 큰일을 해낼 것입니다. 그는 이곳으로 오면 아버지와 자식이 함께 사로잡힐 줄 알고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오면 네 아버지를 살려주겠지만 오지 않으면 당장 죽여버리겠다.”

      오상이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하자 오운이 말했다.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은 아버지를 살려 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도망치는 자가 있으면 뒷날의 근심거리가 될까봐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볼모로 잡고 우리 형제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형제가 그곳에 가면 아버지와 자식이 모두 죽게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죽음에 무슨 보탬이 됩니까? 그곳으로 간다면 원수를 갚을 길조차 사라지게 됩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병력을 빌려 아버지의 원수를 갚은 것이 낫습니다. 함께 죽는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자 오상이 말했다.

     “나 여시 그곳으로 가더라도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았다가 나중에 원수도 갚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싫어서 가려고 한다. 너는 달아나거라. 너는 아버지와 형을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 죽음을 맞이하겠다.”

p135 사람이 많으면 한때 하늘도 이길 수 있지만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깨뜨릴 수도 있다.

p138 옳고 그른 것을 거스르고 공손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가볍게는 코를 베고 무겁게는 목을 베어 이 땅에 악의 씨가 자라지 못하게 하라. -『서경』「반경」 편, 고(誥)


7. 중니 제자 열전


p148 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이기고 바른 예로 돌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안회

P153 군자는 의(義)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군자가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세상을 어지럽히게 되고, 소인이 용맹함만을 좋아하고 의를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도적이 된다. -공자

P157 재여는 자가 자아이며 말솜씨가 뛰어났다. 그는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다가 이렇게 물었다.

   “부모의 상을 삼 년이나 치르는 것은 너무 길지 않습니까? 군자가 삼 년간 예를 닦지 않는다면 반드시 예는 무너질 것이며, 삼 년 동안 음악을 팽개친다면 음악도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일 년이 지나면 묵은 곡식은 다 없어지고 햇곡식이 익고, 나무를 비벼 얻던 불씨도 한 해에 한 번씩 바꿉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상도 일 년이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네 마음이 편하겠느냐?”  “예”

    “그것이 편하면 너는 그렇게 해라. 군자는 부모의 상을 입는 동안은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달지 않고 듣기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재여가 밖으로 나가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재여는 참으로 어질지 못하구나. 자식은 태어나서 삼 년이 지나야 부모 품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삼 년 상은 세상의 합의된 예의이다.”

P160 자공이 물었다.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고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지만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

P167 신은 생각이 먼저 정해지지 않으면 돌발 사태에 잘 대처할 수 없고, 군대가 잘 갖춰지지 않으면 적을 이길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 자공

P170 자공이 물었다.

     “사(師)와 상(商) 중에 누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사는 지나친 데가 있고, 상은 미치지 못하는 데가 있다.”

     자공이 또 물었다.

     “그렇다면 사가 더 낫습니까?”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다.”

     공자는 자하에게 말했다.

     “너는 도에 힘쓰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명성을 좇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난 뒤, 자하는 서하에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위나라 문후의 스승이 되었다. 그는 자식의 주음을 너무 슬퍼하여 소리 높여 울다가 눈이 멀었다.

P184 번지가 곡물 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늙은 농사꾼만 못하다.”

     채소 심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하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채소를 심는 늙은이만 못하다.”

     번지가 나가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번지는 소인이구나. 윗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없고, 윗사람이 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으며, 윗사람이 신의를 좋아하면 백성은 감히 성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만 한다면 사방의 백성이 자식을 포대기에 싸서 업고 찾아올텐데 농사짓는 법을 배워 어디에 쓰겠는가?”

     번지가 인이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또 지란 어떤 것인가를 묻자 공자를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을 아는 것이다.”

P187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하는 임금의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을 숨기는 것이 예의이다. - 공자


8. 상군 열전


p199 의심스러워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하면서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일이 시작되기 전에 압니다. -위앙

P200 백 배의 이로움이 없으면 법을 고쳐서는 안 되며, 열 배의 효과가 없으면 그릇을 바꿔서는 안 됩니다. 옛것을 본받으면 허물이 없고 예법을 따르면 사악함이 없습니다. -두지

P202~203 새로운 법령이 백성에게 시행된 지 일 년 만에 진나라 백성 가운데 도성까지 올라와 새 법령이 불편하다고 호소하는 자가 1000명을 헤아릴 정도였다. 바로 그 무렵 태자가 법을 어기자 위양은 이렇게 말했다.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이것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법에 다라 태자를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나 군주의 뒤를 이을 태자를 처벌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태자의 태부였던 공자 건의 목을 베고 태사 공손고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 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법령이 시행된 지 십 년이 되자 진나라 백성은 매우 만족스러워하고,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주워 가지 않으며, 산에는 도적이 없고, 집집마다 풍족하며 사람마다 마음이 넉넉했다.

P207~208 조량이 대답했다.

    “천 마리의 양가죽은 여우 한 마리의 겨드랑이 가죽만 못합니다. 천 사람의 아부는 한 사람의 올바른 직언만 못합니다. 주나라 문왕은 신하들의 올바른 직언으로 일어났고, 은나라 주왕은 신하들이 입을 다물어 망하였습니다. 당신이 만일 무왕을 잘못됐다고 나무라지 않는다면 제가 온종일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죽이지 않으시겠지요? 그렇게 하겠습니까?”

    상군이 말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겉치레 말은 허황되고, 마음속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되며,  듣기 괴로운 말은 약이 되고, 달콤한 말은 독이 된다. 선생께서 진정으로 하루 종일 바른 말을 해 줄 수만 있다면 나에게 약이 될 것입니다. 나는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려 하는데 선생께서는 어찌하여 사양하려 하십니까?”


9. 소진 열전


p221 신이 생각하기에 왕을 위한 계책으로는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에 별다른 일이 없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일을 만들어 백성을 수고롭게 해서는 안됩니다. 백성을 편안히 하는 근본적인 계책은 친하게 사귈 만한 나라를 고르는데 있습니다. 사귈 만한 친구 나라를 알맞게 고르면 백성은 안정될 수 있고, 사귈 만한 친구 나라를 잘못 고르면 백성은 안정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P231 주서에서는 ‘처음에 싹을 자르지 않아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결국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P235 [모든 일은] 혼란스러워지기 전에 다스리고 [해로운 일은] 일어나기 전에 대책을 세워 막아야 한다.

P247 현명한 왕은 자기 허물들 듣는 데 힘쓰고 자신의 뛰어난 점에 관한 칭찬을 드기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소대

P252 지혜로운 자는 일을 처리할 때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제나라 사람들의 자주색 비단은 질이 나쁜 흰색 비단을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값은 열 배나 비싸고 월나라 왕 구천은 일찍이 회계산으로 쫓겨났지만 오히려 강대한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제패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꾼 일입니다.


10. 장의 열전


p275 깃털도 많이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고 합니다.

P296 "과인은 장의를 미워하오. 장의가 있는 곳이면 군사를 일으켜 칠 것이오. 무슨 근거로 장의에게 의지한다고 말하오?"

     그 점이 바로 왕께서 장의에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P302~303  진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일찍이 왕께 변장자라는 이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일을 들려드린 사람이 있었습니까?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하자 묵고 있던 여관의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리면서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잡아먹으려 합니다. 먹어봐서 맛이 좋으면 분명히 서로 다툴 것입니다.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테고 서로 싸우게 되면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을 것입니다.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면 한꺼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았다는 명성을 얻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변장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서 기다렸습니다. 조금 있으니 정말 두 호랑이가 싸워서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었습니다. 이때 변장자가 상처 입은 놈을 찔러 죽이니 한 번에 호랑이 두 마리를 잡는 공을 세웠다고 합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싸움을 벌인 지 한 해가 넘도록 해결이 나지 않았다면 큰 나라는 타격을 입고 작은 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타격입은 나라를 치면 한꺼번에 둘을 얻는 이득이 있을 것입니다. 이는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인 것과 같은 일입니다. 신이 왕께 바치는 계책과 초나라 왕을 위해 바치는 계책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P305 삼진에는 권모술수와 임기웅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주장하여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자들은 대체로 모두 삼진 사람이다. 장의가 일을 꾸민 것은 소진보다 더 심한 데가 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욱 미워하는 까닭은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그의 단점을 부풀려 들추어내고 자신의 주장을 유리하게 하여 연횡론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우 두 사람은 참으로 나라를 기울게 하는 위험한 인물이었다고 하겠다!


11. 저리자·감무 열전


p314  옛날 효자로 유명한 증삼이 비읍에 있을 때 일입니다. 노나라 사람 가운데 증삼과 이름과 성이 똑같은 자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뒤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그 어머니는 조금도 흔들림없이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뒤 또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했지만 역시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 또다시 한 사람이 와서 증삼의 어머니에게 ‘증삼이 사람을 죽였습니다.’라고 하자 그 어머니는 베 짜던 북을 내던지고는 베틀에서 내려와 담을 넘어 달아났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어진 증삼에 대한 믿음이 있었지만 세 사람이나 그를 의심하자 정말인가 싶어 겁을 먹었습니다. 지금 신은 증삼처럼 어질지 못하고 왕께서 신을 믿는 마음도 증삼의 어머니가 아들을 믿는 마음만 못합니다. 또한 신을 의심하는 자가 어디 세 사람뿐이겠습니까? 신은 왕께서 북을 내던진 증삼의 어민처럼 신을 의심하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P321 저는 진나라에서 죄를 짓고 처벌될까 두려워서 도망쳐 나왔지만 몸을 안전하게 둘 만한 곳이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못사는 여자와 잘사는 여자가 함께 길쌈을 하였는데 못사는 여자가 ‘나는 초를 살 돈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당신의 촛불에는 남는 빛이 있으니 그 남는 빛을 나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당신의 밝음에 해를 끼치지 않고 나도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 저는 곤궁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바야흐로 진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길입니다. 제 아내와 자식은 진나라에 있습니다. 부디 당신의 남은 빛으로 그들을 구제해 주십시오. -감무


12. 양후 열전


p342 양후는 소왕의 친외삼촌이다. 진나라가 동쪽으로 땅을 넓히고 제후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한때 천하에서 제라 일컫고 천하의 제후들에게 서족을 향해 머리를 숙이게 한 것은 양후의 공적이다. 그러나 그는 부유하고 존귀함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범저 한 사람의 탄핵으로 신분이 꺾이고 권세를 빼앗겨 근심과 번민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왕족의 한 사람이 이렇거늘] 하물며 [진나라에서 벼슬아치가 된] 객경이야 어떠하겠는가?


13. 백기·왕전 열전


p352~353 “백기는 사는 곳을 옮겨 가면서 속으로는 복종하지 않고 뼈 있는 말을 했소.”

     진나라 왕은 곧 사자를 보내 무안군에게 칼을 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했다. 무안군은 칼을 받아들고 자신의 목을 찌르려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잠시 동안 그렇게 있다가 말을 이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 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그러고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진나라 소왕 50년 11월의 일이다. 그는 죽었지만 큰 죄를 지은 것은 아니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마을이 모두 제사를 지내주었다.

p358 세상에 자(尺)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寸)에도 긴 데가 있다.

⇒ 굴원의 『초사』 「복거』에 나오는 말. 무슨 일을 처리할 때 장단점이 있음을 뜻한다.


14. 맹자·순경 열전


p363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 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p367 이윤은 솥을 짊어지고 요리사가 되어 은나라 탕왕에게 다가가서 힘을 다해 제왕의 일을 이루게 하였고, 배리해도 수레 밑에서 소를 치다가 목공에게 등용되어 목공을 천하의 우두머리로 만들었다. 이 두 사람은 처음에는 상대방의 비위를 맞춘 뒤에 바른 길로 가게 했다. 추연의 말은 일반적인 법칙을 벗어났지만 그도 소를 친 백리해나 솥을 짊어진 이윤과 같은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15. 맹상군 열전


p381 하루는 맹상군이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밤참을 대접하고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 불빛을 가린 탓에 방안이 어두웠다. 손님은 자신의 음식이 맹상군의 것과 다른 것을 감추려고 일부러 어둡게 한 줄 알고 기분이 상해서 식사를 하지 않고 돌아가려 했다. 맹상군이 일어서서 몸소 자신의 밥그릇을 손님의 것과 비교해 보이자 손님은 부끄러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 때문에 선비들이 맹상군에게 많이 모여들었다. 맹상군이 손님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잘 대우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맹상군과 친하다고 생각했다.

p381 오늘 아침 저는 밖으로 이곳으로 오는 길에 나무 인형과 흙 인형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거야.’라고 말하자 흙 인형이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처럼 사나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당신이 굳이 가려고 하시니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은 흙 인형의 비웃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 진나라 소왕이 맹상군을 불러, 맹상군이 가려 하자, 소대가 이렇게 말했다. 맹상군은 진나라로 가려던 생각을 그만두었다.

p393 술과 소를 많이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십 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갈 분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p397 만물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일에는 당연히 바뀌지 않는 도리가 있습니다. 선생은 이런 원리를 아십니까?

    살아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어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이는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걸 막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16. 평원군·우경 열전


p406 대체로 현명한 선비가 세상에 있는 것은 비유하자면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 보이는 법이오. 지금 선생은 내 빈객으로 삼 년이나 있었지만 내 주위 사람들은 선생을 칭찬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나도 선생에 대해 들은 적이 없소. 이것은 선생에게 이렇다 할 재능이 없다는 뜻이오. 선생은 같이 갈 수 없으니 남아 있으시오.

p409 모 선생의 세 치 혀는 군사 백만 명보다도 강했다. 나는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p417 옛말에 ‘강한 자는 공격을 잘하고 약한 자는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p417~418 누완이 조나라 왕에게 말하였다.

    “공보문백이 노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병들어죽자 그 죽음을 슬퍼하여 규방에서 스롤 목숨을 끊은 여자가 둘 있었습니다. 문백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도 소리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문백의 유모가 아들이 죽었는데 소리내어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하니 어머니는 공자는 어진 사람인데 노나라에서 쫓겨났을 때 내 아들은 쫒겨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아들이 죽으니 그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가 둘이나 있소 이와 같이 된 것은 반드시 덕 있는 사람에게는 정을 주지 않고 부인들에게는 다정했기 때문이오, 그래서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면 어진 어머니라고 하겠지만, 아내의 입에서 나오면 반드시 질투심이 많은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은 같지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도 바뀝니다.

p421 이익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


17. 위공자 열전


p436 빈객 중 한 사람이 공자에게 말했다.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18. 춘신군 열전


p446 사물은 한쪽 끝까지 가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겨울과 여름은 서로 바뀌게 마련이다. 쌓인 것이 극에 이르면 위태롭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면 무너지게 마련이다.

p447 여우가 물을 건너가려면 꼬리를 적시기 마련이다. -역경

p459 세상에는 생각지도 않던 복이 찾아올 수도 있고, 또 생각지도 않은 불행이 올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행복과 재앙이 찾아오는 세상에 살고 있고, 기대를 걸 수 없는 군주를 섬기고 계십니다. 어찌 재앙을 막아 낼 수 있는 뜻밖의 인사를 구해 두지 않으십니까?

⇒ 주영이 춘신군에게.

p461 마땅히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어려움을 겪게 된다.


19. 범저·채택 열전


p475 백성은 사사로운 싸움에는 겁을 내나 나라를 위한 싸움에는 용감합니다. 이들은 왕업을 이루기에 훌륭한 백성입니다.

p490 군주가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군주가 욕을 보면 시하는 죽는다.

p495 선비란 본래 자기 몸을 죽여서 이름을 남기나니 정의를 위해서라면 죽더라도 원망하지 않소.

p502 물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 자는 자기의 길흉을 알 수 있다.

p503 <역경>에 ‘높이 올라간 용에게는 뉘우칠 날이 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르기만 하고 내려갈 줄 모르며, 펴기만 하고 굽힐 줄 모르고, 가기만 하고 돌아올 줄 모르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20. 악의 열전


p515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가 공을 세우면 그것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역사에 이름이 남고, 앞을 내다보는 밝은 눈을 가진 선비가 공명을 이루면 그것을 손상시키지 않기 때문에 후세까지 칭송을 받는다.

p516 옛 군자는 사람과 교제를 끊더라도 그 사람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기 결백을 밝히려고 군주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는다.


21. 염파·인상여 열전


p532~533 상여가 말했다.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끄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강한 진나가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서 싸우면 결국은 둘 다  살지 못랄 것이오. 내가 염파를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 때문이오. “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빈객으로서 인상여의 문 앞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했다.

    “비천한 저는 상경께서 이토록 너그러우신 줄 몰랐습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화해하고 죽음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벗이 되었다. 

p539~540 조괄의 어머니가 왕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말했다.

    “제 아들을 장군으로 삼으면 안됩니다.”

    왕이 물었다. “무엇 때문이오?”

    조괄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전에 제가 조괄의 아버지를 모실 때 그 무렵 제 아들의 아버지는 장군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먹여 살리는 이가 수십 명이고, 벗이 된 사람은 수백 명이나 되었습니다. 왕이나 종실에서 상으로 내려준 물품은 모두 군대의 벼슬아치나 사대부에게 주고, 출전 명령을 받으면 그날부터 집안일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아들은 하루아침에 장군이 되어 동쪽을 향해 앉아서 부하들의 인사를 받게 되었지만 군대의 벼슬아치 가운데 누구 하나 제 아들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는 이가 없습니다. 왕께서 내려 주신 돈과 비단을 가지고 돌아와 자기 집에 감추어 두고 날마다 이익이 될 만한 땅이나 집을 둘러보았다가 그것들을 사들입니다. 왕께서는 어찌 그 아버지와 같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아버지와 자식은 마음 씀씀이부터 다릅니다. 부디 왕께서는 제 아들을 보내지 마십시오.”

    “왕께서 굳이 그 아이를 보내시려거든 그 아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저를 그 아이의 죄에 연루시켜 벌을 받지 않게 해 주십시오.”왕은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p545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죽는 것 그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니고 죽음에 대처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상여가 화씨벽을 돌려받고 기둥을 노려볼 때라든지 진나라 왕 주위에 있던 신하들을 꾸짖을 때 그 형세는 기껏해야 죽음뿐이었다. 선비 중에 어떤 이는 겁을 집어먹고 감히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나 상여가 한 번 용기를 내자 그 위세가 상대편 나라까지 떨쳤고, 물러나 고국으로 돌아와서는 염파에게 겸손히 양보하니 그 이름은 태산처럼 무거워졌다. 인상여는 지혜와 용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22. 전단 열전


p554 용병의 도는 정공법으로 쌍고, 기이한 계책으로 허를 찔러 이기는 것이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기이한 계책을 무궁무진하게 낸다. 기이한 계책과 정공법이 서로 어우러져 쓰이는 것은 마치 끝이 없는 둥근 고리 같다. 대체로 기이한 병법은 처음에는 처녀처럼 약하게 보여 적군이 얕잡아 보고 문을 열어두게 하지만 나중에는 그물을 벗어난  토끼처럼 날래져서 적이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다. 이는 전단의 용병법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23. 노중련·추양 열전


p563 선생께서는 저 하인들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하인 열 명이 한 사람을 따르는 것은 어찌 힘이 그만 못하고 지혜가 모자라서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주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p566 천하에서 선비가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다른 사람의 걱정거리를 덜어주고 재앙을 없애주며 다툼을 풀어주고도 보상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보상을 받는다면 이것은 장사꾼의 행위입니다. 저는 이런 짓은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p569 작은 예절에 얽매이는 사람은 영화로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작은 치욕을 마다하는 사람은 큰 공을 세울 수 없다.

p571~572 나는 부귀로우면서 남에게 얽매어 사느니 차라리 가난할망정 세상을 가볍게 내 맘대로 살리라. -노중련


24. 굴원·가생 열전


p586 ‘이소’란 ‘걱정스러운 일을 만난다.’라는 뜻이다. 무릇 하늘은 사람의 시작이며 부모는 사람의 근본이다. 사람은 곤궁해지면 근본을 돌아본다. 그러므로 힘들고 곤궁할 때 하늘을 찾지 않는 자가 없고, 질병과 고통과 참담한 일이 있으면 부모를 찾지 않는 이가 없다.

p590 우물물이 흐렸다가 맑아져도 마시지 않으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이 물을 길어 갈 수는 있다. 왕이 현명하면 모든 사람이 그 복을 받는다. -『역경』

p591~592 “온 세상이 혼탁한데 나 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이 다 취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어서 쫒겨났소”

   어부가 물었다.

   “대체로 성인이란 물질에 구애받지 않고 속세의 변화를 따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온 세상이 혼탁하다면 왜 그 흐름을 따라 그 물결을 타지 않으십니까? 모든 사람이 취해 있다면 왜 그 지게미를 먹거나 그 밑술을 마셔 함께 취하지 않으십니까? 어찌하여 아름다운 옥처럼 고결한 뜻을 가졌으면서 스스로 내쫒기는 일을 하셨습니까?”

    굴원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의 먼지를 털어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티끌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이라면 또 그 누가 자신의 깨끗한 몸에 더러운 때를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지. 또 어찌 희디흰 깨끗한 몸으로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겠소?”

p602 만물은 변하여

     진실로 쉼이 없다.

     돌아 흘러서 옮겨 가고

     또는 밀어서 돌아간다.

     형체와 기운이 끊임없이 도니

     변하고 진화하는 것 매미와 같네

     그 깊은 이치 끝이 없는데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

     재앙이란 복이 의지하는 곳이고

     복이란 재앙이 숨어 있는 곳이라.

     근심과 기쁨은 같은 문으로 모이고

     길함과 흉함은 한곳에 있네.


25. 여불위 열전


p614 당신은 모르는 모양인데, 제 가문은 당신 가문에 기대어 커질 것입니다.

p621 여불위는 노애와 더불어 존귀할 때 봉토를 받아 문신후로 불렸다. 어떤 사람이 노애를 고발하였을 때 노애도 그 소문을 들었다. 진시황이 측근의 신하들을 통해 확보한 증거를 아직 발표하지 않았을 때이다. 진시황이 옹 땅으로 가서 교사를 지내려 하자 노애는 재앙이 닥칠까 두려워 무리와 음모를 꾸미고, 태후의 도장을 도용하여 군사를 일으켜 기년궁에서 반기를 들었다. 진시황은 관리를 보내 노애를 치고, 노애가 싸움터에서 져 달아나자 끝까지 쫒아가 호치에서 목을 베고 그이 일족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여불위도 이 일로 말미암아 배척당했다. 공자가 말한 ‘소문(聞)’이라는 것은 아마 여불위 같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 아닐까?

⇒p622『논어』「안연」편의 ‘소문이란 겉으로는 인덕을 좋아하는 듯하지만 실제 행동은 오히려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어진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면서도 그에 대한 의혹이 없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관리가 되어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하고, 집에 있을 때도 거짓으로 명성을 취한다.’라는 구절에서 나온다. 이 말은 마융이 말한 바와 같이 말만 번지ㅈ르르하게 하는 사람을 뜻한다.


26. 자객 열전


p631 예물을 바치고 남의 신하가 되어 섬기면서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고 자기 주인을 섬기는 것일세.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매우 어렵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까닭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려는 것일세. -예양

p637~638 섭정이 오욕을 무릅쓰고 시장 바닥에 몸을 던진 것은 늙은 어머니가 살아 계시고, 제가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천수를 누리다 돌아가시고 저도 이젠 시집을 갔습니다. 일찍이 엄중자는 동생의 인물됨을 살펴 알고는 곤궁하고 천한 지위에 있는 그와 사귀었으니 그 은택이 매우 두텁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선비는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섭정은 제가 살아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 섭정의 누나 섭영

p642·643 대체로 위태로운 일을 하면서 안전함을 찾고 재앙을 만들면서 복을 구하려고 한다면 계책은 얕아지고 원망만 깊어질 뿐입니다. 새로 사귄 친구 한 명과 사귐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나라의 커다란 피해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는 원한을 쌓고 재앙을 만드는 일입니다.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기란 가벼운 기러기 깃털 하나를 화로의 숯불 위에 놓아 태우는 것처럼 아주 손쉽습니다. 그러니 독수리나 매처럼 탐욕스럽고 사나운 진나라가 원망에 가득 차서 포악스럽게 노여워한다면 그 맹렬함을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국무


p645 전광이 말했다. “내가 듣건대 나이 들고 덕 있는 사람은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심을 품게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p655 진시황은 고점리가 축을 뛰어나게 잘 타는 솜씨를 아까워하여 용서하는 대신 눈을 멀게 했다. 그러고 나서 고점리에게 축을 타게 하였는데 그 소리를 칭찬하지 않는 적은 없었다. 고점리는 축 속에 납덩어리를 감추어 넣었다가 진시황 곁으로 가까이 갔을 때 축을 들어 진시황을 향해 내리쳤지만 맞지 않았다. 진시황은 결국 고점리를 죽였다. 이 일로 인해 진시황은 죽을 때까지 제후국에서 온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27. 이사 열전


p661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있는 환경에 달렸을 뿐이구나.

⇒ 이사가 젊을 때 낮은 관리로 있을 때 본 쥐들은 더러운 것을 먹다 사람이가 개가 오면 두려워했다. 그런데 큰 집에 사는 쥐들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며 한 말이다.

p662 비천한 자리에 있으면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는 것은 짐승이 고기를 보고도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 하여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큰 부끄러움은 낮은 자리에 있는 것이며, 가장 큰 슬픔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것입니다. 오랜 세월 낮은 자리와 곤궁한 처지에 있으면서 세상의 부귀를 비난하고 영리를 미워하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 의탁하는 것은 선비의 마음이 아닐 듯합니다.

p669 시황제는 그 제안을 옳다고 여겨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몰수하고 모든 백성을 어리석게 만들어 천하에 그 누구도 옛것을 끌어들여 지금 세상을 비판하지 못하게 했다.

⇒ 진시황제의 분서갱유 사건은 그러니까, 이사란 놈의 제안이었다. 말하는 것마다 옛것을 끌어내어 지금의 것을 해롭게 하고, 헛된 말을 꾸며서 실제를 어지럽혔다며, 이사는 천하를 통일하고 황제 한 사람이 정해져 있거늘 학문하는 자들이 서로 모여 이미 만들어진 법과 제도를 허망한 것이라 하며 비판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면 군주의 권위가 떨어지고 당파가 일어난다며 모든 문학과 시경, 서경, 제자백가의 책을 없애도록 금지령을 내리도록 한 것이다. 이를 어긴 자에 대한 벌로는 이마에 먹물을 들이고 성 쌓는 일을 4년 시키라고 했다.

p670 아아! 나는 순자가 ‘사물이 지나치게 강성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한 말을 들었다. …… 지금 다른 사람의 신하된 자로서 나보다 윗자리에 있는 이가 없고 부귀도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다.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하거늘 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구나.

p675 편안한 것을 위험으로 돌릴 수도 있고 위험한 것을 편안한 것으로 돌릴 수도 있습니다. 편안하고 위험한 것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승상을 성인의 지혜를 가진 분으로 존중하겠습니까?

⇒ 조고

p685 현명한 군주, 성스러운 왕이 오래도록 존귀한 지위에 있으면서 길이 큰 권세를 잡고 천하의 이익을 독점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슨 특별한 방법이 있어서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결단을 내리고 죄상을 세밀히 살펴 반드시 엄한 형벌을 내림으로써 천하 사람들이 감히 죄를 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이러한 글을 이사로부터 받고 2세 황제는 기뻐 처벌을 더욱 더 엄격하게 하고 세금을 더욱 거뒀다. 그 뒤 길에 다니는 사람 중 절반은 형벌을 받은 자고 벌받아 죽은 자가 날마다 시장 바닥에 쌓여 갔다 한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죽인 관리를 충신이라 했다 한다. 오늘날과 다를 바 없네!


28. 몽염 열전


p710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잘못도 없이 죽어야 한단 말인가? 내 죄는 죽어야 마땅하다. 임조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만여 리나 쌓았으니 이 공사 도중에 어찌 지맥을 끊어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로구나.

p711. 태사공은 말한다.

    “나는 북쪽 변방 지역에 갔다가 지름길로 돌아왔다. 길을 가면서 몽염이 진나라를 위해 쌓은 장성의 요새를 보니, 산악을 깎고 계곡을 메워 지름길을 통하게 했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가벼이 여긴 것이 분명하다. 진나라가 처음 제후를 멸망시켰을 때 천하의 민심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고 전쟁의 상처도 채 가라앉지 않았는데,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이러한 때에 곤궁한 백성을 구제하고 늙은이를 모시고 고아를 돌보며 모든 벽성을 안정되고 평화롭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강력히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리랴.”


29. 장이·진여 열전


p738 태사공은 말한다.

   “장이와 진여는 어진 사람으로 세상에 알려졌으며 그들의 빈객과 종들까지도 천하의 준걸 아닌 이가 없어서 제각기 살고 있는 나라에서 경상의 자리를 얻었다. 장이와 진여가 처음에 빈궁할 때에는 서로 죽음을 무릅쓰고 신의를 지켰으니, 어찌 서로 돌아보고 의심하는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나라를 움켜쥐고 권력을 다투게 되자 마침내 서로를 멸망시켰다. 예전에는 서로 앙모하여 신뢰함에 성의를 다하더니 나중에는 서로 배반하고 사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그들이 권세와 이익만 쫒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비록 명예가 높고 빈객이 많았다 해도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은 태백이나 연릉의 계자와는 상황이 서로 다르다고 하겠다.”


30. 위표·팽월 열전


p751 태사공은 말한다.

    “위표와 팽월은 본디 신분이 낮은 사람이었지만 1000리 땅을 차지하고 남쪽을 바라보며 고(孤)라 했다. 이들은 피를 밟고 승기를 타서 나날이 그 이름이 높아졌다. 그러나 반역할 마음을 품었다가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고 붙들려서 형벌을 받았으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중간 정도 되는 재능을 가진 자도 이러한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거늘, 하물며 왕 노릇을 하던 자야 어떠하랴! 여기에는 다른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략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자들이지만 오직 자기 몸을 보존하지 못하는 것만 걱정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때를 만나 자신들의 뜻을 펼쳐 보려고 했기 때문에 갇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31. 경포 열전


P755 형벌을 받은 뒤에 왕이 되겠군.

P770 황제가 되고 싶었을 뿐이오.

p770 태사공은 말한다.

    “영포의 조상은 『춘추』에 ‘초나라 영과 육을 멸망시켰다,’라고 되어 있는 영씨로서, 고요의 후예가 아닐까? 몸에 형벌을 받고서도 어떻게 빨리 일어났을까? 항우가 구덩이에 파묻어 죽인 사람은 1000만 명이나 되지만, 영포는 늘 가장 포악하곤 일을 하는 자의 우두머리였고 공적은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그래서 왕은 될 수 있었지만 자신도 세상의 큰 지욕을 피하지는 못했다. 재앙은 사랑하던 여자에게서 싹텄고, 질투가 우환을 낳아 마침내 나라를 멸망하게 만들었구나!”


32. 회음후 열전


p776 회음의 백성 중에서 한신을 업신여기는 한 젊은이가 한신에게 말했다.

    “네가 비록 키는 커서 칼을 잘도 차고 다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겁쟁이일 것이다.”

     그러고는 사람들 앞에서 한신을 모욕하면 말했다.

    “네놈이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를 찌르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내 가랑이 사이로 기어 나가라.”

    이때 한신은 그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보다가 몸을 구부려 가랑이 밑으로 기어나갔다. 이 일로 해서 시장 사람들이 한결같이 한신을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P779 왕께서는 본래 오만하여 예를 차리지 않으십니다. 지금 대장을 임명하는데 어린아이를 부르는 것처럼 하시니 이것이 바로 한신을 떠나게 한 까닭입니다. 왕께서 그를 대장으로 삼으시려면 좋은 날을 택하여 재계하고 단장을 설치하여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P788 "병법에는 ‘산과 언덕을 오른쪽으로 하여 등지고 물과 못을 앞으로 하여 왼쪽에 두라.’고 했는데, 오늘 장군께서는 저희에게 오리어 물을 증지고 진을 치게 하면서 ‘조나라를 무찌른 뒤 다 같이 모여 실컷 먹자.’라고 하시기에 저희는 속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마침내 이겼습니다. 이것은 무슨 전술입니까?”

    한신이 대답했다.

   “이것도 병법에 있는데 여러분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오. 병법에는 죽을 곳에 빠뜨린 뒤라야 비로소 살릴 수 있고, 망할 곳에 둔 뒤라야 비로소 멸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있잖소? 내가 평소부터 사대부를 길들여 따르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몰아다가 싸우게 한 것과 같으니, 그 형세가 죽을 땅에 두어 저마다 자신을 위하여 싸우게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을 준다면 모두 달아날 텐데 어떻게 이들을 쓸 수 있겠소?”

P789. 싸움에서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할 수 없고, 멸망한 나라의 대부는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을 말할 수 없다.

⇒ 광무군

P789 “내가 들은 바로는 현인 백리해가 우라나라 살 때는 우나라가 망하였으나, 진나라에 있자 진나라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백리해가 우나라에 있을 때는 어리석은 사람이다가 진나라에 가니까 지혜로운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군주가) 그를 등용했는지 등용하지 않았는지, 또 그의 말을 받아들였는지 받아들이지 않았는지에 달렸을 뿐입니다. 만일 성안군이 당신의 계책을 들었더라면 나 같은 사람은 이미 포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성안군이 당신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당신을 모실 수 있게 되었을 뿐입니다.”

P789 '지혜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 실수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 번은 얻는 경우가 있다', '성인은 미친 사람의 말도 가려서 듣는다.‘

P801 우환이란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P802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는 삶아 먹히게 마련입니다.

P802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만드는 자는 그 자신이 위태롭고, 공로가 천하를 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한다.

⇒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고, 지략은 아무 시대나 나타나는 게 아니다라는 것.

P803~804 원래 남의 의견을 듣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조짐이며, 계획을 세우는 것은 일의 성공과 실패의 기틀이 됩니다. 진언을 잘못 받아들여 계책에 실패하고도 오래도록 편안한 이는 드뭅니다. 진언을 분별하는 데 한두 가지도 실수하지 않으면 말로도 어지럽힐 수 없고, 계책이 처음과 끝을 잃지 않으면 교묘한 말로 분란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대체로 나무를 하고 말을 먹이는 이는 만승의 천자가 될 만한 권위도 잃어버리고, 조그마한 봉록을 지키는 데 급급한 이는 경상 자리를 지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식은 일을 결단하는 힘이며, 의심은 일하는 데 방해만 됩니다. 터럭 같은 작은 계획을 자세히 따지고 있으면 천하의 큰 술수를 잊어버리고, 지혜로 그것을 알면서도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도비니다. 그래서 ‘맹호라고 꾸물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만한 해도 끼치지 못하고, 준마라도 주춤거리면 노둔한 말의 느릿한 걸음만 못하며, 진나라의 용사맹분도 여우처럼 의심만 하고 있으면 보통 사람들이 일을 결행하는 것만 못하고, 순 임금이나 우 임금의 지혜가 있더라고 우물거리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을 하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 괴통이 이렇게 한신에게 충고하였으나 한신은 망설이면서 차마 한나라를 배반하지 못했다. 또 자신이 공이 많으니 한나라가 끝내 제나라를 빼앗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괴통의 제안을 거절했다. 괴통은 한신이 자기 말을 들어주지 않자, 얼마 안 가서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무당이 되었다.


33. 한신·노관 열전


P831 태사공은 말한다.

    “한신과 노관은 본래 대대로 덕을 쌓고 착한 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권모술수로 벼슬을 얻고 간사함으로 공을 이루었다. 한나라가 천하를 막 평정했을 때 만났으므로 땅을 갈라 받고 남쪽을 바라보며 고라고 일컬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라 안으로는 지나치게 강해지고 커졌다는 의심을 받았고, 나라 밖으로는 흉노를 원조자로 믿고 기댔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조정과 멀어지고 자신들까지 위태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일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고 지혜가 다하자 흉노로 달아났으니 이 어찌 슬프지 않으랴! 진희는 양나라 사람으로 젊을 때는 위나라 공자 무기를 자주 칭찬하고 흠모했으므로 군대를 이끌고 변방을 지킬 때도 빈객들을 불러 모으고 선비들에게 몸을 굽혀 겸손하게 행동했는데 그의 명성이 사실보다 지나쳤다. 그래서 주창이 그를 의심하여 심문까지 하게 되었고, 잘못이 자못 많이 드러났다. 진희는 그 재앙이 자신에게 미칠까봐 두려워 간사한 자의 말을 듣고 마침내 무도한 짓에 빠져들었다. 아 슬프다! 대체로 계책의 설익음과 무르익음과 성패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깊구나!


34. 전담 열전


p844 태사공은 말한다.

   “심하구나! 괴통의 계책이 제나라의 전횡을 혼란스럽게 하고 회음후를 교만에 빠지게 하여 이 두 사람을 망쳤구나! 괴통은 책사로서 종횡술에 뛰어나 전국시대의 권모술수를 논한 글 여든한 편을 지었다. 그는 제나라 사람 안기생과 친하였다. 안기생은 일찍이 하웅에게 벼슬을 구했지만 항우는 그의 계책을 쓰지 않았다. 얼마 뒤에 항우가 이 두 사람을 봉하려고 했으나 이들은 끝까지 받으려 하지 않고 도망쳐 버렸다. 전횡의 절개는 고상하여 빈객들마저 그 의리를 사모하여 따라 죽었으니 어찌 이보다 더한 현명함이 있겠는가!”


35. 번·역·등·관 열전


p869 태사공은 말한다.

   “내가 풍현과 패현으로 가서 진나라 때부터 살아온 그곳 노인들을 찾아 소하, 조참, 번쾌, 등공의 옛집과 그들의 평소 사람됨을 물어보았는데 세상에 전해지는 것과는 달랐다. 그들이 칼을 휘두르고 개를 잡고 비단을 팔 때, 어찌 파리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 천 리를 가듯이 한 나라 고조를 만나 한나라 조정에 이름을 날리고 자손들에게까지 은덕을 내리게 될 줄 알았겠는가? 나는 번타광과 교분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고조의 공신들이 처음 일어날 때 상황을 이와 같이 들려주었다.





3. ‘내가 저자라면’


■ ‘사기열전’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사기(史記)》구성과 기전체


 사기열전은 BC 90년경에 완성된 중국의 기전체 역사서《사기(史記)》의 5편에 해당되는 내용이다. 기전체(紀傳體)는 기(紀)·전(傳)·지(志)·표(表) 등으로 구성하여 서술하는 역사 서술 체재를 말한다. ‘기’는 제왕의 정치와 행적을 중심으로 역대 왕조의 변천을 연대순으로 서술한 것이다. ‘본기(本紀)’라고도 불린다. ‘표’는 각 시대의 역사의 흐름을 연표(年表)로 간략히 나타낸 것이다. ‘지’는 제례나 천문, 경제, 법률 등의 문물과 제도에 관해 항목별로 연혁과 변천을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문화사, 제도사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사기》에서는 ‘서’라고 분류되었지만, 반고의 《한서(漢書)》부터 ‘지(志)’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사용되었다. ‘전’은 각 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열전(列傳)’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전체는 단순한 연대순의 서술이 아니라, 통치자를 중심으로 각 시대의 주요한 신하와 인물의 전기, 제도와 문물, 경제 실태, 자연 현상 등을 분류하여 서술하여 시대의 특징과 변동을 유기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리고 각 시대에서 활동한 인간의 삶에 대해서도 좀더 생생하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기전체(紀傳體)는 왕조 전체의 체제와 변동을 서술하기 위한 정사(正史)의 기본 서술 체재로 자리잡았으며, 그 때문에 정사체(正史體)라고도 한다. 이 기전체의 효시가 사마천의 사기에서 비롯되었다.

 사기는〈본기(本記)〉(12권), 〈표(表)〉(10권), 〈서(書)〉(8권), 〈세가(世家)〉(30권), 〈열전(列傳)〉(70권) 등 전13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기는 제시대부터 한무제까지의 역대 천자와 왕조의 변천을 서술한 연대기이며, 표는 각 시대별 정치와 문화에 대한 기록이다. 서는 국가의 각종 제도와 변혁을 담고 있다. 세가는 봉건 제후들의 흥기와 멸망을 담은 연대기인데 공자와 진섭이 포함되어 있다.  열전은 백이와 숙제부터 한무제에 이르기까지 귀족, 관료, 장군, 자객, 토호 등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사기열전


 사기열전은 중국의 고대 인물을 다룬 개인 전기라고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 가운데 최후까지 살아남은 전국 칠웅 진한위제초연조의 흥망성쇠를 주축으로 하며 수많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열전의 70편과 세가에 포함된 공자와 진섭을 포함하면 72편이 된다. 세가는 28편으로 별자리 28수와 일치하여 이는 천지와 음양의 수, 진법을 기초한 구성으로 파악하기도 한다. 열전의 마지막에 <태사공자서>가 삽입되어 있는데 여기서 사기를 집필한 목적과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이 마지막이 사기 전체의 서문이라 할 수 있으며 구성과 각 편의 서술 이유, 자신의 가계 및 학문적 배경과 경력을 기술하고 있다. 태사공자서가 결국 사마천의 해제라고 본다면 각 열전마다 ‘태사공은 말한다’는 사마천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열전의 시작을 〈백이열전〉에서 <화식열전>으로 끝을 맺고 있으며 각 편마다 ‘태사공은 말한다’를 기술하고 있는데 해당 인물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말하고 있다. 본문에 언급되지 않은 사실을 보충하거나, 서술 내용과 관련된 사실을 방문하며 느낀 감회, 자료의 선택 이유, 성공과 실패에 대한 원인 분석과 그 인물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처음 시작을 백이·숙제로 설정한 것은 이들의 비통한 운명을 논하며 부조리한 세상사에 대한 울분을 토로하고, 궁형(宮刑)을 당한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고자 함이 크다. 또한 상업 및 상인의 사적을 기록하는 <화식 열전>이 맨 마지막이라는 점은 물질주의보다 정신주의의 우위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백이 열전은 극단적 명문과 도덕적 정신주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화식열전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욕망을 추구하는 본능으로 설명하는 물질주의 세계를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열전의 순서를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순이라 말하고 있다.


역자서문 

해제

 

1. 백이 열전

2. 관·안 열전

3. 노자·한비 열전

4. 사마·양저 열전

5. 손자·오기 열전

6. 오자서 열전

7. 중니 제자 열전

8. 상군 열전

9. 소진 열전

10. 장의 열전

11. 저리자·감무 열전

12. 양후 열전

13. 백기·왕전 열전

14. 맹자·순경 열전

15. 맹상군 열전

16. 평원군·우경 열전

 

 

17. 위공자 열전

18. 춘신군 열전

19. 범저·채택 열전

20. 악의 열전

21. 염파·인상여 열전

22. 전단 열전

23. 노중련·추양 열전

24. 굴원·가생 열전

25. 여불위 열전

26. 자객 열전

27. 이사 열전

28. 몽염 열전

29. 장이·진여 열전

30. 위표·팽월 열전

31. 경포 열전

32. 회음후 열전

33. 한신·노관 열전

34. 전담 열전

35. 번·역·등·관 열전


 

■ 감동적이었던 장절


 사마천의 사기는 역사서. 기전체 역사서의 효시.

 내 기억 속에 이렇게 자리한 사기다. 역사서인데, 더구나 남의 나라다. 게다가 현재, 근대도 아닌 까마득한 날의 역사서를 내가 부러 선택하여 읽을 일은 없었기에 책을 읽으며 느낀 반응은, “이거 역사서 맞아?”였다. 내게 역사의 기록이란 의미가 사건, 사고 중심의 연대기적인 서술이다라는 것이 바탕에 깔려 있었나보다. 아무튼, 내가 읽는 부분은 사마천의 사기 중 일부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그냥 소설책을 읽듯이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 아, 이런 사람들이 실존 인물이란 말이지?를 되뇌며.

 그렇게 읽어 내려갔기에 각 인물의 사연에 감동한 부분과 사마천의 해석 부분에 감동한 부분 등이 나뉘어진다. 우선, 전반적으로 시대와 사건 속에서 행한 인물들의 행적에 대해 사마천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 속에서 인물에 대해 느끼는 그의 평이 역사서로서는 객관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했지만, 괜찮았다. 그리고 간간히 인물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대입한 것이 그가 겪은 고통과 울분을 느끼게 해주어 아린 마음도 들었다. 어쩌면 글쓰기는 자신을 정립하는 과정과 함께 자신을 변호하는 과정이란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인물들에 대한 관찰, 평면적이지 않은 묘사를 통한 그들의 행적에 대한 해석. 아, 이 사람이 이러한 기록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를 생각하니 나는 왜 글보다도 그가, 사마천이 감동으로 다가올까. 사마천의 초상화가 보이기에 나는 그가 정말로 아주 오래 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늙어 보였으니까. 정확한 그의 생몰연대를 알 수 없다 하지만 대략 50대 후반 즈음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젊지 않은가. 늘 작가에 대한 자료가 없을 때마다 아쉬움이 느껴지지만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마천은 결혼을 했는가. 자식이 있는가.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한 후, 그리고 딸을 출가시킨 후 자살을 했다는 설도 있다 한다. 사형당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생을 이어간 것은 정말로 사기 저술을 위해서였던 것인가.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욱하는 성질이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역사서 편찬자에 대해 가지는 선입견은 뭔지 모르게 조용한 인내력을 생각게 하는데, 제사 의식에 참여하지 못한 울화통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니 말이다. 반면 사마천에게선 차분한 이미지가 더 느껴진다. 그는 글로서 그의 억울함을 피력하였다. 아버지의 기질을 물려받았다면 그는 사기를 저술하기도 전에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겪었으리라.


■ 보완점


 번역자인 김원중의 원칙은 이러하다.

“번역은 원전 뜻을 자구 하나하나 따져 가며 번역하고 난 다음 그에 수반되는 전고나 논의의 근거를 찾아 다시 그것을 원전의 문맥에서 구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주는 독자가 원전을 읽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원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각주가 사족이 되지 않으려면 그 활용이 적절해야 하므로 원전의 단어 하나 지구 하나를 우리말로 표현하는 데 온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번역에 이념이 개입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감히 생각한다.”

 번역에 대한 원칙으로 수긍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열전을 기록하면서 사마천은 태사공으로 분해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듯이 열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도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열전의 편마다 소제목을 붙여 내용을 분류하여 놓은 것처럼 말이다.

 일단 2천년 전의 사마천에게 말한다. 춘추전국 시대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 이야기는 개인의 삶을 얘기한 것이긴 하지만 가만 보면 나라를 세우는데 대한 이야기가 좀더 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전쟁이라는 혼란의 장에서 여러 나라를 전전하는 유세가들의 이야기를 보며 각 인물들의 활동에 따라 어떤 나라가 남느냐,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열전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인물이 다른 열전의 조연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나라도 많고 인물도 많다 보니 그 동일인물인지 헷갈리는 면도 있었다. 그런 까닭에 특정한 나라에서 활약한 인물들 별로, 서로 대립하던 인물들 별로 이야기가 정리되면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다. 일목요연하게 이러한 내용이 정리된 ‘연표’가 덧붙였으면 하는 생각이다.

 작가는 열전의 순서를 도덕적 기여도가 높은 인물들을 먼저 하였다고 하는데 작가가 말하는 도덕적 기여도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끔 하였다. 그런 방면으로 따지면 열전의 순서에서 의아한 부분도 있었다. 그리고, 인물들을 본인이 직접 만나고 경험한 부분도 있지만 전해 듣거나 그들의 삶을 문헌 등의 자료로만 파악한 사람이 적지 않다. 그의 자료가 얼마나 정확할까 하는 생각도 덧붙여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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