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최지환
  • 조회 수 2258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08년 5월 12일 19시 00분 등록
사기열전 (상) - 사마천, 까치, 정범진 외 옮김

I. 저자에 대하여

그의 일생

사마천. 성은 사마(司馬)이고 이름은 천(遷)이다. 자는 자장(子長)이라 하며,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관직 태사령을 물려받아 태사령으로 복무하였으며 태사공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마천은 20세 때 관청에서 문서의 일을 맡아보는 낭중(郎中)이 되어 한 무제를 수행하게 된다. 기원 전 110년에는 무제의 태산 봉선(封禪)의식을 수행하여 장성 일대와 하북, 요서 지방을 여행하였는데, 이 여행에서 견문을 크게 넓혀 훗날 '사기'를 저술하는 데 필요한 귀중한 자료들을 수집하였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은 이 봉선의식을 수행하지 못한 것에 분노하여 사망하고 만다.

기원 전 104년에는 천문 역법의 전문가로서 태초력(太初曆)의 제정에 참여한 직후,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사기'의 저술에 본격적으로 착수한다. 저술에 몰두하던 그는 흉노의 포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투항했던 자신의 벗,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의 노여움을 사 생식기를 잘리는 치욕스런 궁형(宮刑)을 당하게 된다. 이에 굴하지 않고 사마천은 옥중에서도 저술을 멈추지 않았으며, 기원 전 95년에는 한 무제의 신임을 회복하여 환관 최고의 관직인 중서령(中書令)으로 임명된다. 기원 전 90년에 이르러 그는 결국 사기를 완성하여, 현재까지 동양 최고의 역사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왜?

그는 도대체 왜 이 같은 일을 했을까 궁금했다. 직업상 한 일도 아니었으며, 순수하게 스스로 원해서 역사상 길이 남을 만한 역사서를 만들었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은 죽기 전에 아들 천에게 자신이 찬(纂)하던 사적(史籍)을 완성해 달라고 유언하였다. 그 사적이란 그가 <국어(國語)>, <세본(世本)>, <전국책(全國策)>, <초한춘추(楚漢春秋)> 등의 서적을 근거로 편찬한 것이었고, 결국 훗날 사마천이 완성한 '사기'의 초안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한 것이었을까?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사기가 완성된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았다. 기원 전 90년 경으로 추정해 볼 뿐이다. 이 추정의 근거로 사용되는 자료가 바로 <보임안서(報任安書)>라고 불리는 사마천이 자신의 친구인 임안에게 보낸 편지이다. 그 편지의 내용에서 사마천은 자신이 옥에 갇히고 궁형에 처하게 된 경위와 그에 더욱 분발하여 사기를 저술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은 심경을 고백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이 편지에서처럼 자신의 신세에 대한 처절한 심정을 역사서 저술로 승화한 것일까? 자신의 그런 처절한 감정을 문학작품도 아닌, 역사서로 승화할 수가 있었을까? 그리고 결국 이 역사서를 완성함으로써 그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많은 의문이 남았다.

그의 성격

'사기'가 지닌 가치 중 하나는 기존의 역사 서술 방식으로 굳어진 편년체를 탈피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인 기전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그만큼 창의적인 사람이었고, 기존의 형식적인 전통보다는 내용전달의 효과를 더 중요시하는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사기는 그 내용 또한 왕실의 문헌은 물론이고, 각종 경전, 역사서, 궁정연대기부터 민간에 전해지는 민담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다양한 자료를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그의 모습으로부터 그가 열린 사고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상적으로도 여러 학파의 주장을 자유롭게 인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저작 '사기'를 공자의 '춘추'와 비교하여 품격이 낮으며, 자신은 단지 역사적인 사실을 후대에 전하는 전달자일 뿐이라고 말하는 겸손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앞서 말한 그의 저작 의도는 어찌 보면 문서를 다루는 자신의 임무와 그저 아버지의 뜻을 잇는 자식으로서의 임무를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이를 수행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II. 내 마음을 무찔러 든 글귀

권61 백이열전

13) 가는 길이 같지 않은 사람과는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13) 부귀라는 것이 만약에 추구해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채찍잡이와 같은 천한 직업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할 것이며, 또 만약에 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 행할 것이다.

13) 추운 계절이 된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는 시들지 않는다(푸르게 남아 있다)는 것을 안다.

13)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가 비추어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가 감응한다.

권62 관안열전

19) 안자는 키가 여섯 자도 못 되는데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제후들 사이에 명성을 날리고 있어요. 오늘 제가 그의 외출 모습을 살펴보니 품은 뜻이 심오하고 항상 자신을 낮추는 겸허한 모습이더군요. 그런데 당신은 키는 여덟 자나 되건만 남의 마부 노릇을 하면서도 아주 만족스러워하시니 이것이 제가 이혼을 청하는 이유입니다.

권 63 노자한비열전

24)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즐거워할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구속당하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아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자 하오.

28) 송나라에 한 부자가 있었는데, 바가 와서 그의 집 담장이 무너졌다. 그의 아들이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말하였고, 이웃 집 주인도 역시 그렇게 말하였다. 날이 저물자 (도둑이 들어) 과연 많은 제물을 잃었는데, 그 집에서는 그 아들을 매우 똑똑하다고 여기면서도 이웃집 주인에게는 의심을 품었다.

28) 이 두 사람(이웃집 주인과 관기사)이 알고 있던 것은 모두 타당한 것이었거늘 심한 자는 죽음을 당하고 가벼운 자는 의심을 받았으니,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어려운 일이다.

29) 용이란 동물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줄기 아래에 한 자 길이의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사람이 이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버린다. 군주에게도 (용처럼)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65 손자오기열전

44) 실행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꼭 말에 능한 것은 아니며, 말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실행에 능한 것은 아니다.

55) "나의 묘 위에 반드시 가래나무를 심어 관재로 삼도록 하라. 그리고 내 눈알을 도려내어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두고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게 하라"고 하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 오자서

권67 중니제자열전

62) 염구가 공자에게 "의(義)를 들었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공자가 "바로 행해야 한다"라고 답하였다. 자로의 "의를 들었으면 바로 행해야 합니까?"라고 물으니, "부형(父兄)이 계시니 어찌 듣고서 바로 행하겠느냐?"라고 답하였다. 자화가 괴이하게 여겨 "감히 여쭙겠사온대, 물음이 같은데 대답이 어찌하여 다릅니까?"라고 물으니, "염구는 머뭇머뭇거리는 사람인지라 진취시켜준 것이고, 자로는 남에게 이기려 들기 때문에 억제시켜준 것이다"라고 답하였다.

63) 자로는 좋은 말을 듣고 아직 행하지 않았다면, 이것도 아직 행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좋은 말을 듣게 될까봐 염려하였다.

74) 자공은 시세를 보아 물건을 매매하여 이익을 챙기는 것을 좋아하여 때를 보아서 그때그때에 재물을 굴리었다. 그는 남의 장점을 드러내주는 것도 좋아하였으나 남의 잘못을 숨겨주지도 못하였다.

76) 자장이 녹(祿)을 구하는 것을 묻자, 공자가 답하여 "많이 듣고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빼버린 다음, 그 나머지를 신중히 말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서 그중에서 의심나는 것을 빼버린 다음, 그 나머지를 신중히 행한다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다면, 녹이 바로 그 안에 있다"라고 하였다.

88) 나는 제자들의 이름과 말을 모두 '논어'에서의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에서 취하여 함께 엮어서 이 편을 만들었으며, 의심나는 것은 보류해 두었다.

권68 상군열전

91) 위앙은 말하기를 "확신 없는 행동에는 공명이 따르지 않고 확신 없는 사업에는 성공이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탁견을 가진 자는 반드시 백성들에게서 오만하다는 소리를 듣기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에도 어둡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일을 앞서서 알 수 있습니다. 백성이란 시작할 때 함께 의논할 수는 없으나 성과를 함께 즐길 수는 있습니다. 지고한 덕을 논하는 자는 세속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성과를 이루는 자는 범인과는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려면 구습을 모범으로 삼지 않으며,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구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92) 지혜로운 자는 법을 만들고, 어리석은 자는 법에 제지당하고, 현명한 자는 예를 고치고, 평범한 자는 예에 구속됩니다.

92) 위앙이 말하기를 "세상을 다스리는 방법은 한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나라에 이로우면 고법을 본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은 탕왕과 주 무왕은 고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왕업을 이루었고, 하걸왕이나 은 주왕은 예를 바꾸지 않았지만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고법을 반대하는 사람이 비난받아서는 안 되며 고례를 따르는 사람이 칭찬받을 것도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권69 소진열전

119) 소진은 길게 탄식하여 말하기를 "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부귀해지자 친척이 나를 경외하고, 가난할 때에는 나를 경시하니, 하물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만일 내가 낙양 근교의 좋은 밭 두 이랑만이라도 있었다면 설마 여섯 나라의 인수(印綏)를 찰 수 있었을까?"라고 하였다.

127) 지혜로운 자는 화를 이용하여 복을 얻고 실패를 성공으로 바꿉니다.

133) 나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그의 경력과 사적을 나열함으로써 그 혼자만 악평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권70 장의열전

136) 나는 그가 작은 이익에 탐닉하여 큰 뜻을 이루지 못할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에 고의로 그를 불러다 모욕을 주어서 그를 분발시킨 것일세, 자네는 내 대신 눈치채지 못하게 그를 보살펴주게

143) 신이 듣자니 깃털도 쌓으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사람도 떼를 지어 타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게 만들고, 여러 사람의 비방은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권71 저리자감무열전

171) 앉아서 남의 공격을 기다리는 것과 남을 먼저 공략하는 것 중 어느것이 유리하겠는지요?

권73 백기왕전열전

201) 속어에 이르기를 '자(尺)가 비록 긴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긴 것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짧고, 치(寸)가 비록 짧은 것이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짧은 것과 비교하였을 때에는 길다라고 하였다.

권75 맹상군열전

215) 문이 말하기를 "반드시 하늘에서 명을 받는다면 군께서는 무엇을 근심하십니까? 또 반드시 문설주에서 명을 받는다면 즉 계속 문설주를 높이면 누가 그 높이를 따라 클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226) 선생께서는 아침에 시장에 모이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셨습니까? 날이 밝으면 어깨를 비비고 다투며 문으로 들어가는데, 날이 저문 뒤에는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기대하는 물건이 그 안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권77 위공자열전

248) 주해가 웃으며 말하기를 "신은 시장에서 칼을 가지고 짐승을 죽이는 백정으로 공자께서 여러 차례 방문하셨지만 답례마저도 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것이 작은 예의일 뿐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략)"

권78 춘신군열전

256) 사물의 이치가 극에 달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데, 겨울과 여름이 서로 변화하는 것은 이와 같은 이치이다. 일이 발전하여 극에 달하면 위험해지는데, 장기 말을 쌓으면 무너지는 것이 이러한 이치이다.

257) 처음이 없는 사람은 없으나, 끝을 잘 맺는 사람은 드물다.

267) 마땅히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결단을 못 내리면, 도리어 화를 입게 된다.

권79 범수채택열전

272) 재능이 없는 사람은 감히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가 가진 재능을 덮어 숨길 수가 없다.

272) 어리석은 군주는 그가 총애하는 사람에게만 상을 주고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준다. 그러나 영명한 군주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상은 반드시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내리고 형벌은 반드시 죄를 지은 자에게 내린다.

299) 이들 두 사람 못지않는 어진 사람들도 뜻을 이루지 못한 경우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이들 두 사람도 곤궁한 처지에 빠지지 않았던들 어떻게 분발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었겠는가?

권80 악의열전

307) 일을 잘 꾸미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이루는 것은 아니며, 시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끝까지 잘하는 것은 아니다

권81 염파인상여열전

323) 아! 장군은 어찌 그렇게도 생각이 둔하십니까? 지금 세상은 시장에서 교역을 하듯이 교제를 합니다. 장군께 권세가 있으면 우리는 장군을 따르고, 권세가 없으며 떠나가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한 이치인데, 또한 어찌 섭섭하다고 원망하시겠습니까?

권83 노중련추양열전

339) 지혜로운 자는 시기를 거역해 유리한 기회를 저버리지 않으며, 용맹한 자는 죽음을 겁내어 명예를 훼손하지 않으며, 충신은 자기 한 몸을 우선하고 군주를 뒤로 하지 않는다고 들었소.

347) 한쪽 말만 들으면 간사한 일이 생기게 되고,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면 난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348)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라도 녹일 수 있고, 계속해서 쌓이고 쌓이는 참소은 말은 뼈라도 녹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52) 추양은 말은 공손하지 못하였지만, 비슷한 사물을 폭넓게 끌어다가 자신의 뜻을 비유, 설명하는 감동적인 면이 있었으며, 또한 그것은 불굴을 정신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때문에 나는 그를 '열전(列傳)'에 싣는 것이다.

358) '역경(易經)'에서 말하기를 "우물물이 맑아도 와서 마시지 않는구나. 나의 마음을 슬프게 함은, 이 물은 가히 마실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로다. 왕이 명철한다면, 또한 그 복을 받는 법이다"라고 하였다. 왕이 밝지 못하니, 어찌 복을 맏을 수 있겠는가!

359) 굴원이 대답하기를 "온 세상이 혼탁하나 나홀로 깨끗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취해 있으나 나 홀로 깨어 있어, 이런 까닭에 추방당하였소"라고 말하였다.

359) 굴원이 대답하기를 "내가 듣기로, 새로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였소. 사람으로서 또한 누가 자신의 깨끗함에 더러운 오물을 묻히려 하겠소? 차라리 흐르는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의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지라도, 또 어찌 희디흰 결백함으로서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쓰겠소!"라고 하였다.

권86 자객열전

385)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얼굴을 아름답게 단장한다.

403) 그들의 목적은 매우 분명하였고, 자신들의 뜻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니, 그들의 이름이 후세에 전함이 어찌 망령되겠는가!

권87 이사열전

405) 사람의 잘나고 못난 것이 쥐와 같으니, 그것은 스스로 처한 바에 달렸을 분이로다.

406) 비천한 지위에 있으면서 자기의 계획을 실행하지 않는 것은, 새나 짐승이 고기를 보고서도, 사람이 앞에 있어서 억지로 참고 지나가는 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비천함보다 더 큰 부끄러움은 없으며, 빈궁함보다 더 심한 슬픔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비천한 지위와 고달픈 지경에 놓여 있으면서, 세상을 비관하고 이기심을 탓하여, 실행하지 않는 것에 자신을 의탁한다면, 이는 선비의 진심이 아닐 것입니다.


III. 내가 저자라면

기전체

사기는 옛 요, 순 시대부터 전한 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기전체라는 역사서술 방식을 최초로 사용한 책이기도 하다. 이 기전체는 이후 <한서(漢書)>에서 <청사고(淸史稿)>까지 중국 역대 왕조의 정사(正史)를 서술하는 기본 체재가 되었다. 기전체의 형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기전체는 기(紀)·전(傳)·지(志)·표(表) 등으로 구성하며, 가장 중요한 기와 전의 이름을 따서 기전체라 부른다. 사기에서는 세가가 포함되어, 총 12편의 본기, 10편의 표, 8편의 서, 30편의 세가, 70편의 열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부분의 역할

기(紀): 황제들의 정치와 행적을 중심으로 역대 왕조의 변천을 연대순으로 서술
표(表): 각 시대의 역사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연표(年表)로 기록
서(書): 제례(祭禮)나 천문(天文), 경제(經濟), 법률(法律) 등의 문물과 제도에 관해 항목별로 연혁과 변천을 기록한 것으로 일종의 문화사(文化史)나 제도사(制度史)로서의 성격을 지님
전(傳): 교훈이 될 만한 사람들을 뽑아서, 그들의 일생을 전기형태로 기록한 것이다.
세가(世家): 제후들의 가문 내력 또는 성공과 몰락 과정을 시대별, 나라별로 상세히 기록

이 중에서 이번에 읽은 사기열전은 전(傳)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인근 이민족에 대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기의 핵심으로서 후대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기전체는 우리나라에도 역사서 편찬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쳐, 지금은 전해지지 않지만 고려 초기에 지었다는 <삼국사(三國史)>에 <단군본기(檀君本紀)>나 <동명왕본기(東明王本紀)> 등이 담겨 있다는 기록으로 볼 때 기전체로 서술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 뒤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조선 세종(世宗) 때 편찬된 <고려사> 역시 기전체로 서술된 역사서이다. 16세기 말 오운의 <동사찬요(東史纂要)>, 17세기 후반 허목의 <동사(東事)>, 18세기 후반 이종휘의 <동사(東史)> 등도 기전체로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사마천의 역사기술 방식은 기존의 역사를 그저 시대 순으로만 나열하는 방식인 편년체의 방식을 과감히 탈피하고, 자신만의 창조적인 서술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사기열전의 각 장에서는 사마천 본인이 각 인물에 대한 짧지만 예리한 논평을 실어 자신이 그를 열전에 포함시킨 이유들을 말하고 있는 점에 매우 신뢰감이 간다.

어느 시대이건 별 탈 없이 누구나 사용하는 방식을 깨고,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을 사용한다는 것은 커다란 모험이다. 또한 그 모험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다시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는 것은 그 모험이 성공적이었음을 확인하는 증거이다. 사마천은 그 일을 해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창의적인 실험에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점수를 주었을 것이며, 나또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통해 이 사마천의 기전체를 벗어난 새롭고 성공적인 실험을 하기도 하였다.

사기열전은 총 70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직 이번 책을 통해 27편만을 읽은 상태이다. 그가 쓴 이 열전이 기전체라는 형식에서 어떤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그가 이 70편의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를 선택한 데에 있어서 어떠한 기준을 적용했을까하는 것이 매우 궁금하다. 실제 '사기'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이번에 읽은 번역본 출판사 까치의 '사기열전(상)'에서도 역자의 해설이 전혀 없다는 점이 독자로서는 매우 아쉬운 부분이었다. 어차피 일반독자가 사기의 원본을 읽을 일은 없을테니, 역자가 이 역할을 대신해주었어야 했다.

인간의 무의식이 왜곡되지 않았던 시절의 이야기?

책을 읽으면서 속으로 '허걱'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만드는 장면이 많았다. 다름이 아니라 현대를 사는 우리의 관점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행동 때문이었다. 미천한 신분으로 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 양저가 약속시간에 늦었다는 이유로 장고의 목을 베는 장면. 손무가 자신의 구령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왕의 희첩 두 명의 목을 베는 장면이 그러하다. 또한 출세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죽이는 오기의 이야기는 과거엔 어찌 그리 독한 인간들이 많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 군정을 불러 "군법으로는 약속시간에 늦은 자를 어떻게 처리하는가?"라고 물었다. 군정은 "참형에 처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몹시 겁이 난 장고는 사람을 경공에게로 급히 보내 이런 일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떠나간 사자가 돌어오기도 전에 양저는 장고를 참수형에 처하여 전군에 본보기로 보이니 전군의 병사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었다. (32p)

- 손무가 "저는 이미 임금의 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중에 있을 때에는 임금의 명이라도 받들지 않을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하더니 결국 대장 두 사람을 참수하여 본보기를 보였다. (36p)

- 오기는 위나라 사람으로 용병을 좋아하였다. 일찍이 증자에게 배우고 노나라 군주를 섬겼다.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장군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여자였기 때문에 노나라에서 그를 의심쩍게 생각하였다. 그러자 오기는 출세하기 위해서 그의 아내를 죽여 제나라 편을 들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39p)

- 한단의 백성들은 사람의 뼈를 태우고 자식을 서로 바꾸어 먹고 있으니 실로 위급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33p)

그 당시의 시대적인 인식의 차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사회윤리적 기준에서는 결코 납득할 수 없는 그러한 이야기들이다. 그렇다면 같은 인간이면서도 왜 이 시기에는 이런 짓들이 인정되고, 심지어는 높이 추앙받았던 것이었을까? 단지, 그 시대의 사람들은 문명의 수준이 낮아서일까? 이번 오프라인 수업을 통해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가 있었다. 내가 책에서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떠올랐던 것은 신화 속에 나오는 수많은 극악무도한 장면들이었다. 근친상간, 골육상잔 등의 장면이 신화나 역사 속의 장면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업 중에 신화라는 것은 결국 문명이 왜곡되기 이전, 즉 문명이 만들어낸 갖가지 제도와 도덕적, 종교적 규율 등으로부터 인간이 구속받기 이전의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사기열전의 사람들의 모습이 신화 속 인물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은 그들은 아직 문명에 의해 왜곡되지 않았다는 것일까? 본래 우리 인간이 가진 모습에 가깝다는 것인가? 언제 풀릴지는 모르겠지만, 꽤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있을 것 같은 질문이다. 지금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으로는 사기열전과 같은 역사서는 신화의 시대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연결하는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래 두고 볼 책

사기열전. 내가 본래 좋아하지 않는 류의 책이다. 일단 등장인물이 너무도 많다. 또, 그 인물들의 이름은 어찌나 어렵고 서로 비슷비슷한지. 이름도 한가지로 불리지 않는다. 상황과 역할에 따라 불리는 호칭이 다양하다. 대부분 한 글자로 이루어진 나라이름은 날 어지럽게 만든다. 그 속의 수많은 이야기. 이런 책을 일주일동안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해 보였다. 오래오래 두고 봐야 할 책이다.
나는 궁금했다. 사마천은 왜 이런 책을 썼을까? 2차 레이스 때 삼국유사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연은 승려로서 불교적 관점에서 역사를 새로 쓰려 했던 의도가 있었다. 사마천의 경우 아버지의 뒤를 이었다는 것 외에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그는 도대체 왜 이런 책을 썼을까? 매번 인물에 대한 서술을 끝내고, 그 인물을 열전에 포함시킨 이유 등을 짧게 설명하고는 있으나, 그가 ‘사기’라는 책을 쓴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열전이 아닌 본기 등을 참고한다면 그 이유를 조금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상깊었던 구절

위앙은 말하기를 "확신 없는 행동에는 공명이 따르지 않고 확신 없는 사업에는 성공이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행동을 하는 자는 원래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마련이며, 탁견을 가진 자는 반드시 백성들에게서 오만하다는 소리를 듣기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에도 어둡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일을 앞서서 알 수 있습니다. 백성이란 시작할 때 함께 의논할 수는 없으나 성과를 함께 즐길 수는 있습니다. 지고한 덕을 논하는 자는 세속과 타협하지 않으며 큰 성과를 이루는 자는 범인과는 상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이 나라를 강하게 할 수 있으려면 구습을 모범으로 삼지 않으며,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구례를 좇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91p)

IP *.34.17.93

프로필 이미지
개구쟁이
2008.05.15 10:02:53 *.235.31.78
"인간은 본래 짐승같은 존재다. 인간이 지금처럼 도덕적 규범의 틀 안에서 살수 있게 된 것은 문명이 만들어 낸 구속과 왜곡의 결과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일부 신화학자,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너무 슬프고 안타깝네요. 과연, 이들의 주장대로 살인자와 강간범이 인간 본연의 모습일까요? 윌 듀란트도 그러던데.

아닌것 같은데......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