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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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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2일 22시 01분 등록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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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저자에 대하여

 

예전자료 #1 (고운기) ☜ Click!

 

◆ 일연(一然, 1206~1289)

고려시대의 승려. 속성 김(金). 이름 견명(見明). 자 회연(晦然)·일연(一然). 호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 보각(普覺). 탑호 정조(靜照). 경상북도 경산(慶山) 출생. 1214년(고종 1) 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현 광주) 무량사(無量寺)에 들어가 대웅(大雄) 밑에서 학문을 닦다가 1219년 승려가 되었다. 1227년 승과(僧科)에 급제, 1237년 삼중대사(三重大師), 1246년 선사(禪師), 1259년 대선사(大禪師)가 되었다. 1261년(원종 2) 왕명으로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어 목우(牧牛)의 법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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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를 위대함에 이르게 한 7가지의 길

 

1. 우연이 운명이 되다 (터닝포인트)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가 되어야 한다

최충헌을 비롯한 무신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것이 100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송나라가 멸망하고 원이 들어섰다. 하늘의 자손이라며 그렇게 당당하던 한족이 변방의 오랑캐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는 순간 퍼뜩 감은 눈을 떴다. '우리도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저 변방에 말 타고, 말을 키우던 무리들도 세상에 중심에 우뚝 섰는데 우리라고 안 될게 무엇이 있겠는가? 또한 그처럼 당당하다던 한족의 시조가 신이 했는데, 우리 삼국의 시조가 신이한 데서 출발했음이 무엇이 괴이한 일이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앞으로 쓰게 될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필히 후대의 귀감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 속의 울림을 따라 나는 <삼국유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 재능이 감응할 때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천복)

시인, 내 안에 또 다른 나 그리고 기록의 힘

나는 승려다.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이다. 오랫동안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나는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내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 나는 내가 중이라 해서 불교적인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것은 시였다. 특히 향가는 천지간 귀신이 감동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한시와 민요도 모두 이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적은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사람살이의 고통이 무엇이며 역사의 바른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했다. 그것은 뜻밖에도 내가 쓴 찬이나, 인용해 놓은 다른 시와 민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삼국유사>야 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었다. 내가 일찍이 포산에 머물며 그 분들의 남기신 아름다움을 적어 놓았었다. 이제 여기 함께 적는다. 나는 아직 젊은 시절부터, 내가 머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이것이 <삼국유사> 찬술의 주재료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삼국유사>는 내가 곳곳에서 머물 때마다 써 둔 기록들의 집합이다.

 

 

3. 내가 그린 삶에 대한 뱃심,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용기)

새로운 질서를 찾아서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 하여야 하는 일이다. 새롭게 서야 할 질서, 그것을 나는 불교 안에서부터 보았다. 혁신적 과업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에 불과할 뿐 본질은 아니다. 본질의 문제, 그 앞에서 나는 기존의 방편을 부수었다.

 

이름마저 바꾸다

나의 개명에는 놀랍고도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내 처음 이름이 견명이었고 불교 이름을 희연이라고 지어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켰다. 옛 사람들이 이름 다음에 자를 지을 때 흔히 하는 방법이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이 둘 곧 밝음과 어둠을 하나로 보겠다는 뜻에서 새로운 이름에 일자를 넣었다.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나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4. 침묵의 시간, 일만 시간의 레이스를 통과해야 한다 (수련)

깨달음을 향한 길

내 나이 아홉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광주 무량사로 들어가게 되었고, 열 네 살에 설악산 아래 진전사(陳田寺)로 가서 출가를 했다. 초발심이 곧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정진을 시작한지 여덟 해가 지난 스물 둘 나이에 나는 선과에 급제할 수 있었다. 나는 여러 사찰을 돌며 공부했는데 명성이 대단했다. 같은 도반들은 내가 구산사선의 우두머리가 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영광을 뒤로 하고 비슬산의 보당암으로 자리를 옮겨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에만 몰두하였다. 그로부터 아홉 해가 지난 서른 한 살 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때 나는 원의 지배에 따른 백성들의 고통과 참담한 사회상을 목격했고, 백성들에게 구원과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산 속에 들어가 면벽수행을 통해 홀로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임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산과 세상을 오가며 십 삼 년을 보낸 후인 마흔 네 살에 나의 실천적 정진을 보고 감명을 받은 당시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인 최항의 매제인 정안이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를 정림사의 주지로 추대하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쉰 넷에 나는 대 선사가 되었고, 남해 길상암으로 거처를 옮겨 <중편조동오위>를 저술했다. 그 후 세상을 떠도는 운수행각을 거듭 반복하며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을 즐거움 삼아 홀로 정진을 계속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내 나 일흔 여덟의 어느 날 왕께서 총애하는 장군을 보내와 국사가 되어달라 청하였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왕의 극진함에 감복하여 궁으로 들어가 국존이 되어 왕과 백성을 위로하였다.

 

 

5.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존재를 지킬 수 없다 (철학)

어머니, 나의 어머니

열 아홉 살 아직 꽃 피지 않을 나이에 나 하나를 낳고, 아흔 살 넘어 세상을 마칠 때까지 평생을 혼자 살아오신 어머니, 나의 어머니. <삼국유사> 나오는 홀연히 사라진 아들을 찾고자, 애끓는 마음을 부처님 앞에 가 빌고 비는 어머니는, 다름 아닌 나와 나의 어머니의 대역들이다. 나의 삶이 깊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향념은 신앙 그 자체였다. 참된 효도가 무엇이겠냐는 나의 질문을 담고 있는 진정의 이야기는, 여덟 살에 어머니 곁을 떠나, 그 어머니가 70년을 홀로 사시도록 이 세상에서는 외롭게만 해 드렸던 내 삶에 대한 답변이었다. 진정은 주먹밥 일곱 덩이 싸주며 호통치듯 자신을 떠나 보낸 어머니의 임종도 보지 못하였다. 진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이 전해오자, 진정은 가부좌한 채 7일 동안 입정하더니 일어났다. 세속의 인연을 가르기란 그렇게도 질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처럼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께 지병을 핑계로 군위 인각사로 내려가 평생 그리던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6. 스승, 그 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승)

원효,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내게 있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내게 있어 원효는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그 자체였다. 나는 원효와 같은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보였다.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무릎을 칠 일, 거기서 애석해 하는 원효, 원효는 내게 그렇게 인간이 되라고 손짓한다.

 

 

7.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 (깨달음)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도둑

세상에 제일 가장 고약한 도둑은 바로 자기 몸 안에 있는 여섯 가지 도둑일세

눈 도둑은 보이는 것마다 가지려고 성화를 하지

귀 도둑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네

콧구멍 도둑은 좋은 냄새는 제가 맡으려 하고

혓바닥 도둑은 온갖 거짓말에다 맛난 것만 먹으려 하지

제일 큰 도둑은 훔치고 못된 짓 골라하는 몸뚱이 도둑

마지막 도둑은 생각 도둑

이 놈은 싫다 저놈은 없애야 한다

혼자 화내고 떠들며 난리를 치지

그대들 복 받기를 바라거든

우선 이 여섯 가지 도둑부터 잡으시게나

- <고승열전> 중에서

 

생계불감(生界不減) 불계부증(佛界不增)

나는 이 가르침을 깨우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생계불감(生界不減)'이란 ‘죽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삶의 세계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불계부증(佛界不增)'는 ‘부처의 세계는 돌아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행한 일에 따라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므로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삶의 세계나 부처의 세계는 돌고 돌아 어느 쪽이든 줄거나 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깨우치자, 세상의 온갖 일이 조금도 꺼릴 것이 없게 되었다.

 

 

※ 동영상

군위 인각사와 일연스님의 생애에 관한 동영상

일연스님의 생애가 담긴 정말 좋은 동영상 입니다.

동영상 바로가기 ☜ Click!

 

 

※ 자료 출처

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글, 양진 사진, 현암사

2) 네이버 백과사전

3) 네이버 캐스트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2625)

4) 동영상 (http://blog.naver.com/bytaelim/20099019570)

5) 사진 (http://blog.naver.com/teruteru123/130000399422)


 

 

◆ 내가 바라본 일연

일연은 '영웅'이다. 그 이유인 즉 슨 그는 승려가 되어 불교의 세계에 입문을 하였고 이미 서른 한 살의 나이에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개인의 깨달음에 머물지 않고 그 깨달음의 세계에서 얻은 것을 세상에 가지고 돌아와 널리 전파하였다. 영웅인 그가 남긴 불사의 영약이 바로 <삼국유사>다. 삼국유사는 우리가 흔히 아는 정사인 삼국사기를 보완하는 대안사서가 아니다. 그는 이미 800여 년 전 시대를 앞서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던 혁명가이자 시인이었다.

 

시인답게 그는 스스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원효와 진정 등의 역사 속에 인물들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간접적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부처와 보살의 진신과의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을 뒤늦게 무릎을 치며 애석해 했을 나사 하나 정도 풀린 조금은 허술했던 원효와 같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깨우친 승려였지만 의상과 같이 냉철한 금속성을 가진 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불교에는 '인심이 많으면 도심이 성글어 진다'라는 말이 있다. 즉 사람에게 집착하면 도를 닦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래서 출가한 승려들의 마음은 세상을 향하지만 차가운 금속성을 지닌다. 그러나 일연은 다르게 생각한 것 같다. 그는 진정한 도의 경지는 차갑고 냉정한 세상과의 단절에 있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곳곳에 숨어 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의 마음은 박박과 부득의 조에 잘 드러나 있다. 일연은 진정한 깨달음의 길은 원칙만을 고수하는 외통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가르침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매일 단련하는 수련의 길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 지나치게 나만을 향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외통수처럼 원칙과 형식만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연에게 배운다. 진정한 깨달음의 경지는 나 하나의 깨우침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II.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내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_삼국유사 (두번읽기).doc

 

III. 내가 저자라면

◆ 전체적 구성에 대하여

첫 번째 읽기

고운기의 <삼국유사>는 우리가 매주 수행하는 <내가 저자라면>의 모범 사례다. 올 초 연구원 레이스의 시크릿 미션에서 만난 김용규 선생님께서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좋은 글을 쓴 저자 작품 자체에 천착할 것이 아니라, 저자가 살아 있다면 그 작품을 어떻게 다시 쓸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고운기 교수는 이 책 서문에 '내가 만일 <삼국유사>를 썼다면'이라는 가정하게 책을 써 나갔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삼국유사>를 재구성해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일연'이 아닌 '고운기'다.

 

<삼국유사>의 원전은 '왕력'에서 '효선'에 이르기까지 총 9개 편, 140여 개의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큰 틀은 따르되 세부적인 구성은 독자의 입맛을 고려하여 먹기 좋게 분배하였다. 총 마흔 개의 큰 꼭지를 시간 순으로 배열했고, 큰 꼭지 안에는 5~6개의 작은 꼭지 글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한 곳도 예외가 없었다. 그가 책의 서문에 설명한 것처럼 각 꼭지 글의 세부적인 전개 방식은 <삼국유사>의 원전을 읽어주고, 거기에 대하여 설명하는 방식이다. 이 설명이 이 책의 핵심이자 매력이며, 이 책의 저자가 <일연>이 아닌 <고운기>인 이유다. <삼국사기>와 <승전>등의 사료를 조사하여, 원전과의 비교 대조를 통해 사료의 사실적 측면을 이해하게 해준다. 그러나 묘미는 이러한 사료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다. 사료의  역사적 의미 뿐만 아니라, 마치 <일연>이 살아 돌아와 그렇게 쓰게 된 본 뜻을 해명하듯 설명한다. 심지어는 역사 속 등장인물의 심리까지 묘사한다. <고운기>의 언어로 <삼국유사>가 되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주석이 없다. 주석을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주석은 늘 주석처럼 다가왔다. 텍스트 옆의 작은 번호와 그 작은 번호와 연결된 주석, 독서의 흐름을 끊어놓는 그 주석이 없어 시원시원하게 책을 읽어 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각 꼭지 글의 제목과 첫 문장이다. 마치 유혹하는 글의 표본을 보여주는 것 같다.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첫 성전환증 환자'와 같은 대체 무슨 내용일까 라는 궁금증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맹랑하기 그지 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라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본문 327페이지),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본문 530페이지) 나중에 언젠가 내 글에 인용하기 위해 나는 이 문장들을 따로 갈무리해 두었다. 그가 시인이었기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차별성은 바로 사진이다. 이 책의 사진은 정말로 살아 있고 혼이 담겨 있다. 저자와 함께 <삼국유사>의 현장을 찾아 나선 저자의 후배 '양진'님의 사진이다. 그 동안 나는 사진의 비주얼은 좋지만 본문의 내용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진을 너무 많이 봐 왔다. 그러나 이 책은 사진을 보고 본문을 읽노라면 본문의 내용이 살아 숨쉬기 시작하고, 그러다 또 사진을 보면서 본문의 내용을 가슴에 품을 수 있다. 사진 하나하나에 달린 솔직 담백하고 센스가 넘치는 멘트들 또한 사진을 보는 재미를 배가 시켜 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사진 중 하나는 본문 619페이지에 나온 다람쥐 사진 "원원사 터에서 내려오는데 다람쥐 한 마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왔다 이 책에 실리고 싶었나 보다. <삼국유사> 어디에도 다람쥐 얘기는 나오지 않지만 내가 다시 그리는 <삼국유사>이니 다람쥐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사진과 사진에 달린 멘트를 읽으며 나는 '아.. 따뜻하구나.. 이 책은 이렇게 따스함을 그득 담겨있다. 이러한 여유를 담을 수 있는 글을 나도 쓰고 싶다.'라고 책 한 귀퉁이에 적어 놓았다.

 

스승이 고전으로 선정하여 우리에게 읽으라고 한 책에는 모두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 우리 삶의 '한 우물'을 찾아 천착해 깊은 우물을 파야 하는 우리에게 고운기 교수는 그 역할 모델이 되어 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주 쓰고 있는 글, 그 글에서 비롯될 우리의 첫 책이 나아가야 할 구성과 방향성까지 제시해 준다. 그렇게 우리는 책을 읽고 사람을 알게 되고 또 배움을 얻는다. 이것이야 말로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두 번째 읽기

두 번째 읽기는 저자인 고운기가 아닌 원저자인 일연의 입장에서 읽으려는 시도를 했다. 일연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마음으로 <삼국유사>를 저술했을까를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분명한 것은 일연은 <삼국유사>를 저술함에 있어서 허례허식을 탈피했고,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날려 버리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특징적인 사건 하나로 한 왕대와 한 조의 성격을 나타내 버리는 것이다. 일연만이 지닌 특이한 기술 방법이다.

 

또한 그가 혁명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마음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 있는가를 찾아가며 읽었다. 그가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가 보면, 그 궁극에는 역시나 '사람에 대한 사랑' 즉 '자비'가 있었다. 그가 이야기 하는 혁명가의 길을 향하는 방법은 고운기가 인용한 손문의 경구 "편안함이나 위험이 어떤 날에는 서로 기대는 친구가 되고, 즐거움이나 고통이 닥치거든 두루 맛보아야 하는 것" 즉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순과 역설, 대극적 요소들 간의 합일에 있었다.

 

원효를 비롯한 역사적 인물들의 삶에 빗대어 이러한 자신의 삶의 철학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일연, 그런 일연의 마음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읽어낸 고운기의 시간의 벽을 뛰어 넘는 놀라운 교감 능력. 그렇게 나의 두 번 읽기는 겉으로 보이는 구성이 아닌 일연과 고운기의 마음을 따라 읽어 내려갔다. 또 한 가지. 두 번 읽기를 통해 처음 읽기에서 놓친 사진들을 오랜 시간 꼼꼼하게 보며 음미 할 수 있었다. 지난 4월 의 경주 토함산 동쪽 자락에 있는 장항리 절터와 숨은 그림 찾기 하듯 찾았던 귀여운 꼬마 사자를 추억했고, 진평왕릉에서 지새운 밤과 드넓었던 황룡사 터를 추억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꼭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숲을 거닐 것이고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진고개를 넘어 주문진으로 향하며 나도 폐에 가득한 먼지를 깨끗이 씻어낼 것이다. 양양 낙산사를 다시 찾아 고즈넉하게 둘러 싼 담에 대해 아는 척을 좀 한 뒤에 지난해 아쉽게 못 보고 돌아왔던 홍련암과 의상대에 있는 관음송을 꼭 보고 돌아올 것이다. 창원 백월산를 찾아 부득과 박박이 마주보며 수행 했던 백월산을 바라보고 근처에 있는 레스토랑 '달달 박박'에서 밥을 먹고 감나무 밭을 거닐 것이다. 그리고 가을엔 풍기 부석사 일주문에서 이어지는 이른 새벽 가을의 은행나무 길을 함께 거닐어 볼 것이다.

 

 

◆ 내가 저자라면

첫 번째 읽기

책을 읽고 나서 들었던 의문점. 과연 내가 <삼국유사>를 제대로 알게 되었는가? <삼국유사>의 내용 중 좋은 내용만을 엄선하여 그 부분에 대한 평을 한 것인지, 아니면 본문 안에 있는 <삼국유사>의 텍스트가 원전에 있는 내용들을 빠짐없이 그대로 담아낸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기에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삼국유사>의 원전에 대한 텍스트 읽기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자유분방한 전개 방식이 이 책의 매력이긴 하지만 자유로운 구성이 원전에 대한 집중력을 떨어뜨린다. 내가 저자라면 독자로 하여금 원전에 대한 방향성을 잃지 않고, 집중력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아주 작게라도 인용한 원전 뒤에 무슨 편 몇 수라고 기록해 두었을 것이다.

 

마치 배추도사와 무도사가 나와 해주는 <옛날 옛적에>라는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이 책은 더 없이 좋은 이야기 책이다. 그러나 우리가 <삼국유사>를 읽는 이유. 우리의 역사를 알기 위함이다. 책을 읽는 동안 우리가 어느 시대 어디쯤에 와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주옥 같은 이야기들이 보다 입체적으로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간소한 구성을 하고 있는 이 책에 덕지덕지 연표와 새로운 주석을 달고 싶지는 않다. 나라면 이 책을 네이버 캐스트에 나오는 인물 이야기처럼 웹 상에 연재 시리즈 물로 만들어 게시할 것이다. 웹에서는 책보다 더 비주얼하고 입체적인 구성으로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고, 사진과 더불어 동영상 자료도 볼 수 있으며, 지금 읽고 있는 이 부분이 역사의 어느 시점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진평왕이 먼저 살았는지, 진흥왕이 먼저 살았는지도 알 수 있고, 백제의 무왕이 살았던 시절에 고구려의 왕은 누구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배움은 입체적일 때 더 효과적이다. 지나치게 앞서 나간 감도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책은 웹과 상호보완적 관계를 구축하여 독자들에게 보다 입체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솔직히 말해 <삼국유사>라는 주제를 가지고 이 이상 어떻게 더 이야기를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책을 읽는 내내 누가 일연이고 누가 고운기인지 헷갈리는 때가 많았다. 또한 어쩌면 이렇게 한 조각씩 집어먹기 좋게 알맞은 분량으로 나누어 글을 썼을까 하는 경외감. 독자를 유혹하는 제목뒷이야기를 안 읽을래야 안 읽을 수 없게 만드는 매력적으로 가슴에 꽂히는 첫 문장. 내가 저자라면 고운기와 같은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

 

두 번째 읽기

고운기의 <삼국유사>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된 대표적인 사례다. 창조적 차별성은 결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이미 존재하던 것들에 대한 창조적 조합을 통해 새롭고 차별적인 것을 도출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옛 것의 조합을 염두에 둘 수 있을까?

 

매일 글쓰기, 책 읽기, 법정스님, 신경언어 프로그래밍, 스승의 변화경영, 하워드 가드너,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 마틴 셀리그만 등의 긍정 심리학, 엔서니 라빈스의 변화 심리학.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불교 심리학, 시각적 재능, 개념과 지식의 시각화 능력 등이 내게 있다. 각각을 보면 어떠한 차별성이나 우월성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잘 조합하면 창조적이고 차별성을 가진 어떤 키워드 조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직관적으로 나는 내가 궁극적으로 향해야 하는 방향, 이른바 북극성으로 상징되는 내가 지향하는 방향을 알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 How to. 어떻게 하면 이들을 조합할 것인가? 이 조합이 나의 고객들에게 어떤 가치를 경험시켜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을 나의 세계로 인도할 수 있을까? 컨텐츠가 곧 마케팅이고 세일즈다. 수영장에서 준비 운동만 하지 말고, 과감하게 물 속으로 몸을 던져라. 열거한 각 분야 중 아직 어떤 한 가지 분야에서도 나는 최선도 최고도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는 아직 수련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나 적어도 내 안에 있는 다른 요소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영역들이다. 예를 들어 스승의 <변화경영>에 대하여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렇게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부지런히 옛 것을 익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신화적 관점에서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역사 속 영웅의 시각에서, 철학의 숲에서 옛 것의 다양한 시선과 관점을 획득할 것이다. 그렇게 장착된 렌즈 들로 관심 분야들을 조망할 것이고,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나에게 맞는 창조적 조합을 이끌어 낼 것이다. 그렇다. 내가 저자라면 나만의 창조적 조합을 하루 빨리 발굴하여 거기에 천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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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경
2011.05.23 17:35:02 *.35.19.58
경인아, 동영상 좋다. 그리고 고승열전에 나오는 도둑 이야기도 좋다.
나중에 서예 잘 쓰게되면 하나 써서 집에 걸어두어야겠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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