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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3일 06시 02분 등록

고운기

출생 1961년 12월 15일 (전라남도 보성)

소속 한양대학교 (교수)

데뷔 198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삼국유사는 대구와 경북의 그리스로마 신화라 말하는 그가 삼국유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학위 논문으로 향가를 선택했고, 향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기 위해서는 삼국유사라는 텍스트와 작가인 일연에 대해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들이 해왔던 문헌적 연구보단 현장 중심의 필드 형태로 연구를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삼국유사의 무대가 되었던 절, 산, 동네를 찾아 현장답사를 통해 필드 워크 작업을 진행해 나갔죠. 이야기의 현장에서 지역 설화를 채집하면서 삼국유사와 비교해보고 내면의 의미를 찾아 박사논문을 완성했습니다.”

필드 워크 작업을 하면서 지역을 둘러보고, 그 지방에서 전승되는 설화가 삼국유사 이야기와 딱 맞아 떨어질 때 그가 받은 희열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책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상상했던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발견하는 기쁨, 저자였던 일연스님 역시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그를 끊임없이 삼국유사 이야기가 녹아 있는 무대를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올해로 26년째 삼국유사를 쫓아 공부하고 있지만 사실 아직도 삼국유사가 내 삶에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누군가 한국인 너희는 누구냐고 물을 때 우리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삼국유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깨닫고,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책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는 13세기에 쓰여진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21세기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보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고 교수는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 문화 연구는 많은 데 비해 정작 텍스트로 연구한 경우는 드물다”며 삼국유사에 천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삼국유사는 ‘길 위의 책’”이라며 일연의 현장 감각을 높이 평가했다. 김부식(1075∼1151)이 삼국사기에서 연대별 사건 서술에 주력한 반면 일연은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백제 무왕이 창건한 미륵사에 대한 기록을 보더라도 삼국사기는 ‘무왕 35년에 완성되었다’고만 기록한 반면 삼국유사는 ‘미륵상 셋과 회전(會殿), 탑, 낭무(廊무·정전 아래에 동서로 붙여지은 건물)를 각기 세 군데 세운 다음 미륵사라는 편액을 달았다’고 절의 구조를 상세히 밝히고 있다.

“일연은 이런 현장감각으로 지배층뿐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담아냈습니다. 봉건시대의 역사가가 민중의 생활사를 담은 역사서를 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죠.” 그도 일연처럼 책을 쓰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일연에 관해 남아 있는 문자 기록은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 남아 있는 비문(碑文)이 유일하다. 생몰연대와 주요 활동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일연이란 인물을 입체적, 복합적으로 알기 위한 자료로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고 교수는 “일연의 고향인 경북 경산시 등 그의 행적을 따라가며 지리적 요소를 알아본 뒤 구비 전승되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역사에 살을 붙여나갔다”고 설명했다.

일연은 정치적 감각도 돋보이는 인물이었다. 고 교수는 “일연이 살았던 13세기는 몽골의 침략 등으로 백성들이 피폐한 삶을 살았다”며 “그는 공포의 시대를 사는 동시대인에게 주는 ‘위안의 읽을거리’로 책을 썼다”고 평가했다. 일연은 삼국유사 곳곳에서 단군신화를 비롯한 이상적 정치의 모습을 그렸다. 고 교수는 일연이 ‘권력으로서의 정치’가 아닌, ‘권력에 맞선 창조적 삶의 지속으로서의 정치’를 그렸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균형 감각. 그는 “일연은 불교국가였던 고려에서 불교와 민간신앙이 극심히 교차한 신라 사회를 바라보면서 경우에 따라 불교를 비판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스토리텔링 기법은 빈약한 역사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사실을 왜곡시킬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국문학자입니다. 문화 콘텐츠 확대라는 측면에서 보면 주어진 자료에만 얽매이면 고전의 재탄생이 어렵습니다. 역사의 왜곡은 곤란하지만 상상력의 발휘는 꼭 필요합니다.”

그는 앞으로 10년, 적어도 15권의 책으로 삼국유사 스토리텔링을 완성하고 싶다고 말한다. 삼국유사에 담긴 콘텐츠가 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콘텐츠로 재생산되어 폭 넓게 확산되길 바란다는 고운기 교수, 이것이 바로 그가 평생 삼국유사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내가 저자라면

우리가 알아야 할 삼국유사를 두 번째 읽으며 이 책의 대단함을 느낀다. 몸을 떨리게 하는 두 사람의 열정과 혼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다. 아니 사진작가 양진님을 포함하면 세 사람의 열정과 혼이라 해야 할 것이다.

일연. 그가 평생 이야기를 모으고 조사하고 숨을 불어 넣었다. 그저 전승되어오는 한갓 옛날 이야기로 전락할 수 있었던 것들을 모아서 글을 씀으로써 그 이야기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 넣었다. 삼국 사기와 달리 삼국유사는 작은 현장의 이야기들까지 한 자리에 모아 놓고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마처 버젓이 쓰여 있다. 이것은 정말 삼국유사다. 정말 삼국에 있었던 일이다. 그것을 당시의 이야기들과 일화들로 구성해서 그대로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면 어떤가. 그것들을 읽으며 옛날의 모습을 상상하거나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삼국유사는 그렇게 삼국을 우리 앞에 펼쳐주었다.

고운기. 대학에 삼국유사과가 생긴다면 그가 교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아무도 토를 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는 삼국유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고 이애할 수 없을 정도로 집착(?)한다. 그리고 그의 이런 집착이 이런 책을 탄생하게 만들었다. 일연은 앞서 삼국유사를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여기에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어 옷을 입힌 것이 고운기다. 삼국유사가 집필되었던 때는 고려시대이다. 이 때의 사람과 우리는 엄청난 세월의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여기서 다리가 되어 주는 이가 고운기다. 일연과 우리의 사이에서 다리를 놔 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과 삼국과 일연을 적절히 조화시켜서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고운기는 이 세가지 아니 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는 것들을 적당히 제시하며 맛깔난 비빔밥을 한 그릇 완성했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비빔밥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이 사람보다 더 잘쓸 수 있을까.....

저자는 곳곳에 삼국유사를 인용하면서 일연의 이야기와 당시의 이야기를 잘 버무리고 있다. 일연의 생각의 흐름을 보여주려는 듯 쓴 의도와 상황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삼국유사만 읽었더라면 일반인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법한 이야기들을 해주고 있다. 그런 것으로 하여금 자신이 보았던 일연의 삼국유사를 우리에게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단 한가지의 아쉬움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도 삼국유사의 윤곽을 그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나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읽지 않았다. 이 책에서는 대체적으로 삼국유사의 흐름을 따라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긴 하지만 인용하고 있는 삼국유사가 구체적으로 어디 쯤인지를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내가 과연 삼국유사를 어느 만큰 보고 있는 것인지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알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고운기의 삼국유사를 읽었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린다는 말이다. 이 책 한권으로 삼국유사를 얼만큼 본 것인지 현재로써는 가늠할 수 없다. 조금더 알기 쉽게 삼국유사를 정확하게 짚어 주는 것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삼국유사를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용부분을 정확히 표기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것이 나의 짧은 생각이다.




머리말

ㆍ나는 <삼국유사>를 방금 따낸 과일이나 방금 캐낸 채소에다 비유해 본 적이 있다.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방부제를 친 통조림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요리를 하기에는 방부제 친 통조림보다 싱싱한 과일과 야채가 더 좋은 재료 아닌가? 그러므로 모름지기 <삼국유사>는 시대마다 좋은 요리사를 만나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인지 모른다. -3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차이점. 단순히 저자만 외우게 하는 학교공부가 얼마나 이들의 매력을 감추어 놓았는지 느꼈다.

 

들어가며

ㆍ실정이 그런 만큼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어떤 극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3

탓할 것이 없다. 그 자리가 뒤쳐져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그 곳에서 출발하면 그 뿐이다. 그냥 그 자리에서 출발해서 나아가면 될 뿐이다.

 

<삼국유사>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와 사()에 있다는 점. -3

처음 알게 된 사실. 한문을 잘 모르는 나로써는 아마 전체를 한문으로 적어주었다면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삼국의 역사를 기록. 삼국에 있었던 일. 이정도로 간단하게 볼 수 있다.

 

ㆍ문자에 대한 자신감. 이는 저술을 감발(感發)시키는 촉진제다. -3

 연구원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 단어가 많이 짧다는 것. 쉬운 단어를 골라쓴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단어를 많이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단어도 공부가 필요하다.

 

ㆍ도저히 일어나리라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고정관념이 깨진 새로운 새계를 맛보게 된다. -4

고려 시대 무인정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까지 정치를 하는 것은 글을 읽는 선비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무인들은 나라의 혼란기에는 중요한 위치에 오르나 안정기에는 이름을 감추게 되는 것인데 그들이 전면에 나서서 정치를 하게 되는 일대의 혁명이 되어 버렸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수 밖에 없었으리라.

 

ㆍ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4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중 매력을 꼽으라면 나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꼽고 싶다. 사가의 사관이 기록된 역사는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어 즐겁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 사실로서의 역사를 기록한 자가 있어야 혹은 그 자료를 남겨 주어야 기록도 가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관의 변화는 같은 역사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 준다.

 

ㆍ이렇듯 20세기에 들어서야 <삼국유서>가 전면적인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었으니, 실로 빛을 보기까지 600여 년의 오랜 세월을 견딘 셈이다. -9

 600년 전 일연은 알고 있었을까? 지금을 일연이 볼 수 있다면 보고 있다면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기이(紀異)

이 땅의 첫 나라

ㆍ이야기가 책의 어느 한 구석에 밀려 있다면 첫머리에 실린 것과 의미가 다르다. 물론 단군 신화의 경우, 내용으로 보아 마땅히 처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 기준‘은 누구의 생각인가? 그것이 맨 처음이 되어야 한다고 본 그 관점과 의식은 어떻게 생겨났던가? -11

첫 문장, 제목의 중요성. 기준에 따라서 첫 문장이나 제목은 달라질 수도 있다. 사실을 기록한다고 생각하는 역사서에서도 이는 달라질 수 있다. 처음 연구원 칼럼을 쓸 때, 우왕좌왕 하는 마음에 유끼 연구원들이 처음 올렸던 칼럼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사부님의 댓글 중에는 첫 문장 제목이 마음에 드는지 얼마나 생각했는지 몇 개나 생각했는지에 대한 글이 있었다. 그래, 첫문장을 잘 골라내면 글은 절반이 써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ㆍ그 쓰디쓴 경험이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꾼 것일까? 그렇다면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귀중한 결과물을 얻은 셈이다. -12

우리는 단군을 얻었다.

 

ㆍ큰 나라에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늘 큰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을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잡는다. -12

 기록이 아닌 상징으로 남은 이유.

 

ㆍ상징의 체계로 들여다 볼 때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즐거운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오롯이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 -14

삼국사기에 비해 삼국유사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일연은 역사서라고 불릴 만한 책에 적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런 글들을 상징, 은유로 해석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렇게 해석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에게 과학적인가 과학적이지 않은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ㆍ곰은 뜻한 바 목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단군을 낳게 되는 과정까지를 유심히 읽다보면, 재미있게도 곰이 세운 치밀한 계획에 환웅이 한 발 한 발 말려들더니, 드디어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곰은 여자가 되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최후의 주인공 단군의 출생까지 커다란 각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움직여나간 주체는 바로 어머니 곰이다. 단군이 그렇듯 현명한 곰 부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이 땅의 첫 왕이 되었다. -18

신화의 어머니상과 많이 닮아있다. 내가 처음 배웠을 때 단군신화는 그저 허황된 이야기인듯 보였다. 그 후 어딘가에서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의 다툼간에 곰 부족이 승리해서 하늘님을 모시는 부족과 결탁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이 새로운 해석은 재미있다.

 

ㆍ‘세상’이 아니라 ‘나라’다. 기독교의 <성서>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사람을 비롯한 세상의 온갖 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다르다. -21

 

ㆍ대개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거기에 책 전체의 집필 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단군 신화는 그러한 상징이다. -21

 첫 부분을 쓸 때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

 

ㆍ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23

아무리 좋은 것이라해도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틀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우리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특징들을 무시하고 단순한 단어 바꾸기만 할 때 우리는 우리만의 색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연은 그것을 간파하고 우리의 언어로 그것을 바꾼 것이다. 그대로 토해내는 것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소화시킬 수 없다면 토악질만 할 수 있을 것이다.

 

ㆍ그런데 그 전체가 무너졌다. 아니,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24

중국이 원에게 복속되는 역사가 우리에게 시사한 바. 중국에 의미를 크게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사건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컸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면 큰일 날것처럼 했으나 살아갈 수 있다.

 

ㆍ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닌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은 아니었다. -25

 시대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당연히 그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겠지.

 

고구려와 북방계

ㆍ고대 왕권 국가란 곧 율령의 반포가 분명한 기준이 된다. -36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역사를 배운다. 단군부터 시작한 역사배우기는 삼국시대부터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왕들의 이름 외우기가 시작된다. 특히 불교공인과 율령반포는 중앙집권국가로 발돋움하는 증거 자료로서 왕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들은 왜 이것들이 중요한지는 모르는 듯 하다. 그저 각 나라의 왕의 이름을 열심히 외운다.

 

<삼국사기>가 금기시하는 것들이 이미 무너졌을 때, 그 존재를 회복한 것은 단군만이 아니다. 이렇듯 주몽에게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43

 신화의 인정이 단군과 주몽에게 새 숨을 불어 넣다.

 

ㆍ그러나 이런 난생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라라. -43

상징. 자신이 가진 껍질을 깨고 나온 자.

 

ㆍ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한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44

그래서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저자도 캠벨의 책을 읽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부분이 닮아 있다.

 

ㆍ그러나 나라의 구성원이 전부 북방계라고 보는 것은 무리다. 어떤 형태로든 거기에 원주민이 있었고, 여러 역사서에 그 이름이 나타나듯이, 그들의 나라 곧 변한 등은 사실 원주민들이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52

 그 지역의 토작 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주요 집권층이 북방계라고 하더라도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아닐 수 있고 이는 우리의 대부분을 구성할 수도 있다는 것

 

신라와 남방계

ㆍ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56

새로움의 시작. 다른 나라들과 다름을 밝히고 있는 부분.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라를 새운 것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ㆍ여섯 부족의 합의 아래 왕을 세우려는 논의가 먼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합의에 따라 왕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혁거세는 그들 앞에 알을 깨고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58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을 가지면 그 뜻이 합당하면 그 뜻에 맞는 길이 보인다.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50년에 걸친 끈질긴 싸움의 결말은 그렇게 찬란했다. -70

상당한 기간

 

ㆍ그의 관한 이야기의 이면에서 우리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신라 왕실의 고민과, 한 인간이 가진 본연의 욕망과 그림자를 읽게 된다. 온갖 신격화로 치장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거둬내면 더욱 그렇다. -72

탈해는 파란만장한 삶을 겪고 왕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서 신화를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면 현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나 일연이나, 조금이라도 시기를 적절히 맞추어 나가려는 노력들은 여기저기 부딪히고만 있다. -75

 

ㆍ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78

신화 - 만족 사이에 전승되는 신적 존재와 그 활동에 관한 이야기

설화 - 한 민 족 사이에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의 총칭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해 볼 만한 일이 없었는데 기회가 와서 찾아보았다.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군.

 

ㆍ문물의 발달이 신화시대를 거둬내고, 실질적인 힘으로 정복과 지배를 영위해 나가는 시기가 이 한반도에도 도래한 셈이다. -78

 

ㆍ이미 옛날 이야기다. 거기 무슨 시간의 경과가 그리 중요할까? -79

 

ㆍ그런 어려움을 물리치는 데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그나마 그가 타고난 재주에다 출중한 지략을 갖추었기에 가능했다. -83

 

ㆍ기존의 세력에 둘러싸여 늘 불안해 했던 것 같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권력의 자리란 차지하기도 이어 나가기도 어랴운 것인가? 탈해의 고민이 깊었음은 분명하다. -86

인간 석탈해를 느낄 수 있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왕이 된 탈해가 김알지의 등장에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자신은 인간의 몸으로 이 자리에 와 있지만 신격화 된 존재가 등장함에 따라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듯 한 느낌을 받은 것일까? 결국 왕의 자리란 신이 내어주는 것인가? 신라의 왕조 박, , 김 을 알게 되었다.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ㆍ그건 쇼니까 가능한 일이다. 쇼가 아니라면 그 링에 오른 누군가는 시체가 되어 내려올 것이다. 우리가 무슨 로마시대를 사는 사람도 아닌데 진짜 죽이고 살리는 경기이기를 바라는 이가 어디있겠는가? 피는 조금씩 흘리겠지만 말이다. -89

옛날 로마 시대에서는 검투사들을 키워 즐기는 경기가 있었다. 하긴 중세 유럽에서는 사형당하는 모습을 모여서 구경하기도 했었다. 사람 안에 파괴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얼마 전 한 아이가 레바논 다이빙 봤냐며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 엄청 끔찍해 보이는 동영상이었는데 이아들은 그것을 보면서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자연 상태로의 인간은 그런건가? 우리에게도 야수의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인가?

 

ㆍ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란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살아 있는 역사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92

일본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말을 따라 “일본 짜증나요”라고 말할 때가 있다. 때론 이들의 모습이 씁쓸할 때도 있다. 과거의 사실로 말미암아 별다른 이유없이 일본을 미워하는 모습은 때로 우리만이 그 과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열등감을 가진 모습을 보인다. 과거 각 나라와의 전쟁의 역사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각 나라가 서로에게 끼친 영향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다. 혼자 독불장군이 되어 이 시간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당연한 세계사의 흐름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ㆍ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뜻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프로레슬리을 진짜 격투기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은 재미요 남은 것은 공허감이지 않았던가? 역사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92

역사를 너무 어렵게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라는 부분에서 충분히 매력이 있는 바이고 역사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떠나는 수많은 관광이 더욱 재미가 있다.

 

ㆍ그런데 오랫동안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96

 메모, 토피카. 자료 정리의 중요성. 남다른 메모가 남다른 책을 만들어 낼 수 있다.

 

ㆍ해와 달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우주의 그 어느 별보다 중요한 것임을 말할 나위 없지만 그것은 고대인에게 더욱 절실했다. 무당들이 모시는 가장 높은 신은 해와 달고 ㅂ려 곧 일월성신(日月星辰)이다. 고대 사람의 모습을 지금까지 충실히 지키고 있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고대인이 지녔을 사유방식의 틀을 읽는다. -97

 어제 본 동그란 달이 떠올라서. 고개를 올라가니 푸른 빛 어두운 하늘에 달이 동그란 모습으로 있었지. 그 순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ㆍ고대 사회에 이룩된 일분의 문물 대부분이 백제를 통해서 들어와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사회의 밑바닥을 흐르는 교류는 역시 좀더 가까운 경상도 쪽 곧 신라와 더 빈번했으리라 보인다. 그것이 탈이었을까. 너무 가깝고 너무 쉽게 갈 수 있으니, 좋은 사이로 지내기도 하려니와 싸움도 잦았다. -106

 가까운 사이. 기대하는 바가 많기에 그만큼 가깝기에 더 어려운 사이.

 

ㆍ가까운 상대라고 함부로 대하다 보면 틀어지기 마련이다. -109

가족들이 그렇고 부모가 그렇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기에 우리는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이해를 바라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가까운 상대가 나를 잘 이해해 주는 것도 맞지만 커다란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만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ㆍ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특징적인 사건 하나로 한 왕대의성격을 나타내 버리는 것이다. 일연의 특이한 기술 방법이다. -118

삼국유사를 쓴 방법. 삼국 사기가 이미 이전의 일을 체계적으로 사실적으로 기술했기에 우리는 삼국유사를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간과하고 싶지는 않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

ㆍ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 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120

 

ㆍ복사꽃처럼 어여쁜 이 여자는 유부녀가 지켜야 할 도리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왕이라 한들 그 앞에서 떳떳이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고 있다. 죽음이라도 흔연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인데, 그토록 당당한 모습을 지닌 여자도 아름답지만, 한마디 농담으로 계면쩍은 분위기를 수습한 왕이 그대로 여자를 보내 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125

당대의 왕이 도리를 지키고자 한 여자를 그대로 보내주는 것도 참 인상적이다. 힘으로라도 권력으로라도 차지할 수 있는데 왕은 여자를 그대로 보내준다. 도리를 아는 여자와 그 도리를 지켜줄 수 있는 왕이다.

 

ㆍ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닌 내적인 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造花).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만 있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쩌면 귀신의 세계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 -134

 

ㆍ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137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ㆍ그러나 자리(自利)만 행하고 이타(利他)의 공이 없으면, 지금에는 높은 이름을 떨치지 못할 것이오, 나중에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오. -139

 이타. 제일의 강대국이라 불리는 미국. 예전 진로상담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미국의 아이들 중에는 장래 희망에 세계 평화라 적는 아이들이 있다고. 우리가 그들을 따라해야 할 필요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그런 꿈을 가지고 있는 것은 멋지지 않냐는.

 

ㆍ‘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임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본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140

희망적이로군. 먼저 된 자가 초심을 잃고 방자해짐을 경계하려는 말이 아니었을까? 먼저 되어버리면 아직 되지 않은 자를 낮추어 보거나 자신이 이룬 일에 대한 자만심이 생길 수 있으니까.

 

ㆍ그러나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 데서 더욱 커진다. 불교가 먼 나라에서 전래된 이방의 종교가 아니라, 이미 전세에 인연을 마련한 우리 종교라고 생각한 신라인들의 본지수적, 불국토 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밑바탕이었다. -144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합되면서 거부감이 없는 수용이 가능해졌다. 자신의 것을 모두 다 버리고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 무엇을 수용하던지 자신의 밑바탕은 남아 있다. 긍정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모두 다 같은 긍정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ㆍ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아상(我想)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 -147

봉사가 따로 없군.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

 

ㆍ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149

 

ㆍ“청년이 스스로 서울 사람이라 했다면서? 성인이 빈말을 하겠느냐, 성안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한마디는 심상한 듯 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149

표지는 도처에 있다. 이를 발견할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문제만 남아 있다. 무심한 듯한 한 마디는 표지의 발견을 알려준다.

 

ㆍ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늦었기에 오히려 선진적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점만 적어 두기로 하자. 마치 오늘날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공업화를 이루려는 개발도상국가들이 중간 과정을 생략한 채 첨단의 그것으로 건너뛰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까? 그러나 신라의 경우, 비록 수용이 늦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철저히 자기화 되어 정착되었으므로, 생경한 외래 사조에 휘둘리지 않았다. -150

늦은만큼 더해지는 요인이 있기 마련이다. 초조해 할 것이 하나 없다. 신라의 불교를 수용한 모습에서 우리는 주체적인 수용이 주는 장점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ㆍ그래서 세속오계를 주노라. 첫째, 임금을 섬기되 충성으로할 것이요, 둘째, 부모를 섬기되 효성스럽게 할 것이요, 셋째, 친구와 사귀되 믿음으로할 것이요, 넷째, 싸움에 나가서는 물러서는 일이 없을 것이요, 다섯째, 산 것을 죽이되 가려 해야 할 것이다. 자네들은 이를 행하고 소홀히 하지 말라. -152

 세속오계. 지금 보아도 맞는 말이다.

 

ㆍ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려야 했던 신라다.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153

 불리한 조건. 스티븐 호킹 박사가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은 불리하다 생각하지 않잖아. 신라도 그랬을지도 몰라.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ㆍ그러나 사실이 무슨 상관이랴. 사실을 더 그럴듯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배경에 깔리면 그 사실은 더 힘을 얻는 법이다. -167

 

ㆍ힘으로 안 되면 지략으로, 지략으로 모자라면 신술(神術)을 써서라고 주어진 일을 해내고 마는 그였다. -173

 김유신

 

ㆍ동생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 리 없다. 일은 제가 벌여 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 -177

김유신의 위인전에는 동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지혜로 왕비가 되었겠지만 그 이후 동생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져 온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ㆍ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벌인 통일 전쟁이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만을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한반도 땅 전체를 집어삼키자는 것이 당나라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문무왕 법민은,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낸 사람이다. -179

알지도 못하고 신라가 통일을 해서 영토가 줄었들었다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나? 나라를 통일해 하나의 나라를 세운 공은 분명 있다.

 

ㆍ왕위에 있었던 20년 동안 문무왕은 당나라와의 투쟁을 계속한다.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꾀어 신라는 괴롭히게 하고, 문무왕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당나라 군사를 쳐부순다. 당나라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반란군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싸움을 일으키되, 실제로 주적(主敵)은 당나라 군사로 삼았던 것이다. 문무왕의 이런 행적은 크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184

 

ㆍ비유컨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도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 훌륭한 임금이 이 소리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신 왕은 바다 가운데 큰 용이 되어 있고, 유신은 다시 천신(天神)이 되어서, 두 분 성인이 한 마음으로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내어 놓고, 날더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189

만파식적

 

ㆍ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배인지 모른다. -189

 사람을 마음을 모은다. 여러 사람이 마음이 모인다. 이것이 가지는 힘이 있다.

 

ㆍ벼슬이 높아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면 한 글자씩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이 있다. 예컨대 김유신은 각간이었지만, 더 공을 세우자 대각간이라 했고, 다시 더 공을 세우자 태대각간이라 한 것이 그렇다. 만파식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더할 데 없는 보배이나, 거기에 공을 세우니 글자를 하나씩 더 붙여 주었던 것이다. -195

왜 드래곤 볼이 생각나는 걸까?

 

권력의 끝

ㆍ그것이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이겠는가? 이미 사마천의 시대부터 변함없는, 비정의 극치를 달리는 원칙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거기서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최소한 그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다닌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사냥개 신세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196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다닌 사람이라면.

 

ㆍ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기 어찌 이루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으리 -212

 모죽지랑가. 국어시간에 참 많이 배웠는데 이제야 이것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ㆍ왕이 거느린 여자가 왕비 한 사람만일리 없지만, 고려시대 들어 편찬된 두 책의 저자가 모두 정실로서 왕비의 격을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후궁이 여럿이었을 텐데도 기록한 것은 왕비 한 사람이다. -214

 역시 역사는 과거와의 대화. 사관이 들어갈 여지는 언제나 있는 것이지

 

ㆍ문무왕이 죽는 순간부터 노골화된 이 권력의 투쟁은 반역과 반역의 악순환이었다. 그것은 왕실과 가까운 최고 권력층에서 터졌다. 신문왕이 즉위하여 아직 부왕의 장례도 치르지 못했는데 반역 사건이 일어났다. 그 주모자는 다름 아닌 바로 왕의 장인이지 않았던가? -219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자리는 다툼이 끊이지 않게 마련인가. 특히나 절대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자리라서 더 그런가.

 

ㆍ세월과 권력은 무상한 것이다. -222

 

 

ㆍ바닷가 깎아지른 벼랑에 어여쁜 철쭉이 피었는데, 부인은 자신의 미모를 닮은 이 꽃을 갖기를 원했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시종들이 모두 주저하고 있을 때, 노인은 과감히 벼랑을 오른다. 경험 많은 슬기로운 노인에게 꽃을 따는 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226

경험과 연륜에서 오는 슬기. 힘으로 하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힘 안들이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을 지혜라 한다.

 

ㆍ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 꼬칭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은 노래이다. 손에 잡은 암소도 놓고 그렇게 정중히 꽃을 바치는 노인의 태도야말로 헌신하는 자의 상징이다. 꽃을 탐내는 여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모름지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 바꾸는 사랑이라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226

 

ㆍ그렇다고 감춰 놓고있겠는가? 훔쳐간들 닳지 않는 것이라면 적선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228

 

ㆍ사람들의 일치된 생각과 거기서 나오는 힘이 저 신물의 가공할 위세를 쳐부술 수 있다는 것이다. -228

 한데 모인 사람들의 힘. 민중의 힘.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된 많은 운동들이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온 역사를 많이 알고 있다.

 

ㆍ실제적으로 노래는 여러 사람의 행동을 일사분란하게 통일시키는 데도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다음 시대, 본격적으로 인간의 삶이 노동을 통한 생산물로 유지하는 시대에 노래는 민요가 되었고, 민요가 노동 현장에서 불렸을 때 노래의 제의적 성격이 감소되는 대신 기능적 성격은 충분히 살아 있게 된다. <해가>는 신가에서 민요로 넘어오는 중간 고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 -229

노래는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한 데 묶는다.

 

ㆍ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233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이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만이 모르고 있을 지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고 그리 살고 있다고 생각하듯이 나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리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었다. 나의 삶은 다른 삶을 사는 이가 보기에는 부러움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첫 성전환증 환자

나라가 비록 위태로워진다 한들, 아들을 얻어 뒤를 잇는다면 충분하오.” -237

 왕이 하기에는 조금 위험한 말이 아닐지….

 

ㆍ이미 인연 있는 승려로 정해졌으니 향가라도 좋다. -238

 형식에 가려서 볼 것을 보지 못하는 오류는 범하지 말자. 결과는 이렇게 향가를 꽃피우게 됨을.

 

ㆍ다만 삶의 고통은 죽음이라는 운명적 환경이 만들어 준 것, 도 닦는 사람이라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242

 그도 느낀다.

 

ㆍ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 형 아우가 정해지지만, 죽는데는 순서가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한들, 이다지 이르게 찾아온 죽음이 비록 생사를 넘어서려는 구도자에게라 할지라도 심금을 울릴 일 아니겠는가.

사실 이 시는 어덟째 줄까지 평범한 인간이 초로할 슬픔을 절제된 감정 속에서 마음껏 뱉어 놓고 있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라면 승려의 신분으로 주책 맞을 일, 아홉 번 째 줄에서 감탄사를 길게 뺀 다음 흩어진 감정을 추스린다. 이는 향가라는 시의 형식이 가진 특장(特長)이기도 하다.

다시 만날 것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구도자이면서 시인으로서 월명사가 택할 최선의 길이다. 그 지점이 곧 한 편의 시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242

제망매가. 이 향가를 학교에서 배웠을 때는 그저 외우는 것이 방법이었다. 이 시의 특징적인 부분과 느낌, 배경 등등을 무조건 외워서 답을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이 시를 처음 대한곳은 교과서 아니면 문제집이었을 테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시험지였을 것이다. 이 시를 다시 알게 되다.

 

ㆍ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 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믿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안민가. 군다이, 신다이, 민다이

 

ㆍ그들은 남성이면서 여성처럼 놀고, 성인이 되어서는 화장이나 옷차림을 아예 여성의 모습으로 바꾸어 버린다. 물론 여성은 반대다. 오늘날 이런 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법적으로 성전환을 시켜주자는 주장까지 대두되어 있다. 양성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불법적으로 수술까지 감행하는 숫자가 한국에서도 암 수술 환자 다음으로 많다. -250

동성을 보고 사랑을 느끼는 것은 정신병에 속하지 않는다는데 이런 경우는 정신병이란다. 이런 사례를 접하는 순간이 있는데 이정도로 많은 줄은 몰랐다.자신의 모습의 불만을 가진 자들이 상당히 많구나.

 

왕이 되는 자

ㆍ같은 꿈을 놓고도 정반대의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뜻인지는 모른다. 어차피 왕위를 다투는 마당에 결과는 왕이 되거나 죽거나 어느 하나로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는 길을 찾는 수 밖에. 여삼의 해몽이란 결국 살길을 찾으라는 말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255

유세가. 같은 꿈을 놓고 해몽을 했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꿈은 꾸는 것보다 해몽이 더 중요한 것이로군. 이미 그 길에 들어선 것이라면 살 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

꼼꼼하면서도 과감했던 왕

 

ㆍ때로 까닭을 설명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것이 사람이요 사람이 만들어가는 역사다. -266

 어떻게 모든 일에 이유를 들어 설명할 수 있겠어. 그냥 그런 것들도 있는 거지

 

ㆍ서양에서도 전해오는 동화 한 편과 너무도 닮았다. -266

 신화를 읽을 때 생각했던 것. 나는 그 내용을 가지고 우리 식으로 각색했다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다른 나라의 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가 실재로 존재한다. 당나귀귀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일까.

 

ㆍ뱀을 이불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 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267

 

나라가 망하는 징조

ㆍ한 집안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듯이, 나라도 흥하고 망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을지언정,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드는 불꽃처럼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과학적 증명이나 운수소관을 따지기가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269

 

ㆍ깊이가 세 자쯤 되는 곳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백제는 둥근 달이요, 신라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글귀가 새겨 있었다. 무당에게 물었다.

“둥근 달은 가득 찬 것입니다. 찼으니 이지러지지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것은 차지 않은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 오르겠지요.

왕은 화가 나 그를 죽였다. 어떤 이가 말했다.

“둥근 달은 번성한 것이요 새로 돋는 달은 미미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번성하고 신라는 매우 미미하다는 뜻이겠지요.

무릇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죽음을 불러들인 이가 여기 무당하나뿐일까? 딴에는 정직하고자 애쓴 보람 없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고 말았지만, 어련히 그렇게 진행될 일에 초를 단 것도 부질 없어 보인다.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쇠귀에 경읽기도 아니다. -270

말은 이렇듯 목숨으로 갚을 수도 있다. 이미 굴러가는 상황 앞에서 하는 옳은 소리는 때로 군주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다. 여기서 유세의 어려움이 나오는 것인가?

 

ㆍ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277

 지금이나 그때나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ㆍ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 -284

그냥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숨겨진 것을 발견하면 역사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깊이 읽기 또한 그럴 것이다.

 

ㆍ기러나 기미(機微)를 보아 사리(事理)를 판단하는 법이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사람이 세상을 사는 한 언제든 잘 되고 잘못되는 징조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거기서 기미를 읽어내라는 간절한 충정으로 보인다. -286

 

 

지는 해 뜨는 해

ㆍ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 -287

비유가 너무 적절하다. 한 마디 말로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ㆍ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는 아니요, 다만 그 말대로 이뤄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289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군. 항상 나쁜 일뒤에는 좋은 일이 있었으니.

 

<삼국사기>는 정사의 입장을 견지하다보니 그나마 끝까지 공식 명칭을 쓰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일연은 여기서 자유로운 편이라 감부대왕이라는 멋쩍은 표현도 마다하지 않은 것일까? -297

 그런데 만약 <삼국사기>가 없었더라면 일연의 <삼국유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래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까?

 

ㆍ그에게는 그만의 고민이 있었다. -304

그가 누구든

 

ㆍ그런 면에서 일연은 오히려 올바른 김부식 팬이었다. 좋은 부분을 인용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엿보이고, 좋지 않은 부분을 놓고 비판한다거나 굳이 자기 관점에서 해석하지도 않았다. 김부식의 이 사론에서는 일연은 필요한 고세다 적절히 옮겨다 쓰고 있다. -304

진정한 팬. 사랑도 이러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ㆍ사실 고구려의 전성기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중국에 떳떳한 적이 드물었으며, 일본의 초기 왕실이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상정했을 때 그 아쉬움은 커진다. -307

이런 아쉬움들은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의 통일을 작게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나누어져 있던 민족을 하나로 통일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ㆍ우리네 수학 여행이 늘 그렇듯이, 대충대충 견문과 불편한 잠자리가 원래의 목적을 대신하는 것이어서, 나에게 부여에 대한 인상은 결코 1300년 전 찬란한 백제의 문화로 다가오지 못했다. 무녕왕릉 때문에 온통 백제 역사를 다시 찾은 듯 들떠 있던 때였는데도 말이다. -309

수학여행.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언젠가 중2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서울로 간다기에 (지방에서는 서울로 많이 간다) 수학여행 코스에 따른 사회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박물관에 가면 국사책에 나온 빗살무늬 토기의 모델이 있다는 것과 들리는 사찰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대강 해서 보냈다. 다녀온 애들은 애버랜드에서 만난 은지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ㆍ그러므로 웅진, 부여 천도 뒤의 백제 역사는, 특히 그것이 왕실과 관련된 것일수록, 늘 일본과의 교섭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 -311

백제를 보는 시각의 제시

 

ㆍ오히려 민간신앙에 가까운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복수로 후보자를 올리고 그 가운데 적임자를 골라낸다는, 민주적 절차의 한 단면을 읽는다. -313

사상적 정의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사 곳곳이 우리가 지식으로 말하는 문명들이 존재하고 있다.

 

ㆍ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가지고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 문제로 비화해서는 곤란하다. 일본 특히 왕실의 뿌리가 한반도라고 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거나,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하는 따위의 생각은 참으로 난센스다. 한반도니 일본열도니 하는 말은 모두 후세가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그들은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당대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그 무렵 사람이 지금 살아온다면 그는 한반도라는 말도 일본열도라는 말도 모를 것이다. -315

우리의 관념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것은 실수다.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 옛날의 이야기나 사실들은 그 때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옳다. 백제 사람들이 보기에 일본이나 신라는 똑같이 다른 나라였을 것이다.

 

ㆍ그 연구의 끝에 ‘한일동족’이라는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는 데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321

왕실이 그러하다 해서 민족이 그런 것은 아니다.

 

ㆍ흔적 지우기로 친다면야 이보다 더 한 일도 있었고, 지워질 것도 아닌 바에 저들이 줄기차게 되풀이하는 비슷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일본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기 보다 독립의 비원(悲願)으로 본다. -326

이미 다른 나라가 되어버린 나라들. 속해있음을,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들이 성공리에 자료를 은폐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료를 지우면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임을. 그래서 그들은 그 자료를 은폐한 것이다.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ㆍ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27

맹랑하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아이디어가 실용화나 생활화가 되지는 않더라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ㆍ그러나 서동은 허무맹랑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실현 가능성 없다는 이 일을 돌파할 꾀가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327

허무맹랑과 맹랑의 차이

 

ㆍ서동이 쓴 방법은 노래를 통한 여론의 조성이었다. 노래에는 그 같은 힘이 있다. 민요에서는 그것을 참요(讖謠) 곧 예언의 노래 일종으로 보는데,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있던 옛 시절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사실이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일의 흐름을 바꿔놓기 십상이었다. -327

 

ㆍ왕족이긴 하나 장래가 보장된 것도 아닌 남자에게 몸을 허락한 여자는 떳떳이 자신을 드러내 놓고 실자는 못했으리라. 더욱이 과부의 신분으로 말이다. -329

 

ㆍ박대받았던 자식이 오히려 어버이를 더 챙긴다는 말은 요즈음도 하지 않는가? -336

어딘가의 책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난다. 정성스레 키운 자식은 제 힘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자식이 남아서 아직 다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 부모를 끔찍이 위한다는 것.

 

견훤, 비운의 영웅

 

ㆍ불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똑 같은 되풀이를 견훤과 그의 아들 신검이 하고있다. 그렇다면 앙들이 아버지에게 끝없이 반항하다 망한 견훤집안 3대다. 신민지 치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이념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다 망해버리는 집안을 그린 염상섭의 소설 <삼대>는 이미 천여 년 전을 무대로 삼아도 통할 이야기다. -351

 

ㆍ그러나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견훤은 제 힘만 믿고 오만스럽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은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워담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능했다. -353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얻는자가 득세한다. 왕건이 고려로 통일한 원동력

 

ㆍ됨됨이가 견훤처럼 사나운 사람보다 온순하고 정이 많기로, 왕건이 그들의 뒤를 잘 봐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354

 햇빛이 바람을 이기는 것

 

ㆍ이 와중에도 살길을 찾는 이는 용케도 그 길을 간다. -361

 

ㆍ왕건은 자기에게 오는 이를 누구도 말리지 않은 사람이다. 형님으로 섬기고 누이로 높이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363

 왕건이 가지고 있던 힘. 쉽지 않은 능력이다.

 

신비의 왕조, 가야

 

ㆍ백성ㄹ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무리한 토목 사업을 애포에 벌이지 않았다. 새로 궁궐을 지으면서도 농사가 한가한 틈을 기다렸다. -373

왕의 밀원 여행은 4일간?

 

ㆍ사료가 부족한 쪽만 억울할 일이다. 거기서 우리는 김부식이 원망스러운 것이고, 일연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384

 현장에서 역사를 배우는 아이들은 하나도 감사하지 않지만. 사료가 부족한 쪽은 항상 가려지게 된다.

 

흥법(興法)

불교로 보는 역사

ㆍ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것을 다루는 일연의 태도는 뭔가 자신감에 차있다. 보고 들은 것과 몸소 체험한 것이 일체를 이루는 부분이기에 그랬으리라. -385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당당할 수 있다.

 

ㆍ그는 <삼국사기>가 전해 주는 역사적 사실 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이상의 것이란 물론 상상이다. 그러기에 시의 형식을 택했다. 그러나 상상은 시간이라든가 구조라든가 어떤 기제(機制)에 실릴 경우 사실 이상의 사실이 된다. 한 덩어리의 이야기는 사실 이상의 사실이 넘어간 그 어디쯤에서 완성된다. 이런 생각을 <삼국유사> 전체로 확대시켜도 좋다. -392

상상. 조금 어렵다.

 

ㆍ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394

 

ㆍ봄빛이 아직 두루 돌지 못했을 때 매화는 핀다. 이런 자연의 섭리는 곧 인간세계의 그것으로 원용되고 있다. -399

 매화 관광철이 되면 아직은 도톰한 겨울옷을 입은 사람들이 봄의 기운을 맞으려 온다. 겨울 안에서 봄을 바라보며 희망에 젖는다.

 

 

ㆍ전래된 순서야 이미 정해진 처여서 마음대로 바꿀 수 없지만, 그 다음의 일은 중요성에 따라 조정할 수 있으므로, 거기에 편찬자로서 일연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401

사실은 우리가 바꿀 수 없지만 그에 따른 구성은 우리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다. 책은 순서가 중요하지만 사실에 의한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쓰고자 하는지에 따라 구성이 중요할 것이다.

 

ㆍ오늘 우리는 사실을 따지는 것이 중요할까. 사실이 무엇이건 거기 실린 순교한 자의 마음을 고이 받아들이기는 것이 중요할까. -407

 나는 마음에 손

 

ㆍ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411

 잭 스패로우가 말했다. 나는 영원히 살아 있을 거야. 젊음의 샘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으로.

ㆍ고구려의 후반기에 도교가 번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적는 일연의 태도는 현저히 불교와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입장이다. 나라가 망한 이유가 불교를 멀리하고 도교를 가까이 한 것 때문이라는 결론에서 그 의도는 명백해진다. -414

일본 대지진에 관련한 기독교도들의 생각이 오버랩 된다. 자신의 종교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들다. 여기서 일연의 한계가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종교에 국한된다. 일연이 가진 포용력의 크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탑상(塔像)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ㆍ경주를 여행하고도 황룡사가 어디 있는지 알거나 그 곳에 가보았다는 사람은 드물다. 그도 그럴 것이 황룡사는 눈에 보이는 실체로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월성과 안압지가 모여 있는 곳에서 분황사사이의 허허벌판, 그 곳이 황룡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황룡사 터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지나치고 만다. -416

 정말 허허벌판이더군. 뭔가? 라는 생각과 함께 그냥 지나칠만해. 하지만 눈으로 보이지 않기에 더 많은 것을 주는 것들도 많이 있지.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ㆍ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났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을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44

스쳐가는 사람을 돌아보라. 네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인가. 너는 그 사람을 알고 있느냐? 나의 잣대로만 판단한 것은 아니냐.

 

ㆍ결국 신효는 출가를 하고 자신의 집은 내놓아 절을 만들었는데, 아마도 이 때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이었으리라. 그는 본격적인 수행에 들어갔다. -452

 

ㆍ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도 해도 이루여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을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454

나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 안타까웠을 듯한 인생은 내가 나의 의지만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나의 특성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할 수 있는 것과 즐겨하는 것, 잘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ㆍ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化身), 누구도 한 마음올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가 피가 끓는 젊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58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와 안식

 

ㆍ세상에 모정만큼 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희명이라는 여자의 딸아이는 눈이 멀어 앞을 못 보았다. 차라리 자신이 당한 일이라면 참고 말겠지만, 여섯 살 한창 재롱을 부릴 딸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자, 어머니는 천지가 무너지는 슬픔에 한없이 떨어야 했다. -459

 모정. 엄마가 애틋해지는 것.

 

ㆍ불성은 대체로 마음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법이다. 그 불성은 어떤 지식보다 나으며, 때로 기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니, 무엇이 값어치 있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469

 

ㆍ나는 이 대목이 모두 놀라웠다.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짐승이며, 욕심을 내자면 한없을 인간으로도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장면 장면들이다. 꿩이나 그 새끼 몇 마리를 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린 어떤 메커니즘이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그런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471

보이는 자만 그 안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ㆍ그 두려운 눈빛을 보고도 총을 쏜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정작 누가 총을 쏘앗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양쪽 모두 열렬히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신은 무엇을 가르치길래 그토록 매몰찬 짓을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471

세상에서 일어나는 숱한 분쟁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들 중 과연 사명감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자는 몇 명이나 될까?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어버이인데 그 누군가의 자식이자 어버이인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을 보며, 무슨 사명감이 그들을 이토록 내모는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 중 죽음에 담대한 자는 과연 누군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ㆍ간밤 계를 더럽혔으리라 생각하고 비웃어 주려 부득의 처소를 찾아온 박박은 막상 도착해 부득을 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다.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이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된다. -473

결국 종교의 목적은 다들 잘 살자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자는 것이 아닌가? 어떤 말로 치장을 하더라도 어떤 의식을 치루더라도 결국은 나의 옆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자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가?

 

ㆍ‘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는 말은 평범속의 비범이다. -476

저물 무렵에 나타난 아리따운 여인

 

3년쯤 세월이 흘렀다. 3년이라면 수행에 꽤 진전이 있을 기간이다. 군대 3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때서야 총 쏠줄 알 만하니까 제대하더라고 말한다. 우리는 중학교도 3년을, 고등학교도 3년을 다닌다. 3년이라는 시간으 묘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론 중, 고등학교도 안 다니고 군대도 갔다오지 않았을 부득과 박박이 그런 시간의 의미 속에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하나의 매듭이랄까. 3년은 그런 경험을 보편적으로 주지 않는가 싶을 따름이다. -477

3년의 의미

 

이곳은 여자와 함께 있을 곳이 아니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역시 보살행의 하나일 것이오. 더구나 깊은 산골짜기에 날마저 어두웠으니, 어찌 소홀히 대하리요.” 부득과 박박이 갈라지는 극명한 지점이다. 박박은 하나만 생각했다면 부득은 최소한 둘 이상을 생각한 것이다. 수행자의 초심을 흔들지 않으려는 박박이 태도도 뜻이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부득의 태도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박박의 교조적 외통수와 부득의 현실적 융통성이라고나 할까? -479

 부득이 더 좋아 보이는데, 박박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아야지

 

ㆍ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쫗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ㅇ르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 주지 않았더라고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현신인지도 모른다. -481

 

()로 완성되는 <삼국유사>

<삼국유사>야 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는 책이 아닌가. -486

삼국유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나는 얼마나 있었던 걸까? 삼국유사-일연 객관식의 한문제를 맞히기 위해 열심히 외워 다행히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을 뿐. 거기서 ‘시’가 등장한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낙산사의 힘

ㆍ비밀의 열쇠는 다름 아닌 담에 있다고 본다. -488

 . 담의 역할.

 

ㆍ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 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497

 닿을 듯 말 듯. 그래서 더욱 매력적인.

 

ㆍ원효는 그렇게 인간답게 다가오는 매력이 있다. -498

 끄덕끄덕

 

ㆍ아홉 살에 어머니를 떠나 구도의 길을 걸어간 사람. 일연에게는 귀 하나가 없는 사미승의 이야기가 그렇게 가슴 깊이 아로 새겨졌다. 한 귀가 잘린 채 먼 이역에서 고국의 스님을 만나 고향에 돌아가거든 자기 어머니를 찾아달라고 말하는 소년은 정취보살이기에 앞서 일연 자신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를 떠나 머나 먼 강원도 산골에 와 있는 소년 일연의 마음이 그랬을 터이니 말이다. ‘, 어머니 저 먼 나라를 아십니까?’ -504

 

ㆍ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에는, 얼굴색이 곱고 나이도 어렸으며, 입은 옷도 예뻤습니다. 좋은 음식이 있거든 당신과 나누고, 얼마 안 되더라도 따뜻한 옷이면 당신과 함께 입었지요. 이렇게 살아온 지 50, 정들어 가까워 졌으며 사랑하기 그지없어 도타운 인연이라 할만했습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곁방에 장종지 하나 구걸하자 해도 사람들은 받아들여 주지 않고, 집집ㅈ마다 돌며 부끄러움의 무게가 산과 언덕만큼이나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얼어 죽고 굶어 죽으니 살아나갈 겨를도 없는데, 부부간에 사랑이며 즐거운 마음이 들기나 하겠습니까?

고운 얼굴 아름다은 미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芝蘭)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꼴입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 걸림돌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쌓일 뿐, 지날날의 기쁨은 적이 근심과 고통으로 자리를 내주었군요. 당신이나 나나 어찌 이다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뭇 새가 함께 주리기 보다 차라리 외짝 난새가 마주볼 거울을 가지는 게 낫겠지요.

별 볼일 없으면 버리고 됐다 싶으면 들러붙는 것이 사람 마음으로 감당못할 일, 그러나 가고 말고 사람의 뜻대로 안 될 일이요. 헤어짐과 만남 또한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쯤에서 헤어지자 합니다. -507

이리 말을 잘했으면 좋았을 걸

 

ㆍ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508

 

의해(義解)

운문사 이야기

ㆍ“평소 세상의 경전에는 익숙해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불교 공부를 하자 도리어 썩은 풀 같았다. 헛되이 유교를 공부하는 것이 실로 생애의 두려움으로 다가와” 드디어 출가한다. 곧 중국에 와서 승려가 되었다는 말이다. -515

진정한 진리를 보는 순간, 지식의 덧없음을 깨닫다. 진리는 하나이되 여러 모양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성현들은 하나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고 하였다. 사람에게 의미를 주는 형태나 말들은 다양하다. 어느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기에 진리는 다양한 형태로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ㆍ막 나가는 비구 같은 이와 달리 원광은 중국에까지 유학하고 수행에 높은 경지를 이룬 사람이다. 그런 그가 생경한 외국 이론으로 무장하여 어려운 말로 떠들지 않고 이땅의 토착 신앙과 만나고 있다. 일연은 그런 원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광을 신라의 원광으로 고스란히 그려낸 이 대목을 읽는 일이란 참으로 신난다.

일연은, 이미 13세기에, 이 땅에 뿌리내린 불교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인식한 이였다고 보아 무방하리라. -521

진정한 지식과 지혜의 만남. 우리의 것으로 불교를 소화시킨 모습을 보게 된다. 형태만 바뀌고 진리를 같음을 원광은 알았던 것일 테다. 그리고 일연은 그러한 원광의 의식을 꿰뚫어본 것일 테다.

 

ㆍ육재일과 봄과 여름에 죽이지 않는 것, 이는 떄를 가림이다. 기르는 동물 곧 말, , , 개를 죽이지 않는 것과, 자잘한 동물 곧 한 번 저미지도 못할 것을 죽이지 않는 것, 이는 대상을 가림이다. 이 또한 오직 필요한 만큼만 하고 너무 많이 죽이지 말아야 하리니, 이것이 세속에서 좋은 계이다. -523

 원광의 세속오계.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ㆍ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보이더라도 부분만 보인다. 그가 그린 어느 한 부분만 보이고, 그가 한 말의 어느 한 부분만 들린다. 그래서 원효에 대해서는 가지가지 이야기가 난무한다. -530

 

ㆍ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에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면서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달사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 -533

너무 큰 그 인물을 작은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서 파계가 문제시 되는 것은 아닐까?

 

일연이 가장 잘 알았던 사람

ㆍ마구간의 거친 짚단 위에서 태어났다는 아기 예수를 연상해도 좋겠다. 거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고도 이르는 민중의 자리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성인이건 그 민중의 자리로부터 위대한 생애를 펼치지 않았던가? -534

 

ㆍ전설은 대체적으로 주인공과 전승자 사이의 합작으로 만들어 진다. -535

 그것을 잘 옮겨줄 사람도 필요

 

ㆍ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537

죽었다가 다시 태어날 것인가?

 

ㆍ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배우들이 노는 도구란 일반 민중들에게 익숙하고 재미있는 것이었으니, 거기에 빌려 어려운 불교의 교리를 쉽게 풀고, 누구나 가까이 하는 불교를 만들었다. -537

 

ㆍ일연이 발견한 원효는 이런 원효였다. 고고한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오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었을까?

 알아봐주는 사람 역시 필요하다.

 

ㆍ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543

 

ㆍ“지난 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고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의상의 부분에서 원효를 읽다.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함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도를 찾다.

 

ㆍ“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으면, 비록 풀이 가득 덮인 언덕에 금을 그어 ‘이게 성곽이다’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감히 함부로 넘지 못할 것이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지 못하면, 아무리 장성이 있더라도 재해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곧 성 쌓기를 중지시켰다.

성을 웅장히 쌓는 것만이 왕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

 

ㆍ나머지 차술한 것들은 없지만,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564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ㆍ세상 사람들이 이를 보면 반드시 괴이하다 할 게야. 세상 사람들이게 가르쳐 줄 만한 일이 아니지 -568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ㆍ다만 한 가지, 힌두 문화라는 큰 틀에서 그것이 길들여진 것이건 아니건 지금 그들이 사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그래서 거기 부러운 부분이 있었다면 아마도 우리와 정말로 달리 사는 모습에 대한 문화적 충격이었으리라. 우리가 지금 너무 모질게 살고 잇어서 그것은 더욱 선명했겠고. -570

 우리가 가지지 못한 모습을 그들이 가지도 있는 것을 볼 때. 물질이 줄 수 없는 부분들을 더욱 극명하게 깨달을 수 밖에 없었을 거다. 인도를 가보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나라.

 

ㆍ다큐멘터리 사진의 그 투박함으로 가급적 현장을 현장 그대로 잡아낸 한 장 한 장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 -571

자신의 버릇, 단점이라고 보일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ㆍ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571

 

ㆍ뱀이 서린 듯 얼어붙은 얼음길을 오르는 그의 가슴 속에는 불 같은 열정이 가득 차 있다는 뜻일까? 그럼에도 파밀고원은 멀기만 하고 생사를 오가는 여행길은 불안하기 그지없었으리라. 그런데도 두려운 마음을 때로 기도하며 때로 노래하며 풀어내고, 사막과 얼음 구덩이로 발걸음을 옮긴 그들에게 도대체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다는 것일까? 같은 길을 따라 거슬러 왔던 전도자들을 생각하며 걸었던 것일까? -573

 그들이 용기는 어디서?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 많이 있지. 이런 그들을 보면서 나도 작은 용기나마 가질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 본다.

 

ㆍ가고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결국 그 곳에 진정 돌아갈 곳이 아니겠는가. -574

 

ㆍ순례자의 마음인들 범인의 그것에 조금이나 가까운 것이 있다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수구초심(首丘初心)이 하나일까? -576

 이건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 아닐까?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ㆍ무릇 미륵 신앙이란 민중들의 삶에 더욱 밀착되는 법이다. 그들의 어려운 삶 속에 동참하는 데서 이 신앙의 진수가 드러난다. -596

 미륵신앙에 대해 조금 보게 되다.

 

ㆍ사실 그 샘이 일연이 보았다는 그것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닐 가능성이 더 크지만 자리는 분명 그 자리일 테고, 샘을 이 절이 생겨난 유래와 성격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다. -601

보수라는 이름으로 옛 것들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

 

신주(神呪)

밀교의 한 자락

ㆍ시구렁창 같은 세속일지라도 거기서 뒹구는 것이 세상살이의 즐거움일까. 그러기에 출가는 번뇌로부터의 결별이면서도 오히려 슬프게 다가오는 것일까? ‘출가한 이는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라는 선입견이 우리에게는 있다. -603

 . 있고 말고

 

ㆍ다만 더 극적이어서 가치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평범함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자(尊者)들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의 출가자들 속에 연면히 내려오는 출가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04

평범함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을 따라가 볼 필요는 있다.

 

신라의 밀교 승려

ㆍ새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607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감통(感通)

평번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ㆍ원체 감동스러운 모습은 우리에게 바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623

 

ㆍ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불쌍한 어린 아이에게 베푼 덕이 곧 내게 해준 일이라고,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 말한다. 아마도 예수님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위로하자는 차원에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크건 작건 실펀의 문제다. 이론으로서 받아들인 철학을 넘어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실천 원리로 불교가 신라 사회에서 자리잡혔음을, 우리는 이 같은 짤막한 삽화속에서 읽을 수 있다. -623

실천. <성서>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삼음으로써 다른 한 쪽이 생각할 수 있는 불만(?)을 포용하고 있다.

 

ㆍ거창하게 모임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근엄한 예불을 올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껌데기 미타 신앙이 가려진 허위 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자는 목적이라기보다, 제 육신을 잊고 끝내 버리고만 욱면이라는 ‘평안한 시기의 부유한 층’의 계집종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627

 

ㆍ계집종에 성불에 자극을 받은 귀진은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었다고 한다. 적어도 그것은 껍데기가 아닌 진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신라 사회의 힘이다. -628

 귀진은 알아 볼수는 있다.

 

ㆍ그러기에 이야기의 주인공은 엄장이다. 그리고 그는 엄벙덤벙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인물일 것이다. 광덕은 치밀하고 정성스레 예불하여 목적한 바를 이룬 점에서 의상을 닮았다면, 엄장은 실수 투성이의 원효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래서 더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630

친밀감. 우리네와 같은 모습의 사람이 이뤄내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기회를 갖게 한다.

 

ㆍ엄장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내였다. 늦게나마 생각을 바꾸고 성실히 수행하여 마침내는 친구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632

 부끄러움을 알고 있나?

 

ㆍ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았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사람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633

 

ㆍ이 조의 분몬과 찬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절의 재신을 몰래 훔친 여자의 부모, 저승의 일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곧 욕심 가득한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선율의 환생은 그런 그들에 대한 경계이지만, 사실 살아 돌아와 저승의 일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욕심이 화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636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ㆍ그것은 그렇거니와, 불교적 의미망을 벗겨내고 나면, 분명코 김현이 호랑이에게 감동된 이야기이지 않을까?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652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ㆍ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제, 단순하기많나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656

찾는 이의 책임. 보았으되 보지 못했을 수도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ㆍ그러나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도 만남은 만남이라고. 나는 설명했다. 그 만남을 뒤에라고 만남인 줄 알면 그렇다. 효소왕은 그것을 알았기에 부랴부랴 그 뒤를 쫓아 갔다. 다시는 그 얼굴을보지 못했지만, 그의 가름침을 따르고자 절을 짓고 공양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그런 만남이 우리에게는 더 많고 또 소중하지 않은가? -657

 뒤늦게라도 알고 따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다.

 

ㆍ사실 어느 것이 더 세련되고 발전된 형태냐를 따지는 일은 우리 같은 이에게 중요하지 않다. 거기에 신라 사람들이 새겨 넣은 불심을 더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다. -658

 

ㆍ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선시키라는 조각가의 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659

미완성이라 생각하는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부족한 듯 보이는 그 자체로도 완성일 수 있다.

 

ㆍ내가 여러 차례 왔으나 그때마다 들어오지 못했소. 이제 옷 때문에 이 자리를 차지했으니,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면 그것을 옷에게 주어야 마땅하지요. -662

 나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ㆍ헛된 권위만 살았을 뿐 책임 의식이 없으므로 자기에게 좋은 것만 택하고 힘든 일은 하지 않는다. -670

 권위만 내세우고 내가 책임질 일은 팽개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ㆍ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니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670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

 

피은(避隱)

숨어 사는 이의 멋

ㆍ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慕情)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그 길을 간 사람들에게는 뭔가 곡절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672

 

ㆍ여기 뿐만이 아니라 <삼국유사>의 다른 많은 부분들도 이렇디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는 일연이 곳곳에서 머물 때마다 써 준 메모들의 집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682

메모의 중요성. 메모하자 하면서도 머리로 기억하고 또 잊어버리고 중요성을 깨닫는다.

 

 

효선(孝善)

ㆍ어떤 책이거나 거기에는 그 책만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 <삼국유사>의 이념이 불교일 뿐이다. -688

책이 치우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일연은 승려이고 그러기에 그가 쓴 글에는 불교의 향이 깃들여 있을 수 밖에 없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

 

ㆍ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를 받는다는군요. 저를 생각해 보니, 분명 쌍하 놓은 선행이 없어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 것 같아요. 이제 또 시주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더욱 힘들어지겠지요? -695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신을 원망하는 모습들을 반성하게 된다.

 

ㆍ아니다. 나를 위한다고 출가를 못하다니. 그건 나를 지옥 구덩이게 빠뜨리는 일이야. 비록 살아서 삼뢰칠정으로 나를 모신들 어찌 효도라 하겠느냐? 나는 남의 집 문 앞에서 옷과 밥을 빌어도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정말 내게 효도를 하려거든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701

 어머니

 

 

항가, 가장 고위한 것의 정화

ㆍ좋은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도 하지만 좋은 시를 알아볼 줄도 안다. 일연은 분명 그런 시인이었다. -707

조금만 알아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ㆍ예나 이제나 윗사람을 흠모하는 정을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리며 흠모하는 정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충담사의 시 쓰는 솜씨는 탁월했다. -711

 

ㆍ노동요는 일할 때 부르는 민요다. 힘든 일을 하다 지치고 괴로울 때 부르는 노래는 위안을 준다. 더욱이 함께 입을 모아 부르다보면 박자에 맞추어 행동이 통일되니 힘이 덜 든다. -714

 노래가 가지고 있는 힘

 

 

일연, 혼미속의 출구

ㆍ우리는 일연을 그 생애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 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비록 작은 나라로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그는 민족의 자존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그것을 그는 불교적 인식 세계에서 불국토(拂國土)사상으로 이었으며, 만년에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에 처저하면서 정리한 <삼국유사>에 여실히 표현해 놓았다. -728

 

ㆍ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하여야 하는 일이다. -733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ㆍ이 책이 히트치기만 바랄 뿐이다. -744

누구나 가지는 소망을 글로 적기란 이렇듯 내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나도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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