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루미
  • 조회 수 247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1년 5월 9일 09시 52분 등록

나는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부터 두번 읽기를 결심했다. 그래서 일연에 대한 조사를 먼저 했음을 밝힌다.

일연의 생애

김견명 자는 회연, 일연. 호는 무극, 목암

경상북도 경산 출생

1214년(고종 1) 지금의 광주 지방인 해양에 있던 무량사에 가서 학문을 닦았고, 1219년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를 받은 뒤, 여러 곳의 선문을 방문하면서 수행하였다. 이때 많은 사람들의 추대로 구산문 사선의 으뜸이 되었다.

1227년 승과의 선불장에 응시하여 장원인 상상과에 급제하였다. 그뒤 비슬산의 보당암으로 옮겨 수년 동안 머무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에 몰두하였다.

1236년 10월 몽고의 침입이 일어나 병화가 전주 고부 지방까지 이르자, 병화를 피하고자 문수의 오자주를 염하면서 감응을 빌었다. 문득 문수가 현신하여 “무주에 있다가, 명년 여름에 다시 이 산의 묘문암에 거처하라.”고 하였다. 이에 곧 보당암의 북쪽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항상 “생계, 즉 현상적인 세계는 줄지 아니하고 불계, 즉 본질적인 세계는 늘지 아니한다.”는 이해에 나라에서 삼중대사의 승계를 내렸고, 1246년 다시 선사를 더하였다.

1249년 정안의 청을 받고 남해의 정림사로 옮겨 이를 주재하였다.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장경 주조 중 남해의 분사대장도감의 작업에 약 3년 동안 참여하였다.

1256년 여름에는 윤산의 길상암에 머무르면서 《중편조동오위》 2권을 지었고, 1259년 대선사의 승계를 제수받았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의 포산·남해·윤산 등지에서 전란을 피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다가, 1261년(원종 2)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갔다. 강화도의 선월사에 머무르면서 설법, 지눌의 법을 계승하였다.

1264년 가을 왕에게 남쪽으로 돌아갈 것을 여러번 청하여 경상북도 영일군 운제산에 있던 오어사로 옮겨 살았다. 이때 비슬산 인홍사의 만회가 그 주석을 양보하였으므로 인홍사 주지가 되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268년에는 조정에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개경에 초청하여 해운사에서 대장낙성회향법회를 베풀었는데, 일연으로 하여금 그 법회를 주관하게 하였다. 그의 물 흐르는듯한 강론과 설법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1274년 인홍사를 중수하고 협소한 경내를 확장한 다음 조정에 아뢰자 원종은 ‘인흥’이라 이름을 고치고 친필로 제액을 써서 하사하였다. 또, 이때 비슬산 동쪽 기슭의 용천사를 중창하고 불일사로 고쳤는데, 그의 〈불일결사문〉은 이때 쓰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1277년(충렬왕 3)부터는 충렬왕의 명에 따라 청도 운문사에서 1281년까지 살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이때에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281년 6월 동정군의 격려차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은 일연을 불러 그의 가까이에 있게 하였다. 그때 일연은 뇌물로써 승직을 구하는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고의 병화로 불타버린 황룡사의 황량한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가을 충렬왕의 간곡한 부름으로 대전에 들어가 선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에 머무르면서 왕실 상하의 극진한 귀의를 받았다.

이듬해 3월 국존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라는 호를 받았으며, 이해 4월 왕의 거처인 대내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옷의 뒷자락을 걷어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

그러나 늙은 어머니의 봉양이 마음에 걸려 몇 차례에 걸친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산 아래에서 모시고 봉양하던 어머니가 1284년에 죽자, 조정에서는 군위 화산의 인각사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인각사에서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를 두번 개최하였다.

1289년 6월에 병이 들자 7월 7일 왕에게 올릴 글을 쓰고, 8일 새벽 선상에 앉아 제자들과 선문답을 나눈 뒤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금강인을 맺고 입적하였다. 그해 10월 인각사 동쪽 언덕에 탑을 세웠으며, 시호는 보각이고, 탑호는 정조이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와 죽허가 있으며, 저서로는 《화록》 2권, 《게송잡저》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선문염송사원》 30권, 《삼국유사》 5권 등이 있다.

위의 자료는 한국 역대 인물 종합정보시스템에서 가져온 것이다. 일연의 생애를 순차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무엇을 하고 어떤 직책을 거쳤는지 세세히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만으로 일연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음은 네이버 캐스트에 올라있는 일연에 대한 글이다. 이 글을 쓴 이는 고운기 교수이다. 이 글이 <삼국유사>의 저자로서의 일연을 더 잘 드러내 주는 듯 하여 조금 길지만 전문을 올려본다.

<삼국유사>를 쓴 뛰어난 이야기꾼 일연

일연(一然, 1206~1289)은 칭기즈칸이 몽골족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해에 태어나, 최씨 무인정권과 몽골의 고려 침입을 함께 겪는 모진 세월을 살았다. 14세에 출가하여 78세 때는 국사(國師)가 된 고승이었는데, 곧바로 인각사(麟角寺)로 은퇴하여 [삼국유사]를 완성하였다. 이 책 덕분에 일연은 우리에게 누구보다 낯익은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생애와 [삼국유사]의 가치에 대해서는 좀 더 차분하고 치밀한 분석의 손길이 따라야 한다. 13세기 아주 특별한 이에 의해 이룩한 민족의 발견,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삼국유사]의 저자로 유명한 일연, 정작 그의 생애는 오리무중이다

일연은 너무 유명해서 아무도 모른다. 이 반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까. [삼국유사]의 지은이로 일연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다. 그런데 그의 생애는 오리무중이다. 사실 [삼국유사]가 유명하므로 일연 또한 덩달아 유명해졌다. 오늘날 초등학생에서 일반인까지 [삼국유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교과서와 동화책과 인문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삼국유사]를 변주한 책의 숫자는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삼국유사]라는 책에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지나치게 친숙하다.

일찌감치 [삼국유사]에 대해 이렇게 평한 적이 있다. “정녕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 놓은 책. 우리 문학을 지식인의 문학에서 민중의 문학으로, 사대의 문학에서 자주의 문학으로 바꿔 놓은 책.” 이런 [삼국유사]를 지은 이가 일연이다.

[삼국유사] 3권 1책,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고승 일연이 1281년(충렬왕 7년)에 편찬하였다.

그런데도 일연을 모른다니, 오리무중의 대상이라니 무슨 말인가. 일연은 20세기에 들어 유명해졌다. 아니 이 또한 [삼국유사]가 유명해지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20세기가 시작되기 이전까지 일연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것은 [삼국유사]를 아는 사람이 극소수였다는 말과 같다. 한마디로 일연은 [삼국유사]와 함께 운명을 같이하는 이이다.

하지만 일연은 당대에 꽤 잘나간 사람이었다. 그가 살았던 고려 왕조의 국사가 된 이였다. 국사는 한 나라의 스승이다. 특히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사회에서 국사의 위치는 지금의 상상을 초월한다.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고 법정 스님이 입적하였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분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그분들의 생애를 그리워했는가. 단순하게 따지자면 당대의 일연은 추기경과 스님을 합쳐 놓은 분이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그만한 이가 국사에 올랐고, 단일 종교에 국가 종교였던 불교의 당시 영향력으로 치자면 국사는 두 분을 합쳐 놓은 것 이상이었다. 일연도 그만한 반열에 오른 이였다.

그런데도 일연을 모른다니, 오리무중의 대상이라니 무슨 말인가. 하물며 일연에게는 번듯한 비문이 남아서 전해온다. 한문으로 쓴 1,200자 가량의 꽤 긴 분량이다. 가계와 생몰연대 그리고 주요활동이 자세히 적혀 있다.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이에 비하면 꽤 풍부한 자료를 남겨 놓은 셈이다. 하지만 그것은 평면적이고 단선적이다. 비석을 세우기 위해 쓴 비문 하나가 정보의 거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한 나라의 국사까지 오른 고승에 대해 이토록 감감무소식인지 의아할 만큼, 다른 기록에 걸쳐 견주어 입증할 자료가 없다. 그러므로 구체적이고 입체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오리무중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일연은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다. 비문에 나타난 그의 생애와 [삼국유사]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그의 세계관은 결코 만만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혼란과 전쟁으로 점철된 일연의 시대

이름을 안다고 다 안 것처럼 여기는 우리네 불찰이 여기서 한몫 거든다. 일연이라는 이름 두 글자를 알았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일생을 다 알았다고 말하면 너무 싱겁다. 우리의 역사 시간은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다. [삼국유사]에 대해서도 그 이름과 단편적인 몇 가지 내용만 알 뿐, 깊이 있게 이 책의 가치와 뜻을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유명해서 알았다 여기고 넘어가는 무심함을 이제 깰 때가 되었다.

비록 단선적이긴 하나 먼저 비문을 통해 일연의 생애를 정리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일연은 고려 희종 2년 경상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이 해 곧 1206년은 칭기즈칸이 몽골족을 통일하고 제국을 건설한 해이다. 그리고 꼭 10년 전인 1196년에는 최충헌이 자신의 무인정권을 세웠었다. 일연의 생애는 최씨 무인정권과 몽골의 고려 침입을 함께 겪는 신난(辛難)한 세월이었다.

일연의 속명은 김견명(金見明), 어머니가 자신에게 환히 해가 비추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14세에 설악산 아래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陳田寺)로 가서 출가했고, 이때 이름은 회연(晦然)이었다. 진전사는 우리나라 선종의 첫 승려인 도의(道義)가 은거하며 수행하던 곳이다. 22세에 과거시험의 승과에 나가 합격한 일연은 이후 몽골 전란기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경상도 달성의 비슬산을 중심으로 수행하였다.

그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것은 44세 때였다. 경상도 남해의 정림사(定林社) 주지로 부임하면서다. 첫 직장치고는 꽤 늦었다. 55세에는 남해에서 [중편조동오위(重篇曺洞五位)]를 저술하였다. 일연의 많은 저작 가운데 [삼국유사]와 함께 지금까지 전하는 이 책은 그의 수행과 학문이 벌써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자연히 불교계에서는 일연에 대해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의 활동 범위는 이제 전국으로 뻗어가기 시작하였다. 중앙 정계의 인물들과 교유하는가 하면, 각지의 사찰에 머물며 후학을 길러냈다. 몽골에 항복한 고려가 함께 일본 정벌을 하던 때는 일연의 나이 어언 76세가 되어 있었는데, 충렬왕은 일연을 곁에 불러 자문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일연은 1283년 그의 나이 78세에 국사가 되었다. 종신직인 이 자리에 오른 이는 개성에서 머물러야 하지만, 일연은 이듬해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로 은퇴하여, 주석한 지 5년 만인 1289년에 84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이 시기에 [삼국유사]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일연이 79세 때 고향에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96세였다. 실로 은퇴의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열일곱 살에 아들 하나 두고, 스물여섯 살에 제 품에서 아들을 떠나 보낸 어머니는 70년을 홀로 살았다. 일연은 그 어머니에게 마지막으로 효성을 다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 정사의 상대적인 의미인 ‘대안사서’라 부를 수 있다

우리는 [삼국유사]를 흔히 야사(野史)라 부른다. 그러나 입증하기 어려운 뒷방 이야기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들리는 말이 야사이다. 그렇다면 [삼국유사]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아니다. 그래서 ‘대안사서(代案史書)’라고 부르자는 주장이 최근에 나왔다. 당대의 기준에서도 정식 사서라 할 수 없는 책이지만, [삼국유사]는 오히려 전혀 다른 세계의 발견을 우리에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뜻있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대안사서는 [삼국사기]를 정사라고 불렀을 때 상대적으로 쓰일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일까? 우리는 그것을 생활사(生活史)로 요약해 본다. 위로는 왕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나라를 이루었던 이 땅의 민중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삼국유사]는 수많은 일화를 적절히 정리하여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은 곧 일연의 세계관이기도 하였다. [삼국유사]는 왕력(王曆)∙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개의 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적인 구성을 본다면 연대기로서 왕력, 준 역사서로서 기이, 불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당대인의 삶을 기록한 흥법 이하의 여러 편으로 삼대분(三大分)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왕력 편은 [삼국유사] 전체 기술의 기반이 되는 부분이고, 기이 편은 양적으로도 역사자료의 가치가 충분히 있지만, 기술방식이나 역사관에서 [삼국사기]와 현저히 다른 질적인 면이 우리의 관심을 끈다. 특히 기이 편은 그 서문에서 밝힌바, 우리에게 뿌리가 되는 나라와 왕들을 비록 기이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나 굳이 수록하겠다는 것, 그래서 단군 신화가 처음으로 문서 상에 기록되었다는 데에서 더는 강조할 필요가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한편, 흥법 편 이하의 편들은 불교 문화사적 관점에서 기록하였다. 일연은 승려로서 분명한 불교적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불교 문화사란 그런 저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당연한 결과다. 다만 불교 하나로 모든 것을 재단하고 있지 않다는 점, 그러므로 읽는 이도 어떤 편협한 선입관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아가 흥법 편 이하가 중국의 승전(僧傳)을 많이 모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런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로만, [고승전]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냈다고 보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삼국유사]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것은 일연이 [삼국유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바를 반추했을 때 드러난다. 생활이 묻어 있는 이야기이고, 민족의 얼굴을 그려볼 수 있는 자료이다. 우리는 거기서 생활을 발견하고 민족을 재발견한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던 일연이 전하는 삼국시대 이야기

이렇게 [삼국유사]의 세계를 정리해 보면서 다시 고개를 드는 의문이 남았다. 과연 일연은 누구인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이에 대한 해답은 매우 치밀하고 장황하게 늘어질 수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는 이야기꾼이었다. 일연은 이야기하는 재주를 다양하게 지닌 이였다. 그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사건을 이야기 속에 풀어 넣는 비상한 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이 같은 기술은 몇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원효와 의상처럼 대조적인 두 사람을 짝을 지어 등장시킴으로써 흥미를 배가시키는 경우, 김춘추처럼 주인공의 자리에 조연으로 등장시켜 매우 객관적인 태도로 한 사람을 조명하는 경우 등이 먼저 눈에 띈다. 이는 이야기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경우는 한 왕대에 대해 대표적인 한 사건을 서술하여 그 성격을 부각시키는 방법이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미추왕과 죽엽군, 내물왕과 김제상, 이런 식이다. 그것은 [삼국유사]가 정식 역사서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한 왕대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이 얽혀 있다고는 하여도, 그것을 특징적인 사건 어느 하나로 집약하여 정리해 주는 이 방식에서 일목요연한 흐름을 짚어보게 되고, 저자의 분명한 역사관 또한 찾아볼 수 있으니 매우 흥미롭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진평왕의 경우, 왕은 무려 53년이나 왕위에 있었던 인물이었음에도, 일연은 다만 한 가지 천사옥대(天賜玉帶), 곧 하늘이 내려준 옥대를 받은 일로 갈음한다. 그의 권위와 업적에 대해서는 이 한 가지로 설명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늘에서 옥대가 내려온다는 일이 발생 가능한 것인가는 논외다. 만약 거기에 걸려서 쓰기를 주저했다면 아예 단군신화는 설 자리조차 잃었을 것이다.

법흥왕은 기이 편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법흥이 신라 역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다가 흥법 편에서 이차돈 순교 사건의 조연으로 법흥은 나온다. 물론 이는 [삼국유사]를 사건의 나열 방식이 아니라 주제별 분류에 따라 썼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러나 법흥이 법흥인 것은 신라의 불교공인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일연은 왕의 재위 순서에 따라 기이 편을 기술하다가도 법흥 같은 중요한 왕을 과감하게 흥법 편으로 돌렸다. 거기서 더 흥미롭게 법흥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만큼 ‘유사’라는 제목이 어울리는 것도 없다

일연은 역사를 왕 중심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 중심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서민이나 지체가 낮은 스님도 이야기의 중심이라면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그의 붓을 통해 정착한 이야기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입체적 생활사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유사’라는 제목을 붙이는 다른 책 또한 이와 비슷한 시도가 있었지만, 일연만큼, 일연의 [삼국유사]만큼 내용과 형식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일연이 가졌던 세계관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내가 저자라면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사진이었다. 군데군데 자리잡은 사진은 현재 우리의 자리에서 <삼국유사>의 삼국의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한다. 각 장소에 해당하는 사진과 함께 어울러지는 해석은 우리가 가보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그 사물과 배경들이 주는 느낌을 알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도 직접 가 보는 것이 훨씬 더 깊은 것을 줄 수도 있지만.

들어가며에서 저자는 자신이 무엇에 유념하여 이 책을 썼는지 보이고, 일연은 어떤 것을 마음에 안고 <삼국유사>를 썼는지를 조심스레 보이고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점을 한문의 한 글자로 적어내리는 부분은 이 책에서 이 둘의 차이점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임을 암시한다. 당시의 사회 변화상, <삼국유사>의 구성, <삼국유사>가 주목을 받게 된 배경을 이야기함으로써 어떤 방향으로 책이 나아가 것인지 설명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삼국유사>의 기본흐름을 그대로 가져가고 있다. 일연이 썼던 <삼국유사>의 흐름에 따라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다 .그래서 커다란 구성은 <삼국유사>와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기이,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그 안에서 저자는 <삼국유사>의 내용을 적절히 배치하고 자신의 의견을 배치하고 <삼국사기> 혹은 다른 역사책과의 차이점을 적는다. 또한 <삼국유사>가 인용한 원문의 출처를 적고 거기서 어느 부분을 발췌했는지에 대해서도 밝히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우리는 일연이 가지고 있었던 역사의식의 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저자가 친절히 설명해주는 바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차이점을 많이 다루고 있다. 들어가며에서 간단한 한 글자로 지적한 차이점을 여러 가지 내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비교를 통해서 <삼국유사>의 성격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자신이 깔아놓은 배경 지식으로 말미암아 독자가 이 둘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글이자 구성이다.

현재에 대한 언급도 빼먹지 않았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시각에서 보는 저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겪는 감정이나 현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또 현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일연의 모습이나 역사 의식을 적음으로써 일연의 글을 고전으로 묻어두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것으로 살려내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구나 역사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음을 단지 과거 사실로서의 의미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한다.

또한 저자는 군데군데 자세한 자료들을 정리해 주었다. 신라 왕실의 계보라던지, 전설이라던지, 미처 소개되지 않은 일화라던지 하는 것들을 한 구석의 노란 박스를 만들어 채워넣고 있다. 조선조의 왕들을 외우고 있는 누군가들이 많지만 솔직히 삼국 왕실의 계보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들은 배려하는 마음을 곳곳에다 심어 두었다.

이 책의 목차에 보면 기이, 흥법, 탑상 등등에 관한 커다란 제목들이 눈에 띤다. 하지만 본문에는 이러한 제목들을 적어두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새로운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목차를 다시 넘겨보아야 했다. 목차를 어려번 보며 흐름을 파악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의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커다란 제목을 적어 주는 것이 번거로움을 피하고 새로이 나올 내용에 기대를 품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글귀

머리말

ㆍ나는 <삼국유사>를 방금 따낸 과일이나 방금 캐낸 채소에다 비유해 본 적이 있다.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방부제를 친 통조림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요리를 하기에는 방부제 친 통조림보다 싱싱한 과일과 야채가 더 좋은 재료 아닌가? 그러므로 모름지기 <삼국유사>는 시대마다 좋은 요리사를 만나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인지 모른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의 차이점. 단순히 저자만 외우게 하는 학교공부가 얼마나 이들의 매력을 감추어 놓았는지 느꼈다.

들어가며

ㆍ실정이 그런 만큼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어떤 극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3

탓할 것이 없다. 그 자리가 뒤쳐져 있다고 생각되더라도 그 곳에서 출발하면 그 뿐이다. 그냥 그 자리에서 출발해서 나아가면 될 뿐이다.

ㆍ<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史)와 사(事)에 있다는 점. -3

처음 알게 된 사실. 한문을 잘 모르는 나로써는 아마 전체를 한문으로 적어주었다면 지나쳐버렸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삼국의 역사를 기록. 삼국에 있었던 일. 이정도로 간단하게 볼 수 있다.

ㆍ도저히 일어나리라 상상도 못할 일이 벌어졌을 때 사람들은 고정관념이 깨진 새로운 새계를 맛보게 된다. -4

고려 시대 무인정권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제까지 정치를 하는 것은 글을 읽는 선비들이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무인들은 나라의 혼란기에는 중요한 위치에 오르나 안정기에는 이름을 감추게 되는 것인데 그들이 전면에 나서서 정치를 하게 되는 일대의 혁명이 되어 버렸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수 밖에 없었으리라.

ㆍ세계관의 변화는 곧 역사관의 변화를 가져온다. -4

사실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 중 매력을 꼽으라면 나는 기록으로서의 역사를 꼽고 싶다. 사가의 사관이 기록된 역사는 하나의 사실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을 제시해주어 즐겁게 만든다. 하지만 분명 사실로서의 역사를 기록한 자가 있어야 혹은 그 자료를 남겨 주어야 기록도 가능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역사관의 변화는 같은 역사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 준다.

기이(紀異)

이 땅의 첫 나라

ㆍ이야기가 책의 어느 한 구석에 밀려 있다면 첫머리에 실린 것과 의미가 다르다. 물론 단군 신화의 경우, 내용으로 보아 마땅히 처음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처음 기준‘은 누구의 생각인가? 그것이 맨 처음이 되어야 한다고 본 그 관점과 의식은 어떻게 생겨났던가? -11

첫 문장, 제목의 중요성. 기준에 따라서 첫 문장이나 제목은 달라질 수도 있다. 사실을 기록한다고 생각하는 역사서에서도 이는 달라질 수 있다. 처음 연구원 칼럼을 쓸 때, 우왕좌왕 하는 마음에 유끼 연구원들이 처음 올렸던 칼럼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사부님의 댓글 중에는 첫 문장 제목이 마음에 드는지 얼마나 생각했는지 몇 개나 생각했는지에 대한 글이 있었다. 그래, 첫문장을 잘 골라내면 글은 절반이 써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ㆍ그 쓰디쓴 경험이 사회와 역사를 보는 눈을 바꾼 것일까? 그렇다면 값비싼 희생을 치렀지만 귀중한 결과물을 얻은 셈이다. -12

우리는 단군을 얻었다.

ㆍ상징의 체계로 들여다 볼 때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즐거운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오롯이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 -14

삼국사기에 비해 삼국유사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일연은 역사서라고 불릴 만한 책에 적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이런 글들을 상징, 은유로 해석할 수 있음을 배웠다. 그렇게 해석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우리에게 과학적인가 과학적이지 않은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ㆍ곰은 뜻한 바 목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단군을 낳게 되는 과정까지를 유심히 읽다보면, 재미있게도 곰이 세운 치밀한 계획에 환웅이 한 발 한 발 말려들더니, 드디어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곰은 여자가 되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최후의 주인공 단군의 출생까지 커다란 각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움직여나간 주체는 바로 어머니 곰이다. 단군이 그렇듯 현명한 곰 부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이 땅의 첫 왕이 되었다. -18

신화의 어머니상과 많이 닮아있다. 내가 처음 배웠을 때 단군신화는 그저 허황된 이야기인듯 보였다. 그 후 어딘가에서 곰 부족과 호랑이 부족의 다툼간에 곰 부족이 승리해서 하늘님을 모시는 부족과 결탁하게 되었다고 들었다. 이 새로운 해석은 재미있다.

ㆍ‘세상’이 아니라 ‘나라’다. 기독교의 <성서>의 <창세기>에서 하느님이 사람을 비롯한 세상의 온갖 것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다르다. -21

ㆍ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23

아무리 좋은 것이라해도 우리가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려면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틀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우리만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런 특징들을 무시하고 단순한 단어 바꾸기만 할 때 우리는 우리만의 색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연은 그것을 간파하고 우리의 언어로 그것을 바꾼 것이다. 그대로 토해내는 것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소화시킬 수 없다면 토악질만 할 수 있을 것이다.

ㆍ그런데 그 전체가 무너졌다. 아니, 하늘이 무너진 것이다. -24

중국이 원에게 복속되는 역사가 우리에게 시사한 바. 중국에 의미를 크게 두고 있었기 때문에 이 같은 사건은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컸을 것이다. 하늘이 무너지면 큰일 날것처럼 했으나 살아갈 수 있다.

고구려와 북방계

ㆍ고대 왕권 국가란 곧 율령의 반포가 분명한 기준이 된다. -36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역사를 배운다. 단군부터 시작한 역사배우기는 삼국시대부터 아이들을 힘들게 한다.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왕들의 이름 외우기가 시작된다. 특히 불교공인과 율령반포는 중앙집권국가로 발돋움하는 증거 자료로서 왕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들은 왜 이것들이 중요한지는 모르는 듯 하다. 그저 각 나라의 왕의 이름을 열심히 외운다.

ㆍ그러나 이런 난생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라라.

상징. 자신이 가진 껍질을 깨고 나온 자.

ㆍ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한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44

그래서 ‘주몽’이라는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저자도 캠벨의 책을 읽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부분이 닮아 있다.

신라와 남방계

ㆍ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56

새로움의 시작. 다른 나라들과 다름을 밝히고 있는 부분.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나서 나라를 새운 것임을 여실히 드러낸다.

ㆍ여섯 부족의 합의 아래 왕을 세우려는 논의가 먼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합의에 따라 왕을 기다리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을 때, 혁거세는 그들 앞에 알을 깨고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58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뜻을 가지면 그 뜻이 합당하면 그 뜻에 맞는 길이 보인다.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ㆍ그의 관한 이야기의 이면에서 우리는 아직 안정되지 못한 신라 왕실의 고민과, 한 인간이 가진 본연의 욕망과 그림자를 읽게 된다. 온갖 신격화로 치장된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거둬내면 더욱 그렇다.

탈해는 파란만장한 삶을 겪고 왕이 되었다. 그의 이야기에서 신화를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면 현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ㆍ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신화 - 만족 사이에 전승되는 신적 존재와 그 활동에 관한 이야기

설화 - 한 민 족 사이에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의 총칭

이 둘을 정확히 구분해 볼 만한 일이 없었는데 기회가 와서 찾아보았다.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던 듯 하다. 하지만 차이가 있군.

ㆍ문물의 발달이 신화시대를 거둬내고, 실질적인 힘으로 정복과 지배를 영위해 나가는 시기가 이 한반도에도 도래한 셈이다. -78

ㆍ이미 옛날 이야기다. 거기 무슨 시간의 경과가 그리 중요할까? -79

ㆍ기존의 세력에 둘러싸여 늘 불안해 했던 것 같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권력의 자리란 차지하기도 이어 나가기도 어랴운 것인가? 탈해의 고민이 깊었음은 분명하다. -86

인간 석탈해를 느낄 수 있다.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왕이 된 탈해가 김알지의 등장에 자신의 자리에 대한 위협을 느낀다. 자신은 인간의 몸으로 이 자리에 와 있지만 신격화 된 존재가 등장함에 따라 자신의 왕위를 노리는 듯 한 느낌을 받은 것일까? 결국 왕의 자리란 신이 내어주는 것인가? 신라의 왕조 박, 석, 김 을 알게 되었다.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ㆍ그건 쇼니까 가능한 일이다. 쇼가 아니라면 그 링에 오른 누군가는 시체가 되어 내려올 것이다. 우리가 무슨 로마시대를 사는 사람도 아닌데 진짜 죽이고 살리는 경기이기를 바라는 이가 어디있겠는가? 피는 조금씩 흘리겠지만 말이다. -89

옛날 로마 시대에서는 검투사들을 키워 즐기는 경기가 있었다. 하긴 중세 유럽에서는 사형당하는 모습을 모여서 구경하기도 했었다. 사람 안에 파괴성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얼마 전 한 아이가 레바논 다이빙 봤냐며 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본 즉 엄청 끔찍해 보이는 동영상이었는데 이아들은 그것을 보면서 흥미로워하고 있었다. 자연 상태로의 인간은 그런건가? 우리에게도 야수의 본성이 남아 있는 것인가?

ㆍ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란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살아 있는 역사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92

일본을 배척하는 분위기를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아이들도 어른들의 말을 따라 “일본 짜증나요”라고 말할 때가 있다. 때론 이들의 모습이 씁쓸할 때도 있다. 과거의 사실로 말미암아 별다른 이유없이 일본을 미워하는 모습은 때로 우리만이 그 과거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열등감을 가진 모습을 보인다. 과거 각 나라와의 전쟁의 역사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각 나라가 서로에게 끼친 영향도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다. 혼자 독불장군이 되어 이 시간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당연한 세계사의 흐름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ㆍ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뜻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프로레슬리을 진짜 격투기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은 재미요 남은 것은 공허감이지 않았던가? 역사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92

역사를 너무 어렵게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라는 부분에서 충분히 매력이 있는 바이고 역사를 알게 된다면 우리가 떠나는 수많은 관광이 더욱 재미가 있다.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ㆍ가까운 상대라고 함부로 대하다 보면 틀어지기 마련이다. -109

가족들이 그렇고 부모가 그렇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이기에 우리는 제대로 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이해를 바라는 경우가 있다. 가장 가까운 상대가 나를 잘 이해해 주는 것도 맞지만 커다란 상처는 가까운 사람에게만 받을 수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ㆍ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일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특징적인 사건 하나로 한 왕대의성격을 나타내 버리는 것이다. 일연의 특이한 기술 방법이다. -118

삼국유사를 쓴 방법. 삼국 사기가 이미 이전의 일을 체계적으로 사실적으로 기술했기에 우리는 삼국유사를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부분도 간과하고 싶지는 않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

ㆍ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 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120

ㆍ복사꽃처럼 어여쁜 이 여자는 유부녀가 지켜야 할 도리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왕이라 한들 그 앞에서 떳떳이 여자가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하고 있다. 죽음이라도 흔연히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인데, 그토록 당당한 모습을 지닌 여자도 아름답지만, 한마디 농담으로 계면쩍은 분위기를 수습한 왕이 그대로 여자를 보내 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125

당대의 왕이 도리를 지키고자 한 여자를 그대로 보내주는 것도 참 인상적이다. 힘으로라도 권력으로라도 차지할 수 있는데 왕은 여자를 그대로 보내준다. 도리를 아는 여자와 그 도리를 지켜줄 수 있는 왕이다.

ㆍ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닌 내적인 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造花)다.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만 있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쩌면 귀신의 세계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 -134

ㆍ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137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ㆍ‘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임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본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140

희망적이로군. 먼저 된 자가 초심을 잃고 방자해짐을 경계하려는 말이 아니었을까? 먼저 되어버리면 아직 되지 않은 자를 낮추어 보거나 자신이 이룬 일에 대한 자만심이 생길 수 있으니까.

ㆍ그러나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 데서 더욱 커진다. 불교가 먼 나라에서 전래된 이방의 종교가 아니라, 이미 전세에 인연을 마련한 우리 종교라고 생각한 신라인들의 본지수적, 불국토 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밑바탕이었다. -144

토착신앙과 불교가 융합되면서 거부감이 없는 수용이 가능해졌다. 자신의 것을 모두 다 버리고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 무엇을 수용하던지 자신의 밑바탕은 남아 있다. 긍정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모두 다 같은 긍정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ㆍ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아상(我想)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 -147

봉사가 따로 없군.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

ㆍ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ㆍ“청년이 스스로 서울 사람이라 했다면서? 성인이 빈말을 하겠느냐, 성안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는가?”라는 한마디는 심상한 듯 하면서도 정곡을 찌른다. -149

표지는 도처에 있다. 이를 발견할 수 있는가 없는가하는 문제만 남아 있다. 무심한 듯한 한 마디는 표지의 발견을 알려준다.

ㆍ신라가 불교를 받아들인 것이 늦었기에 오히려 선진적으로 나갈 수 있었다는 점만 적어 두기로 하자. 마치 오늘날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공업화를 이루려는 개발도상국가들이 중간 과정을 생략한 채 첨단의 그것으로 건너뛰는 모습과 유사하다고 할까? 그러나 신라의 경우, 비록 수용이 늦었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철저히 자기화 되어 정착되었으므로, 생경한 외래 사조에 휘둘리지 않았다. -150

늦은만큼 더해지는 요인이 있기 마련이다. 초조해 할 것이 하나 없다. 신라의 불교를 수용한 모습에서 우리는 주체적인 수용이 주는 장점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ㆍ그러나 사실이 무슨 상관이랴. 사실을 더 그럴듯하게 해주는 이야기가 배경에 깔리면 그 사실은 더 힘을 얻는 법이다. -167

ㆍ동생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 리 없다. 일은 제가 벌여 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 -177

김유신의 위인전에는 동생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지혜로 왕비가 되었겠지만 그 이후 동생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갑자기 궁금해져 온다.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ㆍ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벌인 통일 전쟁이 한민족의 영토를 축소한 결과만을 초래했다고 비판받지만, 기록을 자세히 살피자면 당나라에 전부 뺏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한반도 땅 전체를 집어삼키자는 것이 당나라의 속셈이었기 때문이다. 문무왕 법민은, 좀 더 적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그런 당나라와 맞서 최대한의 땅을 지켜낸 사람이다. -179

알지도 못하고 신라가 통일을 해서 영토가 줄었들었다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았나? 나라를 통일해 하나의 나라를 세운 공은 분명 있다.

ㆍ왕위에 있었던 20년 동안 문무왕은 당나라와의 투쟁을 계속한다.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을 꾀어 신라는 괴롭히게 하고, 문무왕은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당나라 군사를 쳐부순다. 당나라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의 반란군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싸움을 일으키되, 실제로 주적(主敵)은 당나라 군사로 삼았던 것이다. 문무왕의 이런 행적은 크게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184

ㆍ비유컨대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가 나지 않고, 두 손바닥으로 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대나무라는 물건도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 훌륭한 임금이 이 소리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게 될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져다가 피리를 만들어 불면 세상이 화평해질 것입니다. 지금 돌아가신 왕은 바다 가운데 큰 용이 되어 있고, 유신은 다시 천신(天神)이 되어서, 두 분 성인이 한 마음으로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내어 놓고, 날더러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189

만파식적

ㆍ벼슬이 높아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면 한 글자씩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이 있다. 예컨대 김유신은 각간이었지만, 더 공을 세우자 대각간이라 했고, 다시 더 공을 세우자 태대각간이라 한 것이 그렇다. 만파식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더할 데 없는 보배이나, 거기에 공을 세우니 글자를 하나씩 더 붙여 주었던 것이다. -195

왜 드래곤 볼이 생각나는 걸까?

권력의 끝

ㆍ그것이 어찌 어제 오늘의 일이겠는가? 이미 사마천의 시대부터 변함없는, 비정의 극치를 달리는 원칙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거기서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최소한 그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다닌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사냥개 신세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196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다닌 사람이라면.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ㆍ바닷가 깎아지른 벼랑에 어여쁜 철쭉이 피었는데, 부인은 자신의 미모를 닮은 이 꽃을 갖기를 원했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시종들이 모두 주저하고 있을 때, 노인은 과감히 벼랑을 오른다. 경험 많은 슬기로운 노인에게 꽃을 따는 일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226

경험과 연륜에서 오는 슬기. 힘으로 하는 일처럼 보일지라도 힘 안들이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을 지혜라 한다.

ㆍ실제적으로 노래는 여러 사람의 행동을 일사분란하게 통일시키는 데도 필요했을 것이다. 다시 다음 시대, 본격적으로 인간의 삶이 노동을 통한 생산물로 유지하는 시대에 노래는 민요가 되었고, 민요가 노동 현장에서 불렸을 때 노래의 제의적 성격이 감소되는 대신 기능적 성격은 충분히 살아 있게 된다. <해가>는 신가에서 민요로 넘어오는 중간 고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다. -229

노래는 사람을 하나로 묶는 힘이 있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한 데 묶는다.

ㆍ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233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이 단어가 잘 어울린다.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만이 모르고 있을 지도.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고 그리 살고 있다고 생각하듯이 나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 그리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었다. 나의 삶은 다른 삶을 사는 이가 보기에는 부러움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첫 성전환증 환자

ㆍ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 형 아우가 정해지지만, 죽는데는 순서가 없는 것이고, 언젠가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한들, 이다지 이르게 찾아온 죽음이 비록 생사를 넘어서려는 구도자에게라 할지라도 심금을 울릴 일 아니겠는가.

사실 이 시는 어덟째 줄까지 평범한 인간이 초로할 슬픔을 절제된 감정 속에서 마음껏 뱉어 놓고 있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라면 승려의 신분으로 주책 맞을 일, 아홉 번 째 줄에서 감탄사를 길게 뺀 다음 흩어진 감정을 추스린다. 이는 향가라는 시의 형식이 가진 특장(特長)이기도 하다.

다시 만날 것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구도자이면서 시인으로서 월명사가 택할 최선의 길이다. 그 지점이 곧 한 편의 시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242

제망매가. 이 향가를 학교에서 배웠을 때는 그저 외우는 것이 방법이었다. 이 시의 특징적인 부분과 느낌, 배경 등등을 무조건 외워서 답을 찾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서 이 시를 처음 대한곳은 교과서 아니면 문제집이었을 테고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시험지였을 것이다. 이 시를 다시 알게 되다.

ㆍ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 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믿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안민가. 군다이, 신다이, 민다이

ㆍ그들은 남성이면서 여성처럼 놀고, 성인이 되어서는 화장이나 옷차림을 아예 여성의 모습으로 바꾸어 버린다. 물론 여성은 반대다. 오늘날 이런 증세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법적으로 성전환을 시켜주자는 주장까지 대두되어 있다. 양성화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해 불법적으로 수술까지 감행하는 숫자가 한국에서도 암 수술 환자 다음으로 많다. -250

동성을 보고 사랑을 느끼는 것은 정신병에 속하지 않는다는데 이런 경우는 정신병이란다. 이런 사례를 접하는 순간이 있는데 이정도로 많은 줄은 몰랐다.자신의 모습의 불만을 가진 자들이 상당히 많구나.

왕이 되는 자

ㆍ같은 꿈을 놓고도 정반대의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뜻인지는 모른다. 어차피 왕위를 다투는 마당에 결과는 왕이 되거나 죽거나 어느 하나로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는 길을 찾는 수 밖에. 여삼의 해몽이란 결국 살길을 찾으라는 말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255

유세가. 같은 꿈을 놓고 해몽을 했지만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꿈은 꾸는 것보다 해몽이 더 중요한 것이로군. 이미 그 길에 들어선 것이라면 살 길을 찾는 것이 더 현명하다.

ㆍ뱀을 이불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 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267

나라가 망하는 징조

ㆍ깊이가 세 자쯤 되는 곳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백제는 둥근 달이요, 신라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글귀가 새겨 있었다. 무당에게 물었다.

“둥근 달은 가득 찬 것입니다. 찼으니 이지러지지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것은 차지 않은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 오르겠지요.”

왕은 화가 나 그를 죽였다. 어떤 이가 말했다.

“둥근 달은 번성한 것이요 새로 돋는 달은 미미합니다. 아마도 우리나라는 번성하고 신라는 매우 미미하다는 뜻이겠지요.”

무릇 세 치 혀를 잘못 놀려 죽음을 불러들인 이가 여기 무당하나뿐일까? 딴에는 정직하고자 애쓴 보람 없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고 말았지만, 어련히 그렇게 진행될 일에 초를 단 것도 부질 없어 보인다.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쇠귀에 경읽기도 아니다. -270

말은 이렇듯 목숨으로 갚을 수도 있다. 이미 굴러가는 상황 앞에서 하는 옳은 소리는 때로 군주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다. 여기서 유세의 어려움이 나오는 것인가?

ㆍ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다. -284

그냥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안에 숨겨진 것을 발견하면 역사의 한 단면을 발견할 수 있다. 깊이 읽기 또한 그럴 것이다.

지는 해 뜨는 해

ㆍ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 -287

비유가 너무 적절하다. 한 마디 말로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다.

ㆍ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는 아니요, 다만 그 말대로 이뤄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289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군. 항상 나쁜 일뒤에는 좋은 일이 있었으니.

ㆍ그런 면에서 일연은 오히려 올바른 김부식 팬이었다. 좋은 부분을 인용하면 그만이라는 태도가 엿보이고, 좋지 않은 부분을 놓고 비판한다거나 굳이 자기 관점에서 해석하지도 않았다. 김부식의 이 사론에서는 일연은 필요한 고세다 적절히 옮겨다 쓰고 있다. -304

진정한 팬. 사랑도 이러할 수 있다면 좋겠다.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ㆍ사실 고구려의 전성기만큼이나 우리 역사가 중국에 떳떳한 적이 드물었으며, 일본의 초기 왕실이 백제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서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상정했을 때 그 아쉬움은 커진다. -307

이런 아쉬움들은 우리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신라의 통일을 작게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 나누어져 있던 민족을 하나로 통일한 것은 분명 대단한 일이다.

ㆍ우리네 수학 여행이 늘 그렇듯이, 대충대충 견문과 불편한 잠자리가 원래의 목적을 대신하는 것이어서, 나에게 부여에 대한 인상은 결코 1300년 전 찬란한 백제의 문화로 다가오지 못했다. 무녕왕릉 때문에 온통 백제 역사를 다시 찾은 듯 들떠 있던 때였는데도 말이다. -309

수학여행. 나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가? 언젠가 중2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서울로 간다기에 (지방에서는 서울로 많이 간다) 수학여행 코스에 따른 사회 수업을 한 적이 있다. 박물관에 가면 국사책에 나온 빗살무늬 토기의 모델이 있다는 것과 들리는 사찰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대강 해서 보냈다. 다녀온 애들은 애버랜드에서 만난 은지원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ㆍ그러므로 웅진, 부여 천도 뒤의 백제 역사는, 특히 그것이 왕실과 관련된 것일수록, 늘 일본과의 교섭 관계 속에서 보아야 한다. -311

백제를 보는 시각의 제시

ㆍ오히려 민간신앙에 가까운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복수로 후보자를 올리고 그 가운데 적임자를 골라낸다는, 민주적 절차의 한 단면을 읽는다. -313

사상적 정의가 있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사 곳곳이 우리가 지식으로 말하는 문명들이 존재하고 있다.

ㆍ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가지고 민족이나 국가의 정체성 문제로 비화해서는 곤란하다. 일본 특히 왕실의 뿌리가 한반도라고 해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라고 한다거나, 한국이 종주국이라고 하는 따위의 생각은 참으로 난센스다. 한반도니 일본열도니 하는 말은 모두 후세가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그들은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당대의 생활인일 뿐이었다. 그 무렵 사람이 지금 살아온다면 그는 한반도라는 말도 일본열도라는 말도 모를 것이다. -315

우리의 관념으로 과거를 해석하는 것은 실수다. 이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자. 옛날의 이야기나 사실들은 그 때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옳다. 백제 사람들이 보기에 일본이나 신라는 똑같이 다른 나라였을 것이다.

ㆍ그 연구의 끝에 ‘한일동족’이라는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는 데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321

왕실이 그러하다 해서 민족이 그런 것은 아니다.

ㆍ흔적 지우기로 친다면야 이보다 더 한 일도 있었고, 지워질 것도 아닌 바에 저들이 줄기차게 되풀이하는 비슷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나는 그것을 일본의 자기정체성에 대한 부정이라기 보다 독립의 비원(悲願)으로 본다. -326

이미 다른 나라가 되어버린 나라들. 속해있음을,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자들이 성공리에 자료를 은폐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료를 지우면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사실임을. 그래서 그들은 그 자료를 은폐한 것이다.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ㆍ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27

맹랑하다. 독특한 아이디어를 내놓는 사람들이 있다. 그 아이디어가 실용화나 생활화가 되지는 않더라도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는 것은 사실이다.

ㆍ그러나 서동은 허무맹랑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실현 가능성 없다는 이 일을 돌파할 꾀가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327

허무맹랑과 맹랑의 차이

ㆍ서동이 쓴 방법은 노래를 통한 여론의 조성이었다. 노래에는 그 같은 힘이 있다. 민요에서는 그것을 참요(讖謠) 곧 예언의 노래 일종으로 보는데,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있던 옛 시절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사실이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일의 흐름을 바꿔놓기 십상이었다. -327

여론의 힘.

ㆍ박대받았던 자식이 오히려 어버이를 더 챙긴다는 말은 요즈음도 하지 않는가? -336

어딘가의 책에서 읽었던 말이 생각난다. 정성스레 키운 자식은 제 힘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얻어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개척해 나가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자식이 남아서 아직 다 받지 못한 부모의 사랑을 받으려 부모를 끔찍이 위한다는 것.

견훤, 비운의 영웅

ㆍ그러나 오랜 싸움은 민심을 얻는 자가 이기는 법이다. 견훤은 제 힘만 믿고 오만스럽기 짝이 없어, 갈수록 민심을 잃은 편이었고, 왕건은 그렇게 떨어진 민심을 주워담아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 능했다. -353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얻는자가 득세한다. 왕건이 고려로 통일한 원동력

신비의 왕조, 가야

흥법(興法)

불교로 보는 역사

ㆍ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것을 다루는 일연의 태도는 뭔가 자신감에 차있다. 보고 들은 것과 몸소 체험한 것이 일체를 이루는 부분이기에 그랬으리라. -385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당당할 수 있다.

ㆍ그는 <삼국사기>가 전해 주는 역사적 사실 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이상의 것이란 물론 상상이다. 그러기에 시의 형식을 택했다. 그러나 상상은 시간이라든가 구조라든가 어떤 기제(機制)에 실릴 경우 사실 이상의 사실이 된다. 한 덩어리의 이야기는 사실 이상의 사실이 넘어간 그 어디쯤에서 완성된다. 이런 생각을 <삼국유사> 전체로 확대시켜도 좋다. -392

상상. 조금 어렵다.

순교의 흰 꽃 이차돈

ㆍ전래된 순서야 이미 정해진 처여서 마음대로 바꿀 수 없지만, 그 다음의 일은 중요성에 따라 조정할 수 있으므로, 거기에 편찬자로서 일연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401

사실은 우리가 바꿀 수 없지만 그에 따른 구성은 우리의 의지가 반영될 수 있다. 책은 순서가 중요하지만 사실에 의한 순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쓰고자 하는지에 따라 구성이 중요할 것이다.

ㆍ고구려의 후반기에 도교가 번성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적는 일연의 태도는 현저히 불교와 상대적으로 비교하는 입장이다. 나라가 망한 이유가 불교를 멀리하고 도교를 가까이 한 것 때문이라는 결론에서 그 의도는 명백해진다. -414

일본 대지진에 관련한 기독교도들의 생각이 오버랩 된다. 자신의 종교에서 벗어나는 것은 힘들다. 여기서 일연의 한계가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종교에 국한된다. 일연이 가진 포용력의 크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탑상(塔像)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ㆍ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났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을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44

스쳐가는 사람을 돌아보라. 네가 모르는 것이 얼마나 인가. 너는 그 사람을 알고 있느냐? 나의 잣대로만 판단한 것은 아니냐.

ㆍ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도 해도 이루여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을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454

나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 안타까웠을 듯한 인생은 내가 나의 의지만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여 나의 특성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할 수 있는 것과 즐겨하는 것, 잘 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이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ㆍ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化身), 누구도 한 마음올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대, 미움도 질투가 피가 끓는 젊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58

ㆍ불성은 대체로 마음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법이다. 그 불성은 어떤 지식보다 나으며, 때로 기적을 나타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니, 무엇이 값어치 있는가는 이런 이야기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469

ㆍ나는 이 대목이 모두 놀라웠다.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짐승이며, 욕심을 내자면 한없을 인간으로도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장면 장면들이다. 꿩이나 그 새끼 몇 마리를 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린 어떤 메커니즘이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그런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471

보이는 자만 그 안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ㆍ그 두려운 눈빛을 보고도 총을 쏜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정작 누가 총을 쏘앗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양쪽 모두 열렬히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신은 무엇을 가르치길래 그토록 매몰찬 짓을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471

세상에서 일어나는 숱한 분쟁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들 중 과연 사명감을 제대로 가지고 있는 자는 몇 명이나 될까? 그들도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어버이인데 그 누군가의 자식이자 어버이인 사람을 쏘아 죽이는 것을 보며, 무슨 사명감이 그들을 이토록 내모는가 생각한 적이 있다. 그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 중 죽음에 담대한 자는 과연 누군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ㆍ간밤 계를 더럽혔으리라 생각하고 비웃어 주려 부득의 처소를 찾아온 박박은 막상 도착해 부득을 보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다.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이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된다. -473

결국 종교의 목적은 다들 잘 살자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닌가?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주자는 것이 아닌가? 어떤 말로 치장을 하더라도 어떤 의식을 치루더라도 결국은 나의 옆을 사랑하고 만물을 아끼자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닌가?

ㆍ‘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는 말은 평범속의 비범이다. -476

ㆍ3년쯤 세월이 흘렀다. 3년이라면 수행에 꽤 진전이 있을 기간이다. 군대 3년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때서야 총 쏠줄 알 만하니까 제대하더라고 말한다. 우리는 중학교도 3년을, 고등학교도 3년을 다닌다. 3년이라는 시간으 묘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물론 중, 고등학교도 안 다니고 군대도 갔다오지 않았을 부득과 박박이 그런 시간의 의미 속에 살았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하나의 매듭이랄까. 3년은 그런 경험을 보편적으로 주지 않는가 싶을 따름이다. -477

3년의 의미

ㆍ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쫗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ㅇ르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 주지 않았더라고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현신인지도 모른다. -481

ㆍ<삼국유사>야 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는 책이 아닌가. -486

삼국유사에 대한 사전지식이 나는 얼마나 있었던 걸까? 삼국유사-일연 객관식의 한문제를 맞히기 위해 열심히 외워 다행히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었을 뿐. 거기서 ‘시’가 등장한다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낙산사의 힘

ㆍ제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에는, 얼굴색이 곱고 나이도 어렸으며, 입은 옷도 예뻤습니다. 좋은 음식이 있거든 당신과 나누고, 얼마 안 되더라도 따뜻한 옷이면 당신과 함께 입었지요. 이렇게 살아온 지 50년, 정들어 가까워 졌으며 사랑하기 그지없어 도타운 인연이라 할만했습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곁방에 장종지 하나 구걸하자 해도 사람들은 받아들여 주지 않고, 집집ㅈ마다 돌며 부끄러움의 무게가 산과 언덕만큼이나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얼어 죽고 굶어 죽으니 살아나갈 겨를도 없는데, 부부간에 사랑이며 즐거운 마음이 들기나 하겠습니까?

고운 얼굴 아름다은 미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芝蘭)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 꼴입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 걸림돌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쌓일 뿐, 지날날의 기쁨은 적이 근심과 고통으로 자리를 내주었군요. 당신이나 나나 어찌 이다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뭇 새가 함께 주리기 보다 차라리 외짝 난새가 마주볼 거울을 가지는 게 낫겠지요.

별 볼일 없으면 버리고 됐다 싶으면 들러붙는 것이 사람 마음으로 감당못할 일, 그러나 가고 말고 사람의 뜻대로 안 될 일이요. 헤어짐과 만남 또한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쯤에서 헤어지자 합니다. -507

이리 말을 잘했으면 좋았을 걸

ㆍ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허망한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508

의해(義解)

운문사 이야기

ㆍ“평소 세상의 경전에는 익숙해 이치를 궁구하는 데는 신통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불교 공부를 하자 도리어 썩은 풀 같았다. 헛되이 유교를 공부하는 것이 실로 생애의 두려움으로 다가와” 드디어 출가한다. 곧 중국에 와서 승려가 되었다는 말이다. -515

진정한 진리를 보는 순간, 지식의 덧없음을 깨닫다. 진리는 하나이되 여러 모양을 갖추고 있다고 하였다. 성현들은 하나의 말씀을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고 하였다. 사람에게 의미를 주는 형태나 말들은 다양하다. 어느 한 사람도 같은 사람이 없기에 진리는 다양한 형태로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ㆍ막 나가는 비구 같은 이와 달리 원광은 중국에까지 유학하고 수행에 높은 경지를 이룬 사람이다. 그런 그가 생경한 외국 이론으로 무장하여 어려운 말로 떠들지 않고 이땅의 토착 신앙과 만나고 있다. 일연은 그런 원광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원광을 신라의 원광으로 고스란히 그려낸 이 대목을 읽는 일이란 참으로 신난다.

일연은, 이미 13세기에, 이 땅에 뿌리내린 불교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인식한 이였다고 보아 무방하리라. -521

진정한 지식과 지혜의 만남. 우리의 것으로 불교를 소화시킨 모습을 보게 된다. 형태만 바뀌고 진리를 같음을 원광은 알았던 것일 테다. 그리고 일연은 그러한 원광의 의식을 꿰뚫어본 것일 테다.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ㆍ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보이더라도 부분만 보인다. 그가 그린 어느 한 부분만 보이고, 그가 한 말의 어느 한 부분만 들린다. 그래서 원효에 대해서는 가지가지 이야기가 난무한다. -530

ㆍ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면서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달사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 -533

너무 큰 그 인물을 작은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서 파계가 문제시 되는 것은 아닐까?

ㆍ마구간의 거친 짚단 위에서 태어났다는 아기 예수를 연상해도 좋겠다. 거기는 스스로의 노력이 들어가지 않고도 이르는 민중의 자리 그것과 다르지 않다. 어느 성인이건 그 민중의 자리로부터 위대한 생애를 펼치지 않았던가? -534

ㆍ그런데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이 있었기 때문이다. -537

죽었다가 다시 태어날 것인가?

ㆍ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즐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543

의상, 화엄의 마루

ㆍ“지난 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고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의상의 부분에서 원효를 읽다. 사람의 마음에서 시작함을 알게 되고 그 안에서 도를 찾다.

ㆍ“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으면, 비록 풀이 가득 덮인 언덕에 금을 그어 ‘이게 성곽이다’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감히 함부로 넘지 못할 것이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지 못하면, 아무리 장성이 있더라도 재해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왕이 곧 성 쌓기를 중지시켰다.

성을 웅장히 쌓는 것만이 왕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

ㆍ나머지 차술한 것들은 없지만,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564

이런 책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ㆍ다큐멘터리 사진의 그 투박함으로 가급적 현장을 현장 그대로 잡아낸 한 장 한 장이 진실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내게는 있다. -571

자신의 버릇, 단점이라고 보일 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ㆍ사실 그 샘이 일연이 보았다는 그것 그대로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닐 가능성이 더 크지만 자리는 분명 그 자리일 테고, 샘을 이 절이 생겨난 유래와 성격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상징물이다. -601

보수라는 이름으로 옛 것들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문제.

신주(神呪)

밀교의 한 자락

ㆍ다만 더 극적이어서 가치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평범함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자(尊者)들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의 출가자들 속에 연면히 내려오는 출가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04

평범함을 낮게 평가하는 것은 아니나 깨달음을 얻은 자들을 따라가 볼 필요는 있다.

ㆍ새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607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감통(感通)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ㆍ원체 감동스러운 모습은 우리에게 바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623

ㆍ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불쌍한 어린 아이에게 베푼 덕이 곧 내게 해준 일이라고, 세상에서 예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사람에게 말한다. 아마도 예수님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위로하자는 차원에서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크건 작건 실펀의 문제다. 이론으로서 받아들인 철학을 넘어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실천 원리로 불교가 신라 사회에서 자리잡혔음을, 우리는 이 같은 짤막한 삽화속에서 읽을 수 있다. -623

실천. <성서>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삼음으로써 다른 한 쪽이 생각할 수 있는 불만(?)을 포용하고 있다.

ㆍ거창하게 모임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근엄한 예불을 올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껌데기 미타 신앙이 가려진 허위 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자는 목적이라기보다, 제 육신을 잊고 끝내 버리고만 욱면이라는 ‘평안한 시기의 부유한 층’의 계집종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627

ㆍ그러기에 이야기의 주인공은 엄장이다. 그리고 그는 엄벙덤벙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인물일 것이다. 광덕은 치밀하고 정성스레 예불하여 목적한 바를 이룬 점에서 의상을 닮았다면, 엄장은 실수 투성이의 원효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래서 더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630

친밀감. 우리네와 같은 모습의 사람이 이뤄내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기회를 갖게 한다.

ㆍ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았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사람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633

ㆍ이 조의 분몬과 찬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절의 재신을 몰래 훔친 여자의 부모, 저승의 일을 알지 못하는 그들은 곧 욕심 가득한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선율의 환생은 그런 그들에 대한 경계이지만, 사실 살아 돌아와 저승의 일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욕심이 화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636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ㆍ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제, 단순하기많나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656

찾는 이의 책임. 보았으되 보지 못했을 수도 보지 않았을 수도 있다.

ㆍ사실 어느 것이 더 세련되고 발전된 형태냐를 따지는 일은 우리 같은 이에게 중요하지 않다. 거기에 신라 사람들이 새겨 넣은 불심을 더 아름답게 보기 때문이다. -658

ㆍ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선시키라는 조각가의 배려가 있지 않겠습니까. -659

미완성이라 생각하는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부족한 듯 보이는 그 자체로도 완성일 수 있다.

ㆍ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니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670

우리는 지금 어디쯤에 있는가?

피은(避隱)

숨어 사는 이의 멋

ㆍ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慕情)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그 길을 간 사람들에게는 뭔가 곡절이 다르지 않을 수 없다. -672

ㆍ여기 뿐만이 아니라 <삼국유사>의 다른 많은 부분들도 이렇디 않을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는 일연이 곳곳에서 머물 때마다 써 준 메모들의 집합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682

메모의 중요성. 메모하자 하면서도 머리로 기억하고 또 잊어버리고 중요성을 깨닫는다.

효선(孝善)

불교가 보는 효도

ㆍ어떤 책이거나 거기에는 그 책만의 이념을 가지고 있다. <삼국유사>의 이념이 불교일 뿐이다. -688

책이 치우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일연은 승려이고 그러기에 그가 쓴 글에는 불교의 향이 깃들여 있을 수 밖에 없다.

ㆍ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를 받는다는군요. 저를 생각해 보니, 분명 쌍하 놓은 선행이 없어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 것 같아요. 이제 또 시주하지 않으면 다음 세상에서 더욱 힘들어지겠지요? -695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신을 원망하는 모습들을 반성하게 된다.

항가, 가장 고위한 것의 정화

ㆍ좋은 시인은 좋은 시를 쓰기도 하지만 좋은 시를 알아볼 줄도 안다. 일연은 분명 그런 시인이었다. -707

조금만 알아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ㆍ예나 이제나 윗사람을 흠모하는 정을 담아내기란 쉽지 않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리며 흠모하는 정을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충담사의 시 쓰는 솜씨는 탁월했다. -711

일연, 혼미속의 출구

괴승(怪僧)이 된 시비

ㆍ우리는 일연을 그 생애의 화려한 경력 때문에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존경해 마지않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 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비록 작은 나라로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그는 민족의 자존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그것을 그는 불교적 인식 세계에서 불국토(拂國土)사상으로 이었으며, 만년에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麟角寺)에 처저하면서 정리한 <삼국유사>에 여실히 표현해 놓았다. -728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ㆍ이 책이 히트치기만 바랄 뿐이다. -744

누구나 가지는 소망을 글로 적기란 이렇듯 내보이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나도나도~

IP *.23.188.173

프로필 이미지
쭈니옵
2011.05.09 17:32:51 *.35.224.204
다 읽어내기도 헉헉거리는데...................고생이 많수다..........emoticon
프로필 이미지
루미
2011.05.10 04:11:34 *.23.188.173
글을 올리면서도 생각한답니다
이걸 누가 다 읽겠나????
프로필 이미지
선 ^^
2011.05.10 14:26:42 *.230.26.16
왜요, 열심히 읽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걸요? ^^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 해동안 차곡차곡 읽어 모은 글귀들이 내년에 살아움직인다는 거!
제가 요즘 실감하는 마법이랍니다.
지금처럼 열심히 읽고 즐거이 정리하시길,
또 힘들더라도 좋았던 글귀에 메모를 덧붙여 남겨놓는 것이 더욱 끝내줍니다.
그때 그 생각의 꼬리를 잡고 더 많은 것들이 풀려나가는 매력을 맛보는 것, 참 좋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6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 글/ 양진 사진 세린 2012.09.11 2566
55 삼국유사 레몬 2012.09.11 2707
54 (우리가정말알아야할)삼국유사 -고운기- file [1] [1] 장재용 2012.09.11 5369
53 #19_우리가 알아야할 삼국유사, 고운기 서연 2012.09.11 2034
52 # 19 우리가 알아야 할 삼국유사 file [1] 샐리올리브 2012.09.11 3169
5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1] id: 깔리여신 2012.09.11 2997
50 #19. 삼국유사(일연 원저)_고운기_Review 한젤리타 2012.09.10 2211
49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두번읽기) 루미 2011.05.23 2556
48 08.<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_두번째> 고운기 강훈 2011.05.23 2157
47 8.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두 번 읽기 file 미선 2011.05.23 1920
46 [북리뷰 008] 고운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두 번 읽기 file [1] 김경인 2011.05.22 4615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 [3] 루미 2011.05.09 2475
44 6th Review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북리뷰 file 사샤 2011.05.09 2547
43 6.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file 미선 2011.05.09 1891
42 [북리뷰 006] 고운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file 김경인 2011.05.08 4376
41 [리뷰6] 우리가정말알아야할 삼국유사_고운기 file 양경수 2011.05.08 4195
40 06.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 고운기 file [2] 미나 2011.05.08 2665
39 06.<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 file 강훈 2011.05.08 2010
38 북No.6 - 고운기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file 유재경 2011.05.07 4468
37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고운기,양진 미옥 2010.05.11 2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