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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3일 00시 27분 등록

1. ‘저자에 관하여’

작가..jpg
 
 고운기는 삼국유사 전문가로 불린다. 어쩌다 삼국유사를 공부하게 되었고, 700년 전에 쓰인 역사책 한권을 붙잡고 2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내며 삼국유사 현장을 다녀보니 어느덧 할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 우리를 미소 짓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하는 정경이 가득 펼쳐진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의 최종목표는 오직 하나, 삼국유사를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보편화하는 것이다.
그가 삼국유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학위논문으로 향가를 선택했고, 향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기 위해선 삼국유사라는 텍스트와 작가인 일연에 대해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삼국유사는 ‘길 위의 책’이라며 일연의 현장감각을 높이 평가한다. 일연은 하찮은 현장이라도 직접 둘러보고 생생한 기록으로 남겼다. “일연은 현장감각으로 지배층 뿐 아니라 백성들의 삶을 담아냈습니다. 봉건시대의 역사가가 민주의 생활사를 담은 역사서를 썼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업적이죠.” 그도 일연처럼 책을 쓰기 위해 현장을 누비고 다녔다. 지역을 둘러보고 그 지방에서 전승되는 설화가 삼국유사 이야기와 딱 맞아 떨어질 때 그가 받은 희열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책으로만 보고 머리로만 상상했던 모습을 현장에서 직접 발견하는 기쁨, 저자였던 일연스님 역시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경험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그를 끊임없이 삼국유사 이야기가 녹아 잇는 무대를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깨닫고,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이 책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그는 13세기에 쓰여진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21세기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보고 싶다고 하며 아직 자신의 삶에 있어 삼국유사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서문에 작가는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방부제를 친 통조림이라고 한다면 『삼국유사』를 방금 따낸 과일이나 방금 캐낸 채소에다 비유해 본 적이 있다며 자신은 여기 서툰 요리사로 나섰다고 말하고 있다. 그로 인해 세상 보는 눈이 조금 열렸고, 그 때문에 혁명가의 화두 또한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삼국유사』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스스로 이끌게 해주는 시발점이 되었고, 자신만의 신화를 만들어 가며 영웅의 길을 개척하며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토대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작가는 시리즈 제목 ‘스토리텔링 삼국유사’ 아래 첫 번째 책 ‘도쿠가와가 사랑한 책’을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15권을 낼 계획이라고 말하며 지난 해 두 번째 책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 이 나왔다. “한국이 커지고,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 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질 것입니다. 거기에 답하려면 우리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데 삼국유사만 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라고 한다. 이런 작가의 노력으로 우리는 삼국유사를 통해 우리 안에 흐르는 정서를 알 수 있게 되고 그로인해 어느 나라 못지않은, 나무랄 데 없이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됨으로써 우리 문화의 자긍심을 느끼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빔밥                                -고운기-

혼자일 때 먹을거리치고 비빔밥만한 게 없다
여러 동무들 이다지 다정히도 모였을까
함께 섞여 고추장에 적절히 버물려져
기꺼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러 간다
허기 아닌 외로움을 달래는 비빔밥 한 그릇
적막한 시간의 식사
나 또한 어느 큰 대접 속 비빔밥 재료인 줄 안다
나를 잡수실 세월이여, 그대도 혼자인가
그대도 내가 반가운가

20여년의 세월을 『삼국유사』와 함께하면서 작가도 외로울 때가 있었겠지...?

[참고]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0208819
http://blog.naver.com/mintkm?Redirect=Log&logNo=70108830069
http://news.donga.com/3/all/20091210/24692244/1


동영상 - 경주인들이 새긴 다양한 부처의 모습
http://www.youtube.com/watch?v=RNkt48M-Fv0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편암함이나 어떤 위험이 어떤 날에는 서로 기대는 친구가 되고
즐거움이나 고통이 닥치거든 두루 맛보아야 하는 것

기이(紀異)

이 땅의 첫 나라
 
 
누구나 흔하게 생각하는 것이기에 자못 중요하게 쳐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삼국유사』의 단군 신화 등재(登載), 그것도 첫머리에 자리 잡은 일이 그렇다. [12]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늘 큰 나라가 만든 규범을 좇아가야 했던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 잡는다. [12]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3세기 일연 같은 이는 그 점을 간파했던 사람이다. 한편 비애스러운 그러나 풍부한 이야기의 세계가 거기서 만들어진다. 상징으로 그리는 역사를 옳게 읽자면 독자는 상상력을 써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다른 한편 즐겁기도 하다.
➜ 상상력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또 다른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을 모두 하자면 에둘러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단군 신화는 『삼국유사』를 가치 있게 만든, 그래서 그 저자인 일연을 일약 민족주의 사학자로 만든 데서 그 의미가 끝나지 않는다. 상징의 체계로 들여다 볼 때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wmf거운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오롯이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 [14]

다시 말하지만, 일연의 단군에 대한 관심은 신화로서가 아니라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22]]

사실 『삼국사기』는 한반도에서 살았던 지식인층이 중국으로부터 문자와 그와 관련된 여러 문화를 전수 받은 다음, 이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음을 보여 주는 책이다. [22]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향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23]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좋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 이었다. [23]
→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아무리 좋은 것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없어지고 그 틀만 남아버리면 아무리 좋은 것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구려와 북방계

난생 신화(卵生神話)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 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43]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영웅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대체로 이 같은 유형으로 지어지는데, 아마도 그 원조는 주몽의 이야기가 아닐까? [45]
→ 캠벨의 이야기들이 다시금 생각나 그저 신기할 뿐이다.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도 영웅이야기의 시작이 비슷하다는 것은 한 뿌리에서 모든 것들이 퍼져나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라계와 남방계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앞서 환웅과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가 직접 왕이 된다든지 왕이 될 아들을 낳는 것으로 북방계 민족과 나라의 출발을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57]

무당의 탄생 내력을 담은 이야기는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와 사촌 간처럼 가깝다. 그것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왕건과 신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데에서 연유한다. 삼국의 건국 신화 가운데 신라 쪽이 유독 무조 신화나, 민간전승의 신모 신화에 가까운 것은 왕실의 성격이 곧 거기에 기반을 두었다는 강한 증거다. [68]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정말로 간사스런 꾀다. 실제 자기 것을 꾀를 내어 다시 찾았다면 지혜스럽다고 하겠으나, 남의 것을 빼앗은 것과 마찬가지니, 이 이야기만 놓고 본다면 우리는 탈해의 인간성을 그다지 탐탁하게 볼 수 없다. 주몽이 동부여 왕실의 좋은 말을 차지하려 썼던 꾀보다도 더 심하다.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78]

→ 신화가 나와는 너무 먼 나라 이야기로 다가 온다면 설화는 그럴 법 하다로 다가온다. 세계 곳곳에 있는 이런 설화 이야기들은 한데로 모아보면 정말 지구촌이라는 말이 몸으로 다가 올 수 있을 것 같다.

머나 먼 이역(異域), 아니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올라 와 입신양명(立身揚名)한 탈해. 우리는 여기서 탈해가 비록 왕위에 오르고 그 후 손들어 석(昔)씨 성으로 몇 차례 더 왕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기존의 세력에 둘러싸여 늘 불안해했던 것 같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권력의 자리란 차지하기도 이어 나가기도 어려운 것인가? 탈해의 고민이 깊었음은 분명하다. [86]
➜ 차지하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인지도 궁금한 마음이 든다. 탈해라면 왕위에 오른 뒤에도 일어나게 될 여러 일들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권력이란 그런 것일까? 그런 두려움도 뒤로 물러나게 하는...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어들면 곤란하다. 이런 주장들이 대체로 처음에는 잃어버린 우리 역사를 찾는다는 그럴 듯하면서 거창한 명제 아래 시작한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건너왔다.’는 대목에 이르면 김일 선수 박치기를 보듯이 흥분하고, 흥분하다 보면 사실과 상상을 혼동하며, 나아가 그렇게 흥분하는 심리란 열등감의 역설적 표현에 지나지 않아 보여 뒷맛이 개운치 않다. 살아 있는 역사란 그런 의미가 아닐 것이다. [92]
→ 과거에 침략을 너무 많이 받아 왔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리적 바탕에는 열등감이 깔려있다는 말을 들었었다. 특히나 일본하면 더욱 민감해 지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열등감을 잘 이용해서 지금보다 나아지려는 쪽으로 돌리게 할 수 있다면 유익하게지만 그것을 단순히 분노하고 배척하는데 만 사용한다면 스스로를 찌질 하게 만들 뿐 남을 게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그런 쇼나 각본으로 비유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아득한 옛 역사를 말하면서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너무 긴장한다면 결론이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 쉽다. 프로레슬링을 진짜 격투리라고 생각한 우리에게 잃어버린 것은 재미요 남은 것은 공허감이지 않았던가? 역사 또한 그래서는 안 된다. [92]

일관이 이르기를 ‘일월지정(日月之精)’ 이라 했다. ‘정’을 편의상 ‘정령’이라 번역했는데, 이 의미에 주목해보자. 해와 달은 빛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없듯 해와 달이 빛을 잃으면 쓸모없는 물건이 된다. 그러나 빛이 있다고 다 보는가? ‘눈 뜬 소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본다는 것은 그 정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연오와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이었다. 그들이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을 정치적 의미로만 풀어서는 곤란하다.(...)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100]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사람으로 바뀐 이 같은 이야기 구조는 『삼국유사』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이 곰이 사람으로 바뀌는 단군 신화에서 시작하여 호랑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바뀌는 김현(金現)의 전설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지만,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 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 [101]

문득 그 정령은 먼 다른 나라로 갔다. 그런데 정령의 존재를 알고 서둘러 따라온 신라 사람들을 우리의 아리따운 정령들은 맨손 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우리 설화의 기본적인 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수천 년을 이 땅에 자리 잡고 살아온 우리네 사람들의 심성이기도 한다. [102]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112]

만파식적(萬波息笛)에 대해서는, 이 신령스런 피리가 단순히 외적(外敵)을 막는 데만 쓰이지 않고,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치료되며,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홍수 때는 맑아지며,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진다”고 하였다.

일연의 눈은 보다 더 크고 궁극적인 데로 향하여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도 걸리게 했다는 점만 유의하기로 하자. [119]

밤에 찾아오는 손님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 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 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120]
→ 뭐든 저절로 되는 것은 없다. 큰 사람들 또한 그들이 잘나기만 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사람들을 보는 눈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과 잘 융화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137]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140]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 데서 더욱 커진다. 불교가 먼 나라에서 전래된 이방 종교가 아니라, 이미 전세에 인연을 마련한 우리의 종교라고 생각한 신라인들의 본지수적·불국토 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밑바탕이었다. [144]
➜ 새로운 것을 받아들임에 있어 비워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중심을 가지고 있느냐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아상(我相)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 [147]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149]
➜ 힌트가 전혀 없다고 아쉬워할 것이 아니라, 어디에 힌트가 숨겨져 있는지 찾아보는 것이 먼저인가 보다.

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려야 했던 신라다.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153]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신라의 전반기가 박제상과 이차돈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면, 그 중반기가 김유신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161]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문무왕이 왜병을 무찌르고자 이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바다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개요 2년(682년)에 일을 마치고, 금당의 아래를 밀어 동쪽으로 구멍 하나를 뚫었거니와, 이는 용이 절에 들어와 돌아다니게 마련한 것이다. 유언대로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이라 이름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다. 뒤에 용이 나타난 모습을 본 곳을 이견대(利見臺)라 이름하였다.

문무왕과 신문왕 그리고 감은사와 대왕암·이견대의 관계가 명백히 나타나는 부분이다. 금당 아래의 동쪽에 구멍을 낸 감은사. 용더러 다니라는 통로를 만들어 준 것이라니,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즐겁고 소중한 느낌이 가득해진다. 부자간의 짝짜꿍이 잘 맞아도 이렇게 잘 맞을 수 없다. [186]
➜ 나 또한 이 부분이 부자간의 정이 느껴져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상징의 핵심은 고장난명(孤掌難鳴)이었다고 해야 할까? 천하를 상서롭게 다스리고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런 소망의 결정(結晶)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문무왕은 바다를 지키는 용이, 김유신은 하늘을 지키는 별이 되어, 신라와 거기 사는 백성을 영원토록 평안히 해준다는 믿음 또한 거기 가세한다.

그것을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배’ 인지 모른다. [189]

권력의 끝

가 버린 봄을 그리워하자니 모든 것이 울어야 할 슬픔

아름답게 빛나시던 그 모습을 갈수록 스러져 가도다

눈 돌릴 사이 만나보기 어찌 이루랴

님 그리는 마음이 가는 길 다북쑥 구렁에서 잘 밤 있으리

가 버린 봄을 돌이키자니 울고 싶을 따름이다. 더불어 심신을 수련하고, 죽을 각오로 누비고 다니던 전당의 피비린내와 말없는 산천이 떠오르기도 했을 것이다. 님 그리는 마음은 다북쑥 구렁에서 잠을 자야하는 현실의 고단함, 또는 이 생을 마치고 돌아가면 한줌 흙 위에 피어날 풀과 꽃들만도 못한 무상함 앞에서 슬픔만 더할 뿐이다. [213]
→ 이때의 화랑들을 생각하면 정말 인생의 덧없음이 무엇인지 느껴진다. 나라를 위해 온 몸 바쳐 일했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더할 수 없이 쓸쓸한 말년뿐이었다. 문득 지금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씁쓸해진다.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꽃을 사랑하는 여자 수로부인, 그리고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천연덕스럽게 요구하던 여자 수로부인, 그가 잡혀 들어간 바다 속은 바닷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발을 굴러야 할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정반대였다. 용이 데리고 나오지 않았으면 부인이 자원해 살겠다고도 했을 법하다. [232]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233]
→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들이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첫 성전환증 환자

일견 평범해 보이는 표현의 내면의 속 깊은 울림이 있다. 구태여 요란을 떨지 않는 것이 진정성에 가까운 법이다.
➜ 요즘처럼 더없이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는 세상 안에서 요란을 떨지 않고 살아가면 왠지 내가 이상한가? 하는 생각이 들게도 한다.

생사의 갈림길 여기 있으니 두려웁고 “나는 갑니다” 말도 못하고서 갔는가

어느 이른 가을바람 끝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은 모르겠네

아, 미타찰 세상에 만날 나는 도 닦아 기다리리 [241]

사실 이 시는 여덟째 줄까지 평범한 인간이 토로할 슬픔을 절제된 감정 속에서 마음껏 뱉어놓고 있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라면 승려의 신분으로 주책 맞을 일, 아홉 번째 줄에서 감탄사를 길게 뺀 다음 흩어진 감정을 추스린다. 이는 향가라는 시의 형식이 가진 특장(特長)이기도 한다.

다시 만날 것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야말로 구도자이면서 시인으로서 월명사가 택할 최선의 길이다. 그 지점이 곧 한 편의 시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242]

구불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 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믿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247]
➜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면 무엇이 더 필요할까 싶다.

왕이 되는 자

기울어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기란 차라리 새로운 나라를 열기보다 더 힘든 일이다. [261]

그 자신이 아무리 덕을 갖추었다 한들, 이미 시대가 급격한 소용돌이 속에 빠졌는데, 늘 행운만 따르기를 바랄 수는 없었다. 대단한 능력을 타고나서 어떤 고난이라도 헤쳐살 사람이라도 시대의 운이 뒷받쳐 주지 않으면 대체적으로 결과는 비극을 향해 간다. 그래서 운명적으로 소용돌이의 중심에 던져진 사람은 그 세계관이 비극적이다. 경문왕이야말로 그런 비극적 세계관의 주인공이다.
→ 스스로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결국 세상을 벗어나서는 소용이 없는 일인가 보다. 한편으론 사람이 잘 나봐야 얼마나 잘났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뱀을 이불 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267]

나라가 망하는 징조

한 집안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듯이, 나라도 흥하고 망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을지언정,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대체로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과학적 증명이나 운수소관을 따지기가 거기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269]

무릇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려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인 이가 여기 무당 하나뿐일까? 딴에는 정직하고자 애쓴 보람 없이 비명횡사(非命橫死)하고 말았지만, 어련히 그렇게 진행될 일에 토를 단 것도 부질없어 보인다. 무엇이 올바른지 판단하지 못하는 자에게 옳은 충고란 소귀에 경 읽기도 아니다. [270]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보다 실로 더 억울한 일은 따로 있다. 백성이야 어차피 어떤 나라가 서도 백성, 제 정권 지키자고 혈안이 된 자들에게 당하는 백성의 희생을 우리가 진정 안타까워하는 것이다. [271]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277]
➜ 인재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이 하는 일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는 것 같은 그 인재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일연의 기술의도를 읽을 수 있다. 신라 헌강왕대는 사치가 극성했지만 바야흐로 기울어 가는 시기였다. 그 같은 사회는 필연코 성적으로도 문란하기 마련, 엄연한 유부녀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이 장면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을 수 있다. 처용의 노래와 춤은 그 같은 비극 앞에서 체념한 것일까, 에둘러 꾸짖는 것일까?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더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삼국유사』다. [284]

나라가 망하는 징조를 무슨 신나는 일이라고 장황히 적었을 리는 없다. 그러나 기미(機微)를 보아 사리(事理)를 판단하는 법이다. 시절은 바뀌었어도 사람이 세상에 사는 한 언제든 잘 되고 잘못되는 징조가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거기서 기미를 읽어내라는 간절한 충정으로 보인다. [286]
→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자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 말을 들을 준비가 안 된 자들로만 가득차 있다는 것이 더 슬픈 일이다.

지는 해 뜨는 해

그러나 돌이켜 보면 아쉬워한들 무엇하랴.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고, 적재적소에 등용하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있는 인재마저 죽이는 상황이 반복될 때, 거기서 우리는 한 나라의 멸망을 명확하게 예언할 수 있을 뿐이다. [288]

억울한 일을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단박에 하늘이라도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이 간절해도, 끝내 가슴에 묻어야 할 답답한 현실이 엄연하지 않던가?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나,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는 아니요, 다만 그 말대로 이뤄진 경험을 해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쪽이다. [289]
→ 누구에게나 반드시 이르는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 참 씁쓸하게 느껴진다. 특히나 근래 몇 년 동안 일어난 일들을 보면 사필귀정, 세옹지마 이런 말들이 다 무의미해 보인다.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27]

서동이 쓴 방법은 노래를 통한 여론 조성이었다. 노래에는 그 같은 힘이 있다. 민요에서는 그것을 참요(讖謠) 곧 예언의 노래 일종으로 보는데, 매스컴이 발달하지 않았던 예 시절에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사실이 어떤 가와는 상관없이, 일의 흐름을 바꿔놓기 십상이다. [327]

영웅은 자기가 타고난 비범한 재주로 고난을 극복해 낸다. 서동은 이웃 나라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으로 그 첫발을 내딛고 있다. 첫발치고는 통도 크다. [330]
➜ 그 재주를 알아채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기에 영웅의 길로 들어설 수 있지 않았을까?

서동은 비범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지만 귀하고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공주를 꾀어내는 꾀도 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후천적인 교육의 중요성은 여기서 발휘된다. 공주는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완전한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다. [333]

거기에 제3의 조력자(助力者)로 지명법사가 등장한다. 그의 도움은 서동과 공주 두 사람만의 조화에서 공주의 부모까지 아우르는 화해로 확대되고, 왕이 되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이런 것들의 조화가 빚어내는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여기서 등장인물을 적절하게 배역시킨 한편의 완벽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334]

대체적으로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343]

견훤, 비운의 영웅

반역을 당한 자는 비참하지만, 반역자가 아들인 경우엔 슬픔은 이중으로 겹쳐오고, 급기야 천륜을 팽개친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 삼기에 어디에도 없을 지경을 만들어 낸다. [261]

신비의 왕조, 가야

먼 뱃길을 지켜 주는 수호신은로서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항해(航海)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찬란한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苦海)가 있다. 그 길을 지켜주는 석탑.

절에는 어느 곳에나 석탑을 세운다. 그 탑의 의미가 여러 가지나, 절을 고해에 떠가는 배로 비유한다면 탑은 여기 왕후가 싣고 왔다는 그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378]

흥법(興法)

불교로 보는 역사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 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394]

순교의 흰 꽃 이차돈

오늘 우리는 사실을 따지는 것이 중요할까, 사실이 무엇인지 거기 실린 순교한 자의 마음을 고이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까? [407]
→어차피 먼 과거의 일에 대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사건이 그 시대의 어떤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우고 현재에 그것을 대입해 보아 어떤 것을 유념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거리를 주는 것이 역사의 역할이 아닐까?

탑상(塔像)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하루해를 온전히 받아 모신 신라의 돌에 등을 기대었을 때, 그 돌이 소근 거리는 말을 저는 잊지 못할 겁니다. 너의 등을 덮어 주려고, 너의 영혼을 위로해 주려고 천 년을 기다렸단다. [417]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 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44]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데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 게 아닐까? [454]
→ 내가 뭔가에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만큼 나는 지치게 되는 것 같다. 차라리 그 의도를 비우고 나의 마음을 비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연을 만나게 될 때 진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마음이 찾아갈 정처(定處)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우리는 질투와 미움의 화신(化身), 누구도 한 마음으로 즐겁고 깨끗하게만 살 수 없다.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걷잡지 못할 미움, 그것이 기실 누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서 생긴 문제일진데, 미움도 질투도 피가 끓는 젊음이라 변명하는 동안 영혼 깊은 데에서는 상처만 커간다.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58]
➜ 그 정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에게서 생긴 문제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처를 굳이 찾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릎이 헐도록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고 빌어 두노라

일천 개 손 일천 개 눈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둘 없는 내라

한 개사 적이 헐어 주시려는가 아, 나에게 끼치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천 개의 눈에서 한 개만이라도 내 소원을 들어 주기 바라는 지극한 마음이 노래에 스며 있다. 그러면서 짐짓 희명은 엄포처럼 마지막 줄을 맺는다. ‘어디에 쓰질 자비이기에 여기서 들어 주지 않으시려는가’ 라고. [459]

자신들이 믿어마지 않는 어떤 절대자에 대한 꾸밈없는 흠모는 이런 기적을 낳게 한다. [466]

더욱이 거기에서 자신은 죽더라도 새끼들은 지키겠다는 어미 꿩의 애타는 모습이 충원공의 마음을 흔들었다.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은 매의 모습이 더욱 감동적으로 겹쳐졌을 것이다.

나는 이 대목이 모두 놀라웠다. 한낱 짐승으로도 자비를 아는 짐승이며, 욕심을 내자면 한없을 인간으로도 깨우침의 무릎을 꿇을 줄 아는 사람이 어우러진 장면 장면들이다. 꿩이나 그 새끼 몇 마리를 살렸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을 살린 어떤 메커니즘이 중요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우리 조상들은 그런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 [470]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2000년 가을, 중동의 예루살렘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다시 벌어졌었다. 그 현장을 전하는 텔레비전 뉴스에 눈길이 머물렀던 사람들은 날아오는 총탄을 두려워 떨고 있는 한 소년과 소년을 지키려고 온몸으로 막고 있는 아버지, 그러나 사격을 중지해 달라는 아버지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결국 배에 총을 맞고 아버지의 품에서 숨져가는 소년을 보았을 것이다.

그 두려운 눈빛을 보고도 총을 쏜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짐승도 아니다. 정작 누가 총을 쏘았는지 서로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했지만, 양쪽 모두 열렬히 신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그 신은 무엇을 가르치길래 그토록 매몰찬 짓들을 하는 것인지, 나는 그것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굴정현의 꿩 모자가 마치 소년 부자의 이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 꿩 식구들을 살린 조상을 가진 후손은로 우리는 그나마 착한 사람들일까. [471]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나는 마음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473]
→ 그 원칙이 무엇이길래 저버리지 못했던 것일까? 나를 지탱해 주리라 믿었던 것이기에 진정으로 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이 내 눈앞에 제 발로 찾아왔을 때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겠지.

“기름진 밭에 풍년이 들어 무척 남는다 해도, 옷과 밥이 생각하는 대로 이르러 저절로 배부르고 따스함만 같지 못할 것이요. 부인과 집이 진정 좋다 하나, 연꽃 핀 연못가와 꽃밭에서 천성(天聖)들과 함께 놀며 앵무새며 공작과 어울려 함께 즐김만 같지 못할 것이네. 하물며 부처님을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아야지. 지금 우리들은 이미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으니, 세상에 묶인 끈을 벗어 버리고 더할 수 없는 도를 이루어야 하네. 먼지 날리는 세상에 코를 박고서야 어찌 세상의 무리들과 다름이 있겠는가?” [475]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 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476]

박박은 하나만 생각했다면 부득은 최소한 둘 이상을 생각한 것이다. 수행자의 초심을 흔들지 않으려는 박박의 태도도 뜻이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부득의 태도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박박의 교조적(敎條的) 외통수와 부득의 현실적 융통성이라고나 할까? [479]

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쫓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 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 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을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 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헌신인지도 모른다. [481]

사람살이의 고통이 무엇이며 역사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하고, 그것은 뜻밖에도 그가 쓴 찬이나, 인용해 놓은 다른 민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삼국유사』야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는 책이 아닌가. [486]

낙산사의 힘

그가 관음보살인줄 알았건 몰랐건 만나기는 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에서 박박의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까. 만났으면서도 만난 줄 몰랐을 뿐이다. 그런 뜻밖의 만남이 곧 보살과의 만남임을 영원히 모르고 지났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의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 어떤 큰 사건으로 인한 큰 깨달음을 통해서만 삶의 전환점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니듯 꼭 큰 인물이 아니어도 우리들 삶에 조력자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열린 눈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삶을 넓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의상이 치밀하고 정성스럽게 진신을 만나는 과정은 하나의 전범을 보여 주지만, 세상에 사는 보통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같은 경지에 오르기도 어렵고, 그럴 계기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에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나는 이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 한 만남’이라 명명하였다. 이런 만남은 오히려 지극히 인간적이다. [497]

한단지몽(邯鄲之夢),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끓는 솥단지 앞에서 따뜻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 하는 온갖 영고성쇠(榮枯盛衰)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505]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허망할 줄 모르면서 이전투구(泥田鬪狗)하고, 알면서도 뭔가 이뤄보려 악착을 부리는 게 우리네 평범한 사람이다. [508]
➜ 허망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착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정말로 궁금하다.......

의해(義解)

운문사 이야기

운문은 구름의 문, 아마도 운수(雲水)의 숙명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잠시 머무는 곳인가,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 [527]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던가 보다. 스스로 파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의 그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바탕으로 극복되는 초월의 단계다. 원효가 오늘날의 원효가 된 것은 바로 이 같은 변증법적 정반합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537]

“지난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든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아,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三界)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551]

의상, 화엄의 마루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으면, 비록 풀이 가득 덮인 언덕에 금을 그어 ‘이게 성곽이다’라고 하더라도 백성들이 감히 함부로 넘지 못할 것이고, 재앙을 소멸시키며 복을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의 정치와 교화가 밝지 못하면, 아무리 장성이 있더라도 재해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563]

의상은 이에 열군데 사찰에 가르침을 전했다. 태백산의 부석사, 원주의 비마라사, 가야의 해인사, 비슬산의 옥천사(玉泉寺), 금정의 범어사, 지리산의 화엄사 등이 그 곳이다. 또 『법계도서인(法系圖書印)』과 「약소(略疏)」를 지어, 만물이 모두 성불(成佛)하는 요체를 묶어냈다. 이 책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귀감이 되었으며, 다들 다투어 소중하게 여겼다. 나머지 찬술한 것들은 없지만, 솥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한 것이다. [564]
➜양을 채우려 애썼던 시간들에 반해 더 중요한 내실을 다지는 데는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나는 거기서 참으로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모진 것과 다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벼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데서 생긴 모짐이다. 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571]
→ 삶의 매 순간을 그것이 어떠한 상황이든에 상관없이 진실로 살아가는 사람들만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호남 출신의 스승은 충청 출신의 제자를 키우고, 다시 그는 영남 출신의 제자를 키우는 이 3대. 이 3대를 묶었던 것은 『점찰경』과 간자(簡子)지만, 그 이상의 다른 의미는 없을까? 민족과 전쟁과 화합-이런 말들이 내 머리 속에는 오가고 있다. [582]

신주(神呪)

밀교의 한 자락

하루는 자기 집 동쪽 시냇가에서 놀다가 수달 한 마리를 잡았다. 살을 발라내고 뼈는 동산에다 버렸다. 아침에 보니 그 뼈가 없어졌다. 핏자국을 따라 찾아보자 뼈는 제 굴로 돌아와 새끼 다섯 마리를 안고 쭈그리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오랫동안 놀라워 하다가 깊이 탄식하며 머뭇거렸다. 문득 속세를 버려 출가하기로 하고, 이름을 바꾸어 혜통이라 했다. [604]

평범한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자(尊者)들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의 출가자들 속에 연면히 내려오는 출가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04]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이렇게 버림받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후세의 눈 밝은 사람이 필요한지 모른다. [607]

감통(感通)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그런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분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 사회의 고갱이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기록에 나타난 ‘우리나라 첫 번째 스트리퍼’라고, 나는 이 대목을 농담처럼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 농담 속의 진담을 아는 사람은 다 알리라. [623]

거창하게 모임을 만들고 절을 짓고, 근엄한 예불을 올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은 찾아오지 않았다. 껍데기 미타 신앙이 가진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자는 목적이라기보다, 제 육신을 잊고 끝내 버리고만 욱면이라는, ‘평안한 시기의 부유한 층’의 계집종에게 초점을 맞춘 이야기에서,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위안과 격려를 받는다. [627]

계집종의 성불에 자극을 받은 귀진은 자기 집을 내놓아 절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적어도 그것은 껍데기가 아닌 진짜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 아닌가. 신라 사회의 힘이다. [628]

광덕과 엄장 두 사람은 약속한 바가 있었다. 광덕이 그 약속을 지키는 사이 엄장은 한눈을 팔았다. 아미타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기야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한 사람과 현실의 삶에 고단하게 매인 사람은 마지막의 자리가 서로 멀다, 그러나 엄장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내였다. 늦게나마 생각을 바꾸고 성실히 수행하여 마침내는 친구의 뒤를 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광덕과 엄장의 성불은 한결같이 여자의 도움을 받은 셈이다. 앞서 소개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에서처럼 위 예의 여자도 관음보살의 현신이다. [632]

역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633]
➜ 조력자를 만나도 기회를 놓치는 일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절의 재산을 몰래 훔친 여자의 부모, 저승의 일을 전혀 알지 못하는 그들은 곧 욕심 가득한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선율의 환생은 그런 그들에 대한 경계이지만, 사실 살아 돌아와 저승의 일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욕심이 화를 부르는 줄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636]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산 속에서 세 오빠 악한 짓 견딜 수 없어

꽃다운 잎에서 대신 죽겠노라 한마디

의리의 소중함 몇 가지로 들어 죽음도 가벼이

수풀 아래서 몸을 내놓았네, 떨어지는 꽃처럼. [644]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게 슬며시 다가온다. 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656]
➜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진리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도 삶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며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다면 누가 그 성인을 만나는가? 의상 스님과 같이 치밀하고 정성스런 사람이 만날 것이며 효소왕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가에서 외치듯이 기도하는 무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말한다. “하늘나라에 이르거든 하느님은 저들을 모른다 할 것이다.” 그리고 첨언하지 않았는가, 골방에 숨어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에게 하느님은 다가올 것이라고. [656]

그러나 우연히 스치는 듯 한 만남도 만남은 만남이라고, 나는 설명했다. 그 만남은 뒤에라도 만남인 줄 알면 그렇다. 효소왕은 그것을 알았기에 부랴부랴 그 뒤를 쫓아갔다. 다시는 그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절을 짓고 공양하지 않았는가. 오히려 그런 만남이 우리에게는 더 많고, 또 소중하지 않을까? [657]

많은 종류의 불상이 공존하고 있는 만큼, 그 불상을 만든 사람도 가지가지이라고 보고 있다. 왕이나 가진 자 뿐만 아니라, 가진 것이라고는 손재주 하나 밖인 어떤 서민까지, 아마도 그 서민은, 남산에 널린 주인 없는 바위에다 자신의 불심을 새긴 마애불을 하나 남긴 것으로, 살아 보람 있는 일 하나 했다고 생각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소박한 불상이 마음을 끄는 것은 나 또한 그 비슷한 서민이기 때문이겠지만. [659]

얼마 전 프랑스의 사진작가 한 사람이 남산을 촬영하러 왔다가, 이런 재미있는 말을 남겼다. “세월의 탓도 있겠지만 흐릿한 선이 무척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나머지는 불상을 보러 온 사람이 완성시키라는 조각가의 배려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659]

첫 번째 관음보살이 나타나 경계를 주었는데도 깨닫지 못하니, 다시 문수보살이 출동하신 것일까?

그렇다면 경흥은 행복한 사람이다. 남들은 한 번 만나기도 힘든 진신을 두 번씩이나 뵈었으니 말이다. [666]

문제가 생길 때는 신라가 그랬고 고려가 그랬듯이, 성인의 가르침도 소용없는 절망의 순간이 온다. 지금 우리 시대의 풍속은 거기서 얼마나 멀까? 성인조차 나타나지 않는,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는 과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으로 경계 삼을 사표를 세울까? [670]
→ 시대마다 성인이 나타나지 않는 때는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떠냐로 인해 그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도 있도록 드러날 수 있고 아니면 오히려 배척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우리는 과연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피은(避隱)

숨어 사는 이의 멋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적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慕情)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그 길을 간 사람들에게는 뭔가 곡절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672]

“스님, 어디 가시오?”

“나라에서 분이 넘치게도 벼슬을 주려 하기에 피하는 것이올시다.”

“여기서 팔면 되지 뭐 멀리까지 가며 수고하시오. 스님은 이름 팔기를 싫어하지 않으시는 구먼.”

연회는 그 말이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듣지 않았다.

주먹을 날리기 이전의 잽이다. 잽은 적당한 거리를 재기 위한 첫 손질이 아닌가. 그 다음에 날아올 정타를 연회는 아직 모른다. 사실 왕이 한번 자리를 주겠다고 하면 어디를 가 있은들 안 찾아오겠느냐, 네 몸값 올리려는 짓이나 마찬가지지 뭐, 하는 듯 한 노인의 말이다. 숨는다는 것은 오리려 잘난 체 하는 데 불과하다. 연회는 거기서 자신도 모르는 제 속마음을 들켰기에 불쾌했는지 모른다.

이제 날아오는 레프트 스트레이트.

몇 리쯤 더 갔는데, 시냇가에서 할머니 한 사람을 만났다.

“스님, 어디 가시오?”

연회는 앞에서처럼 대답했다.

“앞서 사람을 만나셨나요?”

“한 노인이 나타나 저를 매우 욕보였지요. 화가 나서 오는 길이랍니다.”

“그 분이 문수대성이신데······. 어찌 그 말을 듣지 않으셨소?”

한 방에 연회가 휘청한다. 평범한 노인네였다면 모르되, 문수보살이 하신 말씀이라면 거기에 분명 뜻이 있다. 연회로서야 비로소 제 속마음이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연회는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라고 송구스러워, 곧 노인이 있던 곳으로 돌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뉘우치듯 말했다.

“성자의 말씀을 감히 듣지 않겠습니까? 이제 그래서 돌아왔나이다. 시냇가의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신가요?”

“변재천녀일세.”

이어지는 라이트 스트레이트 한 방이다. 연회의 두 눈에 불빛이 번쩍였을 것이다. 연회는 무언가에 들떠 있었다. 그런 그를 무상의 도 앞에 쓰러뜨리는 문수보살과 변재천녀의 합동 작전은, 연회로서야 아프지 그지없었겠지만, 읽는 우리들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연회 스님, 까불더니만 정통으로 맞았군. 그리고 그 미소 뒤에 다가오는 깨달음. [684]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논리대로 쓰여진 일연의 찬은 재미있다.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686]

효선(孝善)

불교가 보는 효도

『삼국유사』가 단순한 승전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지은이의 신분상, 그리고 그 시대의 성격상 『삼국유사』가 불교적인 내용을 많이 포함하고 있고, 글을 써나가는 관점도 불교적인 그것에 가깝지만, 거기에 국한하여 이 책을 썼다고 보기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전반부의 「왕력」편이 일목요연하게 삼국의 왕조사를 정리하는 것을 필두로, 「기이」편까지 하나의 역사 자료로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흥법」편부터 시작하는 후반부의 불교사적 성격이 농후한 부분에서도 편목의 제목은 승전의 그것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 「의해」와 「감통」단 둘 밖에 없다. 이 후반부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탑상」편은 그 자체로 불교 사료이지만, 다른 한편 불교의 사적을 재료로 한 당시 역사의 재구성이라 할 만하다. [688]

복을 빌어 받되 받은 다음에는 제복이라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영특한 대성으로서야 자기가 잘 판단해 큰복을 받았으니, 모든 복이 제 한 일의 결과라고 생각했을 것이고, 의기양양하게 들판에나가 사냥을 즐기며, 들어온 복을 한껏 누리다고 기꺼워하기도 했겠다. 그런 그에게 따끔한 경고가 내려온다. 대성이 거칠 것 없이 죽인 토함산의 곰 한 마리. 그것이 귀신으로 나타나, 이불이 온통 젖도록 식은땀을 흘리며 꾼 대성의 흉측한 꿈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살아온 날을 다시 돌아보니 마음에 느끼는 것이 생겼다는데, 불국사와 석굴암은 그런 마음의 돌이킴으로 탄생했다. 석불사가 지금 석굴암이다. [700]

삼뇌는 소·양·돼지를 일컫는다. 칠정은 일곱 개의 솥에다 각각 음식을 만들어 신에게 바치는 것이므로 이 둘을 합치면 그지없는 진수성찬이다. 그런 진수성찬으로 대접은 받은들, 이들이 수련에 들어도 이르는 것만 못하다는 어머니의 확고한 신념과, 남의 집 문 앞에서 걸식을 해도 좋다는 각오, 그것이 진정을 진정이게 한다.

어쩌면 참된 효도가 무엇이겠냐는 일연의 질문을 담고 있는 진정의 이야기, 여덟 살에 어머니 곁을 떠나, 그 어머니가 70년을 홀로 사시도록 이 세상에서 외롭게 해 드렸던 자신의 삶에 대한 답변이지 않았을까? [703]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시는 현세의 문제 속에 있으면서, 현세에 안주하지 않는 초월성을 가진다. 신라시대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화랑 밖에 없다. 다만 같은 화랑 출신이라 해도 관계(官界)에 나가 화려하게 출세한 이들은 여기에 제외되며, 현세에서 박탈된 사람들이 시인이 된다. 그들은 그 박탈감 속에서 오히려 현세 이상의 어떤 것을 보고 노래하는 것이다. [710]

부드러움과 강인함의 조화. 이것은 곧 신라 사회를 이룩한 미의 근본이다. 저 불국사 석굴암의 부처님이 남자로 보기에는 부드럽고 여자로 보기에는 위의(威儀)가 넘친다는 평처럼, 이 나라를 일으키고 지킨 조상들은 두 가지를 조화시켜 깊은 미의식을 창조해 냈다. [712]

제 마음의 모습이 볼 수 없는 것인데 일원조일(日遠鳥逸) 달이 난 것을 알고

지금은 수풀이 가고 있습니다. 다만 잘못 된 것은

강호(强豪)님, 머물게 하신들 놀라겠습니까 병기(兵器)를 마다하고

즐길 법일랑 듣고 있는데 아아, 조그마한 선업(善業)은 아직 턱도 없습니다. [720]

영재는 이 노래를 지어 그들을 조용히 타이른다. 나는 무기 따위를 두려워 않는 사람인데, 그대들(해독시에는 ‘강호’라는 표현을 썼다)도 즐거이 법을 듣는다면 모두 나처럼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도 자랑할 일은 못 된다. 마음의 모습은 도대체 어떻게 생긴 것인지 볼 수 없다는 첫 대목이나, 조그마한 선업을 행하고 자랑이나 늘어놓으랴는 마지막 대목을 음미해야 한다. 도의 큰길은 여전히 어려운 법이다.

노래를 듣고 감동한 도적들은 비단 두 필을 내놓는다. 영재는 웃으며 말한다.

“재물이 지옥에 가는 근본임을 알고, 바야흐로 깊은 산중으로 피해가서 일생을 보내려 하는데, 어떻게 감히 이것을 받겠는가?”

노래 한 곳에도 감동하는 도적들이나, 한 구비 너머 두 구비까지 내다보는 영재의 깨달음이나, 모두 놀라운 경지에 있다. [722]

일연, 혼미 속의 출구

신라 사회는 고대 삼국시대에서도 중국의 문물을 가장 늦게 받아들였지만 가장 훌륭히 소화해 내었다. 재래 신앙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던 사회 중심부에 외래의 불교가 파고 들어오는데 신라는 그것을 거부하거나 거기에 종속되지 않았다. 재래 신앙과 불교 신앙의 조화아래 신라인의 독특하고 탁월한 불교문화를 창출해 낸 것이다. 이것은 신라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급화된 문화로 옮겨 갔음을 말한다. 향가는 신라 문화의 그 같은 특성을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증거다. [739]

예컨대 「제망매가」를 지은 월명사는 국가의 변괴를 물리칠 연승(緣僧)으로 부름을 받을 만큼 도와 덕이 높은 승려였는데, 범어(梵語, 산스크리트어)는 모르고 다만 향가를 지을 뿐이라고 당당히 밝힌다. 승려가 범어로 주문을 외우지 못함을 전혀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있다. 이 말을 듣고 경덕왕도 흔쾌히 받아들였으니, 두 사람이 취하는 이런 태도의 근저에는 신라 불교가 가진 자존심이 있다. 그 자존심은 재래 신앙에서 불교 신앙을 성공적으로 결함시킨 데서 나온 것이다. 다름 아닌 향가의 대표적인 시인에게서 보이는 이런 태도가 곧 향가의 성격을 결정짓는 요소다. 민족적 정서를 그 고유어로 가장 잘 드러낸 시 그것이 향가이고, 일연은 이점을 가치 있게 보았던 것이다. [741]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지금처럼 자가용은 없었기에 기차며, 버스며 시간에 맞추어 닥치는 대로 타고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차가 없으면 무작정 걸으면서, 타임머신을 타고 7백 년 전으로 돌아가 일연도 걸었을 그 때 그 길을 그려보기도 했고, 탑만 남은 빈 터에 절을 일으켰다가 허물기도 수 없이 했다. [743]

다시 읽는 『삼국유사』에서 찾아낸 소중한 한 가지, ‘사랑’을 담아내고 싶었다.

황룡사 터를 배경으로 하얀 별빛과 노란 가로등 불빛에 처연히 빛나던 분황사 당간지주에 서린 원효의 고독한 사랑, 점점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부석사 석등에 묻어 있는, 온갖 번뇌에도 흔들림 없이 제자리를 지켜 내는 의상의 순결한 사랑. 몸통만 남은 꺼진 불상을 위해 촛불을 밝히는 촌노의 손끝에 실린 욱면의 순박한 사랑. 낭산 너머로 지는 해를 아쉬워하며 먼발치에서 까치발로 서성대는 익모초에 담긴 지귀의 짝사랑.

이런저런 사랑을 찾아다니다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초롱초롱한 아이들과 아내는 내가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내가 찍어온 평범한 사진에도 무한대의 감동을 보이며 힘을 실어 주는 것도 아내와 딸의 몫이었다. [744]

3.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라 삼국유사 해설서이다. 저자가 한 인터뷰에서 “일반인들은 『삼국유사』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는 것은 오늘날에 맞게 기술된 해설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 140개 조목으로 나누어진 『삼국유사』를 40개 항목으로 재분류해 이해를 도왔습니다.”라고 한 것처럼 역사의 내용을 단순히 한글로 풀어낸 것이 아니라, 『삼국유사』의 이해에 필요한 각종 이야깃거리를 추가로 내어놓고 있다.

 저자는 시집 세권을 낸 시인답게 한시를 탁월하게 해석하는 모습으로 우리 곁으로 다가와 흥미로운 문장으로 과거 우리의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어 책을 저자와 같이 호흡하며 읽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을 단순 나열하는 방식이 아닌 작가의 느낌도 함께 들어가 있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진인데, 이 사진들은 그 시대를 아련히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어 주고 있다.
 
또한『삼국유사』에는 신화나 설화가 가득하다. 환웅과 웅녀의 아들 단군왕검 이야기를 비롯하여 알에서 나온 삼국 시조의 탄생설화와 햇빛과 달빛을 살린 연오랑과 세오녀, 귀신을 부린 비형랑, 신문왕의 마법 같은 피리, 견훤의 탄생설화, 호랑이 처녀의 애틋한 사랑을 나눈 김현 등 끝이 없다. 이 안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만날 수 있고 판타지를 볼 수 있어 우리의 상상력을 끝없이 자극해 준다.
 
이 뿐만이 아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 안에서 평범하지만 소박한 감동이 불교를 매개로 펼쳐지는 [감통]편은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작가가 덧붙이고 있는 감동들로 인해 그들을 곁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 처럼 저자는 삼국유사에서 알아야 하는 민족의 정체성과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 민중들의 소박한 감동을 마음껏 느낄 수 있도록 시인의 감성으로 그려나가고 있다.

 조금 추가가 되었으면 하는 부분은 차례 부분에 있어 세부 목차도 넣어주면 갑자기 보고 싶은 부분이 떠올랐을 때 찾는 것이 수월해 질 것이다. 그리고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외국 영화, 소설 중 상당수가 그 나라의 신화, 전설을 잘 요리한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생각하고 있는 『삼국유사』를 응용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설명이 덧붙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그것을 토대로 하여 새로운 주방장이 나타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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