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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0일 23시 21분 등록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일연 원저

-. 고운기 글, 양진 사진

-. 현암사, 2002

 

저자에 대하여 일연

 

1. 탄생과 그의 생애(1206 ~ 1289)

 그는 고려 희종 2년 경산도 경산에서 태어났다. 속명은 김견명(金見明), 어머니가 자신에게 환히 해가 비치는 꿈을 꾸고 잉태하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1206년은 세계사에서도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 일어난 해이다. 칭기스칸의 몽골을 통일한 일이며, 고려와 일연의 삶에 큰 그림자를 드리우는 사건이기도 했다. 13세에 설악산 아래 강원도 양양의 진전사로 가서 출가했고, 이때 이름은 회연()이었다. 여기서 회는 달이 없는 그믐을 뜻한다. 어릴 때 이름에는 밝음이 있고 불가에서 얻은 이름에는 어둠이 있다. 그래서 늘그막에 얻은 일연(一然)이라는 이름이 밝음과 어둠이 하나로 조화시켰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21세에 과거시험의 승과에 나가 합격한 일연은 이후 몽골 전란기의 혼란한 상황 속에서 경상도 달성의 비슬산을 중심으로 수행하였다. 그가 처음 세상에 이름을 드러낸 것은 43세 때였다. 경상도 남해의 정림사 주지로 부임 하면서이다. 54세에는 남해에서 <중편조도오위>를 저술하였다. 일연의 많은 저작 가운데 <삼국유사>와 함께 지금까지 전하는 이 책은 그의 수행과 학문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59세때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영일의 오어사에 머물다가 포산의 인흥사로 옮기면서 선 수행과 불법을 펼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충렬왕이 왕위에 오르고 난 3년 뒤 1277, 그는 임금의 명에 의해 청도의 운문사로 옮겼는데, 이미 72세였다. 몽골에 항복한 고려가 함께 일본 정벌을 하던 때는 그의 나이 75세가 되었다. 당시 충렬왕은 일연을 곁에 불러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1283 78세에 국사로 책봉 되었다. 효성이 지극했던 그는 79세 때,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나라에서 수리해 준 인각사로 다시 내려가 그곳에서 <삼국유사>를 완성하게 된다. 그는 제자에게 북을 치게 하고 자기는 의자에 앉아 다른 승려와 태연하게 선문답을 하다가 손으로 금강인을 맺고 84세에 입적했다. 이때 나라에서는 보각(普覺)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2. 저자에 대한 평가

일연은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구전으로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특유의 상상력으로 역사적 사건 속에 담아내는 장면을 보면서 고대 그리스의 호메로스를 떠올렸다. 그리고, 대조적인 두 사람을 등장시켜 객관적인 태도로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장면을 보면서 <사기>의 사마천을 떠올렸다. 그는 왕에서부터 고승과 일반 서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승려여서 불교 관련한 이야기가 많지만 그 밖에 도교, 무속 및 우리 민속에 관한 이야기도 <삼국유사에>에 담고 있다.

고운기 작가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정녕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 놓은 책이다. 우리 문학을 지식인의 문학에서 민중의 문학으로, 사대의 문학에서 자주의 문학으로 바꿔 놓은 책이다

이처럼 일연은 <삼국사기>에서 배제한 불교적, 설화적 요소를 보완하였으며, 민족 주체성의 토대 위에서 우리 역사를 재해석하고자 했다. 비로 그는 국토 전역을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거쳐 간 곳의 역사와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했다. 그 바탕 위에 자신의 상상력을 덧붙여서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킨 것이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위대한 저서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지극한 효심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수행과 공부를 위해서 왕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출가로 70년 이상을 홀로 사셨던 어머니를 위하여 높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이 때 일연의 나이는 일흔여덟이었고 어머니는 아흔다섯이었다. 이러한 모자 사이의 애틋한 정이 <삼국유사> 담겨있으며, 그 이야기를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게 하고 있다. 그는 <삼국유사>를 어머니에게 받치고자 마지막 생을 불태우지 않았을까? 이 땅에 전쟁으로 피 흘린 위대한 어머니들을 위해서 말이다.

 

3. 출저

삼국유사(일연 지음, 김원중 옮김, 민음사, 2007)

우리 고대로 가는 길(이경덕 지음, 일연 원저, 아이세움, 2006)

삼국유사 글쓰기 감각(고운기 지음, 현암사, 2010)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2 우선 나부터 부끄러운 고백을 먼저 하자. 초등학교 학생 때 나는 삼국사기삼국유사 그리고 김부식과 일연을 연결하는 시험 문제를 틀리곤 했다. 어떻게 그것을 헛갈릴 수 있느냐고 반문하자 말라.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상당한 숫자에 이른다.

 

3 나는 앞서 두 가지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했다. 어쨌거나 이 두 가지 사실은 삼국유사』를 이해해 들어가는 중요한 단서이다. 삼국유사삼국사기』와 더불어 논의하지 않을 수 없고, 그 둘의 분명한 차이가 사()와 사()에 있다는 점.

 

12 10세기부터의 고려 사회는 중국적 유교 사관으로 무장한 김부식과 같은 지식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이끌어 나갔다. 그들은 단군과 단군조선의 존재는 역사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고(强固)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유려한 한문으로 집필된 삼국사기』의 첫머리에 단군은 실리지 못했고, 세월은 150여 년을 흘러야 했다. 그 사이 사회가 변했다 정권 담당자도 바뀌고, 크나큰 나라 몽고와 20여 년에 걸친 전쟁도 겪었다. 곤고(困苦)한 세월이었다.

 

12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16 그가 추구한 궁극의 이상은 한마디로 잘 나타나 있다. ‘널리 사람 사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곧 홍익인간(弘益人間)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은 단군이 나라를 세우기 전 곧 그의 아버지 환웅과 할아버지 환국의 생각을 보여 주는 말이다.

 

16 그 때 곰과 호랑이가 굴에 같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늘 환웅 신에게,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빌었다. 환웅 신은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낱을 주고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아라.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게야라고 말했다. 곰과 호랑이는 받아서 그것을 먹고 21일을 꺼렸다.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제대로 꺼리지 못해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곰 아가씨는 누구와 혼인할 상대가 없었다. 잉태하고 싶어 늘 신단수 아래에서 빌었다. 이에 환웅이 사람의 몸으로 나타나 혼인하고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이라 불렀다.

 

21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군 신화는 건국 신화다. 이 땅에서 첫 나라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보여 주고 있을 뿐이다.

 

23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 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니 우리의 실종이었다.

24 삼국사기』와 그 시대에 수놓아졌던 중국 중심의 사대주의는 힘을 잃는 대신, 거기에 희미하게나마 민족의 주체성 같은 것이 자리한다. 매우 의미심장한 변호다. 삼국유사』는 그 변화의 끄트머리에 자리잡는다.

 

24~25 이 때 고려는 무신 정권 기간이었다. 무신란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강력한 통치 체계를 구축한 최충헌은 이후 4대에 걸친 최씨 정권을 이어가게 하는데, 몽고의 원나라 건국은 그들에게 하나의 복음이었을 것이다.

 

25 고구려인의 기개를 한껏 살리면서, 고주몽의 생애를 장황히 읊은 이규보의 동명왕편』은 기실 민족의 발견이었다. 또 다른 문장가 이승휴는 시로 쓰는 이 나라의 역사 제왕운기』에서 단군 신화부터 시작하였다. 이승휴는 일연과 동시대 사람일뿐만 아니라, 함께 시를 지으며 즐긴 가까운 벗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줄을 잇는 13세기였다.

 

25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닌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은 아니었다.

 

28 인용된  「조선전」의 내용 중에 일연이 손질은 한 곳은 두 군데다. 첫째, ‘조선왕 위만은 연나라 사람이다.’고 한 「조선전」의 첫 줄을 일연은 인용하지 않고, 중간쯤에 연나라 사람 위만이라고 가벼이 처리해 버렸다. 왜 그랬을까? 둘째, 위만과 그가 이끈 무리들의 복장을 묘사한 방망이 상투를 틀고 오랑캐 옷을 입었다.’는 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29 위만이 연나라 출신임을 강조하지 않은 것은 그가 본디 조선족 출신임을 더 내세우고자 한 것이고, 거기에 위만의 차림새를 굳이 내세우다보면 이러저러한 오해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 것일까?

 

34 우리가 삼국유사』의 첫 부분을 대할 때 유의할 점이 여기에 있다. 일연이 고조선조와 위만조선조를 나란히 두고, 이 땅의 첫 나라인 조선에 관한 대부분을 갈무리했다는 것이다.

 

39 왕이 쪼개보려 했으나 깰 수도 없어 결국 어미에게 돌려 주엇다. 어미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데 두었더니, 아이 하나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었다. 골격과 겉모습이 헌걸차고 우뚝했다. 나이 겨우 일곱 살에 헌칠하여 비상했고,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는데, 백이면 백 명중이었다. 세간에서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를 가지고 이름을 지었다.

 

44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이한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영웅 소설이라 불리는 작품들이 대체로 이 같은 유형으로 지어지는데, 아마도 그 원조는 주몽의 이 이야기가 아닐까?

 

49 얼마 후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안히 살 수 없으므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위례성의 도읍이 안정되고 백성들이 태평한 것을 보고 깊이 뉘우치다 죽었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백성들이 매우 기뻐했다 하여, 나라 이름을 고쳐 백제라 했다. 이것이 백제의 탄생이다.

 

52 백제의 지배층이 우세한 세력을 형성한 끝에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는 일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다음에 설명하겠거니와, 일본으로 건너간 백제계는 그 선조들의 경험을 그대로 살려 다시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나는 그것이 고구려에서 시작한 북방계 이동의 끝으로 보인다.

 

56 말하지는 않았지만 바로 다음에, “위 글을 살펴보건대 여섯 부족의 시조는 모두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대목을 참조해 보면, 어디선가 본 내용을 옮겨 적었음은 분명하다.

 

56~57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

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62 일연은 혁거세왕의 최후를,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만에 하늘로 올라가고, 7일 뒤 몸만 남아 땅으로 흩어 떨어졌다. 왕후 또한 죽자 사람들이 합하여 장례를 치르려 하였다. 그런데 큰 뱀이 나타나 막는 것이었다. 그래서 몸뚱이를 다섯으로 나누어 각각 묻고 오릉으로 만들고, 또한 사릉이라 이름지었다. 담엄사의 북쪽 능이 이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68 경주의 선도산은 지금도 민간에서 성스러운 진산으로 떠받들어지고 있다. 마애삼존불이 바라보는 산 아래로는 태종무열왕릉 등 크고 작은 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다.

 

78 “무엇으로 네 집임을 증명하겠느냐?”

  우리 집이 본디 대장간을 했는데, 잠시 다른 지방에 가 있는 사이 나이 들어와 산 것입니다. 땅을 파서 조사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따라 해보니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탈해는 이 집을 차지해 살게 되었다.

 

86 머나 먼 이역, 아니 어느 시골 마을에서 올라 와 입신양명한 탈해, 우리는 여기서 탈해가 비록 왕위에 오르고 그 후손들이 석()씨 성으로 몇 차례 더 왕의 자리를 차지하지만, 기존의 세력에 둘러싸여 늘 불안해 했던 것 같은 모습을 그려보게 된다. 권력의 자리란 차지하기도 이어 나가기도 어려운 것인가? 탈해의 고민이 깊었음은 분명하다.

 

91 일본에서 히미코 신드롬이 벌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는 소개하였다.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오래도록 남성에 복종하며 살아온 일본의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기의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상징적인 인물이 여왕 히미코라는 것이다.

 

96 일연은 승려다. 승려 생활을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雲水行)이라고 한다. 일연 또한 거기서 예외일 수 없었고, 그래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았지만, 13세기 혼란스런 고려 사회가 그 삶을 더욱 모질게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일연은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자기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는 점이다. 자신이 승려라 해서 불교적인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이미 앞서 단군 신화의 경우와, 앞으로 소개할 많은 이야기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그의 관심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오늘날의 민속학자가 따로 없다.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또한 그의 이 같은 관심과 실천 속에 모아진 것으로 본다. 그런 이야기 일수록 일연의 붓끝은 힘을 얻는다.

 

96 오어사는 지금 가 보아도 한가롭기 그지없는 산골 마을에 있다. 영일을 거쳐 들어가는 이 마을에서 그는 꿈처럼 전해오는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삼국유사』 속에 소중히 건사되었다.

  영일은 한자어로 듯을 풀었을 때 해를 맞는 고장이다. 동네 이름에서부터 해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을 법하다는 생각을 가제 한다.

 

101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사람이 사는 세상의 사람으로 바뀐 이 같은 이야기 구조는 삼국유사』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곰이 사람으로 바뀌는 단군 신화에서 시작하여 호랑이가 아름다운 처녀로 바뀌는 김현의 전설까지 다양하게 퍼져 있지만,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 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

 

106그렇게 비슷하게 들리는 두 나라 말 가운데서도 우리의 경상도 방언과 일본어는 더 닮았다. 발음이나 억양 그리고 특징적인 어미 처리 등이 그렇다. 사실 경상도에서는 해류만 타고도 일본 서쪽 해안에 쉽게 닿는다.

 

110 실성왕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일연은 기술에서 그것은 더 명료해진다. 참는 데도 한도가 잇는, 그래서 쌓이고 쌓인 감정의 폭발이라고나 할까, 좀체 흥분하지 않는 일연의 붓끝이 여기서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111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

 

120 승려의 신분을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삼국시대 그 밑바닥의 정서를 전해 준 점, 우리는 지금 삼국유사』의 편찬자 일연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다.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이제 우리가 읽을 「기이」 편의 도화녀와 비형랑조는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 경우다. 점잖은 승려의 신분으로 입에 담기에는 어딘지 껄끄러운 이야기다. 그것을 스스럼없이 해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일연의 그릇을 헤아려 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125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작 본론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2년 뒤 여자의 남편이 죽었다. 열흘쯤 지난 후였다. 홀연히 밤중에 왕이 옛날 모습을 하고 여자의 방에 찾아와 말했다.

네가 옛날 응낙한 바 있지? 네 남편이 없으니 이제 되겠느냐?”

여자는 가벼이 응낙하지 않고 부모에게 아뢰었다.

군왕의 뜻이니 어찌 이를 피하겠느냐

여자의 부모는 딸을 방으로 들어가게 했다. 왕은 7일간 머물렀다. 늘 다섯 빛깔의 구름이 집을 덮고, 향기가 방에 가득했다. 7일이 지난 다음 홀연 자취를 감추고, 여자는 그로 인해 태기가 있었다.

달이 차서 출산을 하려 할 때 천지가 진동하였다. 남자 아이 하나를 낳아 이름을 비형이라 하였다.

 

134 불명예스럽게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진지왕을 데려다 그 혼의 힘으로 특이한 아들을 낳게 하고, 이렇게 해서 그가 세상에 사는 동안 못다 이룬 일을 보상하게 했던 것일까? 몸으로 못하면 혼으라도 말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에 초점을 맞추면, 설화가 지닌 내적 의미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다.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만 있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쩌면 귀신의 세계를 한 손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

 

137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

 

140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144 그러나 신라 불교의 힘은 무엇보다 먼저 있었던 토착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포용해 간 데서 더욱 커진다. 불교가 먼 나라에서 전래된 이방 종교가 아니라, 이미 전세에 인연을 마련한 우리 종교라고 생각한 신라인들의 본지수적 . 불국토 사상은 바로 토착 신앙을 저버리지 않는 밑바탕이었다.

 

153 한반도의 한 쪽에 치우쳐 농토도 넓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다 건너서는 일본으로부터 안으로는 고구려와 백제로부터 끈임없는 침공에 시달려야 했던 신라다.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158 신하들이 그것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자, 왕은 꽃을 그리면서 나비가 없으니 거기 향기가 나지 않음을 알지요. 이는 곧 당나라 황제께서 내가 배우자 없이 지냄을 놀린 것입니다고 답한다. 꽃에 냄새가 있고 없음을 따지기 전에 이런 에피소드를 보고 있자면 선덕왕이 여성이기에 좀더 부드럽게 당나라와의 교유를 이어 나갈 수 있었겠다 싶다

 

160 역사는 충신들이 만들어 낸 역사인지 모른다. 신라의 전반기가 박제상과 이차돈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면, 그 중반기가 김유신이라는 충신이 만들어 낸 역사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기 김유신의 이름은 더욱 크게 빛난다.

 

165 꿈을 사고 팔았다는 이 이야기를 삼국사기』에서는 문무왕의 탄생담에 잠깐 언급하고 있을뿐이다. 그러나 한 시대의 역사를 일궈 낸 주인공들이 한 자리에 등장하는 흥미진진한 순간을 일연은 놓치지 않고 있다.

 

165 처음에 문희의 언니 보희가 꿈을 꾸었다. 서쪽 산에 올라 오줌을 누었는데, 서울 성안을 가득 채웠다. 동생에게 꿈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문희가 이를 듣고 말하였다.

내가 이 꿈을 살까?”

어떤 선물을 줄래?”

비단 치마를 팔면 되겠어요?”

좋아.”

동생은 비단 치마로 값을 치렀다.

열흘쯤 지난 다음이었다. 김유신이 김춘추와 정월의 오기일에 유신의 집 앞에서 축국을 하였다. 춘추의 치마가 밟혀 옷깃 여민 곳이 찢어지자 유신이, “우리 집에 들어가 꿰매자라고 하였다. 춘추가 따라 들어가니, 유신이 보희에게 바느질을 하라고 시켰다. 춘추는 유신의 속뜻을 알아차리고 드디어 가까이 했는데, 그 후 자주 내왕을 하였다.

 

 167 보육 또한 삼한의 산천에 오줌이 넘쳐흘러 문득 은빛 바다로 변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대단한 오줌 이야기들이다.

오줌싸개 지도를 그린 아침이면 채이고 소금이나 얻으러 다닌 이야기야, 산천을 적시는 영웅들의 오줌과는 격이 다르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안 가득 오줌을 누었다는 여자들의 꿈이 왜 좋은 것인지, 그리고 비단 치마로 값을 치르고 꿈을 샀기에 김춘추 같은 귀공자나 중국의 황제를 가까이하게 될 기회를 얻었는지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 사실은 앞 이야기의 경우, 춘추나 문희는 서로가 서로를 알아 볼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더욱이 그 중간에서 둘을 연결시키고자 하는 유신의 뜻을 알아차릴 눈치가 있었다고 해야 실제는 더 부합할 것이다.

 

175 이만한 활약을 했으니, 나중 그 에게 흥무대왕이라는 시호가 내려지기까지 했겠으나, 살아서 영화도 그에 못지 않았다. 태종무열왕 2년 왕은 3월에 세자 법민을 태자에 책봉하고, 9월에는 자신의 셋째 딸 지소부인을 김유신에게 시집보낸다. 유신의 나이 이 때 60세였다. 매제에 이어 공들인 조카가 태자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왕과 처남 매제간이 아니라 장인 사위간이 되었다. 물론 지소부인은 문희와의 사이에 낳은 딸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일련의 일들은 김유신이 살아 생전 누릴 수 있는 영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177 동생의 처지가 처량해서만 그랬을 리 없다. 일은 제가 벌여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 있다.

 

178 법민은 줄곧 당나라에 머물며 외교적인 업무에 종사하는데, 이는 국내에서 당할 정치적 견제를 피하고, 당나라 조정과의 친분을 쌓아 왕으로 등극하는 데 도움을 받고 자하는, 김춘추나 김유신의 뜻도 들어 있지 않았을까 한다.

 

184~185 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21년 되던 영융2년 신사년(681)에 돌아 가셨다. 왕이 유언하신 말씀에 따라 동해 가운데 있는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 왕이 평소 지의 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짐은 죽은 뒤에 나라를 지키는 큰 용이 되겠소. 그래서 불법을 높이 받들고 나라를 지키겠소.”

용은 짐승인데 어찌 하시렵니까?”

나는 세상의 영화를 싫어한 지 오래 되었소. 만약 악한 업보 때문에 짐승으로 태어나더라도 짐이 평소에 가진 생각과 맞는다오.”

 

186 문무왕이 왜병을 무찌르고자 이 절을 짓기 시작하였는데, 다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셔서 바다용이 되었다. 그 아들 신문왕이 개요 2(682)에 일을 마치고, 금당의 아래를 밀어 동쪽으,로 구멍 하나를 뚫었거니와, 이는 용이 절에 들어와 돌아다니게 마련한 것이다. 유언대로 뼈를 묻은 곳을 대왕암이라 이름하고, 절은 감은사라 하였다. 뒤에 용이 나타난 모습을 본 곳을 이견대라 이름하였다.

 

186 문무왕과 신문왕 그리고 감은사와 대왕암 . 이견대의 관계가 명백히 나타난 부분이다. 금당 아래의 동쪽에 구멍을 낸 감은사. 용더러 다니라는 통로를 만들어 준 것이라니,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참으로 즐겁고 소중한 느낌이 가득해진다. 부자간의 짝짜꿍이 잘 맞아도 이렇게 잘 맞을 수 없다.

 

189 상징의 핵심은 고장난명이었다고 해야 할까? 천하를 상서롭게 다스리고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런 소망의 결정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문무왕은 바다를 지키는 용이, 김유신은 하늘을 지키는 별이 되어, 신라와 거기 사는 백성을 영원토록 평안히 해준다는 믿음 또한 거기 가세한다.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그것이야말로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배인지 모른다. 일연은 마지막에 이렇게 첨가한다.

 

196 그것이 어찌 어제오늘의 일이겠는가? 이미 사마천의 시대부터 변함없는, 비정의 극치를 달리는 원칙이다. 권불십년이라, 거기서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최소한 그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 다닌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사냥개 신세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211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을 설명하자니 이면을 더듬게 된다. 그것은 바로 화랑 출신들의 토사구팽이다. 신라 통일을 완성한 문무왕과 그의 아들 신문왕을 지나 효소왕에 이르면 이는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의 한 단면을 죽지랑의 이 사건으로 읽게 되는 것이다.

 

226 이야기의 하이라이트는 꽃을 꺾어 바치는 노인의 다음 행동이다. 자긍심을 가지고 부인 앞에 선 노인은 꽃만큼이나 아름다운 노래를 함께 지어 바쳤다.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라

 

자연이 준 최고의 선물이 꽃이라면 인간이 만든 최고의 선물은 노래이다. 손에 잡은 암소도 놓고 그렇게 정중히 꽃을 바치는 노인의 태도야말로 헌신하는 자의 상징이다. 꽃을 탐내는 여자의 마음도 아름답지만, 모름지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 바꾸는 사랑이라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233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247 구물거리며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그 삶이 보잘 것 없는 백성이로되, 다스리는 자의 따사로움을 알고 믿고 따른다면 그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또한 백성이 없으면 나라의 근본이 흔들린다.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이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

 

257 왕이 이 피리가 진평왕 때 만들어졌다고 했으나 실은 신문왕이 그의 아버지 문무왕의 해중능 곧 대왕암에서 받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문무왕은 왜적을 물리치기 위해 스스로 바다 가운데 능을 쓰도록 유언한 사람이다. 일본을 경계하는 뚜렷한 의지가 거기에 담겨 있고, 그것은 만파식적이라는 피리를 통해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원성왕은 그 같은 사실을 애써 은폐하고 있다.

 

261 사실 원성왕은 기울어 가는 신라를 되살리고자 애쓴 마지막 왕이 아닌가 한다. 비록 피비린내 나는 왕족간의 싸움 끝에 등극하였다고 하나, 그것이 곧 야심찬 젊은 왕족의 나라를 위한 충정이었다면 더욱 그렇다. 왕 즉위 4년에 실시된 독서삼품과는 그 대표적인 업적으로 볼 수 있다.

경전을 읽고 공부해 그 성취도에 따라 상..하의 3급으로 나누어 관직에 임명하는 제도는, 나중 고려시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시행한 과거제의 출발이나 다름없다.

 

265 “제가 말씀드린 세 가지 좋은 일이 지금 모두 나타났습니다. 큰딸을 맞아 들였으므로 이제 왕위에 오른 것이 하나요, 예전에 미모에 끌렸던 동생을 이제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둘째요, 언니를 맞아들였으므로 왕과 부인께서 기뻐하였음이 셋째입니다.”

 

266 왕위에 올라선 다음, 귀가 갑자기 커져 당나귀의 귀 같았다. 왕후와 궁인들 아무도 몰랐으나 오직 두건 만드는 기술자 한 사람만이 알았다. 그러나 평생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죽을 무렵 도림사의 대나무 숲 가운데 아무도 없는 곳에 들어가, 대나무를 바라보고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다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소리가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같다네라는 소리가 들리자 왕이 이를 싫어하여 곧 대나무를 베어버리고 산수유를 심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면 다만 소리가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네라고 들렸다.

 

269 달도 차면 기운다

한 집안이 그렇고 사회가 그렇듯이, 나라도 흥하고 망하는 데 절대적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을지언정, 한번 일어나면 한번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대체로 흥망성쇠를 유전하기 마련이다. 과학적 증명이나 운수소관을 따지기가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백제 마지막 왕 의자왕 때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이」 편의 태종 춘추공조에 실려 있다.

 

269 귀신 하나가 궁중에 들어와 크게 외쳤다.

백제는 망한다. 백제는 망한다.”

그리고 곧 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땅을 파보게 했더니, 깊이가 세 자쯤 되는 곳에서 거북이 한 마리가 나왔는데, ‘백제는 둥근 달이요, 신라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글 귀가 새겨 있었다. 무당에게 물었다. 둥근 달은 가득 찬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 오르지요.”

무당에게 물었다.

둥근 달은 가득 찬 것입니다. 찼으니 이지러지지요. 새로 돋는 달이라는 것은 차지 않은 것입니다. 차지 않았으니 점점 차 오르지요.”

  왕은 화가 나 그를 죽였다. 어떤 이가 말했다.

둥근 달은 번성한 것이요 새로 돋는 달은 미미합니다. 아마도 우리 나라는 번성하고, 신라는 매우 미미하다는 뜻이겠지요.”

왕은 기뻐하였다.

 

281 이 때 역신이 모습을 드러내 앞에 나와 무릎 꿇고 말했다.

내가 그대의 처를 탐내서 지금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화를 내지 않으시니, 감복하고 탄복할 일입니다. 맹서컨대, 지금부터 이후로는 그대의 얼굴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이 대문에 나라안의 사람들이 문에 처용의 형상을 붙여, 사악한 것을 몰아내고 좋은 일을 맞아들였다.

 

287 일연이 신라의 멸망 과정을 그려나가는 기이』 편의 후반부를 신나게 읽을 일 하나 없다. 오히려 일연의 붓끝은 담담하면서도 상징적이다. 그가 누구보다 신라를 아끼는 사람이었음을 모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293 사미승으로 변한 늙은 여우는 거타지의 화살을 맞고 죽는다. 거타지가 쏜 화살은 곧 이 세상의 보조리를 향하여 날아가 박히는 것으로 읽히지 않는가? 그의 도움을 받은 이는 다름 아닌 서해의 신이다. 그 신이 자기 딸을 꽃송이로 만들어 거타지의 품에 넣어 주는 데에서 이야기는 절정을 이룬다.

 

294 이야기의 끝은 늘 풍성한 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품속의 꽃가지를 꺼내 아내로 맞는 마지막 줄은 기막히게 아름답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의 낱낱을 쓰기에 지쳤을 즈음에, 그 자신에게나 읽은 이에게나 한 가닥 희망 곧 새 나라 탄생의 빛을 실어 주려는 일연의 붓끝이 보이는 듯하다.

 

297 포석정의 기묘한 굴곡은 거북을 닮아 있고, 거북은 영생불사의 신선 사상과 연결되며, 거기에 물을 흘려 보내는 구조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세상의 어떤 순조로운 흐름을 기원하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305 ‘서리리는 『시경』 왕풍(王風)에 나오는 노래, 망한 주나라의 신하가 옛 서울을 지나다 그 곳이 메기장 밭으로 변해 버린 것을 보고 탄식하였다는 것인데, 신회의 노래는 그마저 없어졌으니, 천 년 사직은 말 뿐이요 무상하기만 하다.

 

315 한반도니 일본열도니 하는 말은 모두 후세가 만들어 낸 관념이다. 그들은 먹고살기 좋은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했던 당대의 생활인일 분이었다. 그 무렵 사람이 지금 살아온다면 그는 한반도라는 말도 일본열도라는 말도 모를 것이다.

 

321 물론 홍 교수의 연구를 전적으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그 연구의 끝에 한일동족이라는 결론으로 마침표를 찍는 데 나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왕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324 그러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0명도 채 안 되는 집권층이라면, 탁월한 문화를 지닌 소수가 가서 단번에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소수가 바로 백제계였다.

 

327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28 하기야 엉뚱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진짜처럼 둘러댄 게 어디 이 하나 뿐인가? 정말이지 서동만큼 맹랑한 사람은 일연 당신이다. 그러기에 그 눈으로 서동 같은 인물이 보였을 것이다.

 

330 영웅은 자기가 타고난 비범한 재주로 고난을 극복해 낸다. 서동은 이웃 나라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으로 그 첫발을 내딛고 있다. 첫발치고는 통도 크다.

여기에 「서동요」가 나온다. 물론 이 제목은 요즈음의 학자들이 만든 것이다. 이런 종류의 노래를, 어린 아이들이 불렀다는 데에서 동요, 그리고 그 내용이 어떤 목적한 상황을 이미 이룬 것처럼 상정하고 있다는 데에서 참요 또는 예언요라고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요요 참요라고 할 수 있다.

 

335 그러나 진평왕에게 딸이 셋이고, 그 가운데 셋째 딸이 선화공주라는 말은 여기 서동 이야기에서만 나온다. 『삼국사기』에서는 첫째 딸이 덕만공주로 아버지를 이어 선덕여왕이 되고, 다른 딸이 천명부인으로 김춘추의 어머니라고만 전해준다. 셋째 딸이 었었는지, 그 딸의 이름이 선화공주인지 사실적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이것이 선화공주가 설화적 인물일 가능성을 보여 주는 첫번째 이유다.

 

337 재미있는 이야기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나 전파되기 마련이고,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야기가 서로 비슷한 경우마저 있기도 하다.

 

342 미륵보살은 누구인가? 부처님 당시에 생존했던 미륵보살은 부처님에 의해 미래불로 지정 받았다. 미래불이 오시는 다음 세계를 그리고 있는 『불설미륵하생경』의 한 구절은 우리에게 잔잔한 미소마저 띄우게 한다.

 

343 대체적으로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351 불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똑 같은 되풀이를 견훤과 그의 아들 신검이 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끝없이 반항하다 망한 견훤 집안 3대다. 식민지 치하,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이념과 생활 방식을 가지고 살다 망해 버리는 집안을 그린 염상섭의 소설 『삼대』는 이미 천여 년 전을 무대로 삼아도 통할 이야기다.

 

356 이 글은 견훤 밑에 잇던 문인 최승우가 지었다고 한다. 앞서 이른 바 공격적인 말투며, 먼저 채찍을 잡았다는 진날라 맹장 조적과 유곤 사이에 있었던 일화나, 홀로 도끼를 휘둘렀다는 수나라 장수 한금호의 면모를 적절히 배치해 나가는 솜씨가 그답다.

그러나 왕건 또한 이에 질 수 없었다. 비록 싸움터에서 밀리고 있지만, 여기서마저 물러설 수 없었고, 여러모로 분위기는 자기 쪽으로 유리해지고 잇다는 점을 감지하던 터였다. 여기에 격문의 대가 최치원이 나섰다.

 

357 왕건이 보낸 답장은 훨씬 부드러우면서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싸움에서도 성과가 없었던 것만이 아님을 예시해 보이고, 무엇보다 의리에 맞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에게 신라 왕이 지지해준 것처럼, 명분은 이미 결정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대의 문장가들이 동원된 편지 싸움인 만큼, 중국의 고사들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자기를 합리화 하는 글 솜씨는 찬란하다. 어디 이만한 편지 싸움이 또 있을까 싶다.

 

358 그것은 마치 초 항우와 한 유방의 싸움을 보는 듯하다. 역발산 기개세라 한 항우 앞에 유방은 언제나 꼬리 감춘 쥐였으나, 민심의 향배가 그들의 운명을 가르지 않았던가?

 

370  하늘에서 내게 명하기를, ‘이 곳에 내려가 나라를 새롭게 하고 임금이 되라고 하셨다. 그래서 이 곳에 내려왔다. 너희들은 모름지기 봉우리 위의 흙을 파면서 이렇게 노래하라.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서 먹을 테다.

 

378 먼 뱃길을 지켜 주는 수호신의 석탑, 그것은 참으로 상징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항해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과 파도 속에서, 또 때로 찬란한 태양과 밤하늘에 빛나는 별의 인도를 받으며 건너는 고해가 있다. 그 길을 지켜 주는 석탑.

 

382 앞서 소개한 바 김춘추와 문희의 민족의 결혼이 낳은 아들 문무왕. 삼국 통일을 완성한 그는 신라와 가야 두 민족간의 결합으로 태어났다. 그러기에 민족간의 결합에 의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민족간은 결합해야 하고 결합할 수 있다는 신념과 경험ㅇ르 가진 그라면, 나아가 신라 - 백제 고구려의 세 나라를 한 나라로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는지 모른다.

 

385 전반부의 「기이」 편이 끝나고 『삼국유사』의 후반부를 여는 첫 편은 「흥법」이다. 세 나라가 솟발처럼 선 다음 처음 불교가 어떻게 들어왔는가, 그리고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가를 설명한 부분이다.

 

392 다만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 경이로운 사건을 두고, 정작 승려인 일연 자신은 『삼국사기』의 기록만 옮겨다 놓기가 못내 아쉬웠을 것이다. 여기서 찬을 생각했다 이것만은 분명하다. 그는 『삼국사기』가 전해주는 역사적 사실 이상의 것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 이상의 것이란 물론 상상이다. 그러기에 시의 형식을 택했다. 그러나 상상은 시간이라든가 구조라든가 어떤 기제에 실릴 경우 사실 이상의 사실이 된다. 하 덩어리의 이야기는 사실 이상의 사실이 넘어간 그 어디쯤에서 완성된다. 이런 생각을 『삼국유사』 전체로 확대시켜도 좋다.

고구려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것을, 『삼국사기』에 인용하고 난 다음에 쓴 찬을 보자.

 

압록강 봄 깊어 풀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노 젓는 소리에 깜짝 놀라 멀리 날으네

  어느 곳 고깃밴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393 다시 한번 보자. 1행의 봄 깊어 풀빛 고운 강가는 어떤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정적 표현이다. 이런 정적인 면은 2행까지 이어진다 원문에 구(갈매기)와 로(왜가리)모두 한가히 졸고 있다. 그러다가 3.4행에 이르면 시의 분위기는 동적으로 바뀐다. 홀연히 노젓는 소리가 들리고 고깃배가 다가온다. 이 때 한가히 졸던 갈매기와 왜가리들이 놀라 깨어 일제히 비상했으리라는 것은 원시에게 ()’자의 쓰임으로 보아 상상이 가능하다. 이것은 매우 완만하면서도 일순간에 벌어지는 깨달음처럼 극적이다.

 

394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자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411 일연이 이차돈의 죽음을 노래한 찬에서 우리는 일연의 속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의에죽고 삶을 버림도 놀라운 일이거니

하늘의 꽃과 흰 젖이여, 놀란 가슴을 치는구나.

어느덧 한 칼에 몸은 사라진 뒤

절마다 쇠북소리는 서울을 흔든다.

 

시인은 결연히 노래한다. 사라진 것은 오직 몸일 뿐이요, 쇠북소리에 실린 그의 자취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고.

 

420 모두 전생의 부처님 때 가람 터요, 불법의 물이 길이 흐를 땅이다. 너는 거기에 가서 큰 가르침을 널리 퍼뜨려, 마땅히 동쪽에서 부처님 앞에 목탁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야 할 것이다.

 

435 그 때까지 구층탑은 여섯 번이나 개보수를 거치면서 꿋꿋이 서 있었다. 파손된 이유는 대체로 낙뢰였다. 이 멋진 탑을 만든 기술자들도 피뢰침에 대한 지식은 없었다.

 

440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기는 다음 해 여름이었다. 우리는 이 같은 기록을 통해, 일연의 불교 사상이 문수 신앙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잠정적인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청소년기의 월정사 경험과 장년기의 문수보살 체험, 이것이 오매산의 문수 신앙을 『삼국유사』에 남기고 싶은 개인적인 사연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440 문수보살을 흔히 출가의 보살이라 한다. 저 유명한 『화엄경』의 이야기에서, 문수 스스로 남쪽을 두루 돌며 깨닫고 동쪽으로 오는데, 거기서 만난 선재동자에게 남쪽으로 갈 것을 권하는 대목이 있다. 곧 선재의 출가를 뜻할 뿐만 아니라, 깨달음의 길에 동기를 부여하는 상징으로 읽힌다. 누구든 수행의 첫 길은 문수보살로부터 시작한다.

 

440 또는 문수보살을 비유해서 세상의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있는 것처럼, 문수는 불도를 닦아나가는 데 부모라고도 한다. 부모는 자식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돕는 자다. 문수도 성불의 그 같은 절대적 조력자라는 뜻이리라. 나아가 문수 신앙은 대체로 이런 문수 보살의 성격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51 지금 오대산에는 이런 절들이 다 남아 있지 않다. 오직 월정사와 상원사만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을 뿐이다. 나는 가끔씩 강릉쪽에 가는 일이 생기면, 특히 내가 직접 운전을 해서 갈 때는, 영동고속도로의 상진부 톨게이트에서 빠져 나가 월정사를 들러가곤 했다. 상진부에서 월정사로 들어가는 길도 길이려니와, 월정사의 전나무 숲은 세간에 널리 알려진 대로이고, 월정사 뒤편으로 상원사 가는 길은 더욱 호젓하고 아름답다. 오대산에서 내려오는 물은 어찌 그리 맑고 차가운지.

 

454 이것은 하나의 인연이다. 도를 이루려고 해도 이루려는 자의 의지만으로 되지 않음을 우리는 이런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를 이루려는 일만이 아니다. 무릇 의지만으로 하는 사람의 일이란 얼마나 고달픈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그렇게 되는 것에 몸과 마음을 맡기는 것, 인연은 그렇게 오는게 아닐까?

 

455 더욱이 절은 성소 이면서도 낯익은 우리 건축의 한 틀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이라, 특히 조그만 암자에 들렀을 경우, 마치 고향 마을의 옛집에 찾아온 듯한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458 그래,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471 굴정현의 꿩 모자가 마치 소년 부자의 이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그 꿩 식구들을 살린 조상을 가진 후손으로 우리는 그나마 착한 사람들일까.

 

478 박박은 하나만 생각했다면 부득은 최소한 둘 이상을 생각한 것이다. 수행자의 초심을 흔들지않으려는 박박의 태도도 뜻이 있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상황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부득의 태도는 차원이 달라 보인다. 박박의 교조적 외통수와 부득의 현실적 융통성이라고나 할까?

 

485 그러나 문득, 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고 있을 가련한 여자를 생각하니, 염불도 한낱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염불로 공덕을 쌓는다고는 하나, 이럴 때의 염불은 손님의 곤한 잠만 방해할 뿐인 것이다. 일연은 부득의 그런 마음을 읽어내고 있다.

 

488 그러나 절 주변에 쌓은 담은 고집쟁이의 그것이 아니다. 속된 것으로부터 지키는 어떤 성스러움의 의지라 할 수 있다.

497 세상에 사는 보통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같은 경지에 오르기도 어렵고, 그럴 계기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499 여기 재궁마을의 우물가 학 바위에서 처녀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 여자는 표주박에 해가 담긴 물을 마시고 와서 잉태를 했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가 바로 범일이다. 처녀가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이야기는 『신약성서』만의 독점물이 아니다.

 

499 꿈에 사미승이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지난날 명주 개국사에서 스님과 약속하였습니다. 기꺼이 응낙을 하시고도 어찌 이렇게 늦으십니까?” 깜짝 놀란 범일은 서둘러, 익령 근처, 일러 준 곳으로 가서 여자를 만난다. 여자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시냇가에서 금색동자와 함께 논다고 말하는게 아닌가. 다시 발길을 옮겨 그 자리플 파보니, 왼쪽 귀가 잘린 석불이 나오는데, 모습은 정취보살의 상이나 그것으로 예전에 만난 사미승이 바로 정취보살임을 알게 된다.

 

513 우리가 불교의 큰 세가지를 불법승이라 하지만, 일반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로야 그 가운데서도 승이 가장 으뜸 아닐까? 「의해」 편에는 그런 승려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527 대체로 『삼국유사』의 편찬이 이 절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삼국유사』 안에서 그 같은 심증을 갖게 하는 기록이 많이 보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이 두 조에 걸치는 운문사 기록으로 분명해진다. 자신이 거처했을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 편찬의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서 운문사는 일연에게 다른 어느 절보다 깊이 각인되어 있다.

 

530 보이더라도 부분만 보인다. 그가 그린 어느 한 부분만 보이고, 그가 한 말의 어느 한 부분만 들린다. 그래서 원효에 대해서는 가지가지 이야기가 난무한다.

일연은 원효의 생애를 한마디로 요약했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은 사람이라고

 

531 나는 원효를 현실주의 신앙의 구현자로 설정한다. 현실주의란 현실에 매달린다는 말이 아니다. 범박하게 풀어보자면, 현실의 첨예한 문제를 피해가지 않고, 사람의 생애에서 부딪칠 수밖에 없는 문제를 불교의 틀 속에서 이해하고 실천한다는 뜻이다. 원칙은 무너지기 쉽고 오해는 따르기 쉽다. 그러나 미로를 헤매지 않으며 오해를 무릅쓰면서, 사람이 살다 보면 당할 문제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기란 쉽지 않다. 원효는 그것을 감당했고, 그 같은 전범을 뒷사람에게 남기고 보여 준 사람이다.

 

534그러나 이상한 별이 나타나 동방 박사를 베들레헴의 마구간으로 이끌었던 것처럼. 원효를 가질 때 그 어머니는 꿈에 유성이 품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보았단다. 밤나무 아래서 그가 태어난 해를 승전에서는 진평왕 39(617)으로 적고 있다. 부처님이 열반한 곳에 서 있었다는 나무가 사라수였는데, 원효는 부처님이 세상의 인연을 다 한 곳에서 세상의 인연을 시작한 셈이다.

537 이미 의상과의 중국 행에서 원효는 큰 깨달음을 얻어 돌아왔었다. 그 때 벌써 원효는 원효였다. 그러다 요석공주와의 만남, 불교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파계다. 하지만 원효에게 그것은 이미 원효인 자신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그 부정 다음에 원효는 원효 아닌 원효로 거듭난다.

 

539 어째서 원효는 그가 이룬 높은 경지와 다르게 늘 낮은 자리에만 나오는 것일까?

 

541 지금 사람들은, 원효는 똥으로 나오고 말았지만 혜공은 물고기가 그대로 살아나와 헤엄쳐 갔다고 말한다. 조연으로 나오는 해동 불교의 좌장 원효의 완벽한 한판패다.

 

541   태어나지 말 것을, 죽음이 괴롭구나.

      죽지 말 것을, 태어남이 괴롭구나.

 

      사복이 글이 번거롭군요.”하더니, 고쳐서 말했다. “죽고 남이 괴롭구나.”

 

543 원효는 대첼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545 한마디로 말하면 원효는 이 나라 불교의 첫 새벽이다. 그로 인해 한국의 불교가 만들어지고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551 “지난밤 잘 때는 토굴이라도 편안하더니, 오늘은 잠들 자리를 제대로 잡았어도 귀신들 사는 집에 걸려든 것 같았네. , 마음에서 일어나 여러 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토굴이나 무덤이나 매한가지. 또 삼계가 오직 마음이요, 모든 법이 오직 앎이니,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나는 당나라에 들어가지 않겠네.”

 

559 세상에 끼친 이로움이 넓고도 넓으며, 넘치는 기쁨이 더욱 깊어졌으니, 이로써 부처님이 돌아가신 다음 부처님의 날을 빛내고 법륜을 다시 굴림을 알겠나이다. 오래도록 이 땅에 법을 머물게 할 사람 오직 법사이십니다.

 

567 “솥 안의 국 맛은 한 점 고기로도 충분하다.”고 일연은 의상의 저술을 평했다. 무량수전에서 바라본 눈맞은 석등과 안양루야말로 부석사를 맛볼 수 있는 한점 고기.

 

568 일연이 그를 찬한 시에서 무성한 꽃들 고국에 심엇으니 / 종남산과 태백산 똑 같은 봄이로다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무성한 꽃들이란 화엄의 세계를 말한다. 지상사가 있는 종남산이나 부석사가 있는 태백산이나, 의상의 전교로 인해 같은 화엄의 세계가 펼쳐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571 나는 거기서 참으로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모진 것과 다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벼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 데서 생긴 모짐이다. 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574 그렇기에 일연이 제목에다 귀축제사라 한 귀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가고서는 끝내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결국 그 곳이 진정 돌아갈 곳이 아니겠는가.

 

590 ‘삼베를 붙들고 황금을 버린다.’는 말은 『중아함경』에 나오는 비유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길가에 삼이 무성히 자란 것을 보고 캐서 돌아오는데, 이번에는 은이 널려 있었다. 한 사람은 삼베를 버리고 은으로 바꾸어 들었다. 또 가다 보니 금이 널려 있자, 은을 들고 있던 사람은 금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처음의 삼베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들고 돌아왔다. 좋은 것을 보고도 취하지 않은 바보스런 사람을 비유한 이야기다.

 

603 출가는 그 번뇌로부터의 떠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자체가 슬픔이다.

 

604 매에게 쫓긴 어미 까치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제 새끼를 지키는 이야기는 앞서 소개했다. 여기는 그보다 더 극적이다. 살이 발리고 뼈만 남은 채로 제 새끼가 있는 굴까지 돌아가다니!

 

604 운명적을 인생의 신고를 겪었거나, 일부러라도 겪어서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거나, 사람이 이를 수 있는 무상의 경지를 추구해 가자는 데 더 철저하다면 철저한 것이 밀교다. 그러기에 출가담도 그만큼 더 극적인 것일가?

 

604 평범한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의 출가자들 속데 연면히 내려오는 출가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17    산 복숭아 시냇가 살구가 울타리에 비쳤는데

 오솔길에 봄이 깊자 양쪽 언덕에 꽃이 피었네

 그대가 우연히 수달을 잡았던 인연으로

 나쁜 용은 서울 밖으로 멀리 쫓게 되었네.

 

라는 찬은, 뼈만 남은 수달이 제 새끼 있는 곳으로 가 있는 것을 보고 출가한 혜통의 인생에 불교가 어떻게 심어져 있는지 보여 주고, 살구꽃 같은 그의 생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찬미하고 있다.

 

623 크건 작건 실천의 문제다. 이론으로서 받아들인 철학을 넘어 생활 속에서 움직이는 실천 원리로 불교가 신라 사회에 자리잡혔음을, 우리는 이 같은 짤막한 삽화에서 읽을 수 있다.

 

629 그러기에 이야기의 주인공은 엄장이다. 그리고 그는 엄벙덤벙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상징하는 인물일 것이다. 광덕은 치밀하고 정성스레 예불하여 목적한 바를 이룬 점에서 의상을 닮았다면, 엄장은 실수투성이의 원효에 가까운 인물이다. 그래서 더 우리에게 친밀하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633 그러나 역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한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회한과 눈물로 범벅이 된 엄장은 원효 스님에게 달려가 간절히 깨우침에 필요한 가르침을 물엇다고 한다.

 

644    산 속에서 세 오빠 악한 짓 견딜 수 없어

       꽃다운 입에선 대신 죽겠노라 한마디

       의리의 소중함 몇 가지로 들어 죽음도 가벼이

       수풀 아래서 몸을 내놓았네, 떨어지는 꽃처럼.

 

656 정작 큰 스승들은 무엇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법이 드물다. 진리는 단순한 법이기에 그런 것일까, 유독 진신과의 만남을 중요시여기는 불교에서 그 만남은 곧 진리의 깨달음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겠는데, 단순하기만 한 진리를 전하는 진신은 이렇듯 슬며시 다가온다. 진신인지 알고 모르고는 찾는 이의 책임인 것이다. 기독교의 『성서』에서 예수님은 그것을 도적같이 찾아온다고 말한다.

 

656 사람들이 다니는 큰길가에서 외치듯이 기도하는 무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말한다. “하늘 나라에 이르거든 하느님는 저들을 결코 모른다 할 것이다.”그리고 첨언하지 않았는가 골방에 숨어 자신의 죄를 참회하며 눈물 흘리는 자에게 하느님은 다가올 것이라고

 

660 옛날 계빈에 큰스님이 한 분 있었다. 아란야법을 하며 일왕사에 이르렀다.

절에서는 큰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문지기가 그의 옷차림이 초췌한 것을 보고, 문을 닫으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이처럼 여러 차례 초라한 옷차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자 다른 방법을 썼다. 좋은 옷을 빌려 입고 온 것이다. 문지기가 보더니 막지 않고 들여보냈다.

자리를 차지한 다음, 여러 가지 좋은 음식이 나오면 먼저 옷에게 주었다. 여러 사람이 물었다.

어째 그러시오?”

내가 여러 차례 왔으나 그 때마다 들어오지 못했소. 이제 옷 때문에 이 자리를 차지했으니, 여러가지 음식이 나오면 그것을 옷에게 주어야 마땅하지요.”

 

672 불교에서의 숨음은 이와 다른 면이 있는 듯하다. 세상에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고만 해서 은거가 아니다. 또 드러냈다고 해서 드러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불교적 인식의 숨음과 드러남을 이해하자면 보다 복잡한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686 숨되 숨는 것이 아니요, 드러나되 드러난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변증법적 피은의 논리란 이런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논리대로 쓰여진 일연의 찬은 재미있다.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결국 연회는 왕의 사신이 찾아오자 제 업으로 받아야 할 줄 알고, 부르심대로 궁궐로 가서 국사에 임명되었다, 일연은 마지막에 쓰고 있다.

 

690 그런 어머니에 대한 일연의 향념은 신앙 그 자체다. 진존숙은 중국 당나라 때의 고승이건만, 만년에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고자 하산했다는 분인데 목주 출신의 그를 사모하여 목암이라는호를 지었다는 것이나, 일연의 일생의 뜻 깊은 까닭 가운데 하나로 진정한 자애를를 들고 있는 비문을 보건대, 효심은 일연을 일연에게 한 주요한 요소다. 바로 그 같은 효심의 결정이 「효선」편에 집약되어 있다.

 

703 진정의 어머니가 그의 꿈에 나타났다. “나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태어났구나.”

 

711 향가 최고의 작품,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열어제치자

         벗어나는 달이

         흰 구름 쫓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 겹쳐져라

         일오천 자갈벌

         낭이 지니시오던

         마음의 끝을 쫓노라

         ,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못 덮을 화랑이여

 

726 일연은 처음 이름이 견명이었고 불교의 이름을 회연이라 지어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켰다. 옛 사람들이 이름 다음에 자를 지을 때 흔히 하는 방법이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이 둘 곧 밝음과 어둠을 하나로 보겠다는 뜻에서 새로운 이름에 일자를 넣었다.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있다.

 

734 일연에게 새로운 시대에 대한 인식이 보다 구체화되는 것은 『삼국유사』의 편찬이다. 내외적으로 불어닥쳤던 거대한 변화의 조류는 필연적으로 전통적 사고방식의 해체를 가져왔는데, 『삼국유사』는 그 같이 변화된 모습을 담는 그릇이었다.

 

738 일연이 애써 향가 14수를 『삼국유사』에 남긴 일은, 그 자료가 오늘날 우리 고대 시가사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중요성을 무엇으로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게다가 승려의 신분이라 해서 불교적이거나 점잖은 편의 작품만 고른 것이 아니요, 비록 적은 편수이긴 하나 매우 다양한 모습을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한창 제고된다.

 

내가 저자라면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9개 편으로 구성된 원본 내용에 대해 작가 고운기의 생각을 담아낸 책이다. 그는 독자들이 가슴 깊이 와 닿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배경을 설명하고, 본문의 이해와 감동을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실었다. 또한 <삼국사기>를 면밀히 비교하면서 일연의 흔들림 없는 자주적 역사관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연의 발자취를 걸어가면서 자신이 느끼고 경험한 사실들을 시인 특유의 관찰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내가 만약 저자라면, 일연의 발자취와 작가가 그 길을 걸어간 행로를 지도로 한 눈에 들어오도록 만들고 싶다. 이왕 나의 생각과 느낌을 써내려 간다면 일연이 걸어간 길을 걸으며, 새로운 상상력의 물꼬를 틀고 싶다. 내가 마치 순례자가 되어 자연과 하나가 되는 순간, 밝음과 어둠이 하나라는 깨달음을 길 따라 남기고 싶다. 일연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을 더해서 자연의 마음을 보여 준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 책의 첫 시작을 딱딱한 <기이>편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흥법>편 이하 내용이 앞 부분으로 바꿔진다면, 독자의 흥미를 쉽게 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이야기보다는 스님들의 일상이야기 속에 우연한 깨달음이 담겨 있는 구성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주제와 마주치는 순간들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원효대사의 이야기였다. 원효가 똥으로 나오고, 혜공은 물고기로 나와 유유히 헤엄쳐가는 장면이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으며, 속세의 경계를 초월하여 살아온 원효였다. 신라시대 불교의 최고의 경지에 올라 성사(聖師)’라 불린 원효였다. 이렇게 원효가 이룬 높은 경지 대신 일연의 이야기 속에는 늘 낮은 자리에만 등장한다. 원효는 여인에게 조롱 받고, 똥을 누다 들키고, 사복에게 핀잔 받는다. 동네 아저씨 같은 분위기로 민생들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친구가 된다. 이렇게 지극히 인간적인 원효에게 나는 우연한 깨달음을 느낀다. 어느새 원효는 내 안에 위대한 성사(聖師)로 자리잡게 되었다.

 

내 책에도 엄벙덤벙 원효와 닮은 주인공의 삶을 그려가고 싶다. <삼국유사>의 첫 이야기가 우리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려준 것처럼,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장면이 시작되면서 주인공의 낮은 삶이 흘러간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서 현실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내면은 더욱 튼튼해진다. 이렇게 나무처럼 구성을 해본다면, 일상의 반복 속에 아침 출근 버스에서 문득 마주친 그녀의 모습을 보며 똥과 함께 생활했던 내 인생의 가장 낮은 곳을 떠올린다. 그 추억의 첫 장면은 똥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다. 그 순간은 견디기 힘든 치욕이었지만, 그 이후부터 행운이 하나씩 찾아 온다. 맨홀 속에 빠져 어둠 속을 허우적거릴 때에도, 고속도로에 뒤집어진 차를 마주할 때에도, 폐수처리장에서 미생물과 대화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주인공은 내면의 성장이 이뤄지고, 조금씩 위기의 순간들을 극복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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