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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11일 09시 22분 등록

작가에 대하여

 

일연

 

일연(一然), 속명 김견명(金見明), 1206(희종 2)1289(충렬왕 15)

고려 충렬왕(忠烈王) 때의 승려로, 보각국사(普覺國師)라고도 한다. 속성은 김(), 본관은 경주(慶州), 속명은 견명(見明)이며, 처음의 자는 회연(晦然), 나중에 일연(一然)으로 바꾸었다. 호는 무극(無極목암(睦庵), 시호는 보각(普覺)이며, 탑호는 정조(靜照)이다.

 

경상북도 경산(慶山)에서 김언필金彦弼 이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벼슬을 하지 않았고 더군다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일연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8살이 되던 1214(고종 1) 지금의 광주(光州)지방인 해양(海陽)에 있던 무량사(無量寺)에 가서 학문을 닦았고, 13살에 1219년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고승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여러 곳의 선문(禪門)을 방문하면서 수행하였다.

 

1236 10월 몽고의 침략이 일어나자 보당암의 북쪽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 항상생계(生界), 즉 현상적인 세계는 줄지 아니하고 불계(佛界), 즉 본질적인 세계는 늘지 아니한다(生界不減 佛界不增).”는 구절을 참구(參究)하다가 깨달음을 얻어서오늘 곧 삼계(三界)가 꿈과 같음을 알았고, 대지가 작은 털끝만큼의 거리낌도 없음을 보았다.”고 하였다. 이해에 나라에서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승계(僧階)를 내렸고, 1246년 다시 선사(禪師)를 더하였다. 1249년 정안(鄭晏)의 청을 받고 남해의 정림사(定林社)로 옮겨 이를 주재하였다. 이 절에 머무르면서 대장경 주조 중 남해의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의 작업에 약 3년 동안 참여하였다.

1256년 여름에는 윤산(輪山)의 길상암(吉祥庵)에 머무르면서 《중편조동오위 重編曹洞五位 2권을 지었고, 1259년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받았다. 몽고의 침입이 계속되는 동안 남쪽의 포산·남해·윤산 등지에서 전란을 피하면서 수행에 전념하다가, 1261(원종 2)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로 갔다. 강화도의 선월사(禪月社)에 머무르면서 설법,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하였다. 1261(원종 2) 왕의 부름으로 상경, 선월사(禪月寺) 주지가 되었고 목우화상(牧牛和尙)의 법통을 계승, 1268(원종 9) 조지(朝旨)를 받고 운해사(雲海寺)에서 선교의 대덕(大德) 1백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大藏經落成會)를 개최, 그 맹주가 되었다.

1264년 가을 왕에게 남쪽으로 돌아갈 것을 여러번 청하여 경상북도 영일군 운제산(雲梯山)에 있던 오어사(吾魚社)로 옮겨 살았다. 이때 비슬산 인홍사(仁弘社)의 만회(萬恢)가 그 주석을 양보하였으므로 인홍사 주지가 되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268년에는 조정에서 선종과 교종의 고승 100명을 개경에 초청하여 해운사(海雲寺)에서 대장낙성회향법회(大藏落成廻向法會)를 베풀었는데, 일연으로 하여금 그 법회를 주관하게 하였다. 그의 물 흐르는듯한 강론과 설법으로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감화시켰다.

1274년 인홍사를 중수하고 협소한 경내를 확장한 다음 조정에 아뢰자 원종은인흥(仁興)’이라 이름을 고치고 친필로 제액(題額)을 써서 하사하였다. , 이때 비슬산 동쪽 기슭의 용천사(湧泉寺)를 중창하고 불일사(佛日社)로 고쳤는데, 그의 〈불일결사문 佛日結社文〉은 이때 쓰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1277(충렬왕 3) 왕명으로 운문사(雲門寺) 주지에 취임하였다. 1281 6월 동정군(東征軍)의 격려차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은 일연을 불러 그의 가까이에 있으며 법설을 하였다. 그때 일연은 뇌물로써 승직(僧職)을 구하는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고의 병화로 불타버린 황룡사의 황량한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가을 충렬왕의 간곡한 부름으로 대전에 들어가 선()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무르면서 왕실 상하의 극진한 귀의를 받았다.

이듬해 3월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冲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이해 4월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摳衣禮:옷의 뒷자락을 걷어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 1283년 국존(國尊)으로 추대되어 원경충조의 호를 받고, 이 해 노모의 봉양을 위해서 고향에 돌아갔다. 다음해 조정으로부터 토지 백경(百頃)을 받아 경상도 군위(軍威)의 인각사(麟角寺)를 중건했고 궁궐에 들어가서 구산 문도회(九山門都會)를 개최했다.

그러나 늙은 어머니의 봉양이 마음에 걸려 몇 차례에 걸친 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산 아래에서 모시고 봉양하던 어머니가 1284년에 죽자, 조정에서는 군위 화산의 인각사(麟角寺)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경()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인각사에서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번 개최하였다.

1289 6월에 병이 들자 7 7일 왕에게 올릴 글을 쓰고, 8일 새벽 선상(禪床)에 앉아 제자들과 선문답(禪問答)을 나눈 뒤 거처하던 방으로 돌아가서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입적하였다. 그해 10월 인각사 동쪽 언덕에 탑을 세웠으며, 시호는 보각(普覺)이고, 탑호(塔號)는 정조(靜照)이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混丘)와 죽허(竹虛)가 있으며, 저서로는 《화록 話錄 2, 《게송잡저 偈頌雜著 3, 《중편조동오위》 2, 《조파도 祖派圖 2, 《대장수지록 大藏須知錄 3, 《제승법수 諸乘法數 7, 《조정사원 祖庭事苑 30, 《선문염송사원 禪門拈頌事苑 30, 《삼국유사》 5권 등이 있다.

그의 저서 <삼국유사>는 한국 고대의 신화와 민간설화를 수집하고, 특히 향가를 비롯한 불교 관계 기사를 수록, <삼국사기>와 함께 고대문학과 역사 연구에 귀중한 문헌이 된다. 이 밖에 <조정사원(祖庭事苑)>30,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을 지었다.

 

 

 

 

 

 

 

 

 

 

 

 

 

 

 

 

 

 

 

 

 

 

 

 

 

삼국유사

 

4 (무신정권 이후) 새로운 분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로 대표디는 고려 전기 지식인들의 세계 인식은 사대로 요약된다. 본격적으로 중국의 문화에 압도당하기 시작한 사회에서 그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념의 틀은 우리에게서 다시 만들어져야 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다는 말인가.

 

여기에 기름은 부은 것이 송나라의 멸망과 원나라의 성립이었다.

 

9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유념한 몇 가지 점을 미리 밝혀 둔다.

1. 본문을 읽어나가며 설명하는 방식 '내가 만일 삼국유사를 썼다면 이런 식으로 했을 것'이라는 기분으로 어디까지나 본문의 이해와 전달을 위주로 하였다.

2. 삼국유사 전체 조목 수는 약 140여개, 그것을 삼국유사의 순서대로 40개의 제목으로 분류하여 기술했다. … 그러나 보니 대부분 그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성질의 것끼리 묶느라고 순서를 무시한 부분도 많다.

3. [삼국사기]와 면밀히 비교

4. 일연의 생애와 관련된 사실을 군데군데 설명

 

18 곰은 뜻한 바 목적을 달성했다. 그런데 단군을 낳게 되는 과정까지를 유심히 읽다 보면, 재미있게도 곰이 세운 치밀한 계획에 환웅이 한 발 한 발 말려들더니, 드디어 빠져 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곰은 여자가 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최후의 주인공 단군의 출생까지 커다란 각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을 움직여 나간 주체는 바로 어머니 곰이다. 단군은 그렇듯 현명한 곰 부족 출신의 어머니를 두고 태어나 이 땅의 첫 왕이 되었다.

 

23 그러나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나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한껏 폼을 내 만들어 놓은 [삼국사기]라는 명약이 우리만의 고유한 정신과 영역을 잠식해 들어가는 바이러스로도 기능할 줄은 아마도 그 찬술자들조차 몰랐던 것 같다.

일연은 그 바이러스의 정체를 발견했다. 중국의 제도와 문물이 좋다고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중국이 그들의 필요에 따라 만들고 쓴 것이다. 이를 그대로 들여와 내용만 우리 것으로 채웠을 때, 내용은 형식에 가려 실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있게 세워 놓았지만 그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25 (최충헌, 이규보)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닌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은 아니었다.

 

37 그런데 여기에서 단군 신화와 다른 점이 분명히 보인다. 하늘님인 해모수가 직접 내려와 나라를 만들고 왕이 되었으며, 다시 그 아들을 왕위에 올렸다는 점이다. 해모수에서 해부루로 이어지는 왕위다.

 

43 주몽이 알에서 나왔다는 신화는 다음에 살펴볼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 신화와 비슷하다. … 그러나 이런 난생 신화의 핵심은 결국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이리라. 첫 출발의 의미를 문학적으로까지 보이게 하는 이 표현은 곧 그 옛날 왕을 맞이하는 어떤 의식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하지만 주몽은 왕이 되기까지 그다지 순탄한 길을 가지 못했다. 이 점 또한 박혁거세와 비교된다.

 

44 주몽의 이 같은 고난과 극복은 소설의 이론에서 말하는 '영웅의 일생'에 부합한다. 영웅은 특잏나 재주를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아 고난을 겪는다. 영웅은 그가 타고난 능력으로 이 같은 고난을 극복하고 이상을 실현해 낸다.

 

48 주몽이 북부여를 떠나기 전에 이미 아들을 하나 낳았었다. 아들은 신표를 남겨 두고 떠난 아버지를 찾아오고, 그가 고구려의 제2대 유리왕이 된다. 태자란 바로 이 유리왕이다.

è 네 아버지를 찾아가라. 전형적이다. 우리 역사의 이야기도 전형적 요소를 띄는데, 이것은 인류의 보편적 특징이어서일까 아니면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가 흘러들어온 것일까? 파에톤의 경우와 매우 흡사.

 

56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가?

우리는 앞서 환웅과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가 직접 왕이 된다든지 왕이 될 아들을 낳는 것으로 북방계 민족과 나라의 출발을 보았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말은 곧 오리지널의 출발을 의미할 것이다. 이제 남쪽에도 하늘에서 내려온 이들이 있음을 말하는 일연의 의도란 곧 북쪽과 계통을 달리하는 오리지널이 있음을 강조하자는 데 있지 않을까?

 

66 먼저 지리산의 성모천왕 이야기다. 갑자기 산 개울이 비도 오지 않았는데 넘쳐흘렀다. 한 스님이 이상히 여겨 천왕봉 꼭대기에 올라가 보자, 그 곳에 키가 크고 힘센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스스로 성모천왕이라 했다. 인간 세상에 내려와 짝이 될 인연을 만나려 오줌을 눈 것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딸 여덟 명을 낳았는데, 그들은 전국 팔도에 흩어져 무당이 되었다.

 

66 여기서 호경이 여신의 도움으로 산의 대왕이 되는 과정은 혁거세가 선도산 신모에게서 태어나 왕위에 오르는 과정과 무척 닮았다. 한 쪽이 부부 관계라면 다른 한 쪽이 모자 관계라는 것이 다르다면 다를 뿐이다. 선도산 신모는 어머니인 대신 다른 여자를 만들어 짝지어 준다. 그 여자가 곧 자신의 분신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68 무당의 탄생 내력을 담은 이야기는 고대 국가의 건국 신화와 사촌간처럼 가깝다. 그것은 고대로 올라갈수록 왕권과 신권이 분리되지 않았던 데에서 연유한다.

 

73 아마도 그런 사정이 있다면 탈해는 다음을 기약했으리라. 그러면 내기는 기실 이번 차례에 오르지 않으려는 꾀에 불과하다. 왕의 사위까지 되었지만, 탈해로서는 서라벌이 아직도 남의 동네다. 뭔가 자신의 기반을 확실히 닦은 다음 굳건한 위치에서 왕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78 달리 생각하면 이만큼 인간 냄새가 나는 이야기도 없다. 하늘과 땅이 부리는 조화로 자신의 신성성을 포장하는 시대를 지나, 이제 인간 대 인간의 투쟁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매우 정치적인 모습이 나온다. 신화가 설화로 돌아서는 지점이다.

 

86 그러나 무엇보다더 '마치 혁거세의 옛일과 같았다'는 대목이 주목을 끈다. [삼국사기]에서는 없는 말이다. 일연이 김알지의 탄생을 혁거세에 비견한 것은 무슨 의미일가? 장차 신라의 왕위를 이어 나가는 세력의 탓애을 암시하면서, 결국 그가 잠시 탈해에 의해 끊어진 박시 계열을 이어나가는 적통자로 본다는 것일까? 알지가 성을 김으로 삼았다지만 성이 무엇인가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90 히미코가 다스리는 나라는 야마일국이다. 그는 여왕이었다. 비록 여왕이 다스리는 나라였으나 가장 강성했다 하고, 238년에는 위나라에까지 사신을 보낼 정도였다.

 

91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오래도록 남성에 복종하며 살아온 일본의 여성들이 장신의 일을 찾고 자기의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상징적인 인물이 여왕 히미코라는 것이다.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여들면 곤란하다.

 

97 연오와 세오가 일본 땅으로 가 버린 다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했다. 나는 이것을 일식이나 월식 같은 자연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삼국사기]의 전반부에 일식을 알리는 기사가 빈번히 등장하지만, 어디까지나 중국의 역사서에 인용한 것들이다. 일식이 곧 오늘날의 일식과 같다 할지라도, 단순히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98 일관이 이르기를 '일월지정'이라 했다. ''을 편의상 '정령'이라 번역했는데, 이 의미에 주목해 보자. 해와 달은 빛이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 없듯 해와 달이 빛을 잃으면 쓸모 없는 물건이 된다. 그러나 빛이 있다고 다 보는가? '눈 뜬 소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본다는 것은 그 정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정령이다.

 

 

101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107 신라에 어떤 늪이 하나 있었는데, 그 늪 가까운 곳에서 신분이 앚은 여자 한 사람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 때 무지개와 같은 햇빛이 여자의 음부를 비추고 있었다. 한 남자가 이 광경을 목격했다. 이윽고 여자는 태기가 있어 출산을 했는데, 붉은 구슬이었다. 남자는 그 구슬을 달라고 하여, 허리에 차고 다녔다.

 

112 그렇게 떠난 고구려에서의 일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왕이 밤중에 빠져 나와 고성의 해변가에 이른 도망자들을, 고구려 왕은 수십 명을 시켜 뒤쫓게 했으나, 보해가 고구려에 있으면서 옆 사람들에게 늘 잘 대해 주었으므로, 군사들은 동정심이 생겨 모두 화살촉을 뽑아내고 쏘았다 한다.

 

116 한반도의 가장 가까운 신라가 그들과 적대 관계로 정착되는 상징적ㅇ니 사건, 나는 그것을 박제상의 죽음으로 본다.

 

120 설화 문학에서 말하는 하나의 유형 중 밤에 찾아오는 손님이 소재가 되는 야래자 설화가 있다. 그 밤손님은 물건이나 훔치는 도둑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상적인 관계를 가질 수 없는 남녀 관계에서 남자쪽을 가리킨다. 남자는 당대의 영웅이거나 기이한 인물이면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밤에만 남몰래 찾아 들어야 할 운명이다. 드러내 놓고 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랑을 받아들인 여자는 거기서부터 시작될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을 낳게 된다.

 

125 그토록 당당한 모습을 지닌 여자도 아름답지만 한마디 농담으로 계면쩍은 분위기를 수습한 왕이 그대로 여자를 보내 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è "지아비가 없으면 되겠느냐?" "그렇습니다."

è 지아비를 죽일 줄 알았는데 나는…. 이게 농담일까.

 

130 따지고 보면 진평왕과 비형은 사촌 형제간이다. 진평왕이 그것을 믿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떻든 특이하다고 하니 데려와 길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불행한 천명의 사나이는 반은 사람이니 낮에는 사람처럼 살고, 반은 귀신이니 밤에는 귀신처럼 살았다.

 

133 비형의 추천을 받은 길달도 그 못지 않게 활약했다는 것인데, 길달은 끝내 사람 사는 세상에는 저긍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반이나마 사람 몸으로 이루어진 비형과는 달랐던 것일까? 그런데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달아나는 길달을 비형이 죽였다는 마지막 대목에서 우리는 또다시 귀신 세계를 보는 당시 사람들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귀신은 사람을 돕는 존재이면서, 그것을 어겼을 경우 엄정한 벌을 받는다는 데까지 나가 있는 것이다.

 

135 커다란 지렁이와 연못의 용은 어떤 유사성이 있다.

è 자주빛 옷을 입은 사내가 곧 지렁이

è 백제 무왕의 탄생 설화에서 과부인 어머니가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해 낳은 자식

 

139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

 

140 삼국유사의 기록들을 통해 이 의문을 해결하고 한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자가 먼저 된다'는 말씀은 옛 유대 성인의 입을 통해 나왔지만,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그것은 진리다. 최소한 한반도에서 신라는 그 말슴이 진리임을 입증한 나라였다.

è 가장 나중 된 자가 모든 시행착오를 확인한 후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으므로.

 

141 [기이]편의 '거문고의 갑을 쏘라'조이다.

 

노인이 바친 편지, 겉면에 "뜯어서 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요, 뜯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쓰여 있었다. 병사는 돌아와 그것을 왕에게 바쳤다.

"두 사람이 죽는 것보다야, 뜯지 않아 한 사람이 죽는 게 낫겠지."

왕이 그렇데 말하자 일관이 아뢰었다.

"두 사람이란 일반 백성이요, 한 사람이란 왕입니다."

왕도 그럴 것 같아 뜯어보게 하였다. 거기에는 "거문고의 갑을 쏘라"라고 쓰여져 있었다.

왕이 궁으로 돌아와 거문고의 갑을 쏘게 하였다. 그랬더니 내전의 분수승과 궁주과 몰래 정을 통하고 있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참형을 당하였다.

è 굳이 노인이 편지를 전해 준 의도가 무엇인지 간파한 것. 명제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147 부처님을 화랑으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이것은 전형적인 미륵하생신앙인데, 화랑도에 자연스럽게 불교가 접맥되는 순간인 것이다.

 

149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157 백제는 친하자고 말을 걸어와도 껄끄럽고, 고구려는 가끔 쳐들어 와도 치명적일 것 없었다. 지리적으로 볼 때 백제의 침공은 수도 경주의 안위와 직결되지만, 고구려는 변방에서 변죽만 울리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è 사기열전의 형세 분석과 비슷

 

166 고려의 국조로 불리는 보육에게는 두 딸이 있다. 둘째 딸의 일므은 진의, 바로 이 딸이 15세가 되었을 때, 그의 언니가 산꼭대기에 올라가 오줌을 누었더니 온 세상에 넘치는 꿈을 꾸었다. 진의느 비단 치마를 주고 그 꿈을 산다. 얼마 후 당나라의 황제가 천하의 여러 곳을 다니다가, 두 자매가 사는 마을에 이르렀다. 황제는 두 자매를 보고 기뻐하며, 자신의 옷에서 터진 곳을 꿰매 달라고 부탁한다. 보육은 큰딸에게 그 일을 시킨다. 그런데 이 딸은 문턱을 넘다가 넘어져 코피가 흐르므로 할 수없이 둘째 딸에게 시킨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인연이 맺어지고, 여기서 낳은 아들이 작제건이다.

è 오줌의 상징성 반복된다.

è 같은 이야기가 김유신의 이야기에도 나와.

 

169 일제시대 때 최재서가 그린 김유신의 모습이란 바로 망국민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번민에 찬 지식인이다. 그것은 곧 최재서 자신의 의식이 투영된 분신이었다.

 

172 어찌 나는 새 한 마리의 괴이한 짓거리를 가지고 하늘이 준 기회를 어길 수 있겠소. 천명에 응하고 인심에 따라, 지극히 어질지 못한 자를 치는 마당에, 어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겠소." 곧 신검을 뽑아 그 새를 겨누었다. 그러자 새가 찢어져 그들 앞에 떨어졌다.

 

184 옛날 만사를 아우르던 영웅도 끝내는 한 무더기 흙더미가 되고 말아, 골베고 소 먹이는 아이들이 그 위에서 노래하고, 여우와 토끼가 그 옆에서 굴을 팔 것이니, 분묘를 치장하는 것은 한갓 재물만 허비하고 역사서에 비방만 남길 것이요, 공연히 인력을 수고롭게 하면서도 죽은 혼령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픈 것을 김치 못하겠으되, 이와 같은 것은 내가 즐겨 하는 바가 아니다.

 

189 상징의 핵심은 고장난명이었다고 해야 할까? 천하를 상서롭게 다스리고 화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나 같다. 그런 소망의 결정이 피리로 상징되어 나오는 것이다.

 

 

196 삼국유사에서 토사구팽의 첫 비극적 주인공은 뜻밖에도 김유신이다. .. 죽어서도 100년 동안 김유신의 자손들은 그 영화를 누렸으되 언제나 가시방석이었다.

 

204 김유신가의 몰락은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서서히 진행되지만 토사구팽의 비정함은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전쟁이 끝나 시대가 안정되자 사람들의 관심은 자연히 다른 데로 흘러갔다. 그 가운데 가장 걸리는 존재가 전쟁 영웅들이었다.

 

210 득오가 지은 향가 [모죽지랑가]의 배경 설화로도 유명한 이야기다그러나 이 일화의 내면에는 한낱 종이호랑이로 변해 버린 화랑 출신들의 쓸쓸한 노년이 숨어 있다.

 

219 사실 처음에 살펴보았던 경덕왕의 첫 왕비 삼모부인의 출궁 사건에도 왠지 반역의 냄새가 난다. 아무리 아들이 없다 한들 그토록 재빨리 갈아 치워버릴 수 있을까? 만월부인에게는 15년씩이나 말미를 주면서 말이다.

 

229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구지가]로부터 [해가]까지 사이에는 이미 700여 년의 세월이 가로놓여 있다. 그렇듯 긴 세월을 두고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하게 불리는 노래가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구지가의 시대에 이 노래는 신이 중심인 신화에 속한 신가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삶 속에 노래가 자리한다. 전체적인 틀은 유지하면서도 700년의 세월이 가져다 준 주목할 만한 변화다.

 

233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꼿촤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동해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

 

240 경덕왕은 재앙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을 여기서 얻는다. 특히 호국 불교적 특징이 미륵 신앙과 긴밀히 만나는 장면이다.

 

242 다만 삶의 고통은 죽음이라는 운명적 환경이 만들어 준 것, 도 닦는 사람이라고 거기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한 잎에도 속절없는 인간의 생애를 비유한 솜씨가 비상하기만 하다.

 

254 같은 꿈을 놓고도 정반대의 해석이 나옸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뜻인지는 모른다. 어차피 왕위를 다투는 마당에 결과는 왕이 되거나 죽거나 어느 하나로 맺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는 길을 찾는 수밖에. 여삼의 해몽이란 결국 살길을 찾으라는 말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264 세상을 돌며 그가 본 바를 설명하는 대목이나, 부하의 말을 듣고 그에 따르는 대목이나, 두 가지 모두 경문왕이 무엇보다 덕을 가진 이였음을 보여주는 데 부족하지 않다.

 

267 뱀을 이불 삼아 자야했던 사람, 시중드는 내시들뿐만 아니라 부인조차 모르게 감추어야 했던 긴 귀를 가진 사람 - 그것은 곧 자신의 고민을 오직 스스로 혼자 지고 가야하는 고독한 이의 슬픈 초상이다.

 

277 인재들이 죽어나가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280 그런데 역사적으로 읽을 때 중요한 것은 역시 처용이라는 인물이다. 헌강왕을 따라 경ㅈ우로 간 시골 출신의 이 젊은 청년이, 모두에 호사의 극치를 달리는 것으로 묘사된 ㄱ도시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활했을까? 높은 벼슬에 어여쁜 부인까지 생겼어도 청년의 마음은 동해 바다 검푸른 빛에서 하나도 떠나지 못한 듯하다.

è 소설 L과 연관지어 생각해보기

è 오딧세우스의 이야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284 엄연한 유부녀가 외간남자와 정을 통하는 이 장면에서 당시의 사회상을 읽ㅇ르 수 있다. 처용의 노래와 춤은 그 같은 비극 앞에서 체념한 것일가, 에둘러 꾸짖은 것일까? 일연은 역사적 사실로서 광란스런 왕들의 혈전을 쓰는 것보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 한 토막으로 덜 실감나게 당시 모습을 전해 준다. 그것이 [삼국유사].

어떻든 역신은 물러갔고, 처용의 힘을 믿는 민간에서는 처용 부적까지 생겨났다. 한 사나이의 희생으로 그 뒤 사람들이 입은 덕은 크다.

 

287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인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골품제의 동맹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300 일연의 의도는 견훤과 왕건의 비교, 곧 그것은 새로운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의 덕망을 보여 주려는 데 있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è 사기열전에서 인물 비교와 비슷?

 

302 그러나 정녕 아쉬움은 있다. 태자의 이 간절한 한마디, '천 년 사직'이란느 말에서 우리는 실리에만 매달리지 못하는 어떤 다른 논리 안인 논리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물론 그런 니낌일 뿐이다.

 

311 분명코 이 도읍의 역사 속에서 읽어야 할 것이 있다. 백제가 한강유역에다 도읍을 두었을 때는 북부여로부터 출발한 북방계 민족일 뿐이었다. 그 외교 관계의 중심점도 북쪽을 향해 있었다. 그러다 일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고구려로부터 가중되어 오는 압박을 견디기에 백제는 너무 작은 나라였다. 그래서 그들의 천부적인 이동솜씨를 발휘해, 어느덧 배를 만들어 남쪽으로 일본열도를 발견해 내고 있는 것이다. 한강 유역을 고집하지 않을 바에야 일본에 이르기 가까운 곳으로 도읍을 옮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것이 웅진으로 다시 부여로 도읍을 옮기는 속내로 보인다.

 

321 소문으로만 듣던 백제와 일본 왕실의 관계를, 여러 문헌과 유물 자료로 밝힌 구체적인 결과 앞에 서면서, 우리들의 마음에는 놀라움과 착잡함이 겹친다. 그토록 가까웠나, 그런데 그토록 남이 되어 있나?

 

327 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누구도 될 수 없다고 포기할 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난국을 돌파하는 꾀는 맹랑한 자에게서 나온다. 그런 맹랑한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가 발전한다.

 

331 이런 종류의 노래(서동요), 어린 아이들이 불렀다는 데에서 동요, 그리고 그 내용이 어떤 목적한 상황을 이미 이룬 것처럼 상정하고 있다는 데에서 참요 또는 예언요라고 한다.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동요요 참요라고 할 수 있다.

 

332 이야기는 이 세 번째 부분에 와서 본격적인 성공담으로 이어진다. 서동은 비범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지만 귀하고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공주를 꾀어내는 꾀도 그가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후천적인 교육의 중요성은 여기서 발휘된다. 공주는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런 점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완전한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다. 거기에 제3의 조력자로 지명법사가 등장한다. 그의 도움은 서동과 공주 두 사람만의 조화에서 공주의 부모까지 아우르는 화해로 확대되고, 왕이 되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이런 것들의 조화가 빚어내는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여기서 등장 인물을 적절하게 배역시킨 한 편의 완벽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343 대체적으로 미륵불은 여성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미륵이 본디 남자였지만 이렇게 바뀌는 것은, 미륵불이 자비와 영원불멸의 생산을 의미하는 여성적인 성격을 가진 데다 남성인 석가불에 대응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미륵은 자비의 부처다.

 

346 이런 뺏고 빼앗기는 쟁탈전 속에 나라가 강성해지고 왕이 선다는 해석으 언뜻 보면 희극 같다. 그러나 당시 사람들에게 깊이 뿌리 박힌 미륵 신앙과, 그것에 국가적 명운을 걸던 분위기를 감안하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357 왕건이 보낸 답장은 훨씬 부드러우면서 자신의 의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 당대의 문장가들이 동원된 편지 싸움인 만큼, 중국의 고사들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자기를 합리화하는 글 솜씨는 찬란하다. 어디 이만한 편지 싸움이 또 있을까 싶다.

 

그것은 마치 초 항우와 한 유방의 싸움을 보는 듯하다. 역발산 기개세라 한 항우 앞에 유방은 언제나 꼬리 감춘 쥐였으나, 민심의 향배가 그들의 운명을 가르지 않았던가?

 

360 가엾은 완산 아이가 아비를 잃고 눈물 흘리네

짤막한 노래 하나 등장시켜, 견훤의 말년을 실감나게 그린 일연 다운 솜씨를 또 한 번 느낄 수 있다.

 

364 일연의 삼국유사에 실려 있기에 오늘날 소중한 자료로 남게 된 베스트3을 꼽으라고 하면 무엇을 들겠는가? 내가 존경하는 어떤 선생님은 단군신화-향가-가락국기 이 세 가지에다 점을 찍었다.

 

371 하늘로부터 내려온 여섯 개의 알, 이야기의 골자는 신라의 박혁거세나 김알지의 탄생을 알리는 대목과 매우 닮은, 남방계 그대로다.

 

372 구지가 - 노래에서는 맞이하려는 대상을 거북이로 상정하고 있다. 이 거북이는 용으로도 바궈볼 수 있다. 상상의 동물로서 거북이는 왕왕 용의 다른 모습이거나 똑 같은 역할을 한다. 분명 신성한 동물의 하나다. 그러나 존대보다는 위협을 가하면서, 심지어 구워먹겠다는 불경스런 표현을 서슴지 않는 데에서 우리 옛 노래의 특이성을 발견한다. 이것은 삶을 개척하는 매우 강한 의지나 다름없다.

 

382 앞서 소개한 바 김춘추와 문희의 '민족의 결혼'이 낳은 아들 문무왕. 삼국 통일을 완성한 그는 신라가 가야 두 민족간의 결합으로 태어났다. 그러기에 민족간의 결합에 의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391 찬 이라고 하는, [삼국유사]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아름다운 시들이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바로 그 처음이 먼 길을 걸어 또는 세찬 바다를 헤치고 이 땅에 이른 순례자들을 위해 바친느 헌시다.

 

394 순례자의 길은 외교 사절의 화려한 행차가 아니다. 무기를 쥔 군대의 살벌한 행진도 아니며, 이익에 혈안된 장사꾼들의 잰걸음도 아니다. 어떤 깨달음의 숭고한 사명이 조용히 깃든, 세계와 인간이 하나되어 마침내 그 비밀에 눈뜨고야 말 두근거리는 첫 발자국이다.

 

399 그러나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 그것은 3 '봄의 신'이 상징하는 바이니, 언젠가 오고야 말 그분은 어여쁘시고 재주도 많으시다. 추운 겨울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은 안이며, 자연의 이치에 따라 봄이 오듯이, 신라 땅에도 봄은 찾아오리라. 4행은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례의 집 매화나무에 먼저 도착한 봄이 있다는 것이다.

 

봄빛이 아직 두루 돌지 못했을 때 매화는 핀다.

 

406 이미 몸을 버리기로 한 순교자의 절개는 눈물겹거니와, 이를 말리는 왕의 애정 또한 깊다. '살을 베어 저울로 단다'는 말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시비왕이 고행을 할 때였다. 메추라기가 매에게 쫓겨 시비왕의 품으로 들어왔다. 왕은 메추라기도 살려야겠고 매도 굶길 수 없으므로, 자기 살을 메추라기의 몸만큼 베어서 저울에 달라 매에게 먹였다. 정녕 법흥왕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다.

 

415 연개소문의 탄생 설화

"신이 죽어 고구려의 대신이 되어 반드시 나라를 멸망시키고 제왕의 원수를 갚겠나이다."

양명이 죽은 다음 고구려에서 태어났다.

 

425 이 아쇼카왕이 어쩌다 불교신자가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쇼카는 지독히도 못생겼다. 그의 형 수사마 태자가 준수한 용모로 아버지의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야쇼카는 행여 질투심에 딴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아버지의 노파심 때문에 차라리 죽기를 바라고 전쟁터에 내보내지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략이 있었다. 싸움에 이기면서 백성들의 신임까지 듬뿍 받았다. 반면 태자는 거만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 점점 여론은 아쇼캬 쪽으로 기울고, 드디어 아쇼카가 온갖 어려움을 무릎쓰고 부왕이 이어 왕이 된다.

 

그러나 아쇼카는 콤플렉스가 많은 왕이었다. 못생긴 얼굴에 형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죄책감마저 가득했다. 그것은 이상한 형태로 뻗어 나와 결국 가상 지옥을 만들어 놓고 잘생긴 사람을 들여보내 죽이는 해괴한 짓을 저질렀다.

 

436 나는 들었네 황룡사 탑이 불타던 날

번지는 불길 속에서 한 쪽은 무간지옥을 보여 주더라고.

 

444 대체로 성인을 만나는 장면은 이렇게 전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인이 성인인 줄 알고 만난다면 오죽 좋으련만,. 우리는 본질을 두고도 늘 외곽만 맴돌며, 손에 잡은 진리를 진리인 줄 모르고 버리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나는 그것을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이라고 말한다.

 

452 들에서 학 다섯 마리를 보고 쐈다. 그 중 한 마리가 깃털 하나를 떨어뜨리고 가 버렸다. 거사가 그 깃털을 집어 눈을 가리고 사람을 보니, 사람이 모두 짐승들로 보였다. 그런 까닭에 고기를 얻지 못하고, 자기 허벅지 살을 베어 어머니에게 드렸다.

 

458 의지할 데 없는 이들에게 주는 위로와 안식

 

466 시주나 걷자고 나온 이야기는 결코 아닐 것이다. 자신들이 믿어마지 안흔 어떤 절대자에 대한 꾸밈없는 흠모는 이런 기적을 낳게 한다. 일연은, 이 시대의 사람들이 이 같은 세계 속에서 살았음을, 우리에게 조용히 전해 주고 있을 뿐이다.

 

473 그런데 낭자의 출산을 위해 준비해 준 목욕물이 금빛으로 변한다. 낭자는 스스로 자기가 관음보살이라 밝히고, 스님의 대보리가 이뤄지도록 돕겠다고 말한다.

è 스님의 규율을 깨고 중생을 살핀 마음 때문에 오히려 구원 받는다.

 

480 성불을 돕기 위해 나타나는 관음보살이 흔히 여자의 모습인 것은 [삼국유사] 안에 여기 말고도 여러 군데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여자의 모습인가는, 일연이 결론 부분에서 "여자는 부녀자의 몸으로 나타난 섭화자라 할 만하다. [화엄경]에서 마야부인 선지식이 열한 군데에 살면서 부철르 낳아 해탈문을 환상했다'는 것과 같다. 이 이여가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은 숨은 뜻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비롭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성격을 가진 이가 관음보살이다. 이는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다음 더욱 강화된 생각이라고 한다.

 

496 의상이 치밀하고 정성스럽게 진신을 만나는 과정은 하나의 전범을 보여 주지만 ,세상에 사는 보통 사람으로서 우리는 그 같은 경지에 오르기도 어렵고, 그럴 계기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502 아홉 살에 어머니를 떠나 구도의 길을 걸어간 사람, 일연에게는 귀 하나가 없는 사마승의 이야기가 그렇게 가슴 깊이 아로새겨졌다. 한 귀가 잘린 채 먼 이역에서 고국의 스님을 만나 고향에 돌아가거든 자기 어머니를 찾아가 달라고 말하는 소년은 정취보살이기에 앞서 일연 자신인지 모른다. 어머니를 떠나 머나 먼 강원도 산골에 와 있는 소년 일연의 마음이 그랬을 터이니 말이다. ', 어머니. 저 먼 나라를 아십니까?'

 

504 세상살이의 헛됨을 비유하는 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단지몽. 중국의 한단이라는 동네에서 나온 이야기다. 밥이 끓는 솥단지 앞에서 따뜻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구고 깨어 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 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수고로운 인생

 

513 불교는 우리 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다. 무릇 2천 년을 바라보는 오랜 역사에다, 거기 누벼진 사연이 많기도 많아, 불교야말로 이성으로만 받아들여지는 어떤 형식으로서가 아닌 우리들 심성 깊숙이 내릴 튼튼한 뿌리다.

 

521 일연은, 이미 13세기에, 이 땅에 뿌리내린 불교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인식한 이였다고 보아 무방하다.

 

526 재미있는 것은, 법사가 배나무를 가리키며 이목을 OGTEK는 것인데, 한자어로 같은 발음이 나는 두 단어 사이의 언어유희다. 그것은 전설이 만들어지는 하나의 원리이기도 하다.

 

530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지구는 자전을 하면서 소리를 낸다고 하는데,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뿐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535 자루 빠진 도끼라는 비유야말로 얼마나 기이한지. 여성을 상징함과 아울러 본디 자루가 있었음을, 그러니까 지금 혼자되어 사는 여성임을 동시에 말한다.

 

537 속과 성의 경계를 마음대로 드나들고자 했던 원효도 요석공주와의 사랑이며 설총을 낳은 일에 초연할 수만은 없었나보다.

è 원효대사의 캐릭터도 수집하기

 

542 사복은 사상애요 일찍 부모를 여읜 불쌍한 아이다. 그것을 세속의 인연일 뿐이라고만 말하지 안흔다면, 원효의 손길이 미치는 넒은 세계를 우리는 그려보게 된다. 사동이라 놀림받는 불상한 소년의 처지를 함께 한 이는 원효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 불가능할 것이다.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è 구도자의 모습을 L에 담기. 아는 오빠의 인도 여행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548 현실과 역사를 관조하는 일연의 태도가 드러나 보인다. 인생의 제무상은 원효라고 다를 수 없다. 그들의 치열했던 한 시대를 생각하는 시인의 심상은 비관으로서가 아니라 인생의 숙명으로 수놓아진다.

 

551 마음의 밖에 법이 없는 걸 어찌 따로 구하리요.

 

552 그러나 의상은 "한 그림자에 외로이 싸우며, 죽음을 무릅쓰고 물러나지 않았다"라고, [송고승전]의 마지막 대목은 적고 있다. 의상은 그런 사람이다. 원효가 감성적이라면 의상은 이성적이다. 귀신 따위로 마음을 흩뜨릴 사람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부터 원효와 의상은 서로 가는 길이 분명히 달라졌다.

è 둘의 대조. 두 인물상의 대조를 L K의 관계로 사용할 수 있을 듯.

è K는 결국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군의 표상

 

565 그렇다면 왜 법사일가? 원효과 현실주의라면 의상은 교조주의다. 원효의 현실주의를 앞서 소개했거니와 의상의 교조주의 또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결코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닌 까닭이다.

 

568 일연 - 원칙적, 정통적

 

569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다가 그것만 일까 싶었다. 힌두 문화의 오랜 전통 속에서, 이 세상의 영화보다 저 세상의 부귀를 더 갈망하는 그들의 심성 속에서는 헛된 세상의 욕심을 버린 지 오래고, 심지어 고통스럽게 사는 이 세상을 더 달가워한다는 것이 머리로는 이해된다. 그렇지만 거기라고 사람 사는 세상인 바에야 왜 호사를 바라지 않고 다툼이 없겠는가 의문스러워 해본 것이다.

 

571 나는 거기서 참으로 모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그것은 우리가 모진 것과 다르다. 우리가 자본주의적 욕심에 벼려져서 모질다면 그들은 원초적 자연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적응하고 생존하려는 데서 생긴 모짐이다. 인류가 가장 인류다운 모습, 아마도 문명 이전에 인류는 저렇게 살았을 것 같은 모습을 그들은 지금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준다. 진실로 두려워 할 줄 알고, 진실로 견뎌 낼 줄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성스러워 보였다.

 

576 내 고향은 하늘 끝 북쪽

땅 한 모서리 서쪽은 남의 나라

남천축 해 떠도 기러기 한 마리 없어

누가 내 집으로 돌아가리

 

585 10여 년 간 스승 아래 있다 홀로 수행에 나선 셈인데, 그 방법이 자못 과격하다. 곧 자신의 몸을 학대해 가며 도를 이루려는 것인데, 이는 진표를 이은 제자 심지나, [신주] 편에 나오는 혜통으로 이어진다. 점찰경의 탑참법이나 박참법을 통해 본인 자신의 죄업을 씻어내기 위해서, 또는 밀교 계통의 승려가 나타나면서 보이는 특이한 현상이다.

 

594 강릉 바닷가에서 물고기들에게 설법을 했다는 사실은 앞서도 밝혔지만 진표의 전도는 대체로 이렇게 이어진다.

 

604 다만 더 극적이어서 가치가 높다는 말은 아니다. 평범한 속에서도 진리는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깨달은 무상의 존자들은 얼마든지 있다. 불교의 출가자들 속에 연면히 내려오는 출가의 동기를 소중히 여기자는 것일 뿐이다. 어쩌면 그 동기 하나로 깨달음은 단박에 몰려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616 일연의 혜통에 대한 평가는 극진하다. "이제 화상이 무외를 제대로 배워와, 속세를 두루 돌며 사람을 구하고 세상을 교화시킴은 물론 운명을 보는 밝음으로 절을 지어 원망을 씻어 주니, 밀교의 바람이 여기에서 크게 떨쳤다."는 논평은 물론이려니와.

 

623그런 사회를 지탱해 주는 것은 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여부의 옷 한 벌 없이 살아가는 한 승려가, 돌아가 덮을 이부자리 하나 없는 처지에 입고 있던 옷을 몽땅 벗어 주고 알몸으로 달려가거니와, 그 순간이 바로 신라 사회의 고갱이었다고 말한다면 어떨가? 기록에 나타난 '우리 나라 첫번째 스트리퍼'라고, 나는 이 대목을 농담처럼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그 농담 소의 진담을 아는 사람은 다 알리라.

 

633 그러나 역시 이 조에서 매력적인 인물은 엄장이다. 그가 우리와 닮아 있기 때문일까. 실수와 무지 투성이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조력자를 만나 무지와 실수로 가득한 삶을 한 번 돌이킬 기회를 갖는 것, 그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다.

 

642 호랑이로 설정된 사람의 이야기 - 퍼득 그런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그러나 서둘러 그렇게 나가면 이야기는 재미없다. 처녀 호랑이는 제 마음에 맞는 한 남자를 만났으되, 식구들이 모두 당해야 할 재앙 앞에 혼자 목숩을 버려 막기로 다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제 목숨 사리자고 꼬리르 떨어뜨리며 도망가는 다른 형제들과 얼마나 다른지.

 

643 어쨌건 죽을 목숨, 사랑하는 이의 손으로 최후를 맞겠다는 것, 다소 유미주의적인 SBMRLA이 들기도 하겠지만, 한 번 죽음으로 여러 이익이 돌아온다는 말에, 사랑하는 이의 주검을 팔아 한 세상 잘살아 보자 요행을 바라겠냐는 김현도 묵ㅁ구히 따를 수밖에 없다.

 

651 그런 까닭은 자명하다.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킨 것보다, 짐승이면서 사람보다 더한 마음씨를 지닌 처녀 호랑이에게 오히려 사람인 김현이 감동된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656 그렇다면 누가 그 성인을 만나는가? 의상 스님과 같이 치밀하고 정성스런 사람이 만날 것이며 효소왕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662 내가 여러 차례 왔으나 그 때마다 들어오지 못했소. 이제 옷 때문에 이 자리를 차지했으니, 여러 가지 음식이 나오면 그것을 옷에게 주어야 마땅하지요.

 

668 그러나 불교의 법을 섬기면서 그 폐단을 알지 못하였다. 마을마다 탑이 즐비하게 서고, 여러 백성들이 중의 옷을 입고 숨자, 군대와 농업은 점차 줄어들어 나라가 나날이 쇠약해졌다. 어찌 어지러워 망하지 않으리요.

 

672 세상과의 절연이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돼지우리 같은 시궁창에 뒹굴어도 살아 있음이 소중하고, 복마전 같은 세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아옹다옹 싸우며 한 세상 마치는 것이 모정의 세월이다. 누군들 거기서 벗어나 홀로 한 길을 가고 싶겠는가. 그런데도 그 길을 간 사람들에게는 뭔가 곡절이 따르지 않을 수 없다.

숨어 ㅇ사는 일에 대한 생각은 동서양이 다르고, 같은 동양에서도 철학에 따라 다르다. 공자는 "천하에 도가 있으면 드러나고, 없으면 숨는다."고 말했다. 여기서 숨음과 드러남의 매개체는 "". [예기]에서는 도가 행해지는 사회를 대동 사회, 그렇지 않은 사회를 소강 사회라 하였다. 공자의 말은 다분히 여기에 근거한 것이었다.

불교에서의 숨음은 이와 다른 면이 있는 듯하다. 세상에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고만 해서 은거가 아니다. 또 드러냈다고 해서 드러난 것도 아니다. 그래서 불교적 인식의 숨음과 드러남을 이해하자면 보다 복잡한 변증법적 사고가 필요하다.

è 애매한 설명이군.

 

684 서쪽 고개의 바위 사이를 빠져 나가는데, 마침 한 노인이 밭을 갈고 있다가 물었다.

è 여기 페이지 전체

 

686 장바닥에서는 어진 이가 오래 숨기 어렵고

주머니 속의 송곳도 한 번 드러나면 감추기 어렵네

뜰 아래 푸른 연꽃 때문에 그르친 것이지

구름과 산이 깊지 않아서 아니라네.

 

692 그러나 손순의 이야기는 다음부터가 진짜다. 부부는 아이를 데리고 가서 옆에 높고 땅을 판다. 기가 막히는 광경이다. 이 대목에서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 즉 뒤늦게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해 나뭇단을 쌓는 아브라함을 연상케 한다. …. 그것은 인간에게 닥치는 거대한 시험이고, 시험 앞에 굴하지 않도록 연단시키는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 관습이었다고 생각된다. 그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않았던 아브라함이야말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갈 만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699 복을 빌어 받되 받은 다음에는 제 복이라 생각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701 아들은 어머니의 마음을,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ㅇ걱정하는 눈물겨운 광경이다. 살림도 살림이려니와 집안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처지에 출가를 결심하히가 머뭇거려졌었지만, 단 하나뿐인 재산을 시주하는 어머니를 보고 아들은 자신감이 생겼던 모양이다. 저런 어머니라면 자신이 출구하는 것도 이해하시리라고 말이다. 진정은 조심스럽게 제 속에 있는 말을 꺼냈다. "효도가 끝나고 나면, 꼭 의상법사에게 들어가 머리를 깎고 도를 배우려 합니다." 효도가 긑난다 함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다음이라는 뜻일 게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진정이 생각한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두 모자 사이에 이어지는 다음의 대화는, 세상의 인연을 모질게 끊고 출가의 길로 나서려는 이들의 번뇌를 감동적을오 그리고 있다.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어렵고 인생은 짧은데, 효도를 마친 다음이라니? 그건 너무 늦다. 내가 죽기 전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704 일연이 [삼국유사]에 신라 향가 14수를 실어 놓은 것에 대해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고마움을 표해야 한다.

 

706 그러나 좀더 적극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표기 수단이 외엱거 현상이라면 문제 안에 내포된 은밀한 논리가 있다. 무엇을 그토록 표현하고 싶었으며 어떤 내용을 담으려 하였는가?

 

712 오다 오다

오다 오다

설움 많은가

설움 많네

도량공덕

닦으러 오다

 

725 그러나 순수 불교의 자리에서 약간 벗어난 듯한 일연의 태도에서 우리는 괴승의 요소보다는 시대가 요구하는 어떤 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한 선각자적 태도를 발견한단. 전쟁과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백성읫 삶은 도탄에 빠졌고, 민족에 대한 각성이라는 더욱 큰 문제가 그들 앞에 닥쳤다.  한 시대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일연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와 여러 부면에서 부딪혔던 것이다.

 

728 우리가 일연을 존경하는 것은 무신 정권기와 몽고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 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비록 작은 나라로 힘없는 자의 설움을 당하면서도, 그는 민족의 자존을 염두에 두었던 사람이다. 그것을 ㅇ그는 불교적 인식 세계에서 불국토 사상으로 이었으며, 만년에 경상도 군위의 인각사에 거처하면서 정리한 [삼국유사]에 여실피 표현해 놓았다.

 

733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겠는가?

 

 

 

 

 

 

 

 

 

 

 

 

 

 

 

 

 

 

 

 

 

 

 

 

내가 저자라면

 

대입을 치르기까지 한국사와 쪽글 형식의 고전에 시달려온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삼국유사는 지긋지긋한 텍스트이다. 대학을 들어간 이후에는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쉽게 들쳐보기 힘든 책이 된다. 고운기의 [삼국유사]는 이러한 주제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참 즐겁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를 원본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 고운기가 삼국유사를 해설한 해설서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주장과 개인적인 일화를 총동원하여 삼국유사를 풀어내었다. 고운기는 "자신이라면 삼국유사를 이렇게 썼을 것."이라는 접근 방식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고 말하였다. 확실히 쉽게 흥미롭게 읽히지만 이러한 접근이 모든 독자층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 삼국유사의 학문적 해석에 취중하는 쪽을 선호하는데 여기에 큰 관련성이 없는 사적 일화를 섞어서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행위가 그리 탁월한 전략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가령, 김유신의 일화에서 문희라는 이름을 통해 연상되는 고전 영화의 주인공 이름을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하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다.

 

오히려 학문적 외연을 더 넓혔더라면 더욱 가치가 상승하였을 것이다. 저자의 역량을 보아 충분히 가능하였을 것 같다. 건국 신화 부분에서 한국의 신화들이 세계 신화들과 공통점을 보이고 있음을 조셉 캠벨의 저서를 통해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 영웅전기의 전반의 특성에 대한 캠벨의 해석이 곁들여졌다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지적 쾌감을 선사할 수 있었으리라. 그런 경우, 삼국 유사의 텍스트를 글로벌한 것으로 만들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글쓴이가 삼국유사의 내용에서 짚어낸 "생각해볼 점"들은 탁월하다. 고운기는 질문을 잘 던진다. 독자에게 이미 익숙한 텍스트에서 생각해볼 점을 이렇게 잘 짚어낸다는 것은 그만큼 사유의 양이 많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결론의 깊이는 아직 잘 느낄 수 없다. 질문의 탁월함에 탄복하여 좀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고 여길 때쯤, 결론을 애매하게 종결시켜 버린다. 흥미가 유발될 때쯤 맥이 풀린달까? 그러나 생각할 점을 던져놓았다는 점에서 작가의 미덕이 충분하다. 한 번 읽고 덮을 책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인물군상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들이 많았다. 원효 대사의 인물성,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에 대한 분석 등. 특히 견훤과 왕건의 대조 등 사기열전을 연상시키는 인물의 유기적 분석이 훌륭하다. 한국의 역사책에서 스토리라인을 뽑을 수 있는 많은 자료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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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년차 선생님 휴가라 일이 밀려서 더 이상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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