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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7일 04시 57분 등록

 

l  저자 연구

이 책에는 경영사상가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구본형즉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빠, 그리고 친구인 구본형이 잘 드러나 있다. 

1인 기업을 운영하게 된 후 저자는 매우 가정적인 남편이자 다정한 아빠가 되었다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고, 일하는 시간은 가족과 보내고 남은 시간 뒤로 배정했다대학생인 큰딸의 등교를 차로 도와주고, 중학생인 둘째딸이 학교에서 돌아와 먹을 간식을 준비하고 함께 먹었다또 일주일에 서너 번 함께 영어 공부를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견디게 되었다고 한다. 아이가 잘 따라오지 못하는 걸 답답해 하거나 혼내지 않고 아이의 지적 성장에 참여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프로젝트로 여겼다니 그 연령대의 남자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자상함과 교육관을 지녔다고 하겠다.

 

아내와는 오래 살게 되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싸우고 난 후 화해하는 시간이 짧아졌다고 했다그리고 아내가 직장을 그만 둔 후에는 한 달에 3~4회 정도 지방으로 함께 강연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아내와 함께 아름다운 해안길을 드라이브하고 맛있는 지역 특산음식을 먹고 일을 마친 후에는 예쁜 레스토랑에서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차와 술을 즐기는 삶

듣기만 해도 일과 개인의 삶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멋진 인생인 것 같다.

 

그리고 친구들. 많지는 않지만 목적 없이 만나서 외로움과 즐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삶의 어둠과 짐을 나누지는 않기에 서로에게 부담이 없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그 어울림이 빛나는 관계. 구본형에게 친구란 순수한 놀이 집단이자 외로움과 즐거움을 나누는 반갑고 그리운 관계였다.  

 

책속에서 보여준 아빠, 남편, 친구의 모습을 보며 너무 완벽한 것 아냐?’ 라는 생각이 들었다스스로 쓴 자서전이라 좋은 면만 보여주고 부족한 면은 굳이 드러내지 않은 건 아닐까부러움과 시기로 괜한 트집을 잡고 싶어졌다.

혹시라도 중학생 딸은 아빠와 영어 공부하는 시간이 지루하고 답답하지는 않았을까아빠 대신에 멋진 대학생 오빠에게 영어 과외를 받고 싶지는 않았을지

아내는 매번 지방으로 같이 강연 여행을 가는 게 즐겁기만 했을까? 남편 대신에 고교 동창들과 해외 여행을 가고 싶지는 않았을까? 돈벌이도 안 되는 연구원들과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안락한 노후 보장을 위해 강의 시간을 늘려서 좀 더 많은 수입을 만들기를 바라지는 않았을까?

친구 중의 한 명 정도는 순수한 놀이 집단이 아니라 어둠과 짐도 함께 나누고 싶지는 않았을까

확인할 길이 없으니 그냥 나의 트집으로 남겨둬야겠다.

 

나를 위해 마음껏 쓸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정 하나를 만드는 것이 두 가지가 회사를 그만 둔 후 저자의 삶의 의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이 되었다고 했다아마도 저자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중 수신제가를 이루는 삶을 실천하려 했던 것 같다.

 

 

l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개정판 서문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끊임없이 나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은 아주 훌륭한 모험이다.

어머나, 내가 이런 것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는데!”

가끔이긴 하지만 내가 나한테 하는 최고의 칭찬이다. 곰손에 빵이라면 먹을 줄 밖에 모르던 내가 그럴 듯한 시나몬 롤을 구워내고, 친구와 가족들의 생일 케이크를 선물할 때. 뛰는게 싫어 그냥 지각을 하던 내가 10km1시간 내에 완주할 때. 몸치에 각목같던 내가 벨리 댄스 공연을 하게 되었을 때. 정말이지 난 내가 이런 것을, 것도 마흔이 넘어서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내 속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나를 발견해내는 일. 그 어느 오지 탐험보다 재미있는 모험인 것 같다.

 

프롤로그

17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과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지난 10

21 마흔 살은 오래 끓어 걸쭉해지기 시작한 매운탕이다. 바야흐로 인생의 뼛속 진국이 우러나오는 시기다. 마지막 젊음이 펄펄 끓어 오르고, 온갖 양념과 채소들의 진수가 고기 맛에 배고 어울리는 먹기 딱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절정을 살짝 지나치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마흔은 한 움큼 옆구리 살에서 시작한다. 술 취한 다음날 이침이 괴로워지고 숙취가 길어지면 마흔도 익어간다. 읽기 위해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고 신문을 점점 멀리 보내면서 마흔의 황혼기로 접어든다. 조금씩 내려앉는 잇몸, 새벽 2시의 불면증, 당혹스러운 건망증, 우두둑거리는 어깨관절뼈 소리를 들으며 어느덧 마흔 아홉이 지나간다. 40대의 10년은 이렇게 저문다.

불면증과 건망증을 빼고는 아직 일어나지 않아서 그런지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곧 나에게도 생길 일들이겠지? 점점 옆구리에 살이 붙고 어느날 먼 데 있는게 더 잘 보이게 되더라도 당황하지 말자.

 

24 내가 결코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찾아오면 싸우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상책이다. 예를 들어 번잡함이 주위에서 서성거리면 나는 조용히 혼자 있는 방법을 취한다. 방송이 나를 괴롭히면 출연에 응하지 않는다. 모임이 나를 괴롭히면 나가지 않는다. 원고를 써야하는 강박감을 느낄 때는 언제고 거절한다. 어쨌거나 고독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고독은 비 같은 것이다. 식물을 밤 사이에 자라게 하는 그런 것이다.

 

32 공자에게는 불혹의 나이였던 것이 2,500년이 지나 유혹의 나이가 되었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속절 없이 질 수는 없기 때문에그러나 마흔조차 흘러간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20여 년 전에는 서른이 터닝 포인트의 기준이었던 것 같다. 나도 스물 아홉에서 서른이 되던 날 밤 잔치는 끝났다며 우울해 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는 마흔이 그런 나이인 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마흔이 되던 해에는 서른이 될 때보다 더 담담하게 맞았던 것 같다. 그냥 나이 드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것 같기도 하다.

 

35 나는 이 돌연한 과거의 상실을 즐긴다. 과거의 끈으로부터 갑자기 자유로워진 나를 상상한다. 오늘 아침에 한 일이 잘 생각나지 않기 때문에 기억으로부터 자유롭다. 지금의 나를 돌연히 존재하는 인물로 가정한다. 그러니까 터미네이터들이 지구에 도착할 때의 모습처럼 느닷없이 현재로 던져지는 몇 초 몇 분을 즐기는 것이다. 내가 자동차 열쇠를 가지러 돌아왔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는 것, 살면서 이 놀라운 일을 종종 예기치 않은 순간에 만나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즐거운 일이다. 과거와의 연결, 심지어 미래와의 연결도 가끔 끊어버리고, 이 돌연한 시간적 격리를 휴가로 즐길 수 없다면 바보이다. 나와 나의 불일치, 시간적 흐름에 대한 일탈과 소거는 아주 유쾌한 지구 탈출 같은 것이다.

나는 아직 바보인가 보다.

 

37 40대는 이제 특별한 사회적 상징을 담은 단어가 되었다. 그것은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40대의 10년 가운데 어딘가에서 버려진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버려졌고, 성장의 문턱에서 거부되었으며, 왕성한 상태에서 퇴출되었다. 남아 있어도 그들은 이미 사라지는 사람들이 되었다. 마흔은 앞으로 길게 남은 인생을 책임질 수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20대 또는 30대에 준비한 인생으로는 마흔 너머의 인생을 꾸려갈 수 없게 되었다. 마흔은 이미 서산에 지는 해가 되었다. 마흔은 사회적으로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던지지 못하는 황혼의 여생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미 마흔을 넘어서고 있었고, 직장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세대에 편입되었다. 아무도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일이었다. 나의 과거는 거대한 사회적 방망이에 의해 가슴을 강타당했다. 배반 같기도 하고, 비애 같기도 하며, 무력감 같기도 하고, 허무 같기도 한 통증으로 숨 조차 쉴 수 없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뒷방 노인이 된 마흔이여.

 

마흔 살

47 마흔 살은 늙지도 젊지도 않다. 대부분 결혼을 했으며 살기 위해 일한다. 마흔이 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지치게 된다. 일상의 걱정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어 가장 필요한 내적 성찰이 방해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개인적 시도와 실패, 직장에서의 갈등, 결혼생활의 무관심, 아이들과의 씨름이 이 때 가장 잘 드러나는 문제들이다. 아마 조금 더 젊었더라면 전직을 하거나 이혼을 하거나 다른 모색을 했을지 모르지만, 마흔살이 되면 문제를 끼고 살아가는 것이 일상적이다. 그러니까 빼도 박도 못 하는 시기다.

저자가 40대 초반이던 때와는 20여년의 시차가 있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세상을 잘 몰라서일까? 공감이 되기도 하지만 안 되는 부분이 좀 더 많다.

 

49 그래서 인간은 타고난 첫 30년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산다. 희망이라는 뽀얀 피부와 젊음 속에서 고뇌조차 달콤한 아름다운 인생을 꿈꾼다. 그 다음 18년은 당나귀에게서 받은 생애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일하고 채찍질을 당하며 일상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 다음 12년은 개에게서 받은 생애다. 양지에 엎드려 웅얼거리고 으르렁거리거나 졸며 지낸다. 그리고 나머지는 원숭이에게서 받은 생애다. 비로소 이 때가 되면 자유로워진다. 제 좋을 대로 행동하지만 이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가 된다. 모든 관절이 녹슨 문짝처럼 삐걱거리고 겨우 걷고 먹을 수 밖에 없게 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비극이다.

 

50 사람마다 인생의 시간표가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이미 30대에 마흔 살의 조짐이 나타난다. 반면에 마흔을 지나 한창 인생이 익어가는데도 마법의 환상에 빠져 있는 젊은 중년도 있게 마련이다. 꽃이 다 진 가을에 봄꽃을 피우는, 시기를 놓친 꽃들도 있다. 요즈음에 그런 꽃들이 더 많이 늘어난다. ‘어른아이 (adultescent)’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듯이 자신의 나이를 못 견뎌하는 어린 어른들도 있긴 하다.

나는 아직 마법의 환상에 빠져 있는 어른아이인가 보다. 매우 현실적인 것 같으면서도 때로 말도 안 되는 일을 꿈꾸고 있다. 환상에서 빠져나오고, 꿈에서 깨어나야 할 시간인가? 하지만 나이와 상관 없이 꿈이 없으면 죽은 삶이라고 하지 않았나? 어릴 때 애 늙은이 같이 살았던 삶을 이런 식으로 보상받으려 하나 보다.

 

52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대신 더 힘이 센 다른 사람과 제도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타인에게 의존함으로써 노예가 된다. 그러나 마흔이 넘어서는 여성들은 이때 깨어난다. 여성의 마흔 살은 남자와는 성격이 다르다. 남자는 마치 지는 해처럼 시들지만 여자들은 뜨는 보름달처럼 절정을 향해 달린다.

아직 마법의 환상에서 깨어날 필요가 없나 보다. 이제 절정을 향해 달린다니다가올 절정을 오래도록 즐기기 위해 천천히 달려 보자.

 

53 중년의 여성은 남성으로 변한 여성이다. 성숙한 여성은 남자가 잃어버린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중년이 되면 남자와 여자가 그 성적 역할을 바꾸는 상징적 이미지다. 여성은 현명해지고 다소 교활해지며 강해진다. 그동안 여성은 억압받고 수동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중년이 되어 남자가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때, 여성들은 숨어 있는 자신의 힘과 재능을 발견하고 스스로에게 의지하여 일어선다. 남자들이 영웅적인 여행을 포기할 때, 그리하여 자발적이고 공격적인 경쟁심을 상실해갈 때, 여성들은 자신의 내부에서 이런 르네상스적 힘과 공격력을 회복하게 된다. 다 큰 자녀를 떠나보내고, 그들은 남성이 벗어 놓은 옷을 입고 굉장한 여행을 시작하기도 한다.

남성으로 변한 여성. 난 원래 남성성과 여성성, 둘다 강하게 갖고 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르네상스적 힘과 공격력을 사용하는데 수줍어하지 말고 굉장한 여행을 해 보자.

 

57 유머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너무 가깝게 있으면 유머를 사용할 수 없다. 자신을 약간 떼어놓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 자신을 소재로 농담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멀리 가 있으면 안 된다. 무관심은 유머를 만들어낼 수 없다. 유머는 중년의 고통을 치유해주는 엔돌핀이다. 그것은 스트레스와 비극을 완화시켜준다.

 

58 이상과 현실의 사이, 3의 지점,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자리,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짐만 지고 가는 당나귀의 진지함이 어찌 사람들이 그리는 마흔의 삶이 될 수 있겠는가? 장난도 치고, 흐드러진 메밀밭을 달밤에 지나기도 하며, 물레방아간의 뒤로 숨기도 하고, 달콤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제3의지점이 마흔살의 자리다. 개혁은 마음을 변혁시키는 것이다. 마흔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나는 머리로 이해하고 납득이 되어야만 행동하는 사람이다. 이제 머리로 이해하기 전에 가슴과 영혼이 먼저 움직이는 일도 있도록 조금 가벼워지자.

 

60 삶은 연극이 아니다. 우리는 극장 안의 배우도 관객도 아니다. 배우란 짜여진 배역에 따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배역은 결국 내가 아니다. 극본과 연출, 그리고 배역까지 맡아야 비로소 삶으로 비유될 수 있다.

 

62 마흔살은 가진 것을 다 걸어서 전환에 성공해야 한다. 이것이 내 지론이다. 다만 내가 거는 것은 돈이 아니다.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나 자신을 건다. 나는 이 길을 택했다. 내가 도박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길 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이 익어가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계획했다. 나는 비장했다. 나의 40대는 죽음과 친근해진 10년이었다.

가진 것을 다 건다, 나의 모든 것을 건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할 때도 나의 모든 것을 다 걸고 했던 적은 없다. 항상 플랜 B, C를 염두에 두고, ‘안 돼도 괜찮다’, ‘이게 잘 못 돼도 세상의 끝은 아니야, 다른 걸 찾으면 돼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마도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교토삼굴(狡兎三窟), 영리한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판다를 인생의 모토로 삼아 늘 여지를 두며 스스로를 똑똑한 토끼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한번도 나의 모든 걸 걸고 한가지에 최선을 다하며 임했던 적은 없다. 그래서 내가 지금의 내 모습일 거다. 후회하지는 않지만 100% 만족스럽지도 않다.

영리한 토끼이것이 나의 당장 결별해야 할 익숙한 것인 걸까?

 

직장생활

77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그러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재빠른 사람들은 밖으로 밀려 나갔다. 그들 모두가 유능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젊고 유능하며 모험심 가득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자발적 퇴직제도는 오히려 인재 유출의 촉매에 역할을 했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다 성공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뜨내기처럼 2, 3년마다 비슷한 업종을 전전하는 유목민들이 생겨났다. 몇 년 만에 우연히 만나면 늘 다른 명함을 내미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부유하는 것들의 속성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품처럼 떠돌았다. 거품이 가진 속성, 화려함과 불안정성이 공존했다. 그들이 이미 사회의 한 현상을 주도했고, 세상은 서서히 고통스럽게,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80 그들은 늘 학습한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경쟁한다. 전문성이 자격증에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식은 변하고 경험은 늘 다르게 적용된다. 자신의 소질을 이해하고 잠재력을 계발한다. 이들은 대체로 겸손하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다. 애정 없이는 자신을 불태울 수가 없다. 어떤 분야든 자신을 불사르지 않고서는 핵심에 다가갈 수 없다. ~

아이러니 하게도 필요한 사람들은 떠남을 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떠남으로써 남겨진 조직의 힘이 격감되는 사람들그들이 바로 놓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니체는 가장 위험한 조직원은 그의 이탈로 조직 자체가 파괴되는 조직원이라고 불렀다.

나는 몇 년 전에 희망퇴직 제도를 이용해서 직장을 그만뒀었다. 그 때는 내가 자발적으로 그만 두는 유능한 사람이고 잠시 쉰 후에 곧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었다. 실제로 내가 퇴직을 선택했을 때, 상사 및 인사부에서 재고할 것을 요청했었고 나는 기고만장해서 당당하게 그 곳을 떠났었다.

떠남을 늘 준비하고 언제라도 떠날 수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두 다른 조직에서도 환영하는 사람은 아닐 수도 있다. 그 때 이걸 알았더라면 다른 결정을 했었을까?

 

83 나 역시 앞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굉장한 여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양식을 챙겨 떠난다 하더라도 곧 바닥이 날 것이었다. 결국 나는 여행을 하며 양식을 조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불안은 오히려 나를 흥분시켰다.

 

85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며,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유혹은 올가미고 덫이다. 사냥은 창을 들고 소리를 지르며 짐승에게 덤벼드는 것만이 아니다. 온몸에 쥐가 날 때까지 숨어서 기다리다 덮치는 방법만 있는 것도 아니다. 덫과 올가미를 놓고 편안한 집에서 술 한잔하고 푹 쉬고 나서, 그 다음날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덫과 올가미에 걸려 있는 짐승을 향해 다가가는 것도 사냥의 한 방법이다. 세일즈가 도망치는 고객에게 달려들어 창을 꽂는 것이라면, 마케팅은 짐승이 다니는 길에 온갖 화려한 미끼를 주렁주렁 단 덫과 올가미를 놓아두는 것이다. 매력이 없는 리더란 없다. 리더는 반드시 자신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유혹은 매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매력은 가장 자기다운 것에서 발산되는 페로몬이다.

나는 12년간의 직장 생활 대부분 동안 마케팅 일을 했었다. 그리고 2년간 경영대학원을 다니며 마케팅을 공부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잘못 배웠나 보다.

가장 나다운 매력을 발산해서 고객을 유혹하기. 너무 어렵다.

 

89 경영 컨설팅 같은 지식산업은 사기와 진실의 경계를 걷는 것이다. 끝없이 학습하는 사람은 좋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러나 계속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사기꾼들처럼 달변의 사기꾼으로 전락한다. 나는 내가 경계선을 걷는 사람 (edge walker)’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배움을 멈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학위와 자격증은 과거의 영광의 흔적일 뿐이다. 미래를 평가의 잣대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확실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그물로 된 항아리 속에 물을 담으려는 발상이다. 반대로 미래를 가지고 평가하는 것은 바닷물 속에서 식수를 찾는 것과 같다. 온통 가능성의 물로 채워져 있지만, 아직 한 컵의 마실 물도 되지 못한다. 내가 믿는 것은 끊임없이 배우고 실험하는 사람뿐이다. 무엇을 하든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사람들만이 전문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

너무나도 위대한 전문가라 생각했던 사람이 하루 아침에 사기꾼으로 전락하는 일. 뉴스에서 자주 본다. 그런가 하면 당대에 사기꾼이라 손가락질 받고 사형 당했던 사람이 사후에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기도 한다.

사기꾼과 전문가의 경계.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 같다.

 

90 회사가 나에 대해 지루해할 때쯤, 그리고 내가 회사에 대해 지루해할 때쯤 우리는 웃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마흔을 넘어서는 그 위험한 시기에 나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사는 듯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91 이제 스스로의 작은 나라를 세워야 했다. 내 안에서 군주적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나라, 나의 세계, 나의 꽃을 피워야 했다. 그것은 겨울보다 더 추운 봄이었다. 그러나 꽃 터지는 봄은 왔다. 피워야 할 꽃, 만들어야 할 세계가 생긴 것이다.

약간 돈 것은 아주 재미있다. 기존의 존재 방식에 대한 파격이 아니라 그 편견에 대한 비웃음이 재미있었다.

나도 살짝, 아주 살짝 돈 사람들이 좋다.

 

얼굴 페르소나

114 모든 속박은 먹고 사는 것으로부터 왔다. 나는 그 때 인형을 움직이는 끈을 보았다. 인형극 속의 인형은 아주 많은 실에 묶여 있다. 실은 팔을 묶고 손가락을 묶고 허벅지와 종아리를 묶고 허리를 묶고 이내 목과 머리를 묶어 놓는다. 그리하여 놀이의 인형이 된다. 인형은 실이 없으면 움직일 수 없다. 움직인다는 것은 자유의 한 표현인데 인형의 자유는 모두 묶어 놓은 실에서 온다. 인형의 자유는, 그러므로 아이러니하게도 속박으로부터 온다. 실을 끊으면 인형은 움직일 수 없다.

 

117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설픔과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자랑스러움과 긍정의 표상이다. 자신을 다른 사람과 더 다르게 만들려는 열정이다. 더 많은 차이를 만들기 위해, 차이를 끊임없이 생산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오늘의 나어제의 나와는 달라야 한다. 자기 경영의 근간이 되는 것은 실천의 철학이다. 바로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남과 달라지기 위해 애쓰지만 또 너무 다르다는 것이 불안하기도 하다. 다른 사람과 달라지기 보다는 과거의 나와 달라져야 한다는 걸 포인트로 삼아야 할 것 같다.

 

118 자기 자신을 찾아 가는 길은 오랜 세월과 수많은 공간을 지나야 한다. 나는 이런 사람도 되고 저런 사람도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나는 바로 이런 사람이 되기 의해 여기에 왔다.

 

가족

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친구가 될 수 있는 스승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스승이 될 수 있는 친구는 있나?

스승이 될 수 있는 친구를 사귀어야 겠지만 나 또한 그들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 친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125 아름다운 가정이라는 것이 갈등이 없는 가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싸우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 갈등은 마음이 스스로의 길을 결정하는 순간이다. 나침반이 북쪽을 찾고, 그곳을 가리키는 순간 부르르 떨리는 것, 이것을 나는 갈등이라고 부른다. 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우리는 늘 잠시 망설이게 된다.

적게 버는 대신에 적게 쓰는 심플한 삶을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도 너무 많이 갖고 있다고그러나 때로 예쁜 옷을 입고 화려하게 살던 인형의 삶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이런 일에 마음의 평화가 깨지는 순간이 싫고, 모순된 내 모습에 화가 났었다. 그러나 갈등은 늘 따라다니는 일이라니안심이 된다.

 

137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남은 시간에 하면 된다. 이것이 내가 1인 기업을 만들 때의 기본적인 구상이었다. ~ 내가 일하는 시간은 어느 때고 좋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되니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하고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자식을 가진 대부분 부모의 로망일 거다. 이런 자신감. 부럽다.

 

138 나는 아무 곳에서나 어느 때나 일할 수 있다. 온통 일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나게 노는 일에 주력한다. 노는 것은 내게 힘을 주었다. 적어도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그런 생각이 주는 무기력이 내게 불어넣었던 어두운 불안과 스트레스를 데려가 버리곤 했다.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았던 지난 2년간, 나는 평생 꿈도 꾸지 못했던 몇 가지 일을 시작했고,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고 무엇보다 매우 재미있었다.

맞다. 노는 것은 내게 힘을 주었고, 내 인생을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도 주었다. 이제 다시 돈만 벌면 되겠다.

 

146 나는 목적을 가지고 친구들과 만나는 것을 싫어한다. 친구는 말 그대로 함께 놀기 위함이다. ~ 서로에게 아무 부담도 없다. 오직 인생을 같이 가기 위함이다. 서로 떨어져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다 우연히 어떤 그리움의 교차점에서 만나 손을 잡고, 웃고 떠들다 헤어지는 것이 제일 좋다. 진짜 친구와는 외로움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좋다. 술을 한잔하고 하소연도 하고, 다른 놈들 흉도 보고, 서로 이야기를 들어주고, 높은 이상을 떠들어대고, 현실이 아닌 꿈을 이야기하기도 하는 속없는 만남, 함께 마누라 없는 곳으로 손잡고 떠나기도 하는 순수한 놀이 집단이 친구들이다

 

147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해서도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순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동안 나는 뭘 했나.’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어둠을 견디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고통 역시 개인의 몫이다. 각자에게는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있고 나눌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즐거움 역시 함께 나눌 사람이 있어야 한다. 즐거움은 그래야 커진다. ~ 평생 가고 싶으면 늘 반갑고 그리운 관계가 되도록 애써야 한다.

나도 저자처럼 삶의 어둠은 각자가 견뎌야 하고 고통은 개인의 몫이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의 짐을 친구에게 부담지우려고 하는 것은 미성숙한 사람들이 하는 짓이기에 홀로 고통을 이겨내려고 했었다. 그런데 나의 친구들은 혼자 짐을 지고 가고 있는 내게 같이 나누겠다고 했다. 미성숙한 사람이 아니고 그게 친구의 역할이라며친구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친구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었다.

 

148 따질 것도 없고 계산할 것도 없다. 마음이 가는 대로 함께 가는 것이 친구들이다. 친구란 함께 어울림이다. 서로에 대한 애정 없이는 그 어울림이 빛날 수 없다.

 

자연

157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 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 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세상의 이곳 저곳을 돌아 보며 느낀 것 한가지.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조형물을 만들어 내도 자연은 절대 따라갈 수 없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건축물들을 보며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했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자연이 만든 사막의 모래 사구 하나만 못 하더라. 100층이 넘는 건물들을 보며 인간이 만든 과학기술의 진보에 놀랐지만 과학 기술은 바닷물속 산호를 1cm도 키우지 못한다.

나는 노틀담이나 바티칸 성당이 아니라 이집트 사막에서 별을 보며, 그리고 홍해에서 물고기들과 수영을 하며 진정으로 신의 위대함을 느꼈었다.

 

159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아이들은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씨앗이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160 우리가 왜 변화해야 하느냐고? 그것이 삶이기 때문이다. 작은 세포가 아이가 되고 젊은이가 되고 장년이 되고 노인이 되고, 그리고 죽는 것이 삶이다. 순수한 아이의 생각이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의 생각이 되고, 이내 세상의 한계에 지쳐버린 장년이 되고, 노회한 노인이 되고, 이윽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변화 자체가 우리의 일상이고 삶이다. 생명이 주어진 순간 삶은 시작되고, 삶이 주어진 순간 죽음의 시계도 카운트되기 시작한다. 왜 살아야 하는가? 삶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왜 변화해야 하는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다.

 

160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존재 자체에서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만으로는 사랑받지 못했던 나. 갖은 애씀과 발버둥을 쳐야만 부모님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나는 존재 그 자체로 사랑을 받던 동생을 미워했었다.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존재만으로도 아름다웠던 동생을 시기했던 질투의 힘이다.

 

161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63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

 

164 때때로 나는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그때가 가장 마음이 편한 때다. 어떤 조화로움이 나를 밀고 여울처럼 가슴으로 퍼져오는데, 그 때 평화를 느끼게 된다. 자연과 하나임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조화롭게 살 수 있다는 노자의 말은 곧 나의 말이다.

나는 물 속에 있을 때 마음이 아주 편해진다. 물의 힘(부력)과 나의 힘(중력)을 잘 맞춰서 더 이상 뜨지도 가라 앉지도 않는 조화로운 상태가 될 때, 물과 하나가 된 것처럼 평화를 느낀다. 물을 믿고 내 몸을 물에 맡길 때 이런 평화가 찾아 온다. 하지만 물에 몸을 맡기지 않고 두려워하고 발버둥을 치는 순간 몸은 위로 떠오르려고 하고 평화가 깨진다.

역시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다. 그 속에 어우러져 살아야 행복하다.

 

169 나도 죽어야 한다.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죽어야 한다. 나무가 죽을 때 나도 죽어야 한다. 나에게 낙엽은 내 책이다. 꽃과 나뭇잎, 그리고 열매는 나무의 일 년의 삶이다. 내 책도 내 일년의 삶의 기록이다. 나뭇잎이 떨어지면 내 일 년도 떨어진다. 그리고 열매를 남기듯 나도 내 책을 남긴다. 책 한 권이 쓰여지면 내 일 년도 지난다. 나무가 다음 해에도 똑 같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이 혹독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을 거친 나무는 이미 전 해의 그 나무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영원히 죽는 것이다. 살아 있으나 이미 죽어버린 정신을 나는 수없이 보아왔다.

1년에 한번씩 죽다니자신을 경영하며 살아야 하는 삶의 고단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

 

172 한때 감자나 벼, , 보리 등은 들판에 자라던 잡초였다. 인간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 덕분에 이것들은 영토를 엄청나게 확장하게 되고 번영하게 되었다. 우리가 그들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여 번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식물들이 펼치는 고도의 유혹 먹고 그 맛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에 우리는 즐겁게 걸려든 것이다. 인간은 식물을 위해 봉사한다. 봄이 되면 건강하고 좋은 씨를 뿌리고 좋은 묘목을 심어 놓는다. 온갖 비료를 주고 잡초를 뽑아준다. 벌레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적당한 때 약을 쳐준다. 가뭄이 들면 물을 대준다. 인간은 식물을 위해 땀을 흘려 노동한다. 우리는 그들의 하인이다. 그들의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다.

 

173 나는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나는 날마다 내게 귀화한 생각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육에 담아 수천 개씩, 수만개씩, 수백만 개씩 퍼트릴 수 잇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그 씨앗을 마음속에서 키우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귀화한 생각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내가 도처에서 번영할 수 있는 전략이다.

 

174 “스스로 정정한 나무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 그늘에서 쉬고 그 나무를 부러워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그 나무의 열매를 가져다 심고 싶어할 것이다. 스스로 좋은 나무가 되는 것은 좋은 씨앗을 만들어내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하루를 보내도록 해야 한다.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

씨앗이 적절한 곳에서 쉽게 발아할 수 있도록 늘 더 나은 방법을 연구하라.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싹이 나고 푸른 잎을 단 아름다운 줄기로 자라나도록 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라. 그들을 감동시키고, 그들이 행동할 수 있게 하며, 그들이 실천하게 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과 색깔과 맛을 담은 향기로운 과육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유행에 따르지 말라.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 내라.”

나는 나르시스트들이 좋다. 자신의 외모 뿐 아니라 영혼과 삶을 사랑하는 사람들. 때로 자기애가 지나쳐 스스로를 죽음 등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아가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타인에게도 사랑스러워 보인다.   

구본형 선생님은 이 문단에서 자신의 삶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과 자기애를 드러냈다. 삶 자체가 빛나는 삶. 그처럼 따라 살고 싶은 삶. 다소 지나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빈정이 상하지 않는 건, 아마도 그렇게 되기까지 매년 자기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여 열매를 맺는 고단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고백이 선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 유혹에 넘어갈 것인가?

 

건강

180 마흔이 되면 특히 육체적 연습이 중요해진다. 건강관리가 중요한 일상의 한 부분이 된다. ~ 모든 사람에게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운동은 하나의 의무가 된다. ~

운동을 소홀히 하면 언젠가 탈이 나게 마련이고, 육체는 초라해져 간다. 8월 말이 지나면 나뭇잎은 아직 푸르지만 갑자기 그 속에서 가을의 느낌을 받는 이유는 이미 찬란한 여름의 모습을 나뭇잎 속에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푸르고 여전히 덥고 여전히 여름의 태양이 비치지만 나뭇잎은 이미 절정을 지나 빛을 잃고 있다. 물기를 잃고 낙엽의 바삭거림을 잉태하게 된다.

나도 마흔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기 시작했고 육체를 단련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 속에서 재미도 찾았다. 봄이나 여름의 나뭇잎처럼 상큼할 수는 없겠지만 낙엽처럼 바스러지지는 말자.

 

183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제자가 스승을 어떻게 빛나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영원히 스승의 빛에 가려진 제자는 결국 스승을 욕보이게 한다. 뒷물이 앞 물을 뛰어넘으려고 해야 비로소 강물이 힘차게 흐를 수 있다. 제자가 잘나야 스승이 위대해진다.

스승보다 뛰어나서 스승을 빛나게 하는 제자도 대단하지만 제자가 자신보다 뛰어남을 인정하는 스승도 대단한 것 같다. 나라면 질투심과 시기심에 사로잡혀 제자의 앞길을 막으려고 할 것도 같은데그래서 위대한 스승은 따로 있나 보다.

 

184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죽음 없이는 생명도 없다. 마치 변하지 않는 것 없이는 변하는 것도 없고, 어둠 없는 밝음도 없는 것과 같다. 어둠은 늘 생명이 자신을 준비하는 참으로 비옥한 토양이다. 초라하고 아무것도 아니며 썩는 것들만이 자신을 땅에 버릴 수 있다. 땅에 버려져야 무엇이 될 수 있다.

 

191 그러므로 여전히 욕심스러운 나이 듦은 과다한 욕망에 차 여전히 두 개가 되고 싶은 세포, 즉 암과 같다.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94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신의 상상력을 즐기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그 아름다운 자연은 어두운 암흑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더 잘 알게 되는 신의 세계도 있을 것이다. 공중에 매달려 숨어 있던 온갖 소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볼 수 없으니 만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사물의 실존에 더욱 근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력이 다른 감각기관의 성장을 막아 놓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199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인과 관계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해력이 우리의 마음에 스며들게 되는 시기라는 뜻이다. ~

이 때쯤 되면 우리는 마음속에 간절한 기원들을 가지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때때로 아주 정성스러워지기도 한다. 치성을 드리고 기원을 올리며 기도하는 것은 이런 정성스러움의 한 표현이다.

내가 아직 정서적으로 미숙한 건지 이해도 공감도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인과 관계를 따르지 않는 또 다른 방식의 이해력이 무엇일까? 좀 더 나이가 들면 알게 될까?

 

200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은 일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 달리는 시계의 초침을 뒤로 돌리려는 부질 없는 노력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천천히 삶의 두루마리를 펼치는 것이다. 두루마리의 앞부분, 즉 젊은 시절의 그림이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그것이 싱싱하고 발랄하며 모험적인 것이라면, 나이가 들면서 짜 놓은 인생의 직물은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으며 완숙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의 부름에 따라 모두 놓아두고 낡은 껍데기만 남기고 떠날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은은하고 통찰력에 차 있으며 완숙한 것. 모두 내게 부족한 것들이다. 잘 늙기 위해서도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걸까? 저절로 되는 건 없나 보다.

 

201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 한다. 그러나 가을 또한 곱게 온다.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릴케처럼 말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신이여, 우리 각자에게 합당한 삶을 주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삶에 걸맞은 합당한 죽음을 주소서.”

 

길에서

205 세상의 아름다움이 나를 슬프게 한다. 그 아름다움은 사라질 것이기에.

비 내리는 오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불멸을 꿈꾸니.

이 오후 시간을 즐겨라. 어차피 가져갈 수도 없는 시간이니.

하루의 질을 높이는 것이야 말로 가장 고귀한 예술.

결국 삶이란 하루 하루의 총합. 너무 뻔한 말이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살아야 한다.

 

206 나는 지금 과거의 한 사건과 미래의 한 사건 사이에 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물론 미래의 일은 반드시 일어날지 아닐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는 추억이고 하나는 꿈이다.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마흔 아홉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흥미로운 관점이다. 과거도 미래도 모두 한 줌의 기억일 뿐이라 아무런 차이가 없다니

 

207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든 일 역시 과거만큼 분명한 꿈이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일 뿐이다. 나는 꿈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

내 말은 미래의 꿈 그 자체가 믿음을 통해 추억만큼 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갇히는 것만큼 미래에 갇힌다. 추억으로서의 역사와 꿈이라는 소설은 둘 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다.

생각해보니 그런 듯도 하다. 추억도 어차피 기억의 왜곡일 수 있고, 과거가 그대로 기억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209 언젠가 잠을 자다가 학교에 가야 하나 보다 하고 소스라쳐 깨어났는데 아직 식구들이 다 잠들기도 전인 한밤중임을 알았을 때, 그리하여 달콤한 잠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 넉넉히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간 것 같았는데 많은 시간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그 때의 아늑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것이다.

 

210 나는 내가 바라는 그 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회의 때문이 아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에게는 내 꿈에 대한 믿음이 있다. 다만 훌륭한 상상과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종종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을 때가 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지금 해야 할 일을 놓치는 것이다. 이것이 오히려 강박관념으로 다가오는 두려움이다.

 

210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하나는 이미 깨어난 꿈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꿀 꿈이다. 둘 다 지금이라는 현실을 속박한다. 또는 지금을 구원해준다. 때때로 그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211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해서 그 안에서 살기. 미래를 꿈만 꾸지 말고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과거에 했어야만 했던 일을 현재에 하기.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는 것도 같고. 역시나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212 꿈은 또한 목적지다. ‘지금이란 늘 그곳에 가는 길 위의 어느 지점이다. 정신적 여행자에게 현재란 과거(추억)를 떠나 미래()로 가는 길 위의 어느 곳이다. 구도라는 말이 생각났다. 길을 찾는다는 말이다. 나 역시 길을 찾고 있다. 한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로 이어지는 길, 지금의 나에서 미래의 나로 가는 길을 찾고 있다. 그 길은 시간의 통로이다.

 

213 ‘내 앞에 길이 열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네. 그 대신 내 뒤에서 수 많은 길이 닫히는 것을 보았네. 이 역시 삶이 나를 미리 준비된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네.’

-       파커 파머 (Parker J. Pamer), <루스의 이야기>

 

215 인생은 이루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성공하고 싶었다. 내가 계획한 어딘가에 반드시 도착하고 싶었다. 도착하는 것이 곧 성공이었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 도착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길 위해서 끝나는 여행도 위대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것이 10년 동안 내 길을 가려는 노력의 결과로 알게 된 평범한 깨달음 이었다. 길 위해서 죽은 여행자처럼 완벽한 여행자가 어디 있겠는가!

많은 준비를 하고 떠난 여행이 막상 목적지에 도착하면 실망하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준비 과정이 더 설레고 즐거운 여행들이 많다.

길 위에서 끝나는 여행.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

여행이든 인생이든 많은 기대와 완벽에 대한 욕망 때문에 망치는 걸 많이 본다.

 

217 나는 가끔 인생은 요리를 만들어 먹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음식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예쁜 그릇에 맵시 있게 얹어 아름다운 식탁보를 깐 식탁 위에 먹기 좋은 온도를 맞추어 차려 놓는다. 촛불을 켜고 싱싱한 장미꽃 화병 하나를 놓아둘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는 식사를 한다. 술을 곁들이고 웃고 떠들며 식사를 끝내면, 수북한 설거지 그릇이 쌓이게 된다. 먹고 나면 뼈만 남은 생선처럼 허망한 것을 그렇게 공을 들여 하루 종일 장만한단 말인가?

삶은 그렇게 공을 들이고 잠시 즐기고 다시 깨끗하게 복원하여 내일을 맞이하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먹고 살 수도 있지만, 정갈하고 아름답게 먹고 살 수도 있다. 먹고 나면 다 똥이 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식탁을 차리기 위해 정성을 쏟는다. 손님이 돌아간 만찬처럼 인생은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잔치를 준비하는 것은 늘 마음 설레는 일이었다.

여정 자체로 훌륭한 여행과 일맥상통.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완벽하게 준비된 잔칫상만을 목표로 하고 살면 여행이나 잔치가 끝난 후에는 목표를 상실하고 허무해진다. 여정과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자.

 

220 ‘내가 다시 살 수 있다면 많은 착오를 범하고 싶다. 지금 살았던 것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고 싶다. 사실 인생을 살며 심각한 일이 어디 그렇게 많겠는가? 그러니 더 미친 척 행동하고 싶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며, 더 많은 여행을 할 것이며,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건널 것이다. ~ ! 나 자신만의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래서 난 나에게 속한 더 많은 시간을 경험해보고 싶다. 내가 다시 살 수만 있다면,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맨발로 다니고 싶다. 회전목마를 더 많이 타고, 더 많은 일출을 보고, 더 많은 아이들과 놀 것이다. 내가 다시 한 번 살 수만 있다면.’

 

220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건만 행복한 사람이 드문 것은 행복해지는 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맑은 날 들판을 산책하듯 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어려운 일을 당하여 그 일의 밝은 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과거 속에서 아름다운 순간을 늘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

무엇인가를 할 때 다른 것을 계획하지 않고, 또 어떤 것을 계획할 때 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 그리고 몰입된 순간 순간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질 수 밖에 없다.

 

222 많이 얻으면 그만큼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베풀 수 있는 만큼 행복하다. 베풂은 씨앗 같은 것이라 주위에 뿌리면 수많은 결실과 함께 되돌아 온다. 더 많은 씨앗을 얻게 된다.

아직 나의 베품의 크기는 너무도 옹색하다. 결실을 바라지 않고 베푼다고 하지만, 베풂은 씨앗과 같아서 바라지 않아도 되돌아 온다고 하지 않나. 그러나 많은 씨앗을 뿌리려면 그만큼 내가 품고 있는 씨앗도 많아야 한다. 베품의 크기를 키우도록 하자.

 

222 누구에게나 맞는 객관적인 삶의 의미란 없다. 나에게 주어진 구체적인 삶, 이 유일무이한 구체성이 바로 내 삶이고, 따라서 그 의미 역시 나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것이다.

 

223 길은 없다. 이것이 길이다. 하루가 길이다. 하루가 늘 새로운 여정이다. 오늘 새롭게 주어진 하루가 또 하나의 멋진 세상이 되지 못한다면 어디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는가? 변화란 불행한 자의 행복 찾기 아니겠는가.

늘 내일, 다음주, 이것만 끝나고 나면이란 핑계를 대며 살아왔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다이어트는 없다. 지금 그만 먹고 밖으로 나가 뛰어야 살이 빠지는 것처럼, 오늘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

 

, 공간

237 어머니 나무에서 나와 가지 위에 핀 꽃들은 모두 나무의 자식들이다. 끙 하고 힘을 줄 때마다 한 놈씩 나와 가지 끝에 달려 있다. 아름다움으로. 꽃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것이 바로 꽃이다. 민감한 시인들은 그래서 꽃 터지는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꽃 터지는 밤이라 잠을 못 이룬다니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나에게도 어제까지 꽃망울에 불과했다 아침에 활짝 핀 꽃을 보는 건 감격이다.

 

238 겨울이 지나는 동안 뒤에서 본 북악산의 오른쪽 허리에서 떠 오르던 해는 조금씩 왼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봄이 되면 이미 북악 스카이웨이가 끝나는 성북동 뒷산쯤에서 더 이른 시각에 떠오른다. 하지쯤 되면 완전히 빠져나와 아리랑고개 쯤에서 뜬다.

처음에는 이런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해는 동쪽에서 뜨려니 했다. 동지를 지나 춘분을 향하면서 해가 떠오르는 자리가 서서히 왼쪽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겨울에는 아침 7시 반이 넘어서야 산 뒤로 푸르스름한 하늘이 붉어지면서 이윽고 해가 빠끔히 떠오른다. ~ 지식으로 치자면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시시한 내용일지 모르지만, 나는 비로소 경이로운 세상 속에 있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일상 속에서 스스로 찾아내게 되었다. 지구의 공전, 자전, 기울어짐 같은 것은 책 속의 단어일 뿐이다. 스스로 체득한다는 것의 기쁨은 이런 것이다. 아무 이용 가치도 없는 순순한 배움의 즐거움. 이런 즐거움 없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 맞고 틀림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그저 추론의 과정일 뿐이다.

산은 아니지만 아파트 높은 층에 살면서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서향 집에 살던 나는 해가 지는 위치가 달이 지남에 따라 바뀌는 걸 보며 놀랐었다. 저자 말마따나 별 쓸 데도 없고, 남들은 이미 학교 다닐 때 다 배운 기초 지식이겠지만, 나는 계절에 따라 노을의 위치가 달라지는 걸 보면서 자연의 조화에 감탄했다.

 

243 어떤 경우든 식물은 한 번은 전성기에 이르는 것 같다. 일찍 시작한 놈은 봄, 여름에 빛을 내고, 조금 늦게 시작한 놈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남아 멋을 부린다. 다 제 때가 있다. ~

무엇인지 정체를 잘 모르는 식물이 자라나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하자 비로소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244 높은 곳에 사는 맛이 이렇다. 멀리 있는 수많은 진달래들은 내 집의 뜰의 진달래들과 교감한다. 이곳에 몇 그루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은 그 구체적 모습을 가슴에 안고 앞산 뒷산의 진달래들을 완상할 수 있다. 멀리 그들이 있고, 먼 자태는 가까이 있는 이 모습에 의해 생생해진다. 멀리 보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그 자태가 그리우면 가까이 가서 만져본다. 멀리 두고 그리는 마음은 그리움이고 가까이 두고 만질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245 나는 벚꽃을 아주 좋아한다. 산길을 걷다 숲 속에 심심찮게 묻혀 자란, 꽃이 만발한 벚나무를 만나면 늘 그 허리를 쓸어준다. 그 밑에 서서 꽃들 사이로 하늘을 보려 한다. 바람이 불고 이내 꽃비 오듯 그 작은 꽃잎들이 떨어져 내리면 황홀하기 그지없다.

나도 언젠가부터 벚꽃이 좋아지고 있다. 활짝 핀 벚꽃을 보는 것도 좋지만 꽃비가 내릴 때, 그 꽃비를 맞는 것이 그렇게 좋더라. 나이들면서 나도 감성이 점점 풍부해져 가는 것 같다. 다행이다.

 

246 어쩌면 밝고 화려한 성격을 오래도록 그리워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적 불활성이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거나, 재치있고 다소 수다스러운 밝은 벚꽃 같은 사람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조용한 사람이고 무거운 사람이며 작은 일에도 지나치게 민감하고 진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이지만, 세상을 밝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무거움의 대칭점에 서 있는 벚꽃의 화사함을 좋아하나 보다.

 

249 우리는 증거를 필요로 하는 존재다. 일을 하면 한 티가 나야 그 기쁨이 배가 된다. 정원 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노동이다. 지금 막 시작했지만 아주 훌륭한 취미가 될 것도 같다. 생명을 만나고 생명과 이야기할 수 있으며, 생명이 자라는 것을 돕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열심히 일한 결과를 눈으로 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그 결과가 생명이고 더구나 아름답다면 더 기쁠 것 같다. 그런데 그 생명의 아름다움이 내 노력의 결과에 못 미친다면, 내 맘 같지 않다면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

 

254 명상은 나를 즐기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가득 찬 현실에 갇힌 내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명상은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는 것이다.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나. 꼭 찾아내야 한다.

 

학습

259 그러나 내가 떠나온 사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자유를 확보하는 순간 과거 생활의 장점들이 나를 공격했다. 나는 아무런 소속감이 없었다. 안전을 지켜줄 울타리도 없어졌다. 매일 지겹도록 만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동료들도 사라졌다. 내게 정규적으로 먹이를 주던 손도 사라졌다. 아침이 되면 가야할 곳도 사라졌다. 생명보험도, 자녀교육비 지원도, 의료보험도 다 사라졌다. 모든 것은 내 주머니에서 지출되었다. 돈은 얼마나 빨리 소리 없이 사라지는 초조함이었던가!

직장을 떠나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두려움. 특히 부양가족이 있거나 가장이라면 더 크게 공감할 거다. 난 부양가족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부양가족이 없어서 절실함이 부족했던 것 같다. 두려움에 질 필요는 없지만 좀 더 적극적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260 자유는 또한 불안이고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할 일을 찾아야하는 부담을 안겨주었다. ~ 나는 외로움과 불안과 대면해야 했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로움을 선택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261 두려움은 서서히 옥죄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두려움은 또한 강렬한 힘으로 작동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지금 열심히 일하도록 했다. 계속 책을 쓰도록 했고, 계속 읽게 했으며, 그저 빈둥거리며 사는 것을 불편하게 했다.

지금 나에게는 강렬한 힘이 필요하다.

 

262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홀로 서게 되면서부터 무협지를 읽지 않게 되었다. 시간의 낭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는 무협지를 즐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어야 했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나를 보호해줄 아무런 울타리도 없었다.

 

263 성공은 채찍이다. 쉬지 못하게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어 찢어 놓는 주마가편의 바로 그 채찍이다. 채찍을 잊은 성공은 반복과 진부함 속에서 퇴락하게 된다.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내 성공을 의존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믿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고 잇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인기란 사라지게 마련이다. 사라지는 것 위에 성공을 쌓아올려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생각이다.

그렇다. 삶 자체가 유혹이 되는 삶의 뒤에는 날카롭게 살을 파고들어 찢어 놓는 채찍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 유혹에 넘어갈 것인가?

 

265 심심함이야말로 모든 창조적 발상의 원천이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해주었고, 달리 해석하게 해주었으며, 속세에 물들지 않게 해주었고, 다시 속세를 그리워하게 해주었고, 사람을 찾아나서게 해주기도 했으며,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해주기도 했다. 심심하면 친구가 그립고, 그래서 그를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문화는 한가한 사람들의 작품이다.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바쁘다는 것은 사람을 그저 움직이게 한다. 먹이를 나르는 개미처럼 한없이 움직이게 한다. 경제라는 본능에 따라 프로그램이 된 것처럼 낮도 밤도 없이 움직이기만 한다. 똑같이, 이 지겨운 반복적 소모를 일한다라고 부른다.

 

265 니체는 노동은 최고의 경찰이라고 말했다. 노동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억제하고, 열망을 줄이며, 독립의 욕망을 피하는 현명한 자제의 방법이었다. 그래서 사회는 노동을 통해 안전해지곤 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가 죽는다. 한번도 살기 위해 일을 버린 적이 없다. 놀기 위해 산 적도 없다. 그래서 살기 위해 산 적이 없는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오래전에 놀기 위해 사는 삶을 알게 되었다. 너무 많이 놀았던 것 같다. 이제 다시 일과 놀이가 사이 좋게 어우러진 살기 위한 삶을 살자.

 

267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이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 밥 한사발에 즐거워하고 산속을 걷는다는 것 때문에 털 하나까지 긴장하고 살아 있는 개그 개를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다운 삶. 그럴 수 있는 삶이 진심으로 부럽다.

 

268 지도가 있으면 좋다. 그러나 정말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은 지도에 없는 곳이다. 나는 남쪽으로 갈 것이다. ~ 남쪽으로 가는 길은 지도에 없다. 지도에 없는 길의 풍광을 즐기고 싶은 나는 그 길을 따라간다. 간혹 지도에 있는 길들과 교차하기도 하고, 얼마간 평행이 되어 달리다가 이내 산속으로 사라지기도 하는 나만의 길을 따라 줄곧 남쪽으로 간다.

 

269 다소 목적지가 불분명한 여정, 가다가 언제고 목적지가 바뀔 수도 있는 유연하고 자유로운 여행난 이런 여행이 좋다. 여행은 곧 자유인데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여행에서조차 얽매이는 것은 불쾌한 일이다.

미래는 지도에 그려져 있지 않은 세계다. 그저 내적으로 감응하는 나침반 하나 달랑 들고 떠난다. 이때는 내 발자국이 곧 지도이다. 완성될 수 없는 지도, 때때로 잘못된 지도, 방황과 위험이 도처에 숨어 있는 지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곧 내가 살아온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공감. 나는 지도를 잘 못 읽는다. 그래서 낯선 곳에서 불안하곤 했다. 그런데 지도 자체가 필요 없는 곳들이 있더라. 운하로 가득 찬 베니스, 세계에서 가장 큰 미로라는 페스(Fes, Morocco) 등에서는 지도가 필요 없을 뿐 아니라, 아예 길을 잃는 것이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 베니스나 페스 뿐만이 아닐 것이다. 길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아니 길을 잃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가장 재미있는 여행을 할 수 있다.

 

273 단칼에 내 심장을 찌르지 못하는 자들은 나와 인연이 없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다시 그들의 책을 펼쳤을 때 운명처럼 심장을 찔리게 되면 그때가 그들과 다시 만나는 시간이다. 명성이 자자한 책이라도 그 명성 때문에 보지는 않는다. 흘러간 시대의 흘러간 흔적이 지금 나는 깨우지 못한다면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것이다.

 

274 아무리 가르쳐도 물에 뜨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물에 뜨게 된다. 어떤 차이가 그 경이로움을 만들어내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그냥 그렇게 된다. 물의 리듬을 타지 못하면 물과 함께 흐를 수 없고, 노래의 리듬을 타지 못하면 노래를 잘 부를 수 없다. 배우고 또한 익히다가 결국 자신을 그 바람결에 실을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하늘을 날 수 있다. 학습은 어느 순간 이질적인 삶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열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배움은 학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든 음악이든 문학이든 역사든 또는 과학이든, 배움은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가슴에 안는 것이다. 낯선 소리, 낯선 얼굴, 낯선 삶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곧 학습의 즐거움이다.

이것도 내 얘기다. 나는 처음 수영을 배울 때, 아무리 강사가 열심히 알려줘도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못했었다. 그런데 혼자 연습하다가 나도 모르는 순간 어느새 앞으로 나가게 되었다. 아마도 물을 겁내지 않고 몸에 힘을 빼면서 였던 것 같다. 다른 수강생보다 잘 해야겠다는 욕심을 버려서였던 것도 같다.

그 때 경험을 앞으로의 삶에도 적용하기.

 

276 망연히 어둠 속에 서 있던 덕산은 어둠 속에서 찬연히 빛나는 별빛을 보게 된다. 그리고 깨우친다. 이성의 작은 촛불을 끄지 않고는 대우주의 별빛을 볼 수 없다. 가까운 작은 산이 먼 큰 산을 가리고 있듯이 작은 지식은 늘 큰 지혜를 가리고 있다.

 

276 “어둠이 가장 짙을 때 깨달음의 길이 열린다.”

그렇다면 곧 나에게도 깨달음의 길이 열리겠구나.

 

276 스승은 등불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그 불을 끄고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별이 쏟아지는 것을 보게 되길 바란다. 제자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별빛을 보게 하는 스승만이 위대한 스승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80 그는 다이너마이트였으며, ‘광대였으며, ‘모든 금지된 곳을 찾아 나서는유목민이었으며, 외부인이었고, 방랑자였다. 떠나는 사람이었으며, 떠나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자신을 찾는 일은 항상 자신을 잃어버리고 부정함으로써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었다. ~

니체는 그러므로 미래의 아들이었다. ‘미래란 과거와 현재에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받고 있는 시간이다. , 니체의 미래는 어느 시대이든, ‘적절한 때가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그는 늘 너무 일찍 와서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시대의 아들이 되지 못하고, 시대에 적응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광인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었다.

배움은 결국 삶의 실천에 의해 가장 잘 얻어진다. ‘천국이란 새로운 생활방식이지 신앙이 아니기때문이다.

내일에는 또 다른 내일이 있을 뿐, 내일은 절대 오지 않는다고 했다. 내일부터 시작하는 다이어트가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받고 있는 시간. 미래를 설명하는 말 중에 가장 와 닿는 말이다.

 

281 삶을 살면서 삶 속에 녹아 버렸으면탐닉하고 오직 삶이 되어 삶 속에서 노닐 수 있었으면조금씩 조금씩 빠져들어 마침내 삶이 되었으면.

 

282 학습이란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다. 불가에서의 선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하나의 삶의 스타일을 만들었다. ~ 속인의 일상을 버리고 스님의 일상을 취하는 것이 출가이다. 이것은 일종의 개인 혁명이다.

배우고 익혀서 새로운 삶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 이를 통해 개인 혁명이 가능하다. 새로운 걸 배우기만 해서는 쓸 데가 없다. 배운 후에는 체득해서 삶을 변형해야 쓸 데가 있어진다.

 

283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만일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매일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것은 늘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가는 끝없는 여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길 위에 있다. ~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어려운 말 같지만, 쉽게 말하면 하루 하루를 잘 살자는 것.

 

284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새로 받은 하루이다. 나이가 들면 잊는 게 더 많다. 자주 잊기 때문에, 어제를 잊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날을 맞는 듯한 기분이 든다.

 

285 그리고 거울 속의 나를 본다. 공연을 앞둔 사람처럼, 무대 위에 오르기 위해 의상을 갈아 입듯이, 약간 긴장하고 흥분한다. 이게 짜릿한 하루의 양념이다.

즐겁게 살기 위해 살짝 양념이 필요하다. 너무 자극적이면 금방 질리고 삶이 피곤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밋밋하면 맛이 없다. 조금만 달콤하고 상큼한, 새콤달콤한 양념을 곁들인 맛있는 삶을 살고 싶다.

 

285 하루는 실험장이다. 실험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험장. 실험이 목적 그 자체가 되어버린 실험내겐 이것이 하루이다.

 

286 나는 나에 대한 꿈을 꾸었다. ‘선비처럼 섬세하고 무사처럼 선이 굵을 것.’

나도 나에 대한 꿈을 꾸어봐야겠다.

 

288 첫번째 도전은 실패를 이기는 것이다. 두번째 도전은 실패를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 것이다. 세번째 도전은 매일 실험을 즐기는 것이다. 이 때는 이미 실패도 성공도 사라진다. 여행을 즐기는 자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새로운 세계에 탐닉한다. 그들은 춤추듯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춤추듯 즐거운 하루라는 표현이 계속해서 사용된다. 아무래도 선생님은 춤을 즐기셨던 듯 하다.

 

293 첫 출근을 하던 날의 기분을 상상해 보라. 새로운 책을 한 권 낼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강연을 하러 가는 날마다 나는 그런 기분에 젖곤 한다. 새로운 책, 새로운 대상, 새로운 내용, 새로운 날은 나를 춤추게 한다.

 

296 “여기서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습니다. 이게 바로 내 삶입니다. 그 삶을 살기 위해서 여기 이렇게 하루 종일 앉아 양파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에게 이 양파를 몽땅 다 팔아버린다면 내 하루도 그걸로 끝나버리고 말 겁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사랑하는 것들을 다 잃게 되지요. 그러니 그런 일은 안 할 것입니다.”

목적이 아니라 그 과정을 즐기는 삶.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을 즐기는 삶. 하루하루를 충만하고 행복하게 보내는 삶. 모두 일맥상통한다.

 

296 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 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인생을 파괴하지 않는 직업, 삶을 빛내는 직업만이 훌륭한 직업이다. ~ 눈부신 삶을 살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시장에 나와 하루에 20줄의 양파를 파는 것, 이 초라하고 궁핍한 일은 돌연한 에피소드를 통해 통쾌한 반전을 만들어 낸다. 초라한 미국인가 거대한 인디언 노인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철학의 힘이다. 나는 이 양파장수처럼 살고 싶다.

‘Judge your success by what you had to give up in order to get it.’ By Dalai Lama

아무리 훌륭한 성취를 이루었어도 그 성취를 위해 희생된 것이 어떤 것이었냐에 따라 성공일 수도 실패일 수도 있다. 성취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러 훌륭한 분들이 공통적으로 그렇게 말하신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

 

298 먼저 나에게 적용할 것. 반드시 성공할 것.

그 다음 상이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활용할 수 있는지 실험할 것. 내가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을 나누어 주려는 잘못을 범하지 말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나누어 주어야 탈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것,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늘이려는 노력을 같이 해야 한다.

 

300 열정과 가슴의 힘 없이는 현장의 바람에 대항할 수 없다. 설득은 논리의 문제가 아니다. 설득은 감정의 폭우를 필요로 한다. 감정을 담지 못하면 설득에 성공하기 어렵다. 열정을 가진 사람처럼 믿어보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다. 논리는 있으나 열정과 가슴의 힘이 부족하다. 어느새 안 되면 말고…’가 나의 모토가 된 것 같다. 최선을 다해도, 사람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안 되면 말고…’의 태도와는 다를 것이다. 가슴의 힘을 찾아야 할 것 같다.

 

300 죽어 있는 정신을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흥미가 살아나고 열정이 살아나며 삶이 살아난다. 그리고 끊임없이 실험하게 된다. 실험이 곧 창의성이다.

이 방법을 시도해 봐야겠다.

 

302 배움과 학습은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자아경영은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나를 위해서 먼저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나아지는 수련이다. 그 다음에 비로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

 

303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라는 재능과 변화경영이라는 전문 경력을 결합시켜 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었다.

처음 해보는 것은 기회의 선점이기도 하지만 매우 큰 모험이기도 하다.

 

306 남과 다르다는 차이를 이용하여 성공을 거두어 낸 사람들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은 빛이다. 반딧불이든 커다란 등불이든, 그들은 우리에게 늘 빛을 던져준다.

 

309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비결이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싶어한다. 그 비밀은 니체가 아곤(agon)적 행동이라고 말한 경쟁의 행동에 있다. 그들은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선조들과 경쟁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과 경쟁한다. 그리스인들은 이 경쟁의 힘을 (virtus)’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기독교적이거나 윤리적인 금지의 미덕이 아니라 남성다움, 또는 정력적 힘을 상징했다.

 

310 그 지겨운 연습, 그것이 내 목을 조른다. 어디에도 마술같이, 노력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 주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성공에는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쪽지에 적힌 대로 끊임없이 익히는 것일 뿐이다. 손에 익고 머리와 가슴 사이에 어떤 괴리도 없이 자연스러운 강줄기가 흘러갈 때 우리의 것이 된다. 그때 성공은 우리의 특징이 된다. ~

성공 뒤에는 성공을 향한 탐욕이 있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이 있었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며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했다.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와 원망. 어렸을 때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내 동생이 나의 가장 큰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직 동생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아마 죽기 직전에야 고백할 수 있을 것 같다.

 

313 누구든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싶은 사람은 인물을 얻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인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다. 스스로 자신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살려내지 않고는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것, 이것이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이다.

 

315 세일즈와는 달리 마케팅은 아주 적극적인 수동성이다. 사람들이 찾아낼 수 있도록 곳곳에 꽃을 피우고 향기와 매력을 뿌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은은함이며, 숨겨져 있음이며, 힌트며, 감각적 포착이며, 눈빛이다. 아주 작은 나라는 소우주로부터 또 다른 세계로 쉬지 않고 시그널을 보냈다.

은은한 향기와 매력.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꼭꼭 숨겨서 못 찾을 정도가 되면 더 안된다. 적극적인 수동성이라니미니 막스 (mini max) 만큼이나 말이 안 된다.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316 다른 사람의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는 영웅, 자기 자신의 영웅은 그렇게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키며 이끌어간다.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자신의 영웅, 이들이 바로 유일한 자들이다. 자신의 소우주를 가지고 있는 작은 왕자들이 바로 이 사람들이다. 우리는 유일함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비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내할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위대한 이야기로 전환된다.

 

316 일단 숙달하면 일탈한다. ‘불온한 재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다른 방식을 찾아보고 새로운 방식을 다시 익힌다. 다시 배우는 불편과 새로 배우는 흥미를 반죽하면 일상은 다시 깨어나고, 일은 같은 일이지만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애인이 아내가 되고 아내가 다시 애인이 된다. ~ 일이 사랑이 되지 않으면 그 일은 내 일이 아니다. 그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 그러므로 늘 새롭게 사랑하는 방식을 찾아내야 한다.

숙달된 일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과 새로운 방식 찾기.

다시 배우는 불편과 새로 배우는 흥미로 일상을 다시 깨우기.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새로운 일이 아니라 같은 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을지 두고 봐야겠다.

 

318 “ ~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인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 새로 만들어진 그들은 자신에 대한 존중감으로 가득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지만, 늘 스스로 새롭게 생성되는 사람들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자신을 탄생시키지 못하는 불임을 극복하는 사람들이며 자신에게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다. ~

삶에 대한 하나의 사례로서 나는 내 삶 자체가 매혹적이기를 바란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나는 매혹적인 삶이라고 부른다. 나는 나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서 이것을 보고 싶다.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 이것이 내가 그리는 삶이다.”

내일로 미루지 않기, 인생을 낭비하지 않기, 자신에게 책임 지기.

매혹적인 삶, 끝없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즐거운 여행의 삶을 살기 위해 내가 꼭 기억하고 실행해야 할 것들이다.

 

329 “아티스트들은 하나같이 이기적이고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요. 내 음악으로 관객을 쓰러트릴 수 있다는 확신, 그런 허영 없이는 무엇으로 움직이겠어요? 팬들의 사랑이 없으면 끝이에요. 부인할 수 없어요. 아티스트들은 그래서 항상 젊어야 하고 섹시해야 하고 신선해야 해요. 시들지 않는 에버그린 같은 것이지요. 무대에 설 때마다 떨리고 흥분돼요. 연애하는 것과 비슷해요. 관객과의 데이트 말이에요. 거기서 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 무대에서만 나는 살아 있어요. 무대에서 나는 가장 아름답고 당당해요. 나는 노래를 위해 태어났고 노래로만 나를 증명할 수 있어요.

내 삶의 무대에서 나는 가장 아름답고 당당하게 살자.

 

331 “~ 모든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목표, 그것은 반드시 청중 속의 누군가를 움직여 스스로 자신의 고뇌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강연은 실패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책을 덮은 후, 강연장을 떠난 후,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하기.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훌륭한 강연을 들어도 일상 속에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334 불행한 사람들만이 변화에 관심이 있다. 행복한 사람들은 지금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 행복을 가장한 사람들 역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도 때때로 변화를 바란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뼛속 깊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이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별 의미와 보람도 없는 불안과 무력감에 시달리는 일상이라고 엄살을 떠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인생은 그런 것이려니 하는 사람들이다.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당위성을 찾아냄으로써 그들은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 변화를 꿈꾸지만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 나는 그들 속에서 불행을 감지한 치열한 사람들을 찾아내야 했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은 행복을 가장하고 있었던 건가?

 

340 정신적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늘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을 새롭게 닦아 놓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인간은 모두 다 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밀리면 정신적 타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다른 것을 잘하지 못할 때 자존심이 상하지는 않는다.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잇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잘하는 분야에서 실수하거나 마음에 차지 않으면 매우 불쾌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이 때 자신의 분야가 나를 찌르는 비수가 된다. 그러므로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 한다

어제의 진실은 오늘의 진실이 아니다. 늘 새롭게 태어나지 못하는 정신은 죽은 것이다.

 

342 내가 하는 일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아직 방향을 잡을 수 없을 때 잠시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는 일이다.

누구든 자신의 길을 갈 때는 내면의 등불을 밝히고 가야 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등불이나 등대가 될 수는 없다. 우리가 가는 여행은 우리 속으로의 여행이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수록 오직 자신을 태우는 등불로 길을 밝혀야 한다.

막막할 때, 주저앉아 있을 때, 우연히 자신의 안에서 스스로 불을 켤 수 있도록 잠시 불을 빌려주는 예기치 않은 쏘시개 불꽃이 되는 것,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무수한 군중이 있지만, 내 말을 듣고 자신의 길을 가기 이해 첫발을 내딛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속에서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나는 그저 그 속에 불씨 하나를 던져 넣는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타오르는 것을 보며 즐긴다.

 

343 자신의 꽃씨를 뿌리게 하는 것,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신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심어주는 것, 이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조용한 선동가이다. 모든 씨앗에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속삭인다. 그 꽃이 무슨 꽃인지는 피기 전에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꽃이 다른 꽃들과 다르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것을 선동한다. 그리고 그 꽃을 피워내 이 세상에 그 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선동한다.

나는 어떤 꽃일까? 피어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씨앗을 뿌렸으니 예쁘게 필 수 있도록 이제 충분한 햇빛과 물과 양분을 주자.

 

세 개의 에필로그

354 어느 하루도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시도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 아니다. 시간 자체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삶이다. 내게는 팔아야 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쓴다. ~ 나는 정신적 여행자이다. 타임머신 없이 과거로 가고, 다시 현실로 복귀한다. 비행기도 타지 않고 짐도 싸지 않은 채 르네상스의 피렌체로 가고, 고대 중국의 한 왕국의 밀실에 숨어들기도 한다. ~

나는 정신적 방랑자이고 내 피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만큼 뜨겁다.

 

356 나는 삶이 일종의 예술이길 바란다. 나의 일상은 안정과 질서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미래를 정하고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살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나는 그 일을 아주 잘할 수 있을 대까지 매일 나를 실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358 나는 피폐한 시선을 미워한다. 우리의 세대가 끝난 것처럼 조로한 시선을 미워한다.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준 세계 속에서 그 세계의 끝을 예견하는 참담한 현실주의를 증오한다. 현실이란 결국 주어진 상황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다. 나의 의견을 말하라. 나의 의견,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이 무엇인지 말하라.

 

361 대신 오늘을 새로 받은 또 한 번의 아름다운 선물로 여기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햇빛이 쏟아지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하루. 이 아름다운 날 무엇을 할 것인가! 비가 시원히 쏟아지거나 눈빛으로 반짝이는 이 특별한 날이 어떻게 어제와 같을 수 있겠는가! ~

정말 나의 목적은 하루를 잘 사는 것이다. 하루를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각성과 준비의 제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사는 것이다. 어떤 하루도 목적 그런 것이 있다면 을 위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하루 하루를 특별한 날, 아름다운 선물로 여기며 살기. 하루 그 자체를 목적으로 인생 전체를 빛나게 살기.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364 내게 마흔은 세상을 즐길 수 있게 해준 나이였다. 인생의 맛이 스며 일상의 뼛속까지 배어든 나이였다. 약간 뻔뻔해진 아줌마들처럼 인생에 대한 헛된 기대 대신, 직접 살아 본 경험의 혓바닥으로 날마다 인생의 삶 맛을 핥아볼 수 있는 나이였다.

언젠가 한번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스스로 설계한 인생을 살아야 했다. ~

인생은 결국 자신의 주인을 닮게 되어 있다.

 

평설_내 인생의 역할모델 구본형 따라 하기

379 내가 이 쏘시개 불꽃을 만나게 된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아직은 아니지만 나도 언젠가는 쏘시개 불꽃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노라고.

원하는 대로 된 인생을 살았다. 나도 언젠가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l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이다. 서문에서 저자 스스로 유명한 인물이 아닌 평범한 사람이 쓰는 자신의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매우 개인적인 이야기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출판하는 책에 실리기에는 다소 부적합해 보이는 부분, 예를 들어 4, 얼굴 페르소나, 들이 다소 포함 되어 있다

나라면 이 부분은 대폭 축소하거나 드러낼 것 같다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영역까지 포함된 자서전을 출판하는 자신감과, 개인의 역사가 상업적으로 출판이 가능했다는 것은 역시나 작가가 가진 힘일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40대의 10년간을 정리한 자서전이라 그 전에 있었던 일은 알 수가 없는 점이다저자도 서문에서 ‘20~30대부터 기록할 수 있었다면 훨씬 젊은 시절에 나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40대의 10년 간의 기록이긴 하지만 최초의 자서전이었으니, 40대의 이야기뿐 아니라 그 전의 이야기특히 40대에 그런 삶을 살 수 있게 된 바탕 – 20~30대 때의 노력이나 좌절 등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있었더라면 저자의 40대를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프롤로그를 다시 읽어 보니 좀 혼란스러워졌다꿈과 현실이 뒤섞이고, 실제와 가상이 어울리며, 미래와 과거가 전도되고, 욕망과 성취가 혼동되는그래서 더욱 나다운 그림을 그려보려했다. (중략)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고 욕망에 대한 절제다못 가본 삶에 대한 질투이다. (중략) 자전적 소설이고, 소설적 자전이다. 지나간 삶에 대한 파괴고앞으로 살 삶에 대한 창조이다. 나의 운명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 보려는 실험이다.’ (p16)

그럼 책 내용이 모두 사실인 것은 아니라는 건가? 내가 제대로 이해를 못 하는 건가?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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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7 16:05:47 *.14.90.189

"동생에 대한 시기와 질투와 원망. 어렸을 때 나를 성장시킨 원동력이긴 하다. 그래서 나는 내 동생이 나의 가장 큰 스승이자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정씨의 긍정마인드를 엿볼 수 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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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3 19:16:50 *.5.22.92

가족을 매개체로한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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