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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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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17일 10시 39분 등록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저, 휴머니스트

 

2주차 (4/10~4/16)

티올(윤정욱)

 

[ 목 차 ]

 

1.    작가 분석 ---------------------------------------------------------- P. 1 ~ P. 4

 

# 1 : 역사 (인간 구본형의 역사)

 

# 2 : 단절 (구본형의 내면 탐구 보고서)

-      단절의 계기 (왜 하필 그 때였나)

-      단절의 방법 (어떻게 단절했나)

-      나와의 차이점 (왜 그는 되고, 나는 못하는가)

 

# 3 : (경영과 인문)

 

# 4 : 변화 (미정)

 

 

2.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 P. 4 ~ P. 20

 

 

3.    내가 저자라면 --------------------------------------------------- P. 20 ~ P. 23

 

 

[북 리뷰 INTRO]

 

두 번째 북리뷰가 시작 되었다. 아직 익숙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많은 과정들이 낯설고 때로는 조금 벅차기도 하다. 그럴 때 마다 내가 연구원 과정을 왜 시작했는지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나는 무엇을 바랬고, 또 그 바램은 얼마나 간절했는지를 되물어 본다.

 

나는 변화하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모습의 어떠한 내가 되기를 바랬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변신(變身)이지 내가 원했던 변화(變化)는 아니다. 변신은 외부적 특성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 젓가락이 쇠 젓가락으로 달라지는 것은 변신이지 변화가 아니다. 반대로 변화는 내부적 특성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가 나무 젓가락으로 바뀌는 것, 좀 더 고급스러운 나무 젓가락으로 바뀌는 것, 그렇지 않으면 날카롭게 자신을 깎고 또 깎아 이쑤시개가 되는 것, 모두 변화의 한 과정이다. 나무의 기본 성질은 변하지 않지만, 그 쓰임과 모양새 모두가 바뀌게 되었다. 이것이 변화(變化). 간혹 나무 젓가락으로 식사를 마치고 나서 젓가락의 절반을 비스듬하게 부러뜨리고, 이쑤시개로 쓰는 사람이 있다. 나무 젓가락을 하고 부러뜨리는 순간 더 이상 나무 젓가락으로써의 효용 가치는 사라진다. 부러진 젓가락은 더 이상 젓가락이 아니다. 젓가락으로서는 죽음이자, 사형 선고와 같다. 그런데 그 순간 젓가락은 이쑤시개로써 재 탄생한다. 나무 젓가락을 이쑤시개로 쓸 수는 없다. 나무 젓가락이 죽어야 이쑤시개로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것은 모든 변화가 가진 공통적인 역설이다. 죽어야 다시 태어난다.

 

나는 얼마나 간절히 변화를 원하는가? 그것은 내가 얼마나 단호하게 지금의 익숙한 나와 결별할 수 있는지, 또 지금의 나는 얼마나 간절히 죽기를 원하는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같다. 내 안에 품고 있는 나무의 성질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그 효용과 쓰임, 즉 나라는 재의 가치만이 항상 변한다. 나는 나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고, 얼마나 그 쓰임을 다하고 있을까. 어쩌면 지금 나무 젓가락으로 이를 쑤시고 있거나, 이쑤시개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무로 태어나 한 여름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베어지고 나서는 기둥은 어느 이름 모를 산 속 절에 새로 지은 부엌 대들보가 되어도 좋고, 큰 가지는 아름다운 가구의 일부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또한 잔 가지는 나무 젓가락이 되어도 좋고, 그 나무 젓가락은 식사를 마친 누군가의 이쑤시개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쓰임을 다하는 것은 일종의 소명이자 기쁨이고 행복이다.

 

신념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각자에게 태초부터 주어진 소명이 있다는 것은 캄캄한 동굴 깊숙한 곳에서 영문을 알지 못한 채 잠에서 깨어난 우리가 처음 마주한 저 먼 곳에서 들어오는 한 점 빛과 같다.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주어진 소명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참 다행이고 위로가 된다. 빛을 향해 걸어가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빛이 스스로 우리에게 걸어 오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빛이 있다는 확신, 나에게 주여진 소명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믿음 그리고 그를 향해 꿋꿋이 발걸음을 옮길 나의 용기와 체력만 있으면 된다. 내가 있는 지금 이 곳 동굴은 너무 캄캄하고 어둡지만 나는 어렴풋하게나마 분명히 빛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 연구원 활동을 통해 나는 한발씩 앞으로 걸어 갈 것이고, 언젠가는 나 자신이 스스로 빛이 되어 다른 많은 동굴들을 밝히는 그런 날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I. 작가 분석

 

1) 단절의 계기

 

(352) 변화는 마흔세 살이 되던 해 하루 동안에 일어났다. 나를 이루고 있던 어떤 특성의 한 조각이 우연히 밖으로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내 운명이 되고 말았다. 그것이 표면으로 떠오르는 순간 내가 오래도록 바라왔던 일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것은 거대한 해일처럼 내 영혼을 덮쳐왔다. 그 파도 속에서 나의 과거는 죽었고, 그 거품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 나로부터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담 나는 삶을 방기한 것이다. 그 책임은 나에게 있다. 나 자신이야말로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유일한 유산이며 유일한 미래였다.

 

★ 티올(정욱) : 마흔 살 작가는 세상과 단절하고, 스스로와 단절하고, 모든 익숙한 것들과 단절하기 위해, 한 달여 간의 휴가를 내고 단식을 시작한다. 그리고 운명적 깨달음을 느끼게 된다. 나무 젓가락이 하고 부러지는 순간이었다.

 

이제는 누구도 내게 명령하지 못하게 하리라. 다시는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계획이었다. 그리고 유일한 계획이었다

 

작가는 경영혁신변화의 주제를 가지고 책을 쓰기로 한다. 작가는 단절을 통해 지금까지 익숙했던 자신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새로 태어난 자기 자신과 매일 새벽 두 시간을 마주하기를 10개월, 첫 저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세상에 나왔다. 책을 쓰고 유명해지는 것이 작가의 목표는 아니었다. 작가의 궁극적인 목적은 빛나는 매일을 사는 것, 그리고 빛나는 하루를 통해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었다. 책은 그 과정 속에서의 결과물에 불과했다.

 

(361)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런 그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단절 했을까?

 

 

2) 단절의 방법

 

(349) 당장 하루를 구성하는 시간을 재편했다. 나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다. 시간표를 만들고 시간표대로 사는 것을 숨막혀 하는 사람이다. 내 방법은 삶의 모든 전선에 퍼져 있는 실핏줄 같은 시간을 불러모아 커다란 주류를 가진 시간의 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첫 째는) 나를 위해 흐르는 시간의 강이다. 이 시간의 강물 위에서 나는 읽고 생각하며 자연과 만나고 쓴다. 이것은 고독한 시간이다. (중략) 나는 새벽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내 책들은 모두 새벽이 만들어낸 생각의 세계였다.

 

(둘 째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 가족을 위해 늘 시간을 남겨 놓았다. 친구들을 위해서도 늘 시간을 남겨놓았다. 나는 그들을 위해 언제고 한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다.

 

(셋 째는) 세상과 내가 만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대체로 책과 강연과 홈페이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다. 나는 사람들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찾아내 주기를 바랐다.

 

★ 티올(정욱) :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고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중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연구원 과제를 마무리하고, 주말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충분히 벌어두고자 하지만 매번 주말에는 허덕이기 일쑤다.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함께 밖에서 활동하거나 좋은 구경을 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지만, 함께 있는 시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나는 글을 쓰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조용히 기다리며 다른 볼일을 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우리는 말이 없고, 그 침묵의 시간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 사람은 많은 배려 덕분에 견딜 만 하다. 그래도 둘이서 정해 놓은 시간이 되면 함께 외출을 한다. 나는 연구원으로서의 고민과 걱정은 모두 내려 놓고 집을 나선다. 그냥 보통 남자친구가 된다. 어제는 양산 남부시장에 다녀왔다. 둘은 시장 안을 꽃밭에 풀린 노루들처럼 방방 뛰어다녔다. 파전을 먹고, 떡볶이와 김밥을 먹고 오뎅을 먹었다. 식혜도 사 먹었다. 만 오천원짜리 새 간호화를 사주며 생색을 내고, 따로 카페는 들리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다. 나는 다시 보통 남자친구의 옷을 벗고, 연구원으로 옷을 갈아 입는다. 방 안에는 변변한 책상은 없지만 그래도 비슷하게 생긴 화장대가 있어 그 위에서 계속 글을 쓴다. 내가 화장대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그 사람은 바닥에 앉아 화장을 지운다. 좋아하는 텔레비전도 키지 않는다. 바로 내가 열심히 살아야 하는 이유다.

 

 

3) 나와의 차이점 (왜 그는 되고, 나는 안 되는가?)

 

작가와 나 사이에 어떠한 간극이 있을까. 나의 가슴을 무찔러 들어오는 글귀가 있었다.

 

(62)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중략)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209)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 티올(정욱) : 작가는 자신이 그린 미래의 모습을 현재로 불러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에 이어진 아직 발생하지 않은 사건들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이미 와 있는 사실로 대했다. 작가는 막연하게 앞으로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자기 최면 같은 모호한 주문이 아닌, 이미 현실로 닥친 미래로부터의 과제를 잘 수행하는 오늘을 위대한 하루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다. 먼 미래의 방향에 대한 대중은 감을 잡되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은 현실이다. 내가 놓치고 있는 점도, 최선의 하루를 다하는 것 바로 여기에 있다.

 

 

II. 가슴을 치고 들어오는 문구들

 

< 개정판 서문 >

 

그의 이야기, 그녀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 밖에 없던 세상에 나의 이야기(me-story)가 생겨났다. 그리하여 나의 역사, 나의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나의 세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미래는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딛고 이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충분히 썩어 비옥해진 과거가 미래의 수확량을 결정한다는 것은 농사를 한 번이라도 지어본 사람은 금방 알 수 있다. 과거를 충분히 썩혀 소화해내지 못하면 과거가 살아서 미래를 지배하게 된다. 즉 과거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관성, 과거의 습관, 과거의 자취와 흔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의 온갖 흔적, 그 영욕을 묻어 깊이 썩혀두면 우리는 지혜를 얻게 된다. 그것이 앞길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 책을 펴내며 >

 

삶을 바꾸는 실천으로서의 자기 경영은 바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신의 방식으로 사는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개인의 역사는 스스로에 의해 편찬되어야 한다. 이것이 군중 속에서, 군중으로, 흔적 없이 매몰되는 자신을 잊지 않는 길이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이야기 프로젝트(Me Story Project)’가 절실한 이유이다.

 

★ 티올(정욱) : 세상 모든 것은 변한다. 제 아무리 강성했던 나라도 결국엔 쇠락한다. 그래서 였을까. 탈무드 보다 더 오래 된 유대인의 성경 주석 미드라쉬에는 이런 우화가 나온다. 어느 날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다윗이 명령을 내린다.

 

반지를 만들되 거기에 내가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쁨을 억제하지 못할 때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동시에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그 글귀를 보고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하느니라

 

명령을 받아 든 후 전전긍긍하던 보석 세공 장인에게 당시 솔로몬 왕자는 이렇게 조언을 했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It shall also come to pass)”

 

역사는 지금껏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 구성되어 왔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 인간의 수명은 제 아무리 길어야 백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자들이었다. 전쟁에 이겨야 기록을 남길 수 있었고, 기록을 남길 수 있어야 그들은 후대에 기억되고, 회자되며 지금까지도 존재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어떠한가. 제 아무리 당대에 뛰어난 인물이었다고 하더라도, 기록되지 않은 그의 삶과 업적 그리고 그의 사상에 대해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영원한 소멸이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기록하지 않은 어제는 지나간 과거이며,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곧 잊혀질 과거다. 작가는 본문을 통해 기록으로 남겨 진 개인의 역사(Me-Story)에 대해 자주 강조를 한다. 사라진 문명이 되지 않는 것, 나아가 남은 시간을 찬란한 문명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 대한 우리의 단 하나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 프롤로그 >

 

(17)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적 감옥이기도 했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또한 내 미래의 숙제다.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역사였다. 살면서 나는 여러 번 죽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번 다시 태어나야 한다.

 

< 1: 지난 10>

 

(25) 불면은 내게 또 다른 고독을 즐기게 해주는 방법이다.

 

(30) 남자는 여자가 길들인 마지막 가축이다. 그러나 반밖에 길들여지지 않아 늘 울타리 밖으로 튀어나가고 싶어한다. 자유는 빛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확실한 것, 굳건히 서 있는 것들의 질서 안에서 자유는 끝나고 만다. 절실하게 바라지만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자유를 두려워한다.

 

(31) 현실은 늘 죽음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오직 삶만이 현실의 위력에 눌려 죽어지낸다.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현실적으로밖에 살지 못했던 그 초라한 현실을 후회한다. (중략)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모든 자제와 절제를 현명함으로 불렀던 그 어리석음은 또 어떻게 하랴.

 

(35) 나는 이 돌연한 과거의 상실을 즐긴다. (중략) 과거와의 연결, 심지어 미래와의 연결도 가끔 끊어버리고, 이 돌연한 시간적 격리를 휴가로 즐길 수 없다면 바보이다.

 

(37) 40대는 가장 정력적인 나이에 버려진 나이다.

 

< 2 : 마흔 살 >

 

(43) 아직 밟아보지 못한 천 개의 작은 길이 있다. 천 개의 숨겨진 삶의 섬들이 있다 (니체)

 

(45) 누군가의 칭찬에 그렇게 연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무엇인가 정말 괜찮은 것을 얻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46) 마흔이 되었을 때, 내게는 나의 세계가 없었다. 내 삶은 줄거리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창조적 주체가 아니었다.

 

(47) 지금 있는 곳의 위치를 알고 싶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우선 내가 있는 이곳을 객관화할 수 있을 지도 같은 것을 보고 싶었다.

 

★ 티올(정욱) : 나 만의 개인사(Me-Story)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

 

(48) 마흔 살이 되면 인생의 마법을 떠나 보낸다. 좀더 순수하고 자유로우며 장난기 어렸던 젊은 시절을 떠나 보내고, 사회적 관습이나 책임, 자의식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49) 이상과 비전으로 상징되는 젊음의 마법이 사라진 후에 다가오는 것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이다. 일만이 생산적인 것이고, 지루한 일상을 견딜 수 있는 탈출구이다. 이리하여 일은 일상과 실제의 삶이 된다.

 

(50)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흔 살이 되면 사람들은 밀려드는 피로감 때문에, 자신에 대한 다소의 실망감 때문에, 또는 그 동안의 실패의 전력 때문에,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저만치 물러앉는다. 노력이란 얼마나 지루한 가시밭길인가!

 

(51) 이제 마흔이 되었다. 그러나 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에 내가 다녀간 자취는 어디에도 없다. , 나는 조만간 사라질 것이고 누구의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게 될 것이다. 나는 저물었다. 우리의 세대도 끝났다

 

★ 티올(정욱) :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들이 저마다 느끼는 감정들은 저마다 다양하다. 어떤 이는 나이 들어가는 것을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것이라는 아주 멋진 가사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늙어가는 것은 나이 듦에 있어서 외면적 가치에 집중한 것이고, ‘익어간다는 것은 나이 듦에 있어서 내면적 가치의 확장에 집중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 드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는다. 그러한 심리에는 불안함이라는 요소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듯 하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함은 아래와 같은 감정들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첫 째,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는 소유에 대한 집착

둘 째, 남은 일상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

셋 째, 존재의 소멸에 대한 상실감

 

(52) 위대한 인생의 그림이 마흔이 되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내적인 관심이 자신에게서 가족에게로, 자식에게로 전이되는 것이다.

 

(52) 마흔이 넘으면 사람들은 외부를 변화시키는 것에 무력해진다. 그들은 자신을 믿는 대신 더 힘이 센 다른 사람과 제도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53) 중년의 여성은 남성으로 변한 여성이다. 성숙한 여성은 남자가 잃어버린 남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중년이 되면 남자와 여자가 그 성적 역할을 바꾸는 상징적 이미지다.

 

(53) 마흔 살은 남녀 모두에게 운명이나 숙명의 힘을 깨닫게 해준다.

 

(54) 마흔이 넘으면 불운과 실수에 대하여 스스로를 용서하게 된다.

 

(54) 마흔 살은 융통성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동시에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보는 긍정적 지혜가 위로가 되는 시절이다.

 

(56) 유머는 일종의 여유와 휴식이다. (중략) 싸울 수도 없고 도망칠 수도 없을 때 유머는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다.

 

(57) 중년의 과제는 각 개인의 내면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치료이며 재생을 위한 내적인 힘이다.

 

(58) 이상과 현실의 사이, 3의 지점, 객관적이고 주관적인 자리, 스스로를 놀릴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략) 마흔 살의 문제는 결국 가슴과 영혼의 문제다.

 

(59) 마흔 살은 게임의 후반부나 연극의 2막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마흔 살은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막연히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의미한다.

 

★ 티올(정욱) : 인생은 연극이 아니다. 2막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

 

(60) 우리는 삶이라는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으로 비유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스스로 참여하는 자들이며 변신하는 자들이지,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부러움과 질시로 관람하는 관객이 아니다 (중략) 나는 진짜를 원한다.

 

(62)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중략)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63) 죽어야 할 자리에는 늘 혁명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바로 이 자리가 내가 죽어야 하는 자리라는 점이었다. 한 세상이 어둠에 싸이게 될 때 하나의 새로운 세상은 어둠 속에서 새로운 빛으로 빛난다.

 

< 3 : 직장생활 >

 

(69)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을 현재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바빠서 자신을 돌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70)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평가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그 사람이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를 가지고 평가하게 마련이다.

 

★ 티올(정욱) : 정말 많이 공감되는 글이다. 우리가 가진 두 가지 시선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까. 자신을 평가할 때와 다른 사람을 평가 할 때 우리는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 자신을 평가할 때는 자신이 가진 장점과 미래의 가치를 가지고 평가하다 보니,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어떠한 성과도 이루지 못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가 약하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면 어떠한 도전에서 실패를 해도 배울 수 있는 것이 적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평가할 때는 이상하리만큼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그 사람의 과거의 성과를 근거로 그의 미래의 가치를 평가한다. 이 모순된 시선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77) 그들은 부가가치가 낮은 지금의 일을 싫어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싫은 일조차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지금의 하기 싫은 일을 버리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그 일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들, 직장 속에는 그런 사람들이 적어도 80퍼센트는 되어 보였다.

 

(78) 어느 조직도 필요한 사람은 떠나 보내지 않는다. 어려울 때 일수록 잡아두고 싶은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다. 이것이 필요의 원칙이다. (중략) 첫째,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중략) 둘째, 그들은 적절한 휴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중략) 셋째, 그들은 늘 학습한다. (중략)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대한 대략을 알고 있다.

 

(84) 나는 내가 수동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를 과장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설득했다. (중략) 나는 수동성을 강점으로 전환시킬 수 잇는 방법을 찾았다. 말하자면 수동성을 적극적 수동성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다.

 

(86) 나는 늘 책을 한 권 써보고 싶었다. 16년 동안 변화경영분야에서 일하며 그곳에서 얻어낸 지식과 경험과 관찰을 분류하고 정리하며 해석해보고 싶었다. 나는 글을 써본 적이 별로 없었지만, 언젠가 책을 한 권 내는 것은 오래된 욕망이었다.

 

(90) 마흔을 넘어서는 그 위험한 시기에 나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나는 사는 듯싶게 살고 싶었다. 모든 것을 다 바칠 만한 것을 찾고 싶었다. 관성에 따라 굴러가는 하루 말고, 전혀 새로운 뜨거운 하루를 가지고 싶었다.

 

(91) 죽지 않고 새로워지는 것은 없다.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워질 수 없는 것이다.

 

< 4 : 얼굴 페르소나 >

 

(97) 나 이제 내가 되었네. 여러 해, 여러 곳을 방황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났네.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녹아 없어져 다른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네 (메이 사턴, <나 이제 내가 되었네 >)

 

(102) 다른 사람처럼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마음이 열등감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대머리용 가발이다.

 

(103)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길들게 마련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서로에게라는 말이다. ‘나에게 길들게하면, 그것이 목적이 되면, 함께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구두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내가 구두를 사면 웃어준다. 그래서 나는 모자가 많고 아내는 신발이 많다.

 

(111) 그때 나는 내 얼굴조차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없을 만큼 경직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자신을 잘 알지 못했고, 더욱이 자신을 활용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12) 인간은 권력에 오염되어 있다. 물질적 권력이 아니라 지식을 통한 훈육권력에 매여 있다. 건강한 개인과 부강한 국가라는 거부하기 어려운 모토를 앞세워 개인의 삶을 규격화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이 우리를 묶어두고 있다.

 

(114) 돈이 없어도 가난하지 않은 때가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상상하는 바로 그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그때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 후 내 불꽃은 마흔을 넘어서면서 거의 사그라지다가 갑자기 전혀 예기치 않게 다시 훨훨 춤추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런 특별한 계기도 없었다. 한 순간 이렇게 계속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115) ‘오동은 천 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파지 않는다

 

(116) 사회적 기대가 존재하는 곳에는 늘 인형을 움직이는 끈으로 가득하다. ‘어떤 행위가 칭찬받게 될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인생에서 그 무엇이라도 성취해낼 수있을 것이다.

 

< 5 : 가족 >

 

(124)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고, 스승이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이탁오)

 

(130) 함께 먹는다는 것은 (아마 그래서 식구라는 단어가 생겼겠지만) 감정을 공유하게 만든다. 쉽게 친해지기 위해서는 밥을 같이 먹는 것이 꽤 중요한 일이다. 먹고 산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도 되고, 먹는다는 것 자체가 정신적 이완을 위한 휴식이기 때문에 휴식 시간에 만난다는 홀가분함이 있다.

 

★ 티올(정욱) : 함께 밥을 먹는다. 감정을 나눈다. 나눈 감정도 함께 삼킨다. 돌돌 말린 애정과 근심 어린 걱정들을 하나씩 식탁 위에서 집어 입으로 가져 간다. 꼭꼭 씹어 먹는다. 밥과 함께 나눈 애정으로 한참 배가 부르다. 배도 부르고 마음도 부르고, 한가위도 아닌데 늘 오늘만 같았으면 한다.

 

(130) 인생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쁨을 위해 산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고,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행복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기쁨과 나의 기쁨은 늘 섞여 있었다.

 

(133) (나는) 어떤 것을 보고 그것의 이미지를 연상하거나 지나간 사건들을 떠올리고 그것이 내게 무엇이었나를 물어보고 즐기는 사람이다. 나는 의미를 찾는 사람이고 나의 세계를 즐기는 사람이다.

 

(137) 나는 마음껏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올 때 자신과 한 약속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일하는 시간은 얼마든지 뒤로 배정한다. 일은 언제고 하면 된다.

 

(138) 노는 것은 내게 힘을 주었다. 적어도 내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즐기고 있다는 자부심을 주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 그런 생각이 주는 무기력이 내게 불어넣었던 어두운 불안과 스트레스를 데려가 버리곤 했다.

 

(138) 나는 새벽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데, 이 시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중략) 나는 시간의 불모지를 내게 불하했다. 그리고 가장 귀중한 나만의 시간대로 만들었다.

 

(141) 나는 동해의 바다 냄새를 풍기며 에너지에 차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앞에 선다. 나는 먼 거리를 오느라 파김치가 된 강사가 아니라 삶을 즐기기 위해 떠나온 여행자처럼 싱싱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145) 집은 좋은 곳이다.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정겨운 모습으로 늘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우린 유목민에서 다시 정착민으로 돌아온다.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로부터 아늑하고 따뜻한 공기 속으로 되돌아온다.

 

(147) 친구들에게는 절대로 잘난 척해서도 안 된다. 친구의 성공을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다. 순수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친구의 성공 속에는 늘 그 동안 나는 뭘 했나하는 자신에 대한 문책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 티올(정욱) : 대학 시절 마음에서 우러나온 일에 빠져 1년 동안 행복하게 지낸 적이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교환학생들을 모아 그들에게 매주 다른 한국문화를 체험케 하고 그들의 한국 유학생활 정착을 도왔다. 당시 나를 열성으로 도와준 친구가 있었다. 이름은 문영민이다. 나이는 나보다 한 살이 어렸지만, 우리는 나이를 떠나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이자 좋은 도반이었다. 누구보다 서로가 편했지만, 우리는 단 한번도 서로를 편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항상 경어를 사용했지만 서로 불편해 하지는 않았다. 구름 위를 나는 듯한 1년여 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유학을 갔고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취직을 했다. 그는 의사가 되고 싶어했다. 의학전문대학원을 오랜 기간 준비했다고 한다. 그 뒤 아주 가끔 연락이 되었고, 우린 아주 가끔 만났다. 나의 무엇이 그를 불편하게 했을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가끔 연락을 해도 그와는 이제 연락이 되지 않는다. 내가 그를 불편하게 한 것이 있다면, 혹시 그로 인해 그가 자신을 문책한 적이 있다면 나는 아주 많이 괴로울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그 친구를 기다릴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먼 길을 돌고 돌아왔는지를 묵묵히 들어줄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는 아쉬움과 섭섭함 보다 그의 안부가 더 궁금하지만, 참고 그와 다시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할 날을 언제까지고 기다릴 것이다. 그는 나의 최고의 친구이자 도반이다.

 

(147) 우리는 각자의 짐을 지고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친구들끼리 나눌 수 있는 것은 짐이 아니라 외로움이다. 혼자 그 긴 길을 갈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짐을 각자 지고 함께 가는 것이다. 외로움은 함께 있으면 훨씬 낫다.

 

< 6 : 자연 >

 

(161)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이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삶이다.

 

(161) 왜 변해야 하느냐고? 흐르는 강물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하늘의 구름에게 물어보라. 왜 변해야 하느냐고? 바다의 물결에게 물어보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163) “숲에는 움직이지 않는 나무가 없고, 냇물에는 멈춰선 물결이 없다 (곽박)”

 

(166)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생을 오래된 방식으로 시작하는 것을 보아왔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새로운 시도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하는 것도 수없이 보아왔다.

 

(167) 자라는 방법은 스스로를 죽이고 다시 탄생하는 과정이다. 죽지 못하면 다시 태어남도 없다. 죽음과 삶을 반복하는 것이다. 파괴와 생성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장이다.

 

(174) 날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시간이 쓰일 곳을 마음대로 배분하며, 그 일의 가치가 빛나는 일을 하고, 스스로의 삶을 즐겨라. 삶 자체가 유혹이 되게 하라.

 

(174)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174) 세상을 향해 아주 많은 씨앗을 날려야 한다. (중략) 따라서 일 년에 적어도 책 한 권은 써라. (중략) 자연의 맛은 독특하고 차별적이다. 자신만의 맛과 향기를 가진 품종을 만들어 내라.

 

< 7 : 건강 >

 

(184) 죽음은 생명과 함께 시작된다. 또한 생명은 죽음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이것이 생명의 순환이다.

 

(188) 문명의 본질은 오랫동안 뿌리깊게 자리 잡은 사냥꾼의 습성과 겨우 최근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적 본능 사이의 갈등인 것이다.

 

(189) 문명은 욕망이 과도한 탐욕과 결함을 지닌 불완전한 복제를 시도할 때 제동을 걸어준다.

 

(191) 죽음은 모든 생명이 시작과 더불어 반드시 치러야 할 빚이다. 이것은 어떠한 예외도 없었다. (중략) 생명을 길게 연장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는 순간 순간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199) 마흔은 죽음이 삶과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영적인 나이의 시작이다.

 

(200) ‘죽음이 명함을 남겨놓고간 다음 적절한 때,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서, 참을 수 있을 만한 짧은 통증 속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 것이 좋은 일이다.

 

(201) 아름다운 봄날은 빨리 지나간다. 모두 그리워하고 섭섭해한다. 그러나 가을 또한 곱게 온다. 나이 먹음은 가을을 즐기는 것이다. 그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 8 : 길에서 >

 

(206)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207) 우리가 꿈꾸는 미래의 모든 일 역시 과거만큼 분명한 꿈이다.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비현실이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일 뿐이다. 나는 꿈을 또 다른 현실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중략) 내 말은 미래의 꿈 그 자체가 믿음을 통해 추억만큼 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갇히는 것만큼 미래에 갇힌다. 추억으로서의 역사와 꿈이라는 소설은 둘 다 인생에 중요한 것이다.

 

(209) 미래를 과거로 인식하는 것은 정신적 작업의 하나이다. 나는 나를 정신적 여행자라는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날개 같은 것이다.

 

(209) 가끔 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는데,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에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211) 욕망이 꿈을 만들고 꿈은 믿음에 의해 현실적 개념이 된다. 미래를 현실로 인식하는 능력은 정신적 여행자들이 가지는 힘이다. 그들은 상상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상상과 더불어 그 속에서 산다. 그것이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213) ‘내 앞에 길이 열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네. 그 대신 내 뒤에서 수 많은 길이 닫히는 것을 보았네. 이 역시 삶이 나를 미리 준비된 길로 인도하는 방법이라네. (파커 파머 『루스의 이야기』)’

 

(217) 나의 하루들은 책으로 표현되기도 했지만, 대게는 물처럼 흘러갔다.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고 낭비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지나간 것들 속에 내 인생이 담겨 있다. 나는 그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였다. 이것이 정말 하루하루의 진짜 인생이었다.

 

★ 티올(정욱) : 우리가 돌아본 일상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간극이 존재한다. 일기를 쓰거나 옛 기억을 돌아보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는 실제의 그것을 다소간 과장한다. 현실의 내 모습에 대해 내가 얼마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또 그것이 얼마만큼 과장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답변은 미래의 내 모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것은 마치 지금의 내 모습이 과거의 나의 모든 습관들과 행동들에 대한 결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과 동일하다. 글을 쓰고 기록하는 순간에는 자신을 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나머지의 대부분의 시간은 물처럼 흘러간다. 작가의 말처럼 먹고 마시고 즐기고 생각하고 낭비되면서 그렇게 지나갔다’. 모든 지나간 순간들의 책임자는 바로 나였다. 과거의 내가 질문을 하면 현재의 내가 답변을 해야 한다. 현재의 내가 궁금해 하는 질문은 미래의 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미래의 내가 언젠가는 현재의 나에게 물을 것이다. ‘최선을 다했는지?’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하는 질문과 질타에 대한 답변의 책임은 물론 정작 본인이 궁금한 미래의 모습에 대한 답변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현재의 나는 과거와 미래에 비해 많이 바쁘고, 골치가 아프게 되었다.

 

(220) 내가 다시 살수 있다면 많은 착오를 범하고 싶다. 지금 살았던 것보다 더 어리석게 행동하고 싶다. 사실 인생을 살며 심각한 일이 어디 그렇게 많겠는가? 그러니 더 미친 척 행동하고 싶다. 더 많은 기회를 가질 것이며, 더 많은 여행을 할 것이며, 더 많은 산을 오르고 더 많은 강을 건널 것이다. (어느 여든다섯 살 할머니의 쪽지 중에서)

 

(221) 다른 사람에게 비추어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으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이란 결국 왜곡된 거울에 불과하다. 늘 자신에게 비추어 자신을 발견하려 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중략) ‘나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었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는가?’ 이 질문의 답이 찾아지면 인생은 목표를 가지게 될 것이고, 결국 그 길을 갈 것이니 행복해 질 수밖에 없다.

 

< 9 : , 공간 >

 

(226) 좋아하는 일들이 바로 내 일이 되어 있는 세계 속으로 왔다. 집은 내가 주로 머무는 세상이고, 내 하루는 이 속에서 깨어나고 이 속에서 잠든다.

 

(237) 꽃은 참을 수 없을 때까지 참는다. 참다 참다 참지 못하고 터지는 것이 바로 꽃이다. 민감한 시인들은 그래서 꽃 터지는 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241) 키우려고 한 것 외에는 모두 잡초이다. 이것이 기준이다. 나는 왜 하나의 욕망이 그렇게 중요한지, 동시에 왜 다른 욕망들은 절제할 수 있어야 하는지, 뜨거운 날 잡초를 뽑으면서 생각해보았다.

 

(243) 어떤 경우든 식물은 한 번은 전성기에 이르는 것 같다. 일찍 시작한 놈은 봄, 여름에 빛을 내고, 조금 늦게 시작한 놈은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남아 멋을 부린다. 다 제 때가 있다.

 

(243) 나도 잎만 가지고는 내가 어떤 나무인지 판별하기 어려웠다. 이때부터 나는 스스로를 평범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도 내가 아니다.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인가!

 

(244) 멀리 보고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그 자태가 그리우면 가까이 가서 만져본다. 멀리 두고 그리는 마음은 그리움이고 가까이 두고 만질 수 있는 것은 행복이다. 그리워하고 또 볼 수 있으니 이처럼 다행일 수 없다.

 

(253) 아이들은 커서 집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려고 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세상에서 지쳐 집으로 돌아오려 한다. 숱한 상처들을 치유하고 고달픈 일에서 벗어나 몸을 눕혀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 10 : 학습 >

 

(259) ‘문 밖에서 사유하는 법을 배우시라. 그리하여 진리의 노예가 되지 말고, ‘지혜의 친구가 되시라. (니체)

 

(262)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나는 공부하고 생각하고 책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창조적이어야 했고, 더 열심히 학습해야 했다. 나 이외의 다른 것을 믿을 수 없었다.

 

(263) 나는 읽고 쓰는 것이 의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했으며, 이것이 가장 재미있는 놀이가 되도록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264) 나는 한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자제했다. 읽기 싫으면 읽지 않았다. 그러내 매일 썼다. 매일 쓰는 것은 다행히 아주 즐거운 놀이였다. 나는 어느 책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와 느낌과 생각을 내 일상 속에서 매일 조금씩 찾아내고 표현해보려고 했다.

 

(265) 바쁘다는 것은 지우개와 같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그리움을 지우며 의미를 지우고 생각을 지운다.

 

(265) 우리는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가 죽는다. 한 번도 살기 위해 일을 버린 적이 없다. 놀기 위해 산적도 없다. 그래서 살기 위해 산적이 없는 것이다.

 

(270) 나는 내가 읽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나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의 지식은 나라는 특별한 여과기를 거쳐 새로운 표현법을 얻게 된다.

 

(270) 한 권의 책이 읽힐 때마다 다시 한 권의 책이 독자에 의해 쓰여진다. 책은 그 독자 수만큼의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모든 독자는 자신이 읽은 책의 또 다른 저자이기도 하다.

 

(277) ‘스승을 욕보이는 제자는 바로 영원히 스승을 빛나게 하는 자이다 (니체)

 

(280) ‘미래란 과거와 현재에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서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 받고 있는 시간이다.

 

(283) 출가가 깨달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초심을 지키는 발심의 끊임없는 자기개혁이 구도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략) 깨달음이 하루의 일상으로 쳐들어와 하루를 바꾸어놓지 못하면 실천되지 않은 것이다.

 

(283)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283) ‘새로운 장르의 일상적 삶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약속한 실천적 개혁이고 혁명이었다.

 

< 11 : >

 

(296) 일은 삶과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일이 품삯이어서도 안 되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희생시켜서도 안 된다. (중략) 눈부신 삶을 할게 하는 일, 그 일 때문에 삶을 즐길 수 있는 일, 그것이 위대한 직업이다.

 

(297) 변화는 오직 스스로 시작할 때만 효과적이며 그때에만 비로소 행복한 전환이 이루어진다.

 

(298) 하루를 변화시키지 못하면 나의 두 번째 커리어도 없다. 나는 진심으로 나의 르네상스를 바랐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에서 과감한 전환을 하고 싶었다.

 

(302) 내가 배우는 방법으로 가장 그럴듯한 것이 배운 것을 나의 언어로 정리하여 책을 쓰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 나는 책을 읽고 감동적인 곳을 골라내어 내 방식으로 걸러 재편하는 데 꽤 능숙하다.

 

(303) 처음 해본다는 것은 기회를 선점한다는 것이다. 기회의 선점만큼 강력한 브랜드 전략은 없다.

 

(304) 글을 쓰기 위해서는 늘 읽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정리해야 한다. 정리된 강력한 핵심 개념들을 연결함으로써 미래를 현실적 의미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306) 나는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중략) 타고난 재능과 기질을 이해하고 그 강점을 계발하여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기다움으로 돌아가는 좋은 모색이라고 할 수 있다.

 

(316) 우리는 유일함을 통해 평범한 사람으로부터 비범한 사람으로 자신을 안내할 수 있다.

 

(318) 가능한 꿈을 꾸는 현실주의자, 나는 이것을 희망적 현실주의자라고 부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꿈으로 가는 길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리고 결코 내 앞에 놓은 냉혹한 현실을 망각하지도 않는다.

 

(328) ‘모든 예술가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특별한 예술가이다’ (에릭 길)

 

(332) 강연장을 떠나 그들이 일상 속에서 변화를 실천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하루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 변화는 변화가 아니다.

 

(338) 내 강연의 목적은 그들이 자기 자신이 되어 스스로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중략) 그들이 시작하도록 돕는 것, 이것이 내 비즈니스의 또 다른 목적이다. 이 때 내 비즈니스는 나를 변화시키는 최초의 목적에서부터 다른 사람의 변화를 돕는 비즈니스로 확대된다.

 

(341) 우연한 쏘시개 불꽃

 

(350) 밤의 생각은 지나치게 자유롭고 낮의 생각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나는 새벽의 생각을 좋아한다. 새벽의 생각은 밤의 이상주의가 꿈으로 빚어낸 생각이고, 앞으로 다가올 낮 동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다. 현실 속에서 이루어진 꿈.

 

(353)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문제는 이미 죽어버린 고민이다. 나는 배치하고 연결한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본다. 또는 이것과 저것을 함께 접속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모든 것은 실험이다. 나를 실험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험이고 탐험이다.

 

(354) 자연은 무수히 쏟아내고 선택한다. (중략) 운을 시험하고 필사적 노력을 시험하며, 바다를 향한 그리움을 시험한다. (쭝략) 내 하루들은 바로 그 거북이 새끼들이었다. 어느 하루도 무의미한 하루는 아니었다. 수없이 많은 시도 자체가 삶이기 때문이다.

 

(360)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은 채, 든든한 밥그릇 하나 챙겨두는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그 째째함의 끝을 묻고 싶었다. 새로운 인생을 건설해야 하는 시점에서 여전히 망설이기만 하는 나에게 무엇을 더 기다리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361) 하루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희생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하루 자체를 빛냄으로써 인생 전체를 빛나게 하고 싶었다. 이것이 목적이다. 내겐 좋은 하루 그 자체가 목적이다.

 

 

III. 내가 저자라면

 

√ 비판을 위한 비판이 되어서는 안 되며, 작가의 글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쓰는 글이 되어야 한다.

 

Q) 삶의 의미를 찾으려다가 일상의 반복과 게으름이 어제와 같은 오늘을 보내게 하기도 한다. 무엇 하나 특별할 것이 없는 하루에 다시 하루를 더한다. 모래 사장에 무언가 많은 글을 끄적인 기억이 나는데, 매일 오고 가는 파도에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오늘과 같은 내일을 동반 할 뿐이다. 삶은 평지와 같지 않아서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굽이 굽이진 능선을 닮았다고도 한다.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다고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걷고는 있는 중일까. 그저 최선을 다해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일 것인지, 얼마 걷지 않았는데 잘하고 있는 건지 문득 회의가 든다. 딱 이즈음, 이 만큼의 고비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도 마주하게 될 그 만큼의 언덕, 아니 문턱. 우리는 영웅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 보다는 그들이 실패했던 사례에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Q) 작가는 변화의 과정을 길 위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그런 작가에게 묻고 싶다. 꿈을 좇아 가는 길 위에서 길을 잃은 적은 없는지? 그럴 때 어떻게 했는지. 그의 경험을 좇아 자기 만의 나침반을 들고 길을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어떻게 실패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분명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실패한 경험담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한 에필로그 한 꼭지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A) 내가 저자라면 :

 

스스로에게 당당하기 어려운 날이 있다. 아무도 혼을 내는 사람도 없지만 왠지 주눅이 드는 그런 날이다. 어렸을 때는 잘못된 행동을 하면, 그 순간 그 행동 자체에 대해 지적을 받고 혼이 났다. 그걸로 끝이었다.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나니, 잘못된 행동은 당장은 나에게 지적이 되지 않지만 나에 대한 주변의 평가가 되고, 아주 먼 곳을 돌고 돌아 나의 책임이 되고 굵직한 창이 되어 나의 옆구리를 찌른다. 그 동안의 수 많은 오류의 가능성과 그에 대한 책임을 강요 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는 냉정한 곳이다. 사회인이 되면 잘못된 행동을 스스로 깨닫고 고치기 전까지는 대게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다. 오직 스스로의 행동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질 뿐이다. 조금은 외로운 곳이기도 하다.

 

링컨은 사람의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그의 얼굴과 인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사람의 습관과 행동이 수십 년 동안 켜켜이 쌓이면 주변의 평가는 물론 그 결과물이 자신의 몸에, 그것도 외부에 가장 먼저 드러나는 얼굴에 내려와 고스란히 박힌다니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흔은 나에게 특별한 시기다. 내가 죽었다가 새롭게 다시 태어난 해이기도 하고, 파도를 바라보며 그 물결과 같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한 해이기도 하다. 남자들은 참 넘기 힘들다는 마흔에 나는 우연한 기회를 통해 내 안에 꽃씨를 뿌렸고,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의 꽃씨를 뿌리는 파종꾼이 되었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그들의 마음에 자리 한 불덩이를 자극 시키는 우연한 쏘시개 불꽃이 되었다.

 

주의할 것은 링컨의 표현을 주변의 이목을 의식해 스스로의 행동과 언행을 삼가라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해도 하기도 어려운 나이가 마흔 살이다. 마흔은 자기의 과거 습관들이 실질적인 지배를 받는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치고 싶어도 고치기 어려운 습관들이 온 몸에 붙어있는 그래서 이전의 나와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친구 먹고(?) 편하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기에도 나쁘지 않은 그런 나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마흔은 누구에게나 한 번은 잠시 멈춰야 하는 시기이다.

 

누군가 말하기를 이십 대는 배움의 시기이며, 이 시기에 배운 것을 바탕으로 삼십 대에는 이것을 열정적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 하나를 추가 할 수 있다면, 이 십대는 평생을 두고 쓸 좋은 습관들을 기르고, 이 습관들을 삼십 대에 적극 활용하여 자신을 포함한 주변에 선한 영향을 전파하기 시작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물론 좋은 습관을 들이는 시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하지만 좋은 습관은 들이기가 매우 어렵고, 애써 들인 좋은 습관도 아주 쉽게 무너지기 십상이다. 반면 나쁜 습관은 들이기가 매우 쉬운 반면, 또 한번 들인 나쁜 습관을 고치기는 매우 어렵다. , 삼 십대에 들이지 못한 좋은 습관을 사 십대에 들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마찬가지로 그 시기에 고치지 못한 나쁜 습관을 사십 대에 고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내가 마흔에 익숙했던 모든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고 죽었던 이유다. 나는 마흔에 죽었고, 삼 년 동안 매일 영혼이 깃드는 새벽 시간을 활용해 나를 실험했다. 그리고 삼 년 뒤,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기존에 익숙했던 것과의 결별이 어려운 이유는 이 세상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절실하지 않아서라고 볼 수 있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죽어야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는 느끼지만, 아직 마음으로 반신반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의 삶을 버리지도 못하고 새로운 삶을 맞이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어정쩡하게 살아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아직 다 쓰이지 않은 나무 한 그루다. 키가 큰 나무, 화려하게 쭉 뻗은 나무, 구부정하고 굽은 소나무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게는 그늘을 드리우는 것 말고도 많은 쓰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 무엇인지 내가 걸어야 가야 할 방향의 대중도 모르겠다면 잠시 멈춰야 한다. 눈을 감은 채로 길을 걸을 수는 없다. 다만 길이 어렴풋이라도 길이 보인다면 그 길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그 다음은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한다. 그리고 매일 해야 한다. 나는 읽고 싶은 책이 있으면 읽고, 읽기 싫은 날은 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매일 새벽 두 시간 동안 글은 썼다. 계속 썼다. 일 년이 지났고,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고 다행이 반응이 좋았다.

 

어떤 독자가 물었다. 첫 번째 책의 반응이 좋지 않았어도 1인 기업가를 계속 했을 것인지. 나는 답했다. “첫 번째 책의 반응이 좋아서 나는 더욱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첫 번째 책이 잘 되지 않았어도 저는 계속 지금과 같이 노력했을 거라고 확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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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7 16:25:45 *.14.90.189

"연구원 생활을 시작하고 주말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주중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할애해 연구원 과제를 마무리하고, 주말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충분히 벌어두고자 하지만 매번 주말에는 허덕이기 일쑤다."


정욱씨 북리뷰 감탄하면서 봤어요. 그런데 직장생활하면서 주말은 또 이렇게 보내고 있다니 또 한번 감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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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3 19:32:54 *.5.22.92

놀면서 하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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