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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23일 23시 18분 등록

떠남과 만남

 

구본형(을유문화사)

 

저자에 대해서

구본형선생님에게 여행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이 책을 읽기전부터 궁금했던 점이다. 구본형선생님께서 생전에 남기는 칼럼 중 여행에 대한 칼럼 두 개를 옮겨 본다.

 

, 여행, 그리고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  - 도베, 2002 2월호

여행은 자유로움이다. 사실은 자유로움을 향한 환상이다. 여행은 선술집이다. 그곳에 홀로 앉아 있는 나그네다. 술잔이며, 잔 속에 반쯤 담긴 술이다. 시장 골목 안에 있는 순대국집이고 왁자하게 떠드는 낯선 사람들이다. 떠도는 바랍이며, 그 바람 속의 추억이다. 그래서 여행은 떠나온 고향이고 여인의 뒷모습이다.

나는 2년 전 20년 동안의 직장 생활을 끝내고 1달 반 동안 여행을 떠났다. 남도의 바다를 훑으며 해안과 섬들을 넘나들었다. 배낭을 메고 하루 20킬로미터씩 걸었다. 걸으면서 나는 20년 동안 내 속에 들어와 뿌리를 내린 조직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버리려고 했다.

오랜 조직 생활은 나를 철저한 조직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에 익숙해져있었다. 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성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아파트 주위를 더부룩한 얼굴로 산책할 때 다른 사람들의 눈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안정적으로 주어지는 소득에 안심하고 있었고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닌 인생에 대하여 유한한 책임 밖에 질 수 없었다.

내가 나의 사업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던져 벗어야 할 헌 옷은 바로 이런 것들이었다. 그래서 직장 생활를 시작하기 전에 그리던 그 젊은 방법 그대로 여행을 시작하였다. 여행 중의 메모를 모아 '떠남과 만남'이라는 책을 썼다. 그곳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여행은 자유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어 있는 질서이다.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돌아온다.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어 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 올 수 있기 때문에 여행은 또한 비장하지 않다.

여행처럼 설레이는 것은 없다. 지도처럼 매혹적인 것은 없다. 여행은 마음 속의 더 먼 변경을 찾아 다시 떠나는 것이다. 지도를 펼쳐 놓고 가장 작은 글씨를 손으로 더듬어 보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내가 있을 것이다. 그때 그 모습으로 혹은 아주 순수한 하나의 꿈으로 그곳에 그렇게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여행은 낯선 여인처럼

삶은
아름다운 여인처럼
자주 그 옷차림을 바꾸지만
그 몸은 언제나 같다
여행은 낯선 여인처럼
가는 곳마다
다른 유혹이지만
떠나온 사람의 마음은 늘 같다
탱탱한 삶에 대한 사랑

여행

노르웨이에서 만난 한 여행가이드는 
여행이 중독이라고 하고
함부르크의 술 좋아하는 그 사람은
여행이란 그저 생활의 탈출이라며
아침부터
밤같이 검은 맥주의 거품을 핥는다
크로아티아에서 그는 시가와 와인에 절어
며칠을 살고 싶어했다
뒷목까지 치오르는 배낭을 매고
그저 발의 본능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수도승같은 얼굴로
길 위를 걷는 저 남자와 저 여자

그녀들에게 
여행은 삶의 윤기와 향기
여러 나라의 다른 바람을 타고
머리카락과 치마가 날릴 때
도망친 연인들처럼
낯선 땅의
한 번도 본적이 없는 풍광에 소리치고
별밤을 즐긴다

사람들은 생활에 물려 길을 나서고
자유에 지쳐 귀환한다
집이 거기에 있다는 것으로
이미 푸근한 침대에
다시 이불을 같이 하고
그렇게 일상은 다시
매일 뜨는 해처럼 살아질 힘을 얻는다

 

저자에게 여행이란 익숙한 것을 떨쳐버리면서 먼 곳에서 내 가슴 속에 잊혀졌던 작은 조각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을 해 본다.

 

마음을 무찔러 온 글귀

 

P11

여행은 자유이다. 그리고 일상은 우리가 매여 있는 질서이다. 질서에 지치면 자유를 찾아 떠나고 자유에 지치면 다시 질서로 되 돌아온다.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매여 있는 우리에게 여행은 늘 매력적인 것이며, 되돌아올 수 있기 때문에 비장하지 않다.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매력적인 것 같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되돌아 갈 수 있는 일상이 있기에 여행이 더욱 더 편안해 지는 것 같다.

 

P12

여행은 그러나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담아 올 수 있겠는가?

손에 잡은 것을 놓아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비워야 담을 수 있다. 버리고 오는 것 만으로 우리는 여행에서 얻는 것이 있다.

 

P13

나는 여행을 통해 20년간 나를 지배해온 관습을 버리려고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관습일까 편견일까?

 

P23

기차는 늘 시간 속을 달린다. 몇 년 전 어느 까페로 나를 데리고 가기도 하고 느닷없이 어느 대화로 나를 끌어들이기도 한다. 혹은 부끄러움 속으로 혹은 아련한 그리움 곁으로 데리고 간다. 그런가 하면 나의 장례식으로 나를 데리고 가기도 한다. 

어떤 기차가 이런 것을까? 기차 속에 앉은 상상력이 나를 그 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일까?

 

P24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할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진지함을 버릴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넘지 말 일이다.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이와 같은 결심을 하고 싶다. 내 인생에 충실한 삶을 살고 싶다. 시간에 쫓기지 삶을 살고 싶다. 소중한 것을 놓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을 원 없이 하는 삶을 살고 싶다.

 

P25-1

나는 얼간이가 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인생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그래서 인생이 전부 경제와 경영일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P25-2

나를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쓸 예정이다. 햇빛이 들과 밭에 내리듯이. 산과 강과 바다에 쾅쾅 쏟아지듯이. 거기에 무슨 효율이 있는가?

나를 위한 최고의 사치이다. 나를 위해 시간을 쓰는 것. 그것이 요샌 나를 위한 최고의 배려이자사치라는 생각이 든다.

 

P27-1

낮에 탁주 한 뚝배기 걸치고 이 길의 강둑을 따라 걷다 보면 내가 강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알 수있다.

어떤 기분일까? 약간은 취기가 오른 기분이 강과 나를 하나로 만드는 듯한 기분일까? 

 

P27-2

봄이면 으레 그러려니 했다. 마흔이 되기까지 매화란 그저 그림책 속의 그거려니 했다.

마흔은 그렇게 그 동안 몰랐던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되고 못 봤던 것들을 보고 되고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혜안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P29

게걸스럽고 탐욕스러운 사람이 되지는 않으리라. 그런 사람은 섬진강에 오지 마라. 슬픈 사람만 와라. 자기를 잃은 사람만 와라. 저 푸른 강물에 자기를 두고 간 사람만 와라. 다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만 와라

여행도 품격이 있다. 어울리는 사람만이 여행의 자격이 있다.

 

P33

녹두빈대떡은 녹두로 만들어야 제맛이 난다. 이 말처럼 쉬운 말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쉬운 말이 여러가지 이유로 지켜지지 않은 사회에 살고 있다.

 

P36

후손치고 선조의 덕을 보지 않는 것들이 없다. 죽은 껍데기 위에 새로운 생명이 자란다.

 

P40

빠르게 걸으면 나이를 알게 되고 천천히 걸으면 주위를 감상 할 수 있다. 그러나 속도를 일단 자동차 같은 기계에게 위임해주면 나이도 경관도 살필 수 없게 된다. 걷는 것보다 휠씬 빨리 갈 수는 있지만 그렇게 본 것들은 그저 스쳐가는 경관들이다. 폐가 열리는 것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쿵쾅거림도 느낄 수 없다. 또한 천천히 지나면 동백나무의 살갗을 만져볼 수도 없고, 불현듯 코끝에 와 닿는 달콤한 꽃향기를 맡을 수도 없다. 풍광도 생각도 그저 스크린처럼 지나갈 뿐이다.

여행의 참 맛은 느끼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느껴보는 것이 정말 여행의 맛이란 생각이 든다.

 

P41

산이 늘 그렇듯 일단 속으로 들면 길이 내어 품어준다. 우리 한국 사람들 같다. 우리 한국 사람들같다. 겉으로는 폐쇄적이고 무뚝뚝하고 말 걸기도 어렵게 보이지만 서로 친해지면 속을 내줄 것처럼 정이 뚝뚝 흐른다.

 

 

P42-1

옛날같지 않은 정신으로 바삐만 사는 사람들의 영혼이 그 반짝거림으로 구해질지 의심스럽다.

 

P41-2

사람들이 늘 잊고 있는 것은, 변화는 변화하지 않는 것들과의 균형이라는 점이다. 걸어보면 금방알게 된다. 한 다리가 움직이기 위해서 다른 한 다리는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 걸어서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간다는 것은 두 다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늘 잊고 지낸다.

 

P46

바람만이 좁은 거리를 휩쓸고 지난다. 초봄의 추위는 겨울과 그 맛이 다르다. 사람을 어쩔 줄 모르게 한다. 봄은 늘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며 다가온다.

봄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내 곁에 와 있는 경우가 많다.

 

P49

우리의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우리는 별인 것이다. 내가 해가 아니고 달이 아닌 것이 좋다. 그것이 없으면 세상이 망하는 그런 엄청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행복하다. 다른 사람의 삶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임이 좋다. 별처럼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또 별처럼 빛나며 꿈꾸는 사람임이 좋다.

때론 아주 가끔은 해나 달이고 싶을 때도 있긴 하다.

 

P51      

사람이 모여 조직을 이루고 살면, 돈과 권력을 향한 끝없는 다툼이 있게 마련이다. “돈과 권력은 너무나 분명하게 좋은 것이므로 아무도 대놓고 좋다고 하지 않는다.”는 말은 맞다. 밝지 않은 사람들만이 모두 아는 일을 유별난 것으로 떠벌린다.

 

P53

그러나 다시 찾아온 외로움도 공부이고, 유혹도 수양에 도움이 된다. 사람 사는 곳에 어찌 진공 속의 결벽만이 득도이겠는가.

P57

매화는 여러 덕성을 가지고 있어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이 되었다고 한다. 우선 나무가 함부로 번성하지 않는다. 매화는 희귀하기 때문에 귀하고, 다른 꽃들이 피지 않는 추운 시절에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에 고고하다. 둘째는 늙은 모습이 아름답다. 늙어서 추해지지 않는 것은 모두가 바라는 바다. 노역에 지지 않고 작은 일에 역정을 내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오죽 좋으랴. 나이 먹은 매화나무는 살지지 않고 말라 있다. 절제하고 자제한 모습이 보인다. 또 매화는 꽃봉오리가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꽃과 여인이 같은 개념이니 그 다소곳하고 조신한 모양 때문에 찬사를 받았나 보다.

매화에 대해서 사실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얼마전 중국의 국화가 매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이 글을 접하게 되니 조금 더 매화에 관심이 간다. 주위에서 매화를 찾아보고 유심히 한번 봐야겠다.

 

P62-1

나는 사람들이 복권을 사듯 살아가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푼돈을 들여 복권을 사면서 허망한 기대 속에서, 실제로는 복권의 당첨금보다 더 많은 돈을 쪼개며 평생을 궁핍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위험부담을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잃어도 좋은 푼돈만 투자했다. 위대한 하루가 없이는 위대한 인생도 없건만 하루하루는 잃어도 아까울 것 없는 푼돈처럼 낭비되었다.

결국 인생은 하루하루가 모여 이뤄지는 것이다. 오늘 하루가 모여 내 인생을 만든다. 오늘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P59-1

매화는 그 자태보다 더욱 귀한 것이 향기이기 때문이다. 매화의 향기는 그러나 코로 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귀로 듣는 향기이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마음이 잔잔해져야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귀로 듣는 매화향기, 다른 어떤 시보다 시적인 표현인 것 같다.

 

P59-2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향기가 후각적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마음의 흐름에 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경계를 벗어난다. 그래서 내면을 닦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내면적이다. 본질을 닦음으로써 타고난 자기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사람에겐 향기가 난다. 그 향기는 후각적인 것보다는 느끼는 향기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향기의 종류와 깊이가 정해진다.

 

P64

경영학은 유혹이라는 싱싱한 단어를 죽은 단어, 즉 마케팅이라고 불러왔다. 마케팅은 유혹이다. 달콤해야 하고, 향기로워야 하며, 엄청난 새로움에 대한 약속을 흘려야 한다. 유혹은 올가미고 덫이다.

유혹에 다른 이름은 설득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P65-1

시류(時流)라는 것이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시류에 편승한다. 스스로 자기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옳다고 말하지만, 시류를 어기기 어려운 것이 또한 인간이다.

때론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편할 때가 사실 많다. 그래서 귀찮음과 고민하고 싶지 않을 때 시류에 편승하고는 한다.

 

P65-2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휴식을 창조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휴식을 게으름과 소비로 인식한다.

이상한 일이다. 왜 휴식에 이렇게 인색한 것일까? 아마도 그동안 경제개발 과정에서의 조급함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조금씩 우리사회에서도 휴식에 대해서 조금씩 관점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P65-3

서양인들은 휴가가 길다. 한번 휴가를 내면 보통 몇 주일씩 놀고 쉰다. 그들은 고부가가치를 가진경제의 톱니바퀴고 우리는 저부가가치 경제의 톱니바퀴다. 그들의 톱니바퀴가 천천히 돌아도 우리의 톱니바퀴는 허벌나게 빨리돈다. 이것이 경제 구조의 차이다.

허벌나게란 표현이 재미있다. 일부로 강조하기 위해서 쓴 표현일까?.

 

P70

인류의 역사가 그 변천의 기록이듯, 인생은 개인의 변천사다. 굽이굽이 후회가 있고 깨달음이 있다.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는 숨막히는 즐거움이 있고, 너무나 부끄러워 잊고 싶은 순간이 있다. 변화가 두렵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 수 있겠는가?

지난 인생에서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인생의 한 조각들이 있다. 그러나 그 순간들이 있어서 변화의 순간과 도전을 결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내 인생의 한 순간 한순간을 모두 사랑하고 싶다. 어느 것 하나 내 삶이 도움되지 않은 것이 없다.

 

P72

동복댐이 만들어진 후 적벽은 자유롭게 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말로만 들어왔던 적벽, 언제가는 꼭 가보리라

 

P74-1

저기 저 적벽의 동쪽 위로 달이 점점 높이 떠올라 이윽고 중천에 하얗게 머물며 호수에 비친 제얼굴을 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적벽의 그림자도 호수에 제 모습을 비추어보고 스스로 그 아름다움에 취하게 될 것이다.

적벽에 아름다움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하다.

P74-2

경치의 정점에 있기 위해서는 알맞은 때에 그곳에 있어야 한다. 어느 곳이든 가장 자기다울 때, 바로 그때 그곳에 있어야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이곳은 보름달밤에 와야 한다. 그래야 그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다.

보름달이 떠오른 날 밤 적벽에 꼭 가고 싶다.

 

P76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싶으면 두륜산 대흥사로 가보라

얼마나 아름답길래 이러실까? 궁금하다.

 

P78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당집]자조 自嘲라는 시가 있다.

대저 인생은 나이가 귀한 것이니

이제사 지난날의 행동이 후회된다.

하늘에 닿는 바닷물을 어떻게 쏟아야

산승의 판사 이름을 깨끗이 씻을꼬

노구를 이끌고 나라를 구한 것이 어찌 후회와 반성이 따를 일이겠는가? 그러나 그는 나이가 귀한줄 알고 있고, 그 나이에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다. 다만 낫다고 하는 것이 속인의 기준을 떠나 있었을 뿐이다.

 

P81

대사는 세속의 국난을 눈감을 수 없어 의승을 이끌고 산에서 나왔다. 선조가 관직을 제수했으나이를 제자에게 돌리고 산으로 들어가 산이 되어 살았다. 그러나 못내 세속의 지위를 받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것으로 후세의 승려가 세속의 명리를 따르게 될까 봐 경계하고 또 경계하였다.

산으로 들어가 산이 되어 살았다. 스스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는 것은 욕심없는 삶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런 사회의 큰 귀감이 되는 인물들 요새에는 안 보이는 것 같다.

 

P82

서산대사의 선교관의 핵심은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고 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선교에 대한 이와 같은 정의는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P83

먼 시간은 먼 과거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먼 미래이기도 하다. 먼 과거를 향한 시간과 먼미래를 향한 시간이 각각 원의 둘레를 따라 거꾸로 흐르다가 먼 어딘가에서 서로 만나게 된다. 그곳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이 사라지는 그곳에 혹시 나지 않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대사는 어떤 경계를 당하여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을 나지 않음이라 하고, 나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며, 무념의 상태를 해탈이라 한다.”고 했다.

불교 사상의 오묘함과 심오함은 몇 번을 읽고 사유해도 쉽게 와 닿지 않다가 어디 순간 머리를 띵하게 치면서 아~~ 이런 뜻이었나 싶을 때가 있다.

 

P87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

유명한 시이다. 다시 한번 접해서 읽고 또 읽어보아도 놀라운 성찰의 시이다.

 

P88

우리가 더 나아짐으로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어느 날 깨달음으로 예전과 다른 사람으로변신한다.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정진이다. 역시 [선가귀감]에 나오는 말을 인용한다.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으니,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걸고 한번 뚫어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것이다.

통쾌한 말이다. 모름지기 달라지려는 사람은 단 하나의 일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용기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정말 지금 목숨을 걸고 있는가?

 

P90

그들은 스스로 조신하게 자제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동백꽃은 꽃잎이 완전히 벌어지지 않는다.금빛 수술들이 하나의 기둥을 이루듯 화심에 박혀 있지만 꽃잎이 뒤로 젖혀질 만큼 활짝 벌어지지 않는다. 반쯤 벌어져 있는 상태에서 장렬하게 목이 꺾여 꽃봉오리 전체가 낙화한다. 비장하다.

동백꽃에 대한 아름다운 서사이다. 꽃이 이리 아름다웠던가

 

P96

자연만큼 변화무상한 것은 없다. 자연은 곧 생명이고 생명은 곧 변화다.

 

P107

남도의 봄은 동백과 바람이 말해준다. 바람은 몸을 날려버릴 것 같이 거세게 불다 칼날처럼 품으로 파고든다. 그러나 하루가채 지나기도 전에 부드럽기 그지없는 미풍으로 바뀌기도 한다.

 

P110-1

춥고 어두운 작업장을 떠나기 위해 벗어 놓은 배낭을 둘어 메었다. 땀에 젖은 속옷이 배낭에 눌려살에 닿으니 섬뜩하다. 땀을 흘린 후 잠시 쉬었다 벗어 놓은 배낭을 다시 멜 때마다 겪는 일이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하는, 좀 더 쉬고 싶은 사람들의 가벼운 저항이려니 생각한다.

 

P110-2

하고 있는 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미래가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하나의 일을 아직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방황이다. 어떤 일에 깨달음을 얻어 밝아지면 자신이 곧 그 일의 미래라는 것을 알게된다. 어떤 일을 하자 잘하려면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과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더욱이 천업이라 믿고 하나의 일에 평생을 매달려야 한다.

 

P115

보리밭에 바람이 지나는 모습을 보지 않고 봄이 왔다고 하지마라. 따가운 햇살에 뭉클뭉클 살아나는 붉은 흙들의 건겅한 발기를 보지 못하고 봄이 왔다고 하지마라.

 

P117

여기 있는 나무들 중에 아주 오래된 놈들은 충무공이 아침에 일어나 해변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총무공의 시신이 배에 실려오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많은 장졸이 통곡하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고, 무덤이 파이고 관이 잠시 안치되는 것 또한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태연하게 서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때의 정황을 이야기해줄 만큼 우리는 아직 친해지지 않은 모양이다.

나무를 보면 이제 구본형선생님이 생각난다.

 

P120

못나게 살지 마라. 아들을 군대에 보내는 것을 마음 아파하지 마라. 군대도 좋은 배움터이다. 충무공은 싸움터에서 아들을 잃었다. 힘이 강한 자에게 무작정 기대고 아첨하지 마라. 명나라 진린은 거만하고 무례했지만 충무공을 알고부터 진심으로 탄복하고 마음으로 따랐다.

 

P121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마라. 충무공은 싸움터에서도 하루가 지나는 것을 무심코 넘기지 않았다. 그하루를 기록하여 그날이 그날로서 존재함을 잊지 않았다. 일이 닥쳐서야 어쩔 줄 몰라 하다 모욕을 당하는 일만큼은 피해라. 충무공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준비하였다. 거북선을 만들고 선박을 축조한 것은 그가 전장에서 용감히 싸우다 죽는 것만을 최선으로 아는 일개 무장이 아니라 미래를 스스로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개척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구본형선생님의 충무공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이 느껴진다. 전쟁터에서는 어느 곳보다 하루하루가 중요하다. 그 하루하루가 전쟁의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 전쟁터에선 그때 그날 하루에 꼭 해야 할일이 있다. 그런데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닐까? 오늘 하루 하루가 모여 인생을 결정한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일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

 

P122

어둠이 깔리고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혼자 있다는 사실이 싫어졌다. 혼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와 되는 대로 수염을 기르고 배낭 하나로 떠돌기를 바랐는데, 지금 이 방안으로 찾아 드는 외로움은 무엇인가?

외로움은 평생 인생의 동반자인 것 같다. 외로움이 싫어 사람을 만나고 혼자 있고 싶어서 고독을 찾고 그러면 다시 또 외로움이 찾아 들고 반복되는 것 같다.

 

P123-1

만일 참으로 다시 돌아갈 곳이 없이 떠도는 나그네라면 그처럼 외롭고 지친 인생은 없을 것이다.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다 함께 있게 되면 작은 일로도 서로 다툰다. 그렇게 얼고 녹고 다시 얼고 녹으면서 마침 내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혹은 그녀가 또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이며 질투이며 욕설이며 상처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루함이며 떠남이며 귀환이며 눈물이다. 누구도 사랑이라는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이내믹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보라. 사랑만큼 환장하게 못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 그릇된 사랑도 있고 인고의 사랑도 있다. 그것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또 있겠는가.

사람은 사랑을 하면서 살아가고 그 사랑은 그에 따른 인내와 배려가 따라야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원래 혼자이다. 그래서 외롭다. 그런데 외롭다보니 누군가늘 만난다. 그 누군가를 내 속으로 받아드리는 데에는 그 만큼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P123-2

신은 여자를 만들 때 무척 고심한 것 같다. 꽃의 아름다움, 새의 노랫소리, 일곱가지 무지개색, 미풍의 부드러움, 파도의 웃음, 양의 온순한 성질을 짜내어 여자를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정도로만 만들어 놓았다면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일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신은 짓궂게도 다시 여자의 체내에 여우의 교활함, 구름의 고집, 소나기의 변덕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남자로 하여금 여자를 아내로 맞게 했다.

신은 여자를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여자만 이렇게 만든것일까? 아니 오히려 서로를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도록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닐까?

 

P129

떠나올 때 나는 마량을 마음에 두었다. 지도 속에서 그 이름을 보았을 때 마냥 가슴이 뛰었다. 마량은 강진군의 가장 남쪽이다. 강진은 햇빛이 많아 밝다. 그곳에서도 가장 남쪽이니 오죽 밝으랴. 나이가 들면 밝은 것이 좋아지는 모양이다.

그런 것이 여행을 준비하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여행은 가서도 좋지만 준비하면서도 즐겁다. 갈수록 햇빛이 좋아진다. 건강에도 햇빛을 많이 쪼이는 것이 좋다.

 

P135

산다는 것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음이며 미련이며 우유부단함이다. 그러고는 나중에 그것을 후회하고 그것이 차마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인생은 후회이 연속이다. 그때 왜 그렇을까 후회와 아쉬움의 결합이다. 그러나 또 그 아쉬움을 떨쳐내고 오늘을 사는 것이 인생이다.

 

P139

동무란 말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들은 친구를 그렇게 불렀다. 언어도이데올로기에 따라 변한다. 투명한 단어에 색칠을 하고 그 색깔에 따라 가려 쓴다. 동백이 웃을 일이다.초록빛 잎과 붉은 꽃잎을 가진 동백나무 하나가 아군도 되고 적군도 된다. 인간의 어리석음에 끝이 없다.

언어를 쓰는 것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나보다.

 

P145

혼자 모는 작은 트럭이 태워줄 확률은 70퍼센트에 가깝다. 털털한 아저씨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낯선 사람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더 태운다고 해서 무드가 깨질 리도 없다. 다음은 봉고류의 승합차이다. 우선 적어도 한두 자리는 비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탑승자 유무를 관찰할 필요가 없다. 승합차가 나를 태워줄 확률은 3-40퍼센트 정도 된다. 물론 어떤 길인가에 따라 확률은 달라진다.

아저씨들이 때론 정겨울 때가 있다보다.

 

P146

자기가 한 일에 즐거워하고 그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다. 실속은 하나도 없지만 실속이 뭐 그리 중요한가. 자신이 즐거운 것보다 더 훌륭한 실속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자기가 한 일이 즐겁다면 행복하고 부러운 사람이다. 실속은 그 다음 문제가 아닐까 싶다.

 

P148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글귀도 같이 있다. 이 동상을 볼 때마다 아직도 우리가 앓고 있고 있는 사상적 질환을 떠올리고 끔찍한 심정이 된다. 늘 속이 쓰린 사람은 24시간 자기의 위만 생각하듯이 사상적 질환에 걸려 있는 정치가는 정치적 생명이 위협받을 때마다 언제나 공산당과 빨갱이 그리고 현존하는 남북의 긴장 관계와 이 소년의 죽음에 연상되는 잔인함을 걸고 넘어진다. 그래서 이 소년은 죽어서도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여기에 이렇게 서 있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을까?

이제는 그만 끝내야 할 때인데 아직도 여전한거 같다. 모습만 바뀌었을 뿐 여기저기 이승복 어린이 투성이다. 제발 그만 했으면 좋겠다.

 

P149

소주 한 병으로 모자랄 것 같더니, 반병쯤 비우자 더 이상 생각이 없었다. 친구들 이름이 하나씩생각난다.

친구란 나이가 먹을수록 중요한 것 같다. 어려울 때마다 즐거울 때마다 슬플 때 마다 생각나고 나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 같다.

 

P159

이별의 아픔을 가진 사람은 천관산에 와 바다를 보았으면 한다. 바다 너머 그리움을 보라. 인생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도 이곳에 와서 바다를 보았으면 한다. 이곳은 그리움의 산이다.

 

P160

연대암 아래 억새밭에서 바다를 보다 가슴이 아프면 뒤로 돌아 천관산의 바위들을 볼 일이다. 아주 많은 바위들이 누워 있거나 잘난 듯이 서 있다. 다른 바위에 기대 있기도 하고 혹은 숨어있기도 하다. 모양을 이루어 이름이 붙어 있는 바위가 있는가 하면 자유롭게 널브러져 있는 바위 그 자체인 바위도 있다. 바위 하나가 그대로 산을 이루는 북한산의 인수봉이나 노적봉같이 기대하지 않으면서 고만고만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그대 역시 이 바위들 중 하나이다. 초라하다고 탓하지 마라. 그대가 없으면 인생도 없다.

하나하나의 바위가 모여 산을 이룬다. 의미 없는 바위 없고 쓸모 없는 바위 없다. 모든 바위가 모여야 산을 이룰 수 있다.

 

P162

숨겨놓고 혼자 즐긴다는 의미를 아는가? 벽장에 숨겨놓은 꿀단지여도 좋고 바쁜 날 잠시 겨를을내어 찾아가는 찻집이어도 좋다. 혹은 서가에 꽃혀 있는 소년 시절의 감명 깊었던 책 한 권이어도 좋다. 마담이 괜찮은 술집이어도 좋다. 아주 어릴 적 왠지 모르게 울고 싶을 때, 저녁이 되어 어머니가 찾아 나설 때까지 숨어 있던 자기만이 아는 작은 비밀장소처럼 그런 치유의 은밀한 장소와 시간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는가?  

은밀한 자신만의 비밀은 왠지 마음을 부자로 만든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 그것 만으로도 부자가 되는 듯한 느낌이다.

 

P163

벚꽃은 화사한 화장을 하고 거리를 걷는 여인들 같다. 그러나 동백은 거리의 꽃이 아니다. 동백은숲속의 꽃이다. 숲속의 신비를 담고 있는 기품 있는 꽃이다. 20-30년만 돼도 보기 좋은 발랄한 나무가 아니라 오래오래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운 나무이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아내처럼.

 

P168

우리의 마음도 같다. 때로는 죽어 있고 때로는 살아 있다. 어디에 평상심이 있겠는가? 아직 팔팔한 나이라 때로는 쓸쓸해 한다.

 

P169

적어도 밥을 먹어야 할 시간에 굶는 사람이나 생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이 경제의 의미이다. 한 사람이 밥을 먹고 있다면 또 다른 사람도 밥을 먹을 권리가 있다. 이것이 평등이다. 평등만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음을 유쾌하게 만드는 것이 없다.

세상에 가장 기본적인 이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않는다.

 

P172

시작할 때와 같은 초심을 견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조금 익숙해지면 타성이 붙게 되는데, 그러면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된다. 이때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에서 이것을 발심(發心)이라고 부른다. 발심은 초심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옮은 말이다. 개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혁이 진부해질 때 원래의 개혁으로 되돌아가기가 더 어려운 것과 같다. 인간의 습성이 고려되지 않은 개혁과 혁명은 허구이다. 그것은 학살이거나 기만이거나 지나친 망상이다.

 

P179

한국전쟁때 오대산 성원사는 공비토벌작전의 일환으로 불태우게 되어 있었다. 당시 75세였던 한암은 불을 놓을 테면 놓아라. 나는 예서 그대로 죽겠다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글서 상원사는 오대산에서 전란 중에 불타지 않은 유일한 절이 되었다.

대단하신 분인것 같다. 요새와 같은 혼란에 이런 사회의 큰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다.

 

P184

대웅전옆 명부전에 그려놓은 10대 지옥에 대한 그림과 해설이 재미있다. 사람이 죽으면 우선 전생의 죄업을 낱낱이 비추는 업경대 앞에 선 다음 업보에 상응하는 지옥에 들어간다.

무섭다. 그리고 선조들의 지혜는 대단하다. 오늘날에 죄악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고 경고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기야 이런 경고에도 아무렇지 않게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P188

전라도 사람들은 홍어를 최고로 친다. 잔칫집에 홍어가 빠지면 훌륭한 잔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역마다 잔칫상에 올라가야 하는 음식의 차이가 있는 것이 때론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다. 그것이 곧 문화인 듯싶다.

 

P189

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 방법은 그 나라의 가장 우수한 인재를 끌어 모으는 방법으로는 적당치 않다. 지혜롭고 뜻 있는 훌륭한 사람이 어찌 저 아수라장을 거쳐 선량이 되고자 하겠는가? 피곤한 일이다.

민주주의의 장점이자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공평하게 기회를 부여하고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는 사람을 뽑고자 했으나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장벽이 되었고 모순이 발생하는 프로세스가 되어 버렸다. 인류는 다시 한번 다음 사회 체계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 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P190

관산에서 젊은 처녀 몇 명이 탔다. 검게 그을리고 주름이 깊은 부모들과 달리 그네들은 얼굴이 희고 화사하다. 그들은 부모들이 내린 곳에서 타서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인생이라는 같은 버스를 타도 다른 시간대에 다른 이야기를 하며 다른 곳으로 간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른 차원의 삶을 산다.

 

P197-1

위대한 정신은 검소하며 형식에 매이지 않는다. 나는 보길도에 있는 고산 유적을 찾아 보는데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았다. 보길도는 고산이 없어도 이미 충분히 아름다운 곳이다.

 

P197-2

그가 그린 자신의 얼굴은 외모가 아닐 것이다. 그의 마음일 것이다. 분노일까?

 

P200

그는 관념적인 조선의 회화 속에 현실을 담아내었다. 신선과 도사, 중국풍의 동자 머리, 남양의 물소 대신 조선 여인이 등장하고 조선의 소가 밭을 가는 모습을 그렸다. 그는 조선 중기와 후기 사이의 과도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것이 파격, 혁명으로 불리우는 시기가 있다. 무엇이 파격을 일상적인 것으로 만드는가? 그렇게 보면 당연한 것은 없고 상식도 바뀔 수 있는 것이다.

 

P205

1년 중 이렇게 맑은 날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4, 맑음, 한라산 허리의 구름, 반짝이는 바다, 환함, 바다 위에서 배가 만들어낸 하얀 자국, 해안에 와 닿는 바다의 한숨, 하얀 포말, 둥글고 예쁜 차돌, 하염없는 태만, 시간의 정지, 할머니와 나눈 쓸쓸한 대화, 바닷바람 속에서 마신 대낮의 맥주, 아쉬운 일몰, 푸른기가 살이 있는 해지 뒤의 하늘, 섬과 산들의 실루엣, 어두워지는 시간의 추이, 그때 그 어둠의 농도, 가끔 지나가는 차의 불빛, 적당한 피곤, 어두운 길에서 차를 태워준 작은 트럭 운전수의 친절, 여행이 줄 수 있는 기대 요소들이 적절히 배합된 하루였다.

여행이 주는 즐거움, 일상과는 다른 하루가 선사하는 선물들이 아닐까

 

P206

길은 어려움에 처한 사림이 만든다. 파도는 바다가 숨을 쉰다는 증거다, 밀려나가는 바다지만 파도는 바위를 두고 가지 않는다. 떠나갔다가도 다시 돌아와 바위를 어루만져 준다. 그리고 조금씩 멀어져간다.

바다와 바위는 사랑하는 사이인 것 같다. 그러나 가까이 있으면서도 함께할 수 없는 그런 사이인가보다. 그러니 더욱 애뜻하다. 잠깐 있는 순간이라도 서로를 보듬는다.

 

P207

그러면 이놈들은 지그시 눈을 감고 실컷 온수욕을 즐기다 밤에 다시 차가운 바닷물이 들어오면 그때 눈을 뜰 것이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 그들은 깨서 별을 보며 분주히 돌아다닐 것이다.

 

P208-1

걷는 것은 노는 것이다. 앉아서 쉬는 것 또한 노는 것이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으므로 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롭다, 저 구름처럼 자유롭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인, 그것은 삶에서 나를 구속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이다.

 

P208-2

하나는 파도가 싣고 오는 바다 냄새를 흠뻑 들이마시는 것이다. 바다의 체취는 바람에 실려 온다.그 속에는 미역, , 파래, 톳 같은 것들의 싱싱함이 담겨 있다. 또 하나의 방법은 지금처럼 눈을 덮고 누워 손가락을 조금씩 꼬물거려 갯돌들을 더듬어보는 것이다.

 

P210

아이들이 탄 버스는 늘 경쾌하다. 계집아이들이 까르르 웃는 모습, 사내아이들이 짓궂게 장난 치는 모습이 스치는 차장을 통해서도 금방 감지된다. 아이들은 인생을 어떻게 사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서 잊어버린다. 아이들처럼 사는 어른은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조금 더 불행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처럼 살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것 같다.

 

P211

가만히 놓아두면 왔다가 그냥 간다. 소년시절의 한 장면, 딸 아이의 어떤 표정, 아직 지워지지 않은 하루의 한 시점….. 스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지나간다. 다른 우주적 친교를 위해 마음을 열어놓은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는가! 티베트의 성자이자 시인인 밀라레파의 시구 하나가 귓가에 머문다.

하루하루 즐거운 시간, 순간을 사진을 찍듯 붙잡아서 밀봉해 놓고 싶다.

 

P218

천하에는 두 가지 커다란 기준이 있다. 하나는 시비의 기준이요, 또 하나는 이해의 기준이다. 이 두가지 큰 기준에서 네 종류의 큰 등급이 생기게 된다. 옳은 것을 지켜서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등급이다. 그 다음은 옮은 것을 지켜서 해를 받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나쁜 것을 쫓아 이익을 얻는 것이며, 가장 낮은 등급은 나쁜 것을 좇아 해를 받는 것이다.

 

P226

이런 집단을 해상무역에 투입 시켜 해상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은 장보고가 대단한 개척자였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그는 당시 사회의 전통적인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었다.

 

P229

일단 정치에 관여하게 되면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자기다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 자기다운 일을 함으로써 명성과 부와 힘을 가지게 되었던 사람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변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역설적으로 정치에 입문함으로써 대개는 그 힘을 잃게 된다. 훌륭한 장군은 목숨을 잃고, 놀라운 재간과 뚝심으로 부를 일구어낸 부자는 멍청이가 되고, 학자는 그 명예를 잃게 된다. 자기다움을 상실함으로써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정치를 멀리하면 우린 비열하고 정말 멍청한 이들에게 지배를 받게 된다.

 

P230

바람이 자시의 힘을 과시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우선 나무를 흔드는 것이다. 온갖 잎들을 함께 흔들어 롤러코스터를 타는 사람들처럼 소리를 지르게 한다. 또 하나는 바다에 바짝 다가가 작은 물결의 뒤를 힘껏 밀어붙이는 법이다.

 

P236

심심한 모양이다. 심심하다는 것은 자기 속에 데리고 놀 자기가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늘 밖에서친구가 될 만한 것을 찾는다.

 

P237

변화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이 왜 피어나고 또 왜 피어나고 또 왜 갑자기 그 활력을 잃게 되는지를 알고 싶으면 산에 가보라. 봄이 되면 산 전체가 피어난다. 그리고 겨울이면 산 전체가 웅크리고 있다. 왜 그런가?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본질이 무엇인가하는 질문은 인문학적 호기심이다. 변화의 능력과 경영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문학이 죽으면 경영학이 살아 있을 수 없다. 돈은 사람이 건강할 때 필요한 것이다.

 

P241

불행을 통해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불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불행하게 한다.

 

P243

한번 시멘트가 깔리면 다시 복원하기 힘들다. 나무 한 그루만 죽어도 다시 살릴 수 없다. 개발은그 만큼 겸손하게 심사숙고한 후에 이루어져야 한다

 

P244-1

신기한 것은 꽃잎이 구르는 모습이다. 일단 떨어져 아스팔트 위에 누운 꽃잎들 위로 바람이 불면 모든 꽃잎이 일어나 마치 굴렁쇠가 구르듯 도로 위를 달린다. 어째서 그런 모양으로 구르는지 알 수 없지만 여간 신기하지 않다.

 

P244-2

휴식도 일처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벚꽃길을 달려들 간다.

웃음이 나온다. 휴식도 뭔 가에 쫓기듯 일처럼 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P247

우리가 놀이가 밤이 깊어질수록 야단스러워지는 이유는 어쩌다 한 번 쉬기 때문이다. 휴식의 절대 길이가 짧다보니, 당연히 볼 것도 해야 할 일들도 많다.그러니 밤늦도록 놀아야 하고 마셔야 한다. 혹은 새벽까지 그래야 한다. 왜냐하면 다시 일로 복귀해야 할 날까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휴식이 휴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휴식이 귀해서 너무 아깝기에 일처럼 열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P255

아이들은 자신의 내부로 기어들어가 아무런 물리적 제약이 없는 정신의 세계를 넘나든다. 뜨거운목욕탕 속에 파란 고래 한 마리가 들어와 함께 놀아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P262

보존이 무엇보다 현명한 개발이다. 개발은 파괴를 전제로 한다. 파괴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자연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수없이 고뇌해야 한다. 최소화된 파괴, 이것 없이 자연은 자연으로 남을 수 없다.

 

P268

나는 좋은 길이 되고 싶다. 사람들로 하여금 천천히 걷게 하는 길이 되고 싶다. 평평하고 예쁜 바위가 몇 개 있어 좋은 날 사람들이 잠시 앉아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길이고 싶다. 깊은 정취가 있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이 하며 감탄하는 그런 길이고 싶다. , 언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 나를 좋아한다. 내가 아직 젊은 탓일까

 

p275

사랑이나 은 둘 다 보통명사이다. 동시에 두 단어들은 매우 구체적인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그 또는 그녀의 몸짓, 물결치는 웃음, 어떤 표정,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통명사지만 개인에게는 구체적인 고유명사이기도 하다.내가 저자라면

 

p283

견뎌내야 하는 것은 늘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안타깝기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다. 자식들의 어려움을 대신할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이미 모두 죽어 없어졌을 것이다. 과로와 지나친 심려 때문에.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은 모양이다. 자식들이 늘 안타깝고 뭔가 해주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자식들의 인생은 그들의 몫이다. 그래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서 기다리는 것도 참 힘든 일이다.

 

P290

어디서나 만나는 그렇고 그런 일상적인 얼굴 뒤에 숨어 있는 사람 수 만큼의 사연을 싣고 배는 하루에 두 번씩 이 바다를 오간다. 배도 사람처럼 매일 같은 일을 하며 늙어간다.

 

P298-1

비극은 늘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미국 흑인의 비극은 그들을 해방시킨 링컨이 흑인이 아니라는 것에서 연유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의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미군정이 시작되었고 국토는 나뉘었다. 일제의 경찰이 미군정 경찰로 옷을 바꾸어 입고, 친일파는 반공주의자가 되어 득세했다.

가슴 아픈 이야기이자 우리의 과거, 우리의 현재이다. 제발 미래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P304

40도나 되는 이 술은 속에서 무수한 작은 불꽃들이 되어 장작처럼 몸을 뜨겁게 해 준다.

갑자기 술을 부어 내 속의 많은 불꽃들을 한 번에 태워버리고 싶어 진다. 술이 땡긴다.

 

P306

산행의 즐거움은 산과 만나는데 있다. 산은 음악과 같다.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한적해야 피어 있는 들꽃을 볼 수 있다. 호젓하지 않으면 온몸의 피부가 그 정적을 감지할 수 없다. 햇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바위에서 옷을 느슨하게 풀어놓고 땀을 식힐 수 있어야 청량한 계곡에서 생겨나 아름드리 나무와 고운 꽃잎을 만지며 푸른하늘을 지나온 바람을 느낄 수 있다.

 

P309-1

바다는 가끔 밑바닥을 뒤집어엎어 스스로를 정화한다. 태풍과 풍랑과 해일과 파도는 바다가 스스로를 정화하는 도구들이다. 바다가 바다일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능력때문이다. 어찌 배우고 닮고 싶지 않겠는가?

 

P309-2

꿈은 개인의 삶에 생명을 준다. 꿈을 잃으면 생명의 힘은 해소된다. 그러므로 꿈을 잃은 사람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꿈은 일상과 유리되지 않은 에너지다. 꿈은 환상과는 다르다. 환상은 일상으로부터 유리된 에너지며, 일상과 만나지 못하므로 개인의 삶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구현하지 못한다.

 

P311

모든 여행자가 영웅은 아니다. 대개는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필부는 일상에 매여 사는 사람이다. 일상에 매여 살고 일상 속에서 울고 웃고 한다. 그러나 그 들에게도 세상의 흥망에 책임이 있다. 명나라 말기에 살았던 사람, 그래서 만주족의 청나라가 들어서는 것을 볼 수 밖에 없었던 망국의 고증학자 고염무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나의 삶이 세상의 흥망과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좋아서다. 내가 필부라는 것을 내 아내도 알고 있고 내 딸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세상의 어느 위대한 사람보다도 그들에게는 내가 휠씬 중요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별과 같다. 수없이 많지만 하나하나가 모두 작은 우주이다.

 

 

내가 저자라면

 

떠남과 만남은 남도 여행을 통한 저자의 여행에 대한 느낌과 삶에 대한 성찰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책을 읽다 보면 남도 여행을 같이 하고 있는 듯한 착각과 함께 오랜 벗 함께 담소를 나누며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행 속에서 만나는 사소한 것들에 인생의 깊은 성찰이 묻어 나온다. 때론 여행 중에서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구나란 감탄을 하기도 한다.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요 볼 수 있는 사람만이 보고 느끼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여행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여행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란 생각을 해 보았다. 저자는 책의 맨 처음 여행을 가는 목적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서술하고 있다.

 

여행은 그러나 도피가 아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난다.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무엇을 담아 올 수 있겠는가?

 

나는 여행을 통해 20년간 나를 지배해온 관습을 버리려고 했다. 출근하기 위해 아침에 하는 면도,평일 대낮의 자유를 비정상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에 대한 공포,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서 느끼는 심리적 압박, 월급에 대한 안심, 그리고 인생에 대한 유한 책임.

 

두 번째 인생은 절대로 바쁘게 보내지 않을 것이다. 첫째, 더 자유로울 것이다. 오직 나만이 나에게 명령할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지게 할 것이다. 둘째, 더 많이 배울 것이다.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진지함을 버릴 것이다. 셋째, 배운 것을 통해 기여할 것이다. 주제넘지 말 일이다. 내가 만족한 나의 삶만이 이 땅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얼간이가 될 것이다. 인생의 목적은 인생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그래서 인생이 전부 경제와 경영일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마흔 살은 성취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시절이라는 점이다.

 

나를 위해 아낌없이 시간을 쓸 예정이다. 햇빛이 들과 밭에 내리듯이. 산과 강과 바다에 쾅쾅 쏟아지듯이. 거기에 무슨 효율이 있는가?

 

이 역시 당연한 여행기의 주요한 주제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다면 남도를 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란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나라의 여러 지역을 놔두고 남도에 간 이유는 어떤 것일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래서 남도를 여행하게 된 계기와 이 여행기에서 나온 지역들을 관통하는 무엇인가의 스토리텔링이 조금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책 처음에 여행기 전체 일정을 나타낸 지도가 있기는 하나 중간중간 다시 자세한 지역 지도와 함께 대표적인 사진이 같이 곁들어져 있었다면 조금 더 독자들이 여행기에 빠져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의 한 줄, 한 문장

함께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혼자 있다 함께 있게 되면 작은 일로도 서로 다툰다. 그렇게 얼고 녹고 다시 얼고 녹으면서 마침 내 한 사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혹은 그녀가 또한 자신의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움이며 질투이며 욕설이며 상처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지루함이며 떠남이며 귀환이며 눈물이다. 누구도 사랑이라는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이렇게 다이내믹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둘러보라. 사랑만큼 환장하게 못살게 하는 것이 있는지. 그릇된 사랑도 있고 인고의 사랑도 있다. 그것만큼 다양한 이야기가 또 있겠는가.

 

이 책을 통해서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문장이었다. 여행을 흔히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표현한다. 실제로 혼자 여행을 떠나보면 참 외롭다. 이 좋은 것을 어찌 혼자 보는 것이 안타깝다. 좋은 것을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내 사람들인 모른다.

 

혼자 이고 싶어 떠난 여행에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인간은 그렇다.

외롭고 고독하다. 외로워서 다른 사람을 찾는다. 그리고 다시 또 혼자가 되기 위해 떠난다. 그리고 다시 외로움을 느낀다. 그렇게 반복하며 나 속에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내 마음 속에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인 것이다.

여행을 통해서 나를 찾고 내 속에 들어올 사람을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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