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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5일 23시 48분 등록

신화의 힘(5월 첫주)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조셉 캠벨 (1904~1987)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상류 계급의 아일랜드 카톨릭 가정 출신이었다. “카톨릭 가정의 아이는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탄생하고, 무리를 가르치고, 십자가에 매달리고, 부활하고, 하늘나라로 돌아가는 이 순환적인 주기를 계절적으로 체험하면서 자랍니다.” (38-39p) 그러던 중 <와일드 웨스트 쇼>를 보고 아메리카 인디언에 관심을 가지고 아메리카 인디언 신화를 읽기 시작했다. 이 계기로 비교신화학에 입문한다.

 

아버지는 사업가였어요. 물론 우리 아버지 역시 내가 자기 일을 이어 받아주었으면 싶었겠지요. 실제로 나는 아버지의 일을 도와봤는데, 두 달 만에,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구나싶대요. 아버지도 순순히 놓아주십디다.”(286p) 그래서였을까 캠벨은 다트머스 대학에서 생물학과 수학을 공부했지만 인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1924년 가족과 함께 유럽을 여행했다.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그는 신지학(神智學) 사회 (Theosophical Society)의 메시아 선출자인 지두 크리슈나무르티(Jiddu Krishnamurti)와 마주쳤다. 그들은 힌두교와 인도의 생각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인도 철학에 대해 논의했다.

그는 콜롬바어대학으로 옮겨 1925년 영문학 학사 학위를 받았고 1927년 프랑스 파리의 대학(University of Paris)과 독일의 뮌헨 대학 (University of Munich)에서 중세 프랑스어, 프로방스(Provençal)와 산스크리트(Sanskrit)를 공부했다. 1927년 중세의 아더왕을 주제로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29년 미국으로 돌아와 인도철학과 미술 쪽으로 공부를 계속하려 했지만, 학교 측의 반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했다. 때마침 대공황시절 캠벨은 두 사람 덕분에 나는 프로베니우스가 쓴 것은 모조리 읽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돈이 있습니까? 나는 돈이야 어찌 되든, 뉴욕의 서적상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 서적상은 내가 바라던 책을 모조리 보내면서 일자리를 구하거든 갚으라는 거예요. 자그마치 4년 뒤에나 갚았지만요.(225p)”

뉴욕의 우드스톡에 아주 멋진 노인이 있었어요. 이 양반에게는 방이 아주 많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는 이 방을, 예술을 공부하는 가난뱅이 학생들에게 1년에 20달러 정도의 임대료로 빌려주었어요. ... 나는 이 집에서 기본 독서와 공부는 거의 다 했어요.(226p)” 5년 동안 맘껏 책을 보며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캠벨은 1933년 캔터베리 학교에서 1년간 가르쳤을 때 독립적인 독서를 계속했으며, 그 시간 동안 그는 소설 작품을 출간하기도 했다. 캔터베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동안 캠벨은 첫 번째 단편 Strictly PlatonicLiberty 잡지에 판매했다. 캠벨은 1972년 퇴직할 때까지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38년간 신화를 가르쳤다.

 

캠벨의 대작은 세계 신화에서 발견된 전형적 영웅의 여정에 대한 자신의 이론에 대해 논한 그의 책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The Hero of Thousand Faces,1949)]이 출판된 이래로 캠벨의 이론은 다양한 현대 작가와 예술가들에 의해 의식적으로 적용되어 왔다. 그의 철학은 그 자신의 자주 반복되는 구절로 요약되었다 : "당신의 천복을 따르라.“

신화와 인간 정신과의 관계에 관한 캠벨의 생각은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선구적인 업적에 달려 있지만 특히 인간 심리 연구가 캠벨에 큰 영향을 미친 칼 융 (Carl Jung)의 연구에 달려 있다. 캠벨의 신화 개념은 상징적 해석에 크게 의존하는 꿈 해석의 융 상적 방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있다.

198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는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조셉 캠벨 재단을 설립하고, 캠벨의 유고와 대담, 그리고 강의록 등을 정리, 출간하고 있다.

 

빌 모이어스(1934~ )

오클라호마 주 남동부의 Choctaw 카운티 휴고에서 태어났다. 모이어스는 텍사스의 Marshall에서 자랐다. 그는 동텍사스 마샬의 Marshall News Messenger에서 새내기 기자로 16세의 저널리즘 경력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그는 텍사스 주 덴튼에 있는 노스 텍사스 주립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다. 1954년 당시 미국 상원의원인 린든 B. 존슨 (Richard Johnson)은 그를 여름 인턴으로 고용하여 결국 존슨의 개인 우편물 관리를 장려했다. 얼마 후, 모이어스는 텍사스 오스틴의 텍사스 대학 (Austin , Austin , Texas)으로 옮겨 데일리 텍사스 신문에 썼다. 1956년 저널리즘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오스틴에 있는 동안, 모이어스는 Johnson 상원의원의 부인인 Bird Johnson이 소유한 KTBC 라디오 및 TV 방송국의 보조 뉴스 편집자로 근무했다. 1956-1957년 동안 그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국제 문제 위원으로 교회와 국가 문제를 연구했다. 1959년 텍사스 주 포트워스에 있는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수료했다. SWBTS에 참석하는 동안 모이어스는 정보 국장을 역임했다.

미국 언론계에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저널리스트로 과거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10, 에미상을 30회 이상 수상한 경력이 있다. 자신이 민주당 성향의 진보주의자임을 숨기지 않는 그는 존 F. 케네디 행정부와 린든 B. 존슨 행정부 시절엔 정계에 투신해 백악관 공보비서관을 맡기도 했다.

 

1986년에 모이어스와 그의 부인이 공보 TV를 창설했다. 그들의 첫 작품 중에는 인기 있는 PBS 1988 다큐멘터리 시리즈 조셉 캠벨과 모이어스, 신화학자 조셉 캠벨과의 6시간짜리 인터뷰로 구성된 [신화의 힘(Myth of Power)]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조셉 캠벨이 다양한 문화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monomythhero cycle 또는 영웅 이야기에 대해 탐구한다. 캠벨의 영향은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Star Wars) 영웅전설의 작품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조지 루카스의 "Skywalker Ranch"에서 촬영된 첫 번째 인터뷰에서 모이어스와 조셉 캠벨은 조셉 캠벨의 이론과 조지 루카스의 창조 작업 사이의 관계에 대해 논의한다. <신화의 힘>을 만든 12년 후, 모이어스와 조지 루카스는 1999년 인터뷰인 Star Wars의 신화를 다시 만나 조지 루카스의 영화에 대한 조셉 캠벨의 작업의 영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윤기(역자) (1947~2010)

1947년 경북 군위에서 출생하였다. 1977중앙일보신춘문예에 단편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나 창작보다는 번역 작업에 몰두하여 20년 간 이백여 권의 역서를 출간하였다. 1991~1996년에 미국 미시간주립대 종교학 연구원으로, 1997년에 같은 대학 비교문화인류학 연구원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1997년 이후에는 주로 창작에 주력했다. 29회 동인문학상(1998), 한국번역가상(2000), 8회 대산문학상(2000) 등을 수상했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개정판- 옮긴이의 말

한 문화 권역과 다른 문화 권역의 영웅, 혹은 구세주는, 두 문화권이 교섭한 경험이 없는 경우에도 서로 비슷비슷할 수 있습니다. (5)

그렇다. 한국의 콩쥐팥쥐와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도 있다.

 

초판 옮긴이의 말

우리에게도, 문화현상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이런 기회가 확대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는 세계의 신화가 지닌 주제에서 공통되는 요소를 찾아내고 이것을 분석하면서 신화와 종교에 관해 무수한 질문을 제기하던 그가,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뒤에 펴내는 이 [신화의 힘]에서는 바로 그 신화와 종교에서, 궁극적인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모습을 읽어내고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휩쓸리면서 스스로를 구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7)

 

빌 모이어스의 서문

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이러한 따위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그리고 의례가 바로 이 에너지를 촉발한다. (10)

법의 권위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강제력 이상의 어떤 힘을 지니는 것이기 때문에 재판장의 권능이 의례화하고 신화화하는 것이다. (10)

구조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문장이다.

영웅의 역정에서 얻는 직관은 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랍니다. ... 부정적인 열정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은 우리에게도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야만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답니다.” (11)

고명한 구도자와 영웅은 다른 점이 많은데, 그 다른 점 중에서도 가장 다른 점은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 (12)

우리는 그 박물관에서 두 개의 프로그램을 녹화했는데, 캠벨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텔레비전 화면에 사무쳤던지 우리 두 사람의 대담 원고를 요구하는 편지만 해도 14천통에 이르렀다. (14)

한국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했다면 어땠을까. 이만큼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 같다.

운명은 앞서서 뜻 있는 자를 인도하지, 뜻 있는 자의 멱살을 잡아끄는 것은 아니라오.” (14)

옛 모듬살이는 일찍이, ‘삶의 본질은 죽이는 것과 먹는 데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신화가 다루어야 하는 위대한 신비가 바로 이것임을 깨닫게 된다. (16)

그의 말에 따르면 신의 이미지는 무수하다. 그는 이것을 영원의 가면이라고 이름 한다. 영원의 가면은 그 영광의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18)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의 이름과 신의 이미지는 가면일 뿐이다. 이 가면은 곧, 우리의 언어와 기술로는 정의가 불가능한 궁극적 실체를 뜻한다. 신화 역시 신의 가면이다. (18)

아직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본문의 내용을 더 봐야겠다.

우리 현대인들은 이 땅으로부터 신비라는 신비는 모조리 벗겨버렸습니다. 그래서 사울 벨로의 말마따나 믿음을 대청소해버린상대입니다.” (19)

그러게.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별들의 소리를 듣는다고 하더라.

그는 인간을 타락하게 한 것, 인간으로 하여금 신성한 것들과 헤어지게 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타락하게 하기는커녕 이 온 우주가 우리의 내적 자연이 확대. 투사된 것임을 인식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고대와 만나게 했다.’ (19)

나는 조셉 캠벨을 만나고 나서야, 우리가 토요일에 마티니를 마시면서 시청하는 서부극이 사실은 그 이야기를 고대의 이야기에서 차용한 것이라는 점, 우리가 주일 학교에서 들은 이야기가 사실은 고도로 영적인 모험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던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 필멸의 운명을 타고난 인간이 하느님이라는 궁극적인 실체를 깨치기 위해 악전고투하는 이야기와 동일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20)

그가, 신화를 지나치게 심리학적인 입장에서 해석한다. 신화의 당대적 역할을 지나치게 이념적. 치료적 기능에 국한시키는 듯하다는 비판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20)

이것 또한 왜 이런 비판을 받는지 살펴봐야할 부분이다.

 

1. 신화와 현대 세계

(25) 모이어스 ; 도대체 신화가 우리 삶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캠벨 ; 나는 남들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주제라고 해서 관심을 두는 것을 신용하지 않아요. 내가 신용하는 것은 어찌어찌 하다보니 사로잡히게 되는 주제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정신의 문학과 친해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 일어난 일이나 그 시각에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만 겨우 관심을 갖고 살아 갑니다.

(26) 캠벨 ; 나이를 먹어 나날의 삶에 대한 관심에 심드렁해지면, 사람은 내면적인 삶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 내면적인 삶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면 그것 참 곤란한 일이지요.

(28) 캠벨 ; 토니오가 진실에 진실하면서 애정을 기울이는 사람은 살인자입니다. 왜냐, 인간을 진실하게 그려내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인간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 토마스 만의 이른바 에로틱 아이러니라는 것입니다. 잔혹하고 분석적인 언어를 통해 자기 손으로 죽이고 있는 대상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지요.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입니다. 보고 듣는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인간이나 불사신이라는 느낌을 주는 대신, 아슬아슬한 것, 인간이라고 느끼게 하는 인간미 ...., 이게 사랑스러운 겁니다.

완전한 인간이 있나? 인간이기에 모두 불완전한 거 아닌가?

(29) 캠벨 ;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삶의 의미가 결국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 아닌가. 나는 왜 이런 게 그저 말장난 같다고 여겨질까.

(30) 캠벨 ; 석가라는 분 자신은 이렇게 애서 오신 분(如來)’이라고 불립니다. 여기에는 의미가 없어요. 우주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 모두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지요. ...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너무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 가치임을,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그만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남의 신화를 읽으면 경험이 무엇인지 배우게 됩니다.

(31) 결혼은 경험이 지니는 또 하나의 신화적인 차원입니다. ... 이른바 연애라고 하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절망과 함께 끝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혼은 영적인 동일성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원래 하나였던 것이 둘로 나뉜 것이고 이를 찾아서 만나는 것이라는 건데, 결혼은 그저 사람이 만든 제도 아닌가. 결혼이란 번역이 맞는 번역인가. 인류학에선 선물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

(32) 결혼에는 서로 전혀 다른 두 단계가 있어요. 첫 번째 단계는 자연이 부여한 불가사의한 충동에 따라 두 젊은이가 결혼하는 단계이지요.

(33) 우리는 대게 결혼을 통해서 한두 가지씩은 희생을 시킵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관계를 위해서 희생시켜야지, 상대를 위해서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이건 어떻게 다른 건가.

결혼한 사람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젊은이의 결혼은 어느 대목에 이르면 두 번째 단계에 접어드는데, 이것이 내가 바로 연금술적 단계라고 이름붙인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둘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 단계에서 부부는 내가 앞서 말한 희생의 의미를 서로 아름답게 깨닫게 됩니다.

나는 아직 멀었나. 이 단계에 이르지 못 했나보다. 모르겠다.

(34)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결혼은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영적인 수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군요?

캠벨 ;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달음에 이르게 해야 하는 것이고요. ...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지요.

계속 봐도 뭔 말인지 모르겠다.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넘어간다. 내가 이해력이 딸리는 건가.

(35) 모이어스 ; 아이들이 도시에서 자라나는 경우, 오늘날 이들은 어디에서 신화의 존재를 만날까요?

캠벨 ; 스스로 만듭니다. 뉴욕이라는 도시가 온통 낙서투성이인 것도 그 때문이지요. ... 아이들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해 신화를 체현하는 것이지요.

신화의 존재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 낙서와 어떻게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낙서를 하는 것이 어떤 의미라는 건가. 제발 설명을 좀 해주면 좋겠다.

(36) 어떤 문화권이든지 우리가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모듬살이에는 삶의 규범이 될 만한 룰, 그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 묵시적으로 이해되는 불문율 같은 게 있는 법이지요. 그런 문화권에는 에토스(윤리적 겨레 정신)라고 할 수 있는 것, 삶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어떤 묵시적 양해 사항이 있어요.

이걸 문화라고 하지 않나. 신화가 아니라.

(37)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신화나 옛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캠벨 ; 내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삶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8) 전문화에는 전문가가 관심을 두는 문제의 범위를 한정시키는 속성이 있어요. 하지만 나같이 전문가가 아닌 잡학가는 여기에서는 이 전문가에게 한 수 배우고, 저기에서는 저 전문가에게 한 수 배우기 때문에 문제를 일단 위에서 내려다 볼 줄 알지요.

이건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저자가 잡학가라고 하는 건 좀 의아하다. 내가 전공한 비교문화와 비슷한 분야 같다.

(41) 모이어스 ; 이야기의 테마는 보편적이지만, 민족의 기질에 따라 적용하는 것이 조금씩 다르겠군요?

캠벨 ; 그럼요. 테마의 대응 구조라는 것을 모르고 읽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되겠지만, 다른 게 아니에요.

비교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같은 접근으로 한다. 전혀 다른 나라, 지역에서 비슷한 내용의 이야기가 구전되어 왔다.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사라 로렌스 대학에서 38년간 신화를 가르쳐왔습니다. ... 어떻게 신화에 관심을 갖게 했습니까?

캠벨 ;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할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입사식이라고 하고 사회적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사회화 과정이라고 배웠다.

(48) 모이어스 ; 신화라고 하는 것은 곧 다른 사람들의 꿈이 아닙니까?

캠벨 ; 아닙니다. 아니에요.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꿈이 모인 것이 이 세상의 꿈이지 않을까. 꿈이라고 번역된 원래의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54) 모이어스 ; 제 막내아들 녀석이 <스타워즈>를 스무 번 아니면 서른 번쯤 본 것을 알고는, 제가 너 그 영화를 왜 그렇게 많이 보느냐고 물었습니다. 녀석 대답이, “이유는 아빠가 평생 [구약성서]를 읽는 것과 같지, 였습니다. 그러니까 제 막내아들은 새로운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겁니다.

캠벨 ; 확실히 <스타워즈>에는 신화적인 원근법이라고 할 만한 게 있습니다. ... 내가 <스타워즈>에서 보는 것은 [파우스트]가 우리에게 던지는 것과 똑같은 질문입니다.

[파우스트]를 읽어봐야 알 수 있겠다.

 

(56) 각 종교는 정해진 명령 신호를 입력시켜야 접근이 가능한 일종의 소프트웨어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57) 옛 전통을 가꾸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그것을 쇄신하는 길뿐입니다. 구약 시대의 세계는 근동을 중심으로 겨우 몇백 마일 되는 크기의 3층짜리 케이크에 지나지 않았어요.

(58) 이들은 서로의 이름을 인정하지 못해요. 메타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참 의미는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고 할까요. 그들은 자기네를 둘러싸고 있는 고리를 열어본 적이 없어요. 말하자면 그 고리는 폐쇄 회로인 것이지요. 각기 우리야말로 선택된 백성이다.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계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어요.

예전에 도올이 같은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신화종교학자 다운 이야기다.

(59) 히브리 사회에서 야훼 숭배는 특수한 충동입니다. 결국 이 충동이 승리를 거두게 되기는 합니다만, 이것은 도처에서 볼 수 있던 자연 숭배 사상을 신전 중심의 신으로 밀어붙인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1) 내가 아는 한, 지구라는 행성의 신화학에 가장 가까운 것은 불교입니다. 불교는 세상의 모든 존재를 부처로 보지요.

(65) 이 국장을 제정한 사람들은 18세기의 이신(理神)론자들, 점잖은 신사분들이었지요. 이 위에는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믿는다.”는 구절이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하느님은 성서에 나오는 하느님이 아닙니다. ... 국장을 제정한 사람들에 대한 성서 하느님의 특별한 계시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을 프리메이슨의 표식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뒤에 모이어스도 질문한다.

(68) 행동의 유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전쟁이고 또 하나는 평화이지요. 그래서 독수리는 한쪽 발로는 13개의 화살(전쟁의 원리 상징)을 쥐고 있고, 나머지 발로는 열세 개의 잎이 달린 월계수 가지(평화 회담 상징)를 쥐고 있습니다.

독수리의 머리 위에 그려진 그림과, 아홉 개로 이루어진 꼬리털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아홉이라는 숫자는 이 세상에 내린 신의 힘을 상징합니다. 삼종 기도 시간을 알리는 카톨릭 교회의 종은 아홉 번 울립니다.

각 나라별로 숫자의 의미가 다르다. 공통적인 것은 수학자들이 밝혀낸 숫자일 것이다. 아홉은 10에서 1이 빠진 수이다. 에니어그램에서도 9이다.

(69) 열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그 솔로몬의 인장을 외교연구원에서 본 국장에서 발견한 거예요. 순간 나는 이 별들이 그리는 삼각형들이 바로 피타고라스 철학의 테트라키스라는 걸 알았어요.

테트라키스는 열 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을 말합니다. ... 이게 바로 상호 관계하는 신화학적, 우주론적, 심리학적, 사회학적 해석의 의미를 숫자로 나타낸 피타고라스 철학의 중심 상징입니다.

(71) 이성을 파괴하는 것은 열정입니다. 정치에서 열정은 곧 탐욕입니다. 탐욕은 인간을 타락케 합니다. 우리가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지 않고 측면에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74) 앞으로도 우리는 신화를 가질 수 없을 겁니다. 세상은 신화를 낳을 사이도 없이 너무 눈부시게 변하고 있어요.

신화를 가질 수 없을 거라는 걸 확신하네.

(74) 신화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네 가지 기능을 지닙니다. 첫째는 신비주의와 관련된 기능입니다. ... 신화의 두 번째 기능은 우주론적 차원을 연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관심을 두는 영역이 바로 이 차원입니다.

(75) 신화의 세 번째 기능은 사회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한 사회의 질서를 일으키고 그 질서를 유효하게 합니다.

(76) 신화에는 네 번째 기능이 있어요. 오늘날 우리가 한번 음미해보아야 할 것이 바로 이 기능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걸 가르쳐줄 수 있어요.

이걸 꼭 신화에서만 답을 찾을 수 있을까.

(77)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옵니다. 이 양자는 상징적인 형태로 나타내어야겠다는 일종의 깨달음에서 옵니다.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신화 중에서 가치 있는 신화는 어떤 도시, 어떤 동아리에 관한 신화가 아니라 이 땅에 관한 신화입니다. 모든 인류가 사는 이 땅에 관한 신화여야 합니다.

(80) 우리는,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이 우리가 핏줄에 얽혀 있듯 그렇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압니다.

(81)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이듯, 그대들도 이 땅의 일부올시다. ... 홍인종이 되었든 백인종이 되었든 인간은 헤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인 것입니다.

1장은 현대 세계에서 볼 수 있는 신화적 상징과 모습을 통해 신화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2. 내면으로의 여행(83)

(85) 모이어스 ; 시대를 달리하고 나타날 적에는 옷만 바꾸어 입는다는 것인지요?

캠벨 ; 그래요. 흡사 한 연극 대본이 각기 다른 곳에서 상연되고 있는 것과 같지요.

저자의 말처럼 선사시대 인간이건 현대의 인간이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은 같다. 그러니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이 있는 것이다.

(87)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꿈꾸는 시간의 현장에서 솟아오르는 신화학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꿈꾸는 시간이라고 하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캠벨 ; 잠들어서, 우리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영원한 삶의 조건과, 그 조건과 관련된 우리 현세적 삶의 현장을 꿈꾸게 되는 시간을 말하지요.

(88) 가령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다 죽음과 직면하는 문제를 안고 있지 않나요? 이와 관련된 꿈은 표준이 되는 신비라고 할 수 있어요.

(89)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단적인 꿈입니다.

프로이트에 바탕을 두고 융의 집단 무의식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이래서 강사과정 교수가 계보를 말했던 것이었다.

모이어스 ; 그러니까 개인의 사적인 꿈이 공적인 신화와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라면 좀 더 건강하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러나 만일 개인의 사적인 꿈이 공적인 꿈과 발이 맞지 않으면...

캠벨 ; 문제가 생기는 거지요. 억지로 체제에 적응하려고 하다 보면 신경증에 걸립니다.

(91) 일정한 단계에 이르면 사적인 꿈은 신화적인 테마를 표현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꿈은 신화의 아날로지 없이는 해석이 안 됩니다.

(96) 생명력은 뱀으로 하여금 허물을 벗게 합니다. ... 달이 다시 차기 위해서 그 그늘을 벗듯, 뱀은 거듭나기 위해서 그 허물을 벗지요. ... 때로 뱀은 제 꼬리를 물고 있는 동그라미 꼴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이게 바로 삶의 이미지이지요.

북유럽 신화에서 나오는 이미지가 마지막 뱀이 꼬리를 물고 동그라미를 그린 이미지이다.

(100) 에덴동산 이야기에는 역사적으로 모신(母神)을 거부하는 태도가 반영되어 있는 것이지요.

죄악으로 인하여 인류는 낙원의 동산이라는 신화적인 꿈의 시간대에서 쫓겨납니다. ... 대극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보니, 저희가 서로 다르다는 것도 인식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황급히 부끄러운 곳을 가립니다.

(101) 이 대극(對極)을 인식하게 되자 선악의 분별이 생깁니다.

앞에서 저자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더라면 인류는 삶의 조건에 동참하지 못한 채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멍청한 아이처럼 살고 있을 테지요.” 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과연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 걱정도 없고 먹을 것 많고 날씨도 좋고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으면 마냥 행복할 수 있나. 하긴 우린 이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 천국에서의 삶이 어떤 지 알 수 없다. 선과 악이라는 것도 몰랐다고 하니 더욱 그렇겠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멍청한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일 테다.

(102) 삶의 신비는 인간이 만든 모든 개념 너머에 있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많은가, 적은가, 진실한가 진실하지 못한가 하는 개념의 용어에 갇혀 있어요. 우리는 항상 대극이라는 용어 안에서 생각해요.

이분법적 사고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온 것이 사실이다. 이제는 혼종, 경계를 없애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신화는 우리에게 이 이원성의 이면에는 일원성의 세계가 있어서, 대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음을 암시하지요.

(107) 모이어스 ; 원형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캠벨 ; ‘바탕이 되는 관념이라고 불러도 좋은, 근본적인 관념입니다. 융 박사는 이런 관념을 무의식의 원형이라고 했지요. ... 무의식의 원형이라고 한 까닭은 이 원형이라는 것이 하의식에서 위로 솟아오르기 때문일 겁니다.

하의식이라니. 참 단어선택을 이렇게 밖에 못할까. 미국에서 6년 동안 관련된 연구원활동도 했던 분인데. 심리학에서 하는 말이 있다. ‘억압은 반드시 귀환한다. 억압이 심할수록 귀환은 더 심하게 나타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적인 무의식으로 생리적인 것입니다만,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원형은 생물학적입니다. 생리적 원리는 생물학적 원리에 견주면 2차적인 것입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생리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것은 어떻게 다른 건지, 원어로는 뭐라 했는지 다시 궁금해진다. 나의 성향이 직관보단 감각형이기에 전체의 맥락보다 개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 그것이 걸리면 그냥 못 넘어가는 것 같다.

(109) 왜 우리도 기도할 때 두 손바닥을 붙이잖아요? 손바닥을 서로 붙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신이 상대방 안에 있는 신을 알아본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만물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믿으니까요. 인도 사람의 집에 손님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손님 신으로 대접받는답니다.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인도 철학자를 만나 영향을 받게 되었다더니 많은 부분에서 나타난다. 그래서인지 유일신이 아닌 만물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동양이나 원시부족에선 거부감이 없는데 기독교가 중심인 서구에선 획기적이라 여길 수 있겠다.

(113) 삶이 시같고, 우리는 바로 이 시의 세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신화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 내가 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니까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가 뭐란 건지. 느낌적 느낌?

(116) 종교 전통에 등장하는 은유를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죽도 밥도 안 됩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문자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거지요.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는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비유를 들어서 한다. 그 당시의 상황과 시대적 배경이 없이 현대의 시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더더욱 알 길이 없다.

(117) 은유는 암시적으로 읽어야지, 명시적 의미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나 같은 성향은 이런 말들이 어렵다.

(118) 사람들이 나에게, “재림을 믿나요?”하고 물으면, 나는 천국이나 마찬가지로 재림도 메타포(은유)입니다라고 대답하고는 합니다. 재림과 대응하는 기독교의 메타포는 정죄입니다.

(120)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어느 책에선가, 사회의 엘리트가 신화를 만든다, 미지의 세계을 경험하고 돌아온 샤먼이나 예술가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신화를 만든다고 쓰신 적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은 어떻습니까?

캠벨 ; 쓸 수는 있지만 신화는 아니지요. 보통 사람은 신화의 단층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창조적인 글을 써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복종하노라면 써야 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압니다.

이런 경지에 도달해 봤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도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122) 민담은 그저 듣고 즐기는 겁니다. 그러나 신화는 영적인 교시를 위한 것이지요.

민담도 그저 듣고 즐기는 것은 아니다. 영적인 교시까지는 아니라도 삶의 교시는 있다.

(123) 중세에는 신화적 독창성과 민화적 독창성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의 무대가 세 개 있었지요. ... 성당, , 가정집은 곧 신전과 궁전과 저자 거리입니다. 이 세 무대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산출되는 중심이기는 하지만, 같은 문명권 안에서라면 똑같은 상징의 마당 역할을 합니다.

(126)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초월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초월이 뭡니까? 초월적인 존재가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캠벨 ; ‘초월적이라는 말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방법과 관련된 기술적, 철학적 술어입니다. 기독교 신학에서 초월적인 존재라는 말은, 자연계 너머, 혹은 자연계 밖에 있는 존재로서의 하느님을 뜻합니다. 이것은 초월적인 존재를 표현하는 말로는 지나치게 유물적입니다. 하느님이 바깥 어딘가에 있는 일종의 영적인 존재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초월자는 사유의 모든 카테고리를 초월합니다.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카테고리입니다.

나도 궁금했던 것이다. 계속적으로 초월이란 표현을 했기에.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네.

(133) 모이어스 ; 신화에서 선악의 관념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캠벨 ; 선악의 관념은 원래 조로아스터교의 관념이었는데, 이것이 유태교와 기독교로 흘러들어 왔어요. 다른 종교의 전승에 따르면 선악은 우리의 입장에 따라서 상대적인 것입니다. 어느 한쪽에 선한 것은 그 반대쪽에는 악한 것이지요.

(135) 영웅의 행동반경은 초월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선악이 있는 시간의 장, 대극이 있는 곳입니다.

영웅은 초월적 존재처럼 이야기하더니 행동반경은 아니다? 이건 또 무슨 말이지.

 

3. 태초의 이야기꾼들 (141)

(143) 우리는, 신화 하면 그리스 신화와 성서 신화를 떠올리지요. 이 두 문화권의 신화에는 신화의 인간화 경향이 있어요. 말하자면 인간에게 아주 큰 액센트가 주어지지요. 특히 그리스 신화는 인간성과 젊음의 아름다움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어요.

다른 문화권의 신화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럼 그리스신화는 왜 그런 것일까. 아마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것과 연관이 있겠다. 건강한 몸 = 젊음

(146) 신화를 보면, 사냥하는 맹수와 사냥감이 되는 짐승이 어울려 의미심장한 역할을 연출해냅니다. 이 양자는 삶의 두 측면을 암시하지요. 즉 공격적이고 죽이고 정복하고 창조하는 삶의 측면과, 대상, 혹은 객체가 되는 삶의 측면을 암시하는 것이지요.

(148) 신화가 그 죄의식을 닦아줍니다. 그 짐승을 죽인 것은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거든요. 자연의 일을 대신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149) 사냥한 짐승에게 감사를 드림으로써 그 짐승의 영혼과 화해하고자 하는 의례이지요.

(156) 모이어스 ; 그러니까 우리가 만물의 경이에 관해 신화적 상상력을 발동시킨 것은 이 수렵민 시절이었군요?

캠벨 ; 그렇지요. 그야말로 엄청난 예술이 여기에서 분출합니다. 우리가 신화적 상상력을 온전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시절의 예술에서이지요.

원시 사회의 모습은 대부분은 비슷한 생활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냥을 하고 이동을 하며 살았다. 하지만 수렵을 하지 않은 민족은 없었을까. 수렵의 대상이 다를 뿐 모두 수렵을 했을 것이다.

(159) 모이어스 ; 그 암벽화의 메시지는 어떤 것입니까?

캠벨 ; 그 동굴에서 체험된 영원한 권능의 시간과 관계가 있습니다.

(160) 이 동굴은, 의례를 통해 소년에게 더 이상은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라 이제 아버지의 아들이 되었음을 깨우쳤던 그 시대 사람들의 성소였던 것입니다.

(161) 원시 입문 의례에서 아이는 소년 시절에서 격리됩니다. 바로 이렇게 격리된 상태에서 아이는 할례를 당하거나, 몸의 한 부분에 상처를 입는데, 이러한 시련은 곧 아이의 몸이 희생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입문 의례 혹은 성인식은 아직도 남아있다. 도시에 살면서도 할례를 한다고 한다. 그것과 관련한 자서전적 글 [사막의 꽃]이 생각난다.

(163) 모이어스 ;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신화의 상실은 어떤 의미를 지닙니까?

캠벨 ; 성인식이 바로 이런 의례의 현대판입니다. ... 오늘날의 성인식에서는 사제가 웃으면서 뺨을 한 대 살짝 쳐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 이런 성인식은 치러봐야 달라지는 게 없습니다.

(165) 원시 사회도 문제아를 사회의 일원으로 통합시키는 데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어요. 별 수를 다 썼지요. 그런데 사회는 규칙을 따라오지 않는 문제아들을 견디지 못했어요. 그런 아이들을 용인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그래서 사회가 그들을 죽여버렸던 겁니다.

정말 지역적 성격은 다르지만 원형의 내용은 비슷하다. 한국 옛이야기에 <아기장수 우투리>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날개가 있어 마을사람들이 없애려고 한다. 결국 영웅으로 마을을 구한다.

(168) 신화를 살아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을 살아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입니다. 예술가들의 기능은 마땅히, 환경과 세계를 신화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4. 희생과 천복 (177)

(177) 사는 곳을 성화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 나바호족 호간()의 문은 늘 동향입니다.

우리는 풍수에 익숙한데 서구는 그렇지 않으니 이것도 새롭게 느끼겠다. 동양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179) 그래서 나이를 먹어갈수록 순간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참으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태를 살다보면 우리는 늘 우리에게 요구된 일만 합니다. 우리 천복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변경연을 통해 그 정거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181) 태양신전이 있던 그 자리에 카톨릭 교회가 섭니다. 이게 바로 기독교들에 의한 연고권 주장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보세요. 이들은 다른 신전이 있던 자리에 자기네 신전을 세움으로써 한결같던 풍경을 완전히 바꾸어버리지 않았습니까?

갑자기 이단이라 말하는 신천지가 생각난다. 기존 교회에 들어가 그 교회를 접수해버리는.

(183) 모이어스 ; 오늘날의 성소나 성지는 어디에 있습니까?

캠벨 ; 이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 가령 우리는 성지관광을 하고는 있지요? 우리 종교가 비롯된 곳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땅이 성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땅에서 삶의 에너지의 상징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지 순례라는 관광 상품이 있을 정도다. 우린 옛 것을 새로운 것으로 엎어버리길 잘한다. 특히 치욕 역사는 더욱 그렇다. 유태인은 홀로코스트를 절대 없애지 않는다. 그곳에 가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한다. 우린 조선총독부 건물을 없애버렸다. 그 건물을 남겨 일본이 우리의 정궁 앞에 무엇을, 왜 세웠는지 후대에 알려야 한다.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나라의 힘을 키워야 하며, 외교정책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야 했었다. 도대체 남아있는 게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189) 정신이라는 것은 삶의 향연입니다. 그것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에덴 동산에서의 인류의 타락을 다룬 우리 이야기는 자연을 부패한 것으로 보고 있어요. 바로 이러한 신화가 우리를 대신해서 이 세계를 부패시키고 있는 겁니다.

기존 기독계에선 많은 비판이 있었겠다. 하긴 나 역시 인문학 공부를 할 때 종교를 멀리했었다.

모이어스 ; 시인도 예술가도 아니고, 초월적인 접신 경험도 해보지 못한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사람은 내가 궁금해 하는 것들을 콕 찍어 잘 물어본다.

캠벨 ; 방에 앉아서 읽는 겁니다. 읽고 또 읽는 겁니다. ...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붙잡아서, 그 사람이 쓴 것은 모조리 읽습니다. ... 그런 다음에는,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이건 저자의 방법 아닌가. 일정한 관점을 획득하긴 하겠지만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을까. 그리고 시간도 만만치 않게 걸릴 거다. 모든 사람이 5년을 세상과 단절하고 홀로 책만 보며 지낼 순 없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이 있다. 책으로 보는 것보다 한 번 다녀와서 직접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192) 사막으로 나오면 하늘도 하나요. 세상도 하납니다. 그러니 신이 하나일 수밖에 없지요.

이래서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이다 라는 건가.

(193) 모이어스 ; 왜 유일신입니까?

캠벨 ; 이해가 안 가는 일이지요.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네 지역 사회 신을 중시한다는 것은 이해합니다. 이런 사회의 구성원은 자기네를 보호해주는 사회에만 헌신합니다.

(194) 여성에게는 마력이 있습니다. 그 마력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대지처럼 출산하고 먹여 기르는 힘입니다.

신이나 신화에서야 그렇지만 현 세상살이에선 여성의 지위나 역할이 그렇지는 않았다. 상징으로서의 모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냥꾼의 의식은 늘 외계의 동물에게로 쏠립니다. ... 그래서 사냥꾼의 신화는 외계 지향적입니다. ... 식물의 경작과 깊은 관계가 있는 농경 신화는 내계 지향적입니다.

식물의 세계는 생멸의 반복이라는 의미에서 사람의 삶과 동일시됩니다.

이건 저자의 해석이다. 식물의 세계만 생멸을 반복하는 것은 아니다.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사람은 동물과 동일시하기 쉬운 것 아닐까.

(195) 동물의 사지는 한 번 잘리면 다시 자라나오지 않지요. 따라서 숲과 농경문화에는 종국적인 것으로서의 죽음이 아닌, 새 생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의 죽음이 있어요.

~ 이런 의미에서....이건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나의 밀알과 같은 얘기 아닌가.

(196) 실제로 이 농경 신화는, 아메리카에서 보통 우리가 수렵 문화권이라고 생각하는 지역 전부에 분포되어 있어요. 북 아메리카 문화는 수렵 문화와 농경문화가 상호 작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이지요.

(200) 성서 문화에서는 승자가 되는 쪽, 선한 쪽은 늘 둘째아들이에요. 둘째아들은 나중 온 자 아닙니까? 즉 히브리인을 상징하지요. 둘째아들이 그 땅으로 왔을 때, 이미 그 땅에는 맏아들, 즉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카인은 농경에 기초를 두고 있는 당시의 도시 문화를 상징하지요.

이렇게 설명하니 또 다른 재미가 있다.

(201) 모이어스 ; 수많은 문화권에는, 동정녀가 영웅을 낳고, 영웅은 죽음을 당했다가 부활하는 전설이 있는데, 이것은 도대체 뭘 말하고 있는 겁니까?

캠벨 ; 구세주 성격을 지닌 주인공의 죽음과 부활은 이런 전설의 공통적인 모티프로 등장하지요. ... 현존하는 모든 세대는 다음 세대가 오게 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답니다.

(215) 전쟁터에서 우리는 문득, 살아 있음의 체험 안으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삶은 고뇌로운 것, 고통스러운 것, 그리고 무서운 것이다. ..... 그러나 나는 살아있다. ... 전쟁은 이런 느낌을 경험하게 합니다.

과연 전쟁터에서 살아있음을 체험할까. 저자는 전쟁을 겪어보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전쟁터의 경험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은 걸로 안다.

(218) 중세 신화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인류의 마음이 연민의 가슴으로 열린 순간 즉 열정연민으로 변모한 순간입니다. 성배 전설에 나오는, 상처 입은 성배왕에 대한 사람들의 연민이 바로 이러한 변모를 드러냅니다. ... 그리스도처럼 고통을 받는 자는 인간을 조잡한 육식동물에서 참 인간으로 바꾸어놓을 만한 어떤 본을 보이기 위해 우리에게 옵니다. 이 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연민입니다.

하긴 기독교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조한다. 예수 부활 이후 태어난 모든 사람도 그 사실에 대해 감사해야하고 믿어야 한다.

(221)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바비트], 이게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천복을 좇아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222)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나도 클 때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것을 강요받으며 살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준비하는 걸 엄마는 기다려주지 못했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고 결국 취직을 하게 되었다. 뒤늦게 나이 들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시작했다. 수입은 줄었으나 행복하다.

(223) 모이어스 ; 부모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식들로 하여금 자기 천복을 찾게 해줄 수 있습니까?

캠벨 ; 아이를 잘 알아야 하고, 아이에게 늘 주위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를 도와줄 수 있어요. ... 자기 천복과 관계가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든지 낯빛이 달라지든지 하지요. 삶의 가능성은 바로 여기에서 열립니다.

부모가 해야 하는 가장 기본이 자식을 관찰하면서 아이를 잘 아는 것이다. 그리고 나야 뭐든 답을 찾을 수 있다.

(225) 나는 프로베니우스가 쓴 것은 모조리 읽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런데 돈이 있습니까? 나는 돈이야 어찌 되든, 뉴욕의 서적상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그 서적상은 내가 바라던 책을 모조리 보내면서 일자리를 구하거든 갚으라는 거예요. 자그마치 4년 뒤에나 갚았지만요.

대공황 시절에 이런 사람이 있다니, 아님 얼마나 편지글을 잘 썼으면 그랬을까.

(226) 뉴욕의 우드스톡에 아주 멋진 노인이 있었어요. 이 양반에게는 방이 아주 많은 집이 한 채 있었는데, 그는 이 방을, 예술을 공부하는 가난뱅이 학생들에게 1년에 20달러 정도의 임대료로 빌려주었어요. ... 나는 이 집에서 기본 독서와 공부는 거의 다 했어요.

나도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래서 건물주가 어차피 비는 공간 그냥 비워두지 말고 나 같은 사람에게 쓰라고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227)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지금의 캠벨이 있기까지 정말 중요한 두 사람이 대공황 시절 돈도 받지 않고 책을 보내준 서적상과 우드스톡의 방을 빌려준 집주인이다. 이것도 캠벨의 천복 중 하나다. 위대한 인물 주위엔 이렇게 도움을 준 사람이 있다. 혼자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결국 사람이 중요하다.

 

5. 영웅의 모험 (229)

(229)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보통, 영웅의 모험은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 자기 동아리에게 허용되어 있는 정상적인 경험에는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의해 시작됩니다.

(231) 아즈텍인에게는 여러 층의 하늘이 있는데, 죽음을 맞는 상황에 따라 이 하늘의 각 층이 내세의 집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전장에서 전사한 병사와 출산 때 죽은 어머니는 똑같이 최고천을 배정받지요. 말하자면 출산은 영웅적인 행적과 동일시되는 겁니다.

그래서 변경연도 책을 출간하지 못하더라도 출산을 하며 출간한 것과 동일하게 인정해주는 가 보다.

(234)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전에는 이렇게 생각해왔지만 지금부터는 저렇게 생각해보는 것...... 의식의 변모는 이로써 시작되는 것이지요.

(235) 모이어스 ; 그럼, 지역 영웅은 우주적인 시련은 이기지 못하는 것이군요?

캠벨 ; 그렇지요. 지역 영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지역 신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역 신은 자신에게 정복당한 백성들에게는 원수가 될 테지요. 영웅이냐, 괴물이냐는 우리 의식의 초점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지요.

(235) 영웅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인 것이지요. 물론 반대 입장에서 보면, 영웅이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옹호하려는 관념이 반드시 옳은 것일 수만은 없지요. ... 반대 입장의 견해가 영웅이 이룬 업적이 지닌 고유의 영웅적 속성을 훼손시킬 수는 없는 겁니다.

그렇지. 영웅의 업적을 훼손할 순 없지만 반대 입장에선 영웅이라 할 수는 없다. 역사 속 전쟁영웅들이 그럴 것이다. 하긴 일본에선 이순신이 적국의 장군이지만 영웅으로 칭송하는 사람들도 있다. 캠벨도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238) 영웅에는 두 종류가 있어요. 여행을 스스로 선택하는 영웅과 그러지 않은 영웅이 있는 것이지요. 전자의 영웅은 모듬살이의 필요에 반응하여, 자진해서 그 일을 하러 떠납니다.

한국에도 이런 종류의 신화가 있다. 바리데기 공주이다. 이 대목에서 매력적인 책 내용이 떠올랐다. 신화의 힘은 이런 것인가 보다.

그런데 자진해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던져지는 여행이 있어요.

(239) 모이어스 ;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어쩌면 영웅의 기질이나 자격 같은 것이 우리에게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캠벨 ; 우리 삶이 우리 기질의 잠을 깨웁니다.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 넣을 필요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잠재되어 있는 영웅의 기질이 있을 수 있다. 계속 찾아야 한다. 나에게도?

(241) 우리 좌식 생활권 사람들에게는 지적인 흥분이 다소 있거나 있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하지만 몸은 그렇지 못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하루에 얼마, 일주일에 얼마 하는 식으로 의도적으로 기계적인 운동을 하지요.

내 이야기 같다. 매일 일정시간 운동을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244) 과학은 바야흐로 신비주의의 차원으로 넘어 들어오고 있어요. 과학은 머지않아 신화가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로 밀고 들어올 겁니다.

하긴 과학이란 것이 미지의 것들을 밝혀내고 검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꼭 맞는 것도 아니며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과학은 가설에서 출발한다.

(252) 모이어스 ; 동화가 우리의 현실 적응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캠벨 ; 동화는 재미를 위한 읽을거리예요. 먼저 사회의 질서와 자연의 질서와 관련된 심각한 삶의 문제를 다루는 신화와, 이런 모티프를 재미있게 꾸며내는 흥밋거리 이야기를 구분해야 합니다. ... 동화는 아이들을 위한 겁니다. ... 그림 형제의 이야기 중 상당수는 성장 과정에서 교착 상태에 빠진 소녀를 다룬 이야기예요.

동화가 원어로 무엇인지 궁금하다. 동화가 아이들을 위한 거라는 것도, 그림 형제 이야기에 대한 설명도 좀 의아하다. Fairy tale이라고 되어있을 것 같은데 사실 구전되어 온 많은 이야기는 그저 재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헨젤과 그레텔도 새엄마가 아닌 엄마로, 세상엔 마녀와 같은 무서운 존재가 있고 유혹하는 과자집들이 있으니 주의하라는 내용이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림 형제 역시 구전되어온 많은 이야기를 수집하러 다녀서 모음집을 출판했으며 이것 역시 독일이라는 나라의 구심점과 그 기원을 아리아인에서 찾고자 했던 것이다. 저자가 신화와 구전되어온 민담들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신화에만 너무 많은 비중을 두다보니 놓친 부분인 것 같다.

소년에게 가해지는 입문의 시련은 소녀에게 가해지는 것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왜냐하면, 삶이라는 것이 여성을 편애하기 때문이지요.

이건 동의할 수 없다. 이후에 나오는 내용 역시. 이건 여성을 편애해서라기보다 남성위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258) 인류의 위대한 스승들(모세, 석가, 그리스도, 모하메드)의 메시지는 다 다릅니다. 그러나 이들이 경험한 환상 여행은 동일합니다.

(260) 모이어스 ;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실재했다는 것을 믿지 못하면 그가 일으킨 기적을 이해할 수 없다고 겁을 줍니다.

캠벨 ; 영적인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영적인 기적, 혹은 마술이 가능했다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것이 가능하기는 했지만, 그 사람이 그런 기적을 일으킨 게 사실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 사람의 힘은, 우리가 보기에는 불가능한 일도 능히 해내고는 한답니다.

종교란 그 존재를 믿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기적이 가능하나 기적을 일으킨 게 사실은 아니다라는 건 모순적인 말 아닌가. ‘반드시 사실일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다?

(262) 신화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런 문제를 이해하게 하는 데 필요한 기본 교육 자료였어요.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우리에게 이런 종류의 적당한 신화 교육을 베풀고 있지 못해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이 사회 안에서 행동 통일을 하는 데 그렇게 애를 먹고 있는 거지요.

모든 문제의 해결방안이 신화에 있다는 건데, 과연 그런가? 함석헌은 한국이 고유의 사상(철학), 종교가 없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그의 제자인 김상봉교수는 동학에서 한국사상과 종교의 뿌리를 찾으려고 한다. 저자의 논리라면 우리는 우리의 신화들을 모아서 그걸 가르쳐야 한다는 거다. 그러면 젊은이들이 장벽에 부딪쳤을 때 그것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신화학자가 교육자를 대신해야 하는 건가. 도덕, 윤리를 가르치는 교사가 해야 할 몫인가.

(263) 신화가 암시하는 첫째 방법은 신화 자체, 또는 영적인 지도자나 스승을 따르라고 가르칩니다. ...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자기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같은 것을 다루고 있다 싶은 책을 이용해서 배우는 겁니다.

결국 본인의 방법이네. 자기와 같은 스승을 만나던가, 스스로 책을 보라는. 나는 아직 신화에서 해답을 찾거나 깊이 있지 않아서인지 잘 모르겠다.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서 책만 보면서 배우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나로썬 저자의 방법이란 것에 자꾸 의구심만 든다.

(269) 모이어스 ; 배의 신화학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캠벨 ; 소화 작용이 일어나는 곳, 즉 새로운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뱃속은 어두운 곳이에요. (중략)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고래는 우리의 무의식에 갇혀 있는 생명의 힘을 상징합니다. 은유적인 의미에서 물은 무의식이고, 수생동물은 생명, 혹은 무의식의 에너지입니다. 고래가 나타났다는 상황은 무의식이 의식적인 인격을 압도하고 힘을 얻은 상태를 만들지요. 즉 이때부터는 무의식이 의식을 극복하고 의식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나는 고래 뱃속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피노키오다. 피노키오를 삼켜버린 고래 뱃속에서 할아버지를 만나고 거기서 탈출하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영웅이야기인 것 아닌가. 그리고 고래는 지구상의 가장 큰 포유동물이다. 고래는 육지에 사는 가장 강력한 포식자였는데 더 이상 먹을 것이 없어 바다로 갔다고 한다. 수생동물이기에 생명을 의미한다면 고래가 아닌 다른 많은 동물들이 있다. 왜 꼭 고래여야 했을까. 어류가 아니 포유류, 강력한 포식자에 더 의미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272) 모이어스 ; 우리 개인이 반드시 해야 하는, 선생님의 이른바 드높은 영혼의 모험이란 무엇입니까?

캠벨 ; 내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천복을 찾아내되, 천복을 따르는 것을 절대 두려워하면 안 됩니다.

(273) 사람들에게는 무엇 무엇을 바꾸고, 법을 바꾸고 하다 보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천만에요! 어떤 세상이든지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세상은 나름대로 유효합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여기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구본형이 마지막에 신화에 관심을 쏟았다고 하는데 결국 본인의 성향과 맞았던 건 아닌가. 개인의 노력, 개인의 변화만을 이야기 하면서.... 그럼 저자는 세상을 변화시켰나. 신화로 해결했나. 38년간 가르쳤는데 가능했나. 의문투성이다.

(285) 모이어스 ; 우리 사회에는 그런 의례가 없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분명하게, “너는 이제 어른이 되었다.”고 하는 순간이 없습니다. 오늘날에 그런 통과의례는 어디에 있습니까?

캠벨 ; 나도 답을 마련하고 있지 않아요. 아이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겠지요. 맡겨서 홀로 서기에 충분한 힘이 있게 되었다는 걸 스스로 깨닫게 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286) 모이어스 ; 행복에 대해서 신화는 뭐라고 하고 있습니까?

캠벨 ; 행복을 찾으려면,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을 잘 관찰하고 그것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 이렇게 행복을 관찰하는 데는 약간의 자기 분석 기술이 필요합니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남이 뭐라고 하건 거기에 머물면 되는 겁니다. 내 식으로 말하자면, ‘천복을 좇으면 되는겁니다.

1년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 봐야겠다.

(290) 여자가 물속에 있었다는 것은, 결혼을 통하여 여자가 합리적, 의식적인 세계에서 무의식의 강박 충동의 세계로 들어가 있었다는 뜻이에요. 민담에 자주 등장하는 수중 여행 모티프는 거의 다 이런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지요.

(291) 모이어스 ;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천복을 좇아라, 삶의 기회를 잡아라,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라고 가르치신다는데, 혹시 이 신화를 들려주시면서, 모험이라는 것은 그 자체가 곧 모험에 대한 보답이다, 이렇게 가르치시는지요?

캠벨 ; 아무렴요. 모험 자체가 모험에 대한 보답이고 말고요. 하지만 모험이라는 것은 위험해요. 모험에는 긍정적인 가능성도 있고 부정적인 가능성도 있는데, 둘 다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구본형 선생님이 책에서 말씀하신 내용과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몰두하라.’ 그러려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를 아는 게 먼저이다.

(293) 나는 이분을 안 이래 근 10년 동안 함께 일을 해왔습니다만, 이분은 지난날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중국을 비난하는 일도 없고 자기를 홀대했던 서구를 섭섭하게 여기는 일도 없습니다. 국가에 대한 것뿐이 아닙니다. 달라이 라마에게서는 원망이나 미움과 관계가 있는 말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습니다. ... 나는 그들에게서 종교가 무엇인가를 배웠어요. 오늘날에 살아 있는 참 종교가 거기에 있었던 겁니다.

저자의 비교종교학에 대한 지식은 세계 4대 종교를 다 아우르고 있다. 놀라 울뿐이다.

(296)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 부처가 된 석가는 고통에서 헤어날 길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말하는 피난처가 바로 니르바나인데, 이 열반은 천국 같은 어떤 이 아니라, 욕망과 고통을 해탈한 마음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지요.

기독교와 불교의 차이는 기독교는 유일신이며 절대신이고, 불교는 누구든 석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각 종교의 시작을 설명한 내용을 보면 지역과 민족에 따라 다르게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299) 삶의 궁극적인 배경은 우연입니다. ... 우연, 혹은 인연이라고 합시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도 이걸 통해서 와요. 중요한 것은 이걸 탓하거나 이걸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여기에서 생기(生起어떤 일이 일어남)하는 삶과 대결하는 겁니다.

그 우연을 필연처럼 여기라는 것이겠지.

(301) 모이어스 ; 그런 희한한 재능이 보통 사람에게는 없지 않습니까?

캠벨 ; 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지 않아요. 사람은 다 삶의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름의 방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발하고, 그것과 사귀어야 합니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특별한 자신만의 경험과 삶을 살아간다고 보니 보통 사람이라고 하는 건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가보다.

(303) 모이어스 ; 하지만 사람들은 묻습니다. 신화는 결국 거짓말이 아니냐고요?

캠벨 ; 아니에요.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에요.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 뿐이에요.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신화를 정말 잘 나타낸 말입니다. 이게 왜 버금이냐 하면, 궁극적인 것은 결국 언어로 드러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로 드러난 진리 중에는 으뜸이라는 뜻이지요.

 

6. 조화여신의 은혜 (305)

(306) 서사시를 보면 영웅이 태어날 당시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먼 곳에 사는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영웅은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거지요.

이것 또한 신화의 공통점이다. 아기 장수 우투리도 아버지가 없다.

(307) 모이어스 ; 그런데 왜 어머니 탐색은 없습니까?

캠벨 ; 어머니는 여기에 있으니까요. 어머니는 아들을 낳고, 돌보고, 아버지를 찾으러 떠날 나이가 될 때까지 아들을 가르칩니다.

(308) 여신 숭배는 주로 농경 문화, 농경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즉 대지와 아주 밀접합니다. ... 여신이 창조신일 때 이 여신의 몸은 곧 우주가 됩니다. 이 여신은 바로 우주와 동일시됩니다.

우리에겐 마고할미가 있다.

(313) 제국주의 나라의 국민의 특징은 침략한 나라의 지역 신을 우주의 어정쩡한 촌뜨기로 만들어버린다는 거예요.

일본이 우리 단군을 그저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 삼국유사, 삼국사기를 남겨놓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일제강점기에 역사기록물이 많이 없어졌다. 식민화에 불리한 역사는 말살시킨 것이다.

(315) 여성을 보호하는 것, 그때는 그게 남성이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모이어스 ; 거기에서 가부장 관념이 자라나지 않겠습니까?

캠벨 ; 여성은 전리품이었어요. 상품과 같은 겁니다. 한 성이 함락되면 여성은 모두 겁탈을 당했어요.

(316) 성서에서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예로서, 우리 서구인들의 여성 경시 풍조는 다분히 성서적 사고의 산물일 겁니다.

(318) 처녀 수태 관념은 그리스 전통에서 기독교로 흘러들어 왔습니다. 사복음서를 읽어보세요. 처녀 수태가 언급된 복음서는 <누가복음>뿐입니다. 누가는 그리스인이에요.

동정녀 마리아라는 것은 주기도문에도 나오는 것인데 누가 밖에 언급을 안했다는 건가.

(322) 예수는 영적으로 태어난 것이지 육체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영웅이나 반신(半神)은 자비로움이 육화된 존재로 태어나지, 성적인 욕망의 소산, 혹은 종의 보존을 위한 소산은 아니라는 겁니다.

(324) 신의 배우자가 그 신을 찾으러 떠나는 이 테마는 이 당시의 신화에는 아주 많이 나타나는 테마입니다. 말하자면 사라진 지아비, 혹은 애인을 찾으러 가는 여신이, 정절 지키기와 명계 하강의 시련을 통하여 지아비, 혹은 애인을 구원하게 되는 식입니다.

(326) 하늘을 나는 비둘기는 영혼을 상징하는 아주 보편적인 이미지이지요. 기독교에서도 역시 성령의 상징이 됩니다.

한국의 솟대도 같은 상징이다. 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영매라고 여긴다.

(326) 파라오가 앉는 보좌가 바로 이시스 여신입니다. 그러니까 파라오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는 어린아이 자격으로 그 보좌에 앉는 것이지요. ... 초기 기독교의 교부(敎父)들과 예술가들은 그 이미지를 이집트로부터 의도적으로 차용한 겁니다.

(333) 우리는 어떤 경우에든, 참여하지 않으면 상호 작용을 일으킬 수 없어요. 하느님을 절대 타자로 보는 관념이 엉터리인 까닭이 여기에 있어요. ‘절대 타자와 나 사이에는 상호 작용이 있을 수 없지요.

(334) 아버지는 엄격합니다.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질서나 사회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닙니다. 실제로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속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기능하지요.

(336) 여신은 우리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곧 여신의 몸이기도 합니다. 우주와 우리가 별개가 아니라 결국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 이것이 신화인 것입니다.

이건 잘 모르겠다. 우주와 하나라는 인식을 가능하게 해준다. [의식 혁명]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우주는 한 치의 오차도 없다.”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339)

(341) 음유시인들이 이해하는 사랑은 그런 게 아니었던 겁니다. 사랑에 빠지는 건 개인적인 경험인데, 에로스가 끼여든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때 사람들은 아모르의 존재를 몰랐나봐요. 하지만 음유시인들이 알기로 아모르는 개인적이었어요. 에로스적 사랑과 아가페적 사랑은 비개인적인 사랑이었고요.

(344) 중세의 경우 결혼은 교회로부터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이어야 했어요. 그러니까 음유시인들의 개인 대 개인의 사랑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일 수 있었지요.

(345) 결혼은 육체적 관심에서 시작되어 정신화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진정한 결혼은 사람, 즉 아모르의 영적인 충돌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현대와는 다른 결혼 풍속이며 사고이다.

(350) 모이어스 ; 그러면 자기 손으로 자기만의 삶을 살고자 하는 서구식 개인주의는 이런 낭만적인 관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캠벨 ; 그렇고 말고요. 동양의 이야기에서도 이런 종류의 개인주의를 읽을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이게 사회적 시스템이 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게 서구 사회에서는 사랑의 이상적인 모습이 되고 있지 않습니까?

서구의 개인주의를 이렇게 음유시인의 아모르로 해석할 수도 있구나.

결국 개인을 꽃피게 하는 것이 사회의 기능이지, 사회를 꽃피게 하는 것이 개인의 기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352) 그들에게는 사랑 놀음을 삶과 사회에 조화시키는 규칙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떤 종류의 사랑 놀음이든,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는 규칙의 체계를 따랐던 겁니다.

(354) 음유시인들의 가슴속에는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권력에의 의지예요. 그들의 가슴에 있었던 의지는 개인적인 경험에의 의지와 이 경험을 통한 자기 존재의 승화에의 의지예요.

(356) 사람들이 살기는 살되, 죽은 삶을 살고 있는 땅, 자기 삶에 대해 아무 용기도 없이 사는 땅, 남이 하는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땅이 바로 황무지입니다.

구본형선생님이 하시던 말씀이다. 남이 시키는 삶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359) 어떤 작가는 다음같이 짤막한 시 한 줄로 기나긴 성배 전설에 대한 서사시의 서문을 삼습니다. “모든 행동은 좋게도 결과하고 나쁘게도 결과하느니...”

(362) 캠벨 ; 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공존할 수 없을까요? 다른 종교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있길래요?

모이어스 ; 무엇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요?

캠벨 ; 권력! 권력이에요. 유럽 역사의 근본적인 충동은 권력 충동이에요. 그런데 그게 우리의 종교 전통으로 흘러들어 왔어요.

나의 궁금증이 풀렸다. 나도 왜 기독교만 유일신을 주장하며 강압적으로 강요하는지 궁금했었다.

(368) 결혼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니고 있던 이성(異性)의 측면과의 만남이랍니다.

 

8. 영원의 가면 (375)

(375)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우파니샤드]

(376) 서구인의 사고방식은 하느님을 우주의 에너지와 경이의 종국적인 근원, 혹은 본원으로 봅니다. 그러나 동양의 사고방식은 신들을 결국 비인격적인 에너지의, 그 자체로서의 드러남이자 에너지의 공급자로 파악하지요.

서양과 동양은 여러 면에서 다른데 종교에서는 더욱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378) 명상이란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수준의 생각이든 명상에서는 가능합니다. 나는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을 별로 다르게 보지 않는 사람입니다.

(379) 언어 밖에 있는 깨달음에 이르려면 하느님의 이미지부터 넘어서야 합니다. 분석 심리학자 융 박사는 종교는 하느님의 체험에서 인간을 방어하는 수단이라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있어요.

(386) 토마의 복음서에는 예수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록됩니다.“아버지의 왕국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느 때 오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이 세상 도처에 널려 있으나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하는 것뿐이니라.”

기독교인들은 심판의 날이 오고 그 이후 아버지의 나라에 가는 사람과 못가는 사람이 생긴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 날을 기다리며 그 곳에 가기 위해 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388) 세계에 있는 원꼴의 둥근 이미지는 모두 인간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390) 모이어스 ; 어떻게 해서 원이 보편적인 상징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캠벨 ; 늘 경험하는 것이니까요. 하루에서도 경험하고 일 년에서도 경험하고, 사냥도 좋고 모험도 좋고, 하여튼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데서도 경험하기 때문이지요.

(404) 모이어스 ; 영원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까?

캠벨 ;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 있지요. 아니, 없는 데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405) 흔히들 천국과 지옥을 영원하다고 하지요. 천국은 끝나지 않은 시간입니다. 끝나지 않는 시간과 영원은 달라요. 영원은 시간 너머에 있어요. 시간이라는 개념은 이미 영원을 나타낼 수 없어요.

(411) 쇼펜하우어의 생각은 이렇습니다. 꿈이라는 것은, 우리 의식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어떤 측면이 만들어낸 것이지요?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도 우리 안에 있되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어떤 의지에 의해 구성되고 계획되는 것이 아니냐는 겁니다.

(415)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있는 것, 이 한마디, “.....”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데 있는 것이지요.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신화와 현대세계, 내면으로의 여행, 태초의 이야기꾼들, 희생과 천복, 영웅의 모험, 조화여신의 은혜, 사랑과 결혼 이야기, 영원의 가면의 순서로 되어있다. 6시간 인터뷰 내용의 순서대로

목차 구성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각 목차와 내용이 서로 연결이 되어있다.

목차의 순서를 반대로 했으면 어땠을까 한다. 작은 개념과 실제의 삶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에서부터 점차 큰 개념으로 넘어갔으면 처음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 답답함은 없을 것 같다. 아니면 고대-중세-근대-현대의 역사 순으로 목차를 만들어서 신화와 연결했어도 좋았을 것 같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 형식에 대하여

대화문을 글로 옮겨놓은 것이라 내용은 많은데 좀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다. 내용을 줄이더라도 정리를 해서 실었으면 어떨까 한다. 반복적인 내용이 많다.

강연을 하는 저자들의 경우 종종 강연내용을 묶어서 책을 내는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장,단점이 있다. 우선 말이기 때문에 구어체라 읽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비문도 많고 군더더기가 있을 수 있다.

 

- 내용에 대하여

저자는 인디언과 인도에 관심이 많았다. 그와 관련한 연구도 많이 했다. 그래서 신화이야기도 인도와 인디언 이야기가 많다. 많은 나라의 신화를 비교하긴 했지만 저자가 영향을 받은 것에 치중하다보니 비교우위에 두는 것 같다.

 

3. 이 책의 장점

저자의 오랜 기간의 연구 결과물인 각 나라의 신화를 비교하며 내용을 자세히 들려주어 이해하기 쉬우면서 흥미로웠다. 거기에 그 신화의 심리학적인 접근까지 이뤄지고 있어서 좋았다. 기독교가 주류인 서구에서 종교를 신화와 비교해서 다루는 것이 자칫 예민할 수 있는 데, 오히려 직접적으로 거론하는 것이 새로웠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 형식에 대하여

내가 저자라면 말로 한 것을 그대로 책으로 내지는 않을 것이다. 말로써 들을 때와 글로 옮겨놓을 때는 다르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내용도 많으니 정리할 것이다.

 

- 내용에 대하여

독서와 관련해서 배울 때, 구전동화를 강의했던 교수님이 신화이야기를 하며 계보를 알려주었다. 프로이트에 이어 융, 조셉 캠벨 그리고 한국에 이윤기까지. 조셉 캠벨의 영웅 신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 스타워즈라고도 했다. 그 당시는 그냥 처음 접하는 거라 그런가보다 하며 들었다. 지금 그 노트를 봐도 자세한 내용이 없다.

 

그 후로도 그리스로마 신화나 신화에서 모티브를 빌려와 판타지로 넘어가고, 게임에 활용되는 것까지 알게 됐으며, 미술사를 전공한 지도교수에게 신화를 명화로 접근해서 각각의 상징을 알게 되고 신화를 현대식으로 해석하는 위험성, 옷을 벗고 있는 것이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생각에서 그리스로마시대는 몸이 하나의 옷이었다고 배웠다.

 

저자는 많은 나라의 신화에서 공통적인 요소를 찾아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국 구전 설화][한국 구비문화 대계]를 통해 한국의 신화를 집중적으로 자료를 찾아 출판해볼 것이다. 아기장수 우투리와 같은 영웅이야기가 전국에 걸쳐 전해 내려온다고 한다. 또한 한국의 신화에는 연민과 풀이의 문학이 들어있다고 하니 그런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도 조사해서 써도 좋을 것이다.

저자는 주로 인디언, 인도, 그 외 서구의 신화 위주로 비교했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모티브들, 불을 가져온 영웅, 스스로 길을 떠나는 영웅, 농사를 시작하게 된 신화 등의 한국의 구전설화에 있는 지 찾아보고 그걸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자라는 아이들에게 언제까지 그리스로마신화, 삼국지만 읽게 할 것인가. 우리에게도 그만큼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은 어떨까 한다.

 

- 번역에 대하여

이건 번역에 해당하는데 옮긴이도 제2의 저자이니 거론해본다. 읽으며 원서는 어떤 단어일까 자꾸 궁금해진다. 한자어를 너무 많이 사용하고 있다. 한자를 병기하긴 했지만 쉽게 풀어써도 되는 말을 왜 이렇게 번역했는지 의문이 든다. 차라리 영어인 원어를 병기했으면 더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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