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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5일 05시 52분 등록


저자 연구

구본형 선생님의 책을 통해 알게 된 조셉 캠벨은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중세문학을 전공하고, 장학금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고대 불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한 수재였다. 그리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대공황으로 직업을 구할 수 없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5년 동안 마음껏 책을 읽고 마음껏 글을 쓰며 동, 서양, 아메리카 인디언의 신화를 비교, 연구해서 미국 최고의 신화학자가 된, 훌륭한 학자였다. 여기까지만 해도 매우 똑똑하고 훌륭한 분임에는 틀림없으나 왠지 공부만 한 재미없는 학자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신화의 힘>, <신화와 인생>을 읽으면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조셉 캠벨은 글을 읽고 쓰기에만 능한 선비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대학 시절 뉴욕 최고의 육상 선수로 필드와 트랙 경기 모두 뛰어났는데, 특히 중거리 (하프 마일, 800M) 달리기의 경우 한 때 세계 최고로 빠른 스타 선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재학 중에 재즈 밴드에서 색소폰을 연주하기도 했는데, 우드스탁에서 살던 시절, 생계비 마련을 위해 종종 재즈 클럽에서 연주했다니, 이 또한 아마추어 실력은 아니었던 듯 하다. 이후 새라 로렌스 대학(Sarah Lawrence College)에서 제자로 만난 무용가 진 애드먼(Jean Erdman)과 결혼하면서 무용에도 일가견을 갖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르네상스적 인간, 요즘말로 멀티포텐셜라이트 (Multipotentialite)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다양한 관심과 재능 중에서 그는 세계의 신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하고 가르치는 재능을 그의 천복또는 희열로 선택하고 일생을 이에 집중했다. (Follow your bliss.)

그의 방대한 연구와 철학이 요약된 세 단어. Follow your bliss. 이 말은 우파니샤드 경전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새라 로렌스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신화를 배운 후의 지혜로 삶에 적용할 것을 권했으나, 그의 책이 출판되고 인기를 얻은 이후로는 미국 일반 대중에게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는 만큼 오해와 논란도 많았다고 한다. 일부 사람들이 “bliss”노력없이 얻을 수 있는, 쉽게 기분이 좋아지는 상태, 기쁨으로 이해하고, “어렵거나 힘들면 bliss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그저 단순하고 원초적인 기쁨, 쾌락만 추구하며 이를 조셉 캠벨의 탓으로 돌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조셉 캠벨은 차라리 물집을 따르라 (Follow your blister)”¹ 고 할 걸 그랬다며 탄식했다고 한다. bliss는 그냥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라 “(물집이 잡히는) 노력이 있은 후에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bliss”는 이윤기의 천복보다는 박중서의 희열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본다.²

 

  1.     Angela Hoxsey (December 5, 2014). "Follow your blisters". Napa Valley Register.

  2.     <신화와 인생> P456 역자 주 중에서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들어가는 말: 캠벨 사상의 정수, 그 아름다운 내면과의 마주침

9 다른 사람이 말을 할 때에는 그 말 자체가 아니라, 말하고자 하는 의도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했다. 그 의도가 오만이거나 악의이거나 무지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를 들어 누군가 우리를 향해 이기적이라고 말할 경우, 십중팔구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우리가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스스로의 선택 폭을 제한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의 세계관을 제한하게 되고, 그런 제한이 지나치면 우리 역시 세계의 경찰관’, 즉 자기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상자 밖으로 남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 할 때 의도를 잘 알아야겠지만 내가 남에게 말을 할 때에도 어떤 의도를 갖고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글귀다. 좋은 일을 축하할 때, 칭찬할 때, 정말 좋은 의도로 축하하고 칭찬하는가? 부러운 맘에 살짝 꼬아서 하지는 않는지. 다른 사람에게 조언이라고 하면서 내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고 자만하고 있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자.

 

10 상징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없는 사람들은 기껏 식당까지 찾아가서는 메뉴판만 먹어 치우고”, 정작 메뉴판에 나온 진짜 음식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것과 같다.

메뉴판만 먹어 치우고 진짜 음식은 거들떠 보지도 않다니너무도 내 얘기라 마음을 아프게 무찌른다.

 

10 그가 맨 처음 깊은 사랑을 느낀 대상이 아메리카 인디언, 즉 자연의 모든 부분을 성스럽게 여긴 사람들이었던 것도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환희 속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건강이었다. ~ 우리 각자의 희열을 따르는 것은 방종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명력이 넘치는 것이었다.

 

12 “인생에 대해 작별을 고하지 못하는 노인은 인생을 포용할 수 없는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병약하게 보인다.”

안타깝게도 죽어가고 있는 중에도 자신은 절대 안 죽을 것 같이 인색하게 구는 노인들을 종종 본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아깝고 억울해서 죽음을 부인하는 것 같기도 하다. 본인도 힘들겠지만 지켜보는, 남아있는 가족들도 힘들게 한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12 조지프는 우리가 환희 속에서 걸어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데, ~ 오로지 필요한 것이라곤 의식의 전환뿐이다.

 

13 “왜 저 나무들 아래를 걷다 보면 항상 크고 아름다운 생각들이 내 머릿속에 돋아나는 것일까?” 월트 휘트먼은 묻는다. “생각건대 겨울과 여름 내내 그 나무들 위에 걸려 있던 생각들이 마침 내가 지나갈 때 과실처럼 떨어졌기 때문이리라.”

나도 걷다 보면, 특히 공원의 꽃나무 길을 걷다 보면 창의적인 생각들이 떠오른다. 그저 걷는 게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며 맞아, 맞아만 외칠 뿐이었는데, 역시 시인은 다르다. 앞으로 꽃 길을 걸을 때는 겨울과 봄 내내 봉우리 졌던 생각들이 마침 내가 걸을 때 꽃으로 활짝 피었다고 생각해야겠다.

 

도입의 단계 영웅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20 꼭 해야 할 일이라면 마치 놀이를 하듯 하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말은 잘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 보다는 그래도 즐기는 척이라도 하는 게 낫겠지. 그러다 보면 언젠가 정말 즐기게 되는 날도 올 수 있을까?

 

22 우리는 스스로가 계획해 두었던 삶을 기꺼이 내팽개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를 기다리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니까.

그래서 내가 계획하는 걸 싫어했나 보다.

 

26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바로 지금? 내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를 주시려고 나를 이렇게 힘겹게 하시나 보다.

 

28 여러분의 진정한 의무는 공동체로부터 멀리 떠나 여러분만의 희열을 느끼는 것이다.

 

29 “너는 할지니라고 하는 용을 죽여라. 그 용을 죽인 사자는 비로소 아이가 된다.

내 안의 빨간펜 선생님이 용이었구나. 빨간펜 선생이건 용이건 이제 때가 됐다.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내 맘속에서 쫓아 내고 죽이자.

 

30 여러분만의 희열을 따르라. 영웅적인 삶은 각자만의모험을 실행하는 것이다.

30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미리 안다면 그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갖는다.’ 다시 한번 <아르미안의 네 딸들>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만화책이었지만 역시 명언이다. 계획대로 안 된다고,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난다고 당황하지 말자. 그런 일들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되기도 하고 나를 전혀 다른 삶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다.

 

31 만약 다른 누군가의 길을 따라간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잠재력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33 여러분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려는 곳, 거기에 여러분의 보물이 묻혀 있다. ~ 여러분은 보석을 발견하고, 보석은 여러분을 끌어당긴다.

많은 (현명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같은 말을 하는 것은 그 말이 진리이거나 아니면 진리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내 곁에 보물이 없다고 탓하지 말자. 내가 찾으려고도 안 하는데 어떻게 보석이 있는지 알까. 발 밑을 파봐야 보석도 나를 끌어당기겠지.

 

36 여러분이 모든 것을 원한다면, 신들은 그것을 주리라.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역시 또 한번 파티에 가려면 파티복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파티복만 미리 사지 말고 나의 ‘bliss’를 위한 준비도 미리 하자.

 

37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멍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 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

 

의식의 첫번째 단계 현세에서의 삶

50 어떤 여성이 자기 안에 있는 힘을 자각하면, 그 때부터 그녀는 남성을 본인에게 결여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의 한 예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한 객체로서 보기 시작한다.

 

52 “~ 살며, 과오를 범하며, 타락해 보고, 승리하고,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는 거다!”

내 안의 빨간펜 선생님은 내가 과오를 범하고 타락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었다. 이제 빨간펜 선생이자 용을 죽이겠다고 했으니 과오를 범하고 타락하더라도 루저라고 생각하지 말고 삶을 재창조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54 영혼은 상처의 치유법을 알지만, 그 치유법은 아픔을 준다. 때로는 애초의 상처보다도 그것의 치유가 더 많은 아픔을 주지만, 만약 그걸 견딜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더 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로써 여러분은 보다 넓은 (삶의) 기반을 찾은 샘이기 때문이다.

 

55 “이것이 내가 필요로 하던 것이다.” 파멸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기회인 양, 도전인 양 다가가라. 여러분이 그 순간에 사랑을 낙담이 아니라 가져온다면, 여러분은 힘이 거기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여러분이 견뎌 내는 재난은 그 무엇이건 간에 여러분의 성격, 여러분의 됨됨이, 여러분의 삶을 향상시킨다. ~

여러분은 마치 어마어마한 실패인 양 보였던 파멸 직후의 순간들이 사실은 여러분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을 만들어 준 사건들이었음을, 그것이 명백한 사실임을 알게 될 것이다. 여러분에게 벌어지는 일 가운데 긍정적이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비록 그 순간에는 부정적인 재난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재난은 여러분을 뒤로 물러서게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자면) 여러분이 힘을 드러내야 할 때가 되었기 때문에 그런 재난이 생기는 것이다

언젠가 오늘을 되돌아 봤을 때 그 때 누리는 행복이 오늘을 잘 견디고 아픔을 이겨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기를저절로 잘 되는 일이 없듯이 이유 없는 고난도 없을 거라 믿는다. “힘을 드러내야 할 때라는 조셉 캠벨의 말을 믿고 드러낼 수 있는 힘을 찾아 보자.

 

57 인생의 후반기에 우리는 내면으로 돌아선다. 이것은 해방이다.

 

75 성배로 향하는 열쇠는 공감, 다른 사람의 슬픔을 마치 여러분의 것인 양, 느끼고 또 같이 고통 받는 것이다. 공감의 위력을 깨달은 사람은 성배를 발견한 사람이다.

내게 가장 부족한 것. 역시 공감이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나만 소중했다면 이제 다른 사람의 슬픔에 공감하며 성배를 발견하도록 해야겠다.

 

80 우리의 젊은이들을 교육시키는 문제는 상당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과거의 패턴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자신의 창조적 가능성을 인식하고 육성하며, 그리고 이전까지의 생물학과 사회학이 증명한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발달을 더욱 꾀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 그 곳에서도 젊은이들의 교육은 힘든 문제였구나.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는 훨씬 더 어려운 문제인데

 

82 나는 이제껏 돈에 관해 완전히 무심한 삶을 살아왔다. 대신 나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함으로써 제법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결국은) 돈이 따라오게 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삶에 선사하는 것과 삶이 여러분에게 보답하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 때문이다.

83 자신이 행복해하는 것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항상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돈이 있건 없건 간에. 돈을 따른다면, 여러분은 돈을 잃을뿐더러,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84 돈이 있다는 것은 마치 차에 기름이 있는 것과도 유사해서 만약 기름이 없었더라면 결코 갈 수 없을 장소에 갈 수 있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그 장소가 내가 꼭 가야할 장소인지그건 다른 문제인 것 같다.

 

90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길을 가고 있으면 만사가 여러분에게 (자연스레) 찾아오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자신의 길이고, 어느 누구도 그 길을 앞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전례도 없는 것은 당연하고, 따라서 모든 것이 그야말로 뜻밖이며, 그야말로 적시인 것이다.

 

99 여러분도 방랑을 하게 되면, 당장 그날 하루무엇을 할 것인지는 생각하되, ‘내일은 뭘 해야지하고 미리 생각해 둔 것에 매달리지는 말아야 한다. 여러분이 아무런 책임질 일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여러분은 다음 두 가지를 결코 걱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는 굶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것이다.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100 ‘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치워 버려야 희열이 온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남과 비교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 걱정도 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서 방랑해 보자. 그리고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잘 생각해보자.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도록 하자.

 

100 방랑을 하는 동안 여러분은 일종의 신비로울 정도의 유기적인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마치 나무가 자라는 것과 같다. 다음번엔 어디가 자라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나뭇가지는 이쪽으로 자랄 수도 있고, 그 다음에는 저쪽으로 자랄 수도 있으며, 그러고 나서는 또 다른 쪽으로 자랄 수도 있다. 나무를 제멋대로 자라게 내버려 두고 외부로부터의 압력을 가하지만 않으면, 나중에 가서 여러분은 그것이 하나의 유기적 발전 과정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파르치팔은 (성배 성에서 왕의 부상에 관해 질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서도) 사람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던 대로 했기 때문에 일을 오히려 망치고 말았다는 사실을.

 

104 무엇이 여러분을 영적 성취로부터 벗어나게 만드는가? 나는 내 삶이 언제 증심에서 멀어지는지를 잘 알고 있다 바로 내 삶의 진정한 중심잡기로부터 나를 탈선시키는 어떤 업적이나 시스템과의 관계에 내가 과도하게 집착할 때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언제 정도를 걷고 있는지 알고 있다. 내 속에 가진 것 중에서도 최고로 여겨지는 것들과 만사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할 때이다.

 

104 성배 전설에서 말하는 황무지란 뭔가 (의례적으로) 마땅히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또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땅이다. 여러분에게 있어서는 과연 무엇이 그런 황무지인가? ~ 내 연구 주제에 대한 학술적 접근이라든가, 나에 대해서나 내 저술에 대해서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는 사람과의 결혼일 것이다. 그런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야말로 황무지일 것이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것 역시 내게는 황무지이다. 이것은 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내게 원하는 바를 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마지막 직장은 마땅히 해야만 한다고 여겨지는 일을 해야만 하고,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을 하는 그야말로 황무지였다. 하지만 한달에 한번 월급, 그리고 1년에 몇 차례 휴가라는 오아시스가 있어서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황무지를 벗어났지만 지금 있는 곳은…?? 또 다른 황무지가 아니라 bliss를 찾기 위해 잠깐 헤매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길을 찾아야겠다.

 

105 고귀한 마음을 지닌 사람은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황무지를, 너는 할지니의 세계를 회피하게 될 것이다. ~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에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느냐는 것이다. 만약 그런 느낌이 없을 경우, 여러분은 그저 삶에 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살아가는 셈이다.

여러분이 (의례적으로) 마땅히 어떻게 해야만 한다고 여기는 바와 정반대되는 행동이 바로 공감이다. 성배를 발견하는 사람은 그 장소에 온 사람인 동시에 공감의 삶을 사는 사람을 상징한다. 공감의 역동성을 자신의 동기(動機)로 삼는 사람만이 성배를 발견한 것이다. 이는 나와 너의 동일성에 관한 자연스러운 인식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성배의 중심이다

 

108 영혼에게 뒤집어 씌워 날지 못하게하는 그물이라도 또 다른 사람, 즉 자신의 한가운데(중심)를 발견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향후의 모험을 위해 본인이 자유롭게 선택한 옷이 된다.

 

114 여러분이 더 깊이 들어갈수록, 여러분은 궁극적인 깨달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고, 저항 역시 더 강력해진다. 여러분은 억압된 것들로 이루어진 영역에까지 내려가게 되는데, 여러분은 그 억압 체계를 반드시 지나가야만 한다. 물론 그 무엇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마법의 도움이다영웅은 이곳에 이르러서 자신의 초인적인 여정 내내 자신을 도와준 자비로운 힘이 도처에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그런 뒤에 여러분은 자신이 출발했던 바로 그 장소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여러분 자신을 발견하고 또 만드는 마지막 경험에 도달한다.

마법의 도움? 나를 도와줄 자비로운 힘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아직 내가 여정을 덜 겪은 걸까? 아님 이미 도움을 받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바보 같은 건지…?

 

116 가장 큰 문제는 생명을 황무지로 도로 가져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진정성 없이 살아가는 곳으로.

그 선물을 도로 가져와서, 그것을 합리적인 삶 속에 통합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는 오히려 지하로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여러분이 반드시 가지고 돌아와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세계에 결여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걸 가지러 간 것이다 또한 그것이 결여됨으로써 이 세계는 그것을 가져야 할 필요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여러분이 귀환함으로써 이 세계에 은혜를 베풀게 되었는데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면, 과연 여러분은 어떻게 할 것인가? ~ 이 세계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에 맞추거나 그것에 비례해, 자신이 발견한 것을 이른바 삶의 은혜로 가공하고 전달할 수단을 발견하려 노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당한 공감과 인내가 필요하다. 벽에 금 간 곳을 찾아낸 다음, 오로지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여러분의 보석을 주는 것이다.

황무지로 다시 돌아와 아무도 반기지 않는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니역시 어렵다.

 

118 다시 돌아오지 않는 한, 여러분은 결코 모험을 완결할 수 없다. 숲에 들어가야 할 때가 있고 돌아와야 할 때가 있는 것이며, 여러분은 그게 언제인지를 잘 알고 있다. 여러분은 용기가 있는가? 여러분이 숲에 들어갔다가 되돌아오려고 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꼭 황무지로 다시 되돌아와야만 하나? 숲이나 산 속에 홀로 사는 자연인들도 많던데모두가 영웅이 될 수도, 필요도 없다. 그냥 자연인으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것 같다.

 

122 사자의 임무는 너는 할지니라는 이름의 용을 죽이는 것이다. 이 자기 발견의 사자가 용을 죽이고 나면, 용 속에 묶여 있던 모든 에너지는 이제 여러분의 것이 된다. 중년이 되어서까지도 여전히 착하게 굴면 이득을 얻고, 나쁘게 굴면 벌을 받게 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뒤처진 것이다. 그들의 유아적 자아가 중년에도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적절치 않다.

나의 용, 빨간펜 선생님은 아직도 내 안에 끈질기게 달라 붙어서 나를 컨트롤하려 하고 있다. 내게는 유아적 자아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용이든 빨간펜 선생이든 죽이겠다고 했으니 이번에는 정말로 죽여 보자.

 

124 나는 하와이가 좋다. 모든 사람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장소에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 과거의 모든 격랑을 겪은 뒤에도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항해를 마치고 항구로 들어와, 이제 바다에서 겪은 갖가지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그냥 물 위에 정박한 배와도 같다.

나도 하와이가 좋다. 하와이뿐 아니라 바닷가 마을은 다 좋다. 모든 사람이 즐거운, 그리고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그런 여유와 에너지를 공유해서인 것 같다. 예전에는 은퇴 후에 카리브해 섬에 살고 싶다고 했으나 이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따뜻한 바다 마을도 괜찮고, 제주도도 좋을 것 같다.

 

137 참가자들은 각자의 마지막 보물을 포기하는 순간모크샤(moksa)’ 해방을 실제로 경험했다. ~

나 자신을 구속하던 것이 사라져 버림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가 포기한 보물을 향한 우리의 감정을 실제로 바꿔 놓은 것이다. 다시 말해 집착 없이도 그 물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더욱 증대시킨 것이었다. 정말이지 놀라웠다.

 

141 전구에게는 빛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는 의식의 질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덧없는 육체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자기 육체를 단순한 의식의 수레로 여기고, 의식을 우리 모두를 통해 현현하는 존재로 여길 수도 있다.

전구에게 빛의 질이 가장 중요하고 사람들에게 의식의 질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레와 육체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레가 튼튼하고 기능적이어야 전구도 잘 이동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육체도 건강하고 기능이 제대로 작용해야 의식을 잘 현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기왕이면 보기도 좋으면 더 좋겠지만 주객이 전도되지는 말아야겠다.

 

143 “자녀여, 그대는 이승의 삶이라는 수고로운 시련을 다 치러 내고 승리한 자이니라. 이제 우리 주님이 그대를 데려갔으니, 그 얼마나 기쁜 일이랴? 우리 역시 영원히 이승에 있는 것은 아니요, 잠시 다녀가는 것뿐이라. 우리의 삶이란 햇빛에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느니라.”

 

145 어떤 여성이 서로 충돌한 두 대의 트럭 사이에 끼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순간 자기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사례가 있다. 트럭 사이에서 빠져 나왔을 때, 이제껏 살아 온 그녀의 삶이 뚝 떨어져 나갔고, 그녀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다.

본인이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 그런데 실제로는 살아있는 걸 알았을 때, 어느 쪽이 더 황당했을까? 그래도 새 삶을 얻었다니 다행이다.

 

149 차라리 지금, 바로 여기를 경험하는 것이 더 낫다. ~ 영원한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지금, 여러분 안에, 여기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의식의 두번째 단계 깨달음을 향한 길

156 물이 잠잠해져서 침전물들이 깨끗이 가라앉고 수면이 맑게 빛나는 거울처럼 되어야 흔들리는 물결위에 흩어졌던 그림자들이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저 높은 곳의 구름과 맑은 하늘, 물가에 서 있는 나무의 그림자, 잠잠해진 맑은 물속 깊숙이 모랫바닥과 물고기들의 모습까지도 그러고 나면 물결치던 수면에서 조각조각 왜곡된 파편들에 불과하던 것이 오직 하나의 이미지로 지각될 것이다.

이 하나의 이미지는 요가에서 깨달은 자아의 이미지에 비유될 수 있다. 그것은 이 궁극의 형상 형상들 중의 형상 으로서 이 세계의 현상들은 그 속에서 불완전하고 덧없는 왜곡의 형태로 보일 뿐이다. 하나님의 형상, 붓다의 형상은 진실로 우리 자신의 깨달음의 형상이며, 요가의 목적은 그 깨달음과 우리는 결합시키는 것이다.

 

158 요가 수행자들의 첫 번째 과업은 이 단계에서 자신의 영적 기면 상태에 있는 차가운 용() 의 사슬을 깨뜨리고, 더 높은 곳으로 상승하여, 그의 영적인 스승이 되어 잠에서 깨어난 불멸의 삶이라는 희열로 그를 인도해 줄 자신의 샤크티, 보석 아가씨를 풀어주는 것이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도 그렇고 서양의 기사에게도, 피오나 공주를 구해야 하는 슈렉에게도 용은 죽여야 할 대상인걸 보니, 내 안의 용도 하루 빨리 죽여야겠다는 맘이 더 강해진다.

 

163 궁극적인 포기는 바로 여러분 자신의 존재를 포기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계속해서 여러분의 영혼에 매달린다면, 여러분은 신과 함께 있는 자가 될 수 없다. ~ 이것을 반드시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OM)’을 듣는다. 나는 신이 도처에 있음을 안다. 성스러운 에너지는 여전히 내 주위에 있다.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 바로 여기 있다.

173 “~ 옴은 자연의 소리, 다시 말해 자연이 그 스스로 즐거워할 때에 발하는 소리라네.”

 

176 “우리는 매일 밤 브라흐만의 세계로 가지만, 아뿔사, 잠든 채로 가는 것이다.” 요가의 목표는 깨어 있는 채로 그 영역에 가는 것이다.

 

177 “(그것에 관해)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알리게 되고, 배우게 되는 거지? 역시 스스로 깨달아야만 하는 건가?

 

177 여러분은 자신의 성취와 달성을, 그리고 여러분이 찾던 보물을 찾기 위해 더 이상 어디로 갈 필요가 없다. 그것은 여기 있다. 그것은 모든 곳에 있다.

그렇다면 영웅의 여정은? 그저 내면으로의 여정으로 족하는 건가?

 

184 나뭇잎에 내려앉으면 그 야자나무 잎사귀가 아래로 처질 것임을 새들은 의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떤 작은 새는 자기가 내려앉은 잎사귀가 아래로 처지면, 그 순간 곧바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안다. 신기하다. 도대체 어떤 종류의 인식인 것일까?

 

187 시간이란 감각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다시 말해 장차 일어날 일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일어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여러분은 예감이 단지 우연의 일치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

누군가를 만난다거나, 일종의 반짝하는 생각을 얻거나, 장차 여러분의 삶에서 중대한 몫을 차지할 어떤 중요한 일을 여러분이 함께 하게 될 것임을 알게 된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의 삶에 있어 크나큰 중요성을 지니게 될 사람을 만날 때에는, 그 첫 만남에서부터 장차 뭔가 벌어질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매우 신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그저 본능적으로 느껴졌어라고 생각하거나 때로 내게 신기가 좀 있는 건가했었는데, 이런 식으로의 해석도 가능하구나. 신비스럽긴 한데, 너무 신비주의로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1 여러분이 행동하는 그 순간, 여러분은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럽다. 이들은 스스로에 대해서 나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205 두려움과 욕망에 의해 위협을 당할 때에는 자아를 놓아 버려라.

 

206 불교에서는 우리가 두려움과 욕망의 세계속에서, 다시 말해 마야, 즉 환영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한다. 구원은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고 생명을 경험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예수의 행위를 통해 이 세상을 긍정함으로써, 이 세상에 기쁘게 참여함으로써 그것을 경험한다.

 

209 만약 여러분이 자신과 자신의 전통에 집착하여 여러분 혼자만 그것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인류의 나머지로부터 스스로를 제거한 셈이 된다.

 

216 만약 지옥이 황무지라면, 연옥은 여러분이 고통의 장소를 떠나는 여정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여전히 고통 중에 있지만, 가능한 깨달음을 탐색하는 중이기도 하다. ~ 내 생각에 성령에 반대하는 죄는 바로 절망이다. 성령은 여러분이 깨닫도록 영감을 제공하는 것이며, 절망은 아무것도 나올 수 없도록 하는 느낌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지옥이다.

아무것도 나올 수 없도록 하는 절대적인 지옥이라니내가 이런 느낌을 겪어보지 않았고,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는 게 다행인 것 같다. 나는 지옥까지는 아니고 연옥 정도에 있나 보다.

 

216 기쁨이 있는 장소를 찾으라. 그러면 기쁨이 고통을 태워 버릴 것이다.

혼자 살게 되면서 집이 가장 편하고 기쁨이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 곳이 고통을 태워버리는 곳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다른 장소를 찾아야 하나?

 

241 부활절 또는 부활에 있어서 항상 기본이 되는 것은 바로 십자가에 못 박힘이다. 여러분이 부활을 원한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우리는 껍질을 벗었고, 그로 인해 우리는 거듭나서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참화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아야만하며, 그래야만 그 상징성이 감지될 수 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날은 좋은 금요일, Good Friday”로 부르는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겠지. 그런 참담함이 없었더라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늘 기억해야할 말이다.

 

242 이 세상의 인간의 삶의 시험과 슬픔에 그가 참여함으로써 그가 바로 여기 우리 안에 있다는 것, 즉 타락이나 실수로서가 아니라 환희와 기쁨으로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따라서 십자가는 이중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우리가 신들을 향해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신들이 우리에게로 내려온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진정한 교통(십자가를 놓음, 즉 가로지름)인 것이다.

 

242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이 세계의 고통과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며, 그 와중에 신성한 존재의 광휘를 간파하는 것이다.

 

243 영웅의 죽음과 부활은 오래된 삶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 속으로 들어가기를 위한 모델이다.

영웅의 여정을 모델 삼아 우리는 이미 오래된 삶의 장례를 치뤘고, 새로운 삶 속으로 다시 태어나는 연습을 하고 있다.

 

258 여러분이 진정으로 성스러운 공간이라든지, 피난처를 지니려 한다면, 그곳은 우선 황무지가 아니어야 하며, 암브로시아 외부로부터 여러분 안에 불어넣는 기쁨이 아니라, 여러분이 내부로부터 나오는 기쁨 의 샘이 있는 어떤 활동 공간, 즉 여러분이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의도와 자신의 소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됨으로써, 비록 작더라도 하늘나라가 거기 있어야 한다. 내 생각에 모든 사람은 본인이야 알건 모르건 간에 그런 공간을 필요로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살고 있는 집 그 중에서도 거실과 주방을 연결하는 테이블이 그런 공간인 것 같다. 나는 집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테이블에서 보낸다. 밥도 여기서 먹고, 책도 여기서 읽고, TV도 여기서 보고, 글도 여기서 쓰고, 친구들이 왔을 때도 여기에 앉아서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떤다. 조용하지만 밖에서 적당히 소음이 들려서 너무 적막하지도 않고, 넓은 창 밖으로 산과 아파트와 하늘이 적당히 어울려서 보이는 풍경도 그럴 듯 하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번잡스런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고, 급하게 돌아가야 할 것도 아니라 마음이 편하다. 이곳을 나의 피난처라고 할 수 있을까?

 

260 여러분이 어렸을 때 하던 일, 시간을 초월하게 만들고, 시간을 잊어버리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바로 거기, 우리 삶에 깃든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 ~

어른이 되고 나면, 여러분은 자기 삶을 움직이는 힘을 반드시 재발견해야 한다. 긴장, 정직의 결여, 그리고 비현실적 감각은 여러분 삶이 잘못된 힘을 따름으로써 나타난다.

어렸을 때는 밖에서 동네 언니 오빠들과 고무줄이나 다른 놀이를 하며 시간을 잊어버리기도 했고, 책 읽기를 좋아해서 엄마가 밤에 그만 읽고 자라고 불을 끄고 나가시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그런 일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 읽기를 좋아했던 건 확실하다. 그러면 고무줄 놀이와 독서에 나의 신화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건가?

 

262 여러분의 삶이 놀이가 아니라면, 또는 여러분이 놀이를 하긴 하지만 아무런 재미가 없다면, 그 때는 그만 두도록 하라! 성스러운 공간의 정신은 바로 시바의 춤이다. 모든 의무를 벗어던진 것이다. 이처럼 의무를 벗어 던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상관이 없다. 휴식이 곧 놀이인 것이다.

262 “이 세계의 감각과 사물에 집착하는 사람은 누구나 (……) 무지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며, 자신의 열정을 표상하는 뱀에 의해 잡아먹히는 중인 것이다.”_블랙 엘크(검은 고라니)

 

262 성스러운 공간은 속세로부터 완전히 밀폐 봉인되어 있다. ~ 여러분은 날짜나 시간이 주는 자극의 영향으로부터 보호받는 영원의 장소에 있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할 때 여러분에게 일어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즉 여러분 스스로를 봉인하는 것이다. 명상의 자세는 봉인하는 자세이며, 규칙적인 호흡은 여러분의 내부로 향한 탐험을 더욱 북돋운다. 이 세계는 봉인되고, 여러분은 독립적인 실체가 되는 것이다. ~ 여러분이 장차 내적 삶을 지니려 한다면 그것은 절대 필수인 셈이다.

 

266 나는 이제껏 그와 유사한 장소를 몇 군데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생각했다. “여기서는 일종의 약진이 가능하겠군. 이곳은 내가 있고 싶은 공간으로 나를 데려가 줄 수 있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장소야.” 예배의 진정한 의미도 그것이다. 예배란 곧 성스러운 장소다.

내가 다니던 중, 고등학교는 카톨릭 학교였고, 학교 뒷동산의 한 구석에는 아주 작고 오래된 성당이 있었다. 그 때는 그 곳이 나의 성소였던 것 같다. 공부하기 싫을 때, 친구랑 뭔가 틀어졌을 때, 그냥 마음이 불편할 때, 그곳에 가면 아무것도 기도도, 묵상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편해지고 평온해졌다. 유럽에 있을 때에도 노틀담처럼 유명한 성당이 아니더라도 그저 마을에 있는 오래된 성당에 들어가면 역시 평온해졌었다. 그 때는 성당이라는 장소 자체의 기운이 평온함을 주는 줄 알았는데지금 집 근처에 있는 성당들은 두 군데 모두 마음의 평화를 찾기 어렵다. 기도는 커녕 미사 중에도 분심이 생겨서 집중이 안 되다보니 점점 미사도 거르게 된다. 너무 크고 사람들이 많고 시끄러워서 일까? 그저 내가 믿음이 약하고 게으른 신자라서 이런 핑계를 대는지도 모르겠다.

 

270 여러분이 제대로 된 길로 접어든 경우에는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진다. 기적적으로 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기적, 나에게도 일어날건가요?

 

271 명상을 할 때에는 여러분 자신의 신들에 관해 명상하라. 삶의 목표란 뭔가 더 높은 것을 향해 나아가는 탈 것이 되는 것이다. ~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파도와 함께 흔들리는 법을 배우라. ~ 세상의 쓰레기 속에서도 광휘를 발하는채로 남아 있으라.

 

274 여러분은 반드시 여러분의 신을 죽여야 한다. 여러분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모든 고정관념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278 우리는 이 세상의 슬픔을 없앨 수는 없지만,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는 있다.

기쁨 속에서 살수 있는데도 굳이 슬픔과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다. 왠지 기쁨은 너무 가볍고 고통과 슬픔 속에서만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하지만 나는 기쁨 속에서 살아가는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이것이 쾌락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기쁨 역시 고통을 넘어선 후에야 온다. 십자가의 고통 뒤에 부활의 기쁨, 기적이 온 것처럼.

 

286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의모습을 보라. 난생 처음으로 경주에 참가한 사람과는 달리, 전문적인 마라톤 선수는 자신의 외모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여러분은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경주를 하는 것이다. 이기느냐 또는 지느냐가 아니라, 오로지 경주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것은 그 자체가 사건이다. 모든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기느냐 또는 순위 안에 드느냐는 그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이것이야말로 구속 없는 참여인 셈이다.

 

286 니체는 우리가 반드시 자기 힘의 4분의 3만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것이 바로 판별이다.

가진 힘을 다 써야만 뭔가 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끝낸 후에 기뻐할 기력도 없더라.

 

298 나는 상황이 내 계획대로 되기를 욕망하고, 그런 욕망은 나로 하여금 다른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게 바로 그것이다! 이게 바로 삶이다! 바라보라! 기운이 넘치지 않는가?” 하지만 이제 나는 내가 처한 상황을 좋아할 수 있게 되었고, 아내를 기다리는 것도 더 이상은 지루하지 않다. 심리학적 변화란 이처럼 이전까지만 해도 애써 견뎌 내야 했던 것을 이제는 알고,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말한다.

 

304 삶이란 항상 슬픔이 가득하게 마련이다.

우리는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꿀 수는 있다.

세상만사 모두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우리 말과 일맥상통한다. 역시 진리는 통하나 보다. 하지만 이런 태도 때문에 사회 시스템적 문제를 문제로 보지 못하고 어쩔 수 없으니 나의 태도를 바꾸자라는 자포자기 태도가 되는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321 여신은 모든 여성 속에서 작용하며, 이는 남신이 남성 속에서 작용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그가 이렇게 말했을 때에 그의 눈에서 빛나던 광채를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신이 거기 계신 게 보입니다.”

 

의식의 세번째 단계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351 삶의 목표는 환희다. 예술은 우리가 그것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361 나는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세상에, 무려 80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었군.”

조셉 캠벨 덕에 나는 그 반 정도 밖에 안 지났을 때 깨닫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370 예술가란 예술 작품을 완성한 사람이지, 단순히 완성하려는 의도를 품었다고 해서 예술가라고 할 수는 없다. 올해나 내년에 그 작품을 판매할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는 예술 작품으로서 그 고유의 가치나 정의에 하등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반 고흐는 평생 단 한점의 작품도 팔지 못했지만, 이제는 그의 작품 두어 개만 가지고도 박물관을 하나쯤 만들 수 있을 정도다. 크나큰 심리학적 문제를 겪고 있었지만, 그는 예술가였다.

 

372 발레를 하는 사람들이 바 연습을 하는 과정에는 심미적인 것이라곤 전무하다. 춤을 추기 시작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규칙을 생각하고 있으며, 그런 와중에 작품을 고안한다. 하지만 마침내 규칙이 녹아 없어지고 자연스러운 충동이 주가 된다. 예술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오랜 속담이 있다. “우선 모든 규칙을 배운 다음, 그 규칙을 모두 잊어버려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규칙들이 순수한 행동 속으로 녹아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벨리 댄스를 할 때 동작은 정확하지만 춤이 아니라 체조를 하는 것 같았던 게 이래서 였구나. 나는 춤을 출 때도 규칙만 생각하고 자연스러운 충동이 없었다. 그래도 규칙은 아주 잘 익혔으니 이제 규칙을 모두 잊어버리자.

 

372 그제야 나는 지금까지 내가 젊어서 받은 교육의 혜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 막대한 양의 공부가 (거대한 빙산처럼) 모조리 물속에 잠겨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보는 것은 물 위에 나온 빙산의 일각뿐이다.

책을 한 권 쓰는 데 있어서 여러분은 우선 자신의 영감과 직관에서 출발한 다음, 곧 이어 어려운 과정을, 즉 여러분이 여기서 저기까지 가기 위해서 반드시 지나야 하는 지역을 맞닥뜨리게 되고, 바로 거기서 멈춰 버리게 된다. 바로 그때가 여러분이 규칙을 끌어내야 할 때이다.

또한 운동에서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나면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일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면 여러분은 아직 자신에게는 자발적이지 않은 몸을 움직이기 위해 규칙에 따라야만 한다. ~ 이 모든 것을 따져보게 되면 자발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이 모든 것을 흡수하고 난 다음에야, 여러분은 이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되어, 그 모두를 깨뜨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74 창의적 행동은 뭔가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산출하는 것이다. ~ 예술가가 되려고 시도하면서도, 그 기예를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코 예술가가 될 수 없다.

그동안 기예를 잘 배웠으니 이제 새롭고 창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낼 때이다.

 

375 예술은 조화로운 인간으로부터 비롯된다. “예술은 자연과 평행한 조화다.” 그리고 만약 그 사람이 아직 자연에 평행하지 못하다면, 예술은 그 사람을 그 지점까지 데려가기 위한 치료요법에 불과하다. ‘치료요법으로 서의 예술은 이른바 회복을 위한 것이다. 이것은 그것을 실시하는 사람 본인을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예술이 아니다.

 

376 신체를 조종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것들, 다시 말해 그 모든 훈련 과정 동안에는 본격적인 춤이 한동안 배제된다. 인도의 춤에서는 몸 전체가 따로따로 논다. 눈이 하는 어떤 일이 있고, 손이 하는 어떤 일이 있고 하는 식이다. 그러다가 이런 부분들이 다시 합쳐지면서, 우리는 예술 속에서 자연의 변모를 얻게 된다. 정말로 춤을 출 줄 아는 무용수가 되기 전까지는 정말 구경할 만한 것이 전무하다. 그러다가 또 다른 본성이 또 다른 평원에 도달하는 것이다.

춤이란 생명 그 자체의 지고한 상징이다.

 

378 춤이라는 것을 더 이상은 공연이나 전시와 같은 방식의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마치 새의 울음소리처럼 그 자체로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 오로지 신체가 그런 범위까지만 춤을 추는 것이 좋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런 변화로부터 삶이 도출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여러분은 여러분의 영혼이 필요로 하고 기뻐하는 행동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며, 나아가 그런 변화는 여러분이 하고 있는 다른 일들 속으로도 확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전체가 그 춤에 합류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춤추는 것이다.

춤만 그럴까? 우리의 삶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382 여러분의 책임과 여러분의 건강 모두를 유지하면서 여러분의 창조적 측면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밀폐 봉인된 은신처를 만들어, 매일 몇 시간 가량은 아무것도 침범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하며 여러분이 성실하게 지킬 수 있는 시간만큼 그 시간은 누구도 방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몇 시간씩 더 자신에게 허락하되, 단 여러분이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을 할 시간과 에너지는 반드시 남겨 두어야 한다.

나를 가장 많이 방해하는 건 나다. 밀폐 봉인된 은신처는 이미 있다. 한 달간 실험을 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정리해 보자.

 

383 글쓰기에 있어서는 일단 나오는 말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그냥 말이 나오도록 내버려 둬라. 이걸로 돈을 벌 수 있을까? 시간 낭비는 아닐까? 하는 비판적 요소는 그냥 놓아 버려라.

역시나 비판쟁이 빨간펜 선생이 문제였다. 어여 내쫓자.

 

385 여러분이 일찍이 한번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하려면 그 문을 계속 열어 두어야 한다. 여러분의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모든 비판을 미루어 두어야 한다. 글쓰기에 있어서도 문장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항상 이런 일을 해야 한다. 비판을 미루어 두는 것은 이른바 너는 할지니라는 용을 죽이는 것이다. 그 놈을 죽여 버려라.

우선 글을 쓰도록 하라. 비평가는 잊고 그저 쓰기만 하라. 비판적 요소를 끌어안고 문장을 다듬는 것은 그 다음에도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

글을 쓸 때에는 무모해야만 한다. 여러분의 양심이 허락하는 한 미쳐야 한다.

 

387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은 여러분을 탁 가로막아 슬럼프에 빠지게 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여러분을 계속 나아가게 한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어떤 일을 비판의 두려움 없이 계속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은 움직일 것이다. 여러분은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392 반면 불완전함은 삶이다. 삶의 모든 형태는 불완전하고, 예술의 기능은 광휘가 불완전함을 관통해 나오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다.

 

392 예술은 마땅히 마야의 드러내 보이는 힘이 되어야 한다. 즉 음악과 무용과 시각예술과 문학에서 성스럽게도 넘쳐나는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즉 실용적인 유용성은 없고 다만 그 내부의 차원을 열어 젖히는, 심미적 도취를 위한 대상을 생산하는 것이다.

역시 예술은 잉여로부터 비롯된 잉여에 의한 잉여를 위한 활동이다.

 

413 삶의 경이와 수수께끼의 지고하고도 신성한 상징에 대한 지식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은, 삶의 괴물 같은 성격과 그런 특징에 있어서의 영광을 인식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

모든 사회는 악하고, 슬픔이 가득하고, 불공평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진정으로 이 세상을 돕고 싶다면, 여러분이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은 어떻게 그 안에서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삶에 관한 지식에서 비롯되는 즐거운 슬픔과 서러운 즐거움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몸소 체득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모든 사회는, 즉 세상은 불공평하다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한다. 그리고 하나 더 내가 불공평의 혜택을 받은 사람, 즉 평균보다 위에 속한다면 (재능, 물질, 사회 환경 등 모든 면에서) 불공평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옮긴이의 말

432 한가지 단점이라면 교정자가 너무 꼼꼼하기 때문에 번역자가 태만해진다는 것 정도? 대강 해도 결국에는 잡아내니까 조심성이 없어진다는 거다.

완전 공감한다. 리뷰 또는 피드백해주는 사람이 너무 꼼꼼하면 내가 일을 좀 대충하게 되더라. 어차피 실수나 잘못 된 걸 찾아낼텐데 뭐라는 생각으로. 반대로 생각하면 교정자나 리뷰어의 입장에서 상대방의 최선을 이끌어내려면 너무 꼼꼼하지 말아야 한다.

 

433 나 역시 나만의 희열을 따르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말았노라고. 그러나 후회는 없노라고.

나도 언젠가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오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내가 저자라면

 

l  목차에 대하여

이 책의 목차는 들어가는 말, 도입의 단계, 의식의 첫 번째 단계, 의식의 두 번째 단계, 의식의 세 번째 단계, 옮긴이의 말로 서문과 옮긴이의 말을 빼면 단 4개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도 도입의 단계는 채 20 페이지가 되지 않으니 400 페이지가 넘는 긴 책이 세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는 셈이다. 한 장(chapter)이 너무 길다 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정리가 안 되고 장 안의 내용도 연계성이 부족해 보인다. 각 장을 아래와 같이 세분하면 어떨까?

 

들어가는 말

도입의 단계 (삭제)

1.     의식의 첫 번째 단계: 현세에서의 삶

1)     사랑과 결혼

2)     배움

3)     삶의 여정

4)     죽음

2.     의식의 두 번째 단계: 깨달음을 향한 길

1)     명상과 꿈

2)     하느님의 나라와 구원

3)     니르바나와 삼사라

4)     여성의 깨달음

3.     의식의 세 번째 단계: 성스러운 삶과의 조우

1)     예술의 수수께끼

2)     춤추는 삶

3)     글쓰기의 힘

4)     영웅의 귀환

5)     희열을 따르라

옮긴이의 말

 

l  보완이 필요한 점

굳이 도입의 단계가 필요했을까 싶다. 번역자도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처음에 이 부분부터 보게 되면 이해가 안 되기도 하거니와 서로 모순처럼 보이는 문장들도 있어 독자를 당혹하게 한다. 물론 캠벨 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문구들이라 굳이 첫 부분에 따로 모아 놨겠지만, 이런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는 저자가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 들어내기 아깝다면 뒷 부분에 부록처럼 모아 놓고 잘라서 책갈피 등으로 만들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l  이 책의 장점

-       한 장(chapter)은 길지만 한 소재를 2~3 페이지로 짧게 정리하고 구분해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       서양의 기독교와 동양의 불교를 적절하게 비교해서 각 종교의 장점과 종교의 기본, 왜 우리가 일요일마다 교회나 성당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한 것도 매우 좋았다.  

-       신화와 종교가 예술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나아가 글, 그림뿐만 아니라 준무용 전문가로서 무용 등에 대한 조예와 태도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책만이 가질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l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신화의 힘>과 마찬가지로 조셉 캠벨이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래도 <신화의 힘>은 한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과 답으로 구성되어 있어 한 장(chapter)을 관통하는 어느 정도 일관된 주제가 있는데 반해, 이 책은 다이앤 K 오스본의 강의록과 캠벨의 저서 가운데 발췌된 인용문 수록으로 구성되어 있어 산만하기 그지 없다. 책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기도 힘들거니와 전혀 상관 없어 보이는 인용문의 등장으로 흐름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

내가 저자 (편집자)라면 위에 정리한 목차에 따라 주제에 맞게 글을 정리해서 독자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크게 상관 없는 인용문을 대폭 들어내겠다. 이런 인용문은 괜히 페이지 수만 늘리고 독자의 이해에는 별다른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l  내가 번역자라면

이 책에는 여러분이라는 말이 계속 등장한다.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제작된 책이라고 하니 원작에서 강의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you’를 주어로 사용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 나라 책에서 많이 쓰이지 않는 여러분을 주어로 하다 보니 집중이 안 되고 거슬린다. 내가 번역자라면 내용을 크게 해치지 않는 한 여러분우리로 고치거나 차라리 주어를 생략하겠다.

전반적으로 아주 잘 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영어 실력 뿐만 아니라 신화와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조셉 캠벨의 다른 저서에 대한 연구도 필요했을 것이다. 그 밖에 조셉 캠벨이 인용한 책과 예술에 대한 지식까지, 매우 품이 많이 들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영어 문장을 그저 한글로 옮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용문의 배경, 잘못된 오역까지 지적하는 등 번역자의 방대한 지식과 상세한 설명에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신화와 인생>이라는 책, 그리고 조셉 캠벨에 대한 애정 없이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친절하게 조셉 캠벨이 착각한 것, 또는 오역이라고 하거나 번역자의 의견을 반영해서 지나치게 의역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나도 앞으로 번역을 계속 하게 될 수도 있는데, 번역자가 어디까지 원작에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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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5 10:20:57 *.124.22.184

빨간펜이 진짜 상품인 '빨간펜'인줄 알았어요. ㅋㅋㅋ 수정님이 빨간펜 세대는 아닌데 이러면서.

제 안에도 빨간펜 선생인 있어요. 우리 같이 무찔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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