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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6일 01시 15분 등록

철학이야기

 

월 듀런트(정영목 옮김)/봄날의 책

 

저자에 대해서

1885 11 5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 애덤스에서 태어났다. 노스 애덤스와 뉴저지 주 커니의 가톨릭 부설 학교에서, 그 다음에는 저지 시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수학한 후, 뉴저지 주 사우스 오렌지에 소재한 세튼홀 칼리지에 자리를 잡고 라틴어와 프랑스어, 영어, 기하학을 가르쳤다. 이후 그는 평온한 신학교에서 뉴욕의 가장 진보적인 자유주의 교육 실험 학교인 페레르 학교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 학교에서 1898 5 10일 러시아에서 태어난 아이다 카우프만이라는 제자와 사랑에 빠져 교직을 사임하고 그녀와 결혼한다. 이후 4년간 컬럼비아 대학에서 생물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1917년에 철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은 후 컬럼비아 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쳤다. 1914년부터는 뉴욕의 한 장로교회에서 역사와 문학, 철학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이 강의는 이후 13년간 주 2회씩 계속 이어졌다. 1926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철학 이야기'의 성공으로 1년 후 교직을 떠날 여력이 생긴 듀런트 부부는 가끔 씩의 평론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작업시간을(매일 8시간에서 14시간) '문명 이야기(The Story of Civilization)'에 바쳤다. 보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 1930년에는 이집트와 근동, 인도, 중국, 일본 등지를 직접 탐방하고 1932년에 다시 일본과 만주, 시베리아, 러시아, 폴란드 등지를 방문한다. 이렇게 해서 나온 것이 '문명 이야기'시리즈의 제1 '동양 문명'(1935)이다. 이후 몇 번인가의 유럽 방문을 거쳐 제2 '그리스 문명'(1939) '카이사르와 그리스도'(1944)가 준비된다. 1948, 터키와 이라크, 이란, 이집트, 유럽 등지에서 체류하며 제4 '신앙의 시대'(1950)를 저술하고, 1951년에는 제5 '르네상스'(1953)를 출간했으며, 1954년부터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독일, 프랑스, 영국에 대한 추가 연구를 시작해 종교 개혁을 새롭게 조망한 제6 '종교 개혁'(1957)을 발표했다. 이들 저작을 준비하는 데 있어 듀런트 여사의 역할은 매년 그 비중이 더욱 커져 갔으며, 7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1961)에서는 그 기여도가 너무나 커 책 표지에 두 사람의 이름이 공저자로 나란히 오르게 된다. '루이 14세의 시대'(1963) '볼테르의 시대'(1965), '루소와 혁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75년 제11 '나폴레옹의 시대'의 출간을 끝으로 50년에 걸친 이 대작은 완결된다. 에이리얼 듀런트(Arial Durant) 1981 10 25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윌 듀런트도 그로부터 13일 후 11 7일에 96세를 일기로 그녀를 뒤따랐다. (교보문고 작가 소개 중)

 

문명 이야기

“문명은 죽지 않는다. 단지 이동할 뿐이다. 거처와 복장은 바뀔지라도 계속 생존한다. 개인처럼 한 문명의 쇠퇴도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일까? 출간된 지 이미 길게는 76년에서 짧게는 36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윌 듀런트의 <문명 이야기>는 지금 읽어도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통섭(consilience)’이 화두인 한국 사회를 생각하면, 각 문명을 통째로 버무린 <문명 이야기>의 번역과 소개는 그야말로 시의적절하다

<문명 이야기>는 문명사학자 윌 듀런트(1885~1981) 1935년부터 1975년까지 40년에 걸쳐 출간한 총 11권의 대작이다. 1926년에 <철학 이야기>를 출간한 이후, 듀런트는 일체의 저술을 중단한 채 문명사 연구를 시작했다. 본래 자신이 태어났던 19세기 역사를 다루는 책을 한 권 쓸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란 본질적으로 그 원인과 기원을 탐구하기 마련. 19세기 서양 문명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다가 결국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상자’를 열고 말았다. 고대와 현대, 서양과 동양의 모든 문명을 아우르는 역사책을 쓰기로 한 것이다

1930년대 초반에는 철저한 준비를 위해 집필 대상인 동서양 각국을 탐방하고 자료를 모았다. 그래서 나온 <문명 이야기> 시리즈의 제1권이 1935년에 출간된 <동양 문명>이다. 이후 대체로 4~6년 정도의 간격으로 <그리스 문명> <카이사르와 그리스도> <신앙의 시대> <르네상스> <종교 개혁>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다> <루이 14세의 시대> <볼테르의 시대> <루소와 혁명>이 출간됐다. 그리고 1975년 제11 <나폴레옹의 시대>를 끝으로 고대 인류 문명의 기원에서 시작해 1만년의 시간을 다루는 거대한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물론 11권 가운데 이번에 초역된 부분은 제1 <동양 문명>, 2 <그리스 문명>, 5 <르네상스>이다. 각권이 2권씩 분책돼 모두 6권이고, 각권의 한글 분량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재미있다. 분량이 많고 디테일한 내용이 많을뿐더러 여러 지역을 망라한 이른바 ‘종합선물세트’ 식의 역사책은 내용이 좋아도 지루하기 마련인데, 듀런트의 이야기는 시종일관 흥미롭다. 왜일까? 1권의 머리말에 그 이유가 담겼다.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사물을 전체적으로 바라보고, 관점·통일성·시간의 역사를 통한 이해를 추구하며, 동시에 공간의 과학도 접목시키려 애쓰는, 철학에 열정을 가진 이들에게 얼마간은 유용하리라는 꿈. 

바로 그것이다. 그의 문명담론 속에는 분명 그 꿈을 향한 치열한 문제의식이 살아 있다. 더 나아가 그는 “오래전부터 선을 긋듯 역사를 나누어 서술하는 통상적인 방식은 인류 삶의 통일성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해왔다. 역사는 통시적인 동시에 공시적으로, 분석적인 동시에 종합적으로 서술돼야 한다”고 고백한다. 그랬기 때문에 대부분 한국이 아닌 외국의 이야기로 가득한 문명 이야기가 ‘남’이 아니라 ‘우리’ 이야기로도 해석될 수 있었다

번역된 것은 전체의 11분의 3에 불과하지만, 아마 가장 자주 접하는 문장은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표현일 것이다. 중국의 오랜 전통인 상고주의(尙古主義)를 연상시키는 성경 속의 이 표현은 그야말로 듀런트의 문명담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동양 문명>을 읽어보면 서양 문명에 절대 없어서는 안될 발명품들, 즉 서양의 정치 및 경제 기구, 과학과 문학, 철학과 종교의 뿌리가 상당 부분 이집트와 동양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스 문명>을 읽다 보면 산술, 기하학, 역사학, 물리학, 해부학, 독재주의, 금권주의, 민주주의 등 우리 시대 세속문화 가운데 그리스에서 유래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음에 수긍하게 된다. <르네상스>를 읽을 때는 어떤가. 근대 도시문명의 기본 요소인 상업과 예술을 둘러싼 경쟁, 풍습과 범죄, 사치 풍조와 의상, 사랑과 결혼, 그리고 전염병과 기근과 죽음의 행렬을 목도하게 된다

중국사, 그중에서도 근세 사회경제사를 전공한 ‘미약한’ 평자의 입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제1 <동양문화>. 거기에는 수메르, 이집트, 바빌로니아부터 중국과 일본의 이야기까지 담겼다. 중국과 일본 문명은 듀런트가 탈고하기 직전, 1930년대 초반까지를 담았는데,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무엇보다 종합적 문명론을 전개할 때 필수적인 시대별, 주제별 경중(輕重)에 대한 탁월한 감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동양의 인물을 묘사하고 평가할 때마다 타국의 인물을 대응시키는 방식은 재미를 넘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가령 공자는 괴테, 맹자는 볼테르, 순자는 홉스, 진시황은 비스마르크, 당태종은 악바르 대제와 호응한다

놀라운 점은 과거 중국문명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한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동양 문화>를 집필하던 1930년대 초반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투, 경제적 혼란 등으로 그야말로 제국주의 열강에 국가가 ‘과분(瓜分, 오이가 쪼개지듯 나뉘다)’된다는 위기감이 고조돼 있었다. 하지만 듀런트는 이렇게 지적했다. “중국인들을 단순히 현재 가난에 찌들어 있고 부패로 쇠약해져 있으며 내분으로 갈라져 있고 패배로 치욕을 당한 민족으로만 여겨선 안된다. 중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페리클레스 시대와 아우구스투스 시대, 메디치 가문의 시대와 견줄 수 있을 시대들이 있었고, 또 앞으로도 그런 시대를 다시 맞이할지 모르는 민족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중국에 대한 서술의 말미에서 “중국이 미국도 경험한 적이 없을 정도로 엄청난 부를 만들어내, 과거에 종종 그랬던 것처럼 사치와 예술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할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마무리했다. 근거 역시 정확했다. 1세기도 지나기 전에 중국은 정복자들을 흡수해 교화시킬 것이며, 현대 산업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산업의 기술을 모두 배울 것이다.” 정말 그로부터 80여년이 흐른 지금, 듀런트의 언급은 현실로 이뤄졌다. (경향일보 책 소개 기사 중)

 

 

마음을 무찔러 온 글귀

 

P25 – 서론

모든 과학은 철학에서 시작하여 예술로 끝난다. 가설에서 생겨나 성취로 흘러드는 것이다. 철학은 미지의 것(형이상학의 경우)이나 부정확하게 알려진 것(윤리학이나 정치철학의 경우)에 대한 가설적 해석이다. 철학은 지리의 공성전 맨 앞줄에 있는 참호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이야기해보자. 과학은 분석적 묘사이고, 철학은 종합적 해석이다. 과학은 전체를 부분으로, 유기체를 기관으로, 모호한 것을 아는 것으로 해체하기를 바란다. 과학은 사물의 가치나 이상적 가능성을 묻지 않으며, 전체적이고 최종적인 의미도 묻지 않는다.

 

P26 – 서론

구체적으로 철학은 다섯 가지 연구와 담론 분야, 즉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을 의미하고 아우룬다. 논리학은 사고와 조사에서 이상적인 방법을 연구한다. 미학은 이상적인 형식, 즉 아름다움을 연구한다. 이것은 예술의 철학이다. 윤리학은 이상적인 행동을 연구한다. 정치학은 이상적인 사회조직을 연구한다.(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공직을 차지하고 유지하는 기술이나 과학이 아니다.) 형이상학(이것은 매우 골치가 아픈데, 다른 형태의 철학과는 달리 이상에 비추어 현실을 조정하려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은 모든 사물의 궁극적 실재를 연구한다. 물질’(존재론), ‘정신’(철학적 심리학), 인지와 인식 과정에서 정신물질의 상호관계(인식론) 등의 진정한 최종적 본질을 연구한다.

 

P33 – 1장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한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취에 자부심을 느껴 밖으로 더 멀리 나갔다. 자신이 있는 곳에 관한 모든 지식을 흡수할 뿐 아니라 점점 넓게 연구하려 했다.” 이들은 점점 대담해지면서, 전에는 초자연적인 매개체나 힘 탓이라고 생각하던 사건이나 과정을 자연에 근거하여 설명하려 했다. 마법과 제의가 서서히 물러나면서 과학과 통제가 들어섰다. 그리고 철학이 시작되었다.

철학이 과학적 시도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P35- 1장 플라톤

우리는 그에 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귀족적인 플라톤이나 과묵한 학자풍의 아리스토텔레스보다 휠씬 친밀하게 느끼고 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서 정말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듯 하다. 그런데도 참 친근하다.

 

P37- 1장 플라톤

내가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철학은 의심할 때, 특히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믿음, 교조, 이치를 의심할 때 시작된다. 이런 소중한 믿음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혹시 어떤 은밀한 소망이 몰래 그것을 낳은 뒤 욕망에 사상이라는 옷을 입힌 것은 아닌지 누가 알겠는가? 마음이 방향을 거꾸로 틀어 자기 자신을 점검하기 전에는 진짜 철학은 없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아는 것에 대한 의심.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시작이다.

 

P38- 1장 플라톤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가장 어려운 문제 두 가지에 대해 아주 분명한 답 두가지를 철학에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 질문 가운데 첫째는, 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최선의 국가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P39- 1장 플라톤

종교적 교리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신앙인만이 아니라 무신론자에게도 유효한 도덕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신학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더라도 고집스러운 개인을 공동체의 평화로운 시민으로 만드는 도덕적 유대가 느슨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P42- 1장 플라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거부했다. 그때 그의 나이 일흔이었다. 어쩌면 그는 이제 죽을 때가 되었고, 다시는 이보다 쓸모 있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기운 내개.” 그는 슬퍼하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자네들은 내 몸만 묻을 뿐이라고 생각하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록해 놓았는지 처음 알았다. 내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가야할 때를 알고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참으로 부럽다.

 

P45- 1장 플라톤

스승이 죽었을 때 플라톤은 스물여덟 살이었다. 한 조용한 삶이 맞은 비극적 종말은 제자의 사상 모든 면에 흔적을 남겼다. 그는 민주정치를 경멸하게 되었고, 군중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런 경멸과 증오는 귀족적 혈통이나 교육에서 생겨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는 카토처럼 민주정치를 파괴하고 가장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을 발견하여, 그들에게 통치할 능력을 주고 또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그가 평생 몰두하는 과제가 되었다.

플라톤의 철인정치가 매우 흥미롭고 더 알아보고 싶다. 과연 철인정치가 민주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P46- 1장 플라톤

그의 경우에는 한 영혼에 철학자와 시인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아름다움과 진실이 서로 자기 자리를 찾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표현 매체를 창조했다. 그것이 대화였다.

 

P49- 1장 플라톤

플라톤이 철학이고, 철학이 플라톤이다.” 에머슨은 그렇게 말하며, 오마르(이슬람교의 제2대 칼리프) <코란>을 두고 했던 말을 <국가>에 바친다. 도서관들을 다 불태워라. 모든 도서관이 이 책에 다 들어있다.

 

P52- 1장 플라톤

여러분도 옮냐 그르냐 하는 것은 오직 힘이 동등할 때에만 문제가 된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사실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는 겁니다. 강한 자는 알 수 있는 일을 하고, 약한 자는 어쩔 수 없이 싫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윤리의 근본적인 문제, 도덕적 행위 이론의 핵심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올바름을 추구할 것이냐? 힘을 추구할 것이냐? 선한 것이 낫냐? 강한 것이 낫냐?

 

P55- 1장 플라톤

귀족정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집단을 지나치게 좁히는 바람에 망한다. 과두정치는 눈앞의 부를 향한 무모한 쟁탈전 때문에 망한다. 어느 경우든 끝은 혁명이다. 혁명은 사소한 이유와 작은 변덕 때문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작은 일을 계기로 발생한다 해도, 그동안 쌓인 심각한 잘못들의 결과가 급작스럽게 터져 나온 것이다.

모든 것은 계기가 있을 뿐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쌓이고 쌓인 것이 발화점을 만나 터지고 마는 것이다.

 

P55- 1장 플라톤

민주정치도 지나침 때문에, 지나친 민주주의 때문에 망한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관직을 맡고 공공정책을 결정하는 일에서 모두가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언뜻 보면 기분 좋은 합의 같다. 그러나 인민이 교육에 의해서 최고의 통치자를 뽑고 가장 지혜로운 방향을 선택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 못한 탓에 참담한 결과가 온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놀라운 혜안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찬양하며 대중의집단 지성에 극찬하지만 정말일까? 믿을 수 없는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는? 우리 사회의 선거 결과들은? 과연 대중의 지혜가 결집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P55- 1장 플라톤

우민정치는 국가라는 배를 띄우기에는 너무 거친 바다다. 웅변의 바람만 살짝 불어도 물이 일렁여 항로가 틀어진다. 그런 민주정치의 결말은 참주정치나 독재정치다.

웅변의 바람이 오늘날 비툴어진 언론의 모습은 아닐까?

 

P56- 1장 플라톤

플라톤은 생각하면 할수록, 변덕스럽고 속기 쉬운 군중에게 정치적 공직자를 선출하는 일을 맡기는 어리석음에 놀란다. 민주정치의 무대 뒤에서 과두정치의 줄을 잡아 당기는 부를 섬기는 음침한 전략가들에게 그 일을 맡기는 것은 말할 가치도 없다.

 

P58- 1장 플라톤

민중에게는 철학자의 인도가 필요하다. “부에 의해 마음이 들뜬 상인이 통치자가 될 때 파멸이 찾아옵니다.”

우리나라의 이명박대통령이 생각난다. 그의 개인 욕심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강이 파헤쳐지고 지금도 우리는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P58- 1장 플라톤

나라를 인도하는데 적합한 사람은 오직 철학자 군주뿐이다. “철학자가 왕이 되거나, 이 세상의 왕이나 군주가 철학의 정신과 힘을 가지기 전에는 즉 지혜와 정치적 지도력이 한 인간 안에서 만나기 전에는 도시, 나아가 인류에게도 결코 악이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플라톤의 사상이라는 아치 꼭대기의 이맛돌이다.

철학 정치는 매우 흥미롭지만 정말 현실적일까? 이것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할까?

 

P59- 1장 플라톤

우리는 모든 아이에게 처음부터 교육의 기회를 완전히 평등하게 부여해야 한다. 어디서 재능이나 천재성의 빛이 터져 나올지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계급과 인종에 관계없이 어디에서나 공평하게 그 빛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가는 길에서 첫 고비는 보통교육이다.

100% 동감한다. 교육기회의 평등한 부여가 민주사회의 첫번째이자 핵심이다.

 

P63- 1장 플라톤

신앙을 갖고 싸우면 두 배로 무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어떤 믿음도 증명할 수는 없지만, 신은 결국 우리 사랑과 희망의 인격화한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영혼은 수금의 음악과 같아 그것을 만들어내는 악기와 함께 소멸할 지 모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파이돈>의 주장은 이렇게 파스칼식으로 이어진다.) 그것을 믿는 것은 우리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한없이 이익을 줄 수도 있다.

종교를 그동안 정치적으로 이용해 온 이유이다.

 

P64- 1장 플라톤

다시 단순한 수나 단순한 힘이 지배하는 세상, 사이비 민주정치라는 역겨운 희극이 지겹게도 처음부터 다시 재연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무엇이 막아줄까? 이런 측면에서는 종교와 신앙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 될 것이다.

 

P69- 1장 플라톤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흉터 많은 쉰 살이 되어, 침착하고 자신감이 넘칠 것이고, 삶의 무자비한 마찰에 학자연하는 허영이 깎여 나갔을 것이며, 전통과 경험, 문화와 갈등이 협력하여 빚어낸 지혜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마침내 이 사람들은 자동으로 국가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자동으로- 즉 투표하는 위선없이 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란 기회, 특히 교육 기회의 완전한 평등을 의미한다.

교육이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 구현을 위한 첫 걸음이자 키라고 생각한다.

 

P73- 1장 플라톤

그들은 한 여자가 아니라 공동체에 헌신한다. 심지어 그들의 자녀도 특정하게 어떤 사람의 자녀로 구분되거나 한 사람에게 귀속되지 않는다. 수호자들의 모든 자녀는 태어날 때 어머니에게서 데려와 함께 키운다. 이렇게 엉커 자라는 가운데 부모자식 관계는 사라지게 된다.

정말 현실 가능한 이야기일까?

 

P74- 1장 플라톤

남자는 서른 이상 마흔다섯 이하일 때만 재생산을 할 수 있다. 여자는 스물이상 마흔 이하일때만 할 수 있다. 서른다섯살이 되어도 결혼하지 않는 남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하여 결혼의 행복을 맛보도록 유도한다.

인간의 본성을 무시한 일률적인 독재국가에서나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P76- 1장 플라톤

우리의 정치구조 꼭대기에는 소규모의 수호자 계급이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이 계급은 대규모의 군인과 조력자계급의 보호를 받는다. 상업, 산업,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으로 이루어진 넓은 기초 위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 경제적 계급은 개인 소유, 개인의 짝 개인 가족을 유지한다. 그러나 수호자들은 개인의 지나친 부나 가난을 막기 위해 교역과 산업 분야 진출을 규제당한다.

 

P77- 1장 플라톤

진리란 무엇인가?, 그러나 철학자들은 아직 대답을 하지 못했으며,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도 말해주지 못했다. 그러나 정의만큼은 플라톤이 정의를 시도한다. “정의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이란 딱 맞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자신이 받는 것과 똑 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매우 조화롭고 능률적인 집단이 될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공자가 이야기하던 조화로운 사회가 생각하기도 한다. 본인의 자리에서 본인의 역할을 다할때가 이상적인 사회가 유지되고 운영된다는 공자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다.

 

P81- 1장 플라톤

가톨릭은 이런 교의들에 따라 힘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유럽의 민중을 통치할 수 있었다. 유럽 민중은 기꺼이 이런 통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천 년 동안 이 통치자들을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뒷 받침했으며, 정부에게 목소리를 내겠다는 요구도 하지 않았다.

 

P83- 1장 플라톤

흔히 플라톤은 일부일처제라는 제도, 그리고 그 제도에 달라붙은 도덕률에 축적된 관습의 힘을 과소평가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남자가 아내의 일부만 나누어 갖는 데에 만족하리라고 생각하여, 남성의 소유욕에 기초한 질투를 과소평가했다. 또 국가에서 자식을 데려가 냉정한 익명성을 전제로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어머니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가정하여 모성본능을 가볍게 여겼다.

동감한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 무시한 것은 아닐까? 이성적으로는 동의할 지 모르나 정말 본인의일이라면 선뜻 실천하지 못할 것이다.

 

P86- 1장 플라톤

기본적으로 플라톤의 말은 옳다. 그렇지 않은가?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의 통치다. 플라톤의 사상을 우리 시대와 한계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공감이 가는 결론이다. 플라톤의 민주정치에 대한 문제제기에 공감한다. 어떻게 하면 민주정치의 한계를 극복할 것인가?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P94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도서관 분류 원칙을 만든 일도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집을 읽는 자의 집이라고 불렀다. 이 표현은 아주 진심 어린 칭찬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신기하다. 우리가 그럼 아직까지 도서관에서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든 분류 체계로 책을 찾고 있다는 말인가?

 

P95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펠라의 궁으로 불러 알렉산드로스의 교육을 맡긴 것은 그로부터 바로 1년 뒤의 일이었다. 당대 가장 위대한 군주가 미래 세계의 주인을 가르칠 가장 위대한 스승을 찾아 수소문하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골랐다는 것은 우리의 철학자의 명성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이었다는 에피소드는 유명한 일화인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잘 몰라도 이 일화는 알고 있는 것 같다.

 

P101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럼에도 그와 그의 조수들이 모은 방대한 자료는 과학 발전의 기반이 되었고, 향후 2000년 동안 지식의 교과서가 되었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이 이루어낸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수백 권에 달한다. 고대의 어떤 사람은 그가 400권을 썼다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1000권을 썼다고도 한다.

 

P103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첫 번째 위대하고 탁월한 점은 거의 선배없이, 거의 전적으로 혼자 열심히 생각해서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P104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논리학이란 간단히 말해 정확하게 사고하는 기술과 방법을 뜻한다. 이것은 모든 과학, 모든 학문, 모든 예술의 방법이다. 심지어 음악도 논리를 품고 있다.

P107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실물로 돌아가라고, ‘시들지 않는 자여의 얼굴과 실재로 돌아가라고 가르쳤다. 그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들, 살과 피로 이루어진 개인을 휠씬 좋아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국가>에서도 완벽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개인을 파괴해버렸다.

플라톤의 국가는 너무나 이상주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인간의 본성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다. 

 

P109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철학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주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들이 놓은 기초 위에 세워졌다. “ 이전에 태아 상태였던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세상에 태어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과학에 이렇게 많은 기여를 했는지는 처음 알았다. 그냥 철학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아 이런 무지한 자여 

 

P117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마지막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발생학이라는 과학을 확립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사물이 자라는 것을 처음부터 보는 사람이 그 사물을 가장 잘 볼 것이다.” 그전에 그리스 최고의 의사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년 출생)는 달걀을 부화의 여러 단계마다 깨뜨려 실험 방법론의 훌륭한 예를 보여주었고, 이런 연구 결과를 자신의 논문 <유아의 기원에 관하여>에 적용했다.

무엇을 물을지 아는 것은 이미 반은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물을지 안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알기 때문에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P121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는 습관의 힘을 강조하여, 처음으로 습관을 2의 천성이라고 불렀다.

고대 구본형선생님이시다. 현인들은 다 통하는 것 같다. 

 

P124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은 선을 위한 선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행복 자체를 위해 행복을 선택하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결코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명예, 쾌락, 지성을 선택한다. 그것들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다른 존재들과 무엇이 다른지 물어봄으로써 그리고 인간의 행복은 이런 인간 고유의 특질이 완전하게 발현되는 데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길을 찾으려 한다. , 인간이 독특하게 뛰어난 점은 사고의 힘이다. 이것에 의해 인간은 최고의 자리를 주었듯이, 그 발달은 인간에게 성취와 행복을 안겨줄 거라고 가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용기는 겁과 무모함 사이에 있다. 관대함은 인색함과 사치 사이에 있다. 야망은 나태와 탐욕 사이에 있다. 겸손은 비굴과 오만 사이에 있다. 정직은 과묵과 다변 사이에 있다. 명랑은 우울과 익살 사이에 있다. 우정은 다툼과 아첨 사이에 있다. 자제는 햄릿과 우유부단과 돈키호테의 충동적 행동 사이에 있다.

덕 또는 수월성은 훈련과 습관화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기술이다, 덕 또는 수월성이 있기 때문에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올바르게 행동했기 때문에 덕이나 수월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덕은 사람이 행동을 함으로써 그 사람 안에 형성된다. 우리는 우리가 되풀이하는 행동의 결과물이다, 따라서 수월성은 하나의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인간의 선은 완전한 삶의 수월성을 향해 나아가는 영혼이 이루는 것이다. 제비 한 마리나 화창한 날 하루로 봄이 오지 않듯이, 인간 또한 하루나 짧은 시간에 축복 받는 행복한 삶을 얻을 수 없다.

모든 것은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서 오는 것이다. 그것이 습관이 되고 삶의 일부가 될 때 이룰 수있는 것이다.

 

P127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러나 우리의 현실적인 철학자는 중용만이 행복의 비결은 아니라고 말한다. 상당한 수준의 재화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은 사람을 인색하고 탐욕스럽게 만든다. 반면 소유가 있으면 근심과 탐욕으로부터 자유를 얻을 수 있으며, 이것이 귀족적인 여유와 매력의 원천이 된다.

현실적이긴 한데 그럼 귀족,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P127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이렇게 외부에서 행복을 지원하는 것 가운데 우정이 가장 고귀하다. 사실 우정은 불행한 사람보다는 행복한 사람에게 더 필요하다. 행복은 나눌수록 늘어가기 때문이다. 또 우정은 정의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친구사이라면 정의는 불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의롭다 해도 우정은 여전히 은혜가 된다,” 친구란 두 몸에 잇든 하나의 영혼이다.”

친구란 인생의 선물이자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P128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러나 외적인 재물이나 인간관계가 행복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행복의 핵심은 여전히 우리안에, 원숙한 지식과 영혼의 맑은 상태에 있다. 분명 감각적 쾌락의 충족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조잡한 에프쿠로스적 관념을 긁으니까 가려워지고 가려워지니까 또 긁는다고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다. 또 정치적 출세도 행복에 이르는 길이 아니다. 그 길로 가면 민중의 변덕에 휘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로지 진리를 추구하거나 포착했을 때 생기는 기쁨만 신뢰할 수 있다. “지성의 활동은 그 자체를 넘어선 목표를 노리지 않으며, 그 자체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이 기쁨이 지성의 활동을 촉진한다. 자족, 끈기, 휴식 능력 같은 속성들은 분명히 이런 활동에 따라는 것이므로, 그 안에 완벽한 행복이 있음이 틀림없다.

결국 행복은 우리 안에 있다. 내 마음 속에, 나의 삶 속에 있다.

 

P130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인 것과 관련해서는 플라톤의 실재론과 싸우고, 정부와 관련해서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와 싸운다. 그는 선생이 그린 그림에서 어두운 지점을 많이 찾아낸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사회적 능률보다는 개인적 특질, 사생활, 자유를 높이 평가한다.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을 모두 형제나 자매로 부르고 싶어 하지도 않고, 나이가 많은 사람을 모두 아버지나 어머니로 부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스승과 제자가 이렇게 차이가 난다. 그래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위대한 업적은 플라톤이란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P134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는 남성에게 불가결한 유리한 지위를 부여하기로 작정한 것처럼, 서른일곱 살 정도까지 기다렸다가 스무 살 정도의 처녀하고 결혼하라고 권한다.

참 특이한 이론이다. 만약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큰 비난에 직면하지 않을까? 

 

P136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혁명은 거의 언제나 지혜롭지 못하다. 몇 가지 선을 이룰지도 모른다. 많은 악을 대가로 치러야 하며, 그 가운데 주된 것은 모든 정치적 선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 질서와 구조의 교란, 나아가서 해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보수주의자인 것 같다.

 

P136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독재적인 통치자라면 특히 신들을 섬기는 데 열심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통치자가 신앙이 깊어 신들을 숭배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그의 손에 부당한 일을 당할 것을 덜 두려워하고 신들이 그의 편에서 싸워줄 것이라 생각하여 그에 반대하는 음모를 꾸미는 일도 줄기 때문이다.

끔직한 통찰이다. 근데 정말 일리 있는 이야기 같다. 

 

P138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계속 벼락부자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조만간 정치적 직책은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넘어갈 것이다.

놀랍다. 오늘날 지금의 현상을 예측한 것이 아닐까?  

 

P138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러나 민주정치는 전체적으로 귀족정치보다 열등하다. 민주정치는 평등이라는 그릇된 가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정치는 한가지 면(예를 들어 법이라는 면)에서 평등한 사람들이 다른 모든 면에서도 평등하다는 관념에서 나온다.

이런 언급에 대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현대에서 일부분 적용될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P139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입헌정부 자체가 민주정치와 귀족정치의 중간인 것과 마찬가지다. 모든 공직으로 가는 길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면 국가는 충분히 국가는 충분히 민주적일 것이다. 반면 공직들이 그 길을 따라오면서 충분히 준비를 갖춘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다면 충분히 귀족적일 것이다. 어떤 각도에서 우리의 영원한 정치적 문제에 접근하든 우리는 늘 똑 같은 결론에 이른다.

 

P141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러나 2000년이 흘렀어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에서 부수적인 것만 바뀌었다는 사실, 오컴과 베이컨과 휴얼과 밀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태양에서 흑점밖에 찾아내지 못했다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가 창조한 이 새로운 학문 분과, 그가 탄탄하게 확정한 그 기본 방향은 인간 정신의 영원한 성취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면, 아마도 우리는 바보이리라.

우리는 아직 그의 품 안에 있다. 

 

P141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리스 철학은 다시 도달할 수 없는 높이까지 뛰어올랐지만, 그리스 과학은 뒤에 처져 절뚝거렸다. 그러나 현대의 위험은 정반대다, 귀납적 자료는 베수비오 화산의 용암처럼 사방에서 쏟아진다. 정리되지 않은 사실들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우리 정신은 종합적 사고와 통일적인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새끼를 치고 늘어나 전문화의 혼란으로 치닫는 과학들에 압도당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의 가능한 모습의 한 조각에 불과할 뿐이다.

현대의 과학은 방향을 잃은 채 잠재력을 분출하면서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 가야하나? 길을 잃고 있다.

 

P143 –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그래서 그는 우회로를 거쳐 플라톤과 같은 결론에 이르러, 소유는 사적이어야 하지만 그 사용은 가능한 공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생산수단의 개인적 통제가 자극을 주고 유익한 기능을 하는 때는 오직 이런 수단이 누구라도 살 수 있을 만큼 단순할 때 뿐이며, 생산수단이 점점 복잡해지고 비싸지면서 소유와 권력의 위험한 집중, 나아가 인위적이고 마침내 파괴적인 불평등이 생긴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다.

다른 어떤 사상가도 세계의 계몽에 그렇게 기여한 적이 없다. 그 뒤의 모든 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존하며, 진리를 보기 위해 그의 어깨에 올라선다. 알렉산드리아의 다양하고 웅장한 문화는 그에게서 과학적 영감을 발견했다.

아직도 우리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는 이유인 것 같다.

 

P152 –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스의 질은 아시아의 양을 감당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승리의 순간에 동양 정신에 정복당했다. 그는 (여러 귀족 중에서도) 다리우스의 딸과 결혼했다. 페르시아식 왕관과 복식을 채택했다. 유럽에 왕권을 신성시하는 동양적 관념을 도입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웅장한 동양적 방식으로 자신이 신이라고 선언하여 회의적인 그리스를 놀라게 했다. 그리스는 비웃었고, 알렉산드로스는 술로 명을 재촉했다.

 

P159 – 프랜시스 베이컨

스콜라 철학은 이 껍질 내부의 비좁은 곳에서 신앙에서 이성으로, 이성에서 신앙으로 오가며 비판받지 않는 가정과 미리 정해진 결론이라는 당혹스러운 회로를 맴돌았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리비아어와 유대어 번역본에 기독교 왕국 전체가 깜짝 놀라며 자극을 받았다.

 

P161 – 프랜시스 베이컨

지식이 늘어나면서 공포는 줄었다. 인간은 미지의 것을 섬기기보다는 정복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자신감이 모든 활기찬 정신을 고양시켰다. 장벽은 무너졌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제한이 없었다.

 

P165 – 프랜시스 베이컨

사랑과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은 효과가 없다. 언제나 내주어야 하지만, 절대 다 내주면 안 된다. 받는 쪽에서는 기대가 있어야 고마운 마음을 키워나가는 법이다.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인 듯싶다.

 

P169 – 프랜시스 베이컨

이 추출된 지혜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추출할 수 있을까? 아마 베이컨의 최상의 출발점인 동시에 중세 철학의 양식에서 가장 매혹적으로 벗어난 지점은 그가 에피쿠로스의 윤리를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본성에 대한 승리를 지나치게 과신해서는 안 된다. 본성은 오랫동안 묻혀 있다 가도, 기회나 유혹을 통해 소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대변한다. 그래서 인간이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 인간의 불확실성을 이해해야 한다.

 

P172– 프랜시스 베이컨

인간의 정신은 철학을 조금만 알 때는 무신론으로 기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철학으로 깊이 들어가면 종교로 돌아가게 된다.

 

P173 – 프랜시스 베이컨

우정의 주요한 효과는 온갖 종류의 뜨거운 감정으로 잔뜩 부풀어 오른 가슴을 열고 속에 든 것을 방출하여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친구는 귀다. 자신을 열 친구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잡아먹는 식인종이다.

어떤 일에서 오랜 세월 쌓인 경험은 그 경험의 범위 내에서는 사람을 인도하지만, 새로운 일에서는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P174 – 프랜시스 베이컨

피타고라스의 가르침이 적절하다. 즉 최선을 선택하면 습관이 그 선택을 기쁘고 편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습관은 인간 삶의 최고 지휘권자이니까.

습관은 인간의 삶을 이끈다.

 

P182 – 프랜시스 베이컨

그러나 탐사의 끝에 가서 과학은 그 자체로는 충분치 않다는 결론에 이른다. 과학 바깥에 그 과학을 종합하고 목표를 제시할 힘과 규율이 있어야 했다. “과학이 거의 발전하지 못한 데는 다른 크고 분명한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은 목표 자체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방향을 바르게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P183 – 프랜시스 베이컨

정부도 과학과 마찬가지로 철학의 부재로 고생한다. 과학에서 철학의 위치는 정치에서 정치적 능력의 위치와 같다. 목표 없는 개별적인 탐색과 대비되는, 완전한 지식과 전망의 안내를 받는 운동이 철학이다.

 

P186 –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의 가장 큰 성과는 <신기관>의 첫 권이다. 이 말은 베이컨의 가장 신랄한 비판자가 한 말이다. 이제까지 논리에 생명을 불어넣어, 귀납추리를 서사시적 모험이자 정복으로 만든 사람은 없었다. 따라서 누가 논리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이 책에서 시작하게 하라.”

 

P187 –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은 명불허전인 오류 분석으로 나아간다. 콩디야크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오류의 원인을 베이컨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 오류 가운데 첫째가 종족의 우상으로, 이것은 인류 전체가 타고나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이 사물의 기준이라는 잘못된 주장이 퍼져있다.

 

P189 –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은 두 번째 오류의 범주를 동굴의 우상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개인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그 나름의 동굴이나 굴이 있는데, 이것이 자연의 빛을 굴절시키거나 변색시킬 수 있다. “ 이것은 본성과 양육, 그리고 신체와 정신의 조건이나 분위기에 의해 형성된 그 사람의 성격이다.

P189 – 프랜시스 베이컨

세 번째가 사람들 사이의 교섭과 연합에서생기는 시장의 우상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대화하지만, 말은 군중의 이해를 따르는 것이라 부적절하게 형성된 나쁜 말에서는 정신이 놀라운 장애에 부딪힌다.”

 

P194 – 프랜시스 베이컨

결국 가라앉은 것은 큰 대륙이 아니라, 바다를 항해하려는 사람들이 용기였던 셈이다. 이제 옛 아틀란티스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러나 여기에는 힘이 세기는 하지만 베이컨이 상상하던 뛰어난 유토피아 사람들과는 같다고 할 수 없는 종족이 살았다. 그래서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생각했다.

 

P196 – 프랜시스 베이컨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에 의해 인도되어 알맞은 풍요 속에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모든 사상가의 꿈은 정치가를 과학자로 대체하는 것이다. 유토피아를 구현하려는 노력이 그렇게 여러 번 이루어졌음에도 왜 이것은 꿈으로만 남아있는가?

어쩌면 과학은 아직 세상을 정복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의 세상이 그런 세상이 아닐까? 과학이 철학을, 사람의 정신을 압도하고 있다.

 

P199 –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의 방법론은 정확한가? 이것이 근대 과학에서 가장 큰 성과를 내는 방법인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이 가장 큰 성과를 내는 방법인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과학이 가장 큰 성과를 낸 것은 자료의 축척과 <신기관>의 복잡한 표를 통한 조작이 아니라 가설, 연역, 실험이라는 더 단순한 방법에 의지했을 때 였다. 예를 들어 다윈은 멜서스의 <인구론>을 읽다가 인구 증가 속도가 생존 수단의 증가 속도보다 빠르다는 가설을 모든 유기체에 적용해 볼 생각을 했다,

 

P202 – 프랜시스 베이컨

영국 사상의 전체 기조와 경로는 베이컨의 철학을 따라갔다. ㅅ상을 데모크리토스식 기계론적 맥락에서 생각하는 그의 경향은 비서인 홉스에게 철저한 유물론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었다. 로크는 관찰에서 구속되지만 신학과 형이상학으로부터 자유로운 경험심리학의 아이디어를 그의 귀납적 방법에서 얻었다. ‘상품결과의 강조는 벤담에게서 유용한 것과 선한 것의 동일성으로 정리되었다.

P204 – 프랜시스 베이컨

괴테는 말했다. “한 사람의 약점은 그의 시대에서 온다. 반대로 그의 장점과 위대함은 그 자신의 것이다.” 이것은 시대정신에게는 약간 부당해 보이지만, 베이컨의 경우에는 특히 적절하게 들어맞는다.

 

P206 – 프랜시스 베이컨

베이컨은 유언장에 특유의 당당한 말을 남겼다. “ 내 영혼은 신에게 물려주겠다. 몸은 눈에 띄지 않게 묻어라. 내 이름은 다음 시대와 외국에 물려주겠다.” 다음 시대와 많은 나라들이 그를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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