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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0일 23시 26분 등록

11기 연구원 장성한

사기열전1_1

사마천 지음 / 김원중 옮김

민음사

 

 

1. 저자에 대하여

 

시대적 전환의 한 가운데에 처한 역사가 사마천

 

오랜 분열의 춘추전국 시대를 마감시킨 진() 제국은 강권통치에 바탕을 둔 급격한 통일책이 실패로 돌아가며 무너졌다. 최후의 승자 한() 고조 유방은 진 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파란을 피하고 안정에 치중했다. 무위(無爲)를 중시하는 황노(黃老)사상이 전한(前漢) 초기를 특징짓는 이념이었다. 7대 황제 무제(武帝) 유철(劉徹, 재위 기원전 141~87)은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정책으로 전환했다. 무제는 흉노를 비롯한 주변 민족들을 공격, 압박하고 서방 교통로를 확보했으며 국내 제후의 권력을 사실상 소멸시키고 민간의 유력자들을 억압하며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였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이 국가 재정 위기를 초래하자 소금과 철에 대한 전매 제도를 시행하고 증세를 단행함으로써 백성의 부담이 무거워졌다. 무제는 절대적인 황제권을 확립시키면서 권력의 중앙 집중화를 꾀하고, 유교를 국가공식이념으로 중시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법가사상에 바탕을 두어 통치했다.

 

무제의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등용된 인물들은 지방에서 추천된 인재들 가운데 황제 자신이 선발한 새로운 관료 집단이었다. 그들은 상황에 따른 개인적 판단을 중시하며 법률의 유연한 적용을 지향하던 예전의 통치방식 대신 법률을 엄정하게 적용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러한 정치, 사회, 사상적 변화를 무제 시대의 관료로서 직접 겪은 사마천은 새로운 전환의 시기를 종합적으로 조망하면서 먼 과거로부터 무제 시대에 이르는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 여러 지역까지 포괄하는 역사, [태사공서(太史公書)]를 서술했다. (후한 시대부터 [사기(史記)]로 불림)

 

[사기]의 체제, 중국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세계질서관

 

이른바 기전체(紀傳體)의 통사(通史) [사기] 130, 52 6,500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체제는 지배자 또는 지배 왕조의 일을 연대순으로 기록한 본기(本紀) 12, 연표와 월표를 구사하며 다양한 사항의 변화를 포착하여 보여주는 표() 10, 정치사가 미처 포괄하지 못한 문화, 제도, 경제, 교통, 제사 등에 걸친 사항을 다룬 서() 8, 제후 왕들과 그에 준한다고 판단한 인물들의(예컨대공자세가’) 역사와 전기를 다룬 세가(世家) 30, 다양한 분야에 걸친 주목할 만한 개인들의 일대기와 주변 민족들의 역사를(예컨대조선전’) 다룬 열전(列傳) 70권 등이다. 또한 각 편이 끝날 때마다태사공왈로 시작하는 사마천 자신의 짧은 평론이 실려 있다.

 

[사기]의 체제에서 본기, 세가, 열전은 그 순서대로 하나의 위계적 동심원을 이룬다. 어떤 의미에서 [사기]의 체제는 중국의 황제, 제후 왕, 그리고 개인과 주변 민족으로 구성된, 황제를 정점으로 하는 위계적 세계질서관 그 자체인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중화(中華) 중심주의적 세계관 또는 화이(華夷) 이분법적 틀을 확립시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예컨대 그는 흉노에 대해음습하고 불길한 땅에 사는 호전적인 야만인으로 지목하며 오랑캐로 규정했다. 이에 관하여 건국 이래 지속적으로 흉노의 압박에 밀리다가 드디어 황제국가의 이념, 즉 하늘 아래 만방이 모두 황제 일인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는 이념을 현실에서 추구할 수 있게 된 무제 시대에 사마천이 살았다는 점도 감안해볼 수 있겠다.

 

치욕 속에서도 굳게 지킨 역사가로서의 사명감

 

사마천은 제6대 황제 경제(景帝) 중원(中元) 5(기원전 145. 다른 주장도 있음)에 오늘날의 섬서(陝西) 성 한성(韓城)현에서 태어났다. 10살 무렵 고문(古文)을 깨우치고 10대 초부터 강남, 강북의 여러 지방을 두루 편력한 뒤 산동과 하남을 거쳐 수도 장안에 들어가 낭중에 임명됐다. 이후 황제의 명으로 사천 지방에서 운남의 곤명까지 여행을 하는 등 중국 각지를 돌며 특히 역사의 무대가 되었던 많은 곳을 방문했다. 이러한 경험이 [사기] 편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결코 문헌자료만 파고드는 책상물림의 역사가가 아니었다.

 

기원전 110년 무제가 천지(天地)에 제를 거행하는 봉선(封禪) 의식을 위해 태산을 방문했을 때, 천문역법을 관장하고 황실 전적을 관리하는 태사령(太史令) 벼슬에 있던 아버지 사마담은 낙양 땅에 머물다가 봉선 의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를 깊이 한스럽게 여긴 사마담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운남에서 급히 돌아온 사마천은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역사서 편찬의 꿈을 잇고자 결심했다. 3년 상을 치르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태사령이 된 사마천은 황실의 장서를 이용하여 역사서 편찬에 착수했다. 기원전 99년 장군 이릉(李陵)이 흉노에 투항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사마천은 이릉의 입장을 변호하다가 투옥되어 이듬해 궁형, 즉 생식기를 잘라내는 형벌을 받았다. 인간으로서 당할 수 있는 가장 치욕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 사마천은 그러나 역사가로서의 사명감을 더욱 굳건히 하며 편찬 작업에 전념했다.

 

사마천의 역사관, 왕조의 성쇠(盛衰)와 문명의 순환

 

사마천이 역사를 쓸 때 늘 모범으로 의식했던 것은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지는 [춘추(春秋)]였다. [춘추]는 공자의 고국 노나라의 연대기에 바탕을 둔 텍스트로, 역사상 사건과 인물에 대한 가치 판단을 미묘하면서도 간결한 필치로 보여준다. 사마천 당시에는 공양학파의 [춘추] 해석이 가장 유력했는데, 공양학파의 대표적 인물 동중서(董仲舒)에게 배운 사마천은 사실을 기록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사상을 담으려 했다. 이에 따라 [사기]는 단순히 역사 사실을 나열하는 책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 대한 사마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엄정한 현실 비판을 통해 사마천은 자신의 이상(理想)을 드러내려 했다.

 

사마천은 각 왕조의 역사를 최전성기에서 쇠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파악했다. 중도에 일시적인 중흥기가 있기는 하지만 성()에서 쇠()로 하강선을 그린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탁월하고 영웅적인 인물이 나라를 세우고, 우둔하고 무능력한 황제에 의해 쇠락의 길을 걷다가 폭군에 의해 멸망하는 패턴이 하(), (), (), 이른바 삼대(三代) 왕조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왕조 성쇠의 요인이 황제 한 사람의 도덕적 기질과 능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사마천은 하, , 주의 정치와 문화의 특질을 각각 충(), (), ()으로 파악하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퇴락하면서 그 각각이 야(. 조야함), (. 미신), (. 경박함, 허식) 등으로 변했다고 판단했다.

 

요컨대 하는 충에서 야로, 은은 경에서 귀로, 주는 문에서 시로 변화한 역사라는 점에서 그 내용은 달라도 패턴은 같다고 본 것이다. 결국 전() 왕조의 퇴락하고 부패하는 정치와 문화 상황을 다른 이념으로 대체시킴으로써 극도의 쇠락에서 극도의 번성으로 극적 전환을 이루는 것이 왕조 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관에 따른다면 왕조의 교체는 단순한 왕가(王家)의 교체로만 볼 수는 없으며 정치와 문명의 양식과 본질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역사적 요청에 대한 적극적인 응답이 된다. 사마천은 삼대(三代) 순환설과 함께 문질(文質) 교대설도 언급했다. (문화적 꾸밈, 세련됨)과 질(조야함, 질박함)이라는 상반되는 특질이 교대로 출현한다는 것으로, 문명의 전체적 특성 전환을 말한다는 점에서 삼대 순환설과 궤를 같이한다. 역사를 문명적 순환으로 파악하는 이러한 역사관은 이후 중국의 역사관을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하늘의 도(天道)는 과연 옳은가 그른가?, 유교적 세계관과 질서에 대한 의문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는 것을 만류하는 간언을 하다가 용납되지 않자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어먹다가 굶어죽었다는 백이와 숙제의 일을 기록한 백이열전(伯夷列傳)에서 사마천의 심경과 생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도(天道)는 사사롭지 않고 늘 착한 이와 함께 한다고 하는데, 백이와 숙제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인가? 그들은 행실이 그토록 고결해도 굶어죽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진정 학문을 좋아하는 이는 안연이라 했지만, 안연은 자주 궁핍하여 굶주리다가 끝내 요절했다. … 극악무도한 도척은 날마다 무고한 이를 죽이고 사람의 간을 꺼내 먹었으며 무리 수천 명을 모아 포악방자하게 천하를 횡행했지만 끝내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 이른바 하늘의 도라고 하는 것은 과연 옳은가 그른가(是邪非邪)?”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적군에 투항한 이릉을 변호하다가 궁형이라는 치욕을 당한 사마천 자신의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이것을 철학적, 윤리학적으로 말하면 이른바 도덕과 행복의 관계 문제에 해당한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행복하고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불행하다면 도덕과 행복은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할 까닭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하늘의 도, 하늘의 이치는 이러한 질문에 대해 침묵한다. 인과응보의 내세관을 지닌 불교나, 공과를 심판하는 하늘의 주재자가 있는 도교라면, 도덕적으로 살면서 불행을 당한 이는 내세에서 복락을 누린다고 답할 수 있겠지만, 유교적 세계관과 도덕관념에 따른 천도(天道)는 도덕과 행복의 일치 문제에 대한 답이 궁하다. 천도에 대한 사마천의 의문은 유교적 예교 질서 자체에 대한 의문을 함축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마천 [司馬遷] - 중국 역사학의 아버지

 

 

2.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1. 백이 열전

 

P73. 그렇지만 공자는 인이란 사람다움이다.”,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하는 것이 이다. 단 하루라도 자신을 이기고 예를 회복한다면 온 세상 사람이 그를 어진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했다. 이로부터 보면 은 인간의 본질을 가리키는 개념임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의 실천 방법으로 ’,’’,’,’’,’’,’을 제시했다.

 

P74.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캤네.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건만

그 잘못을 모르는구나.

신농, , 하나라 때는 홀연히 사라졌으니

우리는 앞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하나?

아아! [이제는] 죽음뿐,

운명도 다했구나!

마침내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다.

 

P76. 안연은 [밥그릇이] 자주 텅 비었고,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으로 베풀어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도척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고기를 잘게 썰어 [육포로] 먹었다. 잔인한 짓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 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이는 어떠한 덕을 따르는 것인가?

시대의 흐름과 분위기를 어찌 한 사람이 막을 수 있을까? 억울한 면이 상당할 것 같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착하게 사는 것도 부질없다고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하루라도 내가 가진 나쁜 생각 혹은 나쁜 습관을 이기고 사람답게, 나 답게 산다면,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나보다 더 잘 산다고 한들, 배가 아프거나 억울한 것이 없다. 나는 그저 나에게 주어진 삶을 나 답게 살면 되는 것이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니까..

 

P76. 요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는 행동은 규범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편안하게 즐거워하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 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사마천은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마음이 아주 강한 사람이었나보다. 나 역시 사마천과 같은 마음이고 같은 생각이다. 나는 그르다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삶, 내게 허락된 경계 내에서 그렇게 재앙을 만나는 단 한사람이라도 구하겠다. 그것이 세상 전체를 바꾸지 못하고 여전히 당혹스럽겠지만, 나는 내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겠다.

 

P78.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부류들은 서로 어울린다.”

구름은 용을 따라 생기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성인이 나타나야 만물도 뚜렷해진다.”

벌써 나에게 은인? 혹은 평생 함께 갈 분들이 얼마나 많이 생겼는가? 훌륭하신 그 분들과 함께라서 행복하다. 훌륭하신 그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나 역시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

 

2. /안 열전

 

P84. 포숙은 관중을 추천하고 자신은 그의 아랫자리에 있었다. [포숙의] 자손들은 대대로 제나라의 봉록을 받으며 봉읍지를 10여 대 동안 가졌으며 늘 이름 있는 대부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는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더 찬미하였다.

 

P85. “창고에 물자가 풍부해야 예절을 알며, 먹고 입는 것이 풍족해야 명예와 치욕을 알게 된다. 임금이 법도를 실천하면 육친(아버지, 어머니, , 동생, 아내, 자식)이 굳게 결속하고, 사유(, , , )가 펼쳐지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한다. 수원에서 물이 흘러가듯이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은 민심에 순응하게 된다.”

맞는 말이다. 나도 돈의 바닥이 보이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안정을 찾지 못하고 불면이 왔다. 내 스스로가 치졸해지고 옹졸해지는 것이 너무 싫었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과연 누군가에게 예를 베풀 수 있겠는가? 최소한 나 혼자만이라도 살만해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모든 것이 순찬하게 돌아가는 법. 나는 그것을 몸소 체험했다,

 

P86. 가에서 제후들을 만나 맹약할 때에도 환공이 노나라에서 빼앗은 땅을 돌려주기로 한 노나라 장수 조말과의 약속을 어기려고 하자, 관중은 이 약속을 지켜 신의를 세우도록 했다. 제후들은 이 일로 해서 제나라로 귀의하게 되었다. 그래서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아는 게 정치의 보배이다.라는 말이 생겼다.

제발 좀 양보하고 주고 삽시다!! 여의도 사람들이여! 뉴스 보기도 싫다!

 

3. 노자/한비 열전

 

P96. 노자는 도와 덕을 닦고 그는 학문을 스스로 숨겨 명성을 없애는 데 힘썼다. 오랫동안 주나라에서 살다가 주나라가 쇠락해 가는 것을 보고는 그곳을 떠났다. 함곡관에 이르자, 관련 윤희가 말했다.

선생께서는 앞으로 은둔하려 하시니 억지로라도 책을 지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노자는 책 상/하편을 지어 의 의미를 5000여자로 말하고, 떠나가 버려 그가 어떻게 여생을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덕경이 이렇게 지어졌군

 

P98.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P102. 유세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장점을 아름답게 꾸미고 단점을 덮어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계책을 지혜로운 것으로 여긴다면 지나간 잘못을 꼬집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된다. 자신의 결정을 용감한 것이라고 여기면 구태여 반대 의견을 내세워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 상대방이 자신의 능력을 과장하더라도 그 일의 어려움을 들어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근데이러면 간신 아닌가??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

 

P103. 이렇게 하여 오랜 시일이 지나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큰 계책을 올려도 의심 받지 않고 군주와 서로 다투며 말하여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때 유세자가 국가에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을 명백히 따져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옳고 그름을 솔직하게 지적해도 영화를 얻게 된다. 이러한 관계가 이어지면 유세는 성공한 것이다.

!! 신뢰를 먼저 쌓으라는 것이군!! 바른 말을 하기 전에 우선 막역할 정도로 신뢰를 쌓은 후에 해야 된다는 것! 그러면 자신의 뜻을 군주를 통해 이룰 수 있겠구나! 나 역시 새로운 생활에 이렇게 적응하며 신뢰를 쌓은 후 나의 뜻을 펼쳐보도록 하자!

 

P105.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이나 나중이나 다를 바가 없었지만 처음에는 현명하다고 칭찬을 받고 나중에는 죄를 입게 되었다. 그것은 군주가 그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든다고 하여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를 짓는다고 하여 더욱더 멀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에게 간언하고 유세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미워하는가를 살펴 본 다음에 유세해야 한다.

 

4. 사마 양저 열전

 

P112. “장수란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그 집을 잊고, 군영에 이르러 군령이 확정되면 그 친척들을 잊으며, 북을 치며 급히 나아가 공격할 때에는 그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금 적국이 깊숙이 쳐들어와 나라가 들끓고 병사들은 국경에서 뜨거운 햇살과 이슬을 맞고 있으며 군왕께서는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음식을 드셔도 단맛을 모릅니다. 백성의 목숨이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거늘 무슨 송별회란 말입니까?

 

P113.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에는 왕의 명령도 받들지 않을 수 있소.”

 

P113. [양저는] 병사들이 머무는 막사와 우물, 아궁이, 먹을거리, 질병을 물어보고 약을 챙겨 주는 일도 몸소 보살폈다. 또한 장군에게 주어지는 물자와 양식을 모두 병사들에게 누리게 하였는데,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이 양식을 나누었다. 이로부터 사흘 뒤에 병사들을 다시 순시하자 병든 병사들까지도 출정하기를 바라 모두 앞다투어 싸움터로 나갔다.

리더는 이래야 한다. 리더는 특권이 아니다. 앞에서 이끌면서 동시에 뒤에서 밀어주며, 동시에 함께 손잡고 걸어야 한다. 나도 이런 리더가 되어야 한다.

 

5. 손자/오기 열전

 

P122. 오나라 왕은 누대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자신이 총애하는 희첩들의 목을 베려는 것을 보고 몹시 놀라 급히 사신을 보내 명을 내려 말했다.

과인은 이미 장군이 용병에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소. 과인은 이 두 희첩이 없으면 음식을 먹어도 단맛을 모르니 바라건대 목을 베지 말아주시오.”

흐음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도 부탁을 했겠지?? ;;

 

P126. 병법에 승리를 좇아 100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상장군을 잃게 되고, 50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 승리를 좇는 군대는 절반만 목적지에 이른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도 일의 성공 혹은 완수가 눈 앞에 있다고 해도 절대 긴장을 늦추지 말자. 조급하게 좆지 말고 오히려 완수가 눈 앞에 있을수록 다시 정비해서 천천히 가는 태도로 임하자!

P129. 오기는 장수가 되자 병사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와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누울 때에도 자리를 깔지 못하게 하고 행군할 때도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식량은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병사들과 함께 수고로움을 나누었다.

돈을 많이 벌어도 좋은 메이커, 비싼 것에 눈을 돌리지 말자! 물론 흥미도 없거니와 나는 항상 겸손함을 잃지 않고 살자. 주어짐에 감사하자. 높은 자리에 가더라도 내 능력보다 낮은 자리에 가자. 그리고 함께하자!

 

P135. 태사공 曰

속담에 말하기를 실천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행동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하였다. 손자(손빈)가 방연을 해치운 책략은 영명했으나, 일찌감치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당하는 재양을 피하지는 못하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형세가 [임금의] 덕행만 못하다고 말했지만, 초나라에서 그의 행실이 각박하고 잔혹하며 인정이 적었으므로 그의 목숨을 잃었으니 슬프구나!”

 

6. 오자서 열전

 

P140. “왕께서는 어찌 참소를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골육 같은 자식을 멀리하려고 하십니까?

비무기가 말했다.

왕께서 지금 그들을 제거하지 못하면 반란이 일어나 왕께서는 사로잡히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평왕은 오사를 옥에 가두고 성보읍에 사마분양을 보내 태자를 죽이게 하였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어리석으면 그 나라에 도가 없고, 예도 없고, 인도 없구나. 그저 들끓는 건 하이에나 같은 신하만 있을 뿐. 이런 일은 항상 반복되니 주의하고 또 주의하며, 보고 또 보자.

 

P142. 오상이 말했다.

“[나 역시] 그곳으로 가더라도 끝내 아버지의 목숨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살기 위해서 나를 부르셨는데 가지 않다가 나중에 치욕도 씻지 못하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고는] 오운에게 말했다.

달아나라. 너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서 죽음을 맞이하겠다.”

 

P147. “초나라 장군 낭와는 탐욕스러워 [속국인] 당나라와 채나라가 그에게 원한을 품고 있습니다. 왕께서 초나라를 치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당나라와 채나라를 끌어들여야 가능합니다.”

 

P151. 태재 백비는 이미 월나라 왕이 주는 뇌물을 여러 차례 받았기 때문에 월나라 왕을 유달리 좋아하고 믿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오나라 왕에게 월나라 왕을 좋게 이야기하였다. 오나라 왕은 백비의 계책을 믿고 따랐다.

항상 왕이 현명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만약 오나라의 왕이였다면그리고 내가 백비를 좋아했다면 항상 믿었다면, 그리고 백비 역시 나에게 충성을 다했다면 나는 과연 볼 수 있었을까?

 

P156. 태사공 曰

원한의 해독이 사람에게 끼치는 것은 심하구나! 왕이 된 자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 일찍이 오자서가 오사를 따라 함께 죽었다면 어찌 땅강아지나 개미와 차이가 있었겠는가? 작은 의를 버리고 큰 치욕을 씻어 후세에까지 이름을 남겼으나 슬프구나! 바야흐로 오자서는 강수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고, 길에서 빌어먹을 때도 마음속에 어찌 잠깐이들 [초나라의 수도] 영을 잊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것을 참고 견뎌 내어 공명을 이룰 수 있었으니 강인한 대장부가 아니면 누가 이런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 7. 중니 제자 열전

 

P164.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행동하는 것을 살펴보면 [내가 해 준 말들을]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었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논어』「위정」

나도 교육을 받고 있는 입장이다. 중요한 것은 습득도 습득이지만, 실천이다. 함께 수학하는 분들도 부디 자격을 획득하는 것에 집중하지 않기를 바란다. 또 본인의 기준과 삶으로 누군가에게 코칭을 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함께 사람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P166. 중궁이 정치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문 밖을 나서서는 큰손미을 대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큰 제사를 받들듯이 하라. [그렇게 하면] 제후의 나라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고, 백성들의 집에서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논어』「만연

 

P168. 자로가 정치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말했다.

“[백성보다] 앞장서서 하고, [백성의 일을 위해] 몸소 애쓰는 것이다.”

[자로가] 좀 더 말씀해 주시기를 청하자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하고] 게으리지 않으면 된다. 논어』「자로

정치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말씀과 나의 삶을 연결하면 어떻게 해석할 수 있고, 적용할 수 있을까? 현재 희망이 필요하신 분들께 교육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분들에게 하나라도 제공할 수 있는 컨텐츠를 찾아내야 한다. 그 분들을 위해 한 발이라도 더 움직이여 한다. 왜 하는지를 생각하자. 게을러 지지 말자.

 

P186. 자하가 물었다.

“’고운 미소에 팬 보조개, 아름다운 눈에 또렷한 눈동자, 흰 바탕에 여러 색깔 그렸구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이후의 일이다.”

자하가 여쭈었다.

예는 [인보다] 나중에 온다는 것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를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구나.” 논어』「팔일

 

P187. 자장이 녹을 구하는 방법을 묻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실수가 적을 것이다. 많이 보되 의심나는 것을 버리고 그 나머지를 신중히 실행한다면 뉘우치는 일이 적을 것이다. 말에 실수가 적고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녹은 그 가운데 저절로 얻어진다.”

 

P189. “그것은 소문이지 달이 아니다. 대체로 달한 사람은 질박하고 정직하여 의를 좋아하고, 남의 말을 잘 듣고 표정을 잘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낮춘다. 이렇게 하면 나라에서나 집에서나 반드시 달하게 된다.

→ 질박하다 : 꾸민 데가 없고 수수하다. 공자의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구나!

 

P191. 어느 날 자사가 부끄러움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나라에 도가 있을 때 [자리를 차지하며] 녹봉을 받고, 나라에 도가 없는데도 [물러나지 않고] 녹봉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근데, 만약 나라에 도가 없다면 그 사이에서 도를 새우기 위해 녹을 받으며 변화와 혁신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도가 있으면 있고 없으면 나가는 것은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소인이라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가?

 

P197. [또 자우가] 군자란 어떤 사람인지 묻자 공자가 말했다.

군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우가 말했다.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을 군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안으로 반성하여 꺼림칙하지 않다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냐?” 논어』「안연

내가 저지른 일에 반성을 하며 바로잡고, 내 스스로가 떳떳하게 행동하자! 그러면 근심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P200. 유약은 대답할 수 없어 잠자코 앉아 있기만 하였다. 그러자 어떤 제자가 일어나서 말했다.

유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 주시오. 그곳은 당신이 앉아 있을 자리가 아니오.”

스승의 외모를 닮았다 하여 그 자리에 앉기를 원한다고 해도 그 자리에 앉지 말지는 본인이 아는 법. 스스로가 자신을 알 터인데 어찌 그 자리에 앉았을고?

 

8. 상군 열전

 

P210. 효공은 위앙을 등용했지만, 위앙이 법을 바꾸려고 하자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비방할까 두려웠다. 위앙이 말했다.

의심스러워 하면서 행동하면 공명이 따르지 않고, 의심스러워 하면서 일을 하면 공도 세울 수 없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보다 고상한 행동을 하는 자는 정녕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 받기 마련이며, 혼자만 아는 지혜를 가진 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오만하다는 말을 듣게 마련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이미 이루어진 일도 모르지만 지혜로운 자는 움트기도 전에 압니다.

 

P212. 위앙이 말했다.

세상을 다스리는 데는 한 가지 길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 나라에 편하면 옛날 법을 본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탕왕과 무왕은 옛 법을 따르지 않았지만 왕 노릇을 하였고, 걸왕과 은나라 주왕은 예법을 바꾸지 않았지만 멸망했습니다. 옛날 법을 반대한다고 해서 비난 할 것도 아니고 예법을 따른다고 하여 칭찬할 것도 못 됩니다.”

규정과 법이라는 것은 그 상황과 시대에 맞게 적용하면 되는 법. 과거에 얽매일 필요도 없다. 지금에 맞게, 현실에 맞게 현명하게! 일을 하면서도 옛날 것이 나쁘다 할 수 없고 좋다고 할 필요도 없다. 좋은 것은 가져다 사용하면 되고, 잘못된 것은 버리면 그 뿐.

 

P214. “법이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위에서부터 그것을 어기기 때문이다.”

그는 법에 따라 태자를 처벌하려고 했다. 그러자 태자는 군주의 뒤를 이을 사람이니 형벌을 가할 수도 없어서 태자의 태부로 있던 공자건을 처벌하고 태사 공손가의 이마에 글자를 새기는 형벌을 내렸다. 그 다음 날부터 진나라 백성은 모두 새로운 법령을 지켰다.

누구를 욕하기 전에 나도 나부터 지켜 나가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 없이 내가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면 분명 따라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자. 나는 누군가에게 아래지만 누군가에는 위에 있는 사람. 그냥 내 자리에서 할 도리를 지킨다면 누군가는 나를 보고 따라오는 이가 있겠지. 지금 코칭을 함에 있어서도 내가 보여주는 것 밖에 없다!

 

P216. 위나라 공자 양도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만나 맹약을 맺고 나서 술을 마셨다. [그러나 그때] 위앙은 미리 숨겨 두었던 무장한 병사들에게 위나라 공자 앙을 습격하여 사로잡고 위나라 군대를 쳐서 모조리 깨뜨리고 진나라로 돌아왔다.

춘추전국시대. 패권을 다투는 그 시대상황에서 일어난 일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야하나? 지금의 기준으로 그 시대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라고 신영복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P217. ‘그 자리가 아닌데 그곳에 머무는 것을 자리를 탐한다고 하고, 그 이름이 아닌데 그 이름을 누리는 것을 이름을 탐한다고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P221. 에서는 사람을 얻는 자는 흥하고 사람을 잃는 자는 망한다.’라고 했습니다.

 

P221. 『서』에서는 덕을 믿는자는 창성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위태롭기가 아침 이슬과 같은데 아직 목숨을 연장하여 더 오래 살기를 바라십니까?

 

P222. 상군은 변방 부근까지 달아나 여관에 머물려 했으나, 여관 주인은 그가 상앙임을 모르고 말했다.

상군의 법에 의하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그 손님과 연좌되어 처벌을 받습니다.”

상군은 한숨을 쉬며 말해싸.

!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상군은] 그곳을 떠나 위나라로 갔다. 그러나 위나라 사람들은 상앙이 공자 앙을 속여 위나라 군대를 친 것을 원망하고 있으므로 받아 주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저지른 업보가 자신에게 돌아오는구나. 공자 앙을 죽인 것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자신에게 불행이 돌아오는구나. 숨 쉴 수 없게 만드는 법도 본인이 겪어봐야 하는 법.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이 여기서도 나오는구나.

 

9. 소진 열전

 

P227. 소진은 이 말을 듣고 부끄럽고 절로 슬퍼졌다. 그는 그길로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 틀어박혀 책을 꺼내 두루 훑어보다가 말했다.

대체로 선비가 머리를 숙여 가며 배우고도 높은 벼슬과 영화를 얻을 수 없다면 [책을] 많이 읽은들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꼭 정치를 해야 하는 것인가? 그 당시에는 벼슬을 해야 인정 받는 것이었겠지?

 

P230. 따라서 진나라가 연나라를 치면 1000리 밖에서 싸우게 되고, 조나라가 연나라를 치면 100리 안에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100리 안의 근심거리를 걱정하지 않고 1000리 밖을 중시한다면 이보다 더 잘못된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근심하지 말자. 먼 미래의 걱정을 사서 하지 말자. 내 안에,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근심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난 참 어리석었었지.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해 걱정하며 인생을 포기하려 했으니

 

P238. 또한 대왕의 땅은 다함이 있지만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어, 다함이 있는 땅을 가지고 끝이 없는 요구를 맞이해야 하니, 이것은 원한을 사고 불행을 불러오는 격입니다. 싸워 보지도 못하고 땅은 박탈되어 버리게 됩니다. 신이 듣건대 항간의 속담에 차라리 닭부리가 될지언정 쇠꼬리가 되지 말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서쪽으로 팔을 모아 복종해 신하로서 진나라를 섬긴다면 쇠꼬리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P241. 『주서』에서는 ‘[초목이] 실처럼 끊어지지 않다가 무성해지면 어떻게 하나? 터럭같이 작을 때 치지 않으면 장차 도끼를 써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미리 깊이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으면 나중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을 함에 있어서, 나중에 해도 되겠지. 지금은 중요하지 않으니 안 챙겨도 되겠지. 하다보면 분명 그것이 큰 문제거기로 다가 올 것이다. 미리 챙기고 한 번 더 보자. 도끼가 아니고 아예 자르지 못할 수도 있다.

 

P248.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이 한 몸도 부귀해지자 친척들이 두려워하고 가난하고 천하면 업신 여기는데, 하물며 뭇하람들임에랴! 만일 낙양성 주변에 밭이 두이랑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찰 수 있었을까?”

그리하여 [소진은] 천금을 풀어 종족과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실패든 성공이든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 각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업신여김을 당했으니, 너도 당해바라라는 식으로 산다면 성공한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자. 나의 힘들었던 과거를 돌아보며 똑 같은 길을 걷지 않도록 하는 것이 자신의 삶을 완수한 자의 자세다.

 

10. 장의 열전

11. 저리자/감무 열전

 

P332. 태사공 曰

감라는 나이가 어리지만 한 가지 기묘한 계책을 생각해 내어 후세에 이름이 일컬어지게 되었다. 이들은 행실이 성실한 군자는 아니지만 전국 시대의 책사였다. 바야흐로 진나라가 강성해졌을 때 천하는 더욱 권모와 술수로 치달으려 했던 것이다.”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권모가 술수가 뛰어난 사람만이 살아남는 것인가? 참 슬픈 현실이다. 사실 지금도 그런 거 같다. 10장의 장의나 이번장의 감무도 세치혀로 결과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닌가. 시대가 만약 혼란스럽게 된다면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많은 질문을 던진다.

 

12. 양후 열전

 

P343. 태사공 曰

양후는 소왕의 친외삼촌이다. 진나라가 동쪽으로 땅을 넓히고 제후의 세력을 약화시키면서 한때 천하에서 제라 일컫고, 천하의 제후들에게 서쪽을 향해 머리를 숙이게 한 것은 양후의 공적이다. 그러나 그는 부유하고 존귀함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한 남자(범저를 지칭)가 유세를 펼치자 신분이 꺽이고 권세를 빼앗겨 근심과 번민 속에서 살다가 죽었다. [왕족의 한 사람이 이렇거늘] 하물며 [진나라에서 벼슬아치가 된]객경이야 어떠하겠는가?”

왕족도 별거 없구나. 정말 혼란한 시기에는 뭐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고 왕 만큼의 막강함을 손에 쥘 수 있구나.

 

백기/왕전 열전

 

P354.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 싸움에서 항복한 조나라 병사 수십만 명을 속여서 모두 산 채로 땅속에 묻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죽어 마땅하다.”

그러고는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진나라 소왕 50 11월의 일이다. 그는 죽었지만 죄를 지은 것은 아니므로 진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마을이 모두 제사를 지내 주었다.

싸움에서 산채로 사람을 죽인 사람이 결국 자신이 죽을 때가 되야 죄를 누우치다니. 괘씸한 지고. 죄가 없다고? 그래서 제사를 지내줬다고? 갑자기 일본 생각이 난다. 우리에게는 전범인 사람들에게 영웅이라고 제사를 올리는 모습하고는. 그럼 죄없이 죽어간 조나라 병사 수십만의 부모, 형제, 아내, 자식의 한은? 죄 없다고 생각하는 진나라 사람도 큰 죄가 있는 것이다. 근데그 시대에는 이것이 상식이었겠지?

 

P360. 태사공 曰

속담에 에도 짧은 데가 있고, 치에도 긴 데가 있다.’ 라는 말이 있다.(중략)

그러나 진나라를 보필해서 덕을 세워 천하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시황제에게 아첨하여 편하게 있을 곳을 구하다가 늙어서 죽음에 이르렀다. 손자 왕이 때에 이르러 항우에게 사로잡힌 것도 마땅하지 않은가! 그들에게는 각기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14. 맹자/순경 열전

 

P363. 태사공 曰

“(중략) 공자가 이익에 대해서 거의 말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그 혼란의 근본 원인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원한을 사는 일이 많다.’라고 했던 것이다. 천자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이익을 좋아하는 데서 생긴 폐해가 어찌 다르겠는가!”

이익을 좇지 말자! 항상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이익은 그 후에 따라오는 법. 억울해 하지 말자. 이익을 따르면 큰 것을 잃는다. 사람을 잃는다. 나도 잃는다. 어리석자. 조금 손해보면 어떤가? 죽지 않는다. 죽음은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익을 좆는 것이 죽음을 재촉하는 법.

 

15. 맹상군 열전

 

P376. 문이 물었다.

사람이 태어날 때 그 운명을 하늘로부터 받습니까? [아니면] 지게문으로부터 받습니까?”

전영이 대답하지 않자 문이 다시 말했다.

사람의 운명을 하늘에서 받는다면 아버님께서는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그렇지 않고 운명을 지게문에서 받는다면 지게문을 계속 높이면 그만입니다. 어느 누가 그 지게문 높이를 따라 계속 클 수 있겠습니까?”

 

P377~378. 문이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나랏일을 맡고 제나라 재상이 되어 지금까지 위왕, 선왕, 민왕을 섬겼습니다. 그 동안 제나라 땅은 넓어지지 않았는데 아버님께서는 사사로이 천만금이나 되는 부를 쌓았으며, 그러고도 문하에도 어진 사람 한 명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장수의 가문에는 반드시 장수가 있고, 재상의 가문에는 반드시 재상이 있다고 합니다. 지금 아버님의 후궁들은 아름다운 비단옷을 질질 끌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짧은 베옷 하나 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의 하인들과 첨들은 쌀밥과 고기를 실컷 먹고도 남아돌지만 선비들은 쌀겨나 술지게미조차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쌓아 둔 것이 남아돌지만 더욱 많이 쌓아 두려고만 할 뿐 나라의 힘이 날로 쇠약해지는 것은 잊고 계십니다. 저는 이 점이 이상합니다.”

 

P379. 나무 인형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허물어질 거야.’라고 말하자 흙 인형이 나는 원래 흙에서 태어났으니 허물어지면 흙으로 돌아가면 그뿐이지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어디까지 떠내려가야 할지 몰라.’라고 대답했습니다.

 

P381. 처음 맹상군이 좀도둑과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을 빈객으로 삼았을 때, 다른 빈객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앉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맹상군이 진나라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결국 이 두 사람이 그를 구하였다. 그 뒤 빈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맹상군을 따르게 되었다.

사람에게는 그 사람만이 가진 특징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사람은 모두 똑같다. 누가 더 훌륭하거나 미천하지 않다. 그 사람만이 가진 장점이 분명이 있다. 무시하지 말자! 항상 겸손하자! 모두 존중하자!

 

P389. “맹상군께서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 준 까닭은 돈이 없는 백성도 본업에 힘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이자를 요구한 까닭은 빈객들을 접대할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부유한 사람에게는 갚을 날을 정해 드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차용 증서를 불태워 버리도록 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껏 마시고 드십시오. 이런 군주가 있는데 어찌 그 뜻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중략)

 

P390. 풍환이 대답했다.

그렇게 했습니다. 술과 소를 많이 마련하지 않고는 돈 빌린 사람을 다 모이게 할 수 없고,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알 수 없었습니다. 여유 있는 자에게는 갚을 날짜를 정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자는 차용증서를 10년 동안 가지고 있어도 이자만 더욱 쌓여 갈 뿐이라 성급하게 독촉하면 바로 달아날 테니 영원히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만일 성급하게 재촉하여 돌려받지 못한다면 위로는 군주가 이익에 눈멀어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 꼴이 되고, 아래로는 백성이 빚을 갚지 않으려 군주를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백성을 격려하고 군주의 이름을 드러내는 일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차용 증서를 불살라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설 땅의 백성이 군주를 가까이하고 군주의 이름을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입니다.”

 

P394. 풍환이 말했다.

살이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고 나서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길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16. 평원 군/우경 열전

 

P413. 누완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왕께서도 저 공보문백의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공보문백이 노나라에서 벼슬을 하다가 병들어 죽자, 그 죽음을 슬퍼하여 규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가 둘 있었습니다. 문백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도 소리 내어 울지 않았습니다. 문백의 유모가 아들이 죽었는데 소리 내어 울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하니, 어머니는 공자는 어진 사람인데 노나라에서 쫓겨났을 때 내 아들은 쫓아가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아들이 죽으니 그를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여자가 둘이나 있소. 이와 같이 된 것은 반드시 덕 있는 사람에게는 정을 주지 않고 부인들에게는 다정했기 때문이오. 그래서 소리 내어 울지 않는다오라고 했습니다.

그냥 조마리아 여사가 떠오르는군. 아들에게 죽으라고 했던, 강인한 어머니.

 

P414. 그러므로 그 말은 같지만 말하는 사람에 따라 듣는 사람의 마음도 바뀝니다.

 

위 공자 열전

 

P428. 공자는 주해에게 같이 가자고 부탁했다. 주해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시장에서 칼을 휘둘러 짐승을 잡는 백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께서 몸소 자주 찾아 주셨습니다. 일일이 답례하지 않은 까닭은 하찮은 예의 같은 것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공자께서 위급한 처지에 있으니 지금이야말로 제가 목숨을 바칠 때입니다.”

 

P429.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군대 안에 있으면 아버지가 돌아가고, 형과 동생이 함께 군대 안에 있으면 형이 돌아가라. 외아들로서 형제가 없는 자는 돌아가 부모를 모시도록 하라.”

이제까지 영화에서도 아들이 돌아가고, 동생이 돌아가게 했는데왜 반대지? 특별한 이유가 있나?

 

P430. “세상일에는 잊으면 안 되는 것이 있고, 또 잊어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남이 공자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공자께서 다른 사람에게 베푼 은덕은 잊으시기 바랍니다. 또 위나라 왕의 명령이라 속여 진비의 군사를 빼앗아 조나라를 구한 것은 조나라 입장에서는 공을 세운 것이지만 위나라 입장에서 보면 틀림없이 충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공자께서는 스스로 교만해져 공로가 있다고 하시니, 이는 공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공자도 훌륭한 사람이다. 좋은 사람이 이렇게 모이고 또 직언도 해주고. 중요한 것은 이런 말들을 허투루 듣지 않고 받아들인다는 것.

 

P431. 조나라 왕은 몸소 길을 청소하고 직접 나와 공자를 맞이하여 주인의 예로 공자를 서쪽 층계로 오르게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가로 비켜서 걸으며 사양하고 동쪽 층계로 올라갔다. 그리고 스스로 말하기를 죄를 지어 위나라를 저버렸고 조나라에는 공을 세우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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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11 14:29:30 *.18.187.152

단상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워낙 음성지원 되는 글이라 같이 읽는 거 같네 ㅋ 나도 백기 제사 지내는 거 넘 짜증났어요.

사기열전이 코칭수업에도 많이 적용이 되었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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