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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8일 20시 34분 등록
떠남과 만남 - 구본형, 생각의 나무 , 2000


내 가슴을 무찔러드는 글귀

'아는 것만큼 느끼는 것'이 서구적 배움의 방법이라면
'느끼는 것만큼 알게 되는' 접근법이 동양의 그것이다.

책머리에 -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달팽이처럼. 온몸으로
p8
걷는다는 것은 땅을 느끼는 것이다

p9
여행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며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는 것이다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먹던 밥그릇과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여럿이서 떠나는 여행에서는 이런 정취를 느끼기 힘들다

p11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없다. 오직 버리기 위해 떠난다. 소유한 것이 많으면 자유로울 수 없다.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배낭 하나도 무거운 짐이다.

> 버리고 버린후 일상으로 돌아오면 비워진 공간에 얻어서 채워넣을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없다는 말은 극단적 비약이 아닐까

p19
나무는 참을 수 없이 간절해지고 열렬해지면 꽃이 된다

p20
인생의 목적은 인생이다. 산다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인생이 전부 경제와 경영일 수는 없다.

p32
빠르게 걸으면 나이를 알게 되고, 천천히 걸으면 주위를 감상할 수 있다

p34
사람들이 늘 잊고 있는 것은, 변화는 변화하지 않은 것들과의 균형이라는 점이다. 걸어보면 금방 알게 된다. 한다리가 움직이기 위해서 다른 한 다리는 땅에 닿아 있어야 한다. 걸어서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은 두 다리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늘 잊고 지낸다.

p49
매화의 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 아니다. 귀로 듣는 것이다.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마음이 잔잔해져야 그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향기가 후각적 인지의 대상이 아니라 내면적 마음의 흐름에 실린다는 것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아름다움은 감각의 경계를 벗어난다.

p60
나이가 들면 몸이 가벼워진다. 뼛속의 진이 다 빠져 나와 그렇게 가벼워지는 모양이다. 그 가벼움은 멀리서도 보인다. 바람에 옷자락이 날리는 것만 보아도 몸이 날아갈 만큼 가볍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루하루가 아깝기 그지없는 나이가 있기 마련이다

p64
경치의 정점에 있기 위해서는 알맞는 때에 그곳에 있어야 한다. 어느 곳이든 가장 자기다울 때, 바로 그때 그곳에 있어야 진수를 맛볼수 있다.

> 마찬가지로 경치의 정점에 있기 위해서는 알맞은 곳에 있어야 한다. 어느 곳이든 가장 자기다운 때가 있으며, 가장 자기다운 곳이 있는 법이다. 그것은 내 자신에게도, 그리고 내 자신이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p74
만 권의 책을 지루하게 읽어
옛 일을 논하고 또 오늘의 일을 논하지만
학문을 쌓음은 다른 재주 익히고자 하는 것 아니라
오직 나의 마음을 거두는 데 있느니 
-서산대사 선시

> 수백년전의 대사의 말씀이 가슴에 와서 꽂힌다.  결국 이 모든 북리뷰와 글쓰기의 목적은 나의 마음을 거두고자 하는데 그 첫번째 목적이 있을 것이다.

p76
눈 내린 들판을 밟아갈 때에는
모름지기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걷는 나의 발자국은
반드시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라
-서산대사 선시

> 내가 따라가는 발자국이 제대로 된 놈의 발자국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p77
불가에서 말하는 정진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이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걸고 뚫어보면 몸뚱이째 들어갈 것이다.

p94
다산은 목민심서의 서문을 다음과 같이 끝맺고 있다. "심서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백성을 다스릴 마음은 있지만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 지은 것이다"

> 다산이 백성을 다스리는 벼슬에 있었다면 <목민심서>가 아닌<목민행서>가 나왔겠지만, 심서의 깊이를 행서가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발자국 물러나서 바라봄은 깊이를 더해주는 법이다.

p96
1822년에 쓴 자찬 묘비명에 "역을 익히고 예를 연구하여 모든 경서에까지 미쳤는데, 한 가지를 깨달을 때마다 마치 신명이 말없이 깨우쳐주는 것 같아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라고 썼다.

p100
도자기는 예술이고 옹기는 예술이 아니라는 시각이 자기는 싫다는 것이다.

p101
정진에는 용맹보다 나은 것이 없다. 백척간두에서 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p109
하루하루를 낭비하지 마라. 충무공은 싸움터에서도 하루가 지나는 것을 무심코 넘기지 않았다. 그 하루를 기록하여 그날이 그날로서 존재함을 잊지 않았다. 일이 닥쳐서야 어쩔 줄 몰라 하다 모욕을 당하는 일만큼은 피해라.

p114
처에게 전화를 하려다 오늘밤은 그저 그리움 속에 그녀의 목소리를 가만히 놓아두었다

> 캬~~~~ 로맨틱하시네

p119
산다는 것은 약간 우물쭈물하는 것이다. 산다는 것은 망설이는 것이다. 

> 결국 살다가 죽는 것은 그럼 "우물쭈물하다 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과도 같은가

p127
자기가 한 일에 즐거워하고 그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다. 실속은 하나도 없지만 실속이 뭐 그리 중요한가, 자신이 즐거운 것보다 더 훌륭한 실속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p128
위궤양 환자가 밤낮 위만 생각한다고 해서 위가 곧 사람일 수는 없다. <가난한 아빠와 부자 아빠>를 통해 우리가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일까? 돈 버는 법? 돈과 인생? 천만에, 거대한 위를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된 가르침은 사회적 위협이다.

p132
나는 표현력이 부족해 꽃을 보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감각적 재간이 거의 없다. 그저 꽃을 보면 어떻게 생겼다고 말하는 대신 그 꽃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식이다

> 그게 더 나은 재능이다. 아무리 자세하게 묘사한들 대중의 공감을 얻지는 못한다. 가장 자기다운 표현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도다.

p137
이곳은 그리움의 산이다. 양근암과 금수굴이 서로 다른 등성이에 서 있어 만나지 못하는 것처럼, 이곳은 그리운 사람들끼리 만나지 못하는 그리움 가득한 산이다.

p142
아주 어렸을 때 왠지 모르게 울고 싶을 때, 저녁이 되어 어머니가 찾아나설 때까지 숨어 있던 자기만이 아는 작은 비밀 장소처럼 그런 치유의 은밀한 장소와 시간 없이 어떻게 이 세상을 살겠는가

p145
봄날의 아름다움이 바로 문 밖에 있으니 어디로 가랴

p147
시작할때와 같은 초심을 견지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조금 익숙해지면 타성이 붙게 되는데, 그러면 내용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된다. 이때 다시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불가에서는 이 것을 발심이라고 부른다. 발심은 초심보다 어렵다고 말한다. 옮은 말이다. 개혁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개혁이 진부해질 때, 원래의 개혁으로 되돌아가기가 더 어려운 것과 같다. 인간의 습성이 고려되지 않은 개혁과 혁명은 허구다. 그것은 학살이거나 기만이거나 지나친 망상이다.

> 나에게 발심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나 자신에 대한 개혁이 다소 진부해진 경향이 있는데, 아직 개혁이 제도화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나의 습관으로 정착되지 않은 변화는 저자의 말대로 결국 허구이자 기만이요, 끝내는 망상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p152
중요한 것은 역사적 상상력이 없는 역사는 오늘의 일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해골이 길을 걷게 하거나 내장이 없는 뼈다귀가 우리의 식탁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요석궁을 거니는 원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야 비로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p158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만해 한용운은 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선은 스스로 밝히는 것이요, 철학은 연구다. 참선은 돈오요, 철학은 점오라 할 수 있다..."

p178
지금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천애의 절벽을 발밑에 두고 아슬아슬 건너가지만 내가 지나온 자리는 결국 나중에 길이 될 것이다.

p197
자기다운 일을 함으로써 명성과 부와 힘을 가지게 되었던 사람들,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변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정치에 입문함으로써 대개는 그 힘을 잃게 된다. 훌륭한 장군은 목숨을 잃고, 놀라운 재간과 뚝심으로 부를 일구어 낸 부자는 멍청이가 되고, 학자는 그 명예를 잃게 된다. 자기다움을 상실함으로써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 우리나라 정치판에 이런 인물들 참 많다. 누구라고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p199
완도에서 폭풍을 만나 일정이 묶여 있는 동안 하동 쌍계사의 벚꽃은 마음속에서 이미 져가고 있었다

> 아주 멋진 표현이다.

p204
심심하다는 것은 자기 속에 데리고 놀 자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늘 밖에서 친구가 될만한 것을 찾는다.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는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p210
짧은 시간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아야 하는 사람들, 휴식도 일처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벚꽃길을 달려간다

p212  
우리의 놀이가 밤이 깊어질수록 야단스러워지는 이유는 어쩌다 한번 쉬기 때문이다. 휴식의 절대 길이가 짧다보니, 당연히 볼 것도 해야 할 일들도 많다. (...) 다시 일로 복귀해야 할 날까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휴식이 휴식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비적이고 향락적인 문화는 우리의 휴식 시간이 짧다는 것과 대단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짧게 끊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 소비 문화일 수밖에 없다. 자유 시간이 턱없이 짧기에 클라이맥스는 빨리 맛보아야 한다. 뜸을 들일 시간이 없다. (...) 그래서 모처럼의 휴식은 또 다른 노동이 되고 만다.

p217
4월의 청량한 숲이 바람에 통째로 실려온다. 이를테면 냄새, 나뭇잎, 연한 초록빛, 꽃, 잠자리에 든 새의 가벼운 뒤척임 같은 것들 말이다.

p223
도시에서 상처를 입고 막 돌아와 엉덩이를 마루에 붙이고 앉아 잠시 망연해 하는 자신을 상상해보라. 파도가 작은 섬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마을 어귀의 어느 집에서 무엇을 고치는지 못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먼 곳에서 나는 고향으로 온 것이다.

p224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흙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살면서 흙이 좋아져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p225
빠르다는 것은 늘 되돌아올 수 없이 멀리 가게 만든다.

p240
사랑이나 성은 둘 다 보통명사다. 동시에 두 단어들은 매우 구체적인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그 또는 그녀의 몸짓, 물결치는 웃음, 어떤 표정,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보통명사지만 개인에게는 구체적인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p250  
돈을 얼마만큼 가져야 넉넉할까? 사고 싶은 것을 하나도 살 수 없으면 가난한 것이다. 원하는 것이 두 개인데 그 중에서 하나밖에 살 수 없는 경우는 그럭저럭 사는 것이다. (...) 두가지를 한꺼번에 살 수 있으면 잘사는 것이다. 돈이 그보다 더 많으면 불행해진다. 

p264
비극은 늘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온다. 미국 흑인의 비극은 그들을 해방시킨 링컨이 흑인이 아니라는 것에서 연유된다. 해방 후 우리 민족이 겪은 비극은 우리의 힘으로 해방되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힘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 역시 비극적이다.

p271
산행의 즐거움은 산과 만나는 데 있다. 산은 음악과 같다. 조용해야 들을 수 있다. 한적해야 피어 있는 들꽃을 볼 수 있다. 호젓하지 않으면 온몸의 피부가 그 정적을 감지할 수 없다.

p277
공자와 노자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의 삶을 서로 보완하는 한 사람으로 인식될 때,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으로 들어와서도 자유롭다. 나아가 세상을 바꾸고 들어와 자신을 바꾸는 것이 자유가 아닐까?

p286
천하의 명마도 위험한 일을 겪고 겁쟁이가 되면 당나귀만큼도 못해진다. 훌륭한 장수도 그 손에 쟁기를 쥐어주고 밭고랑에 서게 하면 평범한 농부만도 못하다. 사물의 단점만을 생각하고 그 장점을 죽이면 요임금과 같은 사람도 쓸모가 없어지는 것이다 - 이것은 노연이라는 사람이 재나라 재상이었던 맹상군에게 한 말이다.



내가 저자라면

"나는 아주 천천히 걸었다. 달팽이처럼. 온 몸으로. 이름할 수 없는 내 안의 풍경을 찾아서, 아무도 없는 늦은 오후, 한 사람의 마음을 느끼기 위하여"

20년간 근무했던 한국 IBM을 퇴사하고, 자유인의 신분이 된 저자가 한 일은 여행이었다.  혼자 떠난 한달 반동안의 남도여행은 이 책 <떠남과 만남>을 낳았다.  20년의 시간으로 대변되는 직장을 '떠남'으로써, 저자가 '만남'으로 이어지고자 한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었다. 남도여행은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기 위한 안으로의 여행이었던 셈이다.  이제 직장이라는 울타리가 아닌, 자기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하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의 자기 자신의 모습, 저자가 만나고자 했던 그 모습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이후 낯선 곳에서 아침을 맞고자 욕망했던 지난날의 구본형으로 왔다가 수염 덥수룩한 모습의 자유인 구본형으로 남았다. 

여행지에 대한 묘사는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나, 여행지의 풍광을 생생하게 보여준다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저자가 책 안에서 언급한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생각된다.

"나는 표현력이 부족해 꽃을 보면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묘사하지 못한다. 감각적 재간이 거의 없다. 그저 꽃을 보면 어떻게 생겼다고 말하는 대신 그 꽃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난다는 식이다" - p132

실제 그곳에 가봐야지 저자가 묘사한 대목에 무릎을 치게 되는 일이 생길 듯 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자이지만, 남도여행을 책으로 생생하게 경험하고 싶은 독자라면 추천하기 어렵다. 책 안에는 사진이 그리 많지 않다. 사진이 아예 없는 꼭지도 많다. 여행 안내 저서는 아니더라도 좀더 사진을 많이 넣었으면, 저자의 묘사와 상호보완이 되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든다. 사실 남도 여행은 핑계일 뿐, 그 당시 그 상황에서 저자가 남도가 아닌 다른 여행지를 갔더라도 책 안에는 비슷한 말들이 적혔으리라 생각한다.

여행을 좋아하고, 실제로 연구원들과 많은 여행을 즐겼던 저자이기에 여행에 관련된 저서가 이 것 하나라는 것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선생님이 쓰신 다른 여행 관련 저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사실 보통 여행관련 책이라면 가벼운 것들이 주류를 이루고, 무엇보다 독자들이 그런 책들을 원한다. 여행을 떠나는 이가 가볍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 가벼움은 저자와는 그리 맞지 않다. 하지만 무거운 것 하나 마음에 품고 떠나야 하는 여행도 있는 법이다. 이 책 <떠남과 만남>처럼 연구원들과의 하계 연수 여행을 구본형다움이 들어간 책으로 묶어 냈다면 제법 괜찮은 책들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어찌되었든 이 책은 내가 언젠가 남도여행을 가게 될 때 꼭 챙겨갈 것이다  그것이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공간에서 스승을 사숙할 수 있는 한 방편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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