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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6일 11시 48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윌 듀런트(William Durant, 1885~1981)20세기를 대표하는 미국의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1885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 태어나, 세인트 피터스 칼리지에서 공부하고, 1917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노동 계급을 교육시키는 진보적인 학교인 페레 모던 스쿨(Ferrer Modern School)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이곳에서 평생의 학문적 동반자 아리엘을 만나 결혼하게 되었다. 1917년 자신의 첫 책 철학과 사회 문제에서 철학이 사회의 실질적인 문제를 회피했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뉴욕의 한 장로교회에서 행한 강연을 토대로 1926년 발간한 베스트셀러 철학 이야기철학을 대중화시키는 데 기여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경제적인 성공까지 안겨 주었다. 이를 발판 삼아 윌 듀런트는 1935동양의 유산부터 1975나폴레옹의 시대까지 총 11권의 대작 문명 이야기시리즈를 펴냈다. 역사의 교훈은 윌 듀런트가 자신의 아내 아리엘과 함께 집필한 책으로, 문명 이야기를 집필하고 재검토하면서 얻은 역사의 교훈과 그 깨달음을 적은 책이다. 아리엘 듀런트와 함께 1968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1977년 대통령 자유 메달을 받았다. 아리엘 듀런트는 19811025일에 세상을 떠났으며, 윌 듀런트도 그로부터 며칠 후 117일에 그녀의 무덤 옆에 묻혔다. 다른 주요 저서로 역사 속의 영웅들, 철학으로의 초대, 천재로의 모험, 철학의 즐거움등이 있다.

 

생애

 

매사추세츠 주 북부 아담스에서 태어났으며, 미국에 대한 퀘벡 이민의 일원이었던 조셉 듀란트와 메리 앨러드의 프랑스 캐나다 카톨릭교의 부모님에게 태어났다.

1900년 듀란트는 성 베드로 예비 학교의 예수회와 뉴저지 Saint Peter's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다.

듀란트는 1907년 졸업했으며 Arthur Brisbane New York Evening Journal 기자로 일주일에 10 달러를 벌었다. 이브닝 저널(Evening Journal) 에서 그는 성범죄자에 관한 여러 기사를 썼다. 1907년 그는 뉴저지 주 사우스 오렌지의 세턴 홀 대학 (Seton Hall University)에서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및 기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또한 도서관 사서가 되었다.

 

1911년에 그는 신학교를 떠났다. 그는 페레르 현대 학교 (Ferrer Modern School)의 교장이 되었는데, 여기는 노동계급을 교육하기 위한 고급학교였다. Ferrer Modern School의 후원자 인 Alden Freeman은 그를 유럽 여행을 위해 후원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이 자리에서 앨든 프리먼에게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사실을 기록해두고 싶다. 나는 그의 영향 속에서 공부하고 여행했으며, 고상하고 계몽된 삶을 살겠다고 결심했다. 이 최고의 친구가, 비록 부차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이 책을 보고 자신의 관용과 믿음이 완전히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마 이 여행이 저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그는 사랑에 빠졌고 15세의 학생 Chaya (Ida) Kaufman과 결혼했다. Chaya (Ida) Kaufman은 나중에 "Ariel"이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그에게는 에텔(Ethel)과 입양한 딸 루이(Louis)가 있다.

 

1913년에, 그는 교사를 사직했다. 그는 장로교에서 $ 5$ 10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이때 강의 자료가 ‘The Story of Civilization’의 출발점이 되었다.

 

1917년 콜롬비아 대학의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그는 그의 첫 번째 저서 '철학과 사회 문제'를 썼다. 그는 철학이 사회의 실제 문제를 회피했기 때문에 성장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Columbia에서 같은 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철학 이야기출간을 통한 인생전환

The Story of Philosophy는 일련의 Little Blue Books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용 팜플렛)로 시작되어 1926 년 사이먼 앤 슈스터 (Simon & Schuster )에 의해 하드 커버 책으로 재출판되었고 베스트셀러가되어 듀란트에게 재정적 독립을 부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세계를 여러 번 여행할 수 있었고, 그 여행을 통해 이후 40년 동안 문명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배경이 되었고, 11권이라는 방대한 작업을 시작했으며 관련 내용으로 강의를 하기도 하였다.

* 그에게는 이 책이 인생의 전환점이고 변화를 가능케 한 것이다.

 

사망

듀란트가 병원에 입원한 후, 아리엘은 식사를 중단했습니다. 그는 아리엘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되지 않아 죽었다. 그 죽음의 간격이 2주였다 (그녀는 10 25 일에 그리고 11 7 일에 그는 사망했다). 그의 딸 에델과 손주들은 아리엘의 죽음을 아파서 누워있는 듀란트에게 숨기려고 했으나, 저녁 뉴스를 통해 이 사실을 알았고 9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웨스트 우드 빌리지 기념 공원 묘지의 아내 옆에 묻혔다.

* 멋진 사람이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렇게 될까. 그리고 96세이면 천수를 누린 나이다.

 

그가 남긴 명언

 

교육이란 우리의 무지를 지속적으로 발견해가는 것이다.”

Education is a progressive discovery of our own ignorance.

 

옮긴이 : 정영목

 

번역가.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중. 옮긴 책으로는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 코맥 매카시의 로드등이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가 중 한 명이다. 다만 번역의 질은 그다지 좋지 못한 편. 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상당히 뛰어난 질의 번역을 보여주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존 업다이크의 달려라 토끼나 윌리엄 트레버의 소설집, 비 온 뒤처럼 명성에 비해 무척 떨어지는 질을 보여주기도 한다. 꽤나 들쭉날쭉한 편. 사실 번역이라는 게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시간을 투자하면 투자할수록 점점 질이 좋아지는데, 정영목 번역가의 경우엔 빠르게 많은 작품을 번역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을 많이 투자해도 모자를 굵직굵직한 작가들을 특히나 많이 맡으니...(일 욕심이 많나보다)

 

그에게 최근 불거진 한·FTA 번역 오류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국익이 걸린 번역이니 찬반을 떠나서 차근차근 했어야 했다. 너무 서둔 감이 있다. (그런 것은) 우리 언어로 완결된 것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의 문제다. 단어 선택도 중요하다. 개념 하나하나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난다. 종교적으로 해석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 게 번역이다. 마르틴 루터는 성경 번역할 때 종교적 이해와 신념에 따라서 해석했다고 한다. ‘오로지라는 단어가 원문에는 없었지만 그는 오로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라는 식으로 그것을 읽어냈다.”

 

국내 최고의 번역가로 꼽히지만 그는 아직도 부족하다고 한다.

 

늘 부족한 것 같다. 마음대로 안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20년 이상 번역을 했으니 쉬워질 때도 됐을 법한데 또 다른 이유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고수라고 하니 출판사들이 어려운 책들을 들고 찾는다는 것.그래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책들을 포함해 연간 4~5권 정도를 꾸준히 번역한다. 대학 다닐 때부터 번역 일을 했으니 얼마나 많은 책을 옮겼을까.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여러 곳에서 몇 권이나 번역했냐고 묻는데 나도 정확히 모른다. 100권은 이미 넘었고 200권은 아직 안됐고. 양이 문제가 아니라 책의 난이도가 다르다. 문학과 인문학 범주의 책 번역을 계속 해왔는데 앞으로도 이 부분 번역을 계속할 것이다.”

 

좀 어렵더라도 그가 번역한 책들엔 많은 독자들이 빠져든다. 베스트셀러도 수두룩하게 냈다. 그래서 출판업계에서 그는 웬만한 작가보다 더 유명하다. 그렇다면 그 역시 번역하면서 같은 재미를 느꼈을까.

 

“‘기술적인 일이라 재미고 뭐고 없이 빠져든다. 하는 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데 뒷맛은 각각 다르다. 남이 재미있어 하는 것도 나에겐 다르게 다가온다.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이고 도전이고 과제다.”

 

번역한 책 가운데 재미있는 책을 꼽으라고 하자 그는 프로이트를 들었다.

 

프로이트는 뒷맛이 좋다. 하는 동안엔 일이지만. 가치 있는 책을 선택해서 하는 것이라 의미가 있다. 어려운 책은 많이 팔리지는 않으나 (저자가) 힘들게 쓰고 (번역자가) 힘들게 번역하고, 또 출판사도 큰 맘 먹고 낸다. 경제적으로 이익이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사회라면 그런 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번역·출판을) 공적으로 받쳐줘야 한다. 소비에만 맡겨선 안된다. 잘 된 사회라면 당장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이 아니라도 존중하고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정 교수는 번역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겸손하고 오만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생들에게도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이다. “번역은 오만해선 안된다. 원저자를 존중하며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표현이라도 원문과 다르다면 과잉이다) 저자와 일치를 위해 늘 노력하기 때문에 자연히 겸손하고 민주적인 사람이 되는 직업이다. 생활 속에서 존중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번역하며 존중하는 것은 다르다. 그 선을 유지하는 게 쉬우면서도 어렵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은 번역을 하면 안된다. 번역이 어떻다고 말하는 것보다 번역 그 자체로 말하는 게 중요하다. 번역을 잘하는 게 일번 과제다.”

 

그런 면에서 그는 번역하는 사람은 소설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설 쓰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우리는 배우처럼 (각본에 따르듯) 한다. 창작하면 번역해선 안된다. 이것은 빠지기 쉬운 덫이다.”

 

2. 내 마음에 무찔러 들어온 문장

 

2판 서문 나의 책을 위한 변명

 

7. ‘개설서가 나온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요구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지식은 관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방대해졌다. 모든 학문은 저마다 여남은 학문을 더 낳았으며, 새로 나오는 학문은 이전 학문보다 더 난해하다.

하나씩 하나씩 보기는 시간도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개설서가 나오면 편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일 것이다.

 

8. 한때 모든 학문을 불러들여 그 도움을 받아 세상의 일관된 이미지를 만들고 매혹적인 선()의 그림을 그리던 철학마저도 조정이라는 과제가 자신의 용기로는 감당할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진리의 전선에서 도주했다.

 

8. 인간의 지식은 인간의 정신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8. 이제 남은 것은 더욱 더 적은 것에 관하여 더욱 더 많이아는 학문의 전문가와 더욱 더 많은 것에 관해 더욱더 적게 아는 철학의 사변가뿐이었다.

 

8. 수많은 조각들로 잘게 쪼개져 고립된 지식은 이제 지혜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모든 학문, 그리고 철학의 모든 분야에 배타적인 귀의자만 알아들을 수 있는 전문 용어를 개발했다.

 

8. 전례없이 배움이 늘어나는 와중에 대중의 무지가 번청하고, 이런 무지가 자신의 대리인을 선택하여 세상 큰 도시의 지배를 맡겼다.

 

8. 알아들을 수 없는 비관주의를 중얼거리는 과학의 사제와 믿을수 없는 희망을 중얼거리는 신학의 사제 사이에서 보통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9. 이런 상황에서 직업교사의 역할은 분명했다. 바로 전문가와 국민을 중재하는 것이었다. 전문가가 자연의 언어를 배웠듯이 전문가의 언어를 배우고, 글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낡은 표현에 새로운 진실을 담아냄으로써 지식과 그에 대한 요구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학자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게임을 한다할지라도 아무문제는 없지만 대중의 요구를 외면하지 않고 이렇게 책을 낸다는 것은 그것이 학자들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그런데 낡은 표현이라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 그럼 내가 낡은 표현을 읽고 있다는 말인가.

 

9. 최초의 개설서’, 지식의 인간화를 위한 최초의 노력은 플라톤의 <대화>였다. 그는 두가지 글을 썼다. 하나는 학생들을 위하여 전문적인 언어로 쓴 것이고, 또 하나는 글을 아는 아테네 보통사람들을 철학의귀한 즐거움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대중적인 대화체로 쓴 것이었다. 철학을 문학으로 변형하거나, 드라마로 극화하거나, 아름다운 문체로 꾸미는 것이 플라톤에게는 철학에 대한 모욕으로 보이지 않았다......역사의 유머인지, 그의 전문적인 글은 사라지고 대중적인 글은 남았다. 역사의 아이러니인지, 학교에서 플라톤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은 이런 대중적 대화였다.

모든 학문이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용어로 그들만의 수준으로, 전문가 자기의 지식수준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그것을 모르는 내 자신에 대한 화와 그렇게밖에 가르치지 못하는 그에 대한 화. 난 그냥 쉽게 쉽게 해주면 좋겠다. 노자의 <도덕경>, 글을 쓰면서 해설까지 같이 해주면 얼마나 좋나? 노자도 역시 자기의 학문을 아는 사람은 이 정도 수준은 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저숧하지 않았을꺄? 지적 자랑질.

 

10. 헨드릭 빌렘 반 룬도 한손에는 펜을, 다른 손에는 연필을 들고서 눈을 반짝거리며 똑같은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그의 위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뛰어난 농담을 사랑했다. 웃을 터뜨리며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그림과 미소로 교훈을 주었다.....세상은 명예롭지 못한 방식으로 역사에 관한 지식을 넓혀갔다.

 

11. 독자들은 철학이 말 그대로 삶과 죽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고, 곧 소수를 위해 쓴 이 책을 칭찬하고, 사고, 심지어 이따금씩 읽어보기도 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큰 성공, 어떤 저자도 한번 경험하면 그 이상을 바라지 않을 성공을 거두었다.

부럽네. 교수보다도 이런 저술활동이 그를 더 유명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12. <철학 이야기>는 결함이 가득했고, 지금도 가득하다. 무엇보다도 불완전했다. 스콜라 철학을 완전히 생략해버린 것은 무도한 일로, 대학이나 신학교에서 그 철학 때문에 고생을 많이 한 바람에 그 이후 그 철학이 정직한 철학이라기보다는 위장된 신학이라고 분개한 사람만이 그일을 용서할 수 있었다.

 

12. 중국철학과 인도 철학의 생략이었다.

그러게 자아비판을 하네. 서양철학만 취급했네. 다들 동양철학을 높게 치면서도 다루지는 않네. 언젠가는 외국사람이 동양철학에 대해 쓴 책을 보고 싶다.

 

13. 인식론을 무시한 것은 사과할 생각이 없다.

 

13. 중서부 한 대학의 철학 교수는 15년째 칸트를 가르치고 있는데, 이 초보적인 장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칸트의 의미를 이해했다고 알려왔다.

 

14. 중국 철학자들은 인식론을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마치 프랑스 사람들처럼, 장황한 형이상학을 경멸했다.

 

14. <철학 이야기>는 유머라는 양념을 뿌리려고 노력했다......유머가 있다는 평판은 정치가나 철학자에게 재앙이다.

 

14. 앎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것을 하느님은 아신다. 40년 동안 진리를 찾으려 했음에도 여전히 그녀는 베일을 쓰고 있으며,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15. 마지막으로 <윤리학>을 다시 읽어라. 그러면 완전히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 두 번째로 다 읽으면 철학을 영원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시기, 몇 번째인가, 감정상태에 따라 다 달라보인다. 그러나 이 책은 두 번 읽기에는....너무 두껍다.

 

서론 - 철학의 쓸모에 관하여

 

23. 철학에는 즐거움이 있다. 심지어 신기루 같은 형이상학에도 매혹이 있다. 이것은 육체적 생존의 비루한 요구들 때문에 사상의 고원에서 경제적 투쟁과 이득의 장터로 질질 끌려 내려오기 전까지 모든 연구자가 느끼는 것이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즐거움.

 

23. 지금도 우리에게는 젊은 시절 지혜에게 구애를 하던 마음의 자취가 늘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브라우닝에게 공감한다. 삶에는 의미가 있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이 나의 고기요, 술이다.”

 

23. 우리는 우리 안에 뭔가 핵심적이고 중요한 것이 있다고, 다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을 판독할수 없을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우리는 이해하고 싶어한다. 산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 또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을 늘 빛이나 불꽃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23. “백만금이 아니라 질문에 대한 답을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

이젠 먹고 살만해져 그런 것인가. 부귀영화를 쫓고 싶은 생각은 많이 감소한 반면 지적 호기심과 지적 호승심은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다.

 

24. 우리는 불가피한 것 앞에서 웃음을 떠뜨리고,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미소를 짓고 싶어한다. 우리는 온전해지고 싶어하며, 우리의 욕망들을 비판하고 그것들 사이의 조화를 찾아내 에너지를 조절하고 싶어한다.

 

24.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명민하게 생각하거나 학파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지극히 사랑하여 그 가르침에 따라 단순하고, 독립적이고, 통 크고, 신뢰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지금 다시 대학을 선택하라면 철학과를 가고 싶다. 이런 이유에서.

 

25. 이것은 단지 철학이 과학의 방법에 아직 열려 있지 않은 문제들, 예컨대 선과 악, 미와 추, 질서와 자유, 삶과 죽음 같은 문제들을 다루는 힘겹고 위험한 과제를 받아들이고 있는 탓일 뿐이다. 한 탐구 분야가 엄밀하게 정식화할 수 있는 지식을 내놓는 순간, 그 분야는 과학이라고 불린다. 모든 과학은 철학에서 시작하여 예술로 끝난다.

 

25. 그것은 승리의 열매를 딸인 과학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거룩한 불만족 속에서 불확실하고 탐사되지 않은 곳으로 계속 나아가기 때문일 뿐이다.

 

25. 과학은 분석적 묘사이고, 철학은 종합적 해석이다.....과학은 사물의 가치나 이상적 가능성을 묻지 않으며, 전체적이고 최종적인 의미도 묻지 않는다.

 

25. 철학자는 사실을 묘사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사실과 경험 일반의 관계를 확인하고, 그럼으로써 그 의미와 가치에 이르고 싶어한다. 그는 사물들을 해석적 종합 안에 묶으려 한다. 호기심 많은 과학자가 분석적으로 분해한 위대한 우주시계를 전보다 잘 조립하려 한다.

 

25. 과학은 우리에게 치료하는 방법과 죽이는 방법을 말해준다. 그러나 사망률을 소매로 줄이다가 전쟁에서 우리를 도매로 죽인다. 오직 지혜만이 우리에게 언제 치료를 하고 언제 죽일지 말해 줄 수 있다. 과정을 관찰하고 수단을 구축하는 것은 과학이다. 목적을 비판하고 조정하는 것은 철학이다.

 

26. 철학이 없는 과학, 관점과 가치판단이 없는 사실은 파괴와 절망으로부터 우리를 구할수 없다. 과학은 우리에게 지식을 주지만, 지혜를 줄수 있는 것은 철학뿐이다.

 

26. 철학은 다섯가지 연구와 담론분야 즉, 논리학, 미학, 윤리학, 정치학, 형이상학을 의미하고 아우른다. 논리학은 사고와 조사에서 이상적인 방법을 연구한다. 미학은 이상적인 형식, 즉 아름다움을 연구한다. 이것은 예술의 철학이다. 윤리학은 이상적인 행동을 연구한다. 소크라테스는 최고의 지식은 선악에 관한 지식, 삶의 지혜에 관한 지식이라고 말했다. 정치학은 이상적이 사회조직을 연구한다. 군주정치, 귀족정치, 민주정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페미니즘, 이런 것들이 정치철학의 등장인물이다. 형이상학는 모든 사물의 궁극적 실재를 연구한다. 물질’(존재론), ‘정신’(철학적 심리학), 인지와 인식 과정에서 정신물질의 상호관계(인식론) 등의 진정한 최종적 본질을 연구한다.

 

27. 에머슨은 묻는다, “진정한 학자가 되는 비결을 아는가? 모든 사람에게는 뭔가 배울 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의 제자다.” 우리가 그런 자세를 취하는 상대는 역사상 최고의 정신들이니,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일은 없을 것이다.

 

28. 우리 주위에서 윙윙거리는 현실에 함축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28. “합리적인 태도로, 철학교사들이 좋으냐 나쁘냐를 따지지 말고, 오직 철학 자체만을 생각하라. 철학은 진심으로 잘 검토해보라. 철학이 약하면 모든 사람을 철학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노력하라. 하지만 철학이 내가 지금 믿고 있는 그런 철학이라면 철학을 따르고 섬기며 기운을 내도록 하라.”

 

1장 플라톤

 

29. 플라톤은 조밀하고 섬세한 논리와 시에 대해여 아폴론과 같은 열망을 보기 드물게 결합하고 있다. 그의 시대의 광휘와 조화는 이 둘을 녹여서 음악적 인상이 강렬한 하나의 거침없는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 물줄기는 숨 가쁘게 질주하듯 다급하게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도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1절 플라톤의 등장배경

 

32. 젊은 유럽과 노쇠한 동방이 맞붙은 이 싸움에서 스파르타는 육군, 아테네는 해군을 제공했다. 전쟁이 끝난 뒤 스파르타는 군대를 해산했고, 그런 과정에 당연히 수반되는 경제적 혼란을 겪었다. 그러나 아테네는 해군을 상선 선단으로 바꾸어, 고대 세계 최대 교역 도시로 부상하게 되었다. 스파르타는 농사를 지으며 은둔과 정체에 빠져든 반면, 아테네는 번잡한 시장과 항구가 되어, 여러 인종의 사람들, 다양한 종교와 관습이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이런 접촉과 경쟁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비교하고 분석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다를 제패한자 세계를 제패한다라는 말이 있다.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일찍이 이순신은 말씀하셨다. “바다에서 오는 적을 막는데는 수군만한 것이 없습니다. 수전(水戰)이고 육전(陸戰)이고 어느 한쪽도 단념하고 폐지해서는 안됩니다. 遮遏海賊(차알해적) 莫舟師若也水陸之戰(막주사약야수육지전) 不可偏廢(불가편폐)”. 내가 해군 출신이라서 이러는 건 아니다. 정말 바다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여기서도 답이 나오지 않나. 아무튼 아테네가 철학의 꽃을 피우게 된 배경도 역시 바다에 대한 그들의 태도때문일 것이다.

 

33. 교환이 점점 복잡해지면서 수학이 성장했고, 항해가 점점 대담해지면서 천문학이 성장했다. 부자가 늘면서 연구와 사고의 전제조건인 여가와 안정이 확보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별에게 바닷길의 안내만이 아니라 우주의 수수께끼에 때한 답도 요구하였다.

생활의 여유가 있어야 생각을 하지 여유가 없으면 그런 생각조차 할 시간이 없다는 걸 이젠 알겠다.

 

33. 전에는 초자연적인 매개체나 힘 탓이라고 생각하던 사건이나 과정을 자연에 근거하여 설명하려 했다. 마법과 제의가 서서히 물러나면서 과학과 통제가 들어섰다. 그리고 철학이 시작되었다.

 

34. 그들은 무엇에나 질문을 던졌다. 종교나 정치적 금기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다. 대담하게도 모든 신조와 제도에 이성의 법정에 출두하라는 소환장을 보냈다. 그들은 정치학에서 두 학파로 나뉘었다. 한 학파는 루소처럼 본성이 선하고 문명이 악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오직 계급을 구분하는 제도 때문에 불평등해진다고 보았다. 법은 약자를 묶고 지배하기 위한 강자들의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다. 또 다른 학파는 니체처럼 자연은 선악을 넘어선다고 주장했다. 모든 인간은 불평등하게 태어난다. 도덕은 강자를 제한하고 저지하려는 약자의 발명품이다. 권력은 인간의 최고의 미덕이자 최고의 욕망이다. 모든 통치 형태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가장 자연스러운 것은 귀족정치다. 이런 것들이 그들의 생각이다.

 

34. 최고의 공식기구인 디카스테리아, 즉 최고 법정은 구성원이 1,000명이 넘었고(뇌물을 주기 어렵게 하려고), 전체 시민에서 알파벳 순서로 선발했다.

뇌물은 시대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것. 그 당시에는 꽤 획기적인 방법이네.

 

2절 소크라테스

 

35. 어떤 인간적인 따스함과 허세 없는 소박함을 만날 수 있으며, 덕분에 이 못생긴 사상가는 아테네의 가장 훌륭한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선생이 되었다.

 

36. 오늘날 인간 사회를 흥분시키고 젊은이들에게 끝없는 토론 자료를 제공하는 온갖 문제들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이 작은 무리를 그때도 흥분시켰다. 그들은 선생과 마찬가지로 담론 없는 삶은 인간에게 가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모임에는 모든 사회사상 학파의 대변인이 있었으며, 어쩌면 그 학파들이 실제로 여기에서 유래했는지 모른다.

 

36. 그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내일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식탁을 빛내달라고 초대하면 가서 먹었다. 제자들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일을 하지 않으면서 철학을 얘기하는 그는 행복했을 것이다.

 

36. 그러나 집에서는 환영받지 못했다. 처자식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인 크산티페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게으름뱅이로, 집에 빵보다는 오명만 가져오는 사람이었다. 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만큼이나 말하기를 좋아했다....크산티페는 소크라테스를 사랑했으며, 소크라테스가 70년을 산 뒤에 죽었음에도 보내기를 아쉬워했다.

위대한 철학가인 그나 나나 별반 다른게 없네. 부인에게 무시를 받는 건. 아마 이건 남자들의 숙명인가 보다.

 

37. 왜 제자들이 그를 그렇게 존경했을까? 어쩌면 그가 철학자였을 뿐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그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그의 겸손한 지혜였음이 틀림없다. 그는 지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고, 다만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혜를 구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그는 지혜의 전문가가 아니라 아마추어였다.

 

37. 그는 이 신탁이 그의 철학의 출발점인 불가지론을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아는 유일한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철학은 의심할 때, 특히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믿음, 교조, 이치를 의심할 대 시작된다. 이런 소중한 믿음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확실한 것이 되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37. 물론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철학자는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자연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피지스(phisis), 즉 외적 사물의 본질, 물질과 측정 가능한 세계의 법칙과 구성 요소를 찾았다. 그것은 매우 훌륭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렇게 말했다. 러나 철학자들에게는 이 모든 나무와 돌,심지어 저 별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정신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38. 이런 소크라테스식 방법’, 즉 정확한 정의, 분명한 사고, 정밀한 분석에 대한 요구 때문에 고통을 겪은 몇 사람은 그가 답보다 질문이 더 많으며, 사람의 마음을 그와 이야기하기 전보다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든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우리의 가장 어려운 문제 두 가지에 대해 아주 분명한 답 두 가지를 철학에 유산으로 물려주었다. 그 질문 가운데 첫째, 덕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고, 둘째는, 최선의 국가는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다.

 

38. 소피스트들은 젊은이들이 올림포스 신들에게 갖고 있던 믿음을 파괴했으며, 그와 더불어 어디에나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들에 대한 두려움에 근거하여 강제력을 발휘하던 도덕률에 대한 믿음도 무너뜨렸다.

 

38. 파괴적인 개인주의는 아테네 사람들의 품성을 약화시켰고, 결국 이 도시는 엄하게 양육된 스파르타 사람들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국가라는 면에서 보자면, 대중이 주도하고 감정이 뒤섞인 이런 민주정치, 토론회가 다스리는 이런 정부, 장군들을 경솔하게 선발하고 해임하고 처형하는 이런 작태, 무지한 농부와 상인을 알파벳 순서에 따라 최고 법정의 구성원으로 뽑는 이런 무차별적 선택보다 우슥꽝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아테네에서 어떻게 새롭고 자연스러운 도덕성이 계발될 수 있을까? 이 국가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소크라테스가 죽은 것은, 또 불명의 존재가 된 것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그의 답 때문이었다.

 

39. 소크라테스에게는 그 나름의 종교적 믿음이 있었다. 그는 유일신을 믿었으며, 죽음으로 자신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를 겸허하게 바랬다.

 

39. 종교적 교리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신앙인만이 아니라 무신론자에게도 유효한 도덕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신학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더라도 고집스러운 개인을 공동체의 평화로운 시민으로 만드는 도덕적 유대가 느슨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40. 지적으로 관리되는 사회-자유의 제한을 통해 개인에게서 빼앗아가는 것보다 권리의 확대를 통해 개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많은 사회-에서는 사회적이고 성실한 행동을 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며, 분명하게 보는 눈만 있으면 평화의 질서와 선의가 유지될 수 있을 터였다.

 

40. 생각이 없는 곳에 혼돈이 있고, 군중이 무지한 상태에서 서둘러 결정을 내렸다가 나중에 숨을 돌리고 나면 쓸쓸하게 후회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42. 그런 벗을 잃는다는 나 자신의 불행을 생각하여 운 것이다. 내가 처음 운 것이 아니다....이것이 진실로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지혜롭고, 가장 의롭고, 가장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는 우리 친구의 마지막이었다.

 

3절 플라톤의 준비단계

 

44. 소크라테스를 만난 것은 플라톤에게 삶의 전환점이었다.

나는 구본형 선생님, 변경연을 만난 것이 전환점이다.

 

45. 그는 군인으로서 뛰어났으며, 코린트 지협 경기대회에서 두 번이나 상을 탔다.

그도 군인이었구나. 나도 철학자가 될수 있겠구나. ㅎㅎ

 

45. “내가 야만인이 아니라 그리스인으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으로, 여자가 아니라 남자로 태어난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가 스크라테스의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한다.”

 

45. 그는 민주정치를 경멸하게 되었고, 군중을 증오하게 되었다.

장난으로 시작된 사건이 결국 소크라테스를 죽인 것이다. 우습게도 결과는 280:220이라고 한다. 민주정치의 명암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무조건 옳지도 그렇다고 틀리지도 않은. 우리는 결론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 늘 이렇게 얘기한다. 다수결로 하자고...

 

45. 그는 카토처럼 민주정치를 파괴하고 가장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의 지배로 바꾸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가장 지혜롭고 훌륭한 사람들을 발견하여, 그들에게 통치할 능력을 주고 또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설득할 방법을 찾아내는 일은 그가 평생 몰두하는 과제가 되었다.

 

46. 플라톤은 총 12년을 방랑하며 모든 곳에서 지혜를 흡수하고, 모든 신전에 들어가 보고, 모든 신조를 음미했다.

그게 여행이 되었던 방랑이 되었던 어찌됐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곳을 다녀야 머리가 눈을 뜨는 것일 것이다.

 

46. 이제 그는 다양한 많은 민족과 많은 땅의 지혜로 성숙하게 무르익은 마흔의 남자였다. ..이제 균형잡힌 사고를 할 수 있다.

 

47. 그가 농담과 비꼼과 신화를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는 간혹 당황하게 된다. 플라톤은 오직 우화로만 가르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4절 윤리적 문제

 

50. 사람들이 불의를 비난하는 것은 불의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오.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는데 어떤 가책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란 말이오.

 

50. “나는 자신이 절름발이이기 때문에 선하다고 생각하는 약골들을 보고 진실로 여러 번 웃음을 터뜨렸다.” 슈티르너도 한줌의 힘이 가방 갇그한 올바름보다 낫다.”

 

51. 진실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자신의 욕망이 최대로 부풀어 오르는 것을 허락해야 합니다. 대신 욕망이 최대로 커졌을 때는 그것을 돌볼, 모든 갈망을 충족시킬 용기와 지혜가 있어야 하지요.

 

51. 그런 정의는 주인의 도덕이 아니라 종의 도덕이다. 영웅의 도덕이 아니라 노예의 도덕이다. 인간의 진정한 덕은 용기와 지성이다.

 

52. “여러분도 옳냐 그르냐 하는 것은 오직 힘이 동등할 때에만 문제가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사실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있을 겁니다. 강한 자는 할수 있는 일을 하고, 약한 자는 어쩔수 없이 싫은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윤리의 근본적 문제, 도덕적 행위 이론의 핵심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올바름을 추구할 것이냐, 힘을 추구할 것이냐? 선한 것이 낫냐, 강한 것이 낫냐?

 

52. 그는(플라톤) 정의로운 국가를 그려볼 수 있다면, 정의로운 개인은 더 쉽게 묘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개인의 행동이라는 작은 규모의 정의보다는 큰 규모의 정의 분석이 쉽다는 말이다.

 

5절 정치 문제

 

53. 이 대목에서 인구조절(아마도 영아 살해에 의해서), 채식주의, ‘자연으로의 회귀’-히브리 전설이 에덴동산에서 그리고 있는 원시적 단순성을 가리킨다.-를 스쳐가듯 언급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54. 왜 내가 묘사한 그런 소박한 낙원은 결코 오지 않을까? 왜 이런 유토피아는 결코 지도에 나타나지 않을까? 플라톤은 대답한다. 탐욕과 사치 탓이다. 사람들은 소박한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소유욕이 있고, 야망이 있고, 경쟁심이 있고, 질투심이 있다. 그들은 이미 가진 것에 곧 싫증을 내고, 가지지 못한 것을 갈망한다. 가만히 있다가도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으면 갖고 싶어한다. 그 결과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영토를 잠식하고, 땅의 자원을 둘러싼 집단 간 경쟁이 벌어지고, 전쟁이 터진다.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나만 봐도 그렇다. 경제적 상황이 어려웠던 아이였을 때 친구가 가지고 있던 건담로봇 장난감이 그렇게 가지고 싶었다. 아무리 본드로 여러 가지 장난감을 조합해봤자 건담이 될수는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것만 가지면 돼. 해서 이것을 사면 또 다른 것을 사고싶어 안달이 난다.

 

55. 어느 경우든 끝은 혁명이다. 혁명은 사소한 이유와 작은 변덕 때문에 일어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작은 일을 계기로 발생한다 해도, 그동안 쌓인 심각한 잘못들의 결과가 급작스럽게 터져 나온 것이다. 아픈 곳을 태만히 하여 몸이 약해지면, 조금만 무리를 해도 심각한 병이 생길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사라예보의 총성 한발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없었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결국 일어난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혁명은 그동안의 내재되어 있던 힘들이 축적되고 또 축적되다가 도저히 눌러둘수 없는 임계치에 다다랐을 때 폭발하는 것이고 그것의 기촉제 역할을 하는 것이 그 사소한 일일 것이다.

 

55. 민주정치도 지나침 때문에, 지나친 민주주의 때문에 망한다. ...인민이 교육에 의해서 최고의 통치자를 뽑고 가장 지혜로운 방향을 선택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 못한 탓에 참담한 결과가 온다.....어떤 교조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려면 대중적인 연극에서 찬양하거나 조롱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날이라고 다를까. 다만 언론 등에 의해 좋거나 나쁜 사실은 급속도로 우리 사회에 퍼져나간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기 보다는 대중의 시선에 휩쓸려간다.

 

55. 군중은 아첨을 무척 사랑하고 꿀에 굶주려 있기때문에 마침내 인민의 보호자를 자처하는 가장 교활하고 양심 없는 아첨꾼이 최고 권자에 오른다.

 

56. 사람이 신발을 만드는 것 같은 단순한 일에서는 오직 그 일을 위해 훈련받은 사람이 그 일을 더 잘하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정치에서는 표를 얻을 줄 아는 사람이 도시나 국가를 잘 관리할 거라고 생각한다며 불평한다.

오늘날과 정말 똑같네. 하지만 그 시대에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에나 나아진게 없는 걸 보면 이게 최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56. 그렇다면 국가 전체가 아플 때도 가장 지혜롭고 가장 훌륭한 사람의 봉사와 안내를 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능하고 부정한 사람이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막고, 공동의 선을 위해 통치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사람을 선출하고 준비시키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 이것이 바로 정치철학의 과제다.

 

6절 심리문제

 

56. “국가도 사람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성격이 변하면 정부도 변합니다......국가는 그 안에 있는 인간들의 본성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지금 이런 상태인 것은 그 시민이 지금 이런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더 나아지기 전에는 국가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와우~~그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놀랍다. 얼마전 우리나라의 국격이 떨어지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 사람만 비난할수 있는가. 그렇다 나라를 이렇게 만든건 다 우리 국민들이 그런 수준이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치에 대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얼마전까지는 정치는 내가 말할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군인과 정치는 절대 관계되어서는 안되는 불문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자유로워졌다.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의사를 어떤식으로 표현하고 투표를 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나아질 것이다. 내가 변하면 주변이 변하기 시작하고 주변이 변하면서 더 큰 주변이 변할 것이다.

 

57. 법을 손보려 할 때면 개혁으로 인류의 부정직과 악행을 끝낼 수 있을거라고 상상하니까요. 실제로는 히드라의 머리만 잘라낼 뿐이라는 것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57. 플라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욕망, 감정, 지식 등 세가지 주요 원천에서 흘러나온다....욕망은 허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터질 듯한 에너지 저장소이며, 근본적으로 성적이다. 감정은 심장에, 피의 흐름과 힘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경험과 욕망의 유기적 공명이다. 지식은 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이것은 욕망의 눈이며, 영혼의 조타수가 될 수 있다.

 

58. 명상과 이해에서 기쁨을 얻는 소수가 있다. 이들은 물품도 승리도 아닌 앎을 갈망한다...그들의 안식처는 권력이 아니라 진리다.

 

58. 감정에 의해 뜨거워진 욕망이 지혜의 인도를 받을 때 효과적인 인간 행동이 나오듯이, 완벽한 국가에서도 산업세력은 생산을 하지만 통치는 하지 않는다. 군대는 보호하지만 통치하지 않는다.

 

7절 심리적 해법

 

59. “도시의 열 살 이상 거주자를 전부 시골로 보내, 국각가 이 아이들을 맡아 부모의 습관으로부터 보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고비마다 어른들의 선례 때문에 부패하는 젊은이들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는 없다.

 

59. 우리는 모든 아이에게 처음부터 교육이 기회를 완전히 평등하게 부여해야 한다....인생의 첫 10년 동안 교육은 주로 체육이 될 것이다. 모든 학교에 체육관과 운동장이 있어야 한다. 이때는 놀이와 운동이 전 교육과정을 차지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많이 뛰고 놀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체육시간이 일주일에 2번이란다. ~~

 

60. “어떻게 하면 큰 용기와 부드러운 성격을 겸비할 수 있을까요?....영혼은 음악을 통하여 조화와 박자를 배우며, 심지어 정의를 이루고자 하는 경향도 배운다.조화로운 기질을 갖춘 사람이 불의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왜 음악교육이 그렇게 강력합니까? 박자와 화성은 영혼의 비밀스러운 곳을 찾아 들어가, 그 움직임에 우아함을 부여하여, 결국 영혼을 우아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닙니까?“ 음악은 성격을 형성하며, 따라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쟁점들을 결정하는 데 한몫한다.

 

62. 음악과 박자는 영혼과 몸에 품위와 건강을 준다. 그러나 지나친 음악은 지나친 운동과 마찬가지로 위험하다....이 둘은 결합되어야 한다.

 

62. 기본 과목은......어린시절에 가르쳐야 하지만, 절대 강요하면 안됩니다. 자유인은 지식의 획득에서도 자유인이어야 합니다......강요에 의해 얻은 지식은 정신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위대한 철학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통용된다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62. 정신이 자유롭고 성장하고 신체가 온갖 종류의 운동과 야외 활동으로 튼튼해지면, 우리의 이상적 국가는 모든 가능성과 모든 발전을 수용할 만큼 넓고 견고한 심리적, 생리적 기초를 갖춘 셈이다. 그러나 도덕적 기초도 제공해야 한다....따라서 서로 예의를 지키고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63. 초국가적 권위가 공동체의 도덕적 요구를 승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가 있어야 한다. 플라톤은 신을 믿지 않는 나라는 강해질 수 없다고 믿는다....괴로운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도 없고, 적에게 포위된 영혼에게 용기를 줄 수도 없다.

종교의 역할을 얘기하는 것일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각박한 시대는 종교의 힘이 약해져서 그럴수 있다.하지만 종교는 이성과 반대된다. 이성적인 사람은 종교를 받아들이기 무척 힘이들다. 반면 한번 받아들이면 무섭다. 나는 물론 받아들이기 힘든 쪽이다.

 

63. 신을 믿는 것에 불멸에 대한 개인의 믿음이 보태지면 더 좋다. 다음 생에 대한 희망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죽음에 맞서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견딜 용기를 준다. 신앙을 갖고 싸우면 두 배로 무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65. 신이 여러분을 다르게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명령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신이 이들을 금으로 만들었기에 그들이 가장 큰 명예를 누리는 것이다.....또 어떤 사람들은 농부나 장인이 되는데, 이들은 황동과 쇠로 만들었다. .... 통치자는 아들에게 계급 하강이 일어나 농부나 장인이 된다 해도 자식을 애처로운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 황동이나 쇠로 만들어진 인간이 국가를 지키면 그 국가는 멸망한다고 신탁이 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부모된 입장으로 자식은 더 높은 곳을 가기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거늘 아래로 떨어지는 것에 대해 지켜볼 부모는 쉽지 않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완책은 있어 보인다. 그렇게 자기가 할 일이 정해져 있더라도 일정한 기간을 거쳐 재 시험을 볼수 있고 거기서 다시 올라갈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다.

 

65. 귀한 즐거움인 철학은 주로 두 가지를 의미한다.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 즉 형이상학이다. 그 다음에는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 즉 정치학이다.

 

67. 플라톤은 단테처럼 그의 아카데메이아의 문위에 이런 말을 걸어놓았다. “기하학을 모르는 자는 이곳에 들어오지 마라.”

 

67. 이런 이데아-이런 일반성, 규칙성, 이상-없다면, 우리에게 세상은 틀림없이 아이가 처음 눈 뜨고 본 바와 같을 것이다. ...... 또 이데아 없는 세상은 카탈로그에서 쏟아져 아무렇게나 쌓인 책 제목과 같을 것이다.

 

68. 수준 높은 교육의 핵심은 이데아를 찾는 것이다. 일반성, 관련의 법칙, 발전의 이상을 찾는 것이다....법칙이나 목적이라는 맥락에서 우리의 감각 경험을 분류하고 조정해야 한다. 오직 이 한가지를 할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바보정신과 카이사르 정신으로 갈라진다.

 

68. 교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는 주로 이론적인 교육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박사들을 철학의 고원에서 인간과 사물의 세상이라는 동굴안으로 내려가게 해야 한다. 일반성과 추상은 이 구체적 세계의 검증을 받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배운 것을 실생활과 연계시키는 것.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

 

68. 이 가장 험난한 마지막 시험은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자비하게 계속될 것이다. ....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 흉터 많은 쉰 살이 되어, 침착하고 자신감이 넘칠 것이고, 삶의 무자비한 마찰에 학자연하는 허영이 깎여나갔을 것이며......이 사람들은 자동으로 국가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나 50세까지 공부해야 한다. 그때까지 밥은 누가 주나? 국가가?

 

8절 정치적 해법

 

69. 민주주의란 기회, 특히 교육 기회의 완전한 평등을 의미한다.

지금 전혀 그렇지 않다. 교육만큼에서는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진짜 평등해야 한다고 본다. 사교육 금지, 공교육 활성화, 특목고/자사고 폐지. 답이 무얼까.

 

70. 우리는 최고인 사람들이 통치하기를 바라며, 이것이 귀족정치의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귀족정치를 세습적인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플라톤의 귀족정치는 그런것이 아니라는 데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자.

 

70. 그들 앞에 제시되는 두 악 가운데 작은 악을 맹목적으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는 모든 선거가 그렇다. 이 사람도 맘에 안들고 저 사람도 맘에 안드는데 그 중에서 한명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다.

 

70.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건 재능에 맞게 앞날이 열린다. 이것이 교육의 민주주의, 투표의 민주주보다 백 배는 정직하고 효과적이다.

 

70. 하지만 쉰 살의 남자들이 어떻게 유연한 지성을 가질 수 있을까? 반복되는 일과로 정신에 깁스를 하게 되지 않을까?

정확한 지적이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키워지면 사고가 굳어질수 있는 위험이 있다.

 

71. 플라톤은 학교에서 철학자들에게 학식을 주었을 뿐 아니라 생활 훈련도 시킴으로써 이런 곤란에 대비했다고 대답한다. 따라서 그들은 단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 오랜 경험과 시련에 단련되어 높은 목적과 고상한 기질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 그러한 것들이 훈련으로 얻어질수 있는 걸까.

 

71. 플라톤이 말하는 철학은 행동하는 교양이며, 삶의 구체적이고 분주한 면과 어우러진 지혜다. 그가 염두에 둔 사람은 골방에 갇힌 비실용적 형이상학자가 아니다.

 

72. 그들은 성직자들처럼 함께 식사한다. 또 소박한 삶을 살겠다고 맹세한 군인들처럼 단일한 막사에서 함께 잔다.

감옥도 아니고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이론이지. 이 부분은 동의하가기 힘들다.

 

73. 그들의 유일한 보상은 명예와 집단에 봉사한다는 자부심이다.

여간의 훈련과 마음가짐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것이다.

 

73. 하지만 그들의 부인들은 이 모든 일을 두고 무슨 말을 할까? 부인들 또한 사치스러운 생활과 아낌없는 물자 소비를 포기하고도 만족할까? 그러나 수호자에게는 부인이 없다.... 그들은 한 여자가 아니라 공동체에 헌신한다. .....이렇게 엉켜 자라는 가운데 부모자식 관계는 사라진다.

동의 불가! 여자를 공산주의 물질과 같이 여긴다니. 가도 너무 간 느낌

 

74. 노동의 분업은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지, 성별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날카로운 반박을 받는다. 여자가 정치적 관리에 능력을 보인다면 다스리게 하라.

 

74. 선별된 건강한 부모에게서 제대로 태어나야 한다. “교육은 출생 이전에 시작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떤 남자든 여자든 완벽한 건강 상태가 아니면 자식을 낳지 말아야 한다.......서른 다섯 살이 되어 결혼하지도 않은 남자에게는 벌금을 부과하여 결혼의 행복을 맛보도록 유도한다. 불법 짝짓기에서 태어난 후손이나 기형인 후손은 죽게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비 민주주의적이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구속하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이해하기 힘들다.

 

75. 동시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가장 큰 이유는 인구과잉이다. 두 번째는 외국과의 교역으로, 여기에서는 분쟁이 일어나 교육이 중단되는 사태가 불가피하게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사실 경쟁적인 교역은 전쟁의 한 형태이다.

 

77. 완벽한 사회란 각각의 계급과 단위가 자신의 본성과 적성에 가장 잘 맞는 일을 하는 사회. 어떤 계급이나 개인도 다른 계급이나 사회에 개입하지 않고, 모두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능률적이고 조화로운 전체를 만들어내기 위해 협력하는 사회다. 이것이 정의로운 국가일 것이다.

 

9절 윤리적 해법

 

77. 정의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서 가치있는 것은 단 세 가지 뿐이다. 정의, 아름다움, 진리. 그러나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의미를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77. 정의만큼은 플라톤이 정의를 시도한다. “정의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이란 딱 맞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자신이 받는 것과 똑같은 가치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는 매우 조화롭고 능률적인 집단이 될 것이다.

 

78. 사람들이 타고난 자리를 벗어나는 곳, 사업가가 정치가를 굴복시키는 곳, 군인이 왕의 자리를 찬탈하는 곳-그런 곳에서는 부분들 간의 협력이 파괴되고, 접합부가 썩고, 사회는 해체되고 용해된다. 정의는 효과적인 협력이다.

 

78. 모든 개인은 욕망, 감정, 관념으로 이루어진 우주 또는 혼돈이다. 이런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면 그 개인은 생존하고 성공한다. 반대로 이런 요소들이 제자리와 제 기능을 잃으면, 감정이 행동의 열만이 아니라 빛도 되려고 하면, 인격의 해체가 시작되고 불가피하게 찾아오는 밤처럼 실패가 찾아온다. 정의는 영혼과 각 부분의 질서와 아름다움이다.

 

79. 모든 도덕적 개념은 공동의 선()주위를 맴돈다. 도덕은 결합과 상호의존과 조직에서 시작된다. 사회 안의 삶은 개인의 주권 가운데 일부를 공동의 질서에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결국 집단의 복지가 행동 규범이 된다. 자연이 그것을 요구하며, 자연의 판단은 늘 최종적이다......그 구성원들은 공동의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능력이 있어야, 다른 집단과 경쟁하거나 갈등하는 과정에서 살아남을수 잇다.

 

79. 예수는 도덕이 약자에게 친절한 것이라고 말했다. 니체는 강한 자의 용기라고 말해다. 플라톤은 전체의 효과적인 조화라고 말한다. 어쩌면 이 세 가지 신조가 결합하여 하나의 완벽한 윤리를 만들어야 할지도 모fms.

 

10절 비판

 

80. 이 유토피아 전체에 관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이 유토피아가 가능할까? 가능하지 않다면, 현대에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특징들을 찾을 수는 있을까? 어떤 곳에서든, 어느 정도든 실현된 적이 있을까?

 

80. 유럽은 천 년동안 이 철학자가 꿈꾸었던 것과 상당히 비스한 수호자 집단이 통치했기 때문이다. 중세에는 기독교 나라의 주민을 노동자, 군인, 성직자로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 마지막 집단의 수는 적었지만 문화의 도구외 기회를 독점하여, 지구의 가장 강력한 대륙의 반을 거의 무제한의 힘으로 통치했다. 성직자는 플라톤의 수호자들처럼 민중의 투표가 아니라 교회와 관련된 연구와 행정에서 보여준 재능, 묵상하는 소박한 삶을 좋아하는 기질, 그리고 국가와 교회에서 권력을 쥔 친척들의 영향력에 의해 권위 있는 자리에 올랐다.

 

81. 가톨릭은 이런 교의들에 따라 힘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 유럽의 민중을 통치할 수 있었다. 유럽 민중은 기꺼이 이런 통치자들을 물질적으로 풍부하게 뒷받침했으며, 정부에서 목소리를 내겠다는 요구도 하지 않았다.

 

81. 플라톤은 그 게획의 많은 부분을 여행 중에 목격한 실제 관행에서 끌어왔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82. 모든 사람이 형제가 되는 사회를 계획하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우리 남성 모두에게 그런 용어를 확대하면 거기 깃든 모든 온기와 의미가 빠져버릴 것이다. 공동 소유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책임을 희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모두에게 속하면 아무도 어떤 것도 돌보지 않을테니까.

 

83. “우리는 일반인의 수준을 넘어서는 미덕의 기준을 가정하지 말아야 하며, 본성과 환경이 특별히 우호적인 경우에만 가능한 교육도 가정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로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삶, 그리고 일반국가가 달성할 수 있는 통치 형태를 존중해야 한다.“ 이것이 플라톤의 가장 위대한(그리고 가장 질투심 많은) 제자의 비판이다.

 

83. 남자가 아내의 일부만 나누어 갖는 데에 만족하리라고 생각하여, 남성의 소유욕에 기초한 질투를 과소평가하였다. 또 국가에서 자식을 데려가 냉정한 익명성을 전제로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어머니들이 동의할 것이라고 가정하여 모성 본능을 가볍게 여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을 폐지함으로써 도덕의 위대한 양육자이자 그런 협력적이고 공산주위적인 습관의 주요한 원천을 파괴해버렸다. 사실 가족이야말로 그의 국가의 심리적 기초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비할 바 없는 웅변으로 자신이 앉은 나뭇가지를 잘라내다 버렸다는 것이다.

 

84. 하지만 수호자들이 정치적 권력만 있지 경제적 권력은 없다면, 어떻게 통치를 유지할 수 있는가? 헤링컨과 마르크스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권력은 경제적 권력의 반영으로, 경제적 권력이 정치적 피지배계급으로 넘어가면 정치적 권력이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이것은 매우 근본적인 이의 제기로, 어쩌면 치명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카노사에서 왕들의 무릎을 꿇렸던 고마 카톨릭 교회의 권력은 통치 초기 몇 백년은 부의 전략보다도 교리의 가르침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는 점으로 응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교회의 오랜 지배는 유럽의 농업적 조건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자연력의 변덕에 무력하게 의존하고, 자연을 통제하지 못하여 늘 공포를 느끼고, 또 그로 인해 숭배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초자연적 믿음을 갖는 경향이 있다.

 

85. 산업과 상업이 발달하면서 현실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새로운 유형의 정신과 인간이 등장했고, 교회는 이 새로운 경제적 현실과 갈등을 일으키자마자 권력을 잃어버렸다. 정치적 권력은 변하는 경제적 힘들의 균형에 계속 적응해야 한다. 만일 플라톤의 수호자들이 경제적 계급에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면 금세 그 계급의 통제를 받는 정치적 관리로 전락할 것이다.

 

85. 혁명 러시아의 군사력으로도, 식량 재배를 통제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나라의 운명도 통제하는 농민들 사이에 개인주의적인 사적 소유가 발달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86. 아테네의 민주적 교란에 겁을 먹고 개인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무시했다. 곤충학자가 벌레를 분류하듯, 인간을 계급에 따라 배치한다.

 

86. 그의 국가는 움직임이 없다. 따라서 창조에 적대적이고 변화를 시기하는 경직된 80대가 다스리는 구식사회가 되기 십상이다.

 

86. 기본적으로 플라톤의 말은 옳다. 그렇지 않은가? 이 세계에 필요한 것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의 통치다.

 

87. 제대로 훈련받고 자격을 갖춘 다음에 후보로 나선 사람들 가운데에서 유권자들이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서로 구별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 4년마다 사기극을 공연하는 현재보다 민주적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질 것이다.

이것도 힘들것이다. 이미 기득권이 형성되어 있으므로 그들이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87. 부모의 재산에 관계없이 원하는 남녀 누구나 대학교육을 받고 정치적 발전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는 것이다. ......부모의 경제 형편 때문에 교육과정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라는 이름에 걸맞은 일일 것이다.

적극 찬성한다. 교육이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뀔텐데

 

87.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할 수 있고, 적어도 그 가운데 일부를 현실로 바꾸려 하는 데 인간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만드는 동물이다. “우리는 앞과 뒤를 보고, 있지 않은 것을 갈망한다.”

 

88. 디오니시우스는 플라톤의 계획을 따르려면 자신이 철학자가 되거나 왕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난색을 보였다. 결국 심각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플라톤은 노예로 팔렸으나 친구이자 제자인 아니케리스가 구해주었다고 한다.

단적인 실패의 예를 보여준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놓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한 것이다. 이런 얘기는 처음 들었다.

 

2장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리스 과학

 

91. 다른 어떤 사상가도 세계의 계몽에 그렇게 기여한 적은 없다. 그 뒤의 모든 시대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의존하며, 진리를 보기 위해 그의 어깨에 올라선다. 다른 어떤 정신도 그렇게 오랜시간 인류의 지성을 지배한적은 없었다.

 

1절 역사적 배경

 

93.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 밑에서 8년 또는 20년을 공부했다.....플라톤 주의가 깊이 스며 있는 것을 보면 20년이라고 보는 쪽이 나을 듯하다.

8년과 20년의 차이는 너무 크다. 20년을 공부한다. 가능한 일인가. 하긴 그 정도해야 스승과 싸울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겠는가.

 

93. 그러나 둘 다 천재였다. 이런 천재들은 마치 다이너마이트와 불처럼 서로 조화를 이루기 힘든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이들의 나이 차이는 거의 쉰 살이었다.

나가면 되지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남아 있었을까? 플라톤이기 때문이다.

 

94. 아리스토텔레스는 책을 모으는데 아낌없이 돈을 썼다. 그는 에우리피데스 이후 최초로 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든 인물이었으며, 도서관 분류 원칙을 만든 일도 그의 학문적 업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서의 집을 읽는자의 집이라고 불렀다.

 

94. 진짜 싸움은 플라톤의 말년에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 늙은 현자는 이 제자가 젖을 다 빨아먹은 뒤 어머니를 걷어차 버리는 짐승 새끼라고 비난했다.

 

96. 필리포스는 그리스의 예술과 지성의 발판인 동시에 사회질서를 붕괴시키는 주범 노릇을 하던 개인주의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97. 훌륭한 마케도니아인 두 사람이 혼란에 빠진 두 세계를 각각 통일한다.

아리스스토텔레스는 철학으로, 알렉산드는 힘으로

 

97. 오랫동안 자유의 전통을 지켜오고 한때 제국의 지위에도 올랐던 아테네는 설사 세계를 정복하는 뛰어난 전제군주 아래라고 해도 남의 밑에 들어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2.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

 

98. 아카데메이아는 무엇보다도 수학과 더불어 사변적이고 정치적인 철학에 몰두했다. 반면에 리케이온에서는 생물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스승과 너무도 대조적인 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일 것이다. 플라톤은 아카데메이아,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이온을... 그러나 둘다 학교를 세웠다는 것은 교육의 중요성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가르칠만큼 능력이 된것임을 보여준다.

 

99. 이 무렵에는 아리스토텔레스 자신도 큰 수입이 있었다. 게다가 결혼으로 그리스에서 가장 막강한 공인(公人)으로 꼽히던 사람의 재산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결혼 잘했네. 사랑일까 돈일까.

 

100. 망원경이 없기 때문에 아이스토텔레스의 천문학은 아이들의 공상을 묶어놓은것과 다름없고, 현미경이 없기 때문에 그의 생물학은 끝없이 길을 잃고 방황한다.

 

100. 그리스는 육체노동을 경멸했기 때문에 열의 없는 노예를 제외한 누구도 생산과정을 직접적으로 알지 못했고, 기계와 접촉하며 자극을 받는 과정에서 결함을 파악하고 가능성을 예감하는 경험을 하지 못했다.

 

101. 그에게 최선은 거의 모든 것을 쉬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와 그의 조수들이 모은 방대한 자료는 과학 발전의 기반이 되었고, 향후 2,000년동안 지식의 교과서가 되었다.

 

101. 이제까지 글을 쓴 철학자들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만큼 오류와 부조리가 많은 철학자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이렇게 지식과 이론을 종합한 예가 없기 때문이다.

 

101. 철학이 통일의 탐구라면 아리스토텔레스야말로 2,000년의 역사가 그에게 준 높은 이름, 즉 철학자라는 이름을 얻을 자력이 있는 사람이다.

 

102. 이렇게 과학으로 기운 정신에 시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는 극작가이자 철학자인 플라톤의 저작에 넘실거리는 문학적 재기를 기대하면 안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 신화와 비유로 표현되는 위대한 문학을 제공하는 대신, 기술적이고 추상적이고 응축된 과학을 제공한다.

아버지가 의사인 그는 어렸을때부터 아버지가 공부하는 책들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그리고 스승 플라톤과 차별화를 위한 그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102.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달리 문학용어가 아닌 과학용어들과 철학 용어들을 만들었다.

 

3절 논리학의 창시

 

103. 아리스토텔레스의 첫 번째 위대하고 탁월한 점은 거의 선배없이, 거의 전적으로 혼자 열심히 생각해서 논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104. 논리학이란 간단히 말해 정확하게 사고하는 기술과 방법을 뜻한다. 이것은 모든 과학, 모든 학문, 모든 예술의 방법이다.

 

105. 나와 대화하고 싶으면 너의 용어를 정의해라.” 볼테르는 그렇게 말했다. 논쟁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용어를 정의하려고 나섰다면 수많은 논쟁이 한 문단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다. 진지한 담론의 중요한 용어는 모두 엄격한 정밀 조사를 거쳐 정의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이 논리학의 알파요 오메가요, 심장이요 영혼이다. 이것은 어려운 작업으로, 정신을 무자비하게 검증하지만, 일단 이루고 나면 일의 반은 끝난 셈이다.

 

105.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훌륭한 정의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굳건하게 두 발로 서 있다고 대답한다. 첫째, 정의는 일반적 특징을 공유하는 부류나 집단에 대상을 집어넣는다. 예를 들어 인간은 무엇보다 동물이다. 둘째로, 정의는 대상이 그 범주의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어떤 면에서 다른지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며, 인간의 종차(種差)는 다른 모든 동물과는 달리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105.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의 대상을 그 부류라는 바다에 떨어뜨린 다음 다시 끄집어내는데, 그러면 대상에서는 공통의 의미, 같은 종류와 집단의 표시가 몸에서 물방울처럼 뚝뚝 떨어진다. 동시에 그 개별성과 차이는 이 대상과 무척 닮았으면서도 동시에 무척이나 차이가 나는 다른 대상들과 함께 놓여 있기에 한층 분명하게 반짝인다.

 

105. 아리스토텔레스가 보편이라는 무시무시한 문제를 놓고 플라톤과 싸웠던 큰 전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것은 첫 격돌이었으며, 이 전쟁은 우리 자신의 시대까지 계속될 운명이었다. 또 이 싸움 때문에 중세 유럽에는 실재론자유명론자들이 충돌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도대체 어떤 상황이길래 이런 표현까지 하는지 모르겠네. 말로만 들으면 거의 메가톤급인데.

 

106.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보편은 보통명사, 즉 한 부류의 구성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름이다. 따라서 동물, 인간, , 나무는 보편이다. 그러나 이런 보편은 주관적 개념일 뿐, 손에 잡히는 객관적 실체는 아니다. 이름이지 실물이 아닌 것이다.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대상들의 세계다. 사람들이 존재하고, 나무들이 존재하고, 동물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간 일반, 즉 보편적 인간은 생각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인간은 외적 존재, 즉 실재가 아니라 편리한 정신적 추상물이다.

 

106.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생각임을 이해한다. 실제로 플라톤은 보편이 개체보다 훨씬 지속적이고 중요하고 실질적이라고 말했다. 개체는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속의 작은 물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왔다가 가지만, 인간은 영원히 계속된다.

 

106. 카이사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다는 브루투스처럼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렇게 말한다. “플라톤은 귀중하지만, 진리는 훨씬 더 귀중하다.”

 

106. 그는 현대적 의미에서 현실주의자였다. 플라톤이 주관적 미래에 몰두한 반면, 아이스토텔레스는 객관적 존재에만 관심을 갖기로 결심했다.

 

107. 플라톤의 경우는 일반성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마침내 일반성이 특수성을 결정하고, 관념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사실을 규정하거나 선택하기 시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물로 돌아가라고, ‘시들지 않는 자연의 얼굴과 실재로 돌아가라고 가르쳤다. 그는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들, 살과 피로 이루어진 개인을 훨씬 좋아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국가>에서도 완벽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개인을 파괴해버렸다.

 

107. 젊은 전사는 자신이 공격하는 늙은 스승의 많은 자질를 스스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늘 우리가 비난하는 것을 우리 안에 상당히 갖고 있다....오직 비슷한 사람들만 싸우고, 목적이나 믿음의 아주 작은 차이를 두고 가장 혹독한 전쟁이 벌어진다.

 

107.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라톤에게 그렇게 무자비했던 것은 자신의 내부에 플라톤적인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또한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을 늘 사랑하여, 되풀이해서 단순한 사실을 버리고 허울만 좋은 현란한 이론을 좇곤 했으며, 최고천을 탐사하고 싶은 자신의 철학적 정열을 누르려고 계속 안간힘을 써야 했다.

 

107.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대한 글 가운데 가장 그답고 독창적인 삼단논법 학설에는 그런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다.

 

108. 문제는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증명되어야 할 사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그러나 삼단논법은 진리 발견의 매커니즘이라기보다는 설명과 사고를 명료하게 해주는 메커니즘임이 분명하다.

 

108. 그러나 이제까지 그 누구도 논리학을 고상한 선율의 높이까지 끌어올리지는 못했다. ...사람들이 논리학에서 느끼는 것은, 베르길리우스의 명령을 받은 단테가 색깔없는 중립성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저 사람들에 관해서는 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한번 보고 지나가자.”

 

4절 과학의 조직

 

109. 소크라테스는 인류에게 철학을 주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과학을 주었다....이전에 태아 상태였던 과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세상에 태어났다.

 

114. 그래서 문명마다 똑같은 발명과 발견, 경제적이고 문화적인 축적이 느리게 이루어지는 암흑시대’, 학문과 과학과 예술의 재탄생이 영원히 반복된다. ...그리하여 인간의 이야기는 황량한 원을 그려간다. 인간이 아직 자신을 담고 있는 땅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117. 무엇을 물을지 아는 것은 이미 반은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이 업적만으로도 한 사람이 과학의 이름으로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기념물이 될 만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는 산발적인 관찰 외에 생물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작업은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야 하는 일이고, 또 이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이름은 불멸로 남으리라고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5절 형이상학과 신의 본질

 

118.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은 생물학에서 자라난 것이다. 세상 만물은 현재보다 더 큰 것이 되고자 하는 내적 충동으로 움직인다. 만물은 그 질료 또는 원료였던 것으로부터 성장한 형상 또는 실체.

 

118. 세상 만물은 자기 나름의 완성을 향해 저절로 움직인다. 하나의 사건을 결정하는 다양한 원인들 가운데 목적을 결정하는 최종원인이 가장 결정적이고 중요하다.

 

119.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의 섭리는 자연적인 원인들의 작용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럼에도 신은 존재한다....운동은 어떻게 시작될까? 그는 그렇게 묻는다. 그는 질료는 시작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면서도, 운동도 그럴수 있다는 가능성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운동에는 근원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반드시 스스로 움직이지 않고 최초로 다른 것을 움직인 존재를 상정해야한다.

움직이게 하지 않고는 무엇이든지 생성될수 없음을 얘기하는걸까. 인간에게 있어 난자가 질료이다. 난자가 형상이면 질료는 정자인가. 정자가 형상이면 질료는? 그렇다면 그 질료는 형상이 되고 또다시 그 질료는? 이런식으로 가면 최초로 무언가를 움직이는 존재가 있다는 것. 그것이 신의 영역일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119. 신은 사랑받는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을 움직이듯이 세계를 움직인다.” 신은 자연의 최종원인이며, 사물의 추동력이자 목적이며, 세계의 형상이다. 또 세계의 생명원리이며, 세계의 생명의 과정과 힘의 총화이며, 세계의 성장에 내재한 목표이며, 전체에 힘을 부여하는 엔텔레케이아다. 신은 순수한 에너지이다.

 

120. 우리의 철학자는 생각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거기에 신성이라는 개념을 제물로 바쳐버렸다.

 

6절 심리학과 예술의 본질

 

121. 그는 습관의 힘을 강조하여, 처음으로 습관을 2의 천성이라고 불렀다.....“우리는 의지를 직접적으로 발휘하여 현재의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이 될수는 없t.” 그러면서도 결정론에 반대하여, 지금 우리를 형성하는 환경을 선택하면 미래의 우리를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애매모호한 태도이긴 하지만 난 후자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너무 선천적이고 천성적이라면 인생이 재기 없지 않나.

 

122. 육체적 힘의 총화인 영혼은 육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122.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이 행동으로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활동성인 것처럼, 불멸의 영혼은 현실에 더럽혀지지 않은 순수한 사고...그가 이런식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를 다 자기 것으로 챙기려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반마케도니아파의 독배로부터 자신을 구하는 교묘한 술책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다.

 

122.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예술적 창조는 형성의 충동과 감정적 표현에 대한 갈망에서 나온다. 가장 고귀한 예술은 감정만이 아니라 지성에도 호소한다....이런 지적 쾌감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 형태의 기쁨이다.

 

123. 무엇보다도 예술의 기능은 카타르시스, 즉 정화(淨化). 사회적 제약의 압박으로 우리 안에 축적된 감정이 터져 나와 극적 흥분이라는 무해한 형식으로 흘러드는 것이다.

 

7절 윤리학과 행복의 본질

 

 

124. 무엇이 최선의 삶인가, 삶에서 최고의 선은 무엇인가, 덕은 무엇인가. 어떻게 행복을 얻고 성취에 이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졌다.

 

 

124. 아리스토텔레스는 삶의 목적은 선을 위한 선이 아니라 행복이라고 솔직하게 인정하는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행복자체를 위해 행복을 선택하지. 그 이상의 어떤 것을 결코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124. 인간의 행복은 이런 인간 고유의 특질이 완전하게 발현되는 데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길을 찾으려 한다. , 인간이 독특하게 뛰어난 점은 사고의 힘이다. 이것에 의해 인간은 다른 생명 형태를 넘어서고 또 다스린다. 이런 기능의 성장이 인간에게 최고의 자리를 주었듯이, 그 발달은 인간에게 성취와 행복을 안겨줄 거라고 가정할 수 있다.

 

125. 그러나 거기에 이르는 길, 수월성으로 안내하는 지침이 있어, 많은 우회로와 지연을 피해 갈 수 있다. 그것은 중도, 즉 중용이다.

 

125. 중용은 수학적 평균과는 달리 정밀하게 계산할 수 있는 두 극단의 정확한 평균이 아니다. 중용은 각 상황에 따르는 조건들과 더불어 변하며, 성숙하고 유연한 이성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수월성은 훈련과 습관화에 의해서만 얻어지는 기술이다.

 

127. 우리의 현실적인 철학자는 중용만이 행복의 비결은 아니라고 말한다. 상당한 수준의 재화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은 사람을 인색하고 탐욕스럽게 만든다.

 

128. 외적인 재물이나 인간관계가 행복에 필요하기는 하지만, 행복의 핵심은 여전히 우리 안에, 원숙한 지식과 영혼의 맑은 상태에 있다.

 

8절 정치학

 

130. 법을 가볍게 바꾸는 습관은 악이다. 바꾸어서 얻는 것이 적다면, 법이든 통치자든 약간의 결함은 철학적 관용으로 견디는 편이 낫다. 시민의 입장에서는 변화로 얻는 것보다 불복종의 습관이 생기는 바람에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130.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인 것과 관련해서는 플라톤의 실재론과 싸우고, 정부와 관련해서는 플라톤의 이상주의와 싸운다. 그는 선생이 그린 그림에서 어두운 지점을 많이 찾아낸다.

 

130. 이리스토텔레스는 보수적인 사람이지만, 사회적 능률보다는 개인적 특질, 사생활, 자유를 높이 평가한다.

 

130. 플라톤식으로 아들이 되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진짜 사촌이 되는 편이 훨씬 낫다. 여자와 자녀를 공유하는 국가에서는 사랑이 묽어질 것이다...그런 국가에서는 존중과 애정이 고취하는 주요한 두가지 특질-어떤 것이 내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것이 내 안에서 진짜 사랑을 일깨운다는 점-이 모두 존재할수는 없다.

 

131. 함께 사는데, 또 물건을 공유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특히 재산을 공유하는 경우가 어렵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의 동반관계가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그들은 보통 여행 도중에 싸움을 벌이며, 눈앞에 나타나는 사소한 일을 놓고 말다툼을 한다.

 

131. 평균적인 수준에서 인간의 본성은 신보다는 짐승에 가깝다.

 

132. 태어날때부터 어떤 사람들은 복종할 사람으로, 어떤 사람들은 명령할 사람으로 구분된다. 정신을 이용하여 앞을 내다볼수 있는 사람들은 지배자이자 주인으로 타고난 사람들이다. 반면 육체만을 이용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노예로 타고난 것이다.

 

132. 모든 열등한 사람은 주인의 지배를 받는 편이 낫다. 노예는 생명이 있는 연장이고, 연장은 생명이 없는 노예이다.

 

132,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이라는 높은 위치에서 육체노동이 정신없는 사람들에게 속한 것이라고, 노예에게만 적당하다고 인간을 노예로만 적합하게 만들 뿐이라고 깔보았다.

 

133. 여자와 남자의 관계는 노예와 주인,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 이방인과 그리스인의 관계와 같다. 여자는 완성되지 않은 남자로, 발달의 층계 아래쪽에 남겨져 있다.

 

134. 소크라테스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남자의 용기와 여자의 용기는 똑같지 않다. 남자의 용기는 명령하는데서 나타난다. 여자의 용기는 복종하는데서 나타난다....시인이 말하듯 침묵이 여자의 명예다.’

아무리 스승과의 다른면을 찾아 추구했다고는 하나 그가 철학자라고 하기엔 이부분에 동의할수 없으며, 그의 제자들은 이런부분에 대해 반박하지 않았다는 점에 더 놀랍다.

 

135. 복종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결코 훌륭한 지휘관이 될 수 없다.

옳지 못한 일을 지시받았을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항상 이런 것이 군 생활을 하면서 드는 내용이다. 죽을것 뻔히 알면서 부하를 전장으로 내보내야 하는 명령을 들었을때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136. 오직 사회적 통제만이 인간에게 덕을 줄 수 있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회를 발전시킨다. 사회를 통해 지성을 발전시킨다. 질서를 통해 문명을 발전시킨다. 그런 질서 잡힌 국가에서 개인은 수많은 기회를 얻는다.

 

136. 혁명은 거의 언제나 지혜롭지 못하다. 몇 가지 선()을 이룰지는 모르나, 많은 악을 대가로 치러야 하며, 그 가운데 주된 것은 모든 정치적 선의 기초를 이루는 사회 질서와 구조의 교란, 나아가서 해체다.

 

136. 혁명을 피하고자 하는 통치자는 극단적인 가난과 부를 막아야한다. 또 위험할 정도로 인구가 과밀한 경우에는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식민지 개척을 장려해야 한다. 나아가 종교를 육성하고 신봉해야 한다.

내가 그동안 알고지낸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많이 다르네. 이 부분만으로 나는 그가 철학자라고 얘기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불행을 막기위해 다른 나라의 평화는 안중에도 없다. 마치 제국주의 열강이 식민지를 확대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137. 올바른 선거는 지식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다.

 

139. 이제 우리의 입헌정부를 지지할 경제적 다수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어쩌면 중간계급에서 찾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 중용과 만난다. 입헌정부 자체가 민주정치와 귀족정치의 중간인 것과 마찬가지다.

 

140. 추구할 목적은 공동체가 결정하지만, 그 수단을 선택하고 적용하는 일은 오직 전문가가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택의 기회는 민주적으로 확산되어야 하지만, 공직은 실력을 갖춘자들, 최고로 선별된 자들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9절 비판

 

140.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열광하기는 어렵다. 무언가에 열광하는 것이 그에게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울기를 바란다면 네가 먼저 울어야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좌우명은 어떤 것에도 감탄하거나 놀라지 않는 것이었다.

나도 동의한다.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를 원한 것이었는데 단지 다른 것만을 추구하다보니 이런 것이 아닐까. 다른 것을 그는 왜 강조했을까? 플라톤보다 유명해지기 위해?

 

140. 그는 삼단논법이 인간의 추론방식을 묘사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인간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추론을 장식하는 방법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다.

 

143. 불확실한 변화 앞에서 너무 주춤거린 나머지 죽음과도 같은 변화없는 상태를 선호했다.

 

144. 유럽 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은 신학에서 <성경>과 같은 것이 되었다. 오류없는 텍스트이자, 모든 문제의 해법이었다....1260년이 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기독교 학교에서 필수가 되었으며, 교회 회의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 일탈하면 처벌했다.

 

145. 새로운 도구, 축적된 관찰, 끈기 있는 실험을 통해 과학이 다시 태어나고 오컴과라무스, 로저 베이컨과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매혹적인 무기가 주어지고 나서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배는 끝이 났다. 다른 어떤 정신도 그렇게 오랜 시간 인류의 지성을 지배한 적은 없었다.

철학의 암흑기였다고 한다. 왜 그렇게 오랜시간 새로운 철학이 나타나기 어려웠을까.

 

10절 말년과 죽음

 

145. 그는 도시의 애국주의보다는 그리스 전체의 연대를 좋아했으며, 작은 독립국이나 그들 사이의 분쟁이 끝날 때 문화와 과학이 더 번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146. 는 지혜롭게도 아테네가 철학에 두 번 죄를 지을 기회를 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그 도시를 떠났다. 이것은 겁쟁이의 행동이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는 겁쟁이이다. 철학자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도피하면 안된다.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자기의 사상에 대해 옳음을 증명해야 한다.

 

146. 모든일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에 완전히 실망한 늙은 철학자는 헴록을 마시고 자살을 기도했다고 한다. 어떻게 생긴 병이든 그의 병은 치명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를 떠나고 나서 불과 몇 달뒤 외롭게 죽었다.

 

3장 프랜시스 베이컨

 

149. “내 영혼은 신에게 물려주겠다......몸은 눈에 띄지 않게 묻어라. 내 이름은 다음 시대와 외국에 물려주겠다.” 다음 시대와 많은 나라들이 그를 받아들였다.

 

1절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르네상스까지

 

151.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봉쇄하여 무너뜨렸을 때, 그리스 철학과 예술의 어머니는 정치적 주권을 잃었고, 아테네 정신의 활력과 독립성은 쇠퇴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되었을 때 아테네의 정신은 그와 함께 죽었고, 그의 당당한 제자 플라톤에게서만 잠시 미적거리며 남아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가 카이로네이아에서 아테네군을 물리치고, 3년 뒤 알렉산드로스가 위대한 도시 테베를 태웠을 때, 그들은 여봐란 듯이 핀다로스의 집을 남겨두긴 했지만, 정치에서나 사상에서나 아테네의 독립성이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다는 사실이 감추어질 수는 없었다.

 

152. 그리스의 질은 아시아의 양을 감당하지 못했다. 알렉산드로스 자신도 승리의 순간에 동양 정신에 정복당했다. 그는 다리우스의 딸과 결혼했다. 유럽에 왕권을 신성시하는 동양적 관념을 도입했다. ....마지막으로 웅장한 동양적 방식으로 자신이 신이라고 선언하여 회의적인 그리스를 놀라게 했다. 그리스는 비웃었고, 알렉산드로스는 술로 명을 재촉했다.

 

152. 동양의 종교와 신앙이 그리스로 쏟아져 들어왔다. 제방이 무너지면서 동양 사상의 바다가 아직 사춘기인 유럽 정신의 저지대에 범람한 것이다.

 

152. 페니키아 상인 제논이 스토아 철학을 아테네에 소개한 것은 동양침투의 수많은 사례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은 모두 정복당하거나 노예가 된 상태에서도 행복해질수 있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었다.

 

153. 영광이 떠나가면서 아테네는 제논과 에피쿠로스를 받아들이게 된다.

 

153. 스토아 학파는 불가피하게 패배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부당한 생존 투쟁이 벌어지는 인생에서 유일하게 합리적인 태도는 철학적 무관심이라고 주장했다. 승리가 불가능하다면 승리를 비웃어야 한다. 평화를 얻는 비결은 우리의 욕망에 맞는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욕망을 성취의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다.

 

153. 로마의 스토아학파 철학자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가진 것이 불충분해 보인다면, 세상을 다 가진다 해도 여전히 비참할 것이다.”

 

154. 이러한 원리가 기승을 부리자 사람들은 그와 반대되는 것을 갈망했고, 실제 삶에서는 제논과 다를바 없은 스토아 학파 철학자로 살아가던 에피쿠로스가 그것을 제공했다....그의 출발점은 무관심을 불가능하며, 쾌락이 삶과 행동에서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목표이자 매우 정당한 목표라는 신념이다.....그는 감각의 기쁨보다 지성의 기쁨을 찬양한다. 결국 그는 일반적인 감각의 쾌락이 아니라 아타락시아-정신의 고요, 평정, 안정-를 찾으라고 제안한다. 이것은 사실 제논의 무관심과 거의 맞닿아 있다.

 

154. 스스로 생각할 여유도 섬세함도 없던 로마인은 이 철학들을 다른 약탈물과 함께 로마로 가져갔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어쩔 도리가 없는 노예와 마찬가지로 스토아 학파의 분위기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155. 카이사르나 폼페이우스와 거의 같은 시대 인물이었던 루크레티우스는 혼란과 공포의 시대를 살았다. 신경이 곤두선 그의 펜은 늘 고요와 평화를 갈구하는 기도를 적어나갔다. ...로마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는 종교가 퍼져나갈 때 루크레티우스는 거기에 맞서 냉엄한 유물론을 제시했다. 영혼과 정신은 몸과 함께 발전하며, 몸이 자라면서 함께 자라고, 몸이 아프면 함께 아프고, 몸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156. 민족도 개체와 같이 천천히 성장하고 반드시 죽는다. “어떤 민족은 흥하고 어떤 민족은 이운다. 짧은 시간에 생물의 종이 바뀌고, 달리기 선수처럼 생명의 등불을 넘겨준다.

 

157. 실제로 자기부정이라는 기독교 윤리, 인간의 거의 공산주의적인 형제애를 바라는 기독교의 정치적 이상, 온 세상이 마지막에 다 타버린다는 기독교 종말론은 사상의 흐름위를 둥둥 떠다니던 스토아 학파 학설들의 조각들이 아니었을까? 에픽테토스에 와서 그리스-로마의 영혼은 이교 사상을 버리고 마침내 새로운 신앙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었다.

 

158. 이교의 문화는 동양의 종교에 자리를 내주었다. 거의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제국은 교황정치로 넘어갔다. 이전 몇 백년 동안 황제의 지원을 받던 교회는 점차 황제의 권력을 흡수하면서 수()와 부()와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해갔다. 13세기가 되자 교회는 유럽 땅의 3분의 1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 돈궤는 부자와 빈자의 기부금으로 넘쳐났다. 교회는 변함없는 교의라는 마법으로 천 년 동안 대륙의 민족 대부분을 통일했다. 어떤 조직이 이렇게 광범위하면서도 이렇게 평화로웠던 적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159. 스콜라 철학은 이 껍질 내부의 비좁은 곳에서 신앙에서 이성으로, 이성에서 신앙으로 오가며 비판받지 않는 가정과 미리 정해진 결론이라는 당혹스러운 회로를 맴돌았다.

 

159. 그러나 교회권력은 아직 충분하여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안전하게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세 신학자로 바꾸어 놓을 수 있었다. 그 결과는 정치하기는 하나 지혜롭지 않았다. 베이컨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의 지혜와 정신은 어떤 대상에 작용할 때에는 그 대상에 따라 움직이고 거기에 제한을 받는다. 그러나 그 자신에게 작용할 때는 거미가 거미줄을 잣듯이 끝을 모르고 학문의 거미줄을 뽑아낸다. 이것은 그 실이나 작업이 훌륭하다는 면에서는 감탄할 만하지만, 사실 아무런 내용도 이득도 없다.” 조만간 유럽의 지성은 이 껍질을 깨고 나오게 된다.

 

159. 천 년동안 열심히 땅을 갈자 다시 꽃이 피었다....십자군이 동방으로 가는 길을 열자 사치품과 더불어 금욕과 교조의 소멸을 재촉하는 이단이 흘러들었다. 이집트에서 값싼 종이가 들어오면서, 학문을 사제의 독점 영역으로 만들었던 값비싼 양피지를 대체했다. 오랫동안 값싼 매체를 기다려왔던 인쇄술이 풀려난 폭약처럼 터져 나와 그 파괴적이고 계몽적인 영향력을 모든 곳으로 확산시켜나갔다.

 

161. 지식이 늘어나면서 공포는 줄었다. 인간은 미지의 것을 섬기기보다는 정복 문제를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자신감이 모든 활기찬 정신을 고양시켰다. 장벽은 무너졌다. 이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제한이 없었다. “마치 천체처럼 지구 전체를 일주하는 저 작은 배들은 우리시대의 행복이다. 이 시대에는 고대인들이 이 너머로 더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다.” 바야흐로 성취와 희망과 활력의 시대였다. 모든 분야에서 새로운 시작과 기획의 시대였다. 그 정신과 결여를 요약할 수 있는 목소리, 어떤 종합적인 영혼을 기다리는 시대였다. 지혜를 한데 모으는 종을 울리며유럽의 성년을 알린 근대의 가장 강력한 정신은 프랜시스 베이컨이었다.

 

2절 프랜시스 베이컨의 정치인생

 

162. 베이컨을 위대하게 길러낸 주역은 엘리바베스 시대 잉글랜드, 즉 근대 국가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국가의 가장 위대한 시대였다.

 

163. 베이컨은 열두 살에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했지만, 3년을 머물다 교재와 방법론에 강한 혐오감을 품고 뛰쳐나왔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숭배에 확고하게 적대감을 품고 있었고, 철학의 방향을 좀 더 비옥한 방향으로 틀겠다고, 스콜라 철학 논쟁으로부터 인간의 선()을 해명하고 증진시키는 쪽으로 바꾸어 놓겠다고 결심했다.

위대한 사람은 정규교육과정에서 나올 수 없나보다. 베이컨이 그랬듯이, 잡스가 그랬듯이, 저커버그가 그랬듯이....

 

163. 그는 아직 열여섯 살의 소년이었음에도 프랑스 주재 영국 대사의 참모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는 <자연의 해석> 서문에서 철학에서 정치로 튼 이 운명적인 결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나 자신이 인류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났고 믿었으며, 또 공동의 복리를 돌보는 일이 공중의 권리로서 물이나 공기처럼 모두에게 열려 있는 의무 가운데 하나라고 여겼기에, 내가 어떤 임무를 수행하는데 맞도록 태어났는가를 자문했다......그러나 나의 태생, 나의 성장과 교육은 모두 철학이 아니라 정치쪽을 가리키고 있었다....또 조국에 대한 나의 의무가 인생의 다른 의무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힘으로 나를 부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내가 국가에서 명예로운 자리를 차지할 경우, 나에게 운명으로 맡겨진 과제를 성취할 때 나를 도와주고 지원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을 쉽게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이런 동기들 때문에 나는 정치에 투신했다.”

 

165. 사랑과 마찬가지로 정치에서도,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는 것은 효과가 없다. 언제나 내주어야 하지만, 절대 다 내주면 안 된다. 받는 쪽에서도 기대가 있어야 고마운 마음을 키워나가는 법이다.

 

166. 베이컨은 채워지지 않는 야망으로 잠시도 쉬지 않았다......과시는 그에게 정책의 일부였다....그는 다양한 능력과 거의 무한한 지식 덕에 온갖 중요한 위원회의 핵심 위원이 되었다. 점차 그에게 높은 자리가 열렸다. 1606년에는 법무차관, 1613년에는 법무장관, 그리고 1618년에는 쉰일곱 살의 나이에 마참내 대법관이 되었다.

다행이다. 정치적 욕망이 강한사람은 부서지기 쉬운데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니 그의 조력자가 많은 것 같다.

 

3절 수상록

 

167. 그는 정치적 권력의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갈 때마다 철학의 정상도 하나씩 밟아 올라갔다....이사람의 엄청난 학문과 문학적 성취는 시끌벅적한 정치적 인생에서 기분 전환 삼아 벌인 부수적인 일이었다.

 

167. 그것을 가르쳐주는 것은 공부 바깥에서, 공부 위에서, 관찰에 의해 얻어지는 지혜다. 이것은 새로운 흐름으로, 영국 철학의 특징적인 경험과 결과를 강조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스콜라 철학-즉 지식을 그 이용이나 관찰과 분리하는 태도-은 끝난 것이다. 이런 태도는 실용주의에서 정점에 이른다.

 

167. 철학이 없다면 나는 살고 싶지 않다.

 

168. 그의 가장 훌륭한 문학적 생산물인 <수상록>은 그 당시 그가 여전히 정치에 대한 사랑과 철학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169. 베이컨은 불필요한 말을 혐오하고, 단어를 낭비하는 것을 경멸한다. 그는 작은 구절로 무한한 풍요를 제공한다.

 

169. <수상록>은 기름지고 영양이 좋은 음식과 같아, 한 번에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된다. 하지만 한번에 4, 5편씩만 읽으면 영어로 기록된 가장 훌륭한 지적 자양분이 될 것이다.

 

170. 스토아 학파의 욕망 억압만큼 건강에 해로운 것은 없다. 무관심으로 때 이른 죽음으로 변해버린 삶을 길게 늘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게다가 그것은 성립할 수 없는 철학이다. 본능은 밖으로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170. 실제로 베이컨은 몸이 절제만이 아니라 무절제에도 단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순간적인 방심으로 망가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절제속에서 절제를 할수 있는 인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171. 베이컨은 기독교에 여러 번 빈틈없이 경의를 표하지만, 사실 <수상록>의 도덕철학은 기독교보다는 마키아벨리의 냄새가 난다.

 

171. 합금을 이용해 순수하지만 약한 금속을 더 오래가는 금속으로 바꾸듯이, 위선과 정직을 지혜롭게 섞으라고 조언한다. 정신에 폭과 깊이와 힘을 부여하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충만하고 다채로운 인생.....괴테와 마찬가지로 베이컨도 행동에 이르지 않는 지식을 경멸한다. “인간 삶의 극장에서는 오직 신과 천사만이 구경꾼이 될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72. 인간의 정신은 철학은 조금만 알 때는 무신론으로 키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철학으로 깊이 들어가면 종교도 돌아가게 된다.

요즘들어 종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도 철학을 배우고 있어서 그런가?

 

173., “세상에 우정이란 거의 없으며, 특히 동등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주 드문데, 그럼에도 흔히 과장되어 이야기되곤 한다. 실제로 존재하는 우정은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 사이의 우정이며. 이 경우에는 어느 한쪽의 운이 다른 족의 운을 삼킬수도 있다.

 

173. 어떤 일에서 오랜 세월 쌓인 경험은 그 경험의 범위내에서는 사람을 인도하지만, 새로운 일에서는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173. 베이컨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원한다. 군주제가 최선의 정부형태이다.

 

173. 베이컨이 원하는 것은 우선 자작농그다음은 행정을 위한 귀족,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인왕이다.

 

4절 위대한 재건

 

176. 그는 출세 가도를 달리며 지위가 점점 높아지는 동안에도 내내 철학의 복원 또는 재건 문제를 깊이 생각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열정적으로 만들었을까? 죽을때까지 놓지 않았던 그의 열정을 배운다. 거기에 인생의 즐거움도 느끼면서 살고싶다.

 

179. 그는 인간 행동에서 인과관계의 엄격한 연구를 요구하며, 과학의 어휘에서 우연이라는 말을 제거하려 했다.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이름이다.” 또한 우주에서 우연이란, 인간에게서 의지와 같다.”

 

181. 베이컨에게 친구는 주로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다.....어쩌면 우정에 대한 이런 매우 실용적인 평가가 권력의 자리에서 베이컨이 추락한 원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폴레옹의 실각도 이와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182. 결국 베이컨이 사랑한 것은 과학보다는 철학이었다. 혼란과 슬픔의 삶에도 이해에서 오는 당당한 평안을 줄 수 있는 것은 철학뿐이다.

 

183. 몸을 돌팔이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의사는 보통 몇 가지 안되는 처방에만 의존할뿐, 병의 원인도 환자의 체질도 사고의 위험성도 치료의 진정한 방법도 모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라는 시민의 집합체도 학문에 기초를 둔 사람들은 배제한 채 경험적 정치가들이 관리하게 하면 위태로워질 수 밖에 없다...‘왕이 철학자이거나 철학자가 왕인 시절이라면 국가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하면 자신의 직업에 편파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혜롭고 학식 있는 군주 밑에서 가장 좋은 시대가 나타났다는 것은 경험으로 입증된다.

 

187. 논리학의 첫 번째 문제는 이 오류의 근원을 추적하고 막는 것이다. 이제 베이컨은 명불허전인 오류 분석으로 나아간다. 이 오류 가운데 첫째가 종족의 우상으로...“일반적으로 자연을 연구하는 모든 사람은 다음을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자신의 정신이 특별히 만족스럽게 포착하여 오래 머무는 것은 오히려 의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문제를 다룰 때는 오성을 평탄하고 맑게 유지하도록 더욱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189. 베이컨은 두 번째 오류의 범주를 동굴의 우상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개인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그 나름의 동굴이나 굴이 있는데, 이것이 자연의 빛을 굴절시키거나 변색시킬수 있다.”

 

189. 세 번째가 사람들 사이의 교섭과 연합에서생기는 시장의 우상이다....어쩌면 철학에서 가장 위대한 재건은 바로 이것, 즉 거짓말을 그만두는 것인지도 모른다.

 

190. 마지막으로 철학의 다양한 교조, 그리고 잘못된 논증 법칙에서 인간 정신으로 들어온 우상이다. 나는 이것을 극장의 우상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내 판단으로는, 기존의 철학 체계는 비현실적인 무대 공연 방식을 따라 스스로 창조한 세계를 보여주는 연극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90. 우리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계속 이런 우상에 발이 걸려 넘어진다면, 우리 가운데 가장 나은 사람이라 해도 진리를 향해 멀리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추론 방식, 이해를 위한 새로운 도구가 필요하다.

 

191. 궁극적으로 우리는 교조와 연역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떠받들어지지만 의문의 여지가 있는 명제를 의심의 여지없는 출발점으로 여기기 때문에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런 가정 자체를 관찰이나 실험의 대상으로 삼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확신을 갖고 출발한다면 의심에 이르겠지만, 의심에서 시작한다면 확신에 이를 것이다.”(안타깝게도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191. “단순한 경험을 생기는대로 받아들이면 우연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을 구하고자 노력했을 때에는 실험이라고 부른다.......경험의 진정한 방법은 우선 초에 불을 켜고(가설), 그런 다음 이 초를 이용해 길을 밝히는 것(실험을 준비하고 그 범위를 정하는 것)이며, 서툴거나 변덕스러운 경험이 아니라, 적절하게 질서가 잡히고 소화된 경험에서 출발하여, 거기에서 원리를 뜰어내고, 확립된 원리를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실험을 하는 것이다.

 

192. 이런 끈질긴 자료 축적과 분석으로 우리는 우리가 연구하는 현상의 형상에 이른다. 그 은밀한 본성과 내적 본질에 이르는 것이다. 베이컨의 형상이론은 플라톤의 이데아론과 흡사하다.

 

193. 우리가 사물의 형상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형상 자체 때문이 아니라, 형상, 즉 법칙을 알면 우리의 욕망에 맞게 사물을 다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3. 그 덕분에 그후 300년 동안 무지와 가난과 싸우는 지식과 발명의 전장에서 수많은 전사들이 하나의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을수 있었다.

 

5절 비판

 

197. 매콜리는 베이컨이 묘사하는 귀납법은 아주 구식방법이라 기념비를 세우기는커녕 법석을 떨 필요도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귀납법이란 세상이 생겨난 이후 모든 인간이 아침부터 밤까지 하던 일이다. 민스파이를 먹었더니 속이 불편하고 먹지 않았더니 괜찮으며, 많이 먹었더니 심하게 안 좋고 적게 먹었더니 약간 안좋으니까 민스파이는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추론하는 사람은 <신기관>의 모든 표를 무의식적이거나 충분하게 활용한 셈이다.”

 

199. 베이컨은 어떤 사람의 관찰도 경멸하지 않고, 모든 사람의 초에 자신의 불을 붙이려 했다.”

 

199. 일반적으로 과학이 가장 큰 성과를 낸 것은 자료의 축적(‘박물학’)<신기관>의 복잡한 표를 통한 조작이 아니라 가설, 연역, 실험이라는 더 단순한 방법에 의지했을 때였다....아인슈타인도 빛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움직인다는 가설을 생각해내고 이 가설로부터 하늘의 어떤 위치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별이 사실은 그 위치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 있다는 결론을 연역해냈고, 사람들은 실험이나 관찰로 이런 결론을 검증해냈다. 이렇게 가설과 상상의 기능이 베이컨이 생각한 것보다 크다는 것은 분명하다.

 

201. 그는 스스로 부과한 과제의 무게에 무너졌다. 그러나 너무 많이 떠맡는 바람에 실패했으므로 용서받을 수 있다. 그는 과학의 약속된 땅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카울리의 묘비명에도 나오듯이, 적어도 그 경계선에 서서 멀리 보이는 그 아름다운 땅을 가리킬수는 있었다.

주위에서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그런 것이다. 그렇게 하지말라 해도 그럴 사람이다.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니까.

 

6절 에필로그

 

204. 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삼중으로 하인이다. 군주나 국가의 하인, 명성의 하인, 일의 하인이다. 그래서 몸에도 행동에도 시간에도 자유가 없다.....자리에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인데, 사람들은 수고를 하여 더 큰 수고를 하는 곳으로 간다. 자리에 오르는 것은 때때로 천한 일인데, 사람들은 불명예스러운 행동으로 명예스러운 곳으로 간다. 자리에 오른 길은 미끄러운데, 거기서 물러서면 추락이거나 최소한 실추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베이컨은 왜 그렇게 명예와 직책에 집착했을까. 아마 이것은 말년에 지나온 자기 삶을 보면서 느낀 점일 것이다. 베이컨이 일찍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정치가 아닌 철학을 택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본다.

 

205. 한 친구는 그에게 궁정에서는.....네 혀가 어떤 사람들에게 면도날이었듯이, 그들의 혀가 너에게 면도날이 될 날 도 올것이라는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경고를 무시했다.

가장 잘 나갈 때 조심해야 하거늘 그런 위치에 있으면 항상 모른다. 자기 자신이 어떠한지.

 

205. 익숙하지 않은 가난에 시달렸지만, 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것으로 위안을 받았다. 5년 동안 베이컨은 가장 위대한 라틴어 저작...,,,출간했다.

 

206. 그는 더 일찍 정치를 버리고 모든 시간을 문학과 과학에 쏟지 못한 것을 애달파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일에 몰두하다가, 말하자면 전장에서 죽었다.

가장 행복한 죽음일 것이다. 원하는 일을 하다가 죽는 것.

 

4장 스피노자

 

207. 그는 어떤 것, 그 거처는 석양의 빛이며, 둥근 바다며, 살아 있는 공기며, 파란 하늘이며, 인간의 정신 속이다. 어떤 움직임과 어떤 영, 이것이 모든 생각하는 것들, 모든 생각의 모든 대상을 밀고 나가며, 모든 것을 통과하여 나아간다.

 

1절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사실들

 

212. 스피노자 정신의 배경에는 이런 유대인의 오디세이아가 꽉 차 있었으며, 이 때문에 그는 파문으로도 흔들 수 없는 확고한 유대인이 되었다.

 

212. 아이는 닥치는 대로 탐욕스럽게 읽어 이븐 게비롤의 신비주의 철학과 코르도바의 모세스의 복잡한 카발라 신비주의에까지 손을 뻗었다.

 

216. 1656727일 히브리 제의의 모든 엄숙한 형식적 절차를 거쳐 파문당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219. 스피노자는 용기 있는 태도로 조용히 파문을 받아들였다. “그것 때문에 내가 어떤 경우에도 하지 않았을 일을 하지는 않았다.”

자기 뿌리를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진리와 철학에 대한 믿음으로 포기한 것이다.

 

219. 고독만큼 끔찍한 것은 없지만, 고독 가운데서도 유대인이 자기 민족에게서 고립되는 것만큼 견디기 어려운 것은 드물다. 스피노자는 이미 옛신앙이 사라지는 바람에 고통을 겪었다. 그런 식으로 정신의 내용을 뿌리째 뽑아내는 것은 큰 수술이며, 상처를 깊이 남긴다.

 

221. 스피노자는 좋은 가운을 입는다고해서 사람이 결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가치 없는 것을 귀한 포장지로 싸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224. 자네는 마침내 최고의 종교, 아니, 최고의 스승을 찾았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굳게 믿는데, 그들이 지금까지 종료를 가르친 스승, 현재 가르치고 있는 스승, 앞으로 가르칠 스승가운데 최고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228. 모든 성서는 일차적으로 전 민중을 대상으로 쓴 것이고, 이차적으로 전 인류를 대상으로 쓴 것이다. 그 결과 그 내용은 가능한 한 대중의 이해에 맞추어질 수 밖에 없었다.

 

229. 철학자는 신과 자연이 하나라는 것, 필연성에 의해 활동하고 변함없는 법칙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3절 지성정화론

 

232. 스피노자의 행동규칙

1. 사람들에게 이해 가능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그들을 위해 우리의 목적을 달설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모든일을 해주는 것......2. 건강 보전을 위해 필요한 쾌락만 누리는 것. 3. 마지막으로 우리 삶과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만큼의 돈만 구하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과 대립되지 않는 관습을 따르는 것.

 

4절 윤리학

 

235. 질서는 우리 정신의 결을 거스른다. 우리는 공상의 무질서한 선들을 따르고, 위태롭다 해도 우리의 꿈에서 철학을 짜 나아가는 쪽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스피노자에게는 단 하나의 강박적인 욕망밖에 없었다. 세상의 견딜수 없는 혼돈을 통일과 질서로 환원하고 싶다는 것.

 

238. 실체와양태, 영원한 질서와 일시적 질서, 능동적 자연과 수동적 자연, 신과 세계-이 모두가 스피노자에게는 서로 일치하여 동의어로 사용할 수 있는 이분법의 두 항인 것이다.

 

239. 나에게 신의 도움이라는 말은 고정되어 변함없는 자연질서, 또는 자연의 사건들을 묶는 사슬이라는 뜻이다. 자연의 영원한 법칙과 신의 영원한 명령은 하나이며 같은 것이다.

 

240. 신의 뜻과 자연법칙은 다양하게 표현되지만 결국 하나의 실재다. 따라서 모든 사건은 변하지 않는 법칙의 기계적 작용에서 나오는 것이지, 별들 속에 앉아 있는 무책임한 독재자의 변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241. 이런 대목에서 스피노자는 플라톤을 넘어선다. 플라톤은 자신의 미학적 판단이 창조의 법칙이고 신의 영원한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245. 관념 자체는 통일된 유기적 과정의 첫 단계이며, 외적인 행동은 그 완성이다....“본래대로라면 모든 것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하나의 사물이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들이는 노력이 바로 그 사물의 실제 본질이다.”

 

247. 스피노자 윤리학의 탁월한 점은, 스스로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적대적인 철학들을 화해시켜 하나의 조화로운 통일체로 직조해내고, 그 결과 우리에게 근대 사상의 최고 성과라고 할 만한 도덕 체계를 제공한 것이다.

 

258. 하나의 책에 이렇게 많은 생각이 담긴 적은 없으며, 그렇게 많은 주석을 낳았으면서도 여전히 적대적인 해석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 전장으로 남아 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그 형이상학에 결함이 있을지 모르고, 그 심리학이 불완전할지 모르고, 그 신학이 불만족스럽고 모호할지 모르지만, 이 책의 영혼, 그 정신과 본질에 관해서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숭배하는 마음로 말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5절 정치론

 

261. 인간은 열정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법이 필요하다. 모든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법은 불필요하다.

 

262. 자유는 국가의 목표다. 국가의 기능은 성장을 촉진하는 것이고, 성장은 자유를 찾는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263. 스피노자는 국가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국가를 불신했다. 권력은 부패할수 없는 자도 부패시킨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되풀이된다. 그렇게 정직하고 강직한 사람도 쓰러뜨리는 것이 정치이자 권력이다.

 

265. 이 논문을 완성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스피노자의 천재성이 근대 정치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문제에 어떤 빛을 비추었을지 누가 알겠는가?

민주주의가 최선임에는 틀림없지만 수많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민주주의를 넘어 아니면 민주주의 단점을 보완할수 있는 그 무엇을 기대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6절 스피노자의 영향

 

266. 스피노자는 학파를 세우려 하지 않았으며, 실제로 세우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뒤의 모든 철학은 그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

 

266. 야코비는 괴테에게 스피노자 이야기를 했다. 이 위대한 시인은 <윤리학>을 읽자마자 개종했다고 말한다. 그의 성숙해가던 영혼이 갈망하던 것이 바로 이 철학이었다. 그 뒤로 스피노자는 괴테의 시와 산문에 스며들었다. ...거친 낭만주의에서 벗어나 후기의 고전적 평정 상태로 올라선 것도 어느 정도는 스피노자라는 차분한 공기를 들이마신 덕분이다.

 

267. 그럼에도 헤겔은 정직하게 철학자가 되려면 우선 스피노자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269. “지나가면서 이 부드럽고 서글픈 얼굴에 모욕을 던지는 자에게 화가 있을진저, 그자는 모든 천한 영혼이 바로 그 천한 면 때문에, 거룩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면 때문에 받는 벌을 받을 것이다. 이 사람은 이 화강함 받침대에 서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발견한 행복의 길을 가리킬 것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교육받은 여행자는 이곳을 지나며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쩌면 신에 대한 비전 가운데 가장 참된 비전이 여기에서 생겨났는지도 모르지.”

 

5장 볼테르와 프랑스 계몽주의

 

1절 파리 <오이디푸스>

 

273. 어떤 예술에서든 성공하려면 안에 악마가 있어야 해. 그의 몸안에는 악마가 있었다. 호감을 주지 못하고, 추하고, 허영심 많고, 경솔하고, 외설적이고, 비양심적이고, 심지어 때로는 부정직하기도 했던 볼테르는 그 시대와 장소의 결함을 거의 빠짐없이 갖춘 사람이었다.

 

274. “이 세상에 삶을 지탱하려면 최대한 몰두해야 한다....나이가 들수록 일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다는다. 결국 삶의 환각들을 대신하여 가장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일이다.” “자살하지 않으려면 늘 뭔가 할 일이 있어야 한다.”

 

279. 그의 비극 <오이디푸스>1718년 제작되었으며, 45일간 밤마다 공연되어 파리의 모든 기록을 깼다.

 

281. 모든 승리는 그 뒤에 찾아오는 패배를 더 아프게 만드는 법이다. 그는 늘 안쓰러워 보일 정도로 여론에 민감했으며, 동물들은 사람들이 자기에 관해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며 부러워했다.

그도 한 나약한 인간이다. 위대한 인물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다니

 

2절 런던 <영국통신>

 

284. 우리가 숭배하는 사람은 폭력으로 우리를 노예로 만드는 자가 아니라 진리의 힘으로 우리 정신을 정복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3절 시레 <로망스>

 

285. 그녀를 여자라는 점이 유일한 결함인 위대한 인간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그녀을 보고 뛰어난 재능을 지닌 수많은 여자를 보고 양성의 타고난 정신적 평등이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287. “때로는 멍청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웃음으로 주름살을 펴지 못하는 철학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나는 엄숙을 병으로 봅니다.”

 

287. 수도원장을 고해소 의자에 끌어내 자기 자리에 앉히고 이제 당신이 죄를 고백할 차례라고 말한다.

통쾌하다. 나도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자기들이 뭔데 우리의 죄를 듣고 사하는 거지. 그럼 너희의 죄는 누가 해주나. 볼테르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일줄은....

 

288. 학자의 불편부당함과 철학자의 너그러움이 아쉬어지는 순간이지만, 볼테르는 미신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으며, 전쟁에서 우리는 적에게만 불편부당과 너그러움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4절 포츠담과 프리드리히

 

292. 프리드리히는 자유사상가로, 왕이 신민들 보듯이 교조를 우습게 보았다. 볼테르는 프리드리히 왕좌에 오르면 계몽주의를 유행시킬 것이고, 자신은 어쩌면 플라톤이 디오니시우스에게 했던 역할을 프리드리히에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큰 희망을 품었다.

 

294. 내가 리슐리외를 쫓아냈듯이 생랑베르가 나를 쫓아내는 군! 그게 만물의 질서다. 못 하나가 박히면 다른 못은 빠져나간다.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는 법이다.

 

295. 당대의 가장 위대한 군주는 시인이자 철학자가 되기를 갈망했다....프리드리히의 재치도 볼테르 못지않게 날카로웠다. 오직 볼테르만이 상대를 죽이면서도 그 비위는 거스르지 않는 수완으로 프리드리히에게 감히 대꾸를 할 수 있었다.

 

297. 보시오. 당신은 방금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에게서 따귀를 맞은 것이오.

기분이 나쁠까? 더 나쁠 것이다. 그에게 철학은 먹고사는데 영향이 없으니. 그저 돈만 받으면 되는거니.

 

5절 레델리스 <도덕론>

 

299. 오직 철학자만 역사를 써야 한다. 그는 그렇게 말했다......그는 결론을 내린다. “역사는 결국 우리가 죽은 자들을 가지고 노는 속임수들의 무더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소망에 맞게 과거를 바꾸며, 그 결과 역사는 자신이 무엇이든지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300. 그는 자신의 역사는 왕들이 아니라 운동, , 대중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족이 아니라 인류를 다루고, 전쟁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행군을 다루어야 했다.

 

300. “나는 전쟁의 역사가 아니라 사회의 역사를 쓰고 싶으며, 인간이 가족 안에서 살아온 방법을 확인하고, 그들이 공동으로 계발한 예술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다....나의 목표는 작은 사실들을 세세하게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나는 또 위대한 영주들의 역사에도 관심이 없다....나는 야만에서 문명까지 인간이 밟아간 단계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301. 이렇게 해서 볼테르는 최초의 역사철학을 내놓았다.

 

301. 그런데 왜 그의 가장 위대한 책이 망명을 안겨주었는가? 진실을 말하여 모든 사람의 비위를 거슬렀기 때문이다....즉 기독교가 이교를 급속히 정복하는 바람에 로마가 내부에서부터 해체되면서 이주를 위해 침략해 들어오는 이방인들의 손쉬운 먹이가 되었다는 관점을 택함으로써 성직자들의 분노를 샀다. 유대와 기독교 왕국에 다른 책들보다 지면을 훨씬 적게 할애하고, 중국, 인도, 페르시아와 그들의 신앙도 마치 화성인의 눈으로 보듯이 공평하게 다루었다는 점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역사에 대한 열정을 느낄수 있다. 이 많은 것을 사실에 기초해서 쓸려면 얼마나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읽었을까. 그리고 영웅, 자기나라의 유리한 시선으로 보지 않은 객관적 역사서라 읽고 싶어지네

 

6절 페르네 <캉디드>

 

302. 그는 1758년에 프랑스와 가까운 스위스 국경지대인 페르네에 그 피난처를 찾았다....이곳으로 이사하면서 그의 방랑시대는 끝이 났다.

 

303. 페르네는 이제 세계 지성의 수도가 되었다. 당대의 모든 학자와 계몽군주가 직접 또는 편지로 볼테르의 궁정을 방문했다.

 

304. 몇가지 진실을 말하지요. 나는 선생의 시에 감탄하고, 선생의 산문을 사랑합니다....선생 전의 어떤 작가도 그렇게 날카로운 재치, 그렇게 확고하고 섬세한 취향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요컨대 선생은 인간이 아니라면 완벽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절대군주가 이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다. 진실이 담겨 있는 말이다. 일국의 왕까지 볼테르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다.

 

305. 박해와 환멸 때문에 삶에 대한 그의 믿음은 바닥이 났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에서 겪은 일로 희망이 무디어졌다. 그러나 믿음과 희망이 결정적으로 무너진 것은 리스본에서 끔찍한 지진이 일어나 3만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프랑스 성직자들은 이 재난을 리스본 사람들에 대한 단죄라고 설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격분했다. 신이 악을 막을수 있는데 막지 않았은 것이냐, 아니면 막고 싶은데 막지 못한 것이냐 하는 딜레마였다. 그는 선과 악은 우주에는 적용할 수 없는, 인간의 용어이며 우리의 비극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하찮은 것이라는 스피노자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

 

307. 이 재난은 인간 자신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루소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가 도시가 아니라 들판에 나가 산다면 그렇게 대규모로 죽지 않았을 것이다. 집 안이 아니라 하늘 아래 산다면 집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볼테르는 이 심오한 신정론이 인기를 얻는데 놀랐다.....“인간이 휘두른 가장 무시무시한 지적 무기, 즉 볼테르의 조롱으로 루소를 공격했다. 사흘 뒤에 그는 <캉디드>를 썼다.

자기만 아니면 되기 때문인가. 이 재난에 대해 왜 그렇게 표현했을까. 그리고 볼테르가 원하는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적어도 신정론에 의한 반응이 나오리라고는 생각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309.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할 때 기계에 손가락이 걸려 손이 잘렸습니다. 우리가 달아나려 하자 다리를 잘랐습니다......이것이 당신들이 유럽에서 설탕을 먹는 대가입니다.

 

310.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 최선인 이 세계에서는 사건들이 연결되네. 자네가 웅성한 성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종교재판에 끌려가지 않았다면, 아메리카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금을 다 잃지 않았다면.....자네는 여기에서 절인 레몬과 피스타치오 열매를 먹고 있지 않을 걸세.” “다 좋은 거군요.” 캉디드가 대답했다. “어서 밭이나 갑시다.”

 

7<백과전서><철학사전>

 

314. 한 사람이 모든 주제에 관해 글을 쓰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른 아닌 고전급이라고 상상해보라. 이 글은(‘철학사전’) 볼테르의 작품 가운데 로맨스들을 제외하면 가장 쉽게 읽히고 재치가 반짝인다.

 

314. 우리가 팔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유도 모르면서 신과 천사와 정신을 정의하는 것, 그리고 신이 세상을 만든 이유를 안다는 것은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일이다. “나는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른다. 내 삶의 4분의 1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의 원인들을 전혀 몰랐다....물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시리우스의 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현미경으로 지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원자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물질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8절 파렴치를 박살내라

 

318. “지금은 농담할 때가 아니네. 재치는 학살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네...... 이곳이 철학과 쾌락의 나라인가? 이곳은 오히려 성 바르톨레오 축일의 학살의 나라라고 할수 있네.”

 

318. 압제적 불의가 그를 고양시켰다. 그는 이제 단순한 문인을 넘어서서 행동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전쟁을 위하여 철학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이 무렵 그는 파렴치를 박살내라는 유명한 좌우명을 채택하고, 교회의 권력 남용에 맞서 프랑스의 영혼을 흔들어 깨웠다. 그는 지적인 지옥의 불을 퍼부어 주교관과 홀을 녹이고, 프랑스에서 사제의 권력을 부수었으며, 왕좌를 뒤집어 엎는데 일조했다.

멋진 표현이다. ‘지적인 지옥의 불을 퍼부어’.. 여기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펜의 강도가 볼테르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그저 파리목숨에 지나지 않는다.

 

319. “나처럼 믿어라. 아니면 내가 너를 암살할 것이다.”하고 말하는 사람은 곧 나처럼 믿어라. 아니면 내가 너를 암살할 것이다.”하고 말한다. “무슨 권리로 자유롭게 창조된 한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처럼 생각하도록 강요할 수 있을까?” “미신과 무지로 이루어진 광신이 모든 세기의 병이었다.”

 

320. “나는 아주 명료하게 나 자신을 표현한다. 나는 깊이가 없기 때문에 투명한 작은 책과 같다.”

 

321. 첫 번째 성직자는 첫 번째 바보를 만난 첫 번째 악당이었다.

 

322. 신이 어떤 존재이고, 왜 현존하는 모든 것을 만들었는지 추측하는 것이 주제넘은 짓이라면,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도 내가 보기에는 주제넘은 짓 같네.....어느 쪽이든 자네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저 위대한 전체 가운데 훌륭한 한 부분일세

 

322. 기적이나 기도의 초자연적 효과는 단호하게 부정한다.

 

325. 당신도 어떤 사람들은 신에 대한 믿음 때문에.....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런 믿음이 살인을 열 번만 막아주고 중상을 열 번만 막아주어도, 나는 온 세상이 그 믿음을 수용해야 한다고 본다. 당신 말하듯이 종교는 수많은 불행을 낳았다. 하지만 그것은 종료라기보다는 우리의 불행한 지구를 지배하는 미신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미신은 종교를 끌어안아 숨을 막는 뱀이다. 우리는 뱀이 삼키려는 어미에게 상처를 주지 말고 뱀의 머리를 부수어야 한다.

 

326. 그러나 신은 로레트와 메카를 보고 웃음을 터뜨린다. 그 대신 가난한 자를 구원하고 억압당하는 자를 보호한다.

종교는 우리의 믿음을 이용한다. 신은 그저 가난을 자를 구원하고 억압당하는 자를 보호하라고 하는데 교회를 짓고 성지순례를 하고 라마단을 한다.

 

9절 볼테르와 루소

 

326. 볼테르는 인생의 후반 몇 십년 동안 교회의 압제에 대항한 투쟁에 몰두하느라 정치적 부패나 억압과 싸우는 전쟁에서는 거의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정치는 내 분야가 아니다. 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줄이고 명예를 높이는 일에 미력이나마 최선을 다하는 데 내 역할을 국한해왔다.”

 

327. 볼테르는 부자여서 보수주의로 기우는데....그의 만병통치약은 소유의 확산이다. 소유는 인격을 부여하고 자부심을 높여준다. “소유의 기운은 사람의 힘을 두배로 늘려준다. 토지 소요자는 당연히 남의 토지보다 자신이 물려받은 것을 더 열심히 경작할 것이다.”

 

328. 그에게는 일반적인 의미의 애국심이 없다. 그는 애국심이란 일반적으로 자신의 나라 외에 다른 모든 나라를 싫어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자기 나라가 번영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다른 나라를 희생시키는 것은 절대 안된다고 생가가면, 그는 똑똑한 애국자인 동시에 세계시민이다.

 

328. 그는 무엇보다도 전쟁을 싫어한다. “전쟁은 최악의 범죄다. 그러나 공격하는 나라치고 자신의 범죄를 정의로 채색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

 

328. 인간이 어머니 자궁에 있는 식물 상태로부터, 유아기 상태라 할 수 있는 동물상태로, 또 거기서 이성의 성숙이 느껴지는 상태로 발전하는 데는 20년이 필요하다. 인간의 구조 가운데 일부라도 알아내는 데는 3000년이 필요하다. 그의 영혼을 아는 데는 영원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을 죽이는 데는 한순간이면 족하다.

 

329. 결국 인간이 인간이고 삶이 투쟁인 동안에는 불평등이 근절되지 않는다. “만인이 평등하다고 말할 대 만일 그 뜻이 만인이 자유에 대하여, 물품의 소유에 대하여, 법의 보호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가 있다는 뜻이라면, 가장 위대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등이란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것인 동시에 키메라에 가장 근접한 것이기도 하다. 권리에 국한되면 자연스럽지만, 물자와 권력을 고르게 나누려고 시도하면 부자연스러워진다.” “모든 시민이 똑같이 강해질 수는 없다. 그러나 똑같이 자유로워질수는 있다.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법에만 복종한다는 것이다.

 

329. 대신 보통 사람들의 루소는 어디에서나 만나게 되는 계급적 차이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평등화를 요구했다. 혁명이 루소 추종자들이 마라와 로베스피에르의 손아귀에 들어가자, 평등이 앞으로 나서고 자유는 단두대로 갔다.

 

331. 볼테르는 늘 이성을 믿었다. “우리는 말과 펜으로 인간을 계몽시킬 수 있고 더 낫게 만들 수 있다.” 루소는 이성을 거의 믿지 않았다. 그는 행동을 바랐다. 혁명의 위험에 겁먹지 않았다. 낡은 습관이 뿌리 뽑히고 혼란 속에서 뿔불이 흩어진 사회적 요소들을 형제애라는 감정이 재결합해줄거라고 믿었다. 법을 제거하라. 그러면 인간은 평등과 정의의 영역으로 들어갈 것이다.

 

331. 루소가 문명, 문자, 과학에 반대하고 야만인이나 동물에게서 볼수 있는 자연상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보냈을 때 볼테르는 이렇게 답했다. “인간 종에 반대하는 선생의 새로운 책을 잘 받았고 감사드립니다.....우리를 짐승으로 돌리려고 하는 일에 선생만큼 재치있는 사람은 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네 발로 기는 것을 갈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습관을 버린지 어언 60년이 넘으니, 안타깝게도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332. 볼테르는 이런 식으로 문명을 모조리 비난하는 것은 어린아이의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인간은 야만보다는 문명속에서 훨씬 낫게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루소에게 인간은 천성적으로 맹수이며, 문명화된 사회란 이 짐승을 사슬로 묶고, 야만성을 누그러뜨리고, 사회 질서를 통하여 지성과 그 기쁨을 발전시킬 가능성을 열어가는 사회를 뜻한다고 말한다.

 

333. 볼테르와 자유주의자들은 사람을 교육하고 변화시킴으로써 지성이 천천히 평화롭게 이 고리를 깰수 있다고 생각했다. 루소와 급진파는 낡은 제도를 부수고 심장의 명령에 따라 자유, 평등, 우애가 지배하는 새로운 제도를 건설하는, 본능적이고 정열적인 행동으로만 그 고리를 깰 수 있다고 느꼈다. 어쩌면 진실은 이 양분된 진영 너머에 있을지도 모른다. 즉 본능으로 낡은 것을 부수어야 하지만, 오직 지성만이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다는 말이다.

 

10절 대단원

 

333. 그는 긴 수명을 원했다. “내 두려움은 봉사를 다하기 전에 죽는 것입니다.”

 

334. 그는 가벼운 죄를 저지른 가난한 사람들을 특별히 돌보았다. 그들의 사면을 받아낸 뒤 정직하게 일할 수 있는 자리로 보내, 그들을 감독하고 그들에게 조언을 했다.

 

334. 내가 베푸는 작은 선이 내가 가장 잘 할수 있는 일이다.....나는 공격을 당하면 악마처럼 싸운다. 나는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밑바탕은 선한 악마이며, 웃음으로 끝을 맺는다.

 

335. 나는 신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지 않고, 미신을 혐오하며 죽는다.

 

337. 장례차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인간 정신에 큰 힘을 주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자유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묘비에는 오직 세 단어만 필요했다. 여기 볼테르 눕다.

살짝 묘비명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그런데 위대한 철학가에게 이름자체보다 무엇이 더 필요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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