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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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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5일 11시 40분 등록


I.저자에 대해

베르나르 올리비에

예순두 살이 되던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12,000km에 달하는 실크로드를 고집스럽게 홀로 걸어서 여행했다. 현대판 오디세우스의 방랑기라 할 이 놀라운 여행담을 기록해 묵직한 책으로 선보였는데, 그것이 바로 <나는 걷는다>(전 3권)다. 그의 이 길고도 열정적인 여행기에 프랑스 언론은 뜨거운 관심과 찬사를 보냈다. 그는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결코 동요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매체와 독자들은 그의 신중한 처신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여행에서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한 <나는 걷는다>에 한국의 독자들도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고, 그는 2004년 가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체육교사, 웨이터 등 손대지 않은 일이 없다. 1964년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대학 입시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이어 CFJ(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를 졸업했다. 30여 년간 <파리 마치> <르마탱> <르피가로> 등 유수한 프랑스 신문과 잡지사에서 활동한 그는 호기심 많은 정치부 기자였으며 잘 알려진 사회­경제면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베르나르 올리비에 또한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특히 역사 분야를 탐독했는데, 독서를 통해 서양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퇴 후인 1999년, 그는 바다에 병을 던지듯 실크로드에 자신을 던졌다.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4년에 걸쳐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갔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간을 정해 단 1킬로미터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실크로드를 여행한 것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워간다.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재활한 것이다. 그는 또한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주는 쇠이유(Seuil) 협회를 설립했다. 4년간의 실크로드 여행을 책으로 낸 『나는 걷는다』의 인세는 이 협회의 운영비로 쓰인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뒤 열여섯 살 때부터 토목공, 항만 노동자, 가게 점원, 포도주 외판원, 체육 교사 등 손대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 후 강건한 독학자로 삶에 복무하여 30여 년간 〈파리 마치〉,〈르마탱〉,〈르피가로〉 등 유수의 프랑스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아내의 죽음, 자식들의 독립, 고독 그리고 마침내 사회로부터의 폐기 처분……. 이 모든 나락으로부터 그를 구한 것은 걷기였다. 이윽고 철저히 고독한 도보여행자로 4년에 걸쳐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으며 다만 눈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세상을 흡수하며 전진하는 자유를 누렸다. 예순 이후 시작된 그의 진짜 인생은 도보여행을 통해 비행 청소년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는 '문턱' 협회의 탄생으로 또 하나의 충만함을 얻었다. 여전히 걷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흔의 그는 어른으로서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오롯한 방식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지은 책으로 실크로드 여행기 '나는 걷는다'(전3권)와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 등이 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여섯 살에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그만둔 뒤에 외판원, 항만 노동자, 토목공, 체육교사, 웨이터 등 손대보지 않은 일이 없다. 1964년 독학으로 바칼로레아〔대학 입시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이어 CFJ〔Centre de Formation des Journalistes, 프랑스 기자협회의 공인을 받은 저널리즘 부문의 그랑제콜〕를 졸업했다. 30여 년간 <파리 마치> , <르마탱> , <르피가로> 등 유수한 프랑스 신문과 잡지사에서 활동한 그는, 호기심 많은 정치부 기자였으며 잘 알려진 사회-경제면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다. 독학으로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베르나르 올리비에 또한 열렬한 독서광이었다.
특히 역사 분야를 탐독했는데, 독서를 통해 서양인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결국 동양에 진 빚을 인식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은퇴 후인 1999년, 그는 바다에 병을 던지듯 실크로드에 자신을 던졌다. 이스탄불에서 시안까지 실크로드를 걸어서 여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4년에 걸쳐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갔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간을 정해 단 1킬로미터라도 빼먹지 않고 걸어서 실크로드를 여행한 것이다. 그는 서두르지 않으며 느리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워간다. 그럼으로써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재활한 것이다. 그는 또한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주는 쇠이유(Seuil) 협회를 설립했다. 4년간의 실크로드 여행을 책으로 낸 <나는 걷는다> 의 인세는 이 협회의 운영비로 쓰인다.<인터파크>

역자 : 임수현

196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하고, 프랑스 파리 4대학에서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서울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는 대항해 시대의 스페인 탐사선 ‘라벨라’의 모험을 그린 『항해일지』(효형출판, 2002년)『타란느 교수』(연극과 인간, 2003년)가 있다.




II.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P.7
우리는 그의 계획을 흥미롭게 생각했지만, 우리 출판사엔 맞지 않는다고 반대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됐거나 거으 ㅣ왼성 단계에 있는 원고만을 출판하기 때문이다.


P.11
왜 이렇게 매번 더 멀리 가려고 고집하는지에 대해서는.....그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수없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지만, 그는 언제나 당황스러워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여전히 그 대답을 찾으려 노력한다는 사실을 알 뿐었다. 이것이 애초에 답이 없음을 스스로에게 납득 시키고자 함이 아닐까


P.15
만약 어러분이 어디선가 그를 만나게 되더라도 이렇게 묻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 모든 일을 하는가?" 아마도 그는 대답을 거의 찾았을 것이다. 물론 그가 책 속의
행간에 숨겨 놓은 다른 형태의 질문들을 통해서 말이다. 오디세우스처럼 행복하게, 그가 머릿속에서 자신의 모든 여정을 재구성할 어느 날, 슷로를 되찾기 위한 이야기라고...


P.23
그들에겐 서른다섯 해가 지나는 동안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 나의 부모님들도 시간이 없으셨다.


P.24
내 나이 예순하나, 노년에 가까운 중년이다
  • 이표현이 참 마음에 든다


P.24~25
25년간이나 여행과 탐험을 함께 계획했던 아내는 10년 전 삶을 마감하여 내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각자의 삶을 시작했다
- 인간의 삶에서 당연한 부분이 마음깊이 들어온다. 죽음은 언제나 내가 계획했던거 이상으로 빨리 오는거 같다. 항상 지금, 즉시 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가족과의 여행은 미룰 것이 못된다.

P.25
'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P.25
내게 아직도 만남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이 남아있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 나도 그런 여행을 꿈꾸는 사람중에 하나. 그렇지만 시간이 될때마다 가족과 함께 해야겠다


P.26
비록 믿음을 발견하진 못했더라도 나는 기쁨에 넘쳐 돌아왔으며 아득한 옛날부터 그 길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 참 솔직하신 표현


P.29
몽골의 야만인들을 가톨릭으로 개종시키기 위해
  • 무엇이 야만인이란 말인가?


P.36
나를 기다리는 고독, 나는 과연 그 심연과 맞서 싸워 그 달콤함을 음미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그것이 지닌 모든 이점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독이 도피가 아니라 내가 자유롭게 선택한 것이기에 더욱 절실한 질문이다.
  • 나도 언젠간 그 절대적인 고독과 독대하고 그것을 음미할 날이 올거 같다. 그때 외롭지 않을 수 있도록 내 마음의 키가 커졌으면 좋겠다



P.37
하지만 내가 돌아온다는 보장은 또 어디 있는가?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이번 모험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얼마 전만 해도 어느 날엔가 죽을 수도 잇겟다는 상상을 하곤 했다. 지금은 그것을 확신하다. 이 여행을 마칠 때까지 죽음은 나를 내버려둘까? 수많은 위험-병, 사고, 폭력-이 내 앞에 도사리고 잇음을 안다. 여럿이 함께 간다면 서로 기대고 돕고 격려해주고 돌볼 수 있다. 실수를 하거나 약해지는 순간도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혼자 걷는 길에는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는 일이 드물다.
  • ~ 때문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P.38
술이란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마셔야 더 맛이 나는 법이다.
  • 맞아요. 그 희미한 불빛아래 좋아하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떠들과 마셔야 제맛이죠.


P.46
대상의 길을 따라가려는 것이 나의 바람이라면, 그들의 노선 자체보다는 정신을 존중하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지리학자나 역사학자 행세를 하려는 생각은 애체오 없었다. 그 보다는 대상의 일상을 이루고 있던 생각, 감정 그리고 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게다가 그는 그들의 분위기와 전통, 삶의 방식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도시가 아닌 시골 마을을 거쳐야 한다고 확신했다.
  • 행세하려는 어떤 몰골들을 보면 참 딱하기 그지 없다. 잘난체 해 봤자 시간이 지나면 초라한 자기 자신만 남을뿐


P.47
몸이 좀더 달련돼야 할 것이다.
  • 마음의 근육또한 마찬가지


P.54
그들에게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를 달성하고 이익이 남는 일들을 마무리한 다음, 되도록 빨리 그리고 건강하게 돌아오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였을 것이다.
  • 생계와 여행은 다른 거니까 삶의 태도또한 다른건 마찬가지 인거지.


P.77
독실한 이슬람 교도에게 '환대'란 '손님'인 여행자에게 모든 권리를 갖게 한다는 의미였다. 너의 집이 그의 집이며, 너의 음식을 그와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의 보답은 알라의 왕국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따랄서 여행자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가장 나쁜 죄였다. 이렇게 온화한 기후 아래서라면 여행자를 환대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그가 말했다. 

P.81
카메라를 보자 농부들은 자기들의 곳간이다 자기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이런 마을에서 카메라는 정말 드문 물건이었으며 나를 묵게 해줬던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 
  • 캠프가서 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사진을 찾아주던 그때가 생각난다. 삶을 기록하고 싶었던 까닭이 아니었을까.


P.94
오늘은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이었다.
  • 인생은 생각과 말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말을 하느냐는 인생의 길이 된다.


P.98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훌륭한 역사를 증언하는 건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나심도 갖지 않는다

P.107
내겐 이 음악이 동양적이라기 보다는 두 운명이 서로 어울어지는 날의 모든 감흥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편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아무 걱정없던 젊은 시절에서 이제 고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삶으로 접어드는 진지한 순간이다. 하지만 또한 기쁨의 시간이기도 하다. 두 마음이 합쳐지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 그래. 두 마음이 합해지는 사랑이야 말로 인생을 함께 가기 위한 최고로 좋은 동반자 인것이지


P.109
무엇이 나를 이렇듯 자꾸 더 멀리 가게 만느는 것일까> 내가 지닌 상식과 신중함은 분명 멈추라 말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탓한 수밖에 없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조금만 더, 좀더 멀리, 내 안에 억누를 수 없는 원초적인 충동이라도 있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나는 스스로에게 무척 비판적이다. 언제난 나 자신이 그 희생자일 수밖에 없으니까. 나를 걷고 또 걷게 만드는 이 격렬한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보려는 그리고 기록을 깨보겠다는 어쭙잖은 허영일까? 아니면 오만? 의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20여년 전 도보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이 느낌만큼은 잘 알고 있다.

P.110
나를 걷고 또 걷게 만드는 이 격렬한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얼마나 버티는지 시험해 보려는 그리고 기록을 깨보겠다는 어쭙잖은 허영일까?
아니면 오만?, 의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20여년 전 보도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이 느낌만큼은 잘 알고 있다.
  • 94년 지났던 도보 성지 순례가 생각난다.



P.110
대부분의 스포츠와는 달리 마라톤은 몇몇 챔피언을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을 이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마라토너에게 어느 날엔가 그를 훌쩍 추월할 수 있는 적수라고는
단 한명 뿐이다. 바로 자기 자신.


P.113~114
"파라(돈)! 파라 때문이지요? 촉 파라(많은 돈)?"
물론 아니다! 나는 내 관심사를 밝히려고 애썼다. 실크로드에 대한 역사적 관심과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걷는 즐거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신비로움.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믿지 않았고 자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 나의 동기는 돈이었다. 서툰 터키어로 아무리 역설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에 너무나 답답했고, 거칠게 사전을 뒤적여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저녁기도를 해야 한다면 방에서 나가자고 했고, 그후 우리는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P.123
말이 서툴러서였을까, 아니면 현학적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일까? 나는 그들에게 설명하는 걸 포기했다. 하지만 찻잔을 앞에 놓고 이렇게 편하게 대화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을 당황하게 했던 것에 대한 답이 되지는 않았을까? 내가 만약 차로 이동하는 중이었다면 혹은 손님으로서 그들의 차에 올랐던 거라면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엔진 소리가 말을 대신했으리라. 그들은 너무나 빨리, 너무나 시끄러운 소음을 내며 달린다. 규칙적으로 정차를 하므로 대화는 요금은 주고받는 것으로 한정된다.


P.136
수평선 외엔 아무것도 시선을 가리는 것이 업슬 때 혹은 시선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꼭대기를 향할 때, 니르바나(Nirvana,열반)는 그리 멀지 않다. 하지만 이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 다른 것들 못지앟게 중요한 마지막 조건은 육체와 정신 사이의 완벽한 조화다. 걷는 동안 매일매일 계속된 훈련으로 적은되고 매끄러워진 근육들이 가장 이상적인 상태에 이르게 되는 때가 있다. 이는 땀이 줄어들고 또 유연해진 관절들이 우발적인 사고에 적절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으며, 바로 이때 신비스러원 연금술이 작용하여 몸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정신, 그 순수한 정신은 광야와 초원 혹은 산꼭대기 위로 날아오른다. 무한함 속에서 보이지도 않고 나비처럼 가볍게 날아올라 모래바다 속의 모래알이 되는 그때,우리를 가두고 있던 일상이라는 감옥의 창살이 순식간에 부서져버린다. 그제야 비로소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이 길을 걸으며, 나는 성바울로가 다마스쿠르로 가며 보았던 빛나는 환상을 자주 생각한다. 그는 기사였던가(사람들이 뚜렷한 증거도 없이 종교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리 말하듯) 혹은 가톨릭 세계의 면모를 바꾸어 놓은 짐수레꾼이었던가.


P.142
철학자 미셸 세르는 수동성은 "야만적인 것의 다른 형태"라고 했다. 이러한 일상의 노력, 멀고 먼 목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러나 강렬한 부추김 그리고 유익한 땀방울을 통해 나는 하늘로 날아오르고, 어린 시절과 두려움과 고정관념의 사슬에서 해방된다. 나는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있는 것이다. 걸으면서 생각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날아오르는 독수리, 흘러가는 구름, 도망치는 산토끼, 엉뚱하게 마추ㅈ체게 되는 교차로, 이름 모를 꽃의 진한 향기, 목동의 외침 혹은 끝없이 펼쳐진 언덕의 흰 물결. 이렇듯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생각을 계속 이어갈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매 순간, 걷는 이는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에 이끌려 명상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로 되돌아오게 된다.


P.156
한 마을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이렇게 좋았던 것은 여행을 시작한 후 처음이었다. 앞으로도 내 기억 속에, 전원의 행복한 이미지로 남으리라. 내가 가고자 하는 실크로드가 트럭들의 길이아니라 사람들의 길임을, 그리고 이 마을을 지난 후로는 여니들의 길이기도 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P.158
풍경이 바뀌었다. 해발 1000미터 아래로 내려가자 비탈길 대신 다시 숲이 나왔다. 나는 끝없이 전망이 펼쳐진 곳보다는 스텝 지대를 더 좋아한다. 일가즈의 중심부에는 짐수레와 쟁기가 두개씩 놓여 있었는데, 하도 낡아서 몇 년 후면 골동품이 될 것 같았다. 아시아 주민들은 주로 튼튼한 낙타를 이용해 물건을 수송했기 때문에 수레의 발달이 더뎠음을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P.162
모든 오르막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P.175
외톨이, 여행자에게 자주 밀어닥치는 이러한 암담한 상황들과 맞서 싸워야 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아랍 속담을 되뇌며 스스로 용기를 북돋았다. "여행하는 사람들은 깊이 생각하고, 집에 머무는 사람들은 업신여김을 받을 뿐이다."


P.188
거의 모든 종교에서 순례의 전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몸의 단련을 통해 영혼을 고양하는 일이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머리는 신가까이에 가 있다고 할까


P.188
무엇이 나를 자꾸 앞으로 떠미는 것일까? 도대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힘이길래 잠에서 깨자마자 나를 길로 내던지는 걸까? 내게 진정 어려운 일은 걷는 것이 아니라 멈추는 것이었다. 지금 나는 육체적으로 아주 충만한 상태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피로가 씻기자마자-몇 주 전부터 계속해온 여행에 비하면 그 회복 속도는 또 얼마나 빠른지-나는 걷고 또 걷는 것을 꿈꾼다.


P.189
홀로 외로이 걷는 여행은 자기 자신을 직면하게 만들고, 육체의 제약에서 그리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안락하게 사고하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순례자들은 아주 긴 도보여행을 마친 후엔 거의 예외 없이 변모된 자신의 모습을 느낀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스스로른 직면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발견할 수 없었을 자신의 일부를 만났기 때문이다.이는 또한 혼자 건듣 것을 선호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여정에서 친구들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P.200
수 많은 병사들이 죽어간 전쟁에 대해, 그는 다만 이렇게 언급했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 이게 이렇게 간단한 말이 아니었구나

P.215
어디가는 거요? 어디가? 어디?
  • 나도 내 삶을 가면서 어디를 가는지 항상 물어보고 싶어졌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인가? 어디로?


P.216
전적인 믿음과 그 무엇도 마다하지 않는 복종. 이런 식으로 이미 어린 나이때부터 꼬마 투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와 닿는 문구가 아닐까 생각들었다.


P.217
마을 입구에서 두 남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가로 막았다. 하나는 시계를, 다른 하나는 돈을 요구했다. 그들은 거리낌업이 내 주머니에 손을 넣어 뒤지기 시작했다. 나는 도망쳤다. 대낮에 설마 폭력을 행사하랴. 
  • 생각만으로도 무서운 일이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얼마나 심장이 쿵쾅거렸을까

  • 생각해보니 이럴때를 대비해서 작은 확성기를 들고 다니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정학이에게 다가섰다는 흑인들이 생각이 난다.


P.218
혼자 걷는다는 것은 위험에 그리고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몸을 내맡김을 의미한다. 자전거 여행처럼 도망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리고 자동차 여행처럼 몸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도 전혀 없다. 지금까지는 두려움이란 놈이 배낭 안에서 부끄러운 듯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그리고 만남 하나하나가 축제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그 녀석이 은밀하게 몸을 일으켜 내게로 왔다.

P.221
마치 봄날 같은 싱그러운 햇빛을 받으며 나는 길을 떠난다. 마을 옆에 세워진 바리케이드 때문에 길을 수정해야 했고, 지도도 쓸모없어졌다. 그래도 나는 매우 가파르게 경사진 길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P.227
잘 알다시피 지혜란 길을 딸 걷는 중에 얻어지는 법이다.
  • 잘 이해가 안간다


P.250
어둠 속에서 옷을 입었다.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그들이 문을 부술까?(중략)
나는 베게 밑에 칼을 넣어두고 여차하면 사용하리라 굳게 마음먹었다. 
  • 계속 마음이 떨린다


P.265
"아니, 난 배고프지 않소. 다만 목이 마르오. 맥주라도 한병 마시면 좋을 것 같으데. 시내에 마시러 갈 형편도 아니니까."(중략)
분노가 가라앉으며 피곤이 밀려왔다.

P.279
베네치아를 떠난 이후 내가 겪을 위험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물론 이 길에서 나는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노르망디-파리 고속도로에서도 샹젤리제 거리를 건너면서도 혹은 횡단 보도에서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고 내각 턱없이 순진한 건 아니다. 걷는다는 건 모든 접촉에 노출도니 일이다. 따라서 호의도 악의도 모두 접하게 되는 것이다. 그냥 침대에서 죽기를 바랐다면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 이 같은 생각은 언제나 화고했다. 자신의 침대에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래서 절대 그곳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이미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P.309
오늘도 나는 40킬로미터를 주파해야 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며칠 쉬거나 계획한 구간을 단축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를 걷도록 계속 걷도록 부치기는 이 알 수 없는 힘이 문제였다. 물론 나는 그래야만 하는 훌륭한 이유들을 매일 찾아내곤 한다.


P.312
얼마 지나지 않아 요란한 뇌우가 나를 흠뻑 적셨다. 나느 작은 다리 아래로 피했다.
  • 삶에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나를 적신다. 피하는 수밖에


P.317
서아시아를 여행하고 나면,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이곳에서 장사의 기본을 이루는 것은 대화의 기술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손님이 상점에 들어올 때 상인이 기대하는 것은 실제적인 이익도 이익이지만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느끼는 기쁨이다. 나는 이곳의 상인들이 손님들과 벌이는 놀이에 금방 매혹되었다. 농간을 부리기도 하고 꼬이기도 하고 고상한 사교술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고도의 전략에 버금가는 머리싸움도 한다...이는 서양 사회가 지극히 신성하고 솔직함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에 투명성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다분히 멸시하는 경향이 있는 행위들이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면 새로운 게 보인다. 이렇듯 인간 대 인간으로 부딪침으로써 서로 마음을 열게 되고, 진심 혹은 거짓이 눈에서 논으로 표현된다. 그러면 사람들 사이의 장사가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P.321
다리와 허벅지와 어깨 근육은 모두 탄탄해졌다. 심장 박동은 쉴 때 분당 56회였고 이동 중에는 80에서 90이었으니 상태가 아주 좋았다.
  • 혈압이 나보다 났네 ㅎ


P.331
공포로 인해 발이 풀린 그는 트랙터를 멈췄다. 그가 천천히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눈 속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셔서 아마 나도 그처럼 흙빛이 돼 있었으리라. 갑자기 우리는 웃을을 떠뜨렸다. 이제 살았다는데서 오는 커다른 웃음이 산속에 메아리쳤다.

P.348
쿠르드 마을들과 작별이다. 만약 다시 올 일이 있다면 혼자 오지 않도록 애쓸 것이며 
  • 안가는게 상책이지


P.350
하지만 나도 그들처럼 온몸이 햇볕에 그을렸고 또 그들처럼 누더기를 입었다. 그들이 건초더미를 지고 힘겨워하듯 나도 내 짐의 무게에 매일 짓눌리고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서로 다는 두 세계 속에 살고 있다. 내가 대표하는 것은 유럽이라는 곳이 지닌 풍요, 즉 자동차와 보석과 맥도날드와 화려한 스타들이다. 숨길 것 하나 없는 내 배낭을 두고 그들은 수천가지의 보물을 상상한다.


P.352
자전거 위에서 텐트 속에서 그들이 보는 것은 그 지방의 일부, 결국 풍경뿐이다. 같은 언어를 쓰며 텐트 속에서 잠을 자는 그들은 도둑에 대한 걱정은 나보다 덜하겠지만, 마을 사람들과는 거의 교류하지 못한다. 그들은 세상을 발견하고, 나는 몸소 체험한 것을 바탕으로 세상과 직면한다.

P.375
카메라라는 기계는 그들에게 마술에 걸리게 하는 신비로운 상자 같은 것이리라.
  • 나는 아직도 마법에 걸려 있지. 그 소리, 그 느낌. 그건 어쩜 순간을 영원히 잡아 놓고 싶어하는 나의 바램이 순간의 기록이 묻어나는 것인지 몰라


P.378
이전에도 몇 차례나 있었던 일이지만, 험난한 길을 갈 때면 나를 탐색하고 나 자신과 겨루기 위해서 나를 잃어간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친구 조제가 이번 여행이 "자신과 벌이는 일 대 일 싸움"이라는 표현으로 요약될 거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바로 지금이 그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어리석은 내기도 있는 법이다. 이런 식으로 2주째 진행되는 이 여행도 그런 것이 아닐까? 미지의 세계에서 나 자신을 잃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기분 나쁜 것은 차치하고라도 나는 에르주룸에서부터 이미 어리석은 미치광이들과 마나는 일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P.379
내가 이곳에 있는 것과 내가 목표한 곳에 도달할 가능성에 대하여 생긱는 의문의 답으로, 콬포스텔라 길에 고나해 모니크가 했던 대답을 상기했다. 모니크는 나와 반대로 종교 차원에서 순례길에 나선 여자였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보다 나은 명분을 갖고 있어여. 사도 야고보의 유골함을 만지는 것이 당신에게는 의미 있는 목표이기 때문이오. 하지만 신자가 아닌 내게 콤포스텔라의 대성당은 아무 의미도 없다오." 그러자 모니크가 대답했다. "하지만 콤포스텔라라는 목표는 당신뿐만 아니라 내게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니가요."


P.381
이들과 맺은 우정은 단 하루의 우정이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처럼 강하고 굳건하다. 예전엔 이런 경험을 못 했다. 우정과 사랑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비밀스런 연금술의 결과이며, 꼭 오래 지내봐야 영원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모든 사람은 순례를 하면 변한다고들 한다. 나의 쿠르도와 터키인 친구들이여, 형제에롤 맺어진 순례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 대한 기억과 그대들의 작별 인사를 마음 깊은 곳에 간직 한 채 집으로 돌아가련다. 

P.387
지금까지 터키에서 만큼 타인에게 자신의 집을 개방하면서 그토록 따뜻하고 넓은 마음을 보여준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손님을 맞는 사람의 자부심이 나머지 주민들과 공유되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 어느 나라나 사람이 원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 있는 따스한 情이 전부인듯 한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


P.387
우리 '문명'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접대의 개념이 잊혀져가고 변질돼 버렸다. 사람들은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만을 초대한다. 
  • 훈기가 사라진지 오래되었고 귀찮아진지 오래다. 가족들이라도 잘 모이면 다행이지.


P.401
짐의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얼마동안 의식을 잃었던 것일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P.406
장엄하고 구름에 덮인 산은 정말 아름다웠다. 정말 아름다웠다. 새벽에 날이 밝자 산이 안개 속에 묻혀서 더욱 신비로운 모습으로 장식돼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산꼭대기가 구름으로 덮혀서 낮에는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P.421
내가 견뎌낼 수 있을까? 나는 평소 고통을 잘 견디는 편이었다. 

P.431
나는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나는 목적지 테헤란까지 가지도 못하고 한쪽 날개가 꺽였다. 하지만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내가 올 한 해 동안 도달한 1700킬로미터는 내게 에너지난 인내심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중국가지 가기 위한 에너지와 인내심은 아직 충분하다. 이 긴 여정, 이 고독한 여행 안에는 떠나는 삶과 다가오는 죽음이 있다. 삶에는 아직 쟁취할 승리가 남아 있다. 결국에 죽음이 이길 거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기다리면서 죽음을 비웃어 준다. 그리고 나는 1만 2000킬로미터에 달하는 여행을 시작했을 뿐이다.
  • 왜 그렇게 증명하려고 했어요. 꺽이면 어떻습니까? 또 기회는 있는 법이지. 몸을 보존하는게 먼저 입니다.


P.432
나는 중국까지 가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마을의 작은 묘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나의 페넬로프를 위해 나는 그곳에 돌아올 것이다.
  • 삶은 여행이니까. 언젠간 끝나니까...역시 나를 기다리는건 내가 사랑했던 그 사람들




III. 내가 저자라면

1.보완이 필요한 점
1)아쉬웠던 부분
  • 사진을 맣이 찍으신거 같았는데 사진과 같이 글을 올려 주셨으면 좋을 법했다.

  • 길의 지도도 올려주시면 좋았었을 법했다.


2)생각하게 된 부분
  • 우리의 시골 마을이었다면 책의 내용에서 처럼 무료로 재워주고 손님을 환대할 수 있었을까?

  • 나도 도보여행을 하고 싶게 만든다

  • "지혜란 길을 딸 걷는 중에 얻어지는 법이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겠다



2. 이 책의 장점
  • 사람들의 정겨운 모습이 눈에 들어오듯 잘 전달해 준다.

  • 가지 말아야 할 곳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행간을 통해 잘 전달해 준다.



3. image
  • 글로 읽은 캉갈과 사진으로 캉갈의 모습은 사뭇달랐다. 저렇게 큰 개가 사람에게 달려들었다면 ㄷ ㄷ ㄷ

  • 002.PNG

4. 네이버 도서 검색


IV. 기타

1994는 도보성지를 떠났던 그때가 생각났다. '신앙의 선조들의 그 발길을 따라...'라는 주제로 도보성지 순례. 책을 읽는 내내 그때가 생각났다.
그때 신앙심이 깊어지거나 종교로의 엄청난 심취는 없었짐나 함께한다는 그 사실 만큼은 내 온 마음을 흔들었던거 같다. 그때의 그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들을 찾아보려고도 사진을 들여다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이 자꾸만 그려졌다. 문득 그들이 보고 싶고 소중했던 그 시절이 자꾸만 생각났다.
보고 싶다. 그 젊은 시절 함께했던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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