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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5일 17시 37분 등록
저자연구

클라이브 해밀턴( CLIVE HAMILTON)

1953년 3월 12일 호주 출생. 진보주의 경제학자로 호주를 대표하는 실천 지식인이자 논객이다. 호주 국립대학교에서 역사학과 심리학, 순수수학으로 학위를 받았으며, 1986년 영국 서섹스 대학에서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부터 1988년까지 호주국립대에서 박사후 연구원 및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호주 국립 대학교 개발 연구 센터에서 개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 대학교에서 경제발전론을 강의했고, 현재는 호주 캔버라의 찰스스튜어트 대학교 공공윤리 담당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정부 조직인 호주국립서비스 산업경제국과 자원평가위원회에서 일했으며, 1994년 진보 두뇌집단인 '오스트레일리아 인스티튜트'를 설립하여 2014년까지 연구소장을 역임하였다. 2009년에는 녹색당 후보로 정치에도 뛰어드는 등 실천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해밀턴은 전 지구적 현상인 성장 이데올로기를 치밀하고 예리하게 비판하는 경제학자이며 기후변화와 복지, 민영화 등 공공정책 분야에서도 진보적인 이론을 수립하고 대안을 제시해 오고 있다. 그는 약 15년간 기후변화 문제에 관해 책을 써왔으며 교토 의정서에 관련한 호주 정부의 노력을 비판해왔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대중의 의견을 통제하고 논쟁이 어떻게 억압되고 있는지에 대해 쓴 2007년작 <Silencing Dissent>으로 이어졌다. 마찬가지로 맥락으로 해밀턴은 2018년 2월 호주 시민 사회와 정치에서 중국공산당의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에 대한 비판작인 < Silent Invasion: China's influence in Australia >을 출간한다. 경제성장에 대한 예리한 비판이 담긴 <성장숭배>는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해밀턴은 그 후속작들을 통해 쟈유 시장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소외와 착취가 출현하고 있음을 주장해오고 있다.

국내에 출간된 저서로는 <성장숭배 GROWTH FETISH>,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REQUIEM FOR A SPECIES>, <인류세 Anthropocene> 가 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옮긴이의 글
9
경제성장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경제성장을 지탱해준다고 지적한다
즉 현대 소비자본주의는 사람들의 불만족 상태를 계속 조장해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 있으며 광고산업의 본질적 역할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한다

13
지금 소비자본주의시대에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 소득을 더 많이 벌면 행복해질 거라는 대단한 망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본의 권력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14
지은이는 자본의 권력을 파괴할 필요도 없이 자본의 권력을 무시하자고 말한다

>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인간의 본능을 부정하는 일이다. 

머리말
23
좌파가 계속해서 자신의 정치철학과 전략 전체를 최저 소득계층 10%의 생활상에서 찾아야 할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근본적 사회변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기독교 자선단체의 윤리강령에 더 어울리는 철학이 아닌가

> 정치를 위한 정치적인 정치행태

25
하나는 물질적 빈곤을 강조하는데,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성장과 소비가 지나치다고 주장한다. 이 양자를 조화시키는 데 실패함으로써 좌파 진영은 정치적 혼란으로 치달았다

28
보통 사람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의사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시장의 유혹에 넘어가 화려해 보이는 새장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갇히고 있다. 그리고 밖으모 나갈 문이 열려 있다는 말을 좀처럼 들으려 하지 않는다

제 1장
경제성장의 망상체계

34
지나간 유구한 역사에서 국가 지도자들이 약속으로 내걸었던 것은 자유와 평등, 국민교육, 도덕의 함양, 국가 자존심의 회복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국가 지도자들이 약속하는 것은 더 높은 경제성장률이다

> 나 역시도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측정가능한 목표와 지표를 보여주기 위함인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수치밖에 없는가?

35
현대 사회에서 경제성장의 역할을 따져보면 따져볼수록, 경제성장에 대한 우리의 강박관념은 주물신앙처럼 보인다. 경제성장은 한 해에 생산되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이 얼마나 늘었느냐는 지극히 평범한 관념에 불과하다. 하지만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해보면, 경제성장이라는 관념에는 '형이상학적인 미묘함과 신학적인 우아함이 넘쳐 흐른다'

47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수학과 경제이론 분야만을 공부했지, 철학이나 심리학,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그들의 무지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공리주의 라는 일개 철학적 입장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만큼 악명이 높다

52
자기계발 대열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애써보는 것이다. 

성장 망상은 개개인의 우선적인 목표를 왜곡시키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계몽된 개인들의 자발적 행동에 호소하는 것만으로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없듯이 성장 망상에 대처하는 데는 정치적 대응이 필요하다

53
소비자에게 권력을 주자는 명분은 교육과 환경, 정부의 공공서비스를 비롯한 모든 것을 상품화하자는 근거가 된다

실제로 득을 보는 사람들은 정부의 영향력이 후퇴함에 따라 권력을 더 많이 차지하게 되는 기업과 금융시장이다. 신자유주의는 실제로 개인들에게서 권력을 빼앗는다. 왜냐하면, 이전까지 개인들은 시장에서의 권력만이 아니라 정치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으로서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이제는 시장에서의 권력만을 가지기 때문이다

제 2장 성장과 행복
91
연구자들은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여러 가지 개인적 태도 가운데 만족스러운 삶과 가장 관련성이 강한 것은 의미감과 목적의식이다."

94
행복의 추구는 일상적인 만족보다는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삶을 통해 펼쳐가는 행위이자 올바른 행동으로 이끌어주는 윤리관의 함양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하다. 즉 기독교적 신앙은 물론, 불교 사상과도 되울림이 강한 관념이다.

> 과연 그렇게 단언할 수 있을까? 일상의 만족이 무엇인지부터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95
행복해지기 위한 성찰을 얻으려면, 오히려 단기적인 만족을 버림으로써 자신의 가련한 처지를 경험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97
일상적인 종교의례는 어느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회적 인정에 대한 욕망이나 내면화된 부모의 기대, 혹은 정말로 있을지도 모를 내세에 대비한 보험증서와 같은 의미밖에 없는 외적 표출에 불과할 것일 수도 있다

107
경제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만 가치를 부여한다. 자신에게 필요 없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3장 개인의 정체성
115
소비자들의 선호는 결코 '시스템의 외부'에서 생성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스템에 의해 생성되며 또 강화된다. 따라서 소비자의 '주권'은 환상에 불과하다

123
참된 개성을 발견하려면 시장경제로부터 마음을 철수시키는 심리적 은둔이 필요하다. 시장경제는 제조된 정체성들, 즉 복제인간들에게 서로 다른 겉모습을 제공하기 위해 팔리는 가면만을 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28
쇼핑이란 행위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수단이 되었다면, 지금 모든 도시들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쇼핑몰은 우리가 그러한 힘을 동경하며 짓고 있는 신전이다.

133
현대의 소비자본주의는 사람들의 욕망이 소유를 앞질러가는 한 계속 번성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가진 것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로 사람들을 계속 몰아가는 것이 시스템을 재생산하는 데 결정적인 요소다

경제성장이 행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행이 경제성장을 지탱해준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산업의 필수불가결한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다

> 마치 타부를 건드린듯한 따끔한 지적이다

134
광고산업은 제품 자체의 유용한 쓰임새에 따라 상품을 판매한다는 방침을 오래전에 내다버렸다. 현대적인 마케팅은 잠재적 소비자군의 심리상태와 제품 사이에 작동하는 상징적 연상 효과를 만들어낸다.

137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것에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다른 무엇이 숨어 있다."

148
기업과 정부의 싸움은 결코 대등한 것이 될 수 없다. 기업은 이 문제에 죽기 살기로 달려들지만,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자고 촉구하는 대다수 정부의 행동은 위태로운 환경문제를 걱정하는 유권자들을 배려해 내놓는 값싼 선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이 역시 명쾌한 지적이다. 자본주의에 기반한 현대민주주의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150
식품산업은 비만을 일으키면서, 그리고 제약산업은 그 치료제를 팔면서 둘 다 이익을 본다. 이 문제에서도 의료계와 제약회사는 병리 현상을 일으킨 우리 사회의 문제를 진지하게 따져 묻는 일을 방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52
현대 사회에서 소비의 목적은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소비지출의 성격은 부의 과시를 통해 지위를 획득하려는 행동이었는데, 이제는 일정한 제품이나 브랜드를 동원해 자아를 만들어내려는 행동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이제 아무개만큼 살고 싶어 안달하는 게 아니라 아무개와는 다른 삶으로 더 낫게 살고 싶어 한다.

4장 - 진보
165
승리를 거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이며, 보다 정확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다.

170
여성해방을 추구하겠다며 이룩한 진보는 노동의 평등과 소비의 평등으로 와전되어버렸다.

177
결국 남성들과 다를 바 없이 소외되고 착취되는 삶을 똑같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여성들은 해방을 추구했으나 평등에 안주했다

186
결론적으로, 세계화의 본질은 세계와 경제와 금융 네트워크가 촘촘해진다거나 기업들의 국제적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본질은 성장과 소비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쉴 새 없이 확산된다는 데 있다.

5장 정치
199
제3의 길에는 세계관은 없고,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줄 실용적인 정책들만이 있을 뿐이다

> 국민의 입장에서는 더 나은 것 아닌가?

201
문제가 되는 것은 제3의 길의 옹호자들이 생활정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그들에게는 사람들이 왜 라이프스타일을 쫓는 일에 안주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분석이 없고, 복잡한 다양성이란 것이 보다 심층에 있는 시스템 차원의 변화가 겉으로 표출된 것은 아닌지 따져 보는 문제 의식이 없다

208
신자유주의가 남긴 유산 중의 하나는, 일단 시장이 열리고 나면 정부는 현상을 바꾸는 데 무력해진다는 논리를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213
이론에서 탈선해 신념이 되어버린 경제논리를 선전하고 퍼뜨리는 사람들은 강의실과 학술지에 출몰하는 학계의 경제학자들만이 아니다

218
시장은 이제 일반 대중의 의식 속에 사람의 활동이라기보다는 물질적인 법칙으로 각인되었다

222
사람들이 자신의 소득을 놓고 타인들의 소득, 그리고 자신의 예상되는 기대소득, 또 원하는 목표 소득과 어떻게 비교하는냐가 개인의 주관적 행복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소득은 우리 사회에서 물질적 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 삶을 얼마만큼의 값어치로 인정해주느냐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신호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6장 노동
227
노동은 더 이상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임금노동과 비임금 노동을 통틀어서 과연 노동을 통해 어떻게 충만한 생활을 실현하느냐는 문제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 아직은 너무나도 이상적인 이야기인 듯 하다

231
풍요가 노동의 해방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노동이 해방된다"는 의미이지 "노동으로부터 해방된다"는 뜻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233
일과 거리를 두는 태도, 자신의 일이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려는 태도가 이제 대중의 의식 속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다

235
경제학 교과서에서 노동은 그에 수반되는 고통, 즉 노동에 따르는 비효용Disutility으로 그 성격이 규정된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노동 활동에 뛰어드는 목적은 오직 하나, 소비재 구입에 써야 할 소득을 버는 것이다. 이 이론이 전제로 삼고 있는 생각은 인간은 한가하게 여가생활을 즐기면서 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즉 놀고는 싶은데 소비를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러 나간다는 것이다.

237
심리학자 마리 야호다는 고용이 주는 다섯가지 범주의 심리적 체험이 행복에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그 다섯 가지는 정형화된 시간생활, 사회적 접촉, 집단적 노력, 사회적 정체성이나 위상, 일상적 활동이다

> 내 생각에는 그다지 결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다섯가지는 때론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사람마다, 상황마다 천차만별이다. 퇴직하면 정형화된 과거의 생활이 그리워지기도 하겠지만 자유로움에 비한다면이야 투정 수준에 불과할 것이다. 사회적 접촉은 큰 부분이나 피고용 관계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한 부분이다. 집단적 노력은 그 자체가 고용이 주는 효용이라기보다는 고용인으로서 조직안에서 집단적 노력이 용이하고 흔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고... 사회적 정체성이나 위상이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일 수 있으나 이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성공하지 못 한 사람들에게도 행복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것은 악영향일뿐이다. 일상적 활동은 굳어버린 피고용인의 생활패턴에 너무 익숙해져서가 아닐까. 먹을 것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노비의 생활에 익숙해진 것은 아닐런지...

238
이들 실직 근로자들은 모두 '고용되어 있다는 것'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사이의 차이점을 구분할 줄 알았고, (...) 다른 수단을 통해 고용이 주는 심리적 소득을 획득하고 있음을....

247
직업경력이라는 관념을 버리고 삶의 서사라는 관념을 따르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개인화 시대와 맥을 같이 하는 변화다

252
가사노동도 여느 노동과 마찬가지며 이루어지는 장소만 가정이라는 식의 생각은 여성의 노동과 남성의 노동 사이의 평등을 잘못된 방향으로 확대하려는 시도다. 가사노동이 임금노동으로 전환된다면 곧이어 가정 내 인간관계도 송두리째 경제적 잣대에 의해 지배될 것이고,

255
공동체 봉사활동에 대해서도 이와 유사한 언급이 가능할 것이다. 자선사업을 정부와 계약해서 서비스를 공급하는 영리산업으로 바꾸는 것은 자선사업을 본질을 바꾸는 것이다. 공동체 차원의 봉사활동에 경제적 합리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그 일의 정신을 파괴하는 것이고, 따라서 그 목적 또한 파괴하는 것이다

7장 환경
268
환경보호의 경제적 비용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환경법규가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주장이 정책 결정자들에게는 여전히 거의 마력에 가까운 힘을 행사하고 있다

274
경제성장과 그 근저의 사유재산 시스템을 지키려는 것은 우리의 가장 강력한 본능이 되었다고도 할 만 하다. 가히 종교적인 열망에 가까운 이 본능적 충동을 신자유주의 정치인들은 집요하게 이용한다.

286
시장의 합리성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 보편타당성을 주장하지만, 시장은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합리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288
산업혁명기의 물질적 진보는 계산 가능성이라는 관념 위에 구축되었던 것이다.

8장 탈성장사회
305
미친 듯이 폭주하는 터보 자본주의에 맞서는 전선을 자본주의의 홈그라운드에서 경제성장률로 설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자가당착이다

309
물질적 풍요의 대가는 공동체의 해체였고, 자아의 해체였다.

311
일반적으로 시장의 경제는 경쟁 심리와 위계질서, 도구적 합리성, 과시를 통한 위상 제고, 외부 세계의 소유와 같은 남성 중심적인 가치와 남성적 의식이 지배하는 곳이다. 그에 비해 가정은 직관적인 평가, 비경쟁적인 관계 형성, 공감과 배려 같은 여성적인 가치와 의식이 지배하는 곳이다.

312
케인스는 1930년에 쓴 논문에서 경제성장 이후의 생활에 대해 주 15시간이 임금노동의 합리적인 장기적 목표로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

319
존 스튜어트 밀은 성장하지 않는 경제를 정체된 사회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324
분명히 자본주의의 본성에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을 해결하려는 '욕망' 같은 것은 없다. 따라서 고용의 성장은 시스템에 발생하는 우연일 뿐, 시스템 내부의 필연적 매커니즘은 아니다.

328
경제성장은 인간이 지닌 창의력의 엄청난 부분을 단지 상업적 목적에 투입해왔을 뿐이다.

329
우리가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은 한 나라가 일정 수준의 발전단계에 도달했을때 경제가 더 성장한다고 해서 잔존하는 빈곤이 근절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질문에 대한 역사상의 기록은 고무적이지 않다


내가 저자라면

옮긴이의 인트로가 다소 길다. 책의 앞부분에 책내용을 요약해놓은 이유에 대해 모르겠다. 그다지 어려운 책이 아니다. 하지만 번역 기준에 대한 소개는 적절하다고 보여진다. 2장의 '성장과 행복'은 내용이 진부하다. 행복에 대한 주워 모은 듯한 이야기들이 다소 식상하게 느껴진다. 거시적인 경제를 다룬 나머지 부분은 노암 촘스키의 말대로 표적을 제대로 겨누었다. 한 쪽만 보고 미친듯이 질주하는 경제성장논리에 완전하게 함몰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들이다. 7장 환경은 다소 구색 맞추기처럼 느껴졌다. 환경은 무분별한 경제성장과 분명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저자에게 있어 환경과 기후변화는 오랫동안 비판의 칼날을 놓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경제성장의 폐해를 논하는데 빠뜨려서는 안 될 필수불가결한 내용인양 책에 포함되었지만, 내용이 따라주지 못 하는 느낌이다. 뻔하고 당위적인 이야기가 많다. 뻔한 사례들을 좀 줄이고 의견 위주로 간략하게 압축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매번 정부의 경제정책을 보면서,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가 얼마인데 예상치는 얼마이므로 앞날이 우려된다는 뉴스와 기사를 수없이 접하게 된다. 우리는 대부분 아무런 생각없이 경제가 안 좋아지면 우리의 생활 역시 안 좋아진다는 일차원적인 수용에 그치고 만다. 가끔은 경제성장률이 좋으면 나쁠 것은 없겠지만, 왜 그리도 경제성장률에 목을 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곤 했었다. 내가 경제를 몰라서 그런것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곤 했던 게 사실이다. 그 누구도 경제성장의 뒷면에 숨어있는 암울한 파편들과 그림자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실업률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로지 수치에만 의존하여 결과에 대한 평가와 정책수립을 하는 정부를 보면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이 되면서도 다른 대안은 없는지 의구심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을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재의 우리 사회와 경제에 대해 잠깐이라도 생각할 여지를 남겨준 좋은 책 한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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