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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일 10시 42분 등록

철학이야기(63째주)

11기 정승훈

 

저자 연구

윌 듀런트(Will Durant, 1885~1981)

가톨릭 학교에 다니며 성직자의 길을 가려던 저자는 10대 말 도서관에서 접한 책의 영향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와 마르크스를 결합하려는 꿈을 꾸게 되었다. 졸업 후 신문 기자를 하며 성범죄 기사를 쓰며 힘들어하던 시절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읽게 되면서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가톨릭과 사회주의 결합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듀런트는 신앙이 무너지며 성직자의 길을 접었다. 이는 어머니와의 의절하는 아픔까지 더해졌다. 저자는 아마 그 기간 동안 스피노자에게 더욱 감정이입이 되었을 것이다. 서구에서 신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자에겐 딸이 또 다른 면에서 큰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해, 신앙에 대한 시각도 바뀌었고 무엇보다 의절했던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1920년대 세계 대공항이 발발하기 전이지만 노동자의 삶이 힘든 시기였다.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사회주의에도 관심을 가졌던 저자답게 노동자를 위한 학교에서 성인 노동자들에게 철학, 문학, 과학, 음악, 예술을 가르쳤다. 당장 먹고사는 것이 힘든 노동자에게 인문예술교육을 했다는 것이다. [희망의 인문학]에서 거리의 사람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쳐서 삶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과 같다. 노동자에게, 거리의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직업교육, 기술교육을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물음과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이론만을 가르치는 데서 끝내지 않았다. 그는 사회운동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동등한 임금, 여성 참정권, 인종 평등 및 미국 노동력에 대한 공정한 노동 조건을 위해 효과가 있는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했다.

듀런트는 심지어 20년 동안 "시민의 권리 운동"을 앞두고 1940년대 초에 "상호 의존의 선언"을 초안을 작성했다.

인종, 피부색, 신념을 구별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과 예의를 지키십시오. 이 차이점에서 발생하는 적개심을 억제하고 문명화된 삶의 공평한 플레이에서 모든 그룹을 결속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기 위해 노력한다. ... 동일한 신성한 아버지의 자녀들이 자유와 공통의 인간 피를 어디서나 공유하면서 뿌리를 내려 남자는 형제이며, 상호 관용은 자유의 댓가입니다.”

그의 이 선언이 1945101일 국회 기록에 도입 된 것을 인종 평등 문제로 강력하게 추진했다.

 

그에게는 이해와 용서라는 자질이 있었다. 그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용서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명의 도둑이 로스앤젤레스의 집에 침입하여 값 비싼 보석과 저축 채권을 훔친 후 경찰에 의해 체포되었을 때 - 듀런트는 혐의를 기각하지 않고 자유를 주장했다. "용서"는 철학의 절반이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6장 이마누엘 칸트와 독일 관념론

1. 칸트로 가는 길

니체는 칸트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다음으로 나아간다. 쇼펜하우어[순수이성비판]독일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하며, 누구나 칸트를 이해하기 전에는 아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스펜서는 칸트를 이해할 수 없었고, 아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완전한 철학적 성장에는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스피노자에 대해 헤겔이 한 말을 조금 바꾸어 표현하자면, 철학자가 되려면 우선 칸트주의자가 되어야만 한다. (341)

결국 칸트는 모든 철학자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칸트를 제대로 이해한 것과 아닌 것이 차이가 있다는 것인데 이 점은 좀 더 살펴봐야겠다.

그는 예와 구체적인 것을 경멸한다. 그런 것을 넣으면 그의 책이 너무 길어졌을 거라고 주장한다. (342)

 

1. 볼테르에서 칸트로

이 길은 종교적 믿음이 없는 이론적 추론에서 이론적 추론이 없는 종교적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342)

베이컨의 이성주의는 홉스에 이르러 비타협적 무신론과 유물론이 되었다. (343)

 

2. 로크에서 칸트로

존 로크는 심리학에 프랜시스 베이컨의 귀납적 방법론과 그 실험을 적용하겠다고 나섰다. (344)

우리의 모든 지식은 단지 우리가 그것을 감각한 것일 뿐이며, 관념은 이런 감각으로부터 파생된다. (345)

우리가 직접적으로 아는 유일한 현실성은 정신이다. 유물론은 이렇게 간단히 처리될 수 있는 것이다. ... 우리는 결코 정신같은 실체를 지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단지 분리된 관념들, 기억들, 느낌들 등을 지각할 뿐이다. (346)

당췌 칸드는 뭔 말인지 모르겠다. 글을 읽고 있으나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

 

3. 루소에서 칸트로

그는 프랑스에서 거의 혼자 계몽주의의 유물론이나 무신론과 싸웠다. (349)

교육은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는 못하고 영리하게 만들 뿐이다. 게다가 대개는 못된 짓에 영리해진다. 본능과 감정은 이성보다 믿음직하다. (349)

이성이 신이나 불멸에 대한 믿음에 반대할 수도 있지만, 감정은 압도적으로 그 믿음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350)

2. 칸트 자신

우리의 철학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종교에 완전히 물들어 살았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는 반발심이 생겨 내내 교회를 멀리했다. (351)

저자도 그렇고 대부분 철학자들은 독실한 어머니를 둔 것이 공통점이다. 어쩜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서구에서 기독교, 가톨릭이 대다수였을 테니까.

그의 실천적 원칙 가운데 하나는 능력이 중간인 학생에게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352)

그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생각한 다음 행동에 옮겼으며, 그 결과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354)

이렇게 느리게 성숙한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한 권의 책이 이렇게 철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적도 없었다. (355)

 

3. 순수이성비판

여기서 비판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비판적 분석이라는 뜻이다. (355)

우리는 모든 인식이 분리된 별도의감각들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가정한다. ... “내 질문은 모든 물질과 경험의 지원이 사라졌을 때 이성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356)

인간의 정신은 경험과 감각이 절대적이면서도 변덕스러운 의지를 기록하는 수동적 밀랍이 아니며, 일련의 또는 일군의 정신적 상태에 붙여놓은 한낱 추상적 이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정신은 감각 결과를 관념으로 만들고 조정하는 적극적 기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질서 있게 통일된 사고로 변형하는 기관이다. (357)

 

1. 선험적 감성론

나는 대상보다는 우리의 선험적 대상 개념” - 우리가 경험을 인식과 관련시키는 양식 관여하는 인식을 선험적이라고 부른다.” (358)

우선 이 언덕을 넘어가면 칸트로 가는 길이 비교적 분명해 보일 것이다. (358)

그래야할 텐데. 여기까지 읽었지만 아직도 칸트로 가는 길은 보이지도 않고, 지금으로선 칸트로 가고 싶지도 않다.

감각이나 사고는 하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름을 기다리며, 우리가 요구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 감각 경험과 관념 위에 정신이 있는 것이다. (360)

공간과 시간은 지각된 사물이 아니라 지각 양식, 즉 감각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공간과 시간은 지각 기관인 셈이다. (360)

 

2. 선험적 분석론

감각 경험은 조직되지 않은 자극이고, 지각은 조직된 감각 경험이며, 개념은 조직된 지각이고, 과학은 조직된 지식이며, 지혜는 조직된 삶이다. 뒤로 갈수록 질서, 순서, 통일성의 등급이 높다. (362)

세상에는 저절로 질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인식하는 사고 자체가 질서를 잡기 때문에 세상에 질서가 생기는 것이다. (363)

트가 잘 이해가 안 되는 이유를 알았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나름 규정지었는데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것들이라 다시 생각을 해야하니 힘들었나보다.

과학은 절대적이고, 진리는 영원하다. (363)

이건 저자의 생각인지 칸트의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과학도 변하고 영원한 진리란 없다.

 

3. 선험적 변증론

관념론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지각하는 주체 외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모든 대상의 상당한 부분이 지각과 이해의 형식에 의해 창조된다는 뜻이다. (364)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칸트의 가장 큰 장점은 현상과 물자체를 구분한 것이다.” (364)

종교는 이론적 추론으로 증명할 수 없다. (366)

 

4. 실천이성비판

신학이라는 기초는 너무 불안정하다. 차라리 그것을 버리는 것이, 심지어 파괴하는 것이 낫다. 신앙은 이성의 범위나 영역 너머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의 도덕적 기초는 절대적이어야 한다. (367)

우리는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윤리학을 찾아야만 한다. 수학처럼 절대적이고 확실한, 도덕의 선험적 원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368)

신중함은 이런저런 경우를 가정하는 태도다. 그 좌우명은 정직이 최선의 정책일 경우에는 정직하라는 것이다. (368)

불편하지만 선한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370)

루소가 옳았다. 심장의 느낌은 머리의 논리보다 위에 있다. 파스칼이 옳았다. 심장은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고, 머리는 이것을 절대 이해할 수 없다. (371)

 

5. 종교와 이성에 관하여

이성적신학을 부정하고, 이렇게 솔직하게 종교를 도덕적 믿음과 희망으로 환원시키는 태도에 독일의 모든 정통파가 항의했다. (371)

외적 설계라는 겉모습은 섭리의 결정적 증거가 아니다. 그 관념을 너무 자주 사용하는 신학자들은 그것을 버려야 하고, 그것을 버린 과학자들은 사용해야 한다. (372)

교회와 교조는 인류의 도덕적 발달을 도울 때만 가치가 있다. (372)

칸트는 노인이었기에, 그리고 왕의 고문이 말했듯이, 오직 소수만 그를 읽었고 읽었어도 이해하지 못했기에 처음에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374)

칸트는 모든 학자는 종교적 문제에 관하여 독립적 판단을 하고 자신의 견해를 알릴 권리를 가져야 하지만, 현왕의 치세 동안에는 침묵을 지키겠다고 대답했다. (374)

거의 모든 철학자가 종교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펼쳤다. 또한 공격받지 않은 철학자가 없다. 일흔 살의 칸트에게도 이러했으니...

 

6. 정치와 영구 평화에 관하여

칸트가 정치적 이단이라는 죄까지 짓지 않았다면 프로이센 정부는 칸트의 신학을 용서해주었을지도 모른다. (375)

투쟁은 진보의 불가결한 동반자다. 만일 사람들이 완전히 사회적이라면 인간은 정체할 것이다. 인간 종이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개인주의와 경쟁이 어느 정도 섞여야 한다. (375)

칸트의 판단으로는 이런 군국주의는 많은 부분 유럽의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로 확장해 들어간 결과다. ... 아메리카, 니그로의 땅들, 향료 제도, 희망봉 등은 발견되자마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 취급을 받았다. 원주민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377)

원주민을 미개인으로 여겨 무시해서 그들의 땅을 너무도 쉽게 침략했다.

칸트는 평등을 요구한다. 능력의 평등이 아니라 능력을 계발하고 적용할 기회의 평등이다. (379)

 

7. 비판과 평가

우리는 다양한 대상과 여러 지점에 대한 동시적 지각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공간을 지각한다. (380)

최근의 연구자들은 칸트보다는 흄에게 동의한다. 모든 과학, 가장 엄격한 수학조차 그 진리는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380)

칸트의 위대한 업적은, 외적 세계는 오직 감각의 결과로만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것, 정신은 단순히 무력한 백지, 감각 경험의 무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힘, 경험이 도달하는 대로 선별하고 재구성하는 경험임을 최종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381)

감각을 지각으로, 또 지각을 관념으로 분류하고 해석하는 것은 기억이다. 그러나 기억은 나중에 붙은 것이다. 칸트가 타고난다고 생각한 정신의 통일성은 후천적인 것이며, 모든 사람이 얻는 것도 아니다. 또한 얻을 수 있듯이 읽을 수도 있다. 건망증, 이중인격, 정신이상 등이 그런 예다. 개념은 선물이 아니라 성취인 것이다. (381)

이제야 조금은 칸트를 알 것도 같다. 저자가 많은 비중을 다루지 않은 것이 이해가 된다.

경건주의적인 젊은 시절, 끝없는 의무와 빈약한 쾌락이라는 힘든 생활 탓에 칸트는 도덕주의적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었다. (382)

100년 동안 칸트 윤리학의 절대주의에 반발하고 난 지금 우리는 다시 도시적 관능주의와 비도덕성, 민주적 양심이나 귀족적 명예의 규제를 받지 않는 무자비한 개인주의의 물결에 휩싸이게 되었다. 따라서 무너져가는 문명이 다시 칸트주의적 의무를 이행하라는 외침을 환영할 날이 곧 다가올지도 모른다. (382)

저자가 이 글을 썼던 1926년에서 80년이 지난 2017년 더욱 심해진 시대이지만 칸트주의적 의무를 이행하라는 외침이 환영하지는 않는다. 어쩜 이는 칸트조차 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철학은 이전의 소박했던 시절처럼 다시 순진해질 수 없을 것이다. 칸트가 있었기에 철학은 이제 늘 달라지고, 심오해질 수밖에 없다. (386)

 

8. 헤겔에 관한 메모

그는 진정한 교양은 단호한 자기절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했다. 학생이 처음 5년 동안은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는 피타고라스의 교육체계가 좋은 예였다. (387)

헤겔은 1793, 신체 기관과 성격이 양호하고 신학과 언어학에는 훌륭하나 철학에는 재능이 없다는 내용의 졸업장을 들고 튀빙겐 대학을 졸업했다. (388)

철학의 재능을 발견하기엔 20대는 너무 이른 것은 아닐까. 아님 그 대학이 몰라봤을 수도 있다. 시대를 너무 앞서 갔거나.

이때부터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는 괴테가 문학계를 지배하고 베토벤이 음악계를 지배했듯이, 논란의 여지없이 철학계를 지배했다. (389)

[논리학]은 추론 방법이 아니라 추론에 사용되는 개념들을 분석한다. ... 우리 사고 모든 곳에 퍼져 있는 이런 기본 개념들을 분석하는 것이 철학의 첫 번째 일이다. 이 가운데 가장 널리 퍼진 것이 관계다. 모든 관념은 관계들의 집단이다. (390)

진리는 대립하는 부분들의 유기적 통일이다. 보수주의와 급진주의의 진리는 자유주의다. (391)

갈등은 성장의 법칙이다. 성격은 세상의 폭풍과 압박 속에서 구축된다. 사람은 강제, 책임, 고통을 통해서만 완전하게 성장한다. 심지어 고통에도 이유가 있다. ... 위인들은 미래를 낳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산파다. 산모는 시대정신이다. (392)

나폴레옹, 베토벤, 헤겔이 1년 사이에 태어났듯이, 1827년에서 1832년 사이에 독일은 괴테, 헤겔, 베토벤을 잃었다. (395)

 

7장 쇼펜하우어

시대

바야흐로 신성동맹의 시대였다. 워털루 전투가 끝났고, 혁명은 죽었으며, ‘혁명의 아들은 먼 바다의 바위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400)

쇼펜하우어는 1804년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면서 시골마을의 혼란과 불결, 농부들의 비참한 궁핍, 도시의 불안과 인색에 놀랐다. 나폴레옹과 반나폴레옹군이 지나간 모든 나라의 얼굴에 파괴의 흉터가 남았다. (400)

굴복한 프랑스의 왕좌에는 그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지만 그 어떤 것도 잊지는 않은 부르봉 가문의 인물이 앉았다. (401)

부르봉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궁금하다.

이 환멸과 고난의 시기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종교적 희망에서 위안을 얻었다. (401)

 

2. 인간

어머니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남자, 더 심한 경우 어머니의 증오를 아는 남자는 세상에 매혹될 이유가 없는 법이다. (403)

소음은 모든 지적인 사람들에게는 고문이다.” (404)

이 책이 앞으로 다른 수많은 책의 자료이자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모든 말은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기는 했지만, 또 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405)

이건 확신이 있어서 한 말이었을까. 어느 정도면 이런 말이 나올 수 있는 걸까.

그는 분별력 있는 비관주의자답게 낙관주의자들의 함정을 피했다. , 펜으로 생계를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407)

그는 아무리 늦더라도 자신이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407)

1848년의 이상과 노력이 실패하여 환멸을 느끼던 유럽은 1815년의 절망을 이야기한 그의 철학을 돌아보며 갈채를 보냈다. (408)

 

3. 표상으로서의 세계

칸트의 수수께끼 같은 용어도 없고, 헤겔의 불명료함도 없고, 스피노자의 기하학도 없다. 모든 것이 명료하고 질서가 잡혀있다. (408)

그의 선배들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추상적이었고, 이론만 제시했지 실제 세계를 내다보는 설명의 창은 거의 없었지만, 쇼펜하우어는 상인의 아들답게 구체성이 풍부하고, 예가 풍부하고, 응용이 풍부하고, 심지어 유머도 풍부하다. 칸트 이후로 철학에서 유머는 깜짝 놀랄 만한 혁신이었다. (409)

세상이 쇼펜하우어를 발견하는 데 한 세대가 걸린 것은 그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한 데다가 자신의 생각을 기존의 관념론이라는 200페이지의 장벽 뒤에 감추어두었기 때문이다. (411)

 

4. 의지로서의 세계

1. 살려는 의지

의지는 눈이 보이는 절름발이를 어깨에 태우고 다니는 힘센 맹인이다.” (413)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형이상학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다른 동물들은 영히상학 없이 욕망을 갖기 때문이다. (413)

기억은 의지의 하인이다. (413)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이끌려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느끼는 것에 의해, 반은 그 작용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본능에 의해 떠밀려간다는 것이다. (414)

잠에 대한 요구는 뇌를 써서 일하는 사람에게 가장 크다. (415)

그래서 요즘 계속 피곤하고 졸린 건가. 너무 많은 시간 책에 매달려서 뇌를 쓰니까.

잠은 죽음의 일부를 빌려와 생명 가운데 낮에 소진한 부분을 갱신하여 유지하는 것이다. (416)

 

2. 재생산의 의지

모든 정상적 유기체는 성숙하면 서둘러 자신을 희생하여 생식이라는 과제를 이루려 한다. ... 죽음을 정복하기 위해 재생산의 의지는 지식이나 사고가 거의 통제할 수 없는 곳에 자리를 잡는다. (418)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에게 결여된 완전성이, 아니, 자신의 불완전성과 반대일 경우에는 불완전성마저도 특별히 아름답다고 여긴다.” (420)

반대되는 사람에게 끌리는 마음이 있다. 이것도 본능적인 작용인건가. 재생산의 의지에 의한,

사랑이 최선의 우생학이다. (421)

인간과 만물이 언제나 단순한 환영이나 착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은 철학을 할 자격이 없다.” (423)

일반적으로 모든 시대의 현자가 늘 같은 말을 했고, 언제나 엄청난 다수를 이루는 바보들은 그들 아름으로 똑같이 행동하여, 현자가 권하는 것과 정반대의 일을 했다.” (423)

앞부분을 보면서는 맞다 싶었는데 뒷부분을 보면서는 그 바보 중 하나가 나겠구나 싶었다.

5. 악으로서의 세계

우선 의지 자체가 결핍이며, 의지는 늘 자신이 가질 수 있는 것보다 큰 것을 쥐려 하기 때문이다. (424)

인생은 악이다. 고통이 그 기본적 자극이고 현실이며, 쾌락은 고통이 멈춘 소극적 상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425)

삶은 악이다. “결핍과 고난이 인간에게 휴식을 허락하는 순간, 권태가 즉시 다가와 기분 전환을 즉 더 많은 고난을 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결핍이 민중의 변치 않ㄴㄴ 천벌이듯, 권태는 상류사회의 천벌이다. 중산계급의 삶에서 권태는 일요일로 상징되고, 결핍은 주중의 나날로 상징된다.”(426)

그래서 많은 중산계급이 일요일이면 주중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떠나기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구나.

사실 고통 자체는 짧다. 죽음 자체보다 죽음을 생각하는 데서 훨씬 큰 고통이 생기는 법이다. (427)

맞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데 전전긍긍하며 보낸다.

우리는 온기를 얻으려고 함께 웅크린 고슴도치들 같아서, 너무 빽빽하게 모여 있으면 불편하고 떨어져 있으면 비참하다. (428)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안다는 것은 오래 살았다는 것이다. ... 나이가 들수록 소유욕이 강해지는 것은 파국의 공포 때문이다.” (430)

경험이 지혜로 통합되기 시작할 때, 뇌와 몸이 쇠퇴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430)

최후의 피난처는 자살이다. ... 디오게네스는 숨 쉬기를 거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432)

 

6. 삶의 지혜

1. 철학

다른 모든 것은 오직 한 가지 소망만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돈만은 모든 소망의 추상적 만족이기에 ...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다.” (433)

정신적 요구가 없는 사람을 속물이라고 부른다.” 그런 사람은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한가할 때 고요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433)

주위에서 종종 본다. 무료하고 심심하다면서 뭘 해야 할지 모른다. 정신적인 것보다 물질적인 것으로 무료함을 달래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거의 온종일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 점차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435)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부터 얻는 행복이 우리 주변에서 얻는 것보다 크다.” (435)

 

2. 천재

일반적 인간은 대개 의지만 있고 인식은 거의 없다. 천재는 대개 인식만 있고 의지는 거의 없다. (437)

개인적 방정식이 제거되어 있기에 천재는, 의지로 가득차고 실용적이고 개인적 활동이 넘쳐나는 세계에 그렇게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438)

상상력이나 직관과 더불어 고통도 안겨주는 극도의 감수성이 고독이나 부적응과 결합되어, 정신을 현실과 연결시켜주는 끈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438)

자연은 소수에게만 천재를 주었다. 그런 기질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에 집중해야 하는 정상적인 생활에는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439)

 

3. 예술

이렇게 인식을 의지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해주고, 이렇게 개인적 자아와 그 물질적 이해관계를 잊게 해주고, 이렇게 정신을 의지 없이 진리를 명상하는 수준으로 고양하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다. (439)

예술은 우리에게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것 뒤에 있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것을 보여줌으로써 삶의 괴로움을 덜어준다.(440)

다른 예술은 그림자만 이야기하는 반면, 음악은 사물 자체를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440)

이상하게도 공자도 그랬지만 음악을 최고로 치고 있다.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음악의 기능이 있는 것 같다.

 

4. 종교

그는 기질적으로 당대의 교회 조직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는 신학자들을 경멸했다. (441)

기독교가 우선 유대교를 누르고, 이어 그리스와 로마의 이교를 누른 힘은 오직 그 비관주의, 우리의 상태가 매우 비참한 동시에 죄로 가득 차 있다는 고백에서 나왔다. ” (441)

쇼펜하우어는 동방에서 기독교가 불교를 대체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오히려 인도 철학이 유럽으로 흘러들어 가 그들의 지식과 사상을 심오하게 바꾸어놓을 것이다. (442)

많은 철학자들이 기독교보다 불교, 인도 철학에 우위를 두는 것처럼 여겨진다.

 

7. 죽음의 지혜

삶은 개인의 죽음을 비웃는다. 생명은 그의 후손, 또는 다른 사람들의 후손에게서 그 개인보다 오래 살아남는다. (443)

여자는 음악에도, 시에도, 미술에도 사실 아무런 진정한 감수성이 없다. ... 여자는 어떤 것에도 순수하게 객관적인 관심을 가질 수 없다.” (445)

공자도 그러더니 쇼펜하우어도 여자를 마치 하등한 동물 취급한다.

 

8. 비판

쇼펜하우어에게는 계속 여가를 누릴 만한 돈이 있었으며, 그는 지속적인 여가가 지속적인 일보다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447)

스탕달과 플로베르와 니체처럼, 쇼펜하우어도 젊은 시절 여자나 남자와의 경험 때문에 비정상적인 의심과 민감성이 생겨난 것이 틀림없다. 그는 냉소적이고 고독한 사람이 되었다. (448)

어쩐지... 이렇지 않고서야 여자에 대해 그렇게까지 비하할 수는 없다.

존재에 대한 거만한 혐오는 어쩌면 우리 자신에 대한 은밀한 혐오의 위장인지도 모른다. (448)

쇼펜하우어는 싸우다 지는 것이 전혀 싸우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449)

죽음이 무섭다는 것은 물론 여전히 진실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 그 공포의 많은 부분은 사라진다. 따라서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451)

비관주의는 자의식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한 젊음의 사치다. (451)

결국 쇼펜하우어는 심리학자들이 어디에나 존재하는 본능의 힘과 그 포착하기 힘든 깊이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주었다. (454)

 

8장 허버트 스펜서

콩트와 다윈

회의주의를 전공으로 삼은 프랑스인들이 실증주의운동의 창건자를 배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457)

형이상학은 발달이 정지된 단계다. 따라서 이제 유년기적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콩트는 말한다. (459)

실증주의 운동은 산업과 교역의 생활에서 영감을 얻고 사실을 숭배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던 영국 사상의 흐름과 맞아떨어졌다. (459)

허버트 스펜서의 젊은 시절에 영국을 흔들었던 이런 지적 영향들 가운데서도 가장 압도적이었던 것은 생물학의 성장, 즉 진화론이었다. (460)

2. 스펜서의 발전

자신의 세기에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철학자가 될 아들은 마흔이 될 때까지도 교육을 받지 않았다. 허버트는 게을렀고, 아버지는 너그러웠다. (462)

대부분 독서보다는 직접적인 관찰로 손에 넣었다.” ... 책에서 배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교양도 없지만, 그럼에도 일하고 살면서 배우는 사람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지식을 갖춘 정신이었다. (464)

그의 성격에는 그 장점에 수반되는 결함이 있었다. 단호한 현실주의와 실용적 감각에 대한 대가로 시와 예술 쪽의 감각과 열의는 부족했다. (465)

그는 삶을 분석하고 묘사하는 데 너무 바빠 삶을 살 여유가 없었다. (466)

그는 인도적인 이유로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독신 생활을 한 탓인지 따뜻하고 인간적인 자질이 부족했다. (466)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스펜서다.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그나마 인간적 자질이 생긴 것 같다. 독신이었다면 스펜서와 비슷했을 거다.

우리가 결함을 알 때 위대한 인물을 더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고, 흠 없는 완벽함으로 빛날 때 오히려 수상쩍게 보며 싫어하게 되기 때문이다.(468)

그 순간 마치 문을 열었을 때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 것처럼 진화론은 생물학만이 아니라 모든 과학에 적용할 수 있으며, (469)

 

3. 1원리들

1. 알 수 없는 것들

모든 궁극적 과학 관념들 또한 이성적 개념을 넘어서 있다. (472)

과학자는 인간 지성의 위대함과 하찮음을 동시에 알게 된다. 경험의 범위 내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다루는 데는 힘을 발휘하지만, 경험을 넘어선 모든 것을 다루는 데는 무능하기 때문이다. (473)

이런 모호함의 일반적 원인은 모든 지식의 상대성이다. (473)

 

2. 진화

형이상학은 신기루다. ... 철학 고유의 영역과 기능은 과학의 결과를 요약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474)

이 모든 알 수 있는 것들의 법칙은 힘의 유지라는 최후의 법칙으로 환원될 수 있다. (475)

통합이 이루어지면서 이질성이 생기고 부분들이 모여 점점 큰 전체를 이루면서, 부분은 다양한 형태로 분화한다. 이것이 진화 궤도의 초점들이다. (476)

모든 출생은 쇠퇴와 죽음의 서곡이 될 것이다. (478)

스펜서에게는 거의 쇼펜하우어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인간 노력의 무용성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479)

지혜로운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믿음을 존중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보는 최고의 진리를 두려움 없이 말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오든 자신이 세상에서 올바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480)

 

4. 생물학 : 생명의 진화

생명은 내적 관계가 외적 관계에 지속적으로 적응하는 것이다.” (480)

종이나 집단이 높은 수준으로 발달할수록 출생률은 낮아진다. (482)

철학자가 과학에 기반해서 진화를 이야기하고 생물학을 이야기하는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린 너무 세분화된 학문영역에 익숙해있다.

인구 증가는 생존 투쟁의 주된 요인이며, 이 투쟁을 통해 적자는 생존할 수 있었고, 인류의 수준이 올라갔다. (482)

 

5. 심리학 : 정신의 진화

스펜서 철학의 사슬 가운데 가장 약한 고리다. ... 이론은 풍부하고 증거는 빈곤한 스펜서의 경향이 다른 곳에서보다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483)

스펜서는 의식이 진화해온 과정을 밝히려는 웅장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만, 결국 의식을 진화시키기 위해 어디에나 의식을 갖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484)

이성적인 행동이란 단지 어떤 상황에서 다른 본능적 반응들과 싸워서 살아남은 특정한 본능적 반응들에 불과하다. (485)

철학자는 다른 사람들이 쓸데없다고 생각조차 안하는 것들을 고민한다. 구본권 소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평소 쓸데없는 생각들을 했는데 그게 기술의 발달시대엔 쓸데 있는 생각이 되어 책까지 쓰게 됐다던.

본능이 종족의 경우에는 획득한 습관이지만 개체의 경우에는 타고나는 것이듯이, 지금은 우리의 지적 유산의 한 부분을 이루는 그런 범주들도 진화 과정에서 천천히 획득한 정신적 습관이다. (486)

 

6. 사회학 : 사회의 진화

아무도, 심지어 콩트(사회학의 창시자이자 그 말을 만든 사람)조차 사회학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하지는 못했다. (486)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나로썬 콩트의 책이 궁금해졌다. 나중에 챙겨봐야겠다.

이질적인 것들의 통합이라는 원리는 종교와 정부에서부터 과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사회 현상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488)

영을 보호하기 위해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는 말이 이 위험한 모험에 따라붙었다. (489)

실제로 서구 사회의 전체 역사에서 벌어진 가장 큰 변화는 군사 정권이 산업 정권으로 점진적으로 바뀐 일이다. (490)

초자연적 설명에 쉽게 기대는 자세가 사라지고, 자연적 원인을 정밀하게 조사한다. (491)

완전해질수록 경직되는 것은 모든 조직의 법칙이다.” (492)

국가의 간섭은 복잡한 산업적 상황의 어떤 요인을 늘 무시한 결과, 간섭을 하려 할 때마다 실패했다. (493)

군국주의적 사회 유형과 산업적 사회 유형 사이의 차이는 개인들이 국가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이, 국가가 개인들의 이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믿음으로 전환되는 데에서 드러난다.” (494)

 

7. 윤리학 : 도덕의 진화

현대 생활의 복잡성으로 예외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보통 쾌감은 생물학적으로 유용한 행동의 표시이고, 통증은 생물학적으로 위험한 행동의 표시다. (496)

유럽과 미국에서 공언하는 윤리는 평화주의적 기독교다. (497)

전쟁은 단지 대량의 식인에 불과하다. 실제로 전쟁을 식인으로 분류해 단호하게 비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498)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의 동등한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있다.” (498)

사회적 조건이 규정하는 한계 내에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전체의 행복을 최대로 달성하는 첫 번째 필요조건일지도 모른다.” (502)

 

8. 비판

1. 1원리

스펜서는 기계들의 세상에서 살았기 때문에 기계론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무자비한 개인 경쟁의 시대에 살았던 다윈이 생존 투쟁만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504)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나는 추상적인 것 안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일에 너무 몰두해있기 때문에 구체적 인간의 관찰자로는 형편없다.” (505)

 

2. 생물학과 심리학

그는 다윈주의 철학자라기보다는 라마르크주의 철학자인 셈이다. (506)

스펜서의 심리학 책들은 정보를 제공하기보다는 공식을 만든다. (506)

 

3. 사회학과 윤리학

현대에 가장 군국주의적인 국가는 세계를 이끄는 두 산업 국가 가운데 하나다. (507)

스펜서는 산업체제의 장점을 과장했다. ... 그가 우리 세기의 중간에, 특히 영국에서볼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큰 개인적 자유뿐이었다. (508)

스펜서는 사회에서는 의식이 부분에만 존재하며, 몸에서는 의식이 전체에만 존재한다고 답변한다. (508)

스펜서는 개인주의 역시 과장해야 했다. 우리는 스펜서가 두 시대 중간에 끼어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한다. (508)

그가 살았던 시대를 잘 봐야한다. 시대적 상황 때문에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새로운 입법행위를 개인적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보았다. (509)

 

9. 결론

스펜서는 시대정신의 철학적 옹호자로 받아들여졌으며, 그의 영향력은 모든 곳을 거쳐 유럽의 사고 속으로 들어갔을 뿐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리얼리즘 운도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다. (510)

그의 명성이 쇠퇴한 것은 실증주의에 대한 영국 헤겔 학파의 반동 때문이었다. (512)

 

9장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혈통

니체는 다윈의 자식이고 비스마르크의 형제다. (515)

볼테르부터 오귀스트 콩트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자유사상가들을 은밀하게 자극한 목표는 단지 기독교적 이상 뒤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 가능하다면 그것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515)

비스마르크는 삶의 현실을 아는 사람이었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나라들 사이에 이타주의란 없다, 또 근래의 쟁점들은 투표와 수사가 아니라 피와 철로 결판난다고 말한 사람이다. (516)

전쟁을 통한 문제 해결에는 그것을 정당화할 철학이 필요했다. 기독교는 그것을 정당화해주지 않았지만 다윈주의는 해줄 수 있었다. 조금만 대담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니체에게는 그런 대담함이 있었고, 그래서 그 목소리가 되었다. (516)

우린 다윈은 단지 진화론을 갈라파고스 섬의 동식물을 관찰하며 밝혀낸 인물이라고만 여겼는데, ‘진화론자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까지 적용해서 해석하고 있었다.

 

2. 청년 시절

그가 기독교를 공격한 것은 그의 안에 그만큼 기독교의 도덕적 정신이 강했던 탓이다. (517)

또 종교다. 도대체 서구에서 종교는 얼만큼 비중이 컸던 것일까. 하긴 이현 대표가 중세그림을 알기위해 그리스로마 신화와 기독교 교리를 배웠다고 했다. 종교가 흔들린다는 것이 삶 자체를 흔들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는 거꾸로 청교도주의와 경건성을 그렇게까지 공격한 것이다. 이 구제불능의 성자는 죄인이 되기를 얼마나 갈망했던가! (517)

그러나 소년에게는 신경질적인 금욕주의와 자부심이 감추어져 있었다. (518)

사실 그는 단 한 번의 주사위 던지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잃은 사람처럼 냉소적으로 변했다. (518)

냉소적으로 변했다를 이렇게 비유를 통해 쓸 수 있다.

쇼펜하우어 철학의 어두운 빛깔은 그의 생각을 영원히 물들였다. (519)

한마디로 그는 건강 문제로 군인이 될 수 없었기에 군인을 숭배했다. (520)

전사의 갑옷을 입은 소년의 영혼이었던 것이다. (521)

 

3. 니체와 바그너

언어학자가 이렇게 서정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522)

언어학자는 인문학자라기보다 사회학자에 가깝다. 접근도 그렇고 분석적 방법 또한 그렇다.

가장 고귀한 그리스 예술은 두 이상의 결합, 즉 디오니소스의 불안한 남성적 힘과 아폴론의 고요한 영성적 아름다움의 결합이었다. (522)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근대의 열광적인 찬양에서 만나는 모습과는 달리, 명랑하고 낙관적인 사람들이 아니었다. (522)

한 민족은 젊은 시절에는 신화와 시를 생산하지만, 쇠퇴하면서 철학과 논리학을 생산한다. (523)

독일 정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아폴론적 예술을 수동적으로 반영해왔다. 독일 민족의 본능이 그런 퇴폐적인 문화들보다 건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라. (525)

강의라는 단조롭고 고된 일에 자신을 소비하는 것을 혐오했다. (525)

강의라는 것이, 특히 학교에서 커리큘럼에 맞춰 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겠다.

니체는 짖궂은 기질 탓에 우상을 보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525)

어떤 국가도 감히 플라톤과 쇼펜하우어 같은 사람을 장려하지 않을 것이다. ... 국가는 늘 그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526)

그랬을 것 같다. 그럼 현재도 국가와 대학에서 반겨하지 않는 사람들이 후세에 더 각광받는 사람이 될까.

그는 반역자 지크프리트가 성자 파르지팔보다 좋았으며, 바그너가 기독교에서 그 신학적 결함을 훌쩍 뛰어넘는 도덕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본 것을 용서할 수 없었다. (528)

바그너의 며느리가 히틀러의 재정지원으로 극장을 운영한 것을 니체가 알았다면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하다. 언어학자였던 니체가 인도 유럽어를 알았을 것이고 그래서 바그너와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불교에 아첨한다고 보니 싫어졌을 수도 있다.

니체는 말년의 광기에서 정신이 맑아지는 순간이면 오래전에 죽은 바그너의 사진을 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을 나는 무척 사랑했다.”

 

4. 차라투스트라의 노래

니체는 자신을 실망시킨 예술을 떠나 과학에서 피난처를 구했다. ... 그는 또 철학에서 피난처를 구했다. (529)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렵다. 침묵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531)

차라투스트라는 페르시아의 원형, 조로아스터와 마찬가지로 나이 서른에 명상을 하던 산에서 내려와 사람들에게 설교를 한다. (533)

기독교에서 벗어나 조로아스터교로 나아갔다. 그래서 유일신이라 말하는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5. 영웅 도덕

이제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웠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니체의 친구들한테도 살짝 묘해 보였기 때문이다. (537)

다들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다. 갑자기 그 많은 인세는 누가 받고 있을까 궁금하다. 대부분 결혼도 하지 않아 후손이라고 내세울 사람도 없을 텐데.

그에게는 유럽이 문화 박물관으로서필요했다. (537)

약해지는 눈 때문에 책은 쓰지 못하고 경구만 썼다. (538)

그래서 짧은 경구들이 많았구나. 사람들이 인용하기에 적당하다.

인간 행동에 대한 두 가지 모순적인 평가, 두 가지 윤리적 관점과 기준이 있었다. 주인의 도덕무리의 도덕이었다. (538)

굴종하는 계급의 관점이 거의 보편적인 윤리가 되고 말았다. ‘세상육신은 악과 동의어가 되었으며, 가난은 미덕의 증거가 되었다. (539)

사랑은 모든 감정 가운데 가장 이기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장애에 부딪히면 가장 인색해진다.” (54)

선이란 우리가 힘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일을 안 하는 것에 불과하다.” (541)

알 듯 잘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느낌적 느낌이 맘에 든다.

악이 선하지 않다면 이미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선한 것에 주의해야 한다. (542)

쌀은 불교에 도움이 되며, 독일 형이상학은 맥주의 결과다. (542)

독일 맥주가 이런 거였다니.

6. 초인

도덕이 친절이 아니라 힘에 있듯이, 인간 노력의 목표도 만인의 고양이 아니라 더 훌륭하고 강한 개인의 계발이 되어야 한다. “인류가 아니라 초인이 목표다.” (543)

사랑은 우생학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에 빠져 있을 때는 평생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 사랑하는 동시에 지혜로워지는 것은 인간에게 가능한 일이 아니다. (544)

일면 맞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져있을 땐 이성적 판단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태생이 좋고 우생학적 번식이 이루어졌다면, 초인의 공식에서 그다음 요소는 엄격한 교육이다. (545)

이 지점에서, 니체의 주장에서 플라톤이 보이는 건 나만 그런 건가.

친구를 배신하는 것 외에 거의 어떤 짓이든 하겠다고 결심할 만한 목표를 가지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고귀함의 궁극적 표지이며, 초인의 최종적 공식이다. (547)

 

7. 퇴폐

따라서 초인으로 가는 길은 귀족제를 통과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는 너무 늦기 전에 박멸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첫 단계는 높은 수준에 이른 사람들 모두가 기독교를 파괴하는 일이다. (548)

청교도주의와 맥주 때문에 독일의 지혜는 무디어졌다. 이제 거기에 바그너의 오페라도 추가되었다. ... “독일인이 옆에 있으면 나는 소화가 더디어진다.” (549)

독일의 문제는 이런 견고한 성격의 대가로 정신의 둔감함이 생긴다는 것이다. (550)

유럽의 취향, 느낌, 태도가 귀족적인 것은 프랑스 덕분이다. 그러나 옛 프랑스, 16세기와 17세기의 프랑스 덕분이다. (551)

독일이 바이킹 후손으로 그리스로마의 후손인 프랑스에 비해 열등하다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최악은 영국인이다. 바로 그들이 민주적 망상으로 프랑스 정신을 타락시켰다. (551)

 

8. 귀족주의

민주주의는 흐름에 맡긴다는 뜻이다. ... 그것은 범용을 숭배하고, 수월성을 증오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위대한 인물의 출현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552)

따라서 페미니즘은 민주주의와 기독교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552)

이건 너무 많이 간 거 아닌가. 시대에 역행하는 말들이 많다. 니체가 말하는 대로 하면 이상국가가 되는 건가.

많은 철학자가 자식이 태어나는 순간에 죽었다. (554)

돈이 있는 인간이 그렇게 엄청난 숭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19세기 문화가 열등하다는 표시다. (555)

그들은 불안하여 늘 행복을 찾지만, 그들의 큰 집은 결코 가정이 아니고, 그들의 천박한 사치품에는 취향이 없으며, 그들이 수집한 진품그림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고, 그들의 관능적 오락은 정신을 자극하여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지게 한다. (555)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50년 안에 이 바벨 탑 같은 정부들은 (즉 유럽의 민주주의들은) 세계 시장을 놓고 충돌하여 엄청난 전쟁을 벌일 것이다.“ 어쩌면 그 광기 덕분에 유럽의 통일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 (557)

이런 예지력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놀라울 따름이다.

 

9. 비판

우리는 여기에 터무니없는 점이 있다는 것, 이 사람이 자신을 설득하고 교정하려고 시도하면서 너무 멀리 나아갔다는 것을 안다. (559)

니체가 프랑스 사람들에게서 그렇게 감탄했던 균형, 조화, 논란이 많은 세련된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561)

사랑을 탐색하다 좌절한 니체는 철학자답지 못한, 그리고 남자에게는 부자연스러운 원한에 사로잡혀 여자를 공격했다. ... 그는 설익은 진실을 지혜로 성숙시킬 만큼 오래, 또 폭넓게 살지 못했다. (565)

여자를 공격해도 너무 공격했다.

세습귀족제의 시대에 위대한 문화가 꽃피었다는 생각은 흔한 망상이다. ... 문화적 창조를 자극한 것은 운동과 변화의 시대였다. (567)

그는 수백 년 동안 당연하게 여기던 제도와 의견을 건강하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데 성공했다. ... 유럽 철학의 공기는 니체의 글 덕분에 맑아지고 신선해졌다. (568)

 

10. 피날레

니체의 강렬한 생각은 틀림없이 그를 지나치게 빨리 소모했을 것이다. (568)

만일 다른 사람들이 조금만 더 평가해주었다면 이런 보상적인 자기중심주의가 방지되고 니체는 자신의 관점과 정신을 더 잘 유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평가는 너무 늦게 나왔다. (569)

자연은 그를 미치광이로 만들고는 자비를 베풀었다. (570)

 

10장 현대 유럽 철학자들

1. 앙리 베르그송(1859~1941)

1. 유물론에 대한 반발

현대 철학사는 물리학과 심리학의 전쟁이라는 맥락에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575)

베르그송은 스펜서를 공부할수록 유물론적 기계론의 류머티즘에 걸린 세 가지 관절을 더 예리하게 인식했다. 즉 물질과 생명 사이의 관절, 육체와 정신 사이의 관절,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의 관절이었다. (577)

베르그송이 그렇게 빨리 명성을 얻은 것은 그가 의심 많은 사람들조차 경건하게 믿던 대목을 의심할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578)

 

2. 정신과 뇌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시간이 축적, 성장, 지속이라는 점이다. ... 지속이란 과거가 지속되며, 그 어떤 것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578)

인간은 수동적인 적응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방향이 바뀜 힘의 초점이며, 창조적 진화의 중심이다. (579)

선택은 창조이며, 창조는 노력이다. (580)

정신은 뇌와 동일하지 않다. 의식은 뇌에 의존하고 뇌와 함께 죽지만, 외투를 걸어놓은 못이 빠지면 외투도 함께 떨어진다. 그렇다고 외투가 못의 부대 징후’, 즉 장식적 외형질임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 (580)

영이라고 말하면 숨이 떠오르고, 정신이라고 말하면 자가 떠오르고, 생각은 사물을 가리킨다. (585)

 

3. 창조적 진화

우리는 진화에서 지속, 즉 생명력의 축적, 생명과 정신의 창의성,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의 지속적 정교화를 느낀다. (585)

획득된 습관의 축적물을 물려받은 것이 본능이라고 생각하면 편리할 것이다. ... 현재 유행하는 가설에 따르면 획득된 힘은 유전되지 않는다. (586)

생명과 정신이 천 년이라는 짧은 순간에 유럽과 아메리카의 숲에서 해낸 일을 생각해보라. 또 생명의 성취에 어떤 장애물을 설치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보라. (591)

 

4. 비판

베르그송은 말한다. “나는 철학에서 반박에 할애하는 시간은 대개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믿는다.” (591)

프랑스 사람들은 모호함을 참지 못하며, 진실은 허구보다 분명하기 때문이다. ... 그는 유대인처럼 비유를 뜨겁게 사랑하며, 이따금 끈질긴 증명을 기발한 비유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592)

인간은 본능에 의해 존재하지만, 지성에 의해 진보한다. (593)

베르그송에게서 가장 훌륭한 점은 유물론적 기계론에 대한 공격이다. ... 유물론은 오직 명사만 인정하는 문법과 같다. (593)

베르그송의 다원주의 비판은 그의 생기론에서 나온다. 그는 라마르크가 수립한 프랑스 전통을 이어가며, 충동과 욕망이 진화에서 적극적인 힘이라고 본다. (594)

 

2. 베네데토 크로체(1866~1952)

1. 인간

베르그송은 자신의 비전을 언뜻 명료해 보이는 언어로 번역해내는 신비주의자다. 반면 크로체는 거의 독일적인 모호함을 재능으로 타고난 회의주의자다. ... 크로체는 이탈리아의 가톨릭교도이면서도 자신의 종교에서 스콜라 철학과 아름다움에 대한 헌신 외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596)

이탈리아는 낡은 신앙에 계속 의리를 지켰으며, 철학에서는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으로 만족했다. (597)

각 나라마다 다른 민족적 특징들과 배경이 철학의 발전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함석헌의 책을 다시 봐야겠다.

종교개혁이 없었던 나라에서는 정통파와 절대적 불신앙 사이에 중간이 없었다. (597)

그는 가난이나 교수직이라는 일반적인 벌금을 지불하지 않고 철학자가 되었다. (598)

그러고 보니 대부분의 철학자가 가난’, ‘교수직이 필수처럼 거쳐 갔다.

 

2. 정신의 철학

경제적인 역사해석을 절대화하는 것은 균형을 잃고 산업주의적 환경의 주장에 굴복하는 것이라 여겨 거부했다. ... 그에게는 정신이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현실이었다. (600)

역사에 남은 철학자들은 앞선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거기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만들어냈다. 한국 대학의 교수들 중 유학 가서 본인들이 배운 걸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한 사람도 많다. 그저 반복, 되풀이 할 뿐이다.

니체가 이탈리아화된 독일인이라면 크로체는 독일화된 이탈리아인이다. (600)

그는 헤겔, 또는 마르크스, 또는 버클처럼 과거를 왜곡하여 자신의 편견으로 끝나는 삼단논법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론가에게는 아무런 동정심이 없다. (603)

 

3.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크로체는 역사와 문학 연구에서 철학으로 건너갔다. (603)

상상은 사고에 선행하므로, 또 사고에 필수적이기에, 정신의 예술적 활동, 즉 이미지를 형성하는 활동은 논리적인 활동, 즉 개념을 형성하는 활동보다 앞선다. (604)

크로체는 아름다움이란 인식된 사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이미지를 정신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605)

하지만 형성한 것을 외화(보이는 것)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너무 외화에만 치중하고 있긴 하지만 외화를 해야만 예술로 보이는 것이다.

 

4. 비판

이 모든 것이 명료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별 없는 밤과 같다. (606)

갈가리 찢긴 역사가 아니라, 반 농담으로 결혼한 역사라고 부를 수도 있는 것이어야 한다. (606)

저자가 가장 혹독하게 평가한 철학자로 여겨진다.

 

3. 버트런드 러셀(1872~1970)

1. 논리학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그때, 이 마음 여리고 평화를 사랑하는 철학자는 가장 문명화된 대륙이 야만으로 타락하는 꼴을 지켜보며 충격 속에서 괴로워했다. (608)

그의 아버지 앰벌리 자작은 자유사상가로, 아들에게 서구의 세습적 신학이라는 짐을 지우지 않았다. (608)

이 책에서 본 지금까지 철학자 중 유일하다. 세습적 신학 때문에 결국 신앙과 멀어진 다른 철학자와는 다르다. 그의 나머지 사상과 삶이 궁금하다.

러셀이 논리학의 미덕들을 강조하고, 수학을 신격화한 것은 과잉 교정 탓인지도 모른다. (609)

러셀은 명료함에 대한 열망 탓에 불가피하게 수학으로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610)

그는 기독교를 부인하는 사람을 박해하고, 기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을 감옥에 가두는 문명을 경멸한다. (613)

2. 개혁가

대광기가 유럽을 휩쓸었다. ... 세상은 이 빈혈에 걸린 듯한 여윈 교수가 무한한 용기와 뜨거운 인류애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614)

제국의 이해관계가 젊은 생명을 대가로 치를 만큼 가치 있다고 보지 않았다. ... 그 원인은 사적 소유였으며, 그 치료법은 공산주의였다. (614)

이럴 수도 있구나. 공산주의가 이론적으론 훌륭(?)할 수 있으니.

우리가 국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지, 현대 생활에서 안전과 질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615)

자신의 의견을 성급하게 절대화하는 것이 지적이지 않은 사람의 뚜렷한 특징이다. (615)

학교는 유토피아의 문을 여는 열쇠다. (616)

 

3. 에필로그

예술이 부를 대체할 수는 없다. 메디치 가문이 등장한 뒤에야 미켈란젤로가 나타났다. (617)

러셀의 찬란한 비전에서 흠을 더 잡을 필요는 없다. ... 그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사회를 창조하려는 노력이 난관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복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질 지경에 이르렀다. (617)

나는 백인종이 내가 과거에 생각하던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18)

이제는 성숙하여 사회 변화의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온건해졌다. (619)

저자가 이 글을 쓸 때(1926)도 러셀은 살아있었다.

 

11장 현대 미국 철학자들 623

머리말

유럽적 아메리카는 주로 동부의 주들인데, 이곳에서 오래된 가문들은 외국의 귀족을 존경하여 우러러보며, 최근에 이주해온 사람들은 노스탤지어에 젖어 고향 땅의 문화와 전통을 돌아본다. (623)

샨타야나는 옛 미국의 점잖은 전통에 깊이 물들어 있다. (623)

다른 미국은 미국적이다. ... 유럽이 아니라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623)

미국을 이렇게도 나눠서 볼 수도 있구나.

 

조지 산타야나(1863~1952)

1. 전기적 사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나라에 완전히 만족하지 못했다. ... 그의 영혼은 미국 도시 생활의 시끄럽고 서두르는 분위기 때문에 고통을 겪었을 것이 틀림없다. (625)

이 저작은 온화한 에머슨의 줄기에 접붙여진 스페인 귀족의 영혼이었다. 지중해의 귀족성과 뉴잉글랜드의 개인주의가 세련되게 혼합된 것이었다. (626)

우리는 이 최신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사실상 산타야나의 사고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627)

 

2. 회의주의와 동물적 신념

산타야나는 겸손하게도(이런 태도는 철학자에게는 낯선 것이다) 자신의 체계 외에 다른 체계들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627)

대부분의 철학자가 자기중심적이고 주장이 너무 센 편이었다. 한편 그래야 되기도 하지만.

나는 솔직하게 자연을 손으로 쥐며, 가장 멀리 나아간 사변에서도 내가 매일 의지해 살고 있는 동물적 신념을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629)

 

3. 과학의 이성

이성은 본능의 적이 아니라 본능의 성공적 조화다. ... 이성은 인간이 신성을 모방한 것이다. (629)

산타야나는 이성의 불안정성과 과학의 오류 가능성을 알고 있다. (629)

 

4. 종교의 이성

산타야나는 자신을 속인 여자를 여전히 갈망하는 사람처럼 가톨릭교를 사랑한다. (633)

종교가 신에게서 찾아내는 동기들이 얼마나 저급한지, 그런 동기들이 얼마나 곤궁하고 괴로운 생활에서 나왔는지 살펴보면 애처로울 정도다.” (635)

[구약]을 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비유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상상력이 부족하고 곧이 곧대로인 유럽 민족들이 이런 시를 과학으로 오해하면서 서양 신학이 태어났다. (645)

그럴 듯한 말이다. 계속 반복적으로 종교이야기가 나오니 철학책이 아닌 종교책처럼 느껴진다.

 

5. 사회의 이성

가족은 인간 영속화의 길이며, 따라서 여전히 사람들에게 기본이 되는 제도다. (639)

산타야나는 어떤 민족도 전쟁에서 승리한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640)

귀족주의는 문화 쪽으로도 가지만, 압제 쪽으로도 간다. 소수의 자유를 대가로 수백만이 노예제에 묶이는 것이다. (642)

우리에게는 새로운 철학이 필요 없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좋은 것에 맞추어 살 용기만 필요할 뿐이다. (644)

6. 논평

삶이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가정은 여러 가정들 가운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지만, 만일 가정이 아니라면, 결론으로서는 가장 있을 법하지 않은 결론이다.” (644)

완벽에는 비극이 있다. 완벽이 생기는 우주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셸리와 마찬가지로 산타야나도 이 이류의 행성에서 편안한 적이 없었다. (644)

 

2. 윌리엄 제임스(1842~1910)

1. 개인적인 이야기

윌리엄 제임스는 목소리와 말, 그리고 표현 방식에서 미국적이다. (648)

자신의 시대와 장소의 정신을 잘 포착하여 시대정신의 날개를 타고 다른 어떤 미국 철학자도 누리지 못했던 독보적인 인기의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649)

 

2. 실용주의

그의 사상은 늘 사물을 향한다. ... 사고가 아무리 물질과 구별된다 해도 기본적으로 외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의 거울이라고 보는 실재론자로서다. (650)

명료함을 내세우는 프랑스학파에서 성장한 제임스는 독일 형이상학의 모호함과 현학적 용어를 혐오했다. (651)

 

3. 다원론

사람들은 객관적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요구와 기질에 따라 철학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한다. (654)

철학사는 많은 부분 인간 기질들이 충돌하는 역사다.” (654)

신에 대한 믿음이 지속된다는 것은 거기에 생명이나 도덕과 관련된 거의 보편적인 가치가 있다는 가장 좋은 증거다. (657)

 

4. 논평

제임스는 물질주의적 정신을 가진 소비자에게 낙관주의적 광고의 모든 장치를 동원하여 상품을 소개하듯이 신을 이야기한다. (659)

그는 아마 철학자보다는 심리학자로 더 기려질 것이다. (660)

 

3. 존 듀이(1859~1952)

1. 교육

사실 실용주의는 완전한미국 철학은 아니었다. 그것은 뉴잉글랜드의 몇 개 주 남쪽과 서쪽에 놓인 더 큰 미국의 정신은 포착하지 못했다. 실용주의는 매우 도덕주의적인 철학으로, 그 제창자의 청교도적 기원을 드러냈다. (660)

그는 자신의 철학의 다양한 요소들을 요령 있게 설명하면서, 그 모든 것을 더 나은 세대를 키우는 과제에 집중한다. (662)

존 듀이는 철학자보다 교육학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대 플라톤도 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했으니 플라톤도 교육학자이긴 하다.

 

2. 도구주의

그에게는 몸만이 아니라 정신도 생존을 위한 투쟁을 거치며 저급한 형태에서 진화한 기관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의 출발점은 다원주의적이다. (663)

 

3. 과학과 정치

듀이가 가장 훌륭하게 여기며 숭배하는 것은 성장이다. (666)

지성이 없다면 세상의 어떤 덕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무지는 행복이 아니라 자각 없이 예속되는 것이다. (666)

 

맺음말

돌이켜보면 현존하는 미국 사상가들 가운데 가장 웅변적이고 섬세한 사람이 거의 전적으로 유럽의 문화 전통에 속해 있다는 점, 윌리엄 제임스도 많은 면에서 그 전통에 애착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의 사상이 적어도 미국 동부의 정신을 포착했으며 문체로는 미국 전체의 정신을 포학했다는 점, 동부와 서부 전체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존 듀이는 그의 국민의 현실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기질에 철학적 형식을 부여했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670)

한 민족이 철학을 할 수 있으려면 그전에 먼저 살기부터 해야 한다. (671)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철학자를 시대 순으로 목차를 정했다. 저자가 밝혔듯이 의도적으로 뺀 철학자들도 있다. 뒤의 현대 유럽현대 미국은 빼면 어땠을까 싶다. 여러 명을 다루긴 했지만 깊이 있게 다루지도 못했고 앞의 철학사상을 비교해서 설명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 철학이 어떻게 되었는지 철학자와 저작물들 소개하는 정도로 마무리해도 좋을 것 같다.

 

철학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제목 없이 써나갔다면 지루했을 수 있는데 소제목들을 붙여서 그런 단점을 없애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자의 저작물을 소제목으로 달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어 좋았다.

 

2. 보완이 필요한 점

스피노자 부분에서 [윤리학]을 보고 다른 저자의 책들을 본 후 다시 [윤리학]을 보라고 친절하게 제시해주었다. 물론 여기서 다룬 원저작을 다 읽는 것을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고 저자도 그것을 알기에 그 원저작물들을 읽어보길 권하고 있다. 하지만 스피노자의 저작 읽기를 제시한 것처럼 다른 철학자들도 이후에 다른 사람이 쓴 2차 저작들을 소개해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3. 이 책의 장점

무엇보다 철학책의 딱딱함이 없어 좋았다. 철학자의 삶의 궤적을 알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시대적 배경과 그 사람이 받은 철학자와 사상 그리고 영향을 미친 사람들까지 알려주니 항상 사상에만 국한되어 알던 것에서 진일보한 느낌이다.

 

철학사를 처음 접한 사람에게도 쉽게 볼 수 있는 책이면서, 철학사를 알고 있던 사람에게도 체계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그리고 철학자의 주요 저서의 내용을 다룬 것도 좋았다.

 

또한, 각 나라별 특징과 배경을 알 수 있었고, 그를 바탕으로 철학이 어떻게 발전했는지도 알게 되어 좋았다. 하지만 혹시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이라면 선입견을 만들 수 있어 경계해야하는 지점이 되기도 한다.

 

각주를 뒤에 따로 실어서 읽을 때 방해가 되지 않았고 궁금한 점은 찾아서 보면 되니 좋았다. 무엇보다 철학 계보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실어놔서 좋았다.

 

4. 내가 저자라면 이렇게

저자처럼 원저작을 분석하고 소개할 수는 없고 영향을 미친 사람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그 부분을 더 살려서 쓰겠다. 철학자 말고 인간에 더 중심을 두고 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철학사에서 숨겨진 히파티아나 샤틀레 후작 부인 같은 여성들을 찾아 그들의 삶과 사상을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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