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알로하
  • 조회 수 133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7년 11월 6일 11시 55분 등록

 

저자 연구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 1875.07.26~ 1961.06.06)

1875 7 26일에 스위스의 국경도시, 바젤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개신교 목사였고, 할아버지는 유명한 정신의학자였는데, 괴테의 사생아였다는 불쾌한전설이 친척들 사이에 전해지고 있었다고 한다.

두 세살 때 있었던 일과 장면을 기억하고, 서너살 때 꾸었던 최초의 꿈을 분석하면서 그의 학문의 기반을 마련한 것을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다. 매우 기억력이 좋을 뿐 아니라 상당히 예민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언어지능 및 자기 성찰 지능이 높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어릴 때 신경증을 꾸며내서 학교를 빠지기도 했으며 자신이 두가지 인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 뿐 아니라 엄마와 괴테 등 다른 사람들도 겉으로 보이는 인격 외에 숨어 있는 제2의 인격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니, 그가 스스로 정신분석학자가 되어 연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다중인격을 지닌 정신병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의사가 되기 위해 국가 고시를 앞두고 운명과도 같이 정신과를 택했던 건 그 자신과 인류를 위한 그야말로 운명이었던 것 같다

 

1900년 대학을 졸업하고 정신과를 선택한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의 부르크휠츨리 병원에서 의사로서의 일을 시작했다. 미래가 보장된 내과 의사 대신에 당시로서는 아직 기반이 잡히지 않고 모든 것이 불분명한 정신과를 선택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정신분열증이라는 용어를 만든 정신의학자 오이겐 블로일러 밑에서 연구하고 일하면서 정신분석학의 중요함과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환자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자유 연상기법을 개선한 단어 연상기법을 제안해서 주목을 받았고, 환자가 지닌 고통의 근본 원인이 되는 다양한 생각의 집합을 일컫는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

 

정신분석학자로 명성이 높아가던 1905년에 융은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표현한 프로이트를 만났다. 융은 프로이트와의 첫 만남에서 열 세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을 정도로 인간적, 학문적 교감을 나누었다. 당시 프로이트와 교류하고 그의 입장을 지지한다는 것은 학계에서 매장될 수도 있는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융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이 진리라면, 나는 기꺼이 그의 편에 서겠다며 프로이트의 이론을 지지하고 그와 깊은 학문적 교류를 나누었다. 또한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후계자로 인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융은 프로이트와 교류가 깊어질수록 그와의 입장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즉 모든 정신적 문제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성적 트라우마에서 찾으려는 프로이트와는 달리, 융은 인간의 정서적 문제에는 다른 심리적 원인, 체면차리기 등 복잡한 상황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와는 다른 입장을 취했다. 19097주간 함께 한 미국 방문이 결정적인 이별의 계기가 되었는데, 이때 융은 프로이트가 진리보다는 개인의 권위를 앞세운다는 인상을 받으며 그에 대한 신뢰가 깨지게 되었다.

 

이후 융은 취리히 의과대학에서 사임하고 무의식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융은 다양한 신비 현상을 체험하고 영지주의와 연금술에 빠져서 신비주의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To Be Continued…)

 

 

마음을 무찌르는 글귀

옮긴이 서문: 자서전 문학의 백미

9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Selfstverwirklichung)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이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많이 들어봤으나 정확히 이해가 안 되는 개념들이다. 이 책을 읽고나면 좀 이해가 되려나? 잘 읽어보자.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12 사실 인간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결코 알지 못한다. 한 생애의 이야기는 어떤 지점, 즉 그 사람이 기억해내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데, 이미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인간은 일생이 어떻게 되어나갈지 모른다. 그러므로 생애의 이야기는 시작이 없으며, 그 목표지점도 단지 막연하게만 제시될 뿐이다.

 

13 인간의 생애는 일종의 애매한 실험이다. 그것은 숫자상으로만 보면 거창한 현상이다. 인생은 허무하기 짝이 없고 너무나 불충분하여, 어떤 것이 존재할 수 있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적 그 자체라 할 만하다.

융이 살았던 1960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지금은 과학기술이 너무나도 발전했지만 근본적인 질문은 남아있다. 아무리 인간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생명과 우주에 대한 비밀을 알아낸다 해도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의 말처럼 강에서 물 한 바가지를 푸나 한 양동이를 푸나 강의 흐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13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_유년시절

검은 옷을 입은 남자

23 나의 기억은 두세 살 적부터 시작된다. 나는 목사관, 정원, 세탁장, 교회, 성곽, 라인폭포, 뵈르트의 작은 성, 그리고 교회 관리인의 농가 등을 회상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은 모호한 바다에 떠 다니는 기억의 섬들일 뿐이다. 그것들은 서로 이어져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아마도 내 생애에서 최초라고 할 만한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 기억은 자못 흐릿한 인상으로만 남아 있다. 나는 나무 그늘 아래 유모차에 누워 있다.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날, 하늘은 푸르다.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다. 유모차 덮개는 젖혀 있다. 나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막 눈을 뜨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나무의 잎사귀와 꽃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온통 경이롭고, 다채롭고, 그리고 찬란하다.

정말 그의 기억일까? 아니면 기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일까? 나의 최초의 기억은 5~6세 때쯤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나의 기억일까? 아니면 엄마나 할머니로부터 들은 말들을 끼워맞추는 걸까? 것도 아니면 그냥 나의 상상일까?

 

32 꿈에서 나는 그 초원에 서 있었다. 한순간 나는 거기서 테두리가 쳐져 있는 컴컴한 직사각형 구멍이 땅바닥에 나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전에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그 구멍으로 다가가서 그 아래를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돌 계단이 저 밑으로 이어져 있는 것 보였다.

무서운 마음으로 머뭇거리면서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밑바닥에는 녹색 커튼으로 가려진 둥근 아치형 문이 하나 있었다. 그 커튼은 방직된 직물이나 수놓은 비단으로 만든 듯 크고 묵직하여 무척 호화로워 보였다. 그 뒤에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한 마음에 나는 커튼을 옆으로 밀어젖혔다. ~

창문도 없고 빛도 들어오지 않는데 방은 비교적 밝은 편이었다. 그 형상의 머리 위에는 어떤 밝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 형상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어느 순간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보좌에서 내려와 나에게 기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려움에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았다. 그 견딜 수 없는 순간에 어머니의 목소리가 갑자기 바깥에서인 듯 위에서인 듯 들려왔다. 어머니가 외쳤다. “, 그를 좀 보라구. 저것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야!”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깨어났다. 나는 두려움으로 식은 땀에 젖어 있었다. 그후로 많은 날 동안 밤마다 잠자러 가는 것이 무서웠다. 그 꿈과 비슷한 꿈을 또 꾸지 않을까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꿈을 꾼다. 그것도 여러 개가 겹쳐진 복합적인 꿈들을 꾼다. 꾸는 동안에는 너무도 생생해서 현실 같을 때도 많지만 대부분의 경우 잠을 깨고 나서 얼마 안 있다가 모두 잊어버린다. 그런데 꿈을 것도 네 다섯살 때 꾼 꿈을 이렇게 생생하게 기억하다니정말 경이롭다. 나도 좋은 꿈일 거라고 해몽만 찾아볼 게 아니라 일어나자마자 꿈을 적어봐야겠다. 해석은 좀 나중에

 

35 ‘검은 옷을 입은 남자에 대한 불안은 잘 생각해보면 모든 어린 아이가 느낄 법하다. 하지만 그런 불안이 그 체험의 본질은 결코 아니었다. 그 본질은 나의 어린 뇌리를 고통스럽게 파고든 인식, 저것은 예수회 수도사다!”라는 인식이었다. 그러므로 그 꿈에서도 본질적인 것은 기묘한 상징적 치장과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는 놀랄 만한 해석이었다.

 

불화와 확실성 속에서

45 나는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는밝은 대낮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 차츰 인색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꼼짝 못하게 하는 무섭고도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들로 차 있는, 피할 길 없는 어둠의 세계를 예감했다.

 

48 나는 어떤 사람도 그 필통을 거기서 발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도 나의 비밀을 발견하여 망가뜨릴 수 없었다. 나는 안정감을 갖게 되었고 나 자신과의 불화로 인한 괴로운 감정은 사라졌다.

 

49 나는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만, 보통 일주일 간격으로 종종 몰래 꼭대기 다락방으로 올라갔다. 거기 들보 위로 기어올라가 필통을 열고 그 인형과 그 돌을 바라보곤 했다. 이렇게 할 적마다 나는 미리 어떤 글을 써놓은 작은 종이두루마리를 필통 속에 넣었다. 그 글은 내가 고안해낸 비밀문자로 학교 수업시간에 적어둔 것이었다. 그것은 작은 종잇조각이었는데, 빽빽하게 글을 써서는 돌돌 말아서 그 남자 인형이 보관하고 있도록 그에게 전달되었다. 새로운 종이두루마리 하나를 보탠다는 것은 항상 엄숙한 의식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기억된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무슨 말을 인형에게 전하고 싶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나의 편지들이 인형에게 일종의 도서관을 의미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 편지들은 특히 내 마음에 드는 어떤 문장들이 아니었나 막연한 추측을 해본다. ~

아무도 모르고 누구의 손도 미칠 수 없는 무언가를 소유했다는 데서 오는 새로운 자신감과 만족감으로 충분했다. 그것은 결코 누설되어서는 안 되는 신성불가침의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자신감이 그 비밀에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가 자문해보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이런 아련한 기억이 없다. 어릴 때 내가 살던 집은 부모님과 동생들 말고도 할아버지와 삼촌까지 다 같이 살던 대가족이었다. 나만의 공간은 커녕 방도 따로 없었다. 다락마저 짐들로 가득 찬 창고 같은 곳이었지, 호젓이 숨을 만한 곳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의 이런 아련한 경험이 융을 독특한 관점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 같다.

 

52 사람들은 우선 행동을 하지만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거기에 대해 숙고해보는 것이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_학창시절

신경증 발작을 일으키다

55 그 세계에서는 아버지보다 훨씬 더 유력한 명사들이 크고 화려한 저택에 살면서 빼어난 말들이 끄는 호화로운 마차를 타고 다녔으며, 품위있는 말투로 독일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했다. 좋은 옷에 세련된 예절을 갖추고 용돈이 풍족한 그들의 아들들이 이제 나의 동급생이 되었다.

나는 놀라움과 은밀하고 지독한 부러움을 안은 채 그들이 방학 동안에 알프스, 그러니까 취리히 근처 저 불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 심지어 바다에 갔다 온 이야기도 들었는데, 나는 정말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치 그들이 또 다른 세계, 즉 붉게 타오르는 눈덮인 산들의 다다를 수 없는 영광으로부터, 그리고 너무 멀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바다로부터 온 존재들인 양 나는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우리가 가난하다는 사실, 아버지는 가난한 시골 목사요 나는 그보다 더 가난한 목사 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경험한 것과 비슷한 것 같다. 고등학교까지는 약간의 정도 차이는 있지만 비슷비슷한 아이들이었던 것 같은데, 대학에 들어가니까 너무나도 다른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이름도 못 들어본 남도의 섬에서 온 아이가 있는 가 하면, 아빠를 따라 세계 여기 저기에서 사다가 온 아이들도 있었다. 나도 놀라움과 부러움을 안은 채 그 아이들이 살았던 인도며 미국에서의 삶을 듣곤 했었다. 그리고 영어, 일본어 등 외국어를 자유스럽게 하는 그들을 동경했었다. 아마도 내가 이후에 글로벌 라이프를 지향하는데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56 아버지가 나에게 오늘밤 너에게 누이동생이 생겼다고 말했다. 나는 무척 놀랐다. ~

어머니는 작은 생명체를 팔에 안고 있었다. 그 모습은 무척 실망스러웠다. 노인처럼 붉고 쭈글쭈글한 얼굴에 눈을 감고 있었다. 아마도 갓 태어난 강아지처럼 눈을 뜨지 못하는 듯했다.

 

63 수학수업은 나에게는 정말 무섭고 괴로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다른 과목은 쉬었다. 수학에서도 나의 우수한 시각기억 덕분에 오랫동안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으므로 대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나를 둘러싼 광대한 세계 앞에서 느끼는 왜소감은 내 마음에 의욕상실뿐만 아니라 일종의 은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것들이 학교를 극도로 싫어하게 만들었다.

 

65 “~ 그 아이가 만일 불치의 병에 결렸다면 끔찍한 일일세. 나는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다 써버렸어. 만일 그 아이가 자립해서 살아갈 수 없다면 그 아이는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나는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현실과의 충돌이었다. ‘, 그래. 그렇다면 나는 공부를 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쳤다.

 

67 신경증은 나의 또 다른 비밀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부끄러운 비밀, 일종의 패배였다. 그럼에도 신경증은 나를 결국 아주 꼼꼼한 사람으로 만들었고 특히 부지런한 사람이 되게 했다. 그럴 무렵 나는 성실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덕을 보려고 하는 외관상의 성실성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을 위한 성실성이었다. 나는 공부를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때로는 학교에 가기 전에 새벽 3시부터 아침 7시까지 공부한 적도 있었다.

 

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자연은 내게 경이로 가득 찬 대상으로 보였고, 나는 거기에 깊이 빠져들고 싶었다. 돌 하나, 식물 하나, 그 모든 것이 생동하고 잇는 것으로 보였고 형용할 수 없는 듯이 여겨졌다. 그 무렵 나는 자연으로 빠져들면서, 말하자면 자연의 본질 속으로 숨어들면서 모든 인간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너는 누구냐?

68 한순간 갑자기, 지금 여기에 가 있다는 의식과 함께,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안개의 벽 같은 것이 나의 등뒤에 있었고, 그 벽 너머에는 아직 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순간 나에게 내가생겨났다. 이전에도 내가 존재하고는 있었으나 모든 일이 단지 우연히 일어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 이제 여기 있고, 내가 이제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에는 무슨 일을 할 때 내가 옆으로 밀려나 있었으나 지금은 가 스스로 하고자 한다.

이모가 했었다던 성령 체험과도 비슷한 것 같다. 아쉽게도 나는 이런 강렬한 느낌을 아직까지 한 번도 못 겪어봤던 것 같다. 앞으로 죽기 전에 가져볼 수 있을까?

 

70 그때 몹시 난처하게도 나 자신이 실제로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수학도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는 학생이었으나, 다른 하나는 위대한 권위를 지니니 중요한 인물로 경시해서는 안 될 사람이며 그 공장주(집주인을 가리키는 말인 듯함 옮긴이)보다 더 막강하고 영향력을 지니고 잇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은 18세기에 사는 노인으로, 조임쇠가 있는 신발에 하얀 가발을 쓰고 높고 오목한 뒷바퀴들이 달린 마차를 타고 다녔다. 그 바퀴들 사이에는 좌석 하단부가 용수철과 가죽띠 위에 얹혀 있었다.

나도 내가 서로 다른 두가지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힘들어 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인간이라는 생각까지는 하고 있지 않다. 저런 증상이 조금 더 심하게 나가면 자아 분리 또는 다중인격의 정신병을 갖게 되는 것 아닌가? 융은 환자가 아니라 의사가 되었으니 매우 다행이라고 하겠다.

 

80 하지만 나는 결국 다시금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분명히 하느님도 내가 용기를 내기를 바라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내가 그것을 실행한다면, 하느님은 나에게 은총과 계시를 내려주실 것이다.’

 

80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엄청난 안도감과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저주를 예상했는데 그 대신 은종이 나에게 임하고, 그와 동시에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형언할 수 없는 축복이 임했다. 나는 행복감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울었다. 내가 하느님의 가차없는 준엄함에 쓰러져 복종하자 하느님의 지혜와 선이 나에게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계시를 체험한 것과도 같았다. 내가 이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것이 나에게 분명해졌다.

 

81 내 아버지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나는 체험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의지로, 아버지는 아주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깊은 신앙심을 내세워 그 의지에 대항했다. 그리하여 모든 것을 치유하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의 기적을 아버지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성서의 계명을 자신의 규범으로 삼았다. 아버지는 성서에 씌어 있고 조상들이 가르치는 대로 하느님을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아서 직접 임하시는 하느님, 성서와 교회를 넘어서 전능하고 자유로운 하느님, 당신의 자유를 인간이 누리도록 촉구하고, 당신의 요청을 무조건 실현하기 위해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견해와 신념들을 버리도록 강요할 수도 잇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다. ~

사람이 하느님의 의지를 실현한다면 그는 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82 나는 또한 그 체험으로 나의 열등성을 느꼈다. 나는 나 자신을 일종의 악마 또는 돼지, 어떤 타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버지의 성서를 몰래 탐색하기 시작했다. 복음서에서 바리새인과 세리들에 관한 부분을 읽고는 그 타락한 자들이 선택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다소 만족감을 느꼈다. 불성실한 청지기가 칭찬받고 이랬다저랬다 하는 베드로가 교회의 반석으로 명명되었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82 열등감이 커짐에 따라 하느님의 은총은 나에게 점점 더 불가사의한 것이 되었다. 나에 대해 어떤 자신감도 가질 수 없었다. 어머니가 한번은 나에게 너는 언제나 착한 아이야라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착한 아이라고? 그것은 일종의 새로운 소식이었다. 나는 항상 나 자신을 타락하고 열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85 ‘돌은 불확실한 것도 없고 자기를 알려서 전하려는 욕구도 없다. 돌은 영원하며 수천 년 동안 살아 있다.’ 나는 생각을 이어갔다. ‘이에 반해 나 자신은 단지 지나가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다. 급히 타올랐다가 꺼지는 불꽃처럼 가능한 온갖 종류의 감정에 불살라지고 있을 뿐이다.’ 나는 내 감정들의 집합이었으며, 내 안의 다른 존재는 시간을 초월한 돌이었다.

이런 모든 것들을 정말 청소년기에 생각했다는 건가?

 

자연과 사원

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나는 생각했다. ‘아니다. 사람은 체험을 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말로는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 추켜올리고는 체념한 듯 몸을 돌렸다.

종교란 게 그런 것 같다. 생각을 해서는 믿을 수 없다. 우리가 어떻게 자연과 신의 일을 생각하고 체험해서 알 수 있을까? 생각해서 알 수 있는 일들은 인간의 일. 그것도 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87 나는 모든 경쟁을 싫어했다. 누가 놀이까지도 경쟁적으로 하게 되면 나는 그 놀이를 그만두었다. 그후 나는 학급에서 2등에 머물렀는데 그것이 훨씬 마음을 편하게 했다. 학교 과제는 몹시 성가셨다. 나는 그것 역시 경쟁심으로 부담이 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두 인격의 어머니

97 어머니는 나에게 무척 좋은 분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넓고 깊고 따뜻한 마음을 지녔고 무척 친절했으며 매우 살이 쪘다. ~

그녀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온갖 인습적이고 전통적인 견해를 가졌으나, 그녀의 무의식적인 인격이 갑자기 돌출하곤 했다. 그 인격은 예상 외로 강력했으며 범접할 수 없는 권위를 지닌 어둡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 역시 두 개의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했다. 하나는 악의 없고 인간적이었으며, 거기에 반해 또 하나는 으스스했다. 그것은 가끔씩만 나타났으나 그럴 때마다 예기치 못하고 있다가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럴 때 어머니는 독백을 하듯 말했으나 내게는 유용한 말들이었고, 보통 내 가장 깊은 곳을 찔렀기 때문에 나는 할말을 잃곤 했다.

보통 아이들은 엄마에게서 이런 다른 면을 발견할 때,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거리감을 느끼게 되지 않나? 그러고 보면 우리들도 이렇게 다른 면을 가진 사람을 볼 때 이중인격자라고 부르며 꺼려했으니 아주 보기 드문 현상을 아닌 것 같다.

 

100 어머니의 두 인격 사이에는 엄청나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유년시절에 어머니에 대해 불안한 꿈들을 꾸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녀는 낮에는 사랑스러운 어머니였으나 밤에는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는 듯했다. 그 시간 어머니는 이상한 동물이기도 한 예언자처럼, 곰의 동굴에 사는 여사제처럼 보였다. 고태적이고 잔인했다. 진리와 자연과도 같이 잔인했다. 그때 어머니는 내가 자연의 마음(인간 본성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본성 고유의 지혜를 의미하며 사물을 거침없이 말하는 특징이 있다)’이라고 불러왔던 그것의 화신이었다.

 

102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어떤 일을 갑자기 알게 되는 일이 내 생애에서 자주 일어났다. 그 인식은 마치 나 자신의 착상인 것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어머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으나, 그 목소리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것 같았고 그 상황에 들어맞는 내용을 정확하게 말했다.

 

110 성찬식의 실패? 그것은 나의 실패였을까? 나는 매우 진지하게 성찬식을 준비하고 은총과 계시를 체험하기를 기대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느님은 그 자리에 없었다. , 세상에! 나는 교회로부터, 그리고 아버지와 다른 모든 사람의 신앙으로부터 떨어져나왔다. 그들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교회로부터 굴러떨어졌다. 그것이 나는 슬픔으로 가득 차게 했고,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줄곧 마음을 어둡게 했다.

 

악의 기원

113 첫째로, 나에게는 자아라는 요소에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측면, 즉 제2의 인격과 제2의 인격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든 저런 형태든 자아는 뭔가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자아는 또한 온갖 자기기만과 오해, 기분, 감정, 열정 그리고 죄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자아는 성공보다는 실패를 훨씬 많이 겪었다. 자아는 유치하고 허영심이 강하며, 이기적이고 고집이 세며, 애정결핍이며, 탐욕스럽고 공정하지 못하며, 민감하고 게으르며, 무책임하며 그외 나쁜 것들 투성이였다.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나는 덕과 재능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면 시샘하면서도 경탄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본질을 이런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117 나는 생각했다. ‘드디어 여기에 악마를 진지하게 다루고, 완전한 세계를 창조하려는 하느님의 의도를 방해하는 힘을 가진 적대자와 피로 계약을 맺기까지 한 자가 있구나.’

나는 파우스트의 행동방식을 유감스럽게 생각했다. 나로서는 파우스트가 그렇게 한쪽으로만 치우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좀더 현명하고 또한 더욱 도덕적이어야만 했다. 자신의 영혼을 그토록 경박하게 도박에 거는 것이 나로서는 유치하게 보였다. 파우스트는 분명히 허풍쟁이였다!

파우스트를 읽으며 이런 걸 읽었어야 했구나. 왠지 내가 파우스트를 글자만 읽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융을 좀 더 잘 알고 난 후에 파우스트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20 하느님의 존재는 우리의 증명 여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느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이런 면에서 나에게 가능한 한 온갖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사실 나는 아무것도 믿을 수 없었다. 그 어느 것도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런 것들로부터 나의 관념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것은 관념, 즉 생각해서 고안해낸 어떤 것이 결코 아니었다. ~

어떻게 하느님이 나에게는 자명(자명)한 것이 되었을까? 하느님의 존재는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벽돌과도 같이 너무나 분명한데도, 이 철학자들은 어찌하여 하느님은 일종의 관념이며 자기들이 만들어낼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임의적인 가설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그 무렵 나는 하느님은 적어도 나에게는 가장 확실하고 직접적인 경험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닫게 되었다.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다

127 나의 비탄과 분노는 위협적으로 말할 수 없이 커져만 갔다. 하지만 그때 내가 이미 이전에 나 자신 안에서 여러 번 관찰했던 어떤 일이 일어났다. 마치 시끄러운 공간에서 방음문을 닫아버린 것과도 같이 갑작스러운 정적이 찾아왔다. 그것은 냉정한 호기심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럼, 여기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너는 흥분하고 있구나. 물론 그 선생은 너의 천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다. 다시 말해 너와 똑같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생도 너와 마찬가지로 의심 많은 사람인 것이다. 너는 너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믿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며 소박하고 한눈에 그 마음을 알 수 잇는 아이들에게 의지하고 잇는 것 아닌가? 인간은 이해하지 못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131 이에 비해 인간과 정상적인동물들은 자립한 신의 분신들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발적으로 돌아다니며 서식처를 정할 수 있었다. 그 반대로 식물계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장소에 묶여 있었다. 식물들은 무엇을 의도하는 일도 없고 이탈하지도 않으면서 신의 세계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생각까지 표현했다. 나무들은 특히 신비로웠으며 나에게는 생명의 불가해한 의미를 직접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므로 숲은 사람들이 생명의 심오한 의미와 그 경이로운 작용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장소였다.

 

134 그런데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신은 어떤 신성모독에 의해서도 기분이 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인간이 밝고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어둠과 불경스러움도 갖도록 신성모독을 요구하기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나는 쇼펜하우어의 견해에 대해 거리낌을 갖지 않았다.

정말 읽을수록 믿기지 않는다. 김나지움,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생 정도에 신성모독에 대해서 이해하고 쇼펜하우어를 읽고 그의 견해를 이해하게 되었다구..???

 

136 또한 나는 확실히 붙임성이 있고 속이 트인 사람이 되었다. 나는 가난이라는 것이 불리한 점도 아니며 고통의 주된 원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부잣집 아들들이라고 해서 가난하고 옷이 꾀죄죄한 소년들보다 결코 나을 것이 없었다. 행복과 불행은 용돈의 액수보다 더 깊은 원인에 의해 좌우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많은 더 좋은 친구를 얻었다. 내 발을 받쳐주는 훨씬 든든한 기반을 느끼며 나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까지 갖게 되었다

 

자연과학 VS. 신의 세계

139 나의 관심은 다양한 분야로 끌렸다. 한편으로는 사실에 기초를 둔 진리들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에 강한 흥미를 느꼈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교종교사와 관련된 모든 것에 매료되었다. 주로 나의 관심을 끈 학문은 전자에서는 동물학, 고생물학, 지리학이었고, 후자에서는 그리스.로마, 이집트, 선사시대 고고학이었다. 물론 그 무렵에는 이러한 다양한 과목의 선택이 나 자신의 이중성격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여행과 환상, 매력적인 모험의 세계로!

147 나는 다양한 작은 술잔에 너무나 고무되어 예기치 않았던, 전혀 새로운 의식상태로 옮겨지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는 더 이상 안과 밖이 따로 없고 나와 타인, 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조심스러움과 소심함도 없었다. 땅과 하늘, 세계와 그 안에서 기고 날고’, 돌고, 올라가고, 떨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다. 나는 부끄러워하면서도 기분 좋게 의기양양하게 술에 취했다. 그것은 마치 환희에 넘치는 깊은 생각의 바다에 빠진 것과 같기도 했다. 격렬한 파도의 너울거림 때문에 나는 눈과 손과 발로써 모든 단단한 대상을 부여잡고 출렁이는 거리에서, 기울어지는 집과 나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만 했다.

나는 생각했다. ‘굉장하구나. 단지 유감스럽게도 약간 도가 지나쳤을 뿐인데.’ 이 경험의 결과는 괴로운 편이었으나 그것은 아름다움과 감각에 대한 하나의 발견과 예감으로 남았다. 나는 그것들을 단지 나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아깝게도 못 쓰게 만들어왔던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니 그래도 아이는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에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술에 취하는 과정을 환희에 넘치는 깊은 생각의 바다에 빠진 것”, “격렬한 파도의 너울거림 때문에 나는 눈과 손과 발로써 모든 단단한 대상을 부여잡고 출렁이는등으로 표현한 걸 보면 문학을 했어도 괴테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문학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50 이 여행은 아버지가 일찍이 나에게 준 것들 중에서 가장 값지고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이때 받은 인상이 너무나 깊었으므로 그 뒤에 일어난 일들에 관한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제1의 인격 역시 이 여행에서 자기가 바라는 바를 얻었다. 그가 받은 인상들이 대부분의 내 생애 동안 항상 생생하게 남아 있게 된 것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성숙하고 독립된 존재로 여겼다.

 

150 이러한 이미지는 수십년 동안 내가 과로로 피곤해져 휴식처를 찾으려고 할 적마다 되살아나곤 했다. 사실 나는 이런 멋진 여행을 하리라 항상 되풀이해서 스스로 다짐했지만 한 번도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하고 말았다.

 

151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어떻게 사람이 성자와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에 성자는 은둔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렇지만 그의 은둔처는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157 길고 지루했던 등교길이 다행히도 짧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학교 건물을 나서기가 무섭게 나는 이미 환상의 성()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 성에서는 보수작업이 착수되고 평의회가 개최되었으며, 범죄자가 재판을 받고 쟁의가 조정되고 대포가 발사되었다. 범선의 갑판이 깨끗이 청소되고 돛이 세워졌다. 배는 미지근한 미풍을 안고 항구를 떠나 조심스럽게 방향을 잡아 나아갔다. 그런데 배가 바위 뒤편으로 돌아나오자 세찬 북서풍에 휘말렸다. 그러다가 내가 어느새 이미 집에 와 있었다. 시간이 몇 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를 가볍게 집까지 실어다준 마차에서 내리듯이 나는 환상에서 빠져나왔다.

 

아름다운 시간들_대학시절

파우스트와 요한복음

164 아버지가 무척 걱정하며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얘는 할 수 잇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나는 아버지 말이 옳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67 2의 인격은 제1의 인격을 까다롭고 배은망덕한 도덕적 과제, 종결되어야 할 일종의 숙제로 여겼다. 이런 과제는 일련의 결점으로 인하여 부담이 가중되었다. 그 결점이란 때때로 부리는 게으름, 의기소침, 침울, 아무도 가치를 두지 않는 이념이나 사물들에 대한 어리석은 열광, 혼자 착각하는 우정, 좁은 마음, 편견, 우둔함(수학!), 타인에 대한 이해부족, 세계관에 대한 모호성과 혼란, 기독교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독교인이 아닌 것도 아닌 이중성 등이었다.

2의 인격은 도저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투철한 생명력으로, 태어나고 살고 죽고, 하나이면서 온갖 것이요 인간성의 전체상이었다. 2의 인격은 자기 자신으로서는 냉혹할 정도로 분명했으나 무능하고 의욕이 별로 없었다.

 

168 2의 인격이 우세할 때는 제1의 인격은 제2의 인격에 묻혀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반대로 제1의 인격은 제2의 인격을 어두운 내적 영역으로 보았다. 2의 인격이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표현으로 여기는 것은, 자신이 마치 세계의 언저리에서 던져져 깜깜한 무한 속으로 소리없이 가라앉는 하나의 돌멩이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2의 인격)의 안에는 빛이 가득 퍼져 있었다.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을 향해 높은 창문들을 열어놓은 궁전의 넓은 홀과도 같았다. 거기는 의미와 역사적인 연속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은 인접한 환경과 실제적으로는 접촉점을 갖지 않는 제1의 인격 인생의 서로 연관없는 우연성과는 큰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168 그러므로 괴테에게도 제2의 인격은 하나의 실재였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 이에 반해 파우스트는 제2의 인격이 살아 있는 등가물(等價物)이었으며, 나는 괴테가 그 시대에 제공한 해답이 바로 파우스트라는 사실을 확신했다. ~

나의 대부요 보증인은 위대한 괴테 바로 그 자신이었다.

 

170 나 자신의 인식은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위대하고 유일한 보물이었다. 그것은 어둠의 힘에 비하면 한없이 작고 약했으나 그래도 하나의 빛이었고 나의 유일한 빛이었다. ~

그때 나는 제1의 인격이 빛을 운반하는 자이며 제2의 인격은 그림자처럼 제1의 인격을 따라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과제는 그 빛을 지키고 그 투철한 생명력(2의 인격)’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다. 그쪽은 다른 종류의 금지된 빛의 영역임이 틀림없었다.

 

174 의식이 필사적으로 그 힘에 저항하면 할수록 그 그림자는 더욱 길어졌다. 미리 내다보는 아버지의 예감이 그를 불안한 상태로 몰아갔고 그 불안이 당연히 나에게까지 미쳤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175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잇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176 서양 종교는 분명히 말해 이러한 내적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2천 년 전부터 내적 인간을 의식의 표층으로 끌어올려 그 인격의 특성을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진지하게 노력해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진리는 내적 인간에 깃들어 있다!”

 

아버지의 죽음과 궁핍한 시절

182 내가 보기에 신앙의 가장 큰 죄는 경험을 앞지르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신학자들은 하느님이 어떤 사물들은 의도를 가지고 배치하고 다른 어떤 사물들은 그냥 방임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184 갑자기 아버지가 숨을 멈추었다. 나는 아버지의 다음 숨소리를 기다리고 기다렸으나 그것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185 한번은 어머니가 나를 향해서인지 주변 공기를 향해서인지 2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너를 위해서 지금 돌아가셨구나.” 그 말은 나에게 이런 의미로 들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너에게 방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견해는 나로서는 어머니의 제2의 인격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이 나에게 몹시 아프게 다가왔다. 나는 낡은 시대의 한 조각이 돌이킬 수 없이 끝나버린 것을 느꼈다.

 

186 나는 궁핍한 시간을 그리워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시절에는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법을 배우게 된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

198 그들은 대부분 니체의 저서는 거의 읽지 않았다. 그리하여 니체의 외견상 결함, 예를 들면 신사인 체거드름을 피우는 행동, 피아노를 치는 겉멋 든 태도, 과장된 문체 등 그 당시 바젤 시민들의 신경을 건드리는 그의 기행(奇行)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198 그러나 나는 나 자신이 니체를 닮을지도 모른다는 은밀한 불안을 느끼며 주춤했던 것이다. 적어도 그를 주위로부터 고립시킨 그 비밀에 있어 비슷한 데가 있을지도 몰랐다. 누가 알겠는가? 니체가 내적인 체험과 통찰을 가지고 불행하게도 그것들에 관해 말하고자 했으나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말이다. 분명히 그는 기인이었다. 아니면 적어도 그런 사람으로 여겨졌고 자연의 놀림거리라고도 생각되었다. 나는 어떤 경우에도 그런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 자신이 또 하나의니체처럼 인식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199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였다. 이제 나의 제2의 인격은 차라투스트라였다. 물론 이것은 두더지의 흙두둑을 몽블랑산에 비교하는 격이긴 하지만 말이다. ~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2의 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201 <파우스트>가 나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차라투스트라>는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그 문은 오랫동안 철저하게 닫힌 채로 있었다. 나는 소 두 마리가 도깨비마법에 걸려 그 머리들이 동일한 고삐에 매여 있는 것을 발견한 늙은 농부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부의 어린 아들이 어떻게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농부가 대답했다. “얘야, 그런 건 말하는 게 아니란다.”

 

202 나는 언제 어디선가 다이아몬드계곡을 지나온 것도 같은데, 내가 가지고 온 광석표본이 자갈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확신시킬 수가 없었다. 그것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면 나 자신까지도 확신할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정신의학에서 길을 찾다

210 나는 몹시 흥분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나에게 정신의학 외에는 다른 목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전격적으로 계시처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정신의학에서만,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잇는 두 흐름이 합류하여 그 합해진 물의 힘으로 스스로 물길을 내어 흘러갈 수 있을 것이었다. 여기에 내가 사방으로 찾아헤매었으나 발견하지 못했던, 생물학적 사실과 정신적 사실에 관한 공동경험의 장()이 있었다. 정신의학은 자연과 정신의 충돌이 실제 사건이 되는 결정적인 분야인 셈이었다.

 

211 나의 결정이 내려졌다. 내과 교수에게 그 결정을 알렸을 때 그의 얼굴에서 실망과 놀라움의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내 옛날의 상처, 즉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소외자가 되는 느낌이 아프게 되살아났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유를 한층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런 동떨어진 세계에 흥미를 가지리라고는 그 누구도, 아니 나 자신까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친구들은 놀라고 의아해하며 나를 바보로 여겼다. 내가 내과의사로서 출세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코앞에 잇는데도 정신의학 같은 하찮은 것과 바꿔버리려고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회는 누구나 당연히 잡으려고 하며 나에게도 무척 유혹적이었다.

나는 아무도 나를 따라오려고도 하지 않고 따라올 수도 없는 옆길로 들어섰다는 것을 분명히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결심은 섰고 그것은 숙명이라는 것을 알았다. ~ 그것은 마치 두 개의 강물이 합류하여 세차게 흘러가면서 먼 목적지로 나를 가차없이 실어가는 것과도 같았다. ‘통합된 이중성이라는 고양된 감정에 힘입어 나는 마법의 파도를 탄 것처럼 시험을 치러냈고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환자들

225 정신의학 사례 중 많은 경우 환자는 말하지 않은 사연을 가지고 있으며 대개 그것에 대해 아무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는 개인적인 사연을 조사한 다음 비로소 진정한 치료가 시작된다고 여겨진다. 그것은 환자의 비밀이며 바로 거기서 좌절하고 만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치료의 열쇠를 지니고 있다. 의사는 단지 그 비밀스러운 사연을 어떻게 알아내는가를 터득해야만 한다. 의사는 증상만이 아니라 그 사람 전체를 꿰뚫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의식적인 재료의 탐색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때로는 연상검사가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또한 꿈의 해석을 통해서나 환자와 오랫동안 끈기있게 인간적으로 접촉함으로써 그 일이 가능할 수도 있다.

 

229 그녀는 물론 아들이 재능이 뛰어나고 성공하기를 바랐는데, 그 아이가 어린 나이에 정신적으로 병들자 무척 실망하고 말았다. 그 무렵 나는 아직 젊은 의사로서 그녀가 아들에게 바라던 모든 것을 구현하고 잇는 존재인 셈이었다. 그리하여 영웅의 어머니가 되고 싶은 그녀의 야심적인 갈망이 나에게 고착된 것이었다. 그녀는 이를 테면 나를 양자로 삼아 자신의 기적적인 치유를 세상에 널리 선전했다.

사실상 그녀로 인해 나는 그 지방에서 마술사와 같은 명의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곧 두루 퍼져나가 그녀 덕분에 나는 개인적으로 돌보는 환자들을 처음으로 얻게 된 셈이다 내가 정신치료법을 시행하게 된 것은 이와 같이 한 어머니가 정신이 병든 아들 대신에 나를 자기 아들로 삼은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234 이 일로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는 도덕적으로 끝장이 났다. 그녀는 고백을 해야만 했고 그러기 위해 나를 찾아왔다. 그녀는 살인범이었으나 거기에 더하여 그녀 자신을 또한 살해했다. 그런 죄를 범한 자는 자신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사인범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유죄선고를 내린 셈이다. 누가 죄를 범하고 잡히면 그는 재판을 받고 형벌을 받게 된다. 누가 도덕적 지각 없이 몰래 죄를 짓고 발각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벌을 받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결국 모든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때로는 동물이나 식물까지도 그 죄를 알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그 부인은 살인으로 인해 심지어 동물들에게도 소외되었고 견딜 수 없이 고독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그 비밀을 나와 함께 나누었다. 그녀는 살인범이 아닌 어떤 사람과 그 비밀을 나누어야만 했다. ~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으며, 그녀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어떤 증거도 없다. 나중에 나는 그녀의 삶이 어떻게 되었을까 자주 자문해보곤 했다. 왜냐하면 그때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결국 자살을 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극한 고독 속에서 그녀가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239 이제까지 정신병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졌던 많은 사실이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정신이 돈것들만은 결코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여러 차례 나는 그런 환자들에게도 그 배후에는 정상이라고 일컬을 수밖에 없고 그렇게 간주될 만한 인격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따금 이러한 인격 역시 주로 목소리나 꿈을 통해 아주 이치에 맞는 발언과 항변을 할 수도 잇었다. 예를 들어 몸이 병들어 있는 중에도 이런 인격이 다시 전면에 나타나 환자를 거의 정상으로 보이게까지 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241 나는 정신병에 보편적인 인격심리학이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과, 여기서도 오랜 인류의 갈등이 재발견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우둔하고 감정없이 멍청하게 행동하는 듯한 환자들의 마음속에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많은 일, 훨씬 의미있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정신병에서 새로운 것이나 미지의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의 존재의 바탕과 마주치게 된다.

 

꿈의 분석

248 정신치료와 분석은 인간 개체가 그러하듯 다양한 법이다. 나는 환자들을 될 수 잇는 한 모두 개별적으로 다루는 편이다. 문제의 해결은 항상 개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원칙은 다만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심리적인 진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반대로 뒤집을 수도 있을 때에만 타당한 것이 된다. 나로서는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 해결책도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바로 적절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250 만일 오늘날 어떤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어버리면 수소폭탄이 터질 수도 있다.

 

253 꿈속에서 내가 그녀를 그러한 방법으로 쳐다보아야만 했다면 현실에서는 아마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이었다. 꿈은 의식적인 태도에 대한 보상 바로 그것이다.

 

253 의사는 그 자신이 고통을 당할 경우에만 효과를 얻는 법이다. ‘상처 입은 자만이 치유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가 체면(Persona)을 갑옷처럼 두르고 있으면 그는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하게 된다. ~

교황 자신도 고해 신부를 두고 있다. 나는 분석가들에게 늘 이렇게 충고한다. “고해신부 역할을 해줄 아버지 같은 사람이나 어머니 같은 사람을 가지도록 하시오!”

 

집단무의식의 원형에 대하여

261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대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렀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나는 이미 그날 저녁 내내 보통때의 기분하고는 유난히 달리, 이상하게도 마음이 어수선하고 신경이 예민했던 것이다.

 

268 “여태껏 나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부터 치료는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환자에게 필요했던 것은 남성적인 반응이었다. 이 사례에서는 환자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 전적으로 틀린 것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제약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박신경증에 걸린 것이었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은 본성에 의해, 바로 강박신경증을 통해 제약을 받게 되는 법이다.

 

271 여기서 심한 탈선이 시작되는데, 그 첫 번째 탈선이 지적인 정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의사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것은 표면상 확실하고 인위적이나 이차원적인 개념에 불과한 세계를 위하여 원형의 영향과 그 실제적인 체험을 외면하려는 숨은 목적에 이바지한다. 그 세계는 삶의 진실을 소위 명료한 개념들로 은폐하려고 한다.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 된다. 개념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바라는 안락함이다. 체험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영혼은 개념들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와 사실들 가운데 깃들어 있다. 말만 그럴듯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과정이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경험한 바로는, 습관적인 거짓말쟁이들 외에 가장 어렵고 배은망덕한 환자는 소위 지식인들이다. 그들이야말로 한쪽 손이 하는 일을 다른 손이 전혀 모른다. 그들은 일종의 구획심리학을 계발한다. 감정에 의해 조절되지 않는 지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신경증을 앓고 있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이론적인 불화

276 억압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점에서는 프로이트가 옳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Trauma)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나로서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나의 치료과정에서는 신경증의 많은 사례에서 성욕의 문제는 다만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고 다른 요인들이 주요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사회적응, 비극적인 삶이 정황으로 인한 억압, 체면차리기 등의 문제들이었다. 나중에 나는 그러한 사례들을 프로이트에게 제시했으나, 그는 성욕 외에 다른 요인들은 원인으로 여기려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나로서는 자못 불만스러웠다.

 

277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제2의 인격의 소리를 들었다. “네가 그와 같이 프로이트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한다면, 그건 일종의 사기다. 사람은 인생을 거짓 위에 세울 수 없다.” 그리하여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후로 나는 공공연히 프로이트 편에 서서 그를 위해 싸웠다.

 

279 그가 나를 초대하여 1907 2월 빈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오후 1시에 만나 열세 시간 동안이나 그야말로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누었다. 프로이트는 내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 당시의 내 경험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프로이트에 견줄 수 없었다. 그의 태도에는 진부함이 전혀 없었다. 내가 보니 그는 무척 총명하고 예리하며 어느 면에서나 괄목할 만한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모호한, 알 수 없는 구석이 여전히 남아 있는 느낌이긴 했다.

 

282 그 대화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나는 그때까지 성욕에 대해 생각하기를, 우리가 잃을지도 모를까 봐 성실을 다해 지켜야 할 만큼 불안정한 것으로는 여기지 않았다. 성욕은 프로이트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는 듯이 보였다. 그에게 성욕은 일종의 종교적으로 관찰된 것이었다. 그런 문제와 생각 들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대개 소심해져서 주저하게 된다. 그리하여 대화가 몇 번 어물어물 이어지다가 곧 내 쪽에서 끝나고 말았다

나는 깊은 충격을 받고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다. 나는 새로운 생각들이 떼를 지어 나에게로 날아오는 미지의 신세계를 흘끗 들여다본 느낌이었다.

 

284 자기가 자신의 가장 나쁜 적이 되어 있는 경우, 그 사람의 신랄함보다 더 지독한 신랄함은 없을 것이다. 프로이트 자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검은 진흙탕 홍수로 위협을 받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프로이트 자신이 검은 심연을 퍼내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프로이트는 왜 자신이 성에 관한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지, 왜 그러한 생각이 자신을 그토록 사로잡고 잇는지 한 번도 자문해보지 않았다. ‘해석의 단조로움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 혹은 아마도 신비주의적이라고 불릴 수도 있는 자신의 또 다른 면으로부터의 도피를 표현하고 잇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깨닫지 못했다. 그가 그러한 측면을 인정하지 않는 한, 그는 결코 자신과의 일치에 이를 수 없었다.

 

285 프로이트의 이러한 일방성에 대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아마도 그 자신의 어떤 내적 체험이 그의 눈을 뜨게 해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에도 어쩌면 그의 지성이 글한 체험을 단순한 성욕또는 정신성 성욕으로 격하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는 한쪽 면에만 치우쳐 있어, 바로 그러한 이유로 나는 그에게서 비극적인 모습을 본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었으며, 더 나아가 그 무엇에 홀린 사람이기도 했다.

 

287 동양에서는 니르드반드바(Nirdvandva: 양쪽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나는 이것을 명심하고 있다. 마음의 진동추는 바른 것과 그른 것 사이가 아니라 의미와 무의미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신성한 힘은 사람을 극단으로 잘못 인도하는 데 그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작은 진리를 진리의 전부인 양 여기도록 하고 작은 잘못을 치명적인 잘못으로 여기도록 한다.

 

리비도의 변환과 상징

292 그후에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시체들에 대해 떠벌리는 나의 모든 말이 내가 그의 죽음을 바라고 있음을 뜻하는 거라고 확신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해석을 듣고 무척 놀랐다. 나는 그의 환상의 강도가 얼마나 센지 충격을 받았다. 그 강도가 너무 세서 그를 실신하게 했음이 틀림없었다.

 

294 그 무렵 프로이트는 나를 자신의 후계자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자주 암시했다. 이와 같은 암시는 나를 괴롭게 했다. 나는 그의 견해를 정확하게, 다시 말해 그가 의도하는 그대로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나는 아직 그가 인정할 만큼 내 반론을 밀고나가는 데 성공하지 못했으며, 또한 프로이트에 대한 존경심이 너무나 커서 서로의 견해를 가지고 결정적인 대결을 벌여보자고 강요할 수도 없었다. 나는 파당의 지도자가 되어 실제로 짐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결코 달갑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일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며 나의 지적 독립성을 희생할 수도 없었다. 그러한 영광은 나의 진정한 목적에서 벗어나게 할 뿐 나에게는 전혀 고마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진리탐구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 개인적인 명성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295 프로이트가 어떤 꿈을 꾸었다. ~ 나는 그 꿈을 최선을 다해 해석했으며, 그가 사생활에 관해 좀더 상세한 정보를 나에게 제공해준다면 꿈의 해석이 더욱 풍성해지겠다고 말했다. 나의 말에 프로이트는 기묘한 시선, 의심이 가득 담긴 그런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그가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나의 권위를 위태롭게 할 수는 없어!” 그 순간 그는 권위를 상실하고 말았다. 그때의 그 말이 나의 기억에서 영 잊혀지지 않았다. 그 말 속에 이미 우리 관계의 종말이 예시된 셈이었다. 프로이트는 개인적 권위를 진리보다 더 내세웠다.

 

300 나에게 꿈이란 자연의 일부로서 속이려는 의도를 품고 잇지 않았다. 식물이 가능한 한 자라나려 하고 동물이 가능한 한 먹이를 찾으려고 하는 것과 똑같이, 꿈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생명의 형태들은 우리의 눈을 속이려고 하지 않으나, 우리 자신이 근시안이어서 스스로를 속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301 프로이트를 만나기 훨씬 전부터 나는 무의식과 무의식의 직접적 표현인 꿈을 자연의 과정으로 여겼다. 이 과정에는 무엇보다 요술이나 속임수, 그리고 어떤 자의적인 것도 끼어들 수 없다. 나는 의식의 잔꾀가 무의식의 자연과정에도 확대된다는 가정을 믿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와 반대로 나날의 경험을 통해 오히려 무의식이 의식의 경향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저항하는가를 알게 되었다.

 

308 이제 프로이트 개인의 심리가 왜 나의 중요한 관심거리가 되었는지 분명해졌다. ~ 프로이트 자신이 신경증에 걸려 있는 것이었다. 그 신경증은 쉽게 진단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의 미국 여행에서 내가 발견한 바와 같이 무척 고통스러운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 무렵 그는 나에게 온 세상 사람이 다 약간은 신경증적이므로 우리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더 많이 알기를 원했다. , 어떻게 하면 신경증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고자 했다. 나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신경증을 치료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프로이트나 그의 제자들이 정신분석 이론과 실천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프로이트가 이론과 방법을 동일시하고 그것들을 교리화하려는 의도를 밝혔을 때 나는 더 이상 그와 협력할 수 없었다. 나로서는 물러서는 길 이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11 프로이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아마도 신경증 환자를 진지하게 다루고 그들의 독특한 개인적인 심리를 파고들어간 데 있을 것이다. 그는 환자의 사례가 스스로 말하도록 하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그는 개별적인 환자의 심리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말하자면 환자의 눈으로 관찰했으며, 그 결과 병에 대하여 그대까지 가능했던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이해에 도달했다. ~

그가 우리 문화에 준 충격은 무의식으로 통하는 길을 발견한 것이었다. 그는 꿈을 무의식 과정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원으로 인정함으로써, 잃어버려 이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진 가치를 과거와 망각으로부터 되찾아왔다. 그는 자신의 경험으로 무의식적 정신의 존재를 증명했다.

 


IP *.222.255.2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