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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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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8일 11시 15분 등록

 서식이 깨지는 부분이 있어 링크 걸어 둡니다.
http://blog.naver.com/webpoet/221000717111
아래 원문 올립니다.
 



 

I. 저자에 대하여

  • 원명 Joseph Campbell
  • 1904년 3월 26일 뉴욕 출생
  • 1925년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 1927년 콜럼비아 대학교 영문학 석사과정 수료
  •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 1949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발표
  • 1959~1967년 <신의 가면> 1~4 권 집필
  • 1987년 10월 31일 호놀룰루에서 사망


미국의 유명한 신화종교학자이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소년 시절 북미대륙 원주민의 신화와 아더왕 전설이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콜롬비아 대학과 파리 및 뮌헨의 여러 대학에서 세계 전역의 신화를 두루 섭렵했다.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아메리칸 인디언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으며, 뉴욕 맨해튼에 있는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자주 방문하였다. 캠벨은 그 박물관의 한 코너에 있는 토템 기둥에 특히 매료되었는데, 그 뒤로 1925년과 1927년에 콜럼비아 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파리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에서 중세 프랑스 어와 산스크리트 어를 공부하였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벡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에는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며,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았다.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전4권)을 펴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집자로도 유명하며, 『신화의 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의 가면 1~4』,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의 저서를 통해 왕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캠벨 :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 안에서 공명(共鳴)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 어떤 실마리의 도움을 받아 우리가 우리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랍니다.
모이어스 : 그러니까 신화가 그 실마리라는 것이지요?
캠벨 :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 (<신화의 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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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마음을 무찔러 오는 글귀

P.14(?)
<이그쥬가르쥬크> 말이오? 북부 캐나다 카리부 에스키모의 샤만이었소.(중략)
<참 지혜라고 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아득히 떨어진 채 절대 고독 속에 은거하는데, 이 참 지혜에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이를 수 있다, 버리는 것과 고통스러워하는 것만이 세상으로 통하는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을 했지요.
  • '참 지혜의 열쇠는 고통과 버리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렇지 않고 지혜를 얻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P.14
모듬살이

P.15(?)
「왜 하필이면 신화 같은 게 필요하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중략)
여직원의 친구는 <그리스의 신들 따위>는 오늘날의 우리 인간 조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스 신들 따위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은 우리에게는 익숙한, 대단히 현대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그 여자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 그리고 대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것 - 은, 부서진 질그릇 부스러기가 문화인류학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듯이, <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라고 하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구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이러한 <따위>는 아직도 어떤 에너지로 작용한다.
  • '그러니까 '신화'라는게 우리 믿음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고, 삶의 에너지원으로 작용한다'는 것. 내용은 이해가 가는데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다는 거지?
  • 근간 :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5170700
  • 뿌리와 줄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
  • 사물의 바탕이나 중심이 되는 중요한 것.

P.16(+)
루카스는 시쳇말로 옷을 입혔지요. 결국 <테크놀로지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메시지 아니겠어요? 우리의 컴퓨터, 우리의 연장, 우리의 기계만으로는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관, 우리의 참 존재에 기대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 우리의 참존재란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직관이란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 참존재 : '원래의 존재' 정도로 이해하자
  • 직관 : 감각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
  • http://krdic.naver.com/detail.nhn?docid=35899500

P.16~17(?)
「영웅이 역정(歷程)을 통해서 얻는 직관은 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랍니다. 영웅의 역정은 이성을 부인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부정적인 열정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은 우리에게도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야만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답니다.」

P.17(?)
루카스의 영화를 보고는, 영웅의 역정을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닌, 자기 발견의 삶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자기 내부에 자기 운명의 실을 풀어 낼 힘이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커는 그렇게 합리적일 수 없는 것이지요.
  • 자기 내부의 힘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모든게 새롭게 시작된다. 그러니 자기 내부의 힘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내 내부에 있는 힘이란 무엇인가?
  • 자기발견으로 세상속에서 눈을 뜨고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것.

P.17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

P.20
「목사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말로써 사람을 믿음에 이르게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오. 자기가 보았던 빛을 신도들에게 넌지시 보여 주기만 하면 될 텐데 말이오.」
  • 자신의 체험을 재현할 수 있다면 내가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P.20(?)
정말 귀를 기울인다면 - 의식이 새로운 생명으로 되살아나고 상상력이 심층에서 솟아나는 놀라운 경험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그는 자기의 직업을 관류하는 <중심사상>이 「세계 신화가 지니는 공통되는 주제는, 심오한 원리를 통하여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욕구를 지향」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묻는다.
「그러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군요.」
그는 대답한다.
「그게 아니오. 살아 있음의 <경험>을 찾는 것이지요.
  • 살아있다는 느낌을 찾는게 아니라, 살아있음의 경험 ?, ~ 했을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가졌다는 경험이라는 건가?

P.31
왜 하필이면 신화입니까? 왜 우리가 신화에 관심해야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신화가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래요, 우리 몫의 삶을 살면 되는 겁니다. 살만 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살면 신화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아요.

P.32
신화가 우리를 사로잡는다고 칩시다. 신화라는게 우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 건지 살펴봅시다.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우리가 정신의 문학과 친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겨우 그날 일어난 일에 관한 소식이나 그 시각에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갑니다. 옛날에는 대학의 캠퍼스 하면 일종의 철저하게 열린 사회였지요. 그래서 나날의 소식은 내면적인 삶과 우리가 전통으로 물려받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분들, 말하자면 플라톤, 공자, 석가, 괴테 등, 우리 삶의 중심과 관련된 영원한 가치를 좇으라고 한 분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상충되지 않았어요. 사람은 나이를 먹고 나날의 삶에 대한 관심에 심드렁해지면 내면적인 삶에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 내면적인 삶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인지 모르고 있다면 그건 참 곤란한 거지요.
옛날에는 그리스 문학, 라틴 문학, 그리고 성서와 관련된 문학이 교육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게 다 교육과정에서 떨어져 나간 지금은 신화에 관한 정보를 얻을 길이 깜깜해지고 말았어요. 앞에서 말한 고전 이야기를 마음에 다 담아 놓으면 그 이야기가 나날이 일어나는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게 없어지고 나니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걸 잃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군요. 왜냐? 우리에게는 앞에서 말한 문학의 대신이 될 만한 게 없기 때문이지요. 인류의 삶을 떠받쳐 왔고, 문명을 지어 왔고, 수천 년 동안 종교를 틀지어 온 이러한 고대의 정보는 심원한 내면적인 문제, 내면에 관한 신비, 내면적인 통과 의례의 문턱넘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P.33
그러니까 우리는 세계와의 관계를 이루기 위해, 우리 삶의 현실과 조화시키기 위해 옛 이야기를 하고 읽는다는 것이군요?
내 생각이 바로 그겁니다.

P.34
완전한 인간은 사람들의흥미를 끌지 못합니다.

P.35
완전한 것은 비인간적인 겁니다. 아슬아슬한 것, 보고 듣는 사람에게 초자연적인 인간이나 불사신이라는 느낌을 주는 대신 인간으로 느끼게 하는 인간미….이게 사랑스러운 겁니다. 사람들중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 대단히 힘이 드는 사람이 생기는 건 다 이것 때문입니다. 하느님에게는 불완전한 데가 없거든요. 하느님에게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 느낌은 진정한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아요. 그러나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는 사랑스럽지요. 
  • 일단은 불쌍히 여길 수 있어야 사랑이 생기는게 아닐까 생각든다.

P.35
인간적인 고통, 인간적인 분투, 인간적인 삶…
거기에 그런 삶에 관한 지혜를 터득하는 젊은이가 등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됩니다.

P.35(++)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있음의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순수하게 육체적인 차원에서의 우리 삶의 경험은 우리의 내적인 존재와 현실안에서 공명(共鳴)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실제로 살아 있음의 황홀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 지금 내가 숨쉬고 살아있다는 인식. 그런 경험들. 맞아 그런걸 찾고 싶은 것이지.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

P.36
신화가 그 실마리라는 것이지요?
신화는 인간의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 인 것이지요.

P.36(++)
선생님께서는 신화의 정의를(중략)
<삶의 경험>이라고 합시다. 마음은 의미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랍니다. 

P.36
우주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벼룩의 의미는 무엇이던가요? 그저 거기에 있을 뿐이지요. 그겁니다. 모이어스 씨. 당신이라는 분의 의미는 그저 거기에 있다는 것 뿐입니다. 너무 외적 가치를 지닌 목적에만 집착해서 움직이는 바람에, 우리는 그만 가장 중요한 내적가치, 즉 살아 있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삶의 황홀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되었지요.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것을 경험하실 수 있었습니까?
신화를 읽었지요.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 줍니다. 신화를 읽으면 사람들은 상징의 메시지를 해독하기 시작하지요.
  • 살아 있다는 ‘내적가치’를 꼭 신화에서 찾을 이유는 없다. 이타적인 마음에서도 찾을 수 있고, 사랑하는 마음에서도 찾을 수 있는게 ‘살아있음의 황홀’이 아닐까 생각한다.

P.37(+)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은, 우리에게는 자기 종교와 관련된 신화를 믿음이라는 문맥에서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읽으면 메시지를 느끼게 됩니다.
  •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이해하면서, 비슷한 점을 이해하면서 자기종교에서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아! 이대목에서 이것을 이야기 하고 싶엇던 것이구나!’하는 메시지 어쩌면 자신의 종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는게 신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P.38
결혼이 <자기>와  <자기>의 재회, 우리의 뿌리가 되는 남성 혹은 여성과의 만남이라면, 우리 현대 사회에서 결혼이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이루어지고 깨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결혼이 아니라니까요. 감히 말합니다만, 결혼을 통한 관계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계로 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혼을 아직 못한 겁니다. 결혼은 원래 하나 였던 것이 지어 내는 둘의 관계, 둘이 하나의 육(肉)을 이루는 관계입니다.(중략)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하나라는 것입니다. 

P.39
자기네들의 관계를 아이들을 통한 관계로 해석하면서도 이들은 실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제대로 된 관계라면, 자기네들의 관계를 상호간의 인간적인 관계라는 측면애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요.

P.39(++)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이랍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고 하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고 하는 제물이지요. 바로 이 <관계>안에서 둘은 하나가 되는 것이랍니다.

P.40
의례(儀禮)
- 의례: 행사를 치르는 일정한 법과 식

P.40
결혼이라는 것은 사회적 계약이 아니라 영적인 수련이라고 하시는 거군요?
중요한 것은 영적 수련입니다. 사람은 사회를 섬겨야 하게 되어 있지 않아요. 사회가 사람을 섬겨야 하는 것이지요.

P.41
모든 아이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어린 시절을 따나야 합니다.(중략)
원시 사회에서는 이빨을 쪼아 낸다거나, 몸에 상처를 낸다거나, 할례(割禮)를 베푼다거나 하는 사춘기 의례가 있었어요. 이러한 의례를 거치면 어린이의 몸은 더 이상 어린이의 몸이 아닌, 전혀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지요.
  • 일정한 의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는 그런 의식이 없어졌다. 그러니 그들끼리의 의식으로 집단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P.42
어떤 문화권이든지 우리가 문화권이라고 부르는 모듬살이에는 삶의 규범이 될만한 룰, 그 문화권 사람들 사이에 묵시적으로 이해되는 불문율 같은 게 있는 법이지요. 그런 문화권에 에토스라고 할 수 있는 것, 삶의 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런식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어떤 묵시적 양해 사항이 있어요.
신화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군요.
정리되지 않은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 법률이전에 묵시적인 규칙이 신화였군. 전승을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할고 경험이 많은 사람이 우두머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과거의 구조. 신화를 안다는 것은 권력구조와 관계가 더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 모듬살이 : 더불어 살아가는 것
- 에토스 : 관습

P.43
이 미국에는 온갖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다 모여 살고 있어요. 그러자니 이나라에서는 법이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 하잖아요.
그래서 법과 법률가들이 우리를 꽉 잡고 있어요. 여기에는 에토스가 없어요.
- 관습이 아닌 서로간의 약속으로 정리된 문서가 있는 것이지. 분쟁의 소지가 많았기 때문에 미국의 법이 발전할 수 밖에 없었구나.

P.43
내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는이야기는 삶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삶의 지혜와는 상관없는 것들이지요. 우리는 테크놀러지를 배웁니다. 우리는 정보를 얻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많은 교수들 역시 자기가 가르치는 학문이 삶의 가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갸우뚱 한다는 겁니다.

P.44
침머는 신화에 우리 삶에 유효한 메시지가 있다는 말을 처음으로 한 분이 아닐까 싶군요.

P.47(++)
신화는 문학과 예술에 무엇이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우리 삶이 어떤 얼개로 되어 있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이건 대단한 것이지요. 우리 삶을 기름지게 하는, 한번 빠져 볼 만한 것이지요.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상태에서 기혼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할, 옛 것을 벗어 던지지고 새 것, 책임 있는 새 역할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P.48(?) - 이해가 가지 않는 구절이다.
입대해서 군복을 입는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개인적인 삶을 방기하고, 자기가 속한 사회를 섬기기 위해 사회적으로 조직된 삶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중략)
전시에 그 개인은 그 개인으로 행동한 것이 아니라, 개인보다 훨씬 상위 개념인 어떤 무리, 바로 그 자신이 섬기기로 한 무리의 대리자로 행동한 것 아닙니까? 따라서 그런 사람의 행동을 개인의 행동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무적당한 것이지요.
- 나치 전범의 경우, 그들은 모두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일본침략의 경우 그들이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들의 행동을 평가하는게 부적당하다고??
- 방기(放棄) : 내버리고 아예돌아보지 아니함

P.53(++)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의식을 변모시킬 수 있습니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 생각이 삶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생각으로 어떤것을 끌어당기고 있는가? 끌어당김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가? ' 바로 그것이 의식의 변모 아닐까.

P.54
기도나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중략)
의식 수준을 일정하게 유지시키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 상위개념의 의식을 일정수준 유지시켜주는 기도나 명상

P.54
신화라고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꿈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신화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인간의 어마어마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현몽(現夢)하고 있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중략)
신화는 나에게 절망의 위기 혹은 기쁨의 순간, 실패 혹은 성공의 순간에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신화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P.54
한 인간이 다른 사람들 삶의 본이 될 경우, 그는 신화하는 차원으로 들어가지요.

P.55~56
영화에는 확실히 마력 같은게 있어요.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혀다른 곳, 그러니까 영화가 나타내고 있는 상황을 체험합니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그렇지요.

P.60
<<스타워즈>>는 기계가 지배하는 상태를 보여주면서 이렇게 묻지요. 「기계가 인간성을 마모시킬 것이냐, 아니면 기계가 인간을 섬길 것이냐?」 인간성이라고 하는 것은 기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 은하철도 999도 비슷한 메시지 아니었나?

P.62~63(++)
그러니까 종교는 정해진 명령을 입력시켜야 접근이 가능한 일종의 소프트웨어라는 걸 이해해야 합니다.

P.65
그 토인들이 선교사에게 「당신네 신은 문을 꽁꽁 처닫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 늙어서 병이라도 든 것처럼. 그러나 우리 신은 밀림에도 있고 벌판에도 있고 산꼭대기에도 있다. 비가 올 때도 있다」이렇게 말했다지요? 사실인것 같습니다만.
- 소통의 부재라는 것이 이런거 아닌가? 포용력없이 그저 내가 옳다고만 하는 것. 아쉽게도 이런방식은 이제 설득력이 약하다.

P.67
신화가 무엇이지요? 사전적인 의미를 좇자면, 신들에 관한 이야기겠지요. 그러면 응당, 신들이 무엇이냐는 다음 질문이 나와야 합니다. 신은 인간의 삶과 우주에 기능하는 - 개인의 육신과 자연에 기능하는 - 동기를 부여하는 힘, 혹은 가치 체계의 화신(化身)입니다. 신화는 인류안에 있는 영적 잠재력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P.69(+)
온통 도시로 둘러싸여 있다고 하더라도 내면적으로는 즉, 영혼이 있고, 내적인 자기 자신이 있는 세계에서는 여전히 선생님 말씀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군요.
- 내면을 보라. 내면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가 진짜인 것이다. 물론 내면이 흘러넘쳐 외면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내면과 외면이 분리된 경우도 허다하다.

P.69(++)
종교의 관념을 저희가 사는 사회에만 적용시킬 줄 알았지 이 시대의 삶, 이 시대의 인류에게 적용시킬 줄은 모르고 있어요.
- 종교의 관념은 이 시대의 삶과 인간에게 적용되어야 한다.

P.70
우리에게 어떤 신화가 필요한지요?
우리에게는 개인을 그 지역적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지구라고 하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해요.
- 동아리 : 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 최재천교수님의 강의가 바로 이것.

P.76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은 어느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지, 그 마음이 진리를 떠나 있지 않다면 진실을 말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P.77
인류는 기원전 500년 경에 큰 전기를 맞습니다. 이 시점은 석가, 피타고라스, 공자, 그리고 노자가 살던 시점입니다. 이시기는 바로 인류의 이성이 크게 깨어난 시기입니다. 이때부터 인류는 동물적인 힘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 지금은? 더이상 발전할 것이 없는건가?

P.82(++)
오늘날 우리가 할 일은 온 길을 되돌아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이로써 짐승과 물과 바다가 사실은 우리의 형제지간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 최재천교수님의 말

P.83(++)
(새로운 신화의 태동은) 다른 모든 신화가 다루었던 문제를 고루 다루어야 합니다. 말하자면 유아기에서 성장기를 거쳐 성인기에 이르고, 성인기에서 이 세상을 하직하기까지의 모든 문제, 심지어는 이 사회와의 관계, 이 사회가 지니는 자연과 세계와 우주와의 관계까지 고루 다루어진 신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 기존의 신화가 담고 있는 것은 각 시기의 문제와 관계들에 관한 이야기

P.89
신화라는게 말이지, 내가 혼자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 그러면서도 내가 진실일 거라고 믿고 있던 것을 그대로 그려 내고 있단 말이야.

P.91
시대를 달리하고 나타날 때는 옷만 바꾸어 입는다는 것인지요?
한 연극 대본이 각기 다른 곳에서 상연되고 있는 것 같지요.
  • 신화는 서로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알아채야 한다.

P.92
신화에는, 심연의 바닥에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 온다는 모티프가 있어요.
  • 궁극은 구원. 지금의 고달픈 현실을 넘어 편히 쉴 수 있는 곳.

P.92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는 죽음과 재생을 통하여 계속해서 우리 안에 존재합니다.
- 성찬의 전례가 그렇다. 죽음을 통하여 지금 내안의 재생. 그래서 우리안에 존재한다고 한것이다.

P.97(++)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P.101(++)
삶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피조물을 먹는 행위로 이루어져 있어요.
- 인간의 삶이란 건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생성하고 이로써 살아간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P.102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은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 것입니다. 이 상징적이로 역설적인 이미지들이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신비입니다.

P.106
이 세상에 나와 살자면 대극이라는 문맥을 따라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P.107(++)
삶의 신비는 인간이 만든 모든 개념 너머에 있어요. 우리가 아는 것은 모두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많은가, 적은가, 진실한가, 진실하지 못한가 하는 개념의 용어에 갇혀 있어요. 우리는 항상 대극이라는 용어 안에서 생각해요. 그러나 긍극적 실재인 하느님은 대극 너머에 존재하지요.
- 신비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이해할 수도 없는
 - 신비 : 일이나 현상 따위가 사람의 힘이나 지혜 또는 보통의 이론이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묘함. 또는 그런 일이나 비밀.

P.108
<너>와 <나>, 이것과 저것, 진실과 허위....이 세상 만물은 대극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하지만 신화는 우리에게 이 이원성의 이면에는 일원성의 세계가 있어서 대극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음을 암시하지요.

P.108(++)
하느님은 생각입니다. 하느님은 이름입니다. 하느님은 관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모든 생각을 초월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존재의 궁극적인 신비는 모든 생각의 범주 너머에 있습니다.(중략)
최상의 것은 생각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언표(言表)될 수 없습니다.

P.112
원형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바탕되는 관념>이라고 불러도 좋은, 근본적인 관념입니다. 융박사는 이런 고나념을 무의식의 원형이라고 했지요.

P.115
우리는 왜 기도할 때 두 손바닥을 붙이잖아요? 손바닥을 서로 붙이는 것은, 내 안에 있는 신이 상대방의 안에 있는 신을 알아본다는 뜻입니다. 이들은 만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니까요. 인도 사람의 집에 손님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손신으로 대접받는 답니다.

P.118(++)
신화가 인간에 관한 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하시는데, 그 큰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요?
시간의 장으로 현현한 것으로서 인간은 원래 한 존재의 바탕에서 왔다고 하는 이야깁니다.
- 최재천 교수님의 강연

P.118~119(+)
나는 신화를 예술의 여신 뮤즈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로 신화가 예술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시의 영감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거죠. 삶이 시 같고, 우리들은 바로 이 시의 세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느낌은 신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요.

P.119
내가 <시>라고 하는 것은 언어로 된 것이 아니고 행위와 모험으로 이루어진 시를 말합니다. 이러한 시는 행위를 초월한 어떤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이런 시를 접하면 우리들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 구본형선생님이 여기에 머무셨구나.

P.120
신화는 조화시키는 힘입니다.

P.122(?)
「예수가 승천했다」는 말을 은유적 코노테이션(내포된 의미)의 문맥에서 읽는다면, 예수가 사실은 내면화 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는 외계가 아닌 내계로 들어간 겁니다. 모든 존재가 비롯되는 곳으로 들어간 겁니다. 만물의 근원이 되는 의식 속으로, 우리안에 있는 천국으로 들어간 겁니다. 이미지는 외향적입니다만 그 본뜻은 내향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역시 내면을 향함으로써 그의 승천을 좇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바로 알파요 오메가인 우리의 바탕자리로의 되돌아옴, 육신의 껍질을 버리고 육신 자체의 역동적인 바탕자리로 되돌아 옴을 뜻하는 은유인것입니다.
- 모든 존재가 비롯되는 곳이 '내계'인가? 만물의 근원이 의식인가?

P.123(+)
<부처>라는 말은 <깬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여기에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 모두 깨어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 혹은 부처의 의식에 다가서야 합니다.

P.129
우리의 생각은 막연합니다. 언어적이고 단선적입니다. 언어의 현실보다는 이미지의 현실이 훨씬 풍부한데 말이지요.

P.130
마약을 안으로 들어가는 길로 삼지요.
들어가는 길이라면?
경험으로 들어가는 길이지요.
- 경험을 하고자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P.131
우리의 경험은 어떤 공간안에서, 어떤 시간대에 생기는 것이지요.
시간과 공간은 우리의 경험을 한정시키는 감각 능력을 형성 시킵니다. 우리의 감각은 시공의 장에 갇히고, 우리의 마음은 생각의 범주라고 하는 틀에 갇힙니다.
- 마음은 생각과 다른 것이다. 그런데 생각이 특정한 시간과 공간안에서 마음을 잡아 놓는다. 그렇지.

P.132(?)
초월자는 모든 사유의 카테고리를 초월합니다.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이것은 카테고리 입니다. <하느님>이라는 말은 모든 사유를 초월해 있는 존재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라는 이 말 역시 사유를 통해서 생긴 것입니다.
- 그러면 존재하기는 존재하는데 나의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존재가 신이 라는 건가? 존재와 비존재를 따지지 않는다는걸 이해할 수 없다...

P.135
이건 동양 특유의 방법입니다. 아무리 현자라도 질문을 받지 않으면 가르쳐 주지 않지요. 알고 싶어하지 않는데 억지로 입을 열게하고 집어 넣어줄 수는 없는 거지요.
- 구해야 찾을 수 있는 법이지. 구하지않는 막연한 기다림은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P.138(++)
본질적 성질상, 인생은 죽이고 먹음을 통해서야 살아지는 무서운 신비의 덩어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없이 인생을 살겠다는 것, 인생은 원래 이런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지요.

P.148(+)
신화와 의례는 마음을 몸에다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삶을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P.149(++)
신화는 다른 사람들은 그 내적인 삶의 길을 어떻게 갔고, 나는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를 가르쳐 줍니다.
- 좋아. 그런데 그 많은 신화중 나의 표본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이지?

P.154(+)
의례는 나의 개인적인 충동 때문에 너를 죽인 것이 아니다. 이것도 다 자연의 법칙에 화합하는 행위다. 이런 뜻을 나타내고 있지요.
- 자연과의 화합과 조화. 신화의 이미지.
- 아바타에서 나온 장면

P.163
때로는 <그대>가 <그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관계를 모르지요. 인디언과 짐승과의 관계와, 우리와 짐승과의 관계는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인디언들과 달리 우리는 짐승을 하등한 생명으로 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곧 주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나 수렵민들에게는, 앞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짐승은 많은 의미에서 인간을 앞섭니다.
- 그대와 그대의 과계가 아닌, 수단의 단계로만 현대가 인식하고 있다.
- 그대와 나는 다른 곳에서 온것이 아니라, 최초의 같은 곳에서 본화된 형제이다.

P.169
의례의 마당은 신화가 드러나는 마당입니다. 의례에 참가한다는 것은 곧 신화에 참가하는 것이지요.
- 정신적 변모가 드러나는 마당

P.171
한 몫의 여자가 되는 거지요. 여자라는 게 뭡니까? 생명을 나르는 수레 아닙니까? 생명이 여자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면 여자는 이 생명을 낳고 먹여서 기릅니다. 여자의 힘은 대지의 여신이 지닌 힘과 동일시 됩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해야 하는 일은 이거을 깨닫는 일입니다.
- 여자는 대지의 여신이라는 것

P.173
의례를 소중하게 재현시킴으로써 그 가르침이 살아 있개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례 중 대부분이 죽고 말았어요.
- 의례가 많은면 사라졌다. 왜 그런걸까?
- 187에서 이야기한 경제화, 실요화 때문인가?

P.187~188(++)
우리 삶의 겨냥은 지나치게 경제화, 실용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 갈수록 순간순간의 요구가 어찌나 집요한지 우리는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의 참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세대를 살다보면 우리는 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을 합니다. 우리 천복(天福)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전축을 틀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 놓아도 좋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시시한 음악을 올려 놓아도 좋습니다. 좋아하는 채을 읽어도 좋겠지요.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이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말이지요.
- 구선생님이 머무시던 자리. 내가 가야 할 길.

P.194~195
왜 우리가 새삼스럽게 신화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까?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 잡아 줍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못하고 있죠.
그런 종류의 관심에서는 멀어졌지요. 옛 사람들의 삶의 목표는 항상 영적인 원리를 의식하고 사는 삶이었어요.
- 영적인 삶에 대해서 관심은 없어졌다. 그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많은 돈과 많은 시간을 원할뿐.

P.196
궁극적인 모든 영적인 암시는 침묵에 담겨져 있지요. 이 침묵은 소리 너머에 있어요. 육(肉)이 된 말씀이 최초의 소리 입니다.

P.196
자연 위에서, 자연에 군림하는 것으로서의 초자연적인 존재라는 관념은 정말 몹쓸 것입니다. 중세에 이 세상을 황무지로 만들어 버린 거이 바로 이러한 관념입니다.
- 자연은 군림의 대상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 대상이다.

P.197
읽는 행위를 통해서 마음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삶에 대한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 삶에 항상 다른 깨달음을 유발합니다.

P.201
선교사가 자기가 생각하는 하느님, 자기의 신을 들여와도 시은 그땅 살마들이 상상할 수 있는 신으로 변모합니다.
- 토착화된다. 익숙한 것을 입히는 것쯤으로 이해하면 되겠지.

P.202
가치. 즉 평가의 결과는 삶을 지배하는 조건에 딸 달라집니다.
-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는 것이지.

P.210(++)
미사의 성찬식에서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이 곧 구세주의 피요, 살이라는 것을 배웁니다. 그것을 먹으면 먹는 사람은 내면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살과 피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가 되어 역사하는 것이지요.
- 그러니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P.212
다시 낙원으로 들어가려면 우리는 공포와 욕망이라고 하는 이한 쌍의 대극을 극복해야 합니다.
조화시켜야 한다는 뜻이게지요?
초월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모든 깨달음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경험입니다. 육(肉)으로 죽고 영(靈)으로는 다시 나야 한다는 겁니다.
- 낙원은 죽어거 가는게 아니라 지금 낙원으로 가려면 '공포와 욕망'이라는 것에 초월해야 한다. 실제의 죽음이 아니라 정신적 죽음을 거쳐 공포와 욕망의 실체를 확인한 후 넘어서야 한다.

P.219
예수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은 사실은 「네 이웃은 곧 <너>이니까 사랑하라」는 뜻이겠군요.

P.223(++)
우리가 죽어야 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이 죽음을 통해서 더 큰 삶의 길로 나서야 하는 것입니다.

P.224
어머니가 어머니 대지의 상징이 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를 낳으신 분이자, 그 살로 우리를 먹이신 분입니다. 결국 우리 어머니의 몸이 곧 우리의 양식인 것이지요.
  • 삶은 그렇게 먹음으로 살고, 먹임으로써 죽는 건가보다. 

P.229
나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다. 이게 마지막 구절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천복(天福)을 좇아 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P.230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 천복을 한 번도 좇아보지 못한고 산 셈입니다. 천복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생각해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P.231
이 바퀴의 테를 잡고 이으면 반드시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가 있어요. 하지만 굴대를 잡고 있으면 늘 같은 자리, 즉 중심에 있을 수 있답니다. 성혼 서약에도, 성할 대나 아플 때나, 넉넉할 때나 가난할 때나,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나... 나는 그대를 중심으로 맞아들이고 그대를 천복으로 좇는다. 그대가 나에게 줄 재물도 아니요, 그대가 나에게 줄 사회적 지위도 아닌 오직 그대만 좇으리다... 뭐 이런 대목이 있지요. 이게 바로 천복을 좇는 것입니다.

P.232
부모 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자식들로 하여금 천복을 찾게 해 줄 수 있습니까?
아이를 잘 알아야하고, 아이에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핳ㅂ니다. 그러면 아이를 도와줄 수 있지요.

P. 232
천복거리를 찾은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

P.234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 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P.235
선생님은 천복을 좇는 그 순간 순간에, 혹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저에게는 그러 때가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늘 하지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늘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따라다닌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굳게 믿는 미신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도 내가 하는 생각은 이렇습니다. 천복을 좇으면, 나는 창세 때부터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삶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입니다. 이걸 알고 있으면 어디에 가든지 자기 천복의 벌판에 사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문을 열어줍니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을 열릴 것이다」

P.238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P.241
변모라는 것은 많은 위험을 가치는 굉장한 변화이지요.

P.242
결국 모든 신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의식의 변모입니다. 전에는 저렇게 생각해 왔지만 지금부터는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의식의 변모는 이로써 시작되는 것이지요.

P. 244
도덕적인 목표는 자기가 속한 민족을 구하는 것, 특정 개인을 구하는 것, 어떤 관념을 받드는 것도 될 수 있지요. 영웅은 무엇인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도덕적인 것이지요.

P.254(++)
뭐가 되자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한지도 모르고 하는 한심한 대답인것이지요.
그저 유명해지고 싶은 거군요.
그저 유명해지고 싶다. 이름만 얻고 싶다는 건데, 한심해요.

P. 255
영웅은 존경의 대상만 되는 것이 아니라, 동정의 대상도 될 수 있다 싶을 때가 있는데요. 많고 많은 영웅들이 남들을 위해서 자기 자신의 필요를 희생시키니까요.
영웅은 다 그렇지요.
- 스파이더맨에서 나온 갈들와 고민

P. 261
소년은 먼저 어머니에게서 떨어져야 하고, 삶의 에너지 전부를 자기에게 쏟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른이 됩니다. “아버지를 찾아 가라”는 신화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P. 271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늘 명령과 지시를 받으면서 살지요. 아이들이 달력을 보면서 휴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는 휴일이 되어야 저 자신에게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직장인들도 마찬가지

P. 276
고래는 우리의 무의식에 갇혀 있는 생명의 힘을 상징합니다. 은유적인 의미에서 물은 무의식이고, 수생동물은 생명 혹은 무의식의 에너지 입니다.

P. 278(++)
그런데 누군가가 저에게 「그래, 조지 루카스의 상상력도 좋고, 조셉 캠벨의 신화학도 좋아. 하지만 그게 내일생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이런 말을 합니다.(중략)
이 세상에는 자기 내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이 세상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지를 남의 말에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 신화는 본이니 그 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자신의 직관안에서 천복을 좇아야 한다. 물고 늘어져야 한다.

P. 280(++)
어떻게 하면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죽일 수 있습니까? (중략)
내가 일반적으로 학생들에게 내리는 처방은 「그대의 천복을 따르라」는 겁니다. 그 천복을 찾아내되, 그 천복에 따르는 걸 절대로 두려워하면 안됩니다.(중략)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바로 그 겁니다. 만일에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어」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들 안에 갇혀 있는 용입니다. 「안돼, 나는 작각가 될 수 없을 거야」라든지 「나는 아무개가 하는 일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거야」 이렇다면 이게바로 이르들 안에 갖혀 있는 용입니다.

P. 281
우리들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됩니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영혼이 없는 세계는 황무지 입니다.

P. 281~282
용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자아에 속박된 ‘자기’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용 우리에 갇혀 있어요. 분석심리학은 용을 쳐부수고 무너뜨림으로써 우리를 보다 넣은 관계의 마당으로 이끌어 냅니다. 궁극적인 용은 우리 안에 있어요. 우리를 엄중히 감시하고 있는 우리의 자아, 이게 바로 용입니다.

P. 282
우리가 욕망하는 것, 우리가 믿으려 하는 것, 우리가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우리가 사랑하려는 것, 우리를 옥죄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 이게 바로 자아랍니다. 이건 아주 조그만 것일 수도 있는데, 어떨 때는 우리를 아주 꼼짝 못하게 합니다. 이웃의 말에 따라 행동하다 보면 조만간 꼼짝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옵니다. 이 경우 이웃이 바로 우리의 내면에 비치는 용일 수 있어요.

P. 284
스승이 할 수 있는 것은 ‘암시’입니다. 스승되는 사람은 등대와 같지요. “이 너머에는 암초가 있으니까 키를 똑바로 잡아라, 저 너머에는 해협이 있다” 이렇게 가르치는 등대와 같지요.(중략)
젊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가능성을 암시하는 본을 만나는 일입니다. 니체는 “인간은 병든 동물”이라고 했지요. 인간은 그 병을 어떻게 치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 동물입니다.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의 삶입니다.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살아 있는 신화는 우리에게 우리 시대에 알맞은 본을 제시합니다.

P.286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
- 호스피스 병동에서 주로 하는 것

P.286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면 인생은 전처럼 다시 즐거워집니다. 우리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삶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죽음을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한 측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무조건적인 긍정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삶이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죽음으로, 죽음의 순간에 끝나는 법입니다. 공포를 정복하면 용기 있는 삶의 길이 열리지요.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의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로 공포의 극복입니다.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 업적의 성취가 있는 거지요

P.291
욕망과 공포라고 하는 이 무서운 계곡을 벗어나야 성취의 길이 열리게 되어 있어요.

P.295
어머니가 정해 준 범위를 넘어서지 않으면, 기존의 질서를 부수지 않으면, 기존의 법을 어기지 않으면 창조적인 행위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 우리 서비스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거 같다.

P.304
살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신화는 읽어 본 적이 없어요.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칩니다.

P.305
고통에서 놓여 나고 싶거든 고통이 곧 삶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정하세요. 우리는 오로지 고통을 통해서만 고상한 존재가 될 수 있답니다.
- 인정한다고 고통이 줄어들까마는...

P.307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우리 안에 있어요.
-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거겠지. 그 안에서 구하라는 가르침

P.311(++)
사람들은 묻습니다. 신화는 결국 거짓말이 아니냐고요?
아니에요.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에요.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 뿐이에요.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정말 신화를 잘 나타낸 말입ㄴ디ㅏ.이게 왜 <버금>이냐 하면, 궁극적인 것은 결국 언어로 드러날 수 없기 때문이니다.
- 언어 넘어에 있는 깨우침. 통찰

P.315
아버지를 찾는 다는 것은 우리의 개성과 운명을 찾는 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개성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고, 몸과 때로 마음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는다는 말이 있어요.그런데 그 개성이라는 게 이게 신비로운 겁니다. 개성이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운명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버지 탐색으로 상징되는 이 운명의 탐색을 떠나는 거지요.

P.340
신약성서에는 「여수님 안에는 남성도 없고 여성도 없다」는 참으로 멋진 말이 있습니다. 궁극적인 의미에서는 남성도 없고 여성도 없다는 뜻이겠지요.

P.341
여성 원리는 자식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이 아닌, 포괄적인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격합니다.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질서나 사회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닙니다. 실제로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속에서도 그런 방향으로 기능하지요. 어머니가 자식에게 본성을 부여한다면 아버지는 자식에게 사회적인 성격을 부여합니다. 말하자면 그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할 것이냐를 가르치는 것이지요.

P.34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까?(중략)
우리는 의례를 통해서만 신화적인 삶을 체함 할 수 있ㅅ브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우는 것은 바로 그런 체험을에의 참여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 영적인 참여를 통해서 영적으로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P.352
가슴이라면.....
타인을 향하여 열려야 할 우리의 기관이지요. 가슴을 열고 남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는 게 바로 짐승들과는 다른 인간의 특질 아닙니까?

354
진정한 결혼은 상대에게서 동일성을 인식한 데서 시작되는 결혼입니다.
- 그래 가끔 느껴.

P.355(++)
자기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어떤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내> 삶과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 자신감. 일종의 확신

P.362
여성은 이 남자가 자기와 사랑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테스트한 겁니다. 중세의 사랑놀음은 욕정의 노름이 아닌 겁니다. 그러므로 중세의 사랑 놀음은 욕정의 놀음이 아닌 겁니다.
- 그러면 복종을 강요하는 소유하는 사랑놀음인건가?

P.363(+)
음유시인들의 가슴속에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게 바로 권력에의 의지에요. 그들의 가슴에 있었던 의지는 개인적인 경험에의 의지와 경험을 통해 자기 존재를 승화시키려는 의지예요.

P.364
눈과 눈이 만나는 순간의 짜릿함, 그 이후에 찾아오는 고통의 순간....사랑의 고통과 고뇌를 고칠 수 있는 사람은 고통과 고뇌를 안긴 사람뿐이라는 뜻입니다.

P.365
인간의 내적 관심이 떠나 버린 땅, 곧 황무지가 아닙니까? 황무지의 기본적인 성격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살기는 살되, 죽은 삶을 살고 있는 땅, 자기 삶에 해해 아무 용기도 없이 사는 땅, 남이 하는 대로, 남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사는 땅이 바로 황무지 입니다. <<황무지>>를 통하여 엘리어트가 표현하려 한것도 바로 이겁니다.

P.367(+)
가장 바람직한 삶은 빛을 항하여, 남을 이해함으로써 남의 고통에 동참하는 자비를 통해서 가능해지는 화합의 관계를 항하여 나아가는 삶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배가 의미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중세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겁니다.

P.370
왜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공존할 수 없을까요? 다른 종교가 뭘 그렇게 잘못하고 있길래요?(중략)
권력! 권력이에요.

P.373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속이지 않는 태도, 약점을 따지지 않는 태도....이런 걸 성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P.381
사랑은 인생의 발화점이지요. 인생이라는 게 슬픈 것이기 때문에 사랑도 종국은 슬픈 겁니다.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은 법이지요.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참습니다.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P.384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바로 이 신화 이미지를 명상하면 우리 내부에 있는 이 잠재력을 촉발할 수 있는 겁니다.

P.386
명상이란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P. 420(++)
누가 나에게 「그럼 당신은 그 잠재력을 어떻게 사오?」 라고 묻겠지요. 내 대답은 「천복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안에는 우리가 중심에 이르렀을 때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우리가 바른 궤도에 들어섰는지, 혹은 궤도에서 이탈했는지를 아는 어떤 것이 있어요. 만일에 돈을 벌기 위해 그 궤도를 이탈한다면 그 사람은 인생을 잃는 겁니다. 중심에 머물기 위해 돈 버는 일을 포기 한다면 그 사람은 천복을 얻는 겁니다.

P.422
<옴>이라는 걸 좀 설명해 주십시오.
<옴>은 우리귀가 들을 수 있는, 만상이 체현하는 우주 에너지의 소리입니다.

P.423
그래서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있는 것, 이 한마디, “아…..”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데 있는 것이지요.

III. 내가 저자라면

1. 목차에 대하여
대담을 그대로 책으로 엮다보니 일관성을 가진 흐름보다, 사회자의 개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포괄적으로 실은듯 하다. 내용을 조금 세분화 하고 대화로 이어진 부분을 한번씩 정리해주는 편집이 있었으면 깔끔했을 거 같다. 

2. 아쉬운 점
조금 어려운 책이었다. 내용을 찬찬히 정리하면서 읽어가다가 나중에 시간에 쫓겨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적었다. 시간을 두고 다시 한번 읽어보고 내가 편집자의 자세로 다듬어 봄직하다. 시간이 될 때 꼭 다시 읽어볼 책이다.

3. 이 책의 장점
신화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의 해답은 어느정도 얻었다. 단순히 꾸며낸 이야기, 모험이 있는 재미난 이야기의 관점이 아닌, 사람의 본을 배운다는 새로운 배움이 있었다. 그리고 종교를 돌아보는데 보다 넓은 시각을 갖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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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10 08:19:55 *.124.22.184

책을 보며 궁금한 것들을 찾아봤나봐요. 링크가 많이 걸려있네요. 링크들은 다음에 시간내서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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