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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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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30일 18시 35분 등록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이승환 옮김, 김영사, 1994)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by Todd G. Buchholz


1.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이 세상은 젖과 꿀이 넘쳐흐르는 곳이 아니다. 더 맑은 공기와 더 빠른 자동차, 더 큰 저택과 더 넓은 공원, 더 많은 일과 더 많은 휴식 사이에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단지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경제학은 선택의 학문이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라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선택의 결과를 예측하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뿐이다.

애덤 스미스 이래 인류역사가 배출한 대 경제학자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 세상에는 주요 경제학 이론들로는 설명 못할 현상들이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학 원리들을 무시하는 국가나 개인은 어리석은 도박행위를 하는 셈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입을 모은다.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점화된 이래 인류는 항상 미래는 현재보다는 나을 것으로 간주해왔다. 우리는 현재상태를 최저한도로 잡는다. 허나 역사상 끊임없는 지속적 발전의 유래는 없다.

이 책은 근대 경영학의 주류를 살펴보고 과연 누가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하여 이렇게 영속하는 경제학의 모형들을 만들어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짐으로써 그 경제학자들의 지혜를 좇고자 한다.


2. 애덤 스미스의 재림(再臨) (Adam Smith, 1723∼1790)

스미스는 일생동안 한 번도 경제학을 배우지도 가르치지도 않았다.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20세기 전까지 학자들은 경제학을 철학의 한 분야로 간주했다.

1776년 3월, 스미스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쓰기 시작했던 책 「국부론」이 드디어 출판되었다. 희랍 비극에서 신들이 지상의 영웅들에게 벼락을 내릴 때의 그 도도한 자신감으로 세상을 견지한 스미스는 9백 페이지에 달하는 분석, 예언, 사실, 우화 들을 쏟아내었다. 마키아벨리와 홉스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인간을 이상화시키거나 미화시켜 생각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모든 허물도 함께 받아들여서 발견해 낸 인간의 공통적 욕구, 혹은 성향은 스미스 경제 분석의 바탕이 되고, 나아가서 고전학파 경제학의 기초를 이룬다.

서구 문명사의 가장 획기적 시기, 사회 변동과 지식의 대변혁, 경제의 폭발적 성장이 사람들을 당황케 하던 그 시기에 애덤 스미스는 세상의 질서를 제시해 주었다. 분명 그는 시장을 발명하지도, 경제학을 창시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시장이 어떤 것인지, 경제학이 무엇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발간 후 75년 동안 「국부론」은 세상 경제학자들의 지식의 전부였다. 그리고 2백여 년이 지난 후 「국부론」의 아이디어들은 부활되어 절찬을 받았다.


3. 맬서스 : 인구폭발과 멸망의 예언자 (Thomas Robert Malthus, 1766∼1834)

1798년 맬서스는 19세기를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낙관하던 사람들의 낭만적 꿈을 앗아가 버렸다. 인구과다로 인하여 사회 붕괴와 소멸을 맞게 되리라고 전망했던 것이다.

“정치경제학자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성급한 단순화와 일반화에 있다. 포괄적인 경험들을 통한 충분한 여과과정을 거친 이론만이 타당성과 유용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맬서스는 농업혁신의 영향을 간과했고 인구증가의 근본원인에 대해 피상적 분석을 했다. 논리의 지나친 단순화와 일반화라는 오류를 범한 맬서스는 유죄 판결을 면하기 어렵다.

1834년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맬서스는 자신이 인류의 적(敵)이 아니라는 사실을 설득하고 다녀야 했다. 아직도 연설가들과 작가들은 맬서스를 좋게 봐서 기분 나쁜 사제로, 나쁘게 봐서는 만성절(halloween)에나 등장할 법한 마귀로 묘사한다. 하지만 맬서스는 개탄한다. 사람들이 쓴 명랑한 가면이 그들의 시야를 가려버렸다고. 그리하여 그들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터널 끝에 보이는 빛은 광명천지를 뜻하는 빛이 아니라 이쪽으로 질주해 오는 기관차의 불빛이라는 것을.


4. 데이비드 리카도와 자유무역론 (David Ricardo, 1772∼1823)

리카도의 이론은 경제학의 여러 원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난해하고 반직관적인 이론이다. 그러나 이 교묘한 이론은 현대 경제학 이해의 필수 관문이다. 애석하게도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이해하는 정치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 결과 각종 무역제한, 관세, 무역전쟁 등이 세계 경제사를 흐려놓았다.

무역의 문이 활짝 열리면 기업들은 어쩔 수 없이 국가 경쟁력이 낮은 산업을 포기하고 경쟁력이 높은 산업을 취하게 되어 산업구조의 개편이 이루어진다. 이에는 당연히 고통이 따른다. 경쟁력이 약한 산업분야의 공장들은 문을 닫게 되고 실업자는 증가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손해는 보호무역이 소비자들에게 끼치는 해악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정부로서는 차라리 수입을 개방하고, 이에 따라 발생한 국내 실직자들에게 연금을 주면서 새로운 사업 분야의 기술교육을 시키는 편이 훨씬 낫다.

케인스와 슘페터는 리카도를 공격했지만 마르크스, 왈라스, 마셜, 빅셀 등은 리카도의 위대함을 찬양했다.
“경제학이 본질적으로 분석의 한 기기(器機)라면, 다시 말해 실질적 결과의 합산체라기보다 사고(思考)의 한 방식이라면, 리카도가 경제학의 기법을 창조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5. 존 스튜어트 밀의 격정적 일생 (John Stuart Mill, 1806∼1873)

런던에서 태어난 밀은 어머니의 젖 맛을 채 잊기도 전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아버지 제임스는 그가 3살 때 희랍어를 가르쳤다. 8살이 되었을 때, 벌써 플라톤, 크세노폰, 디오게네스 등을 원문으로 깨우치고 라틴어 학습에 들어갔다. 8살에서 12살 사이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리스토파네스를 끝내고 도서관에 있는 방대한 분량의 책들을 모두 섭렵했으며 미적분과 기하학을 마스터했다. 그의 취미는 역사공부였고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밀은 중년의 위기를 20세에 맞았다. 수년간 그는 “인생의 목표라 할 수 있는 것, 즉 개혁자가 되겠다는 이상”을 지니고 살아 왔었다. 그러나 1826년의 한 겨울날 그는 ‘신경이 무감각해지는 상태…… 다른 때에는 기쁨으로 와 닿을 일도 시시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는 그런 상태’를 체험한다. 그는 자신에게 운명적 질문을 던져보았으나 참담한 대답을 듣고 만다.

그는 일생동안 전쟁에 나가지도, 결투를 신청하지도, 언성을 한번 높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는 편협한 자, 엘리트주의자, 합리주의자, 사회주의자들과 격전을 치러야했고 유년시절 머리 속에 새겨졌던 가치관들에 끊임없이 재도전해야 했다. 그가 가장 용맹스럽게 쓰러뜨린 상대는 스스로에 내재한 가상의 적, 바로 지성과 관념의 적들이었다.


6. 격분한 현자(賢者) 카를 마르크스 (Karl Marx, 1818∼1883)

마르크스는 역사의 진로를 노예제도에서부터 시작하여 봉건제도, 자본주의제도, 사회주의제도의 순으로 엮어 나간다. 그것은 ‘생산’이라고 하는, 더 자세히 말해 ‘인간과 생산의 관계’라고 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토대 위에 놓여진 길이었다.

모든 생산제도는 필연적으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낳는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유재산을 거머쥔 지배계급은 대중을 최면 시킨다. 미국인들은 갖은 설득과 구슬림에 현혹되어 증권, 채권, BMW 세단을 꿈꾼다. 물론 개개인은 이러한 꿈이 자기만의 꿈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주관적으로 가치화한다. 지배계급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토지, 노동, 자본의 변동이 생길 때마다 위협을 받게 된다. 자본주의는 계급제도에 기초한 것이기에 혁명의 발발과 노동자들의 승리는 불을 보듯 뻔한 것이었다. 무계급 사회만이 혁명을 피할 수 있다. 그리고 무계급 사회는 마침내 도래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전망했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선결조건이다. 자본주의는 과도하게 생산적이기에, 생산에 있어 보다 덜 적극적인 사회주의의 발생을 허용하게 된다.

현재까지 마르크스의 이상을 제대로 실현한 국가는 하나도 없다. 마르크스의 꿈은 어쩌면 자원부족, 이기심의 팽배, 사회악의 존재 등의 문제로 가득 찬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등장하는 톰 조드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네가 어디를 둘러보든 나는 거기 있을 거야. 굶주린 자들의 투쟁이 있는 곳에 나는 있을 거야.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곳에 나는 있을 거야…… 사람들이 격분하여 고함을 지르는 곳에도…… 사람들이 스스로 지은 집에 살며 스스로 재배한 식량으로 연명하는 곳에도 나는 있을 거야.”
마르크스의 미명 아래 자행되었던 모든 학대와 잔학상들을 감안할 때, 이것이 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지도 모른다.


7. 앨프레드 마셜의 한계적 시야 (Alfred Marshall, 1842∼1924)

한계이론을 처음 만들어 낸 사람은 앨프레드 마셜이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마셜은 다음의 네 가지 이유 때문에 특별히 다뤄질 것이다.
첫째, 한계분석을 가장 명료하고도 광범위하게 적용시킨 이는 마셜이었다.
둘째, 마셜은 오늘날 미시경제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계전통을 확립했다.
셋째, 마셜은 케인스, 피구, 로빈슨에 이르는 20세기 대 경제학자들을 가르쳤다.
넷째, 밀의 일생과 깨끗하게 대조되는 마셜의 일생은 한계정신과 더불어 당시의 지적 조류를 멋지게 반영한다.

밀의 마음은 항상 질풍노도(疾風怒濤)를 헤치고 있었고 마르크스의 두 눈은 언제나 선동(煽動)의 불길로 타고 있었다. 유명 경제학자들 가운데 마셜만큼 이 둘과 대조적이었던 인물도 없으리라. 마셜의 일생은 나른한 일요일 오후에 늙은 사냥개만큼이나 느긋했다. 그의 내적 외적 잔잔함은 바로 그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반영했다.

마셜은 케임브리지의 전설적 노교수로 재직하며 82세의 장수를 누렸다. 케인스는 마셜의 놀라운 재능을 격찬했다. 대 경제학자라면 마셜처럼 수학자이자 사학자이며 정치가에다 철학자이어야 한다고 케인스는 지적했다. ‘과거의 경험아래 미래를 목표로 현재를 연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마셜은 단순히 해답을 기다리지 않고 해답을 찾아다녔다. 해답이 정책으로 채택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의회에 나가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어떤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신중한 고려 없이 수용하지는 않았다. 다른 이의 어떤 아이디어라 할지라도 세심한 검토 없이 물리치지는 않았다. 그는 고전학파와 한계학파 경제학을 결합시키려 했다. 결국 그는 꿈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부드러운 황금과도 같은 마음과 다이아몬드처럼 예리하고 투명한 정신을 융화시키며.


8. 구제도학파와 신제도학파

보통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은 지대, 이윤, 노동비용 등과 같은 일반적 경제학의 범주에서 탈피하여 사회의 법, 기풍, 제도와 같은 것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구제도학파의 거장 토스타인 베블런은 건설적 이론가였다기보다는 파괴적 비평가였는지도 모른다. 20세기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엔지니어들의 급격한 부상은 자본주의의 철학적 기반을 뒤흔들 것이라고 베블런은 예견했다. 엔지니어는 물론이요 하급 기능공들까지 과학적으로 사고함에 따라 모든 상징주의나 허례허식, 신(神), 국가, 사유재산에 관한 추상적 믿음들은 사라질 것으로 내다보았던 것이다.

베블런식의 농담과 냉소까지도 충실히 답습한 학자로는 단연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를 꼽을 수 있다. 갤브레이스는 긴 인생행로를 거치는 동안 언제나 논란의 소지가 많은 의견들을 내 놓았다. 그는 스스로 베블런과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둘 다 현대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해 냉소적인 시각을 지녔다. 애매모호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며, 경제학자들이 검증해 볼 수 있는 그 어떠한 패러다임이나 방식도 고안해 내지 않았다.

신제도학파는 베블런과 갤브레이스의 업적을 완전히 뒤집어 버렸다. 그들은 사회제도가 마셜의 경제학과 모순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셜의 칼과 가위를 들고서 제도를 해부하려 든다. 그들의 공통점은 사회제도에 대한 호기심과 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자신감으로 뭉쳤다는 것이다. 또한 법률의 세계를 침범하여 변호사나 판사들이 모든 법적 판결을 마셜의 눈을 통해 볼 것을 촉구했다.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법률가는…… 공공의 적이 되기 쉽다.”
그들은 경제학이 사회 전체만큼이나 크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9. 구원에 나선 풍류도락가 케인스 (John Maynard Keynes, 1883∼1946)

케인스는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만큼 똑똑했다. 케임브리지의 격리된 낙원에서 출발한 케인스였으나 그의 사상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케인스주의자란 다음의 두 가지를 믿는 사람을 말한다.
① 민간 경제가 완전고용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② 정부의 지출은 경제를 활성화시켜 불완전고용의 틈을 메울 수 있다.
케인스는 고용문제에만 치중하지는 않았다. 24권이 넘는 그의 「논설집」에는 통화문제, 무역문제, 전후 복구문제 등이 광범위하게 다뤄져 있고 아인슈타인과 뉴턴에 대한 우아한 수필까지 실려 있다.

케인스는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린 모두 죽고 없다.”고 말했었지만 사실은 미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었다. 1930년에 출판된 「우리의 자손들에게 주어진 경제적 가능성」에서는 다음처럼 아름다운 미래를 전망한다.
맬서스는 틀렸다. 칼라일도 틀렸다. 경제학의 최대 숙제라 할 희소문제는 1백년 이내로 해결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부모세대가 못 이룬 것은 자식세대가 이루어 냈으며, 부모세대의 꿈은 자식세대에겐 현실이었다. 지난 2백년간 세계경제가 걸어온 길은 울퉁불퉁하고 험난한 길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은 줄기차게 상승하는 길이었지 않은가. 우리의 자손 역시 부모의 어깨를 딛고 올라 언젠가는 모든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물욕을 충족시키고 나면 인간은 친절이나 사랑과 같은 덕목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만족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냉장고가 먹을 것으로 꽉 차고 앞마당에 번들거리는 자동차가 생기면 그 다음 할 일은 무엇인가?
배부른 세상은 실존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차게 될 지도 모른다. 인간은 종종 목표의 획득보다 목표의 추구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10. 케인스 학파와 통화주의자들의 대결

케인스주의자들이 생각하는 국가경제를 자동차에 비유해보자. 액셀러레이터에는 ‘정부지출 증가+세금인하’라 적혀 있다. 브레이크에는 ‘정부지출 감소+세금인상’이라 적혀 있다. 정부가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적절하게 밟아가며 조심스럽게 운전할 경우 경제성장과 물가안정은 동시에 이뤄질 것이다.
통화주의자들의 자동차에도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는 달려 있다. 그러나 액셀러레이터에는 ‘통화량 증가’라 적혀 있고 브레이크에는 ‘통화량 감소’라 적혀 있다. 누가 운전석에 앉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통화주의자들은 이견을 제시한다. 케인스주의자들은 국회가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화주의자들은 금융계를 관장하는 연방준비은행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케인스주의자들과 통화주의자들은 실로 불꽃 튀는 격전을 벌여왔다.

1970년대 말에 이르러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통화량을 신중하게 감시하기 시작했다. 주류경제학은 통화주의자들의 많은 제안들을 받아들였으며 더 이상 무턱대고 돈을 경시하거나 재정정책을 신봉하거나 하지는 않게 되었다. 경제학자들은 더 이상 통화주의자와 케인스주의자로 깨끗하게 양분되지는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총 수요를 조절해 보려는 정책에서 총 공급을 조절해 보려는 정책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방정부가 국가의 생산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생산력의 증대는, 곧 생활수준의 향상을 뜻한다. 생산력을 증대시키려면 공장, 기계, 연구, 교육 등에의 투자가 늘어나야 한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생산력의 증대를 지체시키는 요인으로 정부의 어설픈 세금정책을 지목한다.


11. 공공선택학파 : 정치는 곧 비즈니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정치를 그저 성가시고 이해할 수 없고 비경제적인 장애물 정도로 여기는 반면 공공선택학파는 정치를 경제학적 도구로서 연구 분석되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주장한다. 정치란 결국 경제활동이다. 이것은 그냥 팔을 젓고 회피하려 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관료들과 입법자들이 어째서 종종 훌륭한 정책을 마다하고 열악한 정책을 택하는지 진지하게 연구해 보아야 한다.

이익으로 뭉친 단체들은 개별적으로 그다지 큰 이해관계가 걸려 있지 않은 소비자들을 짓밟는다. 그러나 필경에는 국가의 효율과 소득이 떨어짐에 따라 국민 전체는 큰 피해를 입는다. 누구를 탓해야 하나? 선뜻 떠오르는 악당이 없다. 특수 이익집단들은 개개인으로부터 워낙 적은 양만큼씩 갉아먹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무능한 탓도 아니다. 국회의 활동을 감시하는 데에는 돈과 시간이 든다. 당장 나 자신에게 돌아올 피해가 2백 원에 불과하다면 그로 인해 남이 부당하게 누릴 혜택은 무시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국회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어보는 데에 차라리 돈이 더 들지도 모르겠다.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합리적 무시’라 부른다.

정부의 규모 확대는 곧 정치가들이 국민들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워짐을 뜻한다. 정부 관리들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국민들이 모르게 할 수 있다. 그들은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 버린다.
정부의 규모가 커지면 정치체제를 감시하는데 드는 비용은 증가하지만 정치체제를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은 절감된다. 이제 정부를 설득시키기 위해 광장에서 청중을 모아놓고 연설할 필요가 없어졌다. 정부요인 몇 명과 은밀히 만나기만 하면 된다. 센트럴 파크에다 연단과 마이크를 설치할 필요 없이 양키 스타디움의 특별석 몇 개를 예약해 두면 된다.


12. 합리적 기대가 지배하는 기상천외의 세상

중상주의자들은 정부가 경제를 돕는다고 했다. 그 다음 스미스가 나와서 정부는 경제를 해칠 뿐이라고 했다. 케인스가 등장해서는 정부가 경제를 도울 수 있다고 했다. 통화주의자들은 정부가 경제를 도울 때도 있지만 해칠 때가 더 많다고 했다. 공공선택학파는 정부가 보통 경제를 해친다고 했다. 이제 합리적 기대이론학파는 선언한다. 정부의 개입이란 요술쟁이의 장난처럼 환상에 불과한 것, 그것은 현실을 바꿔 놓을 수 없다!
현대 주류 경제학은 합리적 기대이론을 전적으로 신용한다기보다 그것에서 약간의 진리를 캐어 낸 다음 주류이론에 접합시키려는 태도를 보인다.

증권시장은 가장 효율적인 시장이다. 너무나 유동적인 시장이어서 누구나 쉽게 사고 팔 수 있다. 거래비용은 거의 들지 않는다. 심지어 투자가들은 할인중개인들에게 자신의 증권매매를 위탁할 수도 있다. 모든 정보가 신속하게 분석, 처리되기에 투자가들은 대단히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즉, 합리적 기대이론의 기본전제에 부합되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재화와 용역을 파는 거시경제학의 시장은 훨씬 복잡하고 경직되어 있다. 노동자들이 주식을 팔듯이 간단하게 직장을 그만둘 수 있을까? 기업은 주식을 거래하듯이 그렇게 간단하게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공장 문을 닫거나 새 공장을 지을 수 있을까? 물론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

합리적 기대이론의 비판자들은 두 개의 질문을 던진다.
① 사람들은 묵은 버릇에서 벗어나 합리적 기대를 하는가?
②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가?
둘 중 어느 하나의 대답이 ‘아니오’라면 합리적 기대이론은 현실과 거리가 있다 할 수 있다.


13. 먹구름, 그리고 한줄기 햇빛

경제학은 무수한 천재를 집어삼킨 학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리다. 가장 우수한 두뇌들마저 경제학의 난해성에 무릎을 꿇었다. 자신만만하게 덤비다가는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좋은 경제정책이란 수혜자가 피해자보다 많은 정책이다. 제로섬게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가 늘어나는 게임이다. 즉, 피해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누리는 혜택이 증가하는 정책이라 정의내릴 수 있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과거의 직업이나 역할들이 각종 혁신에 의해 속속 사라져 가는 이때, 인류는 발전과 변화의 속도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인가? 인류는 컴퓨터 시대와 탈컴퓨터시대에 대비하여 스스로를 교육시킬 수 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사회생활에서 탈락하는 자들의 수효도 늘어갈 것이다. 각종 심리적, 지적 핸디캡을 지닌 사람들은 뒤쳐지고 말 것이다. 2백 년 전에 비해 세상살이는 육체적으로 더 쉬워졌을지 모르나 정신적으로는 훨씬 더 어려워졌다. 현대는 기회폭발의 시대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주어진 자유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모를 때가 많다.
우리들 자식들의 삶은커녕 우리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예측할 수 없다. 자식들은 이제 더 이상 세상을 아는 사람들의 손에서 자라나지 않는다. 부모들이 멍청해지거나 게을러져서가 아니라, 세상이 통달하기엔 너무 복잡해지고 커졌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확실성을 어떻게 추구하느냐 하는 것보다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어나갈 것인가를 가르쳐야 한다.

아직 한 가지 빠뜨린 것이 있다. 자연재해의 가능성을 지나쳤다. 경제학자들은 이 모든 가능성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 그 어느 것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비록 이러한 변수들이 그가 조심스럽게 만들어낸 우아한 모형을 망가뜨린다 하더라도.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두 발로 살던 때가 네 발로 살던 때보다 언제나 훨씬 더 행복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 더 행복했던 순간들은 있었다. 그 짧고 빛났던 순간들을 묘사하고 설명해 낸 경제학자들에게 약간의 박수는 쳐 줘도 되지 않을까.


***


이 책은 1989년에 쓰여졌다. 역사상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일생과 그들의 아이디어들을 통해 현대 경제 원리들을 명쾌하게 설명한다. 물론 영미(英美)경제사에 초점을 맞추어서.
덕분에 한바탕 놀았다. 흥미진진하게 지적으로 뒹굴었다. 아주 재미있게.

『현대의 가정이 인간을 한없이 게으르게 만드는 기계잡동사니 따위로 넘쳐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사회의 정부가 상품 판매를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중략) 광고는 만능이 아니다. 어여쁜 여인이 등장하는 샴푸광고가 있고 그 광고에 현혹된 한 소비자가 그 샴푸를 샀다고 하자. 만약 머리를 감자마자 머리칼이 파뿌리가 되었다면 그녀는 다음에도 그 샴푸를 사려고 하겠는가? 승용차와 같은 큰 상품들 역시 앞다투어 소비자들에게 시험운전해 보라고 선전한다. 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사람만이 텔레비전 광고만 보고 폰티악을 덜렁 사버릴 것이다.』

모든 소비재의 광고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갤브레이스의 처방을 검토하면서 저질상품은 광고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밀려나게 되어 있다는 얘길 설명하는 대목이다. 곳곳에 숨어있는 재미와 더불어 ‘혈연이나 학연, 우정 관계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영국 경제학자들’의 철학적 갈등을 저울질하면서 발전해 온 경제학의 역사를 즐길 수 있었다. 뭔가에 자기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그네들을 조금은 이해했다고나 할까?

경제 성장에는 기업가의 의욕도 중요하지만 잘 교육된 대중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무수한 정신적 변수들이 앞으로 우리를 발전으로 이끌지 야만으로 떨어뜨릴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고도.
일반대중, 국민, 소비자로 분류될 수 있는 나는, ‘공공선택학파’에서 언급한 ‘합리적 무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지만,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국회와 기업을 감시하는 일은 국민과 소비자의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알면..사랑한다고 했던가?
사랑을 시작하기엔 충분한 책이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어가고 싶은 하나를 건졌다.
마르크스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혹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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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곤
2005.05.01 23:44:34 *.51.70.226
칼 마르크스 개인에 대한 관심이라면 푸른숲에서 나온 '마르크스 평전'을 추천합니다. 칼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반드시 '자본론'을 읽어야 겠습니다. 이진경님이 쓴 '자본을 넘어선 자본'이나 김수행교수님이 쓴 책 중에서 고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론은 조금 어렵기 때문에 쉽게 설명된 것으로 선택하면 좋을 듯 싶습니다. 두분 다 저 학교 다닐 때 이쪽 분야에서 꽤 유명하던 분이었습니다. 전 시대가 시대인지라 몰래 숨어서 읽었다는... 제 전공이 이쪽 분야라서 조금 압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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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2005.05.02 12:44:06 *.39.220.122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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