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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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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26일 00시 47분 등록
소유의 종말(The Age of Access, 2000)
: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저 / 이희재 역 / 민음사 /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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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와 나의 대화: 소고

‘소유의 종말말(The Age of Access)’을 읽으면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 왜 세계적인 사회 비평가로 평가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 책의 역자인 이희재의 말처럼, 리프킨은 ‘표면적으로는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현상들의 저변에 흐르는 조류를 날카롭게 파악’하여 ‘명쾌한 개념으로 요약’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제러미 리프킨이 내세우는 문제의식은 도발적이면서도 실증적이다. 그는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화두를 제시하고 문제를 제기한다. 제기한 문제는 충분한 자료와 증거로 뒷받침된다. 숫자는 믿을 수 있고 사례는 심도 깊다. 동시에 상징적이고 명쾌하다. 그가 ‘소유의 종을 쓰는 데 6년이 걸렸으며, 350권의 책과 1천 여 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책을 읽어보면 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가 ‘소유의 종말’에서 제기하는 화두는 ‘접속’이다. 여기서 접속은 인터넷 따위의 협소한 차원의 접속이 아니라 좀 더 광범위한 맥락의 접속을 뜻한다. 그는 접속을 현대 사회관계의 핵심원리로 포착한다. 그는 접속이 개인부터, 기업, 비영리 조직, 국가 그리고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리프킨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고 선언한다.

리프킨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접속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접속의 시대’는 어떤 시대이고 세상인가?’, 이 물음에 가장 좋은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당연하겠지만 제러미 리프킨이다. 그의 표현을 빌려 간단히 스케치해보자.

‘네트워크 경제의 탄생, 물품의 점진적인 탈물질화, 물질적 자본의 비중 감소, 무형 자산의 부상, 물품의 순수한 서비스로의 변신, 생산 관점을 밀어내고 사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마케팅 관점, 모든 관계와 경험의 상품화,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우리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이 점차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 자율성을 가진 자아는 물러나고 복수로 존재하는 인격, 연극 정신이 지배하는 세상, 사회는 연극적 용어로 파악되고 각 개인의 삶도 현실 무대와 가상 무대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각본과 대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되는 세상 ...’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익숙해질 세상이다. 실제로 이것들 중 일부를 우리는 현실에서 비교적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회사에서 몇 시간 동안 인터넷 접속이 안 된 적이 있었다. 불과 몇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큰 불편을 겪었다. 고객에게 약속한 메일과 자료를 보내줄 수 없었고 인트라넷에 접속할 수 없어 사내 커뮤니케이션도 잠깐이었지만 원활하지 않았다. 온라인상에서 작업을 수행해야 하는 몇몇 동료는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는 것’, 이것은 우리에게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국내의 한 대형 수영장은 청결 유지를 명목으로 외부의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 수영장에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 안에서 뭔가 하려면 돈이 든다. 먹고 마시는 것부터 심지어는 앉는 공간에도 돈을 지불해야 한다. 이곳에서 ‘체험’은 곧 ‘돈’이다.

내가 든 예는 이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에 비하면 매우 사소한 것이다. 그러나 리프킨은 접속이 지배하는 세상이 우리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심각한 악영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그의 문제 제기는 개인과 조직을 아우른다. 이것은 책의 내용을 이끄는 방향이자 큰 줄기에 해당하므로 중요하다. 두 개만 옮겨 본다.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은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대부분의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고 모든 개인의 삶이 24시간 내내 상품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비상업적 관계, 다시 말해서 혈연, 이웃, 문화적 취향의 공유, 종교적 결사, 민족의식, 형제애, 시민 의식에 바탕을 둔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간 그 자체를 사고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제러미 리프킨은 접속의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 경험과 관계의 상품화’라고 주장한다. 이런 그의 주장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의 신영복 교수의 생각과 유사하다. 신영복은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 사회(商品社會)입니다. 상품 사회는 그 사회의 사회적 관계(social relations)가 상품과 상품의 교환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당연히 인간관계가 상품 교환이라는 틀에 담기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사람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인간관계는 상품 교환의 형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게 되는 제도입니다.” 제러미 리프킨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신영복이 말하는 상품교환 속에 담긴 인간관계를 넘어 인간관계 자체를 상품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상품화에 대해 경각심을 가질 것을 요구한다. 인간관계의 상품화는 곧 문화의 상품화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이런 추세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비판하지도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인간의 정신과 문화의 영역까지 완전히 상품화 시켜버린 최첨단 자본주의에 의해 문화적 기반과 사회적 자본이 고갈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그의 문제제기는 계속된다.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문화가 시들면 문화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와 공감은 어떻게 될까? 네트워크 경제와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한다면 결국 인류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사회적 신뢰와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 우리는 상업과 교역을 제대로 해낼 수가 있을까?”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교환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야 비로소 상업과 교역이 등장했다.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지만, 문화는 사회 자본을 축적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을 해왔다. 한 사회의 문화 기구(교회, 세속 기관, 민간 단체, 상조회, 스포츠 클럽, 예술 집단, 비정부 기구 등)는 사회적 신뢰의 공급원이었다. 건강한 시장 경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사회적 신뢰와 문화적 다양성이 함께 존재해야 한다. 건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경제의 전제 조건이다. 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집어삼키기 시작하면서 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제러미 리프킨은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말한다. 동시에 이것은 중요한 과제다. 산업 시대에 자연 환경과 자원이 인간의 맹목적인 개발과 남용으로 고갈의 위기에 처한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는 성공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레미 리프킨은 시민 교육을 통한 문화 영역의 강화,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한 시민 사회 조직의 적극적인 활동 등을 강조한다. 이 부분은 12장에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훌륭한 번역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소유의 종말’은 내용의 수준과 분량이 만만치 않다. 음미하고 생각할 것들이 많다. 이런 책은 번역이 시원찮으면 가독성은 떨어지고 사고의 집중은 어려워진다. 다행히 이 책의 번역은 매우 훌륭하다. 번역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번역자의 역량과 노력이 돋보인다.


■ 나의 목소리: 저자되기

숙제로 남긴다.


■ 저자의 목소리: 인용
- ‘[]’ 안의 숫자는 page를 지칭한다.
- ‘인용’에서 별다른 표기가 없을 경우, 저자의 말이다.
- ‘*’ 표시는 간단한 설명과 나의 느낌이다.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9] ‘시장’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쓰이는 시작한다.

[10] 내가 누군인지는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배운다. 이 세상은 상품을 교환하고 남부럽지 않을 만큼 재산을 누려보겠다는 원초적 충동에 의해 글러간다.

[11] 시장은 네트워크에게 자리를 내주며 소유는 접속으로 바뀌는 추세다. 기업과 소비자는 판매자와 구매자로서 시장에서 재산을 교환하던 근대 경제의 기본 구도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재산이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천만의 말씀이다. 재산은 엄존하다. 하지만 재산이 시장에서 교환되는 빈도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 재산을 장악한 공급자는 재산을 빌려주거나 사용료를 물린다. 또는 입장료, 가입비, 회비를 받고 단기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근대 경제의 중요한 특성이었던 판매자와 구매자의 재산 교환은 네트워크 관계로 이루어지는 서버와 클라이언트의 단기 접속으로 바뀐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남겠지만 사회에서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기업은 물적 재산이건 지적 재산이건 교환하기 보다는 접속하는 쪽을 택한다.

[12] 생산에 필요한 것은 대부분 빌려 쓰는 추세로 이미 세상은 변하고 있다.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13] 접속 중심의 구도에서 기업의 성공은 시장에서 그때그때 팔아치우는 물건의 양보다는 고객과 장기적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점 좌우된다.

[14~15] 경제 관계의 구조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자본주의 체제의 성격에서 일어나는 더 광범위한 변혁의 일부분이다. 산업 생산 시대가 가고 문화 생산 시대가 오고 있다. 앞으로 각광을 받을 사업은 예전처럼 상품과 서비스를 파는 사업이 아니라 다양하고 광범위한 문화적 체험을 파는 사업이 될 것이다. ...
산업 생산에서 문화 생산으로 탈바꿈하면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변화는 노동 의식이 유희 의식으로 바뀌는 것이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놀이의 상품화가 그 특징이다. ... 놀이의 내용과 접속권을 놓고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은 앞으로 치열한 대결을 벌일 것이다.
... 우리는 경제학자들이 ‘체험’ 경제라고 부르는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 개개인의 삶은 사실상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린다. 기업가는 이 새로운 개념을 고객의 ‘평생 가치(lifetime value)’라고 부른다. 한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모든 순간을 온갖 형식으로 상품화할 경우 그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를 이론적으로 따지는 값이다.

[21~22]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교환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야 공동체는 비로소 상업과 교역에 뛰어들었다. 요컨대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파생되었다.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 의존했다. 문화는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합의된 행동의 기준이 신뢰할 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런 믿을 만한 환경 속에서 상업과 교역은 발생한다. 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 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산업 시대에 자연 자원이 인간의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26~27] 접속은 결국 구별과 분리의 문제다.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다. 접속은 우리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재고할 수 있는 막강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다가올 시대의 성격을 예고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가 되었다.

3. 무게 없는 경제

[84] 산업 시대가 우리의 물질적 생활을 키워주었다면 접속의 시대는 우리의 마음과 감정, 영혼에 양식을 준다. 상품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 흘러간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다가올 접속의 시대의 특징은 개념의 교환을 관리하는 것이다. 21세기에는 개념을 거래하는 기관이 늘어나고 사람들도 이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의 물리적 구현물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점점 많이 사게 된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85] 인간의 생각이 그렇게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될 수 있다면, 중요하지만 상업성은 없는 사유는 어떻게 되는가? 자기 인생의 길잡이가 될 만한 생각을 상업의 영역에서 가져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는 문명에서,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관점, 의견, 관념, 개념이 존립할 수 있는 여지가 과연 있을까?
* 이공계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돈과 직접적으로 떨어져 있는 것들의 위기.

4. 지적 재산권의 독점

[87] 접속을 통해 유형, 무형의 자산을 공유하는 주체들의 관계를 상품화하는 것, 이것이 곧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상업 활동의 핵심이다.

[89] 사업 방식의 체인화는 비교적 역사가 짧다. 여기서 체인으로 묶이는 것은 사업 개념이다. 모기업은 자신이 보유한 개념과 상표 같은 무형의 자산이 산하 체인점의 공장, 시설, 기계, 원료 같은 유형 자산보다 훨씬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맥도널드만 하더라도 ‘햄버거를 파는 것보다 햄버거 매장을 파는 것’이 훨씬 짭짤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특히 서비스 업체는 자신의 영업술과 상표를 하나로 묶어 지역 사업가에게 빌려주고 매출의 일정액을 로열티로 가져가기 시작했다. 상품의 대량 생산이 아니라 개념의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린 것이다.

[93] 체인점 계약의 핵심은 접속의 합의이지 소유권의 양도가 아니다. 이것은 새로운 유형의 자본주의이다.

[96] 산업 시대에는 물리적 자본, 기계, 재산, 건물, 토지를 소유하고, 직원을 고용하고, 생산 공정을 관리하고, 물자와 서비스를 유통하는 것만으로도 사업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형 자산보다는 무형 자산이 중시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노하우, 개념, 아이디어, 두뇌, 운영 기술을 가진 사람이 실질적 소유권자다.

5. 서비스 세상

[120~121] 어떤 물건이 재산인가? 자기가 배타적으로 점유하거나 보유할 수 있는 것이 재산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언제까지 자기가 선택한 방식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재산이다.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파는 방법으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재산이다. 시장의 관점에서는 이 세 가지 기준 중에서 마지막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양도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서 재산을 시장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

[125] 서비스... 일반적으로 상품이나 건설이 아니고 일시적인 것, 다시 말해서 그 자리에서 생산되면서 소비되는 것, 무형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128~129]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공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풀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제품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업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 그 성격이 달라졌다. 제품은 고객의 사업장이나 집에 마련해 둔 일종의 교두보이다. 이런 교두보를 발판으로 기업은 고객과 장기적 서비스 관계에 들어간다. 제품이 수명을 다하는 동안 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기업은 플랫폼을 싸게 공급한다.

6. 인간관계의 상품화

[145] 접속의 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이다. 온갖 유형의 상업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에워싸고 살아 있는 경험의 모든 순간은 상품으로 자리매김된다. ... 인간관계의 상품화다. ... 고객의 관심을 묶어둔다는 것은 그들의 시간을 최대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우리의 일상 생활은 점점 이해 득실과 타산의 노예가 된다.

[146~147] 새로운 마케팅 전략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시장을 얼마나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고객을 얼마나 사로잡느냐이다. ...
기업들이 한 번에 최대한 많은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것을 포기하고 개별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맺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은, 곧 개인이 일평생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상품화될 수 있다는 잠재성에 주목함을 뜻한다. ... 평생가치(LTV)라는 표현을 쓴다. ... 중요한 것은 평생 고객으로 묶어들 있는 효과적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167~168] 대부분의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고 모든 개인의 삶이 24시간 내내 상품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비상업적 관계, 다시 말해서 혈연, 이웃, 문화적 취향의 공유, 종교적 결사, 민족 의식, 형제애, 시민 의식에 바탕을 둔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간 그 자체를 사고 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 더욱 걱정되는 것은 내부에 상업적 덫을 가지고 있는 이런 대리적 사회영역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앞으로 사회 전체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미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이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고 비판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7. 삶으로서의 접속

[169] 네트워크 경제의 탄생, 물품의 점진적인 탈물질화, 물질적 자본의 비중 감소, 무형 자산의 부상, 물품의 순수한 서비스로의 변신, 생산 관점을 밀어내고 사업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은 마케팅 관점, 모든 관계와 경험의 상품화 등은, 사람들이 서서히 시장과 재산 교환을 뒤로 하고 접속의 시대로 나아가는 여정을 시작하는 상황에서 첨단 글로벌 경제에서 급격하게 벌어지는 구조 변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들이다.

[193] 소유의 시대를 다른 시대와 구별짓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소유의 자부심'이었다는 말이 나올 만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상 모든 것이 접속으로 바뀌는 사회에서, 소유에 수반되는 개인적 자부심, 책임감, 의무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기 충족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 그런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고 접속만 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에게 훨씬 더 의존하게 된다. 우리가 자꾸 남들과 연결되고 상호 의존적이 되면 우리의 자기 충족감은 약화되고 외부의 압력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일까?
... 소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좋지만 그 바람에 아예 우리가 만들고 쓰는 것에 대한 책임 의식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에서 교감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바람에 칼자루를 쥔 기업들의 막강한 네트워크에 더욱더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203] 인류학자 클리포드 기어츠의 말대로 문화라는 것이 인간이 자기 주위를 엮어나가는 '의미망'이라면, 커뮤니케이션-언어, 미술, 음악, 무용, 책, 영화, 음반, 소프트웨어-은 우리 인간이 이 의미망을 해석하고 생산하고 유지하고 변형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과 문화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204~205] 커뮤니케이션은 문화를 표현하고 문화는 커뮤니케이션을 표현한다는 말이 성립한다.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티(공동체)의 철자가 비슷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커뮤니티는 공동의 의견과 공동의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있어야 성립한다. ...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상품화된다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요체인 문화도 필연적으로 상품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6] 문화 생활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경험이기 때문에 늘 접속과 포함의 문제에 직결된다. 사람은 공동체와 문화의 일원으로 의미와 경험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권리를 누리든지 배제당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207] 다니엘 벨은 현대 문명을 분명히 구분되지만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하는 세 가지 권역으로 나눈다. 그것은 경제, 정치, 문화이다. 경제 영역의 핵심적 원리는 자원 이용의 효율화라고 벨은 주장한다. 정치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참여다. 문화 영역에서 제일로 치는 것은 자기 실현과 자기 고양이다. 20세기에 들어와 정치 영역과 문화 영역의 가치는 경제 영역으로 포섭되어 끊임없이 상품화되었다.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256~258] '미국 인간 띠 잇기' 행사
- 코카콜라의 후원

[262] 소유 관계는 소유하는 사람과 소유되는 사람을 구별한다. 접속 관계는 연결되는 사람과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을 구별한다. 따라서 소유 관계도 접속 관계도 결국은 포함과 배제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소유 관계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나눈다. 소유 관계는 사람이 보유한 재산의 가치라고 하는 양적 조건과 사람이 부를 앞세워 타인의 노동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힘과 통제력이라고 하는 질적 조건으로 측정된다. 접속 관계는 안에 있는 사람과 바깥에 있는 사람을 구별한다. 접속 관계는 그 사람이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의 수라고 하는 양적 조건과 다른 사람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가하는 질적 조건으로 측정된다. 사유 재산에 기반을 둔 사회에서는 그 누구건 물리적 자본을 소유하고 생산 수단을 장악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접속 관계에 바탕을 둔 사회에서는 그 누구건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소유하고 네트워크에 이르는 통행로를 장악한 사람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272] 산업 시대에는 자연 자원과 노동력에 대한 식민주의와 그 이후의 신식민주의 지배를 놓고 지정학적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소유와 재산권의 문제는 민족과 국가가 벌이는 쟁패의 본질이었다. 지금까지 보왔던 대로 새로운 시대에는 지역 문화와 세계 문화에 대한 접속의 문제, 상업화된 형태로 문화적 내용을 담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회로를 둘러싼 지정학적 쟁탈전이 점점 전면으로 부각된다.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문화 중개자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접속이 체험의 유일한 통로가 되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지기의 노릇을 하게 된다.

10. 탈근대
[276] 탈근대와 근대가 이토록 다른 원인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그것은 바로 시간, 문화, 실체험의 상품화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가 탈근대와 맞물려 있는 반면, 근대의 자본주의는 토지와 자원의 상품화, 노동력의 고용, 제품 생산, 기본적 서비스의 제공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277] 일반적으로 서양에서 근대라고 하면 18세기 유럽의 계몽주의 시대부터 제2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를 가리킨다.

[309]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

[316] 접속의 시대에는 여러 가지 특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은 연극성이다. 조직, 관계 마케팅, 공동 관심 단지, 오락 센터, 테마 도시 ,관광, 문화 상품, 가상 세계는 모두 연극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322] 연기를 할 수 있고 변신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323] 21세기에는 과거의 재산권처럼 접속의 문제를 놓고 열띤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 재산권은 내 것과 네 것이라는 협소한 물질의 차원을 다루지만 접속은 체험 자체를 누가 지배하는가라는 좀 더 광범위한 문화적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336] 그렇다면 이 새로운 시대에 국민 국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지금까지 정부가 의지한 것은 지리적 기반이었다. 정부는 국토를 통치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러나 인류의 사업 범위와 교제 범위가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비물질적 세계로 이동하게 되면 영토에 기반을 둔 정부의 지위가 점점 흔들리게 되지 않을까?

[340~341] 세계 각국이 통신 · 방송 인프라의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에 매각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상업 영역은 네트워크 글로벌 경제에 접속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된다. 새로운 생존의 지평을 형성하는 사이버스페이스와 네트워크 공유 세계에 접속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전자 대문 바깥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것이다.

[343] 가진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은 접속의 시대에도 낙오된다.

[346] 앞으로 인간이 영위하는 문명 생활의 상당 부분은 전자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접속의 문제는 다가오는 시대가 성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된다.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347] 시장 거래가 복잡한 상업 네트워크로 바뀐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의미할까?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우리의 경제 생활과 사회 생활이 점차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 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 자율성을 가진 자아는 물러나고 복수로 존재하는 인격, 연극 정신이 지배하는 세상, 사회는 연극적 용어로 파악되고 각 개인의 삶도 현실 무대와 가상 무대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각본과 대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348]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문제는 도대체 접속이 무엇을 뜻하는 가이다. 이것은 기술이나 데이터에 대한 협소한 차원의 접속이 아니라 좀 더 광범위한 맥락의 접속을 뜻한다. ... 접속 관계의 사회학적, 정치적 의미를 정의하는 작업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349] 글로벌 경제가 시장에서 네트워크로, 현실 공간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산업 자본주의에서 문화 자본주의로 빠르게 변모하는 상황...

[350] 사유 재산과 공공 재산이라는 소유의 두 형태는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개별적으로 누리는 재산권의 일부분이었다. 사유 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 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 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
... 소유 개념은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까지 포함시키는 쪽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355] 상업적 관계는 문화적 관계의 대용물이 될 만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 ... 문화 영역을 상업 영역으로 밀어 넣을 때 어떤 종류의 집단적 반향이 나타나는가?

[356~357] 새로운 시대의 아킬레스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상업적으로 규정되는 관계와 전자로 매개되는 네트워크가 전통적 관계와 공동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일 것이다. 이런 전제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 전통적 관계는 친족, 민족, 지리, 공유하는 정서로부터 탄생한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으로 단단히 결속되어 있다. ... 관계와 공동체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반면에 상품화된 관계의 핵심은 그것이 도구적이라는 데 있다. 이런 관계를 유지시키는 유일한 결속력은 쌍방이 합의한 거래 가격이다. 이 관계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호혜성보다는 계약성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
여기서 사회적 계약과 상업적 계약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계약은 더 오랜 시간적 지평을 가지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관습에 의해 또 한편으로는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내리는 평결에 의해 구속력을 갖는다. ...
반면 상업적 계약은 일반적으로 그 유효 기간이 짧다. 역사나 유산에 의해 구속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실행이나 결과에 의해 구속력을 갖는다. 당사자 사이의 책무는 명시적이며 일반적으로 수량화할 수 있고 합의한 계약 내용을 법률 용어로 분명히 표현할 수 있다.
... 구성원들이 우선적으로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전통적 공동체와는 달리 상품화된 관계를 표현하는 상업 네트워크에서는 고객과 소비자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의식이 우선이다.
상품화된 관계에서는 당사자들 사이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한다. 돈을 교화하는 것 이상의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으리라고는 처음부터 쌍방이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으면서 쌍방이 함께 겪는 체험은 피상적이고 정략적이며 일시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의 전체 과정에서 잠시 불신을 유보해야 한다.

[358~359] 사회적 공동체, 다시 말해서 문화는 상업 영역보다 먼저 나타났다. 지난 역사를 보더라도 인간은 늘 사회적 공동체를 먼저 세웠다. 사회적 교환의 규칙을 수립하고 복잡한 사회 관계 안으로 구성원을 끌어들이고 사회적 신뢰를 구축했다. 이런 관계를 통해 굳건한 신뢰가 형성된 다음에야 비로소 공동체는 상업적 교역에 나서고 교환을 위한 시장을 만들었다. 시장은 본질적으로 신뢰를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 요컨대 시장은 중심 기관이 아니라 부수 기관이라는 것이다. 시장은 어디까지나 파생적 성격을 가지며 거래 조건을 확신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가 충분히 조성되어 있는 동안에만 존재할 수 있다. ...
모든 나라는 시장이라고 하는 제1부문과 정부라고 하는 제2부문을 중심으로 공공 정책을 운용하면서 문화라는 제3부문은 당연시한다. 사회 자본을 수립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막중한 역할이 문화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회의 문화 기구-교회, 세속 기관, 민간 단체, 상조회, 스포츠 클럽, 예술 집단, 비정부 기구-는 사회적 신뢰의 샘물이다. 문화 기구라는 버팀목이 있기 때문에 시장이 가능하다. 성숙하고 강한 제3부문을 가진 공동체와 나라에서는 자본주의 시장이 번성한다. 제3부문이 허약하면 자본주의 시장도 약세를 면치 못한다. ... 일부 신자유주의자, 신보수주의자, 그리고 대다수 자유 지상주의자는 건강한 경제가 약동하는 공동체를 낳는다고 줄기차게 믿고 있지만 실은 그 정반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한 공동체는 건강한 경제의 전제 조건이다. 강한 공동체만이 사회적 신뢰를 낳기 때문이다.
* 서유럽과 미국의 기업들이 동구권에 진출하여 어려움을 겪은 이유와 사례.[359]
* 세계은행 사례[361~362]

[361] 강한 공동체, 다시 말해서 건실한 문화는 경제 발전을 위한 전제 조건이지 경제 발전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사실...

[362] 문화와 상업의 섬세한 균형

[364] 문화 체험을 상품화하고 마케팅하는 데 따르는 희생은 만만치 않다. 문화가 시들면 문화의 가장 중요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와 공감은 어떻게 될까? 네트워크 경제와 사이버스페이스에 접속하는 권리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자본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한다면 결국 인류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아니, 사회적 신뢰와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 우리는 상업과 교역을 제대로 해낼 수가 있을까?

[364] 경제는 물질적 안녕, 육체적 안락, 특정한 지식, 오락과 유희 같은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며, 이것들은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 데 하나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틀을 세우는 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상업 영역이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깁기하여 제공할 때, 우리가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365] 이러한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는 성공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부터 제 무덤을 파기 시작한다.

[365] 시장과 네트워크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 시장과 네트워크는 사회적 신뢰감과 공감대가 형성된 강력한 사회 공동체가 먼저 존재하고 나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파생물이다.
경제는 또 다른 의미에서 파생적이다. 문화 생산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빌려오는 것이다. 문화 생산이 상업 영역에서 시작되는 법은 절대로 없다. 산업 생산이 자연에서 나오는 원료에 의존하는 것처럼 문화 생산은 문화 영역이 제공하는 재료에 의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산업 생산이든 문화 생산이든 기본적으로 뽑아서 쓰는 것이다. 자연처럼 문화도 자꾸 캐내면 고갈되게 마련이다. ... 그래서 생명의 다양성이 중요한 것처럼 문화의 다양성도 중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371~372] 문화와 상업이 생태학적으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앞으로 가장 중요한 정치적 임무의 하나가 될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되찾으려면 시장에 나와 있는 문화 상품에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는 것 못지않게 지역 문화를 소생시키는 데도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에 똑같은 시간과 관심을 배분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380~381] 생물 다양성과 문화 다양성

[383~384] 글로벌 경제를 옹호하는 세력과 제3부문을 옹호하는 세력은 결국 앞으로 급부상하게 될 ‘놀이’라는 새로운 정신을 구성하는 많은 문화적 범주에 접속하는 통로를 누가 관리할 것이냐를 놓고 대립할 것이다.

[384] 산업 자본주의가 문화 자본주의로 넘어가는 지금, 노동 정신은 놀이 정신에서 서서히 밀려나고 있다. 놀이는 간단히 말해서 문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사람의 상상력을 해방시켜 공유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놀이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범주에 해당한다. 놀이가 없으면 문명도 존립할 수 없다.
... 문화 체험의 상품화는 놀이의 모든 차원을 식민화하여 순전히 사고 팔 수 있는 형식으로 바꾸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접속은 누구를 놀이에 참여시키고 누구를 배제시킬 것인지 결정하는 방식의 문제로 귀결된다.

[385] 놀이를 지배하는 전제와 규칙은 전통적으로 일을 지배해 온 전제와 규칙과 크게 다르다. 우선, 놀이는 신나고 즐겁다. ... 둘째, 놀이는 자발적이다. ... 자기가 선택해서 자유롭게 끼여드는 활동이 놀이다.

[386] 일은 생존의 문제다.

[386] 일과는 달리 놀이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가 아니며 그 자체가 목적이다. 논다는 행위 자체에서 보상을 얻는다. ... 놀이가 추구하는 것은 생산이 아니라 즐거움이다.

[387~388] 근대로 넘어오면서 일과 놀이의 비중이 뒤바뀌었다. 일은 인간 활동의 주역이 되었고 놀이는 일과 잠 사이에 잠깐잠깐 끼여드는 조역으로 밀려났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관계가 바뀌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시장이 사회적 교제보다 우위를 점하고, 시장 자본이 사회 자본을 압도하고, 놀이가 여가 활동으로 밀려나는 동안 일은 단단한 입지를 굳혔다.

[391~392] 단순히 상업 영역에 대한 접속을 논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여 모든 사람이 컴맹에서 벗어나고 사이버스페이스를 제약 없이 누비고 다닐 수 있게 한다고 해서 새로운 시대의 접속이 안고 있는 더 거시적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입장료를 낼 수 있을 만큼의 적절한 수입과 생활 수준을 보장하여 21세기 전자 네트워크의 혜택이 누구에게나 돌아가게 만든다고 해서 풀릴 문제도 아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문명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 경제에 대한 접속을 보장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은 건강하고 다양한 지역 문화에 접근할 수 있는 안정된 길을 보장하는 것이다.

[392]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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