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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 11시 23분 등록

열하일기 상

연암 박지원

 

1. 저자에 대하여

연암 박지원.jpg

연암 박지원은 1737년 음력 2월 5일에 태어났다. 반남 박씨 박사유와 함평 이씨 사이 2남 2년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 때 관례를 올리고 유안재 이보천의 딸과 혼인했다. 장인 유안재에게 <<맹자>>를 배우고, 처숙인 홍문관 교리 이양천에게 문장 짓는 법을 배웠다. 연암이 ‘항우본기’를 모방하여 ‘이충무전’을 지었는데, 반고와 사마천과 같은 글 솜씨가 있다고 크게 칭찬받았다고 한다. 그럴만 하다. 처음에는 지명과 이름이 어려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읽다보니 재미있다. 거침없는 문체와 뛰어난 묘사력에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기록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번역되고 전해져오면서 조금 변화했을 수 있지만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록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함께 여행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여행기가 소설 같다. 18세에는 우울증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그 시대에도 우울증이라는 병이 있었을까? 물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이라는 단어로 표현되진 않았을 것 같다. 23세에 어머니 함평 이씨가 59세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때 큰 딸이 태어났다. 박지원 30세에 장남 종의가 태어났다. 그리고 그때 홍대용이 중국 문인들과 나눈 필담을 정리해 ‘건정동회우록’을 냈는데, 박지원이 거기에 서문을 썼다. 홍대용과 중국 사람들의 우정을 예찬하고, 청을 무조건 배격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보리가 펴낸 박지원 작품집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에 ‘중국에서 마음 맞는 벗을 사귀다’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31세에 아버지 박사유가 65세로 돌아가셨다. 부친상을 당하고, 장지 문제로 녹천 이유집안과 시비가 벌어졌다. 이 일로 상대방의 편을 들어 상소를 올렸던 이상지가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난 것을 보고 이때부터 연암도 스스로 벼슬길을 단념하였다. 34세에 감시의 양장에서 모두 일등으로 뽑혔다. 입궐하여 영조에게 극찬을 받았다. 많은 이들이 ㅂ가지원을 급제시켜 공을 세우려 했으나 회시에 응하지 않거나, 응시한다 하더라도 시권을 제출하지 않거나, 제출하더라도 노송과 괴석을 그린 그림을 제출하여 벼슬할 뜻이 없음을 밝혔다. 42세에 사은진주자 일원으로 북경으로 떠나는 이덕무와 박제가를 전송했다.

1780년, 44세에 홍국영이 실각하자 성루로 돌아와 처남 이재성의 집에 머물렀다. ㅅ마종형인 금성도위 박명원을 따라 북경으로 갔다. 5월에 떠나 6월에 압록강을 건넜고, 8월에 ㅂ구경에 들어갔다가 열하에 들러 다시 북경으로 돌아와 10월에 귀국하였다. 돌아오자마자 <<열하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두르째 아들 종채가 태어났다.

51세 부인 전주 이씨가 51세로 죽었다. 박지원은 그 뒤로 죽 혼자 지냈다. 52세에 끼니를 끓여 줄 사람이 없어 주위에서 다시 처를 얻으라고 했으나, 듣지 않았다.

55세에 한성부판관에 임명되었다. 57세에 <<열하일기>>로 잘못된 문체를 퍼뜨린 잘못을 속죄하라는 정조의 하교를 받고, ‘답남직각공철서’를 썼다. 임금의 문책을 받은 처지로 새로 글을 지어 잘못을 덮으려 하는 것은 오히려 누가 되는 일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해 흉년이 들자 자기 녹봉을 덜어 백성을 구했다. 69세 박지원은 10월 20일, 가회방 재동 집의 사랑에서 69세 나이에 죽었다. 홍대용이 그랬던 것처럼 반함하지 말고, 다만 깨끗하게 씻어달라고만 유언을 남겼다.

1955년 북의 국립출판사에서 <<열하일기 상>>을 출판했다. 중권은 1956년, 하권은 1957년에 간행했다. 그 뒤에도 1959년에 북의 국립문학예술서저출판사에서, 1967년 남의 미족문화추진회에서 <<열하일기>>를 출9판하고, 펴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압록강을 건너서>

p23 멀리 앞길을 헤어볼 때 무더위가 사람을 찌는 듯하고, 돌이켜 고향을 생각할 때는 구름과 산에 막혀 아득한지라 사람의 정리도 이럴 때는 느닷없이 떠오르는 가벼운 후회가 없지 못할 것이다. 소위 평생에 한 번인 장쾌한 여행이라고 하여 툭하면 ‘꼭 한번은 구경을 해야지’ 하던 말도 실상은 둘째 폭이요, 아까 노 참봉이나 정 진사가 오늘은 강을 건너겠따는 말도 실상은 상놰하게 신이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어데고 ‘이제는 안 건너려 해도 할 수 없구나.’ 하는 뜻이 없지 않았다.

 

p25 붉은 단청 다락에서 님마저 이별하고

변방에 선 말 탄 손님 바람도 쌀쌀해라.

꽃배에서 들려오던 피리 소리 끊어질 제

청남땅 이곳에서 이내 간장 끊누나.

<이 시는 유혜풍이 심양으로 들어갈 때 지은 것이다. / 이것은 고국을 떠나 국경을 넘는 사람의 호젓한 감정에서 느닷없이 터져 나오는 심심풀이다. 꽃배고 피리, 장구가 있을 것이 무엇인가>

 

p30 “도를 안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세. 도는 저 강시울에 있는니.”

“그러면 누구나 먼저 언덕에 올라간다는 말씀인지요?”

“그런 말이 아닐세. 이 강물은 두 나라의 경계선으로서, 경계란 물이 아니면 시울이 될 것 아닌가? 도대체 천한 백성들이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저 강물 시울 짬과 같은 것일세. 도를 다른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저 물시울 짬에서 찾아야 될 것이네.

“세상 인심은 갈수록 간드러지고 도심은 갈수록 메말라든다고 했네.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에서 한 획의 선을 변증할 때도 선이라고만 해서는 그 정미한 점을 표현할 수 없다 하여 빛이 있고 없는 짬으로 표현하였고, 불교에서 말하는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으므로 그 짬에 잘 처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짬’으로써 이는 도를 아는 자라야 할 수 있는 노릇이니, 이런 사람은 정나라 자산 같은 이를 들 수 있을 것이네!”

 

p31 멀리 용만을 바라다보니 일편 고성이 피륙을 바래슫싱 뻗쳤는데 바늘구멍같이 뚫린 성문으로 새어 나오는 햇발이 한 점 새벽별 처럼 반짝였다.

 

p44 너희들이 중국에 드나들면서 자주 야료와 행패를 부린다는 말을 내가 일찍부터 들었는데, 과연 오늘 일을 목도하고 보니 들은바와 다름없구나. 이번은 그랬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아예 농을 붙여 실랑이를 일으키지 말아라.

 

p47 의주 상인 중에서도 한가, 임가 같은 자들은 해마다 북경 드나들기를 제 집 문 드나들듯 하여 북경 시장의 장사치들과는 아주 창자가 마통하다시피 되었다. 물건을 사고 팔고, 값을 올리고 낮추는 것은 몽땅 이자들의 손아귀에 달려서 연화 값이 자꾸만 오르는 것도 전부가 이자들의 농간이다. 온 나라가 이 속을 모르고는 모두가 역관들의 소행인 줄만 알고 있다. 실상은 역관들도 자기들의 권리까지 의주 상인들에게 다 빼앗기고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할 뿐이다. 각지의 연상들도 이런 의주 상인들의 농간을 잘 짐작하고 있지마는 눈앞에서 본 일이 아니니 속만 태울 뿐이요, 감히 입 밖에 내지는 못하게끔 되어 이 폐단이 생긴지 이미 오래다. 오늘도 이치들이 몸을 잠시 숨겨 얼굴을 내밀지 않은 것은 필시 또 어데서 무슨 잔재주를 부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p49 전일 내 친구 홍덕보에게 중국 문물의 규모와 수법들을 들은 적도 있었지마는 오늘로 보아 책문은 중국의 맨 동쪽 끝 벽지인데도 오히려 이만하거든, 앞으로 구경할 것을 생각하니 문득 기가 꺾여 그만 여기서 발길을 돌리고 싶은 생각이 치밀면서 전신에 불을 끼얹은 것같이 후끈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크게 반성을 하면서 혼잣말로, ‘이것은 질투심이구나’ 했다. 내 본성이 담박하여 일찍이 부럽다든가 질투나 시기가 없었는데, 한 번 국경을 넘어 타국의 경내에 발을 들여놓았을 뿐, 아직 그 만분의 일도 못 본 내가 벌써 이런 그릇된 생각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아직 본 것이 적은 탓일 것이다. 이른바 시방 세계를 둘러보다는 석가여래의 밝은 눈으로 본다면 세계는 모두 평등이라고 한다. 만사가 평등이면 질투도 없을 것이 아닌가?

 

p51 그러므로 반드시 싸움을 해 가면서라도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사신들은 언제나 이런 사리를 모르고 책에 들기가 바빠서 무턱대고 일 맡은 역관에게 재촉을 하고 역관은 마두를 재촉하게 되어 이 폐단인즉 실로 오래 묵은 폐단이 되었다.

 

p52 “이것이 ‘살위봉법’이란 것이랍니다.

(각주 : <<수호지>>에 나오는 말로, 옥졸이 새로 온 죄수에게 ‘살위봉’이라는 몽둥이로 마구 때려 기를 죽이는 것. 여기서는 먼저 선수를 쳐서 상대의 기를 죽인다는 말이다.

 

p55 나는 변군과 함께 거리 구경을 하고 입에 침이 없이 탄복을 했다.

(나도 중국 여행에 가고 싶다. 연암이 밟았던 자취를 따라. )

 

p56~57 “넉 냥은 술값이 아니오라 술 중량이외다.”

했다. 탁자 위에 술병들을 늘어놓았는데 한 냥쭝들이 병으로부터 열냥쭝들이 병에 이르기까지 각각 크기가 달랐다. 모두 주석납으로 만들어 빛이 은빛이다. 넉 냥쭝을 내자면 넉 냥쭝들이 그릇에 부어 오고 보니 술을 사는 사람도 술을 다시 계량할 필요가 없어 그 간편한 법도가 이렇다. / 주위에 차려 놓은 범절을 보면 어느 한구석이라도 빈틈이 없이 모두가 방정하고 물건 한개라도 허투루 굴려 놓은 것이 없었다. 비록 소 외양간, 돼지우리까지라도 되는 대로가 아니라 일정한 법식이 있으며 심지어 거름더미 똥구뎅이까지도 그림같이 정갈했다.

옳다! 이렇고 난 후에야 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있은 후에야 그 질서를 바로 잡을 것이다.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몰라 생활 자료가 근본 부족하면서 억지로 잘살겠다고만 한다면 어떻게 그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을 것인가?

 

p58 물통은 다들 어깨로 메는데 그 법인즉 팔목만 한 나무 한 가치를 한 발쯤 길이로 다듬어 두 머리에 물통을 땅바닥에서 약 한 자쯤 떨어지게 매달아 통의 물이 출렁거려도 좀체로 넘지 않는다. 우리 평양에도 이런 식이 있으나 어깨에 메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고 보니, 좁은 골목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물통 메는 법 하나로도 이만큼 덕을 본다.

옛날 포선의 처가 동이를 ‘들고’ 나가 물을 긷는다는 글을 보고 어째서 물동이를 이지 않고 들고 나갈까 하고 의심했다. 오늘 이곳에서 보면 여자들은 다들 머리를 정수리에 높게 ㅌ르어 얹고 보니 무엇이고 일 수 없음을 알겠다.

 

p62 글을 배우는 데는 소위 ‘송서’와 ‘강의’ 두 가지가 있어서 우리 나라와는 아주 딴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음과 뜻을 한목으로 배우지마는 중국에서는 초학자가 먼저 사서의 문장을 입으로 읽기만 하고, 읽는 것이 완전하게 숙달된 뒤에야 다시 선생에게 그 뜻을 배운다. 이것을 ‘강의’라고 한다. 설사 평생 강의를 못 받는다고 하더라도 읽어 익힌 문장들은 일상 표준말로 쓰이고 보니 청국의 방언 가운데도 한어가 가장 쉽고 이치에 맞는다고 할 수 있겠다.

 

p66 벽돌에는 세 가지 경계하는 것이 있다. 첫째로 귀가 떨어진 것, 둘째로 모가 죽은 것, 셋째로 뒤틀어진 것이니, 이 세 가지 중에 한 가지라도 범한다면 모처럼 온채 집에 들인 공을 잡칠 수가 있다.

 

p70 나는 여기서 말할 수 있다. 당 태종이 안시성에서 눈알을 잃어버렸는지 똑똑히 고증할 수 없다손 치더라도 이 성을 안시성이라고 하는 데는 분명히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p76~77 “자네가 모르는 말일세. 우리 나라 성곽제도가 벽돌을 쓰지 않고 돌을 쓴다는 것을 옳은 일이 아니네. 벽돌로 말할 것 같으면 한틀에 뽑아 내는 것인즉 만 장의 벽돌이 한 모양으로 되어, 다시 쪼고 갈고 손질할 필요가 없고, 한 가마에서 만 장 벽돌을 앉은 자리에서 구워 내고 보니 새로 품을 들여 운반할 필요가 없고, 가지런하고 반듯하여 힘을 덜되 보람은 곱절이요, 실어 나르기에 가볍고 쌓기 쉬운 것은 벽돌 이상 또 무엇이 있을 것인가 (중략)

‘벽돌의 여문 품이 어찌 돌을 당할 것이냐?’ 하자 차수는 고함을 질러, ‘벽돌이 돌보다 낫다는 것이 돌 한 개, 벽돌 한 장을 맞비해서 말하는 줄 아는가?’ 하였네. 이야말로 다시 없는 명담으로서 대체 회는 돌에는 잘 붙지 않으므로 회를 지나치게 많이 쓰면 아문 자리가 절로 갈라져 트면서 돌에서 떨어져 일어나므로 돌은 언제나 한 덩이씩 따로 저대로 흙에 붙어 있을 뿐일세.

 

p83 본디는 아무런 소용도 없어 보이는 강가에 매끈매끈한 조약돌로 바둑돌이나 노란 새알빛 자갈을 생김새와 빛깔이 같은 놈을 골라 모아 문 앞에다가 봉황 무늬를 놓아 깔아서 비가 와도 질벅거리지 않게 하였다. 폐물의 이용이 얼마나 알뜰한가를 이로써 알 수 있었다.

 

p85 여럿이들 공론이 이러쿵저러쿵 떠들썩했다. 나는,

“뗏목을 얽을 것이야 있나? 내게 두어 척 통배가 있는데, 노고 삿대고 다 갖추었지마는 꼭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어 걱정이야!”

했더니, 주 주부가 묻기를,

“없는 것이 무엇인지요?”

한다. 나는

“배 잘 저을 사고잉 없단 말이오.”

 

p87 대체로 가마의 법식은 우리 나라 것과느 판이하다. 먼저 우리나라 가마의 결함을 말하고 보아야 참말 가마 제도를 똑똑히 알 수 있다. (중략) 사기나 옹기나 할 것 없이 무릇 옹기점의 가마란 죄다 이런 따위다.

 

p88 오늘 이곳 가마를 보면 벽돌로 쌓고 석회로 봉하여 애초부터 구워 굳히는 비용이 먹히지 않고, 마음대로 크고 높게 만들 수 있어 모양은 종을 엎어 놓은 것 같다. 꼭대기는 우묵하여 물을 몇 섬씩이고 찰 수 있도록 하고, 옆에는 연기 뽑는 구멍 네댓 개를 뚫어 불이 잘 타오르도록 했고, 벽돌은 그 속에 두는데 서로 엇괴어서 불곬을 낸다. 대체 용한 것은 쌓는 격식이다. 당장에 내 손으로도 아주 쉽사리 함 직하되 입으로 형용해 내기는 실로 어렵다.

 

p89 부득불 먼저 가마 제도부터 고쳐 양편이 다 이롭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공한 곳에는 두 번 안 가고, 만족을 알아차리는 것이 위태롭지 않으이!” ㅎ

하며 거절하였다.

 

p101 나는 생각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집은 가난하고 글읽기를 좋아하는 백천 명 형이야 아우님드리 유월 한더위에도 코끝에는 언제나 수정 구슬을 드리우고 있을 바엔, 이 법을 궁리하여 삼동의 고생을 면했면 했다.

 

p102~103 “‘캉’이 방보다 못하다는 것은 옳네. 다만 구들 놓는 법만 본떠서 이것을 방에다 적용하고 장판을 깐들 누가 말릴 것인가? 대체 우리 나라 구들 놓는 법에 여섯 가지 탈이 있는데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네. 내가 이야기해 줄 터이니 자네는 떠들지 말고 잠자코 듣게나. (중략) 자, 어떤가? 자네와 함께 벽돌 수십 장을 깔았고 웃고 이야기 하는 동안에 벌써

온돌 몇 칸을 놓고 그 위에 누운 셈이로구먼!”

 

p105 밤에는 약간 취하여 어렴풋이 잠일 들었는데, 내 몸은 별안간 심양성 안에 있고 궁궐이며 성곽이며, 주택 시가들이 번화하고 질펀하여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장관일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하면서,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 자랑을 하리라.‘하고는 이내 훨훨 날아가니 산이고 물이고 모두가 발 밑이요, 빠르기는 나는 솔개나 다름없이 순식간에 야곡에 있는 옛 집까지 와서 안방 남창 아래에 가 앉았다. (꿈) 형님은,

“심양이 어떻더냐?”

하고 물으셨다. 나는 본 것이 들었던 것보다 훨씬 낫더라고 공손히 대답하며 무진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p110 “참 그렇겠네. 그러나 아니거든! 옛날부터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마는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실 분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 나온 듯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찰 만한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거든!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칠정 가운데 ‘슬픈 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만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다네. 까짓껏 기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골이 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즐거우면 울 수 있고, 까지껏 사랑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미우면 울 수 있고, 까지껏 하고 싶으면 울 수 있으니, 맺힌 감정을 한번 활짝 푸는 데는 소리쳐 우는 것처럼 더 빠른 방법이 없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에 비할 수도 있는 것일세. 북받쳐 나오는 감정은 언제나 이치에 맞아 발작하는 것이니 웃음만 하더라도 그러한 감정의 발로라네. 사람들의 보통 감정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지 못하고 보니 공연히 까다롭게 칠정으로 나누어 ‘슬픈 감정’에다가 울음을 짝 맞추어 둔 것이네. 이러므로 사람이 죽어 초상이 나면 즉시 억지로라도 ‘아이고!’하고 부르짖는 것이지.

정말로 칠정에 느낀바, 지극한 감정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는 참소리는 천지 사이에 참고 눌리고 쌓이고 맺혀서 간대로 풀려 발로가 안 되네. 저 가생이란 이는 자기 의 자리를 얻지 못하고 참다못해 필경은 선실을 향하여 한번 큰소리로 호령을 한 것이라네. 이러고 보니 어째서 여러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p111 아이가 처음 배 밖에 나올 때에 느낄 정이란 무엇이겠는가? 처음에는 광명을 대할 것이요, 다음에는 부모 친척들이 눈앞에 가득 차 있음을 보면 기쁘고 즐겁지 않을 수 없을 것이요, 이 같은 기쁨은 늙을 때까지도 두 번도 없을 일이매 슬프고 성이 날 까닭이 있을 것이낙?

‘정’ 인즉 응당 즐겁고 웃을 일인데 도리어 분하고 서로운 생각에 벅차서 울부짖네. 혹은 인생은 잘나나 못나나 죽기는 일반이요, 커서는 더구나 백 가지 근심 걱정에 성화를 받을 터이니 갓난 아이는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제 조문을 제가 하는 것이라고 하네. 이것은 갓난애의 본정과는 당토 않은 소리지. 아이가 어미 태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어둡고 갑갑하고 졸립고 비좁다가 하루아침에 어미 뱃속을 벗어나자 팔을 펴고 다리를 뻗고 정신이 툭 트이게 될 터이니 어찌 한번 있는 ‘정’ 그대로 참된 소리를 쳐 보지 않겠나? 그러매 갓난애의 울음소리에는 거짓차림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네.

 

p127 어떤 데서는 창봉 연습도 하고, 어떤 데는 권술과 씨름도 하고, 혹은 소경 말 타는 놀음도 놀았다. 한 군데는 <<수호전>>을 앉아서 내리읽는데 여럿이들 빙 둘러싸고는 듣고 있었ㄷ. 글 읽는 군은 머리를 툭툭치면서 코를 쳐들고 아주 신이 나서 가관이다. 방금 읽고 있는 대목은 와관사에 불을 질러 태우는 대목인데 손에 쥐고 있는 책을 가만히 보니 <<서상기>>다. 눈으로는 고무래 정 자도 못 알아보면서 입으로는 청산유수다. 흡사 우리 나라 가겟방에서 <<임장군전>>을 외고 있는 것만 같다.

 

 

<성경의 이모저모>

 

p131 어허 참! 여기야말로 영웅들이 수없이 싸웠던 땅이로구나. 영웅 장사들이 범과 용처럼 날고 뛴다 해도 높고 낮은 거야 제 맘에 달렸겠지마는 천하를 두고 마음을 놓고 못 놓는 것은 오로지 요동벌에 달려 있으니 요동벌이 한번 조용하면 나라 안에 난리가 일어날 턱이 없을 것이요 요동벌이 한번 소란하면 천하의 병마들이 쇠북소리를 한꺼번에 요란하게 울릴 것이다. 어째서 그럴 것인가? 이 벌은 일망천리 평원 광야라 지켜 내기는 참으로 힘든 일이요. 그렇다고 내버려 둔다면 오랑캐들이 꼬리를 물고 쳐들어와 담 없는 마당이나 다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으로 하여금 여기를 언제나 마음 못 놓는 땅으로 여기게 한 이유가 될 것이매 천하의 힘을 끌어 모아서라도 이곳을 지킨 후에야 나라가 평안했다. 오늘로 보아 이사이 백 년 간에 세상이 잠잠한 까닭이 어찌 한갓 도덕과 교육과 정책만이 전대보다 나은 때문이라고 볼 것인가.

심양은 곧 청조가 처음 일어나 ㄴ곳으로서 동으로는 영고탑에 닿고 북으로는 열하를 누르고 남으로 조선을 어루만지면서 한번 서로 향하자 천하는 감히 꿈틀하지도 못하였다. 그 까닭은 근본을 튼튼히 하는 점에 있어서 역대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때문이다.

 

p138 옛 시가 생각난다. 그림을 모르는 자는 시를 모를 것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는 반드시 짙음새가 있고 원근감이 있다. 오늘 여기서 탑 그림자를 볼 때에 옛 사람이 지은 시가 반드시 그림의 뜻을 잊지 않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닫겠다. 성이 멀고 가까운 것은 다만 탑의 길이로 보아 짐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p142 “아까 내가 만났던 관속은 바로 수직장경인데 재작년에 하은군을 모시고 와서 행궁을 고루 구경했지마는 말리는 사

람이 없었습니다. 마음 놓고 구경하셔도 좋습니다. 설사 누구를 만나더라도 쫓겨날 뿐이겠습죠.”

하기에 나는,

“네 말이 옳다”

 

p143 하늘에는 주성 한 알 반짝이고 있건마는

땅에는 둘도 없는 술 샘이 여기라오.

 

p144 길에서 주부 조명회를 만났더니 반색을 하면서 같이 술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는 돌아서 아까 나온 술집을 가리키면서 다시 가서 술을 먹자고 했더니 조군은, 어디고 다 마찬가진데 꼭 거기 갈 맛이야 있느냐고 하면서 또 다른 주점으로 들어갔다. 크고 깊숙하고 화려한 품은 아까 술집보다도 훨씬 나았다. 닭알 볶음 한 접시와 사국공이란 술 한 병을 청하여 둘이 잔뜩 먹고 나섰다.

 

p149 눈매는 그림 같으나 글눈은 까막이다.

집은 가난하되 친구 돕기를 좋아하여 많은 자식들의 복을 닦고 있으며 목수환과 은목헌이 영업하는 데서 일을 보고 있다.

그나마 목가나 온가처럼 얼굴도 잘난 맛이 없고 보니 판에 박은 장사붙이들의 꼴이라 이틀 밤이나 이야기 상대를 했지만 그 이름들은 다 잊고 말았다.

 

p150 허튼소리가 아닙니다. 귀에는 만 권 장서를 쌓아 놓고도 눈에는 낫 놓고 기역 자도 없답니다. 하늘에는 글 모르는 신선이 없는가 하면 땅에는 말 잘하는 앵무새가 있으니깐요.

 

p151 아주 이것이 큰 유행이랍니다. 한나라가 창건된 뒤에 이 법이 틀린 줄은 알았지마는 소위 귀와 입에만 담는 학문으로써 시방 세상에도 서당이란 서당에서는 다 이 법이 통하여 글은 읽기만 하고 뜻풀이가 없어 귀는 똑똑하되 눈은 희미하고, 입으로는 제자백가가 청산유수 같되 두 손으로 쓰라면 괴발개발 말이 아니랍니다.

 

p154 선생은 오래잖아 북경에 들러 아마 유리창 같은 데도 찾으실 터인데 물건을 못 구하실 것이 걱정이 아니라, 진짜와 가짜를 골라잡기가 걱정일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p155 “내일 아침 일을 시방 꾸미는 것보다는 오늘 저녁 흥을 다할 궁리가 더 바빠 보이외다.”

“공자는 오랑캐 고장에 있고 싶다 했고, ‘군자가 가서 살아서 더러울 데가 어데 있을 것인가.’ 했습니다. 선생은 비록 먼 나라 출생이지마는 기상이 늠름하고, 학문은 공맹의 학설에 정통하고, 예는 주공의 도에 미쳤다고 할 수 있으니 틀림없는 군자입니다. 그러나 유감은 우리들이 서로 떨어진 곳에 살고 하늘가 이쪽 저쪽에 갈려 있어 그리던 정회도 풀 새 없이 눈 깝짝할 사이에 이별을 하게 되니, 이를 어쩌겠소?”

 

p158 “조금도 잠이 오들 않습니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좋은 이야기로 하룻밤을 밝힌다는 것은 참말 일생에 얻기 어려운 좋은 인연인가 봅니다. 세상살이가 이렇기만 하다면 촛불 아래 백 날을 마주 앉아도 싫증이 나질 않겠습니다.”

 

p161 내 아무리 몸이야 시정에 박혀 있다 하더라도 마음은 학문에 붙이고 있답니다. 한번 선생 같은 점잖은 분을 만나고 보니 백 사람 부럽잖은 친구를 얻은 것만 같은 터에 어찌 일시라도 속여 넘겨 백 년 믿을 마음을 저버리겠습니까?“

 

p164 “선생의 서으이에는 참으로 감복했소이다. 나는 내일 이른 아침에 북경으로 떠날 터인데 수고스럽지마는 선생께서 문방구, 서화, 골동 옛 그릇들이 옛것과 지금 것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붙인 이름들의 진짜, 가짜를 낱낱이 적어 주신다면 어둔 길에 다시 없는 지남이 되겠습니다.”

 

p165 “서로들 속을 알아주고 피차 허물 없이 된 처지에 어디 애초부터 단골 친구가 매겨져 있답니까? 천하가 다 동포 형제 간인데 차별 대우가 있겠습니까?

 

p171 “ ‘오란 사람이 육지에서 배를 밀었다.’는 문구로, ‘물도 없는데 배를 가게 했다.’는 문구와 뜻이 우연히 맞는 것 같지만 ‘오傲’자와 ‘오(奡)’자는 음은 비록 같으나 글자 모양이 어림없이 다르고 또 ‘오’란 사람은 하나라 태강때 사람으로서 우나라 순 임금 시절과는 연대가 멀리 떨어지고 있으니 될 말이 아닐 법하오.”

 

이것쯤이야 친구로서 떳떳한 도리겠지요. 오히려 모처럼 부탁하신 것을 밤을 재워서 부끄럽습니다.

 

p174 또 사람을 소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자기가 아는 점을 들어 소개해 놓고 보면 으레 자기가 좋아하는 점에만 쏠리고 보니, 한번 높은 안목을 거쳐 참으로 공변된 마음을 쓰지 않는다면 자기 마음에는 들어도 남에게는 실망을 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만 하더라도 선생은 무슨 바람에 불려 오셨든, 얼굴을 마주 뵈어 선생의 높으신 덕에 배를 불리고 밤이 깊도록 가슴속을 털어 이야기하게 될 것을 어찌 꿈엔들 생각할 수 있었던 일이겠습니까? 이것이야말로 공교롭게 천생연분이 아닐 수 없고 천하에 둘도 없는 지기를 얻었음은 실로 옇나이 없답니다. 이로써 보아 선생은 앞으로 만날 만한 살마은 절로 만나게 될 것이니 무엇 한다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p178 다들 틀렸소. 그 용은 이름은 강철이란 게요. 우리 나라 속담에 ‘강철이 간데는 가을 도 봄’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가물이 들어 흉년이 진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무슨 일을 꾸미다가 뜻대로 되잖을 때도 ‘강철의 가을’이라고 한답니다.

 

p179 고향 생각이 날 적마다 혼과 마음이야 훨훨 날아갈 것만 싶지요. 장사푼어치를 한다고 하늘 끝이나 다름없는 이렇듯 먼 곳에 떨어져 있으니 저녁 자리에도 빈 의자뿐이요. 봄철의 안방도 독수공방, 기러기 편지 소식도 오래 끊어지고 상사의 꿈마저 꾸지 않을 때야 머리가 안 세고 어찌 배겨 내겠습니까? 더구나 달 밝고 바람 ㅁ락고 나뭇잎 떨어지고 꽃 피는 시절들이 더 견디기 어렵답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있나요?

 

p180 반드시 그렇지도 않답니다. 우리 고향 인사들 중에도 대로는 반딧불 아래 공부를 한다. 허벅다리에 송곳질을 하면서 글을 읽는다, 아침에는 풋나물 저녁에는 소금국을 먹어 가면서 공부를 하다가도 어쩌다가 귀신이라도 돌보아주어 보잘것없는 벼슬자리라도 한 자리 얻어 만리 변방에 부임을 하고 보면 이 노릇 역시 고향 떠나기는 마찬가지지요.

나고, 늙고, 앓고, 죽을 때까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우물 속 개구리처럼 고생살이 붙들고 늘어져 평생을 한 꼴로 보낸다는 노릇이야 참말, 죽지 못해 사는 것이겠지요.

 

p181 세 사람이 걸음을 함께하면 반드시 제 스승이 있는 법이요,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단단하기가 쇠라도 끊는다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한 낙이 어데 있습니까? 사람이 한 평생에 친구 못 가진 것처럼 재미없는 일이 또 어데 있습니까? 몸에 천 나부랭이나 걸치고 밥술이나 먹는 작자들은 이 재미를 모릅니다. 세상에는 흔히 몰취미하고 못생긴 자들은 눈에 붙인다는 것이 옷가지나 밥술뿐이요, 친구 사귀는 낙이란 이자들의 배짱에는 눈 씻고도 찾압로 수 없답니다.

 

p191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득 머리털이 거꾸로 설 만치 분이 치솟아 올랐습니다.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나는 시골서 나고 자라나 마음이 소박하고 속이 허탈한 것은 가위 타고난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만 연석을 보배로만 여기고 고기 눈알과 진주를 분간 못 했습니다. 형편인즉 할 수 없었다 하겠사오나 더구나 분한 일인즉 웃음거리가 될 값으로 물건을 사 들인 것입니다. 이야말로 도척에게 곱리를 준 폭입니다.

 

p192 선생께서 전일 저르 하찮게 생각잖으시고 대하시어, 외람되이 쓸 만한 인물을 찾으신다는 핑계로 길에서 만난 저와 서슴잖고 선자리에서 통정을 해 주셨습니다. 또 그렇게 쉽게도 발길을 돌려서 집에까지 걸음 하신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p195 원앙새 노는 모습 한 폭의 그림인가

갓 피어난 연꽃이야 저 선경을 어이 알랴!

 

p198 때로는 어렴풋이 꿈속 같지만 눈앞에 지나가는 풍물들이 놀랍기도 하고 좋기만 했지, 그 못브들을 이루 다 적어 낼 재주가 없었다.

 

p205 상주 손을 붙잡고는 ‘당신 아버지는 하늘로 올라가셨소.’라고만 하면 됩니다.

 

p208 내가 처음 여기 왔을 때는 그리 좋아하는 눈치가 아니요, 모두들 대수롭잖게 보더니 내 글씨를 보고 나서는 기색을 살펴보니 오히려 과분할 만치 좋아한다. 그제야 서둘러서 차를 따른다. 담배를 붙여 올린다. 눈 깜빡할 사이인데 다정하고 냉정한 구별이 이만저만 아니다.

 

p211 이 늙은이 즐기는 게 산림이라오.

그대 역시 물 경치 즐김을 알리라.

 

하늘에는 조각달 높다랗게 걸렸건만,

땅 위에 일 만 가닥 등불도 못잖으리.

 

p213 ‘기상새설’이란 글씨만 볼 때는 틀림없는 가루집으로 알게 되었다. 마음이 깨끗하다느니 하는 새김질을 동에 닿지도 않은 수작이요, 가루는 부드럽기가 서리와 다툴 만하고 희기는 눈보다 더 낫다고 자랑하는 뜻임을 알았다.

 

<일신수필>

p221 함부로 입과 귀만 믿고 떠드는 자들은 족히 데리고 학문을 이야기할 껌목이 못 될 것이다. 하물며 평생을 두고 정력을 쓰더라도 알아낼 수 없는 학문일까 보냐.

성인이 “태산에 올라가 굽어보면 천하가 자그마해 보인다.‘ 고 하면서 속으로 ’무엇이 그러랴고?‘ 하면서도 입으로 ”그렇다.“고 하렷다. 석가가 시방 세계를 다 보았다고 하면 꿈 같은 수작 마랄고 들은 척도 않으렷다. 서양 사람들이 큰 배를 타고 지구 밖으로 튀어 나갔다고 하면 허망스러운 소리라고 오히려 말하는 사람을 나무라렷다. 이러고 보면 나는 누구를 데리고 나의 세계관을 한번 이야기 해 보겠는가?

 

p222 시방 여기까지 몰아쳐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먹 한 점 쿡 찍는 ‘동안’은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동안이요,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동안은 뒤미처 ‘작은 옛날’, ‘작은 오늘’이 되어 버리고 마니 ‘큰 오늘’과 ‘큰 옛날’은 역시 ‘큰 눈 한 번 깜빡’, ‘큰 숨 한 번 쉬는’ 동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보잘것없은 ‘동안’ 에 이름을 내고 공로를 세우겠다고 날뛰는 것이야말로 그 아니 서글픈 일이랴.

 

“전날 밤에 나는 구름비 밖에서 달을 안고 놀았구나!”

 

p223 그러나 그들이 여기서 이국 말을 배우고 머리가 세도록 공부를 함으로써 커다란 업적을 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가? 대체로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은 언제나 과거로 흐르고 있으매 과거에 의존하여 학문으로 삼은 것도 이제 와서는 정거할 거리가 없기 때문에 짐짓 글로 남겨 사람들을 믿도록 하기 위함이다.

 

p225 한마디로 말하자면 아무것도 볼 만한 것이 없었다. 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함인가? 황제가 머리를 깎고 장상과 대신과 백관이 머리를 깎고 만백성이 머리를 깎고 보니, 비록 나라의 공덕이 은, 주와 같고 부유하고 강한 품이 진나라나 한나라 보다 앞섰다손 치더라도 인간살이가 생겨난 뒤로 아직 머리 깎은 천자는 볼 수 없었다. 육롱기, 이광지의 학문과 위희, 왕완, 왕사장의 문장과 고염무, 주이준의 박식으로도 한번 머리를 깎고 보면 갈 데 없는 오랑캐다. 오랑캐는 개돼지나 다를 바 없을 바엔 개돼지에게 무슨 볼 만한 것을 찾을 것인가?

 

p225~226 “성곽은 만리장성의 나머지요, 궁실은 아방궁의 찌꺼기요, 백성들은 위나라, 진나라의 부화한 기풍을 ㅂ다았고 풍속인즉 대업과 천보 연간의 사치를 그대로 본뜨고 있다. 명나라가 망하고 난즉 중국 산천은 날고기 누린 냄새를 피우는 고장으로 변했고 성인의 전통이 희미해지고 보니 언어는 꼭두각시 놀음판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볼 만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정말 십만 대군만 얻는 다면 관내로 ㅈ루곧 몰아쳐 들어가 온 중국 천지를 한번 청소를 한 뒤에야 장관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227 그렇지마는 중국을 떠받드는 것도 제 탓이요, 올아캐도 제 탓일 것이다.

 

p228 나는 원래 삼류 인사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리라.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더라. 왜? 개진 기와 조각은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개노리 위로는 개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 무늬를 놓기도 하고 네 쪽이 안으로 합하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기와 조각들은 서로 맞물려 알쏭달쏭 뚫린 구멍들이 안팎으로 마주 비치면서 별별 무늬가 다 놓이고 보니, 한번 깨진 기와 쪽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문채는 벌써 여기 다 있지 않은가? 동리 집들의 문전 뜰에는 형세가 닿잖고 보니 벽돌은 깔 수 없고 오색 빛깔의 유리 기와 쪽과 냇가에서 동글고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주워다가 얼기설기 서로 맞추어 꽃 무늬, 나무 무늬, 새 무늬, 짐승 무늬를 놓아 가면서 깔아 놓아 비가 와도 땅이 질 걱정이 없이 만든다. 한 번 자갈과 조약돌을 내버리지 않으니 천하의 명화는 다 여기 있지 않은가.

 

p239 무릇 수레란 하늘이 낸 물건이로되 다니기는 땅바닥으로 다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뭍에 다니는 배요, 움직이는 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에 이바지하는 바 이 위에 더할 수 없고, 보니, <<주례>>에는 임금이 재부를 물을 때에 반드시 수레의 수효로써 대답하였다.

수레는 단지 짐수레나 사람 타는 수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투에 쓰는 수레, 공사에 쓰는 수레, 불 끄는 수레, 대포를 실은 수레 등 그 제도는 수백, 수천 가지로 시방 창졸간에 이것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사람 타는 수레나 짐수레이고 보면 더욱이 사람의 생활에 직접 관계되는 물건이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들을 바쁘게 이야기해야만 되겠다.

 

p240~241 우리 조선에는 아직도 수레란 것이 없지만, 있다는 것도 바퀴가 독바르지 못하고 바퀴 자국은 궤도에 들지를 못하니 수레가 아주 없는 셈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어떤 살마들은 흔히 말하기를 우리 조선은 산협 지대라 수레를 쓰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이런 당토 않은 소리가 어데 있을 것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고 있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절로 닦일 것이 아닌가? 거리가 비좁고 산마루들이 험준하다는 것은 아무 쓸데없는 걱정이다.

 

p242~243 그러나 이 지방에는 흔한 것이 저 지방에는 귀하고, 이름만 들었을 뿐 물건을 볼 수 없는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는 곧 가져올 힘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넓이가 수천 리나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까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물어 보자. 수레는 왜 못 다니는가? 이것도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다. 이 양반들은 평생에 읽는다는 글이 <<주례>>란 성인의 저술로서, 툭하면 ‘거인’이니 ‘윤인’이니 ‘여인’이니 ‘주인’이니 하지마는 입으로만 외울 뿐이요, 정말 수레를 만드는 법은 어떠하다든가 수레를 부리는 기술은 어떠하다든가 하는 데는 연구가 없으니 이야말로 건성으로 읽는 풍월 뿐이요, 학문이야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어허! 한심하고도 기막히는 일이다.

 

p244 뜻 있는 사람이 이 책을 얻어 한번 자세히 연구해 본다면 우리 나라 백성들같이 가난하고 말라빠져 다 죽어가는 판에도 무슨 변통수가 생길 법하다.

 

p255 이로써 볼 때에 우리 나라 분원의 사기쯤 가지고는 흥정거리도 못 될 판이다. 애달프구나! 사기 굽는 솜씨 잘잘못 한 가지 일이 어찌 사기그릇의 좋고 나쁜 데만 상관될 일이랴. 한번 사기 굽는 솜씨가 서툴고 보매 온 나라 안의 천 가지 일, 만 가지 물건이 죄다 이 사기 그릇 꼴에 알맞게 닮아 버려 이것이 풍속으로 굳어지고 보니 어찌 원통한 일이 아닐까 보냐.

 

p261 “조선 양반은 참말 부처님같이 어진 어른들입니다. 필시 영감 슬하에도 봉황, 기린같은 잘난 아들, 손자님을 많이 두셨고 보니 남의 어린 것을 보시고도 그토록 귀해하시는 거지요.”

 

p269 ‘유색’이라고 부르는 기생은 꽃이 부끄러워하고 달이 얼굴을 못 들 만큼 자새깅 곱고, ‘춘운’이라는 기생은 가는 구름을 멈추고 창자를 녹일 만큼 소리를 잘한답니다.

 

p274 슬프다. 이곳은 숭정 경진년과 신사년 연간에 명나라와 청나라 군사들이 격전을 하던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이다. 벌써 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난리의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시방도 넉ㄴ거히 당년의 장렬한 격전의 자취를 생각할 수 있었다.

 

p277 당시 명나라 군사는 13만 대군으로 각라가 인솔한 ㅂ루과 2천도 못 되는 군사에게 포위되어 바로 눈앞에 마주 쳐다보면서 썩은 가랑잎 부스러지듯 망하고 말았다.

 

p282 길가 수십 길 나마 되는 산봉우리가 있는데, 이름을 ‘구혈대’라고 한다. 세상에 전하는 말로는 청 태종이 이 산 위에 올라가 영원성 안을 굽어보다가 명 나라 순무 원숭환에게 패하여 피를 토하고 죽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p287 대체로 해가 돋을 때에 하늘에 구름기가 한 점도 없으면 해뜨는 구경에는 좋을 성싶지마는 이럴 때가 해돋이 구경으로서는 제일 몰풍정하다. 그저 둥그렇고 붉은 구리쇠쟁반 한 개가 바다에서 떠오른들 뭉서이 가관스러울 것인가?

 

p288 이 밤이 오래도록 새잖으면 어쩔거나.

지금껏 이 북새를 뉘라서 증거하리.

아마도 까막나라 큰 난리가 났나보다.

해 드나드는 땅 밑창에 구멍이 막혔는가?

하늘을 비끄러맨 동아줄이 끊어졌나?

세 발 가진 까마귀의 발 하나를 잡아 맸지.

바다 신령 옷자락은 물이 뚝뚝 듣듯 검고

용궁 여왕 쪽튼 머리 차디차게 쌀쌀하이.

 

p296 나는 성미가 원래 관상이니 점이니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평생을 두고 그 법을 알려고 해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육임이니 둔갑이니 하는 것은 말부터도 허탄하여 내 사주도 대주지 않았더니, 이자는 역시 자기의 술수를 자랑하여 복채라도 톡톡히 청해보려다가 내 기색이 의외로 냉담한 것을 보고는 다시 말이 없었다.

 

p299 사정인즉 이 집 주인이 글이라고는 한 글자도 모르고 보니 바삐 맞은편 점방으로 뛰어가서 이 소년을 청해 데리고 왔던 것이다. 이 소년은 만주 글을 잘 쓰지마는 한문 글자는 알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말로 몇 마디 수작을 붙였으니 피차에 무슨 뜻인지 모르고 멍멍하게 들 있었다. 이야말로 귀머거리가 아닌데 듣지를 못하고, 소경이 아닌데 보지 못하고, 벙어리가 아닌데 말을 못하는 셈이다. 세 사람이 둘러 앉고 보니 세상에 병신들만 모아 놓은 것 같아서 서로들 웃음판으로 얼버무렸다.

 

p302 창대는 참외 한 개를 공양하고는 수없이 절을 하더니 금방 소상 앞에서 참외는 제가 먹어 버린다. 아무래도 모를 일이다. 기도를 올리는 작자는 대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얌라로 바치는 것은 적고 바라는 것은 사치하다고 볼 수밖에 없구나.

 

p312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는 중국이 얼마나 큰 줄 모를 것이요,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모를 것이요, 산해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이 얼마나 장한지 모를 것이다.

 

p313 내가 서쪽 층층대로 내려와 평지에서 쳐다보니 대 위에 선 사람들은 벌벌떨면서 어쩔줄 모르고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라갈 대는 한 층대 한 층대 붙들고 올라가다 보니 위태한 줄을 몰랐다가 도로 내려오려고 보니 한번 눈을 들자 뜻도 못한 자리에 서게 되어 금방 눈이 핑 돌았다.

탈은 눈에서 생겼으니 벼슬하는 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떠받들려 올라갈 대는 한 층대 반 층대가 남보다 뒤떨어질가 하여 더러는 동배를 떠밀고 앞을 다투다가도 급기야 몸이 높은 자리에 처하고 보면 겁이 나고 외롭고 위태로워 나아갈 곳은 한 자죽도 없고 물러설 자리는 천길 낭떠러지가 있을 뿐으로 어데를 더위잡았자 도움되 가망도 없고 보니 내려오려 해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다. 천고를 두고 통하는 이치렸다.

 

<관내에서 본 이야기>

p322 종이란 먹빛을 잘 받고 필태를 잘 먹어 들이는 것을 쳐주는 것이지, 하필 여물고 질겨 찢어지지 않는다고 쳐줄 것은 못 된다.

 

p324 이러고 보니 환현 같은 사람은 자기 집에 손이 와도 혹시나 붙여 둔 서화가 더러워질가 하여 기름 과자를 대접하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참말 명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340 “항우가 아무리 고함치는 소리가 크다고 한들 우렛소리만이야 할 수 있으려고. <<사기>>에는 말하기를 적천후의 병사들이 항우의 고함에 놀라 사람이고 말이고 할 것 없이 몇 리씩 비켜 섰다지마는 이것도 허황한 소리요, 항우가 눈을 아무리 부라려 보았자 번갯불 같지는 못했을 터이니, 여마동이 항우가 눈 부릅뜨는 바람에 말에서 떨어졌다는 말도 더구나 믿지 못할 소릴 것이네.”

하고는 함께들 웃었다.

 

p345 “산수가 그림 같구먼!”

하기에, 나는,

“자네들이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말일세. 산수가 그림에서 나왔겠는가, 그림이 산수에서 나왔겠는가?”

했다. 이러므로 무엇이든지 비슷하다, 같다, 유사하다, 근사하다,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다들 무엇으로써 무엇을 비유해서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과 비슷한 것으로써 무엇을 비슷하다고 비겨서 말하는 것은 어데까지라도 그것과 비슷해 보일 뿐이지 아주 같은 것은 아니다. 옛날 사람이 양자강에서 나는 요주는 여지 비슷하게 생겼고 서호는 서자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니가 어떤 되퉁맞은 자가 있다가 다시 말하기를 담채는 용안과 같고 전당은 비연과 비슷하다고 했다. 모두들 생각에는 어떠한가?

 

p350 고비를 캐 먹어도 배는 안 부럴

백이는 마침내 굶어 죽었네.

우리 먹는 꿀물은 술보다 다니

꿀물 먹고 죽는다면 원통도 하리.

 

지금 생각하니 어언 17년 전 일로서 이제는 다 옛말이 되고 말았건만 또다시 백이의 고비가 이토록 말썽이 되어 이향의 등불 밑에서 옛날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필경 잠을 버성기고 말았다.

 

p354 세월은 아물아물 화살같이 빠르고

강물은 동으로 흘러 다함이 없네.

명리를 다투는 초로 같은 인생아,

백년 세월에 몇 명 살아남았던가?

 

p355 어부와 초부 사이 주고받는 이야기

봄바람 가을 달 밑 시비가 없고

제 잔 부어 제 마시고 제 노래르 제 읊으니

잘한다 못한다가 소용이 없네.

 

쓰르라미 울고울어 세월은 총총

산에서도 물에서도 모기 떼는 잉잉

간밤의 비바람에 간 곳이 없네.

 

p356 두루미에 남은 술은 다 말라가고

달 아래 하염없이 그대 노래 들을 적

부귀와 공명을 나는 몰라라.

닥쳐 오는 뒷일일랑 묻지 말아 주.

 

p367 범이란 영특하고 갸륵하고 문무가 겸전하고 자애롭고 효성 있고 어질고도 슬기롭고 용맹이 놀랍고 장하여 천하에 적수가 없건마는 비위란 짐승이 범을 잡아먹고, 죽우란 짐승이 범을 잡아먹고, 박이라는 짐승이 범을 잡아먹고, 오색사자가 큰 나무 둥치 구멍에 있다가는 범을 잡아먹고, 자백이란 짐승이 범을 잡아먹고, 표견이란 짐승이 날아서 범을 잡아먹고, 황요라는 짐승은 범이나 표범의 염통을 끄집어 내 먹고, 뼈가 없는 활이라는 짐승은 범이나 표범이 삼키면 뱃속에서 그 간을 먹고, 추이란 짐승은 범을 만나면 짓찧어서 씹어 먹고, 범이 맹용이란 짐승을 만나면 눈을 감아 감히 쳐다보지를 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맹용은 무서워하지 않고 범을 무서워하고 보니 범의 위엄이란 대단하지 않은가. 범은 개를 잡아먹으면 취하고, 사람을 잡어먹으면 귀신이 붙는 법이다.

 

p370 음양이란 건 원래가 한 가지 기운에서 나오는 것인데 둘로 쪼개 놓았다니 그놈의 고기가 벌써 잡되구나. 오행이란 건 원래 제자리를 잡고 있어 서로 낳고 말고가 없을 터인데 요즘에들 공연히 어미니 새끼를 만들어 놓고, 짜다니 시다니 갈라 놓았다니 이러고야 그 맛이 성할 수 없으렷다.

육기란 것은 원래 절로 돌아가는 것이지 일부러 당기고 말고 할 까닭이 있어야지. 요즘에 와서 함부로들, 이런 데 손을 대느니 돕느니 떠들어 제 생광을 쓰려고 드니 이런 놈의 고기를 먹다나면 질기고 여물어서 삭여 낼 것 같잖구나.

 

p372 내 들은 말로는 여우 갓을 얻으면 만부자가 되고, 여우 신을 얻으면 대낮에도 제 몸이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인다 하고, 여우 꼬리를 얻으면 남을 잘 호려 반하도록 만든다는데, 어째서 이놈의 여우를 잡아 죽여 우리끼리 나눠 가지지 않을 것인가?

 

p375 네가 세상 이치를 펴 늘어놓을 때는 걸핏하면 한르을 둘러메고 나서지마는 참말 하늘이 마련한 대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물건이어든, 천지만물이 살아나가는 어진 도리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벌이나 개미나 다 사람과 함께 같이 살기 마련이지, 서로 등지고 지낼 터수가 아니렷다. 또 이것을 선악을 두고 따져 본다면 드러내놓고 벌과 개미집을 털어 가는 놈이 천하에 큰 도적놈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제 마음대로 메두기와 누에의 밑천을 훔쳐가는 놈이 의리로 보아 대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p376 그러나 범의 집안에서는 홍수나 가물을 모르고 보니 하늘을 원망할 리 없고 덕이고 다 잊어버리는지라 세상에 미운 것이 없고, 하늘의 말녀대로 따라 살다나니 무당이나 의원의 농간에 넘어갈 턱이 없고, 타고난 성품에 따라 저 생긴 대로 살다나니 더러운 세상살이 잇속에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범이 영특하고 갸륵하다는 내력이란 말이다.

한 가지 얼룩을 보아 열 가지 문채를 세상에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치의 병장기를 손에 대지 않고도 다만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만 가지고서 위풍을 천하에 뽐내고 범의 형상을 그린 제기들로써 효성을 세상에 널리 퍼뜨려 가르친다. 하루에도 한 끼는 까마귀, 솔개미, 개미 떼가 대궁을 가랄 먹으니 우리들의 어진 행실이야 이루 다 칠 수 없을 것이고, 애매하게 남에게 먹힌 사람을 잡아먹지 않고, 병자나 폐인을 잡아먹지 않고 상주를 잡아먹지 않으니 의로운 행실까지도 이루 다 들 수 있겠는냐?

 

p377 옛글에도 있지만 아무리 악한 놈이라도 목욕재계를 하고 나면 하느님이라도 모실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 세상에 천한 이 몸이지마는 감히 당신의 아랫자리에서 삼가 모셔 받들가 하오이다.

 

p378~379 옛날 사람들은 이런 ‘하늘의 마련’을 두고 설마 하늘이 그러랴 하고는 성인에게 물어 본 적도 있었다. 이럴 적에 성인은 분명히 하늘의 뜻을 받아서 말하기를,

“하늘은 말이 없이 행동과 사실로 보여 준다.”

고 했는바, 어린 나로서는 일찍이 이 대문을 읽을 때마다 실상 의혹이 없지 않았다.

나는 묻겠다. 하늘이 행동과 사실로 보인다 치고 보면 오랑캐로써 중국을 바꾸어 놓은 사실은 천하의 큰 치욕이매 백성들의 원통함을 어떻게 하랴? 향내 나는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각 제물임자들이 닦은 공덕이 다를 것이매 대관절 귀신이 먹을 때는 무슨 냄새로써 짐작을 삼았을 것인가?

이러고 보니 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면 중국과 오랑캐는 반드시 등분이 있겠지마는 하늘이 마련한 것을 본다면 은나라의 한관이나 주나라의 면류관이나 다 각기 그 당시의 시속을 따른 것이다. 유독 오늘날 청인의 붉은 모자에만 의심을 둘 까닭이 어데 있을 것인가? 이래서 하늘이 정한 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는 말과, 사람이 많으면 하늘도 막아 낼 수 없다는 말이 떠돌게 되어 사람과 한르 사이에 서로 어울리는 이치는 한 걸음 물러서게 되고, 옛날 성인의 말을 징험으로 맞추어 보아 맞지 않을 때는 대번에 천지의 ㅇ누수라고 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애달프다! 이것이 어째서 한갓 운수일까 보냐.

p392 “성인이 다 마련한 제도라 못생긴 이 몸도 다리를 끌면서라도 따라갑지요.”

 

p397 애석한 일이지마는 옛 역사에 이르기를, 문자가 생기기 전의 역사를 상고할 길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문자가 생긴 이후 21대 3천 여 년 동안을 두고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대체 무슨 방법을 썼던가. 그것은 소위 ‘유정유일’의 정신이 아니었던가. 그러고 보니 천하를 잘 다스린 자로 요 임금과 순 임금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p401 성인은 일찍이 재고, 되고, 다는 것을 한 가지 법칙으로써 규정해 왔으니원형은 규에 맞도록 하고, 모난 것은 구에 맞도록 하고, 직선은 먹줄에 맞추고, 본즉 이 법칙이야말로 천하에 퍼뜨리면 천하가 지키고 걸, 주에게 퍼뜨리면 걸, 주도 지킬 수 밖에 없는 움지기이 못할 법칙이다. (치수 사업)

p401 의식이 족한 뒤라야 예절을 알게 되는 법이라, 후세에 있어서 그 나라를 부강코저 하는 자가 때로는 각박하다, 덕이 적다는 비평이야들을 값에 그렇다고 그들의 이룩이 자기 한 몸의 이익만 돌보았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서 위태롭고 미약할 때의 마음 쓰는 법이나 일의 공사를 분명히 따져 말한다면 유정유일 정신을 그들에게 함부로 말할 것은 못 된다. 그러나 그 공덕과 이용에서 볼 때는 비록 그 방법이 오랑캐로부터 나왔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장점들을 모아서 유정유일로서 표본을 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p410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여한이 없을 일이거든!

애달프다. 사람들은 늘 제 스스로를 알고자 하나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때로는 아주 위대한 백치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짐짓 미친 행세를 하여 숫제 자기란 것은 없애 버리고 제 몸을 일체 만물이나 다름없이 처하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몸 놀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여유로우리라.

성인들은 때로 이런 길을 취하여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살면서도 답답한 줄을 모르고 홀로 나아가도 겁날 것이 없었다. 공자는,

“남이 나를 몰라준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닐 까보냐.”

했고, 노담은 또,

“나를 알아주는 자야말로 드물다.”

하였으니, 나란 것이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알도록 하고 싶잖다는 의미다. 이러고 보니 더러는 의복ㅇ르 변ㅂ고하기도 하고 더러는 형모를 달리하기도 하고 더러는 성명가지 바꾸었으니 이것이 다 성인이나 부처나 현인, 철인들이 하는 노릇으로서 그들은 세상을 주물러 놀리면서 천하의 제왕으로서도 이들의 취미와는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 있어서 혹시 세상에서 자기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실패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상불 진정에 들어가 본다면 세상에 단 한 사람쯤은 자기를 알아주기를 못내 바라고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요 임금은 평복을 하고 큰 거리에 나갔다가 격양가를 부르는 농부를 만났고, 석가는 아난을 만났고, 태백이 몸에 먹침질을 하고 돌아다닐 때에 중옹이가 있었고,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고 다녔지마는 알아보는 친구를 가졌고, 굴원에게는 어부가 있었고, 치이에게는 서자가 있었고, 장록에게는 수가자가 있었고, 자방에게는 황석공이 있었다. (각주 참고)

 

p412 이제 나는 호롤 유리창에 서 있고 보니 입성이나 갓은 천하가 알바 없을 것이요, 얼굴 생김새는 세상이 처음 보았을 것이요, 반남 박가는 누구 하나 들었을 바 없을 터로 나는 이참에 성인도 되고 부처도 되고 철인, 현인이 되어 미친 행세는 기자나 접여에 다름이 없다고 하자. 누구와 더불어 이 아깃자깃한 취미를 이야기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공자는 송나라로 쫓겨다닐 적에 머리에 무엇을 썼던가?”

나는 한바탕 웃고 대답했다.

“동에 번득 서에 번뜩 별의별 차림을 하고 다닌 것을 누가 알 것인가.”

그러나 “선생님이 계신데 내가 감히 어떻게 먼저 죽겠습니까?”

라고 한 안회얌라로 공자를 알아보았고 또 천하에 둘도 없는 지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북방여행기>

p419 열하는 황제의 형재소다. 옹정 시절에는 이곳에 승덕주를 두었고 지금은 건륭은 주를 부로 승격하였으니 황성의 동북족 422리 되는 곳이요, 장성으로부터 2백여 리 떨어진 곳이다.

중국에 가고 싶다. 박지원의 발자취를 따라 가고 싶다.

 

p419 지금은 청나라가 통일한 후 처음으로 ‘열하’라고 이름을 붙이고 만리장성 밖에는 요해지가 되었다. 강희 황제 시대로부터는 언제나 여름철이 되면 황제는 이곳에 두류하여 피서지로 삼았다.

 

p421 여러 신하들은 언제나 말을 달려 천자에게 공사를 아뢰는데 이 같은 외진 곳을 뜨락문 나들 듯 하여 말 등에서 떠날 새가 없다시피 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성인들이 말한 소위 “평안해도 위태한 것을 잊지 않는다”는 취지로서 학성의 말은 그럴듯도 하였다.

 

p423 “나는 나라의 사명을 띠고 온 걸음이다. 빠져 죽더라도 내 직책인데, 다른 도리는 없을 것이다.”

“너무들 걱정 마라. 나라가 돌보는 영험이 있느니라.”

 

p424 “도중에서 열하를 너무 마음에 두셔서 십아은 자리에 드셔도 꿈을 꾸신갑습니다.”

 

p427 필경 나는 가기로 작정하였다.

 

p428 나는 말 위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괴로운 노릇은 이별처럼 괴로운 노릇이 없을 터이요, 이별 중에서도 괴로운 이별은 생이별처럼 괴로운 이별이 없구나. 그까짓 죽고 사는 이별즘이야 괴롭다 말할 거리가 못 될 것이다. 천고로 내려오면서 어진 아버지, 효성 있는 자식, 믿음직한 남편, 알뜰한 지어미, 의로운 임금, 충성된 신하, 피로 맺은 동지, 마음으로 사귄 친구들이 운명을 하는 자리에서 마짐가 유언을 주고받을 때나 또 옛날 임금들이 임종할 때 탁자에 기대어 자기가 믿던 신하에게 국사를 부탁하는 자리에서는 누구 없이 손을 붙잡고 눈물을 뿌리면서 있는 정곡을 다하여 애끊는 당부를 하는 법이다.

이것은 세상의 어느 부자, 어느 부부, 어느 군신, 어느 붕우 사이에서라도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요, 도 세상에 어질고 효성 있고 알뜰하고 믿음성 있고 의롭고 충성되고 피로 맺고 마음으로 사귀는 사이들에서는 누구 없이 우러나오는 심정들이다. 이런 일이 이미 사람마다 함 직한 일이요, 또 사람마다 우러날 수 있는 심정이라면 이런 일은 세상에 순순한 이치로 될 것이다. 이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순순한 이치를 실천만 하고 보면 소위 ‘3년을 고치지 않는다.’ 고 쳐줄 것이니, 여기서 무덤에 들어가 죽은 자로서야 땅속에서 다시 도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살아남은 자의 괴로움이란 부모를 다라 죽으려고 한 효자도 있고, 아들이 죽어서 눈이 멀게 된 아비도 있고, 아내가 죽어 너무도 어이가 없어 물동이를 치고 노래를 부른 남편도 있고, 임금의 원수를 갚으려고 숯을 먹고 벙어리가 된 충신도 있고, 남편의 시체를 찾으려다가 성이 무너져 치여 죽은 아내도 있었으니 이런 사람들은 다들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제 몸을 희생하였을 뿐 이미 죽은 자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 이러고 보면 죽고 사는 이별 마당에서 죽은 자는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p430 세상에 무엇이 괴롭다, 무엇이 괴롭다 해도 한 사람이 가고 한 사람은 남는 생이별보다 더한 괴로움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별의 괴로움에는 ‘곳’과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어떤 곳이 이별하는 괴로움을 자아낼 많나 곳일까? 집도 아니요, 정자도 아니요,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니다. 그러나 물이란 풍정은 적실히 이별의 괴로움을 자아냄 직한 ‘곳’이 될 것이다.

이별 ‘곳’으로 치는 물이란 대체 어떤 물을 두고 말하는 것인가? 커서 강과 바다요, ㅈ가아서 도랑과 개굴창만이 물이 아니다. 크건 작건 간에 되돌아올 길이 없이 흘러가는 모든 것이야말로 물일 것이다. 그러니 옛날부터 이별하는 괴로움을 그려 낼 적에는 흔히 들 물이 배경으로 나오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릉과 소무만이 다정다한한 사람이 아니언마는 그네들의 글에 나오는 애끊는 이별ㄷ릉느 유달리 물을 입려 ‘곳’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니 그네들의 이별이 가장 애끊는 이별로 보였던 것이다.

물? 물의 정취를 나는 알고 있다. 옅도 않고 깊도 않고 잔잔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물결이 바윗돌을 얼싸안은 채 흐느껴 우는 것이 물이었다. 바람도 없고 비도 ㅇ벗고 그늘도 안 들고 볕도 안 나는 음산한 날, 눈에 보이는 경물들이란, 한 번은 무너지고 ㅁ라 강 위에 놓인다리, 필경은 죽고 말라 버릴 가욷ㄱ에 선 나무, 앉고 서고 뒹굴 수 있는 강가의 모래사장, 솟았다 잠겼다 숨바꼭질하는 강 복판의 물새들! 이런 경물 속에 선 사람인직, 셋도 아니요, 넷도 아닌 단 두 사람이 소리도 없고 말도 없이 마주 설 때야 말로 세상에 이런 괴로운 자리가 도 있을 것인가. (중략)

 

p432~433 그대를 보내는 이 강둑에서 돌아설 제

그리운 그대 모습 이로부터 멀어지네.

 

예보던 그 숲 보고 내가 탄 말 울음 울 제

그대가 탔던 그 배 산굽이로 사라지네.

 

닻 감아라 배 떠나간다.

이때 가면 언제 오나.

만경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소사.

 

p450 의서에는 쓰기를, 산골 물은 절구질하듯 찧고 보니 이 물을 오래 두고 먹으면 혹이 생긴다기도 한다. 지금 이곳에 혹이 많은 것은 사는 땅이 험준한 탓이라고 할까. 그러나 여자들이 유독 심한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p451 봄도, 여름도, 겨울도 아닌 이 철,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아닌 이때, 태백성 정기가 바로 맞아떨어지는 계절, 관 마을 첫닭이 홰를 치려는 이 무렵, 어째서 이 자리가 우연한 자리일가 보냐.

 

p453 사람이 몸 쓰는 버릇은 대체로 오른쪽이 왼쪽보다 들고 보니 말도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다.

 

p455 옛말에 위태로운 짓을 비겨 말할 적에는 장님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물을 들어선다고 했지! 이야말로 바로 오늘 밤 우리들을 두고 한 말일세.

“장님을 보는 사람은 결국 눈이 성한 사람일 것이네. 장님의 위험은 눈이 성한 사람이 보다나니 위험으로 생각되는 것이지, 장님 된 자야 위험을 위험인 줄 알 재주가 없을 것 아닌가. 장님이야 보지를 못하는데 위험이고 뭐고 있을 것이 무엇이람.”

 

p456 차츰 열하가 가까워지니 사방에서 몰려드는 진상품들이 처밀려 모여 짐 실은 수레와 약대 바리는 밤낮을 그칠 줄 몰라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풍우를 몰아치는 듯 야단스러웠다.

 

p459 나는 길가에 돌을 두고 맹세해서 만약에 내가 사는 연암 산주응로 돌아가는 날은 꼭 천 일하고도 하루 동안 잠을 자서 희이 선생보다도 하루 더 자면서 천둥같이 코를 골아 영웅의 젓가락을 떨뜨리도록 하리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렇지 못할 때는 맹세대로 “나는 돌이다.” 하면서 한번 꾸벅하고 깨다나니, 이것도 역시 꿈이었다.

 

3. 내가 저자라면

연암 박지원은 사실주의 작가라고 한다. 사상가로 문학가로서 우리 나라 고대 중세의 전 시기를 통하여도 가장 높이 솟아 있는 봉우리의 하나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구성이 독창적이고 내용이 풍부하다. 장편의 기행문으로 당시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던 심각한 사회 경제적 변동과 문화 예술 분야에서의 첨예한 신구 투쟁이 반영되어 있으며 시대의 선진 사상 조류를 대표한다. 연암은 외롭고 가난한 가운데 점차 판이한 두 세계를 알아보게 되었다. 즉 양반의 정체를 깨닫게 된 것이다. 연암은 조선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와 시대적 요구에 대한 민감성, 그리고 열렬한 애국주의와 실사구시적인 방법론적 우월성으로 하여 인민들의 지향과 염웜을 반영하면서 당시의 기본 생산자이면서 노예처럼 사는 농민의 해방이 없이는 조국의 부강과 발전이 있을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나라와 겨레의 행복을 좀먹는 원수들은 노력과 떨어져 있는 통치배들과 사대부들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연암의 중국 여행은 그의 사상 발전에서 새로운 계기로 되었다. 그는 이제껏 말로만 들어오던 중국의 면모를 직접 보고 들으면서 중국으로부터 많이 배우며 빨리 따라 앞서야겠다는 ㅈ오래의 견해를 더욱 확고히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 그는 여행 기간의 견문을 사람들에게 소개, 선전할 목적으로 붓을 들었다. 4년동안 심혈을 기울여 탈고한 <<열하일기>>는 압록강을 건너 북경을 거쳐 열하에 이르는 순천 리 장정의 여행기이다.

4년의 시간 동안 <<열하일기>>를 집필 할 수 있었던 집념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작가는 이미 자기 생각이 뚜렷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 있으며, 잘못된 것은 바로 잡고, 잘 된 것은 수용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연암의 사상이 제한적인 계몽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폭력에 의한 혁명에 의해서만 자기들의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고 선량한 사람들을 계몽하는 방법에 의거하려고 했다. 어찌되었든 그는 평생에 자기 소신을 피력한 시, 소설, 정론, 실화, 수필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남겼고, 조선의 선진 사상과 문학 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했다.

진실한 백성의 목소리를 두려워하는 반동 통치밷르은 연암의 저술들이 공개되는 것을 두려워하여 그의 사후 거의 백 년 간이나 소위 ‘금서’로 출판을 허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가혹한 탄압도 진리의 목소리를 막을 수는 없다. 연암의 작품들은 전사되어 날이 갈수록 널리 읽혔고, 계몽기 이후에 비로소 전집 형식으로 <연암집>이 간행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진적 사상과 예술도 일제 통치 아래에서는 인민의 재산이 되지 못했다.

 

연암에게서 배울 점은 바로 현실의 진실한 묘사다. 사실주의 정신. 실사구시 정신에 토대하고 있는 사실주의 정신을 본 받아 해박하고 풍부한 묘사로 독자를 사로잡는 점을 배우고 싶다. 현실 생활 속에 깊이 침투하여 그의 참된 경지 즉 본질을 그려 내며 인간들의 내면 세계 정리(情理)를 절실하게, 근사하게 그리는 연암의 예술적 신조를 닮고 싶다. 전달하려는 내용을 선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표현법을 배우고 싶다. 비판 정신과 예리한 시대 감각, 논리의 명료성과 그의 형상적 표현의 배합을 배우고 싶다. 그는 탁월한 작가였던 것이다.

기본 뼈대는 시간 순이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그 시간 안에 벌어졌던 일들을 생생하게 전달해서 인지 읽는 내내 나도 중국에 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중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생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부분은 인간의 내면을 살피고, 분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담담하게 펼쳤다. 나에게 궁금증 하나를 유발하기도 했는데, 우리 나라 역사에는 제2의 인격에 대한 이야기를 한 선조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전쟁, 정치, 사상, 경제, 신분 이야기 말고 인간의 내면에 주목했던 학자는 없나? 박지원에게는 그런 모습이 좀 보인다.

 

내 책을 쓸 때도 풍부하고, 재미있게 묘사하고, 해박할 수 있도록 연구를 많이 해야겠다. 중, 하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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