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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6일 10시 36분 등록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신영복지음/ 돌베개


저자에 대하여

1941년 8월 13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다가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수감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출소 후,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를 역임하였고 2006년 말에 정년 퇴임하였다.

퇴임 당시 소주 포장에 들어가는 붓글씨를 그려주고 받은 1억원을

모두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하였다.

현재는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수업을 통해 학생들과 나눔과 소통을 하고 있다.


신영복선생의 감옥생활

육군 교관으로 장교였던 신영복은 군사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된 후 충격을 받고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고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마침내, 그 고뇌와 사색은 20년내내 이어져 완전히 '인간성이 개조'되는 내적 자기혁명을 이루어 낸다.

신영복은 교장의 아들로 성장하여 민중의 삶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남다른 애착은 없었다.그런데 감옥에서는 밑바닥을 살아온 기층민중과 24시간을 맨살을 부대끼며 살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통해 자신이 지식청년으로서 가지고 있던 창백한 엘리트주의적 관념성과 '먹물성'을 통절히 비판하고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된다.

감옥에서의 삶은 서로가 알몸으로 부대끼며 가식없이 숨김없이 사는 탓에, 한방에서 오래 살다보니 서로의 과거와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자신의 삶과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한번은 목수출신이 집을 그릴 때 지붕부터 그리지 않고 주춧돌부터 그리는 것을 보고 그는 큰 충격을 받는다. 책이나 이론으로 배운 세계가 현실과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생각에 그간의 인식틀을 깨부순 것이다. 무엇보다 10여년간 교도소에서 노동을 하면서 목공, 영선, 제화공, 재단사등으로 직접 노동자 생활을 온몸으로 고통을 느끼며 경험했다는 사실은 그 자신의 인간 개조론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특히, 감옥에서의 비전향 장기수들과의 만남은 이후 그의 사상과 인생관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지 않을 수없었다. 막연하게 책에서나 보아온 분단과 전쟁의 피투성이 현대사의 이야기를 직접 이를 경험한 빨치산과 투사들을 통해 생생히 들음으로써 '피가 통하고 숨결이 이는 화석'처럼, 살아있는 역사체험을 한다.

또한, 한학자 출신의 사상장기수로부터 동양고전과 철학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서구사상에 매몰된 현실에 대한 자각과 자존을 깨닫고 고전학습에 몰입한 나머지 이후 성공회대에서 동양철학도 강의할 수 있게 된다.

신영복은 현재 서예가로도 명성이 높다. 이도 감옥에서 여러 장기수 선생으로부터 지도받은 결과라 한다. 한문 서체로 익힌 필법은 한글에도 응용해 민중 정서에 맞게 민체, 연대체, 어깨동무체라는 글씨체를 창안해 독특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감옥 20년의 삶이 완전히 인생을 바꾼 진정한'나의 대학시절'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데 그의 동무들은 그가 출소하자 '야, 너 하나도 안변했네'라고 감탄했다 한다. 그의 삶의 철학과 신념은 변함없이 "더불어 숲"을 이루는 것이었기에. <워키백과>에서 인용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장


서론1

***내가 본격적으로 동양고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 들어간 이후입니다. 감옥에서는 특히 독방에 앉아서는 모든 문제를 근본적인 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감옥의 독방이 그런 공간입니다. 우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유년 시절에서부터 내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을 되돌아보게 되고 우리 사회가 지행했던 가치에 대해 반성하게 됩니다. (16P)


***요즈음 대학생이나 젊은 세대들은 근본적 성찰을 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것같이 느껴집니다. 매우 감각적이고 단편적인 감정에 매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도 세계화와 신자우주의의 세례를 받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반성 자체가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까지 하지요. 이러저러한 이유로 근본적 담론 자체가 실종된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P)



***화두와 오래된 미래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스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고전 독법 역시 과거의 재조명이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21P)


****먼저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2세기에 이르는 춘추전국시대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변혁기의 사상을 대상으로 하였습니다. 이 시기는 흔히 축의 시대 라고 하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상의 백화제방시대입니다. 처음으로 고대국가가 건설되는 시대였기 때문에 사회에 대한 최초의 그리고 최대한의 담론이 쏟아져 나왔던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도 이 시대의 사상가임은 물론입니다. 한마디로 사회와 인간에 대한 근본 담론의 시대 그리고 거대 담론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2p)

☆☆☆이 시기에 세계 4대성인-석가, 예수, 공자, 맹자-이 출현한 것은 참 기이한 일이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존재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기본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개별적 존재는 부단히 자기를 강화해가는 운동원리를 갖습니다. 그것은 자기 증식을 운동원리로 하는 자본운동의 표현입니다.


관계론적 구성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존재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배타적 독립성이나 개별적 정체성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관계성을 존재의 본질로 규정하는 것이 관계론적 구성원리라 할 수 있습니다. (23~24P)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과의 조화와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라다크의 오래된 삶의 방식에서 바로 오염과 낭비가 없는 비산업주의 적 사회발전의 길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그것이 잘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24p)


***차이에 주목하는 것은 부분을 확대하는 것

사상은 시간적인 존재형식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존재형식도 갖습니다. 동양이라는 어휘 그 자체가 공간적 의미입니다. 서양에 대한 동양이란 뜻입니다.

***차이를 보려는 시각은 결국 한쪽을 두당하게 왜곡하는 것이 아닐 수 없으며, 기껏해야 지엽적인 것이나 표면에 국한된 것을 드러내는 것일 수 밖에 없지요. 차이에 주복하는 것은 결국 차별화로 귀착되는 것이지요. (28P)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 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29P)


***고전독법의 참여점

근대사는 서구문명이 전 세계로 확장되는 과저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이 지난 몇 세기 이래 줄곧 서양문화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대 세계의 기본적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30P)

***서양문명은 과학과 종교가 기능적으로 잘 조화된 구조이며 이처럼 조화된 구조가 바로 동아시아에 앞서 현대화를 실현한 저력이 되고 있다는 것이지요. (30P)


*****삶을 존중하고 길을 소중히 하고

현실주의란 한마디로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진실입니다. (34P)

현실주의가 곧 현세에 대한 탐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요.

***형식주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를 일정하게 사회화해야 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일정한 형식이 요구됩니다. 어떤 형식을 부여하는 전범(典範)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지요. 종교적 형식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모든 형식을 불가피하게도 어느 정도의 부정적이고 경직된 측면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36P)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36P)

***자연이 최고이 질서입니다

동양학에서는 자연이란 자원이 아닐뿐 아니라 인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무궁한 시공으로 열려있는 질서입니다. 우주라는 개념도 우와 주의 복합적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宇)는 물론 고아간 개념입니다. 상하시방이있는 유한 광간으로서의 의미를 갖습니다. 주(宙)는 고금왕래의 의미입니다. 시간적 개념입니다. 무궁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39P)


***자연이란 공간과 시간으 l통일, 유한과 무한의 통일체로서 최고, 최대의 개념을 구성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을 생기의 장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생성과 소멸이 통일되어 있는 질서입니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조화 통일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생주이멸의 순환과정 속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39P)


***만약 그릇이 그릇이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즉 자기를 고집한다면 생성체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39P)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기때문이지요. 인간뿐만이 아니라 우주의 어떠한 지점도 결코 중심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39P)

***동양학에서는 자연을 ‘생기의 장’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자연은 존재하고 있는 것 중의 최고 최량의 어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은 최고의 질서입니다. (40P)


***인간은 인간관계입니다

인성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논어에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잇다”는 뜻입니다. 덕성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잧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간입니다. 이 사회성이 바로 인성의 중심 내용이 되는 것이지요. (41P)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공양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仁)이 바로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41P)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곳

동양사상은 과거의 사상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사상입니다.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뛰어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특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45p)


2. 오래된 시(詩)와 언(言)

***상품미학의 허위의식으로부터 삶의 진정성

우리가 <시경>의 국풍부분을 읽는 이유는 시의 정수는 이 사실성에 근거한 그것의 진정성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ㅇ르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52P)


***광고 카피는 허구입니다.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이버 세계역시 허상입니다. 가상공간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입니다. (53P)

***<강둑에서>

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기다리는 임은 오시지 않고 그립기가 아침을 굶은 듯 간절하구나.

저 강둑길 따라 나뭇가지 꺾는다.

저기 기다리는 님 오시는 구나. 나를 멀리하여 버리지 않으셨구나.

방어 꼬리 붉고 정치는 불타는 듯 가혹하다.

비록 불타는 듯 가혹하더라도 부모가 바로 가까이에 계시는구려. (53P)


나는 이 여분이란 시를 참 좋아합니다. 그 시절의 어느 마을, 어느 곤궁한 삶의 주인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이기 때문입니다.


***정지상의 <송인(送人)>

비 개인 간 강둑에 풀빛 더욱 새로운데

남포에는 이별의 슬픈 노래 그칠 날 없구나.

대동강물 언제나 마르랴

해마다 이별의 눈물 물결 위에 뿌리는데.


이별의 아픔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읊기가 어렵습니다. 이 시가 우리나라 한시의 최고봉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55P)


***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선입니다

>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절반이 넘는 양이 국풍입니다.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采詩官)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이처럼 백성의 노래를 수집하는 주나라의 전통은 한나라 이후에도 이어져 악부(樂府)라는 관청에서 백성들의 시가를 수집하게 됩니다. (56P)


***<시경.은 중국사상과 문화의 모태가 되고 있습니다. <시경>은 제후국간의 외교언어로 소통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공통 언어가 성립되고 나아가 중국의 문화적 통일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분만 아니라 나라의 기강이 어지러워지고 민중적인 정신이 피폐해지면 고문(古文)운동, 신악부(新樂府)운동 등 문예 혁신 운동을 벌여 민중 정서에 다가서기를 호소합니다. <시경>의 이러한 사회시(社會詩)로서의 성격은 문학의 사실주의적 전통으로 이어졌으며 동시에 고대사회를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서 <시경>의 가치가 인정되기도 합니다. (56P)


***<모과>

나에게 모과를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보답이 아니라 뜻 깊은 만남을 위해서라오.

나에게 복숭아를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보답이 아니라 변함없는 우정을 위해서라오.

나에게 오얏을 던져주기에 나는 아름다운 패옥으로 갚았지.

보답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라오.


이 시는 제나라 환공을 기라니 시라 하였으나 완벽한 연애시라 해야 합니다. 당시에는 남녀간의 애정표시로 과일을 던지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전합니다. (57P)

***풀은 바람 속에서도 일어섭니다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은 우리 자신의 삶과 정서를 분절시켜 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품미학, 가상세게, 교환가치 등 현대 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이처럼 소외되고 분열된 우리들의 정서를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유력한 관점이 바로 지석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시적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지평을 넓히는데 있었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64P)


****<시경>의 세게는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짓없는 애환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울리들이 매몰되고 있는 허구성입니다. 미적 정서의 허구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66P)


***기록은 무서운 규제장치입니다

농경민족은 유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아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땅이라는 유한한 공간에서 무궁한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 과거의 경험이 다시 반복되는 구조를 터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과거에 대한 기록은 매우 중요한 문화적 내용이 됩니다. (68P)


****불편함은 정신을 깨어있게 합니다

무일(無逸), 안일에 빠지지 말 것

한마디로 무일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72P)


***변화의 속도가 빠를 수록 과거의 지식이 빨리 폐기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노인들의 위상이 급속히 추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가 젊어지는 것이 안라 오히려 사회의 조로화로 이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긴간의 낭비이면서 역사경험의 낭비입니다. (76P)

***유목문화에서는 과거의 경험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동일한 공간에서 반복적 경험을 쌓아가는 문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단히 새로운 초원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노인들의 경험문화는 주변화되고 청년들의 전위문화가 주류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지요.

농본 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노인들의 지헤와 희생이 역사의 곳곳에 묻혀 있습니다.(76P)


***<초사>의 낭만과 자유

굴원의 이소가 <초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힙니다. <이소>는 흔히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에 비유되기도 하고 단테의 <신곡>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전쟁영웅을 기리는 서사시이거나 인간 이성의 구법여행을 표현한 작품이 아닙니다. 실연한 여인의 장편 서사시입니다. (78~79P)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굴원의 시)


나는 굴원의 이 시를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의미로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현실의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82P)

***낭만주의와 창조적 공간

낭만주의가 대체로 부정적 의미로 인식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을 구속하는 억압에 대한 원천적 저항과 비판 의식을 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응방식의 개인주의적 성격 때문입니다. (83P)

***중국의 역사에서는 남과 북이 싸우면 언제나 남쪽이 집니다. 중국의 전쟁사는 언제나 남의 패배와 북의 승리로 점철되어 잇습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한 남방인들의 기질이 험난한 풍토에 단련된 북방의 강인한 기세를 당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에 지는 것을 패배라고 하고 그것을 패배(敗北)라고 습니다. 북에게 졌다고 T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일하게 남방이 북방을 물리친 정권이 바로 현대중국입니다. 호남성 장사의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공산당이 건설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테면 남방정권입니다. (83P)

***1972년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때의 일입니다. 마오쩌둥이 닉슨에게 건넨 선물이 놀랍게도 <초사>라는 사실입니다. 마오쩌둥은 <초사>를 한시도 놓는 일이 없엇다고 합니다. 장정 때에도 손에서 <초사>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84P)


3. <주역>의 관계론


***바닷물을 뜨는 그릇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에  담겨있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입니다.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 낸 틀입니다. 그 반복적 경험의 누적에서 이끌어낸 법칙성 같은 것입니다. (87P)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觀相)과 수상(手相)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89P)


****경(經)과 전(傳)

중국의 역사를 사상사적인 측면에서 다음과 같이 크게 구분합니다. 공자 이전 2500년과 공자 이후 25--년이지요.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占卜)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를 <주역>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시대입니다. 경은 원본 텍스트이고 전은 그것의 해설입니다. (90~91P)


****<주역.은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 550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모든 국가들은 부국강병이라는 유일한 국정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기였습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수립되기 이전의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92P)


****위(位)와 응(應)

<주역>의 독법에서 가장 먼저 설명해야 하는 것이 위(位)입니다. 즉 자리입니다. 어떤 효의 길흉화복을 판단할 때 그 효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효가 어디에 자리하고 있는가를 보고 판단합니다. (100P)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터보다 집이 크면 그 터의 기가 건물에 눌립니다.

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그 ‘자리’가 그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상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평소 ‘70%의 자리’를 강조합니다.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70정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100의 능력을 요구받는 자리에 앉을 경우 그 부족한 30을 무엇으로 채우겠습니까? 자기 힘으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거짓이나 위선으로 채우거나 아첨과 함량미달의 불량품으로 채우게 되겠지요. 결국자기도 파괴되고 그 자리도 파탄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한 나라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잘못된 사람이 차지하고 앉아서 나라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 불행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01P)


****나도 물론 중간을 매우 선호하는 편입니다만 그 선화하는 이유가 무난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게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바둑 7급이 바둑 친구가 가장 많은 사람이라고 하지요. 중간은 그물코처럼 앞뒤로 많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자리입니다. 그만큼 영향을 많이 받고 영향을 많이 미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주역>에서는 중간을ㄹ 매우 좋은 자리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가장 힘있는 자리로 칩니다.(103P)


****위(位)가 소유의 개념이라면 응(應)은 덕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저변에서 지탱하는 인간관계와 신뢰가 바로 응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5P)


*****죽간의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점(占)은 상(相)이나 명(命)처럼 이미 결정되어 있는 운명을 엿보려는 것이 아니라 의난(疑難)을 당하여 선택과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역>이 복서(卜筮)라고 하더라도 단순한 미신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점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 본질에 잇어서는 어떤 현상과 상황을 우리들의 일상적 관점과는 다른 논리로 재해석하고 조명하는 인식체계입니다. 그것 역시 사물과 변화에 대한 판단 형식의 일종이며 그런 점에서 기본적으로 철학적 구조를 디고 있을 수박에 없는 것입니다.

주역은 오랜 기간동안 반복적 경험의 축적과 시간관념의 발달 위에서 성립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106~107P)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나라 역시 그 이전의 여러문화 사상의 총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역>과 주나라의 문화사상은 이후 중구 문화와 동양적 사고의 기본틀이 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공자는 <주역>을 열심히 읽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 하였습니다. 죽간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많이 읽은 것으로 유명하지요. (107P)


****가정이 어려울 때 좋은 아내가 생각나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충신을 분별할 수 있으며, 세찬바람이 불면 어떤 풀이 곧은 풀인지 알 수 있다는 것이지요. (123P)


***우리의 모든 행동은 실수와 실수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잇지요. 그러한 실수가 있기에 그 실수를 거울삼아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끝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무엇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127P)


***실패한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응(應), 즉 인간관계를 디딤돌로 하여 재기하는 것이지요. 작은 실수가 있고 끝남이 없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상태 등등을 우리는 이 단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27P)


***내가 붓글씨로 즐겨 쓰는 구절을 소개하지요.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장은 서로 통ㅇ일되어 잇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 하지 않으면 진미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 진선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129P)


***절제와 겸손은 관계론의 최고 형태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잇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0P)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서 대응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로마법이 로마 이외에 통하지 않는 것을 잊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131P)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1P)


***<주역>강의를 마치면서 시 한 구절을 소개합니다. 서산대사가 묘향산 원적암에 이을 때 자신의 영정에 쓴 시입니다.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132P)


4. <논어> 인간관계의 보고

*****춘추전국시대

<논어>는 공자어록입니다. 노자에는 노자(老子)라는 인간이 보이지 않지만 논어에는 공자의 인간적 면모가 도처에 드러나 있습니다.

공자 당시에는 논어라는 책이 존재했을 리가 없습니다. 후대에 제자들에 의해 학단차원의 사업으로 편찬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7P)


****춘추전국시대, 이 시기에는 사회에 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활발하게 개진된 시기라 할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철기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 5세기 제 2의 농업혁명기에 해당됩니다. 이 시기는 철기시대 특유의 광범하고도 혁명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농업생산력의 증대는 수공업, 상업의 발달로 이어집니다. 여불위 같은 대상인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둘째, 춘추전구시대는 사회 경제적 토대의 변화와 함께 구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변동기입니다.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제후(諸侯, 혹은 공公)-대부(大夫)-사(士, 가신)-서인(庶人) 이라고 하는 사회의 위계질서가 재편되는 시기입니다. 위계질서의 재편은 먼저 제후와 대부의 강성으로 나타납니다.

셋째, 춘추전국시대는 제자백가의 백화제방의 시기입니다. 주 왕실이 무너지면서 왕실 관학을 담당하던 관료들이 민간으로 분산되어 지식인 계층을 형성하게 됩니다. 공자학파 역시 춘추 말엽에 활동하던 여러 민간 학 

파 중의 한 갈래로 분류됩니다. (138~139P)


***중국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이데올로기로 군림해온 사상이 바로 유가 사상이고 그 중심이 공자이고 <논어>입니다. 2천년동안 쌓아온 공자상은 이미 실증적 분석의 대상이 아닙니다. 곡부에 있는 대성전의 장대하고 화려한 풍경은 공자 당시의 풍경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140P)


****배움과 벗

“배우고 때대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어찌 군자가 아니겠는가.” -논어 학이(學而)-


학습은 그 자체가 기쁨일 수도 잇지만, 대체로 사회적 신분상승을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다르지 않습니다. 당시의 학습이 적어도 수능시험을 위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노예제 사회에서는 학습이ㅣ 의미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학습에 대한 언급이 논어 첫 구절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회변동기임을 짐작케 하는 것입니다. (142P)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엽지 않다’는 마지막 구절의 의미입니다. 공자는 식읍을 봉토로 받는 대부가 되기를 원햇지만, 결국 그러한 신분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녹(祿)을 받는 사(士) 즉 피고용자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은퇴하여 결국 사설 학원원장으로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143P)


****습(習)에 관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습ㅇ,f 복습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습의 뜻은 실천의 의미입니다.

우리가 논어에서 읽어야 하는 r서은 이처럼 사회 변동기에 광범하게 제기되는 인간관계에 대한 담론입니다. (145p)


***사회변화 역시 그것의 핵심은 바로 인간관계의 변화입니다. 인간관계의 변화야말로 사회 변화의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준거입니다. 논어에서 우리가 귀중하게 읽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인간관계에 관한 담론입니다. (145P)



*****옛것과 새로운 것

우리는 흔히 과거란 흘러가버린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리고 과거는 추억의 시작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념만큼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영원히 지나가고 다시 오지 않는 과거는 없습니다. 우리는 까맣게 잊었던 과거의 아픔 때문에 다시 고통받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 등불처럼 우리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옛 친구를 10년이 지난 후엔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147p)

***<강물과 시간>

시간이 유수처럼 흘러가는 그야말로 물과 같다는 생각은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첫째로 시간을 객관적 실재로 인식한다는 점이 그렇다. 시간이란 실재가 아니라 실재의 존재형식일 따름이다. 둘째로 시간은 미래로부터 흘러와서 현재를 거쳐 과거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미래로부터 시간이 다가온다는 생각은 필여한 것이기는 하지만 매우 비현실적이고도 위험한 것이다.


시간에 대한 도착된 관념은 결국 사회 변화에 대한 도착된 이식을 만들어낸다는 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질의 존재형식인 시간이 실체로 등장하고 그 실체는 현재와 상관없는 전혀 새로운 것이며, 그것도 미래로부터 다가온다는 사실은 참으로 엄청난 허구이다. (147~148P)


****과거, 현재, 미래가 각각 단절된 형태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개념은 사유(思惟)의 차원에서 재구성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과거 현재 미래는 하나의 통일체입니다.

요컨대 과거란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편의를 위한 관념적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149P)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구절은 어디까지나 진보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와 미래를 하나의 통일체로 인식하고 온고(溫故)함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지향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149P)


***스승이란 비판적 창조자여야 하는 것이지요. (150P)


*****그릇이 되지 말아야

군자불기(君子不器) -위정(爲政)-

 이 구절의 의미는 대단히 분명합니다. 여러 주에서 부연 설명하고 있듯이 그릇이란 각기 그 용도가 정해져서 서로 통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그릇은 밥그릇으로도 쓰고 국그릇으로도 쓴다고 우길 수 잇습니만, 여기서 그릇의 의미는 특정한 기능의 소유자란 뜻입니다. 군자는 그릇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구절의 의미입니다. (150P)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는 전문성 담론이 바로 2천년전의 노에게급의 그거스로 회귀하는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152P)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

법은 최소한의 도덕입니다. 따라서 법에서 적극적 가치를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점엣 덕치주의는 법치주의에 비해 보다 근본적인 관점, 즉 인간의 삶과 그 삶의 내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53P)

***덕치(德治)가 평화로운 시대 즉 치세(治世)의 학이라고 한다면 행정명령과 형벌에 의한 규제를 중심에 두는 법치는 난세(亂世)의 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3P)


***정치란 바로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형(刑)은 인간관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가두는 것이며 반대로 예(禮)는 인간관계를 열어놓음으로써 그것이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키우는 구조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54P)


***부끄러움에 관한 것입니다.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되지만 정형(政刑)으로 다스리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할 뿐이며 설사 법을 어기더라도 부끄러움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통순경이 교통법규 위반차량 네다섯 대 중에서 한두 대만 딱지를 끊자 적발된 차량 운전자가 당연히 항의를 하였지요. 저 애도 위반이라는 것이지요. 교통순경의 답변이 압권이지요.

“어부가 바닷고기 다 잡을 수 있나요?”

처벌받는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다만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155P)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156P)


****바탕이 아름다움입니다

자하가 질문했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그림은 소(素)를 한 다음에 그리는 법이지 않은가?”

자하가 말했다.

“예를 갖춘 다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네가 나를 깨우치는 구나. 더불어 시를 논할 수 있겠구나.” 공자의 <논어>중에서


이것은 미소와 보조개와 감은 눈동자 같은 미의 외적인 형식보다는 인간적인 바탕이 참된 아름다움이라는 선언입니다. 여기서 소(素)의 의미는 인간적 품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품성이란 바로 인간관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도야되는 것이며 인간관계속에서 발현되는 것입니다. (157p)


***흔히 공주병이라고 하는 증세들이 그런 것이지요. 미인은 대체로 자신에 대한 칭찬을 미리 예상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칭찬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미인은 대체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그 일익을 담당하려는 자세가 부족합니다. 소위 꽃으로 ‘존재’하려는 경향이 우세합니다. 미인이라는 자의식이 없는 사람이 열심히 일함으로써 자기를 실현하려고 하는 것에 비해 매우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지요. 존재론과 관계론의 차이입니다. (158P)



***현대는 미의 기준이나 소위 미모가 획일적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렇기대문에 자신이 미인이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도 드물고 반대로 스스로 미인이 아니라는 자의식을 가진 사람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어졌습니다.

우리는 미를 상품화하는 문화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힉 때문에 미인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과장되기도 합니다. 심각한 것은 상품미학에 이르면 미의 내용은 의미가 없어지고 형식만 남게 됩니다. (158~159p)


***미의 본령을 그 외적 형식으로부터 인간관계의 문제로 되돌려 놓는 이 ,논어>의 대화는 매우 뜻 깊은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160P)


**** 공존과 평화

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 동이불화(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

-논어의 자로(子路)-

군자는 화목하되 부화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동일함에도 불구하고 화목하지 못한다. (160P)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3P)


***군자화이부동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和)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同)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이다. 동(同)의 논리 아래셍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和)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63P)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3P)

***화(和)의 논리는 자기와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서 자기를 강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서오딘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165P)


***동양학에서는 대체로 대비의 방식을 선호하는 까닭은 동양학 그 자체가 관계론적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62P)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

***마음 좋다는 것은 마음이 착하다는 뜻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안다는 뜻입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자기가 맺고 있는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착하다는 것은 이처럼 관계에 대한 배려를 감성적 차원에서 완성해 놓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168P)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

"자공이 정치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가 말하기를 “정치란 경제(足食), 군사(足兵) 그리고 백성들의 신뢰이다“”

자공이 묻기를 “만약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느 것을 먼저 버려야 겟습니까?”

“군사를 버려라.”

“만약 나머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버리지 않을 수 없다면 어느 것을 버려야 하겟습니까?"

“경제를 버려라. 예부터 백성이 죽는 일을 겪지 않은 나라가 없었지만 백성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논어>의 안연(顔淵)


이 구절은 정치란 백성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며, 백성들의 신뢰가 경제나 국방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천명한 구절입니다.

자공은 호상(豪商)으로 공자의 주유에 동참하지 못함을 반성하여 공자 사후 6년을 수묘(守墓)한 제자입니다. 그리고 공자 사후에 자신의 재산을 들여 공자 교단을 발전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그리하여 공자는 자공과 함께 부활했다고 하지요.(170P)


***정치란 신뢰이며 신뢰를 중심으로 한 역량의 결집이라는 사실입니다. (172P)


****참된 지(知)는 사람을 아는 것

번지가 인(仁)에 관하여 질문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인이란 애인(愛人)이다.”

이어서 지에 대해 질문하였다. 공자가 대답하기를 “지(知)란 지인(知人)이다.) -논어 안연(顔淵)-


논어에서 인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여러 가지입니다. 묻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안연에게는 인이란 자기(私心)를 극복하고 에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답변하엿고, 중궁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라 했다. 사무우에게는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처럼  인의 의미는 특정한 의미로 한정하기 어렵습니다.

인을 애인(愛人) 즉 남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지는 공자가 타고 다니는 수레를 모는 마부입니다. 늘 공자를 가까이 모시는 사람입니다. 물론 제자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위의 여러 가지 답변에 공통되는 점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사실입니다. (172~173P)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경우는 더욱 철저합니다.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한 까닭은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기가 어려우니 어지 말을 더듬지 않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한 말은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라는 듯입니다. 이 역시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知)란 사라을 알아보는 것, 즉 인재를 판단하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과지, 애인과 지인은 논어의 근본담론입니다. 지인이란 타인에 대한 이해일 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한 인간을 아는 것이 지(知)라는 대단히 근본적인 담론을 공자는 제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지(知)는 지인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한 사회일 뿐입니다. (175P)


*****정직한 방법으로 얻은 부귀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그것을 누리지 않으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지 것이지만 정당한 방법이 아니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논어의 <里仁>


***이론과 실천의 통일

“학(學)하되 사(思)하지 않으면 어둡고, 사(思)하되 학(學)하지 않으면 위태롭다” 논어의 위정(爲政)


배우면 완고하지 않게된다는 것이지요. 학이 협소한 경험의 울타리를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학이란 하나의 사물이나 하나의 현상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기 경험에 갇혀서 그것이 맺고 있는 관계성을 읽지 못할 때 완고해지는 것입니다.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임을 깨닫는 것이 학이고 배움이고 교육이지요. 우리는 그 작은 것의 시공적 관계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빙산의 몸체를 때달아야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전 과정 속에 그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온고와 지신을 아울러야 하는 것이지요.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것이 이를테면 존재론적 사고라고 한다면 관계론적 사고는 내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183P)


****어리석음이 앎의 최고 형태입니다

“영무자(위나라의 대부)는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지혜로웠고 나라에 도가 없으면 어리석었다. 그 지헤로움은 따를 수 있지만 그 어리석음은 (감히) 따를 수 없다.” -公대 長-


***논어에는 유도(有道)와 무도(無道)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관하여 여러 가지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않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않는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자신을 드러내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숨는다.

나라에 도가 있으면 빈천이 수치요, 나라에 도가 없으면 부귀가 수치이다. -논어 태백(泰伯)- (185P)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화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87P)


***모든 사람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갈공명은 명석한 판단은 무사(無私)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하를 도모하려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었음은 물론 윗사람이 되려고 하는 욕심마저도 없었지요. 이처럼 무사하기 때문에 공평할 수 있고 공평하기 때문에 이치가 밝아질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이해관계 집단의 주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은 그 주장과 논리가 결국은 사사로운 것이기 때문이지요. 자기의공을 숨기고 자신의 낮추는 겸손함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겸손함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욕과 무사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188P)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겸허해야 되는 이유입니다. (189P)


*****마을의 좋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

“자공이 질문하였다.

“마을 사람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은 어덯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마을 사람 모두가 미워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그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마을의 좋은 사람이 좋아하고 마을의 좋지 않은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만 같지 못하다.” -자로-


마을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려는 심리적 충동도 실은 반대편의 비판을 두려워하는 ‘심약함’ 이 아니면 아무에게나 영합하려는 ‘화냥끼’가 아니면 소년들이 갖는 한낱 감상적 이상주의에 불과한 것이라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입장과 정견이 분명한 실(實)한 사랑의 교감이 없습니다. 사랑은 분별이기 때문에 맹목적이지 않으며, 사랑은 희생이기 때문에 무한할 수도 없습니다. (190~191P)


****모든 사상은 역사적 산물입니다. 특정한 역사저 조건 속에서 태어나고 묻히는 것이지요. 당시의 가치, 당시의 언어로 읽는 것은 해석학의 기본입니다. (194P)


*****광고 카피의 약속

“바탕이 문채(文彩)보다 승(勝)하면 거칠고 문채가 바탕보다 승하면 사치스럽다. 형식과 내용이 고루 어울린 후라야 군자이다.” -옹야(雍也)-편


내용이 형식에 비하여 튀면(승하다)거칠고, 형식이 내용에 비해 튀면 사치스럽다는 의미입니다. 行과 언(言), 사람과 의상(衣裳)등 여러 가지 경우에 우리는 이러한 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키지도 못할 주장을 늘어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말없이 어던 일을 이루어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사람보다 못한 옷을 입고 그 사람보다 작은 집에 살고 잇는 사람도 있습니다.

핵심은 내용과 형식의 통일에 관한 것입니다. 내용이 형식을 잃어버리면 거칠게 되고, 형식이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면 공동화도리 수 밖에 없습니다. (195P)


***상품미학의 허구성을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세대의 감수성이 상품미학에 깊이 포섭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세대뿐만 아니라 상품미학은 현대사회의 문화적 본질입니다. 상품미학이란 상품의 표현형식입니다. 상품이 잘 팔릴 t 있도록 디자인된 형식미입니다. 경제학교과서에는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물로 설명하고 이를 상품의 이중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상품은 교환가치가 본질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형식미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끝나는 것이 안빈닫. 형식미의 끊임없는 변화에 열중하게 됙 급기야는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 상품 사회의 문화적 상황입니다. 상품의 브랜드, 디자인, 컬러, 포장 등 외관 즉 형식에 의하여 결정도비니다. 광고 카피 역시 소비자가 상품이나 상품의 소비보다 먼저 만나는 약속입니다. 광고는 그 상품에 담겨있는 사용가치에 대하여 약속입니다이 약속은 소비단계에서 그 허위가 드러납니다. 이 약속이 배반당하는 지점, 즉 그 형삭의 허위성이 드러나는 지점이 패션이 시작되는 점이라는 사실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198~197P)


*****학습과 놀이와 노동의 통일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옹야(雍也)-편


지(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好)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樂)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놀이 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199~200P)


***지와 호를 지양한 것에 낙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우리가 진행하고 잇는 고전강독의 관점에서 이를 규정한다면 “낙은 관계의 최고 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이 가능한 것이지요.

지에서 호로 호에서 낙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높여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200P)


*****산과 강은 오래된 친구입니다

“지자(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인자(仁者)는 산을 좋아합니다. 지자는 동적(動的)이고 인자(仁者)는 정적(靜的)이다. 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오래 산다. ” -옹야(雍也)-편


***“하늘을 망라하는 그물은 성글기 그지 없지만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인자는  최대한의 관게성으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202P)


***공자의 모습

공자는 스스로 비천한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를 두고 공자의 초기 입지를 국(國)이 아닌 야(野)로 규정하기로 합니다. 야라는 공간은 국법 질서가 미치지 못하는 곳일뿐만 아니라 국의질서에 저항하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사람들의 근거지이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이 근거지에서 소유(小儒)를 극복하고 인문 잘서를 세우고 대유(大儒)의 길 군자의 도를 지향했던 것이 공자와 공자학파라는 것이지요 보수와 진보, 억압과 자유라는 두 개의 대립측 사이에 공자학파의 사상적 존령이 잇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203P)


***원래 주나라의 저이구조는 천자를 정점으로 한 제후국 연방제입니다. 제 1의 제후인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이러한 연방제적 구도가 주나라의 종법 제도입니다. 처자는 제후들에게 중립적이어야 하고 제후는 대부들에게 중립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러한 사회체제의 정치론이었습니다. 중립적이지 않으면 그러한 질서가 유지되기 어려운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나라 이름을 중국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중(中)은 상하(上下)통야(通也)의 뜻입니다. 그것이 정치질서입니다. 유가 사상은 이러한 중도사상을 계급적으로 확장한 것이라 할 수 잇습니다. (206P)


5. 맹자의 의(義)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맹자는 공자 사후 약 100년 뒤에 산동성 남부 추에서 출생햇으며, 이름은 가(軻)로 알려져 있다. (211P)


****공자가 춘추시대 사람이라면 맹자는 전국시대 사람입니다. 춘추시대의 군주는 지배 영역도 협소하고 전통의 규제에서 자유롭지 못햇습니다. 특히 군주세력이 귀족 세력들의 제어를 받는 제한 군주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전국시대의 군주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절대 군주였습니다. 춘추시대에 비하여 국가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211P)


***공자의 인(仁)이 맹자에 의해서 의(義)의 개념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의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2P)


***“맹자가 양혜왕을 만나뵈었을 때 왕이 말햇다.

“선생께서 천리길을 멀다 dskg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를 가져오셨겠지요?”

맹자가 대답했다.

“왕계서는 어찌 이(利)를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따름입니다.” -맹자 ,양혜왕 상-


인과 의의 차이가 곧 공자와 맹자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인이 개인적 관점에서 규정한 인간관계의 원리라면 의는 사회적 관계로서의 인간관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212~213P)

****“만약 의를 경시하고 이(利)를 중시한다면 남의 것을 모두 빼앗지 않고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진자로서 자기의 부모를 저버린 자가 없고, 의로운 자로서 그 임금을 무시한 자가 없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과 의를 말씀하실 일이지 어찌 이를 말씀하십니까?”


****어떠한 고전도 맹자 만큼 힘차고 유려하고, 논리 정연하고 심오한 뜻을 지니고, 현재에도 그 내용이 여전히 타당하며 사람의 정신을 분발시키는 문장들로 가득한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맹자>에는 농가, 병가, 종횡가 등 당시의 다른 많은 사상이 소개되고 또 비판되고 있기 때문에 제자백가의 사상을 가장 폭넓게 접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단 한 권의 고전을 택하려고 하는 경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단연 <맹자>가 천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5P)


화살 만드는 사람과 갑옷 만드는 사람

*****하는 일에 따라서 그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적 입장에 따라 그 생각과 정서가 달라지다는 것이지요. 인간본성의 사회적 존재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성선(性善)이란 어떤 경우에나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하는 일에 따라 달리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본성은 서로 차이가 없지만 습관에 따라 차츰 멀어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229P)


***맹자가 말하였다.

“화살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여 어찌 갑옷 만드는 사람보다 불안하다고 할 수 있겠느냐만 화살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화살이)사람을 상하게 하지 못할까봐 걱정하고, 갑옷 만드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갑옷이 화살에 뚫려서)사람이 상할까봐 걱정한다. 무당과 장인(匠人)도 역시 그러하다. (무당은 당시 의사였기 때문에 사람의 병이 낫지 않을까 걱정하고 장인은 관(棺)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아서 관이 팔리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므로 기술의 선택은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에 거하는 것이 아름답다. 스스로 택해서 인에 거하지 않는다면 어지 그것을 지헤롭다 할 수 있겠는가?” (230P)


맹자의 성선설이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적 실천과 관련된 것이라는 점을 앞에서 이야기했는데 이 구절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맹자는 그 사람의 사상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본성도 사회적 입장에 다라서 재구성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30P)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하여 그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는가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이것은 모든 운동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내부에서 찾는가 하는 세게관의 차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세계는 끊임엇는 운동의 실체이며 그 운동의 원인이 내부에 있다는 것은 세게에 대한 철학적 인식문제입니다. 반대로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결국 초월적 존재를 필요로 합니다. (232P)


*****소를 양으로 바꾸는 까닭(만남)


가장 핵심적인 것은 ‘본다’는 사실입니다. 본다는 것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보고, 만나고, 서로 안다는 것입니다. 즉 관계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차마 잇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만남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인지심’이 있을 리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처럼 한 점에서 그것도 순간에 끝나는 만남이지요. 엄격히 말해서 만남이 아니지요.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관계없기 때문에 서로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237P)


****자본주의 사회는 상품사회입니다. 상품사회는 그 사회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과 상품의 교환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입니다. 당연히 인간관게가 상품 교환이라는 틀에 담기는 것이지요. 사람은 교환가치로 표현되고 인간관계는 상품교환의 형식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게 되는 제도입니다. (240P)


***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절망적인 것이 바로 인간관계의 황폐화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 뼈대가 인간관계입니다. 그 인간관계의 지속적 질서가 바로 사회의 본질이지요.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42P)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한다

“맹자가 말하기를, 공자께서 동산에 오르시어 노나라가 작다고 하시고, 태산에 오르시어 천하가 작다고 하셨다.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言)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에는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일월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진심(盡心)-(244P)


물이 흐르다 구덩이를 만나면 그 구덩이를 다 채운 다음에 앞으로 나아가는 법이지요. 건너뛰는 법이 없습니다. 건너뛸 수도 없는 것이지요. 첩경에 연연하지 말고 우직하게 정도를 고집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나면 그제야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원칙에 충실하라고 주문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건너뛰었다는 뜻이지요. (245P)


****스스로를 모욕한 후에야 남이 모욕하는 법

맹자 당시에는 진에서는 법가인 상앙을 등용하여 부국강병책을 실시하였고 초와 위에서는 오기를 등용하여 전쟁으로 적국의 땅을 빼앗았으며, 제의 위왕과 선왕은 병가인 손자와 전기를 등용하는 등 당시는 합종연횡의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면서 오로지 전쟁을 능사로 여기는 그야말로 전국시대였습니다. (246P)


****"어린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로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는 노래가 있다. 공자께서 이 노래를 들으시고 ‘자네들 저 노래를 들어보게. 물이 맑을 때는 갓끈을 씻지만 물이 흐리면 발을 씻게 되는 것이다. 물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라고 하셨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모름지기 스스로를 모욕한 연후에 남이 자기를 모욕하는 법이며, 한 집안의 경우도 반드시 스스로를 파멸한 연후에 남들이 파멸시키는 법이며, 한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를 짓밟은 연후에 다른 나라가 짓밟는 것이다.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라고 한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다. (249~250P)


6. 노자의 도와 자연


****도는 자연을 본받습니다

동양사상의 정체성은 <논어>보다는 오히려 <노자>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하 수 있다. 유가사상은 서구사상과 마찬가지로 진(進)의 사상입니다. 인문 세계의 창조와 지속적 성장이 진의 내용이 됩니다. 인문주의, 인간주의, 인간중심주의라 할 수 잇지요. 그에 비하여 노자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귀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3P)


****노자의 체계에 있어서는 자연의 생성변화가 곧 도(道)의 내용입니다. 인위적 규제는 이러한 질서를 거역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도덕적 가치는 인위적 재앙으로 보는 것이지요. 자연을 카오스로 인식하는 여타 제자백가들과는 반대로 자연을 최고의 질서 즉 코스모스로 인식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는 근본적으로 반문화적 체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축의지에 대한 비판입니다. 계몽주의든 합리주의든 기존의 인위적 구조를 이루고 있는 건축적 의지를 해체해야 한다는 해체론이며 바로 이 점이 노자의 현대적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255P)


***한(漢)이후 유교가 관학으로 자리잡음에 따라 제자백가의 사상은 이제 유가사상에 흡수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리하여 유가사상에 흡수되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그리하여 유가사상이 지배층의 통치이념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유가사상은 법가에 비하여 비폭력적 지배방식을 취하고 피지배층의 동의를 이끌어내는매우 유화적인 정치과정을 정착시켜 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권력은 본질에 잇어서 폭력적 지배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256P)


****노자가 보이지 않는 <노자>

사기에 노자는 성명이 이이(李耳), 자는 백양, 시호는 담(聃)이라고 기록되어 잇다.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 사람으로 주 왕실의 장서실을 관리하는 수장리(守藏吏)를 지냈다.

***공자가 찾아와 d에 대하여 물은 적이 있는데 노자는 훌륭한 상ㅇ니이라면 물건을 깊이 숨겨두고 아무 것도 없는 듯 하듯이 군자는 큰 덕이 있더라도 용모는 어리석게 보이는 법이라고 하면서 교기(驕氣), 다욕(多欲), 태색(態色), 음지(淫志)를 버리라고 충고하였다. 고 사기에 기록되어 잇다. 노자의 충고는 공자의 인격을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궁금한 것은 공자의 인격이 아니라 오히려 사마천이 이러한 기록을 남긴 이유입니다. (257~258P)


****노자는 81장 5200자에 이릅니다. 상편은 도로 시작하고 하편은 독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도덕경>이라 불리게 됩니다.

주나라가 망하자 노자는 주나라를 떠납니다. 이대 관윤이라는 사람이 노자를 알아보고 글을 청하자 노자가 이 <도덕경> 5천언을 지어줌으로써 후세에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언(不言)의 가르침을 설파한 노자가 언을 책으로 남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지금가지의 연구에 의하면 ,노자>는 노자 개인의 저작이 아님은 물론이며 어느 한 사람의 저작이 아니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258~259P)


**,노자>는 무위와 관조라는 동양적 사유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사상일뿐 아니라 과학, 문화, 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262P)


***도라고 부를 수 있는 도는 참된 도가 아닙니다

노자 제 1장

“도라고 부를 수 있는 참된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참된 아름이 아니다.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일컫는 것이고 유(有)는 만물의 어미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로서는 항상 그 신묘함을 보아야 하고, 유로서는 그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한다. 이 둘은 하나에서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다 같이 현(玄)이라고 부르니 현묘하고 현묘하여 모든 신묘함의 문이 된다.” (263P)


***노자 철학에 있어서 무는 제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무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의 의미는 무명과 다르지 않습닏다.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인간의 인식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지요. 이름이 붙여진 경우는 인간의 지배 밑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점에서 무와 무명은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264P)


***현(玄)은 물론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검을 현(玄)입니다. 검은 색이기는 하지만 단순한 검은 색이 아니라 검은 색과 붉은 색을 혼합한 색이 바로 현이라는 것이지요. 검은 색은 무를 붉은 색은 유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무와 유를 합한 근원적인 무를 표현하기에 마침 적합한 글자가 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에는 현묘불가식(玄妙不可識)의 의미, 즉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므로 도를 설명하는 말로 가장 적합한 글자라는 것이지요. (268P)


****도(道)란 어떤 사물의 이름이 아니라 법칙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노자의 도는 윤리적인 강상(綱常)의 도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것은 최대한의 법칙성 즉 우주와 자연의 근본적인 운동법칙을 의미합니다. 노자의 도는 인간의 개념적 사고라는 그릇으로는 담을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사유를 뛰어넘는 것이지요. (269P)


****명(名)의 경우도 도의 경우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언어로 붙인 이름이 참된 이름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름이란 원래 약속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란 그 실체를 옳게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개미에게 물어보면 개미라는 이름은 자기 이름이 아니지요. 이름은 사람들이 붙인 표지(標識)일 따름이지요. 사람들끼리의 약속, 즉 기호인 셈이지요. 한마디로 언어의 한계를 선언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곳에 노자의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개념이라는 그릇은 작은 것이지요. 그릇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이미 바다가 아닙니다.(269P)


***노자의 도와 명에 관한 제 1장의 선언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지만 노자의 경우 이것은 폭력적 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는 존재가 거주할 진정한 집이 못 되는 것이지요. (270P)


****인위(人爲)는 거짓입니다

"널리 알려진 미(美)를 미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혐오스러운 것이다.

널리 알려진 선(善)을 선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것은 선하지 않은 것이다.“제 2장

***미와 선은 지역이나 시대에 갇혀 있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미와 선의 그러한 특성을 한마디로 인위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기존의 인위적인 미와 인위적인 선에 길들여진 우리의 관념을 반성하자는 것이 이 장의 핵심입니다.(274P)


****무위란 작위(作爲)를 배제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개입하거나 자연적인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대주의는 가치판단의 상대성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단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작위이고 그것이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지요. (273P)


***노자의 사상체계에 있어서 대립적인 것은 없습니다. 상호 전화(轉化)도리 수 없는 고정불편한 것은 없습니다. 세상만물은 상대적인 것이며 상호 전화하는 것입니다. 존재론적 체게가 아니라 관계론적인 체계입니다. (273P)


***뼈를 튼튼히 해야

“현명함을 숭상하지 않음으로써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해야하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귀하게 여기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이 도적질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욕망을 자극하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인의 정치는 그 마음을 비우게 하고 그 배를 채우게 하며, 그 뜻을 약하게하고 그 뼈를 튼튼하게 해야 한다. 언제나 백성들로 하여금 무지무욕하게 하고 스스로 지혜롭다고 하는 자들로 하여금 감히 무엇을 벌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무위의 방식으로 정치를 하면 혼란이 있을 리 없다.“ 제 3장


노자의 정치론일라 할 수 있다. 노자가 지향하는 정치적 목표는 매우 순박하고 자연스러운 질서입니다. 우선 현을 숭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참으로 노자답다고 하겠습니다. 현이란 무엇입니까? 지헤라고 하도 좋고 지식이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우리가 습득하려고 하는 지식이나 지헤란 한 마디로 자연에 대한 2차적인 해석입니다. (278P0


***자본주의 경제는 당연히 욕망 그 자체를 양산해내는 체지입니다. 욕망을 자극하고 갈증을 키우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수많은 화(貨)를 생산하고 그 화에 대한 욕구를 극대화합니다. 순간순간 구매 요구를 억제해야 하는 흡사 전쟁을 치르는 심정이 됩니다. 모든 사람이 부단한 갈증에 목마른 상태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사회, 상품생산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 정서라고 해야 합니다. (281P)


***노자의 독법의 기본은 무위입니다. 무위는 무행(無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입니다. 혼란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283P)


****물은 낮은 곳으로 흘러서 바다가 됩니다

노자철학을 한마디로 ‘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도는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 가운데 가장 도에 가까운 것이 바로 물이라는 것이지요. 물로써 도를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노자가 물을 최고의 선과 같다고 하는 까닭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은 결코 다투는 법이 없습니다. 산이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갑니다. 바위를 만나면 몸을 나누어 비켜갑니다. 곡류(曲流)하기도 하고, 할수(割水)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가파른 계곡을 만나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아스라한 절벽을 만나면 용사처럼 뛰어내리기도 합니다. 깊은 분지를 만나면 그 큰 공간을 차곡차곡 남김없이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갑니다. 너른 평지를 만나면 거울 같은 수평을 이루어 유유히 하늘을 담고 구름을 보내기도 합니다.

셋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것이지요. 이 경우 낮다는 것은 반드시 그 위치가 낮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비천한 곳, 소외된 곳, 억압받는 곳 등 여러 가지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286P)

물이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한다는 뜻이며 또 가장 약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가장 약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물입니다. 천하에 물보다 약한 것이 없지만 강한 것을 공격하기에 이보다 나은 것은 없음 이를 대신할 다른 것이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288P)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서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289P)


****빔이 쓰임이 됩니다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있음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다라서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다.)   -제 11장-

유의 배후로서 무를 드러내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고 이 장의 의미입니다. 현상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상과 본질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나는 이 장이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현상의 숨겨진 구조를 주목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기를 바랍니다. (293P)


***보통사람들은 소유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노스님의 무소유는 사찰 종단의 거대한 소유 구조위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그 자체가 역설입니다. 무소유가 가능한 것은 소유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지요. 노자의 역설입니다. 나는 무소유와 무의 가치를 예찬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사회가 숨기고 있는 보이지 않는 무, 숨겨진 억압구조를 드러내는 관점에서 이 장을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294P)


****스스로를 신뢰하도록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백성, 즉 민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함으로써 신뢰받는 일입니다. 백성들을 믿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 훌륭한 지도자라는 것입니다. (296P)


***백성들의 삶은 한강이나 북한산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수많은 세월을 겪어온 것입니다. 장구한 역사를 겪어온 가장 자연스러운 가치와 질서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것을 존중해야 하고, 그것을 믿어야 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백성들의 생각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집단적인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 도달한 결론입니다. 충분한 임상학적 과정을 거친 가장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결론인 셈이지요. (298P)


****서툰 글씨가 명필입니다

“가장 완전한 것은 마치 이지러진 것 같다. 그래서 사용하더라도 해지지 않는다.

가득 찬 것은 마치 비어있는 듯하다. 그래서 퍼내더라도 다함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마치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며, 가장 잘하는 말은 마치 더듬는 듯하다.

고요함은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는 더위를 이기는 법이다. 말고 고요함이 천하의 올바름이다.” -제 45장-


노자는 이러한 변증법적 논리를 통하여 사물에 대한 열린 관점을 제시합니다. 상투적이고 획일적인 형식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위를 배격하고 무위를 주장하는 노자의 당연한 논리입니다. 대(大)의 기준, 최고의 기준은 자연입니다. 자연스러움이 최고의 형식이 되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형식에 대해서는 원초적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노자입니다. (300P)


***‘대변약눌(代辯若訥)은 최고의 웅변은 더듬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언은 항상 부족한 그릇입니다. 언어로는 그 뜻을 온전히 담아내기가 어렵습니다. 언이 부족한 표현수단인 것은 이해가 가지만 어재서 눌변(訥辯)이 대변일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을 더듬고 느리게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불일치를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화자가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면 청자가 다라오지 못하게 되지요. 느리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301~302P)


***진보란 단순화입니다

노자사상을 몇 마디 말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그것의 핵심은 동(動)보다는 정(靜)을, 만(滿)보다는 허(虛)를, 교(巧)보다는 졸(拙)을, 웅(雄)보다는 자(雌)를 그리고 진(進)보다는 귀(歸)를 더 높은 가치로 보는 데 있습니다. 노자사상은 마치 수학에서 0의 발견이 갖는 의미와 공헌을 중국사상에 기여했다고 평가합니다. (304P)


****노자는 도교의 기본 교리로 경전화되기도 했고, 불교사상의 정착과 송대 성리학의 본체론과 인식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입니다.

노자철학이야말로 동양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 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305P)


7. 장자의 소요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 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여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장자> 외편 추수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우물 안 개구리는 장자가 당시의 제자백가들을 일컫는 비유입니다. 교조에 묶인 급은 선비들이 바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고 일갈합니다. (309P)


***장자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 제 1편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는 보행과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인간의 삶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소요유의 의미이고 나아가 장자사상의 핵심입니다. (311P)


****높이 나는 새가 먼 곳을 바라봅니다

조감자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는 우물 속의 개구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분이고 찰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관점이 장자 사상의 본령입니다. 바로 이점에 장자에 대한 올바른 독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17P)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대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 (319P)


**** 이것과 저것 저것과 이것

“사물은 어느 것이나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다. 상대적 관점에 서면 보지 못하고 주관적 관점에서만 본다.


*****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입니다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했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 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진자 소의 전체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는 법은 없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천리(天理)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넣고 빈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인대를 벤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324P)

"......그러기에 19년이나 사용햇지만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뼈와 심줄이 엉긴 곳에 이르러서는 저도 조심하여 눈길을 멈추고 천천히 움직이며 칼 놀리는 것도 매우 미묘해집니다. 그러다가 쩍 갈라지면서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 고기가 와르를 헤집니다.“ (324P)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르지 마라

  “그렇기 때문에 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다고 하더라도 늘여주면 우환이 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다고 하더라도 자르면 아픔이 도니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잘라서는 안되며, 본래 짧은 것은 늘여서도 안된다. 그런다고 해서 우환이 없어질 까닭이 없다. 생각건대 인의가 사람의 본성일리 있겠는가! 저 인(仁)을 갖춘 자들이 얼마나 고심이 많겠는가.”(326P)


  "소와 말이 네 개 있는 것 이것이 천(天)이요, 말머리에 고삐를 씌우고 소의 코를 뚫는 것이 이것이 인(人)이다. 그러므로 인위(人爲)로써 자연을 멸하지 말며, 고의로서 천성을 멸하지 말며, 일러 천진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한다.“(326P)


한마디로 인(人)을 거부하고 천과 합일해야 한다는 것이 장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327P)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자연을 피하려는 둔천(遁天)의 형벌이다. 천인합일의 도를 얻음으로써 천제(天帝)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 못하다.“

아내가 죽었을 때 장자는 술독을 안고 노래했다는 일화가 수긍이 갑니다. 인간의 상대적인 행복은 본성의 자유로운 발휘로서 얻을 수 있지만 절대적인 행복은 사물의 본질을 통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327P)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즉 도의 개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이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以理化情)입니다.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를 깨닫는다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328P)


**** 부끄러워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

  밭일을 하던 노인은 불끈 낯빛을 붉혔다가 곧 웃음을 띠고 말했다.

“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機事)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機心),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존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 (329P)


생산성, 경쟁력, 효율성이라는 신화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장자의 이러한 태도는 어쩌면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동양적인 가치는 ‘인성(人性)의 고양’입니다.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가 아닙니다. 도의 깨달음과 도의 체득 그리고 합일입니다. 물론 현대의 동양에서는 이미 이러한 가치와 정서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330P)


****장자의 체게에 잇어서 기게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기계는 그 속성인 기사와 기심으로 인하여 인간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발명과 산업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노동문제, 노동자문제, 노동계급문제 등은 장자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나아가 공황이나 실업문제에 대해서도 경험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미리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기계로 말미암아 인간이 비인간화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331P)


***기계의 효율성이 노동 시간의 단축과 노동 경감으로 이어지지 않고 노동자의 해고 즉 실업으로 이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지요. (332P)


***장자의 체계에 있어서 노동은 삶이며 삶은 그 자체가 예술이 되어야 하고 도가 되어야 하고, 도와 함께 소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332P)


***내가 기계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유는 그것이 철저하게 주관적이라는 사실 대문입니다. 한포기 풀이 자라는 것을 보더라도 그 풀은 햇빛과 물과 토양과 잘 어울리며 살아갑니다. 추운 겨울에는 깜깜한 당 속에서 뿌리로만 견디며 봄을 기다릴 줄 압니다. 그러나 기계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런 일을 못합니다. (332P)


***장자의 시대가 아니더라도 오늘날 우리에게는 기계와 효율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계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효율성보다는 깨달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복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33P)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 길을 모른다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길을 모른다면 고생만 하고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길을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 천하가 길을 모르는 상태이다. 우리게 지향하는 목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달성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천지(天地)>편


장자가 우려했던 현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34P)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하다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 까 두려워서였다.” 천지(天地)편 (334P)


각성입니다. 엄정한 자기 성철입니다. 천하가 길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자기가 불치병자라는 사실을 냉정하게 깨닫고 자식만이라도 자기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십정이 참담할 정도로 가슴을 적십니다. 엄중한 자기성찰과 냉철한 문명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이 구절을 좋아하는 까닭은 문명론도 문명론이지만 자기반성을 이보다 더 절절하게 표현한 구절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회 그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것을 답습할까봐 부단히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회발전은 그러한 경로를 거치는 것이지요. (335P)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입니다


세상에서 도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형(形)과 색(色)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名)과 성(聲)일 뿐이다. (338P)


****쓸모없는 나무와 울지 못하는 거위

   “어제 산의 나무는 쓸모가 없어서 천수를 다할 수 있었는데 오늘 이 집의 거위는 쓸모가 없어서 죽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장차 어디에 서겠습니까?”

장자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나는 쓸모있음과 쓸모없음의 중간에 처하겠다.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의 중간이란 도(道)와 비슷하면서도 실은 참된 도가 아니기 때문에 화를 면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산목>편


장자사상은 사실 재, 부재의 차원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재는 무엇인가의 쓸모입니다. 그리고 쓸모라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의 하위개념입니다. 다른 것을 만드는데 유용한가 유용하지 않은가 하는 수준의 것이지요.

마음을 만물의 근원인 도에 거닐게 함으로써 만물을 부리되 만물에 얽매이지 않아야 화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입니다.  (340P)


****나비 꿈 

어느 날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유유자적 재미있게 지내면서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햇다. 문득 깨어보니 다시 장주가 되었다. 장주가 나비가 된 꿈을 꾸었고 (꿈에서 깬 지금은) 나비가 장주가 된 꿈을 꾸고있는 지 알 수가 없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 무슨 구분이 잇기는 있을 것이다. 이를 일컬어 물화(物化)라 한다. -제물론편-


장자를 몽접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 ‘나비꿈’대문이다. 장자사상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비꿈은 인생의 허무함이나 무상함을 이야기하는 일장춘몽의 이야기가 아니다. 장자의 나비꿈은 두 개의 사실과 두 개의 굼이 서로 중첩되어 있는 매우 함축적인 이양기이다. 첫째는 장자가 꾸는 꿈이며, 둘째는 나비가 꾸는 꿈입니다. 이 두 개의 꿈은 나비와 장자의 실재가 서로 침투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9만리 장공을 날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는 하나라는 것입니다. 장주와 나비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개별적 사물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요. 커다란 전체의 미미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지요. 개별적 사물과 그 개별적 상을 하나로 아우르는 깨달음이 바로 제물론입니다. (345P)


***제(齊)는 하나의 체계 속으로 망라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시비와 진위를 상대적인 것으로 보고 그것을 넘어서고 망라하는 것이 제의 의미입니다. 우리의 인식이란 분별상에 매달리고 있는 분별지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조건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딷는 것이지요. 이것은 모순과 통일에 관한 것이며 앞서 읽은 방생지설에서 이야기한 모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6P)


***꽃과 나비가 비록 제물의 관계에 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꽃은 꽃이고 나비는 나비입니다. 장주는 장주이고 나비는 나비입니다. 이 사실을 장자는 물화, 즉 변화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46P)


***불교의 연기설에 잇어서 인과 과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에 있습니다.

“하나가 아니면서도 둘이 아닌 즉 서로 다르면서도 둘이 아니며 또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인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347P)


****참다운 지식


“나는 하늘과 땅을 널(棺0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玉)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세상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네. 이처럼 내 장례를 위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또 더한단 말이냐?” (354P)


****** 고기는 잊더라도 그물은 남겨야

“전(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통발인데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은 잊어버리게 마련이고,

제는 토끼를 잡는 올무인데 토끼를 잡고 나면 그것을 잊어버리고 만다.

말은 뜻을 전하는 것인데 뜻을 얻으면 말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나도 이렇듯 그 말을 잊어버리는 사람을 만나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구나! -잡편 <외물>-


고기는 이를 테면 하나의 현상입니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천망(天網)인 것이지요. 고기는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의 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관계망이지요.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356P)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여러 시내가 몸을 섞어 강이 됩니다


****묵자의 검은 얼굴

묵자는 첫째는 하층민의 이미지입니다. 묵(墨)이란 우리말로 먹입니다만, 묵자의 묵은 죄인의 이마에 먹으로 자자하는 묵형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검은 노동복을 입고 전쟁을 반대하고 허례와 허식을 배격하며 근로와 절용을 주장하는 하층민이나 공인(工人)들의 집단이 묵가라는 것입니다.

묵자는 성이 적(翟)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름을 묵적이라고 한 것은 묵형을 받았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뜻에서 그것을 성으로 사용했다는 것이지요.

묵은 성씨라기 보다 학파의 집단적인 이름이라는 주장이 좀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묵자 당시의 사회적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백성이 국가의 권위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사태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e당시는 혁명이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64~365P)

둘째는 근검절용하며 실천궁행하는 모습니다. 검소한 실천가의 모습입니다.

맹자에 따르면 ‘묵가는 보편적 사랑을 주장하여 정수리에서 무릎까지 다 닳아 없어진다 하더라도 천하를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묵가의 검소하고 실천적인 모습은 묵자의 집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햇기 때문에 굴뚝에 검댕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혼란의 원인을 알아야 다스릴 수 있으며 그 원인을 알지 못하면 다스릴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고칠 수 없는 것과 같다. 사회의 혼란을 다스리는 것 역시 이와 다르겠느가.-겸애편-


****“사회의 혼란은 모두 서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 -겸애편-


사랑의 문제라면 지극히 개인적이고 심정적인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묵자는 이 문제를 제도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 천하의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이롭게 되도록 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습니다. (374P)


****"만약 천하로 하여금 서로 겸애하게 하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한다면’어지 불효가 있을 수 있겠는가?“ -겸애편-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마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복숭아를 훔치는 것보다 죄가 더 무겁다. (그래서) 한 사람을 죽이면 그것을 불의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크게 나라를 공격하고 그 그릇됨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칭송하면서도 의로움이라고 한다. 이러고서도 의와 불의의 분별을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관념 체계에 대하여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자는 전쟁의 모든 희생을 최종적으로 짊어질 수 밖에 없는 기층 민중의 대변자답게 전쟁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것을 정면에서 반대합니다. 단 한 줌의 의로움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79P)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공격 전쟁이 이롭다고 한ㄴ 사람들은 어찌하여 지백과 부차의 일을 거울로 삼지 않는가? 전쟁이d임말로 흉물이을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비정편- (382P)


“거울에 비추지 마라”는 묵자의 금언은 비단 반전의 메시지로만이 아니라 인간적 가치가 실종된 물신주의적 문화와 의식을 반성하는 귀중한 금언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382P)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슬퍼하다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말했다.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랗게 되고 노란 물감에 노랗게 물들이면 노란게 된다. 넣는 물감이 변하면 그 색도 변한다. 다섯가지 물감을 넣으면 다섯가지 색깔이 도니다. 그러므로 물드는 것은 주의하지 않으면 안된다. 비단 실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


묵자의 소염론이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도 물든다는 것은 곧 묵자의 사회문화론이 됩니다. (388P)


***국과 국이 가와 가가, 사람과 사람이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내고 나아가 서로 돕는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묵자이 근본적 과제입니다. 이처럼 묵자의 고는 근본에 있어서 관계론이니다. 묵자는 결코 일방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고 있는 상호관계를 강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겸애와 함게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관계의 본질을 상생으로 규정하고 잇는 것이지요.(394P)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하늘은 하늘일 뿐

순자는 대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직하(㮨下)학파의 제주(祭主)였다고 합니다. 직하학파는 제나라 수도 임치에 있는 학자단지를 근거지로 하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학파였습니다. 이 직하학파의 제주란 물론 제사의 책임자이지만 학문적으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직책입니다. 제나라에서도 그를 매우 존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순자의 생몰연대도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전국시대 말기인 기원전 313~238년이 통설입니다. 제나라의 직하학궁에서 오랫동안 학문 연구와 강의에 종사하여 제주를 세 번씩이나  역임했으나 후에 모함을 받아 초나라로 가서 난릉령을 지냈으며 그곳에서 여생을 마쳤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의 학문적 권위나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여 남아있는 자료는 매우 소략합니다. 그가 유가의 이단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404P)


***순자의 예는 법의 의미엿다고 할 수 있다. 순자를 법가(法家)의 시조로 본ㄴ 견해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와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의 재상 이사가 순자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지요.(405P)


***순자의 천(天)은 물리적 천입니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일 뿐입니다. 인간 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유가의 정통적 천인 도덕천을 거부하고 잇는 것이지요. 순자는 종교적인 천, 인격천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순자의 탁론(卓論)입니다. (406p)


***“별이 떨어지고 나무가 울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이 무슨 일인가 한다.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것은 천지와 음양의 변화이며 드물게 나타나는 사물의 변화일 뿐이다. 괴상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두려울 것은 없다.” -순자의 천론(天論)-(406P)


***"하늘에는 변함없는 자연의 법칙이 있다. 요순같은 성군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걸주와 같은 폭군 때문에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바르게 응하면 이롭고 어지럽게 응하면 흉할 뿐이다. 농사를 부지런히 하고 아껴쓰면 하늘이 가난하게 할 수 없고, 기르고 비축하고 때맞추어 움직이면 하늘이 병들게 할 수 없으며, 도를 닦고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으면 하늘이 재앙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순자의 천론(天論)-(406P)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하여 겨울을 거두어가는 법이 없으며, 땅은 사람이 먼 길을 싫어한다고 하여 그 넓이를 줄이는 법이 없다. 군자는 소인이 떠든다고 하여 할 일을 그만두는 법이 없다. 하늘에는 변함없는 법칙이 있으며 땅에는 변함없는 규격이 있으며, 군자에게는 변함없는 도리가 있는 것이다.  -순자의 천론(天論)-(407P)


****인간의 능동적 참여

“하늘이 위대하다고 사모하는 것과 물자를 비축하여 그것을 잘 마름질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 하늘에 순종하여 그것을 칭송하는 것과 천명을 마름질하여 그것을 이용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가?” -순자의 천론(天論)

순자는 인간의 눙동적 참여를 천명합니다. 천이 해결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408P)

****“하늘에는 사시(四時)의 운행이 있고 땅에는 자원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다스림이 있다. 이 다스림을 능참(能參)이라고 한다. 사람이 (천지와 동등한 자격으로 나란히)참여할 수 있는 소지를 버리고 천지와 동등한 자격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환상이다.”  -순자의 천론(天論)-(408P)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이지요. 순자의 능참은 실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인본주의적 관점입니다. 하늘만을 하늘같이 바라보거나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체계입니다. 능참(能參) 즉 주체적 능동성을 발휘하여 인문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인문 세게의 창조와 관련하여 순자는 결국 유가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순자사상은 실제에 있어서 공자나 맹자네 비하여 훨씬 더 현실적이었으며 당시 패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408~409P)

***유가의 도통은 이를 테면 학문적 전승 계보입니다.

공자(孔子)-안자(顔子)-증자-자사(子思)-맹자(孟子)-로 이어집니다. 맹자 이후로 1천년을 건너뛰어 주렴계- 정명도- 정이천- 주희로 이어집니다. (411)


****주희의 성리학은 기본적으로 이학입니다. 주희는 사서(四書)의 주석도 이학의 입장에서 일관(一貫)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理)는 매우 복잡한 철학적 주제이지만 모든 사물에 반드시 내재되어 있으며, 세상을 관통하고 있는 최고의 원리이자 규범이 이(理)입니다. 이것이 바로 천(天)이며, 천리입니다. 순자가 이 천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 도통 계보에서 밀려난 결정적 이유라고 해야 합니다. (411~412P)


*****성악설의 이해와 오해

성악설은 인성론이 아니라 순자의 사회학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교육론과 예론, 제도론을 전개하기 위한 근거로 구성된 개념이라는 사실입니다.(413P)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선이란 인위적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쟁탈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잇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다르면 음란하게 되고 예의와 규범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을 따르고 감정에 맡겨버리면 반드시 싸우고 다투게 되어 규범이 무너지고 감정에 맡겨버리면 반드시 싸우고 다투게 되어 규범이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져서 드디어 천하가 혼란에 빠지게 된다. -순자의 <성악(性惡)-

위의 글에 이어서 순자는 사람은 사법(師法)의 도(道)에 의하여 인도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413P)


***맹자의 성선설이든 순자의 성악설이든 우리는 본성론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선악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맹자의 성선설이 천성과 천리를 뒷받침하기 위한 개념인 것과 마찬가지로 순자의 성악설은 그의 사회론을 전개하기 위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14P)


****에디워드 윌슨의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에 의하면 본성은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DNA의 운동 그 자체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DNA 로 환원될 수 있으며 이 DNA는 40억 년 전으로부터 어느 시점 또는 장구한 기간에 걸쳐서 이루어진 물질이라는 것이지요. RNA와 단백질이라는 두 개의 독립적인 반생명권에서 성립된 것으로 기막히게 성공적인 화학물질로 규정합니다. 수십억 년에 달하는 지구상의 생명의 역사는 바로 이 DNA의 운동이며 그 일대기입니다. 윌슨에게 있어서 본성이란 이 화학물질의 운동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 DNA야말로 가장 원초적인 생명이며 그런 점에서 곧 본성입니다. (414P)


***이 DNA의 운동은 자기(自己)의 존속이 유일한 목적입니다. 개체의 존속과 개체를 넘어선 존속 즉 생존과 번식이 유일한 운동 원리입니다. 윌슨은 아주 재미있는 예를 들고 있습니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라는 질문에 대하여 명쾌하게 결론을 내립니다. 윌순은 단연 계란이 먼저라고 하지요. 닭은 계란 속의  DNA가 자기의 존속을 위하여 만들어낸 생존기계일 뿐입니다. 이 경우의 존속이란 개체를 넘어선 존속입니다. 유전과 번식도 존속의 개념임은 물론입니다. 닭은 DNA의 존속 및 유전과 번식을 위하여 만들어진 중간 매개체일 분입니다. 닭은 계란의 생존기계일 따름입니다. 이것이 윌슨 이론의 핵심입니다. (414~415P)


*****인간의 모든 욕망도 이 DNA의 존속을 위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식욕과 성욕이 이 DNA의 활동인 것은 물론입니다. 나아가 인간의 정신활동도 일정한 수의 화학적 및 전기적 반응의 총체적 활동을 일컫는 것에 다름 아니며, 이것은 DNA의 생존을 위한 장치 이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인간의 이성은 그러한 장치의 다양한 기능 중 하나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성뿐만이 아니라 사랑의 감정, 희생, 정직, 종교, 예술 등 일체의 정신적 영역도 이 DNA로부터 연유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결혼제도는 물론이며 사회를 구성하고 국가를 건설하는 모든 사회적 현상도 일단 DNA의 운동으로 환원됩니다. 사회생물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사회과학을 통합하리라고 에상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본성을 선악판단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얼마나 저급한 논의인가를 반성하자는 것이요. (415P)


****예(禮)란 기르는 것이다

“예의 기원은 어디에 잇는가? 사람은 나면서부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욕망이 충족되지 않으면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없다면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다툼이 일어나면 사회는 혼란하게 되고 혼란하게 되면 사회가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옛 선왕이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의를 세워서 분별을 두었다.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서 양자가 균형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예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예란 기르는 것이다. -순자의 예론(禮論)-(418P)


순자의 예론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이론입니다. 첫째 에란 물을 기르는 것이며 둘째 그 물로써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되 물질의 생산과 소비에 일정한 한계를 두어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예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419P)


***순자사상은 현실 인식과 인간 이해에 있어서 냉정한 태도를 견지하였으며 그러한 냉정함을 바탕으로 전통적 관념으로부터 스스로를 분명하게 단절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420P)


****순자는 법학적 경제학적 의미만으로 예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욕구가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단히 탁월한 인문철학입니다. (421P)


****나무는 먹줄을 받아 바르게 됩니다

“나는 말한다. 학문이란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쪽에서 뽑은 것이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먹줄을 받아 곧은 나무도 그것을 구부려서 둥근 바퀴로 만들면 컴퍼스로 그린 듯 둥글다. 비록 땡볕에 말리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 단단히 구부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하면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알지 못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선비는 선왕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않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순자의 권학(勸學)-중에서 (422P)


유명한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출전이기도 하지요. 학습과 교화를 강조한 교육철학의 선언입니다. 곧은 나무를 휘어서 바퀴가 되게 하는 것을 유(輮)라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리고 바퀴가 예전처럼 다시 펴지지 않는 것도 이 유의 효과입니다. (422~423P)


***순자의 체계에 있어서 인간 사회의 문화적 소산은 사회조직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사회조직이 바로 예입니다. 그 예가 바로 제도와 법입니다.더 푸르게 만들기도 하고, 둥글게 만들기도 하고 날카롭게 벼리기도 하는 것 이것이 교육입니다.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도리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에게는 자기의 욕구 충족이 가장 중요한 동기가 된다는 성악적 측면이 순자의 교육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사람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인간관이 되고 있습니다. (423p)


****“쑥이 삼 속에서 자라면 부축하지 않아도 곧게 되고 흰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함께 검어진다.” 순자의 권학(勸學)-중에서 (424P)


***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인도(人道)와 인심(人心)입니다. 순자의 도는 천지의 도가 아니라 사람의 도입니다. 순자의 이론에는 도한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군자는 자기으 내부에 있는 것을 공경할 뿐이며 하늘에 있는 것을 따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순자의 이와 같은 인간주의와 인본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주의가 감상적으로 피력되지 않고 냉정하게 제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425P)


***예와 악이 함께 하는 까닭

수낮가 음악을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즐겁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점에 착안하여 즐겁고 감동적인 예, 나아가서 즐겁고 감동적인 법을 전망하는 것이지요. (426P)


10. 법가와 천하 통일


***어제의 토끼를 기다리는 어리석음

법가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상입니다. 법가는 부국강병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하고 최후의 6국을 통일햇습니다. 다른 학파, 다른 사상에 비하여 그 사상의 현실 적합성이 실천적으로 검증된 학파인 셈이지요. (431P)


***옥중에서 사약을 받은 한비자

한비자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법가의 대표입니다. 한 나라는 지금의 호남성 서족에 있던 나라였는데 한비자는 한왕 안의 서공자라고 합니다. 한비자는 55편 10만자의 <한비자>를 남겼다. (436P)


***한비자의 글에 감탄한 것은 진나라의 왕이었다.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잇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 까지 감탄했다고 한다. 시황제는 한비자를 보자 크게 기뻐하여 그를 아주 진나라에 머물게 하려고 햇습니다. 이사는 내심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쇠호아제에게 참언(讒言)하여 한비자를 옥에 가두게 한 후 독약을 주어 자살하게 하엿다. 언필칭 권모술수의 대가로 알려진 한비자가 권모술스의 희생자가 되는 또 한 번의 역설을 보여줍니다. 한비자는 이사와 순자 문하에서 함께 동문수학한 사이였지만 오리혀 그것 때문에 희생되고 만 것이다. (437P)


****이사가 간지에 뛰어난 변설가인 반면 한비자는 눌변이엇다고 전하다. 두뇌가 매우 명석하여 학자로서는 이사가 도저히 따르지 못햇다고 피력하고 잇습니다. 한비자는 엄정한 형벌을 주장하고 유가와 묵가의 인의(仁義)와 겸애(兼愛)를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비판하고 잇습니다. 더구나 군주의 권력을 옹호하고 군주는 은밀한 술수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동양의 마키아벨리라고 불릴 정도로 권모술수의 화신이라는 이미지를 떨쳐버리기 어렵다. (437~438P)


******강한 나라 약한 나라

법치는 먼저 귀족, 지자, 용자 등 법외자에 대한 규제로 나타납니다. 법 위에 군림하거나 법을 지키지 않는 사회적 강자들에 대한 규제에서 시작합니다.

주(周)이래로 규제방식에는 예와 형이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 공경대부와 같은 귀족들은 예로 다스리고 서민들은 형으로 다스리는 방식이었다.

“예는 서민들에게까지 내려가지 않았고 형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이것이 법 집행의 원칙이었습니다. 법가는 주대의 이러한 예와 형의 구분을 없앴다. 귀족을 내려 상벌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우가는 반대로 서민을 올려 귀족과 마찬가지로 예로서 다스리자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442P)


****법가의 법은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핵심이다. 바로 이 점이 법가비판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역시 군주는 아니더라도 지배계층이 법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해야 합니다. 입법과 사법을 동시에 장악하고  금(金)과 권(權)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지요. 대부는 예로 다스리고 서민은 형으로 다스린다는 과거의 관행이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잇다고 생각합니다. (442P)


****임금의 두 자루 칼

 “호랑이가 개를 굴복시킬 수 있는 것은 발톱과 이빨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발톱과 이빨을 개에게 내어주어 그것을 쓰게 한다면 호랑이는 반대로 개에게 굴복당한다.” (446P)


***한비자의 군주철학은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이야말로 난세를 평정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논리입니다. 춘추전굯대의 혼란이 주 왕실의 권위가 무너짐으로써 시작되엇던 것과 마찬가지로 한 국가의 혼란 역시 임금의 권위가 무너짐으로써 시작된다는 것이 한비자의 인식입니다. (447P)


****교사는 졸성보다 못한 법

  “악양은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고, 진서파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신임을 받았다. 교묘한 속임수는 졸렬한 진실만 못한 법이다. ”


교사(巧詐)가 졸성(拙誠)보다 못하다는 이 말의 뜻을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의미로 읽고 있다. 아무리 교묘하게 구미더라도 결국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지헤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지요. (457p)


***그림이든 노래든 글이든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결정적인 것은 인간의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혼이 담겨잇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58P)


*****법가를 위한 변명

춘추전국시대란 무도한 시대이며 혼란의 극치를 보이는 시대입니다. 임금을 죽인 것이 36번,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52번이었다. 이러한 하극상과 혼란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가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관료에 대한 견제입니다. (462P)


*****천하통일과 이사

이사는 기원전 221년 진왕을 보좌하여 천하통일의 대업을 달성하고 모든 권력을 군주에게 집중시키는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의 기틀을 만들어갑니다.

군현제를 통한 중앙집권 체제의 확립은 중국의 정치제도에서 획기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국가 체제가 1911년 신해혁명때까지 이어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464p)

***분서갱유는 이사에게 잇어서 반혁명의 삭을 자르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466P)


11. 강의를 마치며

***관계론이라는 주제에서 본다면 불교를 다루어야 마땅합니다. 불교사상은 관게론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잇다. 연기론은 그 자체가 관계론입니다. (471P)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 찬 세계

불교 사상의 핵심은 연기론과 깨달음입니다. 불교 철학의 최고봉은 화엄사상입니다. 화엄경의 본래 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 붓다입니다. 화엄이란 잡화엄식에서 나온 말로 갖가지의 꽃으로 차린다는 뜻입니다. <대방광불화엄경>의 의미를 정리한다 ‘광대무변한 우주에 편만해 계시는 붓다의 만덕과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게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풀이된다.

***화엄이란 꽃이 엄숙하다는 뜻이다.


****만약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다른 것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큰 것이고 충분히 넓은 것입니다. 한 포기 작은 민들레도 그것이 당과 물과 바람과 햇빛 그리고 갈봄 여름과 연기되어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크고 넓은 것이 아닐수 업는 것이다. 공간적으로 무한히 넓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불교에서의 깨달음의 의미는 바로 이 연기의 구조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474P)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시간과 무변한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고 작은 미물이라도 찬란한 꽃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474P)


***화엄학의 핵심이 바로 연기론입니다.  불교에서 깨닫는 다는 것, 즉 각(覺)이란 이 연기의 망을 깨닫는것입니다. 우리들이 갇혀있는 좁은 사고의 함정을 깨닫는 것입니다. 개인이 갇혀있는 분별지를 개달아야 함은 물론이며 한 시대가 갇혀있는 집합표상 즉 업을 깨닫는 일입니다. (475P)


***우리가 깨닫는 것, 즉 각(覺)에 있어서 최고 형태는 바로 ‘세게는 관계’리는 사실입니다. 세계의 구조에 대한 깨달음이 가장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풀 하포기, 벌레 한 마리마저 찬란한 꽃으로 바라보는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눈앞에 펼쳐진 바로 이 현실을 수많은 꽃으로 가득 찬 화엄의 세계로 바라볼 수 있는 깨달음이 중요합니다. (475P)


***불교철학의 관계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 이미지는 인드라의 그물입니다. 제석천의 그물망에 있는 구슬의 이야기입니다. ..중중무진의 영상이 다중 구조를 형성하고 잇다.

***이러한 세계의 구조를 변화의 과정으로 보는 것이다. 연기란 바로 그러한 것이다. 공간적이고 정태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이고 동태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연기를 상생(相生)의 개염이라고 한다. 연(緣)하여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연기를 보는 것이 바로 법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477p)


***물과 햇빛과 흙이 사라지면 나무도 사라지는 것이지요. 인과 과는 하나가 아니면서 서로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하나인 것입니다. 그것을 불이무이(不二無異)라고 합니다. (478P)


***현대 철학 특히 해체론에 의하면 모든 현상은 자기 해체적 본성을 갖고 잇습니다. 본질은 오로지 관계맺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모든 현상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잠정적 동거라는 것이지요. (478p)

***모든 존재를 연기로 파악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존재를 연기처럼 무상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빈다. 불교사상은 모든 생명과 금수초목은 물론이며 흙 한 줌, 돌멩이 한 개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의미를 부여하는 화엄학임녀서 동시에 모든 생명의 무상함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불교사상은 해체철학의 진보성과 무책임성이라는 양면을 동시에 함의하고 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책임성이란 모든 존재의 구조를 해체함으로서 존재의 의미 자체를 페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지요. (478~479P)


***실제로 수, 당시대 이래로 선종불교가  그 지반을 널리 확장해가면서 이러한 의식의 무정부성이 사회적 문제로 나타납니다. (479P)


***도전과 응전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 서구사상이 도입되엇을 때라고 합니다. 그것은 중국 이외에 문명이 잇다는 사실에서 받은 충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민족의 지배기간인 원사(元史)와 청사(淸史)마저도 각각 송과 명을 계승하는 정통 왕조로 규정하는 것이 중국의 중화주의입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망(亡)이라 하지 않고 도(道)가 전해지지 않는 것을 망이라고 할 정도로 중화주의는 초민족적 세게관이며 문화주의적 세게관이었습니다. (481P)


***중국 이외에 다른 문명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화주의적 세게관이 무너지는 충격인 것이지요. 불교 철학은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세게관의 변화를 요구할 정도로 대단한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사상은 현실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유학을 대신하여 사회의 이념 형태를 규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굳건한 지위를 점하게 된 것이지요. 특히 불교사상은 개인주의적이며 반사회적인 해체사상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신유학의 등장은 불교의 이러한 해체주의적이고 잠사회적인 사상 영향으로부터 사회질서를 지키고 통일국가를 만들어가야 하는 현실적 요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481~482P)


****선은 무교회주의와 상통하는 무조직 무경전에 기반을 둔 각(覺)이요 불심입니다. 선동의 이러한 성격과 구조가 그 후 사원(寺院)경제의 몰락과 보시체계의 와해, 그리고 만당의 혹심한 불교박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존속하게 되는 저력이 됩니다. 이과정에서 한편으로 선종은 민초의 철학인 도가의 전통과도 더욱 밀접하게 상호결합하게 됩니다. (485P)


****<대학> 독법

대학은 원래 <예기> 제 42편이었습니다만 주자가 그것을 따로 떼어 경 1장, 전 10장으로 주석했습니다.

<대학>은 수기치인을 체게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유가사상중에서 가장 깊이있는 내용이라 평가됩니다. (486P)

*****대학은 단지 지식 계층의 학이라기보다는 당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명덕이 있는 사회, 백성을 친애하는 사회, 최고의 선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해탈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송대 지식인들의 사화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반불교적이고 반도가적이다. 불교의 몰사회적 성격에 대한 비판이다. <대학>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세계의 건설입니다. (487P)


****중용독법

중용 역시 예기 제 31편에 들어 잇다가 따로 단행된 것입니다. 주자가 장구(長句)한 것입니다.

***천하는 사회적 개념입니다. 주자의 학문적 동기가 사회질서를 다시 세우려는 건축의지에 있었다고 햇습니다만 우리는 주자의 그러한 입장을 ,중용.에서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주자의 정신세계는 철저하리만큼 사회적 동기가 중심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499p)


***정서와 감성을 기르는 것은 인성을 고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면서 최후의 방법입니다. 말 자랗고 똑똑한 사람보다는 마음씨가 바르고 고운 사람이 참으로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와 산문을 읽어야 한다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510P)


***그림은 그리워함입니다. 그리움이 잇어야 그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과 그리는 사람이 일체가 되는 행위입니다. 대단히 역동적인 관계성의 표현입니다. 나아가 그림은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는 것,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처럼 시와 문 그리고 서와 화라는 정서적 영역은 우리의 독법인 관계론을 확장하고 다시 그것을 인격화할 수 있는 소중한 영역이 아닐 수 없습니다. (511P)


내가 저자라면

신영복의 <강의>는 한마디로 동양고전을 통한 관계론을 피력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시경> <주역> 논어>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법가>등 중국의 고전을 통하여 개인과 개인사이, 국가와 국가 사이, 군주와 신하, 군주와 백성 나아가서는 자연과 인간이 어떤 관계론을 맺고 있으며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좋은 관계인지를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마지막장에서는 관계론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불교를 언급하여 관계맺음의 확장이 인간과 우주까지 가능함을 드러냈다.

책을 쓸 때 한 가지의 주제를 잡고 이렇게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나타내고 드러내어야 함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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