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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6일 11시 5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신영복

 

1941. 8.23 경남 의령의 간이학교에서 태어남(아버지가 교장으로 근무했던 곳)

아버지의 고향인 밀양등지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59년 부산상고졸업.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      

1965년 숙명여대 경제학과 강사로 재직중에 잡지<청맥>의 예비필자 모임인새문화연구원에 참석하면서 김질락을 만남(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당함)

1966년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복무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 선고 받고 안양과 대전 전주교도소에서 복역함..

1988 8.15특별가석방으로 출소(2020일 복역) 복역중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발간하여 큰 반향을 일으킴

출소한후 결혼하여 아들 한명 있음.

1989년부터 성공회대학교에서 정치경제학과 한국사상사. 중국고전강독 등을 강의함.

1998 3월 사면복권 되어 성공회대교수로 임용되었다가, 2006년 퇴임 후 석좌교수로 재직 중.

어린시절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우기도 했던 그는 대전교도소 복역시절 남파공작원출신 한학자 노촌 이구영 4년간 한 방을 쓰면서 한학과 서예를 익혔으며, 감옥에 서예반이 생기면서 만당 성주표와 정향 조병호에게 지도를 받으며 자신만의 서체를 완성함. 그의 글씨체를신영복체’ ‘어깨동무체’ ‘협동체’ ‘연대체로도 불린다.

두산에서 브랜드명과 상표 글시체로 시 <처음처럼>의 제목과 글씨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수락하고 1억을 받아 성공회대학교에 기부함.

<더불어 숲>홈페이지 운영중.

 

저서로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1988 <엽서>1993 <나무야 나무야> 1996

<더불어 숲>2003 <강의_나의 동양고전독법> 2004 <처음처럼 신영복 서화에세이> 2007

<청구회추억> 2008 <변방을 찾아서> 2012

 

번역서로

<외국무역과 국민경제>1966 <사람아 아! 사람아> 1991 <루쉬전> 1992

<중국역대시가선집> 1994

 

참조

나의 동양고전 독법 강의 돌베개

http://www.shinyoungbok.pe.kr/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13s2903n11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60823182719&section=06(2006%EB%85%84

 

나의 의견

 

비 전공자가 비 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강의이다. <시경><서경><초사>에서 문안을 뽑고 주역도 다루고 주로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대학> <중용>의 독법과 함께 송대 신유학에 대한 논의를 추가했다. 저자는 말한다. 정작 중요한 것을 관점이라고.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과거의 재조명, 당대 사회의 당면 과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전독법의 전 과정에 관철되고 있어야 한다, 이 책 <강의)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았다고 밝힌다. 대부분의 내용은 춘추전국시대(BC7시기~2세기)의 사상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묵자, 순자, 한비자의 담론을 담았고 주역과 불교에 대한 것도 조금 보인다. 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처음 저자를 접했다. 시대적인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저자의 삶에 대하여는 아주 피상적으로 정도밖에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읽었던 책이다. 그리고 몇 해 전 한번의 만남이 있었다. 두 시간 정도의 강의였는데 강의주제는 잊었지만 20년간 복역중에 있었던 에피소드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있다. 처음처럼으로 1억을 받아 기부했다는 내용과 함께. 본 책의 내용과는 별개같이 보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삶의 철학이 2000년전 제자백가들의 이야기속에도 그래도 녹아있음이 느껴진다. 에피소드1. 무기징역의 삶을 어떻게 견디며 살았는가…자신이 출소를 하지 못할수도 있다는 것은 삶의 의지를 갖기에 많이 불리한 상황이다. 자신은 먼 미래를 꿈꾸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 하루의 삶만 생각하며 살았다고. 먼 길을 가야 하는 사람이 미래를 생각하면 오늘 한 발자욱도 걸을 수 없다고 했다. 높은 계단을 올라가야 할 때 이분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한 계단 만 생각하며 오르는거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까마득히 먼 곳을 응시하지 않는다. 한계단 한계단 오르다보면 어느덧 목적지에 다다른 나를 발견하곤 한다. 에피소드2.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주변의 합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도 혼자서의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남보다 더 돋보이기를 원하며 살아간다. 타인의 희생을 밟고 자신의 삶이 있음을 인정하기 싫어하기도 한다. 내가 들어본 자신에 대한 정의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말이다. 주변의 합이 자신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마 관계의 소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강의)책의 주제가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 담론이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23  유럽 근대사의 구성원리가 근본에 있어서존재론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

 

25 과거는 그것이 잘 된 것이든, 그렇지 못한 것이든, 우리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향해 우리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이지요.

 

29 어떠한 경우든 차별화는 본질을 왜곡하게 마련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점을 특히 경계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은 관계가 있습니다. 관계없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차이보다는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수많은 관계 그리고 수많은 시공으로 열려있는 관계가 바로 관계망입니다. 우리가 고전 강독의 화두로 걸어 놓은 것입니다.

 

36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베버의 체계에는 동양 사상의 저변을 이루고 있는 관계론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고 있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며, 살아가는 일의 소박한 현실이 곧 소중한 가치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37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서양의 철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리가 서양에서는 형이상학적 차원의 신학적 문제임에 반하여 봉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입니다.

 

39 자연의 개념과 특히 자연을 생기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동양적 체계에서 과잉 생산과 과잉 축적의 문제는 바로 생성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41 인간주의적 관점에서 규정하는 인성이란 한 개인이 맺고 있는 여러 층위의 인간관계에 의하여 구성됩니다.

 

동양적 가치는 어떤 추상적인 가치나 초월적 존재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 구하는 그런 구조입니다. 동양사상의 핵심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이 바로 그러한 내용입니다.

 

은 기본적으로 + 즉 이인 二人의 의미입니다. 즉 인간관계입니다.

 

43 조화와 균형에 대하여 대단히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중용 中庸이 그것입니다.

 

47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금언이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 사람이 걸음을 재촉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시와 언>

 

시경詩經 서경書經 초사楚辭

인류의 정신사는 어느 시대에나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모색해가게 마련입니다. 농본 사회에 있어서 노인의 존재는 그 마을에 도서관이 하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요. 노인들의 지혜와 희생이 역사의 곳곳에 묻혀 있습니다.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52 CF가 보여주고 약속하는 이미지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여러분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광고카피는 허구입니다.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이버세계 역시 허상입니다. 가상공간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는 본질에 있어서 허구입니다. <시경>독법은 우리들의 문화적 감성에 대하여 비판적 시각을 기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접근되기 보다는 정서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55 원래 <시경>에 실려 있는 시들은 가시歌詩였다고 합니다. 악가지요. +노래+출이었다고 전합니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정의情意가 언()이 되고 언()이 부족하여 가()가 되고 가가 부족하여 무()가 더해진다고 했습니다.

 

56 <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절반이 넘는 양이 국풍입니다.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試官)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이처럼 백성의 노래를 수집하는 주()나라의 전통은 한()나라 이후에도 이어져 악부(樂府)라는 관청에서 백성들의 시가를 수집하게 됩니다.

 

<시경>은 중국 사상과 문화의 모태가 되고 있습니다.

 

58 공자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평하여사무사(思無邪)’라 하였습니다. ‘사무사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특함이 없다는 뜻은 물론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생각에 거짓이 없는 것으로 읽기도 하고 시를 읽는 독자의 생각에 거짓이 없어진다는 뜻으로도 읽습니다. 우리가 거짓 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지요.

 

59 고향을 떠난 삶이란 뿌리가 뽑힌 삶이지요. 나는 사람도 한 그루 나무라고 생각합니다.

 

66 <시경>은 황하 유역의 북방 문학입니다. 북방 문학의 특징은 4언체에 있고 4언체는 보행 리듬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노동이나 생활의 리듬으로서 춤의 리듬이 6언체인 것과 대조를 보입니다. <시경>의 정신은 이처럼 땅을 밟고 걸어가듯 확실한 세계를 보여줍니다. 땅을 밟고 있는 확실함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되찾아야 할 우리 삶의 진정성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발이 땅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상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68 기록을 남기는 문화 전통은 농경민족의 전통이라고 합니다.

 

71 한마디로 무일(無逸)은 불편함이고 불편은 고통이고 불행일 뿐이지요.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 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77 미래는 과거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미래는 외부로부터 오늘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변화와 미래가 외부로부터 온다는 의식이 바로 피식민지 의식의 전형입니다. 권력이 외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으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78 <초사>는 한나라 유향이 굴원, 송옥 등의 작품을 모아 펴낸 책.

 

80 굴원이 밝힌 유배의 이유는 다소 엉뚱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다 부패했는데 자기 혼자만 깨끗했기 때문에 추방당했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있는데 자기 혼자만 맑은 정신이어서 추방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굴원이 자신의 결백함과 정치적 정당성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2 이상과 현실의 모순과 갈등은 어쩌면 인생의 영원한 주제인지도 모릅니다.

 

83 중국 역사에서는 남과 북이 싸우면 언제나 남쪽이 집니다. 중국의 전쟁사는 언제나 남의 패배와 북의 승리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기후가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한 남방인들의 기질이 험난한 풍토에 단련된 북방의 강인한 기세를 당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싸움에 지는 것을 패배라고 하고 그것을 敗北이라고 씁니다. 북에게 졌다.고 쓰는 것이지요. 그런데 유일하게 남방이 북방을 물리친 정권이 바로 현대중국입니다. 호남성 장사의 마오쩌둥이 이끈 중국공산당이 건설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를 테면 남방 정권입니다.

 

84 남장과 낭만주의와 창조적 정신 영역이 서로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축입니다.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넓고 긴 안목이 비록 <초사>의 세계나 남방적 남안주의와 무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우리가 처하고 있는 공고한 체제적 억압과 이데올로기적 포섭 기제를 드러내야 하는 당면의 과제와 한번쯤 연결시켜보는 것도 매우 의미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주역>의 관계론

 

주역에 담겨 잇는 사상이란 말하자면 손때 묻은 오래된 그릇입니다. 수천 년 수만 년에 걸친 경험의 누적이 만들어낸 틀입니다.

 

87 판단형식 또는 사고의 기본 틀이란 쉽게 이야기한다면 물을 긷는 그릇입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바다로부터 물을 긷는 것입니다. 자연과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나름의 인식 틀이라 할 수 있습니다.

 

89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相, , 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 수상과 같이 운명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어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마저도 인간의 지혜와 도리를 다한 연후에 최후로 찾는 것이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91 공자 이전 2500년은 점복의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자 이후의 시기는 <주역>의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시대입니다. 경은 원본 텍스트이고 전은 그것의 해설입니다.

 

92 <주역>은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도 합니다. 춘추전국시대 550년은 기존의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모든 국가들은 부국강병이라는 유일한 국정 목표를 위하여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지 않을수 없는 신자유주의 시기였습니다. 기존의 가치가 무너지고 새로운 가치가 수립되기 이전의 혼란한 상황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확실할수록 불변의 진리에 대한 탐구가 절실해지는 것이지요. 실제로 이 시기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회 이론에 대한 근본적 담론이 가장 왕성하게 개진되었던 시기였음은 전에 이야기했습니다. 한마디로 <주역>은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 절실하게 요청되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100 옛사람들은 처지에 눈이 달린다는 표현을 하지요. 눈이 얼굴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발에 달려 있다는 뜻이지요. 사회과학에서는 이를 입장이라 합니다. 계급도 말하자면 처지입니다. 당파성과 계급적 이해관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101 나는 사람이란 모름지기 자기보다 조금 모자라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집이 사람보다 크면 사람이 집에 눌립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보다 조금 작은 듯한 집이 좋다고 하지요.

 

어떤 사람의 능력이 100이라고 하면 70정도의 능력을 요구하는 자리에 앉아야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30정도의 여유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30정도의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102 개체의 능력은 개체 그 속에 있지 많고 개체가 발 딛고 있는 처지와의 관계 속에서 생성된다고 하는 생각이 바로 <주역>의 사상입니다.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람의 길흉화복이 그 사물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주역>사상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得位와 失位의 개념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이 곧 서구의 존재론과는 다른 동양학의 관계론입니다.

 

103 내가 중간을 선호하는 이유는 앞과 뒤에 많은 사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가 가장 풍부한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105 산다는 것은 곧 사람을 만나는 일이고 보면 응의 문제는 참으로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가 소유의 개념이라면 응은 덕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저변에서 지탱하는 인간관계와 신뢰가 바로 응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07 <주역>은 사회 경제적으로 농경적 토대에 근거하고 있는 유한 공간사상이며 사계가 분명한 곳에서 발전될 수 있는 사상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의 반복적 경험의 축적과 시간 관념의 발달 위에서 성립할 수 있는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111 띠풀을 뽑듯이 함께 나아감이 길한 까닭은 뜻이 밖에 있음이다.

 

124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잎사귀를 떨고 나목으로 서는 일입니다. 그리고 앙상하게 드러난 가지를 직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거품을 걷어내고 화려한 의상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구조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127 나는 세상에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라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람이든 강물이든 생명이든 밤낮이든 무엇 하나 끝나는 것이 있을 리 없습니다. 마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세상에 완성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지요.

 

실패한 사람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인간관계에 있다는 것이지요. , 즉 인간관계를 디딤돌로 하여 재기하는 것이지요. 작은 실수가 있고, 끝남이 없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담지하고 있는 상태 등등을 우리는 이 단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129 속도와 효율성, 이것은 자연의 원리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자본의 논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도로의 속성을 반성하고 길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도로는 고속일수록 좋습니다. 오로지 목표에 도달하는 수단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도로의 개념입니다.

 

길은 도로와 다릅니다. 길은 길 그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길은 코스모스를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친구와 함께 나란히 걷는 동반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일터이기도 하고 자기발견의 계기이기도 하고 자기를 남기는 역사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목표의 올바름은 선이라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라 합니다.

 

131 우리의 삶이란 기본적으로 우리가 조직한 관계망에 지나지 않습니다. 선택된 여러 부분이 자기를 중심으로 하여 조직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과학 이론도 다르지 않습니다. 객관세계의 극히 일부분을 선별적으로 추출하여 구성한 세계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삶은 천지인을 망라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자기 중심의 주관적 공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매트릭스의 세계에 갇혀 있는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3 서산대사가 묘향산 원적암에 있을 때 자신의 영정에 쓴 시입니다.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저것이로구나.

 

<논어>인간관계론의 보고

 

고전과 역사의 독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時制라는 사실입니다.

 

138 춘추전국시대는 철기의 발명으로 특징지어지는 기원전5세기 제2의 농업혁명기에 해당됩니다.

사회 경제적 토대으이 변화와 함께 구 사회질서가 붕괴되는 사회 변동기입니다.

제자백가의 백화제방의 시기입니다.

 

149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편의를 위한 관념적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151 전문성은 바로 효율성의 논리이며 경쟁 논리입니다.

 

 

 

152 오늘날 요구되고 있는 전문성은 오로지 노동생산성과 관련된 자본의 논리입니다. 결코 인간적 논리가 못 되는 것이지요.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강조되고 있는 전문성 담론이 바로 2천년 전의 노예계급의 그것으로 회귀하는 것임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논어>의 이 구절을 신 자유주의적 자본논리의 비인간적 성격을 드러내는 구절로 읽는 것이 바로 오늘의 독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157 품성이란 바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169 변혁기의 수많은 실천가들이 한결같이 경구로 삼았던 금언이 있습니다. “낯선 거리의 임자 없는 시체가 되지 마라는 것이었어요.

 

171 개인의 능력은 그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에 있으며 이 인간관계는 신뢰에 의하여 지탱되는 것이지요. 신은 그 글자의 구성에서 보듯이 인+언 의 회의로서 그 말을 신뢰함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함부로 말하지 않는 까닭은 그것을 지키지 못할까 두려우서라고 합니다.

 

172<논어>에서 仁에 대한 공자의 답변은 여러가지입니다. 묻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안연에게는 인이란 자기를 극복하고 예로 돌아가는것이라고 답변하였고 중궁에게는 자기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것이라고 대답하는가 하면 사마우에게는 인이란 말을 더듬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인의 의미는 특정한 의미로 한정하기 어렵습니다.

 

175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사람이 팔기 위해서전력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모든 것을 파는 사회이며 팔리지 않는 것은 가차없이 폐기되고 오로지 팔리는 것에만 몰두하는 사회입니다. 상품가치와 자본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체제에서 추구하는 지식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는 한 점의 인연도 없습니다. 지는 지인이라는 의미를 칼같이 읽는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회는 무지한 사회입니다. 무지막지한 사회일 뿐입니더,

 

180 학이 보편적 사고라면 사는 분명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하는 과거의 실천이나 그 기억 도는 주관적 관점을 뜻하는 것이라고 읽어야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182 大同은 멀고 小異는 가깝지요. 자기의 처지에 눈이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의 시각과 이해관계에 매몰되기 쉽지요. 따라서 사회적 관점을 갖기 위해서는 학과 사를 적절히 배합하는 자세를 키워가야 합니다.

 

188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과를 불문하고 아무리 교묘한 방법으로 그것을 치장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명석합니다.

 

189 마치 맨홀에서 작업하는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치부를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모든 타인은 그러한 위치에 있습니다.

 

195 내용이 형식을 잃어버리면 거칠게 되고 형식이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면 공동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시각으로 우리의 삶과 우리 시대의 문화를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198 나는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를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짧은 만남 그리고 한 점에서의 만남입니다. 만남이라고 하기 어려운 만남입니다. 부딪힘입니다.

 

201 知者는 물을 좋아하고 仁者는 산을 좋아한다. 지자는 동적이고 인자는 정적이다. 지자는 즐겁게 살고 인자는 오래 산다.

 

206 논어의 제일 첫 장에 나타나는 친구의 이야기는 공자 사상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맹자의 義

 

212 義는 인의 사회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15 맹자 사상이 공자의 인을 사회화했다고 하지만 당장의 부국강병을 국가적 목표로 하고 있던 군주들에게 사회적 정의는 너무나 迂遠우원한 사상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활적 경쟁에 내몰리고 있던 군주들에게 정의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양혜왕이 말했던 이란 오로지 부국강병의 류였던 것이지요. 오늘날로 말하자면 의란 국제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정책 제안이 아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3 인간의 본성은 선량하다는 것이 맹자의 성선설입니다.

 

225 측은해 하는 마음은 仁의 싹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義의 싹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禮의 싹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智의 싹이다. 사람이게 이 네 가지 싹이 있음은 마치 사람에게 四肢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

 

229 습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술은 개인이 처하고 있는 사회적 조건이며 개인이 맺고 있는 사회관계라 할 수 있습니다.

 

240 인류5천년 역사에서 고대 노예제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가 도시 형태입니다.

 

242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 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243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깊은 물은 높은 물결을, 얕은 물은 낮은 물결을 일으키는 법이다) 일월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250 <서경> 태갑편에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은 피할 길이 없구나

 

노자의 도와 자연

 

253 중국 사상은 지배 담론인 유가 사상과 비판 담론인 노장사상이 두개의 축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자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입니다. 노자의 歸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258 <노자> 81 5200여자에 이릅니다. 상편은 道로 시작하고 하편은 德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道德經>이라 불리게 됩니다.

 

259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하고 아는 자는 말하지 않는 법

이 말을 나는 노군에게 들었노라.

 

269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곳에 노자의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개념이라는 그릇은 작은 것이지요. 그릇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이미 바다가 아닙니다.

 

279 네팔에서볕바른 좌판에 놓여 있는 수공예품 앞에 앉아서 너무나 낮은 가격에 당사자가 아닌 내가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외환제도나 시장가격이란 고도의 수탈 메커니즘이 아닐 수 없습니다.

 

280 정치경제학 개념으로 이야기하자면 상부구조보다는 하부구조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정치학입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것이 소비가 미덕이라는 자본주의 경제학의 공리입니다. 절약이 미덕이 아니고 소비가 미덕이라니, 끝없는 확대 재생산과 대량 소비의 악순환이 자본 운동의 본질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입니다. 자본주의 경제는 당연히 욕망 그 자체를 양산해내는 체제입니다. 욕망을 자극하고 갈증을 키우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수많은 貨를 생산하고 그 화에 대한 욕구를 극대화합니다.

 

281 도무지 無慾무욕할 수 없고 無知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구조와 현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노자>의 현대적 재조명이라고 생각하지요.

 

282 무리하게 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마련이며 잡으려 하는 자는 잃어버린다는 것이 노자의 철학입니다.

 

큰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작은 생선 굽듯이 해야한다는 것이지요. 생선을 구울 때 생선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집다가 부스러뜨리는 것이 우리들의 고질입니다.

 

283 자구와 부분을 도려내어 확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부정적인 결론을 이끌어내려는 것이지요. 미운 사람을 험담하는 경우에 그렇게 하지요. 부분의 집합이 전체가 아니기 대문에 부분의 확대는 전체의 본질을 그르치기 쉽습니다.

 

<노자>독법의 기본은 무위힙니다. 무위는 그 자체가 목적이나 가치가 아니라 방법론입니다. 실천의 방식입니다. 그것이 목표로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난세의 극복입니다. 혼란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284 노자 철학을 한마디로 '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만물을 이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다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째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286 <노자>의 정치학은 철저한 비판 담론이란 점에서 민초들의 입장과 정서에 닿아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288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약한 사람이 그 수에 있어서 다수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강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지배하는 약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강자의 힘은 그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힘은 원래 약자의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강자가 지배하는 구도에 있어서 약자의 수가 항상 다수라는 사실입니다. 강자가 다수일 수 없다는 사실 이것이 핵심입니다.

 

293 자본주의적 가치란 소유와 소비라는 유의 세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유지되는가, 이 유의 세계가 어떠한 것을 축적하고 어떠한 것을 파괴하고 있는가를 주목하는 실천적 관점이 바로 <노자>의 현대적 독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욕망의 바다에서 소유의 탑을 쌓고 있는 중생들에게 무소유의 설법은 매우 중요한 각성의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소유 없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노스님의 무소유는 사찰 종단의 거대한 소유 구조 위에서 가능한 것이지요. 그 자체가 역설입니다. 무소유가 가능한 것은 소유가 용이 되기 때문이지요. 노자의 역설입니다.

 

295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백성, 즉 민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함으로써 신뢰받는 일입니다.

 

296 무언과 불간섭은 노자 철학의 전제입니다.

 

301 대변약눌은 "최고의 웅변은 더듬는 듯하다"는 뜻입니다. 언은 항상 부족한 그릇입니다. 언어로는 그 뜻을 온전히 담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맷돌이라는 단어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소통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연상 세계와 청자의 그것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정확한 의미의 소통은 차질을 빚게 됩니다.

 

302 고요함이 조급함을 이기고 추위가 더위를 이긴다는 것 그리고 고요한 것이 천하의 올바름이라는 것은 역시 노자 사상의 당연한 진술입니다.

 

304 간디는 "진보란 단순화이다"

 

핵심은 動 보다는 靜을, 滿 보다는 虛를, 巧보다는 拙을, 雄보다는 雌를, 그리고 進 보다는 歸를 더 높은 가치로 보는 데 있습니다. 노자 사상은 마치수학에서 '0'의 발견이 갖는 의미와 공헌을 중국 사상에 기여했다고 평가합니다. 노자 사상은 장자, 열자 등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계승되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유가 측에서도 <노자>를 계속 읽고 해석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과적으로 노자 사상은 중국사상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는데 매우 큰 공헌을 하게 됩니다.

 

305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장자의 소요

 

고기는 이를테면 하나의 현상입니다. 반면에 그물은 모든 현상의 저변에 있는 구조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잇습니다. 고기가 하나의 사물이라면 그물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망라하고 있는 天網천망인 것이지요. 고기는 잊어버리든 잃어버리든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의 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관계망이지요. 중요한 것은 한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남는 것은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동료들의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1 정자 사상이 가장 잘 날타나고 있는 것이 <장자> 제1편 消遙遊소요유입니다. 글자 그대로 아무 꺼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는 보행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허탈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이란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317 <장자>전편에 흐르는 유유자적하고 광활한 관점을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론과 사상뿐만 아니라 모든 현실적 존재도 그것은 드높은 차원에서 조감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조감자 자신을 포함하여 세상으이 모든 존재는 우물 속의 개구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분이고 찰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관점이 장자 사상의 본령입니다.

 

320 장자는 약소국의 가혹한 현실에서 자신의 사상을 키워낸 사람임에 틀립없습니다. 부자유와 억압의 극한 상황에서 그의 사상 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가 생각한 1차적 가치는 '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는 '생명 있는 무질서'를 존중하는 것이지요.

 

326 소와 말의 발이 네 개 있는 것 이것이 天이요, 말머리에 고삐를 씌우고 소의 코를 뚫는 것 이것이 人이다.

 

329 밭일을 하던 노인은 불끈 낯빛을 붉혔다가 곧 웃음을 띠고 말했다. "내가 스승에게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은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330 동양적 가치는 '인성의 고양'입니다. 더 많은 생산과 더 많은 소비가 아닙니다. 도와 깨달음과 도의 체득 그리고 합일입니다.

 

장자의 체계에 있어서 기계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기계는 그 속성인 기사와 기심으로 인하여 인간을 소외시키기 때문입니다. 기계의 발명과 산업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되는 노동 문제, 노동자 문제, 노동 계급 문제 등은 장자가 경험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나아가 공황이나 실업 문제에 대해서도 경험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자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미리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기계로 말미암아 인간이 비인간화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331 일과 놀이와 학습이 통일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는 바로 이 통일성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삶의 지출이 노동이지요. '지출'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니 좀 이상합니다. 삶의 '실현'이라고 하지요. 지출보다는 실현이 더 적절한 어휘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

 

333 최근 여론조사 전화가 부쩍 많이 걸려옵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것은 기계와 기계가 서로 응답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옆에서 보자니 가관이었어요. 이미 녹음된 질문이 질문을 하고 답변하는 쪽도 응답기가 돌아가는 것이지요. 기계와 기계가 서로 상대방을 고려하는 법 없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334 불치병자가 밤중에 아기를 낳고 급히 불을 들어 살펴보았다. 급히 서두른 까닭은 아기가 자기를 닮았을까 두려워서였다.

 

337 윤편이 말했다. "신은 신의 일(목수 일)로 미루어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축 즉 굴대가)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굴대가)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더 깎고 덜 깎는)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줄 수가 없고 제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람도 그와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전하지 못하고(글로 남기지 못하고)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343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장자는 자유의지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344 제물이란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모든 물이 관계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352 지혜란 무엇인가?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고 궤를 여는 도둑을 막기 위하여 사람들은 끈으로 단단히 묶고 자물쇠를 채운다. 그러나 큰 도적은 궤를 움칠 때 통째로 둘러메고 가거나 주머니째 들고 가면서 끈이나 자물쇠가 튼튼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세속의 지혜란 이처럼 큰 도적을 위해 재물을 모아주는 것이다.

 

354 장자가 그 말을 듣고 말했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을 널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세상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네. 이 처럼 내 장례를 위하여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또 더한단말이냐?"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까마귀나 솔개가 선생님의 시신을 파먹을까 봐 염려됩니다. "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솔개의 밥이 될 것이고, 땅속에 있으면 땅강아지와 개미의 밥이 될 것이다. (장례를 후히 지내는 것은)한쪽 것을 빼앗아 다른 쪽에다 주어 편을 드는 것일 뿐이다. 인지라는 불공평한 측도로 사물을 공평하게 하려고 한들 그것은 결코 진정한 공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가는 중국 사상사에서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최초의 좌파 조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패권적 질서와 지배 계층의 사상에 대하여 강력한 비판 세력으로 등장하여 기층 민중의 이상을 처음으로 제시하였습니다. 투철한 신념과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대중 속에서 설교하고 검소한 모범을 보였으며, 서민들의 저대적 지지를 받았습니다.

묵자가 죽은 후에도 200여년 동안 여전히 세력을 떨쳤지만 그 후 2천년이라는 긴 망각의 시대를 겪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묵가는 좌파 사상과 좌파 운동이 그 이후 장구한 역사 속에서 겪어 나갈 파란만장한 드라마를 역사의 초기에 미리 보여준 역설적인 선구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70 묵자는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라는 상생이론을 선언합니다.

 

겸애와 반전 평화를 묵자 사상의 핵심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372 유가와는 달리 숙명론을 배격하고 인간의 실천 의지, 즉 힘을 강조합니다.

 

379 단 한 줌의 의로움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따라서 비공, 즉 침략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사상이지요. 그런 점에서 반전 평화론이야말로 전국시대 최고의 사상이며 최상의 윤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382 묵자왈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86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람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388 인간의 행동은 욕구로부터 나오며 욕구는 후천적으로 물들여지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와 같은 마음이 '마땅하게 물들여져야' 도리에 맞는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92 무엇을 삼표라고 하는가....本, 原, 用이 그것이다. 어디에다 본할 것인가? 위로 옛 성황의 일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어디에다 원할 것인가? 아래로 백성들의 이목(현실)을 살펴야 한다. 어디에다 용할 것인가? 나라의 법과 행정이 시행되어 그것이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합치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를 소위 판단(言)의 세 가지 표준이라고 한다.

 

묵자의 삼표는 첫째는 역사적 경험이며, 둘째는 현실성이며, 셋째는 민주성입니다. 그리고 세번째의 표준인 용, 즉 국가, 백성. 인민의 이익에 대하여 묵자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富. 象. 安. 治 가 그것입니다. 富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만 묵자의 경우 물질적 풍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상은 인구를 늘리는 것입니다. 안은 삶의 안정성입니다. 그리고 치는 평화입니다.

 

395 하늘의 뜻이 相愛相利상애상리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돕는 것이 곧 하늘의 뜻이라는 형식으로 그의 사상을 개진하고 있는 것이지요.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405 순자의 天은 물리적 천입니다. 순자의 하늘은 그냥 하늘일 뿐입니다. 인간 세상은 하늘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407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하여 겨울을 거두어가는 법이 없으며, 땅은 사람이 먼 길을 싫어 한다고 하여 그 넓이를 줄이는 법이 없다. 군자는 소인이 떠든다고 하여 할 일을 그만두는 법이 없다. 하늘에는 변함없는 법칙이 있으며, 땅에는 변함없는 규격이 있으며, 군자에게는 변함없는 도리가 있는 것이다.

 

408 자연은 만물을 만들었지만 다스리는 것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순자의 인본주의적 관점입니다.

 

409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체계입니다.

 

인간의 적극 의자와 능동적 실천에 근거하여 인문 세계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413 순자의 성악편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다. 선이란 인위적인 것이다. 사람의 본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쟁탈이 생기고 사양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사람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질투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있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남을 해치게 되고 성실과 신의가 없어진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감각적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본성을 그대로 따르면 음란하게 되고 예의와 규범이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본성을 따르고 감정에 맡겨버리면 반드시 싸우고 다투게 되어 규범이 무너지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져서 드디어 천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

 

414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에 의하면 본성은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님은 물론입니다. 인간의 본성이란 DNA의 운동 그 자체라는 것입니다.

 

418 禮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사람은 나면서부터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욕망이 충족되지 못하면 그것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함에 있어서 일정한 제한이 없다면 다툼이 일어나게 된다. 다툼이 일어나면 사회는 혼란하게 되고 혼란하게 되면 사회가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옛 선왕이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의를 세워서 분별을 두었다.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예의 기원이다. 그러므로 예란 기르는 것이다.

 

순자의 예론은 사회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사회 이론입니다. 첫째 예란 物을 기르는 것이며, 둘째 그 물로써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다툼과 혼란을 방지하되 물질의 생산과 소비에 일정한 한계를 두어 조화를 이루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예를 세워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경우의 예란 당연히 사회의 제도와 규범입니다. 제도와 규범이 分界를 세워서 爭亂을 안정적으로 방지한다는 것입니다. 순자의 예는 후에 법이 됩니다.

 

425 순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人道와 人心입니다. 천도와 천심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428 난세의 징조는 그 옷이 화려하고, 그 모양이 여자 같고, 그 풍속이 음란하고, 그 뜻이 이익을 쫓고, 그 행실이 잡스러우며, 그 음악이 거칠다. 그 문장이 간사하고 화려하며, 양생에 절도가 없으며 죽은 이를 보내는 것이 각박하고, 예의를 천하게 여기고, 용맹을 귀하게 여긴다.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부자가 되면 남을 해친다. 그러나 태평 성대에는 이와 반대이다.

 

법가와 천하 통일

 

431 법가는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사상입니다.

 

433 세상이 변화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가의 현실 인식입니다.

 

438 버버가 사상 형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람으로 먼저 제나라의 관중을 듭니다. 관중은 토지 제도를 개혁하고, 조세 병역 상업 무역 등에 있어서 대폭적인 개혁을 단행합니다. 법가의 개혁적 성격을 가장 앞서서 보여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44 형식주의란 형태가 일정한 그릇에 담아서 올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력의 자의성을 방지하고 권력을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도화는 군주 권력의 강화이면서 동시에 군주권의 제한이기도 합니다.

 

445 전쟁에서 패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동력 있는 기능과 구조를 갖춘 강력한 정부가 요청되게 됩니다. 정의나 명분보다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 대안이 요구됩니다. 치자는 더 이상 성인이거나 군자일 필요가 없으며 그 대신 탁월한 전문성을 지녀야만 합니다.

 

450 문제는 세계화 논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실물적 관점이 없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투자된 외국 자본은 우리 자본이라는 논리가 그 전형입니다. 그러한 논리라면 해외에 투자된 자본은 우리 자본이 아닌 것이지요.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이 옳지요. 우리 자본이든 외국 자본이든 자본은 결국 우리 편이 아닌 것이지요. 실물적 관점이 중요하다는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451 정나라에 차치라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의 발을 본뜨고 그것을 그 자리에 두었다. 시장에 갈 때 탁度을 가지고 가는 것을 잊었다.

(시장의 신발 가게에 와서)신발을 손에 들고는 탁을 가지고 오는 것을 깜박 잊었구나 하고 탁을 가지러 (집으로)돌아갔다. 그리하여 다시 시장에 왔을 때는 장은 이미 파하고 신발은 살 수 없었다. (그 사정을 듣고) 사람들이 말했다. "어째서 발로 신어보지 않았서?" (차치리의 답변은)"탁은 믿을 수 있지만 내 발은 믿을 수 없지요."

 

452 여러분도 탁을 가지러 집으로 가는 사람이기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탁이란 책입니다.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서 여러분은 탁을 가지러 갑니다. 현실을 본뜬 탁을 가지러 도서관으로 가거나 인터넷을 뒤지는 것이지요. 현실로 보기보다는 그 현실을 본뜬 책을 더 신뢰하는 것이지요. 발을 현실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도 발로 신어보고 신을 사는 사람이 못 되는 것이지요.

 

457 악양은 공로를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의심을 받고, 진서파는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신임을 받았다. 교묘한 속임수는 졸렬한 진실만 못한 법이다.

巧詐교사가 拙誠졸성보다 못하다는 이 말의 뜻을 나는 세상 사람들 중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없다는 의미로 읽고 있습니다. 아무리 교묘하게 꾸미더라도 결국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거짓으로 꾸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인것이지요.

 

강의를 마치며

 

불교 신유학 대학 중용 양명학

우리의 고전 독법은 관계론의 관점에서 고전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담론이었습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하여 우리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성은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며 그 시대의 아픔을 주입함으로써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바다로 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바다로 가는 겸손한 여행이라 할 수 있습니다.

 

471 관계론이라는 주제에서 본다면 불교를 다루어야 마땅합니다. 불교 사상은 관계론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緣起論연기론은 그 자체가 관계론입니다.

 

472 불교사상의 핵심은 연기론과 깨달음입니다.

불교철학의 최고봉은 화엄사상입니다. 화엄경의 본래 이름이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입니다.

대는 절대적 대의 개념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개념입니다. 방광은 글자 그대로 넓다는 뜻입니다. 공간적 의미로 풀이됩니다. 따라서 '대방광'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불을 수식하는 형용사구가 됩니다. 그리고 불은 붓다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대방광불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의미합니다.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 붓다입니다. 화엄이란 잡화엄식에서 나온 말로, 갖가지의 꽃으로 차인다는 뜻입니다.

 

474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고 작은 미물이라도 찬란한 꽃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온 천지가 찬란한 꽃으로 가득 찬 세계를 상상해봅시다. 한마디로 장엄한 세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읽어야 하는 <대방광불화엄경>의 의미가 이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76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우리의 인식이 분별지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 작은 우물을 벗어나기 위한 깨달음의 긴 도정에 나서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77 깨달음은 고전 읽기의 시작이며 그 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80 위진 남북조와 수당 시대를 거치면서 불교와 도가가 유가를 압도하게 됩니다. 유학이 당시의 지적 관심과 요구에 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481 문명의 중심을 자처한 중화사상이 역사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불교의 전래와 17세기 이후 서구 사상이 도입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486 <대학>은 원래 <예기> 제 42편이었습니다만 주자가 그것을 따로 떼어 경1장 전10장으로 나누어 주석했습니다.

 

492 <대학>은 와해된 사회질서를 재건하려는 당대 인텔리들의 고뇌에 찬 선언이었다고 해야 합니다.

 

<대학>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입니다.

 

509 사상은 감성의 차원에서 모색되어야 합니다. 사상은 이성적논리가 아니라 감성적 정서가 담겨야 하고 인격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성과 인격은 이를테면 사상의 최고 형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상은 그 형식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한 개인의 육화된 사상이 되지 못합니다.

 

사상은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것입니다. 단지 주장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의 사상이 될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입니다. 말이나 글로써 주장하는 것이 그 사람의 사상이 되지 못하는 까닭은 자기의 사상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주장하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삶속에서 실천된 것만이 자기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상의 존재형식은 담론이 아니라 실천인 것입니다. 그리고 실천된 것은 검증된 것이기도 합니다.

 

511 그림은 우선 '그림'이라는 의미에 충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은 '그리워함'입니다. 그리움이 있어야 그릴 수 었는 것이지요. 그린다는 것은 그림의 대상과 그리는 사람이 일체가 되는 행위입니다. 대단히 역동적인 관계성의 표현입니다. 나아가 그림은 우리 사회가 그리워하는 것, 우리 시대가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512 千山鳥飛絶 萬徑人踪滅

孤舟蓑笠翁 獨釣寒江雪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길에는 사람의 발길 끊어졌는데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홀로

눈보라 치는 강에 낚시 드리웠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

 

책을 내면서

1장 서론

2장 오래된 시와 언 『시경』詩經 『서경』書經 『초사』楚辭

3장 『주역』의 관계론 『주역』周易

4장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논어』論語

5장 맹자의 의 『맹자』孟子

6장 노자의 도와 자연 『노자』老子

7장 장자의 소요 『장자』莊子

8장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자』墨子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荀子

10장 법가와 천하통일 『한비자』韓非子

11장 강의를 마치며 불교佛敎, 신유학新儒學,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명학陽明學

 

동양고전의 입문인 시경부터 시작이다. 300여편이 넘는 시가 남아있는데 그것의 사실성에 주목하여 저자는 이야기는 거짓이 있지만 노래에는 거짓이 없다고 이야기한다. 시경은 특히 국풍 부분에 주목한다. 백성들이 부르던 시대의 노래였기 때문이다.

기원전 2500년전의 이야기를 지금하는 이유는 줄곳 사람관계를 짚어보고자 하는 이유에서라고 보인다. 저자가 특히 주변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마도 그의 삶이 평탄하지 않았음에 기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고전독법의 중요성중에 시재를 이야기한다. 자주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현재에 맞추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시대의 시대적상황을 이해하고 읽어야 하는 과제가 특히 고전에서는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그런 차원에서의 해설과 그리고 그것이 현재에도 통용되는 그러면서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부분들이다. 이것이 고전의 힘이 아닐까한다. 그들의 통찰력이 놀랍기도 하고 그당시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나 타고난 기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음이 읽힌다. 다만 표현의 다름이 있는것으로 이해된다.

관계론의 보고인 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함을 못내 아쉬워한다. 사실 방대한 양의 고전을 특정코드로 읽어낸다는 것이 쉽지않은 저술이다. 깊이보다는 2600년을 꿰뚫은 한줄의 지혜를 얻기위한 저술이라고 생가하며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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