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레몬
  • 조회 수 369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12월 17일 06시 17분 등록

장자

 

장자 ( 莊子 ; BC 369~BC 289? )

 

 

중국 고대의 사상가, 제자백가 중 도가(道家)의 대표자자로서 성은 장()이며 이름은 주()이다. ()의 몽읍에서 출생하였다. 관영(官營)인 칠원(漆園)에서 일한 적도 있었으나, 그 이후는 평생 벼슬길에 들지 않았으며 10여 만 자에 이르는 저술을 완성하였다. ()나라의 위왕(威王)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저서인 장자는 원래 52()이었다고 하는데, 현존하는 것은 진대(晉代)의 곽상(郭象)이 산수(刪修)33(內篇 7, 外篇 15, 雜篇 11)으로, 그 중에서 내편이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한다.

 

장자가 살던 기원전 4세기는 전국시대로 전쟁과 살육, 권모와 술수가 판을 치는 시대였다. 장자의 고향인 송나라는 옛날부터 4전지지라고 불렸을 만큼 사방으로 적을 맞아 싸워야 했고, 또 사방으로부터 전화가 집중되어 있었다. 약한 나라의 가혹한 현실은 인간 부자유의 극한 상황을 체감하게 하였다.

 

그는 극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사고하게 되었다. 힘든 현실을 이겨내면서 자유 없는 상황 속의 자유, 부자유의 자유를 필사적으루 추구했다(안동림). 장자는 지식에 입각한 행위를 인위(人爲)라고 한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하여 그것을 이어주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고 하여 그것을 잘라주면 그들을 해치게 되듯이 인위는 자연을 훼손할 수 있다. 장자는 노자(老子)와 마찬가지로 도()를 천지만물의 근본원리라고 본다. 도는 일()이며 대전(大全)이므로 그의 대상이 없다.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으므로 무위(無爲)하다. 도는 스스로 자기존재를 성립시키며 절로 움직인다. 그러므로 자연(自然)하다. 도는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거미 ·가라지 ·기왓장 ··오줌 속에도 있다. 이는 일종의 범신론(汎神論)이다.

 

도가 개별적 사물들에 전개된 것을 덕()이라고 한다. 도가 천지만물의 공통된 본성이라면 덕은 개별적인 사물들의 본성이다. 인간의 본성도 덕이다. 이러한 덕을 회복하려면 습성에 의하여 물들은 심성(心性)을 닦아야 한다. 이를 성수반덕(性脩反德)이라고 한다. 장자는 그 방법으로 심재(心齋)와 좌망(坐忘)을 들었다. 덕을 회복하게 되면 도와 간격 없이 만날 수 있다.

 

도와 일체가 되면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볼 수 있다. 이를 이도관지(以道觀之)라고 한다. ()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자기는 귀하고 상대방은 천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도의 관점에서 사물들을 보면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다. 인간은 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자연에 따라 살아갈 수 있으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자유는 천지만물과 자아사이의 구별이 사라진 지인(至人)이라야 누릴 스 있다. 이 지인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고 천지만물들과도 사이좋게 살아갈 수 있다. 장자의 사상은 대부분 우언(寓言)으로 풀이되었으며, 그 근본은 노자(老子)의 무위사상(無爲思想)을 계승하는 것이지만, 현세와의 타협을 배제하는 점에서는 더욱 철저하여, 바로 그와 같은 면에서 장자의 분방한 세계가 펼쳐진다.

 

이러한 장자사상은 위진현학(魏晉玄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으며 남북조 시대에 성행한 반야학(般若學)과 당나라 때 융성한 선종(禪宗)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현종(玄宗)은 그에게 남화진인(南華眞人)이라는 호를 추증하였으므로, 장자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읽혔다. () ·() 이학(理學)은 유학을 위주로 하면서도 내면적으로는 장자철학을 수용하였다. 장자의 이러한 초탈사상은 자연주의 경향이 있는 문학 예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조선 전기에 이단(異端)으로 배척받기도 하였으나 산림(山林)의 선비들과 문인들이 그 문장을 애독하였다.

 

 

 

 

 

 

 

 

 

 

 

 

장자

 

 

 

==> 안동림 교수는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을 쓴 분이라, 이 교수의 장자 완역본을 꼭 보고 싶어서 책을 삼. 5만원. 비싼 나머지 발췌 후 바로 되팔까 싶어 아껴서 보고 있었는데 라면 국물을 흘려서 그냥 보기로 함. 장자와 라면국물.

 

난 가난한 거요, 지쳐 병든 게 아니오. 도대체 소위 선비란 자기 마음에 도덕을 지니면서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걸 지쳐 병들었다고 하는 법이오. 옷이 해지고 신발에 구멍이 난 건 가난이지 지쳐 병든 게 아니란 말이오. 말하자면 때를 만나지 못한 것뿐이오."

 

나는 가끔 장자가 정치가가 아니었음을, 한탖 천재적 야인에 지나지 않았음을 퍽 다행하게 여긴다. 만약 까 진왕 같은 지배자였다면 얼마나 국민을 교묘히 농락하고 사정없이 후려쳤을 까 하고 소름이 끼친다. 지나친 순수성이나 결벽증은 문학자, 예술가, 학자에게는 아주 개성적인 특성, 또는 인간적 매력이 될 수도 있다. 별로 남에게 큰 해독을 끼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가나 지배자에게는 매우 위험하고 두려운 결과를 낳는 원인이 될 수가 있다. 저 프랑스의 공포정치를 폈던 로베스피에르도 그 나름대로는 순수했고, 유태인 대학살을 감행한 히틀러도 그 자신은 순수하다고 믿고 있었을지 모를 일이 아닌가!

==> 안동림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가 정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한마디로, 장자는 더함 없이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참된 인간일 수가 있는가, 자기가 참된 자기일 수가 있는가를 추구했고, 나아가서는 그 혼란을 극복하여 삶의 환희와 끝없이 자유로운 절대자의 세계를 터득하려 했다.

 

14 인간의 존재 자체는 선악의 가치 판단을 넘어선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다만 현재 내가 살고 있다는 틀림없는 사실뿐이다. 장자는 이 엄연한 사실을 중시한다. 장자의 철학은 그런 의미에서 현실주의/현세주의적이다.

 

14 장자에게 인간 존재는 애초부터 고독하며 매달릴 신을 갖지 못한 채 불안 앞에 홀로 선 절망적인 존재이다. 인간은 그 고독과 불안을 참고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 하나만을 믿고 고통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것이 장자의 결의의 모두이다. 현대에도 여전히 잃어버린 신을 찾아 고투하는 실존주의가 있음을 볼 때, 처음부터 신을 가지지 않은 인간의 자유를 추구한 장자의 철학은 이제부터의 인류의 생존 방식에 대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15 중국인은 곧잘 이론보다도 생명 그 자체를 좋아한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는 생명 있는 무질서를 사랑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며, 법칙이 아니라 산다는 문제였다. 장자의 철학은 중국인의 이와 같은 사고를 가장 잘 대표한다.

장자는 생명을 무엇보다도 존중했다. 그의 철학은 생명 있는 것을 그대로 생명있게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는 생명을 해치는 짓을 무엇보다도 미워했다. 장자는 인간이 만일 생명이 안전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면 살아 있는 혼돈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라.”고 한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도 생명 있는 무질서의 존중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또한 여기에성 장자만의 해탈의 논리가 생겨난다.

 

25 구속이 없는 절대의 자유로운 경지에서 노니는 것을 <소요유>라고 한다. 현실 세계에는 여러 가지 구별(또는 차별)이 있어 사람을 구속한다. 권력과 신분, 도덕과 권위, 삶과 죽음, 가난과 부유 등... 장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이욕에 눈이 어두워 날뛰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비웃으며 도의 세계, 초월적인 자유로운 경지에 노닐 때 사람은 비로소 참된 행복을 얻게 된다고 말한다.

 

35 요임금이 천하를 허유에게 넘겨 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해와 달이 돋아 밝은데 관솔불을 계속 태우다니, 그 비츤 헛되지 않습니까? 때 맞추어 비가 내리는데 여전히 물을 대고 있으니, 그 물은 소용없지 않습니까? 선생께서 임금이 되시면 천하가 잘 다스려질 터인데 내가 여전히 천하를 맡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도저히 부족합니다. 부디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허유는 대답했다. [그대는 천하를 이미 잘 다스리고 있소. 그런데 내가 그대를 대신하다니, 천자라는 명목을 얻기 위해서 대신한단 말인가요? 명목이란 실질의 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더러 그런 손이 되란 말인가요?]

 

38 신인이 무엇 때문에 [보잘것없는] 천하를 위해 애써 수고하려 하겠나.

 

43 지금 선생에게 큰 나무가 있는데 쓸모가 없어 걱정인 듯하오만, 어째서 무하유의 드넓은 들판에 심고 그 곁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한가로이 쉬면서, 그 그늘에 유유히 누워 자 보지는 못하오. 도끼에 찍히는 일도 누가 해를 끼칠 일도 없을 게요. [그런데] 쓸모가 없다고 어째서 괴로워한단 말이오.

 

51 훌륭한 지혜는 한가하고 너그러우나 [세속적인] 하잘것없는 잔꾀는 사소한 일을 따지려든다. 훌륭한 말은 담담하나 [세속적인] 쓸데없는 잔말은 이러쿵저러쿵 시끄럽다.

 

55 일단 사람으로서의 형태를 받은 이상, 목숨을 해치는 일 없이 그대로 [자연히] 죽기를 기다리자. 주위의 사물에 거역해서 서로 해치고 다툰다면 일생은 말 달리듯 지나가 버려 막을 도리가 없다.

 

64 헛되이 애를 써서 한쪽에 치우친 편견을 내세우면서 실은 모두가 하나임을 알지 못한다. 그것을 조삼이라 한다. 조삼이란 무엇인가? 원숭이 부리는 사람이 원숭이에게 상수리를 나누어 주면서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다.] 했다. 원숭이들은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다.] 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80 삶을 기뻐한다는 것이 미혹이 아닌지를 내 어찌 알겠소? 죽음을 싫어한다는 것이, 어려서 고향을 떠난 채 돌아갈 길을 잃은 자가 아닌지를 내 어찌 알겠소? 여희는 애라는 곳의 국경지기 딸인데, 진나라가 처음 그(여희)를 가졌을 때 (즉 진나라로 처음 이끌려 갈 때)는 너무 슬프게 울어서 눈물로 옷깃을 적실 정도였으나, 왕의 궁전에 이르러 왕과 잠자리를 같이 하며, /돼지 고기 등 맛있는 음식을 먹게 되자 처음 울고 불고 한 짓을 후회했다 하오. [이와 마찬가지로] 저 이미 죽은 사람들도 처음에(살았을 때) 삶을 바랐던 일을 [지금] 후회하지 않는지를 내 어찌 알겠소?

 

81 참된 깨어남이 있고 나서라야 이 인생이 커다란 한 바탕의 꿈인 줄을 아는 거요.

 

86상대적인 세계를 긍정하가인지에 의한 분석을 거부한다. 어떤 사물의 존재나 운동은 그 자체로서 성립되지는 않는다. 반드시 원인이 있고 또 그 원인에는 한층 더 높은 원인이 있어서 캐어 나가면 끝이 없다. 결국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먼 곳에 궁극적인 원인이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곧 도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사물은 도의 그림자인 셈이다.

 

98 괜찮아. 처음 나는 그를 인물이라고 보았네만 지금은 달라. 아까 내가 들어가 문상할 때, 늙은이는 제 자식을 잃은 듯이 곡을 하고 있고, 젊은이는 제 어버이를 잃은 듯이 곡을 하고 있더군. 그가 사람들을 모은 원인 중에는 반드시 요구는 안했더라도 슬픔을 말하고 곡을 하도록 은연 중 시킨 바가 있기 때문이지. 이것은 생사라는 자연의 도리에서 벗어나 진실을 거역하고 하늘로부터 받은 본분을 잊음이야. 옛날 사람은 이것을 하늘을 도피한 벌이라고 했지. 그가 어쩌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태어날 때를 만났기 때문이며, 그가 어쩌다 이 세상을 떠난 것도 죽을 운명을 따랐을 뿐이야. 때에 편안히 머물러 자연의 도리를 따라간다면 기쁨이나 슬픔 따위 감정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걸세. 이런 경지를 옜날 사람은 하늘의 묶어 매닮에서 풀림이라고 불렀다네.

 

106 더구나 너는 덕이 중후하고 신의가 꿋꿋하지만 아직 남의 기분을 알지 못하고, 명예를 다투지는 않지만 남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애써 인의/도덕 이야기를 난폭한 자 앞에서 늘어놓는다면 이는 남의 결점을 이용하여 자기가 잘났음을 팔려는 짓이 된다. 이런 일을 남에게 해를 끼치는 짓이라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면 반드시 남에게서 해를 돌려 받게 되니, 너도 남에게서 해를 입기가 십상이라.

 

107 너는 신임도 받지 못하면서 충성스런 의견을 말하다가 틀림없이 난폭한 자 앞에서 목숨을 잃게 되리라.

 

113 안회는 말했다. [저로서는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부디 그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중니가 말했다. [재계를 하라. 그리고 덧붙여서 네게 말해 주겠다만, 사심을 품은 채 재계를 하면 그게 쉽게 될까?쉽다고 여기는 자는 하늘이 좋아하지 않는다.] 안회는 말한다. [저희 집은 가난하여 술이나 자극성 있는 야채를 못 먹은 지가 몇 달이나 됩니다. 이렇다면 재계한 셈이 될 텐데요.] 중니가 말했따. [그것은 제사 지낼 때의 재계이지 심재 즉 마음의 재계는 아니다.]

 

114 너는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통일하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듣도록 하고,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듣도록 하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밖에서 들어온 것에 맞추어 깨달을 뿐이지만, 기란 공허하여 무엇이나 다 받아들인다. 그리고 참된 도는 오직 공허 속에 모인다. 이 공허가 곧 심재(즉 마음의 재계)이다.

 

115 “지금 심재를 하여 자신에 구애되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이것으로 공허하다 할 수 있을까요?” 선생이 대답했다. “충분하다. 내 너에게 이야기를 해 두겠다만, 네가 위나라에 들어가면 그 옹색한 속박의 세계에서 자유로이 거동하여 명예 따위에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네 말을 들어주면 하고, 안들어주면 그만두어라. 자기 마음에 출입문을 세우지 말고 보루도 쌓지 말며, 마음의 거처를 일정하게 하여 부득이할 때만 응하도록 하면 그런대로 무난하리라.”

 

121 중니가 대답했다. 세상에는 크게 경계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운명이고, 또 하나는 의리입니다.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운명이며, 자식의 마음에서 그것을 풀어 버릴 수는 없습니다.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일은 의리이며, 어디를 가나 군주는 군주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이 두 가지로부터 떠날 수는 없습니다. 이를 두고 크게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섬기는 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버이를 편하게 모시는 것이 최고의 효행이며, 군주를 섬기는 자는 사태를 가리지 않고 군주를 편하게 모시는 일이 최고의 충성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마음을 섬기는 자는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것으로 애락의 감정이 움직이지 않으며, 사람의 힘으로는 어ᄍᅠᆯ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아서 마음 편히 운명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을 최고의 덕이라 합니다. 남의 신하로서 또는 자식으로서, 본래 어쩔 수도 없는 점이 있는 법이니, 오직 충실히 일을 하고 제 자신을 잊어야 합니다. 삶을 기뻐하고 죽음을 싫어할 여유 따위가 어찌 있겠습니까. 생사를 생각 말고 당신도 가는 편이 좋을 겁니다.

 

124 또 재주로 승부를 겨루는 자는 처음에는 정정당당하게 하지만 끝에 가서는 늘 음모를 꾸미게 되고, 이윽고 심해지면 괴이한 재주가 많아집니다. 예절에 따라 술을 마시는 자는 처음에는 근신하지만 끝에 가서는 늘 난잡해지고, 이윽고 심해지면 야릇한 쾌락이 많아집니다. 일이란 이와 같아서 진실에서 시작되어 늘 거짓으로 끝납니다. 그 시작은 간략하지만 끝날 무렵은 반드시 엄청나게 커져 버립니다.

 

135 또한 나는 쓸모 있는 데가 없기를 오랫동안 바라 왔다. [지금까지 여러 번] 죽을 뻔했으나 오늘 [자네가 쓸모 없다고 했기 때문에] 비로소 뜻을 이루어, [그 쓸모 없음을] 내 큰 쓸모로 삼게 되었다. 가령 내가 쓸모가 있었다면 어찌 이토록 커질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넌도 나도 다 같은 하찮은 것이다. 어찌 서로를 하찮다고 헐뜯겠는가. 너같이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는 쓸모 없는 인간이 어찌 산목을 알겠는가.

 

138 아 저 신인도 이 나무와 같은 쓸모없음으로써 스스로의 경지를 지켜 가는구나.

==> 노원의 경지

 

148 왕태 - 죽음과 삶 역시 중대한 일이다만 그는 그 변화와 함께 변하는 일이 없고, 하늘이 뒤집히고 땅이 꺼져도 또한 그는 함께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진리르 잘 깨닫고 있어서 사물과 함께 변하는 일일 없으며, 사물의 변화를 자연의 운명으로 알고 그대로 따르면서도 자기는 도의 근본을 지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149 서로 다른 입장에서 본다면 한 몸 안에 있는 간과 쓸개도 멀리 덜어진 초나라와 월나라 같고,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만물은 모두 하나이다. 무릇 이와 같은 자는 귀나 눈이 좋아하는 것 따위를 모르며, 마음을 덕의 조화된 경지에서 노닐게 하여, 만물에 대해 그 동일한 것을 보고 외형상의 변화를 보지 않는다. 그러니 그 발을 잃은 일 따위는 흙을 떨어 버리는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네.

 

151 대체로 도를 옳게 지키면 세상 일을 일일이 신경 쓰며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용사가 혼자서 용감하게 적의 대군 속으로 쳐들어 가는 일이 있다. 기필코 용명을 떨치게 되리라 믿는 자도 그런데, 하물며 천지를 뜻대로 다루고 만물을 내 것으로 삼으며, 내 육체를 한갓 객사로 여기고 귀와 눈을 가상으로 알며, 모든 지적 인식을 통일시켜서, 정신적으로 죽음을 초월한 자가 무엇을 일일이 신경을 쓰며 두려워하겠느냐. 그가 길일을 택해 하늘로 오르려 하므로 사람들이 그를 좇는 모양이다. 그런 그가 감히 사람들을 모으려는 따위 생각을 어찌 하겠느냐.

 

155 스스로 잘못을 변명하며 발을 잘리지 않았어야 한다고 뇌까리는 자는 많아도, 그 잘못을 변명 않고 애초 발이 있어서는 안 되었다고 하는 자는 적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ᄍᅠᆯ 수가 없음을 알고, 그러한 경지에 편안히 머물러 운명을 순순히 따르는 것은 덕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156 예의 활 사정 거리 안에서 놀고 있다면 한가운데는 화살이 명중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명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운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그 두 발이 온전하다고 해서 내 온전하지 못한 발을 비웃는 자가 많다. 나도 발끈 노하지만 선생님께 가면 깡그리 잊고 평상시로 돌아온다. 선생님이 훌륭한 덕으로 나를 씻어 주셨는지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과 퍽 오랫동안 사귀어 왔지만 아직 선생님은 내가 발 병신이란 걸 모르신다. 지금 자네와 나는 정신적으로 사귀고 있을 텐데, 내게서 외형적인 것을 찾다는 어찌 잘못이 아니겠나.

 

158 지가 노담에게 말했다. “공구는 지인에 이르려면 아직 멀더군요. 그런데 그는 어째서 자꾸만 당신한테 배우려 할까요? 그는 매우 기괴한 명성을 바라고 있겠지만, 지인은 그것을 스ᅟᅳᆺ로를 묶는 수갑과 차꼬라고 여긴다는 점을 모릅니다.” 노담이 말했다. “죽음과 삶을 하나로 보고, 옳다 옳지 않다를 한가지로 여기는 만물제동의 경지에 있는 자로 하여금 당장 그 수갑과 차꼬를 풀어 주도록 해보시지요. 그건 될텐데요. 무지가 대답했다. [그는 하늘의 벌을 받고 있습니다. 어찌 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 이 부분의 글을 보고 매우 놀랐다.

공구 = 김이상

지인 = 노원

만물제동의 경지에 있는 사람 = 반다해

 

159 위나라에 추남이 있는데 그의 이름은 애태타라 합니다. ... 그가 자기 의견을 주장하는 걸 아직 아무도 들은 적이 없고, 늘 남에게 동조할 뿐이라오. ... 그런데도 많은 남녀가 그 앞에 모여드는 까닭은 필경 범인 다른 데가 있어서일 게요.

==> 잘 들어준다.

 

168 성인은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으나 사람의 정을 지니지 않는다.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으므로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사람의 정이 없으므로 옳다 옳지 않다 하는 판단을 그 몸에서 구할 수는 없다. 성인이 너무도 작게 보이는 까닭은 사람들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나 큰가. 홀로 그 자연의 덕을 이룩한 것은.

==> 노원

 

169 혜자가 장자에게 말했다. [사람에겐 본래 정이 없는 것일까?] 장자는 대답했다. [그렇다네.] 혜자가 다시 말했다. 사람이면서 정이 없으면 어찌 그를 사람이라 하겠나?장자는 또 대답했다. 자연의 도리가 얼굴 모습을 베풀어주고, 자연의 작용이 몸의 형태를 베풀어 주었는데 어찌 사람아리 아니할 수 있겠나?

 

170 혜자가 말했다. 이미 사람이라고 한 이상은 반드시 사람으로서의 정이 있을 텐데 어찌 정이 없다고 하는가? 장자가 대답했다. 그건 내가 말하는 정이 아닐세. 내가 정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좋고 나쁨의 정에 의해 스스로의 몸 속을 해치지 않고 언제나 자연을 그대로 따르면서 부질없이 삶을 덧붙이려 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일세.

 

171 지금 자네는 자기 마음을 밖으로 향한 채 자신의 정력을 지치게 하고, 나무에 기대 서서는 신음하며, 책상에 기대어 졸고 있네. 자연이 자네 형체를 가려내어 만들어 주었는데, 자네는 그것도 모르고 쓸데없는 변론으로 떠들고 있는 걸세.

 

181 명예를 좇아 자기를 잃는 자는 선비가 아니다. 몸을 망치며 참된 삶을 잃고 있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받을 뿐 남을 부리지 못하는 자이다.

 

188 자연은 우리에게 모습을 주었다. 또 우리에게 삶을 주어 수고하게 하고 우리에게 늙음을 주어 편하게 하며, 우리에게 죽음을 주어 쉬게 한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삶을 좋다고 하면 곧 스스로의 죽음도 좋다고 하는 셈이 된다.

 

195 삶을 죽이는 자에게 죽음은 없고 삶을 살려는 자에게 삶은 없소. 그것이 도요. 도는 모든 것을 보내고 모든 것을 맞아들이며, 모든 것을 파괴하고 모든 것을 이룩하오. 이를 두고 변화 속의 안정이라 하오. 변화 속의 안정이란 변화가 있은 후 비로소 이루어지는 법이오.

 

200 감자기 이번에는 자래가 병이 났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며 곧 죽을 것 같았다. 그 아내와 자식들이 둘러싸고 울고 있었다. 자려가 문병을 가서 그 꼴을 보고 말했다. 쉬이, 저리들 가요. 죽는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아요. 가족을 물리치자 그는 문가에 기대 서서 자래에게 말했다. 위대하구나, 조화의 힘은 또 자네를 무엇으로 만들고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자네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나, 아니면 벌레의 팔뚝으로 만들려는가.

 

214 내 스승, 내 스승이란 도는 만물을 이뤄 놓으면서도 의롭게 여기지 않고, 만세에 미치는 혜택을 베풀면서도 어질다 생각하지 않는다. 아득한 옛날보다 더 오래 살면서도 늙었다 하지 않고, 천지를 싣고 감싸서 갖가지 모양을 조각해 내면서도 재주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마음을 노닐게 하는 경지일세.

 

217 자여와 자상은 벗이었다. 그런데 장마가 열흘이나 계속되었다. 자연은 자상은 가난하므로 아마 굶주려 괴로워하고 있을거다. 하고 밥을 싸 가지고 가서 먹이려 했다. 자상의 집 문앞에 이르자 안아서 자상이 노래하는 듯하고, 우는 듯하기도 한 목소리로 거문고를 뜯으며 아버지일까, 어머니일까. 하늘일까, 사람일까.” 하고 읖조리는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소리내기도 힘에 겨운 듯, 가사를 곡조도 만지 않게 서둘러 읊조린다. 자여는 들어가 물었다. 자네의 노래는 어째 그런가?자상이 대답하기를, 난 나를 이런 막바지에 몰아 넣은 게 무언지 생각해 보지만, 전혀 알 수가 없네.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길 바라겠나. 하늘은 공평하게 만물을 뒤덮고, 당은 공평하게 만물을 실어 준다. 그러니 하늘과 땅이 어찌 나만을 가난하게 하겠나. 나를 가난하게 만든 게 무언가 하고 애써 생각해 보지만, 전혀 알 수가 없어. 그런데도 이런 막바지에 몰리다니 운명일 테지.

 

236 아직 사람으로 태어나기 전인 @@의 몸은 그지없이 유쾌했다.

밥 먹고 오줌 누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어쩌다 누구에게 구멍을 뚫렸는가.

그래서 사람이 되어 아홉 구멍을 갖춘 몸이 되었다.

덕분에 날마다 옷/밥 때문에 허둥지둥

해마다 상@할 걱정 뿐.

사람들은 일금의 돈에 천인이 다투고

와글와글 모여서 목숨 걸고 외친다.

 

243 인의도 이 손가락이나 혹처럼 본래 아무 쓸모가 없다.

 

246 생각건대, 인의란 사람의 참된 모습이 아니다. 저 인덕을 갖춘 사람들은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은가!

==> 장자를 읽고 인덕을 갖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250 서민은 목숨을 걸고 이를 좇고, 사인은 몸을 바쳐 명예를 좇으며 대부는 몸을 바쳐 가문을 지키고, 성천자는 목숨 바쳐 천하를 지킨다. 그래서 이 여러 계층의 사람들은 하는 일이 다르고 명칭도 다르지만, 그 본성을 해치고 자기 몸을 희생한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269 어디 한 번 이 문제를 말해 보자.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지자란 큰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 두는 자가 아니겠느냐. 소위 성인이란 큰도둑을 위해 물건을 지키는 자가 아니겠느냐.

 

271 도둑이 나타나는 것은 성인이 있기 때문이라 한다. 성인과 도둑을 나란히 놓고 이를 인과 관계에서 살펴본다. 자연스런 생활에 인위적인 제약을 가하기 때문에 오히려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선을 내세울수록 악도 따라서 기승을 부리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차별이나 상대적인 지혜를 버리고 절대 자유의 경지, 자연 그대로의 만물@동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 성인불사, 대도불@라는 한마디는 얼마나 역설적이면서도 뜻깊은 경구인가!

==>뭔 한문인지...

 

283 덕이 아니면서 오래 가는 것이란 세상에 없는 법이다.

 

298 운장이 동녘으로 여행하여 신목인 부요 나뭇가지 아래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홍몽과 만났다. 홍몽은 마침 넓적다리를 두드리며 껑충껑충 뛰놀고 있는 중이었다. 운장은 그를 보자 깜짝 놀라 발을 멈추고 지그시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이윽고 물었다. 노인장은 뉘시오?노인장으 어째서 그러고 있소?홍몽은 여전히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껑충껑충 뛰놀면서 운장에게 대답했다. [놀고 있소.] 운장이 물었다. [제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홍몽은 고개를 들어 운장을 쳐다보고 [?] 하고 대답했다. 운장이 물었다. [하늘의 기는 조화를 잃었고 따으이 기는 막혀서 뭉쳤으며 육기는 고르지 못하고 사철은 순조롭지 않습니다. 지금 나는 육기의 정수를 모아 모든 생물을 육성해 나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홍몽은 넓적다리를 두드리고 껑충껑충 뛰면서 고개를 내젓고 말했다. [난 몰라, 난 몰라.] 운장은 더 물을 수가 없었다.

 

301 당신의 몸[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당신의 귀나 눈의 작용을 막아 버리며 세상 사람듬이나 사물을 잊은 채 자연의 도와 하나가 되는 거요. 마음을 풀어 놓고 정신을 헤쳐내서 휑하니 아무것도 모르게 한다면 만물은 무성해져서 각기 그 근원으로 돌아가오. 각기 그 근원으로 돌아가지만 그것을 알려 하지 않고 혼돈 무지한 모양으로 평생 거기서 떨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오.

 

302 세속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남이 자기에게 동조함을 기뻐하고 남이 자기에게 반대함을 미워한다. 자기에게 동조하면 그것을 바라고 자기에게 반대하면 그것을 싫어한다 함은 일반 사람보다 앞서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대저 일반 사람보다 앞서려는 마음을 지닌 자가 어찌 일반 사람을 앞서게 되겠는가. 일반 사람과 함께 따르므로 편안한 것이다.

 

319 국경지기가 말했다. [처음, 나는 당신을 성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군자정도밖에 안된다는 걸 알았군요. 하늘이 만민을 낳으면 반드시 그들에게 직무를 내리는 법입니다. 아들이 많더라도 각기에게 직무를 내린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준다면 무슨 귀찮은 일이 있겠습니까! 부자가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준다면 무슨 귀찮은 일이 있겠습니까! 대저 성인이란 메추라기처럼 거처가 일정치 않고 새새끼같이 주는 대로 먹으면 새처럼 자유로이 날아다녀도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도가 베풀어지고 있면 만물과 함께 번성하고 천하에 도가 베풀오지고 있지 않으면 자기 본래의 덕을 닦으며 고요한 삶을 누립니다. 천년을 살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속세를 떠나 선경으로 올라갑니다. 저 흰 구름을 타고 천제의 이상향에 이릅니다. 그리하여 장수와 부유와 아들이 많다는 세 가지 수고도 찾아들지 않고 몸에 늘 아무런 해가 없다면 무슨 욕된 일이 있겠습니까! 국경지기가 그곳을 떠나려 하자, 요 임금은 뒤쫓아가 부디 가르쳐 주십시호. 했으나 국경지기는 물러가시오. 했을 뿐이었다.

 

323 너구리를 잡는 개는 그 재능 때문에 줄에 묶인다.

 

327 나는 내 스승에게서 들었소만 기계 따위를 갖는다면 기계에 의한 일이 반드시 생겨나고 그런 일이 생기면 반드시 기계에 사로잡히는 마음이 생겨나와. 그런 마음이 가슴속에 있게 되면 곧 순진 결백한 본래 그대로의 것이 없어지게 되고, 그것이 없어지면 정신이나 본성의 작용이 안정되지 않게 되오. 정신과 본성이 안정되지 않은 자에겐 도가 깃들지 않소. 내가 두레박을 모르는 게 아니오. 도에 대해 부끄러워 쓰지 않을 뿐이오. 자공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며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있었다.

 

338 셋이 가다가 한 사람이 길을 잃는다 해도 목적지에는 이를 수 있다. 길 잃은 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셋 중] 두 사람이 길을 잃는다면 수고만 하고 목적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길을 잃은 자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온 천하 사람이 길을 잃고 있다. 자기에게 바라는 바가 있어도 도저히 얻을 수가 없다. 슬픈 일이 아닌가! 훌륭한 음악은 속인의 귀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절양이니 황화니 하는 속곡은 환성을 지르며 반긴다.

 

356 옛날 순이 요에게 물었다. “천왕의 정치에 대한 배려는 어떠합니까?” 요가 대답했다. “나는 완고한 백성을 깔보지 않고 가르치며 가난한 백성을 버리지 않으며 구제하고 죽은 자를 애통해 하고 고아를 사랑하며 과부를 애처로워한다. 이것이 내가 애써 마음을 쓰는 바요.” 순이 말했다. “훌륭하긴 훌륭합니다만 아직 위대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요가 그럼 어떻게 하는 거요?” 하고 묻자 순이 대답했다. “하늘은 본래 그대로 이루어져 있고 대지는 안정되어 있습니다. 해와 달은 빛나고 사철은 순조롭게 운행됩니다. 자연은 그대로 잘 다스려지고 있는 겁니다. 낮과 밤의 교체에 일정한 규칙이 있고 구름이 흘러 비가 오듯이 무위 자연으로 있는 겁니다.” 요는 말했다. “그럼 내가 하고 있는 짓은세상 일에 집착하여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거군. 그대는 하늘의 자연과 화합되어 있지만 나느 인간과 화합되어 있소.“ 대저 천지란 옛사람들이 위대하다고 했고, 또 황제나 요/순이 다 함께 훌률하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 천하를 지배한 왕자들은 무엇을 했는가! 다만 천지(자연의 도)를 따를 뿐이다.

 

364 세상에서 도를 얻기 위해 소중히 여기는 것은 책이다. 그러나 책은 말을 늘어놓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말에는 소중한 데가 있다. 말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까닭은 뜻 때문이다. 뜻에는 가리키는 바가 있다. 뜻이 가리키는 것을 말로는 전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세상엥서는 말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책을 역시 소중하게전해 주고 있다. 세상이 아무리 소중히 여긴대도 소중하게 생각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란 정말로 소중하지는 않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보이는 것은 [사물의] 형체와 색깔이고 귀로 들어서 들리는 것은 사물의 이름과 음성이다. 슬프구나, 세상 사람들은 그 형체/색깔/이름/음성으로 도의 참모습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그 형체/색깔/이름/음성으로는 도저히 도의 참모습을 터득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까 참으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로 설명하는 자는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에 이 사실을 누가 과연 알고 있단 말인가!

 

371 대저 지극한 인이란 훨씬 높은 경지인 것입니다. 효도 따위는 물론 이에 비해 말할 것이 못 됩니다. 이러한 [당신의] 의견은 효도를 넘어선 말이 아니라 효도에 미치지도 못하는 말입니다. 저 남쪽으로 여행한 자가 초나라의 서울인 영에 가서 북쪽을 돌아보아도 명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왜냐 하면 멀리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극한 인을 알려 해도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니다. 존경으로 효도를 다하기는 쉽지만 사랑으로 효도를 다하기는 어렵다.

 

382 그래서 저 삼황 오제의 예의나 법도는 서로 같으므로 귀중한 것이 아니고 그것에 의해 세상이 다스려지므로 귀중하지. 그러므로 삼황 오제의 예의나 법도를 비유한다면 바로 풀명자나무나 배나무/귤나무/유자나무 열매 같은 걸세. 그 맛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입에 달다네. 그러니까 예의나 법도란 때에 따라 변하는거야. 지금 가령 원숭이를 잡아다 주공의 옷을 입혔다고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것을 물러뜯고 찢어발겨서 깡그리 업새 버린 뒤에야 만족할 걸세. 옛날과 지금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바로 원숭이와 주공이 다른 것과 같아. 그래서 또 이런 이야기가 있지. 미인인 서시가 가슴을 앓아 이맛살을 찌푸리고 있었더니 그 마을의 추녀가 그녀를 보고 아름답다 여기고 집으로 돌아오자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이맛살을 찌푸렸다네. 그 꼴이 너무 흉측하여 마을의 부자가 그를 보고는 문을 굳게 잠근 채 밖에 나가지 않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를 보고는 처자를 이끌고 마을에서 달아나 버렸다는거야. 그 추녀는 서시가 아맛살을 찌푸린 모양이 아름답다는 점은 알았으나 이맛살을 찌푸리면 어째서 아름다워지는가 하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네. 겉만 흉내냈을 뿐이니 자네 선생도 마찬가지야. 그러니 애석하지만, 자네의 선생도 곤경을 치를 걸세!

 

383 도가 누구에게 줄 수 있는 거라 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자기 임금께 바칠 거요. 도가 줄 수 있는 거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어버이에게 드리겠지. 도가 남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거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형제에게 말해 줄 거요. 도가 남에게 줄 수 있는 거라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손에게 줄 거요. 그런데 그럴 수가 없는 것은 다름아니라, 마음속에 주체가 확고히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도는 거기 머물지 않고, 밖에 알맞은 올바름이 없으면 도가 실행되지 않기 때문이오. 안에서 나가는 도를 밖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인은 나가지 않고, 밖에서 들어오는 도도 주체가 안에 없으면 성인은 거기 의존하려 하지 않아요. 당신이 존중하는 명성이란 모든 사람의 것이므로 혼자서만 많이 가지려 하면 안 되오. 당신이 존중하는 인의란 엣 임금들의 일시적인 주막이며 하루를 머물기에는 괜찮으나 오래 있을 곳은 못 되오. 오래 머물러 있으면 비난이 많아지게 마련이니까요.

 

393 참된 도의 작용이란 이런 거요. 자연 그대로의 본성은 옮길 수가 없고, 정해진 운명은 바꿀 수가 없으며, 시간의 흐름은 멈출 수가 없고, 도의 작용이란 막을 수가 없소. 만약 이 도를 터득할 수 있다면 저절로 되지 안흔 일이 없지만, 그것을 놓쳐 버리면 저절로 되는 일이란 없는 법이오.

 

441 장자가 복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초왕이 보낸 두 대부가 찾아와 왕의 뜻을 전달하기를, “부디 나라 안의 정치를 맡기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장자는 낚시대를 쥔 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내가 듣기에 초나라에는 신구가 있는데 죽은 지 3천 년이나 되었다더군요. 왕께선 그것을 헝겊에 싸서 상자에 넣고 묘당 위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지만, 이 거북은 차라리 죽어서 뼈를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랐을까요, 아니면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까요?” 두 대부는 대답했다. “그야 오히려 살아서 진흙 속을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바랐을 테죠.”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닐 테니까!

 

447 천하에 지극한 안락이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몸을 살리는 안락이란 있을까, 없을까? 지금 무엇을 하고 무엇을 말며, 무엇을 피하고 무엇에 머물며, 무엇을 따라가고 무엇을 없애 버리며, 무엇을 즐기고 무엇을 싫어해야 하는가! 대저 천하 사람이 숭상하는 것이란 부와 귀, 장수와 명예이다. 즐기는 것이란 몸의 안락,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옷, 예쁜 의자, 황홀한 음악이고, 또 깔보며 싫어하는 것이란 가난과 비천, 요절과 나쁜 소문이다. 세상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이란 몸이 편안치 못함, 입이 맛있는 것을 먹지 못함, 몸이 아름다운 옷을 걸치지 못함, 눈이 예쁜 여자를 보지 못함, 귀가 황홀한 음악을 듣지 못함 등이다. 만약 이런 것들을 얻지 못하면 그들은 크게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이렇듯 그들이 육체를 위해 하는 짓이란 얼마나 어리석은가!

 

448 대저 부자는 몸을 괴롭혀 가며 서둘러 일해서 재산을 많이 쌓아 놓지만 그 재산을 다 써 버리지는 못한다. 이는 다만 재산이라는 겉모양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지 지락의 도에서는 벗어난 짓이다. 또 신분이 높은 자는 밤낮으로 직무상의 옳고 그름을 이것저것 깊이 생각한다. 이는 다만 신분이라는 겉모양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지 역시 지락과는 동떨어진 짓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걱정과 더불어 살아가게 마련이다. 그런데 장수하는 자는 늙어서 정신이 흐려져 오랜 세월 걱정하며 죽지 않고 살아간다.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이는 다만 장수한다는 겉모양을 위해서이지 역시 지락과는 먼 짓이다. 충렬의 선비는 천하로부터 착하다는 칭찬은 받지만 그 몸을 이것으로 살려 나갈 수는 없다. 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착함이 정말 착함인지 정말착함이 아닌지 아직 모른다. 만약 그것을 착함이라 한다면 제 몸을 살려 나갈 수 없게 되고, 착함이 아니라고 한다면 오히려 그 몸을 살리게 된다. 때문에 충직한 간언을 들어주지 않으면 물러나 그저 따를 뿐 다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 자서는 간언하여 다툰 탓으로 그 몸을 망쳤다. 다투지 않았다면 충렬이란 이름은 얻지 못했다. 그러니 정말 착함이란 있는가, 없는가 알 수가 없다!

==> 노원의 자살의 근거로 쓸만하다.

 

449 지금 세속 사람들이 하는 짓이나 즐기는 것을 나는 아직 그 즐거움이 과연 즐거움인지 과연 즐거움이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내가 보기에 세속 사람들이 즐기는 모양이란 떼를 지어 달려가며 죽어도 그만둘 수 없다는 듯한 꼴이다.

 

453 죽음의 세계에는 위에 군주도 없고 아래에 신하도 없지. 또 사철의 변화도 없다네. 편안하게 몸을 맡긴 채 천지와 함께 수명을 누린다네. 인간 세상에서의 제왕의 즐거움인들 이에 미치지는 못할 걸세. 장자는 믿어지지가 않아 물었다. ... 내 어찌 제왕의 것에 못지 않은 이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 세상의 괴로움을 겪겠는가!

==> 노원이 이미 자신은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여겨보자. 덤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467 가령 원수를 갚으려는 자라도 원수가 지닌 막야나 간장 같은 명검까지 미워서 꺾어 버리지는 않고, 아무리 성질이 거칠고 사나운 자라도 지붕에서 저절로 떨어지며 몸에 맞는 기왓장을 원망하지는 않아. 이와 같이 사람들이 무심하게 있으면 천하는 태평해지네. 때문에 공격전의 난이 없고 살육의 형벌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은 무심의 도에 의하는 걸세. 인위적인 지혜나 기교, 용기 따위의 마음을 펼치지 않고 무위 자연의 천덕을 펼쳐야 해. 천덕을 펼치는 자는 덕이 생겨서 마음이 편안하고, 인위를 펼치는 자는 해가 생겨 세상을 어지럽히지. 언제나 그 천덕을 온전하게 지니고 인위적인 마음을 삼가도록 하면 백성은 진실한 삶에 가까워질 걸세.

 

476 기성자가 왕을 위해 싸움닭을 키웠다. 열흘이 되어 왕이 물었다. 닭은 이제 싸울 수 있겠나? 아직 안됩니다. 지금은 공연히 허세를 부리고 제 기운만 믿고 있습니다. 하고 기성자가 대답했따. 열흘이 지나 또 왕이 물었다. 아직 안 됩니다. 다른 닭의 울음소리나 모습을 보면 당장 덤벼들려고 합니다.고 대답했다. 열흘이 지나 왕이 다시 물었다. 아직 안 됩니다. 상대를 노려보며 성을 냅니다. 하고 대답했다. 열흘 후에 또 물었다. 이젠 됐습니다. 상대가 울음소리를 내도 태도에 아무 변화가 없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나무로 만든 닭 같습니다. 그 덕이 온전해진 겁니다. 다른 닭이 감히 대응하지 못하고 도망쳐 버립니다. 하고 기성자는 대답했다.

 

487 나는 그 쓸모있음과 없음의 중간에 머물고 싶다. 그러나 쓸모있음과 없음의 중간이란 도와 비슷하면서도 실은 참된 도가 아니므로 화를 아주 면하지는 못한다. 만약 이런 쓸모있음과 없음 따위를 초월한 자연의 도에 의거하여 세속 밖에서 유유히 노닌다면 그렇지 않게 된다.

==> 도가 화를 면하기 위한 도구인가?

==> 화를 면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인가? 화를 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참된 도가 아닌가? 오히려 도를 실천하기 위해 화를 감수하는 경우는 없는가?

 

497 임회는 천금의 값이 있는 옥을 버린 채 아기를 업고 도망쳤스빈다. 그를 보고 어떤 이가 값으로 따진다면 애기는 몇 푼 안 되며 짐스럽기로도 아기가 더하오. 그런데도 아기를 업고 도망치는 건 어째서요?” 하고 물었더니. 임회가 옥은 이익으로 나와 맺어졌지만 아기는 천륜으로 맺어졌소. 대체 이익으로 맺어진 사이란 일단 윙급한 일을 만나면 서로 버리게 마련이오. 하지만 천륜으로 맺어진 사이는 위급한 일을 만나면 서로 뭉쳐서 떨어지지 않소.”라고 대답했소.

 

506 양자가 송나라에 가서 여인숙에 머물렀다. 여인숙 주인은 첩이 둘인데 한 명은 미인, 다른 한 명은 추녀였다. 그런데 그 못생긴 첩이 귀여움을 받고 미인은 미움을 받고 있었다. 양자가 그 까닭을 물었다. 여인숙 주인이 대답했다. “저 미인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므로 저는 오히려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못생긴 여자는 스스로 추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공손하므로 못생겼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말을 듣고 양자가 말했다. “제자들이여, 이것을 명심하라.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질다는 태도를 없애면 어디로 가건 어찌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지 않겠는가?”

==> 위선

 

514 내가 네게 가르치는 것이란 순간에 지나지 않고 네가 내게서 배우는 것 역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네가 하등 괴로워할 까닭은 없다! 지난날의 나를 잊었다 하더라도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가 아니고끝없이 새로 태어나는 (불변의 참된) 내가 있으니까.

==> 안동림의 완역은 대부분 참 훌륭하다. 그러나 불변의 참된을 과연 넣어야 했던 것일까? 이 부분은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지나친 완역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럽다.

==> 늘 변한다는 사실이 불변인 것. 아이러니.

 

521 송나라의 원군이 그림을 그리게 하였을 때 많은 화공이 모두 모였다. 그들은 명령을 받자 절하고 일어나 곧 붓을 핥고 먹을 가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방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반이나 되었다. 한 화공이 늦게 도착했으나 유유하여 서둘지 않고 명령을 받자 절하고는 그대로 멈취서지도 않은 채 자기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원군이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했더니 그는 옷을 벗고 두 다리를 내뻗은 채 벌거숭이로 쉬고 있었다. 이 말을 듣고 원군은 됐다. 그야말로 참된 화공이다.”하고 말했다.

 

533 지가 북녘 현수가에서 노닐며 은분의 언덕에 올라갔을 때, 우연히 무위위를 만났다. 지가 무위위에게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면 도를 알 수 있습니까?어떤 곳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도에 편히 머물 수 있습니까? 무엇을 따르고 무슨 방법을 쓰면 도를 터득할 수 있습니까?” 지가 세 번이나 물었으나 무위위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대답할 말을 모르는 것이었다. 지는 묻고도 대답을 듣지 못한 채 백수 남쪽으로 돌아와 호결의 언덕 위로 올라갔다가 광굴을 만났다. 지가 앞서와 같은 말을 광굴에게 물었더니 광굴이 , 나는 그걸 안다. 이제 자네에게 말해 주지.”하면서 도중에 말하려다가 그만 그 말을 잊엊버리고 말았다.

 

540 순임금이 승에게 물었다. 도란 자기 것으로 소유할 수 있는 걸까요?승이 당신의 몸조차도 당신 것이 아니오. 그런데 당신이 어떻게 도를 소유할 수 있단 말이오! 하고 대답했다. 순이 물었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것이란 말이오? 승이 그건 천지의 부속물이오. 생명도 당신의 것이 아니고 천지 음양의 기가 화합하여 생겼소. 성명도 당신 것이 아니며 자연의 이치에 따라 주어진 거요. 자손도 당신 것이 아니도 천지 자연이 허물을 벗는 거요. 때문에 사람은 이 인생의 길을 걸어가면서도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고 현실을 살아가면서도 어째서 살아가는지를 모르며 음식을 먹어도 그 맛이 어째서 있는지를 모르오. 그것은 천지 자연의 활기라는 거요. 그러니 어찌 천지의 그 무엇을 소유할 수 있단 말이오?

 

547 당신도 도가 어디 있다고 한정해서는 안되오. 도가 사물을 초월한 거라 여겨서도 안 되오. 지극한 도란 이와 같이 모든 것 속에 있소. 위대한 가르침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며 주//함이란 세 자는 이름은 다르지만 실제 뜻은 같소. 이처럼 도란 널리 어디에나 다 있어서 그 뜻은 모두 하나인 거요.

 

553 광요가 무유에게 물었다. “당신은 있는 거요, 없는 거요?” 무유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아서 광요는 더 물을 수가 없어 그 모습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아득하고 휑하니 빈 것 같았다. 온종일 그를 쳐다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히지 않았다. 광요는 말했다. “이야말로 지극한 경지로구나. 과연 어느 누가 이 경지에 이를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까지 무의 경지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무도 없는 절대의 경지를 몰랐다. 무도 없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 그것은 나같이 유와 무에 구애되는 자가 어떻게 그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겠는가!”

 

==> 대선 대목에 장자의 사상이 귀에 잘 들어오질 않는다.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인 공약을 제대로 된 검토 없이 우매한 포퓰리즘에 입각하여 내놓는 두 정권을 보면서 은둔해서 사는 것이 가장 진득한 도라고 주장하는 것을 어떻게 쉽게 받아들일 수가 있겠는가?

 

579 도는 평등하므로 만물의 차별을 통틀어 하나로 만든다. 자연의 대도는 형체를 보존하고 또 훼손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나뉘면 형체를 보존하는 것과 훼손하는 것이 된다. 이 나뉘는 것을 미워한다 함은 각기 사람들이 자기 처지에서 갖추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갖추어짐을 미워한다 함은 각기 사람들이 갖춘 채 더욱 갖추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래서 밖으로 작용할 뿐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그는 죽음으로 간는 셈이다. 밖으로 작용하여 얻었다고 함은 바로 죽음을 얻었음을 맒한다. 이미 본성을 잃고 형체만 있는 건은 죽어서 귀신이 된 자이다. 형체가 있는 자가 형체 없는 길을 따라 행동해야만 [자연과 하나가 되어] 마음이 안정된다. 만물은 생겨나는 근본이 없고 돌아갈 구멍도 없다. [도는] 실제로 있기는 하지만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모르고 한없이 길지만 처음과 끝이 없다. 생겨나는 근본이 있으면서 돌아갈 구멍이 없으나 실제로는 있다. 실제로 있으면서도 어느 곳에 있는지를 모르는 것이 [상하 사방의] 공간이다. 한없이 길면서도 처음과 끝이 없는 것이 무궁한 시간이다. 삶과 죽음이 있고 나가고 들어옴이 있다. 들어오고 나가지만 그 모습을 볼 수 없느 것을 바로 천문이라고 한다. 천문이란 무 자체이며 만물은 이 무에서 생겨난다. 모든 형체를 지닌 유는 본래부터 형체를 형체를 갖추고 있었던 유가 아니고 무라는 자연의 도에서 비롯되었다. 그리하여 여기에는 모든 것이 무이며 유는 하나도 없다. 성인은 이런 경지에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다.

 

585 짐승은 다만 짐승으로서 천지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다하면 하늘과 하나가 된다. 전인이 하늘을 미워함은 천지 자연과 분리된 인간의 천성을 미워하는 것이다. 하물며 하늘을 내 것이라 하고 자기의 천성이라 함에 있어서랴!

 

612 “나는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어서 새삼 이런 일을 하는 게 좋다 하고 생각해 본 일도 없소. 그런데 지금 아들이 임금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세속적인 보상이 있게 되었. 모든 괴이한 징조가 있는 자란 반드시 괴잉한 행동을 하게 마련이오. 그러니 위험합니다! 이런 일이 나나 내 아들의 죄가 아닌 이상 아마도 하늘이 내려 주는 걸 거요. 그래서 나는 우는 거요.” 얼마 안 있어서 곤을 연으로 보냈는데 도중에 도적이 그를 잡았다. 몸이 온전하면 그를 팔기가 어려워 발꿈치를 베는 것만 못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절름발이가 되어 제나라로 팔려갔다. 마침 팔려간 데가 거공의 문지기 자리였으므로 평생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621 대도란 어떤 것인가 물으면 한계가 있다고 해도 안 되고 한계가 없다고 해도 안 된다. 즉 있다 없다의 한계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착란된 상태에 있으나 그 속에는 각기 실리가 있고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며 각기 제 분수를 다한 채 결함이 없다.

 

632 계자가 듣고 그 일을 부끄럽게 여기며 말했다. “열 길 높이의 성을쌓을 때 성을 열 길이나 쌓았는데 다시 허물어 버리면 일꾼들은 괴로워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싸움을 일으키지 않은 지 칠 년이 됩니다. 이것이 천하의 왕이 될 기반입니다. 지금 전쟁을 일으킨다면 다 쌓은 성을 허물어 버림과 같습니다. 그러니 싸움을 일으키려는 공손연은 난리를 일으키는 인물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시면 안 됩니다.” 또 화자가 듣고 그 일을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제나라를 치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는 난리를 일으키는 인물입니다. 또 치지 말라고 자랑하는 자도 역시 난리를 일으키는 인물입니다. 치라는 자를 난리를 일으키는 인물이라 하고 치지 말라는 자를 난리를 일으키는 인물이라 하는자도 역시 난리를 일으키는 인물입니다.” 혜왕이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하고 묻자, 화자는 임금님께선 도만 찾으시면 될 뿐입니다.”라고 대답했다.

 

654 나무와 나무가 마찰하면 불이 붙고 금속과 불이 서로 함께 있으면 금속은 녹아 흐른다. 음양이 뒤섞여서 운행되면 천지는 큰 변동을 일으킨다. 여기서 천둥과 번개가 생기고 비 속에서 불을 일으켜 큰 회나무를 태우게 된다. 사람에게는 이해라는 매우 걱정되는 두 가지 함정이 있어서 그 어느 쪽으로인가 떨어지게 마련이며 도망칠 수가 없다. 언제나 두려워하며 편안치 않고 마음은 외물에 이끌려 천지 사이에 매달린 듯이 불안정하다. 또 언제나 마음속이 울적하고 괴로워 착 가라앉은 채 이해에 대한 관념이 서로 마찰하다가 이윽고 불이 심하게 붙어올라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의 태화의 기를 태워 버리고 만다. 사람의 마음은 달빛처럼 청명해도 이 불에는 이길 수가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은 무너져 버리고 천리는 사라져서 육체도 정신도 소멸되게 된다.

 

660 인혜를 베풀어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따위는 평생의 수치림을 모르는 짓이다. 범속한 행동이란 이런 것이어서 명성 때문에 서로 잡아당기고 사사로운 은혜 때문에 서로 맺어진다. 저 요를 칭찬하거나 걸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선악의 구별을 잊고 헐뜯거나 칭찬하는 두 가지를 다 잊은 채 칭찬 따위를 없애 버리는 것만 못하다. 본성에 거역하면 반드시 상해가 생기고 유위의 마음에서 행동하면 반드시 사악한 길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성인은 항상 무심하고 종용하게 일에 따르므로 반드시 일을 훌륭히 이룩한다. 그런데 그대는 어째서 인의 따위를 내세워 행동하려 하는가! 그건 다만 유의 속에서 덧없이 자랑하다가 끝날 뿐이다.

 

665 눈이 잘 보이는 것을 눈이 밝다 하고 귀가 잘 드리는 것을 귀가 밝다 하며 코가 잘 트인 것을 냄새를 잘 맡는다 하고 입이 맛에 능통한 것을 맛을 잘 안다 하며 마음이 사물에 통달한 것을 지라 하고 지가 외물에 구애되지 않고 통달한 것을 덕이라 한다. 대저 도란 통달하여 막히기를 바라지 않는다. 막히면 목이 멤과 같아서 목이 멘 채로 있으면 숨을 쉴 수가 없고 이윽고는 발버둥을 치며 괴로워하게 되며 많은 상해가 생긴다. 만물 중에서 지력을 갖춘 자는 숨을 쉬어 목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숨쉬는 일이 충분치 못하다 해도 하늘의 죄는 아니다. 하늘은 밤낮으로 쉬지 않고 구멍을 뚫어 기를 통하게 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이 자연에 따르지 않고 오히려 구멍을 막아 버린다. 사람의 배에는 텅 빈 곳이 있고 이것으로 숨을 쉬며 마음에도 역시 텅 빈 곳이 있어서 자연의 자적함이 있다. 방안에 빈 데가 없으면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언제나 한곳에서 다투게 되듯이, 마음에 자연의 자적함이 없으면 육근의 욕정이 서로 거역하며 다투게 된다. 어떤 사람들이 세상을 버리고 산림에 숨어 살기를 바라는 것은 그의 정신이 이 욕정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674 말을 해도 시비를 논하지 않으면 평생 말한들 말한 셈이 안 되고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에 시비가 있으면 평생 말을 하지 않는다고 잠자코 있다고는 할 수가 없다. 모든 사물은 자연에 의거하지만 사람의 입장에서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 옳지 않다고 여겨지는 것, 그렇다고 생각되는 것,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다. 과연 무엇이 그런가? 그런 것을 그렇다고 한다.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지 않다고 한다. 무엇이 옳은가? 옳은 것을 옳다고 한다. 무엇이 옳지 않은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한다. 사물에는 본래 그렇다고 할 만한 데가 있고 옳다고 할 만한 데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그렇지 않은 것이란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다. 치언이 날마다 생겨나서 시비를 초월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이 오래도록 계속되겠는가! 천지의 만물은 각기 모두 종류가 다르고 형체가 다르므로 서로 이어가며 변화하게 마련이다. 처음과 끝이 고리 같아서 그 순서를 알 수가 없다. 이를 하늘의 조화라 한다. 하늘의 조화란 시비를 초월하여 대자연과 하나가 됨을 말한다.

 

681 너는 눈초리를 크게 치켜뜨고 오만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데 누가 함께 있으려 하겠느냐! 정말 청렴한 사람은 오히려 더러워 보이고 참으로 덕을 갖춘 인물은 오히려 모자란 듯이 보이는 법이다.

 

689 한나라와 위나라가 침략한 땅을 서로 다투고 있었다. 자화자가 소희후를 뵈었을 때 소희후는 이 다툼 때문에 근심스런 낯빛을 하고 있었다. 자화자가 말했다. 지금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임금님 앞에서 서약서를 쓰게 했다고 합시다. 그 서약서에는 왼손으로 이 서약서를 잡는 자는 오른손을 없앤다. 오른손으로 잡는 자는 왼손을 없앤다. 그러나 이 서약서를 움켜잡은 자는 반드시 천하를 갖게 될 것이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 임금님께서 이 서약서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소희후는 말했다. ”나는 잡지 않겠다.“ 자화자가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이런 일오 미루어보건대, 두 팔은 천하보다도 소중합니다. 몸으 또 두 팔보다 소중합니다. 한나라는 천하보다는 훨씬 가벼우며 지금 위나라와 다투고 있는 땅은 한나라보다도 훨씬 가볍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자기의 몸을 괴롭히고 목숨을 해쳐서까지 그 땅을 잃는 걸 괴로워하겠다는 말입니까?“ 소희후는 대답했다. ”정말 좋구나! 내게 가르쳐 주는 자는 많으나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은 없었다.“ 결국 자화자는 사물의 경중을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697 공자가 안회에게 말했다. 회야, 가까이 오너라. 너는 집이 가난하고 천하게 살면서 어째서 벼슬을 하지 않느냐! 안회가 대답했다. 벼슬을 원치 않습니다. 제게는 성 밖에 오십 묘의 논이 있어서 그것으로 죽을쑤어 먹을 수 있습니다. 성 안에도 십 묘의 밭이 있어서 그것으로 실이나 삼베 옷을 지을 수 있습니다. 또 거문고를 타며 스스로 만족할 수가 있고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도로 스스로를 즐길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벼슬을 바라지 않습니다. 공자는 낯빛이 달라지며 태도를 바꾸고 말했다. “좋구나, 네 생각은! 나는 만족할 줄 아는 자는 이욕 때문에 스스로를 번거롭게 하지 않고 자득함을 깨달은 자는 이득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정신의 수행을 쌓은 자는 지위가 없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내가 이 말을 오랫동안 외어왔지만 지금 비로소 네 말을 듣고 그것이 실현되고 있음을 알았다. 이번 일은 내게 소득이 되었구나.

 

710 유하계가 말했다. 선생은 사람의 아버지가 된 자는 자기 자식을 반드시 가르쳐 인도할 수 있어야 하고 형된 자는 그 동생을 가르쳐 깨우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만, 만약 자식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동생이 형의 깨우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선생이 아무리 말을 잘한대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또 도척의 사람됨이 심지는 용솟음치는 샘물처럼 끝이 없고 의지는 회오리바람같이 사나우며 완력은 어떤 적이라도 물리치고 말솜씨는 자기의 비행을 꾸미기에 충분합니다. 제 마음에 들면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노하며 태연히 남의 욕을 합니다. 선생께서 부디 가지 마십시오. 그러나 공자는 듣지 않고 안회를 말을 부리게 하고 자공을 오른쪽에 태운 채 도척을 만나러 갔다. 도척은 마침 대산 남쪽에서 졸개들을 쉬게 하는 한편 그 자신은 사람의 간을 회를 쳐서 먹고 있었다.

==> 이후 도척의 말 중

신농씨의 시대에는 누우면 편안하고 일어나면 자득하는 한가한 생활을 누렸고 사람들은 자기의 어머니는 알아도 아버지를 몰랐으며 사슴다위 동물과 함께 살고 스스로 논밭을 갈아서는 곡식을 거두어 먹으며 옷감을 짜서 옷을 지어 입으면서 서로 해치는 마음을 지니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지극한 덕이 한창 성한 세상이었다.”

==> 이 대목을 소설에 쓸 수 있을 것 같다.

 

727 무족이 지화에게 물었다. “사람이란 결국 누구나가 명예를 찾아 일어나서 이득을 좆게 마련입니다. 일단 그가 부유해졌다면 사람듬은 그에게 모이고 모이면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숙이면 그를 존경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고개를 숙여 존경을 받는 것은 장수하고 몸을 편히 지니며 마음을 즐겁게 하는 방법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생만은 홀로 이 일에 관심이 없으니 이는 지력이 모자라서입니까, 지력은 있지만 실행할 힘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저 정도만을 밂고 나아갈 뿐 이 일에 무관심하기 때문입니까?” 지화가 대답했다. “대저 지금 말한 그러한 이득을 좆는 자란 나와 한시대에 태어나 한고장에 살고 있는 사람이면서 스스로를 세속을 초월한 인물이라고 여기고 있다. 명리를 좆음에 있어 아무런 표준도 없이 그저 시대의 흐름과 시비의 분별만을 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에 빠진다. 그들은 속인과 함께 있으면 세속에 감화되고 지극히 소중한 목숨의 참모습을 떠나 지극히 소중한 자연의 태도를 내버린 채 제멋대로 이득을 좇고 있다. 이것으로는 장수하고 몸을 편히 지니며 마음을 즐겁게 하는 방법을 말하기란 아득한 일이 아니겠는가! 몸에 주어지는 고통과 안락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마음에 끼쳐드는 두려움과 느긋한 기쁨에 대해 곰곰이 살펴보지도 않은 채 다만 이득을 위해서만 일할 뿐 모든 것이 무위 자연 소에서 생겨남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천자라는 귀한 자리를 얻고 천하라는 부를 누리면서도 환난을 면하지 못한다.”

 

740 왕이 말했다. “서인의 검이란 어떤 거요?” 장자가 대답했다. “서인의 검이란 머리칼이 쑥대처럼 마구 흐트러진 채 살쩍은 불쑥 치솟았으며 낮게 기운 관을 쓰고 장식이 없느 끈으로 관을 묶었으며 소매가 짧은 옷을 입었고 부릅뜬 눈에 말투는 우락부락합니다. 임금의 어전에서 서로 치면서 위는 목을 베고 아래는 간이나 폐를 찌릅니다 .이것이 서인의 검이며 말하자면 투계와 다른 바가 없습니다. 검사가 일단 목숨을 잃고 나면 이미 나라 일에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대왕께선 천자의 자리에 계시면서 이 서인의 검을 좋아하고 계십니다. 저는 황송하오나 대왕을 경멸하고 있씁니다.” 왕은 이 말을 듣자 크게 깨닫고 장자의 손을 이끌고 어전으로 올라갔다. 숙수가 식사를 올렸으나 왕은 세 번이나 그 둘레를 맴돌 뿐이었다. 이것은 본 장자가 말했다. “대왕님, 편히 앉으셔서 마음을 안정시키십시오. 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났습니다.” 그로부터 문왕은 석 달 동안이나 궁중에서 나가지 않았다. 검사들은 모두 예우를 받지 못하게 됨을 노여워하면서 자살하고 말았다.

 

751 당신은 정말 말귀가 어둡군요. 자기 그림자가 두렵고 발자국이 싫어서 그것들로부터 떨어지려고 달린 자가 있었소. 발을 들어올리는 횟수가 잦으면 금나큼 발자국이 낳아지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림자는 몸에서 떨어지지 않소. 그래서 아직 느리게 달린다고 생각하여 더욱빨리 쉬지 않고 달리다가 힘이 빠져 죽고 말았소. ... 당신은 인의의 도리를 상세히 알고 시비의 구별을 살피며 동정의 변화를 관찰하고 남과 주고 받음을 알맞게 하며 좋아함과 싫어함의 감정을 조절하고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을 화합하고 있으나 아무리 신경을 써도 화를 면하기는 어렵겠소!

 

761 일솜씨가 교묘한 자, 애써 수고하여 아는 것이 많은 자는 걱정이 많기 마련이다. 오히려 무능한 자는 그 무엇도 밖에서 찾지 않고 배가 불룩하도록 만족스런 마음으로 즐기며 노닌다. 마치 매여 있지 않은 배가 둥둥떠다니듯이 무심하게 소요한다.

 

771 어떤 사람이 송왕을 만나 수레를 열 대나 받았다. 그는 이 열대의 수레르 장자에게 자랑했다. 장자가 말했다. 황하가에 가나하게 사는 자가 있다. 갈대로 발을 짜서 그것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s 어느 날 그 아들이 못 깊은 델 들어가 천금이나 나갈 구슬을 주워 왔다. 그러자 그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돌을 갖다가 부숴 버려라. 대저 천금이나 나가는 구슬이란 반드시 아홉 길의 깊은 못 속의 그것도 흑룡의 턱 밑에나 있는 것이다. 네가 구슬을 가져올 수 있었다면 틀림없이 그 흑룡이 마침 잠들었을 때를 만났기 때문일 거다 .만약 흑륭이 깨어났다면 네가 아직 어찌 남아 있었겠느냐!”

 

794 세상 사람은 모두 재물을 얻으려고 애쓰는데 그만은 공허의 입장을 지켰다. 사물을 저장하는 일이 없으므로 언제나 모든 것이 여유 있고 독립 자족하면서 남아 돈다. 그 행동은 남과 다투지 않고 편안하게 있으면서 노력을 낭비하지 않으며 무위한 채 교지를 비웃는다. 세상 사람이 모두 행복을 찾지만 그는 홀로 사물의 도리에 따라 스스로를 온전하게 지니려 한다.

 

803 스스로의 덕성을 가꾸는 데 약하고 사물에 대한 욕망이 강하므로 그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천지의 대도를 따라 혜시의 재능을 본다면 그것은 마치 한 마라의 모기나 등에가 덧없이 애쓰고 있음과도 같다.

 

 

 

 

 

 

 

 

 

 

내가 저자라면

 

 

 

 

 

완역을 잘해서인지, 장자의 사상을 조목조목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상징과 사례를 통한 설명. 또한 장자의 도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도라는 인식이 강했으나 막상 읽어보니 생각만큼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설명은 아니었다. 사례들이 생생하여 재미도 있었으며 이해를 더욱 증진시켜 주었다. 장자는 자신의 사상을 의외로 직설어법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또한 꾸준하게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으므로 책의 주제를 간파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다만 한문이 너무 많아 한문 문맹인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이해에 어려움이 있었다. 완역자가 매우 많은 수고를 들인 책인 것은 확실하지만, 나와 같은 수준 낮은 독자를 위해서 한문 자체를 한글로 옮겨주는 화룡정점을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내용 속의 한문들을 일일이 번역해주었으나 내가 그것을 읽지를 못해서 마음 깊숙이 와닿질 않았다. 하나 하나 찾아가며 읽을 수는 없고, 안타까웠다.

 

 

 

 

 

, 이번 주 너무 대선 판도에 마음이 쏠려서 정신 집중이 잘 안되었어요. 수준 낮은 북리뷰 죄송합니다.

IP *.49.66.148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