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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7일 12시 00분 등록

장자 (외편, 내편), 장자 지음, 김창환 옮김, 을유문화사

 

1.   저자에 대하여

 

장자 (BC 369?~BC 286?)는 성은 장이고 이름이 주이면, 자는 자휴이다. <사기, 장주열전>에 의하면 정자는 중국 전국시대 송나라 몽지역 출신으로 맹자와 비슷한 시기인 양혜왕, 제선왕 시대에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생졸년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다. 젊어서는 칠원에서 말단관리로 일한 적도 있었으나 이후 자유분방한 성격으로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초나라 위왕이 그를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그가 지은 <장자>는 원래 52편이었다고 하는데, 진대의 곽상이 산정한 33(내면 7, 외편 15, 잡편 11)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장자는 노자 사상을 계승하여 도를 일체 존재의 기본 원리로 삼앗지만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른 차이를 보이기도 하였다. 즉 현실과 인위에 대해 훨씬 부정적이고 따라서 더욱 자연을 내세우고 초월을 강조하였다.

당의 제8대 황제인 현종은 장자를 높여 남화진인이라는 호를 추증하였고 <장자>를 남화진경으로 높여 장자의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장자>에 대한 신영복 <강의>의 언급

 

나는 다음 두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다. 이번에 장자를 읽게 된 건 다른 책을 사러 가지 못한 채 주말을 맞았기 때문이었지만 읽다보니 미리 한 번 읽어본 게 좋았다.

 

317 <장자>는 그 전편에 흐르는 유유자적하고 광활한 관점을 높이 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세상의 모든 존재가 부분이고 찰나라는 것을 드러내는 근본주의적 관점이 <장자> 사상의 본령입니다. 바로 이 점에 장자에 대한 올바른 독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비하여 <논어> <맹자>의 세계는 지극히 상식적인 사계입니다.

 

319 <장자>가 우리 시대에 갖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대안이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바라보는 것이지요.

 

저자에 대한 개인적 평가

 

불교 관련된 책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구절이 많이 있었다. 집착하지 않는 것, 일체유심조, 존재는 비어있으며 중립적이라는 걸 떠올리며 읽었다. 스님의 글을 비불교적인 재료를 가지고 읽는 느낌이었다.

 

2.   내가 저자라면

 

1)    뼈대와 목차

 

장자가 지은 <장자>는 원래 52편이었다고 한다. 진대의 곽상이 산정한 33(내면 7, 외편 15, 잡편 11)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을유문화사는 내편과 외편을 내놓고 있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내편

1.     소요하며 노닐다 (소요유)

2.     만물과 주장을 같게 보다 (제물론)

3.     생명을 가꾸는 근본 (양생주)

4.     사람 사는 세상 (인간세)

5.     덕이 충만하여 드러나다 (덕충부)

6.     가장 높은 스승 (대종사)

7.     제왕에 상응하는 도리 (응제왕)

 

외편

8.     붙은 발가락 (변무)

9.     말의 발굽 (마제)

10.   상자를 열다 (거협)

11.   있는 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재유)

12.   하늘과 땅 (천지)

13.   하늘의 도 (천도)

14.   천도의 운행 (천운)

15.   뜻을 가다듬다 (각의)

16.   본성을 닦다 (선성)

17.   가을의 빗물 (추수)

18.   지극한 즐거움 (지락)

19.   생명에 대한 깨달음 (달생)

20.   산중의 나무 (산목)

21. 위문후의 스승 전자방 (전자방)

21.   지가 북쪽으로 유람하다 (지북유) 

 

2)    장점과 보완점

 

을유출판사의 편집 의도 또는 배려인 듯 한데 한문으로 된 본문을 참조하여 뜻을 새기기 편하도록 배치하였다. 한자 밑에는 글자의 음이 작은 글자로 달려 있다. 해석이 거의 직역하다시피 해서 원문에 충실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한문 없이 읽어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끊어 읽는 단락이 한 줄로 되어 있다.

 

신영복 <강의>를 읽어서 <장자> 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접근한 게 읽는데 도움을 주었다. 선행조직자가 되어 주었다. 만약 이런 것이 없었다면 자의적으로 읽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누군가의 해석, 시각으로 보지 않고, 원문을 직접 접하는 것도 장점일 수 있겠다.  

 

3)    감동적인 장절

 

20 쓰르라미와 작은 비둘기가 비웃으며 말하였다.

우리는 힘껏 솟아올라 날아도 느릅나무와 박달나무에 이른다. 어느 때는 그곳에 미치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질 뿐인데 무엇 때문에 구만 리를 올라 남쪽으로 가는가?”

푸른 교외에 가는 사람은 세 끼만 먹고 돌아와도 배가 아직도 부르지만 백 리를 가는 사람은 밤새 양식을 찧고 천 리를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양식을 모으는데 이 두 벌레가 또 어떻게 알겠는가? (내편 소요유)

 

203 지리소라는 사람은 턱이 배꼽에 숨어 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으며 상투는 하늘을 가리키고 오장은 위에 있으며 두 넓적다리가 겨드랑이가 된 자이다. (그러나) 바느질을 하고 헌옷을 빨아 생계를 꾸려 갈 수가 있었고 키질을 하여 정미를 까불어 열 식구를 먹여 살릴 수가 있었다.

나라에서 병사를 징집해도 저리소를 팔을 걷어 올리고 그 사이를 돌아다닌다. 나라에 큰 부역이 있어도 지리소는 항상 지닌 병이 있다는 이유로 일을 받지 않는다. 나라에서 병자에게 곡식을 내릴 때에는 세 종의 곡식과 열 묶음의 땔감을 받는다. 그 몸을 불구로 한 자도 오히려 몸을 보양하고 천수를 다할 수 있는데 하물며 그 덕을 불구로 한 자이겠는가. (내편 인간세)

 

93 그러므로 군자가 부득이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면

무위만한 것이 없다.

무위한 뒤에라야 본성의 실상을 편안히 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의 몸을 귀하게 여겨야

천하를 부탁할 수 있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의 몸을 사랑해야

천하를 맡길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만일 안으로 그 오장을 풀어내지 않고

밖으로 그 총명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면

시동처럼 있어도 용처럼 드러나고

연못처럼 고요해도 우레처럼 울리며

정신이 움직임에 자연은 따르고

조용히 작위함이 없음에

만물은 바람이 먼지를 불어대듯 한다.

내가 다시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리겠는가? (외편, 11 재유-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다)

 

124 그대가 다만 무위로 처신하면 상대는 저절로 변화됩니다.

그대의 형체를 버리면 그대의 총명을 뱉어내면

뒤섞인 채 상대조차도 더불어 잊어버리면

자연의 기와 크게 합치될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을 풀고 까마득히 정신을 비운다면

만물은 무성하게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서도 알지 못한 채

혼돈한 상태에서 평생토로 그 근원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을 인식하게 되면 곧 본질에서 벗어납니다.

그 이름을 묻지 않고 그 실정을 엿보지 않는다면

만물은 원래 저절로 자라납니다. (외편 11. 재유)

 

454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싸지 못하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긷지 못한다. (외편 18지락편)

 

601 백리해는 벼슬이나 녹봉이 마음에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를 먹이자 소가 살이 쪄 지난라 목공으로 하여금 그의 천한 신분도 잊고 그에게 정사를 맡기게 하였다. 순임금은 죽음과 삶이 마음에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외편 전자방)

 

8.     붙은 발가락 (변무)

 

15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이 붙은 자와 육송이는 타고난 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많다. 붙어있는 혹이나 매달린 사마귀는 몸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타고난 것보다 많다. 인의를 잡다하게 일삼아서 쓰는 것은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더라도 바른 도덕이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발에서 발가락이 붙은 것은 쓸모없는 살이 덧붙은 것이고, 순에서 곁가지를 친 것은 쓸모없는 손가락이 붙은 것이다. 내면의 감정에 잡다하게 군더더기를 붙인 것은 인의의 행위를 지나치고 치우치게 하고, 총명을 쓰는 데는 잡다하게 일삼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눈이 밝은 데에 지나친 자는 오색을 어지럽히고, 문채를 심하게 하니, 청색과 황색의 수를 놓은 예복의 화려함이 아니겠는가. 이주 같은 이가 그런 사람이다.

귀가 밝은 데에 지나친 자는 오음을 어지럽히고 율률을 심하게 하니 금석사죽의 악기와 황종, 대려의 소리가 아니겠는가? 사광 같은 이가 그런 사람이다.

인에 지나친 자는 덕을 뽑아버리고 본성을 막아가면서 명성을 추구하니,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면서 미치지도 못할 인의의 법을 받들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증상과 사추같은 이들이 그런 사람이다.

변론에 지나친 자는 기와를 쌓고 노끈을 묶듯이 글을 멋대로 고치고 견백론과 동이론의 궤변 사이에서 마음을 쓰니, 적은 명예와 쓸모없는 말에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양주와 묵적 같은 이들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모두 지나치고 곁가지인 도리로 천하의 지극하고 바른 도가 아니다.

지나친 것은 육손이나 발가락에 붙은 쓸데없는 사족과 비슷하다고 보는 구나. 비유가 명쾌하다.

 

20 저 지극하고 바른 도라는 것은 타고난 실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가락이 붙어 있는 것을 붙은 발가락이라 여기지 않고 손가락이 더 난 것을 육손이라 여기지 않으며 긴 것을 남는다고 여기지 않고, 짧은 것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물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그것을 길게 이으면 걱정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자르면 슬퍼한다. 그러므로 타고난 바가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고, 타고난 바가 짧은 것은 이를 것이 아니니, 근심을 없애려 할 것이 없다.

, 인의란 아마도 사람의 실정이 아닌가 보다. 저 인자들은 어쩌면 그리고 걱정이 많은가?

그런데 장자의 재미있음이 바로 이 구절이다. 앞 구절에서는 넘치지 말라고 했다가, 넘치는 것 자체를 자르지 말고 그냥 두라, 그것도 자연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11.   있는 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재유)

 

93 그러므로 군자가 부득이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면 무위만한 것이 없다.

무위한 뒤에라야 본성의 실상을 편안히 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의 몸을 귀하게 여겨야 천하를 부탁할 수 있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의 몸을 사랑해야 천하를 맡길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만일 안으로 그 오장을 풀어내지 않고

밖으로 그 총명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면

시동처럼 있어도 용처럼 드러나고 연못처럼 고요해도 우레처럼 울리며

정신이 움직임에 자연은 따르고 조용히 작위함이 없음에

만물은 바람이 먼지를 불어대듯 한다.

내가 다시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리겠는가?

이 문장 아름답다. 무위로 존재하는 사람도 아름답겠지.

 

124 그대가 다만 무위로 처신하면 상대는 저절로 변화됩니다.

그대의 형체를 버리면 그대의 총명을 뱉어내면

뒤섞인 채 상대조차도 더불어 잊어버리면

자연의 기와 크게 합치될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을 풀고 까마득히 정신을 비운다면

만물은 무성하게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서도 알지 못한 채

혼돈한 상태에서 평생토로 그 근원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을 인식하게 되면 곧 본질에서 벗어납니다.

그 이름을 묻지 않고 그 실정을 엿보지 않는다면

만물은 원래 저절로 자라납니다.

나의 존재가 이렇게 되어 있는 상태, 꽃은 누구에게 아름답다는 칭찬을 들으려는 목적도, 교화의 목적도 없이 그저 그 자신으로 피어 존재한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아름답다.

 

13.   하늘의 도 (천도)

 

220 그 경지에서 쉬면 비고,

 비면 차게 되며

차면 질서가 잡히게 된다.

비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움직이게 되며

움직이면 제자리를 얻게 된다.

고요하면 무위하게 되고

무위하면 일을 맡은 자가 책임을 다하게 된다.

무위하면 즐거워지고

즐거워지면 근심과 걱정이 깃들 수 없어 수명이 길어지게 된다.

무릇 비고 고요함, 담백함, 적막함, 무이라는 것은 만물의 근본이다.

이 말도 아름답다. 뭔 소린지는 잘 몰라도.

 

 

 

3.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내편

 

1.     소요하며 노닐다 (소요유)

 

20 쓰르라미와 작은 비둘기가 비웃으며 말하였다.

우리는 힘껏 솟아올라 날아도 느릅나무와 박달나무에 이른다. 어느 때는 그곳에 미치지 못하고 땅바닥에 떨어질 뿐인데 무엇 때문에 구만 리를 올라 남쪽으로 가는가?”

푸른 교외에 가는 사람은 세 끼만 먹고 돌아와도 배가 아직도 부르지만 백 리를 가는 사람은 밤새 양식을 찧고 천 리를 가는 사람은 석 달 동안 양식을 모으는데 이 두 벌레가 또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몇 리를 가는 사람인가? 이미 인생의 반을 살아왔다.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지 않나? 그런데 누에가 잠을 자기 전에 뽕 잎을 먹듯, 겨울 잠 자기 전 뱀과 개구리가 양식을 삼키듯, 저 글 속의 먼 길 떠나는 이들이 짐을 꾸리듯, 그리고 3대를 내다보는 이들이 기초공사를 하듯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33 뱁새가 깊은 숲 속에 둥지를 틀어도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가 황하의 물을 마셔도 배를 채우는 데에 지나지 않습니다. 돌아가 쉬시오, 그대여. 나는 천하를 가지고 할 것이 없습니다. 요리사가 비록 주방을 잘 다스리지 못하더라도 제관이 제기를 넘어가서 그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쓰르라미, 비둘기, 뱁새, 두더지<—>붕새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넓히려 하고 있다. 우주가 여전히 팽창하고 있다는 말을 과학적인 것을 비유로 설명할 때, 고정불변의 단독자가 없다는 말을 과학적인 비유로 말할 때 재미있었다.

 

2.     만물과 주장을 같게 보다 (제물론)

 

61 죽음에 가까워지는 마음은 다시 회복시킬 수가 없다. 희로애락과 염려와 비탄, 변덕과 두려움과 경박과 방종, 드러냄과 잘난 체 등이 음악이 빈 곳에서 나오고 습한 기운이 버섯을 내듯이 밤낮으로 앞에서 서로 바뀌는데 그 비롯되는 바를 알지 못한다.

 

81 정신을 수고롭게 하면서 한가지인 것을 추구하지만 그것이 같음을 알지 못하니 이것을 일러조삼이라고 한다. 무엇을 조삼이라고 하는가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이 상수리를 주면서 말하였다.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라고 하니 많은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그래서) 말하기를그렇다면 아침에 네 개씩 주고 저녁에 세 개씩 주겠다라고 하니 많은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명칭과 실상이 손상되지 않았는데도 기뻐하고 성내는 것이 작용하니 역시 이(그것이 같음을 알지 못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시비를 조화시켜 천균에서 쉬니 이것을 양행이라고 한다.

(천균: 자연의 고른 이치, 천은 자연이고 균은 균이니 도의 견지에서 본 동일함이다.

양행 : 시와 비를 포용함으로써 상대적인 일체를 인정하는 경지, 즉 물아일체의 경지이다.)

조삼모사의 유래가 이 책이던가?

 

91 천하에는 추호의 끝보다 더 큰 것이 없고 태산은 작으며 일찍 죽은 아이보다 장수한 이가 없고 팽조는 요절한 것이다. 천지는 나와 함께 생겨났고 만물은 나와 하나이다. 이미 하나인데 또 말이 있을 수 있는가? 이미 이것을하나라고 일컬었으니 또한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나인 것과 (하나라고 표현한) 말은 둘이 되고 이 둘과 하나 (둘이라고 표현한 말)는 셋이 된다. 이로부터 계속해 나간다면 계산을 잘하는 자라도 할 수 없는데 하물며 보통사람이겠는가 그러므로 무에서 유로 나아가 셋에 이르니 하물며 유에서 유로 나아가는 경우이겠는가 나아가지 말고 이(도를)를 따를 뿐이다.

 

97 큰 도는 일컬어지지 않고

큰 변설은 말하지 않으며

큰 사랑은 가까이 하지 않고

큰 청렴은 겸손하지 않으며

큰 용기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도는 밝히면 도가 되지 못하고

말은 구별하면 (본질에) 이르지 못하며

사랑은 고정되면 이루어지지 않고

청렴은 맑게 드러내면 믿음 받지 못하며,

용기는 남을 해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다섯 가지는 둥근 것인데

거의 네모로 향해 간다.

그러므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멈출 줄 안다면

지극한 것이다.

누가 말하지 않는 변설과

일컫지 않는 도를 알겠는가?

만일 제대로 앎이 있게 된다면

이것을 일컬어자연의 곳집(천부)’라고 한다.

부어도 차지 않고

퍼내도 마르지 않는데

그 말미암아 나오는 바를 알지 못하니

이것을 일컬어빛을 감추는 것(보광)’이라고 한다.

이런 번역이 직역에 가까운 을유문화사판 장자의 특징이다. 의미에 따라 끊어읽도록 되어 있다.  이 구절은 진정한 보시는 주었다는 생각이 없으며, 진정한 인욕은 참았다는 생각이 없으며로 나아가는 육바라밀의 구절과 매우 비슷하다. 행하되 행한다는 의도나 내적 보상심리 같은게 없는 상태이다. 이것을 도라고 부르는 것 조차 비슷하다.

 

102 내가 시험 삼아 너에게 물어보겠다.

사람이 습하게 자면 허리 병이 나아서 한쪽이 못쓰게 되지만 미꾸라지도 그러한가? 나무에 있으면 무서워 벌벌 떨게 되는데 원숭이도 그러한가? 셋 가운데 어느 것이 올바른 거처를 아는가?

사람은 고기를 먹고 사슴은 풀을 먹으며 자네는 뱀을 맛있어 하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쥐를 좋아한다. 넷 가운데 어느 것이 올바른 맛을 아는가? 원숭이는 편저로 짝을 삼고 순록은 사슴과 교미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함께 헤엄친다. 모장과 여희는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이들이지만 물고기가 보고는 깊이 숨어들고 새가 보고도 높이 날아오르며 순록과 사슴이 보고는 급히 달아난다. 넷 가운데 어느 것이 천하의 올바른 미모를 아는가. 내 입장에서 보건데 인의의 단서와 시비의 길은 어수선하게 섞여 있으니 내가 어떻게 그 구별을 알 수 있겠는가?

이 비유가 재미있다. 이 글을 보고 생각나는 장면, 스타워즈 영화의 공화국 회의가 있어서 모인 여러 별 주민들의 회합 장면. 내 눈에는 모두 괴물스러운데 그들이 모두 공화국의 구성원이었다. 다른 종의 눈으로 보면 내가 되려 괴물이리라.  

 

111 나는 어찌 삶을 좋아하는 것을미혹이 아니라고 알겠으며 나는 어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을 어려서 고향을 잃고 돌아갈 줄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고 알겠는가? 여희는 애 지방 국경 관리인의 딸이었다. 진나라가 처음에 그녀를 데려왔을 때에는 눈물을 흘리면서 옷깃을 적셨지만 그녀가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왕과 침상을 함께하고 고기를 먹게 된 이후로는 자신이 울었던 것을 뉘우쳤다. 나는 어찌 죽은 자가 그들이 전에 삶을 바랐던 것을 뉘우치지 않으리라고 알겠는가.

 

122 전에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기분좋게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스스로 즐겁게 마음에 맞아 (자신이) 장주임을 알지 못하였다. 갑자기 잠을 깨니 분명한 장주였다. 장주가 꿈에 나비가 되었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주가 되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장주와 나비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

이것을 일러만물의 변화’(물화) 라고 한다.

장자에서 가장 유명한 비유가 아닐는지. 을유문화사의 책에는 나비 그림이 표지로 되어있다. 장자하면 붕새 이야기와 나비꿈 이야기가 제일 유명하지 않을까?

 

3.     생명을 가꾸는 근본 (양생주)

 

138 노자가 죽자 진일이 조문하는데 세 번 호곡하고서 나왔다.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의 친구가 아닙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조문하는데 이와 같이 해도 괜찮습니까?”

그렇다

처음에 나는 (노자를) 그 사람(지인)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구나. 아까 내가 들어가 조문할 때 노인이 곡하는데 자기 자식에 대해 곡하듯이 하고 젊은 사람이 곡하는데 자기 어머니에 대해 곡하듯이 하였다. 저들이 그렇게 거기에 모인 것은 반드시 (노자가 칭송의) 말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말하게 함이 있었고 곡하기를 바라지는 않았지만 곡하게 함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자연의 도리를 회피하고 실정을 거슬러 그가 (하늘에서) 받은 바를 잊은 것이니 옛날에 이르러자연의 도리를 회피한 죄(둔천지형)’이라고 하였다. 마침 (이 세상에) 온 것은 선생이 올 때가 되었던 것이고 마침 떠나는 것은 선생이 (자연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다. () 때를 편안히 여기고 (자연의 도리를) 따르게 되면 슬픔과 기쁨이 끼어들 수 없으니 옛날에 이것(죽음)을 일러상제가 매달린 데(속박)에서 풀어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말이 맞다. 그러나 슬픔에 겨워 눈물이 나는 것이 상대에게는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걸 이렇게 가르쳐서 못 울게 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만약 이렇게 가르친다면 이것 또한 폭력이다. 어느 경우의 깨달음, 정리이든 당사자에게서 나온 것만이 자연스러운 도다.  

 

141 손이 땔감을 구하는 데에는 다함이 있지만 불은 전해지는 것이니 그것이 끝나는 것을 알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비유, 계율을 전하는, 법을 전하는 촛불을 이고 선 초 한 자루에 불과하다는 말. 그러니 생명이든 법이든 내가 받은 것을 오롯이 지키다 오롯이 전달해주고 가도 좋겠지.

 

4.     사람 사는 세상 (인간세)

 

173 공자가 말하였다.

“세상에는 ‘크게 경계할 것’이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명(천명)이고 다른 하나는 의(의리)이다. 자식이 그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은 명이니 마음에서 풀어버릴 수 없고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은 의이니 어딜 가든 군주의 것 아닌 데가 없으므로 천지 사이에서 벗어날 곳이 없다. 이것을 가리켜 ‘크게 경계할 것’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 처지를 가리지 않고 어버이를 편안케 함이 지극한 효도이고 군주를 섬기는 사람은 일을 가리지 않고 군주를 편안케 함이 훌륭한 충성이다.

스스로 그 마음의 수양을 일삼는 사람은 슬픔이나 즐거움이 앞에서 쉽게 작용하지 못하여 그것이 어쩔 수 없음을 알고 편안히 여기기를 운명처럼 하니 지극한 덕이다.

신하된 자와 자식된 자는 본래 부득이한 것이 있다. 일의 실제 상황을 실행하고 자신의 몸을 잊으니 어느 겨를에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게 되겠는가.

그대는 아마 가는 게 좋으리라.

어버이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 않고 자식이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이 명이라 했구나. 군신관계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했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했는데 이건 어찌된 것인가? 또한 통치원리에서 권력이 있는 이에게 충성, 또는 잘 보이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란 말인가? 감동적이라기 보담 이해가 안되어 밑줄 긋다.

 

186 그대는 저 사마귀를 모르시오? 앞발을 치켜들고 수레바퀴에 맞서니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재주를 훌륭하게 여기는 것이니 경계하고 삼갈 일입니다. 계속 그대의 훌륭함을 자랑하여 상대방을 범하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그대는 저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을 모르시오. 호랑이에게 감히 살아있는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은

호랑이가 그것을 죽이려고 성내는 것 때문이며 호랑이에게 통째로 주지 않는 것은 호랑이가 그것을 찢으려고 성내는 것 때문입니다. 그 배부름과 굶주림을 때맞춰 살피고 그 성난 마음을 알아줍니다.

호랑이는 사람과는 다른 종류인데도 자기를 기르는 자에게 잘 보이려 하는 것은 (호랑이의 본성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기르는 자를 죽이는 것은 (호랑이의 본성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말을 사랑하는 자는 광주리로 말똥을 담고 큰 조개로 오줌을 받아주지만

마침 모기나 등에가 (말에) 붙어 있거나 기어오른다고 이것을 때리기를 불시에 하면 재갈을 끊고 머리 장식을 부수며 가슴걸이를 깨뜨릴 것입니다. 뜻에는 지극한 바 있어도 사랑에 잘못한 것이 있으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의 행위, 또는 사랑의 이름으로 하는 어떤 것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그래놓고 말굽에 차여 죽었다고 할 수 없다.

 

196 제자가 말하였다.

“뜻으로는 쓸모없기를 취하면서 사당나무가 된 것은 어째서일까요?

목수 석이 말하였다.

“조용해라. 너는 말하지 마라. 그것은 또한 단지 사당에 의탁한 것일 뿐이니 (그렇게 말한다면) 자기를 알아주지 못하는 자에게 허물을 당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사당나무가 되지 않더라도 또한 어찌 베어짐이 있었겠는가? 더구나 그 나무가 지니고 있는 것은 보통의 것들과는 다르니 뜻으로 깨닫고자 한다면 또한 너무 차이 나지 않겠는가?”

사당 나무로라도 아니라도 굽은 나무는 살아남았을 거라는 말. 쓸모없음의 쓸모

 

 

200 송나라에 형지라는 곳이 있는데 가래나무, 잣나무, 뽕나무가 잘 자랐다. 그것들이 한두 줌 이상이 되는 것은 원숭이 매는 말뚝을 찾는 자가 베어 가고 3,4위가 되는 것은 높고 큰 집의 마룻대를 찾는 자가 베어 가며 7,8위가 되는 것은 귀인이나 부유한 장사꾼의 집에서 널감을 찾는 자가 베어 간다. 그러므로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중도에서 도끼에 의해 죽게 되니, 이것이 재목의 근심이다. 그러므로 푸닥거리를 할 때에 소 가운데 이미가 흰 놈과 돼지 가운데 코가 위로 향한 놈과 사람 중에 치질 있는 자로는 황하에 (재물로) 던질 수 없다. 이는 모두 제사를 주관하는 자들이 잘 아는 것으로 상서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인이 가장 상서롭게 여기는 것이다.

치질이 있으면 재물로 던질수 없다는군. 치질이 건강보험공단에서 가장 많이 의료보험료를 지급한 병 아니었나? 사당나무처럼 치질이 있어 다행이군. 재물로 희생될 일이 없으니. 웃기다.   

 

203 저리소라는 사람은 턱이 배꼽에 숨어 있고 어깨가 정수리보다 높으며 상투는 하늘을 가리키고 오장은 위에 있으며 두 넓적다리가 겨드랑이가 된 자이다. (그러나) 바느질을 하고 헌옷을 빨아 생계를 꾸려 갈 수가 있었고 키질을 하여 정미를 까불어 열 식구를 먹여 살릴 수가 있었다.

나라에서 병사를 징집해도 저리소를 팔을 걷어 올리고 그 사이를 돌아다닌다. 나라에 큰 부역이 있어도 지리소는 항상 지닌 병이 있다는 이유로 일을 받지 않는다. 나라에서 병자에게 곡식을 내릴 때에는 세 종의 곡식과 열 묶음의 땔감을 받는다. 그 몸을 불구로 한 자도 오히려 몸을 보양하고 천수를 다할 수 있는데 하물며 그 덕을 불구로 한 자이겠는가.

일종의 장애를 가진 사람인가보다. 안면기형에 지체에도 기형이 보인다. 그런데 바느질을 하는 걸 보면 지능은 정상이고 손근육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나보다. 열 식구를 건사했다니 결혼하여 식구를 부양했음이 틀림없다.

복지카드를 가진, 등록장애인이 되면 군대에 가지 않는다. 장애연금을 받는다. 그러나 부양의무제 때문에 가족들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된다. 최근 중증 장애인활동가 한 사람이 야간에 일어난 화재로 잃어졌다. 활동보조인이 12시간만 지원되기 때문에 나머지 12시간은 혼자서 버티어야 한다. 그 때 일어난 사고에 대해 무방비상태다. 그 생각을 저리소 이야기에 붙여 해 본다. 내 보기에 가장 안타까운 경우가 바로 경계선에 선 학생들이다. 아예 복지카드를 만들 수 없는 아이들.  

 

207 가시나무여 가시나무여

내 가는 길을 해치지 마라

내 가는 길은 구불구불하니

내 발을 다치게 하지 마라

산의 나무는 스스로를 해치게 하고

등불은 스스로를 타게 한다.

계수나무는 먹을 수 있어

그 때문에 베어지고

옻은 쓸 만하여

그 때문에 갈라진다.

사람들은 모두 쓸모있음의 쓸모는 알지만

쓸모없음의 쓸모를 아는 이가 없구나.

번역된 시구 형태로 그냥 놓아두고 싶어지네. ‘쓸모없음의 쓸모이 말이 장자를 읽을 때 자주 마음에 부닥쳐온다. 나는 쓸모를 통해 나의 존재가치를 생각해온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5.     덕이 충만하여 드러나다 (덕충부)

 

223 나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거울이 맑으면 먼지가 앉지 않고 먼지가 앉으면 맑지 않다. 오랫동안 현인과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그대가 큰 것()을 얻고자 하는 대상은 선생님인데 오히려 말하는 것이 이와 같으니 또한 지나치지 않습니까?

맑은 거울 같은 사람과 같이 있고 싶어지지.

 

232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위나라에 못생긴 사람이 있는데 애태타라고 합니다. 남자들이 그와 같이 있게 되면 사모하여 떠나지를 못하고 여인들이 그를 보면 부모에게 청하기를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느니보다 차라리 그 분의 첩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는 자가 수십 명도 더 된다고 합니다. 일찍이 그가 앞서서 주장하는 것을 들은 이가 없고 항상 사람들과 화합할 뿐입니다. 임금의 지위로 사람들의 죽음을 구제해 주는 것도 없고 녹봉을 모아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는 일도 없습니다. 또 추악함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화합할 뿐 앞서서 주장하지 않고 지식이 사방의 사람들보다 출중한 것도 아닌데 오히려 남녀가 그 앞에 모이니 이는 반드시 남들과 다른 점이 있는 자입니다. 과인이 그를 불러서 보니 과연 추악함으로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과인과 지내면서 몇 달이 되지 않아 과인은 그의 사람됨에 좋아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고 1년이 되지 않아 과인은 그를 믿게 되었습니다. 나라에 재상이 없어 과인이 그에게 나라를 맡기려 하니 멍해 있다가 대답하였는데 무심하게 사양하였습니다. 과인은 부끄러워하면서 마침내 그에게 나라를 맡겼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과인을 떠나서 가 버리니 과인은 근심스레 무엇을 잃은 것 같았고 마치 이 나라에서 함께 즐거워할 사람이 없어진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이 바로 신영복씨가 <강의>에서 말한 노자나 장자 같은 친구다. 강의의 그 편을 다 읽은 후 주변에서 찾아보라는 주문에 어울린다. 바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된다고 했다. 내 주변에도 이런 이가 있나?

 

236 공자가 대답하였다.

“제가 일찍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마침 새끼 돼지들이 죽은 어미의 젖을 먹는 것을 보았는데 조금 있다가 놀라며 모두 어미를 버리고 달아났습니다. 자기들을 보지 않고 다른 모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미를 사랑한 것은 그 몸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그 몸을 부리는 것(정신)을 사랑한 것입니다.

생명이 떠나가면 시체일 뿐이다. 똥도 내 몸 안에 있을 때는 내 몸의 일부이고 보이지 않아 싫어하지 않다가 내 몸 밖으로 나가는 순간 얼굴을 찡그린다. 설거지 그릇 또한 그러하다. 그 그릇의 음식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맛나게 내 입으로 가져가던 음식이었다.

 

244 절름발이에다 꼽추이자 언청이인 사람이 위 영공에게 유세를 하자 영공은 그를 좋아하게 되어 온전한 사람을 보면 그 목이 가늘고 작다고 여겼다. 항아리처럼 (목에) 큰 혹이 나있는 사람이 제 환공에게 유세를 하자 환공은 그를 좋아하게 되어 온전한 사람을 보면 그 목이 작고 가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덕에 뛰어난 점이 있으면 형체에서는 잊는 것이 있다. 사람은 잊어야 할 것을 잊지 않고 잊지 않을 것을 잊으니 이것을 일러 ‘진짜 잊는 것(성망)’이라고 한다.

장애에 대해 언급한 구절이 몇 눈에 띈다. 다른 책보다는 많다. 저 위에 예를 든 사람들은 모두 지체 장애 또는 안면기형이다. 지능은 정상일 수 있다. 맹인 음악가가 고대에 많았던 것처럼 비록 감각적인 데 장애가 있더라도 지능이나 재능에는 정상이거나 그 보다 더 뛰어난 데가 있어야 저런 말을 들을 수가 있다. 그런데 장애인 중 감각장애(시각장애, 청각장애)를 가졌거나 지능은 정상인데 지체장애만을 가져서 구족화가, 물리학 교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70~80% 이상의 장애인은 지적장애를 더불어 가지고 있다. 그러니 덕에 뛰어난 점이 있으면 형체에서는 잊는 것이 있다를 가지고 모든 장애의 쓸모를 생각할 수는 없겠다. 내가 지금까지 찾아낸 가장 걸맞는 설명은 인구 중 10%는 특이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인구의 정상분포곡선이다. 10%의 소수가 어떤 대접을 받는가가 그 사회의 인권, 또는 건강함의 척도다라는 거다. 안 그러면 휠체어를 타고서 대륙을 횡단해야 하고, 다리를 절면서 킬리만자로에 가야하는 기적적인 일을 자꾸만 해야한다.

중증장애인 작업장에 대한 걸 그린 <도토리집> 일본의 만화가는 <머나먼 갑자원>도 그렸는데 그가 장애인이 주인공인 만화를 그리게 된 걸 전후 일본의 성장위주 사회에 대한 대안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고 믿어서 그랬다고 했다. <도토리집> 서문에서 읽었다. 경제성장이 아니어도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고, 인간으로 대접받는 것에 대해 장애인 가족과 장애 가진 이들 속에서 빛나는 인간성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251 혜시가 말하였다.

“삶을 인위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으면  무엇으로써 그 몸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장자가 대답하였다.

“도가 그에게 모습을 주고 하늘이 그에게 형체를 주었으니 좋아함과 싫어함으로써 그 몸을 안으로 상하게 하지 않소. 지금 그대는 그대의 마음을 밖으로 돌려 그대의 정신을 수고롭게 하고

나무에 기대어 읊조리며 마른 오동나무 책상에 의지하여 명상하고 있고 하늘이 그대의 몸을 선택해 주었는데 그대는 견백의 이론으로 떠들고 있소이다.

이건 불교에서 하는 말과 비슷하다. 신심명에서인가? 도는 다만 좋아하고 싫어하지 않는 거라고 말했지. (맞나?) 존재는 다만 그것일뿐 좋고 싫고, 가치있고 가치없고의 분별을 인간이 만들어낸다고 하였다. 그 분별에서 모든 고뇌가 시작된다고 했었다. 장자의 가르침이 매우 비슷한 듯 하다.

 

6.     가장 높은 스승 (대종사)

 

268 삶과 죽음은 운명이니 거기에 밤과 낮 같은 일정함이 있어 자연스러운 것으로 사람이 간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모두가 만물의 실상이다. 그들은 단지 자연을 부모로 여겨 그 자신이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는데 하물며 그보다 ‘뛰어난 것()’이겠는가? 사람들은 단지 군주를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여겨 그 자신이 오히려 그를 위해 죽는데 하물며 ‘참된 것()’이겠는가?

 

273 그르므로 성인은 만물의 가지고 달아날 수 없는 경지(도의 경지)에서 노닐고

모두 그대로 둔다.

일찍 죽는 것도 좋게 여기고 오래 사는 것도 좋게 여기며

삶이 시작되는 것도 좋게 여기고

삶이 끝나는 것도 좋게 여기니

사람들은 그를 본받으려고 한다.

하물며 만물이 (거기에) 매여 있고

한결 같은 변화가 의지하는 것() 이겠는가.

 

292 얼마 후 자래가 병이 심해져 숨을 헐떡이며 장차 죽게 되자 그의 처자들이 둘러서서 울었다. 자리가 문병하러 갔다가 말하였다.

“저런! 물러나시오. 죽어 가는 자를 놀라게 하지 마시오.

(자리는) 문에 기대어 그에게 말하였다.

“위대하구나. 조물주여. 또 장차 그대를 무엇으로 만들려고 하며 장차 그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 그대를 쥐의 간으로 만들려는가. 그대를 벌레의 팔로 만들려는가?

자래가 말하였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동서남북 어디든 오직 명을 따를 뿐이네. 음양과 사람의 관계는 부모 정도일 뿐이 아니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다가가게 하는데 내가 듣지 않는다면 내가 바로 고집 부리는 것이지 그것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대자연은 육체로 나를 실어주고 삶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을 좋게 여기는 자는 나의 죽음도 좋게 여기는 것이다.

지금 대장장이가 쇠를 주조하는데 쇠가 날뛰면서 말하기를, “나는 장차 반드시 막야가 되겠다”라고 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불길한 쇠라고 여길 것이다. 지금 한 번 인간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말하기를 “사람만 되겠다. 사람만 되겠다”라고 한다면 저 조물주는 반드시 불길한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다. 지금 만일 천지를 큰 화로하고 하고 조물주를 대장장이라고 한다면 어디에 가든 안 될 것인가 편안히 잠들고(죽고) 갑자기 깨어나는 (태어나는) 것이로다.

이것은 윤회를 상정하는 일인가? 아니면 조물주(창조주)를 상정하는 생각 태도인가? 윤회와 창조 자체가 어떤 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저런 식으로 생각을 한다면 쥐의 간이 되든 뭐가 되든 무슨 상관일까? 주어진 대로 정성껏 살다가, 주어진 만큼 살다 가면 될 일. 이런 식으로 장자를 읽는 일은 좀 움켜쥐던 것을 탁 내려놓게 하는 힘이 있다.  

 

303 자공이 물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어느 쪽을 따르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나는 하늘이 벌을 내린 사람이다. 비록 그러하나 너와 그것을 함께 하고자 한다.

자공이 물었다.

“삼가 그 방법을 여쭙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물고기는 함께 물에 이르고, 사람은 함께 도에 이른다. 함께 물에 이르는 것들은 연못을 파줌으로써 기르는 것이 충분하고 함께 도에 이르는 자들은 일이 없음으로써 삶이 안정된다. 그래서 말하기를 물고기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사람은 도에서 서로를 잊는다고 한다.

자공이 물었다.

“삼가 기인에 대해 여쭙겠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기인이란 사람과는 다르고 하늘을 따른다. 그래서 말하기를 하늘의 소인은 인간 세계의 군자이고 하늘의 군자는 인간 세계의 소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함께 서로를 잊는다, 무슨 말인가? 물 속의 물고기가 물을 잊어먹고 노닌다는 말인가?

 

306 안회가 공자에게 물었다.

“맹손재는 그의 어머니가 죽었을 때 곡을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슬퍼하지 않았으며, 거상 중에도 애통해하지 않았습니다. 이 세 가지가 없건만 장례를 잘 치른 것으로 노나라에 소문났습니다. 본디 그 실상이 없는데도 명성을 얻는 경우가 있습니까? 저는 내내 극 점을 괴이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대답하였다.

“맹손씨는 지극하였으니, (예를) 아는 것보다 뛰어났다. 다만 간소하게 하려 해도 할 수 없었는데 그는 이미 간소하게 한 점이 있다. 맹손씨는 인간이 태어난 까닭은 모르고, 죽는 까닭을 모르며, 태어나기 전을 추구할 줄 모르고, 죽은 뒤를 추구할 줄 몰랐다. 변화를 따라 만물이 되고 그가 알지 못하는 변화를 대할 뿐이다. 또 막 변화하면서 어떻게 변화하지 않았을 때를 알며, 아직 변화하지 않았을 때에 어떻게 변화한 뒤를 알겠는가. 나와 단지 너만이 아마도 꿈을 애당초 깨지 못한 자들이리라. 또 그는 형체의 변화에 놀라는 일이 있더라도 마음을 손상시킴이 없고, 몸을 놀라게 함을 있지만 정신이 죽는 일은 없다. 맹손씨는 홀로 깨어 있었으나 남이 곡을 하면 그도 또한 곡을 했으니, 이것이 바로 그 소문이 그러했던 까닭이었다. 또 함께 더불어 있는 것을 내 것이라고 여기지만 어찌 내가 말한 바의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알겠는가. 또 너는 꿈에 새가 되어 하늘에 이르기도 하고 꿈에 물고기가 되어 연못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알 수 없지만 지금 말하고 있는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꿈꾸고 있는 것인가? 잠시 쾌적한 것이 웃는 것만 못하고 웃음을 내는 것이 자연의 추이에 맡기는 것만 못하다. 편안히 추이에 맡긴 채 변화해 가면 곧 고요하게 하늘과 하나되는 경지에 들어간다.

 

322 나는 나를 이 극단에 이르게 만든 자를 생각해보았지만 알 수가 없었네

부모가 어찌 내가 가난하기를 원했겠는가

하늘은 사사로이 덮어줌이 없고, 땅은 사사로운 실어 줌이 없으니

천지가 어찌 사사로이 나를 가난하게 하였겠는가.

이렇게 한 자를 찾았건만 알 수가 없었네

그렇다면 이런 극단에 이르게 한 것은 운명이로다.

부귀영화 모든 것, 수명의 길고 짧음, 세상에서 겪는 아픔과 기쁨 이 모든 것이 될 이유가 있으니 되었겠지.’ ‘그럴만 하니 그렇겠지’ ‘다 이유가 있겠지이렇게 하고 그냥 하루 하루를 정성껏 살아도 좋으련만 어떻게 이리 머리가 복잡하고 배 아플 일이 많이 생기나?

 

7.     제왕에 상응하는 도리 (응제왕)

 

346 호자가 말하였다.

“아까 나는 그에게 미시출오종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것과 더불어 마음을 비우고 변화에 맡겨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니 그래서 풀이 쏠리듯 하고 그래서 물결이 흐르듯 하였기 때문에 도망친 것이다.

그 뒤에 열자는 스스로를 아예 배우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집으로 돌아가 3년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아내를 위하여 밥을 짓고 돼지 기르기를 사람 먹이듯이 하였으며 일에 있어 편애함이 없었고, 새기고 다듬는 것에서 소박함으로 돌아가니 우두커니 홀로 그 모습대로 서서, 혼란한 대로 근본을 지켰다. 한결같이 이런 태도로 생을 마쳤다.

 

 

외편

 

 

8.     붙은 발가락 (변무)

 

15 엄지발가락과 둘째발가락이 붙은 자와 육송이는 타고난 데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많다. 붙어있는 혹이나 매달린 사마귀는 몸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타고난 것보다 많다. 인의를 잡다하게 일삼아서 쓰는 것은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더라도 바른 도덕이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발에서 발가락이 붙은 것은 쓸모없는 살이 덧붙은 것이고, 순에서 곁가지를 친 것은 쓸모없는 손가락이 붙은 것이다. 내면의 감정에 잡다하게 군더더기를 붙인 것은 인의의 행위를 지나치고 치우치게 하고, 총명을 쓰는 데는 잡다하게 일삼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눈이 밝은 데에 지나친 자는 오색을 어지럽히고, 문채를 심하게 하니, 청색과 황색의 수를 놓은 예복의 화려함이 아니겠는가. 이주 같은 이가 그런 사람이다.

귀가 밝은 데에 지나친 자는 오음을 어지럽히고 율률을 심하게 하니 금석사죽의 악기와 황종, 대려의 소리가 아니겠는가? 사광 같은 이가 그런 사람이다.

인에 지나친 자는 덕을 뽑아버리고 본성을 막아가면서 명성을 추구하니,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면서 미치지도 못할 인의의 법을 받들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증상과 사추같은 이들이 그런 사람이다.

변론에 지나친 자는 기와를 쌓고 노끈을 묶듯이 글을 멋대로 고치고 견백론과 동이론의 궤변 사이에서 마음을 쓰니, 적은 명예와 쓸모없는 말에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양주와 묵적 같은 이들이 그런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모두 지나치고 곁가지인 도리로 천하의 지극하고 바른 도가 아니다.

지나친 것은 육손이나 발가락에 붙은 쓸데없는 사족과 비슷하다고 보는 구나. 비유가 명쾌하다.

 

20 저 지극하고 바른 도라는 것은 타고난 실상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가락이 붙어 있는 것을 붙은 발가락이라 여기지 않고 손가락이 더 난 것을 육손이라 여기지 않으며 긴 것을 남는다고 여기지 않고, 짧은 것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런 까닭으로 물오리의 다리가 비록 짧지만 그것을 길게 이으면 걱정하고 학의 다리가 비록 길지만 그것을 짧게 자르면 슬퍼한다. 그러므로 타고난 바가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고, 타고난 바가 짧은 것은 이를 것이 아니니, 근심을 없애려 할 것이 없다.

, 인의란 아마도 사람의 실정이 아닌가 보다. 저 인자들은 어쩌면 그리고 걱정이 많은가?

그런데 장자의 재미있음이 바로 이 구절이다. 앞 구절에서는 넘치지 말라고 했다가, 넘치는 것 자체를 자르지 말고 그냥 두라, 그것도 자연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30 장과 구 두 사람이 함께 양을 치다가 모두가 양을 잃었다. 장에게 무슨 일인가를 물으니 죽간을 가지고 글을 읽었다고 하고, 구에게 무슨 일인가를 물으니 쌍륙을 하면서 놀았다고 하였다. 두 사람의 경우가 한 일은 같지 않지만, 그들이 양을 잃어버린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백이는 수양산 아래에서 명예를 위해 죽었고 도척은 동릉 위에서 이익을 위해 죽었다. 두 사람의 경우가 죽은 이유는 같지 않지만 그들이 목숨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킨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니, 어째서 반드시 백이를 옳다고 하고, 도척을 그르다고 하겠는가? 천하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희생시키는데 그들이 목숨을 바친 것이 인의라면 세속에서 그들을 군자라 부르고, 그들이 목숨을 바친 것이 재물이라면 세속에서 그들을 소인이라 부른다. 그들이 목숨을 바친 것은 똑같은데, 거기에는 군자도 있고, 거기에는 소인도 있다. 그들이 목숨을 해치고 본성을 손상시켰다는 점으로는 도척 역시 백이와 마찬가지이니 또 어찌 그 사이에서 군자와 소인을 구별하겠는가?  

자신을 희생시킨 대의명분이 무엇이든 자신의 생명을 없앤 것에 대한 과보가 있다는 말로 나는 읽힌다. 그러니까 장수로 전쟁에 나가서 많은 이들을 죽인 이들은 비록 나라를 위해 그러했지만 그에게는 그런 과보가 있다는 말인가? 그럼 사형제도는? 사형시키는 일에 종사한 사람은?  

9.     말의 발굽 (마제)

 

51 저 말이란 것은 언덕에 있으면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기쁘면 목을 맞대어 서로 비비고

성이 나면 등을 돌려 서로 발길질을 한다.

말의 지혜는 여기에서 그치지만

가로대와 멍에를 씌우고 월제를 붙이면

말은 멍에걸이를 부수고 멍에를 구부리며 수레덮개를 받고 재갈을 뱉어낸다.

그러므로 말의 지혜로도

하는 짓이 (사람에) 대항하기까지 이르게 되는 것은 백락의 잘못이다.

 

10.   상자를 열다 (거협)

 

60 전성자가 하루아침에 제나라 임금을 죽이고 그 나라를 도둑질 하였는데 도둑질한 것이 어찌 그 나라뿐이었겠는가? 성스러운 이와 지혜로운 자가 이루어놓은 법도롤 아울러 도둑질 하였다. 그래서 전성자는 도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도 몸은 요순과 같은 편안함을 누렸으니 작은 나라는 감히 비난받지 못하고 큰 나라도 감히 정벌받지 못하여 십이대 동안 제나라를 차지하였느니 바로 이것이 제나라를 도둑질하였는데 아울러 성스러운 이와 지혜로운 자가 이루어놓은 법도를 가지고

도둑의 몸을 지켜준 것이 아니겠는가?

이건 맹자의 역성혁명과는 매우 다르다.

 

11.   있는 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다 (재유)

 

93 그러므로 군자가 부득이하여 천하를 다스린다면 무위만한 것이 없다.

무위한 뒤에라야 본성의 실상을 편안히 하게 된다.

그러므로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의 몸을 귀하게 여겨야 천하를 부탁할 수 있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보다 자기의 몸을 사랑해야 천하를 맡길 수 있다.

그러므로 군자가 만일 안으로 그 오장을 풀어내지 않고

밖으로 그 총명함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면

시동처럼 있어도 용처럼 드러나고 연못처럼 고요해도 우레처럼 울리며

정신이 움직임에 자연은 따르고 조용히 작위함이 없음에

만물은 바람이 먼지를 불어대듯 한다.

내가 다시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리겠는가?

이 문장 아름답다. 무위로 존재하는 사람도 아름답겠지.

 

102 지금 세상에는 참수되어 죽은 자들이 서로를 깔고 있고,

차꼬와 칼을 찬 자들이 서로를 밀치며

형벌을 받아 죽은 자들이 서로를 바라보는데

유가나 묵가들은 바야흐로 형구 사이에서 발꿈치를 들고 소매를 걷고 다닌다.

, 심하도다.

그들이 부끄러움도 없고 수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 심하구나.

나는 성스러움과 지혜로움이 차꼬나 칼의 빗장이 아니고

인과 의가 차꼬를 잠그는 장부가 아닌지를 모르겠으며

어찌 증삼과 사추가 걸왕이나 도척의 효시가 아니라고 알겠는가?

그래서 말하기를 성스러움을 없애고 지혜로움을 버리면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고 하는 것이다.

벡터의 더하기처럼 장자의 이런 구절이 있어서 중국에서 유가와 묵가, 또는 법가의 양 극단이 조화가 되겠구나. 노자와 장자가 전체의 두 흐름 중 하나라는 신영복씨의 강의의 구절이 이해가 간다.

 

114 나의 도를 깨닫는 자는

위로는 황제가 되고 아래로는 왕이 되지만

나의 도를 잃은 자는

살아서는 위로 빛을 보겠지만

죽어서는 아래로 흙이 될 것이오.

지금 저 온갖 번성하는 것들은 모두 흙에서 생겨나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장차 그대를 떠나 무궁의 문에 들어가

끝이 없는 들판에서 노닐 것이오.

나는 해, 달과 더불어 빛을 함께 하고

나는 천지와 더불어 한결같을 것이오.

나를 맞이해도 무심하고

나를 멀리해도 무심할 것이니,

사람은 장차 모두 죽지만

나만은 홀로 존재할 것이오.

는 도라 하는데 으로 바꾸어도 말이 되겠다.

 

116 홍몽은 한창 넓적다리를 두드리며 참새처럼 뛰면서 놀고 있었다.

 

124 그대가 다만 무위로 처신하면 상대는 저절로 변화됩니다.

그대의 형체를 버리면 그대의 총명을 뱉어내면

뒤섞인 채 상대조차도 더불어 잊어버리면

자연의 기와 크게 합치될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을 풀고 까마득히 정신을 비운다면

만물은 무성하게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서도 알지 못한 채

혼돈한 상태에서 평생토로 그 근원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을 인식하게 되면 곧 본질에서 벗어납니다.

그 이름을 묻지 않고 그 실정을 엿보지 않는다면

만물은 원래 저절로 자라납니다.

나의 존재가 이렇게 되어 있는 상태, 꽃은 누구에게 아름답다는 칭찬을 들으려는 목적도, 교화의 목적도 없이 그저 그 자신으로 피어 존재한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아름답다.

 

12.   하늘과 땅 (천지)

 

153 황제가 적수의 북쪽을 유람하면서 곤륜산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의 현주를 잃어버렸다. 지에게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고 이주에게 찾게 했으나 찾지 못했으며 개후에게 찾게 했으나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상망을 시켰더니 상망이 그것을 찾았다.

황제가 말하였다.

“이상하다. 상망이 비로소 그것을 찾을 수 있음이”

(현주 : 도를 가리킨다.

: 지혜로운 사람을 상징한다.

이주 : 눈이 밝은 사람을 상징한다.

개후 :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상징한다.

상망 : 구체적인 형상을 초월한 사람을 상징한다.

이 비유가 의미깊다. 모두들 도를 지혜, 지식, 말 등으로 찾으려 한다. 상망은 도대체 어떤 자인가? 어떤 삶의 상태인가?

 

160 국경관리인이 말하였다.

“장수와 부유함과 아들 많은 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인데 그대만이 홀로 바라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요임금이 말하였다.

“아들이 많으면 근심이 많아지고, 부유하면 일이 많아지며, 장수하면 치욕이 많아집니다. 이 세 가지는 덕을 기르는 것이 아니니, 그래서 사양하는 것이오.” 국경관리인이 말하였다.

“처음에 나는 그대를 성인으로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바로 군자이군요. 하늘이 만민을 내고는 반드시 그들에게 직분을 내려줍니다. 아들이 많아도 그들에게 직분을 주게 되니,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부유하여도 이를 남들에게 나눠 갖게 한다면 무슨 일이 많겠습니까? 무릇 성인은 메추라기처럼 살고 새 새끼처럼 남기지 않습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만물과 더불어 번성하고 천하에 도가 없으면 덕을 쌓으면서 한가롭게 지내다가 천년이 지나 세상이 지나지면 떠나서 신선이 되어 올라가니 저 흰구름을 타고서 천제가 사는 곳에 이릅니다. 세 가지 근심이 닥쳐오지 않고, 몸에는 늘 재앙이 없는데 무슨 치욕이 있겠습니까?” 요임금은 따라가며 말하였다. “좀 묻겠습니다.” 국경관리인은 말하였다. “물러나시오.

통쾌하다. 요임금이 국경관리인에게 한 수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게 실제가 아니라 장자의 상상이니 나는 좀 그석하다. 

 

166 자고가 말하였다.

“옛날 요임금이 천하를 다스릴 때에는 상 주지 않아도 백성들은 힘썼고, 벌주지 않아도 백성들은 두려워했습니다. 지금 그대는 상과 벌을 행하는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어질지 못합니다. 덕이 이로부터 쇠퇴해졌고 형벌이 이로부터 확립되었으니 후세의 혼란이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대는 어찌 떠나지 않는지요. 내 일을 그르치지 마시오.

부지런히 밭 갈면서 돌아보지도 않았다.

한낱 농사꾼인 자고가 요임금을 가르치고 있다. 이건 엄격한 계단식 신분, 존귀를 논하는 유가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비유가 많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 요임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장자가 지어낸 이야기라 재미있어하면서도 신빙성은 좀 떨어지지 않나? 생각한다. 

 

173 상대를 잊고 하늘을 잊는 것, 그 이름을 ‘자기를 잊는 것(망기)’라고 합니다.

자기를 잊는 자, 그를 일러 하늘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춤꾼이  춤만 있고 사람은 없어진 상태, 음악을 연주하는 이가 악사는 없고 음악만 남은 상태,,도 뭐가 있지? 온갖 달인들이 이런 상태가 아닐지. 전문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객관적인 의사소통 절차나 문제해결 방법을 연습하는 것도 개인의 취향에서 좀 더자유로워지려는 작은 시도다. 도까지는 아니라도. 표준화검사도구를 사용함도 그러하고. 이해를 위한 나의 비유가 너무 좀스럽다.

 

183 밭을 가꾸는 이가 말하였다.

“그대는 무엇을 하는 사람이오?

자공이 대답하였다.

“공자의 제자입니다.

밭을 가꾸는 이가 대답하였다.

그대는 박학으로 성인을 흉내 내고, 과장으로 사람을 압도하며, 홀로 거문고를 타고 슬픈 노래를 불러 천하에 명성을 파는 자가 아니오? 그대가 이제 그대의 기세를 잊어버리고 그대의 육체를 버린다면 도에 가까워질 것이오. 자기 자신도 다스리지 못하면서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리겠소. 그대는 떠나서 내 일을 그르치지 마시오”

유가의 지나치게 복잡한 형식에 치인 이는 이 말이 매우 통쾌하겠구나.  

 

200 효자는 그 어버이에게 아부하지 않고

충신은 그 군주에게 아첨하지 않으니

신하와 자식의 훌륭함이다.

어버이가 말하는 것에 옳다 하고 행동하는 것에 좋다고 한다면

세상에서 그를 불초한 자식이라고 한다.

임금이 말하는 것에 옳다 하고, 행동하는 것에 좋다고 한다면

세상에서 그를 불초한 신하라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그런지는 모르겠다.

세속에서 옳다고 하는 것에 옳다고 하고

좋다고 하는 것에 좋다고 하더라도

그를 아부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세속이 진실로 어버이보다 중요하고 임금보다 존귀한 것일까?

자신을 일러 아첨하는 사람이라고 하면 발끈하여 안색을 달리하지만

평생토록 아첨하는 사람이고 평생토록 아부하는 사람으로

이유를 모으고 수사를 꾸며 뭇사람을 모으지만 시종 죄에 걸리지 않는다.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아부하지 않아도) 효가 되고 사랑이 된다면 그게 자연이고 도이리라. 그러나 많은 부분 그렇지 못하여 노력하고, 애쓰는 게 필요하다. 애쓰면 힘이 드는데. 그러니까 나는 이 구절을 전혀 이해하지도 실증하지도 못한다고 고백해야겠다.

 

208 백년 된 나무를 쪼개어 제사용 술그릇을 만들고

거기에 청황색을 칠해서 문양을 하면

그 잘려진 것은 도랑에 버려진다.

제사용 술그릇을 도랑의 잘려진 것과 비교해보면

아름답고 추한 것은 차이가 있지만

그것들이 본성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211 비둘기나 올빼미가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것도 역시 본성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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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하늘의 도 (천도)

 

220 그 경지에서 쉬면 비고,

 비면 차게 되며

차면 질서가 잡히게 된다.

비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움직이게 되며

움직이면 제자리를 얻게 된다.

고요하면 무위하게 되고

무위하면 일을 맡은 자가 책임을 다하게 된다.

무위하면 즐거워지고

즐거워지면 근심과 걱정이 깃들 수 없어 수명이 길어지게 된다.

무릇 비고 고요함, 담백함, 적막함, 무이라는 것은 만물의 근본이다.

이 말도 아름답다. 뭔 소린지는 잘 몰라도.

 

230 하늘이 내지 않아도 만물은 생겨나고

땅이 키우지 않아도 만물은 길러지며

제왕이 행함이 없어도 천하는 공이 이루어진다.

애쓰지 마라는 말이 이런 것인듯. 성경에도 있었던 말. 백합화, 새가 애쓰지 않아도 신이 먹인다

 

248 노자는 그의 설명을 중지시키면서 말하였다.

“너무 번잡하니 요점만 듣고 싶소.

공자가 말하였다.

“요점은 인의에 있습니다.

노자가 말하였다.

“묻건대 인의가 사람의 본성인가요?:

공자가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군자는 인하지 않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고, 의롭지 않으면 생존하지 못합니다. 인의는 정말로 사람의 본성이니 또 장차 무엇을 하겠습니까?

노자가 말하였다.

“묻건대 무엇을 일러 인의라 합니까?
공자가 말하였다.

“마음을 바르게 하여 상대가 기뻐하고 두루 사랑하여 사심이 없는 것이 인의의 실상입니다.

노자가 말하였다.

“아! 위험하오. 뒤에 한 말은 두루 사랑한다는 말은 또한 실정에 멀지 않소? 사심이 없다는 것이 바로 사심이오. 그대가 만약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수양을 잃지 않게 하기를 바란다면 천지가 본래 일정함이 있고 해와 달이 보낼 밝음이 있으며, 별들이 보낼 질서가 있고 새와 짐승이 본래 무리가 있으며, 나무가 본래 서 있듯이 하시오. 그대로 역시 덕을 따라 행동하고 도를 좇아 나아갈 것이니 그렇게 하면 지극하게 될 것이오. 다시 어찌 힘써 인의를 내걸고 북을 치면서 도망간 자를 찾듯이 하겠소. ! 그대는 인간의 본성을 어지럽히고 있고.

노자는 공자의 설명을 중지시키면서 말하였다. “너무 번잡하니 요점만 듣고 싶소.

이 부분이 압권이다.

 

14.   천도의 운행 (천운)

 

277 공경으로 효도하기는 쉬워도

사랑으로 효도하기는 어렵고

어버이를 잊기는 어려우며

어버이를 잊기는 쉬워도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기는 어렵고

어버이로 하여금 나를 잊게 하기는 쉬워도

천하를 두루 잊기는 어려우며

천하를 두루 잊기는 쉽지만

천하로 하여금 나를 두루 잊게 하기는 어렵다고 했습니다.

무릇 덕은 요순을 잊고 추구하지 않음이요

은택이 만대에 베풀어져도

천하에 아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어찌 다만 크게 탄식면서 인이나 효를 말하겠습니까?

무릇 효제와 인의, 충신과 정렴은

모두가 스스로 노력하면서 그 덕을 힘쓰는 것이니 대단할 것이 못됩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지극한 존귀함에는 나라의 벼슬도 물리치고

지극한 부유함에는 나라의 재물도 물리치며

지극한 소망에는 명예도 물리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도는 변하지 않습니다.

효에 대한 부분이 인상깊다. 어버이를 잊고, 어버이가 나를 잊게 한다. 멋지다. 나는 자주 논공행상에 연연한다. 베풀되 베풀었다는 마음이 많이 남아 섭섭함이 된다. 

 

280 제왕께서 동정의 들에서 함지의 음악을 연주하실 때

저는 처음에 그것을 듣고는 두려웠고

다음으로 그것을 듣고는 마음이 풀렸으며

마지막에 그것을 듣고는 황홀해져

까마득하게 말없는 상태로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292 태가 금이 말하였다.

“안타깝습니다. 그대의 선생님은 아마 곤궁해질 것입니다. 짚으로 만든 개는 제사에 진설되기 전에는 대바구니에 담기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인 채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목욕재개하고 받들어 올리지만 그것이 진설된 뒤에는 길 가는 사람이 머리와 등을 밟고 나무하는 이가 가져가 불을 때고 맙니다. 만약 다시 가져다가 대바구니에 담고 아름답게 수놓은 천으로 덮은 채 그 밑에서 머물거나 누워 잔다면, 그는 좋은 꿈을 꿀 수 없고, 반드시 자주 가위눌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대의 선생님은 역시 옛 성왕들이 이미 제사에 썼던 짚으로 만든 개를 가져다가 제자들을 모아다가 그 아래서 머물거나 누워 잡니다. 그래서 송나라에서는 나무가 잘렸고, 위나라에서는 자취가 끊겼으며, 송나라와 주나라에서는 곤궁을 겪었으니 이것이 그런 꿈이 아니겠으며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포위된 채 이레 동안 불을 때어 밥해 먹지 못하여 삶과 죽음이 서로 가까웠으니 이것이 그 가위눌림이 아니겠습니까?

 

301 그녀는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아름다운 것만 알고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 아름다운 이유를 알지 못했소. 안타깝습니다. 그대의 선생님은 아마 곤궁해질 것입니다.

 

313 샘물이 마르자 물고기들이 함께 육지에 있으면서 서로 습기를 뿜어주고 서로 거품으로 적셔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는 것만 못하오. 

마른 땅 위에서 서로 입김을 불어주는 것보다 물고기가 강이나 호수에 머무는 것이 자연스럽지. 도에 머물라는 말 같은데

 

327 저는 깨달았습니다.

까막까치는 알을 까 새끼를 낳고

물고기는 거품을 내어 새끼를 낳으며

땅벌은 누에를 잡아다 새끼를 낳고

동생이 생기면 형은 젖을 못 먹어 울지요.

오래 되었습니다.

제가 조화와 더불어 벗이 되지 못한 지가.

조화와 더불어 벗이 되지 못하고 어떻게 남을 교화시킬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조화롭고, 균형잡히고, 맑고, 밝고 아름다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 하다.

 

15.   뜻을 가다듬다 (각의)

 

345 순수함과 소박함을 제대로 체득한 사람을 진인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타고난 그대로 그냥 두는 상태일까? 아니면 가다듬고 훈련해서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지는 상태일까? 여기서 사람의 본성을 악하게 볼지, 선하게 볼 지, 물드는 존재로 볼 지의 문제가 중요해진다. 진인이 되는 것, 진인을 만드는 것은 오랜 관심이었다.  

 

16.   본성을 닦다 (선성)

 

352 옛날 사람들은 혼돈과 무지 가운데에서 온 세상 사람들과 담백하고 고요함을 얻었다.

이때에는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조용했고 귀신도 어지럽게 하지 않았으며

세계절이 절도에 맞아 만물이 손상되지 않았고 온갖 생명체가 요절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비록 지혜가 있어도 그것을 쓸 곳이 없었으니 이를 일러 지극한 하나(지일)이라 하였다.

이때에는 그것을 하는 자가 없어도 항상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덕이 낮아지고 쇠퇘해짐에 따라 수인씨와 복희씨에 이르러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니

이런 까닭으로 조화롭기는 하였지만 하나가 되지는 못하였다.

덕이 더욱 낮아지고 쇠퇴해져 신농씨와 황제에 이르러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니

이런 까닭으로 편안하기는 하였지만 조화롭지 못하였다.

덕이 더욱 낮아지고 쇠퇴해져 요와 순에 이르러 천하를 다스리기 시작하니

정치와 교화의 흐름을 일으켜서 순박함을 흐리고 소박함을 흩어버려

도를 떠나 선을 행하고 덕을 위태롭게 하면서 행실을 추구하였다.

그런 뒤로 본성을 버리고 사심을 따르게 되었으며

사심과 사심으로 알면서 천하를 안정시킬 수 없었다.

그런 뒤로 문식을 덧붙이고 박학을 더하였다.

문식은 본질을 없애고 박학은 마음을 빠지게 하니

그런 뒤로 백성들이 미혹되고 어지러워지기 시작하면서

그 본래의 참된 본성으로 돌아가 그 처음 상태를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마음은 더욱 본성에서 멀어지고 그래서 교묘한 다스림이 더욱 필요해졌다는 말인 듯 하다. 그렇다면 사람은 점점 더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인간성, 또는 인간으로서의 귀함을 상실, 또는 잃어가고 있는 걸까? 

 

356 세상은 도를 잃게 되었고 도는 세상을 잃게 되었다.

도가 세상을 잃었다는 말이 멋지다. 도도 슬퍼한다는 말처럼 들리네. 관계의 양쪽을 쥔 모두가 영향을 받는다는 비유 같으다.

  

17.   가을의 빗물 (추수)

 

370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해 말해줄 수 없는 것은 장소에 구애되어 있기 때문이고, 여름벌레에게 얼음에 대해 말해줄 수 없는 것은 시간에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며, 치우친 선비에게 도에 대해 말해줄 수 없는 것은 명교에 묶여 있기 때문이오. 지금 그대는 황하의 물가에서 나와 큰 바다를 보고 비로소 그대의 모자람을 알았으니 그대는 장차 큰 이치를 말해줄 수 있겠소.

우물 안 개구리, 여름벌레, 명교나는 하루살이, 겉절이, 콩나물시루인데 말이다.  

 

382 이런 까닭으로 대인의 행동은 남을 해치는 곳으로 나서지 않고 은혜를 대단히 여기지 않고. 움직임은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문지기나 노예를 천하게 여기지도 않소. 재물을 다투지는 않지만 물리치고 양보하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소. 일을 함에 있어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가 힘쓴 것보다 더 먹지 않으며 탐욕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소. 행동은 세속과 다르지만 치우치고 괴이한 것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소. 하는 일은 뭇사람을 따르지만 아첨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소. 세속의 작위나 녹봉으로 고무시킬 수 없고, 형벌이나 치욕으로 욕되게 할 수 없소.

세속의 작위나 녹봉을 가지지 않은 이들도 과연 이러할까?

 

403 외발인 기는 노래기를 부러워하고

노래기는 뱀을 부러워한다.

뱀은 바람을 부러워하고

바람은 눈을 부러워하며

눈은 마음을 부러워한다.

 

414 개구리가 동해의 자라에게 말하였다네.

‘나는 즐겁구나. 나와서 우물의 난간 위에서 뛰고, 들어가 깨진 벽돌의 가장자리에서 쉬며

물에 들어가면 겨드랑이를 붙이고 턱을 들어올리며

진흙에 빠지면 발이 잠겨 발등까지 보이지 않지

역시 장구벌레와 게와 올챙이도 나만 할 놈이 없지.

더구나 웅덩이의 물을 내 맘대로 하며

우물 안의 즐거움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이것이 정말 지극한 경지로다.

그대는 어찌 가끔 들어와서 구경하지 않는가?

ㅋㅋㅋㅋㅋ 그러나 나는 우물 안 개구리에 동일시가 더 되네.

 

418 이것은 모기에게 산을 짊어지게 하고 노래기에게 황하를 달리게 하는 거과 같아서 반드시 감당하지 못할 걸세.  

모기, 노래기 힘들겠다.

 

420 이것은 단지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고, 송곳으로 땅을 재려는 것으로 나무 작지 않은가.

 

421 그대는 어찌 저 수릉의 젊은이가 한단에서 걸음걸이를 배웠던 일을 듣지 못했는가?

아직 한단의 훌륭한 걸음걸이를 터특하지도 못했는데 또 자신의 원래 걸음걸이조차 잃어버려 그저 기어서 돌아갔다네. 지금 그대가 돌아가지 않으면 아마 그대 본래의 것도 잊어 그대의 학문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네.

 

423 차라리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자 하겠지요.

통쾌하다.

 

425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가는데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무르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예천의 샘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다네. 이때에 올빼미가 썩은 쥐를 얻었는데 원추가 지나가자 올려다보면서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네. 지금 그대는 그대가 벼슬하는 양나라를 가지고서 나에게 꽥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가?

통쾌하다.

18.   지극한 즐거움 (지락)

 

435 부자는 자신의 몸을 괴롭혀가며 바삐 일하고 재물을 많이 모으지만 다 쓸 수가 없으니 그가 몸을 기르는 것이 역시 외적이다. 귀한 자는 밤으로 낮을 이어가며 옳고 그름을 생각하지만 그가 몸을 기르는 것이 역시 서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근심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장수하는 사람은 정신이 흐릿해져 오래도록 근심하면서도 죽지 못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그가 몸을 기르는 것이 역시 본질과는 멀다. 열사는 천하 사람들에게는 칭찬받지만 자신을 살리기에는 부족하니 나는 선이 참으로 좋은 지 참으로 좋지 않은지 아직 모르겠다. 만약 좋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살리기에는 부족하고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남을 살리기에는 넉넉하다. 그래서 말하기를 ‘충성스런 간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뒤로 물러나서 다투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겨울나무가 모든 것을 떨어내고 나목으로 서듯, 자신, , 씨앗, 핵심만을 지키는 때가 필요하다. 자신의 힘을 낭비하지 않고 뿌리에 저장해야할 때가 필요하다. 침묵의 10년을 견딜 때, 고진감래일 수 있는 이들은 그런 10년을 묵묵히 하루하루 견디어낸 사람들이다 오늘만 살 것처럼 난행고행하면서 자기 원칙을 지킨 이들이다.

 

444 그 사람이 막 죽었을 때는 내가 홀로 어찌 이 슬픔이 없을 수 있었겠는가 마는 그 처음을 살펴보니 본래 생명이 없었지 단지 생명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지. 단지 형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기조차 없었다.

맞는 말이네 근데 왜 이 말이 좀 쌀쌀해 보이지?

 

449 장자가 초나라에 갔다가 텅 빈 해골을 보았는데 앙상하게 형체만 남아 있었다. 장자는 말채찍으로 치다가 이어서 물었다.

 

451 해골이 말하였다.

“죽으면 위에는 군주가 없고, 아래에는 신하가 없으며 또한 사계절의 일도 없어 느긋하게 천지의 무한한 시간을 봄과 가을로 삼으니 비록 남면하여 왕노릇 하는 즐거움일지라도 넘어설 수 없다네.

 

453 “내 어찌 남면하여 왕 노릇하는 즐거움을 버리고 다시 인간 세상의 고생을 하겠는가?

 

454 주머니가 작으면 큰 것을 싸지 못하고, 두레박줄이 짧으면 깊은 물을 긷지 못한다.

 

19.   생명에 대한 깨달음 (달생)

 

474 술에 취한 자가 수레에서 떨어지면 비록 빨리 달리더라도 죽지는 않는다…그 정신이 전일하여 올라탔던 것도 모르고 떨어진 것도 모른다. 생사의 놀라움이나 두려움이 그의 가슴 속에 침입하지 않아

뭔가에 전일로 집중되어 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말에서 떨어지는 일, 어쩌면 커다란 상처를 가지고 올 수 있는 내 신상의 일들이 나의 평온함을 무너뜨리지 않을 수 있다면 좋겠구나.  

 

478 공자가 초나라에 가는 길에 숲 속으로 나갔다가 곱사등이가 매미를 잡는 것을 보았는데 마치 줍는 듯 하였다.

이야말로 도다. 생활의 달인들 같으다. 줄 타는 광대가 땅 위를 걷는 것과 같을테지

 

484 재주는 한 가지인데 아끼는 마음이 있으니 외물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무릇 외물이 소중하게 여겨지면 내면은 졸렬해진다.

 

486 노나라에 선표라는 자가 있었는데 바위굴에 살며 물만 마시고 세상 사람들과 이를 다투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일흔이 되었는데도 갓난아이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지요. 불행하게 굶주린 호랑이를 만나 그를 잡아먹었습니다.

ㅋㅋㅋ 진정한 도는 이런 피해 살기는 아니라는 말로 읽힌다. 

 

503 물의 도리를 따르면서 거기에 사적인 힘을 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에서 헤엄치는 방법입니다.

내가 물이 된다. 애쓰지 않는다

 

506 신이 장차 거를 만들려고 하면 김히 기운을 소모하지 않고 반드시 재계하여 마음을 고요하게 합니다. 재계한 지 사흘이 되면 감히 상이나 벼슬을 생각하지 않게 되고, 재계한 지 닷새가 되면 감히 비난과 칭찬, 기교와 서투름을 생각하지 않게 되며, 재계한 지 이레가 되면 문득 제가 사지와 몸을 지니고 있는 지도 잊게 됩니다. 이 때에는 조정도 염두에 없고, 그 기교가 전일해져 외부의 어지러움이 사라집니다. 그런 뒤에 산림에 들어가 나무의 본래 바탕을 살피면 몸이 지극해집니다.

어렵고 힘이 든다. 나도 재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모아 기도를 해야겠다. 양식이, 에너지가, 힘이 부족하다. 스스로에게 없으니 만들어내야 한다. 쌀을 팔아오듯.

 

20.   산중의 나무 (산목)

 

523 이 나무는 재목감이 되지 못하는 이유로 그 천명을 다할 수 있구나.

발상전환의 한 예다.

 

525 나는 재목감이 되는 것과 재목감이 되지 못하는 것 사이에 위치하겠다. 재목감이 되는 것과 재목감이 되지 못하는 것 사이는 도의 경지와 비슷하지만 아니니 그래서 아직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 쓸모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고, 자신을 남기는데 집착하고 있기 때문에?

 

536 사람을 소유하는 자는 얽매이게 되고 남에게 소유당하는 자는 근심하게 됩니다.

 

540 오는 이를 금하지 않고 가는 이들을 막지 않으며, 강하고 센 이들을 놔두고 굽히고 와 붙는 이들을 내버려두어 각기 힘을 다하도록 해 줍니다.

이런 이가 진정 실력자이리라. 그러나 어떻게 보면 이런 식으로 하면 무관심일 수도 있다.

 

550 무릇 이익으로 맺어진 것은 곤궁과 재난, 근심이나 해로움에 쫒길 때 서로 버리지만 천륜으로 이어진 것은 곤궁과 재난 근심이나 해로움에 쫒길 때 서로 거둡니다.  

천륜은 부모자식간만인가? 부부는 인륜이다. 그럼 사랑하는 사이는 곤궁에 처할 때 서로 거두지는 못하는가?

 

554 가난한 것이지 고달픈 것이 아닙니다. 선비가 도덕을 갖추고서 실행할 수 없는 것이 고달픈 것입니다.

이건 마음이 가난하지 않은 이만 할 수 있는 말이다.

 

570 훌륭한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훌륭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없애면 어디에 간들 사랑받지 못하겠는가

이게 도의 핵심인 듯 하다. 도와 더불어 살되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것. 이럴 수 있다면 참 자유로울 것 같다.

 

21. 위문후의 스승 전자방 (전자방)

 

601 백리해는 벼슬이나 녹봉이 마음에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를 먹이자 소가 살이 쪄 지난라 목공으로 하여금 그의 천한 신분도 잊고 그에게 정사를 맡기게 하였다. 순임금은 죽음과 삶이 마음에 개입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었다.

아름답다. 이렇게 살고 싶다만, 물 흐르듯, 순리를 쫒아, 그런데 왜 이리 자연스럽게 사는게 어려운거냐? 노력하지 마라, 애쓰지 마라는 게 더 어렵다. 하긴 나는 하라는 항목을 상세하게 정해서 매뉴얼을 주어도 잘 해내기가 어렵긴 하다.   

 

611 이것은 활쏘기에 마음을 둔 유심 활쏘기이지 활쏘기에 마음을 두지 않은 무심 활쏘기는 아니다.

무심활쏘기의 경지에 오르려면 얼마나 많은 유심활쏘기의 시간이 필요할건가? 오로지 끊임없는 반복과 연습만이 이 경지에 들게 하리라. 발레리나의 춤처럼 훈련된 무심이 아닐는지.

 

22.   지가 북쪽으로 유람하다 (지북유)

 

637 그대가 그대의 몸을 바르게 하고 그대의 시선을 한결같게 한다면 천지자연의 화기가 이를 것이며 그대의 지혜를 거두고 그대의 헤아림을 한결같게 하면 신명이 이르러 머물 것이니 덕이 그대의 아름다움이 될 것이고 도가 그대의 거처가 될 것이며, 그대는 무지함이 갓 태어난 송아지와 같아져 인위를 추구함이 없게 될 것이다.

어린아이 같아진다는 말은 아예 훈련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고 했었다. 문명이야기 읽을 때 이 구절이 나왔던 것 같다. 그리스인 이야기인가? 갓 태어난 송아지 같다는 말도 그런 뜻인가? 나는 자꾸만 이 비슷한 구절을 연습을 안하거나, 안 다듬는 걸로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다듬고 훈련해서 결국 습관적으로 할 수 있는 상태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

 

649 사람이 천지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흰 말이 틈 앞을 지나가는 것과 같아 순간일 뿐입니다. 물이 솟듯 하고 싹이 나듯 하여 자연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고, 흐르듯 하고 사라지듯 하여 그곳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이미 변하여 태어났고 다시 변하여 죽는데, 살아있는 존재들은 이를 애달파하고 사람들은 이를 슬퍼하지만 죽음이란 활이 하늘의 활집에서 빠져 나간 듯 하고 칼이 하늘의 칼집에서 빠져 나가듯 하여 흩어지고 쓰러져 혼백이 떠나고 육체가 그것을 쫒아가는 것이니 바로 위대한 귀환입니다.

흰 말이 앞을 지나가는 것이라쏜 살 같다….흐르는 물같다…. 세월에 대한 비유.

 

670 신의 나이 스무살이 되면서 혁대 고리 만드는 것을 좋아하여 다른 것에는 눈길도 준 적이 없어 혁대 고리가 아니면 살펴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자가 다른 것에 쓰지 않는 마음을 빌려 와서 오래도록 그 기술을 터득한 것이니 하물며 다른 것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는 의식조차 없는 자이겠는가? 만물 중에 어느 것이 그에게 힘입지 않겠는가?   

스무살부터 해 온 일을 쉰 살, 예순 살이 될 때까지 했을 때 그것이 장인의 경지에 이르도록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십 년을 일하고도 신규 같은 나는 뭔가? 이것이 필살기 훈련의 필요성을 늘이는구나. 30 10년과 40 10년은 달라야 한다. 40대가 더 외롭겠지만 나중이 나을 수도 있다. 왜냐면 그건 목표를 가진 거고, 어쨎든 남의 살림을 사는 게 아니라 내 살림을 사는 거니까. 보잘 것 없는 내 살림살이를 직면하고 거기서 도망가지 않아서 내 살림을 살아서 만드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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