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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18일 10시 09분 등록

노자

* 노자 지음, 이강수 옮김, , 2007.12.31

1. ‘현자의 현자(저자에 대하여)

노자.JPG  

■ 노자 (추정 BC 570 ~ BC 479)

 

중국의 고대 춘추시대 중기부터 전국시대 초기까지 살았다. 시기를 추정하면 대략 기원전 570년부터 479년 사이가 된다. 노자가 살았던 시대는 계급 질서, 생산 관계, 세계관 등이 가장 밑바탕부터 통째로 변하던 혼란의 시대였다. 중국 한()나라 때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초()나라 고현(苦縣)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녹읍(鹿邑) - 여향(厲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으로 성은 이()씨고 이름은 이()이며 자는 담()이다. 그는 무너져 가던 주나라에서 황실의 도서관장을 지냈다.

 

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를 물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공자보다는 대략 열 살 혹은 스무 살 정도 연상이었던 같은데, 기타의 다른 행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이유에선가 주나라를 떠나야 했던 것 같고, 그 국경을 넘으면서 국경지기에게 설파했던 간략한 내용이 『도덕경』이라는 책으로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후에 일어난 도교에서는 이런 사실을 더욱 신비화해서 노자가 그 때 국경을 떠나 인도로 가서 불교도들을 교화시켰다고 주장하나 분명한 근거는 없다. 노자의 아들은 이름이 종()이고 군인의 길을 걸었으며 은간(殷干)이라는 영지에 봉해졌다. 이렇게 노자와 그 아들의 경력을 볼 때, 지식과 권력에 가까이 있었던 집안이었던 것 같다.

 

노자(기원전 6세기 경)는 중국 고대의 철학자이며 도가(道家)의 창시자로, 성은 이()이고 이름은 이(), 자는 담()이다. 노담(老聃)이라고도 한다. 노자의 성씨가 '()씨인데 노자라고 불린 이유는 노자의 탄생과 관련이 있다. 막 태어난 아이의 귀가 아주 클 뿐 아니라, 하얀 눈썹과 수염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사람들은 그 아이를 노자(老子), 즉 늙은이라고 불렀다.

 그는 유가철학과 더불어 중국 고대철학의 양대산맥인 도가철학의 창시자로, 무위자연을 바탕으로 도의 사상을 주창하였다. 노자의 생애는 베일에 가려진 면이 많아서, 공자보다 100년 후의 사람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실제의 인물이 아닌 도가학파의 형성 후 그 시조로서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다. 공자가 젊었을 때 그를 찾아 예에 관해 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주나라의 쇠퇴를 한탄하며 은퇴를 결심하고 서방으로 은거하던 길에 관문지기를 만나 <도덕경>을 쓴 이야기가 있다.

 이 관문을 지키는 수령이 윤희(尹喜)라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윤희가 관문 위에서 골짜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줄기 자색 기운이 동쪽에서부터 천천히 옮아오던 것을 보면서 성인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윤희는 푸른 소를 타고 천천히 관문으로 향하고 있는 선풍도골의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노자였다. 윤희는 세상을 등지고 떠나는 노자에게 지혜의 목소리를 남겨달라고 설득했고, 노자는 그의 부탁을 받아들여 써내려 간 글이 <도덕경>이다.

 먼저 상편을 쓰고 이어서 하편을 썼다. 며칠에 걸쳐 썼다고 전해오는데, 다 쓰고 나서 글자 수를 헤아려보니 전부 5천여 자가 되었다. 이름을 <도덕경>이라 짓고, 상편은 <도경道經>, 하편은 <덕경德經>으로 이름을 붙이고 다시 81장으로 나누었다. 이렇게 해서 '오천 자'로 된 위대한 저작이 탄생하게 되었다. 윤희는 노자를 따라 떠나게 되고, 두 사람 모두 장수했다고 한다.

 

 

2. ‘노자(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 서문) 학문의 길은 끝이 없다. 일엽편주로 망망대해를 저어가는 기분이다. (p. 9)

 

해제, 노자라는 책과 사람과 사상

 

□ 전초본 (원본을 돌려가며 베껴 쓴 판본), 경제제일주의를 부르짖는 우리나라의 지금 실정에서 볼 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p. 12)

 

Ü 인류의 지적 능력이 폭발하던 시대, 그 깨달음의 시대의 세계다.

 

□ 사마천은 말하기를 노자 학설을 배우고 이는 유가 학설을 배척하고 유가 학설을 배우는 이는 노자 학설을 배척한다고 하였다. (p. 17)

 

Ü 시대적으로 유가는 지배사상이었다. 물리적 파괴력을 지닌 기득권의 지배 체계였다. 그 체계에 반하는 대부분의 사상은 배척되지 않았겠는가.

 

□ 왕필본, 오늘날 전해지는 노자는 왕필본이다. (p. 24)

 

□ 나는 이번에 이 책을 내기 위하여 주로 하상공주와 왕필주를 사용하였다. 노자의 사상이 이들에 의하여 기본적인 틀이 마련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상공주는 주로 養生 방면에서 노자의 사상을 발휘하였고 왕필주는 주로 玄理의 측면에서 노자의 사상을 발휘하였다. (p. 25)

 

□ 노자 사상의 특징으로 ()을 들었다. 주역에는 겸괘가 있다. 네 가지가 이롭다는 것은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의 도리가 겸허한 덕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p. 26)

 

Ü 서대원 역해본 주역에 따르면 ()을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겸은 겸손이요 겸양이니 일반인이 이루기 가장 어려운 덕목이다.

진정한 겸손이란 어떤 것인가?

1. 謙謙(겸겸) : 성현 군자의 겸손함

2. 勞謙(로겸) : 보통사람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겸손

3. 撝謙(휘겸) : 생과 사를 초월해 세상살이에 아무런 걸림이 없는 사람의 겸손, 산에 사는 신선의 경지

4. 鳴謙(명겸) : 인간관계를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하여 만사를 잘 헤쳐나갈 수 있는 겸손

 

겸손은 군자의 마지막 공부이며 수행의 마지막 단계라 하겠다.

 

□ 노자는 가장 곧은 것은 굽히듯 하고, 가장 솜씨가 좋은 것은 졸렬한 듯하다고 했다 (p. 29)

 

Ü 환동, 완당의 봉은사 版殿현판은 기가 막힌 환동의 예다.

 

□ 노자는 도가 상제보다도 먼저인 듯하다라고 하였다. 이는 중국철학사상 매우 획기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 개념을 뒷받침하는 것은 무와 유이다. 노자의 관점에서 볼 때 천지만물은 유이다. 왕필에 따르면 천지만물이 유라고 하면 천지만물을 존재하게 하고 움직이는 것은 유라고 할 수 없으니 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노자에서 무와 유의 개념을 제기함으로써 이후 사람들이 사변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p. 30)

 

Ü 마치 존재물이 존재와 본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존재론적 관점과도 같다. 이는 이데아 관념에 따르기도 해서 동서양의 사유가 만나는 지점이 노자가 아닐까 한다.

 

□ 노자의 처지에서 볼 때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통하려면 도를 매개로 할 수밖에 없다. 주지하듯이 노자에 따르면 도는 천지만물 어디에나 통한다. 이는 마치 햇빛과 같다. 햇빛을 등지는 것은 사람 때문이지 햇빛 탓이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소박한 마음을 회복하여 사람들과 서로 통하면서 자족적인 생활을 염원하는 노자의 사상은 오늘날 다시 한 번 되살릴 필요가 있다. (p. 33)

 

1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고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무명은 천지의 시초요,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무욕으로써 그 미묘한 것을 보고 언제나 유욕으로써 천지만물의 최종 귀결을 본다. 이 두 가지는 현묘한 세계에서 함께 나왔으나 이름이 다르다. 그들은 모두 현묘한 것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온갖 오묘한 것의 문이다. (p. 37)

 

Ü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어떻게 보면 신비적 도론의 예라 할 수 있으나 한번 더 들여다보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소통하려는 장자적 무대의 마음과 유사하다. 의식, 언어, 고착된 자의식의 한계를 넘어서 대상과 나가 아무런 매개 없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말로 표현하여 인식의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되고 이름을 불러 언어적 한계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말이겠다. 자의식을 버리는 길이 대상과 소통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고 봤을 때 본격적인 소통은 가장 현묘한 지점, 즉 대상과 내가 세계 대 세계로 만날 수 있는 문을 열어재낀 지점이지 않겠는가. 그것이 바로 현묘하다 한다. 그래서 깊어지는 것이다. 검다, black이 아니라 dark. 깊은 color. 우리는 그것이 어떤 색감인지 인지할 수는 있지만 dark는 세상에 없는 색이다.

 

□ 왕필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무릇 유는 모두 무에서 나오므로 아직 나타나지 않고 이름이 없는 때에는 만물의 시초가 된다. 그로써 형체가 있고 이름이 있기에 이르면 그들을 자라게 하고 기르고 많아지게 하고 기질을 이루게 하니 그의 어머니가 된다. 도는 무형, 무명으로써 만물을 시원하게 하고 이룬다. 만물은 그에 의하여 시원하고 그에 의하여 이루어져도 그 소이연을 모르는지라 현묘하고 또 현묘하다고 하였다. (p. 39)

 

2

천하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여기나 여기에 바로 추한 것이 있게 되고 선한 것을 선한 것이라고 여기나 바로 여기에 좋지 아니한 것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유와 무는 서로 생겨나게 하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은 서로 이루어지게 하고 길고 짧은 것이 서로 드러나게 하고 높은 것과 낮은 것이 서로 채워주며 음과 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앞과 뒤가 서로 따른다. 이 때문에 성인은 무위로써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행동으로 본보기를 보이며 만물이 그에 의하여 생장 변화할지라도 간섭, 지배하지 아니하며 생기게 하여도 소유하지 아니하고 위해주고서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아니하며 공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을 자기가 차지하지 아니한다. 대저 그것을 차지 않으므로 이 때문에 떠나지 아니한다. (p. 42~43)

 

Ü 본장의 핵심은 변화다. 빨강의 이데아가 아니라 그 이데아 자체가 변화하여 주황으로 바뀌고 노랗기도 했다가 결국 사라질 수도 있는 현상의 변화를 통찰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영원하지는 않고 추한 것이 또한 영원할 순 없는 일이다. 철저한 관계론적 사유다.

 

□ 이상은 자연계와 인류사회의 갖가지 사물과 사건이 서로 대립, 의존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를 상반상성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왕필은 말하기를 희로는 뿌리가 같고 시비는 문이 같다. 그러므로 한쪽만을 들 수 없다. 이 여섯 가지는 모두 자연을 말하여 밝힌 것이니 한쪽만을 들 수 없는 명수이다. 라고 했다. (p. 43)

 

4

□ 도는 허령하되 작용하면 다함이 없으니 깊고 깊음이여! 만물의 으뜸인 듯하고 날카로움을 무디게 하며 얽힌 것을 풀며 빛을 누그러뜨리며 티끌과 함께한다. 모양도 없고 움직임도 없음이여! 혹 존재하는 듯하다. 나는 누구의 아들인지 모르니 천제보다 먼저인 듯하다. (p. 48)

 

Ü 이것은 신비론적 도론으로 흐른다.

 

□ 자기의 예리한 것을 무디게 하여 물의 얽힌 것을 풀고 자기의 빛을 누그러뜨려 물의 진과 같이 한다. (p. 49)

 

Ü 언어, 의식, 고착된 자의식을 버리는 단계, 무대의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타자와 소통한다 일렀다.

 

□ 하상공은 말하기를 비록 자기만의 견해가 밝을지라도 마땅히 어리석은 듯이 할 줄 알고서 마땅히 다른 사람들보다 특출 나게 나서서 사람들을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p. 50)

 

Ü 도광양회, 인간이 제 아는 것을 떠벌리고 다니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5

□ 비록 텅 비어 있으나 다 써버리지 아니하며 밀어 보낼수록 더욱 더 많은 소리와 기운이 나오나니, 말이 많으면 곧잘 곤궁해지는지라 중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 (p. 51)

 

□ 천지는 자연에 맡겨 일부러 하는 일도 없고 조작하는 일도 없는지라, 만물이 스스로 서로 다스리게 하므로 하지 않다고 한다고 하였다. (p. 52)

 

Ü 인은 사회적 개념이다. 그리고 지극히 인위적 개념이기도 하다. 노자의 시선으로는 인, , , 지만큼 인위적인 것 또한 없다. 따라서, 노자는 이 모두를 도와 덕의 하위개념으로 쏟아 넣는다. 그러나 장자는 이러한 것들을 무시하여서는 안 된다고 전한다. 삶의 유한성을 인지해야 무한의 의식 확장이 가능하다 하면서 이러한 사회적 관념 체계는 실제 자신의 육신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물리적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냥 배격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라고 일렀다.

 

7

□ 천지는 장구하다. (天長地久) 천지가 길고 또 오래갈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자기만 살려고 하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장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성인은 그 자신을 뒤로 하지만 도리어 자신이 앞서게 되고 그 자신을 도외시하므로 자신의 생명이 보존된다. 그에게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그의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p. 56)

 

Ü 오천련 주연의 천장지구는 노자 제7장에서 인용한 제목이었다.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연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데 그 의미가 꼭 맞아 떨어진다. 사사로움을 버린 것.

 

□ 하상공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사사로움을 챙기는 까닭은 그로써 자기를 후하게 하려는 것이다. 성인은 사사로움이 없으니 자기 자신이 저절로 후해지는지라. 그러므로 그의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p. 57)

 

Ü 진정한 사사로움은 사사로움을 버려 사사로움을 취하는 것. 절대 고수다. 삶의 역설.

 

8

□ 선을 높이는 사람의 성품은 물과 같다. 물은 온갖 사물을 이롭게 하기를 좋아하지만 그들과 다투지 아니하며 대중이 싫어하는 곳에 깃드는지라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 (p. 58)

 

Ü 맹자는 말한다.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9

많이 가지고서 그것을 가득 채우는 것은 그것을 그만두는 것만 못하다. 끝을 두들겨 날카롭게 하는 것은 오래도록 보존할 수 없다. 금과 옥이 마루에 가득해도 그것을 지킬 수 없다. 부귀하면서도 교만하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기리라. 공이 이루어지면 몸이 물러나는 것이 천의 도이다. (p. 61)

 

Ü 부자에 대한 노자의 관점, ‘그만 두라

 

쟁반의 물을 받들어 갖고서 거기에 더 채우는 것은 더 채우지 않는 것만 못하다. (p. 62)

 

끝을 두들겨 뾰족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날카롭게 하여 예리하게 하면 세가 반드시 꺾어지게 할 것이므로 오래도록 보존할 수 없다. (p. 62)

 

Ü 달도 차면 기운다.

 

□ 왕필은 말하기를 그 근원을 막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마치 자녀의 개성이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것을 막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같다. (p. 67)

 

Ü 자식의 상상력을 막는 자는 누구인가? 부모, 선생, 친척의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수많은 금기와 제약이다. 그 무매개의 생을 이지러지게 하는 것은 매개의 삶을 해어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다. 인지하고 있는가.

 

11

□ 서른 개의 바퀴살이 바퀴통 하나로 같이 모여드나니 그 무를 만나야 수레의 작용이 있게 된다. 차진 진흙을 이겨 그릇을 만드나니 그 무를 만나야 그릇의 작용이 있게 된다. 방문과 창문을 뚫어서 방을 만드나니 그 무를 만나야 방의 쓰임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유가 이롭게 되는 것은 무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p. 69)

 

Ü 우리는 이를 일러 창의적이라 한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아는 원리의 근본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러나 논점은 약간 다르지만 다음의 관점을 보자. 강신주가 말한다.

 

유동적인 물이 있다고 하자. 이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나게 드러나고 세모난 그릇에 담기면 세모나게 드러난다. 여기서 유동적인 물 자체가 비인칭적이고 유동적인 무대의 마음을 상징한다면 상이한 그릇을 만나서 규정할 수 있는 모양을 띄는 세모난 물과 네모난 물 등은 임시적 자의식을 상징한다. 반면 세모난 그릇에 담긴 물이 얼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릇으로부터 이 세모난 얼음을 빼내어도 이 얼음은 세모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세모난 얼음은 고착된 자의식을 상징한다.’ 이 자의식을 항상 비워내야 그릇의 기능을 한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그 무의 상태, 장자가 말하는 무대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고자에 따르면 맹자처럼 사람의 본성을 인의로 규정하는 것은 마치살아있는 버드나무를 그것을 죽여서 만든죽은 그릇과 같다고 여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고 했다. 그릇에 대한 사적 사용은 이렇게 다른 시각을 가진다.

 

13

총애는 본래 비천한 일인데도 사람들은 그것을 얻으면 기뻐서 놀라고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나니 이를 일러 총애나 치욕에 놀란 듯하다고 한다. 무엇을 일러 대환을 생명처럼 귀중하게 여긴다고 하는가? 나에게 대환이 있는 까닭은 나에게 육신이 있기 때문이니 나에게 육신이 없게 되면 나에게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오직 천하를 가볍게 보고 자기 자신 위하기를 천하를 위하는 것보다 중시하는 사람이라야 천하를 맡길 수 있다. (p. 75)

 

Ü 설명) 대환은 영광과 총애 같은 것들이다. 후하게 살려는 것이 반드시 죽을 곳으로 들어가게 하므로 그래서 대환이라고 하였다. 사람이 영광과 총애에 의하여 미혹하는 것은 그것을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하는지라, 그러므로 대환을 자기 자신의 몸처럼 귀히 여긴다고 했다.고 하였다.

 

14

이라는 것은 그 이전은 유구하지 아니하며 그 이후는 짧지 않다. 뿌리를 찾아가며 캐고자 함이여! 그래도 구체적으로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할 수 없는지라, 다시 아무것도 없는 데로 돌아가니 이를 일러 형상이 없는 형상이요 어떤 사물도 보이지 않는 형상이라고 한다. (p. 79~80)

 

Ü (본문 설명) 일은 형상이 없으나 온갖 사물이나 사건을 위하여 형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존재물은 존재와 본질로 이루어진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우주의 근원과 유사하다. 탈레스는 물, 아낙시만드로스는 질료, 헤라클레이토스는 불, 피타고라스는 수,  파르메니데스는 존재. 연암은 먼지. 노자는 자연

 

또한 무라고 말하고 싶으나 온갖 사물과 사건이 그에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유라고 말하고 싶으나 그 형상을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無狀之狀(무상지상) 無物之象(무물지상) 이라고 했다고 하였다.

 

16

□ 뿌리로 돌아가면 고요하다고 하니, 고요함 이것이 본원으로 돌아가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떳떳하다고 한다. 떳떳한 것을 아는 것을 밝다고 하니, 떳떳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근거 없이 행동하면 흉해진다. (p. 87)

 

Ü 본성을 회복하는 것, 무대의 마음에 이르는 길, 자의식을 지우고 언어, 인식의 제약을 벗어나는 일을 떳떳하다 함은 탁월하지 않을 수 없다.

 

17

□ 가장 좋은 군주는 아랫사람들이 그가 있는 줄만 알고, 그 다음은 그를 친애하면서 칭찬하며 그 다음은 두려워하고 그 다음은 그를 경멸한다. 그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면 이에 그에 대한 불신이 있게 된다. 한가롭고 편안함이여! 그가 말을 아끼어 공이 이루어지고 일이 완수되면 백성들이 모두 내가 스스로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p. 90)

 

Ü 오늘날 우리들이 보고 배워야 할 leadership이다. 사람들아 아시는가? 이 때는 기원전이다.

 

□ 대도가 버려짐에 인의가 있게 되고 지혜가 출현함에 큰 거짓이 있게 되며 육친이 불화함에 효도와 자애가 있게 되고 국가가 혼란한 뒤에 지조 굳은 신하가 있게 되니라 (p. 93)

 

Ü superman, 람보 같은 캐릭터는 어는 날 갑자기 떠오르진 않았다. 사람들이 바랐다. 사람들이 바램이 그들의 출현시켰다.

 

□ 왕필은 말하기를 지나치게 아름다운 이름은 대악에서 생기나니 이른바 아름다움과 추함이 같은 문으로 들고 난다는 것이다. 육친은 부자, 형제, 부부이다. 만약 육친이 저절로 화목하고 국가 저절로 안정된다면 효도와 자애 그리고 충신은 그들이 있는 곳을 모르게 된다. 물고기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 잊나니 서로 잊을 수 있는 도가 상실되면 서로 주둥이로 물방울이나 적셔주는 덕이 생겨난다고 하였다. (p. 94)

 

Ü 우리 모두가 가난하지 않았다. 다 같이 가난할 때는 가난할 줄 잊고 살았다. 그러나 누군가 부자가 되었을 때 세상이 이지러진 가운데 시혜적 나눔, 불편한 나눔이 시작되었고 그것을 기부라 부른 다음 사람들은 아름다운 모습이라 말했다. 웃기지 않는가.

 

20

□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우러러 쳐다봄이여! 초췌하고 피곤함이여! 돌아갈 곳조차 없는 듯하도다, 속인들이 영리한 듯할 적에 나만이 멍청한 듯하여 넓고 아득함이여! 바다와 같으며 바람에 나부끼듯 함이여! 그침이 없도다. 뭇 사람들은 모두 쓸모가 있으나 나 홀로 우둔하여 촌스러운 듯하나니 나 홀로 사람들과 달라 유모를 귀히 여긴다. (p. 100)

 

Ü 세상을 매개하지 않은 의식으로 보기가 어렵다. 노자는 그들은 보지 못하여 나를 흐리멍덩하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 두려움이 없고 그침이 없다. 고 말하는 듯 하다. 노자는 자유 찾은 몇 안 되는 인간인가. 그러나 자유 그것은 역설이다.

 

개념적으로 자유는 자유는 자기로부터 말미암는다. 自由, 외적인 강제가 없이 철저하게 자기원인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을 의미한다. 일체의 외적 조건 없이 절대적 자발성에 근거하는 자기원인적이라는 자유의 관념은 사변적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을 강조하는 장자에게 있어 절대적 자유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면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은 불필요한 개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육체적 유한성과 독립된 실체로 사유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적 자유의 이념은 유한한 자유를 추상화하는 데서 존립하는 개념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진다.’

 

□ 제21, 왕필이 말하기를 지극히 진실한 궁극은 이름할 수 없으니 이름 없음이 곧 그의 이름이다. (p. 106)

 

Ü 노자의 도는 신 개념과도 유사하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신의 이름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누가 신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겠소?

누가 고백할 수 있겠소.

나는 그를 믿는다고!

마음속으로 느낀다고 해서

누가 감히 발설할 수 있겠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만물을 포괄하는 자,

만물을 보존하는 자,

그는 당신을, 나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괄하고 보존하고 있지 않소?

 

의 저자 김용규는 말한다.

 

또한 모세는 신의 이름을 물었고 신은 선뜻 자기 이름을 밝힌 겁니다.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 ehyeh asher ehyeh라고 말이지요.

 

최초의 구약성서 70인 역에서 나는 있는 자다. 라고 번역하였음. 후일 신약성서의 모태가 되는 성서다. 신은 이 말을 통해 자신이 존재물이 아니라 존재임을 알린 것이지요. 나는 있는 자다가 아닌 나는 있음이다여야 하고요. 설사 철학 용어를 사용한다고 해도 나는 존재자다 가 아닌 나는 존재다 가 되어야 합니다.

 

나는 존재다라고 한 대답에는 너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었다는 말이지요. 즉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존재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흐예 아세르 에흐예라는 신의 대답이 가진 진정한 의미예요. 신을 존재로 그리고 인간을 존재물로 파악한 것, 바로 이것이 모세가 이룬 신 개념의 핵심이라는 말입니다.’

 

22

□ 구부리면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고 하니 굽히면 곧고 바르게 펴질 수 있고 움푹 파이면 차게 되고 해지면 새로워지고 적으면 얻어지고 많으면 미혹할 것이다. (p. 107)

 

Ü (본문 설명) 하상공이 말하기를 자기를 굽히어 남을 펴주면 오래오래 자기가 절로 곧아질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땅이 움푹 들어가면 그곳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며 사람이 자기를 겸손하게 낮추면 덕이 그에게로 돌아간다고 하였다. 이것이야말로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이다.

 

23

말을 아끼는 것이 자연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사나운 바람은 하루 아침을 다하지 못하며 폭우는 하루를 다하지 못하니 누가 이렇게 하는가? 천지이다. 천지조차도 오히려 오래갈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이 하는 일에서랴! 그러므로 도에 종사하는 사람은 도와 같아지고 덕을 찾는 사람은 덕과 같아지고 잃는 사람은 잃는 것과 같아질 것이다. (p. 111)

 

25

人法地(인법지) 地法天(지법천) 天法道(천법도) 道法自然(도법자연) (p. 116)

 

Ü 신영복 선생은 말한다.

 

노자의 철학은 귀본의 철학입니다. 본은 도이며 자연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자의 철학을 유가 사상에 대한 비판 담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노자를 왜소하게 읽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노자 철학이야말로 동양 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 왕필이 말하기를 자연이란 칭호가 없는 용어요, 궁극적인 개념이다.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난 형태가 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근 모양이 된다. 도는 어떤 사물에 담기느냐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진다. (p. 120)

 

Ü 강신주는 말한다. 이래서 도무수유의 개념이 나왔구나!

 

유동적인 물이 있다고 하자. 이 물은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나게 드러나고 세모난 그릇에 담기면 세모나게 드러난다. 여기서 유동적인 물 자체가 비인칭적이고 유동적인 무대의 마음을 상징한다면 상이한 그릇을 만나서 규정할 수 있는 모양을 띄는 세모난 물과 네모난 물 등은 임시적 자의식을 상징한다. 반면 세모난 그릇에 담긴 물이 얼었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릇으로부터 이 세모난 얼음을 빼내어도 이 얼음은 세모난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세모난 얼음은 고착된 자의식을 상징한다.

 

거울이 사람을 비출 때, 이전에 비추던 나무의 상을 지니고 있으려고 한다면 어떨까? 혹은 거울이 항상 사람만을 비추려는 거울이면 어떨까? 거울은 타자를 항상 비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인간의 삶과 마음이 세계 - 내적이며 동시에 타자 - 관계적임을 상징하고 있다.

모든 것을 비추는 거울도 어떤 것도 비출 수 없는 거울과 마찬가지로 거울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절대적인 있음은 절대적인 없음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장자는 타자와 잘 소통해서 새로운 삶의 문맥을 잘 비추어내려는 데 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겠다는 혹은 같은 말이지만 모든 것을 비추겠다는 거울(=초월적 마음)과 어떤 것만을 비추겠다는 거울 (=성심을 스승삼는 마음)은 모두 비본래적인 거울일 뿐이다.

 

27

□ 잘 가는 이는 흔적이 없고 말을 잘하는 이는 흠이 없고 계산을 잘하는 이는 주책을 쓰지 않나니, 잘 닫은 것은 빗장이 없어도 열 수 없고 잘 싸맨 것은 밧줄로 동여매지 아니해도 풀 수 없다. 이 때문에 성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잘 구원하는지라 그러므로 사람을 버리는 일이 없고 언제나 물을 잘 구원하는지라 그러므로 물을 버리는 일이 없다. 이를 일러 습명이라고 하니라 (p. 124)

 

Ü 일동만수의 경락이란 이런 것.

 

□ 제28, 하상공이 말하기를 이다. 만물의 이 흩어지면 그릇과 용구가 되고 만약 도가 흩어지면 신명이 되고 유행하여 해와 달이 되고 나뉘어 오행이 된다고 하였다. 이로써 우리는 그의 우주론의 일단을 볼 수 있다. 도가 태양이라면 신명은 햇빛이라고 할 수 있다. (p. 130)

 

Ü 에 대한 막스베버의 해석은 가벼웠다. 신영복 선생의 일갈을 들어보자.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낭비 체제를 프로테스탄티즘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막스 베버는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 윤리를 개진한 것이기보다는 자본 논리를 합리화하는 맥락에 충실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동양 사상에 대해 저급한 이해의 층위를 드러냈을 뿐이지요.’

 

32

□ 도는 영원히 이름이 없다. 도가 천하에 있는 것을 비유하면 마치 하천과 시내가 강과 바다에 있는 것과 같으니라 (p. 142)

 

Ü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 자연 상태인 박이 분산되기 시작하여 국가와 정부가 출현하게 되면 대통령, 국무총리, 등 통치이념을 세우고 높은 이와 낮은 이를 설정하게 되어 이익을 다투며 그렇게 되면 정부기구가 새끼를 치며 자꾸 만들어져서 국가와 정부를 만들었던 본래 취지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p. 144)

 

Ü 국가 수립의 본래 취지란 것이 있는가. 모두 개소리다. 국가가 왜 생겨났는가? 권력자가 권력자이게 하기 위한 체계를 만든 것이다. 뼛속 깊이 지배의 본성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국가에 죽고 못사는 이들아 잠깨어라. 국익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라.

 

□ 왕필이 말하기를 하천과 시냇물, 강과 바다의 관계에서 강과 바다는 그들을 부르지 아니하니 부르지 아니하고 구하지 아니해도 스스로 귀의하는 것이다. 천하에 도를 행하는 사람은 시키지 아니해도 저절로 고르게 되고 구하지 아니해도 저절로 얻어진다. 그러므로 하천과 시내가 강과 바다에 대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고 하였다. (p. 145)

 

33

남을 아는 사람은 총명하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이는 넉넉하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으며 자기가 하늘에서 부여 받은 것을 잃지 않는 사람은 장구하고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이는 장수 하니라 (p. 146)

 

Ü 율곡은 말한다. ‘남을 이기는 것은 혈기에서 나온 힘이요 자기 자신을 이기는 것은 의리에서 나온 용기다.’ 조선시대 홍석주는 안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밖에서 많은 것을 구하려고 한다면 비록 만금을 쌓아놓을지라도 걸인일 뿐이다.’ (저자)

 

34

□ 성인은 끝내 스스로를 위대하다 여기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그의 위대함을 이룰 수 있다. (p. 149)

 

□ 만물은 모두 도에 말미암아 생긴다. (p. 150)

 

Ü 다시 한번 새긴다. 죽음을 초월하고 세상에 초월해야 자유로울 수 있다.

 

개념적으로 자유는 자기로부터 말미암는다. 自由, 외적인 강제가 없이 철저하게 자기원인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을 의미한다. 일체의 외적 조건 없이 절대적 자발성에 근거하는 자기원인적이라는 자유의 관념은 사변적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을 강조하는 장자에게 있어 절대적 자유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면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은 불필요한 개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어서, 계속해서 자유를 탐구해 보자

 

대붕이 날아가기 위해서도 이런 거대한 바람이 조건으로 구비되어야 한다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이것을 결코 정신적 자유의 비유일 수는 없다.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고로움과 고생을 수반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유대의 마음을 각고의 노력으로 해체하지 않으면 무대의 마음은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롭다고 관념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자유는 언젠가는 여지없이 타자와의 충돌과 죽음의 도래로 흔들릴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는 타자와의 충돌과 죽음이라는 인간 삶의 유한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36

그것을 수렴하고 싶으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확장시켜줄 것이고 그것을 약화시키고자 한다면 반드시 먼저 그것을 강하게 하며 그를 제거하고 싶으면 반드시 먼저 그를 들어올려주고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고 싶으면 반드시 먼저 그에게 주어야 할 것이니, 이를 일러 미명 즉 그 이치는 은미하나 그 일은 분명한 것이라고 한다 (p. 155)

 

38

□ 가장 으뜸가는 덕은 자신의 덕을 덕으로 여기지 아니한지라 그러므로 덕이 있게 된다. 가장 으뜸 가는 덕은 무위하되 편파적으로 함이 없다.

 

도를 잃은 뒤에 덕이요 덕을 잃은 뒤에 인이요 인을 잃은 뒤에 의요 의를 잃은 뒤에 예이다. 대저 예라는 것은 속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이 엷어진 것이요 혼란의 머리이다. 남보다 앞서서 아는 것은 도의 꽃이로되 어리석음의 시초이다. (p. 162)

 

Ü 남보다 앞서서 안다는 것에 대한 장자의 사유를 기웃거려 보자. 강신주가 말한다.

 

‘미리’라는 말은 구체적인 소통의 사태 이전이라는 의미이자, 동시에 연역적으로 미래에 적용될 것임(외삽, extrapolation)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타자와의 구체적인 조우가 없이도 언어와 고착된 자의식에 근거한 사변이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에 대해 미리 염려하고 어떤 사태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어떤 사람에 대해 미리 단정하는 일체의 이미리작동하는 사변이 장자의 해체의 대상이 된다.

 

□ 의는 친한 이는 알맞게 안으로 하고 덜 친한 이는 알맞게 밖으로 하는 것이니 의라는 것은 알맞게 하는 것을 일컫는다. (p. 164)

 

Ü 이건 기가 막힌 통찰이다. 의를 완전히 해체하여 무대의 마음으로 보게 되면 이리 보일 터다. 탁월하다. 노자. 예의 의미는 어떤가 보자

 

내심으로 사랑하는데도 그가 알아주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좋은 말과 번잡한 언사로써 믿게 하려고 한다. (p. 165)

 

Ü 기가 막히지 않는다. 예를 묵사발로 만들고 있다. 그 갑갑함을 통쾌하게 날린다. 노자에게 나는 뚫린다.

 

崇本息末 뿌리를 북돋워서 말엽을 자라게 한다는 뜻과 말엽을 제거해야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는 뜻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는 유의 뿌리에 무가 있고 동의 근저에는 정이 있으므로 유위의 배후에서 일체를 움직이게 하는 무위로써 인의예지 등 덕을 저울질 하는 기준으로 삼고 있다. (p. 170)

 

Ü 뿌리가 도라는 뜻.

 

귀한 것은 천한 것으로써 근본을 삼고 높은 것은 곧 낮은 것으로써 기초를 삼는다. 그러므로 자주 명성을 얻는 것은 곧 명성이 없어진다. 옥과 돌은 반짝반짝하기도 하고 투박하기도 하다. 그들은 실체가 모두 그들의 형체에서 다한다. 그러므로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p. 175)

 

40

□ 서로 반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도의 운동이요 유약한 것이 도의 작용이니 천하의 온갖 사물과 사건은 유에서 생겨나고 유는 무에서 생겨난다. (p. 177)

 

Ü 이 장에서 노자는 사물과 사건이 대립자를 그의 존재 성립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것과 그들은 서로 의존하면서 상반된 방향으로 운동, 변화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처럼 상반상성하는 운동을 대립전화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생성, 변화하는 사물, 사건은 결국 도에서 생겼다가 다시 도로 돌아간다. 이는 무가 유로 전개되었다가 다시 무로 회귀하는 형식을 거친다. (저자)

변증법적 유물론과 함께 살펴볼 수 있겠다.

 

장자는 도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오로지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소통해서 하나가 될 줄 안다. 이것이다라고 여기는 인식을 쓰지 않고 그것을 일상적인 것 깃들도록 한다. 일상적인 것이란 씀 말하고 씀이란 소통을 말한다. 그런데 소통이란 바로 (나와 타자가 마땅한 자리를) 얻음이다. 이런 얻음에 이르면 지극해진 것이다. 사태에 따라 긍정할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그런 줄 모르는 것, 그것을 도라고 한다.

 

43

□ 천하에서 지극히 부드러운 것으로 천하에서 지극히 단단한 것을 뚫고 드나들되 무유는 틈새 없는 곳으로 들어가나니 나는 이로써 무위가 유익하다는 것을 알겠도다. 불언의 가르침과 무위의 유익함은 천하 사람들 가운데 그에 미칠 수 있는 이가 드무니라. (p. 189)

 

Ü 이것은 장자의 text와 유사하다. 아래는 유명한 포정의 이야기다. 노자 43장과 비교해 보자.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입니다. 기술을 넘어 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는 법은 없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천리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 넣고 빈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인대를 벤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저 뼈에는 틈이 있고 이 칼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으로 틈이 있는 데다 넣으므로 넓고 넓어 칼날을 휘둘러도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44

□ 명예와 몸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가까운가? 몸과 재물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얻는 것과 잃는 것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해로운가? 이 때문에 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더 많이 소비하고 많이 저장하면 반드시 잃는 것이 후하게 되나니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아니하고 그만둘 줄 알면 위태롭지 아니하니 장구할 수 있느니라. (p. 191)

 

Ü 거 참 어려운 일이다. 어찌 모르겠는가. 노자여

 

45

□ 가장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나 그 작용은 다하지 아니하며 가장 충만한 것은 빈 듯하지만 그 작용이 다 없어지지 아니하고 가장 곧은 것은 굽히는 듯하고 가장 솜씨가 좋은 것은 졸렬한 듯하며 가장 많이 남는 것은 적자 난 듯하니라 (가장 논변을 잘하는 것은 어눌한 듯하니라) 질주하여 추위를 이기고 고요히 앉아서 더위를 이기거니와 청정이 천하에서 가장 바른 표준이니라 (p. 194)

 

Ü 사물과 나 사이에 아무것도 없게 만들어 무매개하는 무대의 마음으로 소통하는 상태에서 나오는 솜씨, 논변, 예술, 글 이것이 도가 충만한 상태다. 완당의 版殿을 보라.

 

□ 대교는 자연에 따라서 그릇을 만들어내되 특이하게 만들지 아니한지라 졸렬한 듯하다 (p. 195)

 

大辯若訥(대변약눌), 대변은 사물에 따라서 말하고 자기가 지어낸 것이 없는지라 그러므로 어눌한 듯하다. (p. 196)

 

Ü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

 

48

학문을 하는 것은 날마다 더해가고 도를 추구하는 것은 날마다 덜어가니 덜고 또 덜어서 무위에 이른다. 무위하나 그에 의하여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천하를 다스릴 적에 언제나 일거리가 없게 하니 그에 일거리가 있게 되어서는 충분히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p. 203)

 

Ü 경영의 대가 게리 헤멀은 경영이란 것은 구성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라며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덜 관리하는 것이라 했다. 노자와 일맥 한다. 그리고 멋진 말이 있구나. 학문은 더하고 도는 덜어라.

 

50

□ 대개 들으니 섭생을 잘하는 사람은 구릉으로 다닐 적에 암외뿔소를 만나지 아니하며 군대에 들어가서도 병장기에 피해를 입지 아니하니 외뿔소가 그의 받을 곳이 없고 호랑이가 그의 손발톱을 쓸 곳이 없으며 병장기가 그의 칼날을 용납할 수가 없으니 대저 무엇 때문인가? 그에게 죽을 곳이 없기 때문이다. (p. 208)

 

Ü 비교해 보자. 포정의 이야기다.

 

제가 귀하게 여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도입니다. 기술을 넘어 선 것입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의 전체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지요. 지금은 마음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는 법은 없습니다. 감각은 멈추고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입니다. 천리에 의지하여 큰 틈새에 칼을 찔러 넣고 빈 결을 따라 칼을 움직입니다. 소의 몸 구조를 그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직 한 번도 인대를 벤 적이 없습니다. 하물며 큰 뼈야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저 뼈에는 틈이 있고 이 칼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으로 틈이 있는 데다 넣으므로 넓고 넓어 칼날을 휘둘러도 반드시 여유가 있습니다.

 

인간 삶의 유한성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첫째, 타자와의 충돌 둘째, 나 자신의 육체의 소멸, 죽음의 도래.

 

51

□ 도가 만물을 생기게 하고 덕이 기르며 물체가 형상을 지니게 하고 세가 만물을 완성한다. (p. 211)

 

Ü 김용규 선생은 말한다. ‘책상을 책상이게 하는 그 어떤 성질이 존재론에서 말하는 그것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있음이 곧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존재물은 본질과 존재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자면 세상만물은 모두 무엇이라는 본질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며 일반적으로 그 무엇이 우리가 부르는 그것의 이름입니다.’ 본질이 도에 가깝다. 그러나 노자의 도와는 다르다.

 

□ 박세당은 말하기를 나누어서 말한다면 도와 덕의 구별이 있으나 합쳐서 말한다면 도와 덕은 하나이다. 라고 하였다. 만약 도와 덕을 구별할 경우에는 덕이 나의 본성이라면 도는 천지만물의 본성이다. (p. 213)

 

□ 제52, 왕필이 말하기를 모는 본이고 자는 말이다. 뿌리를 터득하여 가지와 잎을 알아야지 근본을 버리고 말엽을 쫓아다녀서는 아니 된다.’고 하였다.

 

Ü 崇本息末 이다.

 

□ 명이란 자기의 본성이 맑고 밝고 환해지는 것이다. (p. 216)

 

Ü 明心見性 이다.

 

53

□ 가령 내가 확고부동하게 아는 것을 장악하여 대도를 행한다면 오로지 사잇길 이것을 두려워하니, 대도는 매우 평이하거늘 백성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p. 217)

 

Ü (본문 설명) 대도는 매우 평이하나 사람들은 도리어 지름길을 좋아하니 정리를 버리고 사욕을 좇는다고 하였다. 에둘러 가더라도 둘러가는 것이 첨단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임을. 螺線

 

56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모르니 지식의 구멍을 막고 욕망의 문을 닫으며 그의 예리한 것을 무디게 하고 그의 읽힌 것을 풀어내며 그의 빛을 함축하고 그가 몸담고 있는 속세와 어울리면 이를 일러 玄同이라 하는지라. (p. 226)

 

Ü 유가는 지배체제가 되었다. 그 물리적 속박과 체제를 배격했을 때의 육신에게 전해지는 파괴력은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무대의 마음으로 유대의 세상을 보는 법. 그것이 관건이었다. 장자는 말한다. ‘소용돌이나 태풍의 눈이 비어 있는 상태는 강렬한 소용돌이를 가능하게 하는 부동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용돌이의 내부가 비어 있음은 외부의 강렬한 운동과 동시적인 사태인 것이다. 그래서 장자가 권고하는 원환의 중심을 얻는 것, 혹은 빔 일종의 정적주의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고요함이 역동성의 이면이라는 것, 비움이 타자와의 민감한 소통과 동시적 사태 일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 법령이 뚜렷해 질수록 도적이 많이 있게 된다. (p. 229)

 

Ü 법치주의는 가장 후진적이다. 강력한 집권력을 전제하는 이 제도는 지배자의 지배력을 높이고 인민의 복종을 높이되 반항을 최소화시키는 지배효과적 체제다.

 

□ 정의는 강자를 이롭게 하는 것 고대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쿠스 trasymachus- (p. 231)

 

□ 하상공이 말하기를 사람은 기로써 뿌리를 삼고 정으로써 꽃받침을 삼으니 마치 나무의 뿌리가 깊이 내리지 아니하면 뽑히고 과일나무의 꽃받침이 튼튼하지 아니하면 과일이 익지 아니하고 떨어지는 것과 같다 (p. 237)

 

Ü 내 아이젠이 얼음짝에 제대로 세워지기 위해 해야 할 일. 숭본식말.

 

63

□ 무위로써 일을 하고 일거리 없기를 일삼고 명예나 이익을 탐내지 않는 평안하고 고요한 마음으로써 맛을 삼는다. 작은 것으로부터 커지고 적은 것으로부터 많아지나니 원한을 덕으로써 갚으련다. 어려운 일은 그것이 쉬울 때 도모하며 원대한 일은 작은 일부터 시작하나니 천하의 어려운 일이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하며 천하의 큰 일이 반드시 미세한 일에서 시작한다. (p. 248)

 

Ü 왕필은 말하기를 성인은 재능을 가지고도 오히려 미세하고 쉬운 일에 대하여 어려워하거늘 하물며 성인의 재능을 갖지도 아니하고서 이에 대하여 소홀히 하려고 함에서랴! 그러므로 오히려 그것을 어려워한다.’고 하였다 (저자)

 

64

□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처럼 작은 것에서 생기며 구층이나 되는 누대도 한 삼태기 흙에서 쌓아진 것이며 천릿길은 발 아래에서 시작한다 (p. 252)

 

Ü 합포지목 생어호말 구층지대 기어루토 천리지행 시어족하

 

66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以其善下之(이기선하지)

강과 바다가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일체 시냇물에게 낮추기를 잘하는지라 그러므로 온갖 시냇물이 흘러 들어갈 수가 있다. (p. 258)

 

Ü 관자는 말한다.

 

무릇 물은 부드럽고 맑아서 사람의 더러움을 씻어 주기를 좋아하니 어질다. 보기에는 검지만 희고 깨끗하니 순수하다. 헤아려 되질하지 않아도 가득 차면 그치니 바르다. 어느 곳에나 흐르지 않는 곳이 업고 평평하면 멈추니, 의롭다. 사람은 모두 높은 곳으로 달려가지만 물은 홀로 낮은 곳에 거하니 겸손하다. 겸손함이란 도가 머무는 집이요, 군주 노릇 하는 사람이 쓰는 도구이니 물은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다.

 

또한, 신영복 선생이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써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66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以其善下之(이기선하지)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68

□ 무사 노릇을 잘하는 사람은 그이 무용을 뽐내지 아니하고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화를 내지 아니하고 적을 잘 이기는 사람은 맞서서 싸우지 아니하고 사람을 잘 부릴 줄 아는 사람은 그에게 낮춘다. (p. 264)

 

Ü 이를 일러 남과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한다.

 

73

□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커서 성글지만 빠뜨리지 않느니라! (p. 277)

 

Ü 신영복 선생은 유난히 그물에 대해 말씀이 많으셨다. 모두 인용한다.

 

모든 사물과 모든 사건과 모든 사태가 그 위에서 생성 변화 발전하는 거대한 관계망을 잊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지요. 한 마리의 제비를 보고 천하의 봄을 깨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관계망이지요.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남는 것은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동료들의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을 망라하는 그물은 성글기 그지 없지만 하나도 놓치는 법이 없다. 인자는 최대한의 관계성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철학의 관계론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 이미지, 제석천의 그물망, 중중무진의 영상이 다중 구조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계의 참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76

□ 사람이 태어날 때는 몸이 유연하고 그가 죽을 무렵에는 뻣뻣해지니 만물과 초목도 생겨날 때는 부드러우면서도 여리고 그것들이 죽어갈 무렵에는 말라비틀어진다. 그러므로 뻣뻣한 것은 죽음의 길이요, 부드러운 것은 삶의 길이다. 이 때문에 군대가 강대하면 이기지 못하고 나무가 강하면 불살라진다. 견강한 것은 아래로 처지고 부드러운 것이 위로 솟구친다. (p. 286)

 

Ü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 아는 원리의 근본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우리는 이것을 창의적이라 한다. 노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사람 중 하나다.

 

□ 제79, 철은 수레바퀴 자국이니 사람의 경우에는 그의 행적이 된다. 행적은 자취이다. (p. 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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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도다. 설사 열 사람, 백 사람이 같이 써야 하는 대형 기물이 있을지라도 사용하지 아니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죽음을 중시하여 멀리 이사다니지 않게 한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으나 그것을 탈 일이 없게 하고 비록 갑옷과 병장기가 있을지라도 그것을 진열할 일이 없게 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결승문자를 회복하여 살게 하여 채식을 달게 먹고 거친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입고 검소한 집을 편안하게 여기며 그의 질박한 풍속을 즐기며 이웃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과 개의 소리가 서로 들리되 사람들이 늙어 죽도록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Ü 노자의 국가론이다. 노자는 사회주의자에 가깝다. 안 그렇겠는가. 대부분의 현자들이 생각하는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의 공동체는 공산주의다.

 

□ 통치자와 피통치자, 가진자와 못 가진자, 지위가 높은 사람과 지위가 낮은 사람, 명성이 있는 사람과 지식이 많은 사람이 없으며 제왕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며 전쟁과 군대가 없고 세금을 내거나 부역에 동원되는 일이 없는 사회이다. (p. 301

 

81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辨 辨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진실한 말은 아름답지 아니하고 아름다운 말은 진실하지 아니하다 (선한 사람은 말재간이 있지 아니하고 말재간이 있는 사람은 선하지 아니하다) 아는 이는 견문이 넓지 아니하고 견문이 넓은 사람은 근본적인 이치를 알지 못한다. (p. 303)

 

 

3. ‘흐리멍덩함의 진수(내가 저자라면)

노자의 text를 읽어 내리려 한 것은 나의 큰 불찰이었다. 행간 너머에서 노자는 나를 보고 마냥 웃고만 있고 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해 끙끙대었다. 무참한 모욕이다. 자괴를 느낄 즈음 장자가 도와주었으나 아주 조금의 힌트만을 던지고 사라져 버렸다. 더 복잡해진 머리 속을 가눌 길이 없었다. 단 한자의 text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흔히 사람들은 노자에 대해서 무위자연이라는 말만을 떠올리고는 초야 묻혀 바람과 같이 물과 같이 사는 신선상을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신비론적 도론에 근거한 이와 같은 노자의 모습은 실상 유가에 반하는 사상인만큼 사상적 지배자격인 유가론자들로부터 노자의 사상이 폄하된 모습이다. 노자의 사상은 유가와 정반합하는 사상적 대립으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붕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력이 필요하듯 큰 바람이 꾸준히 불어주지 않으면 구만리를 날 수 없다. 자유는 이렇게 역경을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물처럼 살자는 노자의 道無水有도 이와 다르지 않다. 도를 행하기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양과 양생이 필요하며 사람이 물과 같이 불영과불행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아내는 노력 없이는 완성하기 힘든 경지다. 이러한 구체적 사태를 신비론적 도론의 차원에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겠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곱씹어 읽어야겠으나 지적 능력의 한계를 가득 느낀다. Text를 번역하여 내 놓은 역자조차 노자 연구에 생애를 바쳤지만 서문에 그가 한말은 여전히 노자를 이해하는 것은 망망대해 일엽편주라 했다. 읽기 전에는 와 닿지 않았으나 읽고 난 후 깊이 이해되는 말이다. 노자는 인간으로서 알지 못함이 큼으로 말을 많이 할 수 없다 했거늘 그런 현자가 자신만이 흐리멍덩하고 제 아닌 사람이 현명하다 이른 말에 대해 우리는 부끄러워 쥐구멍을 찾을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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