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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26일 07시 14분 등록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2000

 

 

저자에 대하여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1883년 크레타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났다. 터키의 지배하에서 기독교인 박해 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으로부터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상적 특이성을 체감하고 이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과 연결시킨다. 1902년 아테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재학 중에 수필 <병든 시대>와 소설 <뱀과 백합>을 출간했고, 희곡을 쓰기도 했다. 1908년 파리로 건너간 그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게 된다.

 자유에 대한 갈망 외에도 카잔차키스의 삶과 작품에 큰 영향을 준 것은 여행이었는데 1907년부터 유럽과 아시아 지역을 두루 다녔고, 이때 쓴 글을 신문과 자지에 연재했다가 후에 여행기로 출간했다. 1917년 펠로폰네소스에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이 기오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탄광 사업을 했고,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를 도와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2년 베를린에서 조국 그리스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참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카잔차키스는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적인 행동주의와 불교적인 체념을 조화시키려 시도한다. 이는 이듬해부터 집필을 시작한 <붓다>와 대서사시<오디세이아>로 구체화된다. 이후에도 특파원 자격으로 이탈리아, 이집트, 시나이, 카프카스 등지를 여행하며 다수의 소설과 희고그 여행기, 논문, 번역 작품들을 남겼다. 대표작의 하나인 <미할리스 대장> <최후의 유혹>은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맹렬히 비난받고 1954년 금서가 되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1955년 앙티브에 정착했다가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다녀온 뒤 얼마 안 되어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두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에 비견될 만큼 위대한 작가로 추앙 받고 있다.

 

 

 

 

 

내 가슴에 무찔러 드는 글귀

 

10 나는 저 동방의 신성한 땅, 제신의 아버지, 프로메테우스가 바위 감옥에 갇힌 채 울부짖던 땅을 생각했다. 우리 그리스 동포들이 바로 그 바위 감옥에 갇힌 채 울부짖고 있었다.

 

13 나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으로도 그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뒤를 돌아보지 마. 앞으로만 가는 거다.> 나는 자신을 타일렀다.

 

13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미래라는 게 예견될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14 그의 표정이 내 내부에 조용한 혁명을 일으켰던 셈이다. 나는 내 원고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았다. 나는 이 새로운 인생에 책 부스러기를 동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15 나는 그 여행이 신비로운 의미를 갖는 것이기나 한 듯이 들뜬 마음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내 사람의 양식을 바꾸려고 결심했던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렀다. 이제껏 너는 그림자만 보고서도 만족하고 있었지? , 이제 내 너를 본질 앞으로 데려갈 테다.

 

16 나는 주머니에서 단테 문고판(내 여행의 동반자)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벽에 기대어 편안하게 앉았다. 나는 한순간 망설였다. 어디를 읽는다? 지옥편의 불타오르는 암흑? 연옥편」의 정화는 불길? 아니면 인간의 희망이 최고의 감정 기준이 되는 대목으로 들어가? 나는 마지막을 취했다. 문고판 단테를 손에 들고 나는 자유를 즐겼다. 아침 일찍 고르는 단테의 시행이 하루 종일 그 운율을 나누어 주리라고 생각하면서.

 

17 <왜요>가 없으면 아무 짓도 못 하는 건가요? 가령, 하고 싶어서 한다면 안 됩니까? , 날 데려가쇼. 요리사라고나 할까요. 당신이 들어 보지도 못한 수프, 생각해 보지도 못한 수프를 만들 줄 압니다.

 

17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22 그렇다, 나는 그제야 알아들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 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26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27 조르바는 세상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시답잖은 수박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확실히 그에게 전신 기술, 증기선, 엔진, 당대의 도덕과 종교는 녹슨 고물 총과 다름없었다. 그의 정신은 세상을 훨씬 앞질러 가고 있었던 것이다.

 

29 나는 바다를 보고 하늘을 바라보면서 후회했다. ….. 얼마나 사랑하면 손도끼를 들어 내려치고 아픔을 참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내 감정을 나타내지 않았다.

 

30 목자 내 식사는 준비되었고 암양의 젖도 짜 두었습니다. 내 집 대문은 잠기어 있고 불은 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내게는 더 이상 음식이나 젖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람이 내 처소이며 불 또한 꺼졌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내게는 황소가 있습니다. 내겐 암소가 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목초지조도 있고 내 암소를 모두 거느릴 씨받이 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내게는 황소도, 목초지도 없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겐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목자 내게는 말 잘 듣고 부지런한 양치기 여자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여자는 내 아내였습니다. 밤에 아내를 희롱하는 나는 행복합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붓다 내게는 자유롭고 착한 영혼이 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 영혼을 길들여 왔고, 나와 희롱하는 것도 가르쳐 놓았습니다. 그러니 하늘이여, 마음대로 비를 내려도 좋습니다.

 

31 목자는 통곡하기 시작했다. 내게 그의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목자는 울부짖고 있었고

나는 바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물고기처럼 깊은 잠 속으로 가라앉았다.

 

32 종이 울려 아침 식사 시간을 알렸다. 푸르뎅뎅하고 누렇게 뜬 얼굴들이 선실에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33 얼굴은 화색이 돌면서 더욱 침착해졌고 입술의 선은 시간이 감에 따라 부드러워졌다. 나는 천

천히 졸음을 털고 다시 아침을 맞는 그를 은밀하게 바라보았는데 그의 눈은 시간과 더불어 광채

를 더해 갔다.

 

35 내가 보기에는, 두목은 배고파 본 적도, 죽여 본 적도, 훔쳐 본 적도, 간음한 적도 없는 것 같

은데?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세상 돌아가는 꼴을 알 수 있겠어요? 당신 머리는 순진하고 살갗

은 햇빛에 타보지 않았어요. 그는 노골 적으로 무시하고 있었다.

 

39 붓다의 노래가 내가선 대지에서 솟아나 내 존재의 심연으로 들어왔다. <내 언제면 혼자, 친구

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

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

, , 언제면?>

 

45 인생이 갑자기, 동화, 아니면 셰익스피어의 연극 템페스트의 도입부가 된 꼴이었다.

 

49 바다가 펼쳐지는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달려온 듯한 파도가 크레타 섬의 해안을 물어뜯고

있었다.

 

49 내 마음에 크레타의 시골 풍경은 잘 다듬은 산문, 단정한 어순, 절도 있는 표현, 군더더기 수

식을 피한 강력하고도 절제된 산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산문은 필요한 모든 것을 극히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법이다. 여기엔 경박한데도, 작위적인 구석도 없다. 표현해야 할 것은 위

엄있게 표현하지만 엄격한 행간에서는 의외의 감성과 애정을 느낄 수 있다.

 

50 옛날엔 어쩔 수 없었지만 불필요해진 지금도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일종의 본능적인 방어 행

위였다. 과거의 필요가 여전히 그들의 행동 리듬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50 해가 오른 하늘은 맑았다. 나는 암초 사이에 앉은 갈매기처럼 바위틈에 앉아 오래 바다를 응

시 했다. 내 육신은 기운이 넘쳐 내 말을 순종했다. 마음은 파도를 응시하다 한줄기 파도가 되어

순순히 바다의 율동으로 잦아들었다.

 

53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에 이를 수

도 있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63 저녁노을이 마당에 황금 전지를 뿌리는 것 같았다.

 

64 모든 여자 뒤에는 위엄이 있고 신성하고 신비스러운 아프로디테의 얼굴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조르바가 보고 말하고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얼굴이었다. 오르탕스 부인은 덧없는 순간의 투명

한 가면에 지나지 않았고 조르바는 이 가면을 찢고 영원한 입술에 키스하는 것이었다.

 

67 조용히, 애무하듯이 그는 꿀처럼 짙고 느린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있었다. 대지, , 생각 그리

고 인간의 전 우주가 먼바다로 흘러들고 있는 것 같았다. 조르바는 저항도, 질문도 하지 않고 행

복하게 떠내려가고 있었다.

 

69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한숨이 나를 현실로 되돌려 놓은 듯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70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란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

 

73 하지만 저 청동 손 속에 갇혀 있을 때만이 우리는 자유롭다고 생각을 해보시죠. <하느님>이란

단어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똑 같은 의미의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세요?

  여자는 불안스러워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눈은 잿빛으로 빛났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모르겠어요.여자는 이렇게 말하고는 지나갔다.

 

74 그랬다. 내 행실이 부끄러웠다. 조르바의 말이 옳았다. 청동 손은 멋진 구실이었다. 만나는 데

성공했고, 다정한 말이 오고 갔다. 우리는 서서히 하느님의 손안에서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포옹

하고 결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갑자기 이야기를 땅 위에서 하늘로 비약하게 했

고 여자는 놀라 달아나 버린 것이었다.

 

77 이야기하세요. 조르바. 뭐든 이야기해요!

  그가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케도니아 전체가, 산이, 숲이, 냇물이, 코미타지 게릴라가, 부지런한

여자들과 건강한 사내들이 그와 나 사이의 좁은 공간 가득히 펼쳐지는 것이다.

 

77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자신에게 묻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82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 같은 권리가 있다, 이 따위 소리는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

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고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할 거요. 두목, 좋은 걸다 걸고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83 별이 빛났고 바다는 한숨을 쉬며 조개를 핥았고 반딧불은 아랫배에다 에로틱한 꼬마 등불을

켜고 있었다. 밤의 머리카락은 이슬로 축축했다.

 

96 영혼은 바람이 되고, 바람은 정신이 되었으며, 정신은 무가 되었다.

 

97 붓다의 폭풍이 나를 엄습하여 내 육신을 지치고 텅 비게 만들어 놓고 떠난 것이었다.

 

97 나는 언어에 감금되고 언어에 의해 타락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98 나는 행복했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행복을 체험하면서 그것을 의식하기란 쉽지 않다.

복한 순간이 과거로 지나가고, 그것을 되돌아보면서 우리는 갑자기(이따금 놀라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그 크레타 해안에서 나는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가

행복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98 오후면 나는 알이 고운 모래를 한 줌 쥐었다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그 따뜻하고도 부

드러운 모래의 촉감을 즐겼다. 손은, 우리의 인생이 새어 나가다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모래시계

였다. 손 그 자체도 사라져 갔다.

 

98 꼬마는 나를 돌아보며 이런 놀라운 말을 했다. 오그레 삼촌, 나는 쑥쑥 자라 나는 뿔이에요

. 그게 참 기뻐요.」 나는 놀라고 말았다.

 

103 천성이란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당신도 마찬가집니다. 당신은 머리끝에서 손톱끝까지 조르바

라는 겁니다.

 

103 두목 그 말씀 다시 한 번 해주시오. 내게 용기를 좀 주시오.

    그저 해나기만 하면 돼요!

    조르바의 눈이 다시 빛났다.

 

104 그를 보고 있노라면, 늙은 육신 속에 그 몸을 들어다 어둠 속에 유성처럼 던져 버리고 싶어

안달을 부리는 영혼이 하나 있는 것 같았다.

 

106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조르바를 보며, 나는 내가 만든 유치한 이야기

에 몸을 떨며 조르바가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거나 아닐까 하고 마음을 졸이는 것이었다.

 

109 두목, 내 말 알아듣겠어요? 그 친구는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춤으로 추는 겁니다. 나도 똑같이

했지요. 우리는 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발로 손으로 배로, 하이, 하이, 호플라, 호하이 따위의

장단으로 표현하기로 한 거지요.

 

130 내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놈의 상처는 잘도 아뭅디다. 빨강, 노랑, 검정 천

조각을 굵은 실로 요리 꿰매고 조리 꿰맨 돛을 보셨을 게요. 아무리 사나운 폭풍우에도 찢어지지

않아요. 내 가슴도 그것 비슷합니다. 구멍이 뿡뿡 뚫어져 조각조각 갖다 기웠지요. 아무것도 두려

워할 필요가 없어요!

 

132 이튿날 비가 다시 내렸다. 하늘과 대지는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다정하게 어울렸다.

 

132 나는 일어서서 거지처럼 손을 내밀고 빗방울을 받았다. 별안간 울고 싶었다. 내 것이 아닌,

보다 깊고 막연한 슬픔이 축축한 대지 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133 부드럽게 비가 내리는 시각에 그 비가 내부의 슬픔을 일깨운다는 것은 얼마나 관능적으로

즐거운 일인가! 그럴 때면 의식의 심연에 숨어 있던 쓰디쓴 추억, 친구와의 이별, 사라져 버린 여

자의 미소, 날개를 잃고 다시 구더기가 되어 버린 나방의(구더기는 내 심장으로 기어오르며 심장

을 갉아먹고 있었다) 덧없는 희망 같은 쓰디쓴 추억이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른다.

 

133 나는 철필을 쥐고 종이 위에 엎드려 빗줄기로 짜인 그물을 찢고 다시 숨을 쉴 수 있도록 그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134 그 사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드러내고 싶으면 펄쩍 뛰어 일어나 춤을 춘다네. 춤으

로도 안되면 산투르를 무릎에 다 올려놓고 켜기도 하네.

  이따금 이 사람은 야만스러운 노래도 부르는데,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삶이 아무 색깔도 없어 보

이고 비참하게 보이고 덧없이 느껴져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진다네.

 

135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135 나도 깨달았네. 이제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고 마는, 유쾌하고도 변덕스러운 조물주를 사귄

나머지는 나는 이제 내가 맡은 역에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충실할 수 있을 것이네. 즉 용기를

잃지 않고 틀림없이 해내겠다는 것이네. 깨달음으로 나는 신을 연기하는 무대의 공연자가 된 것

이네.

 

139 아무리 보아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수선화를 생전 처음으로 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더니 한숨까지 쉬었다. 그는 꽃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르고 있는지도, 우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 거예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릴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만물(, , , 그리고 사람들)을 안을 수 있을까요? 두목 어떻게 생

각해요? 당신이 읽은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습디까?

 

149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

이오.

 

150 그래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

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 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

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의 사랑과 책에 대한 사랑을 선택하라

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162 나는 일에 몸을 빼앗기면, 머리꼭지부터 발끝까지가 잔뜩 긴장하여 이게 돌이 되고 석탄이

 되고 산투르가 되어 버린단 말입니다. 두목이 갑자기 내 몸을 건드리거나 말을 걸면 돌아봐야죠?

 그럼 꼭 부러져 버릴 것 같습니다. 이제 아시겠어요?

 

163 내가 소리를 질렀다. 적어도, 나는 소리를 질렀다고 생각했다. 뒤에 안 일이지만 내 소리는

목구멍으로 나오지도 못했던 것이었다. 공포가 내 목을 조여 버린 것이었다.

 

164 자네들 곡괭이를 두고 왔지? 조르바가 화를 내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인부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왜 안가지고 나왔어? 조르바가 험악한 어조로 나무랐다.

팬티에 오줌이나 찔끔거렸겠지! 연장이 불쌍하지도 않아?

 

169 잘들어요, 하느님이 당신 같았더라면 마리아를 찾아가지도 않았을 테고, 그랬더라면 그리스도

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거요. 그럼 하느님이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신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겁니다. 하느님은 마리아에게 가셨다. 마리아는 과부다. 어때요?

 

169 해변을 따라 걸으려니 밤은 물가에 누운 거대한 검은 짐승 같아 보였다.

 

171 지금, 나이를 먹은 지금….. 나이 먹으면 대가리가 물렁물렁 해지는 걸까요, 두목. 나는 그런

이야기를 다시 믿기 시작했어요. 사람이란 참 요상한 거야!

 

174 밖은 추웠고 바다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금성이 동쪽 하늘에서 까불락거리고 있었다.

는 물가를 걸으며 파도를 희롱했다. 파도가 나를 적시러 몰려올 때마다 나는 달아났다.

 

174~175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

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178 나는 나비의 가녀린 시체만큼 내 양심을 무겁게 짓누른 것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서둘지 말고, 안달을

부리지도 말고, 이 영원한 리듬에 충실하게 따라야 하다는 것을 안다.

 

190 잠은 부인을 번쩍 들어 동방의 대도시로(인적이 없는 정원과 사랑 좋아하는 파샤의 음침한

하렘으로)데려다 놓았다. 부인은 낚시하는(낚싯줄 네 개를 던져 전함 네 척을 낚는)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193 나는 달빛을 받고 잇는 조르바를 바라보며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든 것(여자, , , 고기, )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나는 우주와 인간이

그처럼 다정하게 맺어진 예를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196 인간 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육체와 불만의 호소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을 추상적인 관념으로 승화시켜 보라. 정신의 도가니 속에서 연금술의 과정을 좇아 순화시키고 증발시켜 보라.

 

196 전에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시편들이 그날 아침에는 느닷없이 지적인 광대놀음, 세련된 사기극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문명의 사양은 그렇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인간의 고뇌는 정교하게 짠 속임수(순수시, 순수 음악, 순수 사고)속에서 그렇게 끝나기 마련인 것이다.

 

196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 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196 나는 놀랐다. 붓다가 그 최후의 인간이다! 나는 부르짖었다. 이것이 그의 비밀이며 엄청난 의미다. 붓다에겐 스스로를 비운 <순수한>영혼이 있다. 붓다의 내부는 공허하며 그 자신이 바로 공이다. 네 육신을 비워라, 네 정신을 비워라, 네 가슴을 비워라!

 

196 나는 생각했다. <내 기필코 언어를 동원하고 언어의 주술적인 힘을 빌리고 그 마술적인 율동에 의지하여 그를 포위 공격하고 무찔러 내 오장 육부에서 내쫓고 말리라>하고.

 

197 예술은 우리의 오장육부에 도사리고 있는 어둠의 살인적인 힘을 충동질한다. 필사적으로 살인과 파괴와 증오와 타락을 충동질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술은 달콤한 노래로 다시 나타나 다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이다.


199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매일 아침 그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세계를 본다. 아니, 보는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199 태초에 이 땅에 나타났던 사람들의 경우처럼, 조르바에게 우주는 진하고 강력한 환상이었다. 별은 그의 머리 위를 미끄러져 갔고 바다는 그의 관자놀이에서 부서졌다. 그는 이성의 방해를 받지 않고 흙과 물과 동물과 하느님과 함께 살았다.

 

201 하기야 자네에겐 카페는 카페가 아닐 것이네. 책이 그렇고 자네 습관이 그렇고 그 알량한 이데올로기가 그럴 것이네. 그러나 어쩌랴. 그게 다 카페인 것을…..

 

203 번 돈의 반쯤은 떼어 내어 아무렇게나 어디서나 마음 내키는 대로 써버리네. 내가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이 내 노예인 것.

 

204 죽기 전에 되도록 많은 땅과 바다를 보고 촉감하고 싶었다.

 

205 내 편지를 열자마자 자네가 잔뜩 흥분하면 곤란하니까 이 위험천만한 단어는 괄호에다 가두어 놓겠네(맹수를 쇠창살로 가두듯이 말이네.)

 

212 두목, 겁나는 게 무엇인고 하니 나이 먹는 것이에요. 하늘이 우리를 지키소서! 죽는다는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늙는다는 건 창피한 노릇입니다.

 

213 두목, 내 속에도 악마 같은 게 들어 있어요. 나는 그 악마를 조르바라고 부릅니다. 속에 있는 조르바는 나이 먹는 걸 싫어해요.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먹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먹지 않을 거예요.

 

214 하느님이 그런 짐승을 이 땅으로 내려 보낸 건 우리 같은 놈들을 잡아먹어 주어 타락을 막기 위해서일 겁니다.

215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 (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 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215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215 당신이 내 사색, 내 약점, 내 헛소리를 (이 세가지가 어디가 다릅니까? 글쎄요. 모르겠어요)실컷 비웃어도 좋아요. 웃는다고 생각하니 우습군요. 그러니 세상에 웃음이 흔하지요. 사람에겐 바보 같은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바보 같은 놈은, 내 생각에는 바보 같은 구석이 없는 놈일 것입니다.

216 우리가 아는 건 고약한 냄새 하나, 소위 <인간성> (즉 인간의 냄새라는 겁니다)이라는 냄새가 하나 잇다는 겁니다.

 

221 당신에겐 하느님 같은 물 묻은 스펀지가 있습니다. 쓱싹쓱싹! 그럼 내 죄는 다 닦입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런 고백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들어요.

 

223 그는 영원히 놀라고, ,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서 나무와 바다와 돌과 새를 보고도 그는 놀란다. 그는 소리친다.

<이 기적은 도대체 무엇인지요? 이 신비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나무, 바다, , 그리고 새의 신비는?>

 

224 그 고독한 크레타 해안에 갇혀, 우리는 우리 인생의 비탄과 행복을 송두리째 가슴으로 안고 있었다. 비탄과 행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226 조르바에게 복 있을진저.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243 햇빛이 쏟아져 빛으로 바위를 씻어 내고 있었다.

 

248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는고 하니, <값진 보배를 얻으려면 가진 것을 모두 팔라>고 하셨습니다. 값진 보배가 무엇인가요? 영혼의 구원이지요.. 선생님, 당신은 지금 이 보배를 얻고 있는 중입니다.

 

252 존재의 심연에서 나는 소리쳤다. <유아독존! , 대지여! 나는 그대의 막내, 그대 젖줄을 빠는 나는 그대를 놓치지 않으리라. 그대는 다만 한순간의 삶을 내게 베풀겠지만 그 한순간의 젖이 되고 나는 그 젖을 빨 것이오.>

254 나는 벌떡 일어났다.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행복했다. 나는 옷을 벗고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신이 난 파도가 저희들끼리 희롱하고 있어서 나도 파도를 희롱했다. 물에서 지친 나는 물에서 나와 밤바람에 몸을 말렸다. 그러고는 대단한 위험에서 탈출했다는 기쁨, 아직도 나는 어머니 대지의 가슴에 꼭 안겨 있다는 기분으로 성큼성큼 그곳을 떠났다.

 

263 나는 갱도를 나와 바다 쪽으로 내려갔다. 거기에서 들고 갔던 책을 펼쳤다. 배가 고팠지만 나는 그걸 잊어버렸다. <명상도 일종의 광산이 아닌가. 그럼 나도 파야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정신의 거대한 갱도 속으로 들어갔다.

 

264 위대한 금욕주의자는 제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가르친다.

자기 자신 안에 행복의 근원을 갖지 않은 자에게 화 있을진저!

남을 즐겁게 하려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금생과 내생이 하나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264 붓다, 하느님, 조국, 이상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266 조르바, 돋보기로 태양 광선을 한 곳에다 집중시키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시지요? 그곳엔 불이 붙지 않아요? ? 태양열이 분산되지 않고 바로 그 지점에만 모이거든. 우리들의 정신도 이와 같아요. 정신을 한곳, 오직 한 곳에만 집중시키면 당신도 그런 기적을 일으킬 수 있지요. 알아듣겠어요, 조르바?

 

279 하느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이곳에 오시어 맨발로 봄 풀 위를 걸으시다 조용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 같았다.

 

283 ….. 퉤퉤! 목이나 매고 뒈져야지. 마귀 한 마리씩 안 품은 놈은 하나도 없어. 여자에게 침을 흘리는 놈, 절인 대구에 미친 놈, 돈에 홀린 놈, 신문이 보고 싶은 놈,….. 푹 퍼진 국숫발 같은 것들! , 뭐가 답답해서 속세로 기어 내려가 원하는 걸 실컷 처먹어 대가리를 씻어내지 못한담?

 

283 내가 뭘 먹고 싶고 갖고 싶으면 어떻게 하는 줄 아십니까? 목구멍이 미어지도록 처넣어 다시는 그 놈의 생각이 안 나도록 해버려요. 그러면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나는 겁니다.

 

284 내 말 잘 들어요.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287 육중한 은제 램프가 성모상 앞에서 부드러운 빛 줄기로 비탄에 잠긴 길쭉한 얼굴을 매만졌다. 성모의 비탄에 잠긴 눈, 동그랗게 오므린 입술과 강인한 턱은 영원히 잊을 수 없으리라. <자신의 육신으로 불사의 아들을 낳은, 어떤 고난에도 영원한 행복과 만족을 누리는 성모가 여기에 있구나.

 

290 식당 한쪽 끝에는 낡은 <최후의 만찬>벽화가 보였다. 열한 제자들은 흡사 양 떼처럼 그리스도를 둘러싸고 있었고 한쪽에는 붉은 머리카락의 유다가 홀로 서 있었다. 유다는 검은 양이었다. 그는 앞짱구인 데다 매부리코였다. 그리스도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293 조르바 예의를 갖추어야지요, 주교님이시라는데….

내가 목소리를 낮추어 그를 나무랐다

 , 속옷 바람인데 주교가 어디 있어. 들어오쇼, 노형!

 

295 우리의 덧없는 삶 속에도 영원이 있다는 것이오. 우리로서는 혼자서 그걸 뚫어볼 수 없다는 것이오. 우리는 나날의 걱정으로 길을 잃는답니다. 소수의 사람, 인간성의 꽃 같은 사람만이 이 땅위의 덧없는 삶을 영위하면서도 영원을 살지요. 나머지는 길을 잃고 헤매니까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종교를 내려 주신 것이오. 이렇게 해서 오합지중도 영원을 살 수 있게 된 거지요.

 

296 어쩐지 그의 인생의 성패는 내 대답에 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나는 진리 너머 진리보다 훨씬 인간에게 소중한 인간적인 의무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297 나는 늙었어요. 그것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성모님에 대한 온갖 수식어를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속세의 비참한 일상사를 잊게 된답니다.

 

301 굶주린 듯한 벌레들이 끊임없이 붕붕거리며 해적처럼 꽃속을 들락거리며 꿀을 탐했다. 먼 산이, 타오르는 햇빛에 살랑거리는 아지랑이처럼 투명하고 조용히 반짝이고 있었다.

 

301 내가 느끼는 신선하고 상큼하고 소박한 희열 자체가 하느님인 듯했다.(하느님은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을 바꾼다. 어떤 모습으로 변장하든 하느님의 모습을 알아보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한잔의 물이 되는가 하면 무릎 위에서 노는 아이가 되고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가 하면 아침 산책이 되기도 한다.

 

302 조금씩 조금씩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은 변화를 멈추면서 이윽고 꿈이 되었다. 나는 행복했다. 이승과 저승은 하나였다. 한 덩어리의 꿀을 안은 들판의 꽃…. 생명은 내게 그렇게 보였다. 내 영혼은 그 꿀을 탐닉하는 벌이었다.

 

305 저 원대한 희망(결혼)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며 빛을 발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늙은 세이렌은 매력을 깡그리 상실한 것이었다.

 

306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쉬고 있었다. 나는 베개에 팔꿈치를 댄 채 그 희대의 코미디를 구경하며 즐기고 있었다.

 

306 조르바는 자기 무릎 위에서 떨고 있는 부불리나의 통통한 속의 촉감을 느끼고 있었다. 조르바의 무릎은 천 번하고도 한 번 더 난파했던 그 가엾은 여자가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한치의 땅이었다.

 

313 이제 하느님이 보우하사 조금 늦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행운을 잡고, 비록 파도에 찢긴 돛대일망정 펄럭거리며 오래 그리던 항구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315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 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르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잇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315 , 제우스, 저 가엾은 숫양, 귀찮은 내색 한 번 하는 법이 없었어요. 좋아서 그 짓 한 것도 아닐 겁니다. 암양을 네댓 마리 해치우고 난 숫양 본 적 있어요? 침을 질질 흘리고 눈깔에는 안개와 눈꼽투성입니다. 기침까지 콜록콜록 해대는 꼴을 보면 그거 어디 서 있을 성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요, 저 불쌍한 제우스도 그런 고역을 적잖게 치렀을 겝니다.

 

317 어서 오너라. 조르바, 우대한 순교자여, 가서 네 선배 제우스 옆에 누워 쉬어라. 불쌍한 것, 너는 땅에서 네 몫을 했다. 내 너를 축복하지 않고 어쩌겠느냐!>

 

318 제우스, 조르바, 그리고 남풍은 한데 어우러졌다. 어둠 속으로 나는 거대한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수염이 검고 머리카락에 윤기가 도는 이 사내는 허리를 구부리고 대지, 오르탕스 부인의 뜨겁고 붉은 입술을 누르고 있었다.

 

321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이 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322 그래요,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리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326~327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지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329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330 그는 밖으로 달려나와 봄철 망아지처럼 풀밭을 구르고 춤을 추었다.

해가 떠올랐다. 나는 손바닥을 펴고 그 온기를 받았다. 오르는 수액…… 부풀어 오르는 젖가슴…..나무처럼 영그는 영혼…… 영혼과 육체도 같은 물질로 빚어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333 내 머리 위의 별이 움직였다. 내 머리통도 천문대 돔처럼 별자리에 따라 움직였다. 그대도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라, 함께 따라 도는 것처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이 한마디가 내 가슴속에서 조화로운 울림을 지어내었다.

 

336 그러다 보면 맛있는 음식을 배에다 잔뜩 집어 넣게 되지요. 그걸 다 똥으로 삭혀 내릴 수가 있습니까? 남는게 있어서, 그게 기분이 되고 춤이 되고 노래가 되고 말다툼이 도는 거지요. 그게 바로 부활이라는 겁니다.

 

337 나는 물에다 배를 대고 있는 갈매기의 상쾌한 기분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갈매기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옳거니, 바로 저것이지. 절대의 율동을 찾아 절대의 신뢰를 따르는 것이야.>

 

342 나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나는 조용히 규칙 바르게 호흡하는 바다의 숨소리를 들었다. 나도 갈매기처럼 파도 위에 뜬 채 파도의 율동으로 오르내리는 기분이었다.

 

358 몇 시간 뒤 과부는 내 추억 속에 조용히 가라앉으면서 하나의 상징으로 변모했다. 고부는 내 가슴 한복판에 밀랍에 싸인 채 안장되었다.

 

376 앵무새는 새장 바닥으로 뛰어내려 가름대를 발톱으로 거머쥔 채, 조르바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게 여주인의 눈꺼풀을 내려 주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385 ……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많은 책 말인데…. 그게 뭐 좋다고 읽고 있소? 왜 읽고 있는 거요?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이 책에 없다면 대체 뭐가 쓰여 있는 거요?

 

386  ….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어디 그 이야기 좀 들읍시다.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을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50톤 십어 삼켰을테지요. 그래서 얻어 낸 게 무엇이오?

 

389 육체가 와해되어 버린 뒤에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의 잔재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영원은 우리가 영원불멸 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 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390 슬리퍼는 여전히 주인의 발 모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잇엇다. 인간의 마으보다 더 충직한 슬리퍼는 발에게 푸대접을 받았으나 사랑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었다.

 

391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 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 데서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

 

397 두목도 눈치챘지요? 저 친구의 악마는 죽었어요. 저 친구 이제 텅 비어 버렸습니다. 가엾게도 쭉정이가 되어 버렸으니 노름이 끝난 거지요.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 수 있을 겝니다.

 

407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별의별 고생을 다 하다 말고 조르바 쪽을 돌아다보았다.

 이런 악당 같으니…..내가 속삭였다.

그러나 조르바는 수도승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은 놀라움으로 휘둥그레진 채 시종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듯이 연방 성호를 긋고 있었다.

 

409 조르바가 목매달려 죽은 개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수도승들과 마을 사람들은 멀찍이 물러섰고 놀란 노새들이 발을 쳐들며 기승을 부렸다. 데메트리오스는 놀라 나자빠졌다.

 

416 조르바의 춤을 바라보며 나는 처음으로 무게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처절한 노력을 이해했다. 나는 조르바의 인내와 그 날램, 긍지에 찬 모습에 감탄했다. 그의 기민하고 맹렬한 스텝은 모래 위에다 인간의 신들린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416 두목, 아까 불꽃의 소낙비 보았소?

우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조르바는 내게 다가와 끌어안고 키스했다.

두목, 당신도 그 이야기 들으니 우습소? 당신도 우습소? 좋고말고!

 

417 나는 새벽에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해변을 따라 마을로 향했다. 내 심장은 가슴속에서 뛰고 있었다. 내 생애 그 같은 기쁨은 누려 본 적이 없었다. 예사 기쁨이 아닌, 숭고하면서도 이상야릇한,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 같은 것이었다. 설명할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극을 이루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잃었다. , 사람, 고가선, 수레를 모두 잃었다. 우리는 조그만 항구를 만들었지만 수출할 물건이 없었다.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417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417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혹자는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혹자는 악마라고 부르는)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는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418 나는 해변을 따라 잰걸음으로 걸으며 내 적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호령했다. 내 영혼에는 들어오지 못해.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어. 나를 뒤엎는다니, 어림없는 수작!

 

420 정오가 가까워 내 검은 그림자는 발밑으로 모였다. 황조롱이가 머리 위를 돌았다. 날개를 어찌나 빨리 움직이는지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자고가 내 발소리를 듣고 관목 숲에서 달리다 기계적으로 푸르르 날아올랐다.

 

423 내 입술은 독이라도 배어 나온 듯 쓰디썼다.

 

423 내 존재의 심연에서 이상환 확신, 이성보다 더 구체적이고 순전히 동물적인 확신이 나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동물들이(양이나 쥐가)지진을 예지하는 그런 확신이었다. 내 내부에서 눈을 뜨는 것은 이 땅에 처음 나타난 인간의 영혼, 우주에 밀착하여 이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주의 진리를 직접 흡수하는 그런 영혼이었다.

 

426 그래요, 조르바. 당신 덕택이에요.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 볼까 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427 그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신비로운 것인가.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처럼 만났다가는 헤어지면서도 우리의 눈은 하릴없이 사랑하던 사람의 얼굴 모습, 몸매와 몸짓을 기억하려고 하니…. 부질없어라, 몇 년만 흘러도 그 눈이 검었던지 푸르렀던지 기억도 하지 못하는 것을.

 

428 영영이라니!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나는 이 엄청난 말을 홀로 되씹은 적은 있지만 밖으로 큰 소리로 터져 나오리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몹시 놀란 것이었다.

영원히지요.조르바는 힘들여 침을 삼키면서 대답했다.

 

429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429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예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 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지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

 

429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430 뭐가 부족해요? 젊겠다, 돈이 있겠다, 건강하겠다, 사람 좋겠다, 만고에 부족한 게 없어요. 하나도 없지. 한 가지만 제외하고! 바보짓말예요. 그게 없으면 두목, 글쎄요….

 

431 그러니 후딱 끝내야 한다는 겁니다! 그는 술을 더 마시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술잔을 뒤집으며 소리쳤다. …. 맺고 끊는 데가 있어야지요. 남자가 담배와 술과 노름을 끊을 때처럼. 그리스 영웅. 그러니까 팔리카리처럼 말이오.

 

433 순간 글자가 내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나는 글자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글자가 천천히 제자리를 잡자 나는 읽었다.

 

436 <두목, 이런 말을 해서 어떨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가망 없는 펜대 운전사올시다. 평생에 한 번이라도 그 아름다운 녹석을 봐야 하는 건데, 당신은 보지 않았어요. 젠장, 일이 없을 때 나는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지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하고. 그러나 어제 당신의 편지를 받고 나는 두목 같은 펜대 운전사에게는 지옥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441 새벽이 되기 조금 전 그 행복의 안개 속에서 조르바가 꿈으로 나타났다. 그가 무슨 말을 했던지, 왜 왔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깨었을 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까닭 모르게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와 더불어 크레타 해안에서 함께 보냈던 생활을 재구성하고, 기억을 더듬어, 조르바가 내 마음에다 뿌렸던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모아 보존하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442 내 무릎 위에는 탈고한 원고가 놓여 있었다. 나는 짐 한 덩어리를 내려놓은 것처럼 느긋했다. 갓 나온 아기를 안은 여자 같은 기분이었다.

 

442~443 내겐 그리스에 친구가 하나 있소. 내가 죽거든 편지를 좀 써주시어,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 그 사람의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445~446 그가 <여행>이라고 부르는 것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그 자신의 <육체>, <>이라고 부르는 것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그 자신의 <영혼>인 듯하다. 구체적인 체험으로서의 여행이 추상적인 꿈을 심화시키고 그 꿈이 여행의 무대를 확장시키듯이, 그의 삶이라는 것도 육체와 영혼의 상호 작용을 통한 심화와 확장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여행과 꿈이 상호 작용을 통하여 늘 그의 삶을 풍부하게 하듯이, 영혼과 육체는 변증법적 상호 작용을 통해 그의 존재를 드높이는 것이다.

 

448 키잔차키스의 삶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448 카잔차키스가 자기 영혼에 깊은 골을 남긴 사람들 이름 중 가장 먼저 꼽은 사람은 호메로스이다. 그리스 민족 시인 호메로스는 그의 고향 크레타이자 조국 그리스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는 호메로스에서 출발한다. 호메로스라는 이름은 카잔차키스라는 존재의 정체이기도 하다.

 

449 그리스 문명의 유적은 새로운 신격을 통하여 구원을 얻으려 하는 그의 영혼 앞에 어떤 깨달음도 베풀어 내지 못했다. 그는 유적의 배후에 도사린 의미 속으로 파고들어 그 의미와 하나 되고자 했다. 그는 이로써 호메로스를 육화하고자 했다.

 

449 이 조국 그리스 여행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혼자 수니온까지 갔다. 여름이어서 소나무 둥치의 갈라진 틈에서는 송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대기에서 송진 냄새가 났다. 메뚜기 한 마리가 내 어깨 위에 앉았다. 그 순간 나는 소나무가 되었다. 나는 젊은 여인의 얼굴에서 노파의 얼굴을 읽으려는 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리스라는 이름의 노파 얼굴에서, 이제는 사라져 버린 소녀의 생기와 젊음을 다시 창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행이 끝날 즈음, 내 눈은 그리스로 가득 찼다. 투쟁을 방불케하는 그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명에 대한 인식, 그리스의 업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었다는 깨달음이었다. 나를 이끌어 성인의 세계로 안내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

454~455 그가 베르그소에게 경도된 것은, 인간 존재란,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딛고 넘어가게 마련된 단계에 불과한 것, 따라서 <>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도약의 디딤돌로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의 예감을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인연을 끊고 <>과 외로운 싸움을 벌이기로 마음먹은 호전적인 청년에게 이 만남은 충격적인 시대사조의 체험이었다.

 

456 붓다의 <자비>를 통해 우리는 육체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육체에서 해방되어 결국은 모든 것과 하나가 된다. 정복하라, 이 세상의 모든 유혹 가운데 가장 무서운 유혹인 희망을 정복하라.

 

457 오디세이아에서도 이러한 불교적 세계 인식은 고스란히 되풀이된다. 오디세우스가 사랑의 체험을 묻자 창녀 마르가로는 이렇게 말한다.

온통 초라한 세상이지만 그대와 나는 존재합니다!(……..) 그대여, 마침내 나는 우리 둘이 하나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오디세우스는 마르가로의 말을 받아 이렇게 훈수한다.

「그 하나, 그 하나까지도 텅 빈 공허로다!

 

457 그는 인식의 주체인 <>, 인식의 객체인 세계를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말하자면 대극하는 무수한 개념을 하나로 통합함으로써 초라한 언어를 통한 온갖 시비를 삶 속으로 녹여 들인다. 그래서, 그가 아몬드 나무에게 신이 무엇이냐고 묻자 아몬드 나무는 대답 대신 꽃을 피워 버리는 것이다.

 

458 「너, 오디세우스여, 오디세우스의 영혼이여, 네 고향 이타카에 집착하지 말라. 너의 항해가곧 너의 고향인 것을…..

 

459 호쾌하고 농탕한 사나이 조르바는, 떠도는 인간 카잔차키스가 한동안 쉬어 가고 싶어 하던 구원의 오아시스였다.

 

460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느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 물리적, 화학적 변화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거룩하게 되기>가 바로 이것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인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메토이소노>.

 

460 <보라, 조르바는 사업체 하나를 <>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 <거룩하게 만들기>이다. 나는 조르바라고 하는 위대한 자유인을 겨우 책 한 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다.

 

462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등등,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도출하려던 그에게 육체와 영혼은 둘이 아니라 하나였다.

 

463 생전에 그가 마련해 놓은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내가 저자라면

 

흥미진진함과 깊은 감동으로 읽는 내내 웃고 울었다. 내 안에 숨쉬고 있는 세포들까지도 춤추게 만들었다. 조르바를 통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다짐했으며, 이 책을 덮고 난 지금도 크레타 섬의 아름다운 풍광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이런 위대한 조르바를 책 속에 담아낸 니코스 카잔카차키스에게 찬사를 보낸다.

조르바의 춤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나를 내려놓고 춤을 출 수 있을까? 무언가 표현하고 싶을 때 제대로 되지 않고 막혀버리면, 조르바처럼 춤을 추면서 표현해야겠다. 글을 쓸 때에도 마찬가지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 내 안에 조르바를 불러내어 마음대로 휘갈겨 보자. 진정한 내면의 모습이 순간, 툭 튀어 나오지 않을까?

이 책은 저자는 자신과 정반대의 모습인 조르바를 등장시켜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저자는 점점 자유인이 되어 갔으며, 결국 조르바와 하나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가진 꽃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나 또한 내면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끄집어 내어, 그의 삶 속으로 녹아 들어가 나 만의 이야기를 써보고 것이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책으로 꽃을 피우고 싶다.

 

새벽이 되기 조금 전 그 행복의 안개 속에서 조르바가 꿈으로 나타났다. 그가 무슨 말을 했던지, 왜 왔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깨었을 때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까닭 모르게 내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와 더불어 크레타 해안에서 함께 보냈던 생활을 재구성하고, 기억을 더듬어, 조르바가 내 마음에다 뿌렸던 말, 절규, 몸짓, 눈물, 춤을 모아 보존하고 싶다는 욕망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4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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