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레몬
  • 조회 수 766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3년 2월 26일 07시 40분 등록

앙드레 지드

 

1869년 파리 출생. 아버지는 법학 교수였다. 아버지가 일찍 죽고 난 뒤 어머니의 엄격하고 철저한 청교도 교육 속에서 자랐다. 지드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회고하였다. 자신이 받은 교육이 남긴 것은 자기혐오와 죄의식뿐이었다고 술회했다. 규칙적인 학교 교육을 싫어하여 중퇴하여 19세부터 창작을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시인이 되려고 하였으며 말년에는 희곡 작품에 손대기도 하였으나 대부분 소설을 집필하였다. 1891 <앙드레 왈테르의 수기>를 발표하면서 정식으로 등단하였다. 지드의 어린 시절의 죄의식은 청년기에 발견된 동성애적 성향으로 더욱 뚜렷해졌다. 그러나 지드는 이것을 반전의 기회로 만든다. 자신의 가장 큰 고통의 근원을 오히려 긴 원죄의식에서 벗어나는 계기로 만들었던 것이다. 인간이 영혼과 육신으로 온전한 행복을 향유한다면 그것이 죄악일 수 있는가? 지드는 신이 인간에게 모든 희열을 향유하며 삶을 충만하게 살도록 허락했다고 믿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행복을 억압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부과한 도덕과 윤리다.

 

지드의 작품은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개인적 자유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의 소산이었다. 인간을 억압하는 엄격하고 경직된 윤리적 규율, 그 부당함에 침묵하는 소시민 사회의 위선적 순응, 예술적 창조성을 억압하는 전통적 미적 기준, 타민족 착취를 정당화하는 식민주의 등에 대해 지드는 목소리를 높였다.

 

1947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4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사상은 사르트르와 카뮈 같은 다음 세대의 가치관이 되었다.

 

<지상의 양식>은 시와 에세이, 여행기, 일기가 뒤섞인 앙드레 지드의 정신적 자서전이다. 아프리카 여행 중 병을 앓았던 지드는 회복기 환자로서 삶을 새롭게 깨달은 뒤 자연과 혼융된 상태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알베르 카뮈는 일찍이오직 지드의지상의 양식이 한 세대에 끼친 충격 이외에는 비견할 만한 것이 없다는 찬사를 던졌다. 종종 인용되는 명구현자(賢者)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가 바로 이 책에서 나왔다.

 

저녁을 바라 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지상의 양식

 

1927년판에 붙이는 저자 서문

 

1. 지상의 양식은 병을 앓는 사람이 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회복기의 환자나 완쾌된 사람, 혹은 전에 병에 걸린 적이 있는 사람이 쓴 책이다. 따라서 이 책에는 하마터면 시적 비약 속에서조차 잃어버릴 뻔했던 그 무엇인 양 삶을 다시 곡 부둥켜 안으려는 자의 과격성이 있다.

 

2. 문학이 몹시도 인공적 기교와 따분한 냄새를 풍기던 시기에 나는 이 책을 썼다. 당시 나는 문학이 다시 대지를 딛고 순박하게 맨발로 흙을 밟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이 얼마나 그 시대의 취미와 충돌하였는가는 그 당시 이 책의 출판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로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이 책을 언급한 비평가는 아무도 없었다. 10년 동안 겨우 500부가 팔렸을 따름이다.

 

3. 내가 이 책을 쓴 것은 결혼으로 내 생활을 정착시킨 직후의 일이다. 당시 나는 자진하여 자유를 포기했지만, 그러자 곧 예술 작품으로서의 나의 책은 그럴수록 더 그 자유의 회복을 요구했다. 내가 이 책을 쓸 때 지극히 성실한 심경이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내가 마음속에 느끼던 반대 감정에 있어서도 또한 나는 진실했다.

 

11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 자기가 성취하려고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성취된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이름을 가르쳐달라. 나는 바로 그들 곁에 '나의' 자리를 잡으리라.

 

6. 또 한마디 - 어떤 사람들은 이 책 속에서 오직 욕망과 본능의 예찬밖에 볼 수 없거나, 혹은 오직 그것만을 보고자 한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좀 근시안적인 소견인 듯하다. 내가 이 책을 다시 펼쳐 들 때 거기서 보는 것은 그런 것보다도 '헐벗음'에 대한 옹호이다. 그것이 바로 다른 모든 것을 버리고도 내가 여전히 간직한 것이요, 내가 여전히 충실한 채로 있는 것도 그것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이 문제에 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 것이지만, 내가 그 뒤 복음서의 교리를 따라 자기멸각 속에서 가장 완전한 자기 완성, 가장 드높은 요구, 그리고 행복의 가장 무제한적인 허용을 발견하기에 이른 것도 실로 그 '헐벗음' 덕분이었다.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도 그대 자신에게 - 그 다음으로는 그대보다도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13 나는 허식도 수치심도 없이 이 책을 썼다.

 

나의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을 던져버려라 - 그리고 밖으로 나가라. 나는 이 책이 그대에게 밖으로 나가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기를 바라고 있다 - 어디서든지 그대의 도시로부터, 그대의 가정으로부터, 그대의 방으로부터, 그대의 사상으로부터 탈출하라. 만약 내가 메날크라면, 그대를 인도하기 위해 나는 그대의 오른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왼손으 그것을 알지 못하였을 것이고, 거리에서 멀어지자 나는 되도록 빨리 잡았던 손을 놓고 말했을 것이다 - "나를 잊어버려라" 하고.

 

1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나의 게으른 행복은 이제 눈을 뜨도다 - 하피즈

 

17 우리들이 삶에 흥미를 갖기 위하여 얼마나 노력해야 했는지 그대는 도저히 모르리라. 그러나 삶이 우리의 흥미를 끌게 된 이제는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이 - 우리를 열광케 하고야 말 것이다.

 

18 과오에서보다 그것을 벌주는 데서 더 많은 쾌감을 느끼며 나는 즐거이 나의 육체를 벌하였다 - 그저 단순히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자부심에 그토록 도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è 과오 = 이탈의 쾌감, 벌주는 데서 = 자부심의 쾌감

 

18 보상이라는 생각이랑 아예 마음속에서 없애버릴 것. 정신의 커다란 장애가 거기에 있다.

 

18 우리의 길이 확실치 않음이 일생 동안 우리를 괴롭혔다. 그대에게 뭐라고 해야 좋을까?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지 생각해보면 무서운 것이다. 의무가 길을 인도해주지 않는 자유란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어디를 둘러보나 낯선 고장에서 택해야 하는 한 갈래 길과도 같아 사람은 저마다 거기서 '자기' 발견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발견이란 다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할 따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è 무슨 뜻으로 저 말을 했을까? "의무가 길을 인도해주지 않는" "자유"를 수식하는데, 상응하는 수식인지(자유는 자유인데 의무가 길을 인도한 자유), 아니면 반대되는 수식인지(의무가 길을 인도하지 않으니까 자유). 그리고 의무가 길을 인도하는 자유가 옳다는 것인지 그르다는 것인지? 나는 무척 이 대목이 알고 싶다.

 

19 나타나엘이여, 그대도 제 손이 든 등불을 따라 길을 더듬어 가는 사람이나 다름 없이 될 것이다.

è 지드와 카를 융의 연대가 궁금하다.

 

19 어디에 가든지 그대는 신밖에 만날 수 없을 것이다. '신이란 우리들 눈앞에 이쓴 것'이라도 메날크는 말하였다.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모든 것을 지나치는 길에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곳에도 멈추지 말라. 오직 신만이 덧없지 않다는 거을 분명히 명심해두어라.

 

'중요성'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어야지 사물 속에 있어서는 아니 될지어다.

 

19 그대가 확연한 지식으로서 그대의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종말에 이르도록 그대와는 확연히 따로 남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에 그러한 것에 그토록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가?

 

20 욕망에는 이득이 있고 또 욕망의 만족에도 이득이 있는 법이다. 왜냐하면 그럼으로써 욕망은 증가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대에게 말하거니와, 나타나엘이여, 욕망의 대상을 갖는다는 그 언제나 허망한 소유보다도 어떤 욕망이든지 욕망 그 자체가 나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느니라.

 

20 이단자들 중에도 가장 이단자이던 나는 동떨어진 의견들, 사상의 극단적인 우회나 엇갈리는 색다른 사고들에 항시 마음이 끌렸다. 어떤 사람이거나 내가 흥미를 느끼는 것은 그가 남들과 다른 점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마음속으로부터 공감이라는 것을 추방하기에 이르렀다. 거기에는 다만 공통적인 감동의 인식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타나엘이여, 공감이 아니고 사랑이어야 한다.

 

21 행동의 선악을 '판단'하지 말고 행동할 것. 선인가 악인가 개의하지 말고 사랑할 것.

è 내 소설에 쓰일 수 있다.

 

21 나타나엘이여, 내가 그대에게 열정을 가르쳐주마.

è 이 구절을 나는 얼마나 사랑하였던가! 오래된 지음을 만난 것처럼 내 가슴은 떨리고 흥분된다!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 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 잠드는 휴식 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생전에 만족시키지 못한 모든 욕망, 모든 정열이 나의 사후까지 살아남아서 나를 괴롭히게 되지 않을까 두렵다. 내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모든 것을 이 땅 위에 털어놓고 나서 더 바랄 것 없는 완전한 '절망' 속에 죽기를 나는 '희망'한다.

è 이 책은 나의 복음이다!

 

공감이 아니고, 나타나엘이여, 사랑이어야 한다. 그대도 알터이지만 그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다금 슬픔이나 근심, 괴로움에 내가 동정을 기울일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지나 않을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런 것들을 좀처럼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다. 인생의 근심은 각자에게 맡겨두라.

 

22 이 이상 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어 나는 눈물이 난다.

è 완전한 '절망' 속에 죽기를 나는 희망한다.

 

22 나타나엘이여, 다른 사람이 아무도 그대에게 준 적이 없는 기쁨을 나는 그대에게 주고 싶다. 그것을 어떻게 그대에게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 기쁨을 확실히 가지고 있다. 다른 어느 사람이 한 것보다도 더 친말하게 나는 그대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대가 책 속에서 여태껏 받은 계시보다도 더 많은 것을 찾으면서 여러 책들을 펼쳤다가 다시 접고 그래도 만족되지 않아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을 무렵, 밤에 허전한 마음을 금치 못하여 그대의 열정이 슬픔으로 변하려는 그러한 시각에 나는 그대 곁으로 가고 싶다. 나는 오직 그대를 위하여 이 글을 쓰며 오직 그러한 시각을 위해서 그대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책은 어떻나 개인적 사상도 감동도 보이지 않는, 다만 그대 자신의 열정의 투사만을 그대가 그 안에서 보게 될 그러한 책이다. 나는 그대 곁으로 다가가고 싶다. 그리고 그대가 나를 사랑하게 되기를 바란다.

è 소설 적용

è 메날크는 나타나엘이 자기를 사랑하기를 바란다.

 

23 나의 감동들은 종교와도 같이 활짝 개방되었다. 그대여, 알겠는가. 모든 감각은 무한한 '현존'이라는 것을.

 

나타나엘이여, 그대에게 열정을 가르쳐주리라.

빛이 유황에 연결되어 있듯이 우리들의 행동은 우리들에게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우리들을 태워버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또한 우리들의 광휘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넋이 무슨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의 넋보다 더 치열하게 땄기 때문인 것이다.

 

23 메날크여, 그대는 나에게 예지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예지가 아니라 사랑이었다.

 

24 나타나엘이여, 나는 메날크에게 우정 이상의 것을 가졌다. 그것은 거의 사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나는 또한 그를 형제처럼 사랑하였다.

 

메날크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를 두려워하라. 그는 현자들에게는 스스로 그들에게 배척을 당하도록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는 인물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사랑하는 것을 그치고 가정을 떠나라고 가르칠 뿐만 아니라 야생의 새큼한 과실에 대한 욕망을 일으켜서 그들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야릇한 사랑으로 번민하게 한다. 아아, 메날크여, 나는 그대와 더불어 또 다른 길들을 달리고 싶었거늘, 그러나 그대는 약한 마음을 미워하였고 나에게 그대를 떠나라고 가르쳐주었다.

 

24 누구에게나 신비로운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만약에 과거가 현재에 이미 하나의 역사를 투영하지 않는다면 현재는 모든 미래로 충만할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유일한 과거가 유일한 미래를 계시할 뿐 - 공간 위에 놓인 무한히 긴 다리처럼 우리들 앞에 단 하나의 미래를 내던지는 것이다.

 

25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 그것만은 아무리 애써도 하지 못할 것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인간성의 최대한을 짊어질 것, 이것이야말로 좋은 공식이다.

è 예전에 읽을 때, 이 부분에 "mother fucker의 재해석?" 이라고 써두었다.

è 또 이렇게도 써두었다. "지드가 제시하는 것은 자신이 안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강요되어진 표준으로부터의 일탈일 분이다. 공식이야 명료할수록 상쾌하지만 늘 너무 단순한 것에는 잔인하게 잘려나가는 예외의 지대가 있다."

è 난 현재는 공식 옹호론잔데?

è 소설에 적용.

 

25 모든 정열과 모든 악덕을 다 알게 되기를 나는 희망한다.

 

25 그리고 우리의 삶은 마치 우리들 앞의 찬물이 가득 찬 유리잔 같을 것이다. 열병환자가 손에 들고 마시고 싶어하는 그 젖은 유리잔 말이다. 그는 단숨에 마셔버린다.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감미로운 유리잔을 입에서 떼어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토록 물은 시원하고 열은 안타깝게 목을 태운다.

 

26 종잡을 수 없는 황홀의 첫 나날이 지난 뒤에는 - 아직도 메날크를 만나기 전의 일이었지만 늪을 건너는 것 같은 불안한 기대의 시기가 닥쳐왔다. 무거운 졸음에 빠져 아무리 잠을 자도 깨어날 수 없었다. 식사를 마치면 눕곤 하였다. 잠을 자고 나면 더 피로를 느끼며 눈을 뜨는 것이다. 어떤 변모를 앞둔 것처럼 정신은 마비된 채.

 

27 내 속에서 새로운 존재가 형성되어가는 대로 나는 맡겨두고 있었다.

 

27 나는 축축한 땅에서 식물처럼 언제까지나 자고 싶은 지경이었다. 이따금 쾌락이 고통을 이겨주려니 생각하고, 나는 육체의 탕진 속에서 정신의 해방을 찾았다. 그러고는 다시 긴 시간을 잠자며 지내는 것이었다. 마치 번거로운 집 안에서 한낮 더위에 졸다가 눕혀진 잠든 어린아이처럼. 그러다가 한참 지나서야 나는 깨어나곤 하였다. 몸에 땀이 흐르고, 심장은 두근거리며, 머리는 흐리멍덩했다.

 

집 안의 소음이 어렴풋이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서서히 소생하는 것이었다.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고 권태에 못 이겨 들로 나가곤 했다.

è 용어를 깨닫다. 권태. 그렇다. 권태였다.

 

30 나는 병이 들었다. 여행을 하고 메날크를 만났다.

나의 신기로운 회복은 참으로 나에게는 재생이었다. 나는 새 하늘 밑에 완전히 온갖 것이 새로워진 가운데 새로운 존재로서 재생하였던 것이다.

 

31 나타나엘이여, 그대의 마음속에서 기다림은 욕망이기보다는 다만 무엇이든지 받아들이기 위한 한갓 마음의 준비여야 할 것이다. 그대에게로 오는 모든 것을 기다려라. 그러나 그대에게로 온은 것만을 원해야 한다. 그대가 가진 것만을 원해야 할 것이다. 하루의 어느 순간에라도 그대는 신을 온전하게 가질 수 있음을 알라. 그대의 욕망은 사랑이어야 하며, 그대의 소유는 사랑에 넘치는 것이라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충족 없는 욕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è 진짜?

è 정말로 나에게 오는 것만을 받아들여야 하나?

è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는 바다의 속성이기도 하다.

è 혼란스럽다.

è 그러나 굉장한 해답이 여기에 있을 것 같다. 가장 단순한 대응 전략.

 

32 무슨 일이냐!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신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다니! 신을 소유한다는 것은 신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어느 산길 모퉁이에서, 발라암이여, 그대는 그대의 나귀가 멎어선 곳에서 눈 앞에 신을 보지 않았던가? 그대가 신을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타나엘이여, 기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신뿐이다. 신을 기다린다는 것은, 나타나엘이여, 그대가 이미 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을 행복과 구별하지 말라. 그리고 그대의 온 행복을 순간 속에서 찾으라.

è 괴테 : 멈추어라, 순간아! 너는 참 아름답구나. 파우스트적 인간(지향적 인간)이 찾은 것은 지드적 깨우침인가?

 

32 마치 동양의 창백한 여자들이 그녀들의 온 재물을 몸에 지니고 다니듯이, 나는 나의 모든 재산을 내 속에 지녔다. 나의 생애의 어떤 사소한 순간에도 나는 내 속에 내 재산의 총체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재산은 여러 가지 유다른 물건들을 합친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나의 한결 같은 열애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모든 나의 재산을 전적으로 내 힘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간직했던 것이다.

 

37 그렇다, 입술 위에 떠오르는 모든 웃음에 부딪칠 대마다 입맞추고 싶었다. 뺨 위에 번지는 홍조를 볼 때마다 나는 그것을 마시고 싶었다. 나뭇가지가 나에게로 기울여 주는 과일은 모조리 그 과육을 깨물어 먹고 싶었다. 주막에 이를 때마다 굶주림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어느 샘물 앞에서나 갈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대담하게 모든 것에 손을 내밀고, 나의 욕망의 모든 대상에 대하여 나에게는 권리가 있다고 스스로 믿었다.

 

2

 

41 금욕으로써 내가 기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영혼 뿐이었다.

 

만족이여! 나는 너희들을 찾고 있다.

너희들은 여름의 새벽처럼 아름다워라.

 

43 완전한 행위는 모두가 쾌락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것으로써 그대는 완전한 행위를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통스럽게 일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통스러웠다면 다른 일을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에서 발견하는 기쁨이 곧 그 일이 제게 맞는 일이라는 표적이다. 나의 쾌락의 성실성이, 나타나엘이여, 그것이 나에게 가장 중요한 길잡이다.

 

44 나타나엘이여, 과거의 물을 다시 맛보려고 애쓰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미래 속에서 과거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라. 각 순간의 유다른 새로움을 붙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대의 기쁨을 미리부터 준비하지 말라. 차라리 준비되어 있던 곳에서 다른 기쁨이 그대 앞에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을 알라.

 

모든 행복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어서, 네가 노상에서 만나는 거지처럼 순간마다 그대 앞에 나타난다는 것을 어찌하여 깨닫지 못한단 말인가. 그대가 꿈꾸던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이유로 그대의 행복은 사라져버렸다고 생각한다면 - 그리고 오직 그대의 원칙과 소망에 일치하는 행복만을 인정한다면 그대에게 불행이 있으리라.

è 이제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에게 오는 것만을.

 

45 내일의 꿈은 하나의 기쁨이다. 그러나 내일의 기쁨은 그와는 다른 또 하나의 기쁨인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자기가 품었던 꿈과 비슷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물마다 제 각기 '다른'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

 

나타나엘이여, 어떠한 기쁨도 미리 준비하지 말라.

 

45 '다행이로군'하고 말할 수 없을 경우에는 '할 수 없지'하고 말하라. 거기에 행복의 커다란 약속이 있다.

 

50 모든 것은 제때에 오게 마련이다. 나타나엘이여, 사물마다 제 요구에서 태어나는 것이어서, 말하자면 외부로 나타난 하나의 요구에 불과하다.

 

52 나타나엘이여,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나타나엘이여, 주위가 그대와 흡사하게 되면, 도는 그대가 주위를 닮게 되면 거기에는 이미 그대에게 이로울 만한 것이 없다.

 

3

 

60 오오, 봄이여! 한 해 밖에 살지 못하는 초목들은 그들의 가냘픈 꽃을 더울 서둘러 피우지 않는가? 인간에게 봄은 일생 동안 한 번밖에 없다. 그리고 기쁨의 추억이 새로 찾아오는 행복일 수는 없는 것이다.

 

63 소녀 하나가 계단을 스치어 늘어진 나뭇가지에 매달리면서 담장에 둘러싸인 정원까지 나를 따라왔다. 계단은 정원에 잇달린 테라스로 나가게 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들어갈 수 없어 보였다.

! 나뭇잎 밑에서 어루만진 조그만 얼굴! 아무리 짙은 그늘일지라도 너의 얼굴빛을 흐리게 하지는 못하리라. 네 이마 위에 늘어진 머리털의 그늘이 언제나 더욱 짙어 보인다.

 

72 파도의 움직임! 나의 사상을 그처럼 넘실거리게 만들어준 것은 너희들이다! 파도 위에 너는 아무것도 쌓을 수 없으리라. 어떠한 무게라도 파돈든 피하여 달아나고 만다. 이 어이없는 표류끝에, 이 정처 없는 방호아 끝에 다사로운 항구는 올것인가? 그리하여 회전등대 가까이 튼튼한 제방 위에서 마침내 안식을 얻은 나의 넋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인가?

 

4

 

77 나에게는 시간이 달아나버리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선택하지 않는 것을 물리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시간의 협착함과 시간이 하나의 차원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아니면 저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이것을 하면 곧 저것이 아쉬워져서, 나는 번번이 애타는 마음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아무것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잡으려고 팔을 웅크리면 무엇이든 '하나'밖에 잡히지 않을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때부터 다른 많은 공부를 단념할 결심이 서질 않아서 무슨 공부든지 오래 계속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일생의 과오가 되고 말았다. .. 선택한다는 것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것이었으며, 수많은 그 '다른 것들'이 어떠한 하나보다도 더 좋아 보였다.

 

79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이 광대한 영천의 모든 물방울들이 한결같이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가장 작은 물방울일지라도 우리를 도취시키기에 족하며, 우리에게 신의 전체와 총체를 계시하여 준다는 것을. 그러나 그 당시 미칠 듯하던 내가 무엇인들 바라지 않았으랴! 나는 생의 모든 형태를 부러워하였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면 무엇이든 나는 그것이 '하고' 싶었다. 그것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 나의 말을 알아들어 다오 - 왜냐하면 나는 별로 피로나 고통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것을 생의 수행이라 믿었던 것이다.

è 안나 카레니나. 심지어 톨스토이도 연결되는구나.

 

80 나는 생각하였다. 지상에서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히 변모하는 것들 사이로 영원한 열정을 몰아가는 자는 행복하다고. 나는 미워하였다. 가정을, 가족을, 사람들이 휴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장소를. 그리고 변함없는 애정이며, 사랑의 성실이며, 사상에 대한 집착이며 - 빗나가게 될 위험성이 있는 모든 것들을. 나는 말하였다. 무엇이든지 새로운 것은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82 나는 피로감을 미워하였다. 피로는 권태로부터 생긴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è 이 문장을 기억하고 있었다.

 

86 모든 도시의 추억에는 방탕의 추억이 따르게 하였다. 베니스에서는 가장무도회에 섞였다. 비올라와 플루트가 반주를 하는 배 속에서 나는 사랑을 맛보앗다. 다른 배들이 젊은 남녀를 가득히 싣고 뒤를 따르고 있었다. 우리들은 새벽을 기다리기 위하여 리도로 갔으나 태양이 떠올랐을 때는 피로하여 잠이 들어버렸다. 음악도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덧없는 즐거움이 남겨주는 그 피로감까지 사랑하였으며, 즐거움이 말라버리고 말았다는 느낌을 일으켜주는, 깨어날 찰나의 그 현기증까지도 사랑하였다.

è 이게 관건이다. 판단하지 않고 사랑한다.

 

89 순간의 현존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를. 왜냐하면 우리들 생의 각 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과 바꿔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따금 오직 그것에만 전심을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93 "할 수 없지!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네"하고 메날크가 대답했다.

 

95 시각 - 감각 중에서 가장 애달픈 것……

우리가 만질 수 없는 모든 것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101 나는 눈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고 로테르가 말했다. 그것은 무척 신비로우며 땅 위에 내려서도 단념하고 땅에 어울리지 못하는 물질이다.

풍경을 덮어버리는 그 유달리 흰빛이 밉살스럽다. 게다가 차가워 생명을 거부한다. 눈이 생명을 품어 보호해준다는것은 나도 알지만, 그러나 생명은 눈을 녹이고서야만 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è 묘사

 

110 …… 올해 여름 나의 모든 욕망이 갈증을 느꼈다. 마치 사막을 건너기나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마실 것을 주려 하지 않았다. 마셨기 때문에 그들이 병들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11 욕망과 권태 사이에서 우리들의 불안은 망설인다.

 

 

5

 

119 아아! 살려면 어엿이 살 수도 있었을 그 모든 고장들! 풍성한 행복의 고장. 일이 고된 농장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밭일들. 피로, 수면의 무한한 정일…..

떠나자! 그리고 아무 곳에서나 닥치는 대로 발길을 멈추자.

 

123 ! 어마어마한 성당

너의 그 하늘을 찌를 듯한 탑! 너의 탑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흔들리는 곤돌라에서 지붕들 위에 있는

기다란 다리를 가진

교조적이고 딱딱한 모습의

황새들을 보는 듯하였다.

황새들은 그 긴 다리를 천천히 놀리고 있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까닭이리라.

è 묘사

è 의외로 많은 묘사의 모범을 찾을 수 있다.

 

124 나타나엘이여, 흔히 그저 목 마를 때 물 마신다는 것 그 자체가 나에게는 도취감을 일으켜주었다. 미리부터 욕망에 나는 취하여 있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첫째로 내가 길 위에서 찾던 것은 주막이었다기보다는 나의 허기증이었다.

 

135 아아! 나는 황금의 잔을 부쉈다 - 나는 깨어난다. 도취란 다만 행복의 대용품에 지나지 않는다. 마차여! 모든 도망이 가능하다. 썰매여, 얼음에 싸인 나라여, 나는 너희들에게 나의 욕망을 매단다.

나타나엘이여, 우리는 온갖 것들로 향하여 갈 것이다. 차례 차례로 우리는 모든 것에 도달할 것이다.

 

너희들, 우리들 존재의 하염없는 모든 가능성들이여, 너희들은 괴로움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 더없이 아름다운 고장을 갈망하는 자를 위하여 너희들에게 하나의 욕망이 매달리기를 너희들은 기다리고 있다.

 

6

 

온갖 것 보러 태어났건만

온갖 것 보아서는 안 된다 하더라.

괴테 <파우스트> 2

è 앙드레 지드와 파우스트의 상통성! 스스로 알고 있었고, 분명히 영향을 받았다. 파우스트적 인간은 잘못 해석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139 계명들이여, 너희들은 나의 넋을 괴롭혔다.

계명들이여, 너희들은 열이런가 스물이런가?

어디까지 너희들 한계를 좁히려는가?

항상 더 많은 금단의 사물이 있다고 너희들은 가르치려는가?

지상에서 아름답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에 대한 갈망에는 또 새로운 벌이 약속되어 있다고 가르치려는가?

계명들이여, 너희들은 나의 넋을 병들게 하였다.

너희들은 내가 마실 수 있는 유일한 물 주위를 벽으로 둘러쌌다.

 

143 오렌지를 짜서 즙을 내어 만드는

음료들이 있다.

시트론이며 레몬 따위 -

새콤하고도 달콤하기에

목을 시원하게 해주는 것들.

 

146 ! 창공에 잠긴 벌판!

è 기가 막힌 표현이다.

è 일전에 앙드레 지드가 책 한권에 오만개의 단어를 쓴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확실히 만 단위였다.

 

148 눈에 보이지 않는 현실에 관해서는 말할 수가 없다 - 왜냐하면

 

저 신기한 물풀처럼 그것을 물에서 꺼내면, 금세 빛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기 때문에

 

149 기상 - 신은 될 수 있는 대로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나는 세수를 하면서 외쳤다. 아무리 일찍 일어나도 언제나 생명이 순환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 일찍 자리에 누웠던 탓으로 생명을 덜 기다리게 했던 것이다.

 

새벽이여, 너희들은 우리들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 여름철의 새벽이여!

나날의 봄, 새벽이여!

무지개가 나타났을 때

우리는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달을 볼 수 있을 만큼 저녁 늦도록 일어나 있는 것도 아니었다

 

150 5 - 땀에 젖어 눈을 뜨면, 두근거리는 심장. 몸서리. 가벼운 두뇌. 후련한 육체. 기공이 수없이 열려 모든 것들이 시원스럽게 밀려드는 것 같은 느낌. 기울어가는 태양. 노란 잔디밭. 해 저무는 무렵에 뜨인 눈. 오오, 저녁 사색의 그윽한 술맛! 눈앞에 전개되는 저녁의 꽃들. 미지근한 물로 세수를 하고. 외출에스팔리예. 둘러친 담장 소에서 햇볕을 받고 있는 정원. . 목장에서 돌아오는 가축들. 볼 필요도 없는 낙조 - 찬탄은 이미 충분하다.

 

159 그것이 생이다. 그것뿐일까? 아니다! 언제나 '또 다른' 것들이 있다. 그래, 그대는 내가 감각의 집합소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생은 언제나 그것 더하기 나 자신이다.

 

7

 

아민타스, 살색이야 검은들 어떠리 - 비르질

è 이 말을 왜 했지? 가지고 태어난 것에 개의치 말라는 뜻인가?

 

167 밤이 끝날 무렵

보는 것에 지쳐버린 나의 눈

 

그러다가 새로운 땅 위에서 마치 회복기의 병자처럼 잠을 깨는 것이다 - 꿈에도 보지 못하였던 것들.

 

아침에 바닷가에서 잠을 깬다.

밤새도록 파도에 흔들리고 나서.

è 그저 수필 기행문 같은데 상징적이다.

 

169 ! 그토록 아늑한 아름다움이 고독한 자를 부르고 미소하며, 욕망들을 인기척 없는 길 위로 지나가는 교태의 행렬처럼 벌려놓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너무나도 고요한 수박 속에 살랑거리는 물 소리 끊이지 않아도, 사방의 주의 깊은 정적은 이 자리에 없는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170 이처럼 빛을 마음껏 마시는 것, 그리고 이 끊임없는 더위가 일으키는 육감적 황홀감이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나타나엘이여, 그대는 상상도 못하리라.

è 빛과 더위. 빛은 찰나적 행복이며 더위는 후에 더위를 식힐 때를 대비한 쾌락.

 

175 그 나무에는 지저귀며 노래하는 새들이 있었다. 아아! 새들이 그렇게 노래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으리만큼 우렁차게 노래하고 있었다. 나무 자체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è 어째서 묘사에 성공하는가?

è 앙드레 지드는 초반에 "모든 책을 찢어버려라!"라고 몇 번이나 강조한다.

è 내가 "우는 것은 새"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사전적 지식), 나무만 보이되 새가 보이지 않을 때 나무가 운다고 생각하게 된다. , 사고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환원한 후 감각을 개방하면 묘사가 떠오른다.

 

176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저 새들이 저러다간 죽고 말 것이다. 너무나 극성스러운 열정이다. 도대체 오늘 저녁에는 무슨 일이 있는 것일가? 밤이 지나가면 새로운 아침이 태어난다는 것을 저 새들은 모른단 말인가? 영구히 잠들어버리게 될까 봐 겁이 난단 말인가? 하루 저녁에 기력이 다하도록 사랑을 즐기자는 것인가? 마치 앞으로는 끝없는 밤 속에서 살아야 된다는 것처럼.

è 열정 = 번식의 욕구, 비열정 = 자존의 욕구

è 이 둘 사이의 긴장 관계

 

183 사막의 열화도 능히 이겨낼 만한 그 열광적인 황홀감, 얼마나 억세고 얼마나 뜨거운 사라이었던가!

지독한 땅. 호의도 온정도 없는 땅. 열정과 열광의 땅. 예언자들의 사랑을 받은 땅 - 아아! 고된 사막, 영광의 사막이여,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였다.

 

185 모래의 사막. 거부된 생명. 거기에는 꿈틀거리는 바람과 더위밖에 없었다. 모래는 그늘 속에서 빌로드처럼 보드라워지고, 저녁에는 불에 타오르고 아침에는 재와 같아진다. 언적과 언덕 사이에는 하얀 골짜기가 있다. 우리는 그곳을 말을 타고 건넜다. 모래가 우리들의 발자취를 덮어버렸다. 피로가 심하여 새로이 언덕이 나타날 때마다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하였으리라, 모래의 사막이여. 아아! 너의 가장 작은 모래알일지라도 그저 그곳에 우주의 전체를 이야기해주기를! - 무슨 생애를 추억하는가, 모래알이여? - 무슨 사랑에서 부스러졌는가? - 모래도 찬양받기를 원한다.

 

내 넋이여, 모래 위에서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백골이 되어버린 뼈들 - 빈 조가비들

어느 날 아침, 태양을 가리어줄 수 있을 만큼 높직한 언덕 기슭에 당도하였다. 우리들은 그곳에 앉았다. 그늘은 거의 서늘한 정도였고, 골풀이 섬세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밤, 밤에 관해서는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느린 배를 타고 가는 항해와도 같다.

바다의 물결은 사막보다 푸르지 못하다.

사막은 하늘보다도 더 밝았다

- 별 하나하나가 모두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던 그러한 밤을 나는 알고 있다.

 

사막으로 나귀들을 찾으러 갔던 사울이여 - 그대가 찾던 나귀들을 그대는 보지 못하엿따 - 그러나 그대가 찾지 아니하던 왕국을 그대는 발견하였다.

 

자기 몸에 이를 기르는 즐거움.

우리들에게는 생이

 

야성적이며 급격한 맛이었다.

 

그리고 나는 바란다.

여기서는 행복이 죽음 위에 피는 꽃과도 같기를.

 

8

 

191 지금 휴식에 잠겨나는 나의 재산을 헤아려보고자 하건만 헛된 노릇이다. 나에게는 재산이 없다.

 

이따금 나는 과거 속에 한 묶음의 추억을 찾아 그것으로 이야기를 구며보려고 하지만 거기 나타나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니며 나의 생명은 넘쳐 거기서 새어나간다. 나는 끊임없이 새로운 순간 속에서만 곧장 살게 마련인 것같이 느껴진다. 마음을 가다듬어 명상에 잠긴다는 것은 나에게는 불가능한 구속이다. 나는 이미 '고독'이란 말의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내 마음속에 홀로 잠겨 있다는 것은 이미 내가 아무도 아닌 것이 된다는 뜻이다. 나는 수많은 분신으로 갈려 있다. 게다가 나는 도처에서가 아니면 나의 집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언제나 욕망이 나를 거기서 몰아낸다. 가장 아름다운 추억일지라도 나에게는 행복의 잔해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아주 조그만 물방울이라도, 그것이 눈물 한 방울일지라도, 나의 손을 적셔주면 곧 나에게는 더 귀중한 현실이 되는 것이다.

 

193 그렇다! 나의 청춘은 참으로 암담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후회한다.

나는 맛보지 않았다, 땅의 소금도,

짠맛을 지닌 바다의 소금도.

나는 내가 땅의 소금이라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의 맛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바다의 소금은 그 맛을 잃지 아니한다. 그러나 나의 입술은 그 맛을 느끼기에는 너무나 늙어버렸다. 아아! 나의 넋이 그것을 갈망하던 때에 왜 나는 바닷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시지 아니하였던가? 어느 포도주가 이제 나를 취하게 하기에 족할 것인가?

 

 

나타나엘이여, 아아! 그대의 넋이 미소할 때에 그대의 기쁨을 만족시켜라 - 그대의 입술이 입 맞추기 알맞게 아름다울 때, 그리고 그대의 포옹이 즐거울 대에 그대의 사랑의 욕망을 만족시켜라.

 

왜냐하면 그대는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일들은 거기에 있었다. 그 무게에 가지는 휘어 이미 지쳤다. 나의 입은 거기에 있었고 욕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나의 입은 닫힌 채로 있었으며, 나의 손은 기도를 위해서 모아져 있었던 까닭에 벌려질 수 없었다. 그리고 나의 영혼과 육신은 절망적으로 목말라 있었다. 시간은 이미 절망적으로 지나가버렸다.

 

195 불면

기다림, 기다림. 애타는 열정 지나가버린 젊음의 시간들……

너희들이 죄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에 대한 불타는 갈증.

 

196 오늘 아침 나는 무슨 무덤에서 빠져 나온 것인가? (바다새들이 날개를 펼치고 목욕하고 있다) 나에게 삶의 이미지란, 아아! 나타나엘이여, 욕망으로 가득 찬 입술 위에서 녹는 한없이 진미로운 과실일 것이다.

 

197 입술 껍질을 벗기며 못 견디게 애를 태우던 이빨들 - 끝은 모조리 닮아버린 듯 하였다. 안으로 빨려들어간 듯 쑥 들어간 관자놀이 - 꽃핀 마늘밭의 냄새에도 공연히 구토를 일으킬 지경이었다.

è 목마름의 표현, 묘사!

 

198 우리들의 목마름은 하도 격심해졌기 때문에, 그 물을 나는 살펴보기도 전에 한 잔 가득히 마셨던 것이다. ! 그 물은 얼마나 구역질나는 것이었던가.

 

199 메날크여! 네말크여! 나는 너를 생각한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 말하던 것을 알고 있다, 여기든 - 거기든 -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 우리는 어디서든지 마찬가지로 좋을 것이라고.

è 목마름으로 긴장을 고조시킨 후, 메날크를 부른다.

è 그리고 주제를 약간 비껴가는 중간 주제로 긴장의 방출.

 

이 무렵 그곳에서는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202 방바닥 위에 드리운 발코니의 그림자, 책의 흰 페이지 위에서 어른거리는 불길, 숨소리, 달도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내 앞의 정원은 녹음의 수반 같다흐느낌. 악문 입술. 너무나 큰 확신. 상ㄴ염의 고뇌. 무어라 말할까? '진실한 것들' - 타인 - '그의' 살므이 중대성. 그레에 이야기할 것

 

 

 

 

 

 

 

 

 

 

내가 저자라면

 

나는 이메일 아이디로 gide10을 쓴다.

10은 내가 좋아하는 숫자고, gide는 앙드레 지드의 gide이다. <앙드레 지드>를 읽은 것은 2005년 경이다. 책의 한쪽 귀퉁이에 당시 연정을 품었던 남자의 이름이 거론된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추론해 냈다. 나는 지난 8년 간, 이 책의 문구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타나엘이여, 너에게 열정을 가르쳐주겠다."

 

지극히 사소한 계기로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사소한 문구의 재확인) 나는 내 인생관이 이 책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날 내가 쓰려고 하는 소설 <알려지지 않은 신>에서 주인공 노원이 피력하려는 사상은 메날크의 것이었고, 그가 계도하려고 노력하는 자는 나타나엘이다. 지드는 자신의 책에서 괴테의 <파우스트>를 인용하고 있다. 파우스트적 인간상은 다른 의미로 해석되곤 한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는 사람. 목표지향적인 인간상. 무엇인가 다르다. 분명히 다른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멈추어라, 순간아, 너 참 아름답구나!" 여기에서 지드는 분명 <지상의 양식>과 비슷한 생각을 뽑아냈다.

파우스트와 메피스토, 나타나엘과 메날크. 그 미묘한 차이를 파고들자. 마치 크레페의 낱장을 분리하듯이 섬세하게.

 

책의 전반부는 사상의 집결이며, 중반부는 묘사의 집결이다. 즉 전반부는 이론서이고 중반부는 응용서인 셈이다. 전에는 지나쳤을, 소설가 지망생을 절망시키는 묘사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지드를 거의 사상가로 보았으나 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작가였다.

후반부는 다시 사상서로 돌아가는 듯하다. 그리고 마지막, 사막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으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두서없이 풀어놓은 듯 보이나, 그 와중에 매듭이 있다. 분명히 지드는 책의 시작과 종결을 생각하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책의 앞부분에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지 않았다. 그는 바로 치고 들어왔다. 나도 그 방법을 구상해야 한다. 반드시.

IP *.68.172.4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52 구본형의 신화읽는 시간- 구본형 id: 깔리여신 2013.02.12 2700
1451 제프리 페퍼의 "권력의 경영"(두번 읽기) 학이시습 2013.02.12 4911
1450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겁니다- 폴 호프만 지음/ 신현용 옮김 file [15] 세린 2013.02.16 15572
1449 42.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_구본형 지음 한젤리타 2013.02.17 4000
1448 소설쓰기의 모든 것 2. 묘사와 배경 레몬 2013.02.17 16235
1447 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지음 id: 깔리여신 2013.02.18 5748
1446 노자 -이강수 옮김- file 용용^^ 2013.02.18 3444
1445 # 42 김미경의 아트 스피치 file 샐리올리브 2013.02.18 5402
1444 #42_내일의 금맥, 마크파버 [3] 서연 2013.02.18 3936
1443 피플웨어: 정말로 일하고 싶어지는 직장 만들기 학이시습 2013.02.18 2861
1442 율리시즈 - 제임스 조이스 [2] [1] 콩두 2013.02.18 3291
1441 행복의 충격-김화영산문집 [1] id: 깔리여신 2013.02.22 3345
1440 행복의 충격 -김화영- file [2] 용용^^ 2013.02.25 5246
1439 43. 그리스인 조르바_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한젤리타 2013.02.26 3872
» 지상의 양식 _ 앙드레 지드 레몬 2013.02.26 7660
1437 #43 무경계No Boundary_켄 윌버 [2] 서연 2013.02.26 5976
1436 위대한 기업의 선택(GREAT BY CHOICE) 학이시습 2013.02.26 2945
1435 # 43 아티스트 웨이-줄리아 카메론 file 샐리올리브 2013.02.26 5389
1434 수학콘서트_박경미 [6] 세린 2013.02.26 7060
1433 신화와 함께 하는 삶 - 조셉 캠벨 콩두 2013.02.26 3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