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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7일 23시 00분 등록

변신 이야기

-.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 옮김

-. 민음사, 1998

 

 

저자에 대하여 오비디우스

 

1. 탄생과 시대배경(B. C. 43)

로마 시인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Publius Ovidius Naso)는 기원전 43 3 20일 로마에서 동쪽으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조용한 시골인 술모(Sulmo:현재의 술모나)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사계급 출신이었는데, 그 당시 로마의 기사계급은 정치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계층으로 대부분 이탈리아나 외국의 사무소에서 주요한 정치적 임무를 맡았다. 그가 태어나기 일 년 전인 기원전 44 3 15일 카이사르가 브루투스 일파에게 암살됨으로써 로마는 또다시 내란에 휩쓸리게 된다. 그 과정에서 로마는 정치체제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면서 흔히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져 있는 옥타비아누스(기원전63-기원후14)가 로마의 초대 황제가 된다. 그리하여 로마사와 로마 문학사의 이 시대를 흔히아우구스투스 시대라고 부른다.

 

2.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다(B. C. 42 ~ B. C. 2)

대부분의 훌륭한 계층의 아들들이 그러하듯이 오비디우스도 한 살 위인 형과 함께 로마에 가서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시 엘리트 청년들이 그러하듯 법률가나 정치가가 되려고 수사학(修辭學)과 웅변술을 수학하였다. 공부를 마친 뒤 그는 그리스의 아테나이와 소아시아와 시킬리아를 여행하였다. 돌아와서 형과 함께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무국을 맡아 운영하였는데,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다. 오비디우스가 20세가 되던 해 형이 죽자 정치적인 입문을 포기하고 시인으로 등극하였다. B.C. 20년에 <사랑의 시(Amores)>, <헤로이데스(Heroides)>발표했다. B. C. 2년에 <사랑의 기교(Ars Amatoria)> 1,2권 발표했다.

 

3. 인생의 황금기에 <변신이야기>를 집필하다.(B. C. 3 ~ A. D 7)

이 시기에는 오비디우스의 가장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변신이야기> <파스티> 6권이 집필된 시기이다. 정신적으로 가장 원숙한 시기였던 40대 후반에 쓰여진 작품이다. 그래서 <변신이야기>는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분량이 많고 유일하게 헥사메터(영웅시육각운)시행을 사용하고 있다.

 

4. 추방에서 죽음까지(A. D 8 ~ A. D 18)

시인으로서 최고의 명예를 누리던 그는 기원전 8년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인 흑해 서안의 토미스(오늘날의 루마니아)로 유배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날의 시베리아나 다름없는 그곳의 야만인들 사이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비참하고 쓸쓸한 만년을 보내다가 유배된 지 10년 뒤인 기원후 17년 또는 18년에 세상을 떠난다. 토미스로 추방된 말년의 시에서는 인간적인 측면이 더욱 부각된다. 홀로 이국의 땅에서 자신의 시를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외로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였으며, 나아가 이 외로움에서 이국의 문화를 영입하여 독특한 자신의 문학세계를 완성하는 성숙미까지 보여준다.

 

5. 저자와 닮고 싶은 점(저자에 대한 평가)

오비디우스의 이야기는 일단 재미있다. 부담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인간 본성을 순수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이 신이고 영웅이어서 현실 속의 우리와는 다른 존재라고 생각되겠지만,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은 너무도 인간적이다. 비록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였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동정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그는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표현했다. 또한 등장인물의 특징들을 하나의 상징으로 끄집어내어 형상화 했다. 그것이 은유다. 인간과 신화의 세계를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도록 말이다. 동물과 사물의 기원까지도 이야기와 연결시켜나가는 그의 통찰을 닮고 싶다. 

구미문화권에서 오비디우스의 명성과 영향은 지대하다. 영국의 16세기는 오비디우스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는 <사랑의 헛수고(The Labour’s Lost)>에서 참된 시인의 모델로서 오비디우스를 지목하였다. 존 던(John Donne), 밀튼(Milton), 낭만주의 시인들인 키츠(Keats), 셸리(Shelly), 테니슨(Tennyson) 등의 시에서도 <변신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작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현대에서는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서언이며 전 작품의 일관된 주제라 할 수 있는 이카루스의 비상이라는 주제가 그것이다.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장님 테이레시아스를 비롯한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시를 전개해 나간다. 이렇게 오비디우스의 작품은 현재 우리가 접하는 문학과 영화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옮긴이에 대하여 이윤기

 

1. 어린 시절(1947~1966) : ‘학교라는 컨베이어 밸트에서 뛰어내리다.

그는 1947년 경북 군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하였다. 경북중학교를 나와 경북고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3개월 만에 스스로 퇴학했다. 영화관 다니기를 좋아하고, 그 시절 이미 막걸리 마시기를 즐겼던 그에게 학교는 공부하게 하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공부를 방해하는 곳이었다. 학교를 나온 뒤 그는 독학으로 공부했다. 클래식 음악감상실에서 하루 종일 바흐와 베토벤의 음악을 듣고, 헤밍웨이와 오 헨리 작품을 영어로 읽었다. 그리고 다자이 오사무, 나쓰메 소세키 등은 중학교 3학년 때 공부해둔 일본어로 읽었다. 공부하다 코피가 나면 사전 모서리로 쓱 닦고 공부를 계속했다.

 

2. 청년 시절(1967~1975) : 물은 흐리지 않으면 죽는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후 1967년 신학대학에 들어갔지만, 고등학교 때처럼 3개월 만에 막을 내린다. 신학대학만 가면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를 미친 듯이 배울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1969년에 입대해 경기도 일산 고봉산 정상에서 관측 근무를 했다. 그 곳에서 틈틈이 군수용품 휴지에 단편소설을 쓰기도 했지만물은 흐르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베트남을 택한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 자신을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제대 후 공사판을 전전하던 그는 1975 <학원>지의 기자가 됐었고, 그곳에서 미술 전공 편집기자를 하던 아내를 만났다. 서른 살에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번역 일을 시작하였다.

 

3. 도약에서 죽음까지(1976~2010) : 하루 10시간씩 글을 쓰며, 신화의 세상을 만나다.

1976 12, 단편하얀 헬리콥터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다. 빠른 등단이었지만, 그는 오히려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는 문단에 들어가기도 전에 입산하여 본격적인 번역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번역 작가로서 그의 명성을 한껏 높인 작품은 1985년 출간된 움베르토 에코 소설장미의 이름이었다. 1991 8월에 미국으로 건너가 2000년까지 미국 미시건주립대학교 국제대학 초빙연구원(종교사) 및 동 대학교 사회 자연과학 객원 교수(비교 문학)로 지냈다.

1995세계의 문학봄호에 발표한 단편소설나비넥타이는 번역가가 아닌 소설가 이윤기의 이름을 대중에 각인시켰다. 1998숨은 그림찾기1-직선과 곡선으로 동인문학상을, 2000년 소설집두물머리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2010 8, 향년 63세를 일기로 영원한 신화의 세계로 떠났다.

 

4. 저자와 닮고 싶은 점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3등칸에서 보냈다. 그 곳에는 많은 것을 얻었으며, ‘2등칸을 타면 절대 길게 살 수 없다고 말한다. 남들처럼 평탄하고 정해진 삶이 아닌 굴곡이 심한 길을 그는 걸어왔다. 그는 자식에게도 이렇게 말한다.

“지금도 각자 자기가 택한 분야에서 착실히 내공을 쌓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도리어 위태로워 보여요. 고등학교는커녕 대학 중퇴도 안 해 본 녀석들이 뭘 하나 하는 거예요. 저렇게 만사가 편안해서야 과연 향내 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자기강화 프로그램은 오직 자기 안에서만 나오는 건데, 그건 부모가 대신 해 줄 수도 없는 일인데.”

밑바닥 인생을 살아봐야, 자신의 삶을 마음껏 펼쳐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는 작가로서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진정,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하라고 강조한다.

“모름지기 작가는 텍스트를 만들어야 하는 거잖아요? 기형도만 해도 기형도에 관한 평론이 얼마나 많아요. ·박사논문은 또 얼마나 많고……. 그런데 어느 누구도 기형도 평론을 읽고 감동받지는 않거든요. 기형도의 <빈집> 시를 읽고 감동을 먹지. 그것이 텍스트의 힘이죠. 또 하나, 저는 요즘 죽은 사람의 말은 되도록 인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죽은 사람이 남긴 말은 명성이 말의 진정성을 넘어서는 것 같아서죠. 되도록이면 내 말로 쓰려고 하죠.”

최근의 소설가들이 역사인물에 대해 글을 많이 쓰는데, 현재’, ‘여기에 있는 현상과 싸우지 않고 도피하려는 글을 쓰는지 안타까워하면서 그가 한 말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책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이다. 그 책에서 나는그리스로마 신화에 대한 그의 열정을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신화의 배경이 되었던 실제 장소에 간 것은 53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 가보고 그리스 신화 책을 줄줄이 써 왔다는 결론이다. 그 뒷면에는 하루 10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1만시간의 법칙을 꿰뚫은 도약이 숨어 있었다. 이렇게 학연 지연에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믿고 한 길을 걸어온 그의 뚝심과 열정을 나는 닮고 싶다.

 

 

출저

출처: 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오비디우스, 천병희 옮김, , 2005)

오비디우스(이현주, 평민사, 1999)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이윤기 지음, 웅진, 2000)

길위에서 듣는 그리스 로마 신화(이윤기 지음, 작가정신, 2002)

‘조영남이 만난 사람들에서 인터뷰 내용

‘이나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의 인터뷰 내용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문구

 

변신이야기 #1

 

39p 이러한 피조물들은, 온기와 습기가 알맞게 어울리는 환경에서만 그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이는, 만물이 이 두 가지 요소에서 비롯되기 때문이었다. 물과 불은 비록 상극이기는 하나 습윤한 온기는 만물의 근원이었다. 말하자면 물은 습기와 불인 온기가 조화를 이루어야 생명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39~40p 홍수가 지나간 뒤 대지에 덮였던 진흙이 하늘에서 비치는 태양의 그윽한 열기로 다시 더워지자 대지는 이루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종류의 생명을 지어내었다. 이렇게 지어진 생명 중에는 홍수 이전에 있던 것도 있었고 전해 새롭게 지어진 것도 있었다.

 그럴 의향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지가 산 것 중에서 크기로 치면 으뜸이 될 만한 왕뱀 퓌톤을 지어낸 것도 이때였다. 이 왕뱀은 누우면 산자락 하나를 덮을 만큼 컸다. 이렇게 큰 짐승을 본 적이 없는 새 인류에게 이 왕뱀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

-> 이 대목에서 나는 현미경 속의 미생물 세계를 떠올렸다. 묘사되는 내용들이 내가 보았던 세계와 똑같았다. 그 중에서 탐욕스런 인간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분해하는 미생물의 세계는 너무도 닮았다. 이전에 내가 보관해 두었던 미생물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왕뱀 퓌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앞으로 내가 쓰고 싶은 소설 속 이야기의 중요한 모티브가 될 것 같다.

주인공이 잃어버린 신화의 세계를 발견하게 되는 시공간이 되고, 더 나아가 그 곳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 낼지도 모르겠다. 변신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경험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살아 움직인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 다소 엉뚱하고 과장될 수 있지만, 내가 신이 되어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을 창조하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인도하고 싶다.

 

43p 아폴로의 가슴은, 타작 마당에서 검불을 태우는 불길, 혹은 밤길 가던 나그네가 새벽이 되자 내버린 횃불이 잘 마른 울타리를 태우듯이 그렇게 타올랐다. 그는 이 허망한 사랑에 대한 희망을 끝내 버릴 수 없었다. 이성에 눈먼 아폴로는, 목 위로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다프네의 머리카락을 보면서 이렇게 탄식했다.

 

45p 그는, 별처럼 반짝이는 다프네의 눈에서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눈은 다프네의 입술에도 머물렀다. 그는 그 입술을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다프네의 손가락, , 어깨까지 드러난 팔을 찬양했다. 그러면서, 보이는 것이 저렇게 아름다운데 보이지 않는 것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이런 생각을 했다.

-> 신화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감정 표현은 극단적이다. 다시 말해서,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는 감정 표현이 분명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작가의 성격 또한 다분히 감성적인 사람인 것으로 유추된다. 내 생각도 이러한 감정 표현이 잘 드러나야 읽는 독자들 또한 글 속에 빠져들 수 있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미지근한 감정이면, 모든 독자가 공감하듯이 짜증날 수 밖에 없다.

사랑이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면 모든 인간들은 시인이 되는 것 같다. 노래하는 문장들이 직접적인 감정표현이 아니라, 은유를 사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물이나 인간에게 이입한다. 그리고 그 사물이나 다른 인간의 입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그 뒤로는 이야기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고 거침이 없다. 따라서 내가 글을 쓰는 방법도 마찬가지 인 것 같다. 내가 쓰고자 하는 대상을 사랑으로 바라볼 때에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속에 진실이 담겨 지고, 새로운 생각들이 창조되고 재발견된다.

반대로 사랑에 상처를 입는 사랑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하면, 인간들은 내면에 있는 ‘악마’의 그늘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폭악해지고 잔인해진다. 변신이야기 내용 중에 끔찍한 장면들이 묘사된 문장들이 그렇다. 대부분이 사랑에 상처 입는 신과 인간들의 행동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표현 때문에 독자들이 자기 내부의 ‘선과 악’을 번갈아 가면서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다.

 

48p 다프네는 이 기도를 채 끝마치기도 전에 사지는 풀리는 듯한, 정체 모를 피로를 느꼈다. 다프네의 그 부드럽던 젖가슴 위로 얇은 나무껍질이 덮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은 나뭇잎이 되고 팔은 가지가 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힘있게 달리던 다리는 뿌리가 되고, 얼굴은 이미 나무 꼭대기가 되고 있었다. 이제 다프네의 모습은 거기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눈부신 아름다움만 거기에 남아 있을 뿐…….

-> 변신이야기에는 비극적인 내용들이 많다. 그 동안 내가 읽는 소설이나 영화들이 해피엔딩이어서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비극이 주는 감동은 해피엔딩보다 더 극적이다. 그리고 기억에 각인되고 오랜 여운을 가지게 한다. 안타까운 마음 때문에 그런 것인지, 나의 욕심이 강해서 그런지 모르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詩學)에서 <비극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를 내렸는데, “비극은 가치 있거나 진지하고 일정한 길이를 가지고 있는 완결된 행동의 모방이다. 쾌적한 장식을 한 언어를 사용하고, 각종 장식이 작품의 상이한 여러 부분에 삽입된다. 서술의 형식이 아니라 행동의 형식을 취한다. 또 연민과 공포를 통하여 감정을 정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라고 정의하였다.

이렇게 비극의 주인공들은 무자비하게 죽음의 운명을 맞이하지만, 작가는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주인공들을 가장 고귀하고 가장 용감한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더 극적이다. 이것 때문에 주인공의 파멸되더라도 다른 인간들보다 더 순수하고 고결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48p “내 아내가 될 수 없게 된 그대여, 대신 내 나무가 되었구나. 내 머리, 내 수금, 내 화살통에 그대의 가지가 꽂히리라. 카피톨리움으로 기나긴 개선행렬이 지나갈 때, 백성들이 소리 높여 개선의 노래를 부를 때 그대는 로마의 장수들과 함께 할 것이다.

 

50p 알지 못하는 채로 강이라는 강, 흐름이라는 흐름은 오랜 방황으로 고단해진 몸을 이끌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53p 이오는 하는 수 없어서 발굽으로 땅바닥에다 제 이름을 써서 암소로 둔갑하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전했다. 이나코스는, 애통해하는 암소 이오의 뿔을 부여잡고 백설 같은 그 등을 쓸면서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다.

 

57p 사투르누스의 딸은 이 눈을 수습하여 자기 신조인 공작의 깃과 꼬리에다 달아주었다. 그래서 이 공작의 깃과 꼬리는 지금도 별같이 빛나는 보석이 잔뜩 박힌 듯하다.

 

62p 태양신은 보라색 용포를 입고 빛나는 에메랄드 보좌에 앉아 있었다. 보좌 좌우로는 <>, <>,<>,<세대>, 그리고 <()>가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사철도 있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는 것은 <이른 봄>, 가벼운 차림에 곡식 이삭관은 쓴 것은 <여름>, 포도를 밟다가 나왔는지 발에 보라색 포도즙이 묻은 것은 <가을>, 백발을 흩날리고 있는 것은 <추운 겨울>이었다.

 

64p 네가 소원하는 것은 필멸의 팔자를 타고난 인간에게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소원은 다른 신들에게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신들이 각기 저희 권능을 뽐내지만 이 수레를 몰 수 있는 신은 오직 나 뿐이다.

 

65p 너는, 하늘에도 신들의 숲, 신들의 도성, 신들의 사당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게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복병과 무서운 괴수들 사이로 길을 찾아 빠져나가야 한다. 요행 궤도를 제대로 잡아 여기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무서운 황소, 하이모니아 켄타우로스, 사자 이빨, 전갈의 으시시한 집게를 피해 갈 수 있을 성싶으냐?

-> 아무리 자식에게 앞 날의 상황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어도, 이야기만으로는 깨우치기 힘들다. 자식이 직접 그러한 경험을 하지 않으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이 그렇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것 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나 생각이 같은 사람들의 조언은 쉽게 받아들인다. 참 신기한 일이다. 이렇게 자기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나이가 들어서 깨닫게 되는 인간의 심성은 왜 그러한 것인지 궁금하다. 나도 예외일 순 없다.

 

68p “네 발이 이 단단한 태양신궁의 바닥에 닿아 있을 때 따르거라. 미숙한 너에게 하늘로 오르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 네가 이 위험한 일을 해보겠다고 우기기는 한다만, 대지에 빛을 나누어주는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너는 그 빛을 누리기나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69p 네 마리 천마는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앞길을 막는 구름의 장막을 찢었다. 이들은 단숨에, 이 지역에서 이는 동풍을 저만치 앞질렀다.

 

73p 파에톤은 불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의 숨결도 풀무에서 나온 공기처럼 뜨거웠다. 수레는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열기와 함께 올라온 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똥도 그를 괴롭혔다. 뜨거운 연기로 주위가 칠흑 어둠이라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발 빠른 천마가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 분명 저자는 지독한 산불이 난 것을 보고서 파에톤 이야기를 만들었을 것이다. 뜨거운 열기를 뿜어대는 태양의 신. 그 신의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말썽을 부리다가 산불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인간에게 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러한 생각이 인간에게 위안이 되었는지 모른다. 인간의 아들도 마찬가지 아닌가? 세상을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여보고 싶은 마음이 때로는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것처럼.

 

73p 아이티오피아 사람들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리뷔아가 사막이 된 것도 이때였고, 열기가 물을 말려버리자 물의 요정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샘과 호수 없어진 것을 애통해한 것도 이때였다고 한다.

 

77p 천마는 벼락 소리에 몹시 놀라 길길이 뛰다가 멍에에서 풀려나고 고삐에서 멍에에서 풀려나고 고삐에서 풀려나 뿔뿔이 흩어졌다. 마구와 수레의 바퀴, 굴대, 뼈대, 바퀴살 파편이 사방으로 날았다.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파편도 있었다. 파에톤은 금발을 태우는 불길에 휩싸인 채 연기로 된 긴 꼬리를 끌면서 거꾸로 떨어졌다. 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가 보았으면 마른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겼을 터이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에리다노스 강이 벼락의 불길에 그을린 그의 시신을 받아주었다.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은 그을린 그의 시신을 수습하여 묻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석의 명문(銘文)은 이러하다.

 <아버지의 수레를 몰던 파에톤,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 파에톤은 떨어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나도 여러 번 죽음을 맞이했다. 그 순간,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살아온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고 했는데, 나의 경우와는 다르다. 난 단지, ‘아~ 이제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떨어지면 꽤 아프겠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가들은 그 상황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를 만든다고 한다. 떨어지는 순간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의 지나온 과거를 역순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시간적인 흐름을 통해서 찬찬히 주인공의 삶을 들여다본다. 나 또한 파에톤이 떨어지는 것을 상상하면서 내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삼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늘에서 천마와 함께 파에톤, 내 글 속에는 현대 컨셉으로 바꾸어서 신화 속 아버지(아폴로)의 차를 타고 가다가 떨어진 파에톤으로 그려보면 어떨까? 신들의 모습도 현대적으로 바꾼다. 모든 신들이 그렇듯이 변신에 능하지 않는가? 어느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떨어진 파에톤, 그 차는 뒤집혀진 상태로 도로 중앙에 있고, 그 안에서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조력자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파에톤은 떨어지는 순간, 기억을 잃게 되고 조력자를 통해서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 간다. 이렇게 신화 속 주인공을 내가 살려내는 것이다. 재미있을 것 같다.

 

88p 곰 모습을 하고 있는 칼리스토는, 아들에게 다가서고 싶어 견딜 수 없었지만, 한 발짝만 접근하면 아들의 창이 날아와 가슴에 꽂힐 터였다. 그러나 이 모자에게 서로 죽이고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능하신 유피테르 신이 이 아르카스와 칼리스토의 손을 잡고는 이 모자를 다른 곳으로 옮겨 아들로 하여금 살모의 대죄를 짓지 않을 수 있게 했다. , 돌개바람을 시켜 아들을 빈 하늘로 옮기게 하고 다시 이들을 이웃해 있는 두 개의 별자리로 박아준 것이었다.

-> 작년에 아이들과 강원도 정선에 있는 어느 계곡을 찾았다. 아내에게 하루 휴가를 주기 위해 남자들만 떠난 여행이었다. 숙소는 차 안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낮에 아이들과 계곡물에서 실컷 놀고, 저녁에 차로 왔다. 차는 하루 종일 뜨거운 햇볕 아래에 있어서, 후끈거렸다. 차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밤하늘을 쳐다 보며, 별을 세었다. 그리고 “우와, 멋지다. 넘 아름답다” 말 밖에는 달리 할 수 없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그 자리에 있으면 아이들에게 수 많은 별자리이야기를 해주리라 다짐해본다.

   

90p 사투르누스의 딸 유노는 털 빛깔이 현란한 공장이 끄는 가벼운 수레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공작의 털 빛깔이 현란해 진 것은, 아르고스가 죽은 뒤의 일이다. 날개가 새하얗고 수다스럽기 그지없던 큰 까마귀의 털 빛깔이 검어진 것과 같은 시기에 그렇게 된 것이다.

-> 인간들은 동물들의 습성과 형태를 자세히 관찰하면서 그러한 모습을 가지게 된 이유를 상상해서 만들었다. 공작의 깃털에는 진짜 눈 모양의 형태들이 보인다. 하나의 현상을 가지고 신화의 이야기 속에 담아내는 고대인들의 상상력은 정말도 대단하다.

 

101p 메르쿠리우스는 이 노인을 단단한 돌로 만들어버렸다. 오늘날 시금석이라고 불리는 돌이 바로 이 돌이다. 그래서 이 돌에는, 옛날에 거짓말하던 흔적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고 한다.

 

105p 인비디아의 안색은 창백했고 몸은 형편없이 말라 있었다. 게다가 인디비아는 지독한 사팔뜨기였다. 이빨은 변색된 데다 군데군데 썩어 있었고, 가슴은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이 인비디아의 입술에 미소가 감돌게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고통받는 광경뿐이었다. 인비디아는 잠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밤이고 낮이고 근심 걱정에 쫓기고, 남의 좋은 꼴을 보면 속이 상하여 보는 것만으로도 나날이 여위어가는 것이 인비디아였다. 남을 고통스럽게 하면 하는 대로, 자신이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저 자신만 녹아나는 게 바로 이 인비디아였다.

 

106p 헤르세의 화려한 결혼과 늘어진 팔자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아글라우로스 가슴의 불길은 건초더미에 인 불길과 비슷했다. 불꽃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 결국은 건처더미를 깡그리 태우고 마는 불길과 비슷했다.

 

109p 사랑을 성취시키려는 마음과 품위를 지키려는 마음은 원래 조화도 양립도 불가능한 법이다.

-> 남자들의 마음에는 유피테르처럼 여자를 성취하려는 욕정이 잠재해 있다. 과학적으로 보면 호르몬 분비가 왕성한 시기에는 이러한 욕정을 다스리기가 무척 힘이 든다. 따라서 남자라면 이러한 욕정을 다스리기 힘든 시기가 있게 마련이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자를 보더라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더 성취하고자 하는 욕심이 커지게 되고, 품위는 온데 간데 사라진다.

그는 젊다는 이유만으로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 그리고 데이트를 했다. 여자도 그에 대한 마음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만난 지 한 달이 되었다. 저녁 무렵, 해가 떨어지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산 언덕에 세워놓은 차 안에 그녀와 함께 앉아있었다. 주변은 너무 조용해서,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 숨소리까지 크게 들렸다. 서서히 그의 욕정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의 수줍은 입술은 그녀의 이마에 먼저 닿았다. 그리고 지긋이 감은 그녀의 눈에 한참 머무르더니, 아래로 내려왔다. 천천히 목적지로 가는 순간, 침묵을 깨는 핸드폰 소리가 그의 입술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했다. 당황한 그녀는 핸드폰을 끊지 못한 채 통화버튼을 눌렸다. 핸드폰 너머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나야 뭐해~”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어디야?” 그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114p 숲으로 들어간 지 오래지 않아 카드모스는 부하들의 시체와 왕뱀을 발견했다. 왕뱀은 부하들의 시체 위로 까마득히 솟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왕뱀은 이따금씩 시체에서 흐르는 피를 빨았다. 시체를 빨다가 머리를 쳐들 때마다 왕뱀의 혀 끝에서는 핏방울일 뚝뚝 떨어졌다.

 

116p 여신이 인간의 씨앗이라고 했던 왕뱀의 이빨을 뿌렸다. 그러자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흙덩어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이랑 사이에서 창날이 쑥 돋아났고 다음에는 깃털술이 달린 투구가 솟아올라 왔다. 오래지 않아 어깨와 가슴, 그리고 무기를 든 손이 올라왔다. 무장한 병사들이 올라온 것이었다. 극장의 무대에서, 막에 가려져 있던 등장인물이 나타나는, 말하자면 처음에는 얼굴, 이어서 몸의 각 부분, 그리고 막이 천천히 걷히면 무대 위에 선 등장인물의 전신이 나타나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카드모스는 이 새 적에게 놀라 무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흙에서 솟아난 무사 중 하나가 소리쳤다.

 

118p 사람은 죽어서 땅에 묻힐 날이 되어봐야, 그 한살이가 행복한 한살이였는지 박복한 한살이였는지, 드러나는 법이다.

 

123p 그러나 그는 너무나 분명하게 거기에 있었다. 사냥개들은 둘러서서 겉으로만 사슴인, 사실은 저희들 주인인 악타이온의 살을 쉴새없이 뜯었다. 전해지는 말로는, 악타이온이 그 많은 사냥개에게 뜯기어 숨이 끊어질 즈음에야…… 저 사냥의 여신 디아나의 분이 풀렸다고 한다.

 

127p 유피테르는 이 세멜레의 뱃속에 들어 있던, 아직 달이 덜 찬 아기를 꺼내어 자기 허벅다리에 넣고 실로 기운 뒤, 남은 달을 마저 채워 꺼냈다고 한다. 유피테르는 이 아기를 아기의 이모인 이노에게 맡겨 은밀하게 기르게 했다.

 

130p 묻는 말에 대답이나 했으면 좋았을 것을, 에코는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로 수다를 늘어놓았고 이 틈에 유피테르와 요정은 감쪽같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에코가 유노 여신을 잡아둔 셈이었다. 여신은 에코의 수다에 정신을 놓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속은 것을 알고 이 에코을 별렀다.

 “나를 속인 그 혓바닥, 그냥 둘 줄 아느냐? 앞으로 너는, 한 마디씩밖에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은 남의 말을 되받아…… 내가 그렇게 만든다”

 

131p 에코의 가슴은 이 사랑의 열기에 금방이라도 타버릴 것 같았다. 불길에 갖다 대기만 하면, 횃대 끝에다 재어놓은 유황이 타듯이……

 

133p 이때부터 에코의 모습은 숲 속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에코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에코의 목소리만은 살아 있으니 당연하다.

 

136p , 그랬었구나. 내가 지금껏 보아오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이었구나. 이제야 알았구나, 내 그림자여서 나와 똑같이 움직였던 것이구나. 이 일을 어쩔꼬,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불길에 타고 있었구나. 나를 태우던 불길, 내가 견디어야 했던 그 불……  그 불을 지른 자는 바로 나였구나. , 이 일을 어쩔꼬, 사랑을 구하여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구하는 것이 내게 있는데…… 네게 넉넉한 것이 나를 가난하게 하는 구나. 나를 내 몸에서 떨어지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사랑하는 자가 하는 기도로는 참으로 기이한 기도다만, 신들이시여,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내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소서. . 슬픔이 내 힘을 말리는구나. 내게 이제 생명의 기운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나는, 내 젊음의 꽃봉오리 안에서 죽어가고 있구나. 죽음과는 싸우지 말자. 죽음이 마침내 내 고통을 앗아갈 것이니…… 그러나 나는 죽어도 좋으니, 내가 사랑하던 것만은 오래오래 살 수 있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우리 둘은, 하나가 죽으면 나머지 하나도 따라 죽어야 할 운명……

-> 나는 거울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웃음을 지어 보면, 나를 보게 된다. 나르키소스처럼 자신의 모든 부분까지 사랑하게 된다면 지금의 왕자병이나 공주병을 가진 인간으로 살지 않을까? 어느 정도는 자신의 부족함 부분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적이다. 신 또한 불완전한 인간을 더 사랑한다.

거울을 보면서 연습해야겠다. 익숙하지 않는 내 모습이 비쳐질 때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말이다. 그러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도 사랑과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137p 나르키소스는 다시 사무치는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따뜻한 햇살에 녹는 금빛 밀랍처럼, 아침 햇살에 풀잎을 떠나는 서리처럼, 그의 육신도 사랑의 고통 속에서 사위어가다 가슴 속의 불길에 천천히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붉은 반점이 내비치던 그 희디흰 살갗도 그 빛을 잃어갔고 젊음의 혈기도 그에게서 빠져나갔다. 제 눈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바라보던 저 자신의 아름다움도 그의 몸을 떠났다. 에코가 사랑하던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그를 떠나갔다.

 

138p 나르키소스는 푸른 풀을 베고 누웠다. 곧 죽음이 찾아와 아름답던 그의 눈을 감기었다. 사자들의 나라로 간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스튁스 강에 비치는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케피소스 강 요정들은 동생인 나르키소스의 죽음을 애도하느라 머리를 모두 깎아 그의 죽음에 바쳤다. 숲의 요정들도 울었다. 에코는 이들의 울음소리를 숲 하나 가득하게 되울렸다.

 

147p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갑자기, 물 빠진 항구로 들어간 것처럼 우뚝 서버렸습니다. 뱃사람들은 대경실색하고, 노를 젓는다. 돛을 팽팽하게 편다, 노잡이들을 돕고 돛 펴는 뱃사람들을 돕는다…… 이렇게 부산을 떨었지만, 세상에…… 노에는 덩굴이 감기기 시작하면서 손잡이 쪽으로 뻗어 올라오고 있었고, 돛에는 열매송이가 주렁주렁 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147~148p 신께서는 어느 틈에 포도송이 관을 머리에 쓰시고, 포도덩굴이 감긴 신장을 들고 서 계셨습니다. 옆에는 어느 새 호랑이, 살쾡이, 얼룩무늬 표범 같은 무서운 짐승들이 와 있었고요. 뱃사람들은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맨 먼저 바다에 뛰어들자, 몸 색깔이 짙어지면서 등뼈가 활처럼 휘기 시작한 것은 메돈이었습니다.

 <메돈아, 네가 대체 무슨 짐승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냐?> 뤼카바스가 이런 말을 하는데, 자세히 보니 이 자의 입이 쭉 찢어지면서 코가 꼬부라지고 살갗에 비늘이 돋더군요.

-> 예전에 울릉도 주변을 배 타고 가다가, 돌고래 떼를 만났습니다. 배 좌, 우측으로 따라오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하늘로 솟구치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돌고래들은 자신들이 빠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뽐내고 있었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야기에 나오듯이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원래대로 돌려줄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157p 고갯짓, 눈짓으로만 사랑을 나누었으니까. 감추면 감출수록 깊어가는 게 사랑이잖아? 속으로 속으로 타들어가는 섶 속의 불씨 같은 게 사랑이잖아?

 

161p <당신의 손, 당신의 사랑이 당신을 죽였군요. 이만한 일을 할 손이라면 내게도 있어요. 당신의 사랑에 못지 않는 내 사랑도 이만한 상처를 낼 힘쯤은 내게 베풀어줄 거예요. 내가 죽어서 당신의 뒤를 따르면, 사람들은 내가 당신을 죽이고 당신의 길동무가 되었다고 할 테지요. 죽음이 당신을 내게서 떼어놓았지만, 이 죽음도 우리를 갈라놓을 수는 없어요. 무정한 부모님들이시여, 내 부모님, 퓌라모스의 부모님들이시여, 원하오니 저희들 소원을 이루어주소서. 뜨거운 사랑과 죽음의 손길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한 무덤에 묻어주소서. 나무여 이미 내사랑의 주검을 보았고 곧 내 주검을 내려다볼 나무여, 우리의 죽음을 영원히 기억하시어 사람들이 우리 둘이 흘린 피를 되새기도록 그대 열매를 어둡고 슬픈 색깔로 물들여 주세요.

-> 이 구절은 ‘로리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케 한다. 아마도 세익스피어가 이야기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도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녀의 사랑을 비극으로 묘사하는 방법 가운데 최고의 장면이 아닌지 여겨진다.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진한 슬픔은 끌어내고 있다.

 

174p 요정이 이렇게 말하자 소년의 얼굴은 아주 새빨개졌어. ? 사랑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소년이었거든. 새빨개진 소년의 뺨은, 해 잘 드는 과수원 나무에 매달린 잘 익는 사과 색깔, 아니면 빨간 물감을 칠한 상아 색깔, 일식 때의 달 색깔 같았어.

 

193p 이렇게 외치면서 고개를 돌리고, 왼손으로 저 무서운 메두사의 머리를 꺼내어 들었다. 아틀라스는 메두사의 머리를 보는 순간부터 저 자신의 체구만큼이나 큰 바위 산으로 변해갔다. 수염과 머리카락은 나무가 되었고, 어깨는 능선이 되었으며 머리는 산꼭대기가 되었고 뼈는 바위가 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산이 된 그의 몸은 사방으로 뻗어나기 시작하여(다 신들의 뜻이었다) 수많은 별이 박힌 하늘이 그 어깨 위에 얹힐 때까지

 

194p 페르세오스는 이 나라 위를 날면서 두 팔이 바위에 묶여 있는 이 나라의 공주를 보았다. 미풍에 공주의 머리카락이 나부끼지 않았더라면, 공주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지 않았더라면 페르세오스는 이 공주를 대리석상쯤으로 보았을 터였다.

 

195p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그런 사슬에 묶여 있어야 할 그대에게 쇠사슬은 당치 않습니다. 바라건대 그대의 이름과, 이 나라의 이름과, 그대가 사슬에 묶여 있게 된 연유를 내게 일러주세요."

 

198p 오늘날까지도 산호는, 대기에 닿으면 돌이 되는, 이러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말하자면 물 속에서는 식물인데, 수면 위로 나오면 돌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200p “나는 메두사의 얼굴을 직접 보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간 청동 방패에다 비추어 보았으니까요. 나는 메두사와 메두사의 머리 위에 똬리 튼 뱀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칼로 목을 따버렸던 것이지요”

-> 메두사는 무시무시한 신적인 권능을 부여 받았지만 오히려 자신에게 치명적인 권능으로 뒤바뀌는 장면입니다. 신화이야기에 나오는 대부분의 영웅들도 같은 운명의 길을 걷습니다. 적은 밖에 있지 않고 영웅 내면에 있습니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가진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믿고 자만심에 빠져있으면, 결국 자신이 쌓아 올린 권력으로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203p 저분은, 너를 우선해서 선택된 것이 아니고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니 그리 알아라.

 

205p 뤼카바스는 죽어가면서도 시시각각으로 그늘지는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아티스 옆으로 기어가, 죽어도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진한 우정을 황천에 이르기까지 누리려 했다.

 

212p “이 겁쟁이 피네오스야, 내가 너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베풀겠다. 너같이 하잘 것없는 것에게는 얼마나 과분한 은혜겠느냐? 이제 칼로써는 아무도 너를 해코지하지 못할 것이니 두려워 말아라. 무슨 까닭이냐? 나는 너를 아주 대리석 기념상으로 만들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내 장인의 궁전 앞에 선 채 만인의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어찌 영광스럽지 않으랴. 내 아내는, 한 때는 자신의 약혼자였던 네 모습을, 이제부터 일삼아 보게 될 것이다.

 

232p 유피테르는, 슬픔에 잠겨 있는 케레스와 정든 아내를 내어놓지 않으려는 플루토를 화해시키려고 애썼어. 어떻게? 일년을 반으로 나누고는, 일년의 반은 어머니의 나라인 땅, 나머지 반은 지아비의 나라인 저승에서 지내게 한 것. 그러니까 프로세르피나는 이 두 나라에서 번갈아가면 살 수 있게 된 것이지.

 

242p 한 가지 색실이 다른 색실과 겹치는 부분에서는 어디서부터 이 색실에서 저 색실로 바뀌었는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소나기가 하늘에다 그려놓은 긴 활꼴 무지개와 흡사했다. 무지개가 지닌 여러 가지 색깔의 띠는, 맞물리는 곳에서는 하나로 보이지만 여기에서 조금만 떨어지면 전혀 다른 색깔로 보이는 법이다.

-> 나는 지금도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시선은 무지개의 시작과 끝을 쫓아가 본다. 어릴 적 내가 느꼈던 감동 그대로다. 아직까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안도감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는다. 그러는 가운데, 신의 존재를 가늠해본다. 아마 무지개 너머에, 신이 존재하고 있으리라. 신이 우주와 지구를 만들고, 인간을 빚었듯이 무지개도 신들이 만들었다. 그리하여 무지개를 인간 세상에 보내어, 아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어른을 축복해주고 있는 것이다.

 

249p 아라크네는 꽁무니로 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이때 거미가 된 아라크네는 지금도 옛날과 다름없이 실을 내어 공중에다 걸고는 거기에 매달려 산다.

 

252p 내가 누리는 행복은 요컨대 보름달과 같아서 한 군데도 빈 데가 없다. 이것을 누가 부정할 것이냐? 나는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이것 또한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리라. 무슨 까닭이냐? 나의 자식 복이 내 행복을 보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256p 이제 적으로 여기던 나를 이겼으니 날뛰면서 춤이라도 추시지요. 하지만, 내가 왜 당신을 승리자라고 불러야 하지요? 내 꼴 비록 이렇듯이 비참하게 되었지만 살아 있는 내 자식들 수가 기뻐 날뛰는 당신의 자식들 수보다 그렇게 많이 잃었어도 아직 내 자식 수는 당신의 자식 수보다 많답니다. 니오베가 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시위 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두려워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했지만 니오베만은 태연했다. 불행이 오히려 니오베를 대담하게 만든 것이었다.

-> 불행이 극한으로 가버리면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보다, 나는 이렇게 순응하려고 한다.인간의 의지로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불행이라면, 신에게 의지한다. 내 힘으로 어찌 할 수 없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에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지혜가 생기는 것 같다. 아마도 니오베 또한, 불행의 고통이 심해지자, 모든 것을 체념하고 태연해 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대담해지는 것이다.

  

270p 그는 자신의 전리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의 모습은 발톱으로 메토끼를 채어 제 둥지에다 내려놓고, 오갈 데 없는 이 희생물을 탐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약탈자인 독수리와 흡사했다.

 

278p “그대가 찾는 아이는 여기에 있소, 바로 그대 뱃속에 있소” 테레오스는 주위를 둘러보며서, 이튀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고는 다시 이튀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이튀스 대신 조금전에 죽은 이 아이의 피로 피투성이가 된 필로멜라가 피 묻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 이튀스의 머리를 들고 나타났다. 필로멜라가 테레오스에게 내미는 이튀스의 머리에서는 피가 뚝뚝 들었다. 필로멜라는, 자기가 말을 할 수 없는 것을 얼마나 다행스럽게 여겼을까?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 순간에 어울리는 말을 적절하게는 할 수 없었을 것이므로…… 대노한 테레오스는 식탁을 걷어차고, 스틱스 나라에 사는, 배암 머리카락의 자매 이름을 불렀다.

-> 이 얼마나 잔인한 장면인가? 인과응보의 대가치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하다. ‘변신이야기’ 중에서 가장 잔인한 이야기 중에 하나로 꼽고 싶다. 우리 현실에도 이러한 사건들이 종종 뉴스에 등장한다. 그러고 보면 나 또한 신화의 세계에 살고 있다. 왜 이러한 잔인한 사건들이 고대 신화에서부터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인간의 본성에 숨어있는 악의 존재 때문인가?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인가? 야생 환경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약육강식’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인간 세상보다 더 비열하고 잔인한 모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이처럼 신화 이야기는 야생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따라서, 현재 윤리와 도덕이 지배적인 우리 사회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이러한 잔인한 이야기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279p 사랑이 실패로 돌아간 게 당연하지. 완력과 폭력, 분노와 위협 같은 내 비장의 무기를 포기하고 내 성격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애원과 호소에 기대를 걸었으니……. 그래, 내게 어울리는 것은 폭력이다. 나는 폭력을 써서 검은 구름을 휘젓고, 폭력을 써서 바다를 둘러엎고, 해묵은 떡갈나무를 뿌리째 뽑고, 눈을 얼리고, 대지를 눈보라로 때려야 한다. 그렇다. 하늘이야말로 나의 무대다.

 

282p 이올코스 왕 아이손에게는 배다른 아우 펠리아스가 있었는데, 펠리아스는 형 아이손을 몰아내고 이 나라의 왕이 된다.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이 자라 왕위를 내어놓을 것을 요구하자 펠리아스는, 금양 모피를 찾아 오면 왕위를 내어놓겠다고 말한다. 이아손은 이때부터 그리스 각지의 영웅들을 모으는 한편 아르고스라는 사람에게 명하여 크고 빠른 배를 짓게 하는데 이렇게 해서 지어진 배가 아르고 호()(<쾌속선>이라는 뜻이다.), 이 배를 타고 콜키스로 원정한 원정대원들은 아르고나우타이(<아르고원정대원들>)라고 불린다.

-> 서른 아홉이 되는 해에 나는 8기 변경연의 배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 배에는 나의 스승인 구본형 사부님을 비롯하여 수 많은 세상 경험을 가진 동기들이 함께 승선했다. 그 배의 이름은 ‘팔팔이 호()’다. 나는 지금까지 수 많은 좌절과 고난을 경험했다. 현재, 나의 목표는 뚜렷하다. 저 이아손이 금양모피를 찾기 위해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난 것처럼 나의 영웅 신화도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처럼 만들어 가고 싶다. 나 만의 첫 책을 써내고 싶다.

 서른 아홉의 첫 번째 도전은 터키였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해외문화체험 기회가 변경연의 도전과 똑 같은 일정으로 주어졌다. 두 가지 모두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먼저 변경연 레이스가 시작되었다. 주제는 나는 누구인가였다. 나는 별도의 주제보다는 똑같은 주제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해외문화체험에 대한 주제도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로 정했다. 팀원들의 반응도 좋았다. 그토록 가고 싶어했던 여행지도 그리스 로마신화의 주요 배경인 터키였다. 터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변경연 첫 번째 과제인 헤도로토스의 역사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다.

결국 나는 회사에서 당선이 된 감격을 누리고 그 다음날 변경연의 합격통보를 받았다. 그리하여 은 2012 5 18일 터키를 향해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이 시작되었다. 이스탄불, 카타도피아, 트로이, 에페소, 파묵칼레등 신화가 살아 숨쉬는 곳을 둘러보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영웅 이아손의 다음 목적지는 콜키스였지만 나의 다음 목적지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였다. 사부님과 팔팔이 그리고 선배님들과 함께 했던 여행은 꿈만 같았다.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축제로 기억되었다.

 

283p “메데이아야, 저항해도 소용없다. 어느 신인지는 모르나 어느 신인가가 너의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 이런 것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아버지의 요구가 지나친 요구라고 생각될 까닭이 없지. 아니다. 지나친 요구임에 틀림없어,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내가 이렇게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일까? , 이 어리석은 계집아, 네 어리석은 가슴에 붙은 불을 꺼버리면 되지 않느냐? 그렇지, 끌 수만 있다면 얼마나 나다우랴. 하지만 아무리 내가 마음을 다져먹어도 까닭을 알 수 없는 짐이 나를 짓누르니 이 일을 어쩌지? 욕망은 나더러 이렇게 하라고 하고 이성은 나더러 저렇게 하라고 하니 이 일을 어쩌지? 어느 길이 옳은 길인지 나는 알고 있다.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나는 옳지 않은 길을 따르려 하고 있다.

 

285~286p 그리스 영웅을 구하는 영예, 이 땅보다 훨씬 나은 나라, 먼 바다 해변에까지 그 이름이 두루 알려진 나라에 대해 내가 얻을 새로운 견문…… 이것이 어찌 고귀한 것들이 아닐까보냐. 그래, 그런 도시의 예술과 문화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온 금은보화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이아손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아손을 지아비로 섬기면 온 세상 사람들은 나를, 하늘의 사랑을 입은 여자라고 부르겠지. 내 권세가 별을 찌를 만큼 드높아질 테지.

-> 메데이아는 대단히 용의주도한 인물이다.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원들은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황금 양털을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신화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인뿐만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도 남자들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는 수동적인 여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메데이아는 이러한 여인의 운명과는 완전 반대다. 교모하고 주도면밀하며 빈틈이 없다. 과감히 아버지와 조국을 버리고 콜키스에서의 탈출이든, 이올코스에서의 왕권회복이든, 코린토스에서 배신한 남편에 대한 잔인한 복수에서든, 아테나이에서의 재혼이든, 다시 콜키스로 돌아가 아들을 왕으로 세우는 일이든 한치의 오차 없이 성공시킨다. 그러한 성공을 이루고자, 추격해오는 아버지에게 동생의 시체를 토막 내어 바다에 던진 일이나, 남편의 왕권 탈취를 위해 딸들에게 제 아버지를 토막 내게 하고 솥에 삶아 죽인 일, 배신한 남편에 대한 복수로 독에 담근 옷을 보내 새 신부와 그 아버지를 죽이고 또 제 손으로 그녀가 낳은 자식들을 죽인 일은 역사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잔혹한 일이다. 그녀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잔인한 일을 저질렀는가? 결국에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닌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동도 서슴없이 하면서도, 어찌하여 신들의 노여움을 피해, 오랫동안 살았는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하지만, 왕의 자리에 있기까지 도와준 메데이아의 헌신을 배반해 버린 이아손의 운명은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모든 극적인 상황들을 오늘 날의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은 인간들의 욕망은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287p 잿더미에 묻혀 있던 불씨가, 문득 불어온 바람에 다시 타오르면서 원래의 그 왕성한 생명력을 되찾는 것처럼. 메데이아의 식어 있던 사랑도 이 청년 앞에서 되살아나 맹렬하게 타오르는 것 같았다.

 

289p 이 불길이 닿자 풀밭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황소가 숨을 쉴 때마다 나는 소리는, 땔감을 잔뜩 쟁여넣은 용광로에서 나는 소리, 혹은 뜨겁게 달군 석회석에 물을 부을 때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숨을 쉴 때마다 이 황소의 가슴, 이 황소의 목 안에 갇혀 있던 불길이 맹렬한 기세로 뿜어져나오면서 쉭쉭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289p 아기가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사람의 형상을 얻기까지 자라다가 모양이 완전해지면 세상에 나오듯이, 이 대지에서도 대지의 풍요로운 자궁 안에서 제 모습을 완전히 갖춘 인간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고 대지에서 돋아났다는 것이었다.

 

291p 내 아내여. 내가 오늘 같은 영화를 누리는 것은 다 그대 덕분이오. 그대는 내게 모든 것을 베풀었으니, 나는 그대가 베푼 은혜 헤아릴 길이 없소.

-> 나의 모험이 끝이 나고, 귀환해서 나의 아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지금도 결혼기념일이 되면 아내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다. 하지만 나의 감사목록이 20가지라면 아내가 나에 대한 감사목록이 100가지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나는 큰 것에 감사를 하는 한편, 아내는 사소한 것에 감사하며 나를 생각했다. 이러한 아내가 있었기에 나의 부족한 부분인 ‘디테일’을 채워나갈 수 있었다.

 

297p 희한하게도 감람나무 막대기가 파랗게 변하더니, 잠시 후에는 잎으로 뒤덮였고, 또 잠시 후에는 열매가 열렸다. 불길이 세어서 그런지 가마솥 가장자리로는 약이 넘쳐 그 옆의 땅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그러자 약이 들은 땅이 파랗게 변하면서 여기에는 곧 풀이 돋았고 이 풀에서는 꽃이 피었다.

 

297p 약이 들어간 지 오래지 않아 그의 하얗던 수염이 그 흰 빛을 잃더니 곧 검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그의 노구에서 보기에 거북하던 모습이 사라지면서, 살빛이 되살아났다. 주름살에 덮여 있던 그의 살갗은 다시 근육을 부풀어올랐고, 그의 사지는 늘어나면서 힘줄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노인은 달라진 자기 모습을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303p 텔키네스 일족은 원래 눈에 띄는 것은 마법의 눈빛으로 죽여버리는 권능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이 때문에 유피테르의 노여움을 사서 이 대신의 아우가 지배하는 바다에 수장된 종족이었다.

 

307p 수많은 도식국가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이 잔치에 참석했다. 포도주가 입을 열게 하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태세우스를 찬양했다. "전능하신 테세우스시여, 그대는 그 뛰어난 무용으로 크레타의 황소를 죽임으로써 마라톤 평원에다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308p 역시 이 세상에는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은 즐거움이란 없는 것인가? 그래서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는 것일까?

 

315p 그때의 내 심정, 물으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내게는 삶에 대한 증오, 내 백성과 운명의 아픔을 나누고 싶다는 욕망뿐이었습니다.

 

322p 아우로라 여신이 이를 알고 내 모습을 바꾸어주었어요. 나도 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나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변장하고 팔라스의 도시 아테나이로 들어가 내 집을 찾아들어갔어요. 별로 달라진 것은 없었어요. 집안 사람들이 주인이 사라진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만 빼면.

 

329p <우리가 나눈 혼인의 서약에 걸고,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 보시는 신들의 이름에 걸고, 나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사랑에다 걸고 약속해 주세요. 이렇게 죽어가면서 드리는 부탁이니 약속해 주세요. 내가 그대에게 모자라는 아내였더라도 나 죽은 뒤에라도 아우라를 아내로 삼지는 말아주세요>

-> 한낱 오해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평소 아내에게 오해될 소지의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 ‘아내’라고 말해보면 “안해”라고 발음된다. 달리 해석해보면 ‘내 마음에 해’라는 뜻이다. 내 마음에 해이기 때문에 항상 밝게 빛나는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간혹 구름이 끼게 하거나 비가 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너무 나의 관심에 몰두하는 것보다 균형 있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사랑을 쏟아야 한다. 내 마음에 밝게 빛나는 태양이 떠야, 온 가족이 평온하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329p 아내는 희미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면서 내 입술에다 마지막 숨결을 내쉬었소. 그러나 표정은 행복해 보였소. 행복을 누리다가 행복한 가운데 죽어가는 것 같더라는 말이오.

 

335p 인간은 누구나 저 자신의 신이 되어 저 자신의 뜻을 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명의 여신은, 행동하는 인간을 돌보실 뿐, 기도만 하고 있는 인간은 돌보시지 않는다. 누군들 나와 같이 하려 하지 않겠는가. 욕망이 내 욕망만큼 강렬하다면 누군들 사랑의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깨뜨리지 않겠는가. 그래, 깨뜨리려 할 것이다. 기꺼이 깨뜨리려 할 것이다. 그러면, 남들은 용감하게 그것을 깨뜨리는데 나는 왜 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나는 할 수 있다.

 

335p 어둠은 스퀼라를 담대하게 했다. 잠이 인간의 가슴에 깃들인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재우는 이 평화로운 시간을 틈타, 스퀼라는 살며시 아버지의 침실로 숨어들어가 그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338p 이 배은망덕한 자여, 내 말이 귓구멍으로 들어갔느냐? 아니면 그대의 함대를 몰고 가는 바람이 내 말을 내 귓전을 흘려버리더냐?

 

341p 다이달로스가 지은 미궁은, 프뤼기아 땅을 제멋대로 흐르는 마이안드로스 강과 흡사했다. 이 강은 왼쪽으로 흐르는가 하면 오른쪽으로도 흐르고, 이쪽으로 흐르는가 하면 저쪽으로도 흐르며, 강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는가 하면, 어느새 대양을 향해서도 흘러가는, 참으로 이상한 강이었다. 다이달로스는, 수많은 미로를 곳곳에 배치하여, 한번 들어가면 저 자신도 입구를 찾아나오기 어려운, 저 마이안드로스 강을 연상시키는 미궁을 만든 것이다.

 

 

344p “이카로스, 내 아들아. 내 단단히 일러두거니와 하늘과 땅의 한 중간을 겨냥하여 반드시 그 사이로만 날아야 한다. 너무 올라가면 태양의 열기에 깃이 타버릴 것이요.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에 젖어 깃이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꼭 하늘과 바다 한 중간을 날도록 하여라. 목동자리, 큰곰자리, 칼을 빼들고 서 있는 오리온자리 같은 별자리에는 신경을 쓰지 말아라. 나를 잘 보고 내가 하는 대로만 하여라.

 

346p 빈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얼마나 높이 솟았는가 하면, 태양의 열기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말랑말랑해질 때까지 솟아올랐다. 그러자 밀랍이 녹았다. 밀랍이 녹았는데 깃이 붙어 있을 리 없었다. 이카로스는 맨팔 맨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깃 없이 사지만 허우적거려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이카로스는 아버지를 부르며 바다로 내리박혔다.

-> 앞서 나왔던 태양신의 아들 ‘파에톤’의 추락모습과 닮았다. 아버지의 조언에도 젊은 혈기로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이카로스 또한 떨어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 아들 모두 자신의 욕심을 다스리지 못했다.

 나 또한 대학교 다닐 때, 젊다는 이유만으로 오토바이를 탔다. 125cc였으며, Magma’라는 이름이었다. 우측 손잡이를 당겼을 때, 느껴지는 감촉, 그 만족감은 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초 겨울, 아침이었다. 새벽에 집을 나서, 학교로 가는 길이었다. 도로는 비가 온 뒤라 살얼음이 보였다. 사거리에 신호등에 초록 불빛에서 노란 불빛으로 바뀌는 순간, 브레이크를 살짝 잡았다. 기우뚱 하더니 우측으로 넘어졌다. 그리고는 그 무거운 오토바이는 나를 깔고 앞으로 쭉 미끄러져 갔다. 사거리 맞은편 도로까지 오토바이 밑에 깔린 상태로 미끄러졌다. 앞에 고속버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운전기사와 눈이 마주쳤다. 기사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밞았지만,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췩--췩’ 소리에 죽음을 예감했다. 눈을 감았다. 그리고 소리가 멈추자, 눈을 떴다. 나와 오토바이가 버스 아래에 절반 정도 들어간 채로 멈추었다. 정신을 차렸다. 문득 떠오른 것은 살았다는 안도감보다 ‘쪽 팔린다’ 생각이었다. 평소에 낑낑대며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웠는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나 자신도 놀랬다. 번쩍 들어 올려서는 길 옆으로 세웠다. 버스기사의 뭐라고 욕하는지 들리지도 않았다. 연신 허리를 숙이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호가 바뀌고 차들이 지나갔다.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고 정신을 차렸다. 온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오토바이 밑에 깔린 상태로 미끄러질 때부터 뜨거워진 몸이었다. 무언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왔다. 우측 바지아래로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졌다. 피는 양말을 타고 신발 안으로 스며들어갔다. 피를 보면서 고통도 함께 전해져 왔다.

 파에톤과 이카로스가 하늘에서 떨어졌다면 나는 땅과 마주하며 추락했다. 그들이 추락할 때 천마와 날개가 함께 있었다면 나는 금속 오토바이와 함께 했다. 죽음을 마주하는 순간은 같았으리라. 그리고 아버지의 조언을 무시한 것도 또한 닮았다. 이렇게 생명을 연장한 나는 감사하며 하루 하루를 살고 있다. 지금의 아들이 오토바이를 탄다면 어떻게 대처할까? 고민이다.

 

370p “선한 영감과, 선한 영감에 어울리는 역시 선한 할미야. 내게 말하여라. 너희가 내게 무엇을 구하느냐?

 

370p “저희들은, 대신의 신전을 지키는 신관이 되고자 하나이다. 저희들은 한평생을 사이 좋게 살아왔은즉 바라옵건대 죽을 때도 같은 날 같은 시에 죽고자 하나이다. 제가 할미의 장사 치르는 꼴을 보지 않고, 할미가 저를 묻는 일이 없었으면 하나이다.

 

371p “신들을 사랑하는 자는 신들의 사랑을 입고, 신들을 드높이는 자는 사람들로부터 드높임을 받는 법이거니.

 

377p 그가 먹어 치운 음식은 그의 배를 채운 것이 아니고 그의 식욕을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그가 먹어 치운 음식은 그의 허기를 채운 것이 아니고 허기를 자극했던 모양입니다.

 

변신이야기 #2

21p “내가 강을 정복하기로 한 바에, 어찌 이 강이라고 그냥 둘 수 있을소냐!

 

24p 말하자면 그의 피는, 빨갛게 단 쇠를 만난 차가운 물처럼 끓어 올랐다. 고통은 끝이 없었다. 그의 가슴속에는 독물이 불꽃이 되어 타올랐고, 그의 온몸에서는 검은 땀이 뚝뚝 들었다. 뒤틀리는 힘살에서는 탁탁, 힘줄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의 뼈는 이 독하기 짝이 없는 독물에 녹아 내리고 있었다. 참다 못한 그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외쳤다.

 

28p 헤라클레스는 이 필록테테스에게 화장단에다 불을 지르게 했다. 탐욕스러운 불길은, 처음에는 그가 장작더미에다 깔고 누운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태웠고, 그 다음으로는 뭉둥이를 베고 누운 그의 목,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그의 얼굴로 옮겨 붙었다. 그의 표정은,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술잔에 둘러싸여 있는 술잔치의 술손님의 표정과 다를 바가 없었다.

 

31p 불카누스가 헤라클레스의 몸으로부터 불에 탈 수 있는 것을 모조리 털어내자 이 영웅의 형상은 이 영웅을 떠났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영웅의 모습, 오로지 아버지 유피테르로부터 받은 것으로만 이루어진 영웅의 모습은 이제 지상에서 숨쉬던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뱀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 비늘이 반짝이는 새 껍질로 거듭나듯이 티륀스의 영웅도 필멸의 육체를 벗고 불사의 몸으로 거듭났다. 인간의 오체를 벗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는 이전보다 더욱 위엄 있는 모습으로 거듭난 것이었다. 전능한 그의 아버지 유피테르는 그를 사두마차에다 태우고 구름으로 가려 천상으로 불러 올리고는 반짝이는 별자리 사이에다 박아주었다. 아틀라스는 이 새로운 별의 무게를 어깨로 느낄 수 있었다.

-> 유럽 문화의 진수를 품고 있는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수박 겉만 핥고 지나가지 않기 위해서는 헤라클레스의 열 두 과업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의 모험을 다룬 대리석상은 돌덩어리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다시 정리해보자.

 1. 네메아 계곡의 사자 퇴치

 2. 레르네에 사는 히드라(물뱀)퇴치

 3. 게리네이아 산중에 사는 사슴을 산채로 잡은 일

 4. 에리만토스 산의 멧돼지를 산 채로 잡는 일

 5. 아우게이아스 왕의 가축 우리를 청소하는 일

 6. 스팀팔리데스의 사나운 새 퇴치

 7. 크레타의 황소를 산 채로 잡는 일

 8. 디오메데스 왕 소유의 사람 잡아먹는 4마리의 말을 산 채로 잡는 일

 9.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띠를 탈취하는 일

10. 괴물 게리온이 가지고 있는 소를 훔쳐 오는 일

11. 여신 헤스페리데스들이 지키는 동산의 황금 사과를 따오는 일

12. 저승을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산 채로 잡는 일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힘이 세고 유명한 영웅이다. 암피트리온의 아내 알크메네와 제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제우스에게서 뛰어난 힘과 씩씩한 기상을, 암피트리온과 많은 달인들로부터 무예와 음악을 배운 그는 훌륭한 무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헤라의 증오는 지상의 모든 고뇌를, 지상의 모든 수고를 그에게 지웠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기 전까지 그는 훌륭하게 참아낸다. 고난을 이겨낸 보상일까? 결국 헤라클레스는 지상에서 어둡고 무거운 고통을 내려두고, 천상의 빛을 향하여 비상했다. 빛나는 청춘의 여신 ‘헤베’는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지아비 된 헤라클레스에게 신들이 마시는 술을 따랐다. 그리하여 그는 영원한 하늘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되었다. 

 터키 여행 때 에페소 국립박물관에서 고독한 헤라클레스석상을 보았다. 황금모피에 몸을 기대고 고독에 빠져 있는 헤라클레스는 현재 회사와 가정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남자들의 고독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37p “부드러운 껍질이 내 목 안으로 차올라 옵니다. 나무 껍질이 내 몸을 빈틈없이 에워쌉니다. 아버지, 제 눈에서 손을 치우셔도 됩니다. 아버지가 감겨주시지 않으셔도 나무 껍질이 제 눈을 가린답니다.

 

43p 나 역시 이 운명의 손길은 벗어날 수가 없는 몸인 것이오. 나에게 만일 운명의 물길을 돌린 권능이 있었다면, 아이아코스의 허리는 세월의 무게로 휘어지지 않았을 것이고, 라다만토스는 아직까지 혈기방장할 것이며, 지금은 노경에 들어 온갖 조롱을 받고 있는 미노스도 법을 이런 식으로는 집행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오.

 

46p 잠들어 꿈을 꾸면 너울은 벗은 욕망이 저를 사로잡아 그 뜨거움으로 저의 뼈마디를 녹이더이다. 저를 질투하여 밤은 서둘러 새고, 그래서 제 꿈은 짧기가 그지 없어도 그 일만 생각하면 그 기억이 제 몸을 저리게 하나이다.

 

46p 그런데 왜 나는 이런 꿈을 꾸는 것이지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꿈은 왜 꾸는 것이지요? , 신들이시여, 이런 꿈은 이제 더 이상 꾸지 않게 하소서.

 

49p 나는 나대로 그대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싸우면서 버티어 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싸움에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래서 그대의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대만이, 그대를 사랑하는 나를 죽이거나 살리거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하소서.

-> 금단의 사랑을 선택하는 뷔블리스는 심한 내적인 갈등을 한다.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절제’라는 미덕마저 사라지게 한다. 만약 내가 뷔블리스라면, 어떠했을까? 이미 도덕과 윤리가 깊게 뿌리 박혀있는 나의 인식으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1차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2차 시도까지 행동에 옮기게 되는 상황에서 불길한 징조를 알았음에도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50p 뷔블리스가 시종에게 이 서판을 건네주려는 찰나 서판은 뷔블리스의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졌다. 이 불길한 징조가 뷔블리스를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뷔블리스는, 이런 징조에 마음음 쓰지 않고 시종에게 서판을 주어 보냈다.

->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 때가 있다. 나도 경험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것이 현명한 마음가짐이다. 모든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안테나가 뻗어 있어서, 징조나 계시를 느끼는 순간이 있다. 신화 속 모든 이야기에도 이러한 계시나 징조가 나타나 있다. 그래서 더욱 극적인 장면들을 연출하고 있다.

 

51p 내가 서판을 시종에게 건네줄 때, 서판이 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 것은, 내 사랑을 드러내지 말라는 계시였거늘, 서판이 떨어진 것은, 내 희망도 그렇게 무참하게 깨어질 것을 미리 알리는 계시였던 것을…….

 

52p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가는 데까지 밀고 나아가보자. 이로써 내 희망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 는 있을지언정 내 죄가 이로써 더 무거워질 까닭은 없다.

 

54p 뷔블리스는 이렇게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몸이 하나도 남김없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바람에 그만 샘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름이 이 처녀의 이름과 같은 <뷔블리스의 샘>은 지금도 그 산자락의 계곡 감탕나무 그늘에 있다고 한다.

 

59p 이피스여! 정신을 차리고 이 어리석은 생각, 쓸데없는 생각일랑 털어버려야 한다. 너 자신도 속이지 말고, 남들도 속이지 말고, 네가 무엇으로 태어났는지 잘 생각해 보아라.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보고, 여자인 네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을 사랑하여라. 사랑에의 욕망을 낳고 이 욕망을 살찌우는 것은 바로 희망이다.

 

60p 기다리고 기다리던 때는 다가오고 있다. 혼인할 날이 임박했다. 이 날만 지나면 이안테는 내 사람이 된다. 그러나 이안테는 내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다.

 

64p 횃불도, 있는 힘을 다해 흔드는데도 불구하고 제대로 타지 않아 하객들은 거기에서 나는 연기 때문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불길한 일은 징조에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혼례식을 갓 치른 새색시가 요정들과 함께 들판을 거닐다가 뱀의 독니에 발목을 물려 즉사한 것이었다.

 

64p 주석)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최고의 시인이자 음악가. 예술의 여신인 무사이 중 하나인 칼리오페를 어머니로, 오이아그로스를 아버지로 태어난 것으로 전해지나 이 이야기에서는 본인 입으로 자신이 아폴로 신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수금을 잘 탔는데, 이 수금은 아폴로로부터 받았다는 설도 있고 스스로 발명했다는 설도 있다. 오르페우스가 수금을 타면서 노래를 부르면 금수는 물론이고 산천초목까지 감응했다고 전해진다. 아르고 원정 때는 노래로 파도를 잠재웠다는 전설도 있다.

-> 두 번째 읽기에서 오르페우스를 새롭게 조명하게 되었다. 그가 아르고 원정대에 일원이었다는 것을 이렇게 작은 주석에 나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만큼 그리스 신화에 무지했다는 증거이다. 오르페우스는 뤼라(Lyra, 즉 수금:줄이 일곱 개인 현악기)타는 솜씨가 훌륭했으며, 노래 짓기도 잘하고 잘 불렀다고 한다. 그의 음악에 매혹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으며, 동물과 식물, 심지어는 생명이 없는 사물들까지도 감응했다고 하니 대단한 뮤지션이다.

그가 음악이 이토록 모든 존재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원천은 어디에 있는가? 단지 신의 아들로 능력을 부여 받은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모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힘을 터득하여 공감하는 힘을 키운 것인가? 이러한 궁금증은 예술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까지 던지게 되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모든 존재에 이미 내재에 있지만 인간들이 미처 느끼지 못한 부분들을 음악이나 미술등 어떤 형식으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기술이다. 이러한 기술에 풍부한 감성과 진실까지 더한다면 모든 존재들까지도 감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도 이러한 표현기술을 배워서 내 감성과 경험, 그리고 진실함까지 담아내고 싶다.

오르페우스가 아르곤 원정대의 일원이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아이손이 그리스 영웅들을 모집하면서 예술가인 오르페우스를 영입한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도 원정대가 힘들고 위험한 순간이 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기 위함이 아닐까? 실제 향해 도중 큰 폭풍을 만났을 때, 오르페우스가 수금을 뜨자 폭풍이 멎었다고 한다. 그리고 배의 이름까지도 그가 명명하여 ‘아르곤’이라고 하였다.

 

65p 이 무서운 땅의 권능에 기대어, 이 끝없는 혼돈, 이 넓은 땅을 감도는 침묵의 권능에 기대어 소망합니다. 채 피기도 전에 져버린 에우뤼디케의 운명의 실을 다시 이어주십시오.

 

67p 저승 왕은 오르페우스에게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즉 에우뤼디케를 데려가되 저승 땅을 다 벗어나 아르베르노스를 다 벗어나기까지는 에우뤼디케를 돌아다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만일에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다본다면 에우뤼디케는 다시 저승 땅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남자 주인공이 죽은 어머니의 영혼을 저승에서 만나고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분명 하루키도 오르페우스 이야기를 읽는 것으로 짐작해 본다. 아마도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관계를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다행히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무사히 이승으로 돌아오게 된다. 아마도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이기에 비극적인 장면은 연출하지 않는 것 같다. 두 편의 이야기를 비교해보면 더 극적인 장면은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보면서 아내와 다시 이별하게 되는 모습이다. 이것은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더 극적으로 표현하면서 읽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72p 네가 남을 위해 슬퍼하고, 네가 고통스러워 하는 이웃의 벗이 되고자 하니 나 또한 너를 위하여 슬퍼하리라.

 

77p 나는 살아있고 너는 죽었으나 너는 영원히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너의 이름은 영원히 내 입가를 맴돌 것이다. 내가 수금가락을 고를 때, 노래할 때, 내 노래와 내 가락이 너를 부를 것이다. 내 너를 새 꽃으로 만들되 내 흐느낌을 그 꽃잎에다 아로새기리라. 후대의 영웅 중에서도 가장 용감한 영웅이 너와 인연을 맺을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너의 꽃잎에서 그 영웅의 이름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82p 퓌그말리온의 입술에 닿은 처녀의 입술에 온기가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화들짝 놀라 입술을 떼었다가는 다시 입술을 대고 손으로는 가슴을 더듬어 보았다. 놀랍게도 그의 손끝에서 그렇게 딱딱하던 상아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상아에는 그의 손가락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기 시작했다. 흡사 태양의 열기에 부드러워져, 사람의 손끝에서 갖가지 모양이 빚어지는 휘메토스 산의 밀랍같이…….

-> 상아 처녀가 퓌그말리온의 지극한 사랑으로 사람으로 바뀌는 모습은 영화 ‘마네킹’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얼마나 충실하고 지극하게 사랑했으면 아프로디테의 은총까지도 얻어낼 수 있었을까? 나도 어릴 적에 이런 느낌을 가져본 것 같다. 잘 때 꼭 끌어안고 자던 인형에 대해서다. 곰 인형이었다. 자고 나면 꼭 살아서 움직일 것 같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인형을 쓰다듬고, 말을 걸어보기도 했었다. 내가 외롭게 느껴질 때면 더욱 그런 시간이 많았다. 내가 정성을 쏟고 정을 나눠주면 줄수록 인형은 나와 하나가 되어 갔다.

 영화에 나오는 내용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환경이 외롭고, 약점이 많을수록 생명이 없는 존재에 대해 더 진실하게 다가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 내면의 힘이 커지고, 신의 도움이 나타나게 된다. 이처럼 신화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다. 이런 동화 같은 이야기에 독자들은 열광한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 이루어지면서 독자들에게 감동과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작가는 최고의 축복이다.

 

83p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참으로 끔찍한 이야기다. 내가 바라기로는 이 이야기는 듣고 이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며, 이 이야기를 믿지 말기 바란다. 세상에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해 주기 바란다. 그러나 만약에 이런 일이 정말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끔찍한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반드시 믿어야 한다.

 

91p 뮈라는 이런 불길한 조짐에 세 번이나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잖아도 올빼미가 몇 번이나 울어 불길한 조짐을 경고한 참이었다. 그러나 뮈라는 갔다. 뮈라로서는 어둠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어서 좋았다. 뮈라는 왼손으로는 유모의 팔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앞을 더듬으며 보이지도 않는 길을 따라 끌렸다.

-> 여기에서도 불길한 조짐을 예언하는 ‘올빼미’라는 상징이 나온다. 반성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의 상징인 올빼미는 지혜의 여신 아테네에게 바쳐진 새이다. 또한 그것은 태양 빛이 아닌 초월적인 빛과 관련하여 예언자들의 새이기도 하다. 이러한 ‘올빼미’는 지하 세계의 아케론 강의 신의 아들 아스칼라포스가 변신한 새이다. 지하 세계의 왕 하데스가 납치한 페르세포네가 석류알을  먹었다고 증언함으로서 테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를 다시 지하세계로 되돌려지게 된다. 여기에 분노한 데메테르는 아스칼라포스를 올빼미로 변하게 만들었다.

그리스인들은 올빼미를 지혜와 예언의 새로 여겨 상서로운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미국 드라마의 스릴러물에도 항상 이 올빼미가 등장한다. 낮에서 저녁으로 바뀌는 시간대에 올빼미를 보여준다. 아마도 어둠을 지배하는 상징의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나의 글에도 이러한 상징을 이용하여 글의 분위기를 암시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101p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저 청년의 외모가 아니라 저 청년의 젊음이다. 게다가 저 청년에게는 용기도 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짱도 있다. 과연 해신의 자손답구나.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저 청년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저 청년은 나와의 혼인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쳐도 아까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107p 이 말 끝에 베누스 여신은 아도니스의 피에다 향기로운 넥타르를 뿌렸다. 신주가 뿌려지자 아노니스의 피에 젖었던 노란 모래에서 거품이 일었고 잠시 후에는 여기에서 핏빛 꽃이 피어 났다. 꽃 모양은, 외피가 종자를 싸고 있는 석류꽃과 흡사했다. 그러나 이 꽃은 피기가 무섭게 곧 지고 말았다. 워낙 대가 연한데다 꽃잎은 얇은지라, 꽃은 산들바람만 불어도 그 대에서 떨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람을 연상하여 이 꽃의 이름을 아네모네(바람꽃)라고 부른다.

 

111p 여자들은 오르페우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고는 그의 몸을 갈가리 찢었다. 오르페우스의 숨결은, 바위의 마음을 움직이던 그 입, 들짐승의 마음도 누그러뜨리던 그 입을 통해 빠져나가 바람 속을 흩어졌다.

-> 위대한 예술가의 운명이 이토록 비참할 수 있는가? 결혼하자 마자 아내를 잃고, 그 아내를 되찾기 위해 저승까지 내려가게 된다. 아내 잃은 슬픈 영혼의 노래는 땅의 신 데메테르를 감동시키고, 죽음을 다스리는 하데스의 마음까지도 움직인다. 하지만 운명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손을 잡고 저승을 빠져나오면서 뒤를 돌아보게 되어, 아내는 다시 캄캄한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린다. 오르페우스는 일곱 달 동안 동굴 생활을 하며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다가 다시 나왔을 때, 트라키아 사람들은 그를 ‘부활한 자’라고 불렀다. 그는 달라졌고 젊은이들에게 생명과 죽음의 이치를 노래하며 욕망을 다스리는 법을 가르친다. 그는 저승을 다녀오면서 인간의 육체는 그저 영혼이 잠시 머물다 가는 거푸집에 지나지 않는다는 깨달은 것으로 짐작한다. 

 

115p 미다스 왕이 이 황홀한 꿈에 잠겨 있는데 시종이 음식상을 마련했다. 상에다 고기를 차리고 빵을 차린 것이었다. 그러나 왕이 먹으려고 빵을 집자 빵은 딱딱하게 굳어져 금이 되었다. 배가 고파 고기를 먹으려고 한입을 베어 물면 금으로 변한 고기에는 그의 이빨 자국이 났다. 그는 이러한 선물을 준 박쿠스 신의 포도주에다 물을 타서 마시려고 했다. 그러나 이 포도주는 그의 입술 사이로 들어가다 말고 굳어져 금덩어리가 되고는 했다. 엄청난 부자가 되는 판인데도 미다스는 슬며시 겁이 났다.

->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왕이면서도, 다시 황금에 눈이 어두워지는 모습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오늘날 미다스 왕의 이름은 ‘마이다스의 손’으로 익숙해져 있다. 가진 자들 가운데 ‘마이다스의 손’이라는 호칭은 최고의 찬사이자 부러움의 표상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관여하는 일마다 엄청난 부를 가져오는 사람에게 붙여지는 별명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이렇게 ‘마이다스의 손’을 가진 자가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한다. 사회 분위기도 그러한 욕심을 채우는 것에 관대하다. 오히려 부족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각박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그 행운은 결코 길게 가지는 않는다. 더 많은 욕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는 생각은 시간적인 여유를 빼앗아 가고, 건강을 해친다. 그 과정에서 덕을 쌓지 못해서, 항상 주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가 끊이지 않는다.

이렇게 욕심은 부정적인 결과를 낳지만, 긍정적인 부분도 많이 있다. 즉 나를 위해 욕심 내다 보면 결과가 좋지 않고, 남을 위해서 욕심을 내다 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개인의 성공을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덕()을 쌓지 아니하면, 성공이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조금 더 개인의 이익을 챙기려다 원래 있던 돈마저 거덜나거나, 조금 더 일찍 가려다 교통사고를 얻게 되고, 조금 더 먹고자 하다가 배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여유가 있다면, 오히려 내가 얻는 마음의 행복은 더 크다. 이렇게 긍정적인 의미의 욕심을 누려 본다면, 개인은 타인과 더불어서 성장하고 사회와 국가, 모두가 건강해지지 않을까?

 

116p 황금에 눈이 어두웠던 너의 그 어리석은 욕망을 씻으려거든 사르디스에서 가까운 강으로 가거라. 그 강으로 가서 뤼디아 물길을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 그 물이 발원한 곳에 이르거든 네 머리와 몸을 담그고 네 죄를 정하게 씻어라.

 

117p 그 자리에 나와 있던 청중들도 모두 이 점잖은 산신의 판정에 동의했다. 그러나 미다스만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공정하지 못하다면서 심판의 판저에 항변했다. 델로신의 신은 이같이 어리석은 자의 귀가 여느 인간의 귀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신은 이 미다스의 귀를 잡아늘이고는 그 안에 털이 소복이 자라게 한 다음, 미다스의 머리에 달린 채로 이쪽저쪽으로 움직일 수 도 있게 만들었다. 귀만 빼면 미다스의 다른 곳은 멀쩡했다. 단지 귀 모양만 바꾼 것이었다. 미다스의 귀는 당나귀 귀와 비슷했다.

 

118p 그제야 그는 집으로 돌아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갈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 해 말쯤, 키 높이로 자란 이 갈대는 엉뚱한 짓을 했다. 즉 남풍에 흔들릴 때마다, 제가 자란 땅에 묻혔던, 임금님 귀에 대한 주인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다.

-> 말하고 싶은 데, 말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가끔씩 편한 친구를 만날 때면, 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야기를 다하고 나서 꼭 이 말을 덧붙인다. ‘누구에게 절대 말하면 안돼! 알았지?’라고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은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사람 마음이 간사한 것이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과 처음 만날 때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말을 먼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그러다 조금씩 이야기에 빠지다 보면 자신의 고민까지 털어 놓는다. 물먹는 하마처럼 수 많은 이야기를 내 안으로 빨아들인다. 좋은 점은 인간관계가 풍부해진다. 반면에 시간을 빼앗겨서 문제다. 이번 변경연에 들어와서는 오로지 가족과의 함께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그 동안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글로서 풀어 놓는다. 그 동안 내가 들어왔던 시간의 보상인 것 같다.

 

122p 아이아코스의 아들아, 그 여신이 동굴에서 세상 모르고 잘 때 밧줄을 가지고 가서 재빨리 묶어버리면 네 신부로 삼을 수 있을 게다. 여신이 오만 가지로 모습을 바꿀 것이나 네가 속으면 안 된다. 끝까지 밧줄을 풀어주지 않으면 마침내 여신은 본 모습을 보일 게다.

 

126p 저 빛나는 별의 손녀인 이 키오네가, 두 신의 사랑을 받고, 두 신의 자식을 낳은 뒤로 어떻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과유불급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된 이 키오네는 디아나 여신에게 그만, 자기는 여신보다 훨씬 아름답다는 오만불손한 말을 하고 맙니다.

 

139p 솜누스는 수많은 아들 가운데서 맏아들 모르페오스를 깨웠다. 모르페오스는 인간으로 둔갑하는 데 능하고 인간의 흉내도 잘 내기로 이름있는 꿈의 신이었다. 특정인의 걸음걸이, 표정, 목소리를 모르페오스만큼 완벽하게 흉내낼 수 있는 꿈의 신은 없었다.

 

142p 이 세상에 남아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쓴다면, 이 슬픔과 싸우면서 살아간다면 저는 그대를 앗아간 바다보다 못한 여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슬픔과 싸우면서 살지는 않으렵니다. 그대 없는 세상을 살지는 않으렵니다. 우리를 태운 재가 비록 한 항아리에 들지는 못할지언정, 비록 그대와 나란히 묻히지 못할지언정 저는 그대 뒤를 따르렵니다. 제 뼈가 그대 뼈와 섞이지 못할지언정 제 이름만이라도 그대의 이름과 나란히 새겨지게 하렵니다.

-> 나는 아내와 한날 한시에 죽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의 호흡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내와 함께 리듬을 맞춰가고 싶습니다. 아내와 걸어갈 때에 손을 잡고, 아내와 이야기할 때에 눈을 바라봅니다. 서로의 성격이 틀리고 좋아하는 것도 다르지만, 나는 아내에게 아내는 나에게 맞춰갑니다. 그렇게 맞춰진 리듬이 화음이 되고, 음악이 만들어집니다. 우리는 그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춥니다. 하루 하루의 삶이 나만의 축제가 아닌 우리 가족 모두의 축제가 됩니다. 그리하여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나란히 누워서 손을 잡아 봅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립니다. 생명의 불꽃이 사그라지기 전에 나는 말합니다. “당신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149p 파리스가 이 헬레네를 꼬여 트로이아로 데리고 가자 메넬라오스는 아내를 되찾으려고 군대를 일으켜 트로이아를 치는 데 이것이 저 유명한 트로이아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는 양쪽 진영의 영웅들을 편드느라고 신들도 편이 갈려 서로 싸우게 된다.

 

153p 시게움 평원은 피로 물들었다. 넵투누스의 아들 퀴크노스는 수천의 그리스 군사를 죽였고, 아킬레오스는 병거를 탄 채, 펠리온 산에서 베어온 나무로 자루를 해박은 창으로 트로이아 진영 유린하기를 칼로 물 가르듯 했다.

 

159p 카이니스가 이런 말을 하는데 마지막 한마디에서는 남자나 낼 수 있는 아주 굵은 목소리가 나오더래요. 카이니스는 남자가 된 것이지. 해신은 이 카이니스를 카이네오스로 만들어준 것뿐만이 아니고 어떤 무기도 이 카이네오스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만들어주었다는군. 카이네오스가 해신으로부터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래서 그 땅을 떠나 남자들이나 하는 일을 하면서 테살리아 산야를 누볐다네.

 

168p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말이네, 보는 눈에 따라서 그 기준이 달라. 하지만 퀼라로스는 자타가 인정하는 미남 켄타우르스였네. 황금빛 수염에 묻히기 시작하는 턱, 어깨까지 치렁치렁하게 늘어진 황금빛 머리카락. 어쨌든 이 자는 보기가 좋았네.

 

179p 살아 있을 때는 범 같은 장수였던 아킬레오스도 재가 되었을 때는 항아리 하나도 채우지 못했다.

-> 테티스 여신은 어린 아들이 단명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킬레우스를 여장을 시켜 왕의 딸들 사이에서 소녀처럼 자라나게 했다. 하지만 뒷날 오뒷세우스에게 발각되고, 트로이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 그의 단짝 동료인 파트로클로스와 함께 전장을 누비며, 그리스 동맹군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리스 진영의 수장인 아가멤논에게 자신이 아끼는 브리세이스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자, 막사로 돌아가 더 이상 칼을 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운명은 아킬레우스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자신의 영혼과도 같은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 손에 죽게 되자, 다시 참전하면 단명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그는 다시 일어섰다. 아킬레우스는 긴 수명보다도 명예를 선택했다. 결국 헥토르는 아킬레우스 손에 처참하게 죽게 되지만, 그 또한 트로이 전쟁의 원흉인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 뒤꿈치를 맞아, 죽음을 맞이했다.

 군 복무를 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내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에서 적을 향해 총부리를 정확히 겨냥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대부분의 군인들이 총을 진지 위에 올려놓고 머리는 내밀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옆에 있는 동료가 죽었을 때 군인은 눈빛이 달라진다. 아킬레우스 처럼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적을 향해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피는 또 다른 피를 부르게 된다.

 

182p 오뒤세우스는 무기로 하는 싸움보다는 말로 하는 싸움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창칼로 싸우는 데 능하지만 오뒤세우스는 세 치 혀로 싸우는 데 능하기 때문입니다.

-> 너무 앞서서 자신의 자랑을 늘어 놓은 것이 나중에는 자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 어느 정도는 상대방의 권위를 존중해 주면서 조목조목 자신이 우월한 부분을 내세워야 하지 않나? 지금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대부분 정치가들이 이런 식의 연설을 하고 있다. 먼저 때리고 헐뜯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195p 헥토르를 무찌를 만한 이 용장 아킬레오스를 우리 연합군에다 끌어넣은 사람이 나였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저 유명한 적장 헥토르는, 내가 우리 연합군에 합류시킨 아킬레오스의 손에 죽었으니 곧 나로 인하여 죽은 것입니다. 나는 아킬레오스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지(機智) 무기를 쓴 나의 공로를 셈하여 아킬레오스의 무기를 나에게 줄 것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 오뒤세우스는 자신이 아킬레오스의 무기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설명하고 있다.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고 있다. 절대 때리고 헐뜯지 아니한다. 그 첫 번째 이유로 오뒤세우스는 아킬레오스를 연합군에 끌어 넣은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오뒤세우스는 아킬레오스의 어머니인 테티스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여장 차림의 아킬레오스의 모습을 꿰뚫어 보았다. 그리하여, 아킬레오스를 데려와 트로이의 적장, 헥토르를 쓰러뜨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196p 아가메논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그는 딸을 희생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처녀의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을 맡는 것도 나였습니다.

-> 오뒤세우스의 두 번째 이유이다. 그리스 군사의 통합을 위해 우두머리가 결정한 사안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설득한 것이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자신의 딸을 제물로 희생시키려는 결심을 한 아비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그 딸을 데려오기 위해 딸의 어머니를 설득하려는 오뒤세우스의 노력은 엽기적이다. 어머니를 찾아가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키겠다는 거짓말을 한 것은 결코 영웅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197p 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시작된 이후, 혹은 힘을 써서 혹은 머리를 써서 내가 한 일은, 일일이 열거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중략> 나는 적병이 내습할 경우에 대비해 우군을 매복했고, 우리 진영에다 참호를 팠으며, 이 기나긴 소강 상태를 견딜 수 있도록 군사들을 격려했고, 병참을 조달하는 방법과 무기 다루는 방법을 가르쳤으며, 우군이 나를 필요로 할 때는 사자로서 적진을 드나들었소.

-> 오뒤세우스의 세 번째 이유이다.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면서, 자신의 전략적 기지를 발휘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전쟁은 결코 힘으로서 이길 수 없으며, 사전 철저한 준비와 훈련 그리고, 군사들에 대한 격려가 뒷받침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수장으로서의 솔선수범하여 적진의 맨 선봉에 서는 자신의 모습을 빠트리지 않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장수가 앞장서서 ‘나를 따르라, 모두 전진 앞으로!’ 외쳤을 때, 따르지 않는 군사가 누구 이겠는가?

 

198p 나는 분연히 일어나 적이 무서워 도망치듯이 철군의 무리에 합류하려던 내 전우들을 꾸짖어, 잃었던 용기를 되찾게 해주었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이 세운 공은 다 내가 세운 공이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도망치는 이들을 돌려세웠으니까요.

-> 오뒤세우스의 네 번째 이유이다. 모두들 전쟁의 목적을 상실하고 돌아서려 할 때에 오뒤세우스는 통합을 강조하고 다시금 전쟁의 당위성을 말한다. “전우들이여, 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것이오? 다 떨어진 트로이아를 두고 물러서다니, 정신이 있는 것이오, 없는 것이오? 10년 세월을 전장에 있다가 고향으로 돌아간다니, 그대들이 가져가는 것은 무엇이오? 불명예밖에는 아무것도 없소”

 

199p , 아이아스여, 우리 그리스 진영에 그대를 찬양하는 동시에 그대를 훌륭한 전우로 여기는 자가 있겠소? 여기 내게는 디오메데스가 있소. 디오메데스는 늘 자신의 공격을 나와 나누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고, 나를 인정하며, 날 진정한 전우로 여기고 있고. 수많은 그리스 군 가운데서 디오메데스에 의해 유일한 전우로 꼽힌다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이 아니오.

-> 오뒤세우스의 다섯 번째 이유이다. 그리스 진영에서 군사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장수의 이름을 데면서, 그 장수의 유일한 전우는 자신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서 자신의 인간 됨됨이 또한 훌륭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뒤세우스의 주도면밀함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201p , 우리 그리스 군의 보루이던 저 아킬레오스가 쓰러지던 날을 어찌 눈물 없이 추억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슬프고도 무서웠습니다만 나는 분연히 뛰어나가 쓰러진 그를 둘러메었습니다. 이 어깨로 둘러메었습니다. 나는 아킬레오스의 시신을 둘러메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차지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무기도 거두어 들었습니다. 내게는 그의 시신을 둘러메고도 그의 무기까지 거두어들 힘이 있었고, 여러분이 만일에 유품의 상속자로 나를 선택하신다면 그런 명예에도 값할 만한 용기도 있습니다.

-> 오뒤세우스의 마지막 결정적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전장에서 아킬레오스의 시신을 자신이 직접 둘러메었으며, 무기까지도 거두어 들였다고 주장한다. 전쟁에서 전우의 시신을 꼭 가져와야 하는 것은 대부분 나라들의 불문율이다. 헐리우드 대부분의 전쟁 영화에서도 이러한 장면은 빼놓지 않고 등장한다. 따라서, 이 대목에서 오뒤세우스는 아이아스에게 KO펀치를 날린 것이다.

 

203p 아킬레우스는 나보다 늦게 원정군에 합류했습니다. 아킬레우스가 그러면 나보다 더 무거운 죄를 지은 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까? 나는 사랑하는 내 아내 때문에 합류가 늦었고,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어머니 때문에 합류가 늦었습니다. 우리는 개전초에는 각각 아내와 어머니에게 사랑을 바쳤지만 그 나머지는 동안은 여러분을 위해 신명을 받쳤습니다.

-. 자신과 아킬레우스가 늦은 이유를 가족의 따뜻한 애정 때문으로 언급 함으로서 군사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을 자극하게 된다. 자신들이 이 곳에 와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가족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자신에 대한 주장에 사람들의 따뜻한 공감까지 얻게 된다.

 

206p 무기로 싸우는 자에게만 공이 있고, 머리로 싸우는 자에게는 공이 없는 것은 아니오. 따라서 상은, 무기로 싸워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만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니오.

-> 전쟁에서 전략이 빠지고 군사들은 오합지졸이 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무예만 믿고 전장에 나서면 백전백패다.

 

207p 그대는 그대의 몸으로만 우리 그리스 군을 섬기지만 나는 온몸과 온 마음으로 그리스 군을 섬기오. 키잡이는 노잡이보다 나은 법이고, 장수는 졸병보다 귀한 법이오. 나의 지력은 나의 체력보다 윗길인데, 내 힘은 바로 이 지력에서 나오는 것이오.

-> 그 곳에 모인 모든 장수와 군사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다. 지력이 전쟁의 승패를 가른다는 것은 전쟁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213p 너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런 식으로 가라앉힐 수 있는 신의 분노는 없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게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다. 내 어머니에게만은 내가 죽었다는 것을 당분간 알리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내 어머니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나의 죽음이 아니라 당신의 죽음이겠지만, 내 죽음으로 크게 상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상심하실 것을 생각하니 마음 편하게 죽을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다.

 

213p 만일에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내 어머니에게 알려야 할 경우 내 주검은, 다치지 말고 그대로 다 내 어머니에게 돌려주기 바란다. 내 어머니는, 물론 돈이 있으면 돈으로도 사실 것이지만, 돈이 없으니까 아마 눈물로 내 주검을 사실 것이다.

-> 어미보다 먼저 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지막까지 자식이 어미에 대한 애절한 마음을 담아서 이야기하고 있다. 죽어서도 자신의 품위를 지켜서 부모 앞으로 가고 싶은 마지막 대목은 차마 눈물 없이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내 생애도 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태어나서 줄 곧 나를 지켜봐 주시면서, 나의 이야기를 누구보다도 많이 들어주고 이해해 주신 분이다. 지금도 어머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뜨거워진다. 그 정도 고생하시면 되었을 것을, 아직도 고생하느라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시는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더 내 마음이 가족을 향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어머니에게 내 생애 첫 책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그 동안 곁에서만 들었던 아들의 이야기를 온 세상 사람들이 함께 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 뿌듯해 하실까? 나의 이러한 마음을 내 첫 책에 담고 싶다.

 

220p 요컨대, 다른 사람들이, 개가 되어 온 세상을 떠도는 헤쿠바의 신세를 슬퍼하고 있을 때도 아우로라는 자기 몫의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 아우로라는 지금도 온 세상에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눈물(새벽 이슬)을 뿌리고 있다.

-> 아침마다 볼 수 있는 ‘새벽 이슬’의 담겨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슬픈 이야기인지 새롭게 알게 되었다. 예전부터 새벽 이슬은 슬피 보였다. 어두운 고뇌의 시간을 지나서 새벽에 맺히는 물방울, 그는 모든 존재의 영혼을 비추기 위해 새벽에 태어난다. 떠오르는 태양의 불빛을 온 몸으로 받아내어 보석처럼 반짝인다. 생명의 아름다움이 너무 눈이 부셨는가? 그는 마른 대지 위에 떨어져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다.

 

221p 그리스이인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는 별로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지지 않는 이 아이네아스가, 후일의 로마 신화에서는 신화적인 영웅으로 대접받는 것은, 바로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아 유민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로 이주, 로마 건국의 기틀을 닦게 되기 때문이다. 베르길리우스의 장편 서사시 <아에네이스>는 바로 아이네이아스의 행적을 노래한 것이다.

 

232p 나는 사실 내 양이 몇 마리나 되는지 알지 못한다. 양의 대가리 수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은 가난뱅이들 뿐이니까.

 

239p 수많은 바다의 신들은 저 오케아노스 신과 테튀스 여신에게, 어떻게 하면 내가 인간 세상에서 지은 죄를 닦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 두 분 신들께서는 내 죄를 닦아주셨다. 정죄의 주문을 아홉 번 외게 하셨고, 백 개의 강에 몸을 닦으라고 하셨다. 나는, 강을 찾아 다녀야 할 줄 알았는데 사방에서 물이 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 뒤로 나는 별별 희한한 일을 다 겪었으나, 그대에게 들려줄 마음만 있을 뿐 기억할 수가 없구나.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내가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전과는 다른 글라우코스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푸른 색깔로 변한 내 수염, 숱이 많은 이 머리카락, 엄청나게 넓어진 어깨, 검푸른 이 팔, 지느러미와 흡사하게 변환 내 다리를 보았다.

 

242p 그런 여자를 두고 가슴을 앓기보다는, 그대를 원하고 그대를 따르고자 하는 여성, 그대가 사랑하는 만큼 그대를 사랑하는 여성을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대는 남의 짝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분이니까요. 그대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던질 생각이 있거든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하세요. 아직은 늦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의혹과 우유부단한 태도를 버리세요. 그리고 자기 자신의 외모에 자신을 가지세요.

 

243p 여신 키르케는 화를 내었다. 그러나 키르케는 글라우코스를 해칠 수가 없었다. 해칠 마음도 없었다. 글라우코스를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키르케는 그래서 글라우코스에게 분풀이하는 대신 자기보다 나는 대접을 받고 있는 인간 스퀼라에게 분풀이할 결심을 했다.

-> 이렇게 남녀간의 사랑은 항상 엇갈린다. 그 엇갈림 속에서 증오가 싹트고 이야기가 만들어 진다. 대부분이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 속에 모든 인간의 선과 악이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269p 두려움은 인간을 허약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러나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은 오히려 그 역경을 짓밟을 수 있는 법이다.

-> 한 번 역경을 이겨낸 인간은 다음에 오는 역경을 웃으면서 맞이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역경을 이겨내지 못한 인간은 더 많은 역경을 찾아온다. 아니 체감적으로 그렇게 느낄 뿐이다. 결국에는 역경이라는 것에 이끌려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지 못한다.

 

275p 베누스는 누미키우스 강에 명하여, 아이네이아스의 몸에서 죽음이 앗아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씻어가 깊은 바다 바닥에 안치하라고 했다. 뿔이 달린 강의 신은 여신의 명에 따라, 아이네이아스의 몸에서 죽음이 앗아갈 수 있는 것은 모조리 씻어내고는, 영생에 필요한 부분만 남겨두었다. 베누스 여신은 아들의 몸을 정죄하고, 신들이 쓰는 향수를 뿌린 뒤 그의 입술에다 달디단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발라주었다. 아이네이아스는 이리하여 신이 되었다.

 

295p 기원전 550년 전후에 사모스에서 태어난 퓌타고라스는 <크로톤의 철학자>로 불리는 그는 젊은 시절에 이집트 승려들, 동방박사로 유명한 페르시아의 마기, 인도의 바라문으로부터도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가르친 메템프쉬코시스(윤회설), 아이네이아스가 저승에서 안키세스로부터 배운 것과 일치한다. 수는 만물의 근본 원리이며, 침묵을 사랑하고 살생을 삼갈 것을 가르친 그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용납하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비디우스는, 이 퓌타고라스의 철학, 특히 영혼 윤회설에 관한 가르침을 장황하게 소개함으로써 이 <변신 이야기>의 철학적 기초를 돋보이게 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296p 우리 몸을 살찌우기 위해, 우리의 탐욕스러운 배를 채우기 위해, 다른 동물의 살을 먹다니, 이 어찌 사악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나도 한 때는 채식주의자의 생활을 해 보았다. 결혼하기 일년 전이었다. 하지만 결혼하면서 아이들의 영양을 챙기느라 자연스럽게 육식을 하게 되었는데, 그 때를 생각해보면 몸이 정말 가벼운 느낌이었다. 그리고, 생각이나 영혼이 맑아서 나를 쉽게 다스린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 한 번 기회가 된다면 채식을 해 볼 생각이다. 내가 글을 쓰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고,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육체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299p 영혼은 영원합니다. 이 영혼이라는 것은, 원래 있던 곳을 떠나면 다른 집을 찾아 들어가 거기에 다시 거합니다.

 

300p 모든 것은 변할 뿐입니다. 없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혼은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알맞은 형상이 있으면 거기에 깃들입니다. 짐승의 육체에 있다가 인간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고, 인간의 육체에 있다가 짐승의 육체에 깃들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돌고 돌 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300p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드러난 것은 단지 찰나적인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일 뿐입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항상 흐릅니다. 강처럼 흐릅니다. 강물에, 어디 가만히 정지해 있는 순간이 있던가요? 물결은 다른 물결에 밀립니다. 그 다른 물결은 또 다른 물결에 밀리면서 앞에 있는 물결을 밀어냅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물결을 밀고 밀리면서 흐르는 것입니다. 앞에 있던 것은 뒤로 처지고, 오지 않았던 것이 옵니다. 그래서 시시각각으로 자리바꿈을 하는 것입니다.

-> 지금의 생각도 새로운 생각들로 밀고 밀리면서 흘러갑니다. 나의 생각, 창작에 대한 생각은 하루게 다르게 진화합니다. 그 생각을 표현하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연구원 생활 동안, 나의 글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합니다.

 매일 새롭습니다. 새벽에 쓸 때의 느낌, 저녁에 쓸 때의 느낌까지 다릅니다. 나의 글을 주관하는 뮤즈는 항상 다른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내 생각이 깨어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찾아옵니다. 그러면 나는 마음을 활짝 열어 반갑게 맞이합니다.

 

303p 처음의 모양대로 영원히 있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무궁무진한 자연의 조화는 끊임없이 이 물건을 저 물건을 지어냅니다.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우주에 소멸되는 것은 없습니다. 변할 뿐입니다. 새로운 형상을 취할 뿐입니다. <태어남>이라는 말은, 하나의 물상이 원래의 형상을 버리고 새 형상을 취한다는 뜻입니다. <죽음>이라는 말은, 그 형상대로 있기를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변하여 저것이 되고 저것이 변하여 이것이 될지언정 그 합은 변하지 않습니다. 나는 같은 형상을 영원히 그대로 간직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 이 글을 쓴 오비디우스도 그 이전, 호메로스의 이야기에 전해져 오는 신화이야기를 더하여 자신의 책을 만들었다. 이렇게 모든 책들은 작가의 손에서 하루 아침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생각하고, 재발견되면서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앞으로 나의 글도 마찬가지다. 떠오른 생각을 붙잡아 쓰고, 거기에 생각을 더하고 새로운 생각들을 재발견하고 편집을 거듭해 간다면 나 만의 책이 나올 것으로 믿는다. 

 

 

314p 하늘과, 하늘 아래 있는 만물은 다 끊임없이 변합니다. 땅과, 땅 위에 있는 만물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피조물의 하나인 우리 인간도 변합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육체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날개 달린 영혼도 여기에 깃들여 있기 때문입니다. 날개 달린 우리의 영혼은 들짐승의 가슴을 찾아 들어갈 수도 있고, 가축의 가슴을 찾아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짐승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짐승의 몸에 우리 부모 형제나, 우리 친척, 우리와 같은 인간의 영혼이 깃들여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인간이라는 이 예사롭지 않은 지위를 불명예스럽게 하거나 튀에테스식 식사로 우리의 배를 채우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맙시다.

-> 우리의 영혼은 끝없이 돌고 돕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 대해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 머물고 있는 동안 채식을 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항상 건강하고 맑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음 영혼이 들어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316p 슬퍼해야 할 사람이 그대 하나뿐인 것은 아니오. 그대가 당한 것과 비슷한 슬픔을 당한 사람들 생각도 좀 하시오. 그러면 그대의 슬픔은 하찮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오.

 

319p 에게리아의 몸은 늘 맑은 물이 고이는 샘이 된 것이었다. 디아나 숲의 요정들은 이 전신의 기적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마존의 아들도 이 놀라운 기적에 기겁을 하고 아연해 할 뿐이었다.

 

329p 포에부스의 피를 받은 이 신사는 배에서 내려 이 섬으로 들어갔다. 신이 뱀의 모습을 버리고 신의 모습을 드러내자 로마의 역질은 그것으로 끝났다. 이 신이 로마를 구한 것이다

 

333p 베누스여, 네가 네 마음대로,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여신들 뜻을 거스르려 하느냐? 운명의 세 자매 여신의 집으로 가서 네가 확인해 보아라. 거기에는 동판과 철판으로 도니 운명의 서()가 있다. 이 운명의 서는 벼락도 번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336p 아우구스투스 폐하께서, 당신께서 다스리시던 이 땅을 떠나 하늘에 오르시고, 그 높은 곳에서 인자하시게도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어지게 하시는 날이 더디 오게 하소서, 다음 세기에나 오게 하소서.

 

336p 이제 내 일은 끝났다. 유피테르 대신의 분노도, 불길도, 칼도, 탐욕스러운 세월도 소멸시킬 수 없는 나의 일은 이제 끝났다. 내 육체 밖에는 앗아가지 못할 운명의 날은 언제든 나를 찾아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내 이승의 삶을 앗아갈 것이다. 그러나 육체보다 귀한 내 영혼은 죽지 않고 별 위로 날아오를 것이며 내 이름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정복하는 땅이면 그 땅이 어느 땅이건, 백성들은 내 시를 읽을 것이다. 시인의 예감이 그르지 않다면 단언하거니와, 명성을 통하여 불사를 얻은 나는 영원히 살 것이다.

-> 삶을 마감할 때, 이 세상에 내 책이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카이사르처럼 나도 영원히 살 수 있지 않을까? 내 이름이 계속해서 사람들 입에서 전해지고, 나의 책을 읽으면서 이름 석자를 떠올린다면 나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육체는 죽음의 운명을 맞이하지만, 내 영혼은 책을 통해 새롭게 태어납니다. 이러한 위대한 일을 준비하는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합니다.

 

역자후기 #3.

 

337p 아버지의 희망을 저버리지 못해 오비디우스는 짧은 기간 관리 노릇을 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월을 보내기에는 오비디우스는 지나치게 재주 있는 사람, 유쾌한 사람, 유복한 사람이었고, 로마는 지나치게 관능적인 도시, 호화로운 도시, 평화로운 도시였습니다. 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며예에 견주면 관리로서 누릴 수 있는 영달이 참으로 하찮은 것임을 깨달은 오비디우스는 곧 기지(機知) 놀음이 통하는 문단으로 진출, 오래지 않아 그 방면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게 됩니다.

 

338p 그러나 아우구스투스의 유신이 추상같았는데도 불구하고 외동딸 율리아는 아버지의 율령을 귓전으로 흘리고 그 명령과 금령을 교묘하게 피하는 수단과 방법을 종횡으로 구사함으로써 로마의 미풍양속을 비웃게 됩니다. 아우구스투스는 정적들의 위협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이 딸을 로마에서 황량한 섬으로 추방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와는 동명인 율리아의 딸 율리아 역시 어머니를 그대로 시늉함으로써 아우구스투스가 요구하는 미풍양속의 호소에 순응할 생각이 없는 무리의 찬양을 받으며 로마의 불나비가 되어 버립니다.

 

339p 고비 풀린 말처럼 설치고 다니던 율리아는 많은 로마의 호걸들을 사랑하는 데 바로 그 중의 한 사람이 <사랑의 기술>로 한차례 로마의 미풍양속을 뒤흔들어 놓은 오비디우스입니다. 결국 아우구스투스는 그 시대를 비웃으면서 <사랑의 기술>로 성공을 거두고, 두 율리아와 어울림으로써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용서받기 어려운 괘씸죄를 얻게 됩니다. 참다 못한 아우구스투스는, 딸 율리아의 방탕한 삶을 찬양하고 게다가 손녀 율리아의 애이노릇까지 한 이 오비디우스를 토미스(지금의 루마니아 콘스탄티아)라는 땅으로 귀양을 보냅니다. 오비디우스 자신은 귀양당한 원인에 대해 <어떤 시구와 어떤 과실> 때문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바로 이 시구는 큰 율리아를 찬양하는 시구이고, 과실은 율리아의 애인 노릇을 한 일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339p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로마의 신화는 등장하는 고유명사만 달랐지 사실은 그리스의 신화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의 신화는 우리라노스와 가이아에 의한 천지창조 시대, 이 천지창조 뒤에 오는 <티타노마키아(거신들의 전쟁)> 시대, <기간토마키아(거인들의 전쟁)>시대로 이어지고, 이윽고 이 시대는 올륌포스 신들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로 이어지다가 트로이아 전쟁으로 일단 막을 내립니다.

 

340p 중세를, <기독교와 오비디우스의 시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이 말은 오비디우스가 그려낸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체계가 작가와 시인과 화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들의 붓끝에 세례를 베풀고, 꾾임없이 그 시대로 돌아가게 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340p 오비디우스의 <명쾌한 경망스러움>은 주신 유피테르의 <위대한 난봉>을 연상시킵니다 이 세상의 인간과 문화와 문명의 살림살이를 지어내고 온갖 개념을 시운전해 낸 유피테르에게 난봉기가 필요했듯이, 신들의 세계를 엿보고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려 했던 오비디우스에게 약간의 명쾌한 경망스러움은 어쩌면 필요악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41p 호메로스와 달리, 이 오비디우스를 읽다 보면 이따금씩 궁색한 대목을 만나게 됩니다. 아마 오비디우스가 저희 왕통을 그리스의 신통에 끌어다 붙이기 위해 그리스 신화를 지나치게 아전인수로 윤색해서 풀어먹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따금씩 신화의 아귀가 맞지 않아서 마뜩지 못한 대목을 만나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귀합니다. 인류 2천년 문화의 두 대궁 중 한 대궁은 기독교적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한 문화인데, 그 인식체계에 물들지 않은 고대의 인식체계, 그리스도 이전의 세계관과 인간관을 읽는 것은 신선한 읽기의 즐거움을 줄 분만 아니라, 하늘이 열리던 때의 아득한 때와 우리가 사는 때 사이에 가로놓인 긴긴 세월이 소거되는 듯한 희한한 경험도 가능하게 합니다.

 

 

내가 저자라면

 

1903년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도 신화에서 신화를 창조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발명한 다이달로스의 신화를 통해 인간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을 키웠다. 우리가 매일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컴퓨터 운영체제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이나 자동제어라는 개념은 이미 신화 속에서 헤파이스토스가 이미 개발한 것이라고 한다.

이제는 서양을 넘어 동양에서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열광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물과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상상력으로 신격화하고 의인화하여,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는 신화가 하나의 공상적 설화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문학, 철학, 언어학, 사회학, 역사학 등, 인문, 사회과학 분양의 거의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비디우스는 훨씬 이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화이야기와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에우리피데스 등 훌륭한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변신이야기’를 썼다. 나 또한 변신이야기를 읽고 있으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허구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내가 어느 여행지의 바위를 보고서 바위 모양이 어여쁜 여인의 얼굴이 보이면 그 어여쁜 여인이 왜 바위로 변했을까?’ 하고 재미있는 상상을 해본다. 이렇게 내 주변에서 뜻밖의 마주친 사물을 볼 때면 오래 전부터 나와 연결되어온 느낌이다. 인연이라고 하기에는 설명하기 힘든 운명 같은 것이 숨겨져 있다.

변신하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들의 자연스러운 욕구다. 제우스은 자유자재로 자신의 모습을 바꾸면서 자신의 욕구를 채운다. 우리 현실에서도 변신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떤 이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이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변신하고 싶어 한다. 그러한 인간의 변신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바로 영웅 이야기다. 주인공이 슈퍼맨이나 베트맨이 되어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영웅 영화는 보면서 인간들은 열광한다.

 

 나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가방을 매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커피숍에 들러서 글을 쓴다. 이렇게 똑같은 일상에서 쓰는 글 속에 재미있는 글이 태어날 있을까? 파격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가끔씩 엉뚱한 사고를 저지르거나 우연한 만남을 가져야만 색다른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와 변신을 거부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가 좋다. 변화가 있으면 적응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가라면 언제 어디서나 변신을 해야 하지 않을까? 매일 똑 같은 패턴이 아니라 다르게 살아가자.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시도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야겠다.

내가 저자라면 서른 아홉에 가졌던 특별한 체험을 이야기로 표현하고 싶다. 서른 아홉 이전에 가졌던 젊은 시절의 혼돈의 시간들, 그리고 서서히 나만의 날개를 발견하고 세상 속으로 날아가는 현재의 나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다.

 

 

날개

 

                                   한승욱

 

 

그때 나는 도서관 창가에 앉아 있었는데

새 한 마리가 날아 들어

미친 듯이 날개 짓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본 것은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때 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새 한 마리가 나갈 곳을 찾지 못해

허둥지둥 대고 있었는데

내가 본 것은

거짓 하늘에 머리를 부딪치며

추락하는 나의 몸뚱이였다

 

그때 나는 한 줄기 바람에도 흔들렸는데

새 한 마리는 가쁜 숨을 몰아 쉬며

바람을 붙잡고 다시 날개를 펼쳤는데

내가 본 것은

잃어버린 날개를 찾아낸 나의 심장이었다.

 

그때 나는 쏟아지는 햇살을 보았는데

새 한 마리는 생에 마지막 날개 짓을 하며

빛을 향해 날아가는데

내가 본 것은

그늘을 벗어나 탁 트인 푸른 창공으로

날아가는 나의 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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