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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3일 23시 11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정민(1961.1.3~   )

충북 영동출생. 한양대 국문과졸업. 동 대학원 국문학박사. 모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

1997-1999 한국한문학회 섭외이사.

1995-1997 한국18세기학회 섭외이사

1995-한국시가학회 섭외이사.

 

연암 박지원의 산문을 읽고 [비슷한 것은 가짜다] [고정 문장론과 연암 박지원]을 펴냄

18세기 지식인에 관한 연구로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미쳐야 미친다]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

청언소품靑言小品에 관심을 가져 [마음을 비우는 지혜] [내가 사랑하는 삶] [한서 이불과 논어 병품] [돌 위에 새긴 생각][다산어록청상] [성대중 처세어록] [죽비 소리]등을 펴냄.

옛 글 속 선인들의 내면을 그린 [책 읽는 소리] [스승의 옥편]등의 수필집

한시 속 신선 세계의 환상을 분석한 [초월의 상상]

문학과 회화 속에 표상된 새의 의미를 찾아 [한시 속의 새, 그림 속의 새]

조선 후기 차 문화의 모든 것을 담아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한시의 아름다움을 탐구한 [한시 미학 산책]

어린이를 위한 한시 입문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사계절에 담긴 한시의 시정을 정리한 [꽃들의 웃음판]

 

2012.7월 일년동안 안식년중이다. 하버드옌칭연구소에서 공부중이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하버드통신'이란 제목으로

35호째 글을 올리고 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을 알려준다. 연구소에서 고문서를 접하면서 옛사람들과 책을 통한 대화하는 모습. 산책을 하면서 보이는 작은 몸짓들을 전하는 것을 보면 학자이기 전에 시인으로 생각된다.  

 

참조 : 일침, 김영사

 

[나의 의견]

 

연구원레이스중에 정민교수 인터뷰가 과제로 있었다. 오래전 "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로 저자를 처음 접하고 나서 줄곧 잊고 있다가 '다산지식경영법'이 삼성경제연구소 선정 휴가때 읽어야 할 책에 선정됨을 계기로 다시 정민교수를 접했다. 책을 사고 보니 상당한 두께여서 절반정도 읽다가 덮어 두었었는데 저자의 다른 책인 '한시미학산책'이 레이스에 들오오는 바람에 좀 자세히 찾아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 않음에 놀랐고 매년 수권의 책이 시장에 나오고 있음에도 고정독자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그의 인기에 다시 놀랐다. 인텨뷰를 계기로 인간적인 면모를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연구원수업중에 강의를 듣고 싶은 욕심에 부탁을 드렸으나 안식년날짜가 촉박하여 두번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의 책을 보면 일단 말이 간결하다. 그래서 읽기가 편하다. 이번 일침을 읽으면서 사자성어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것이 비단 여기에 적힌 정도일까 싶다. 저자의 눈에 들어온 것 중심으로 엮었겠지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말미에 대한민국 교육현장에 대한 아쉬움. 정치권에 대한 편안하지 않는 시선이 보였다. 특히 이번에는 이분도 주식투자를 많이 해봤나? 아니면 투자하다가 실패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나? 하는 느낌을 조금 받았다. 어울리것 같지 않은 조합의 주식이야기가 몇군대 들어가 있다. 메일로 여쭤봐야겠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마음의 표정

 

일기일회一基日會

일생에 딱 한 번 딱 한 차례의 만남

 

12 소동파의 [승천사의 밤 나들이]란 글이다

 

원풍 61012일 밤이었다. 옷을 벗고 자려는데 달빛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기뻐서 일어났다. 생각해 보니 함께 즐길 사람이 없었다.

 

13 만남은 맛남이다. 모든 만남은 첫 만남이다. 매 순간은 최초의 순간이다. 우리는 경이 속에 서 있다.

 

심한신왕 心閒神旺

마음이 한가해야 정신이 활발하다.

16 마음이 한가로우면 정신의 작용이 활발해져서 건강한 생각이 샘솟듯 솟아난다.

 

점수청정 點水蜻

인생의 봄날은 쉬 지나간다.

 

17 두보의 [曲江]시 제4구는 '인생에 칠십은 옛날에도 드물었네 (人生七十古來稀)'란 구절로 유명하다. 칠십 세를 고희古稀라 하는 것이 이 구절에서 나왔다. 그는 퇴근 때마다 칠십도 못 살 인생을 슬퍼하며 봄 옷을 저당 잡혀 술이 거나해서야 귀가하곤 했다. 시의 5.6구는 이렇다.

 

꽃 사이로 나비는 깊이깊이 보이고

물 점 찍는 잠자리 팔랑팔랑 나누나.

 

18 짧지 않은 인생을 건너가게 해 주는 힘은 모두 이런 쓸데없는 데에서 나온다.

 

인생이 푸짐해지고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지금보다 쓸데없이 말, 한가로운 일이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쓸 데'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른데, 다들 영양가 있고 쓸데 있는 말만 하려다 보니 여기저기서 없어도 될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선성만수 蟬聲滿樹

매미 울음소리에 옛 사람을 그리네

 

21 의리의 무거움만 알아 깊은 정을 배제하는 데서 독선獨善이 싹튼다. 뼈대가 중요하지만 살이 없으면 죽은 해골이다. 살을 다 발라 뼈만 남겨 놓고 이것만 중요하다고 하면 인간의 체취가 사라진다.

 

22 학교 숲길은 종일 아이들 합창대회 연습장 같다. 이언진의 다음 구절을 붓글씨로 써서 문 위에 써 붙인다.

 

저녁 볕 들창에 환하고

매미 소리 나무에 가득타.

斜陽明窓 蟬聲滿樹

 

관물찰리 觀物察理

사물을 보아 이치를 살핀다.

 

24 뿔 있는 짐승은 윗니가 없다. 날개가 있으면 다리는 두 개뿐이다. 꽃이 좋으면 열매가 시원챦다. 이런 관찰을 나열한 후 이인로1152-1220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사람도 다를 게 없다. 재주가 뛰어나면 공명은 떠나가서 함께하지 않는다." [파한집破閑集]에서 한 말이다. 이 말을 받아 고상안1553-1623은 이렇게 노래했다.

 

소는 윗니 없고 범은 뿔이 없거니

천도는 공평하여 부여함이 마땅토다.

 

어떤 사람이 야생 거위를 잡아 길렀다. 불에 익힌 음식을 먹이자 거위가 뚱뚱해져서 날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부터 거위가 음식을 먹지 않았다. 한 열흘쯤 굶더니 몸이 가벼워져서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이익1681-1763이 말했다. "지혜롭구나, 스스로를 잘 지켰도다."먹어서 안 될 음식을 양껏 먹고, 그 맛에 길들여져서 살을 찌우다. 마침내 날지 못하게 되어 잡아먹히고 마는 인간 거위는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많다. 성호 이익선생은 77항목에 걸친 관물 일기를 남겼다. [관물편 觀物篇]이 그것이다.

 

25 사물 속에 무궁한 이치가 담겨 있다. 듣고도 못 듣고, 보고도 못 보는 뜻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을 옛 사람들은 관물觀物이라고 했다. 사물에 깃든 이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은 찰리察理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넘어 이치로 읽을 것을 주문했다.

 

사간의심 辭間意深

말은 간결해도 뜻은 깊어야

 

28 당나라 문장가 한유가 말한 글쓰기의 비법은 이러하다.

 

풍부하나 한 마디도 남기지 않고

간략하되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는다.

 

한 글자만 보태거나 빼도 와르르 무너지는 그런 맵짠 글을 쓰라는 말씀이다. '사간의심 辭簡意深', 말은 간경해도 뜻이 깊어야 좋은 글이다. 말의 값어치가 땅에 떨어진 세상이다. 다변多辯과 밀어蜜語가 난무해도 믿을 말이 없다. 사복이 원효에게 던진 '말이 많다'는 일갈이 자주 생각난다.

 

허정무위 虛靜無爲

텅 비어 고요하고 담박하여 무위하라

 

29 모든 일은 애초에 이해를 따지지 않고 바른 길을 따라 행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실패해도 후회하는 마음이 없다. 이것이 이른바 순순히 바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욕로환장 欲露還藏

보여줄 듯 감출 때 깊은 정이 드러난다.

 

33 힘들고 어려워도 정면 돌파해야지 자꾸 딴 데를 기웃거려선 못 쓴다.

 

'먼빛에' '저만치'의 거리가 필요하다. 가지 않고 남겨 둔 여백이 있어야 한다.

 

34 다 털어 끝장을 봐서 후련한 법이 없다. 갈 데까지 가면 공연히 볼썽 사나운 꼴만 보게 된다. 말 한마디에 울컥해서 오랜 친구를 칼로 찌르고, 한때의 분을 못 이겨 할머니와 소녀가 지하철에서 맞장을 뜨는 세상이다. 말에 독이 들고, 혀가 칼이 된다. 간직해 남겨 둔 여백을 잊고 산 지가 오래되었다.

 

35 전미개오 轉迷開悟

미혹을 돌이켜 깨달음을 활짝 열자

 

명나라 진계유(1558-1639) [안득장자언安得長者言]의 한 대목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들떴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키고 나니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줄이자 평소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걸고 나서 평일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 평소 병통이 많았던 줄을 알았다.

정을 쏟은 후에야 평상시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마음의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건너오는 경박한 대꾸는 피곤하다. 할 일 안 할 일 가리지 않고 욕심 사납게 그러쥐는 탐욕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엉덩이를 가만 붙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대는 오지랖, 나 없으면 금세 큰일이라도 날 줄 아는 자만. 이런 것들 때문에 삶의 속도는 자꾸만 빨라지고, 일상은 날로 복잡해진다. 마음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돌아올 줄 모른다. 마음을 놓친 삶은 허깨비 인생이다. 차분히 가라앉혀 한 마디라도 더 줄인다. 일을 조금 덜어 내고, 외부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거둔다. 욕심을 덜어,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 그제야 삶이 조금 편안해진다. 눈빛이 맑아지고 귀가 밝아진다. 마음속에 고이는 것이 있다.

 

감이후지 坎而後止

구덩이를 만나면 넘칠 때까지 기다린다.

 

38 감지坎止는 물이 구덩이를 만나 멈춘 것이다. [주역]에 나온다. 기운 좋게 흘러가던 물이 구덩이를 만나면 꼼짝없이 그 자리에 멈춘다. 발버둥을 쳐 봐야 소용이 없다. 가득 채워 넘쳐흐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애초에 구덩이에 들지 말아야 했으나, 이것은 물의 의지 밖의 일이다.

 

39 사람의 그릇은 역경과 시련 속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중정건령 中正健靈

알맞고 바르면 건강하고 영활하다.

 

42 더도 덜도 아닌 꼭 알맞은 상태가 '중정'이다

 

지지지지 知止止止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

 

47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이 분간을 잘 세우기 위해서다. 있어야 할 자리, 나만의 자리는 어딘가? 지금 선 이 자리는 제자리인가?

 

간위적막 艱危寂寞

시련과 적막의 시간이 필요하다

 

송익필(1534-1599) [객중客中}시는 이렇다.

 

나그네 살쩍 온통 흰 눈과 같고

사귐의 정 모두 다 그름인 것을

시련 속에 사물 이치 분명해지고

적막해야 마음 근원 드러난다네.

세상 멀어 누구 말을 믿어야 할까

외론 자취 헐뜯음 분간 안 되네.

산꽃은 피었다간 다시 떠지고

강 달은 둥글었다. 이지러지네.

 

50 시련의 때에 주저앉지 말고, 적막의 날들 앞에 허물어지지 말라. 이즈러진 달이 보름달로 바뀌고, 눈 쌓인 가지에 새 꽃이 핀다.

 

사상념려 思想念慮

생각 관리가 경쟁력이다

 

51 사람은 생각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생각에도 종류가 참 많다. 념念은 머리에 들어와 박혀 떠나지 않는 생각이다. 잡념雜念이니 염원念願이니 하는 말에 그런 뜻이 담겼다. 상想은 이미지()로 떠오른 생각이다. 연상聯想이니 상상想像이니 하는 말에서 알 수 있다. 사思는 곰곰이 따져 하는 생각이다. 사유思惟나 사색思索이 그 말이다. 려慮는 호랑이가 올라탄 듯 짓누르는 생각이다. 우려憂慮와 염려念慮가 그것이다.

 

52 깨달음은 텅 빈 마음이 세계와 만나 이루는 작용이다. 기독교에서는 묵상默想과 명상瞑想을 권한다. 조용히 생각하고, 눈 감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침묵시키고 잠재우자는 것이다. 그래야 지혜와 명철이 생겨난다. "자네는 도무지 생각이 없군!"이라고 할 때 생각은 사려思慮쪽이지 상념想念쪽은 아니다. 상념이 너무 많으면 꿈자리가 늘 어지럽다. 요컨대는 좋은 생각을 키우고 쓸데없는 생각을 몰아내는 것이 공부의 관건이다.

 

사람의 눈은 종일 바깥 사물을 보므로 마음도 덩달아 밖으로 내달린다. 사람의 마음은 종일 바깥일과 접하므로 눈도 따라서 바깥을 내다본다. 눈을 감으면 자신의 눈이 보이고, 마음을 거두면 자신의 마음이 보인다. 마음과 눈이 모두 내 몸에서 떠나지 않고 내 정신을 손상치 않음을 일러 '존상存想'이라고 한다.

 

53 놀러나가기 쉬운 마음을 잘 간수하는 것을 유가에서는 구방심求放心공부라 했다.

 

남산현표南山玄豹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

 

55 시어머니는 이 기쁜 날 재수 없이 운다며 그녀를 크게 나무랐다. 그녀가 대답했다. "남산의 검은 표범(玄豹)은 안개비가 7일간 내려도 먹이를 찾아 산을 내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털을 기름지게 해서 무늬를 이루기 위해, 숨어서 해를 멀리하려는 것이지요. 저 개나 돼지를 보십시오. 주는 대로 받아 먹으며 제 몸을 살찌우지만, 앉아서 잡아 먹히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나라가 가난한데 집은 부유하니 이것은 재앙의 시작일 뿐입니다. 저는 어린 아들과 함께 떠나렵니다." 시어머니가 화가 나서 그녀를 내쫓았다.

 

어린 표범은 자라면서 어느 순간 짙고 기름진 무늬로 문득 변한다. 그 변화가 참으로 눈부시다. {주역}에도 '군자표변君子豹變'이라고 했다. 군자는 표범처럼 변한다는 뜻이다. 부스스 얼룩덜룩하던 털이 내면이 충실해지면서 어느 순간 빛나는 무늬로 바뀐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차곡차곡 축적해서 문득 반짝이는 지혜를 갖추게 된다.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얽매여 공부를 내팽기친 채 여기저기 기웃대면, 문채文彩는 갖추어지지 않고 그저 지저분한 개털만 남는다. 잠깐의 포만감과 빛나는 문체를 맞바꾼다면 민망하지 않겠는가?

 

송영변어 松影變魚

소나무 그림자를 무늬로 지닌 물고기

 

59 가사어가 산다는 연못은 지리산 반야봉 아래 龍遊潭이다.

 

60 연못 위로 쌓이는 소나무 그림자를 제 무늬로 만들었다는 가사어.

 

담박영정 淡泊寧靜

맑게 헹궈내어 고요 속에 침잠하라.

 

61 언어의 소음에 치여 하루가 떠내려간다. 머금는 것 없이 토해 내기 바쁘다. 쉴 새 없이 떠든다. 무책임한 언어가 난무한다. 허망한 사람들은 뜬금없는 소리에 그만 솔깃해져서 그러면 그렇지 한다. 풍문이 진실로 간인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도대체 침묵의 힘을 잊은지 오래다. 예산 추사 고택 기둥에는 주자가 말한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란 구절이 추사의 글씨로 걸려있다. 하루의 절반은 고요히 앉아 마음을 기르고, 나머지 절반은 책을 읽는다.

 

62 청나라 주석수는 [유몽속영幽夢續影]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요히 앉아 보지 않고는 바쁨이 정신을 얼마나 빨리 소모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이리저리 불려 다녀 보지 않으면 한가로움이 정신을 얼마나 참되게 길러 주는지 알지 못한다.

 

내성內省의 침잠 없이 허둥지둥 바쁘기만 하면 영혼의 축대가 그 서슬에 주저앉는다. 자신과 맞대면하는 시간을 늘여나가야 바깥의 경쟁력도 강화된다. 제갈공명은 아들에게 이런 훈계를 남겼다.

 

군자의 행실은 고요함으로 몸을 닦고, 검소함으로 덕을 기른다. 담박함이 아니고는 뜻을 밝게 할 수가 없고, 고요함이 아니면 먼데까지 이르지 못한다.

 

작비금시  昨非今是

지난 잘못을 걷고 옳은 지금을 간다.

 

65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껏 마음이 육신의 부림 받았으니

어이 구슬피 홀로 슬퍼하리오.

지나간 일 소용없음 깨달았지만

앞일은 따를 수 있음 알고 있다네.

실로 길 잃음이 아직 멀지 않으니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른 줄을 깨닫는다오.

 

붕 떠 있던 허깨비 인생을 걷어 내고, 내가 주인 되는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다. 작비금시! 어제가 잘못이고 오늘이 옳다. 사람은 이렇듯 나날이 향상하는 작비금시의 삶을 살아야지. 잘 살다가 실족하는 작시금비의 길을 가면 안된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대부 거백옥은 50세 때 인생을 돌아보곤 지난 49년간의 삶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그래서 지난 날의 나와 과감히 결별하고 자신의 삶을 새로 포맷했다. 50세를 '지비知非'라고도 하는데, 여기서 나온 말이다.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보인다. 명나라 때 정선은 자신의 거처 이름을 아예 작비암昨非庵으로 지었다. 그 안에서 날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허물을 걷어 냈다. 인생의 성찰을 담은 [작비암일찬昨非庵日纂]이란 구한 책을 남겼다.

 

66 돌아보면 왜 그랬나 싶다. 눈에 뭔가 씌었던 것이 틀림없다. 욕심을 털고, 탐욕을 내려놓고, 내닫기만 하던 마음을 거두자 숨이 잘 쉬어진다. 지금이 옳았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사람들은 늘 반대로 한다. "그때가 좋았어"만 되뇌다가 금쪽같은 '지금'을 탕진한다. 한꺼번에 만회하려다 더 큰 수렁에 빠진다. 단박에 뒤집으려다 회복 불능이 된다. 로또로 역전되는 인생은 없다. 벼락같은 행운은 더 큰 비극의 시작일 뿐이다.

 

호추불두 戶樞不蠹

문지도리는 결코 좀먹지 않는다.

 

67 상용相容은 노자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세상을 뜨려 하자 노자가 마지막으로 가르침을 청했다. 상용이 입을 벌리며 말했다. "혀가 있느냐?" "네 있습니다." "이는?" "하나도 없습니다." "알겠느냐?" 노자가 대답했다.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시군요." 말을 마친 상용이 돌아누웠다. 노자의 유약겸하柔弱謙下,즉 부드러움과 낮춤의 철학이 여기서 나왔다. 허균(1569-1618) [한정록閑情錄]에 보인다.

 

68 출입을 막아서는 문짝은 비바람에 쉬 썩는다. 하지만 문짝을 여닫는 축 역할을 하는 지도리는 오래될수록 반들반들 빛난다. 좀먹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붙들고 고집을 부리기보다 이것저것 다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좀먹지 않는다. 움직이기 때문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뜻이다.

 

이명비한 耳鳴鼻鼾

귀 울음과 코골기, 어는 것이 문제일까?

 

70 연암 박지원이 [공작관문고자서公爵錧文稿自序]에서 들려준 이야기다. 귀 울음(耳鳴)과 코 골기(鼻鼾)가 항상 문제다. 이명은 저는 듣고 남은 못 듣는다. 코 골기는 남은 듣지만 저는 못 듣는다. 분명히 있는데 한쪽은 모른다. 내게 있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지 않거나, 남들은 다 아는데 저만 몰라 문제다. 연암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이명은 병인데도 남이 안 알아준다고 난리고, 코 골기는 병이 아닌데도 남이 먼저 안 것에 화를 낸다. 그러니 정말 좋은 것을 지녔는데 남이 안 알아주면 그 성냄이 어떠할까? 진짜 치명적 약점을 남이 지적하면 그 분노를 어찌 감당할까? 문제는 코와 귀에만 이런 병통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별 것 아닌 제 것만 대단한 줄 안다. 이명증에 걸린 꼬마다. 남 잘한 것은 못 보고 제 잘못은 질끈 눈감는다. 언제 코를 골았느냐고 성내는 시골 사람이다.

 

71 연암은 이렇게 결론을 맺는다.

 

얻고 잃음은 내게 달려 있고

기리고 헐뜯음은 남에게 달려 있다.

 

변덕 심한 세상 사람들의 기리고 헐뜯음에는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이 못된다. 내 자신에게 떳떳한지 돌아보는 일이 먼저다.  좋은 글을 쓰고, 본이 되는 삶을 살려면 어찌 해야 하나? 제 이명에

현혹되지 않고, 내 코 고는 습관을 인정하면 된다. 남을 헐고 비방하는 것은 일종의 못된 버릇이다. 비판과 비난을 구분 못하는 것은 딱한 습성이다. 내 득실이 있을 뿐, 남의 훼예毁譽에 휘둘리면 못쓴다.

 

어묵찬금 語嘿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

 

73 세상사 복잡하다 보니 말과 침묵 사이가 궁금하다. 침묵하자니 속에서 열불이 나고, 말해 봤자 소용이 없다. 신흠이 말한다.

 

마땅히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잘못이다. 의당 침묵해야 할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반드시 말해야 할 때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해야만 군자일 것이다.

 

이항로(1792-1868)가 말했다.

 

말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진실로 굳센 자만이 능히 한다.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대단히 굳센 자가 아니면 능히 하지 못한다.

 

굳이 말한다면 침묵 쪽이 더 어렵다는 얘기다. 조현기(1634-1685)가 말한다.

 

말해야 할 때 말하면 그 말이 옥으로 만든 홀笏과 같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면 그 침묵이 아득한 하늘과 같다.

 

공자가 말했다.

 

함께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않은데 말하면 말을 잃는다.

 

75 할 말만 하고, 공연한 말은 말라는 뜻이다. [맹자] [진심盡心]하에는 이렇게 적었다.

 

선비가 말해서는 안 될 때 말하는 것은 말로 무언가를 취하려는 것이다.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음으로써 낚으려는 것이다.

 

꿍꿍이속이 있을 때 사람들은 말과 침묵을 반대로 한다.

김매순(1776-1840)의 말이다.

 

물었는데 대답을 다하지 않는 것을 함구()라 하고, 묻지 않았는데도 내 말을 다해 주는 것은 수다()라 한다. 함구하면 세상과 끊어지고, 말이 많으면 자신을 잃고 만다.

 

함장축언 含章蓄言

안으로 머금어 가만히 쌓아 두라

 

76 다산이 초의 스님에게 준 친필 증언첩에 이런 내용이 있다.

 

[주역]에서는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곧을 수가 있으니 때가 되어 이를 편다'고 했다. 내가 꽃을 기르는데, 매번 꽃봉우리가 처음 맺힌 것을 보면 머금고 온축하여 몹시 비밀스럽게 단단히 봉하고 있었다. 이를 일러 함장含章이라고 한다.

 

77 차근차근 힘을 모아 내면의 충실을 온전히 한 뒤에야 꽃은 비로소 제 몸을 연다. 꽃이 귀하고 아름다운 까닭이다.

 

옛 사람의 말은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 부득이한 결과였다. 지금 사람의 말은 뜻도 모른 채 행여 남에게 질세라 떠드는 소음의 언어다.

 

옥촉서풍 玉薥西風

아만을 버리고 참나를 돌아보다

 

80 흰 머리의 내외가 볕바라기로 앉은 툇마루의 대화, 서울 구경 한 번 못하고 관청 문 앞에도 못 가 봤지만, 옥수수 세 끼니로도 그들의 얼굴엔 시름의 그늘이 없었다. 아주 행복해 보였다. (추사)가 쓴 시는 이렇다.

 

두어 칸 초가집에 대머리 버들 한 그루

노부부의 흰 머리털 둘 다 쓸쓸하구나.

석 자도 되지 않는 시냇가 길가에서

옥수수로 갈바람에 칠십 년을 보냈네.

 

습정투한 習靜偸閑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훔쳐라

 

83 "세상맛에 푹 빠지면 바쁨을 구하지 않아도 바쁨이 절로 이르고, 세상맛에 덤덤하면 한가로움에 힘쓰지 않아도 한가로움이 절로 온다." 명나라 육소형이 [취고당검소醉古堂劍掃]에서 한 말이다. 관심이 밖으로 향해 있으면 바쁘단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마음이 안쪽으로 향해야 비로소 한가로울 수 있다. 바쁘기를 구하는 것[求忙]과 한가로움에 힘쓰는 일[偸閑]의 선택은 세상일에 대한 관심 정도에 달린 것이지.

 

84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이 절로 한가롭다고."

 

청나라 사람 주식수가 말했다.

 

고요에 익숙해지면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바쁨만 쫓다 보니 하루가 너무 짧다.

책을 읽으면 하루가 아깝게 여겨진다.

 

85 노산 이은상 선생의 시조 한 수

 

백년도 잠깐이요 천년이라도 꿈이라건만

여름날 하루해가 그리도 길더구나.

인생은 유유히 살자 바쁠 것이 없나니.

 

설니홍조  雪泥鴻爪

눈 진흙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

 

87 길을 끝없이 길고, 사람은 지쳤는ㄷ, 절룩거리는 노새마저 배가 고프다며 울어 대던 그 길 말일세. 이제 그 기억만 남았네. 그 안타깝던 마음만 이렇게 남았네.

 

공부의 칼끝

 

자지자기 自止自棄

제풀에 멈추면 성취가 없다.

 

90 노수신(1515-1590)이 임금에게 뜻을 먼저 세울 것을 청한 [청선입지소]의 한 대목

 

대저 뜻이란 기운을 통솔하는 장수입니다. 뜻이 있는 곳이면 기운이 반드시 함께 옵니다. 발분하여 용맹을 다하고, 신속하게 떨쳐 일어나는 것은 힘을 쏟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산에 오르면서 꼭대기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것은 스스로 그치는 것[自止]이 됩니다. 우물을 파면서 샘물이 솟는 것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것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自棄]이 됩니다. 하물며 성현과 대덕大德이 되려면서 뜻을 세우지 않고 무엇으로 하겠습니까? 

 

십년유성 十年有成

십 년은 몰두해야 성취를 이룰 수 있다.  

 

94 석주명은 제자들에게 늘 남들이 관심 없는 분야에 10년 이상 꾸준히 몰입하면 세계제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려주고 했다.

 

피지상심  披枝傷心

곁가지를 쳐 내면 속줄기가 상한다.

 

96 어떤 사람이 과일 나무를 너무 촘촘하게 심었다. 곁에서 말했다. "그렇게 빼곡하게 심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소." 그가 대답했다. "처음에 빼곡하게 심어야 가지가 많지 않습니다. 가지가 적어야 나무가 잘 크지요. 점점 자리기를 기다려 발육이 나쁜 것을 솎아 내서 간격을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하면 나무도 오래 살고 열매가 많습니다. 게다가 목재로 쓰는 이로움도 있지요. 어려서 가지가 많은 나무는 자라 봤자 높게 크지 못합니다. 그제서 곁가지를 잘라내면 병충해가 생겨 나무가 말라 죽고 맙니다."

성호 이익(1681-1763) [성호사설]에 나오는 얘기다. 披枝傷心은 가지를 꺾으면 나무의 속이 상한다는 뜻이다.

 

97 제 중심을 세우기 전에 오지랖만 넓히면 이룬 것 없이 까불다가 제풀에 꺾인다. 작은 성취에 기고만장해서 안하무인이 된다. 자리를 못 가리고 말을 함부로 하다가 결실을 맺기 전에 뽑혀져 버려진다. 곁눈질 않고 중심의 힘을 키워야 큰 시련에 흔들림 없는 거목이 된다. 이리저리 두리번대기보다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내 딛어, 많은 열매를 맺고 동량재棟梁材가 될 노거수老巨樹로 발전한다. 잘생긴 나무는 중심이 제대로 선 나무다. 정신 사납게 이리저리 잔가지를 뻗치면 중심의 힘이 약해져, 농부의 손에 뽑혀 땔감이 되고 만다.

 

소년등과 少年登科

젊은 날의 출세는 큰 불행의 시작

 

98 옛 사람은 사람의 세 가지 불행을 이렇게 꼽았다. 첫째가 少年登科다.

둘째는 父兄의 형세에 기대 좋은 벼슬에 오름이다.

셋째는 재주가 높고 문장마저 능한 것이다.

 

99 화복은 문이 따로 없고 다만 그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사람의 재앙이 없다 해도 반드시 하늘의 형벌이 있을 것이니, 매양이 생각만 하면 오싹하여 떨릴 뿐입니다. 다만 성상께서 보전해 주소서.

 

상동구이  尙同求異

같음을 숭상하되 다름을 추구한다.

 

101 남이 돈 번 주식은 내가 사는 순간 빠지기 시작한다. 같아지려면 다르게 해라. 달라야 같다.

 

오서오능  鼯鼠五能

균형 잡힌 안목으로 핵심 역량을 길러라

 

104 누고재란 말도 쓴다. 누고는 땅강아지다. 땅강아지도 날다람쥐의 다섯 가지 재주를 갖추었다. 제법 날 줄도 알고 타오르기도 하며 건너가고 땅을 파고 달려가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요놈도 다 시원쟎다. 재주를 갖추었으나 미숙한 상태를 가리킬 때 쓴다.

 

말을 많이 하지 마라. 말이 많으면 낭패가 많다

일을 많이 벌이지 마라. 일이 많으면 근심이 많다.

 

발 네 개에 날개까지 달리고, 뿔에다 윗니까지 갖춘 동물은 세상에 없다.

 

105 大道無門이라 했다. 한 문으로 들어가 깊이 파면 모든 문이 다 열린다. 공연히 여기저기 이 대문 저 대문 앞을 기웃대기만 해서는 끝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균형 잡힌 안목으로 핵심 역량을 길러야 한다. 깊게 파야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우물을 얻는다. 지금은 바야흐로 전문가 시대다.

 

찬승달초 讚勝撻楚

칭찬이 매질보다 훨씬 더 낫다

 

퇴계 선생의 [훈몽訓蒙]시에 이런 것이 있다.

 

많은 가르침은 싹을 뽑아 북돋음과 한가지니

큰 칭찬이 회초리보다 훨씬 낫다네.

내 자식 어리석다 말하지 말라

좋은 낯빛 짓는 것만 같지 못하리.

 

어떤 이가 자기 밭에 심군 곡식이 싹이 잘 안 자라자 싹을 강제로 뽑아 올라오게 했다. 그리고는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했다. 다음 날 보니 싹은 다 말라 죽어 있었다.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덮어놓고 많이 가르치고, 이것저것 배우게 하는 것은, 욕심 때문에 멀쩡한 싹을 뽑아 올려 싹을 죽이고 마는 어리석은 농부의 행동과 같다. 정색을 한 매질보다는 칭찬이, 어리석다는 야담보다는 신뢰를 담은 기쁜 낯빛을 짓는 것이 자식의 바른 성장에 훨씬 낫다는 말씀이다. 아이가 불쑥 영어 한두 마디 한다고 무슨 천재라도 난 줄 알고 영재교육이다 뭐다 해서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아이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부모의 칭찬과 든든한 신뢰, 그리고 환한 낯빛이다.

 

심입천출  深入淺出

세게 공부해서 쉽게 풀어낸다

 

110 깊이 들어가 얕게 나온다. 어려울수록 쉽고, 모를수록 어렵다. 세게 공부해서 쉽게 풀어낸다. 공부가 깊어야 설명이 간결하다. 자기가 잘 알아야 남도 쉽게 이해한다. 말이 현란한 것은 모르기 때문이다. 한번 들어 알기 어려운 말은 옳은 말이 아니다. 제 속이 빈 것을 남들이 알아차릴까 봐 말이 많아진다. 남이 나를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려고 허세를 부린다. 하지만 두드려보면 빈 깡통이요 알곡 없는 쭉정이다. 마음으로 읽고 뜻으로 보면 진짜와 가짜는 금세 구별된다. 속임수로 쓴 글과 진정이 담긴 글은 금방 알 수가 있다.

 

독서망양  讀書亡羊

책에 빠져 양을 잃다.

 

113 장 보러 가던 아내가 독서삼매에 든 남편에게 당부했다. "날이 꾸물 꾸물한데, 혹 비가 오거든 마당에 널어둔 겉보리 좀 걷어 줘요." 그녀가 돌아왔을 때 보리는 그 사이에 쏟아진 소나기에 다 떠내려가고 없었다. 후한 때 고봉의 이야기다. 그는 이렇게 공부에 몰입해서 큰 학자가 되었다. '표맥漂麥'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다. 표맥, 즉 떠내려간 보리는 학문을 향한 갸륵한 몰두를 일컫는 뜻으로 쓴다.

 

파초신심 芭蕉新心

새잎을 펼치자 새 심지가 돋는다

 

116 잎이 퍼져 옆으로 누우면 가운데 심지에서 어느새 새 잎이 밀고 나온다. 공부하는 사람의 마음가짐도 늘 이렇듯 중단 없는 노력과 정진을 통해 키가 쑥숙 커 나가는 법이다.

 

평생출처 平生出處

시련과 역경 속에 본바탕이 드러난다

 

118 다산은 매일 새벽 세수한 후 편지 한 통을 아껴 읽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오전 내내 새벽에 읽은 편지 내용을 음미했다. 정오까지 되새기다가 편지에서 만난 가르침에 자신의 생각을 보태서 한 편씩 글을 써 나갔다. 33편을 쓰고 났을 때, 정조는 그를 다시 중앙으로 불러올렸다.

 

119 퇴계는 이담에게 보낸 답장에서 또 이렇게 적었다.

 

사람들은 모두 세상이 날 몰라준다고 말하는데, 저 또한 이 같은 탄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은 그 포부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탄식하나, 저는 제 공소空疏함을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탄식합니다.

 

허명을 얻는 것이 부끄럽다고 하신 말씀인데, 다산은 그 말에 저도 모르게 그만 진담이 나고 송구스러웠다고 적었다.

 

의금상경 衣錦尙絅

비단 옷을 입고는 덧옷으로 가린다.

 

123 진정한 아름다움은 안으로부터 비쳐 나온다. 한눈에 어지러운 화려함은 잠시 눈을 끌 수는 있어도 오래가지는 못한다. 천연 안료를 여러 차례 묽게 덧칠해서 빚어낸 잠착한 색상 위에 금니로 화려한 문양을 얹고, 이를 다시 사라의로 살짝 가려 준 수월관음도! 삶의 가장 절정의 순간도 어쩌면 이런 인내와 환희, 그리고 절제 속에 빛나는 것인 줄을 짐작하겠다.

 

문심혜두 文心慧竇

글의 마음을 얻고 슬기 구멍이 활짝 열려야

 

126 문심은 글자 속에 깃든 뜻과 정신이다. 혜두는 '슬기 구멍'이다. 문심을 알고 혜두가 열려야 공부 머리가 깬다. 문심혜두를 열어 주는 것이야말로 어린이 교육의 가장 큰 목표다.

 

하나는 배워 열로 증폭되는 공부를 해야지, 열을 가르쳐 한 둘을 건지는 공부를 시키면 안 된다. 무작정 학원 많이 보낸다고 문심혜두가 열리는 법이 없다.

 

발초첨풍 撥草瞻風

풀을 뽑아 길을 낸 후 풍모를 우러른다

 

교부초래  敎婦初來

처음부터 가르쳐라

 

131 공자께서 '어려서 이룬 것은 천성과 같고, 습관은 자연과 한가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속담에도 '며느리는 처음 왔을 때 가르쳐야 하고, 아이는 어릴 적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참으로 좋은 말이다.

 

북원적월   北轅適越

북으로 가려던 수레가 남쪽으로 가다

 

묘계질서 妙契疾書

순간의 깨달음을 놓치지 말고 메모하라

 

136 묘계질서란 말이 있다. 묘계는 번쩍 떠오른 깨달음이다. 질서는 빨리 쓴다는 뜻이다. 주자가 [장횡거찬]에서 한 말에서 나왔다.

 

생각을 정밀하게 하고 실천에 힘쓰며, 깨달음이 있으면 재빨리 썼다. 靜思力踐, 妙契疾書.

 

137 열하일기는 애초에 여행 도중에 쓴 글이 아니다. 귀국 후 여러 해 동안 노정 도중 적어 둔 거친 비망록을 바탕으로 생각을 키워 나가 완성시켰다.

 

138 머리는 믿을 것이 못된다. 손을 믿어라. 그저 지나치지 말고 기록으로 남겨라. 그래야 내 것이 된다.

 

해현갱장  解弦更張

거문고 줄을 풀어 팽팽하게 다시 맨다

 

견골상상  見骨想象

이미지를 유추해서 본질에 도달하라

 

한비자의 [解老]편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들이 산 코끼리를 보기 힘들게 되자 죽은 코끼리의 뼈를 구해, 그림을 그려 산 모습을 떠올려 보곤 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뜻으로 생각하는 것을 모두 '상象'이라 말한다.

 

우작경탄  牛嚼鯨呑

소가 되새김질하고, 고래가 한입에 삼키듯이

 

146 옛 사람들이 말하는 다독은 이 책 저 책 많이 읽는 다독이 아니라, 한 번 읽은 책을 읽고 또 읽는 다독이었다. [논어] [맹자]같은 기본 경전은 몇 백번 몇 천번씩 숫자를 헤어 가며 읽었다.

 

147 주식 투자도 다를 게 없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마냥 궁리만 하고 있으면 안 된다. 생각없이 덮어놓고 저지르기만 하는 것은 더 위험하다. 정독과 다독, 궁리와 결단의 줄타기가 바로 인생이다.

 

평지과협 平地過峽

끊어질 듯 이어지다 다시 불쑥 되솟다

 

152 풍수가의 용어에 과협過峽이란 말이 있다. 과협은 높은 데로부터 차츰 낮아져 끊어질 듯하다가 다시 일어선 곳이다. 지관들은 말한다. 산세가 너무 가파르면 그 아래에 좋은 자리가 없다. 구불구불 끊어질 듯 이어지다 평평해진 곳이라야 좋다. 과협 중에서도 가장 으뜸은 평평하게 낮아졌다가 갑자기 되솟아 오른 平地過峽이다. 면앙정의 지세가 꼭 이렇다.

 

일자지사  一字之師

한 글자로 하늘과 땅의 차이가 생긴다

 

155 '버들 빛은 실실이 온통 푸르고, 복사꽃은 점점이 붉게 피었네

 

156 한 글자를 지적항 시의 차원을 현격하게 높여 주는 것을 '一字師'라고 한다. 청나라 때 원매가 말했다.

 

시는 한 글자만 고쳐도 경계가 하늘과 땅 차이로 판이하다.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다.

 

시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삶의 맥락도 넌지시 한 글자 짚어 주는 스승이 있어, 나가 놀던 정신이 화들짝 돌아왔으면 좋겠다.

 

광이불요  光而不耀

빛나되 번쩍거리지 않기를

 

159 빛나기는 쉬워도 번쩍거리지 않기는 어렵다. [순자]도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너그럽되 느슨하지 않고

청렴하되 상처주지 않는다.

 

남구만이 병조판서 홍처량이 신도비명에서 그 인품을 이렇게 표현했다.

 

화합하되 한통속이 되지는 않았고

부드러우나 물러터지지도 않았다.

 

[삼국사기]에서 백제의 새 궁궐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 것도 다 한 뜻이다.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사람은 얼핏 보아 비슷한 이 두 가지 분간을 잘 세워야 한다. 지나친 것은 늘 상서롭지 못하다.

 

다문궐의   多聞闕疑

많이 듣되 의심나는 것은 솎아낸다

 

162 정보 자체가 아니라 정보의 신뢰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경쟁력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까닭은 무엇이 의심스러운지, 어떤 것이 위험한지 구분해 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서이다. 체를 쳐서 걸러 낸 알짜배기라야 한다. 거름망이 없으면 안전망도 없다. 정보 장악력을 키워 녹을 구하려면 얄팍한 잔재주를 버리고 더 넓고 깊게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많이 들어라. 의심나는 것은 과감히 솎아내라.

 

진창의 탄식

 

체구망욕   體垢忘浴

몸에 때가 있는데 씻지 않는다.

 

166 "사물의 이치는 깨달으면 묘하고, 묘하면 즐겁지요. 천기는 날마다 새롭고, 영경이 나날이 펄쳐집니다. 묘함을 깨달을 수록 보는 것이 점점 묘해집디다. 그래서 관묘당이라오."

 

즐풍목우   櫛風沐雨

바람으로 머리 빗고 빗물로 목욕하다

 

169 처음 시작은 사람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대기만성  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서야 이뤄진다는 말의 슬픔

 

유만주(1755-1788)의 글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나온다.

 

170 대기만성이란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많은 못난 선비들을 함정에 빠뜨려 죽였던고

 

이 말에 무릎을 치다 말고 씁쓸히 웃었다. 가진 재능이 없고 남다른 노력도 않으면서 평생 입신출세의 허망한 꿈에 매달리는 인생들을 조소한 말이다. 하면 된다는 말이 사람 잡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다. 해도 안 될 일에 헛된 희망을 심어 주는 일은 어찌 보면 무책임하다. 그렇다고 너는 가망이 없으니 처음부터 포기하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171 "선생님! 저는 거짓말도 하기 싫고 맞기도 싫어요. 그러면 어떻게 말해야 하지요?" "이렇게 대답하면 된다. ! 이 녀것은 정말! 허참! 이걸 좀 보세요! 어쩌면, 이야! 아이쿠! ! 허허!" 루쉰의 수필에 나오는 얘기다. 험한 세상에서 자기의 견해를 세우는 일은 거짓말하기 아니면 두드려 맞기다. 없는 말 하면 칭찬받고, 좋은 사람 소리를 듣는다. 입 바른 말을 하면 노여움을 사서 내팽개쳐진다. 요즘 같은 인터넷 세상에서는 더구나 걷잡을 수가 없다. 아첨을 잘 하면 누가 뭐래도 승승장구한다. 올곧은 말은 내침을 받는다. 입이 근질근질해도 끝까지 다 말하면 안된다. 제 패를 함부로 내보이면 안 된다. 성공의 그날까지 꾹 누르고 억지로 참는다. 끝내 오지 않을 빛 볼 날을 기다리는 대기만성은 그래서 슬피다.

 

교자이의   敎子以義

눈에 뵈는 게 없는 세상

 

취문성뢰  聚蚊成雷

풍문에 현혹되어 판단을 그르치다

 

176 뭇 살마의 입김에 산이 떠내려가고,

모기 소리가 모여 우레가 된다

패거리를 지으니 범마저 때려잡고,

열 사내가 작당하자 쇠공이가 흰다.

 

필패지가 必敗之家

틀림없이 망하게 되어 있는 집안

 

거전보과 鋸箭補鍋

책임질 일은 말고 문제는 더 키워라

 

방유일순 謗由一脣

비방은 한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다

 

금인삼함  金人三緘

쇠 사람이 세 번 입을 봉하다

 

예실구야  禮失求野

사라진 예법을 시골에서 찾는다.

 

지상담병  紙上談兵

이론만 능하고 실전에 약한 병통

 

명철보신 明哲保身

시비를 분별하여 붙들어서 지킨다

 

화생어구 禍生於口

모든 재앙은 입에서 비롯된다

 

196 성대중이 말했다.

 

재앙은 입에서 생기고,

근심은 눈에서 생긴다.

병은 마음에서 생기고,

때는 얼굴에서 생긴다.

 

197 내면이 부족한 사람은 그 말이 번다하고,

마음에 주견이 없는 사람은 그 말이 거칠다.

 

겸손하고 공손한 사람이 자신을 굽히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손해가 되겠는가?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니 이보다 더 큰 이익이 없다. 교만한 사람이 포악하게 구는 것이 자기에게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사람들이 미워하니, 이보다 큰 손해가 없다.

 

남에게 뻣뻣이 굴면서 남에게는 공곤하라 하고, 남에게 야박하게 하면서 남 보고는 두터이 하라고 한다. 천하에 이런 이치는 없다. 이를 강요하면 반드시 화가 이른다.

 

나를 찍는 도끼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다른 사람을 찍었던 도끼다. 나를 치는 몽둥이는 다른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남을 때리던 몽둥이다. 바야흐로 남에게 해를 입힐 때 계책은 교묘하기 짝이 없고, 기미는 비밀스럽지 않음이 없다. 하지만 잠깐 사이에 도리어 저편이 유리하게 되어, 내가 마치 스스로 포박하고 나아가는 형국이 되면, 지혜도 용기도 아무짝에 쓸데가 없다.

 

귀해졌다고 교만을 떨고, 힘 좋다고 제멋대로 굴며, 늙었다고 힘이 쪽 다 빠지고, 궁하다고 초쵀해지는 것은 모두 못 배운 사람이다.

 

임사주상  臨事周詳

일처리는 언제나 꼼꼼하고 면밀하게

 

방무여지  旁無餘地

여지가 없으면 행실이 각박하다.

 

203 지나치게 청렴한 사람은 그 후손이 반드시 탐욕으로 몸을 망친다. 너무 조용히 물러나 지내는 사람은 그 자손이 반드시 조급하게 나아가려다가 몸을 망친다.

 

204 여지가 없는 사람은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피음사둔 皮廕邪遁

번드르한 말 속에서 본질을 간파한다.

 

상두보소 桑土補巢

뽕나무 뿌리로 허술한 둥지를 고치다

 

상두는 뽕나무 뿌리다. [시경][빈풍][치효]편에서 따왔다.

 

하늘이 장맛비를 내리지 않았을 때

저 뽕나무 뿌리를 가져다가

출입구를 얽어 두었더라면

지금 너 같은 낮은 백성이

감히 나를 업신여기겠는가

 

뽕나무 뿌리는 습기를 막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 유비무환의 뜻으로 쓴다.

 

208 문제는 늘 설마와 괜챦겠지의 사이에서 생긴다.

뒤늦게 부리가 헐도록 띠풀을 모아 봐도 비가 줄줄 새는 둥지는 손볼 수가 없다.

 

맹인할마 盲人瞎馬

소경이 애꾸 말을 타고 한밤중에 못가를 간다

211 "눈이 있는 자가 소경을 지켜보며 위태롭다 여기는 것이지, 소경 자신은 보이질 않아 위태로울 것이 하나도 없는 법일세."

두려움과 위태로움은 눈과 귀가 만든다.

 

인양념마 因羊念馬

양을 팔아 말을 사서 부자가 되는 생각

 

213 꿈은 등불 심지 타는 소리를 대포 소리로 착각하게 만든다. 염소의 메에 하는 울음을 나팔 소리로 듣게 한다. 애초에 문제는 품은 생각에 있었다.

 

매독환주 買櫝環珠

본질을 버려두고 말단만을 쫓는 풍조

 

곡돌사신  曲突徙薪

굴뚝을 굽히고 땔감을 옮겨라

 

발총유자 發塚儒者

무덤을 파면서도 명분을 내세운다

 

수락석출 水落石出

물이 줄자 바위가 수면 위로 드러난다

 

기리단금  其利斷金

두 마음이 하나 되면 무쇠조차 끊는다.

 

225 까닭 없이 갑작스레 황금이 생기면 우레처럼 놀라고, 귀신인 듯 무서워할 일이다. 길을 가다가 풀뱀과 만나면 머리카락이 쭈뼛하여 멈춰 서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돈은 귀신이요, 독사다. 보면 피해야 한다.

 

양묘회신  良苗懷新

가라지를 솎아내고 좋은 싹을 북돋우자

 

통치의 묘방

 

간군오의 諫君五義

설득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233 공자가 충성스러운 신하가 임금에게 간하는 다섯 가지 방법을 말했다. 첫 번째가 휼간이다. 대놓고 말하지 않고 넌지시 돌려서 간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당간이다. 당은 융통성 없이 고지식한 것이니, 꾸밈없이 대놓고 간하는 것이다. 자칫 후환이 두렵다. 세 번째는 강간이다. 자신을 낮춰 납작 엎드려 간한다. 네 번째가 직간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곧장 찔러 말하는 것이다. 우유부단한 군주에게 필요한 방식이다. 다섯 번째는 풍간이다. 비꼬아 말하는 것이다. 딴 일에 견주어 풍자해서 말하는 방식이다. 말 속에 가시가 있다.

 

휼간과 풍간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임금에게는 백날 해야 아무 효과가 없다. 직간하면 발끈 성을 내고, 풍간하면 행간을 놓친 채 칭찬으로 알아 듣는 임금은 방법이 없다. 諫은 윗사람을 설득하는 일이다. 설득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쟁신칠인  諍臣七人

바른 말로 충언하는 신하 일곱만 있으면

 

235 자공이 벗에 대해 묻자, 공자의 대답이 이랬다. "충고해서 잘 이끌어 주다가 도저히 안 되겠거든 그만두거라. 자칫 네가 욕보는 일이 없도록." 벗 사이에 바른 말이 잦으면 사이가 멀어진다고도 했다. 제일 슬픈 것은 말을 해도 도저히 안 되니 제 몸이라도 지키려고 아예 입을 닫고 곁을 떠나 버리는 일이다.

 

척확무색   無色

자벌레는 정해진 빛깔이 없다

 

군인신직  君仁臣直

임금이 어질어야 신하가 곧다

 

240 위징이 죽자 당태종이 몹시 애통해하며 말했다. "사람은 구리로 거울삼아 의관을 바로잡고, 옛날을 거울삼아 흥망을 보며, 사람을 거울삼아 득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위징이 죽었으니 짐이 거울 세 개 중 하나를 잃었도다."

 

불필친교  不必親校

굳이 직접하시렵니까?

 

242 한선제때 승상 병길이 외출을 했다. 길에서 패싸움이 벌어져 여럿이 죽고 다쳤다. 병길은 본 체도 않고 지나쳤다. 조금 더 가니, 소가 수레를 끄는데 숨이 차서 혀를 내밀고 헐떡거렸다. 병길이 수레를 멈추고, 소가 몇 리나 왔는지를 물었다. 좌우에서 투덜거렸다. "좀전 사람이 죽은 것은 본 체도 않으시더니, 소가 숨을 헐떡이는 것은 어찌 물으십니까?" "패싸움은 경조윤이 법으로 처리하면 그뿐, 승상이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봄이라 아직 덥지 않은데, 소가 저리 땀을 흘리고 숨을 헐떡이니, 날씨가 절기를 벗어난 것이다 이 때문에 사람이 상할까 염려해 그랬다. 재상은 음양의 조화를 근심할 뿐 길에서 일어난 일은 묻지 않는다." 관리들이 탄복했다.

食少事煩! 일은 많고 성과는 적다. 不必親校! 직접 할 일과 맡길 일이 따로 있다.

 

육자비결 六字秘訣

벼슬길에 임하는 여섯 글자의 비결

 

244 김안국의 친구 황모가 재물 욕심이 대단했다. 집도 지나치게 사치를 부려 크게 지었다. 주위에서 온통 비난하는데도 본인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김안국이 그에게 편지를 썼다.

 

자네나 나나 산대야 고작 10여 년인데,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가? 사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은 열가지 뿐이라네. 들어 보겠나? 책 한 시렁, 거문고 한 개, 친구 한 명, 신 한 켤레, 베개 한 개 창문하나, 마루 하나, 화로 한 개, 지팡이 한 개, 나귀 한 마리일세. 자네가 내 친구가 되어 주게.

 

245 ! 이제 청렴은 무능과 동의어가 되었다.

 

세류서행 細柳徐行

군기는 장수의 위엄에서 나온다

 

거망관리  遽忘觀理

분노를 잠깐 잊고 이치를 살펴보라

 

249 이익은 원망을 낳고, 원망은 화를 부른다. 仁義의 원칙 없이 이익의 원리로 움직이면 끝내 아무도 승복하지 않는다. 원수를 갚는 일도 다를 것이 없다.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그 연쇄의 사슬은 죽음으로도 끝나지 않는다. 당한 만큼 갚는다는 것은 또 다른 보복의 시작일 뿐이다.

程子가 말했다. 성날 때를 당하면 급히 그 분노를 잊고 이치의 옳고 그름을 살펴보라.

 

249 遽忘觀理!즉 잠깐 분노를 접고 사리를 따져 보라는 가르침이다. 한때의 분을 풀어 얻는 것은 잠깐의 통쾌함 뿐이다. 대신 백 날의 긴 근심이 뒤따라온다. 이런 것이 개인이 아니라 국가의 판단이라면 더 신중해야 마땅하다.

 

불여류적 不如留賊

잡을 적을 놓아주어 쓸모를 남겨 둔다

 

252 토끼를 다 잡아 힘을 뽐낼 것인가? 상대를 남겨 두어 내 값을 올릴 것인가? 자칫 다 잡았다간 삶아질 것이 두렵고, 남겨 두어 값을 올리려니 뒤통수를 맞을까 걱정이다. 이 사이의 가늠이 또한 미묘하다.

 

노량작제  魯梁作綈

노량에서 두터운 비단옷을 생산하다

 

봉인유구 逢人有求

사람만 만나면 손을 내민다.

 

전국시대 이극은 재상으로 누가 적임인지를 묻는 위문후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평소에는 친한 바를 보고

부유할 때는 베푸는 것을 보며

현달했을 때는 천거하는 바를 보고

궁할 때는 하지 않는 바를 보고

기난할 때는 취하지 않는 바를 보십시오.

 

256 사람은 시련과 역경의 시간에 그 그릇이 확연히  드러난다

 

 

 

 

257 아등바등 구차하게 먹는 것만 찾는 자는 짐승과 다를 게 없다.

눈을 부릅뜨고 내달리며 이익만 쫓는 자는 도적과 한가지다.

잗달고 악착같이 사사로움에 힘쓰는 자는 거간꾼과 꼭 같다.

아웅다웅 헐뜯으며 삿된 것만 따르는 자는 도깨비와 진배없다.

울끈불끈 나대면서 기세만 믿는 자는 오랑캐와 마찬가지다

재잘재잘 떠들면서 권세에만 빌붙는 자는 종이나 첨과 같다.

 

덕위상제  德威相濟

덕과 위엄은 균형을 잡아야만

 

구차미봉 苟且彌縫

구차하게 모면하고 미봉으로 넘어간다

 

자화자찬 自畵自讚

제 입으로 하는 칭찬

 

불통즉통 不通則痛

통하면 안 아프고, 안 통하면 아프다

 

토붕와해 土崩瓦解

구들이 내려앉고 기와가 부서지다

 

270 토붕와해는 흙, 즉 기반이 무너져서 기와가 다 깨진다는 뜻이다.

 

집이 무너져 가는데 문패나 바꿔 다는 미봉책이나, 위기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언 발에 오눔 누기 식의 고식지계姑息之計로는 상황을 돌이킬 수가 없다.

 

징비우환 懲毖後患

지난 일을 경계 삼아 뒷근심을 막는다

 

272 유성룡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징비는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내가 징계함은 후환을 삼감일세"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책 속에는 일본에 대한 규탄보다 우리 내부 문제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자기반성이 담겨 있다. 그는 이후 전란의 처절한 체험과 문제점을 살펴,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군사 교본을 새로 마련해 훈련을 조직화하며, 무너진 산성을 수리하는 등 국방의 기틀을 세웠다.

 

수문심인 脩文深仁

인문을 널리 닦고 인의를 깊게 한다.

 

274 수문은 文治(문치)를 닦는다는 뜻이니, 무력행사를 접고 이제 人文(인문)의 통치를 열러 달라는 당부다. 심인은 仁()을 깊게 함이다. 실천에 있어 도덕성에 대한 요구를 담았다.

 

지칭삼한 只稱三閒

그저 세 가지가 한가로워졌을 뿐

 

277 중종 때 정붕이 청송부가사 되었다. 영의정 성희안은 그와 가까운 사이였다. 편지를 보내 축하한 후, 잣과 벌꿀을 보내 줄 것을 청했다. 얼마 후 답장이 도착했다.

 

잣나무는 높은 산꼭대기에 있고, 꿀은 민가의 벌통에 있습니다. 태수 된 자가 어찌 이를 얻겠는지요.

 

성희안이 부끄러워하며 사과했다.

 

용종가소  龍鐘可笑

용모는 꾀죄죄해도 속마음은 맑았다

 

280 울보 공주가 가출 이후 곡절 끝에 온달과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공주는 가락지를 빼 주며 말한다. "시장 사람의 말은 사지 마시고, 國馬(국마)로 병들고 말라 쫓겨난 놈을 골라서 사십시오." 무슨 말인가? 시장 사람의 말은 살지고 번드르해도 수레나 끌기에 딱 맞다. 나라 마구간에서 쫓겨난 말은 혈통은 좋은데 말 먹이는 사람을 잘못 만나 병이 든 말이다. 비루먹어 쫓겨났으나 타고난 자질이 훌륭한 말은, 겉모습은 꾀죄죄해도 속마음은 맑았던 온달과 같다.

 

자웅난변 雌雄難辨

까마귀의 암수는 분간하기 어렵다

 

애여불공 隘與不恭

융통성 없는 것과 제멋대로 하는 것

 

286 강경한 원칙론은 속이 후련하지만 무책임하다. 온건한 타협론은 불가피해도 욕먹기 딱 좋다.

 

발호치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288 발호치미는 진퇴양난과 같은 뜻으로 쓴다. 호는 늙은 짐승의 늘어진 턱 밑 살로 멱미레라 부른다. 늙은 이리가 나아가려다 제 멱미레를 밟아 고꾸라지고, 뒤로 물러나려다 제 꼬리에 밟혀 자빠지고 만다는 뜻이다.

 

삼일공사 三日公事

나라 일이 고작 사흘도 못간다.

 

291 연암 박지원은 因循姑息(인순고식)과 苟且彌縫(구차미봉)을 말했다. 인순因循은 하던 대로 하는 것이요, 姑息(고식)은 변화를 모르는 융통성 없는 태도다. 여태 문제가 없었으니 앞으로도 괜챦겠지 하는 마음이다. 구차미봉은 그러다가 막상 문제가 생기면 정면돌파할 생각을 않고, 없던 일로 넘어가거나, 어찌어찌 해서 모면해 볼 궁리만 하는 것이다. 실패를 해도 반성은 커녕 재수가 없고 운이 나빠 그렇다며 남 탓만 한다.

 

대발철시 大鉢鐵匙

큰 주발에 밥을 담아 쇠수저로 퍼먹는다.

 

293 구호품을 보내려는 기업이나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개인은 튼실한 재무제표와 건실한 이력서부터 준비해야 했다. 구호품을 쌓아놓고 서류심사하는 사이에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몇해전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전국에서 달려간 자원봉사자로 발디딜 틈 없던 우리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때는 온통 난리였다. 관민도 없고 시스템도 없었다. 무조건 덮어놓고 달려갔다. IMF 때 금반지 모으기가 그랬고, 일제 때 국채보상운동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늘 화끈하고, 저들은 항상 침착하다. 달라도 이렇게 다를까 싶다. 그 침착이 지난번 쓰나미에 이은 원전 사태의 엄청난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이 되는 것을 본다. 앞뒤 가리지 않는 대발철시의 '밥심'이 오히려 위력적일 때가 있다.

 

차고술금 借古述今

 

옛 것을 빌어 지금에 대해 말한다

 

 

3. 내가 저자라면

 

목차와 뼈대에 대하여

 

네파트로 나눈 하나의 카테고리에 25개의 사자성어를 실었다. 저자는 한문에 접속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자신이 접속가능한 한문 한문학에서 길어올인 사자성어를 각25개씩 총 100개를 가려내어 엮은 책이다. 사자성어의 뜻과 얽힌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잘 설명해줄수 있는 고전속의 스토리들을 버무려서 말미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세상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삶의 태도, 철학에 대한 이야기, 공부방법에 대한 이야기. 정치에 대한 이야기등...저자의 책을 보며 생각한다. 본래 자신이 꿈은 시인이었다고 했다. 고등학교시절 교과서와 참고서에 등장하는 모든 한시를 외웠다고 했다. 좋아하는 일이니 할 수 있었을 게다. 대학4년에 자신이 시인으로의 능력이 딸림을 알고 한문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얼추 삼십년정도 한 우물을 판것으로 보인다. 그리고는 고전에 접속할 수 있는 코드를 갖게 된것이다. 사실 책을 보면서 한자를 따라 읽는것도 힘에 부치는 나같은 사람은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서언

마음의 표정

공부의 칼끝

진창의 탄식

통치의 묘방

 

감동적 장절

 

명나라 진계유(1558-1639) [안득장자언安得長者言]의 한 대목

 

고요히 앉아 본 뒤에야 보통 때의 기운이 들떴음을 알았다.

침묵을 지키고 나니 지난날의 언어가 조급했음을 알았다.

일을 줄이자 평소에 시간을 허비했음을 알았다.

문을 닫아걸고 나서 평일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다.

욕심을 줄인 뒤에 평소 병통이 많았던 줄을 알았다.

정을 쏟은 후에야 평상시 마음 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다.

 

마음의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건너오는 경박한 대꾸는 피곤하다. 할 일 안 할 일 가리지 않고 욕심 사납게 그러쥐는 탐욕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엉덩이를 가만 붙이지 못하고 여기저기 기웃대는 오지랖, 나 없으면 금세 큰일이라도 날 줄 아는 자만. 이런 것들 때문에 삶의 속도는 자꾸만 빨라지고, 일상은 날로 복잡해진다. 마음은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돌아올 줄 모른다. 마음을 놓친 삶은 허깨비 인생이다. 차분히 가라앉혀 한 마디라도 더 줄인다. 일을 조금 덜어 내고, 외부로 향한 시선을 안으로 거둔다. 욕심을 덜어,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 그제야 삶이 조금 편안해진다. 눈빛이 맑아지고 귀가 밝아진다. 마음속에 고이는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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