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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1일 09시 22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김현( 1942.7.29~1990.6.27)

그는 '공감의 비평'으로 알려진 정교하고 미려한 평론으로 문학비평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됨.

 

1942년7월29일  부친 김요환 모친 정순예사이에서 4남1녀중 넷째로 태어난다. 본관은 경주이고 본명은 광남이다. 현은 필명이다. 출생지는 전남 진도군 진도읍 남동 565번지. 선대가 농사를 지으며 살던 곳. 부친의 이름이 요환이란 것에서 알 수 있듯 부모님들은 독실한 기독교인인데 그렇게 된 데에는 당시 명망 있던 신학자인 외삼촌 정경옥씨의 영향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현은 어려서부터 "아담과 이브, 카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등의 낯선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게 되고 이런 기독교적인 삶의 방식은 그의 유년기의 정서를 지배하는 한 축을 이루게 된다.

 

1948년 진도국민학교에 입학. 1954년 목포중학교 입학. 1957년 경기고에 응시했으나 실패하고 목포의 문태고등학교로 진학. 입학한후 경복고등학교로 전학하여 둘째형인 기협과 함께 생활. 1959년 17세에 불문학에 관심을 쏟는다.

1960년 18세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과대학 불어불문학과에 입학.  1964년 서울대 문리대 및 동 대학원 불문과졸업.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에 유학. 대학 재학 중인 1962 <자유문학>에 평론 <나르시스의 시론>을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을 시작. 1970년 28세에 결혼. 1974년부터 1990년 사망전까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를 지냄.

 

1990.6.29 경기도 양평군 양평읍 도곡리 선영에 묻힘. 그후 3개월이 지나 '김현 문학전집'간행위원회가 구성됨. 1990년 10울부터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하여 1993년6월 3주기를 맞이하여 김현문학전집 15권과 자료집이 간행된다. 합이 16권이다.

 

《산문시대》·《사계》·《문학과지성》 등의 동인으로 활동했다. 특히 1970김병익. 김주연. 김치수 등과 함께 계간 《문학과지성》을 창간하여 문단에 활력적인 영향을 끼쳤다.(이것은 1980년대부터 '문지·창비 시대'라는 문단 양대 산맥의 문예지·출판사 구도를 만들어낸다.) 《존재와 언어》·《상상력과 인간》 등 8권의 평론집을 발간, 문학평론 분야에서 여러 가지 선구적 역할을 남겼으며 많은 이론적 틀을 마련했다. 1980년대 대표적인 문학평론가로 추앙 받고 있다. 프랑스 현대 문학과 사상의 영향을 받았으며, 주로 실존적 정신 분석의 방법으로 평론을 썼다. 《존재와 언어》·《상상력과 인간》·《문학 사회학》·《책읽기의 즐거움》·《책읽기의 괴로움》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1990 [분석과 해석]으로 제1회 발봉비평문학상 수상.

1980년 현대문학상 수상

 

[행복한 책읽기] 원고를 유고로 남김.

 

비평집  [존재와 언어]1967 [상상력과 인간]1973 [사회와 윤리]1974 [문학과 유토피아]1980

        [젊은 시인들의 상상세계]1984 [분석과 해석]1988 [말들의 풍경] 1990

 

연구서  [한국문학사] 1973 김윤식과 공저

        [한국문학의 위상] 1977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 1987

        [시칠리아의 암소 -미셀 푸코 연구] 1990

 

<행복한 책읽기<김현의 일기 1986-1989)는 유고집이다. 이 유고 일기 원고는 선생이 마지막으로 입원해 있던 병원 병상에서 나(이인성)에게 맡겨졌었다. 묶음 표지에 김현선생 자필로 '일기 1986-1987-1988-1989'라고 적혀 있다. 실제 원고는 1985.12.30시작하여 1989.12.12에 끝난다. 책의 제목도 '책 읽기의 즐거움'이라고 달려 있다. 이 일기 원고는 마지막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틈틈이 새로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1986년 전에 썼던 일기는 남기지 않고 모두 없애버렸다. 선생은 유고의 뒤처리를 부탁하는 자리에서 삭제하는 게 나을 부분-특히 사람 이름들과 관련하여-이 있다면 판단해서 지워달라는 부탁을 남겼었지만, 나는 어디서도 그래야 할 부분을 발견하지 못했다. 선생 자신이 이미 세심하게 모든 것을 배려해 정리해 놓은 상태였던 것이다. 차라리 나는 선생이 더 많은 부분들을 노출시켜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마저 느낀다. 그러나 이미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가 빈틈으로 스며들고 빈틈을 메우며 '김현'을 읽어내는 수 밖에....1992이인성>

 

이인성 (1953.12.9~ )소설가. 역사학자 이기백(1924-2004)의 장남.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고 서울에서 자람. 청운국민학교.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서울대 불어불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 1975김현교수와 만남.

 

2011년 전남 목포 용해동 '갓바위 공원'의 목포문학관 2층에 김현 문학전시관 개관. 2007년 개관한 목포문학관은 1층에 한국 근대문단 최초의 여성 소설가 박화성(19*03-1988)과 극예술의 선구자 김우진(1897-1926)의 전시관이 2층에는 김현전시관과 극작가 차범석(1924-2006)의 전시관리 마련됨.

 

참조   행복한책읽기, 김현의일기1986-1989. 문학과 지성사

          자료집, 김현문학전집16 문학과 지성사.

http://ko.wikipedia.org/wiki/%EC%9D%B4%EC%9D%B8%EC%84%B1_(%EC%86%8C%EC%84%A4%EA%B0%80)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98975.html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10624141800919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30622102600078

http://media.daum.net/breakingnews/newsview?newsid=19901122120800316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081029171608914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1&no=634455

 

 

(나의 의견)

김현이란 사람을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글을 읽으면서 방대한 양의 책과 그안에 담기 깊이는 도저히 어쩌지 못한다. 이제 읽기 시작한 글이고 그의 전집은 15권분량이다. 이구동성으로 그의 짦은 생을 안타까워한다. 나는 더 많은 글을 읽어보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986

 

1.10 한국 사람들이 아들에게 바치는 정성은 상상을 절한다. 고생에 대한 격렬한 증오가 아들의 미래에 투사되어 그 미래가 화려하기를 바라면 바랄수록 격정적으로 아들의 현재를 질타하게 만든다.

 

1.14 만일 내가 돌이었다면 나는 수치심으로

딱 갈라졌을 것이네

만일 내가 수목이었다면 나는

저 푸른 강을 길어 올리지 못하고

그래서 꽃으로 피지 못하고

꺼멓게 탄 숯덩이였을 것이네

나는 이 거듭되는 시련들이

마침내는 내 영혼을 정화하리라는

얄팍한 기대를 죽어도 포기 못 한다.

그러나 아아, 누가 지옥을 모른다고 해서

지옥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할 수 있으리오.

 

1.24 대구 파계사는 인상에 남는 절이었다. ..........가지산 석남사로 넘어가는 석남고개는 일품이었다. 산은 깊이 들어갈수록 낮아진다는 신대철의 시구가 얼마나 옳은 진술인지 이제 알겠다.

 

2.14 자리매김이라는 말이 나는 싫다. 자리매김이란 관계 맺기, 관계 지우기보다 훨씬 고착적이어서, 한번 자리가 맺어지면 변경하기가 힘들다. 변화를 전제하지 않은 자리매김이란 딱지 붙이기에 다름 아니다.

 

2.25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불안감에서 해방되려 한다. 위대한 선동자는 그것을 이용하여 우선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그것을 해소하는 가장 손쉬운 길을 제시한다. 그 길이 출제로 변할 수 있을 때 혁명은 완성된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사람을 보내

말하지 말고, 제발 직접 와주세요.

중간에 사람이 끼면 위험하니까요.

 

중세의 연애시의 서두이지만, 이 서두는 하나의 깊은 암시를 간직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작품은 직접 읽어야 한다는 권유로 이 서두는 새롭게 읽힐 수 있다.

 

3.4 블로크의 [봉건사회]에 나타나 있는 흥미 있는 생각

중세에서는 보행자가 말 탄 사람보다 이동 속도가 빨랐다. 그것은 도로 사정 때문이었다.

 

3.19 최루탄이 계속 나를 미치게 만든다. 따끔거리며 둔통이 계속되는 목, 흐르는 콧물, 막혔다 터졌다 하는 코, 따갑고 뜨거운 눈, 부풀어 오르거나 터지는 피부....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지옥이다.

 

3.22 삶의 전망이 막힌 이유는 예전이나 앞으로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느낌에 주인공들이 침윤되어 있다는 것인데, 그 근거는 가정 생활의 파탄(파산, 일만 아는 가장, 돈만 벌어다 주는 가장....)이라 할 수 있다.

 

3.28 자작농의 밋밋한 삶은 고양된 혹은 충전된 삶에 대한 감각이 마모되어 있어, 비장이나 장엄에 이르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다고 사실의 정확한 전달이라는 묘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지도 못하다. 그것은 고은이라는 떠돌이의 의식이 자작종에 가탁한 가면 때문이다. 무의식적인 오문들, 달관의 제스처 섞인 선적 언어의 비-선적 남용, 지켜야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 잘 알 수 없는 민족 정서들에 대한 집착....등의 토포스들이 넘실대는 이 시편들은 비 진정성이 진정성의 탈을 쓰고 있다.

 

4.2 누구에겐가 가서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때 추하다. 45세의 장년이여!

 

4.9 비우기-베끼기, 받아쓰기의 마음 맡기기 연습도 적절치 않고, 교과서의 세련된 연습 문제 답안지 같다.

 

4.10 잘살던 사람의 입장에서 본 잘살지 못하던 사람들의 벼락(?)출세, 안락함에 대한 추억과 지배욕의 갈망이 어우러져, 오기,집념.절망.자기 방기를 낳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못 보게 한다.

 

4.16 [흰 죽사발]

쟁기날에 매달려 죽어가던

땀방울 땀방울

 

4.26 "외로움이 날 망쳤다"라고 외친다. 그 외로움은 그리움. 쓸쓸함 등의 서정적 감각의 대표적 지표이다. 그는 소설을 시 쓰듯 쓰고 있다.

 

4.27 대중 문학은 이미 있는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이다.

 

4.28 왜 사는가....따위의 문제를 실존적 문제로 제기하는 것은 삶의 의미가 단일하고 영원하다는 광신주의에서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길 중의 하나이다. 나는 광신주의가 문화의 가장 큰 적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4.30 어떤 경우에건 자살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그것은 싸움을 포기하는 것이니까. 살아서 별별 추한 꼴을 다 봐야 한다. 그것이 삶이니까.

 

5.2 김인환 [한국문학이론의 연구]는 라캉을 자세히 소개한 공적을 갖고 있다. 분석의 정확성이 눈에 띈다.

 

5.6 "망명자는 누구나 이타카로 되 돌아가고 있는 율리시즈이다. 모든 생활은 오딧세이. 이타카로 가는 길, 중심으로 가는 길의 모사이다. 망명자는 자기 방황의 감춰진 뜻을 통찰할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이 중심으로서의 한 입사적 시련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저마다 자신의 다리와 악으로 집으로 가고 있다."

 

5.9 시인은 대상을 탐구하면서 그 인식의 깊이를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바꾸면서 인식의 깊이를 얻는 척한다.

 

5.11 최두석 [성에 꽃]

 

오랫동안 함께 걸었으나

지금은 면화마저 금지된 친구여

 

김진경 [대구에 가서]

 

긴 겨울 벌판에 눈이 내리고

기우는 집들의 바람벽 봉창마다

불빛이 졸고 있을 때

너는 그것이 따듯함이라고 말했다.

나는 말없이

너와 나의 어깨 사이로 내리는 눈을 보았고

마음 깊이

아니, 그것은 고통이라고 거부했다.

 

5.23 현상학적 환원이 결국은 하강 초월이 아닐까라는 질문은 충분히 던져 볼 만한 질문이다. 자신의 내부로 하강 초월하면 거기에 대상이 있는 게 아닐까?

 

5.31 김윤식 비평의 본질은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킵니다. 열정 없는 재능이란 없지요."라는 말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 말이 되돌아 가야 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로이다.

 

6.16 자기가 쓴 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문장들 사이의 침묵이 점점 무서워진다.

 

6.19 낭만적 지식인은 조직력의 결여를 그 약점으로 갖고 있지만, 그것은 또한 장점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조직력이 없기 때문에 그는 싸움의 변두리로 밀려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조직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드러낼 수가 있다. 토마스 쿠오의 [진독수 평전]을 읽고 느낀 점.

 

6.29 [윌리엄 포크너]에서 "가장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사람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매일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계속 밥을 먹을 수도 없으며,

또 여덟 시간씩 술을 마실 수도 없으며, 섹스를 할 수도 없지요. 여덟 시간씩 할 수 있는 일이란 일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이토록 비참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이지요." 과연!

 

7.3 , 알겠다. 테니스와 축구들이 대중 매체의 대단한 애호를 받고 있는 것은, 대중 매체 조작을 담당하고 있는 백인들이 그것을 자신들의 운동이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색 인종이 아직 쫓아오지 못하는 운동 분야라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여유 있는 삶들이 어렸을 때부터 천연 잔디 위에서 해야 하는 운동....이니 유색 인종들이 해낼 재간이 있는가.

 

7.24 "잘못돼 있는 것을 지적하여 잘못돼 있다고 말하는 것"은 긍정이라는 의미에서 그의 사회주의는 긍정적 전망주의이다.

 

7.27 김원우 [장애물 경주]...그것이 타인을 향할 때는 풍자. 야유조가 되지만, 자신을 향할 때는 연민, 해학조가 되는 것이 특색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걸림돌이 되는 삶을 지칭하고 있다. "생활 그 자체도 일종의 나쁜 버럿이 부과하는 피곤한 시간 죽이기이다"와 같은 경구들이 많다. 그가 보는 삶 속에서의 우리란 "하나같이 안간힘을 쓰는 익사자들의 허우적거림을 닮아 있다" 그의 소설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와 비슷하게 살고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 게으름 피우기, 등산, 술 마시기, 외국인 싫어하기...

 

8.1 삶이란 멸망이므로

다시 살아난댔자 별것 있겠느냐

 

 8.6 사랑이 진하여 꽃이 되거든

그 꽃자리에 누운 한 작은 종자가 되라

그리하여 다시 오는 세상에서는

새나 나무나 풀이나

그런 우리들의 영원한 그리움이 되라

[작은 사라의 송가]

 

애꾸눈에 반벙어리 귀나 없을 것

육신이 성한 것도 천형이어라

오늘도 제갈 풀린 말처럼

누군가 내 귀의 말문에 대못을 친다. [시국담]

 

8.9 대가의 화면은, 대개, 정공법이다.

 

8.17 박재삼 [찬란한 미지수]

가장 약한 것이

무수하게 모여서는

가장 강한 것이 되는

그 미지수

 

이다. 그것은 노장적 세계-약한 것이 강한 것을 제압하는 세계이다. 가장 약한 감정은 슬픔, 그리움 등이며, 가장 약한 현상은 죽음이지만, 그것들이 이 세상을 미치게 아름답게 만든다.

 

 

또 거기에 바람이 와서

무상의 무늬를 빚고 있는

미칠 것같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이 그윽한 재화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매일 공으로 보는 호사를

누리고는 있다마는

언젠가는 이 세상에 팽개치고

저 세상으로 가야만 하는

원통함은 누가 있어 거두어줄 것인가.

 

삶이 아름다울수록, 죽음의 원통함은 더 절실하다. 그 원통함이 영랑의 섬세함. 미당의 게으름과 다른 점이다.

 

8.22 이시영[흐린 날]

 

철근이 자라는

아스팔트 위 저 나무는

밤새도록 팔을 벌려

하늘의 눈송이들을 맞고 있다

허공 중을 시속 수백킬로로 달려온 눈송이들은

독한 배기 가스를 피해

그래도 그 앙상한 팔에 안겨

, 처음으로 꿈꾸어보는 지상에서의 불안한

눈송이의 작은 꿈

 

8.23 [찔레 연애]

때로는 눈물짓던 네 영혼아

네 바람 어디에 두고 있느냐

 

서리에도 안 떨어진/눈부신 열매가 바고 그의 바람 아닐까! 그 바람 위에 혹은 아래에 그리움, 부끄러움.추억....등의 서정적 감정이 자리잡고 있다.

 

8.26 정치적 언어의 특징은 그 뻔뻔함에 있다.

 

9.13 안병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민중문학이 민중의 소리와 감정을 지식인의 언어로 바꾸어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지식인에게 전달해주듯이 민중 신학도 민중 사실을 신학적 언어로 바꾸어 전달하는 것이다. 곧 번역 작업인 것이다. 지식인에게 민중의 말과 희망과 의지를 전달해주는 통로, 그것이 민중 신학이다." 묘한 발언이다. 그렇다면 민중문학은 지식인을 위한 문학이란 말인가.

 

9.21 [천일야화]

 

그대 떠난 후, 단잠을

맛보았다면, 원컨대

신이시여, 은총을 끊으시라

그렇다. 이별한 후 한번도

나의 눈은 감겨지지 않고, 이별한 후

편안히 쉰 적도 없었네!

그대는 의 꿈 보았는지

, 원컨대, 밤의 꿈아

생시에 나타나거라

그리운 것은 밤의 휴식

잠든다면, 그리운

그대 모습 꿈에 보련만

 

잠이 들면 꿈속에서나마 그대의 모습을 볼 터인데, 잠도 오지 않는다는 비통한 탄식은 뛰어난 호소력을 갖고 있다. "꿈길밖에 길이 없어..."라는 황진이의 시나, 한용운의 이별 노래와 맞설 만하다.

 

10.4 예술은 극단화되면 수사와 극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다는 니체의 말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적 흐름이 보편성의 와해를 불러 과장된 취미로 향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야수파, 표현주의, 초현실주의의 영화적 번역일까?

 

10.11 아름답다의 아름은 알음알음의 알음, 앎의 대상이다. 아는 물건 같다는 아름답다의 어원이다. 고유섭을 아름을 앎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름은 앎이 아니라 앎의 대상이다.

 

10.21 황동규 [악어를 조심하라고?]도 활달하지만 직관의 깊이가 있다. 그 깊이를 성숙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명료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깊이라고 부르고 싶다. 성숙은 두려움이 더 강조되는 어휘이고, 명료성은 논리성, 사상성이 더 강조되는 어휘이다. 직관의 깊이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어우러져 있다.

 

11.2 그가 해체하는 것은 작품이며, 그가 재구성하는 것은 사회적 문맥이다. 문학을 "사회에 대한 뒤틀린 비추기" 또는 "심층의 구조적 드러냄"이라고 보는 문학관은 거기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때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기도 하며(서정인, 황순원, 황지우 분석....)때로 관념의 체조 같기도 하다.

 

11.21 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가끔 친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한 작가는 꼬집듯 말하고 있다.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같이 있는 것은 불편해서, 괜히 담배를 피우거나, 해도 괜챦고 안 해도 괜챦은 말을 계속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해져서 구태여 의례적인 말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아무 말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해지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는 거북하다. 친구란 아내 비슷하게 서로 곁에 있는 것을 확인만 해도 편해지는 사람이다. 같이 있을 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갈만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런 친구들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일요일마다 산행을 하면서 그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숨이 가빠서 그런 것이지만, 숨이 별로 가쁘지 않은 요즘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아침 7에 만나 별말 없이 산길을 걷는다. 그가 쉬자고 하면, 어느 틈엔지 숨이 목까지 차 있다. 그는 참외나 사과, 배를 꺼내 깎아 반쪽을 나에게 준다. 그는 어린애 달리듯, 이젠 잘 걷는데라고 말한다. 거의 매번 되풀이되는 칭찬이다. 어린애 달래듯, 혹시 내가 이젠 못하겠다 하고 나자빠질까 봐 하는 소리다.

육 개월을 넘기니까. 이제는 식욕도 좋아지고, 겁나는 일이지만, 다시 술 맛도 난다. "내가 자에 때문에 술병이 거의 나은 것 같네"라고 말하면 "내년 가을에는 설악산에 데려다 줄게"라고 대답한다. 알랑방귀뀌지 말라는 말일 게다. 그는 매주일 나를 데리고 산엘 가는데, 이제는 그 친구가 갑자가 "인제부터는 혼자 다니게"라고 말하지나 않을까 겁난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빌어 "그런 나쁜 짓을 하면 못쓰네"하고 그를 타이르고 있는 중이다.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놀랍다!

 

12.3 한국 사회는, 소외/물신화/기능화 등의 후기 산업 사회의 특징을 드러난 구조로 갖고 있으며(나는 나 아닌 것이다), 분단, 군사독재 등의 후진국 경제. 정치적 특성을 숨은 구조로 갖고 있다. (나는 나 아닌 것이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내가 나 아닌 것이어야 안심하고 살 수 있다. 나는 사유하지 않는다.....나는 사유하지 않는다.

 

12.12 황지우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호]]는 뛰어난 시인이 쓸 수 있는 좋은 산문집이다. 김수영, 정형종, 김지하의 산문집에 필적할 만하다. 지식 노동자로서의 부끄러움이 배어 있지만, 감성적이면서도 빠뜨린 것 한 없는 것 같은 지적 문장, 뛰어난 분석력(분석은 분석을 벗어나는 것을 과감히 버리는 행위까지를 포함한다. 바보들만 하나도 안 버리려다가 다 버린다), 음흉한 자기 방어(그 반작용으로의 공격력)는 눈여겨볼 만하다. 좋은 산문가는 뛰어난 통찰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되돌아 가는 진로]를 보니, 박태순이 내 글을 괴팍하다고 했다고 한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12.26 모든 구멍 체험이 되돌아가는 것은 오르페 신화이다. 왜냐하면 구멍은 결국 지옥이기 때문이다. 그 지옥에 들어갔다 나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음악-쾌락이지만, 그것의 끝은 무이다. 오르페신화를 구멍 체험으로 보게 되면, 유리디스로 표현되는 이타성을 핑계이지 절대적인 것이 안다. 어두운 지하 동굴 속의 허상으로 전재하는 유리디스, 여자와의 정사가 언제나 허망하게 끝나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12.28 김영태 [눈화장]

 

아이 섀도를 칠한

달이 뜬

추석 대보름

눈두덩이 푸르스름한

아니, 요즘 십대들은

엷은 자식을 눈가에 바르지

아이라인으로 근 다음 뭉개

번지도록

눈 화장을 하고

하늘에서 세상 구정물을 내려다보지

 

12.29 그러나 사람은 자기가 볼 수 있는 것만을 본다.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2.31 박태일 [주먹밥]

 

부석부석 성에 낀 흙이

논둑으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버린 연꼬리와

어른들이 버린 소주병이 체이고

눈에 갇혀 북으로 끌려가는 산들

벙구지서 다리 와리로

물러서는 산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마지막 주먹밥을 손에 들면

상여집 근처론 벌써 저녁이었다.

 

산을 옆으로 끼고 한나절을 걷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산에 가고 싶다.

 

1987

 

1.5 외디푸스의 방법은 올바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축복을 받지 못하는 방법이다.

 

사생아는 "불현듯 그녀가 퍽 젊다는 것을 알았고, 정갈하고 아름다운 여인임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의 마음은 갑자기 종탑의 꼭대기에 올라선 것처럼 세차게 두근거린다." "그는 타오르는 불꽃에 태워지는 듯한 느낌을 처음으로 느꼈으며, 그것은 그의 생에서 서서히 잿 속에 묻혀 달아오르고 있던 사람에 불이 붙은 것이다.

사랑하게 되면 "마치 열 다섯 살짜리 소녀처럼 부끄러웠고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나이에는 상관없이 순진무구한 마음과 행동 속에서 드러난 것이었기 때문에 몹시 아름다워 보였다."

 

1.16 김봉구 역의 [적과 흑] 정음사 1959

원작자는 죽고 그만 남는다. 특이한 번역가이다.

소설은 모든 사랑이야기의 모체이다. 이것을 뚜렷하게 인식한 것이 스탕달의 한 특색이다.

 

1.25 황지우의 [나는 너다] 그의 세계관은

1. 이 세계는 사막이다

2. 그 사막에 길을 만드는 것은 욕망이다

3. 그 욕망은 물을 향한다

4. 물을 향하는 욕망은 나..우리의.여럿의 욕망이다

라는 전제와

 

길은 나로부터 시작한다.

나는 목마르다.

목마른 나는 헛것을 본다. 라는 변형과정 그리고

 

아픈 내부는 소리지른다.

 

징은 소리가 난다

그 내부에 상한 의식이 있는 듯

한 대 맞으면 길게 길게 운다.

상처가 깊다.

 

"나는 자꾸 마음만 너무 간다"의 세계이다.

 

이곳은 먼저 다녀간 누군가가

흰 석회 벽에 손톱으로 써놓았다.

날개, 날개가 있다면

 

욕망이 길을 만들어 놓았구나

 

욕망은 길을 만들고 바람은 길을 지운다.("바람이 비단 같다, 길을 모두 지워놓았으니". 인간은 만들고, 자연은 지운다. 그래서 그는 같이 가고자 한다. 그 허망성을 지우기 위해서, "살아서, 여럿이 가자" "살아서 가자/살아서 여럿이, 중심으로"

 

사제 목에 걸린 철십자가에 못박힌 노동자

나의 안락이 너를 못박았다.

이 짐승들아

가슴을 친다고 그게 뽑혀지느냐

 

그렇다고 안 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가슴 치는 사람을 짐승이라고 부른다고 부끄러움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1.31 구멍의 공에 제일 깊게 사유한 최초의 인물은 노자이다. 그는 항아리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항아리의 텅 빈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빈 곳이 있어야 채울 마음이 생겨난다. 공은 행위, 욕망의 행위의 밑바닥이다. 장자는 그것을 더 논리화해서, 구멍을 뚫으면 혼돈은 죽는다라고 말한다. 그것을 뒤집으면, 구멍이 있으면 혼돈은 없다. 그 구멍은 질서, 사회 생활을 기본틀이다. 구멍이 없는 존재는 완전자-, 악마, 자연....-뿐이다. 구멍이 있는 것은 모두 인간적이다. 인간은 구멍의 모음이다. 채워도 채워도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구멍들....

 

토스토에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의 가장 끔직한 전언은 맨 앞 대목에 숨겨져 있다."...그러나 인간의 사는 힘은 강하다. 인간은 모든 것에 익숙해 질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훌륭한 정의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 익숙해질 수 있는 동물이라....그 동물은 체념에도 쉽게 익숙해진다. 불편하고 더러운 것, 비인간적인 것에 익숙해진 인간의 모습은 더러운 것인가, 안 더러운 것인가?

 

2.1 수전노들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항아리나 궤에 숨겨두는 것도 구멍 체험의 한 변형이다. 빈 곳을 채운다는 것이, 늘어나는 숫자보다 그들의 마음에 더 든다.

 

2.2 19세기 소설에 있어, 편지는 의사 소통의 도구이면서, 그것을 뛰어넘어, 인간의 진실한 내면을 드러내 보여주는 도구이다. 현대 소설의 연애가 삭막해진 것은 내면의 고통/즐거움이 전화라는 간편한 의사 소통의 기구로 간소화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목소리로 연애를 하는 것보다는-거기에는 녹음까지 포함된다-눈으로 연애하는 것이 훨씬 내면적이다. 편지는 전화보다 훨씬 더 내면적이다.

 

2.3 톨스토이와 도스토에프스키는 문학이 어떻게 전체계를 싸잡아 비판할 수 있나를 가르쳐주었다. 그들에게선 자본주의는 이러이러한 결점이 있다는 생각보다는 체계 자체가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2.10 사르트르에게 있어 인간을 움직이는 기본 동력은 욕망이다. 욕망은 인간을 관계 속에 집어 넣으며, 그 관계의 의미들 속에 집어 넣는다. 그 관계를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사물의 관계로 나눌 수 있겠는데, 사르트르는 앞의 것을 실존적 정신분석이라 부르고, 뒤의 것을 사물과 그것의 질의 정신분석이라고 부른다.

 

2.11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나 감정 토로는 하나의 전범으로 그에게 작용하여, 그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 저항할 때 전범은 희화되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며, 순응할 때 전범은 우상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는 누구처럼 되겠다가 아니면, 내가 왜 그렇게 돼가 된다. 그 마음가짐은 그의 이름붙이기 힘든 욕망을 달래고, 거기에 일시적인 이름을 붙이게 된다. 왜 일시적인가 하면, 전범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구조는 그렇게 많지 않겠지만.

 

2.15 절실한 것이 이뤄지는 순간은 너무나 짧고 아름답기 때문에 밋밋한 삶 속에서 지속되기 힘들다. 아니 지속되지 못한달. 그것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환상의 빛과도 같다.

도스토에프스키의 [도박사]의 주인공에게 있어 그 절실한 것은 도박에서의 성공인데, 그것은 언제나 짧다. 그래서 그 성공은 환상적으로 보이는데, 그는 그것을 오래 지속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미치광이 도박꾼 취급을 한다.그러나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이 삶의 밋밋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절실하기 때문에, 도박할 때 육체는 떨리고 마음은 급해진다. 일상인들은 그 순간을 환상으로 돌리고 삶의 밋밋함으로 곧 되돌아온다. 그 돌아오는 속도가 빠른고 정확할수록 그는 잘 적응된 일상인이 된다. 된다니! 그는 잘 적응한 성공한 일상인이다. 그는 일상 속에 되돌아와 중얼거린다. 저놈은 돌았어.

 

단단한 지반이라고 생각된 것이 거짓 지반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세상의 검은 심연이 보이기 시작한다. 전화로 연애하는 요즈음 사람들은 어디에 비밀을 감춰두는 것일까? 요즈음엔 비밀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닌지

 

도스토에프스키의 재능 중의 하나는 인간이란 두껍고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혼합물이라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데 있다.그가 그리고 있는 인간은 단순하고 명료하지가 않다.

 

2.17 그들이 나를 욕망하지 않으니 내 욕망도 없어진다.

 

유년시절은 우리가 한 나라를 가장 잘 알게 되는 왕도이다 [마음] 깊숙이에는 유년 시절의 나라만이 있다.

 

정말인가?

 

2.18 그는 먼저 생각을 취소하고 싶었으나 그것은 마치 딱딱한 연필로 쓴 글씨를 고무로 지울 때처럼 잘 지워지지 않았다.

 

2.22 말보다 더 빠른 교통 수단에 대한 갈망이 날으는 양탄자를 낳았다면-날으는 양탄자를 만들어낼 만한 상상력을 갖지 못했던 중국인들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피땀을 흘리는 말을 꿈꾸었다-욕망의 거대함에 놀란 사람들의 무의식은 표주박에 갇힌 마신을 낳았다.

 

3.3 난 감잡고 있지

이 삶에 대해, 감잡고 있지

뭔가 삐걱거리는 것을,

 

잘 안 맞아 돌아가는 것을 ....

 

그 뭔가의 무엇은 의식과 육체의 괴리일 수 밖에 없겠는데, 왜냐하면 편안함을 바라는 육체와 그것을 보고 불편해하는 의식은 괴리를 일으킬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3.19 지라르의 욕망이론은 지식인들에겐 일정한 매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지식인들이야말로 책에서 읽은 대로 살려고 무의식적이건 의식적이건 애를 쓰고 있으며, 자기가 전범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경쟁자로 변하는 것을 거의 매일 눈앞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읽은 대로 살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중개의 집요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스승이 어느 날 갑자기 경쟁자로 등장하는 날의 절망과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지식인으로서는 그 두 체험이 다 같이 고통스러운 체험이며, 피하고 싶은 체험이지만, 그것을 피할 수는 없다. 제자로서 나는 스승을 모방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안 그러면 그에게 증오심을 느낄 테니까-스승으로서의 나는 제자들의 모방이 불가능한 곳에 가 있으려고 애를 쓴다-안 그러면 그에게 경쟁심을 느낄 테니까! 끔찍한 악순환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식 계층의 삶이다.

 

3.22 나는 책읽기가 단순한 활자 읽기가 아니라 그 책이 던져져 있는 상황읽기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되었다.

 

4.20 욕망의 부재의 현존이라는 것의 예를 코제브는 목마름으로 들고 있다. 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은 물의 부재라는 것이다. 욕망은 공이며 무이다.

 

5.5 내가 나인 줄 알고 있었는데, 내가 아닐 때, 나는 요괴다. 네가 너인 줄 알고 있었는데, 네가 아닐 때, 너는 요괴다. 우리가 우리인 줄 알 고 있었는데-우리를 가두는 우리?-우리가 아닐 때, 우리는 요괴다. 밖은 따뜻한데, 안은 춥다. 그것도 요괴스런 일이다...왜냐하면 안은 따뜻하고 밖이 추운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안은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따뜻하고, 밖은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춥다. 그런데 요즈음은 밖은 계속 따뜻한데 안은 춥다. 내 마음의 풍경 같다.

 

5.12 외롭다.

이 말 한마디

하기도 퍽은 어렵더라만

이제는 하마

크게

허공에 하마

외롭다.

 

그래서 그는 새벽 다섯시에 깨어나 늘 소주를 마신다. 아내와 아이들까지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느낌. 그의 술마시기는 큰 컵으로 소주 마시기이다. 큰 컵 한 잔에 세계가 뒤집힌다. 남들은 자기를 알콜중독자라고 말하지만 자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은 나른하고 세상은 계속 적막하다.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데 이렇다라는 자기 기만, 그 자기 기만에 대한 기막힌 성찰:

 

비참을 에누리없이

비참대로 바라보자 했었지

그게 언제였던지

그땐 행복했을 때

바라보아도 그리 험악하지 않았을 때

 

[애린]은 마음의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주는 일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지하 생활자의 수기]의 시적 번안이다.

 

6.26 다시 읽어보니 그 뭔가 강력한 것은 찢긴 언어들의 파편이 내지르는 불협화음 같은 것이었다.

 

8.30 김민숙[봉숭아의 꽃물]

 

이 소설의 재미는 딸의 관점에서 묘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정을 봉숭아 꽃물처럼 붉은 마음으로 묘사한 데 있다. 은은한 붉은 마음!

 

8.31 나는 동물이다. 나는 내 욕망의 전략에 이끌리어 내가 선택하고 사유하는 양 모든 것을 선택하고 사유하는 척한다. 그러나 내 눈에 들어오는 예를 들어 이븐 여자의 젖, 궁둥이 내 코에 들어오는 최루탄 가스 냄새-, 이것은 생각하기도 싫다. 벌써 맵다-물비린내, 내 입에 들어오는, 맛있는 과일, 단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욕망이다. 내 욕망은 그것을 욕망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해, 그 나름의 필승의 전략을 짠다. 나는 백전백패다. 내 욕망은 나에게 억압하지 말라. 해방하라고 권유한다. 권유하는 것은 욕망이고, 나는 수락하고 선택한다. 끔직하다.

 

9.19 김인배 [하늘궁전]

그의 소설은 분신의 주제-욕망은 자신을 이분하여 그 중의 하나를 죽임으로써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아가게 만든다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주인공은 언제나 그의 그림자를 그의 내부에 갖고 있다. 그 그림자가 그의 분신이다.

 

10.3 참으로 좋은 것은

밖에 있지 않네

세상에서 제일 어둔 곳

내 마음에 있네

 

10.17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교과서적인 것은 아니다. 익명의 권위가 집단화 될 때 그것이 가르치는 것은 다 교과서적이다.

 

11.30 강운구 사진집[경주남산]

수평적인 산과 구름에 대응하여 수직으로 늘어선 나무들 사이로,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사람이 걸어 다녀 생긴, 사람의 흔적이 있는 밝은 오솔길을 보여준다.

.........거의 표정이 없는 표준 한국인, 아니 아니든 한국인의 얼굴에 가깝다.

...........

예술은 육체적으로 그것과 만나 즐거움을 느껴야 그 내면이 열리는 세계이다. 강우방씨의 남산론은 육체적으로 그것과 만난 연군가의 불적 기술이다. 두 분의 글과 한 분의 사진을 통해, 경주 남산은 새롭게, 그 속에 붉은 불을 간직한, 그래서 따뜻하고 친밀한 대상으로 솟아오른다. 따뜻하고 친밀한 것들은 같이 있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그 욕망의 불길이 대상을 더욱 따뜻하고 친밀하게 만든다.

 

12.4 임철우는 이청준, 김원일의 언어망 속에 있다. 그 둘을 어떻게 뛰어넘는가가 그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다. 오월만으로 더 이상 크지 못한다. 그것은 더 큰 화폭을 준비하기 위한 데생이어야 한다.

 

12.11 임동확 [매장시편]

죽음의 기억은 전존재를 떨게 하는 고압선이다.

 

12.20 최승호[진흙소를 타고]

삶이란 줄만 당기면 쓸려나갈 수세식 변기속의 똥과 같다는 베케트적인 주제와 인간은 결국 죽어갈 존재라는 실존의 범주로써의 죽음의 주제를 뛰어난 솜씨로 짜내고 있으며, 이성복 []과 같은 시들에서 짧은 산문시 실험을 게속하고 있는데, 그 실험이 난해한 것은 물로 아니고 차라리 절규같아 보인다.

 

12.26 감각의 깊이-전혀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감각의 깊이. 그 속에 빠져 헤매다가, 어는 순간 다시 튀어 오르는 공처럼 현실 속으로 튀어나올 때, 감각의 공터, 아니 패인 곳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12.28 나는 내 욕망의 총화이다...그러나 내 마음의 욕망은 누가 만든 것일까. 나인가, 세계인가, 섭리인가...아니면 이 모든 것이 다 혼용인가. 애초에 무슨 뿌리가 있어, 내가 있었단 말이가.

 

1988

 

1.7 내 존재의 밑바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잊음 oubli이다. 나는 잊기 때문에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잊음이다. 내 활력은 잊음에서 나온다. 모든 존재가 들어가 웅크리고 있는 알 집과 같은, 거푸집과 같은 구멍으로서의 잊음.

 

1.18 좋은 소설이 때로 지루한 대목을 간직하고 있듯이 좋은 시는 때로 깜짝 놀랄 만큼 신선한 대목을 간직하고 있다.

 

봄이 되면 겨우내 참아온 똥이나 양지 쪽에서 푸짐하게 누고 싶다고 말할 때, 그 어조는 해학적이다.

 

개인적인 체험만으로 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체험이 깊어지고 넓어져야 좋은 시가 나오는 것은 확실하다.

 

1.24 최하림 [겨울 깊은 물소리]

가슴을 찌르는 아픔이 있다.

 

1.25시에 있어서, 감각의 깊이란 결국 삶의 구체성에 대한 실감이 아니면 무엇일까?

 

2.2 우리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집단적이며, 반성이 없다는 점에서 전체주의적이며, 혼자 말한다는 점에서 독재적이다.

 

못 가진 자는 가진 자의 문화를 본능적으로 비판하면서, 맹목적으로 추구한다. 그 이중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물건이 갖는 성질인데, 차라리 사물성이 낫지 않을까. 물질성은 소외성이지, 현실성에 가깝지 않다.

느낌표가 붙어 있다는 것은 언제나 시작임을 알리는 동시에,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표현한다. 재미있는 지적이다.

 

2.20 사람은 두 번 죽는다. 한 번은 육체적으로, 또 한 번은 타인의 기억 속에서 사라짐으로써 정신적으로 죽는다.

 

2.24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놓기보다 가능한 한 절제하여 숨겨보겠다는 것이 그 시들을 지배하고 있는 원리다. ............

과거를 상실한 시인에게는 미래도 따뜻하게 열리지 않는다.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분이며, 거기에서의 탈출은 불가능하다.

 

2.27 생각이란 벼룩새끼들 같아서 헤아릴 수가 없다.

 

3.3 인간적 정감을 직관적으로 '느끼는'모든 행위는 서정적이다.

 

3.8 가운데서 "모든 걸 다 보고 들을 수"있게 감시소를 무의식중에 만드는 감시자들...그 감시자들은 그러나 새장에 갇혀 있다. 과연 누가 누구를 감시하는 것일까.

 

3.12 운동권 문화가 한국 문화에 끼친 두 가지 영향: 하나는 금기를 깨나가는 것이 문화활동이라는 것. 또 하나는 배부르게 사는 것과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이동렬과의 대화가 생각난다.

 

3.29 황석영의 중요한 전언이 하나 나와 있다. 그것은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랑과 혁명은 같은 길입니다.

 

라는 전언이다. 그 전언의 진정한 뜻은

 

마음속 깊이 축복해주시오. 그러면 됩니다. 그 뒤에는 그들에게서 태어날 아기들에게 자랑스러운 조국을 물려주겠다고 다짐하고 작전에 나가는 거요. 이것이 바로 내가 전에 말했던 사랑과 혁명이 같은 길이라는 뜻입니다.

 

기형도[죽은 구름][추억에 대한 경멸]

그 시선은 이 세계는 빈집이며, 사람은 그 빈집의 창에 머무르는 구름 같은 것이며 나는 내 속의 추억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들레르적 인식에 침윤되어 있다.

 

3.30 시는 욕망으로 남아 있는 욕망의 실현된 사랑이다.

 

4.17 “여보 힘들지?”

, 이 벽 곧 무너지겠어요. 빨리 내려가요!”

다기가 후들거리면 산이 무너지는 것 같나 보다.

 

4.20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는 것이야말로 일상선의 요체이다

 

4.25 인간은 더러운 창을 스쳐 지나가는 미치광이 구름과도 같다. 그의 동반자는 고양이나 늙은 개뿐이다.

 

5.6 그는 아는 것이 많고, 언제나 그가 옳다! 한번쯤 틀릴 수 없나.

 

6.25 송기원의 시는 다 닳아빠진 삶 속에 서정적 새로움이 감춰져 있다는 놀라운 인식 위에 씌어진 것들인데, 늙은 창녀의 사설이 천하지 않고 구수하다. 그런 창녀를 만나면 하룻밤쯤 이야기로 지새워도 괜챦겠다. 닳아빠진 삶이란 얼마나 지쳐 나자빠진 삶인데, 거기서 서정성을 보다니!

 

7.8 욕망의 벗, 꽃처럼 타

오른다 아니다 욕망은

더러운 폐수처럼 끓어

오른다 부글거린다….

 

욕망은 홍수에도 떠밀려가지 않는다.

그것은 붙어 있다 아니다 그것은 그것이다

욕망은 사물이다 자연이다 날씨다

 

7.17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과 같다.

 

7.30 윤승천 [탱자나무 울타리]

뙤약볕 내리쬐는 농가의 한여름을

나는 울면서시를 쓴다.

 

8.2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우리는 잘 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 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 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

 

8.8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 앞의 사람은 투사고 뒤의 사람은 종교인, 예술인이다. 나는 항상 옳다라고 말하는 사람의 자부심 없이는 싸울 수 없고, 나는 항상 잘못한다라고 사유하는 사람의 원죄성이 없이는 느낄 수 없다.

 

8.19 내가 저문 산처럼 배고파 누우면

그대는 내 곁에

저문 강으로 따라 누워

당신의 피와 살을 주어 채워 적시고

내가 새벽 산처럼 어둡게 서 있으면

그대는 환한 앞산으로

해 받아 일어서서

내 이마에 이마를 대서

신문을 열어줍니다.

 

감정의 절실함만이 독자의 감정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8.24 시 한편은 받아본 적은 있으나, 시집 한 권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다. 내가 남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 때론 마음 무겁다. 내가 사는 길도 어줍 쟎은 길인데, 그 길에서 빛을 보는 사람이 있다니 끔찍하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기쁘다. 안 기쁘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잘못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읽은 책에 있다는 것.

 

9.5 수중 발레도….큰 동작이 있기 전에 무용수는 언제나 사각 무대의 오른편 안쪽 모서리에서 시작하는 것이었다.

 

10.7 쿤데라의 [참을 수 업는 존재의 가벼움]

 

사랑은 메타포와 함께 시작한다. 달리 말하자면 사랑은 어떤 여자가 그녀의 첫마디로 우리들의 사적 기억 속에 자신을 아로 새기는 순간 싹튼다”_과연.

 

10.12 파시즘이란 가만있게 내버려두지 않는 강요이다. 무엇을 말해야 한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무엇에 대해 가만히 있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 파시즘의 본질이다.

권위주의의 특성은,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라는 믿음에서 연유하는 오만과 뻔뻔함에 있다. 나는 옳으니까 너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뻔뻔함과 나는 옳으니까 내가 틀릴 리가 없다는 오만함은 동어반복에 기초하고 있다. 권위주의는 동어반복이다. 나는 권위 있으니까 권위 있다!

 

10.28 박정만 [저 강물 속으로]

죽음 너머 있는 저 아름다운 곳에 가고 싶다. 아니 괴로워도 이곳에 살고 싶다.

 

11.4 박정만 [한 떨기 꽃]

그가 아는 것은 사랑하면 눈물나며, 몸이 아프면 죽고 싶다는 정도이다. 사랑하면 왜 눈물겨운가? 죽음의 눈으로, 버림받은 눈으로 돌아서서 바라보니까 눈물겹다. 그것도 죽는 것에 비하면 뭐 그리 중요할.

 

11.15 정지영 [티보가의 사람들]

말하는 것은 행동의 한 수단에 지나지 않겠지그러나 행동할 수 없는 동안에는 말하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를 하는 거야

 

자본주의 세계는 변호의 여지가-없어!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 부조리하고 비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놓았어! [….]그 세계는 모든 가치가 왜곡되어 있고, 인격의 존중이라는 것은 발붙일 곳이 없고, 오직 이익만이 유일한 원동력이며, 모든 사람의 꿈은 부자가 되는 것인 그런 곳이야!

 

11.21 넌 누가 저들 [/]의 일생을 두고서

꽃과 잎

그 어느 쪽이

더 아름답다, 함부로 말할 수 있으랴

 

수다의 밑에는 공포심이 숨어 있다. 그것이 권력에 대한 공포일까, 존재의무에 대한 공포일까?

 

11.23 그러나 광주 항쟁은 근대사의 모든 움직임과 관계있다. 그것은 3.1운동, 6.10만세 사건,…4.3사태, 여순반란 사건등과 관련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동학 운동등과 관계되어 있다. 그러니 모든 운동은 역사적이다. 광주 항쟁은 80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수백 년 전에 일어난 것이다.(정여립은?)

 

11.24 연애소설에서 어렸을 때부터 가까웠던 사람들끼리 결합이 잘 안 되는 것은 심리적으로는 근친상간에 대한 공포 때문이며 사회적으로는 모르는 사람_부족끼리의 살육_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그 이중의 공포는 이방인에 대한 동경을 낳는다.

 

11.23 나로서는 다만 때로 너무 요약적인 대목들이 안타깝다. 요약은 해체가 아니라, 해체하는 척하는 구축이다.

 

그의 글들의 대부분은 아주 긴장되어 있어서, 짧은 글들은 좋지만, 긴 글들은 때로 긴장이 지나쳐, 비틀거리기까지 한다.

 

11.28 하재봉 [안개와 불]

땅 깊은 곳에서 돌들은

꿈꾸는 힘으로 단단해져간다

푸름이 풍만한 젖가슴을 가질 수 없을 때는

풀잎에 빗방울로 말할 수 없듯이

꿈꾸는 돌이 땅밑의 태양에 충전되지 않고서는

별에 이를 수 없듯이

약간 난해하다. 땅밑의 태양을 뒤져볼 것.

강이 가면 바다에 이르는 길을 알게 되는지_바다의 연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개인의 길은 보편의 바다에 이르는 통로이다?

 

1989

 

1.12 김선학 [현실과 언어의 그늘]

꼼꼼히 읽어보면, 별로 틀린 소리 같지 않은데, 지루하다. 모범 답안 같은 비평을 보는 지루함이다.

 

2.3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고, 또 시인이지만,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해서 누구나 시집을 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80년대] 2집도 위의 경우와는 좀 다른 의미로 치기투성이이다. 이때의 치기란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잘 알지 못하면서 강력하게 자기 주장을 자기 주장을? 남들의 주장을 서툴게 엮어놓은 것을 _내세우는 데서 생겨나는 치기이다. 읽기가 민망스럽다.

 

정신이 있어야 예술이다

예술의 정신은 파괴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모방은 쓸데없는 짓이야. 취하고 버려야 해

진정한 고독은 행복이다

예술_도예에서 중시하는 것은 자유와 변화이다

보다 본질에 가까운 것은 여성적인 것이야. 시나 예술도 여성적인 것에 가까워.” “여성적인 것은 영원한 고향이에요. 예술도 그 희귀 본능의 한 형태가 될 거예요

강석경의 예술관은 독일 낭만파의 예술론에 가깝다. 예술은 정신, 혼이며, 그것은 자유와 변화를 중요시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근원, 여성성에 근거한다.

 

2.4 박경리의 [토지]4

전반적인 느낌은 작가가 2,3부에서 보다 덜 서두른다는 것이다. 그만큼 원숙해졌다고 할 수 있겠고, 그만큼 정열이 식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어딘들 걸을 수 있다. 나는 불가능을 향해 걸을 수 있다! 불가능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은 목표가 된다.

 

2.8 인도의 피리 소리에는 원초적인 공허가 있다. 절망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며, 그렇다고 수치도 아닌, 쉰 듯하면서도, 텅 비어 있고, 텅 비어 있으면서도 공허로 꽉차 있는 것 같은 묘한 소리이다.

 

3.1 말하다는 거짓말하다와 동의어이다.

 

3.4 아우슈비츠에서 모차르트를 들으며 사람을 죽이는 그 끔찍한 인간들이 바로 우리들이듯. 그 소설들은 인간을 폭력을 분비하는 생물이라고 정희하고 있는 것 같아 끔직스럽다. 그러나 그래서 생각할 거리를 마련해준다. 인간은 썩어서 다른 무엇이 되는 거싱 아니라, 썩지 않고 폭력을 분비하는 동일자들이다. 폭력으로 자기 증식하는 씨앗!

 

3.7 난데없는 동아일보의 짧은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끈다: 기형도가 죽었단다. 아니 이게 웬일이야, 한 달 전에 그와 같이 술 마실 때의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울고 싶은 듯, 찡그리고 싶은듯, 웃고 있는 얼굴이었지만 묘한 표정이었다. 아니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자리를 옮긴 것이 그렇게 가슴아팠단 말인가. 집에 들어가기 싫어 혼자 영화를 보다 죽다니!

 

3.31 오정희의 소설 중에서 늙은 고양이를 자루에 담아 인적 없는 곳의 나뭇가지에 매달아놓고, 매일 그곳으로 산보 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그로테스크하지만 감동적이다. : “주머니 속의 것은 점점 작아지고 청회색 피크닉 주머니는 빛이 바래 남루하게 늘어졌다. 더 이상 붉을 수도 푸를 수도 없이 퉁퉁하다거나 길다거나 형체를 말할 수 없이 해체되어 자루 속에서 악취를 충기고 썩어가는 것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분리되고 파괴되어가는 그 무엇이었다그 무엇은 바로 나다. 그 글을 쓴 나이며, 그 글을 읽는 나이다.

 

4.24 잊혀지지 않기 위해 더 과격해질지 모른다. 그때는 더욱 추할 것이다.

 

5.12 기계는 때로 견딜 수 없이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그 작동의 원리는 거의 모르는 채, 원리는 몰라도 이용은 할 수 있다. 끔찍한 일이다. 기계는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오히려 잡아맨다.

 

5.15 삶은 사라짐이기도 한 것이다.

 

5.20 웃고 떠들고, 주정받고….그렇게 늙어가나보다.

 

5.26 박재삼

이것이 절정에 올수록

산을 보는 경치도 경치지만

그 위에 장관 하나를 더 얹는

이런 사치를 내가 저승가면 못 보는 그 한을 어쩔거나.

 

자기를 밀어내 사구를 쌓는 강은 아름답다.

갈대구름은 그곳에서 피어난다.

은어 풀어주기 전에

먼저 젖지 않으므로

천천히 물 위로 나를 밀어내는 저녁 강

나는 가라 앉지 못하고

스스로를 파내어 생을 이룬 강이

흐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나도 자꾸 밀려나는 사구처럼 가라앉지 못한다. 살 삶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다.

 

5.28 혜원사에서 보현봉으로 가는 길을 처음으로 가봤다. 길도 좋고 경치도 좋다. 감탄만 하다가 김치수에게 또 야단 맞았다. “처음 가보는 길은 다 좋아 보이지.” 그럴 리가 있는가. 같이 가니까 처음 가는 길도 근사해 보이지, 혼자 처음 가는 길이야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가. 내려오다 정명환 선생댁에 들러 회갑 기념으로 만든 논문집을 전해드렸다 자주 좀 들르게, 나이 드니까 쓸쓸하이.”그분도 쓸쓸한가보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실존주의인 것을.

 

5.30 김형영의 시가 갈수록 죽음 곁으로 다가가고 있다. [내가 드는 마지막 잔을]

내가 드는 마지막 잔을

그대 눈물에 채워다오

내 눈물은 말랐거나

다른 날을 볼 수 없으리

 

끔찍하게 아름답다. 다른 날을 볼 수 없게 된 사람이 마지막으로 드는 눈물 없는 잔의 그 지독하게 쓸쓸한 맛!

 

6.1 “자기 삶을 추상화시키지 않으려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결부된 이미지나 관념도 함께 보아야 할 것이다. 강렬한 삶일수록 우리의 삶은 사물과 관념 사이에 펼쳐 있거나 뭉쳐 있기 때문이다.”

 

극소량의 시를 토해내고 싶어하는

귀신이 내 속에서 살고 있다. 최승자[기억의 집]

 

나는 의미없는 작은 구멍이에요

즐거움도 아픔도 모두 껴안는

그런 작은 구멍이에요. 홍영철 [너는 왜 열리지 않느냐]

 

보잘것없는 것들의 생각도 꿈도

도대체 알 수 없는 우리가

무슨 깊은 생각을 해낸다는 것일까

무슨 거대한 꿈을 그려낸다는 것일까. 홍영철

 

6.3 배금주의 [너와 내가 태어나 7]

 

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주워버린 동전 하나

문득 쓸쓸해진

미친년 하나 헤매지 않는

개똥 하나 없는 거리

 

6.4 아스팔트는 아무리 깨끗이 쓸어놔도 깨끗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시골 마당만이 잘 쓸어 놓으면 깨끗하다. 깨끗하게 쓸린 마당이야말로 선의 공간이다.

 

죽음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6.6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챦게 만들어 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6.8 빌딩들은 해변가의 절벽같이 떼지어 서서

인왕산의 낙조에 잠기어간다.

 

6.13 나는 조금 더 조금만 더 진화되고 싶다.

진화되어야만 한다.

아니라면 아아 차라리 퇴화되고 싶다

어항에 알맞은 조그만 사이즈로

 

물고기와 같은 조그만 사이즈로 퇴화되고 싶다는 것은 숨고 싶다와 예쁘게 보이고 싶다의 이중적 교직이다. 그 이중적 교직이 김승희의 개인 심리학의 비밀이다.

 

6.25 산은 깊은 꿈이다. 깨나면, 다시 꿀 엄두도 못 내는 그런 꿈.

 

7.8 상투성으로 떨어지지 않는 단순성은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사랑, 삶 자체에 대한 사랑이다. 세상을 살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그는 단순해진다. 쉬운 일은 아니다.

 

7.13 두시에 대전을 떠나, 집에 들어오니 네시 반, 늘어지게 한숨 자다. 죽음은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처연하게 만든다.

 

예서 길이 끝나는 구나 벼랑 끝에 서고 보니

길 없는 깊은 세상이 더 가까워 보이는 구나

마지막 한걸음, 뒤에서 등을 밀어

그래, 가자가자

 

모든 말들을 퍼내고 남은 것은

빈 구덩이

 

빈 구덩이의 구조는 페허의 구조이며, 그 페허를 지배하는 것은 어둠이다. 그 어둠에 출구는 없다. 그의 세계 인식도 비극적이다. 그러나 어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밝음에의 욕구가 그만큼 크다는 증거가 아닐까?

 

7.16 육체는 즐김_즐거움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치욕-수치의 공간이다.

 

7.29 이제는 맥주를 마시기만 하면 설사다. 내 몸 속에 그토록 많은 물이 들어 있었나 할 정도로 한도 없이 쏟아낸다. 더 무서운 것은 그런 것을 겁에 질려 바라다보는 내 마음이다.

 

8.29 느릅나무 그늘에 누워 듣는 물소리 같은 시

 

12.12 새벽에 형광등 밑에서 거울을 본다 수척하다 나는 놀란다

얼른 침대로 되돌아와 다시 눕는다.

거울 속의 얼굴이 점점 더 커진다

두 배, 세 배, 방이 얼굴로 가득하다.

나갈 길이 없다

일어날 수도 없고, 누워 있을 수도 없다

결사적으로 소리지른다 겨우 깨난다

, 살아 있다.

 

3. 뼈대와 목차

 

<해제> 죽음을 응시하는 삶-일기와 삶-쓰기

1986.11

1987.61

1988.128

1989.196

 

감동적 장절

 

1986. 11.21 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친구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같이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같이 있는 것은 불편해서, 괜히 담배를 피우거나, 해도 괜챦고 안 해도 괜챦은 말을 계속해야 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냥 곁에 있는 것만으로 편안해져서 구태여 의례적인 말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같이 아무 말 않고 오래 앉아 있으면 불편해지는 사람을 친구라 부르기는 거북하다. 친구란 아내 비슷하게 서로 곁에 있는 것을 확인만 해도 편해지는 사람이다. 같이 있을 만하다는 것은 어려운 삶 속에서 같이 살아갈만하다고 느끼는 것과 같다. 그런 친구들이 많은 사람은 행복할 것 같다.

 

일요일마다 산행을 하면서 그와 나는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내가 숨이 가빠서 그런 것이지만, 숨이 별로 가쁘지 않은 요즘에도 그러하다. 우리는 아침 7에 만나 별말 없이 산길을 걷는다. 그가 쉬자고 하면, 어느 틈엔지 숨이 목까지 차 있다. 그는 참외나 사과, 배를 꺼내 깎아 반쪽을 나에게 준다. 그는 어린애 달리듯, 이젠 잘 걷는데 라고 말한다. 거의 매번 되풀이되는 칭찬이다. 어린애 달래듯, 혹시 내가 이젠 못하겠다 하고 나자빠질까 봐 하는 소리다.

 

육 개월을 넘기니까. 이제는 식욕도 좋아지고, 겁나는 일이지만, 다시 술 맛도 난다. "내가 자에 때문에 술병이 거의 나은 것 같네"라고 말하면 "내년 가을에는 설악산에 데려다 줄게"라고 대답한다. 알랑방귀뀌지 말라는 말일 게다. 그는 매주일 나를 데리고 산엘 가는데, 이제는 그 친구가 갑자가 "인제부터는 혼자 다니게"라고 말하지나 않을까 겁난다. 그래서 이런 자리를 빌어 "그런 나쁜 짓을 하면 못쓰네"하고 그를 타이르고 있는 중이다. 우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 그 작가는, 바다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좋은 친구가 놀라운 것은 거기에 놀라운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과연 놀랍다!

 

1987. 2.15 절실한 것이 이뤄지는 순간은 너무나 짧고 아름답기 때문에 밋밋한 삶 속에서 지속되기 힘들다. 아니 지속되지 못한달. 그것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환상의 빛과도 같다.

도스토에프스키의 [도박사]의 주인공에게 있어 그 절실한 것은 도박에서의 성공인데, 그것은 언제나 짧다. 그래서 그 성공은 환상적으로 보이는데, 그는 그것을 오래 지속하려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미치광이 도박꾼 취급을 한다.그러나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이 삶의 밋밋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절실하기 때문에, 도박할 때 육체는 떨리고 마음은 급해진다. 일상인들은 그 순간을 환상으로 돌리고 삶의 밋밋함으로 곧 되돌아온다. 그 돌아오는 속도가 빠른고 정확할수록 그는 잘 적응된 일상인이 된다. 된다니! 그는 잘 적응한 성공한 일상인이다. 그는 일상 속에 되돌아와 중얼거린다. 저놈은 돌았어.

 

7.17 타자의 철학 : 공포는 동일자가 갑자기 타자가 되는 데서 생겨난다. 타자가 동일자가 될 때 사랑이 싹튼다. 타자의 변모는 경이이며 공포다. 타자가 언제나 타자일 때, 그것은 돌이나 과 같다.

 

나는 어딘들 걸을 수 있다. 나는 불가능을 향해 걸을 수 있다! 불가능이 있기 때문에 불가능은 목표가 된다.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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