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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8일 08시 36분 등록

영혼의 자서전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안정효 옮김, 고려원, 1981.01.20

1. ‘그리하여, 이겼는가, 패배했는가(저자에 대하여)

■ 니코스 카잔차키스, Νίκος Καζαντζάκης,  (1883~1957)

카잔차키스.JPG

(이라클리오에 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

 

Δεν ελπίζω τίποτα. Δε φοβάμαι τίποτα. Είμαι λεύτερος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현대 그리스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동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지형적 특성과 터키 지배하의 기독교인 박해 겪으며 어린시절을 보낸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리스 민족주의 성향의 글을 썼으며, 나중에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한계에 도전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다. 소설 <십자가에 못박히는 그리스도>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시적인 문체의 난해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태어나서 제1차 세계 대전까지

1883년 오스만 제국 치하 크리티 섬의 이라클리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할리스 카잔차키스는 곡물과 포도주 중개상으로 중산층에 속했다. 그는 크리티 섬에서 중등 교육을 마치고 1902년 아테네 대학교에서는 법학을 공부했으며, 재학 도중 수필 《병든 시대》와 소설 《뱀과 백합》을 출간하기도 했으며 희곡도 쓰기도 했다. 1907년에는 파리로 유학했으며 베르그송과 니체 철학을 공부했다. 1911년 그리스로 돌아와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결혼했으며 제1차 발칸 전쟁이 발발하자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베니젤로스 총리 비서실에서 복무하기도 했다. 1917년 고향 크리티 섬에 돌아와 후에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의 모델이 된 요르고스 조르바와 함께 갈탄 채굴 및 벌목 사업을 했었으며, 이것이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로 발전하였다. 1919년 베니젤로스 총리에 의해 공공복지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1차대전 평화 협상에 참가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베니젤로스의 자유당이 선거에 패배하여 장관직을 사임하고 파리로 갔으며 그 후 유럽을 여행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을 때까지

공산주의 경도빈에 체재하는 도중 1922년 그리스 터키 간 전쟁에서 그리스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이전 민족주의를 버리고 공산주의 성향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동경으로 러시아 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1925, 1928년에는 공산주의 활동으로 인해 정부로부터 탄압을 받기도 했으나 루사코프 사건이 발생한 이후 소비에트 체재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변했다.

 

2차 세계대전과 내전

1926년 갈라테아 알렉시우와 이혼했으며 이후 프랑스어와 그리스어로 작품활동을 계속했다. 1940년 이탈리아 무솔리니 정권이 그리스를 침공하자, 일시적으로 민족주의 쪽으로 돌아서기도 했으며 1944년 독일군이 그리스에서 철수하자 아테네로 돌아왔다. 그때 12월 사태로 알려진 내전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사회주의 운동과 결혼

이후 정치로 다시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그리스 사회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소풀리스 연립정부의 정무 장관으로 임명된다. 1946년 정무 장관직을 사임했다. 그해, 그리스 작가 협회는 카잔차키스와 앙겔로스 시겔리아노스를 노벨 문학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랜 동반자였던 엘레니 사미우와 결혼했다.

 

교회의 박해

1953년 소설 《미할리스 대장》이 발간되자 그리스 정교회는 맹렬히 카잔차키스를 비난했으며 이듬해 로마 가톨릭 교회도 《최후의 유혹》을 금서 목록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카잔차키스의 소설은 그리스에서 일시적으로 출간되지 않기도 했다. 카잔차키스는 교부 테르툴리아누스(터툴리안)의 말을 인용해 로마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 자신의 입장을 옹호했다. 1955년에는 그리스 왕실의 도움으로 《최후의 유혹》이 그리스에서 발간되었다.

 

별세

1956년에는 국제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57년 중국 정부의 초청으로 중국을 여행했으며 일본을 경유해 돌아오는 도중 백혈병 증세를 보여 급히 독일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때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 만나기도 했다. 고비를 넘겼으나 독감에 걸려 10 26일 독일에서 사망했다.

 

문학세계

불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며 베르그송과 니체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자유에 대해서 탐구, 한계에 저항하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 대다수의 작품에서 줄거리 전개보다는 사상의 흐름을 강조했으며, 1951년과 1956,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어 천재성을 인정받았다. 대표작으로는 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진《최후의 유혹》과 《그리스인 조르바》,《오디세이아》()가 있다. 이중 소설 《미할리스 대장》과 《최후의 유혹》은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 으로부터 신성모독을 이유로 파문당할 만큼 당시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니코스 카찬차키스는 교회로부터 반 기독교도로 매도되는 탄압을 받았어도, 평생 자유와 하느님을 사랑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극작으로 1946년에 <카포디스토리아스>, 1959년에는 <배교자(背敎者) 율리우스>, 1962년에는 <메리사>가 각기 상연되었다.

 

 

소설

《향연》, 《토다 라바》, 《돌의 정원》 (1936), 《알렉산드로스 대왕》 (1940)

《크노소스 궁전》 (1940), 《그리스인 조르바》(Βίος και πολιτεία του Αλέξη Ζορμπά) (1943)

《수난》, 《미할리스 대장》(Ο καπετάν Μιχάλης) (1953)

《최후의 유혹》(Ο τελευταίος πειρασμός) (1951), 《성자 프란체스코》, 《전쟁과 신부》

여행기

《스페인 기행》, 《지중해 기행》, 《러시아 기행》 (1940), 《모레아 기행》, 《영국 기행》

《일본, 중국 기행》

서사시, 희곡, 자서전

《오디세이아》(Οδύσσεια) (1938), 《붓다》, 《소돔과 고모라》, 《영혼의 자서전》

《카잔차키스의 편지》

 

 

2. ‘영혼의 自敍傳(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했노라. 그대여, 나에게 신의 얘기를 해 다오. 그러자 편도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P. 6)

 

□ 난 베르그송의 말대로 하고 싶어 길 모퉁이에 나가 서서 손을 내밀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는 거야. ‘적선하시오. 형제들이여! 한 사람이 나에게 15분씩만 나눠 주시오.’ , 약간의 시간만, 내가 일을 마치기에 충분한 약간의 시간만을. 그런 다음에는 죽음의 신이 찾아와도 좋아. (p. 9)

 

Ü 카잔차키스는 죽음을 두려워한 게 아니라 삶을 사랑한 것이다. 같은 말인가.

 

□ 글쓴이의 머리말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

첫째, 나는 당신이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한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Ü가고 싶다에서 가야 한다로 그리고 간다, 마침내, ‘여기에 있다를 위해마음 속 희망을 현실화하는 법. 불현듯 왜 이런 말들이 떠오른지 모른다.

 

□ 신을 향해 거칠고 쉴 곳도 없는 산을 지쳐 기어오르다가 미끄러져 쓰러지기가 얼마나 여러 번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 일어나 다시 한번 오르기 시작한 것이 또 몇 번이었는지를 누구에게 나는 얘기하겠는가? 어디에서 나는 나처럼 수많은 상처를 입은 불굴의 영혼을 내 고백을 들어줄 영혼을 찾아낼 수 있겠는가? (p. 14)

 

Ü 카잔차키스 (1883~1957)는 왜 융을 알지 못했을까. (1875~1961)은 왜 카잔차키스를 알지 못했나.

 

죽음을 면하지 못할 우리 인간들은 불멸한 존재들을 위한 일꾼의 무리이다. 우리들의 피는 산호여서, 심연의 위에다 우리들은 섬을 만든다. 신은 우리들이 짓고 있다. (p. 15)

 

Ü 인간, 절대 존재를 존재이게 하기 위한 과정의 존재물.

 

□ 나를 둘러싼 불타는 지역에서 여호와가 똑 같은 길로 뚫고 나갔음을. 나는 신의 무서운 집에 들어왔고 신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음을. ‘이것이 길이다.’ 나는 꿈속에서 외쳤다. ‘이것이 인간의 길이다. 하나 밖에 없는 길이다!’ (p. 17)

 

Ü 태어나 죽고 다시 태어나고 알아가고 깨닫기도 하고 그냥 죽기도 하고 다시 태어나고이 끝없고 허무한 반복. 그 길이 길이라면 뭐 그리 심각할까.

 

□ 구원이란, 정말로 존재하지 않나이까? (p. 18)

 

Ü 우리 이제 솔직해지자. 구원이란 없는 거 아닌가. 이 세계에 구원이란 없다. 그저 기쁜 날, 많이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스스로의 구원이다.

 

□ 나는 당신의 명령을 밤낮으로 들었다. 나는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 나는 이것을 내 의무로 삼았다. 내가 성공했는지 못했는지는 당신이 판단해야 한다. 나는 당신 앞에 꼿꼿이 서서 기다린다.

 

장군이여, 전투가 끝나가니 나는 보고서를 작성한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 싸웠노라. 나는 부상을 당해 쓰러졌고 용기를 잃었지만 싸움터를 버리지는 않았다. 비록 겁이 나서 이빨이 덜덜 떨리기는 했지만 나는 피를 감추기 위해 빨간 수건을 이마에 질끈 동여매고 공격을 하러 달려갔다. (p. 19)

 

Ü 신에게 대답을 요구하는 카잔차키스. 그의 피나는 신에 대항한 싸움과 신을 향한 갈구가 눈물겹다.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는 엄숙한 크레타의 격언을 당신은 아는가? 만일 실패를 했다면 나는 목숨이 단 한 시간밖에 남지를 않았더라도 공격을 하러 돌아가리라. 성공을 거두었다면 나는 땅을 갈라 열어서 당신에게로 가 그 옆에 누우리라. (p. 20)

 

Ü 무서운 사람, 신 같은 사람.

 

조상들

□ 살아있는 모든 것은 신이 숨어서 흙을 짓이겨 변형시키는 일터이다. (p. 21)

 

Ü 애니미즘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하우저는 말한다.

 

농경문화 목축문화와 더불어서야 비로소 인간은 자신의 운명이 일정한 섭리와 의도를 지닌 힘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날씨가 고른 정도, 비와 햇볕, 천둥과 우박, 전염병과 가뭄, 토지의 비옥함이나 가축의 다산성 여부 등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식은 축복 또는 저주를 가져다 주는 선악 사이의 온갖 신령이나 정령의 개념을 낳으며 신비스러운 미지의 존재, 압도적인 위력을 가진 초인적 존재, 초월적이고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관념을 낳게 되는 것이다.

 

신이 탄생하는 지점인가. 애니미즘과 힌두의 사상은 닮아 있다. animsm, 모든 자연물에 정신, 정령 또는 의지가 있다고 믿는 신앙 또는 학설, 물활설, 정령설 등으로도 옮김

 

□ 개인, 국적, 인종 따위 내 영혼의 두터운 켜들을 꿰뚫고 무서운 첫 조상을 찾으려고 할수록 나는 성스러운 공포에 더욱 사로잡힌다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인간에서 신으로의 상승은 얼마나 무서운 과정이더냐! (p. 22)

 

Ü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의 존재를 증명하면서 그 무서운 생의 무한소급을 진행한다.

 

a) 세계에는 감각적으로 확인되는 일반적인 특성들이 있다.

b) 그런데 세계의 모든 일반적인 특성은 스스로 생겨날 수 없고 다른 어떤 것에 의해서만 생겨난다. 이 때문에 무한소급해 가는 모든 원인의 궁극적 원인이 없다면 이러한 일반적인 특성을 가진 세계가 존재할 수 없다.

c) 그러므로 세계에는 궁극적 원인이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신이라고 부른다.

 

이어서 김용규 선생은 에서 말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이성은 경험세계에만 적용할 수 있도록 한계 지어졌어요. 그럼에도 이성이 자신의 추론을 경험할 수 없는 무한한 대상에까지 확장해 나가면 이성은 하나의 길 경험적인 길에서든 또 다른 길 선험적인 길에서든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단지 사변의 힘으로 감성세계를 초월하려고 그 날개를 펴지만 헛수고에 그칠 뿐이며 필연코 오류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무한소급 infinite regress 은 논리적으로만 가능하지 존재론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칸트가 제시한 원칙이지요.

 

아무것도 죽지 않는단 말인가? 원시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고난과,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모든 밤과 달은 우리들이 살아 있는 한 우리들과 함께 살고 배고파하며 우리들과 함께 목말라하고 고통을 받으리라. (p. 23)

 

Ü 융은 우리의 의식에 대해 그 무서운 과정의 재생이라 말한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 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나는 왜 갑자기 타오르미나에서 그리스 극장을 내려올 때의 광경을 여기서 떠올리는가. 이런 불현듯의 장면이 나는 좋다.

 

□ 조금이라도 복수하고 즐기고, 괴로워하려면 그것은 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만일 내가 죽는다면 그들은 나와 더불어 죽는다. (p. 23)

 

□ 어느 날 저녁 식사 때 달걀에 뿌리려고 찬장으로 소금 그릇을 가지러 갔다가 나는 마룻바닥에 소금을 조금 엎질렀다. 나는 심장이 멎었다. 허둥지둥 엎드려 소금을 한 알 한 알 줍던 나는 갑자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고 겁이 났다. 소금이 땅에 조금 쏟아졌다고 해서 이렇게 분하게 여기는가?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다는 말인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분명히 그것은 내가 지닌 어느 조상이어서, 소금과 불과 물이 없어지면 건져내려고 벌떡 일어나 달려가던 베두인이었다. (p. 26)

 

Ü 나에게 일어나는 이런 내적 변화를 잘 관찰해 보자. 항상 관심을 기울여야 느낄 수 있을 것! 나의 기원에 대해서 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

베두인 : 베두인족(IPA: [ˈbɛdʉ.ɪn], 아랍어: البدو 또는 아랍어: بدوي)은 옛날부터 중동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아랍인이다.

 

아버지

□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요?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아버지하고 똑같았어. 얼굴이 더 검었지만.

직업이 무엇이었죠?

전쟁.

평화로운 시절에는 무얼 하셨나요?

길다란 치보우크 담뱃대를 물고 산을 물끄러미 쳐다보셨지.

 

당신이 스스로 무장을 하시던 날 내가 물었단다. 죽기가 무섭지 않으세요, 아버지? 하지만 당신은 대답도 않고 나를 쳐다보지조차 않으셨어. (p. 30)

 

Ü 그 결연함, 어깻죽지를 들썩이며 장구를 차는 뒷모습, 그러나 깊은 삶이 묻어 나는 긴 침묵의 출정 준비.

 

어머니

□ 가을의 첫 비가 퍼붓기 시작하면 그들은 갈대처럼 뼈가 흐느적거리고 부풀어 올랐다. 그리고 보습의 날로 땅의 자궁 속에다 깊은 고랑을 파헤치노라면 가슴과 허벅지에서 그들은 아내와 자던 첫날밤을 다시 경험했다. (p. 31)

 

Ü 노동과 영혼과 자연이 교감하는 지점.

 

□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몸 속에서 할아버지가 살아갈 터이기에 나는 기쁘다. 우리들은 함께 죽으리라. 내 속의 죽은 자가 죽지 않도록. 그 후로 떠나가버린 수많은 사랑하는 이들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들도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p. 32)

 

Ü 내 언젠가 이와 비슷한 생각을 했더랬다.

내 어릴 적 할머니와 나누었던 대화가 영상처럼 지나간다. 할머니가 해 주시던 속담과 옛날 이야기에 혼을 내 놓고 듣던 기억, 누구에 의해서도 말하여진 적 없는 아름다운 우리말, 상상력 가득했던 욕, 그 지혜의 촌철살인. 이제 할머니를 내 마음 속에 고스란히 담고 싶다.’

 

□ 그대가 걷는 길거리에 꽃이 만발하고

그대는 날개가 황금인 독수리랍니다. (p. 36)

 

Ü 이 빛나는 축제의 역사에 나는 왜 뜬금없이 조국의 늙은 여자들을 가슴 아파 하는가. 한이라는 답답한 축제 문화를 가진 그 조국의 여인들을 말이다.

 

아들

□ 작은 마당에서는 여름 냄새가 났다. 여인을 허리를 굽혀 나를 무릎에 앉히고는 껴안았다. 눈을 감으면서 나는 풀어헤친 그녀의 가슴에 기대어 몸에서 뿜어 나오는 따스함과 짙은 향수와 젖과 땀의 시큼한 체취를 맡았다. 갓 결혼한 육체는 열기를 뿜었다. 그녀의 불룩한 젖가슴에 매달려 나는 색정적인 도취감에 빠져 그 열기를 들여 마셨다.

 

대지와, 바다와, 여인과, 별이 가득한 하늘과의 내 첫 접촉은 그러했다. (p. 40)

 

Ü 나의 경우는 어떠할까.

 

뇌의 어느 구석으로 가야 내가 기억하는 나에 대한 첫 장면과 조우할까. 우주 빅뱅의 지점을 찾아 가는 것 못지 않은 떨림을 준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뻔뻔하게 뭔가를 발표하는 장면이 한번 휙 지나갔고 동네 형들과 게 잡으러 신나게 바다로 뛰어가는 모습이 또 지나간다. 저절로 미소가 머금어 지는데 이것 참재미있다. 누군가 어린 나에게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 두 손을 양 허리춤에 푹 갖다 대며육군사관학교 대장이라 고함친다. .. 시대의 희생자는 여기 또 한 명이 있었구나. 그게 바로 나였구나. 조금 더 기억에 매달려 보자. 여기는 공사장함바집인 듯 하다. 어머니는 포대기를 풀고 나를 내려 놓았다. 용접 불똥으로 구멍 난 런닝 차림에 하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아버지는 OB맥주를 ‘OB맥주라 적혀있는 컵에 하얀 거품이 나도록 붓는다. 뜨거운 여름 햇살은 함바집의 어두운 천을 뚫고 아버지의 굵은 어깨 근육에 앉았다. 노란색 장판으로 덧씌워진 긴 테이블 위에 맥주를 놓고 어머니와 아버지의 대화는 끊어질 듯 이어진다. 사진처럼 박혀있다. 왜 굳이 이 장면인지는 알 수 없다. 나에게 아버지는 가장 큰 사람이었고 어머니의 나긋한 목소리는 무의식의 심연에서도 잠들게 한다. 기억이 더 이상 진전될 수 없는 이 지점은 이상하게도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그 때, 아버지의 빛나는 근육은 일곱 식구를 건사하기 위한 노동으로 감가상각 되었고 시아버지의 치매와 시어머니의 다양한 요구는 젊은 어머니를 질리게 했을 터다. 이러저러하여 막 철든 형과 누나를 이웃에게 맡겨두고 어린 나를 업고, 일하시는 아버지를 보러 가신 것 같다. 가기 전, 망설였을 고심했을 어머니는 아버지를 만나 막상 별 말씀 없이 계시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집으로 가신다.’

 

어렸을 때와 똑 같은 놀라움과 두려움과 기쁨을 느끼며 새로이 경험하는 데 성공할 때에야 나는 오늘날에도 이 네 가지를 육체와 영혼이 깊이 탐닉할 수 있을 만큼 경험한다 별이 총총한 하늘을 보며 나는 그것이 꽃이 만발한 정원이고 때로는 어둡고 위험함 바다이며 때로는 눈물로 범벅이 된 과묵한 얼굴이라고 상상한다. (p. 40)

 

Ü 거의 모든 것들에 대한 첫 대면의 기억, 느낌, 기분, 의식, 환상그것들을 모조리 기억해 내는 일.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의 시작.

 

□ 어린 시절을 이렇게 세세히 회고하는 까닭은 가장 오래된 추억이 그토록 굉장한 매혹을 불러일으켜서가 아니라 이 시기에는 꿈에서처럼 얼핏 보기에 하찮은 사건이 나중에 어느 정신분석가보다도 더 잘 영혼의 참되고 꾸밈없는 얼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표현 방법이나 꿈이란 무척 단순해서 지극히 복합적인 내면의 풍요함까지도 모든 피상적인 요소로부터 해방이 되는 까닭에 오직 본질만이 남는다 (p. 41)

 

Ü 오직 본질만이 남았을 때의 얼굴, 그 영혼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일. 융이 자신의 유년을 이야기한 이유도 이와 마찬가지였을 것. 융은 카잔차키스가 말한 본질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을 것.

언제나 나에게 인생은 뿌리를 통하여 살아가는 식물처럼 생각되었다. 식물의 고유한 삶은 뿌리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다. 지상에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단지 여름 동안만 버틴다. 그러다가 시들고 마는데 하루살이같이 덧없는 현상이다. 생명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허무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나는 영원한 변화 속에서도 살아서 존속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감각을 결코 잃어버린 적이 없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라져갈 꽃이다. 그러나 땅 속 뿌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생애에서 최초라고 할 만한 한 가지 기억을 토해낸다.

 

나는 나무그늘 아래 유모차에 누워 있다. 화창하고 따뜻한 여름날, 하늘은 푸르다. 황금빛 햇살이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비치고 있다. 유모차 덮개는 젖혀 있다. 나는 그 눈부신 아름다움에 막 눈을 뜨고 말할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나무의 잎사귀와 꽃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빛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온통 경이롭고 다채롭고 그리고 찬란하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서문에 밝힌 질문의 시작을 찾아간 것이리라. 나는 융과 카잔차키스가 이리도 겹쳐 있는 줄 알지 못하였다.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을 무엇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나도 무한한 신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어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돌에도 대비해 볼 수 없다. 오직 신화적인 존재만이 인간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현실은 바꿀 수 없을 터이니 현실을 보는 눈을 바꾸자 (p. 42)

 

Ü 스승은 말씀 하였다. 절망이란 더 이상 어쩔 수 없을 때 생겨나는 것이다. 상황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절망한다. 그러나 그는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하나 더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이 상황을 해석하는 자신의 관점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중에서)

 

□ 아이의 눈보다 신의 눈을 닮은 것은 또 없으니 아이는 처음 세상을 볼 때 그의 세상을 창조한다. 그 전에는 세상이 혼돈이었다. (p. 42)

 

□ 육두구

 

Ü 영어 이름인 너트메그란 사향 향기가 나는 호두라는 뜻이다.

 

글을 쓰다가 바다나 여인이나 신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으면 나는 가슴속을 들여다보며 내 속의 아이가 하는 얘기에 열심히 귀를 기울인다. 그는 나에게 받아쓰라고 글을 불러주는데 어쩌다가 바다와 여인과 신의 위대한 힘을 어휘를 사용해서 비슷하게 묘사하게 되면 그것은 아직도 내 속에 살아 있는 아이의 덕분이다. 나는 티없는 눈으로 세계를 항상 처음 보기 위해서 또다시 아이가 된다. (p. 46)

 

Ü 이를 배워야 한다. 나는 왜 갑자기 체팔루의 언덕위에서 바라보는 푸른 지중해를 떠올렸는지 알지 못한다.

 

초등학교

□ 선생이나 학생들이나 다같이 누구나 이 무수한 매질이 우리들을 남자로 바꿔놓을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p. 50)

 

Ü 야만의 교육은 다르지 않았구나. 좋은 표현이다. 인용하자.

 

□ 그 시절에는 사람들은 모두 판에 박은 듯 똑같지가 않았다. 그들은 저마다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세계를 따로 가지고 있었다.

 

가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가난뱅이다. 나는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아 (p. 58~59)

 

Ü 저 마다의 세계를 가진 인민들이 뿜어내는 다양성의 힘이다.

 

할아버지의 죽음

□ 젊은이들아, 잘 있거라. 그가 말했다. 나는 내 몫의 빵을 다 먹었으니 이제는 가겠다. 나는 마당 가득히 자식과 손자들을 두었고 항아리 가득히 기름과 꿀을 채웠고 술통은 포도주로 가득 채웠으니 아무 불평도 없구나. 잘들 있거라! (p. 62)

 

Ü 죽음에 임박한 인간의 모습은 실로 구체적인 삶을 떠날 수 없구나.

 

성인의 전설

나에게는 최초의 중대한 욕망이 자유였다. (p. 68)

 

Ü 나 또한 자유에 대해 관심이 많다.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자유는 가능한 것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우리는 카잔차키스의 희곡붓다를 참조 할 필요가 있다. 카잔차키스는마법사의 대사를 통해 자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그들은 단지 감옥을 바꿀 뿐이다. – 이제는 더 이상 돌, 회반죽, 그리고 철근의 벽이 아니라 희망과 꿈의 벽이지. 그들은 감옥을 바꾸는 거야. 그리고 이것을 자유라고 부르지!’ 또한어르신의 입으로 말한다. ‘너는 강하기 때문에 아무 목적 없이 논다. 너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외톨이로 혼자 논다. 너는 시간의 둑에 탑을 세우고 물과 모래로 신, 아들, 그리고 손자를 만든다. 너는 네 눈을 뜬다. 그러면 피조물들이 살아난다. 너는 네 눈을 감는다. 그러면 그들이 사라진다. 너는 춤춘다. 나의 가슴아, 너는 황야에서 춤춘다. 너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며 너는 아무도 증오하지 않고 너는 아무것도 희망하지 않는다. 너는 자유롭다!’

 

붓다는 신을 극복한 자유의 인간인가? 니체는 신을 죽인 인간인가? 카잔차키스는 신에 대항했던 인간인가? 우리는 신과 자유에 어떤 시선을 하고 있는가? 그 어떤 인간도 자유를 쟁취할 수 없다. 이것은 진리다. 시간이 진리인 것과 같다. 그러나 자유는 인간의 북극성이다. 나침반의 바늘이 떨며 늘 그곳을 지향한다. 지향할 뿐이다. 다가설 수 있으나 갈 수 없는 곳이다. 인간에게 자유는 어쩌면 그런 곳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장자에게서 자유는 무엇인가? 강신주가 답한다.

 

내가 자유롭다고 관념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자유는 언젠가는 여지없이 타자와의 충돌과 죽음의 도래로 흔들릴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는 타자와의 충돌과 죽음이라는 인간 삶의 유한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개념적으로 자유는 자유는 자기로부터 말미암는다. 自由, 외적인 강제가 없이 철저하게 자기원인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을 의미한다. 일체의 외적 조건 없이 절대적 자발성에 근거하는 자기원인적이라는 자유의 관념은 사변적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을 강조하는 장자에게 있어 절대적 자유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면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은 불필요한 개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육체적 유한성과 독립된 실체로 사유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적 자유의 이념은 유한한 자유를 추상화하는 데서 존립하는 개념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진다.’

 

□ 사람들은 신문을 읽지 않았고 라디오와 전화와 영화는 아직 발명되지 않았으며 삶은 말없이 진지하게 띄엄띄엄 이어져나갔다. (p. 72)

 

Ü 삶의 엄숙함이 묻어난다.

 

□ 우리들의 개인적인 관심을 초월하고 편안하고 아늑한 환경을 초월하고 우리 자신보다 높은 목적을 설정해서 비웃음과 굶주림과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땀 흘려 일함이 우리들의 의무이다. (p. 76)

 

Ü 그러나 이것을 숭고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 박차를 질러말은 땀을 흘려서 입과 옆구리는 거품이 뒤덮였고 (p. 77)

 

□ 어떻게 포도가 술이 될까? … 어째서 그들은 취하는가? (p. 79)

Ü 그러게 말이다.

 

□ 일년 내 고생해 거두어 반쯤 말린 포도가 바다로 가서 썩어버리려고 한 아름씩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광경을 보았다.

아버지.’ 내가 소리쳤다.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그가 대답했다.

꼼짝 않고 서서 재난을 지켜보며, 모든 사람들 가운데 아버지 혼자만이 인간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p. 81)

 

Ü 담대함, 삶의 절대 긍정. 이런 아버지가 되어야.

 

□ 뿌지직! 뿌지직! 수박이 커지는 소리 (p. 83)

 

□ 삶의 진짜 얼굴은 해골이었다. (p. 84)

 

글을 쓰는 사람은 억압되고 불행한 숙명을 산다. 그것은 그가 맡은 일의 본질이 어휘를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인데 다시 말하면 내적인 격렬한 흐름을 정체시켜야 함을 뜻한다. 모든 어휘는 위대한 폭발적인 힘을 내포하는 견고한 껍질이다. 그 의미를 찾아내려면 인간은 내면에서 폭탄처럼 그것이 터지게 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안에 갇힌 영혼이 해방된다. (p. 85)

 

Ü 작가로 살아갈 테냐?

 

낙소스

가장 많은 바다와 가장 많은 대륙을 본 사람은 행복할지어다.’ 그리고 집에서 기르는 소가 1년 되느니 하루 동안 들소가 되리라.’ (p. 90)

 

Ü 인류는 시간을 거쳐 이러한 답을 이미 내어 놓았다. 그리하기 힘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인간이 내어 놓은 답에 인간이 스스로 처해버린 수많은 제약을 어떻게 극복하는가.

 

□ 참된 인간은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을 정복하지 (p. 91)

 

□ 세상은 그리스가 모두가 아니었고 세상의 고통은 우리들의 고통보다 컸고 자유에 대한 갈망은 크레타인만의 특질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영원한 투쟁이었다. (p. 93)

 

Ü내가 자유롭다고 관념적으로 생각해도 그런 자유는 언젠가는 여지없이 타자와의 충돌과 죽음의 도래로 흔들릴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는 타자와의 충돌과 죽음이라는 인간 삶의 유한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긍정하는 토대 위에서만 가능하다.’

 

해방

따로따로 보면 우리들은 하나씩 죽어가지만 함께 모이면 불멸하다. (p. 101)

 

Ü 그래서 인간은 영원을 살 것처럼 순간을 사는 게 아닌가. 슬프다.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이 안타까움은 노동하는 인간에게도 겹쳐진다. 혼자의 미약한 목소리를 낼 때 픽픽 쓰러지던 광경을 보고 다수의 미약함들이 모여 단체를 이루어 공고한 교섭력을 쟁취할 때의 광경.

 

사춘기의 어려운 문제들

□ 태어남과 죽음, 이 두 가지는 내 어린 영혼을 고뇌케 한 최초의 신비였으며 나는 자그마한 주먹으로 두드리며 그 두 개의 닫힌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p. 106)

 

□ 이성이 열리고 진실의 언저리가 뒤로 물러날수록 마음은 더욱 슬픔이 가득 차 넘치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p. 109)

 

Ü 배움으로 진실은 더욱 멀어지고 나이를 먹어감에 슬픔은 생을 잠식한다.

 

□ 정말로 끔찍한 첫 번째 비밀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지구는 어디로 가나? 아무 데로나 끌려간다. 태양이라는 주인에게 끌려 따라간다. 우리들도 또한 줄에 묶여 노예가 되어 따라간다. 태양도 역시 묶여서 끌려가고누구를 따라가는가?

 

두 번째 상처는 인간이 신이 아끼는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살갗을 조금 긁어내고, 영혼을 조금 벗겨낸다면 그 밑에서는 우리들의 할머니인 원숭이가 나타난다. (p. 110~111)

 

Ü 융은 말한다. ‘나는 내가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내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는 알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을 무엇과도 비교해 볼 수 없다. 인간은 원숭이도 암소도 나무도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인간이다. 그런데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나도 무한한 신성으로부터 떨어져 나왔지만 어떤 동물이나 식물 또는 돌에도 대비해 볼 수 없다. 오직 신화적인 존재만이 인간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결정적인 견해를 가질 수 있겠는가?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기 자신과 자기 생애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사탕을 이쪽 뺨에서 저쪽 뺨으로 굴려가면서 그가 대답했다. (p. 112)

 

Ü 좋은 표현이다. 인용하자. 메마른 공기로 인해 항상 청포도사탕을 입에 달고 있었다.

 

□ 선생님, 이 만년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이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건방질 만큼 진지한 태도로 물었다선생님은 아버지를 불러 당신 아들은 버릇도 없고 건방집니다.’

난 그 애가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얻어맞을 때에만 걱정을 합니다. 나머지 다른 일이라면 이제 다 컸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어야죠.’ 아버지가 말했다. (p. 112~113)

 

Ü 그러고 보니 카잔차키스의 아버지가 참으로 멋지구나.

 

□ 나는 사랑과 여자들을 경멸했다. 신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싶어 마음이 두근거리지도 않고밑에서 분노하여 천둥 치는 시커먼 바다는 미친 듯 둑을 때려 삼켜버렸다.

 

오직 바다만이 똑 같은 고뇌로 잠을 이루지 못하도록 내 고뇌를 이해해줄 듯싶었다. 바다는 가슴을 치고 바닷가를 때리고는 다시 얻어맞는다. 자유를 찾으려고 바다는 앞에 부옇게 드러나는 방파제를 무너뜨리고 그 너머로 가기 위해 애를 쓴다. 마른 땅은 적막하고 안전하며 순박하고 부지런하다. 땅은 꽃을 피고 열매를 맺고 시든다. 그러나 흙으로부터 또다시 봄이 솟아날 터여서 대지는 안심을 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 바다는 마음이 편치 않으니, 바다는 꽃도 안 피고 열매도 맺지 못해서 밤낮으로 한숨짓고 투쟁한다. (p. 113~114)

 

Ü 카잔차키스의 바다는 투쟁의 다른 모습이다. 니체의 파도는 어떤가. ‘흡사 누군가를 앞지르기라도 하려는 듯이 마치 가치 있는 가장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거기에 숨겨져 있기나 한 듯 보인다. 그리고 이제 파도는 다소 천천히 그래도 아직 흥분하여 하얀 거품을 내며 되돌아오고 있다. 실망했는가?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는가? 실망한 척을 하고 있는가? – 그러나 이미 또 다른 파도가 처음 것보다 더 탐욕스럽고 야만스럽게 다가오고 있다. 이렇게 파도는 산다.’

 

신영복 선생의 바다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 바다입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바다입니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지요. 큰 강이든 작은 실개천이든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임으로써 그 큼을 이룩하는 것이지요. 66장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以其善下之(이기선하지)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나는 암 원숭이로 정충을 흘려 넣은 수컷 원숭이가 잉태했을까? 간단히 얘기하면 나는 신이 아니라 원숭이의 아들인가? (p. 114)

Ü 좋은 표현

 

□ 나를 살펴보는 원숭이, 여지껏 나는 그토록 사람 같은 눈을 본 적이 없었다. 교활함과 조롱에 가득 찬 동그랗고 까맣고 움직일 줄 모르는 그 눈은 나에게 고정되었다.

 

Ü 떠오르는 시가 있어 소개한다.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허연, 나쁜 소년이 서 있었다. 2008)

 

배고픈 고양이 한 마리가 관절에 힘을 쓰며 정지동작으로 서있었고 새벽 출근길 나는 속이 울렁거렸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전진 아니면 후퇴다. 지난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와 종일 굶었을 고양이는 쓰레기통 앞에서 한참 동안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둘 다 절실해서 슬펐다.

 

 "형 좀 추한 거 아시죠."

얼굴도장 찍으러 간 게 잘못이었다. 나의 자세에는 간밤에 들은 단어가 남아 있었고 고양이의 자세에는 오래 전 사바나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녀석이 한쪽 발을 살며시 들었다. 제발 그냥 지나가라고. 나는 골목을 포기했고 몸을 돌렸다. 등 뒤에선 나직이 쓰레기봉투 찢는 소리가 들렸다. 고양이와 나는 평범했다.

 

간밤에 추하다는 말을 들었다

 

□ 나는 몰락을 시작했고 그것이 즐거웠다. (117)

 

□ 못을 안 박아도 왜 기와가 떨어지지 않지? (p. 120)

Ü 그러게???

 

깜둥이가 세수를 해봤자 비누만 손해야. (p. 121)

Ü 웃어야 하나.

 

결핍으로 둘러싸인 열등의 자기 파괴, 삼류보다 더 슬픈 건 이류다.

 

에이레 아가씨

□ 크레타는 온 몸을 가렸다. (p. 125)

Ü 좋은 표현

 

아테네

□ 젊음은 눈멀고 사리를 분별치 못하는 야수이다. 젊음은 먹이를 탐하지만 먹지를 않고 머뭇거리기만 하며 발길에 채이는 행복을 마음만 먹고 주으면 되는데도 줍지를 않고 샘터로 가서 쓸데없이 시간이라는 물을 흘러 말라버리게 그냥 내버려둔다. 스스로 야수인 줄을 모르는 야수 그것이 젊음이다.

 

Ü 그리하여 나이가 들면 그 흘려 보낸 젊음을 돈으로 사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김화영이 말한다.

 

여행 중에 아무리 즐거운 곳이라 하더라도 이미 청춘이 다한 늙은이들만이 돈으로 청춘까지 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사이에 끼어 있고 보면 일찍부터 양로원의 서기 자리에 취직한 기분이 들어 울적한 법이다. 그러나 가진 것 중에 무엇보다 자랑스러운 것은 튼튼한 몸,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 쉬 떠나고 쉬 머무는 역동성, 그리고 세계를 한 가슴에 다 품을 수 있는 젊음이라는 듯이 허름한 블루진을 걸치고 큼지막한 입술이 가슴팍에 그려진 엷은 셔츠 차림으로 언제나 밝게 웃는 그 젊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나의 마음과 몸이 해풍처럼 가벼워진다

 

□ 사춘기에 내가 받았던 두 상처, 모두가 가치 없고 헛된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모든 젊은 여자에게서 신선한 얼굴을 지워버리고 미래의 쪼글쪼글한 노파를 보았다. 꽃은 시들었고 소녀의 즐겁게 웃는 입 뒤에서 나는 노출된 해골의 턱뼈를 의식했다. (p. 128)

 

Ü 사춘기에 내가 받았던 두 상처 : 정말로 끔찍한 첫 번째 비밀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지구는 어디로 가나? 아무 데로나 끌려간다. 태양이라는 주인에게 끌려 따라간다. 우리들도 또한 줄에 묶여 노예가 되어 따라간다. 태양도 역시 묶여서 끌려가고누구를 따라가는가? 두 번째 상처는 인간이 신이 아끼는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살갗을 조금 긁어내고, 영혼을 조금 벗겨낸다면 그 밑에서는 우리들의 할머니인 원숭이가 나타난다.

 

내 발가락이 다섯 줄기로 튀어 나온 것이 신기한 때가 있다. 삼릉의 소나무들이 제멋대로 휘감겨 올라가는 모습이 징그러웠던 것처럼.

 

아티카의 풍경은 뽐내지를 않고 미사여구에 탐닉하지를 않고, 신파조로 기절을 하는 발작으로 타락하지를 않으며 차분하고 힘찬 설득력을 지니고 할 얘기만 한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그것은 본질을 형성한다. 하지만 이 엄숙함 가운데 가끔 미소가 있으니 완전히 황폐한 산등성이의 은빛 올리브 나무 두세 그루… (p. 131)

 

파르테논은 꼼짝도 않는 원시 짐승의 유해처럼 보였고 어린 송아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면 나는 그것이 행복임을 알았다.

 

나는 파르테논이 2 4처럼 짝수라고 생각했다. 나는 짝수가 마음에 들지를 않아서 전혀 좋아하지를 않았다. 그 숫자들의 삶은 너무 편안하게 마련되어서 너무 위치가 견고하고 위치를 바꾸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만족하고 보수적이고 걱정이 없었으며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욕망을 실현하고 차분해졌다. 내 마음의 리듬에 맞는 것은 홀수였다. 홀수의 삶은 전혀 편안하지가 않았다. 홀수는 있는 그대로의 이 세상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것을 바꿔보고 보태고 더 밀어보려고 한다. 그것은 한쪽 발로 땅을 딛고 다른 발은 떼어놓으며 떠나려고 한다. 어디로 가려나? 잠깐 멈춰 숨을 돌리고 새로운 추진력을 얻기 위해 다음 짝수로 간다. (p. 132~133)

 

Ü 생의 홀수론! 홀수적 삶!

 

□ 태양이 중천에 떠서 그림자가 없고 빛이 장난을 치지 않는, 숭고하고 완벽하고 가식이 없는 절정의 시간, 정오였다. (p. 132)

 

Ü 좋은 표현

 

□ 파르테논, 인간에 의해 조각된 이 좁다랗고 마술적인 평행사변형에 무한성이 스며들어 한가하게 자리를 잡고 휴식을 취했다. 시간도 마찬가지로 정복되었고 숭고한 순간이 영원으로 바뀌었다.

 

Ü 수천 년 시간이 그대로인 모습을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표현하였구나. 대가다.

 

□ 얼마나 많은 가능성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던가. (p. 133)

 

크레타로 돌아오다. 크노소스

□ 나흘째 되던 날 나는 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뚜렷한 목적도 없고 무엇을 할는지도 모르면서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것이 내 생애에서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다. (p. 138)

 

Ü 이 광경과 유사한 모습이 하나 더 있다. 스승이 글을 쓰기 시작한 때다.

 

이 빛나는 날 내게는 오늘을 마음대로 할 자유가 주어졌으나 나는 오늘을 보낼 아무런 계획도 없었다. 나의 하루가 속절없이 흘러가겠구나. 그렇게 내 인생도 가뭇없이 사라지련만 나는 인생의 절반 지점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이렇게 환한 낮이 밝아오는데 시체처럼 방 안에 누워만 있구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그 때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글을 써라. 너는 글을 써보고 싶지 않았느냐?’ 내 속에서 무언가가 소리쳤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일어나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날 그 아침이 내 인생의 분기점이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날이 바로 내게는 마사 그레이엄이 루스 세인트 데니스의 포스터를 본 날이고, 그녀의 춤을 격정 속에서 관람한 날이기도 하다.

 

그 여름의 그 햇빛, 그 눈물, 그 기쁨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느끼고 들을 수 있다. 내게는 너무도 선명한 기억이므로 감춰져 있고 한 번도 제대로 쓰인 적이 없는 그 평범한 재능이 세상에 외친 그날 새벽,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나는 새벽에 글을 쓴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다. 새벽은 혼자 있기 좋은 시간이다. 새벽은 명징하지만 나는 새벽에 늘 불가능한 것을 꿈꾸고 그것을 믿는 훈련을 한다. 글은 그런 사고의 표현들이다. 글과 나 사이는 종이와 펜 같은 관계다. 종이는 펜이 흘러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글도 내가 흘러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내게 글은 강과 같다. 나는 새벽에 작은 보트 하나로 그 강을 따라 내려간다. 나는 두려워진다. 동시에 세속에서 배웠던 모든 것을 버리고 나는 새로워지는 경험을 한다. 아무에게도 말할 필요가 없다. 이때 나는 혼자이기에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꼭 옆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혼자이기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려 한다. 의식이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동안 온갖 것을 창조해낸다. 새로운 것들이 강물 속에서나 강가의 나무와 풀숲에서 두 눈을 반짝이고 물고기가 한 마리 물 위로 튀어 오르기도 한다. 이때 나는 내 무의식과 만난다.’

 

봄이 왔으나 스승은 봄에 대해 쓸 수 없다. 올해만큼은 사람들이 봄을 볼 수 없도록 비만 주구장창 내려라.

 

글을 쓰면서 나는 으쓱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내 기분에 맞도록 현실을 멋대로 변형시키는 나는 신이 아니겠는가?... 확실성 자체보다도 훨씬 확실한 불확실성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p. 139)

 

□ 어휘로 새롭게 빚어 굳혀놓은 형태 이외에는 에이레 아가씨를 나는 다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종이 위에 누워 있었다. 그토록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축적되던 고뇌는 진실이 아니었고 상상력에 의해 새로 태어난 이 존재가 진실이었다. 상상의 힘으로 나는 현실을 지워버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인간은 저마다 맞서 싸울 적의 자격을 결정짓는다. 비록 그것이 파멸을 뜻할지언정 나는 신과 싸우게 된 것이 기뻤다. 그는 흙을 빚어 세상을 창조했고 나는 어휘를 빚는다. 시는 지금처럼 땅 위를 기어다니는 인간들을 만들었고 나는 꿈을 이루는 공기와 상상력으로 시간의 횡포에 항거하는 인간을 보다 영적인 인간을 빚어내리라. 신의 인간은 죽지만 내가 창조한 인간은 살리라! (p. 140)

 

Ü 이리 된 것이었구나그의 한 평생을 걸쳐, 쓰면서 투쟁했던 대상은 신이었다. 그의 모든 글에서 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었구나. 그의 강력한 의지 유난히 눈물 겨운 이유는 그 자신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위대한 이유는 그런 인간이 신과 대항했다는 점.

 

□ 늙은 여자가 가까이 왔다. 그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팔에 끼고 있던 바구니를 덮은 무화과 잎사귀 두세 개를 쳐들더니 그녀는 무화가 두 개를 꺼내 나한테 주었다.

나를 아세요, 할머니?’ 내가 물었다.

그녀는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단다. 얘야. 너를 알아야만 무얼 줄 수가 있단 말이냐? 너는 인간이지? 나도 그래.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아?’ (p. 141)

 

Ü 눈을 번쩍뜨이게 하는 놀라운 대화!

 

□ 반쯤 무너지고 반쯤 복구를 한 궁전은 수천 년이 흘렀어도 다시금 크레타의 남성적인 햇살을 즐기며 찬란하게 반짝였다. (p. 142)

 

Ü 이를 두고 시간을 정복했다고 했다. 좋은 표현이다.

 

젊은이, 물론 난 기도를 했어요. 모든 종족과 모든 시대는 저마다 신에게 그 나름대로의 가면을 부여해요. 하지만 모든 종족과 시대가 부여하는 모든 가면의 뒤에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 똑같은 신이 항상 존재하죠.’ 그는 잠잠해졌다가 잠시 후에 말했다. ‘우리들에게는 십자가가 신성함의 상징이고 아주 오랜 옛날 당신들의 선조들은 양쪽에 날이 선 도끼를 섬겼어요. 하지만 나는 피상적인 상징들은 젖혀놓고 십자가와 양날 도끼 뒤에 있는 똑 같은 신을 찾아내어 경배합니다. (p. 144)

 

Ü 캠벨이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선지자 아베가 한 말은 아마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한 문화 권역과 다른 문화 권역의 영웅, 혹은 구세주는, 두 문화권의 교섭한 경험이 없는 경우에도 서로 비슷비슷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바닥,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이 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른 것, ‘원형이라고 부른 것이 서로 비슷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캠벨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입니다.’

 

세계 신화가 지니는 공통되는 주제는 심오한 원리를 통하여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 정신의 욕구를 지향한다삶의 본질은 죽이는 것과 먹는 데 있다는 사실 그리고 신화가 다루어야 하는 위대한 신비가 비로 이것임. 사냥꾼과 사냥감이 된 동물 사이에는 참으로 불가사의하고도 놀라운 일종의 협약이 이루어진다. 바로 이 협약을 통하여 이 양자는 죽음과 매장과 재생의 신비스럽고 영원한 주기 속에서 하나의 동아리가 된다.

 

원형은 인간이 공유하는 신화의 관념이라는 것이지요. , 같은 기관, 같은 본능, 같은 충동, 같은 갈등, 같은 공포를 가졌으니 인간은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 공통되는 바탕에서 융 박사는 이른바 원형이 산출된다는 것입니다모든 궁극적인 영적 암시는 침묵에 담겨져 있지요. 이 침묵은 소리 너머에 있어요. 육이 된 말씀은 최초의 소리입니다. 그 소리 너머에 있는 것이 초월적인 미지의 존재, 불가지적인 존재입니다. 이것은 위대한 침묵, 혹은 공, 혹은 초월적인 절대자로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황소 모양의 원형질이 풀 모양의 원형질을 먹는 것 같았고 새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광경도 새 모양의 원형질이 물고기 모양의 원형질을 먹는 것 같았어요. 많은 사람에게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이런 놀라운 심연 체험이 있을 겁니다.

 

승려님 당신은 신을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신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신은 이름으로 얽어매기에는 너무 커요. 이름은 감옥이고 신은 자유입니다.’

 

그는 내 눈길을 의식했다. ‘세상은 아름다워요’ (p. 146)

 

□ 탁발승들은 종교적인 단체예요. 그들에게 계율을 물어봐 주세요.

가난요. 가난입니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아무런 짐도 지지 않고 꽃이 만발한 길을 따라 신에게로 가는 거예요. 웃음과 춤과 기쁨이 우리들의 손을 잡고 이끄는 세 대천사랍니다. (p. 147)

 

그리스 순례

□ 내가 살아 있는 한 그것이 멸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았던 나는 차분했다. (p. 150)

 

Ü 그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알았다.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살아 있는 한 내 몸 속에서 할아버지가 살아갈 터이기에 나는 기쁘다. 우리들은 함께 죽으리라. 내 속의 죽은 자가 죽지 않도록. 그 후로 떠나가버린 수많은 사랑하는 이들은 무덤이 아니라 내 기억 속에 묻혔으니, 내가 살아 있는 한 그들도 살아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 헬렌이 구원을 받은 것은 시인의 덕택이고 이 작은 강 에우로타스가 불멸성을 지니게 된 것은 호메로스 덕택이었다. (p. 152)

 

□ 충동적이고 씩씩한 걸음걸이에 단단하고 둥근 두 무릎

끊임없이 죽고 끊임없이 부활하는 주님이 누웠다

인간의 고통이 신을 부활시키는 힘임을 알고 있었지만… (p. 156)

 

Ü 표현들

 

□ 그들은 날마다 그런 것들과 접촉하고 그러다 보면 친숙함이 경멸을 자아낸다. (p. 158)

 

Ü 고대 신전을 보러 다니는 멍충이 같은 외국인들이라 욕하는 사람을 보며.

 

무엇을 보고 계신가요? 할아버지?’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는 머리도 들지 않고 물에서 눈을 떼지도 않으면서 대답했다.

내 인생을, 거의 다 흘러가버린 내 인생을…’ (p. 159)

 

Ü ! 침묵과 시선처리.

 

희랍인들이 그 야수성을 씻어내고 인간의 젖가슴만 남기고는 존귀한 인간의 육체를 부여한 곳은 그리스의 그런 바닷가였으리라. (p. 159)

 

끊임없이 움직이는 두 격류가 땅과 바다에서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리스는 항상 지리적으로 그리고 또한 정신적으로 끊임없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곳이다. 이 숙명적인 위치는 그리스의 운명과 전세계의 운명에 기초적인 영향력을 끼쳤다. (p. 160)

 

Ü 하나 하나가 주옥 같은 글이다.

 

삶이 기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약간의 여유를 누리기 시작하는 순간에 문명은 태어난다. 이 여유는 어떻게 쓰였고 여러 사회 계층에 어떻게 분배되었으며 어떻게 최대한으로 증가시키고 가꾸었던가. 종족과 시대가 저마다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느냐에 따라서 그 문명의 가치와 실체가 심판을 받는다. (p. 161)

 

Ü , 이건 사회학적 혜안이다.

 

□ 그리스는 그 힘을 의식했다. (p. 165)

Ü 무생물에게 생물의 동사를 투여한다.

 

살아가는 사람들의 발작적이고 흔히 표리부동한 행위 뒤에서 그는 인간의 영혼을 휩쓸어가는 거대한 물살을 찾아낸다. 그는 덧없는 사건들을 취해서 불사의 환경 속에 재배치한다. 위대한 예술가는 영원성의 허화와, 사실적 재현을 고려한다. (p. 166)

 

Ü 원반 던지는 사람을 보며 아르놀트 하우저는 카잔차키스와 유사한 생각을 한다. 예술가의 시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의심심장한 순간을 택함으로써 그 자체로는움직임이 없지만 무한한 움직임을 암시하고 있는 어느 한 순간의 정경 속에다 시간적인 길이를 가진 사건 전체를 압축시키는 방법을 취했다.

 

□ 하나의 순환이 끝났다. 내 눈은 그리스로 가득 찼다. 내 생각에 그것은 동양과 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사명을 훨씬 분명하게 파악했고 희랍의 숭고한 업적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임을 깨달았으며 그리스의 비극적인 운명과 모든 희랍인이 무거운 의무를 지고 있음을 보다 깊이 의식했다는 점. (p. 169)

 

Ü 일견 맞지만 민족주의로 흐르는 그의 사유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탈리아

난 그 애가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아이들에게 얻어맞을 때에만 걱정을 합니다. 나머지 다른 일이라면 이제 다 컸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어야죠.’ 그 얘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으리라고 믿는다. 아들을 키움에 있어서 아버지는 처음 태어난 새끼를 키우는 늑대의 어떤 어둡고 빈틈없는 본능에 따른 듯싶다. (p. 170)

 

언제까지 넌 방랑을 할 거니? 언제까지 말야?

죽을 때까지요. (p. 171)

 

Ü 집을 떠나는 이유가 뭐니? 불행을 찾아서요.

 

꽃이 만발한 분수와 그 언저리의 돌로 만든 긴 의자들과 지팡이에 기대고 앉아 저녁에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노인들이 오랜 세월이 걸쳐 수백 년에 걸쳐 거듭거듭 되풀이된다. 주변의 대기까지도 시간처럼 옛되다.

 

내가 제대로 예감했듯이 아름다움은 무정하기 때문이다. 네가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를 쳐다보며 용서를 하지 않는다. (p. 171)

 

Ü 이 멋진 표현을 기다렸다. 인간은 그저 과정에 불과함을 이 문장이 일깨운다.

 

□ 이곳 이탈리아에서는 삶의 사과가 단단하고 흠집이 없었다. (p. 172)

 

Ü 프랑스 미술가 세잔은 말했다. ‘빛나는 표피와 생생한 색깔을 가진 둥근 과일인 사과는 과연 볼륨과 공간과 빛과 색채의 문제를 모듈레이션을 통하여 동시에 조절하고자 하는 예술가에게는 이상적인 오브제다. 더군다나 대자연을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축약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사과야말로 문제적 대상 그 자체인 것이다. 그것은 둥글되 완벽한 원구가 아니고 화폭이라는 상상의 공간에 옮겨놓은 그 형태는 결코 그 자체로 원이 아니면서 원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 무엇을 결정하면 나는 자주 나중에 판단을 내린 것이 내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그림이나 이러저러한 르네상스의 힘찬 탑이나, 플로렌스 옛 구역의 좁은 길거리에다 단테가 새긴 귀절이 나에게 끼친 영향력에 의해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p. 174)

 

Ü 장자는 이러한 언어, 고착된 자의식을 버려야 사물을 제대로 마주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리하여 견문과 독서, 체험을 넓히는 일은 반대로 자의식을 확장하는 일이 아니라 무한한 의식, 무대의 마음을 한계 짓는 일이다.

 

□ 그리스 전체가 불쑥 내 집으로 들어왔군요. 잘 왔어요 (p. 177)

 

□ 에이레 아가씨와 헤어진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젊은 남자에게 필요한 이상의 행복감이었죠. 난 위기를 맞았어요. 두 가지 가능성 가운데 하나였는데, 내가 이 행복감에 점점 길이 들어서 그 감정이 강렬함과 영광을 몽땅 상실하느냐 아니면 익숙해지지를 않아서 전에나 마찬가지로 항상 그것을 굉장하게 생각하고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느냐 하는 것이었죠. 난 언젠가 꿀에 빠져 죽은 별을 보고는 교훈을 얻었어요.’ (p. 178)

 

Ü 불행을 찾아 나선다는 말, 영원히 방랑한다는 말은 바로 이거다!!! 불행의 추동력은 순간의 오르가즘이 아니라 영원한 오르가즘을 위한 것이었다.

 

□ 헤어지는 장면이다.

빨리요, 빨리 돌아와요그녀는 미소를 지으려고 했지만 눈물이 글썽거려 웃을 수가 없었다. (p. 179)

 

나의 벗 詩人, 아토스

□ 세상의 어떤 힘도 인간의 영혼처럼 제국주의적이지는 못하다 (p. 181)

 

Ü 그 마음 또한 비민주적이다.

 

인간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태양의 빛을 보지만 寸陰(촌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참지 못할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혔던가.

 

그 첫 여행 이후로 아름다움은 항상 내 입술에 죽음의 뒷맛을 남겼다. 아름다운 모습이 로 사라지는 동안 신은 뒤로 물러서서 그것을 불멸하게 만들기 위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젊음의 단순한 영혼이 쉽게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신이라면 나는 불멸성을 마구 나누어 주고 아름다운 육체와 과감한 영혼이 다시는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젊은이는 생각한다. (p. 181)

 

Ü 신과 인간에 대한 이 디테일은 일 평생을 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다. 캠벨의 거대 담론과 융의 무의식이 짚어내지 못하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디테일을 카잔차키스는 깊이 성찰하고 있다. 그러나그리하면 아름다움이 지켜지는가? 육체는 영원히 살아지게 되는가?

 

나는 내 삶을 어찌해야 할 지 몰랐으며 무엇보다도 나는 영원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나의 해답을 우선 찾아내고 그 다음에 무엇이 될지를 결정해야 했다. 만일, 이 땅에서의 장엄한 삶의 목적조차 발견하지 못한다면 덧없고 하찮은 내 인생의 목적을 어찌 찾을 수 있겠느냐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그리고 만일 삶에 목적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어찌 나는 행동에 참여할 수가 있겠는가? (p. 182)

 

Ü , 붙잡고 놓지 않던 나의 질문.

 

아주 고상한 노래를 하나 부르자

똥싸고, 먹고, 방귀뀌고, 마시는 게 인생이라네. (p. 183)

 

□ 너는 굶주렸지만 포도주를 마시고 고기와 빵을 먹는 대신에 하얀 종이를 꺼내서 포도주, 고기, 이라는 단어들을 써 넣고는 그 종이를 먹는다. (p. 183)

Ü 기만이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상이 무엇인지 알아? 그건 자신을, 자아를 정복하는 거야. 그 정상에 도달하면 앙헬로스, 그 다음에야 우린 구원을 받아.’ (p. 189)

 

Ü 이거, 정상에서의 모습을 표현하면 인용하는 것은 어떨까. … 그래서 나는 자아를 위해 싸우기로 한다….뭐 이런식

 

□ 옛적에 하렘에 아내를 삼백 예순 다섯이나 거느린 위대한 왕이 살았답니다. 어느 날 그는 수도원에 가서 고행자를 만났죠.

정말 굉장한 희생을 치르시는군요.’

당신의 희생이 더 커요.’

어째서요?’

나는 덧없는 삶을 버렸는데 상신은 영원한 삶을 버렸으니까요.’ (p. 193)

 

□ 이곳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날카롭고 시끄럽게 진동하면 우리들을 감싼 마술의 베일이 모두 찢겨 벗어지리라고 느꼈다나는 얘기를 하자마자 마력이 사라지리라고 느꼈다. (p. 196)

 

Ü 이 문장은 인용한다.

 

□ 날개를 접고 갈매기 두 마리가 하얀 가슴으로 즐겁게 바다를 밀어대었다.

부부인가봐감탄의 눈길로 쳐다보면서 친구가 말했다.

아니면 두 친구이거나.’ 그들을 떼어놓으려고 자갈을 집어 던지며 내가 말했다. (p. 199)

 

Ü 묘사가 기가 막히다.

 

□ 광기로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재난을 맞으리라. (p. 199)

 

□ 어느 나무나 모두 십자가를 만들 수 있으니까 모든 나무 조각은 진짜랍니다. (p. 203)

 

□ 나는 얼굴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들을 너무 간단히 기만하는 하찮은 미덕보다는 중대한 악을 덜 두려워해 (p. 206)

 

Ü 우리는 살면서 이런 자들을 무수히 만난다. 그리고 뉴스에도 등장한다. 매일. 열에 아홉은 기득권자들이다. 그들은 기만하여 부를 축적하는 것이 직업이므로.

 

돌고래, 바다 전체가 그의 영토였다. (p. 212)

 

□ 정오 (p. 215)

 

Ü 태양이 중천에 떠서 그림자가 없고 빛이 장난을 치지 않는, 숭고하고 완벽하고 가식이 없는 절정의 시간

 

□ 동굴에 다다르자 나는 몸을 내밀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완전한 어둠, 여기에서는 인간의 목소리가 죄악이요 신성모독이라고 느꼈다. (p. 215)

 

Ü 같은 책 유사한 표현, ‘이곳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날카롭고 시끄럽게 진동하면 우리들을 감싼 마술의 베일이 모두 찢겨 벗어지리라고 느꼈다나는 얘기를 하자마자 마력이 사라지리라고 느꼈다.’

 

은총을 내려 주십시오. 수도자님아직도 악마와 싸우고 계신가요, 마카리오스 수도자님?’

이제는 그렇지 않아. 지금은 늙었고 악마도 나와 함께 늙었어. 악마에게는 힘이 없지나는 신과 싸우는 중이야

신과요? 그럼 당신은 이기리라 생각하나요?’

나는 지고 싶어 나에게는 아직 뼈가 남았는데 그 뼈가 저항을 계속하지.’

고된 삶을 사시는군요. 수도자님 저도 구원을 받고 싶어요. 다른 길은 없습니까?’

훨씬 편한 길 말인가?’

하나 꼭 하나 있지.’

그게 뭔가요?’

오름의 길. 한 계단씩 올라가는 거야. 배부름에서 굶주림으로 축인 목구멍에서 목마름으로 기쁨에서 고통으로. 신은 굶주림과 목마름과 고통의 정상에 앉아 있고 악마는 안락한 삶의 정상에 앉아 있어. 선택을 해야지.(p. 216)

 

Ü 신과 싸우는 한 평생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

 

□ 기쁨은 저주를 받나요? 아니면 축복을 받나요? (p. 220)

 

□ 난 여인의 육체가 아니라 하얀 젖가슴을 꿈에 보았어요 (p. 222)

 

Ü 여기서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나는 마음 속에 가린 것이 있어서 성인을 만나고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시인한다. 변통 없는 원리원칙은 득도의 순간을 막고 말았던 것이다. 부득의 도움으로 남은 목욕물에 몸을 담근 박박도 함께 금빛 보살이 되었다.

 

출가한 절에 한 여인이 찾아온다.

 

가다 보니 해는 떨어지고 온 산이 저물어

길은 끊어지고 마을은 멀어 사방이 막혔다오

오늘 밤 몸을 맡겨 암자 아래 자려 하니

자비로운 스님께선 화내지 마세요.

 

박박은 절이란 깨끗이 지키는 것을 일삼는 곳이오. 그대를 받아들일 수 없으니 빨리 떠나시고 이 곳에 머물지 마시오라고 그 답게 거절한다.

부득은 우선 묻기부터 한다. 그대는 어디서부터 밤을 헤치고 오시는 것이오?’

 

골짜기 날은 이미 어두웠는데 어디로 가리

남창에 자리 나니 머물다 가오

밤 깊어 백팔 염주 염불도 깊어만 가는데

이 소리 시끄러워 길손의 잠 깰까 두려워라.’

 

고해를 건너지 않고는 도에 이를 수 없는데 그 고해를 원천 봉쇄하여 선험적 기회를 제거하고 도에 이르려는 박박, 고통을 견뎌가며 극복되는 과정에서 도의 내성을 쌓아가는 부득. 양물을 자른 사람을 굳이 비유하자면 박박이요 성욕 등의 각종의 혼란을 곁에 두고 극복하는 자는 부득이다. 누가 깊겠는가. 그나저나 우리말부득이 하게는 이 부득에서 나온 것 같다.

 

□ 육체도 하느님이 만드셨으니 우리들이 먹어줘야만 해요 (p. 223)

 

Ü 데카메론 셋째 날, 열 번째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루스티고 님, 그 툭 튀어나온 게 뭐예요, 저한테는 그런 것이 없는데?’

‘오오 소녀여 이것이 내가 몇 번이나 말한 악마다. 알겠느냐? 이것이 이제 더 참을 수가 없을 만큼 몹시 나를 괴롭히고 있느니라.’

그러자 소녀가 말했습니다.

‘아아, 하느님, 고마워라, 제가 루스티코 님보다 행복한 것 같네요. 저한테는 그런 악마가 없으니까요.’

루스티코가 말했습니다.

‘그렇다. 그러나 대신 내가 갖지 않은 다른 것을 그대는 가졌느니라. ‘

‘어마, 그게 뭔데요?’

‘지옥을 갖고 있느니라. 분명히 말하지만 하느님은 내 영혼을 구해 주시기 위해서 그대를 이리로 보내신 줄 안다. 만일 이 악마가 이런 괴로움을 내게 주더라도, 그대가 나를 가엾게 여기고 그 악마를 지옥으로 몰아넣어주기만 한다면, 그대는 내게 최대의 만족을 주게 되느니라. 게다가 그대는 하느님께 다시없는 기쁨을 드리며 봉사하게 되느니라. 그대가 말하듯이 그 때문에 그대는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온 것이니까.’

신앙에 불타 있던 소녀는 대답했습니다.

‘오오, 신부님, 제가 지옥을 갖고 있다면 좋으실 때 쓰도록 하셔요.’

그러자 루스티코가 말했습니다.

‘소녀여 그대에게 축복 있으라. 그럼 행하기로 하리라. 악마가 내게서 나가도록, 지옥에 몰아넣도록 하리라.’

 

□ 꼼짝않고 정지한 시간을 본 적이 있나요? 난 있어요. 삼십 년 동안 나는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풀었고 거기에는 끝이 없어서 항상 단추가 하나 더 남아 있죠 (p. 224)

 

□ 죄악도 신을 섬기는 일인가? (p. 225)

 

□ 우리들은 모두 그렇게 죽어갈 터이며 대지 또한 그렇게 죽어가는데 우리들을 잉태했다가 파괴하는 신은 이 사실에서 아무런 타당한 이유를 내세울 수도 없으며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한다. (p. 227)

 

□ 우리들은 거룩한 산을 40일 동안 여행했다. 한겨울이었는데도 초라하고 작은 어느 과수원에는 꽃이 핀 편도나무가 있었다!

앙헬로스, 순례를 하는 동안 줄곧 우리 마음은 수많은 복잡한 문제로 괴로움을 받았어. 그런데 이제 답을 얻었구나!

친구는 푸른 눈을 꽃이 핀 나무에서 떼지를 않은 채 기적을 행하는 거룩한 성상의 앞에서처럼 십자를 그었다. 그는 다시 편도나무를 쳐다 보았다.

 

나는 편도나무에게 말했노라.

그대여, 나에게 신의 얘기를 해 다오.’

그러자 편도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p. 227)

 

Ü 신의 대답은 이러하다. 구체적이며 명징하지만 소박하다.

 

예루살렘

□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형이상학적인 두 고뇌가 거룩한 산에서 다시금 터졌다. 그리스도가 한 가지 해답을 주었다. 그는 많은 상처를 아물게 하는 芳香(방향)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방향이 내 상처들을 아물게 할 수가 있을까? (p. 228)

 

□ 핏줄의 찌꺼기 (p. 232)

 

□ 모래와 쾌적한 과수원들과 튼튼하고 더러운 여자들과 선인장과 대추야자나무들, 숨막히는 버스를 타고 거룩한 도시로 가는 오름길살해당한 모든 선지자들의 그림자가 흙에서 솟아났고 돌들은 살아나서 온통 피로 덮인 채 소리쳤다. 예루살렘이다! (p. 238)

 

Ü 멋진 표현이다. 아마 예루살렘을 표현한 글 중 최고가 아닐까 한다.

 

□ 아버지시여, 아버지시여, 당신은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p. 238)

 

Ü 붓다 또한 열반할 때 나는 아무도 제도하지 못했다고 원망한다. 아무도 구원하지 못한 메시아로서의 자격지심이 예수가 애타고 아버지를 부른 이유이지 않았겠는가? 단지 자신을 죽이는 것에 대한 원망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 하늘에는 신이, 오직 신만이 칼처럼 걸려 있었다그러니 나는 묻고 신은 대답해야 한다.

신이여나는 고백했다. ‘저는 어려운 순간을 맞았나이다. 어찌 해야 합니까? 내 입에다 불붙은 숯을, 말을, 구원을 가져오는 간단한 말을 넣어주소서.’ (p. 240)

 

□ 뚱뚱한 술집 주인은 양의 간을 튀기고 (p. 241)

 

□ 나는 보았다. – 나는 어떤 전능한 발이 이곳으로 와서 격노하여 (p. 241)

 

□ 남자들과 다른 남자들이, 여자들과 다른 여자들이, 남자들과 암말들이, 여자들과 황소들이 교미를 했다. 그들은 삶의 나무를 먹고 과식했으며 지혜의 나무를 따먹고 과식했다. (p. 242)

 

흙으로 만들어 놓아서 흙을 먹고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벌레들인 너희들 가운데 누가 옳고 그름을 정직함과 거짓을, 논리와 부조리를 아느냐? 내 뜻은 헤아릴 수가 없으니, 속속들이 알고 나면 너희들은 공포에 떨리라.

당신은 천국과 이 땅의 주인이고, 삶과 죽음을 한 손에 올려놓고 마음대로 택하십니다. (p. 243)

 

Ü 그리하여 카잔차키스의 신과의 한판은 그 승패가 예견된 것이기도 하겠다.

 

□ 난 당신의 점을 믿지 않아요.

그건 상관없어요. 내가 믿는다는 것이 중요하죠. (p. 245)

 

Ü 그렇다. 나의 믿음이 중요하다. Axis mundi!

 

그대 남은 산들아, 그대들은 무슨 가치가 있더냐? 풀로 뒤덮이고 나무로 둘러싸이고 젖이 진함을 어찌 그대는 뽐내는가? 우거지고, 묵직하고, 경건하고, 영적이고, 천사 같고, 신성한 산은 하느님이 밟았던 시나이 산 하나. 오직 그 하나뿐이더라.’ (p. 247)

 

Ü 시나이를 에베레스트로 바꾸어 보자. 인용할 만 하다.

 

난 시와 예술과 책이라면 구역질이나내가 말했다.

모두가 다 실체가 없는 마분지처럼만 여겨져. 그건 마치 굶주린 사람에게 빵과 포도주와 고기 대신에 메뉴만 내놓아서 염소처럼 그걸 씹어먹는 격이지.’ (p. 248)

 

Ü 생존을 해결한 뒤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이 예술이요 문명이라 했지만 여전히 굶어 죽는 인민들 앞에서 그 여유, 예술이 태어나는 그 절대 여유는 무슨 가치를 지니는가. 그리하여 창조된 예술은 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인간에게 예술과 문명, 문학과 시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내일 굶어 죽을 인민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가?

 

참된 책이라고는 구약 성서뿐인데 그 까닭은 그것이 마분지가 아니라 살과 뼈로 되어 있으며 피를 뚝뚝 흘리기 때문이지

 

신이 인간에게 어떻게 얘기를 하는지 알아? 인간과 산들이 어떻게 그의 손아귀에서 녹아버리고 왕국들이 그의 발 밑에서 어떻게 먹혀버리는지 아니? 인간은 소리치고 울고 애원하고 굴 속에 숨고,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며 도망을 치려고 애쓰지. 하지만 여호와는 단검처럼 그의 가슴에 박혀 있어 (p. 249)

 

Ü 아래 글과 이어서 고민하자.

 

□ 그 소련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오?

아뇨, 그들은 인간을 믿습니다.

벌레들 말입니까?

, 벌레들 말입니다. 테오도시우스 신부님. (p. 251)

 

Ü 인간의 신뢰를 바탕한 사회주의는 예수의 시각과 맞닿아 있다. 창녀에게 돌을 던지던 사람들에게 돌 던질 자격을 묻는 예수는 돌 던지는 자들이 인간의 윗자리에 있는 것을 거부한 사회주의와 같은 문맥으로 읽을 수 있다.

 

□ 낙타들이 무릎을 꿇었다. 그들의 반짝거리는 눈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다정함은 전혀 없었다. 고삐는 털로 만든 까맣거나 오렌지빛 술로 장식되었다. (p. 252)

 

Ü 좋은 표현

 

□ 눈이 닿는 끝까지 우리들의 앞에는 장미빛 폭풍 같은 광활함이 뻗어나갔다. 나는 그것이 바다라고 생각했다. (p. 252)

Ü 그것은 사막이었지만 바다에 대한 좋은 표현이다.

 

□ 사막 전체가 낙타처럼 되새김질을 했다. (p. 253)

 

□ 사막의 자손, 베두인 여인에게 영국인 관광객은 설탕 절임 깡통 한 입 먹으라고 그녀에게 주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거절을 한 다음 그녀는 배가 고파 기절을 해서 땅바닥에 쓰러졌다. (p. 257)

 

□ 낙타가 사막을 밝고 나아간다.

관의 널빤지처럼 단단하고 높다란 성문처럼 허벅지가 힘차구나.

옆구리 뱃대끈 자국은 말라붙어 조약돌 가득한 호수 같더라.

만져보니 줄칼처럼 깔깔한 것이

희랍의 건축가가 지어 기와를 덮은 수도관이더라. (p. 257)

 

Ü 야크를 묘사할 때 인용하자.

 

봄철 바람의 유혹적인 입김을 수도원의 첨탑은 어떻게 저항을 해왔을까?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첨탑을 어떻게 어느 해 봄 무너져 땅바닥으로 내려앉지 않을 수가 있었을까? (p. 259)

 

Ü 쓰지 않으면 사라지고 남기지 않으면 잊혀진다. 바람 같은 생의 이야기, 그래서 나는 써서 남기기로 한다.

 

나는 끝에 도달했지만 모든 길의 끝에는 심연뿐이었어요.’

너는 더 나아갈 수 없는 자신의 무능함을 스스로 깨달았어. 우리들은 건너지 못할 것은 무엇이나 심연이라고 불러. 심연이나 길의 끝은 없고, 자신의 용감성이나 비겁함에 따라 모든 것을 이름 짓는 인간의 영혼만 있을 뿐이야. 그리스도, 부처, 모세는 모두 심연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들은 다리를 놓고 건너갔지. 지금까지 수백 년 동안 인간의 무리는 그들의 뒤를 따라 건너가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신의 뜻을 따라, 또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 투쟁해서 영웅이 됩니다. 나는 투쟁을 하죠.’ (p. 264)

 

Ü 비겁한 자, 나아갈 수 없다.

 

□ 만일 외로우시다면 모든 사람들에게 고루 질병을 뿌리시고 사타구니에서 남자들의 정충을 잡아뜯어 돌에다 짓이기소서! (p. 272)

 

□ 나는 신을 따르리라. 그는 험한 산을 오르니 나도 그와 함께 오르리라. (p. 278)

 

그리스도의 피투성이 발자취를 따라 우리들은 우리 내면의 인간을 혼으로 바꿔놓아 신과 한 몸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인간 그리스도가 신에 이르려는 보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신에게로 돌아가 똑같아지려는 그토록 인간적인 그토록 초인적인 갈망이 그랬다.

 

젊은 시절부터 가장 큰 내 고민과 모든 기쁨과 슬픔의 샘은 정신과 육체의 끊임없고 무자비한 싸움이었다. 나는 내 육체를 사랑해서 그것이 사멸하기를 바라지 않았고 영혼을 사랑해서 그것이 썩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맞서 싸우고 세계를 창조하는 두 힘을 화해시켜 그들은 적이 아니라 동지들이므로 조화에서 기쁨을 얻고 따라서 나도 그들과 함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해달라는 납득을 시키려고 노력했다.

 

인간은 누구나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이어서, 정신과 육체를 다 지녔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비는 단순히 특정한 교의를 위한 신비가 아니라 보편적인 개념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투쟁은 타협에 대한 갈망과 더불어 모든 사람의 내면에서 벌어진다. 이 투쟁은 대부분 무의식적이고 잠깐만 계속된다. 나약한 영혼은 오랫동안 육체에 항거할 인내력이 없다. 영혼은 무거워져서 육체가 되고 대결은 끝난다. 하지만 숭고한 의무를 밤낮으로 의식하는 책임 있는 사람들에게는 육체와 정신 사이의 분쟁이 무자비하게 터져 죽을 때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신은 나약한 영혼이나 흐물흐물한 육체를 사랑하지 않는다. 정신은 힘차고 저항력이 넘치는 육체와 씨름을 하기를 원한다. (p. 279)

 

Ü 이어진다.

 

육체와 정신의 투쟁, 반발과 저항, 타협과 순종, 그리고 결국은 투쟁의 숭고한 목적인 신과의 결합, 이것이 그리스도가 행했고 그의 피투성이 발자취를 따라 우리들이 행하기를 바라는 오름(上昇(상승))이다. (p. 280)

 

Ü 이어진다.

 

그리스도는 투쟁하는 인간이 거쳐가는 모든 단계를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고통이 우리들에게 그토록 친밀하고 우리들은 그를 동정하고 그의 마지막 승리가 우리들 자신이 미래에 얻을 승리처럼 여겨진다.

 

그리스도는 모든 순간에 갈등하고 승리한다.

 

흙을 떠나고 일어서서 더 훌륭하게 되어라!

우린 싫어요, 우린 그런 능력이 없어요.

너희들은 능력이 없지만 난 있어. 일어서라.

 

내 피는 점점 더 신의 맥박을 지니게 되었다. (p. 280~281)

 

Ü 지금, 나에게 너무 큰 그러나 너무 절실한 이야기다. 새겨라.

 

□ 죽음이란 신의 뜻이어서 인간에게 마음대로 행하지만 육체적인 노쇠는 악마의 부당하고 악질적인 장난입니다. (p. 286)

 

천사는 고상해진 악마에 지나지 않아요. 아시겠어요?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텐데, 그러면그 날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종교는 이 땅에서 또다시 도약하게 되죠. 종교는 지금처럼 반쪽인 영혼만 받아들이지를 않고 인간 전체를 받아들일 거예요. 그리스도의 자비심이 더 넓어지죠. 그 종교는 영혼뿐 아니라 동지임을 깨닫고 그렇게 가르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악마는 우리들더러 영혼을 거부하라고 설득하고 신은 육체를 거부하라고 합니다.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긍휼히 여기고 그 두 야수를 화해시킬 만큼 그리스도의 마음은 언제 넓어질까요?’ (p. 292)

 

Ü 이어진다. 속세가 수도원이다. 영혼과 육체를 같이 안아라. 정신과 육체의 화해. 빛나는 과정임을 받아들이는 것, 그러나 과정을 넘어서려는 노력. 해탈과 열반, 구원과 깨달음이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한의 육체와 더불어 무한의 정신이 같이 잘 살아가려는 것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다음 세계의 종교가 될 터.

 

□ 떠나겠어요, 신부님. 축복을 내려주세요.

그는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축복이 내리길 빌어요. 신이 함께 할 터이니, 가요! (p. 293)

 

Ü 단 한 수에 의한 선택과 실천!!!

 

크레타

□ 젊음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려고 겸손하지를 않고 능력은 적지만 많은 것을 추구한다.

속세로 돌아가요. 요아힘 신부가 소리쳤다. 지금은 속세가 수도원이니, 그곳에서 성자가 되어야 해요.

 

요아힘 신부가 옳았다. 신은 구름 위의 왕좌에 앉아 있지를 않다. 그는 우리들과 더불어 이곳 땅에서 투쟁한다. (p. 294~295)

 

우리들이 죽음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정복할 수가 있다. (p. 296)

 

Ü 죽음에 대해 가장 정확한 관념을 지닌 사람으로 나는 장자를 알고 있다. 그는 말한다.

 

생사 관념은 자의식의 동일성의 최종적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착된 자의식의 최종적 기저에는 살아있는 나라는 자기 동일성이 강하게 뿌리박고 있다. 장자가 벗어나려고 하는 생사는 자연사적 사실인 삶과 죽음이 아니라 삶을 즐거워하고 죽음을 싫어하는 인간의 고질적인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통해서 정립된 관념으로서 삶과 죽음의 문제다.

 

인간 삶의 유한성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정리해 보면

첫째, 타자와의 충돌 둘째, 나 자신의 육체의 소멸, 즉 죽음의 도래다.

 

우리는 병이 들거나 늙게 되면 혹은 형을 받아 수족이 절단되면 우리의 마음은 그것에 집착하고 번뇌한다. 그러나 만약 마음이 그런 몸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장자에 따르면 인식의 사변적 무한성이 지닌 문제는 그것이 삶이 지닌 근본적 유한성(=타자와의 충돌, 죽음의 문제)을 망각시키는 데 있다.

 

인식의 무한성에 대한 두 가지 거대 담론,

첫째 : 세계의 기원, ‘시작이라는 것이 있다면 일찍이 시작되지 않았던 적이 있을 것이며 일찍이 시작되지 않았던 그 이전도 있을 것이다. 있는 것이 있고 없는 것이 있다면 일찍이 있고 없는 것도 없었던 그 이전도 있을 것이다. 갑자기 없는 것이 존재하게 되는데 그때에도 있고 없는 것 중에 과연 어느 것이 있고 어느 것이 없는지는 알지를 못한다. 지금 내게는 이미 이론이 있다. 그러나 내가 전개한 논리 중에 과연 이론이 존재하는 것일까. 과연 이론이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알 수 없다.’

둘째 : 세계의 통일성 ‘천하에서 가을 짐승 터럭 끝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고 태산을 작다고 여길 수도 있다. 어려서 죽은 아이보다 더 오래 살 수 없다고 여길 수도 있고 팽조를 일찍 죽었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늘과 땅은 우리와 더불어 함께 존재하고 있고 만물은 우리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있다나아가지 마라, 결국 우리는 구체적 사태에 따라야 한다.’

 

□ 슬프구나! 세월은 가고 슬프구나. 시간이 그토록 소중하도다.

오 일 년에 하루씩이라도 다시 누릴 수가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백 년을 살고보니 인생이 어떻던가요?

그는 눈썹이 불타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얘야, 인생이란 냉수 한 컵 같더구나.

아직도 목마르신가요, 할아버지?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p. 297)

 

Ü 어디로 가는가? 어디에서 왔는가? 질문은 다시 원점이다. 원점 회귀의 무한 반복. 아 어렵다.

 

갓 결혼한 여인의 통통한 젖가슴이 새하얗게 반짝이고 아까보다도 더 강렬하게 젖과 그리고 땀 냄새가 조금쯤, 그리고 여인의 어깨너머 저 아래 이제는 새파랗게 펼쳐진 리비아 해의 냄새가 풍기던 그 순간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하리라. 대수도원장은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그것도 잠깐뿐이었다. 신이 재빨리 그를 정복했고 그는 점잖게 기도를 끝마쳤다. (p. 300)

 

Ü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달뜬다.

 

나는 사무실의 네 벽 안에 절대로 갇히지 않고 편안한 삶과 절대로 타협을 하지 않고 필요성과 절대로 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p. 302)

 

빠리, 위대한 순교자 니체

성숙의 첫 단계에서는 선과 악이 적이었다. 훨씬 가볍고 경쾌한 두 번째 단계에서는 선과 악이 동료였다. 현재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단계에서는 선과 악이 동일했다. 이 단계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이 모욕의 성자가 함께 모욕하자고 나를 충동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의혹이 머리를 스치자 전율했다. (p. 307)

 

Ü 이건 노란색 highlight가 너무 많다. 현란한 만큼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것일 게다.

 

나는 아무에게도 불쾌하지 않게 독립하고 조용한 비밀의 자부심을 간직하고 근심 걱정이 없이 잠들고 술을 피하고 초라한 음식을 스스로 장만하고 별나거나 귀찮은 친구는 사귀지 않고 여자들을 쳐다보거나, 신문을 읽거나 명예를 찾지 않을 터이니 가장 훌륭한 인간들하고만 사귀고, 훌륭한 자를 찾지 못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을 벗삼기로 결심했다.’ (p. 309)

 

Ü 드디어 니체의 인생관을 보았다.

 

시간과 장소에 쑤셔 넣으면 의지는 수많은 형태로 무너진다. (p. 309)

 

Ü 캬 이렇게 멋진 표현을….

 

우리들은 모두가 하나이며 우리들은 다 함께 힘을 모아 신을 창조하고 신은 인간의 조상이 아니라 후손이라는 진실 (p. 311)

 

Ü 생을 통틀어 센 말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다.

 

□ 두 신(아폴론, 디오니소스) 이 싸움터에서 만났지만 아무도 상대방을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친구가 되어 함께 비극을 탄생시켰다. (p. 311)

 

Ü 비극의 탄생을 읽어야 한다.

 

예술은 무서운 진실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덮어놓으므로 비겁한 자들을 위한 위안이다. 이것이 그대의 새로운 외침이었다.

 

삶은 살려는 의지뿐 아니라 그보다 강렬하게 지배하려는 의지이다.

치명적이라 할지라도 진리는 아무리 찬란하고 기름진 거짓보다 우월했다.

 

그대는 뱃속에서 우대한 씨앗이 영글어 창자를 집어 삼키고 있음을 느꼈다. 어느 날 엥가디느를 산책하던 그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시간은 무한하지만 물질은 유한하다는 생각을 방금 하고 그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따라서 필연성에 의해 물질의 이 모든 조합이 과거와 똑같이 다시 태어날 새로운 순간이 오리라. 앞으로 수천 세기가 지나면 그대와 같은 사람이 정말로 그대와 똑같은 사람이 바로 그 바위에 다시금 서고 똑 같은 사상을 재발견하리라.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무수히 여러 번. 그리하여, 보다 훌륭한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었고 구원도 없었다. 우리들은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변함없이, 똑같이 회전한다. 따라서 가장 덧없는 사물들까지 영원성을 얻었고 가장 무의미한 우리 행동들은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p. 313)

 

Ü 융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 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상의 특징들은 그 속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바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우리는 발전의 분류로 휘말려 들어가 거친 폭력으로 미래를 향해 밀려가고 있으며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우리의 뿌리로부터 떨어져나가게 된다.

 

옛 것이 한번 파괴되면 그것은 대부분 아예 없어지고 만다. 그리고 파괴적인 전진은 결코 그칠 줄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바로 이러한 관계성의 상실이며 근원과의 단절로서 문화 속의 짜증과 성급함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발전의 역사가 아직 전체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현재에 사는 대신 미래에 살며 황금시대가 오리라는 터무니없는 약속에 의지한다. 사람들은 점점 깊어지는 결핍감과 불만, 초조감에 사로잡힌 채, 새로운 것을 향해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돌진하고 있다. 사람들은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미래의 약속에 의지하여 살고 있으며 현재의 빛 속에서 살지 않고 미래의 어둠 속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은 그 어둠 속에서 적절한 때에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들은 모든 좋은 것이 나쁜 것들의 대가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다 큰 자유에 대한 희망은 국가에 대한 예속의 증대로 사그라들고 만다. 가장 눈부신 과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끔찍한 재앙을 가져온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와 어버지의 아버지들이 찾던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다면 못할수록 우리도 그만큼 더욱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온 힘을 다하여 개인의 근원과의 단절이 심화되도록 부추긴다. 그러면 각 개인은 집단의 한 부분으로 단지 중력의 혼(니체가 말한 집단정신)을 따라 가게 된다.

 

시간을 단축하는 조치들은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속도만 빠르게 하여 이전보다 더 시간이 부족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래서 옛 스승들은 항상 이렇게 말하고 했다. ‘성급함은 마귀에서 나온다.’

 

신화의 힘에서 소개되었던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편지를 다시 새겨보자.

 

‘우리는 이 땅을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사랑하듯 사랑합니다. 그러니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주시오. 우리가 보살폈듯이 보살펴주시오. 그대들의 것이 될 때 이 땅이 간직하고 있던 추억을 그대들 마음속에 간직해 주시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이 땅을 잘 간직하면서,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 이 땅을 사랑해주시오.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이듯, 그대들도 이 땅의 일부올시다. 이 지구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이것은 그대들에게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홍인종이 되었든 백인종이 되었든 인간은 헤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인 것입니다.’

 

신은 죽었노라. 희망은 오직 하나,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초월하여 초인을 창조해야 한다.

이제부터 우리들은 신이 명령했기 때문이 아니라, 두렵거나 희망에 찼기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일하고 싶기 때문에 일하리라.

 

그대는 이제 삶의 본질이 권력의 의지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투쟁했다. (p. 317)

 

Ü 신은 인간의 후손이다!!

 

비겁한 자와 노예가 된 자와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얻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들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이 세상의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답과 벌을 심어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나는 격분해서 소리쳤다. 현재의 삶에서 하찮은 것을 내놓고 내세에서 불멸의 재산을 주도록 알량하게 계산하는 주님의 계획서 같은 종교는 얼마나 약삭빠른가! 얼마나 단순하고 얼마나 간악하고 얼마나 인색한가! 그렇다. 천국을 바라거나 지옥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희망의 술집이나 공포의 지하 술창고에서 취하는 우리들은 부끄러운 존재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며 나는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왔던가! 격렬한 선지자가 나타나 나로 하여금 눈을 뜨게 한 것은 필연이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세상의 모든 통치를 신에게 맡겨왔다.

모든 투쟁과 희망을 인간이 받아들이고 신의 도움을 기대하지 않으며 혼돈에서 질서를 끌어내어 그것을 조화로 변형시킬 때가 왔다고 나는 불손하게 선언했다이미 봄철에 명령을 받은 이 편도나무는 냉랭한 바람 속에서 떨며 서 있으면서도 1월에 우리 눈 앞에서 꽃이 만발한다. 그렇듯 꽃이 만발한 내 마음 또한 떨며 서있다. (p. 319~320)

 

Ü 노란색 highlight를 남발하지 않을 수 없다. 신과의 싸움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실상 카잔차키스의 상대는 신으로 가기 전 버티고 선 위선의 성직자와 그들이 주장하는 종교다.

 

□ 누에는 가장 야심이 큰 벌레이다. (p. 321)

 

□ 이제 나는 천국이 침묵과 무관심으로만 가득 찬 암흑의 혼돈임을 깨달았고 무덤으로 내려갈 때 젊음과 아름다움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았고 내 영혼은 더 이상 비겁하고 즐거운 희망이 제공하는 위안을 섣불리 받아들이지 않았다. (p. 321)

 

Ü천국이 침묵과 무관심으로만 가득 찬 암흑의 혼돈임을 깨달았고  = ‘비겁한 자와 노예가 된 자와 서러움을 받는 자로 하여금 위안을 얻어 주인 앞에 참고 머리를 조아리며 (우리들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이 세상의 삶을 인내하게끔 만들기 위해 내세의 보답과 벌을 심어놓은 종교는 얼마나 교활한가.’ 에서 처럼 더 이상 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음을 알아차린 것일 게다.

 

무덤으로 내려갈 때 젊음과 아름다움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았고’ = 이 대화를 상기하자.

 

백 년을 살고보니 인생이 어떻던가요?

그는 눈썹이 불타는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얘야, 인생이란 냉수 한 컵 같더구나.

아직도 목마르신가요, 할아버지?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니!’

 

비겁하고 즐거운 희망이 제공하는 위안’ = 종교

 

□ 성당들은 둥근 천정이 유한성과 무한성, 인간과 신의 조화를 우아하게 이룩한다는 인상을 준다. 노트르담은 땅의 모든 돌멩이들을 동원해서 훈련시켜 번갯불처럼 하늘을 찌르는 날카롭고 용맹한 화살로 만들려는 듯 땅에서 솟아나온다 (p. 324)

 

Ü 멋진 표현이다.

 

□ 불확실성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 불확실성은 새로운 확실성의 어머니이다.

 

나는 인간의 욕망들을 충족시키는 모든 종교가 단순히 겁 많고 참된 인간답지 못한 자들의 도피처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그리스도의 길만이 오직 인간을 구원하는 길이며 다만 굉장한 약삭빠름과 기교로 불멸성과 천국을 약속함으로써 믿는 자들로 하여금 이 천국이 우리가 지닌 열망의 되비침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영원히 깨닫지 못하게 하는 잘 꾸며낸 동화에 불과한지도 모른다는 의혹을 품었다. (p. 325)

 

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의혹이다. 이어서 저자는 말한다. 성직자들이 가꾸어 온 그리스도의 교회가 나에게는 갑자기 수천 마리의 겁에 질린 양떼가 밤낮으로 울부짖으며 서로 몸을 기대고 그들을 쳐 죽이는 칼과 손을 핥으려고 목을 내미는 울음 같았다.’ 기가 막힌 비유다. 그 길을 묵묵히 그리고 진중하게 따라야 하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천국이란 없다. 당신을 위해 제공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의 천국은 잘 꾸며낸 동화라는 말이다. 거참 촌철살인이다.

 

□ 니체, 영원한 윤회가 그에게는 끝없는 순교로 생각되었고 두려움에서 그는 위대한 희망을 미래의 구세주를, 초인을 지어내었다. 하지만 초인은 또 하나의 천국, 가엾고 불행한 인간을 기만하고 그로 하여금 삶과 죽음을 견디게 만드는 또 하나의 신기루일 따름이었다. (p. 326)

 

Ü 생은 이리하여 다시 미궁으로 빠진다. 거참 어렵다.

 

비엔나,

□ 따뜻한 목욕탕에 들어가 핏줄을 자르듯, 차분하고 지극히 자비롭고… (p. 327)

 

□ 인간에 있어서 가장 풍요하거나 자유롭거나 시간과 장소와 합리성에서 가장 완전하게 해방된 시간이란 열병에 걸린 시간이다. (p. 329~330)

 

세상에 들어오는 다섯 문인 다섯 가지 감각이 모두 살아 기능을 다하는 기쁨. 세상이 좋다는 말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p. 330)

 

Ü ~ 멋진 표현이다. 봄이다. 카잔차키스는 드디어 부처를 만난다.

 

□ 이 누추한 육체 속에서 피와 뼈와 골과 살과 진물과 정충과 땀과 눈물과 배설물의 덩어리 속에서 어찌 행복할 사람이 있겠는가? 시기와 증오와 거짓과 두려움과 고뇌와 굶주림과 갈증과 질병과 늙음과 죽음이 지배하는 육체 속에서 어찌 행복할 사람이 있겠는가? 식물과 곤충과 짐승과 인간 모든 것이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자들을 뒤돌아보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을 미리 내다보라. 인간은 곡식처럼 영글고 곡식처럼 떨어지고 다시금 싹이 튼다. 가없는 바다가 말라붙고 산들이 무너져 내리고 북극성이 기울고 신들이 사라진다… (p. 334)

 

Ü 이어진다.

 

□ 나는 죽기를 원한다거나 나는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은 하지 마라.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라. 마음을 욕망이나 희망보다 높이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에 무존재의 극락을 누리리다. 그대는 재생의 수레바퀴를 손으로 잡아 멈추리라. (p. 334)

 

Ü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욕망 너머의 욕망.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 마음속에서 그는 보이지 않는 힘들의 도움이 없이 혼자서 형성되고 사라지는 우주를 의식한다. 햇빛에 그을은 그의 머릿속에서 대기가 응결되어 성운을 이루고 성운은 별들이 되며 별은 씨앗처럼 지각을 형성해서 나무와 짐승과 인간과 신들을 만들어내고 다음에는 불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모든 것을 연기로 바꿔놓고는 꺼졌다.

 

심장의 고동이 맥박 치며 예기치 않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가! 그렇다면 불멸성에 대한 나의 모든 갈망과 정열은 절대적으로 죽어야 할 운명으로 나를 이끌어 갔던가? 아니면 죽을 운명과 불멸성은 똑 같은 것일까? (p. 335)

 

Ü 선과 악이 같다면

 

□ 스승이여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나요?

구원으로부터… (p. 337)

 

Ü 구원을 내려 놓는다.

 

□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구원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이 위대한 자유를 얻으려고 싸우리라

당신과 함께 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무서워서 그러느냐, 아난다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이제는 사랑만으로는 모자란다.

너는 무엇을 이해하느냐?

구원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자는 누구나 모든 순간에 그의 말과 행동을 재기 때문에 노예입니다. 나는 구원을 받을 것인가, 저주를 받을 것인가? 그는 떨면서 묻습니다. 나는 천국으로 갈 것인가, 지옥으로 갈 것인가? …희망을 지닌 영혼이 어찌 자유가 되겠나이까? 희망을 지닌 자는 이 삶과 내세를 다 두려워하고 공중에 애매하게 매달려 행운이나 신의 자비를 기다립니다.

머물거라. (p. 338)

 

Ü 구원으로부터 구원받을 것인가. 비겁하지 않거나 용감하다면 가능할 터.

 

□ 그는 인류를 구원으로부터 해방시킬 구세주입니다. (p. 339)

 

Ü 아난다가 부처를 보고 말했다.

 

□ 남자들과 여자들과 자동차들과 고기와 채소와 마실 것과 과일과 책들이 잔뜩 쌓인 상점들을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이 모두가 모습을 달리한 구름에 지나지 않아서 산들바람만 불어오면 흩어진다. 사탄의 힘이 그것들을 차지했었고 (p. 339)

 

Ü 카잔차키스는 불교로 들어갔다.

 

□ 내 옆에는 젊은 여자가 앉았다. 그녀의 숨결에서는 계피 냄새가 났다. 나는 숨을 쉬느라고 들먹이는 그녀의 가슴을 의식했다. 가끔 그녀의 무릎이 내 무릎에 닿았다. 나는 떨렸지만 다리를 치우지는 않았다. (p. 339)

 

Ü 저자의 여성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다. 육체를 영혼에 못지 않게 성찰하였다.

 

□ 하늘과 땅 어디에서나 인간의 영혼만큼 신을 닮은 것은 하나도 없다. (p. 343)

 

베를린

□ 나는 세상이 허깨비이며 사람들은 유령이요 이슬의 덧없는 자식인 존재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검은 태양인 부처가 떠오르면 그들은 스러져 없어진다. 하지만 연민이, 사랑과 연민이 내 영혼을 휘어잡았다. (p. 344)

Ü 나도 가끔진실로 그럴지도.

 

□ 대리석 미소를 지었다. (p. 347)

Ü 대리석 조각처럼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를 나름 각색.

 

□ 증오란 장을 서서 걸어가며 주인님이 지나가도록 길을 청소하는 하인이죠.

그럼 주인은 누구인데요?

사랑요 (p. 348)

 

Ü 증오의 주인은 사랑이라, 앞뒤 없고 주종 없이 선과 악은 하나다. 증오와 사랑도 그럴 터.

 

□ 옛날에 40년 동안이나 고행의 수도를 하고도 아직 신에 다다를 수 없었던 위대한 성자가 있었다. 무엇인가 도중에서 그를 가로막았다. 40년이 지난 다음에야 그는 깨달았다. 그것은 마실 물을 담으면 식혀주기 때문에 그가 굉장히 좋아했던 작은 항아리였다. 그는 항아리를 깨뜨리고 당장 신과 하나가 되었다. (p. 349)

 

Ü 신과 인간사이의 장벽은 오직 하나, 마음.

 

□ 불멸성에 대한 갈망은 죽음에 대한 갈망보다 훨씬 물리치기가 힘들다. (p. 352)

 

□ 나무의 잎사귀들은 인간의 입처럼 얘기를 했으며 늙은 몇 여자들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p. 353)

 

Ü 좋은 표현이다.

 

□ 로사가 자세를 바꾸자 방 안에 향기가 가득 찼다. 따뜻한 숨결과 초조한 젊음의 향내에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동물처럼 몸으로만 우리들은 싸우다가 지치고 즐거워 깊은 잠이 들었다. , 부처여. , 부처여! 나는 웃었다.

 

그리스도 이전에는 섹스가 빨간 사과였는데 그리스도가 오더니 벌레가 사과 속으로 들어가 파먹기 시작했다.

 

Ü 육체의 진실. 그 명징한 철학적 함의. 인류 무한 소급의 기원. 누가 그것을 터부로 치부하기 시작했는가. 내 이것은 인류로서 가장 쪽팔리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 그녀는, 온통 육체뿐이거나 온통 영혼뿐이던 이상한 여인 성녀 테레사를 연상시켰다. 수도원에 있던 수녀들은 어느날 구운 메추라기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 그녀를 보았다. 순진한 수녀들은 놀랐지만 성녀 테레사는 웃었다. ‘기도시간에는 기도를 해요.’ ‘메추라기 시간에는 메추라기를 먹고요.’ 그녀는 육체와 영혼에 양분을 공급하는 두 행위에 똑 같은 열성을 보이며 충실했다. (p. 357)

 

Ü 육체가 정신보다 하등하다는 편견으로 우리는 영혼을 위해 육체를 희생하거나 혹은 거들떠 보지도 않거나 하였는데 육체와 정신이 이제는 화해하여 같이 함을 바란다. 요하임 신부와의 대화.

 

‘천사는 고상해진 악마에 지나지 않아요. 아시겠어요? 인간이 그것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텐데, 그러면그 날을 볼 수 있을 때까지 살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종교는 이 땅에서 또다시 도약하게 되죠. 그 종교는 지금처럼 반쪽인 영혼만 받아들이지를 않고 인간 전체를 받아들일 거예요. 그리스도의 자비심이 더 넓어지죠. 그 종교는 영혼뿐 아니라 동지임을 깨닫고 그렇게 가르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악마는 우리들더러 영혼을 거부하라고 설득하고 신은 육체를 거부하라고 합니다.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긍휼히 여기고 그 두 야수를 화해시킬 만큼 그리스도의 마음은 언제 넓어질까요?’

 

떠나겠어요, 신부님. 축복을 내려주세요.

그는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축복이 내리길 빌어요. 신이 함께 할 터이니, 가요!

 

□ 언젠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는 그리스도와 맑스, 두 개의 알사탕을 한꺼번에 빨아대었어요. 광신적인 기독교인에 광신적인 공산주의자가 됨으로써 그는 지상이나 천구의 모든 인간적인 문제들을 해결했어요. (p. 357)

 

Ü 가능하고 추구할 수 있다. 김규항으로 그리 하고 있다.

 

□ 성 프란체스코에 대해서 제대로 글을 쓴 사람이 어디있겠어요. 단테라도 안 돼요. 천국편 제 11칸토 아십니까? (p. 363)

 

Ü , 필멸성의 무분별한 도로여!

날개를 내리쳐서 스스로 추락하는 인간들의 추론은 얼마나 헛된가!

더러는 법을 맹종하고 더러는 경구에 충실하고

더러는 사제직에 연연하고 더러는 폭력이나 괘변으로 다스리려 하고

 

그의 영적인 법정 앞에서 그는

아버지가 있는 가운데 그녀를 아내를 맞아들였고 날마다 더욱더 사랑했지요.

첫번째 남편을 여읜 이 여자는 그가 올 때까지 천백 년하고도 더 많은

세월 동안 누구의 초대도 받지 못하며 살았소.

 

또 마리아께서 아래 세상에 머물러 계셨을 때 이 여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서 통곡할 정도로 굳세고 지독한 끈기를 보였지만 그래도 혼자였소.

그리고 그 뒤 그 아버지이자 스승은 이제는 초라한 끈으로 서로를 동여맨

그의 여인과 가족들을 데리고 떠났다오.

 

그 수려한 영혼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서도 자기가 선택한 청빈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다른 관을 원하지 않았소.

 

□ 때때로 우리들은 영혼이 미처 육체를 다스릴 틈을 주지 않고 얘기를 해버린다. (P. 364)

 

□ 나는 침묵과 고독을 무척 사랑해서 불이나 바다를 몇 시간씩이나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더라도 다른 벗이 필요하다고 전혀 느끼지를 않았다. (p. 368)

 

Ü 이런 벗 있었으면 한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어색해지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사람.

 

□ 인생을 어휘와 비유와, 운률로 바꿔놓으려는 신성모욕적인 광증에 휩쓸려 (아직도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글쟁이로 몰락했다. 나에게 벌어진 일은 내가 가장 비웃었던 것으로 암염소처럼 나는 종이로 고픈 배를 채웠다. (p. 371)

 

Ü 인용하자 좋은 표현이다.

 

□ 예술은 우리들로 하여금 먹을 것에 대한 하찮은 걱정과 심지어는 정의까지도 비웃으며 우리들은 그것이 영양분을 주어 불멸의 꽃이 피게 하는 뿌리임을 망각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이 화가들에게 성화에서 성모를 아름답게 그리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은 옳은 일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리면 우리들은 그녀가 신의 어머니임을 망각한다. (p. 376)

 

Ü 인간의 마음이란 신도 망가뜨릴 수 있는 게다. 이야말로 전지전능이 아닌가. 신은 인간의 후손이 맞다.

 

□ 말의 콧구멍에서 김이 나오고 심지어 나는 작은 종들이 말의 목에서 경쾌하게 짤랑대는 소리도 들었다. (p. 377)

Ü 좋은 표현이다.

 

러시아

□ 우리들은 더듬이로 서로 더듬어대는 개미들처럼 무엇인가 알아내려는 듯 서로 상대방을 관찰했다. (p. 381)

 

□ 우리들은 옛 종교가 죽어가는 중대하고 무자비한 순간에 산다.

 

뛰어넘기 위해 준비하는 전진 추진력으로 인해 우리들 속에서 분출하는 힘들은 인간적이고 범 인간적이고 전 인간적인 세 요소의 총체이다. 뛰어오르고 용수철처럼 인간이 오므라드는 순간에 우리들 속에서는 지구 전체의 삶이 동시에 오므라들어 추진력에 일으킨다. 인간은 불멸하지 않아도 불멸한 어떤 존재를 섬긴다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편안하고 안락한 불모의 순간에는 자주 망각하는 사실이 이런 때에는 명확하게 감지된다. (p. 389)

 

□ 우리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를 볼 수가 없다. 몇 백 년이 지난 다음에 우리들의 시대는 르네상스가 아니라 중세라고 불리울지도 모른다. 중세 다시 말하면 과도기적 공백 기간이다. 하나의 문명이 쇠진하여 창조력을 잃고 무너지면 새로운 인간 계층의 입김이 새로운 문명을 창조하기 위해 사랑과 신념과 집념을 지니고 노력한다. (p. 390)

 

Ü시간은 무한하지만 물질은 유한하다는 생각을 방금 하고 그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따라서 필연성에 의해 물질의 이 모든 조합이 과거와 똑같이 다시 태어날 새로운 순간이 오리라. 앞으로 수천 세기가 지나면 그대와 같은 사람이 정말로 그대와 똑같은 사람이 바로 그 바위에 다시금 서고 똑 같은 사상을 재발견하리라.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무수히 여러 번. 그리하여, 보다 훌륭한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었고 구원도 없었다. 우리들은 시간의 수레바퀴에서 변함없이, 똑같이 회전한다. 따라서 가장 덧없는 사물들까지 영원성을 얻었고 가장 무의미한 우리 행동들은 헤아릴 수 없는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나는 꿈이 어떻게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것은 삶을 바꿔놓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있었음을 알려 줄 따름이다. 무엇을 위해서 인간은 충동을 받아 미친 듯이 애를 쓰는가? 그 목적은 무엇인가? (p. 392)

 

Ü 꿈은 허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꿈을 가지고 이루려 노력해라는 말은 아마도 꿈을 이룬 기득권자들의 언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의 언어는 꿈을 꾸는 것을 꿈꾸지 마라 일갈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꿈을 꾸는 동안 현실을 긍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긍정하는 순간 현실을 넘어서기가 그것 보다 강해지기가 더욱 힘들어 지기 때문이다.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지를 마라. 신도 우리들과 함께 나아가고 신도 또한 추구하며 위기를 맞고 신도 또한 투쟁에 휘말리니 아무도, 신조차도 알지 못한다. 짙은 어둠이나 마찬가지로 굶주림과 불의는 마음속에 존재한다. 네 눈에 보이는 것들은 허깨비가 아니어서, 아무리 불어대어도 쫓겨가지 않으리라. 그것들은 뼈와 살이다. 만져보라, 존재할 테니까.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그들은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무엇이라고 외치는가? 도와달라고! 그들이 누구를 부르는가? 너를! 모든 인간, 너를. 일어서라. 우리 임무는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먹을 불끈 쥐고 오름 길을 올라가는 것이다. (p. 393)

 

그나마 세상이 한때 지녔던 혼마저 사상과 종교와 예술과 공예, 과학, 법률 따위 찬란한 문명을 창조하느라고 소모되었다. 이제 세계는 기운이 빠졌다. (p. 394)

 

Ü 이 말로 참 맞는 말이다. 세상이 메마른 이유는 영혼의 습윤이 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인간을 긍정하지 못하고 인간이 인간에게 느끼는 연민은 사라졌다. 그 자리에 돈과 기계와 욕망이 들어서지 않았는가.

 

□ 생명체의 권력이 축적하면 멸망을 낳게 된다.

또한, 생명체는 맡은 임무를 다 했기 때문에 제거된다는 불가해한 사실도 있다. 이 의무를 완수하지 못했더라면 그것은 남들을 괴롭히거나 자신이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며 훨씬 더 오랫동안 멍청히 살았으리라. (p. 395)

 

Ü 불 같은 통찰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 투쟁자는 모든 결정적인 시대에 새로운 모습을 지닌다. 그는 정의, 행복, 자유라고 소리치면서 동지들에게 슬로건을 나눠주고 격려한지만 정의와 행복과 자유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무서운 비밀은 아무도 모르고 있다. (p. 396)

 

Ü 꿈을 꾸고 자유를 추구하고 세상에 맞설수록 어쩌면 세상에 동화되는 길의 다름 이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꿈과 자유는 지금 발 딛고 선 처지에서 기반하는데 처지를 부정하는 가운데 꿈과 자유를 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 사람들은 그들보다 높은 목표를 향한 투쟁에 항상 얽매어서, 위로 밀고 올라가지만 결국 지치고 나면 투쟁은 그들을 버리고 활력을 잃지 않은 다른 대상을 찾아 달려간다하지만 보이지 않는 투쟁자는 민중을 격려하기 위해 이런 미기를 던져놓고는 이성과 육체를 뚫고 들어가 분노와 굶주림의 모든 현대의 비명들로부터 자유라는 의미를 창조해내려고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싸운다.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은 극단적으로 위험하다. 투쟁자는 인간에게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에게 불을 붙이는 불길에만 관심이 있다는 소름 끼치는 비밀을 알아내고 너는 공포에 사로잡힐지 모른다. (p. 396)

 

우리들은 도예가가 진흙을 사랑하고 탐하듯 세상을 사랑한다. 우리들에게는 가지고 일할 다른 재료가 없고 씨뿌려 거둘 혼돈 위의 다른 밭이 또 없다. (p. 397)

 

Ü 나는 왜 이 문장에 경도되는가?

 

코카서스

□ 질문들은 끊임없이 새로워졌으며 해답은 자꾸만 달라졌다. 뱀과 뱀처럼 질문이 질문의 꼬리를 물었다. (p. 398)

 

□ 인간 이전의 신음 소리 (p. 401)

 

행복이 도망치지 못하게 머리채를 휘어잡는 것 (p. 402)

 

Ü 인간의 의무는 단 하나다. 행복이 도망치지 못하게 머리채를 휘어잡는 것

 

□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이 이를 테면 당신하고 나만 남더라도 희랍 땅은 다시 아이들로 가득 찰 거예요! (p. 404)

 

Ü 이 보다 더한 절대 긍정은 없다.

 

□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써 우리들은 그것을 창조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우리들이 충분히 갈구하지를 않았으며 비 존재의 음산한 문턱을 지나 전진하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들의 피를 쏟아 붓지 못한 것이다. (p. 408)

 

Ü 현재의 미래, 미래의 현재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애쓰지 않으면 날아가리라. 애쓰면 이루어지되 애쓰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니 애쓰기 위해서 미래를 지금으로 돌려놓고 끊임없이 노력하기 위해 현재를 미래로 올려 놓으라.

 

탕자 돌아오다.

뱃속의 본능을 따르고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상인 자유와 죽음에 대한 경멸

지적인 길을 따르지 않고도 어떻게 다리가 둘 달린 짐승이 인간으로 되는지를 우리들은 보았다. (p. 415)

 

Ü 신과 싸워 이긴다면 그 전리품들은 아마 자유와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겠는가. 그를 위한 인간의 노력은 알게 모르게 눈물 겹게 진행되어 왔다.

 

조르바

□ 내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부처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p. 418)

 

Ü 조르바라는 사람을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유일한 동시대인이었는데, 안타깝다.

 

□ 나는 최상의 어리석음이 삶의 본체가 하라고 소리치는 바를 감히 하지 못하는 내 영혼을 보고 수치를 느꼈던 적이 무척 많았다. (p. 419)

 

Ü 기억하는가? 아그리젠토로 가기 전 거리의 악사를 만나 다같이 춤을 출 때 나를 무대로 잡아 끄는 손을 나는 끝내 잡지 못했다. 왜 그리했을까. 내 삶의 본체는 나가서 한바탕 춤을 추라 했는데도 말이다. 영혼과 정신은 어떤 때 삶을 걸리적거리게 한다.

 

□ 우리들은 가장 용감한 개인적인 시도까지도 대부분의 경우 실패할 운명인 전체적인 파괴와 창조의 순간에 서 있다. 하지만 그 실패는 우리들이 아니라 뒤에 올 사람들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그것은 길을 열어 미래가 들어서도록 돕는다. (p. 423)

 

Ü 과정의 삶이라 그 가치가 폄하되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과정이 겹쳐질 때 그것은 완성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것도 죽지 않는단 말인가? 원시의 배고픔과 목마름과, 고난과,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의 모든 밤과 달은 우리들이 살아 있는 한 우리들과 함께 살고 배고파하며 우리들과 함께 목말라하고 고통을 받으리라. (p. 23)

 

융은 우리의 의식에 대해 그무서운 과정의 재생이라 말한다.

‘우리 인간은 자기 자신만의 개인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수세기에 걸친 집단정신의 고도로 수준 높은 대변자요 희생물이요 후원자인 셈이다. 우리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세계라고 하는 극장 무대에서 주로 대사 없는 단역 배우 역할만을 해왔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사실들이 있다. 그것이 무의식적인 것일수록 그 영향력은 더욱더 크다.’ 저자는 또한 말한다.

 

꽃이 만발한 분수와 그 언저리의 돌로 만든 긴 의자들과 지팡이에 기대고 앉아 저녁에 조용히 얘기를 나누는 노인들이 오랜 세월이 걸쳐 수백 년에 걸쳐 거듭거듭 되풀이된다. 주변의 대기까지도 시간처럼 옛되다. 내가 제대로 예감했듯이 아름다움은 무정하기 때문이다. 네가 그것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너를 쳐다보며 용서를 하지 않는다.’

 

□ 글을 쓸수록 나는 작품에서 내가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달았다. 진실한 작가와는 달리 나는 구원을 추구하며 고통스럽게 투쟁하는 인간이어서 미사여구를 지어내거나 멋진 운을 맞추려는 데서는 기쁨을 얻지 못했다 나는 모든 것을 이겨내는 인간 영혼의 능력을 보고 용기를 얻으려 했으므로 가장 숭고하고 힘든 시련을 성공적으로 치루어낸 위대한 인물들을 소생시키기를 원했다. (p. 424)

 

Ü 수사는 글을 황폐화 시킬 수 있구나뜬금없는 생각하나, 세상 모든 사람은 왜 50대 혹은 60대의 현재를 두고 세상을 살아갈까. 그렇게 안정이 필요한 걸까. 조금 험하게 살아가면 그것은 실패의 삶인가. 안정을 찾아 삶의 모든 곡절에서 선택을 하게 되면 그것은 장자가 말하는 압박받는 삶, 결국 죽음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될 터인데 말이다. 수사에 목숨 걸지 말자. 뭐 그리 대단한 문학 하겠다고

 

□ 가능하다면 두려움을 부릅뜬 눈으로 빤히 보아라. 그러면 두려움은 겁이 나서 도망칠 테니. (p. 425)

 

자유란 자기가 낳은 딸이나 마찬가지여서, 노르웨이의 투쟁은 그 희랍 양치기의 투쟁이 되었다. (p. 426)

 

Ü 메마른 페리체는 푸릇푸릇 하였다. 계절이 바뀌었다.

 

□ 날으는 물고기가 졀사적으로 눈 앞에서 자꾸 뛰어올랐다. 단 한순간이라도 인간의 한계성을 깨뜨리고 뛰어오르며 단 한순간이라도 기쁨과 슬픔과 사상과 신들을 벗어나 더럽혀지지 않은 맑은 공기를 숨쉴 수 있는 영혼을 빚어낼 능력이 나에게 있을까! (p. 428)

 

Ü 신과의 싸움은 이리도 처절하다.

 

내가 죽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정신이 말짱했고 끝까지 그를 생각했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내가 한 어떤 행동에 대해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요. 그가 잘 지내기를 바라며 이제는 정신 좀 차리라는 얘기도 하세요그리고 혹시 어느 신부가 와서 나를 고해시키고 영성체를 주려고 하면 저주나 내리고 꺼져버리라고 해요! 나는 살아가며 별의별 짓을 다 해보았지만, 사실은 별로 한 것이 없어요. 나 같은 사람은 천 년을 살아야 하죠. 안녕히 주무세요!’

 

이제 그토록 다정하고 성숙했던 손은 바위와 바다와 빵과 여인을 다시는 어루만지지 못하리라…(p. 429)

 

Ü 아 그리스인 조르바, 나는 그와 데르수 우잘라를 내 안에서 다시 부활시키리라.  

 

오딧세이의 싹이 내 마음속에서 열매를 맺을 때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시작되었다. 나는 성을 바뀌어 대지처럼 여자가 되어 씨앗에게 말씀의 젖을 먹이며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p. 435)

 

Ü 이 절묘한 표현 보라. 나는 이 세상을 이런 표현들을 보기 위해 오래 살아야겠다고 어리석게 다짐한다.

 

나는 글을 썼고 지웠다. 나는 적당한 어휘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따분하고 영혼이 없었으며 때로는 점잖지 못하게 화려했고 또 어떤 때에는 따스한 체취가 없이 추상적이고 속이 비었다. 시작을 할 때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았지만 제멋대로 떠오르는 어휘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갔다. 내 계획은 고리타분한 화려함으로 만발했고 내가 뜻했던 범주를 넘쳐 벗어나 뻔뻔스럽게 다른 공간과 시간을 침범했다. 그것은 달라지고 또 달라졌으며 나는 그 윤곽을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영혼도 그에 따라 변하고 또 변했으며 그것 또한 나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을 쓸데없이 화려하게 꾸며 비틀어버리지 않을 어휘를 누덕누덕 장식품을 주워 모으지 않은 간결한 어휘를 찾으려고 헛되이 애를 썼다. 물을 길어 마시려고 우물로 두레박을 내려 보낸 목마른 회교도 신비주의자는 누구였던가? 그는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거기에는 황금이 가득 찼다. 그는 그것을 쏟아버렸다. ‘신이여, 당신이 보물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마실 물만 주십시오. 저는 목이 마릅니다.’ 그는 다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마셨다. 말은 그런 것, 장식이 없어야 한다. (p. 436)

 

Ü 카잔차키스의 문체론이다. 외워서 육화시킬만 하다. 그리고 또 장자가 거든다.

장주의 집은 가난해서 그는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려고 갔다. 제후가 말하기를좋다. 나는 곧 내 땅에서 나오는 세금을 얻게 되는데, 너에게 삼백금을 빌려주겠다. 그래도 되겠는가?’ 장주가 말했다.

 

붕어야 너는 무얼 하고 있는 거냐?

저는 동해의 물결 속에 노닐던 놈입니다. 선생께서 한 말이나 몇 되박의 물이 있거든 제게 부어 살려 주십시오.

그러지, 내 남쪽으로 가서 오나라와 월나라의 임금을 설복시켜 서강의 물을 끌어다가 너를 마중하도록 하겠다. 괜찮겠느냐?

저는 제가 늘 필요한 물을 잃고 있어서 당장 몸 둘 곳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한 말이나 몇 되박의 물만 있으면 사는 것입니다.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다가는 차라리 저를 건어물전에 가서 찾는 편이 옳게 될 겁니다.’

 

□ 언젠가 나는 올리브나무에서 유충을 떼어 손바닥에 놓았던 기억이 난다.

 

Ü 시 한편 외우고 자리를 뜨자.

 

반성 608 (김영승, 반성, 1987)

 

어릴적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잡은 풍뎅이의 껍질엔

못으로 긁힌 듯한

깊은 상처의 아문 자국이 있었다.

 

징그러워서

나는 풍뎅이를 놓아 주었다.

 

나는 이제

만신창이가 된 인간

 

그리하여 주

나를 놓아 주신다.

 

인간은 서두르지만 신은 그렇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작품은 불확실하고 불완전하지만 신의 작품은 결점이 없고 확실하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는 영원한 법칙을 다시는 어기지 않으리라고 맹세했다. 나무처럼 나는 바람에 시달리고 태양과 비를 맞으며 마음 놓고 기다릴지니, 오랫동안 기다리던 꽃과 열매의 시간이 오리라. (p. 437)

 

인내하라. 명상하라, 믿어라. (p. 437)

 

Ü 신이 내려준 가장 고귀한 명령

 

□ 이 세상에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기쁨의 하나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부는 봄철에 에게해를 항해하는 것이라고 나는 거듭 느꼈다. (p. 438)

 

만일 인간이 절대적인 자유를 지니고 태어날 수 있다면 그리고 만일 그가 이 땅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그의 첫 의무는 그 자유의 한계를 짓는 일이다. 인간은 한정되고 지정된 싸움터에서 하는 일만 견딜 능력이 있다. 나는 인간의 이런 무능력을 받아들여야만 그것을 초월할 수 있다. (p. 440)

 

Ü 장자가 거듭 나오지만 장자와 카잔차키스, , 캠벨은 지금 매우 닮아 있다.

개념적으로 자유는 자유는 자기로부터 말미암는다. 自由, 외적인 강제가 없이 철저하게 자기원인적으로 이루어지는 행동을 의미한다. 일체의 외적 조건 없이 절대적 자발성에 근거하는 자기원인적이라는 자유의 관념은 사변적 이상에 불과한 것이다.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을 강조하는 장자에게 있어 절대적 자유는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절대적으로 자유롭다면 소통과 그것을 위한 수양은 불필요한 개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마음은 육체적 유한성과 독립된 실체로 사유되어서는 안 된다. 절대적 자유의 이념은 유한한 자유를 추상화하는 데서 존립하는 개념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진다

 

기쁨과 슬픔, 여행, 미덕과 악, 나의 다른 모든 것은 그 외침으로 전진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도와 부처는 도중의 정거장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거쳐야 했고 그것들은 숨은 새가 지나간 자취였다. (p. 441)

 

□ 어느 날 쐐기풀들이 장미넝쿨에게 물었느니라

장미넝쿨 마님, 당신의 비결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지 않으시겠어요? 어떻게 장미꽃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장미넝쿨이 대답했지.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합니다. 쐐기풀 아가씨, 겨우내 줄곧 나는 참을성 있게 믿으면서 사랑을 지니고 흙을 일구는데 머릿속에서는 장미꽃 한 가지만 생각을 해요. 빗발이 나를 후려치고 바람이 잎사귀를 벗기고 눈이 짓눌러도 내 마음속에는 장미 꽃에 대한 생각뿐이랍니다. 그것이 내 비결이에요. 쐐기풀 아가씨!

 

아마 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오랫동안 말없이 끈기 있게 믿음과 사랑을 지니며 그것을 다듬고 가꾸지. 그러다가 내가 입을 열만 생각은 옛날 얘기가 되어버려.

우리 인간들은 그걸 옛날 얘기라 부르지만 장미넝쿨은 그걸 장미꽃이라고 부른단다. (p. 446)

 

Ü 이 이야기는 깊이 새겨 둘만 하다. 인간이 특히 현대의 인간이 코웃음 치는 옛 일에 대한 무용함, 유치함, 촌스러움, 진부함이라 평한 거의 모든 것에 대한 반전이다.

 

크레타의 경지

창조를 하는 동안 사람은 줄곧 뱃속의 아들에게 영양분을 주는 여인처럼 입덧을 하게 된다. 작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든 문제와 자기보다 훨씬 우수한 본체와 싸움을 벌인다. (p. 452)

 

□ 때때로 영혼으로부터 때때로 육체로부터 해방이 되기를 원한다. 두 가지를 다 즐긴다는 것은 무서운 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이곳 그리스에서는 이 두 가지 우아하고 불멸하는 요소들이 뜨거운 물과 찬 물처럼 함께 섞이고 영혼은 육체에게서 그리고 육체는 영혼에게서 무엇인가 취할 수가 있다. (p. 455)

 

Ü 육체와 정신이 해방되고 화해하는 지역. 그리스.

 

□ 준엄한 계명이 섞어버린 입들에서 쏟아져왔다. (p. 456)

 

□ 짐승을 마주 보고 그토록 위험한 경기를 벌일만한 인내심을 지니려면 인간은 분명히 육체와 영혼의 대단한 훈련이 필요했으리라. 하지만 일단 훈련을 받고 경기의 느낌에 익숙해지면 그의 모든 동작은 간단하고 확실하고 여유를 가지며 주저치 않고 두려움을 맞이한다.

벽에 그려놓은 (오늘날 우리들이 신이라 일컫는) 소와 인간의 옛된 싸움을 보면서 나는 혼잣말을 했다. 저것이 크레타의 경지니라. (p. 457)

 

Ü 그 경지에 이른 자는 오디세우스다. 저것이 오디세우스니라. 저자는 말한다. ‘그는 미래를 창조하는 어둡고 밝은 힘들을 끌어내는 마력이었다. 믿음은 산을 움직이니 그를 믿으면 그가 오리라. 누가 오는가? 내가 창조한 오디세우스가. 그는 원형이었다.’ 여유, 두려움을 없애는 필요조건.

 

지구의 기초가 삐걱거렸고 원고지 위에 엎드려 파도와 사람들과 지옥의 힘들이 내는 소음을 들으며 (p. 460)

 

□ 당신은 구원으로부터 구원되었군요. ~ 462page 까지.

 

Ü 이건 너무 방대하여 옮겨 적을 수가 없다. 그러나 반드시 참조하라. 카잔차키스가 오디세우스와 하나가 되어 자유를 찾는 장면이다. 감동적이다.

 

에필로그

□ 나는 인간의 영혼에 감탄했으니 천국이나 지상에서 그토록 위대한 힘은 또 없다.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은 내면에 전능함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들은 육체와 비계의 무게에 눌려 영혼을 파괴하고 우리들이 무엇이며 무엇을 이룩할 수 있는지를 모른 채 죽는다. (p. 465)

 

Ü 인간은 신의 조상임에도 불구하고

 

키를 바람 쪽으로 돌리고 무슨 일이 닥쳐도 근심을 마라,

뜻대로 되거나 안 되거나 걱정할 게 무엇이냐!

 

할 일이 눈앞에 있으니 키를 잡고 두려워마라,

뜻을 위해 젊음을 바치고 눈물은 절대로 흘리지 마라.

 

나는 번갯불의 아들, 천둥의 손자,

마음대로 벼락치고 천둥치고 마음대로 우박을 흩뿌린다. (p. 468)

 

□ 젊음은 스스로 불멸하다고 생각해서 죽음에 도전하지. (p. 477)

 

불은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나 잎사귀나 가장 눈부신 임금의 비단옷 속에도 잠들어 있는데 잠들어서 인간이 깨워주기를 기다리지. 불을 깨운다는 것! 그것이 인간의 의무야! 불은 바위와 사람과 천사를 꿰뚫어. 내가 그리고 싶은 건 그 불이란다. (p. 479)

 

□ 여자들의 신발 뒷축이 자갈을 포장한 길거리에서 딸그락 거렸고 (p. 482)

 

□ 싸움이 끝나려고 한다. 나는 이겼는가, 아니면 패배했는가?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상처투성이지만 그래도 아직 내가 혼자 힘으로 서 있다는 사실이다.

그 모든 상처가 가슴속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 할아버지시여, 당신의 말대로, 능력 이상으로 노력했고 나는 당신이 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랬다. 이제 싸움이 끝났으니, 나는 당신 옆에 누워 흙이 되어서 우리 두 사람이 함께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겠다. (p. 483)

 

 

3. ‘진리가 된 인간’ (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이 아니다. 영혼의 자서전인 이유는 이 책을 덮고 난 뒤에야 알 수 있다. 나는 기어코 읽고야 말았다. 고백하자면, 처음엔 이 자잘한 바탕체의 오래된 편집 기술의 산물인 이 늙은 책이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중간쯤 읽어 내려갈 때 자세를 고쳐 앉았고 글이 끝나갈 때쯤 아쉬움과 초조함이 엄습했다. 나의 먼 길에 이 책은 마지막 조언을 하였다. 그리고 난 후 홀로 팽개쳐진 내 모습을 상상하고는 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시신경의 압박은 최고조였으나 영혼의 포만감은 극에 달했다.

 

옛된 바탕체, 종이 위를 티도 없이 미끈하고 유려하게 지나는 요즈음의 화려한 명조체는 옛된 바탕체가 찍어놓는 글자의 물리적인 음각의 그 확실성을 따르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바탕체가 좋다. 저 명징하고 귀여운 마침표, 잉크가 덜 들어간 글자와 과도하게 들어간 글자, 그래서 살아 꿈틀거리는 의미. 그 체에서 묻어나는 의젓함과 공신력. 꾹꾹 육필로 눌러써 뒷면에 그 양각의 감촉이 느껴지는데 그것은 진실성이다. 진실성, 카잔차키스는 인간의 진실성에 가장 근접한 인간이지 않겠는가. 그 끝에 심연이 있고 심연에는 신이 있기에 카잔차키스는 신과 싸울 수 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그 진실성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진실보다 윗자리에 있는 인간의 전설이 될 것이다.

 

어느 날 쐐기풀들이 장미넝쿨에게 물었느니라

장미넝쿨 마님, 당신의 비결을 우리들에게 알려주지 않으시겠어요? 어떻게 장미꽃을 만들어내죠? 그래서 장미넝쿨이 대답했지.

내 비밀은 아주 간단합니다. 쐐기풀 아가씨, 겨우내 줄곧 나는 참을성 있게 믿으면서 사랑을 지니고 흙을 일구는데 머릿속에서는 장미꽃 한 가지만 생각을 해요. 빗발이 나를 후려치고 바람이 잎사귀를 벗기고 눈이 짓눌러도 내 마음속에는 장미 꽃에 대한 생각뿐이랍니다. 그것이 내 비결이에요. 쐐기풀 아가씨!

 

아마 난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오랫동안 말없이 끈기 있게 믿음과 사랑을 지니며 그것을 다듬고 가꾸지. 그러다가 내가 입을 열만 생각은 옛날 얘기가 되어버려.

우리 인간들은 그걸 옛날 얘기라 부르지만 장미넝쿨은 그걸 장미꽃이라고 부른단다.’

 

신과 인간에 대한 이 디테일은 일 평생을 신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서는 나올 수가 없다. 캠벨의 거대 담론과 융의 무의식이 짚어내지 못하는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디테일을 카잔차키스는 깊이 성찰하고 있다.

 

한 참을 읽어내리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나에게로 왔을까 싶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표지를 봤다가 덮었다가 모서리를 들어 위로 봤다가 하였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그가 일생 동안 사유하고 육화 시킨 그의 문체를 선사한다.

 

나는 글을 썼고 지웠다. 나는 적당한 어휘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따분하고 영혼이 없었으며 때로는 점잖지 못하게 화려했고 또 어떤 때에는 따스한 체취가 없이 추상적이고 속이 비었다. 시작을 할 때는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알았지만 제멋대로 떠오르는 어휘들이 나를 다른 곳으로 이끌어갔다. 내 계획은 고리타분한 화려함으로 만발했고 내가 뜻했던 범주를 넘쳐 벗어나 뻔뻔스럽게 다른 공간과 시간을 침범했다. 그것은 달라지고 또 달라졌으며 나는 그 윤곽을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영혼도 그에 따라 변하고 또 변했으며 그것 또한 나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내 감정을 쓸데없이 화려하게 꾸며 비틀어버리지 않을 어휘를 누덕누덕 장식품을 주워 모으지 않은 간결한 어휘를 찾으려고 헛되이 애를 썼다. 물을 길어 마시려고 우물로 두레박을 내려 보낸 목마른 회교도 신비주의자는 누구였던가? 그는 두레박을 끌어올렸다. 거기에는 황금이 가득 찼다. 그는 그것을 쏟아버렸다. ‘신이여, 당신이 보물을 잔뜩 가지고 있다는 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마실 물만 주십시오. 저는 목이 마릅니다.’ 그는 다시 두레박을 내려 물을 길어 마셨다. 말은 그런 것, 장식이 없어야 한다.’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나의 생각을 단번에 뒤집어 엎었다. 직선으로 지르는 길, 단 번에 인간의 홍심으로 치닫는 어휘, 어휘, 어휘. 나는 베르그송과 니체를 읽어야 한다. 맑스를 읽어야 하고 융과 캠벨을 다시 읽어야 한다. 카잔차키스가 그리 시켰다. 그리고 나는 결국 카잔차키스의 마지막 장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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