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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일 08시 00분 등록

1. 작가 소개

조셉켐벨(Joseph Campbell, 1904-1987)

이력
1904, 3.26 뉴욕 출생
1925, 콜럼비아 대학교 졸업
1927, 콜럼비아 대학교 영문학 석사과정 수료,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교의 문학부에서 교수로 재직
194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발표
1959-1967, <신의 가면> 1-4권 집필
1987, 10.31 호놀룰루에서 사망

대표작
1949.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1959-1968, 4부작 신의 가면
1972, 신화와 함께 하는 삶
1974, 신화의 이미지
1983-1989, 세계 신화지도
1988, 신화의 힘

그의 일생
-미국의 신화종교학자, 비교신화학자.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불린다.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카톨릭 문화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책을 집필할 때쯤에는 카톨릭 신자도 아니며 특정 인격신도 믿지 않았다. 이는 중립적이며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어릴적 인디언 민담에 큰 감명을 받고 대학 졸업후 영문학 석사 공부하는 과정에서 인디언 민담과 아서왕의 주제들이 일치함을 알고 세계전역의 신화를 두루 공부한다.
-1927년 컬럼비아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간다. 파리와 뮌헨 대학에서는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한다.
-1929년 유럽에서 돌아와 영문학 대신 인도철학과 미술 쪽으로 공부하려고 하지만 학교의 반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한다. 때마침 일어난 대공항 시절 5년 가까이 산속에 칩거하며 독서와 사색을 한다. 작가 구본형은 이 기간을 통해 조셉 캠벨은 깊은 깨우침을 얻고 자아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캘리포니아에서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한다. 이를 통해 생물학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공부하고 우리 인류의 공통점, 우리의 기원을 타고 올라가는 이야기, 다윈의 진화론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도를 한다. 즉 신화는 인류(문화와 인종으로 나누어지기 전)의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1934년 뉴욕의 명문 여대인 사라 로렌스 대학의 문학 담당 교수로 임명, 38년 동안 재직한다. 이 기간동안 신화의 영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1938년 제자였던 현대무용가 진 에드먼과 결혼한다.
-1986년, 죽기 2년전 저명한 방송인 빌 모이어스와 대담을 통해 신화에 대해 대중에게 소개하였고 이를 계기로 조지 캠벨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게 된다.
-1987년 10월 3일 83세의 나이로 사망. 그의 아내는 조지 캠벨 제단을 설립하고 그의 유고와 대담 강의록 등을 정리하고 출간한다.


2. 무찔러 드는 글귀
P5, 인간의 바닥,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이 '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른 것. '원형'이라고 부른 것이 서로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켐벨이 우리에게 전하려던 메시지. 신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종교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

P8, "모든 고통의 씨앗은 가장 중요한 인간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유한성이랍니다.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 이것을 부인할 도리는 없는 것이지요."

P10, '신화 따위'의 잔재가 우리의 믿음이라는 내면적 체계의 벽에 줄지어 있다는 점이다.

P11, 우리의 컴퓨터, 우리의 연장, 우리의 기계만으로는 넉넉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직관, 우리의 참 존재에 기대어서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P11, "영웅의 역정에서 얻는 직관은 이성과 반대되는 개념이 아니랍니다. 영웅의 역정은 이성을 부인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반대라고 할 수 있지요. 부정적인 열정을 극복함으로써, 영웅은 우리에게도 우리 내부의 비합리적인 야만을 극복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답니다."

P12, 구도자는 자기만의 삶을 누리기 위해 도를 닦지만 영웅은 사회의 구원을 위하여 행동한다는 점이다. 조셉 캠벨은 인생을 모헙이라고 확신한다.
-자기 인생의 영웅이 되자. 사회를 생각하자. 구본형의 필살기에 나오는 공헌력을 기르려는 노력, 그것이 영웅의 삶이다.

P15, "목사들이 범하고 있는 오류는, 말로써 사람을 믿음에 이르게 하려고 애를 쓴다는 것이오. 자기가 보았던 빛을 신도들에게 넌지시 보여주기만 하면 될텐데 말이오."

P15, '세계신화가 지니는 공통되는 주제는 심오한 원리를 통하여 중심에 이르려는 인간정신의 욕구를 지향' 한다.

P18, 신화는 가시적인 세계의 배후를 설명하는 메타포이다.

P19, 지혜가 우리의 삶을 원초의 상태로 되돌린다. 이 지혜의 해각을 찾는 일은 '어느 시대에서든 그 시대의 중심 과제'이다.

P19, 그는 인간을 타락하게 한 것, 인간으로 하여금 신성한 것들과 헤어지게 한 것은 과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P25, 그래요. 우리는 우리 몫의 삶을 살면 됩니다. 삶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저 우리 몫의 삶을 살면 신화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지요.

P29, 신화라는 것은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해온 진리에 대한 모색, 의미에 대한 모색, 의미 있음에 대한 모색을 뼈대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P29,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은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요. 그러나 나는 우리가 진실로 찾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살아 있음에 대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P29, 신화는 인간 삶의 영적 잠재력을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인 것이지요.

P30, 신화는 사람들에게 내면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르쳐줍니다.

P33, 결혼한 사람은 자기의 정체를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단순한 연애가 아니지요. 결혼은 시련입니다. 이 시련은 '관계'라는 신 앞에 바쳐지는 '자아'라는 제물이 겪는 것이지요. 바로 이 '관계' 안에서 둘은 하나가 됩니다.

P34, 젊은이들은 의례를 통하여 한 겨레 혹은 한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데,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의례를 베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이군요. 사실입니다. 모든 아이는 거듭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아이는 지금의 세상에서 이성적으로 기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어린 시절을 떠날 수 있어야 합니다.

P38, 그래서 잡학가는 전문화한 문화보다는 훨씬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다른 문제의 영역으로 뛰어들기도 하는 것이지요.

P41, 신화는 우리 삶의 단계, 말하자면 아이에서 책임 있는 어른이 되고, 미혼 상태에서 기혼 상태가 되는 단계의 입문 의례와 상당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P41, 이런 의례가 곧 신화적인 의례인 것이지요. 우리는 바로 이런 의례를 통해 우리가 맡게 되는 새로운 역활, 옛것을 벗어던지고 새것, 책임 있는 새 역활을 맡게 되는 과정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P42, 사람은, 직함이 의미하는 역활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개인적인 욕망과 심지어는 자기 삶의 다른 가능성까지 희생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P43, 신화는, 바로 지금 이 시각에 우리가 사는 삶과 구조에 어울리는 수준으로도 삶의 본을 제공해줍니다. 본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바로 그 시간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P47, 영적인 의식이라고 하는 걸 어디에서 얻어야 하겠습니까? 그래서 신화가 필요한 겁니다. 신화는 영적인 의식의 차원으로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P48, 신화는 이 세상의 꿈이지 다른 사람의 꿈이 아닙니다. 신화는 원형적인 꿈입니다.

P48, 한 인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삶의 본이 될 경우, 그는 신화화하는 차원으로 들어가지요.

P50, 영화에는 확실히 마력같은 게 있어요. 영화를 보고 있는 사람은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혀 다른 곳, 그러니까 영화가 나타내고 있는 상황을 체험합니다. 신이라고 하는 존재가 그렇지요.

P58, 서로의 이름을 인정하지 못해요. 메타포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그 참 의미는 도무지 깨닫지 못한다고 할까요. 그들은 자기네를 둘러싸고 있는 고리를 열어본 적이 없어요.

P59, 신화 자체가 노래인 것이지요. 육신의 에너지에서 부추김을 받는 상상력의 노래, 이것이 신화입니다.

P64, 개인을 그가 속한 지역적 동아리와 동일시하게 만드는 대신, 지구라는 이 행성과 동일시하게 만드는 신화가 필요해요.

P74, 그럼 신화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개인은 자기 삶과 관계된 신화의 측면을 자기 나름대로 찾아야 합니다.

P76,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을 이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교육적 기능입니다. 신화는 사람들에게 그걸 가르쳐줄 수 있어요.

P76, 온 길을 되돌아가 자연의 지혜와 조화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P77, 신화와 꿈은 같은 곳에서 옵니다.

P78,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하늘얼 어떻게 사고 팝니까? 땅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우리에게,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맑은 ㄷ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 터에 어떠헥 그걸 사겠다는 것일는지요?

P89, 꿈은 우리 의식적인 삶을 지탱시키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반면 신화는 사회가 꾸는 집다나적인 꿈입니다. 그러니까 신화는 공적인 꿈이요, 꿈은 사적인 신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떤 개인이 꾸미는 사적인 신화인 꿈이 그 사회의 꿈인 신화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은 그 사회와 무난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P89, 하지만 영웅은 그렇지 않아요. 시련을 극복하고, 기왕에 해석되어 있는 경험에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는 용기, 이게 바로 영웅의 용기입니다.

P91, 신화가 지니는 중요한 문제는 인간의 마음과, 다른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이로 삼는 잔혹한 삶의 전제 조건을 화해시키는 것이지요.

P96, 삶 역시 한 세데에서 이울면서 다음 세대로 넘겨져 거듭납니다. 뱀은 끊임없이 죽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영원한 에너지와 의식을 상징합니다. 끊임없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삶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문득 섬뜩하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뱀 역시 삶에 대한 놀라움과 섬뜩함 같은 이미지를 지닙니다.

P96, 삶은 죽여서 먹음으로써, 남을 죽이고 자신을 달처럼 거듭나게 함으로써 살아지는 것입니다.

P103, 존재의 궁극적인 신비는 모든 생각의 범주 너머에 있습니다.

P103, 신의 권능은 성별에 우선해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P106, 삶이라고 하는 것은 금제에 불복하는 순간에 시작되는 것이지요.

P107,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개인적인 무의식으로서 생리적인 것입니다만, 융이 말하는 무의식의 원형은 생물학적입니다.

P108, 신화의 유사성 문제에는 역사적인 측면도 있고 심리적인 측면도 있다고 봐야지요.

P109, 우리가 신화를 다루면서 노리는 것은 세계체험의 한 방법이 아닐까 싶군요.

P109, 우리가 신화를 다루는 것은 신의 실재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지침을 얻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P113, 존재를 이해하려는 이 인간의 상상력, 아주 작은 모험을 통하여 초월의 가능성을 획득하려는 인간의 장엄한 모습에 문득 놀라고는 합니다.

P113, 나는 신화를 예술의 여신인 뮤즈의 고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바로 신화가 예술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시의 영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거죠.

P113, 시를 접하면 우리 자신이 우주적인 존재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겁니다.

P114, 각각 다른 의미에서 모두 믿을 만한 것입니다. 모든 신화는 특수한 문화적 상황이나 시대적 상황과 관계가 있는 삶의 지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개인을 그가 속한 동아리에, 그리고 동아리를 자연의 장으로 인도합니다. 신화는 자연의 장과 개인의 본성을 통합시킵니다. 신화는 조화시키는 힘입니다.

P115, 종교는 인간의 삶이라는 극도로 복잡한 것을 우리 안에서 익게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익으면 스스로 동기도 유발시킬 수 있고, 스스로 행동하는 것도 가능해집니다.

P120, 사회의 엘리트가 신화를 만든다.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고 돌아온 샤면이나 예술가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신화를 만든다

P120, 은유적으로 듣는 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P120, 창조적인 글을 써본 사람은, 마음을 열고 자신에게 복종하노라면 써야 할 것이 스스로 말을 하면서 제 자신을 이루어나간다는 것을 압니다. 이렇게 되면 작가는, 조금 과자ㅏㅇ해서 말하면 뮤즈, 혹은 성서적인 용어를 쓰지만 '하느님'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지요. 이것은 환상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P122, 민담은 그저 듣고 즐기는 겁니다. 그러나 신화는 영적인 교시를 위한 것이지요.

P122, 문명은 신화를 그 바탕으로 합니다.

P123, 시인들이지요. 시는 은유의 언어니까요.

P127, 궁극적인 신비로서의 하느님은 생각 너머에 있습니다.

P132, 산타 클로스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이어주는 은유이지요.

P133, 우리는 사악한 일에도 참여하고 있어요. 참여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합니다. 우리가 잘한다고 하는 일이 어느 누구에게는 반드시 사악한 일이 됩니다. 이 세상 피조물이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이지요.

P133, "인생은 슬픈 것이다.", 이것은 석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입니다.

P137, '키르티무카'는 '영광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P138, 영원이라는 것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에요. 영원은 그리 긴 시간도 아닙니다. 아니, 영원이라는 것은 시관과 아무 상관도 없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것은 세속적인 생각을 끊는 바로 지금의 이 자리에 있습니다.

P141, 신화와 의례는 마음을 몸에다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 자연이 가르치는 대로 삶을 자연에 조화시키기 위한 수단입니다.

P142, 죽음은 최종적인 해방입니다.

P142, 젊은이를 이 세상의 삶과 만나게 할 때도 신화가 끼여들고 , 이 삶에서 해방될 때도 신화가 개입합니다.

P145, 의례의 중심적인 목적은 한 개인을, 그 개인의 육신보다 훨씬 큰 형태론적 구조에 귀속시키는 것입니다.

P145, 매장에도, 친구는 죽었지만 다른 곳에서 계속해서 살 것이라는 의식이 반영됩니다.

P148, 신화가 그 죄의식을 닦아줍니다.

P149, 사냥한 짐승에게 감사를 드림으로써 그 짐승의 영혼과 화해하고자 하는 의례이지요.

P159, 우리는 성당으로 들어감으로써 사실은 영적인 이미지로 가득 찬 세계로 들어갑니다.

P162, 신화는 사회적 의례, 종족적 의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신화가 없어지니까 이런 의례도 없어지게 된 것이군요.

P162, 의례의 마당은 신화가 드러나는 마당입니다. 의례에 참가한다는 것은 곧 신화에 참가하는 것이지요.

P163, 성인식이 입문자를 정신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입문자 개인에게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인식을 거치면, 소년은 전혀 다른, 씩씩한 성인이 되어 제 몫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P165, 고대의 의례가 지닌 중요한 역활은 개인을 부족의 한 구성원으로, 한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한 모듬살이의 구성원으로 통합시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서구 문명은 개인을 사회로부터 끊임없이 분리시켜왔습니다.

P166, 의례를 소중하게 재현시킴으로써 그 가르침이 살아 있게 해야 합니다.

P168, 옛날에 신화를 쓴 사람들은 오늘날의 예술가들에 대응하는 사람들이었지요.

P170, 여자는 생명이고 남자는 생명의 종입니다.

P175, 일시적 체험에서 그 일시적 체험이 지닌 영원한 측면을 체험하는 것, 이거야말로 신화 체험인 것입니다.

P175, 이게 바로 신화적인 홀로 서기입니다. 우리가 곧 중심에 있는 산이고, 이 중심에 있는 산은 도처에 있는 것입니다.

P177, 사는 곳을 성화시키는 것, 이것은 신화의 기본적인 기능입니다.

P177, 주거 환경이 빚어내는 풍경 자체가 아이콘 노릇을 하는 겁니다.

P179, 우리에게는 여백, 혹은 여백 같은 시간, 여백 같은 날이 있어야 합니다. 그날 조간에 어떤 기사가 실려 있는지도 모르고,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남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남이 나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모르는 그런 여백이 있어야 합니다.

P179, 우리 천복의 정거장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오디오를 틀어놓고 좋아하는 음악을 올려놓아도 좋습니다... 바로 이 성소에서 다른 삶을 '그대'라고 부르는 것을 체험하는 겁니다. 초원에 살던 사람들이 이 세상의 만물에 대해 그렇게 했듯이 말이지요.

P183, 하지만 모든 당이 다 성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땅에서 삶ㄹ의 에너지의 상징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P185, 샤르트르 대성당에 가면 성당의 영적인 원리가 사회의 삶을 버티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P186, 신화는 우리 삶의 요체인 영적인 삶의 원형과 만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의례를 접하는 것, 이것이 우리 삶의 질서를 온전하게 바로잡아줍니다.

P189, 정신이라는 것은 삶의 향연입니다. 그것은 삶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P189, 그것은 예술가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술가들이야말로 오늘날에도 신화와 교감하는 사람들입니다.

P190, 그 작가가 읽은 것을 모조리 읽습니다. 이렇게 읽으면 우리는 일정한 관점을 회득하게 되고, 우리가 획득하게 된 관점에 따라 세상이 열리게 됩니다.

P193, 신 관념은 항상 문화적 조건을 따릅니다.

P193, 그 신은 그 땅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신으로 변모합니다.

P198, 문화적으로 아무 연관이 없는데도 같은 이야기가 퍼져 있을 수도 있는 것이군요.

P198, 한 문화권의 이야기가 다른 문화권에서 그대로 발견되는 데에는 여전히 놀라고는 합니다.

P203, 삶의 모습 자체는, 반드시 삶의 행위를 통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거지요.

P205, 죽음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어야 하는 거지요.

P209, 죽는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테마를 드러내고 있어요.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는 겁니다.

P209, 다음 세대가 오게 하려면 앞 세대는 모두 죽어야 한다.. 이것이 이 의례의 의미입니다.

P211, 영웅이란 자신의 물리적인 삶을 이러한 진리 인식의 질서에다 바친 사람을 말합니다.

P213, 자살이라는 것은 우리가 우연히 어떤 시간대에 처하게 된 삶에 대한 심리적인 자세 자체를 버리는 행위입니다. 말하자면 더 나은 시간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죠.

P213, 우리는 육체적으로는 죽을 필요가 없어요. 우리가 죽어야 하는 죽음은 영적인 죽음입니다.

P217, 삶의 미로르 뚫고 지나가면 삶의 영적인 가치를 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진실입니다.

P222, 천복과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 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P223, 우리는 늘 이와 비슷한 것, 천복에 들어온 것과 같은 조그만 직관을 경험하고 있어요. 그걸 잡는 겁니다. 그걸 잡으면 무엇이 어떻게 될지는 아는 사람도 없고 가르쳐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 바닥으로 그걸 인식할 도리밖에는 없어요.

P224, 천복거리를 찾는 일은, 스스로 갈고 닦아야 하는 기술 같은 것이지요.

P225, 세상이 뭐라고 하건 자네가 정말 좋아하는 것만 붙잡고 살면 행복하겠다 싶거든 그 길로 나가게

P226,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재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

P227, "천복을 좇되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있어도 문은 열릴 것이다."

P227, 우리가 있는 곳에 있습니다. 자기 천복을 좇는 사람은 늘, 그 생명수를 마시는 경험을, 자기 안에 있는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요.

P229, '영웅'이라는 말은 자기 삶을 자기보다 큰 것에 바친 사람을 일컫는 말이지요.

P231, 말하자면 출산은 영웅적인 행적과 동일시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요.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니까요.

P238, 영웅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다가, 문득 자신이 변모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합니다.

P239, 우리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찾아볼 필요가 있어요. 현실로 드러나는 우리 모습 이상의 무엇을 촉발시킬 만한 상황으로 자신을 던져넣을 필요가 잇는 것은 이 때문이지요.

P245, 사회에 영웅이 필요한 겁니까?
-분열 증세를 보이는 이 모든 경향을 한 곳으로 모아 바람직한 목표를 향하게 할 수 잇는 별자리 같은 이미지가 필요한 거지요.

P249, 원형적인 영웅상은 하나밖에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그러니까 이 하나의 원형적인 영웅상이 많고 많은 사람에 의해 모든 지역에서 베껴졌다는 것이지요.

P251, 이런 이야기는 아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도중에 반드시 필요하게 되는 본보기가 되어줄 테니까요.

P259, 신화는 시예요. 시적 언어는 대단히 유동적인 것이에요.

P259, 그런데 종교는 시를 산문으로 바꾸지요.

P272,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아서 선택한 일이라면 바로 그겁니다. 만일에, "아니, 내가 그걸 어떠호게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게 바로 우리 안에 갇혀 있는 용입니다. 

P273, 우리 자신을 구하면 세상도 구원됩니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의 영향력이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을 부여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P273, 마지막일, 가장 중요한 일은 역시 혼자 해야 합니다.

P276, 젊은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가능성을 암시하는 '본'을 만나는 일입니다.

P278, 죽음을 이해할 수는 없어요. 죽음과 화해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P278, 모든 영웅이 경험하는 모험 중 아주 중요한 통과의례는 바로 공포의 극복입니다. 공포가 극복되어야 비로소 영웅적인 업적의 성취가 있는 거지요.

P291, 모험이라는 것은 위험해요. 모험에는 긍정적인 가능성도 있고 부정적인 가능성도 있는데, 둘 다 우리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P291, 우리에게 맡겨진 역활을 가볍게 생각하거나 무시하는 일은 악마와 결혼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지요.

P296, 살면서도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는 신화는 읽어본 적이 없어요. 신화는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그 고통을 직면하고, 이겨내고, 다른 것으로 변용시킬 수 있는가르 가르칩니다. 그러나 고통이 없는 인생, 고통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인생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아요.

P299, 우리가 이르러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바로 우리 안에 있어요.

P301, 깨달음이란, 만물을 통해 영원성의 찬연함을 인식하는 일이지요.

P301, 진정한 예술가는, 조이스의 이른바 만물의 '광휘'를, 그 자체가 가진 진리의 드러냄으로 인식하고 해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P301, 나는 보통 사람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 자체도 믿지 않아요. 사람은 다 삶의 경험에서 기쁨을 느끼는 나름의 방법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마땅히 그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계발하고, 그것과 사귀어야 합니다.

P303, 신화는 거짓말이 아니에요. 신화는 시, 신화는 메타포일 뿐이에요. 신화가 궁극적 진리에 버금가는 진리라는 말은 신화를 정말 잘 나타낸 말입니다.

P303,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 삶의 모험을 진심으로 반길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래요. 영웅의 모험, 즉 살아 있음의 모험이지요.

P307, 개성이라는 게 신비로운 겁니다. 개성이라는 것은 곧 우리의 운명이니까요.

P308, 여신 숭배는 주로 농경 문화, 농경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즉 대지와 아주 밀접합니다.

P320, '우리'가 곧 신이에요. 이 모든 신화의 상징이 수다스럽게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이라고요.

P334, 여성 원리는, 자식에 대한 배타적인 사랑이 아닌 포괄적인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엄격합니다. 아버지 이미지는 사회 질서나 사회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닙니다.

P343, 아모르적 사랑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는 사랑입니다. 이 아모르적 사랑은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듯 눈과 눈이 만나는 데서 싹트지요. 말하자면 개인 대 개인의 사적인 경험인 겁니다.

P343, 바로 그 용기 덕분에 서구 문화에서 개인이 중요해지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종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은 남들에게서 이어받은 체험이 아닌 자기만의 체험, 그 체험에서 우러난 신념을 중요시할 수밖에요.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가치란 무엇인가...

P345, 진정한 결호은, 상대에게서 동일성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P347, 트리스탄은 자기의 사랑은 죽음보다, 고통보다,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귀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삶의 고통을 대단히 대승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지요.

P347, 자기 천복을 따를 때는, 어떤 사람의 어떤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생기든지 '내' 삶과 행동은 나름의 가치를 지녀야 하는 겁니다.

P356, 상처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 데서 생긴 고통과 고뇌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상처를 낫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고통과 고뇌를 안긴 사란뿐이라는 뜻입니다.

P365, 어떤 시련이나 고통이 따르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것. 이러한 마음가짐에서 비롯되는 속이지 앟는 태도, 약점을 따지지 않는 태도.. 이런걸 성실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P370, 사랑이 모습을 드러낼 때, 그 사랑이 반드시 사회가 인정하는 삶의 양태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사랑이 은밀한 게 다 이 때문이랍니다. 사랑은 사회의 규범에 대들어요. 사랑은, 사회가 조직하는 결혼 이상의 정신적 체험이지요.

P373, 사랑은 인생의 발화점이지요. 인생이라는 게 슬픈 것이기 때문에 사랑도 종국은 슬픈 겁니다. 사랑이 깊으면 괴로움도 깊은 법이지요.

P373, 사랑 자체가 고통, 혹은 진정하게 살아 있음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요.

P375, "해 지는 광경의 아름다움이나 산의 아름다움 앞에서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아!' 하고 감탄하는 사람은 벌써 신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이다."

P378, 명상이란 특정한 주제를 집중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수준의 생각이든 명사에서는 가능합니다.

P381, "오로지 신만이 신을 섬길 수 있다"는 말이 나와요. 신을 경배하고 신의 말씀에 따라 살자면 '나' 자신과 그 신이 표상하는 영적인 원리를 동일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P384, 나는 자비를 근본적인 종교 체험이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자비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P387, 남의 삶에서 '나'의 삶을 인식하는 것, '나'와 남은 둘이지만 살고 있는 삶은 하나임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겠지요. 신은 그 하나의 삶을 표상하는 이미지입니다.

P388, 온 세상이 원입니다. 세계에 있는 원꼴의 둥근 이미지는 모두 인간의 정신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원형의 건축 구조와 우리 정신 기능의 구조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 겁니다.

P389, 원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요.

P393, 우리의 정신 안에는 인류의 공통되는 어떤 힘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자세한 데까지 같을 수가 없어요.

P393, 신화의 이미지는 우리 모두의 영적 잠재력을 반영하고 있어요.

P394, 신은, 인류의 종국적이고 본질적인 관념일 것입니다.

P394, 우리는 신의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졌어요. 이것이 바로 인간의 궁극적인 원형이에요.

P396, 우리는 신화 이미지를 메타포라고 부르지, 사실이라고 부르지는 않거든요. 신화 이미지는 우리의 내적 체험과 삶을 위한 메시지가 됩니다.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면 신화 체계는 문득 우리의 개인적인 체험이 되는 것이지요.

P404,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 있지요. 아니, 없는 데가 없다고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경험하지 못하면 천구에 가서도 경험하지 못합니다.

P410, 아름다움은, '살아 있음'의 환희의 드러남이라고 할 수 잇겠지요.
-순간 순간의 삶이 그런 체험의 연속이어야 합니다.

P411, 시의 언어는 꿰뚫는 언어입니다.

P412, 인생은, 확대 재생산하고 존재를 계속하려는 충동을 지닌 원형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P412, 우리가 체현하고 있는 어떤 존재에는 잠재력이 있는데, 우리 인생은 바로 그 잠재력을 사는 것이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지요.

P415, 그래서 절정의 순간은 이 언어 밖에 있는 것, 이 한마디, "아...", 이 한마디 밖에는 할 수 없는 데 있는 것이지요.

3. 내가 저자라면
목차
1.신화와 현대 세계
2. 내면으로의 여행
3. 태초의 이야기꾼들
4. 희생과 천복
5. 영웅의 모험
6. 조화여신의 은혜
7. 사랑과 결혼 이야기
8. 영원의 가면

이 책은 조셉캠벨와 빌모이어스라는 유명한 저널리스트의 TV대담을 그가 죽고 난후 대담집 형식으로 펴낸 책이다. 대담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 되어 가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내용이 산만한 면이 있지만 캠벨의 신화에 대한, 그리고 인생에 대한, 기타 그가 생각하는 다방면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또 이러한 대담집은 대체적으로 중심 이야기외에 잔가지로 빠지기 쉬운데 캠벨의 혜안과 깊은 내공 때문인지 잔가지에서도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책은 조금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어려웠다. 특정 지역이나 종교 시대를 넘어서는 방대한 양 때문이기도 하였고, 그가 하는 이야기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웠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의 폭넓은 지혜의 양을 신화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에 나의 내공이 많이 부족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책은 단점보다 장점이 많은 책인 것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인생의 큰 스승을 한명 만난 기분이였다. 특히 천복을 찾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강조하는 부분에서는 살짝 가슴이 뛰기도 하였다. 신화를 소개하면서 자기 스스로의 능력을 개발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이 책이 단순 신화를 소개하는 책을 넘어서는 것 같다. 독자들이 신화를 배워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자신의 변화를 모색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이 책은 그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을 것이다.

감동적인 장절
신화는 메타포라는 부분은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었던 모호했던 신화에 대한 인식을 한번에 바꿔주었다. 그렇다. 신화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꾸는 꿈처럼 신화 역시 은유적으로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신화가 가지는 시대성 동시성 역사성등은 인간이 가지는 동일한 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화와는 다르지만 종교의 모티브 역시 신화의 모습과 비슷하다. 지금까지 종교를 너무 과학적으로만 접근하려 했는데, 이 책을 계기로 종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시인의 눈으로, 믿음의 눈으로 신화와 종교를 대한다면 분명 그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명을 받고 모험을 떠나는 영웅이 있다. 그는 고된 시련과 좌절을 겪지만 자기안의 진리를 찾고 임무를 완수한다. 그 후에 다시 집단에 복귀하여 집단이 발전하는 유익함을 제공한다. 캠벨이 말하는 영웅의 패턴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과정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즉 누구나 우리 역시 영웅이 될 수 있다. 또 마지막으로 그는 말한다. 영웅이 되라. 모험을 떠나라. 책을 살짝 덮고 조용히 내 삶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난 영웅의 삶을 살고 있는지, 내 삶은 만족스러운지 내 스스로에게 자꾸 물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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