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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6일 02시 33분 등록
추사는 한국인으로서 자기 분야에서 최정상을 차지한 몇 안 되는 위인 중 한 분이다. 그의 글씨는 청나라 학예(學藝)인들의 상찬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학문으로는 실학 중에서도 금석학(金石學)과 고증학(考證學)에서 당대 최고의 석학이었다.

추사체는 대단히 개성적인 글씨이다. 미적 범주로서의 추미(醜美)를 추구한다. 즉 파격의 아름다움, 개성으로서의 괴(怪)를 나타낸 것이 추사체의 본질이자 매력이다.

“추사의 예서(隸書)나 해서(楷書)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원래 글씨의 묘(妙)를 참으로 깨달은 서예가란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또한 법도에 구속 받지 않는 법이다. 글자의 획이 혹은 살지고 혹은 가늘며, 혹은 메마르고 혹은 기름지면서 험악하고 괴이하여, 얼핏 보면 옆으로 삐쳐나가고 종횡으로 비비고 바른 것 같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추사 선생이 소사에서 남에게 써준 영어산방(穎漁山房)이라는 편액을 보니 거의 말(斗)만한 크기의 글씨인데, 혹은 몸체가 가늘고 곁다리가 굵으며, 혹은 윗부분은 넓은데 아래쪽은 좁으며, 털처럼 가는 획이 있는가 하면 서까래처럼 굵은 획도 있다. 마음을 격동시키고 눈을 놀라게 하여 이치를 따져본다는 게 불가하다. 마치 머리를 산발하고 의복을 함부로 걸쳐서 예법(禮法)으로는 구속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감히 비유해서 말하자면 불가, 도가에서 세속을 바로잡고자 훌쩍 세속을 벗어남과 같다고나 할까.
-유최진 [초산잡저] 중에서-


추사는 단순히 서예가로서만 일생을 살아간 분이 아니었다. 그는 세속적 성공 뿐만이 아니라, 시와 문장 그리고 학문에서도 대성한 분이었다. 추사는 무엇보다도 시와 문장의 대가였다.

추사는 본디 시문의 대가였으나 글씨를 잘 쓴다는 명성이 천하에 떨치게 됨으로써 그것이 가려지게 되었다.
-위사 신석희 (‘담연재시고’)중 서문



또 추사의 학문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금석학과 고증학의 대가이다. 이 분야에 관한 한 추사는 전무후무한 대가이자 권위이다. 그러나 위당 정인보에 의하면, 완당은 금석학, 고증학 같은 부차적인 학문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라 경학을 기반으로 한 조선 성리학의 정도였음을 강조한다.



‘공(公, 추사)이 약관(弱冠) 시절에 사신 가는 부친을 따라 연경(燕京)에 가서 옹방강, 완원과 교유하고 그 후로는 그들과 서신 왕래를 한 것이 매우 번다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는 그 사실만 보고서 마침내 그의 학문이 여기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여기고, 일찍부터 가정(家庭)과 사우(師友)들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요, 그들을 힘입어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 대체로 학문의 본원(本源)을 깊이 터득한 공에 대하여 한갓 서예와 고증학만을 중시하는 것은 또한 얕은 생각이다.’
-정인보의 (완당선생 전집서)중에서’


추사 선생인 진심으로 공부한 것은 13경, 그 중에서도 ‘주역(周易)’이었다..
-민규호의 [완당김공소전]


추사는 당시 해동의 유마거사(維摩居士)라 불릴 정도로 불교 교리에 밝았고 초의(草衣)를 비롯한 많은 스님들과 교유했으며 백파(白坡) 같은 당대 대선사와 한 차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시, 서, 화에는 불교의 정신이 매우 깊이 서려 있다. 그래서 김약슬은 추사는 “유(儒)를 학(學)하고 석(釋)에 입문한 진실한 애불(愛彿)의 제일인자”였다고 강조한다.

“추사의 모든 저술과 예술은 기운생동(氣韻生動)을 불러일으키지 않음이 없고, 또 통선(通禪)된 선지(禪旨)가 표상화한 것을 굳세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정으로 추사를 인식하려면 불교를 통해서 있을 것이니 불교와 추사는 불가분의 논제인 동시에 선림(禪林)에 일대공안(一大公案)이 될 수 있는 진리가 많이 있는 것이다.
-김약슬 (추사의 선학변[禪學辯]) 중에서


추사는 문인화의 대가이면서 그가 일으킨 ‘완당 바람’이 19세기 전반기 회화사를 장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추사의 고매한 문인화의 세계를 심도 있게 이해한다는 것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의 대표작인 세한도(歲寒圖)나 불이선란(不二禪蘭) 같은 작품을 보면서 예술적 감흥을 얻는다는 것은 그의 글씨만큼 어려운 일이다.

조선시대 사상과 학문의 세계에서 다산 정약용이라는 실학의 정상에 올라서면 저 멀리 추사 김정희라는 거대한 산이 또다시 나타나는 것과 같이 우러러보자니 아득하고 오르자니 막막하기만 한 신비로운 천인절벽이 바로 추사이다.

이처럼 추사는 모든 면에서 함부로 오르기 힘든 험준하고 거대한 산이다.

애석하게도, 완당선생전집에는 누락된 글이 너무도 많다.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채 묻혀 있는 완당의 작품이 몇백 편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완당이 옹방강과 완원을 비롯한 청나라 명유(名儒)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지금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그 중에는 당당한 논술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원적(原籍)은 고사하고 부본(副本)조차 볼 수 없다. 나는 진실로 이 자료를 널리 수집하여 새로 [완당편집]을 편성할 사람이 나오기를 절실히 바라마지 않는다.
-후지츠카 지카시 ‘(청조 문화 동전의 연구)중에서



추사는 저술하기를 좋아하지 않아서 젊은 시절에 엮어 놓은 것들은 두 차례에 걸쳐서 다 불태워버렸기 때문에 현재 세상에 전하는 것은 평범하게 왕복했던 서신에 불과한 것이다.
-민규호의 [완당김공소전]중에서


한 예술가가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뇌와 수련과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고 초년, 중년, 노년의 경향이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예술가의 인생 역정을 배제하고 그의 예술을 논하다 보면 상투적인 ‘천재성의 발로’라는 말밖에 남는 것이 없다.. 그것은 결코 한 예술가를 올바로 평가하고 기리는 길이 될 수 없다. 특히 추사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예술가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추사체가 단순히 그의 ‘천재성의 발로’가 아니라 어떤 배경에서 출발하여 어떤 변천과정을 겪으며 어떻게 완성되었는가에 대한 훌륭한 해답은 추사와 동시에 활동한 박규수가 당대의 안목으로 추사를 논한 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셔먼호사건 때 평안감사를 지냈고 개화파의 선구이며 그 자신 명필이었던 박규수는 추사체의 형성과 변천과정을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완옹(추사)의 글씨는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그 서법(書法)이 어려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董其昌)에 뜻을 두었고, 중세(스물 네살에 연경을 다녀온 후)에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는)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骨氣)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소동파(蘇東坡)와 미불을 따르고 이북해로 변하면서 더욱 굳세고 신선해지더니…. 마침내 구양순의 신수(神髓)를 얻게 되었다.

만년에 (제주도 귀양살이로)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남에게)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게 되니 신(神)이 오는 듯, 기(氣)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 하였다.
-박규수 전집 [유요선이 소장한 추사유묵에 부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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