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김미영
  • 조회 수 456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5년 3월 26일 15시 17분 등록
별들의 들판 (공지영 지음, 창비, 2004)

독일 베를린에서의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공지영의 소설집 「별들의 들판」은 여섯 편의 중단편을 통해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재독 교포들의 사연을 ‘한국보다 더 한국적인’ 시선으로 담아낸다.

“2002년 가족과 함께 베를린에 1년간 머물렀어요. 그곳에서 매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한국적이었어요. 한국 사회는 빠르게 변했고, 많은 것을 잊어버렸지만 이들은 여전히 분단문제, 70년대 경제개발, 독일 이민사,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처와 기억에 영향을 깊게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어요. 고여 있는 물처럼, 마치 시대의 상처가 전시된 표본실에 있는 것 같았어요. 글을 쓰고 싶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뒤, 취재를 위해 베를린을 세 차례나 오가며 연작소설 ‘베를린 사람들’ 여섯 편을 썼고 이들을 「별들의 들판」으로 묶어냈다. 소설 속의 사람들은 모두 역사적 상처나 개인적 상처로 아파하는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는 분단, 이념, 정치적 상황으로 조국을 등졌거나 자신의 삶 자체를 통째로 상실했고, 개인적으로는 부모를, 남편을, 연인을, 혹은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들 이야기는 상징적인 도시인 베를린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소설을 리뷰한다는 것이 조심스럽고 부담스럽지만 그냥 쓰기로 했다. 작품을 요약하는 것은 생략하였다. 다만, 나로 하여금 책을 덮고 먼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준 부분을 만나보도록 하겠다.

우선, [작가의 말] 중 일부이다.

‘살고나면 쓸 수 있어, 열심히 살면 그러면 쓸 수 있어, 그렇지?’
하지만 나는 거의 오년이 넘도록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좀 쉬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써지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고, 떨어지는 이파리와 부는 바람, 피는 꽃을 봐도 그저 멍했다. 사십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무서웠다.

이 글을 시작한 이후 베를린을 세 번 더 다녀왔다. 독일의 여러 도시를 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결국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쓰고 싶은데 다시 소설가가 되고 싶은데, 할 수 있을까요?

왜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가, 왜 묘사하고 싶다고 생각했던가, 왜 저 사람의 웃음 뒤에 울음이 차오르고 있다고 느끼고야 말았던가? 나는 그런 통찰력을 받았던가? 왜 스무 살 시절 엄마의 말을 듣지 않고 내 인생을, 감히 여자가 이 한국이란 땅에서, 나는 내 인생을 살겠어, 누구의 것도 아닌 내 인생을 내 인생으로 살아가겠어,라고 그토록 굳게, 돌이킬 수도 없이 결심했던가. 가끔씩 글이 풀리지 않으면 그런 쓰잘데없는 회한들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가끔씩 혼자 책상 앞에 멍해 있으면, 나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글쓰기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건 전적으로 내게 달린 일, 나의 감각을 인화해내고, 나의 경험을 완성해주어서, 내게 삶을 삶으로 명확하게 살도록 해주었으니까. 잘못되었을 경우 내 탓이라고 하면 되니까, 책임의 실체가 있고 능력의 부재가 뚜렷한 거니까. 최소한 운명이나 배신은 아닌 거니까......

그러니 이제는 알게 된 것이다. 쓰는 일보다 사는 일이 더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두 개가 적어도 내 인생에 있어서는, 실은 처음부터, 갈라놓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이다. 모든 인생길이 나침반처럼 이곳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새삼 내가 작가라는 일이 감사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러는데, 진심 감사하다.

***
나도 이러한 '감사의 글'을 써보고 싶다. 그 언젠가에는. 그 어딘가에.
「별들의 들판」은 총 여섯 편이다. 보석처럼 빛나는 표현들이 넘치지만 그 중 하나씩만 만나보겠다.
***

▶ 베를린 사람들 1.. 빈 들의 속삭임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와 헤어져 독일로 떠나 그곳에서 독일인과 결혼하고 내과의가 된 최유정은 10년 만에 아이를 만나러 베를린에서 뉴질랜드로 날아온다. 자살기도 후 실어증에 걸린 아이를 만나 나누는 대화이다.)

엄마 좀 있다 공항으로 가야 돼. 서울 가서 외할머니 집에서 짐 찾아가지고 또 베를린으로 가.

너무 시간이 없어서 미안해... 일찍 알았다면 벌써 왔을 텐데... 하지만 또 올 거야. 네가 원하면 어디든 가줄 거야. 여기로 오라면 여기로 오고, 네가 한국으로 오라고 하면 한국으로. 네가 좀 크면 엄마가 사는 베를린으로 와도 돼. 마로니에 꽃이파리가 돌길에 떨어져 있는 거, 눈처럼 하얗게 떨어져 있는 거, 너 보고 싶다고 했지?

어젯밤에 엄마, 너 가진 거 처음 알았을 때 생각했어. 엄만 그때 스물여섯이었어. 청바지 입고 화장도 안하고 머리 하나로 묶고 덜렁거리면서 참 철딱서니가 없었지...

그런데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초음파검사를 하자는 거야. 검은 화면으로 뭐가 왔다갔다하는데 뭐가 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아이구 되게 시시하네 생각했는데...

의사가 청진기를 대니까,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거야. 쿵! 쿵! 쿵!

그건 마치 이 세상이 처음 창조될 때 나는 소리 같았어. 아마 신이 세상을 지을 때 분명 그런 소리가 났을 거야. 검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엄마 다니던 의대 뒷산이 온통 꽃무더기로 환했어. 엄마는 그때 들고 있던 가방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소리쳤지. 만세다! 최유정 만세! 뱃속에 든 얼굴 모르는 나의 아기 만세!

그래서 여민아, 엄만... 그때 처음으로... 살아 있는 게... 여자라는 게... 신비하고... 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어.

너에게 이 말을 해주러 왔어. 네가 내 몸속에 생겨났을 때 엄마는 이 세상을 다 가진 것보다 행복했다고... 엄말 용서해주겠니?

여민아! 작게 말해도 돼. 들리지 않게 말해도 돼. 엄마는 그래도 들을 수 있어.

잊지 마! 네가 처음 생겨나던 그때를... 그때 온 세상이 꽃으로 너를 맞았다는 사실을. 네가 엄마 뱃속에 생겨났을 때 엄마는 무척이나 행복했다는 그 사실을.

▶ 베를린 사람들 2.. 네게 강 같은 평화

그는 문득 아내에게 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82라는 국가번호까지 눌렀을 때 그의 손가락은 아내가 살고 있는 2라는 지역대신 무심히 31을 누르고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손가락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김유신은 천관의 집으로 가는 애마의 목을 베었기에 삼국을 통일했다. 말하자면 슈베르트를 듣는, 눈 속에 핀 꽃 한 송이를 보고 살기를 결심한 감상주의자가 아니라, 죄도 없는 애마를 베어버리는 그런 잔인무도한 놈이 조국통일의 과업을 이루는 것이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해야만 했다. 잘 있지? 애들은? 응, 여기 사촌형 집이야, 하면서 특히 사촌형수도 있는 집이라는 것을 은밀히 강조하면서, 아직도 자다가 화들짝 놀라 일어나, 당신 어떻게 다른 여자와 그럴 수 있어! 비명 지르는 아내를 안심시키는 것이 옳다. 미안해 여보, 그 여자가 자꾸 한번만 만나자고 해서...... 정말 아무 일도 아니었어. 내가 사랑하는 건 당신뿐이야.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 제발 날 용서해줘.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런 거짓말들을 해야만 했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느냐고 묻는 건 사람의 다리가 왜 두 개냐고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이다. 그러나 지난 한달 동안 그는 연리를 만나서 그녀를 껴안고 그녀의 둥글고 부드러운 귓가에 아주 어리석고 달콤한 말을 해주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 베를린 사람들 3.. 귓가에 남은 음성

나는 고립된 무인도처럼 외로운 광주시민들에게 신문을 가져다주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네. 그것을 받아들고 우리는 외롭지 않다고 기뻐하던 광주시민들의 얼굴도 떠올렸네. 진정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는 것은 아마도 외롭지 않다는 사실, 외롭다고 느낀다면, 고립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미 죽음을 이마에 대고 있는 것......

지난번 아우슈비츠에 갔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네만 선한 것들, 진실들, 정의들은 이상하게 아주 작아. 아우슈비츠는 크고, 그것은 묘사한다는 것은 “대서양을 한방울도 남김없이 마시는 것처럼, 지구를 포옹하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네. 폭력은 수용소처럼 거대하고 때로는 범국가적이지만, 사람을 살리게 하는 것들은 웃음들, 편지들, 따뜻한 말들, 혹은 한통의 필름들, 하나의 작은 마음들, 진실을 향한 결단들 혹은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따스한 음성들......

선한 일은 맨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네. 내가 너무 센티해졌나보네. 오랫동안 잊었던 단어들을 쓰고 있노라니, 다시 팔뚝에 소름이 돋아나네. 젠장, 이 소름은, 이 소름이 돋던 처음의 기억은 이미 우리 세대의 유전자에 새겨져버린 것인지......

▶ 베를린 사람들 4.. 섬

여자는 식탁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았다. 부엌 창가 개수대 위에 작은 유리병이 놓여 있고 거기 꽂힌 가느다란 나뭇가지에 흰 꽃이 피어 있었다. 그 곁에 놓인 파란 사과 한알...... 여자가 그걸 바라보고 있자 K선배가 웃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는데 저 가지가 있겠지? 잘 들여다보니까 아직 살았더라구. 병에 꽂아놓았더니 글쎄 사과꽃이 피잖아. 실내가 따뜻하니까 봄인 줄 아는 모양이야. 이쁘지? 그래서 내가 사과를 한알 그 곁에 가져다놓았어.”

“왜 사과를 그 곁에?”

“저 사과는 저 사과나무 가지의 꿈이잖아. 쓰레깃더미에 묻혀서 사라질 뻔한 꿈.”
그때 여자는 커피를 조금 쏟았다.

“네가 생겨났을 때 꿈을 기억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어. 모두가 생겨난 데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 서영아, 나, 여기서 혼자 수도승처럼 갇혀 있으니 별 생각을 다 하지?”
두 여자는 마주보고 웃었다.

K선배는 한때 시인이 되고 싶어했다. 그들이 대학 문학반 동아리였을 때, 그 여자로 말하자면, 그 여자는 글을 쓰고 싶어했다. 소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소설. 한 문장 한 문장 읽을 때마다 가슴에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붉은 상처자국이 주욱주욱 그어질 것같이 아픈, 그러면 안되지만 잃어버리고 만 삶의 이면을 일깨워주는, 그러나 결국은 사랑이고 믿음이고 희망인 그런 소설.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그래도 난 네가 좋아, 참 좋아,라고 말하게 만드는 그런 소설. 두 사람은 커피를 마시고 따뜻한 당근 케이크를 먹었다.

▶ 베를린 사람들 5.. 열쇠

그라츠에서 저희 교수 신부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 있어요. 결혼해서 신부직을 떠난 친구가 찾아왔다면서...... 친구분이 말했다고 하시더라구요. 나도 결혼하기 전에는 신자들의 결혼에 대한 가지가지의 고해를 들으면 말해주었지. 용서하라고, 사랑했던 때를 생각하라고...... 그런데 자기가 결혼생활을 해보니까 가장 용서할 수 없는 상대가 바로 배우자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만일 다시 신부가 되어 고해를 듣는다면 절대로 예전처럼 쉽게 용서하라는 말은 하지 못할 거라고, 그러면 그건 거짓이고 위선이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사제들이 왜 독신이어야 하는지 알 거 같다고 하셨대요. 결코 별에 도달할 수 없는 사람들이지만 별이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 별을 가리킬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자는 오직 독신들뿐이라고.

모르겠어요.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왜 미워들 하는지......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자면 이해할 수 없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잠들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할 거 같은데.

▶ 베를린 사람들 6.. 별들의 들판

수연은 알고 있었다. 여기 와서 깨달아진 것이긴 하지만 그녀는 실은 오래 전부터, 기억 속에서 소리를 잃은 아마도 그날부터 깊이 상처입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버림받은 것들, 잃어버린 것들, 상처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들, 용서하게 해달라고 울고 있는 것들, 울 시간은 많다면서 밥을 먹는 것들을. 구름으로 머무를 수 없었던 비와 강과 몸을 섞어 젖어버린 바람과 이파리를 배반한 꽃들, 연기를 떠나보내야 하는 굴뚝과 온몸으로 비를 맞는 지붕들, 가지 말라고 얽혀 있는 생울타리들, 무서우면서도 사랑해야 했던 그 생애들을.

이미 지나가버린 것이 인생이고 누구도 그것을 수선할 수 없지만 한가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건 기억하는 것, 잊지 않는 것, 상처를 기억하든, 상처가 스쳐가기 전에 존재했던 빛나는 사랑을 기억하든, 그것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밤하늘에서 검은 어둠을 보든 빛나는 별을 보든 그것이 선택인 것처럼.

***

불편했다. 아주 많이 불편해서 힘들었다.
감동적인 글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곤 한다. 그 눈물을 나는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은 마땅한 표현을 찾지 못하는 막막함 때문에 더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글들은 불편하다. 눈물이 아닌 불편함이 찾아오면 잘 피우지 않는 담배생각이 난다. 까만 밤이었으면 술 생각이 났을까? 담배피우는 아줌마.. 자위하자면 이런 담배는 약이다. 불편함을 연기로 날리면서 심호흡을 해주고 안아줘야 한다. 알았다고.. 아직도 힘든 거 안다고.. 나를 토닥거려줘야 한다.

이제는 웬만큼 안다. 한번 건드려진 상처는 들여다봐야 할 시간이 조금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상처마다 그 시간이 다르다는 것도. 다른 책이 읽히질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며칠째 나를 힘들게 한 상처 때문에 이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잊지 않았다고.. 아픈 거 안다고.. 언제든 함께 하겠다고.. 나에게 말해주려고.

아직도 내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알려준 공지영 작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IP *.250.34.120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