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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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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7일 09시 40분 등록
1. 나에게 들어온 글들

1. 서론
한 개인의 삶에 그 시대의 양이 얼마만큼 들어가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삶의 정직성을 판별하는 기준이라고 한다면 노촌 선생님은 참으로 정직한 삶을 사신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P19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P21

‘오래된 미래’, 미래로 가는 길은 오히려 오래된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P24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를 자주 바라보게 되듯이 좋은 문장을 발견하기만 하면 어학은 자연히 습득되리라고 봅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암기하는 것이지요. P27

다른 사람에게 모질게 해서는 안 되며(不忍人之心), 과거를 돌이켜 보고 미래를 내다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溫故知新). P34

동양의 도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우리 삶의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道在邇, 즉 도는 가까운 우리의 일상속에 있는 것입니다. 동양적 사고는 삶의 결과를 간추리고 정리한 경험 과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P37

진흙이 그릇이 되고 그릇은 다시 진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만약 그릇이 그릇이기를 계속 고집한다면 즉 자기를 고집한다면 생성체계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P39

德不孤必有隣, 덕성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 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P41

成人之美를 仁이라 합니다. 자기가 서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세워야 한다는 순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P42

同의 논리,지배와 억압의 논리이며 흡수와 합병의 논리를 和의 논리, 즉 공존과 평화의 논리로 바꾸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P46

2. 오래된 시와 언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P52
초상지풍 초필언(草上之風草必偃),수지풍중 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 P64

정호승의 시에 ‘종이학’이 있습니다. 비에 젖은 종이는 내려놓고 학만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길러야 하는 것이지요. P65

군자는 無逸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P70

무엇보다도 불편함이야 말로 우리의 정신을 깨어있게 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살아간다는 것이 불편한 것이고, 살아간다는 것이 곧 상처받는 것이라는 성찰이 없는 것이지요 P72

레닌은 ‘우리는 어떤 유산을 기부해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역사 공부란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계승할 것인지를 준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주장을 피력했지요. 나는 이 ‘無逸’편에서는 오히려 역사를 읽으면서 무엇을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75

노르웨이의 어부들은 바다에서 잡은 정어리를 저장하는 탱크 속에 반드시 천적인 메기를 넣는 것이 관습이라고 합니다. 천적을 만난 불편함이 정어리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지요. ‘무일’ 편을 통해 불편함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씹어 보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P76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획일적 대응을 피하고 현실적 조건에 따라서 지혜롭게 대응해야 한다. P81

현실에 매달리지 않고 현실의 건너편을 보는 거시적 시각과 대담함이 곧 낭만주의의 일면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P84

3. 주역의 관계론
물 긷는 그릇에 비유 할 수 있지만 또 안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물과 현상을 그러한 틀을 통해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P88

처지에 따라 생각도 달라지고 운명도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옛사람들은 “처지에 눈이 달린다”는 표현을 하지요. 눈이 얼굴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발에 달려있다는 뜻이지요. P100

‘주역’ 사상에서는 위보다 응을 더 중요한 개념으로 칩니다. 위가 개인적 관점이라면 응은 사회적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P104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가야 길하다. 모든 시작은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P111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 P113

목표와 과정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129

易 窮즉變 變즉通 通즉久,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오래간다.
주역의 사상은 ‘변화’와 ‘절제’의 사상이다. P131

4. ‘논어’, 인간관계론의 보고
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과而 不忠乎 與朋友交而 不信乎 傳不習乎 P144

여기서 소의 의미는 인간적 품성을 뜻합니다. 그런데 품성이란 바로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P157

‘아름다움’이란 우리말의 뜻은 ‘알 만하다’는 숙지성을 의미한다는 말입니다. 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P159

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P163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P165

인간관계로서의 덕은 그 자체가 삶이며 가치이기 때문에 귀중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P169

크게 생각하면 공부란 것이 바로 관계성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임을 깨닫는 것이 학이고 배움이고 교육이지요. 우리는 그 작은 것의 시공적 관계성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빙산의 몸체를 깨달아야 하고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전 과정 속에 그것을 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P182

사실 진정한 지란 무지를 깨달을 때 진정한 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지가 어느 수준에 있는 것인가를 아는 지가 참된 지라는 것이지요 P186

중요한 것은 무욕과 무사를 설파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188

子曰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지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화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 할 수 있다. P199

5. 맹자의 의
현자는 여민동락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즐거움이란 여럿이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P219

공자의 ‘里人爲美’를 인용하여 어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진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것이지요 이인이란 인을 삶 속에서 실천한다는 의미 입니다. P230

일상생활의 크고 작은 실패에 직면하여 그 실패의 원인을 내부에서 찾는가 아니면 외부에서 찾는가의 차이는 대단히 큽니다. P232

바다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물을 말하기 어려워하고, 성인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은 언에 대하여 말하기 어려워하는 법이다. 물을 관찰할 때는 반드시 그 물결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월의 밝은 빛은 작은 틈새도 남김없이 비추는 법이며,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법이다. 군자는 도에 뜻을 둔 이상 경지에 이르지 않는 한 벼슬에 나가지 않는 법이다. P243

6. 노자의 도와 자연
진정한 연대란 다름 아닌 ‘노자의 물’입니다. 하방연대 입니다. 낮은 곳으로 지행하는 연대 입니다. P251

“사람은 땅은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 그리고 도는 자연을 본 받는다”는 체계입니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지요. P254

무는 천지의 시작을 일컫는 것이고, 유는 만물의 어미를 일컫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로서는 항상 그 신묘함을 보아야 하고, 유로서는 그 드러난 것을 보아야 한다. 이 둘은 하나에서 나왔으되 이름이 다르다. 다 같이 현이라 부르니 현묘하고 현묘하여 모든 신묘함의 문이 된다. P263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은 곳에 노자의 세계가 있는 것이지요. 개념이라는 그릇은 작은 것이지요. 그릇으로 바닷물을 뜨면 그것은 이미 바다가 아닙니다. P267

玄德은 삼국지의 유현덕과 같이 제갈공명이나 관우, 장비 등 여러 장수들이 저마다의 능력을 잘 발휘 할 수 있도록 눈에 띄지 않게 일하는 스타일 이지요 P276

인식에 있어서 분별지를 반성하고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는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P277

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天地道 利而不害 聖人之道 爲而不爭, 천지의 도는 이로울지언정 해롭지 않고, 성인의 도는 일하되 다투는 법이 없다. P284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까닭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P289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유가 이로운 것은 무가 용이 되기 때문이다. P292

信不足焉 有不信焉, 백성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들로부터 불신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요컨대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품성은 백성, 즉 민중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함으로써 신뢰받는 일입니다. P295

무언과 불간섭은 노자 철학의 전제입니다. P296

大直若屈, 가장 중요한 원칙문제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 사람은 사소한 일에 있어서는 구태여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P300

될 수 있으면 언어를 적게, 그리고 느리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P302

노자 사상의 핵심은 動보다는 靜을, 滿보다는 虛를, 巧보다는 拙을, 雄보다는 雌를, 그리고 進보다는 歸를 더 높은 가치로 보는데 있습니다. P304

7. 장자의 소요
중요한 것은 한 마리의 제비가 아니라 천하의 봄이지요. 남는 것은 경기의 승패가 아니라 동료들의 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것은 그물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관한 생각이 철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P307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 할 수 없다. 혹시 나 자신도 우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P310

소요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도 무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자의 소요유는 ‘궁극적인 자유’, 또는 ‘자유의 절대적 경지’를 보여주기 위한 개념입니다. P311

장자가 우리들에게 펼쳐 보이는 드넓은 스케일과 드높은 관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한 스케일과 관점은 바로 깨달음으로 이어지고, 깨달음은 그 자체로서 귀중한 창조적 공간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것이지요. P319

기계보다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효율성 보다는 깨달음을 소중하게 여기는 문화를 복원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333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P343

9만리 장공을 날고 있는 붕새의 눈으로 보면 장주와 나비는 하나라는 것이지요. 장주와 나비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개별적 사물은 미미하기 짝이 없는 것이지요. P345

모든 사물은 변화 발전하는 동태적 형식으로 존재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사물은 원인이며 동시에 결과입니다. 모든 사람은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물은 異而一의 관계, 즉 ‘다르면서도 같은’ 모순과 통일의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상호 침투 하는 것이지요. 장자의 나비의 꿈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P347

8. 묵자의 겸애와 반전 평화
기층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신명을 다하여 실천궁행 하는 모습이 묵가의 이미지입니다. P367

겸애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평등주의, 박애주의입니다. 묵자는 사회적 혼란은 바로 나와 남을 구별하는 차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나아가 서로 이익이 되는 상리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P375

애정과 연대는 근대사회의 개인주의적 인간 이해를 반성하는 귀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P375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P382

묵자가 실이 물드는 것을 보고 탄식하여 말했다…그러므로 물드는 것을 주의하지 않으면 않된다. 비단 실만 물드는 것이 아니라 나라도 물드는 것이다. P388

진보는 단순화라는 간디의 명제를 다시 한번 상기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자의 절용편은 소염론, 사과론과 함께 과잉생산과 대량 소비로 귀착 될 수 밖에 없는 현대 자본주의의 거대한 낭비구조를 조명하는 유력한 관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P391

묵자의 도는 근본에 있어서 관계론입니다. 묵자는 결코 일방적인 사랑이나 희생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맺고 있는 상호관계를 강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이라고 주장합니다. 겸애와 함께 교리를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렇습니다. 관계의 본질을 상생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지요. P394

9. 순자, 유가와 법가 사이
물리적 천관에 의거하여 순자는 인간의 적극 의지를 주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실천적 노력이라는 것이지요. 순자의 ‘능참’은 ‘실천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제어하여 활용할 것을 강조합니다. P408

순자는 모든 사람은 인의 와 법도를 알 수 있는 지의 바탕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것을 행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P417

예란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P421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개량주의적 이기 보다는 개혁주의적입니다. 훌륭한 규범과 제도가 사람을 착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P424

“완전한 예’란 마치 훌륭한 음악처럼 천지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악론의 핵심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P426

순자가 악론을 전개한 이유는 사회의 질서가 타율적이고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공감과 동의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지요. P427

10. 법가와 천하통일
세상이 변하면 도를 행하는 방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가의 현실인식 입니다. P433

법가는 법 지상주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이 지상의 것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여러 차례 이야기 했듯이 공개성, 공정성 그리고 개혁성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P444

현실을 보기 보다는 그 현실을 본뜬 책을 더 신뢰하는 것이지요. 발을 현실이라고 한다면 여러분도 발로 신어보고 신을 사는 사람이 못 되는 것이지요. P452

모든 사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개념적 인식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P460

11. 강의를 마치며
동양적 삶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인성의 고양’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인성의 내용이 바로 인간관계이며 인성을 고양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성은 이웃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며 그 시대의 아픔을 주입함으로써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P469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한 시간과 무변 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드넓은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는 그 순간,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은 저마다 찬란한 꽃이 됩니다. P474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 대학이 선언하고 있는 것은 개인, 가, 국,ㅏ 천하는 서로 통일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P488

창의적 사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로움입니다. 갇히지 않고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입니다. 따라서 창신의 장에서는 개념과 논리가 아닌 ‘가슴’의 이야기와, 이성이 아닌 감성의 이야기가 절실하게 요구 됩니다. P508

시서화의 정신은 무엇보다도 상상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상상력은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이 단지 작게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상상력입니다. P510

2. 내 안에서 재창조된 생각들

TV 프로그램 ‘진품명품’ 프로그램을 보면 출연자들도 시청자들도 함께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다. 바로 주변에 그냥 ‘놓여져’ 있던 물건이어서 그 가치를 몰랐는데 알고 보니 고가의 명품이라는 것이 밝혀 졌을 때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나만의 감상은 아닐 것이다.

한자 능력 시험이 부활되는 등 근래에 와서 한자에 대한 관심이 재 고조되고 있지만, 한자 교육의 과도기에서 절름발이식 교육을 통해 남은 것은 ‘맹자 성선설, 순자 성악설’등의 피상적인 암기물이 아니었던가 스스로를 반성해 보았다.

보통 ‘공자왈 맹자왈’이라는 표현은 실제와 유리된 이상적인 이론이나 탁상공론만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자주 인용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나의 사고의 편협함도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이 책을 처음 잡았을 때의 묵직함이 책을 읽는 내내 그리고 덮은 후에도 아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동안의 내 생각과 이해가 얼마나 짧은 것이었는가에 대한 반성이자 깨달음 이었다. 춘추전국 시대의 제자백가 사상들은 그것이 이론적인 틀에 머문 것이 아니라 사회 변동기에 직접 사회 안에서 그것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생명력은 현재에도 면면히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君子不器의 정신을 통한 전문성의 추구 비판이나 同의 논리를 벗어나 和의 논리를 추구해야 하는 현실 인식 그리고 편한 것 만을 추구하는 안일함을 꼬집은 ‘無逸’ 사상 등은 동양사상의 가르침이 현재와 미래에 어떻게 적용 되어야 하는 가를 적절히 지적해 주고 있다. 경영학에서도 이제는 생산성 위주의 경제적 논리의 한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인간 중심의 동기 부여나 인적자원 육성 등의 인간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서양의 철학이 동양의 사상에 관심을 보이고 연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일 것이다.

강의실에 앉아서 깊은 성찰과 깨달음을 인간적인 교수님을 통해 듣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본서를 접할 수 있었다. 아름다움(알만하다-오래되고 잘 아는 것)이나 그림(그리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으며 무엇보다도 선악, 대립의 이분법적인 이차원적인 사고를 공간과 장이라는 3차원, 4차원의 세계로 확장 시킬 수 있었던 것이 가장 뜻 깊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무지함이 부끄러웠지만 내가 무지함을 깨달은 것이 새로운 배움의 시작임을 이제는 알기에 상대적으로 익숙한 공자의 논어 보다는 장자의 책을 한번 읽어 보고자 한다.

이 책의 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溫故知新’이라 할 수 있다. 옛 것을 익혀서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다. 역사를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되풀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렇기에 과거의 정신과 성찰에서 배워 이것을 현실에 적용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새로운 ‘학습’이 필요한 것이다. 진정한 학습이란 배우고 익혀 그것을 적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이러한 학습의 도를 적절히 보여 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신발을 직접 신어 보고 사는 것이다. 이 의미가 궁금한 사람은 본 서를 반드시 읽어 볼 것을 권한다.

3. 저자의 관점 속으로

저자의 고민과 성찰의 바람이 느껴 지는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의 인간에 대한 애정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도 바로 그런 책이었다. 깊이나 성찰이 왠지 바른 자세로 읽고 꼼꼼히 새겨 가며 읽어야 할 것 같은 책 말이다.

고전에 대하여 그것도 동양 고전에 대하여 비 전공자가 강의를 한다는 것, 고전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서 출판한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한다. ‘讀書白遍意自賢’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감히 이러한 책을 내가 쓴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논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나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을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전할까 하는 생각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이 책이 대학교의 강의 교재의 성격이라는 것이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암기식으로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전에 이러한 내용을 접 할 수 있었다면 그 이해의 폭이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문의 내용이 좀 더 쉽게 서술되는 것을 어떤가 한다. 청출어람, 수주대토등 잘 알려진 비유나 일화를 통해서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서 서술해 나간다면 좀 더 쉽게 다가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각 사상의 차별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나의 그림을 그려 나간 것인지를 높은 시각에서 조망해 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공자와 맹자의 만남’과 같은 가상 대담 형식으로 현안 문제를 두고 어떠한 관점으로 이야기가 될 것인가에 대해 서술해 보는 것이다. 혹은 현안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주인공들이 꿈속에서 그 시대로 가거나 저자들과 만나서 관찰이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과정을 그려 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순자’의 재발견을 경험했을 것이다. ‘성선설, 성악설’로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단편적이고 시대적인 이해 없이 이루어진 것인가를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순자의 성악설이야 말로 인본주의 인간 존중의 철학이며 적극적 참여인 능참을 요구하고 교육을 강조하는 현대적인 것임을 새롭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시각은 글에 신선함을 이끌어 주며 고전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이러한 내용의 글을 쓴다면 ‘고전에 대해 잘 못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순자의 사례와 같은 것들과 사상가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들어서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동양사상을 시대적으로 엮은 것도 이해를 돕는데 좋았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맞추어 사례로서 사상이나 예시를 들어 보는 구성을 취하는 것도 전달력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코칭스킬이나 21세기형 리더쉽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현덕과 같은 사례나 노장사상등을 들어 설명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지만 글을 맺는 지금 이러한 시도가 모두 편리함만을 추구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깨달음은 거저 얻어 지는 것이 아니라 성찰의 불편함을 통해야 하는 無逸의 정신의 생각해 볼 때 그렇다. 그러나 사상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은 그것을 통해 자유롭게 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이성’보다 ‘가슴’ 먼저 다가가는 이야기를 통해 다가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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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강
2005.04.09 00:01:05 *.140.43.145
구선생님께서 강추하셔서 책 구입한지는 꽤 시간이 지났는데.. 손이 가질 않아서..몇 페이지만 읽었는데.. 아무래도 이 책은 이 페이지 방문자가 읽어야 할 필독서인 것 같습니다. 조만간.. 꼭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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