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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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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8일 14시 20분 등록
7. 장자의 소요

장자 사상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 소요유逍遙遊입니다. ‘소요유’는 글자 그대로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소요는 보행과는 달리 목적지가 없습니다. 소요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하릴없이 거니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소요는 보행보다는 오히려 무도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춤이란 어디네 도달하기 위한 동작이 아니가 때문이지요. 동작 그 자체가 목적입니다. 311p

모든 투쟁은 사상 투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사상 투쟁으로 끝나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우리들이 갇혀 있는 ‘우물’을 깨닫는 것이 모든 실천의출발점이 되어야 합니다. 319p

장자는 약소국의 가혹한 현실에서 자신의 사상을 키워낸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부자유와 억압의 극한 상황에서 그의 사상 세계를 구성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렇기에 그가 생각한 1차적 가치는 ‘생명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명 없는 질서’보다는 ‘생명 있는 무질서’를 존중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반생명적인, 반자연적인 그리고 반인간적인 모든 구축적 질서를 해체하려는 것이 장사 사상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차적으로 정신의 자유입니다. ‘우물’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320p

포정해우庖丁解牛 포정이 소를 잡다
‘ ... 훌륭한 포정은 1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베기 때문이며 보통의 포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에 칼이 부딪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의 칼은 19년 동안이나 사용하였고 ... 칼날이 날카롭기가 방금 숫돌에 간 것 같습니다. ...’324p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삶의 지출이 노동이지요. ‘지출’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니 좀 이상합니다. 삶의 ‘실현’이라고 하지요. 지출보다는 실현이 더 적절한 어휘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 331p

기계는 그 효율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여가를 가지게 하고 그 생산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로 인한 실업 무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가와 소비의 증대가 인간성의 실현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곧 장자의 문제의식입니다. ... 장자의 체계에 있어서 노동은 삶이며, 삶은 그 자체가 예술이 되고, 도가 되어야 하고, 도와 함께 소요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332p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 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343p

나비의 꿈 胡蝶夢
모든 존재는 이과 과의 관계에 있으며 동시에 과와 인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 모든 사람은 스승이면서 동시에 제자로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물은 이이일異而一의 관계, 즉 ‘다르면서도 같은’ 모순과 통일의 관계에 있는 것이지요. 상호 침투하는 것이지요. 장자의 ‘나비 꿈’은 바로 이러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47p

8. 묵자의 겸애와 반전평화

춘추전국시대는 혁명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혁명적 상황에서 묵가는 통치 권력의 정당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좌파 조직의 좌파 사상이었으며 묵적이란 이름은 그것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이처럼 묵가는 ... 기층 민중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검소한 삶을 영위하고 신명을 다하여 실천궁행하는 모습이 묵가의 이미지입니다. 367p

공자와 묵자는 다 같이 춘추전국시대의 사회적 상황을 ‘사회적 위기’로 파악했습니다. 無道하고, 不仁하고, 不義한, 이기적이고 파멸적인 시대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공자와 묵자는 현실 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묵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세 가지의 고통을 받고 있는 바, 부린 자는 먹을 것이 없고, 추운 자는 입을 것이 없고, 일하는 자는 쉴 틈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을 보더라도 묵자가 기층 민중의 고통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 인식에 근거하여 묵자는 겸애라는 보편적 박애주의와 교리라는 상생이론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을 지침으로 하여 연대라는 실천적 방식을 통하여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당면의 실천적 과제로서 반전 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헌신적으로 방어 전쟁에 참여했습니다. 370p

전쟁에 대해서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것을 정면에서 반대합니다. ... 단 한 줌의 이롬ㅁ도 있을 수 없는 것이 전쟁입니다. ... 오늘날 우리의 통일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전쟁방식에 의한 정의의 실현이 공공연히 선언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용인하는 한 그것이 어떠한 논리로 치장하고 있더라도 그것은 기만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나쁜 평화가 없듯이 좋은 전쟁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379p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파괴와 처참한 죽음이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살리는 자본 축적의 돌파구가 되어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929년의 세계공황으로부터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케인스의 처방 때문이 아니고 2차 대전이라는 전시경제 덕분이었다는 것이지요. ... 마치 소비가 미덕이듯이 전쟁이 미덕이 되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입니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은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이었으며,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해소하는 방식이 냉전이든 열전이든 항상 전쟁에 의존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대체로 10년 주기로 경제공황이 반복되어 왔으며 대규모 전쟁 역시 10년을 주기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의 전쟁사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383p

미리 아궁이를 고치고 굴뚝을 세워 화재를 예방한 사라의 공로는 알아주지 않고, 수염을 그을리고 옷섶을 태우면서 요란하게 불을 끈 사람은 그 공을 칭찬하는 것이 세상의 인심인 셈이지요. 개선장군에 대한 환호가 그러한 것입니다. 386p

자본주의 체제하의 생산과 소비 수준은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그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 축적 논리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나는 사실 거리마다 즐비한 그 많은 음식점이 불황을 겪지 않으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외식을 해야 할지 걱정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경우든 사람들의 소용所用은 기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생산 규모를 유지하려고 하는 정도라면 차라리 큰 문제는 아니지요. 새로운 상품이나 새로운 소재, 새로운 기술, 새로운 문화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부단히 그 규모를 확대해가지 않을 수 없는 구조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소용을 위한 것이기보다는 최대한의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 운동의 일환일 뿐입니다. ... 기업의 논리, 경재의 논리, 효율성의 논리에 의해서 생산 규모와 소비 수준이 설정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3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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