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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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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0일 14시 23분 등록
"사실과 신화의 경계"

일연 지음/김원중 옮김/을유문화사


1. 책이 내게로 왔다(감상)

MBC 느낌표 선정도서여서 진작에 장만해 둔 책이지만 6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두께의 무게에 눌려 이제서야 책장에서 나오게 되었다. 삼국유사 자체를 전부 읽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실 가볍게 일독하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렇지만 삼국유사에 나오는 단편들은 '탑상 제4'를 제외하고는 자주 보았던 내용이 많았다. 예전의 TV 인형극에서 보던 내용들, 예컨대 주몽설화, 충신 박제상, 경문왕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김현과 호랑이 등의 이야기는 친숙하게 느껴진다.

유사(遺事)라는 말은 '이미 망각된 일들에 대한 기록'이라는 뜻이다. 삼국유사는 역사책이 아니라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여기에는 불교를 중심으로 역사도 있고, 설화도 있고 향가같은 문학도 있다. 따라서 삼국유사는 역사서이자 불교문화사이며 설화의 모음집이면서 문학책이다. 저자의 주장대로 삼국유사는 문.사.철이 관통된 문화서이다.

삼국유사는 5권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권은 왕력 제1(신라.고구려.백제.가락 및 후삼국의 연대표, 이 책에서는 맨 뒤에 부록으로 있음), 기이 제1(고조선 이하 삼한.부여.고구려와 통일 삼국 이전의 신라의 유사)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2권은 기이 제2(신라 문무왕 이후 통일 신라 시대를 비롯하여 백제.후백제 등에 관한 약간의 유사와 가락국에 관한 유사)로 이루어져 있다. 제 3권은 흥법 제3(불교 전래의 유래 및 고승의 행적), 탑상 제4(사기와 탑. 불상 등에 얽힌 승전과 사탑의 유례에 관한 기록)으로 기술되어 있다. 제 4권은 의해 제5(고승들의 행적)로, 제 5권은 신주 제6(이승들의 전기), 감통 제7(영험.감응의 영이한 기록), 피은 제8(은둔한 일승들의 기록), 효선 제9(효행.선행.미담의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삼국유사는 일연이 김부식의 삼국사기가 유교적 사관에 의지한 편협된 시각에서 저술되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자주적 시각에서 기술하고자 하였다. 삼국사기가 우리나라의 자료와 문헌을 무시하고 사마천의 '사기'를 염두에 두고 썼지만 삼국유사는 중국의 자료뿐 아니라 '구삼국사'등 우리나라 고유의 자료를 50여종이나 인용하여 서술하고 있다. 책 내용 곳곳에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내용도 많다. 원성대왕이 하서국 사람을 호통치는 대목이나 이차돈의 순교가 중국의 그것보다 위대하다는 표현이 일연의 자주정신을 말해준다. 육당(六堂) 최남선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중에서 하나를 택하여야 될 경우를 가정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할 것' 이라고 한 말은 <삼국유사>의 가치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삼국유사의 두번째 특징은 야사, 설화, 향가 등의 문학적 자료가 풍부하게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기이편의 단군신화, 혁거세 신화, 김알지 신화, 가락국 신화, 만파식적 등의 신화가 이야기체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또한 찬기파랑가, 도솔가, 제망매가 등 향가 14수를 소개함으로써 감칠맛을 더하게 한다.

세번째 특징은 일연의 자유스런운 사고와 개성있는 문체이다. 일연은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1인칭 어법을 자주 사용한다. 특히 책 후반부에는 매 이야기마다 '찬왈(讚曰)'이라는 한편의 시를 실어서 해당 이야기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가미하여 효과적으로 마무리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어찌 보면 삼국유사는 지난 주에 읽었던 윌 듀런트의 '역사속의 영웅들'과 유사한 책 구성방식을 띠고 있다. 윌 듀런트가 삼국유사를 모방해야 했다고 하나? 역사 이야기와 더불어 곳곳에 문학적 요소를 배치한 점, 객관적인 서술보다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제시한 점이 너무나 유사하다. 역사를 기술한다는 것은 오로지 객관적인 언어로만 가능하다고 믿었던 나의 편견이 무너져 내렸다. 상상과 은유의 언어, 즉 이야기(story) 방식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2주간의 독서에서 깨달았다. 은유는 사실을 더욱 더 풍부하게 담아내고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와 마찬가지로 삼국유사를 제대로 볼려면 신화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고 봐야 할 것 같다. 나의 자의적 해석보다는 행간에 넘쳐나는 선현의 지혜와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봐야 한다. 아직 고전을 제대로 보기 위한 사고와 인내가 부족하다는 각성을 하게 된다.


2. 역지사지(易地思之)(내가 저자라면)

삼국유사가 자주정신을 표현한 설화문학의 보고임에는 틀림없으나 몇가지 측면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첫째 무엇보다 신라 중심의 기술 방식이다. 일연이 경상도 출신이고 그 인근에서 활동한 점, 그리고 사료의 제약 등을 고려해볼 때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고구려, 백제의 그것과 견주어 볼 때 양적, 질적 측면에서 균형이 상실된 것은 틀림없다. 삼국 전반에 대한 역사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내용적인 면에서도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한 점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이라고 표현한 대목들을 보면 삼국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이 편향되어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두번째로 종교 배타주의 모습이다. 불교 승려가 자신의 종교가 최고임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종교를 너무 폄하하는 것도 올바른 일은 아닐 것이다. '도교를 믿으면서 고구려가 쇠퇴했다'고 표현한 점, 그리고 김부식의 유교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한 점을 보건대 도교, 유교에 대해 비판의식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신라시대 당시 현세의 업과 고통을 없애고 복을 구하는 주술적인 종교인 밀교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과 사뭇 대조된다.

셋째 불교 중심의 서술이 지나치다는 점이다. 삼국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주류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불교의 전래, 절과 탑 개축, 고승들의 행적 등에 너무 많은 내용을 할해했다. 이쯤되면 차라리 '신라불교사'가 더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래 설화를 불교 색채로 윤색함으로써 그 원형을 왜곡한 폐단도 없지 않다고 본다.

끝으로 일연의 삼국유사 원문을 그대로 옮긴 김원중 교수의 노고를 높이 치하하고 싶다. 각 장마다 해제를 통해 전체적인 개관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놓았고 책 아래에는 수많은 각주를 달아 놓았다. 각주를 보면 역자의 친절함에 감탄하게 된다. 또한 이야기마다 원문(사실 거의 안봤지만)을 실어 실제 의미를 파악해보게 했다.

너무 쉽게 풀이된 책만 봐서 그럴까? 솔직히 내용 이해에만 급급하고 설화에 담겨 있는 의미를 유추해보는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다. 앞으로 이 책보다 조금 더 쉬운 형식으로, 이야기 책다운 느낌으로 삼국유사가 출간되기를 소망해본다. 이야기마다 그림, 삽화도 넣고 해서 더 재미있고 쉽게 읽혀질 수 있길 기대한다.


3. 책에서 끌어다 쓰기(인용)

무릇 덕이 있는 자는 치아가 많다. - 3대 노례왕 (P75)

알지는 향언(鄕言)으로 어린아이라는 뜻이다......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비롯되었다. - 김알지, 탈해왕 (P81)

만약 어려운가 쉬운가를 따져보고 나서 행동하면 충성스럽지 못하다 하고, 죽을지 살지를 따져보고 나서 움직이면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 내물왕, 김제상 (P88)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보름달이란 가득찬 것이고 가득 하면 기우는 법입니다. 초승달과 같다고 함은 가득 차지 않은 것이고 차지 않으면 점차 차게 되는 것입니다. - 태종 춘추공 (P122)

열어 젖히자 벗어나는 달이
흰구름 좇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파랑의 모습이 잠겼어라.
일오천(逸烏川) 자갈벌에서
낭의 지니신 마음 좇으려 하네.
아! 잣나무가지 높아
서리 모를 씩씩한 모습이여!
- 충담사의 찬기파랑가 (P167)

살이 베이고 몸이 고문당해도 새 한 마리를 살리려 하였고, 피뿌리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짐승 일곱 마리를 불쌍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 원종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 몸을 바치다 (P282)

개자추(介子推)가 허벅지살을 벤 것도 염촉의 뼈아픈 절개에는 비교할 수 없고, 홍연(弘演)이 배를 가른 것도 어찌 그의 장렬함에 견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바로 단지 (법흥)왕의 신심(信心)을 붙들어 아도의 본심을 이룬 것이니 참으로 성스러운 분이다. - 원종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 몸을 바치다 (P284)

의로움을 좇아 삶을 가볍게 여긴 것은 놀라운 일이니,
하늘꽃(天花)과 흰 젖의 이적(異蹟)이 더욱 다정하구나.
갑자기 단칼에 몸은 죽었지만,
은은한 종소리가 서울을 뒤흔드네. (P288)

해저문 깊은 산길에
가도 가도 인가가 보이지 않네.
소마무와 대나무의 그늘은 더욱 깊건만,
골짜기의 시냇물 소리가 오히려 새롭네.
자고 가기 애원함은 인도하기 위함이네.
바라건대 내 청만 들어주고,
또 누구냐고 묻지 마시오.
- 남백월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P361)

즐거운 시간은 잠시뿐 마음은 어느새 시들어
남 모르는 근심 속에 젊던 얼굴 늙었네.
다시는 좁쌀밥 익기를 기다리지 말지니,
바야흐로 힘든 삶 한순간의 꿈인 걸 깨달았네.
몸을 닦을지 말지는 먼저 뜻을 성실하게 해야 하거늘
홀아비는 미인을 꿈꾸고 도적은 장물을 꿈꾸네.
어찌 가을날 맑은 밤의 꿈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淸凉)의 세계에 이르는가.
- 낙산의 두 성인 관음과 정취, 그리고 조신 (P376)

그 누가 내게 자루 없는 도끼를 주려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어보련다.
- 원효는 얽매이지 않는다. (P458)

달님이여,
이제 또 서방으로 가셔서
무량수불 앞에
말씀을 가져다 전해다오.
다짐 깊으신 부처님을 우러르며
두 손 모아 비옵나니
원왕생(願往生), 원왕생을 바칩니다.
그리워하는 사람 있다고 아뢰십시오.
아아, 이 몸 버리시고
마흔여덟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질까요?
- 광덕의 원왕생가 (P523)

양쪽 다리 사이에 산 고기[馬]를 끼고 있는 것에 비하면 등에 말린 물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혐오할 일인가? (P525)

삶과 죽음의 길은
여기 있으니 두려워지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못 다 이르고 어찌 가는가.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 나서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아! 미타찰(彌陀刹)에서 만날 나
도를 닦으며 기다리련다.
- 월명사의 도솔가 (P532)

김현의 호랑이는 부득이해서 사람을 해쳤으나 좋은 약방문으로 사람을 구하였다. 짐승도 그처럼 어질었는데 지금 사람으로 태어나 짐슴만도 못한 자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 김현이 호랑이를 감동시키다 (P542)
IP *.51.80.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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