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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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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1일 00시 25분 등록
삼국유사(三國遺事)
: 일연(一然) 저 / 김원중 역 / 을유문화사 /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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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와 나의 대화: 소고
중국의 철학자 방박(龐朴)은 문화(culture)를 나무에 비유하면서 세 개의 층으로 구분했다. 문화의 가장 깊은 부분인 뿌리에는 종교와 철학이 놓이고 둥치나 줄기에 해당하는 중간 부분에는 문학과 예술이 자리 잡고 있으며, 잎과 열매에 해당하는 겉 부분에는 정치 · 경제 · 사회가 자리 잡고 있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철학은 문화의 핵심이다. 따라서 한 민족의 철학과 사상을 알면 그 민족의 문화를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해, 방박의 견해를 이렇게 소개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삼국유사(三國遺事)를 읽는 내내 괴로웠다. 어렵고 지루했다. 이보다 더 나를 더 당혹스럽게 한 것은 내가 우리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自傀感)이었다. 한국적 가치와 사상에 대해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우리 민족의 고유한 사상과 신화 그리고 이야기를 모르면서 한국적 가치와 철학에 대해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세계화란 ‘나를 알고 남을 아는 것’인데, 나도 모르면서 남을 알려하니 남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주체성 없는 수용이 강압적 지배를 받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용어였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 때문에 독서의 흐름은 계속 끊겼고 몰입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용어들 중에서 이상하게 눈에 띄는 것들이 있었다. ‘예맥’, ‘아벌찬’, ‘미추홀’ 등과 같은 용어들이 그런 것들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이 용어들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이 용어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이유는 만화책에 있었다. 나는 만화를 즐겨 보는데, 그 중에서 ‘천추’라는 만화가 있다. 그런데 이 천추에 등장하는 나라와 기관, 그리고 관직명이 삼국유사에도 나오고 있었다. 아마, 천추의 그린 이와 글쓴 이가 삼국유사에서 어떤 모티브를 얻었기 때문이리라. 천추와 삼국유사가 연결된 것이 나는 즐거웠다. 만화는 허구다. 삼국유사는 보통 역사서와는 다르게 사실과 허구의 혼합이다. 역자 김원중이 말한 것처럼 삼국유사는 ‘문학의 역사’이자 ‘역사의 문학’이다. 천추라는 만화와 삼국유사의 만남은 내게 이상하지 않았다.


삼국유사를 제대로 읽고 싶은 마음에 내가 갖고 있는 책들 중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책들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책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을 찾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다행히도 그 경험은 즐거움이었다. 오경웅(吳經熊)의 ‘선의 황금시대(The golden age of Zen, 1967)’, 죠셉 캠밸(Joseph Campbell)과 빌 모이어스(Bill Moyers)의 ‘신화의 힘(The power of myth, 1991)’, 김교빈의 ‘한국철학 에세이(2003)’ 등의 책을 찾아 읽었는데, 이 책들을 처음 읽은 것은 대부분 2년이나 3년 전이었다. ‘선의 황금시대’는 재밌게 읽었지만, ‘한국철학 에세이’는 읽으면서 별 감흥이 없었고 ‘신화의 힘’은 읽다가 도중에 그만 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두 권 모두 처음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잘 읽혔고 유용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바로 들어왔으며 마음에 담고 싶은 문장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 중 하나만 옮겨 본다. 죠셉 캠벨의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권능’의 사절(使節)이던 동물은 이제, 원시 시대처럼 인류를 가르치고 인류를 인도하지 않는다. 곰, 사자, 코끼리, 야생 염소, 가젤 영양은 이제 동물원 우리에 들어앉아 있을 뿐이다. 인간은 이제 처녀림 세계의 신인(新人)이 아니다. 인간의 이웃은 이제 들짐승이 아니라, 끊임없이 불바퀴 별을 도는 이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먹을 것과 살 데를 다투는 다른 인간이다. 지복(至福)의 석기 시대 수렵민의 삶과 삶의 양식이 우리 육신을 형상 짓고 우리 마음의 얼개를 짜놓았는데도, 그 수렵민의 세계는 우리 육신에도 남아 있지 않고 마음에도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수렵민들의 동물 사절에 관한 기억은, 우리가 광야로 나갈 때마다 깨어나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것으로 보아 우리 안에 잠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 기억은, 우리가 천둥소리에 놀랄 때도 잠을 깬다. 우리가 암벽화 동물로 들어설 때도 이 기억은, 그림을 알아보는 듯 잠을 깬다. 이 동굴의 샤먼이 탈혼망아(脫魂忘我) 상태에서 내려가던 우리 내면의 어둠이 어떤 어둠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꿈속에서 더러 찾아가는 것으로 보아 우리의 내부에도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삼국유사는 내게 많은 물음표를 안겨줬고, 숙제를 부여해준 책이다. 이런 책을 처음 만난 것은 아니다. 부족한 나는 때때로 훌륭하지만 어려운 책을 만났다. 처음 그런 책을 만났을 때 나의 반응은 지금 돌아보면 부끄러운 것이었다. ‘헛소리!’라고 여겼고 ‘괜히 어렵게 쓴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보면 그 책이 나를 넘어섰기 때문이고 내가 부족해서였지 대개 책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나를 절망시키고 한편으로는 나의 성장을 확인시켜 준 책 몇 권을 꼽아보면 이렇다. 1998년 초, 피터 드러커(Peter F. Drucker)의 책을 처음 읽을 때 나는 그 재미없음과 어려움에 분노했다. 그러면서 책값이 아까워 끝까지 읽었다. 중국인 장파(張法)의 ‘동양과 서양, 그리고 미학’은 2000년 초에 나를 항복시킨 책이다. 이 책은 ‘서론’도 채 읽지 못하고 포기했다. 이진경의 ‘노마디즘(nomadism)’도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이진경이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의 ‘천개의 고원’을 쉽게(?) 해설한 것이었는데, 나는 어깨의 뻐근함을 느끼며 1권만 겨우 읽을 수 있었다.

2001년 봄으로 기억하는 데, 피터 드러커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을 읽으면서 나는 나의 무지함을 깨닫게 되었고, 그의 깊은 통찰력에 고개를 숙였다.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1998년도에 읽은 책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나는 그 책에서 여러 가지를 배우며 재밌게 읽었다. 1998년과 다른 점은 바로 ‘나’였다. 내가 좀 더 성장하고 더 나아졌다는 점, 그래서 같은 저자의 책을 읽고도 그렇게 달랐던 것이다. 장파의 책은 ‘항복’한 후 2년 정도 지나서 다시 읽었는데, 아주 재밌게 읽었다. 그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잊었지만 당시에 받은 ‘책과 나 사이에 아무 것도 없다’는 느낌은 선명하다. 노마디즘은 아직 다시 읽어보지 않았는데, 언젠가 다시 읽게 될 것이고 그 때 나는 지난 몇 년 간 내가 노력하고 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삼국유사도 그럴 것이다.



■ 나의 목소리: 저자되기
이 부분은 숙제로 남긴다. 그냥 두면 잊혀 질 것 같아, 숙제하는 방법을 간단히 적어 둔다.

나는 이순신 장군을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이순신((李舜臣)에 대해 제대로 알고 싶어 난중일기(亂中日記)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순신에 대해 알기도 전에 책을 덮었다. 지루했기 때문이다. 나는 방법을 바꿨다. 이순신에 대한 흥미로운 자료와 책부터 찾아 읽기 시작했다.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를 시작으로, 이순신의 리더십과 전략을 경영에 접목한 책(경영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 온 나에게는 이런 책이 쉽게 다가왔다)을 읽었다. 다음으로 인터넷에서 이순신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이순신에 대한 연구서(일반인을 대상으로 출간된 전문서)를 읽어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난중일기를 읽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난중일기는 어느 정도 이순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읽는 것이 더 좋다. 신격화된 그의 모습 뒤의 인간 이순신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순신 알기’에서 활용한 방법은 재미에서 시작해서 내가 잘 아는 분야(관심 분야)로 확장하면서 기본 지식을 쌓고, 다음으로 이순신에 대한 깊이 있는 자료와 책들을 소화하는 것이었다.

이 방법을 삼국유사에도 적용해보려고 한다. 우선, 한국의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는 쉽고 재밌는 개론서(현재 ‘이현세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를 볼까 생각 중이다)에서 시작해서, 내 마음에 드는 한국의 사상가와 역사가의 책을 찾아 읽어 본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배경 지식이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이 때 다시 읽는 삼국유사는 오늘 읽은 삼국유사와 많이 다를 것이고 나는 좀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의 목소리: 인용
- ‘인용’에서 별다른 표기가 없을 경우, 저자의 말이다.
- ‘*’ 표시는 간단한 설명과 나의 느낌이다.

[6]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기전체 역사서의 체계를 세웠던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달리, 단군 조선부터고구려, 백제, 신라 사회를 불교를 위주로 기술하여, 우리나라의 무한한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 살아 있는 역사이자 불교사요 문화사이다.
- 김원중, 삼국유사의 역자

[16] ... ‘삼국유사’는 역사서이자 불교문화서요, 야담과 설화의 모음집이자 소중한 문학서이고, 문 · 사 · 철이 관통된 문화서라고 볼 수 있다.
- 김원중, 삼국유사의 역자

[23] 개인적 감정을 철저히 억눌러야 객관적 실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 방식은 일연의 기술 방식에 의해 철저하게 거부되었고 심지어 내팽개쳐졌다.
- 김원중, 삼국유사의 역자
* ‘문사일체(文史一體)’, ‘문학의 역사, 역사의 문학’. 일연의 독창성!

[35~36] ‘위서(魏書)’에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2,000년 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어 아사달(阿斯澾)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열어 조선이라고 불렀으니, 바로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이다.

[36~37] 환웅, 곰과 호랑이의 이야기.
* 뭔가 있고 느끼는 바도 있는데 표현하기 쉽지 않다. 고민해볼 부분이다.

[122~123] “백제는 보름달이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 이것을 점쟁이에게 물어보니 이렇게 말하였다. “보름달이란 가득 찬 것이고 가득 차면 기우는 법입니다. 초승달과 같다고 함은 가득 차지 않은 것이고 차지 않으면 점차 차게 되는 것입니다.” 왕은 노여워하며 그를 죽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보름달은 성대한 것이며 초승달은 미약한 것입니다. 생각건대 우리나라를 강성하고 신라는 미약해진다는 뜻입니다.” 왕은 기뻐하였다.
* 왕은 기뻐했지만 나라는 곧 망했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믿는 것을 듣는다. 그리하여 판단이 흐려지고 판단이 흐려지면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없고 그러면 망한다. 여기서 왕은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義慈王)이고, 당시 도처에서 백제가 망할 징조가 보였다.

[187] 동경(東京) 밝은 달에 밤새도록 노닐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내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 하리.
- 처용가(處容歌)
* 은근하구나!

[316~317] 해동(海東) 명현(名賢) 안홍(安弘)이 지은 ‘동도성립기(東都成立記)’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라 제27에는 여자가 임금이 되니 비록 도는 있으나 위험이 없어 구한이 침략하였다. 대궐 남쪽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운다면 이웃 나라가 침략하는 재앙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1층은 일본, 2층은 중화(中華), 3층은 오월(吳越), 4층은 탁라(托羅), 5층은 응유(鷹遊), 6층은 말갈(靺鞨), 7층은 거란[丹國], 8층은 여적(女狄), 9층은 예맥(穢貊)을 억누른다.”
* 신라 27대 왕은 선덕여왕(善德女王)이다. 의미가 담긴 물건은 상징이 되고 상징은 의식으로 강화되어 정신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사랑하는 남녀는 가장 먼저 반지를 교환한다. 그리고 사랑하던 남녀가 헤어질 때, 다른 것은 몰라도 반지만은 돌려준다. 왜? 그것이 사랑의 의미이고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돌려줄 수 없는 반지는, 손가락에서 뺌으로써 사랑의 잃음과 떠남을 받아들인다. 삼국유사에는 상징과 의미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다.

[327~330] 중생사(衆生寺)의 보살화상[大悲像]에 얽힌 이야기
* 중생사 보살화상에 얽힌 이야기는 내게 있어 삼국유사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쉽고 명확했다. 유명한 사물과 사람에게는 늘 어떤 이야기(story)가 따라 다닌다. 과거에는 그것을 유사(遺事)라고 불렀는지 모르겠으나, 현대에도 별로 다르지 않다.

[357~365] 남백월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 박박
* 재밌게 읽은 이야기 중 하나다. 낭자가 두 사람에게 지어 바친 시 2개가 좋다.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은 끝 부분에 일연(一然)이 더한 시 3개다. 분명하면서도 절묘하다.

[466] 한 솥의 국 맛을 아는 데 고기 한 점이면 충분하다.
- 하나를 알면 열을 알 수 있는가? 그 하나가 어떤 것이고,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의 안목이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525] “양쪽 다리 사이에 산 고기[馬]를 끼고 있는 것에 비하면 등에 말린 물고기를 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 혐오할 일인가?”
* 이렇게 깨우쳐 줄 수 있다면, 이렇게 은근히 비판할 수 있다면...

[528~529] ‘지론(智論)’ 제4권에 말하였다.
“옛날 계빈(罽賓) 삼장법사가 아란야법(阿蘭若法)을 행하여 일왕사(一王寺)에 도착하니, 절에서 큰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문지기는 그의 옷차림이 허름한 것을 보고는 문을 막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게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다 떨어진 옷을 입었다 하여 매번 들어가지 못하자, 임시 방편으로 좋은 옷을 빌려 입고 가니 문지기가 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았다. 자리에 참석한 후에 갖가지 좋은 음식을 입고 있는 옷에게 먼저 주니, 여러 사람들이 어째서 그렇게 하였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내가 이곳에 여러 차례 왔으나 매번 옷이 허름하여 들어오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이 옷 때문에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으니, 옷에게 먼저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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