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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1일 13시 28분 등록
세계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 인용문 >

1. 해제

고려의 많은 지식인들에게는 ‘아시아적 전망’, 특히 동아시아 상황 속의 중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여되어 있었고, 중국에 대해 수평적 혹은 대등적으로 대하려는 관념이 부족했다. 남의 문화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곧바로 우리 자신의 것에 대한 비하로 이어져 우리 것은 설자리를 잃어갔다. 일연은 문화의 작용이 상대적이기 때문에 삼투작용을 일으켜 중화의식이라는 기존의 굳어져버린 사유가 지켜왔던 문화적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일방적 문화적 세례가 아닌 호혜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필요성을 깊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연은 왜 <삼국유사>를 지었는가? 자주의식의 소산이다. 그리고 탈유가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의 민중 의식은 인간 평등이라는 자신의 불교적 가치관을 근본으로 하면서 피폐한 당시 사회에 대두된 민중에 대한 자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삼국사기>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왕권 중심의 유교적 통치 이념과 그러한 김부식의 저술 태도를 비판하려 하였고 전혀 다른 차원의 역사서를 남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의 성격은 역사서이자 불교문화사서요, 야담과 설화의 모음집이자 소중한 문학서이고, 문사철이 관통된 문화서라고 볼 수 있다.

‘유사(遺事)’라는 구성 체제의 독특함이 엿보이는 방식을 취하였다. ‘유’는 ‘잃어버리다’, ‘자취’, ‘남다’ 등의 의미이고 ‘사’는 ‘사실’이나 ‘사건’ ‘사적’을 뜻한다. 따라서 ‘유사’를 이야기 정도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유사’이기에 학자적 습벽과 행간마다 번득이는 기지와 자연스러움이 넘쳐흐르고 있다. 일연은 인물 위주의 역사서로 기술 방향을 정하였다. 일연은 자신을 포함한 그 당시 시대를 움직인 인물들을 재구성하고, 그 근거를 그 이전의 문헌과 향언, 방언 등에서 취하였다.

일연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자신이 느낀 바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개인적 감정을 억눌러야 객관적 실체에 제대로 접근할 수 있으리라는 전통적인 역사 서술방식은 일연의 기술 방식에 의해 철저하게 거부되었고 심지어 내팽개쳐졌다. 일연은 고조선을 위만조선보다 앞에 두는 의연함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계층을 이루는 부류가 유가와 왕, 제휴 등 지도층 인사와 지식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개방적 사고를 힘껏 외치며 과단성 있게 다루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역사사가가 아닌 선승의 손으로 쓴 만큼 연대의 착오도 많고 이용 기사도 꼼꼼하지 않은 등의 결함이 있다. ‘신라유사’라고 해도 될 만큼 신라의 사료를 지나치게 많이 인용한 것은 제목이 <삼국유사>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쉬움으로 남는다. 신화나 일화, 사건을 예로 든 것은 흥미를 느끼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저술 의도를 보다 확고하게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채용하고 있지만 거짓되거나 허무맹랑한 것도 있어 사가로서 엄정성을 획득한 것으로 평가하기에 부족한 것들도 있다.

유사의 구성은 5권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사의 정수로 평가되는 <기이>편은 역사를 전공한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독자들도 읽어보아야 할 중요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2. 기이 제1(紀異第一)
: 고조선 이하 삼한, 부여, 고구려와 통일 이전의 신라 등 국가의 흥망, 성쇠, 신화, 전설 등을 기록한 편이다.

환웅이 잠시 사람으로 변해 그녀와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으니 단군왐검이라고 불렀다. 이부분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환웅의 천신 숭배 집단과 웅녀의 곰 토템 부족이 통합되어 하나의 통치 집단이 되었다는 것이다.

알의 원형은 태양의 상징이므로 이 알에 상서로운 기운이 비추었다는 것은 태양 신화에 속한다.

3. 기이 제2(紀異第二)
: 신라 문무왕 이후부터 경순왕까지의 신라 및 백제, 가락국의 기록을 싣고 있다. 주로 신라에 초점을 맞추고 호국 불교의 특색이 강한 면모를 다루고 있다. 신라의 향가가 많이 등장한다.

맨 마지막의 ‘가락국기’는 지금은 잊혀진 왕조 가야, 김부식에 의해서도 철저히 외면당했던 가야, 아니 오히려 일본인들에 의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가 되는 비극적 왕조 가야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수로왕 신화를 시작으로 400년 정도 지속된 가야에 관한 내용이다.

찬기파랑가

열어 젖히자 벗어나는 달이
흰구름 좇아 떠간 자리에
백사장 펼친 물가에
기파랑의 모습이 잠겼어라.
일오천 자갈벌에서
낭의 지니신 마음 좇으려 하네.
아! 잣나무가지 높아
서리 모를 씩씩한 모습이여!

* 충담사(경덕왕 시대의 승려)가 화랑 기파랑을 추모하며 지은 노래


4. 흥법 제3(興法 第三)
: 신라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의 수용 과정과 융성 및 고승들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연은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그들의 흥망성쇠가 결정되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특히 도교에 탐닉하여 불교를 외면한 고구려가 멸망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난새와 봉황의 새끼는 어려서부터 하늘 높은 곳에 뜻을 두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부터 물결을 헤칠 기세를 품는다 하는데, 네가 그와 같이 한다면 가히 보살의 행동이라 할 수 있다.”

5. 탑상 제4(塔像第四)
: 절에 대한 기록과 탑과 불상의 유래에 관한 내용으로 모두 31항목이다. 일연은 재래 신앙을 포섭하면서 불교 신앙의 차원을 높여 나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데, 국론을 한 군데로 집약시키는 수단으로 불교보다 나은 것이 없다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밀교의 비법을 도입하면서 거대한 불사를 이루게 되는 과정도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6. 의해 제5(義解第五)
: 삼국유사는 승려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루고 있는데 이 편은 원광, 자장, 원효 등의 이야기 등을 수록하고 있다. 매끄러운 전개와 깔끔하면서도 정제된 문체가 구사되어 있는 이 편은 <삼국유사>가 획득하고 있는 문학적 미덕이다.

7. <신주> <감통> <피은> <효선>
신주편은 밀교의 이적과 이승(異僧)들에 대한 내용이며, 감통편은 불교 신앙의 기적편이라 할 수 있으며, 피은편은 제목 그대로 세상을 피하여 은둔하려는 생각을 가진 승려들의 이야기이며, 맨 마지막 효선편은 불교적인 선행과 부모에 대한 효도의 미담 5편이 수록되어 있다.

일연은 현세에서 업과 고통을 없애고 복을 구하는 밀교에 대해 비판적이지 않았다. 밀교는 신라인의 풍류 의식과 들어맞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주력 신앙을 형성하였다.


<소감>

우리나라 역사에 관련된 서적은 처음 읽어 보았다. 소아병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우리만의 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학생시절 별 감응 없이 수차례 외웠던 향가들을 다시 보니 그 높은 문학성에 새삼 느낌이 새로웠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서 하나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는 것이 다소 민망하다는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자주적이지 못한 역사교육 속에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쉬운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정말 어려운 책 같은 느낌이 들고 어떻게 보면 별 내용이 없는 것 같다가도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많은 뜻들이 숨어있는 것 같았다. 어느 대목에서는 우리 역사의 시작에 대한 신화서적이고 어느 대목에서는 참 진리를 설파하는 종교서적 같다가도 어느 대목에 이르면 할머니가 들려준 구수한 옛날이야기 같은 여러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어디선가 한번은 스쳐 들었던 이야기들이라 낯익었고 설사 접하지 않았었더라도 내가 속해 있는 물길의 흐름이라 생소하지는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건국신화가 유난히 ‘난생(卵生)설화’가 많았다는 점이 새삼 흥미를 끌었다. 태양의 상징, 생명의 근원, 시작, 스스로 깨고 나오는 역동적 힘 등의 의미 외에 좀더 자세하게 우리 민족문화에 기반한 ‘알’이 내포하는 의미들을 파헤친 자료가 있다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 진리는 우리의 일상과 평범한 삶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단지 모르고 지나칠 뿐임을 책 곳곳에서 일깨우고 있다. 깨달음의 상징인 보살과 부처는 때로는 아이나 평범한 촌부의 모습으로 때로는 유혹적인 여인으로 나타나 깨달음과 진리를 전달해주지만 많은 이들이 특히, 깨달았다고 하는 이들마저도 무심코 놓치고 만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그들이 보살과 부처의 진신(眞身)임을 깨닫는다. 우리는 자연과 일상 속에 숨겨진 수많은 우주의 지혜를 읽는 안목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었다. 즉, 우리의 고정적이고 파편화된 사고 속에서는 눈앞에 있는 진리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들었다.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처럼 자기초월을 강조하는 불교의 원리가 또 한편으로는 국교가 되어 현실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할까지 담당해야 했던 당시의 시대를 생각하면 과연 양자를 양립시키고 조화를 유지한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계속되는 불협화음이 있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마지막으로 원문에 충실하여 직역하고 문맥 파악을 위해 상세한 역주를 달아 의미를 놓치지 않게 해준 역자의 노력이 돋보인 책이었다.


<아쉬운 점들>

물론 일반적인 역사서적에 비하면 객관적 사료의 나열이 아닌 저자의 철학과 입장이 많이 담겨져 있지만 애초에 그럴 목적이었다면 시대 상황에 맞는 좀더 풍부하고 적극적인 해석이 있었다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강했다. 나의 욕심일지는 모르지만 좀더 자신의 사상과 철학이 담겼다면 싶었다.

둘째는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설법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욕망을 초월하고 해탈에 이르러야 하는 깨달음의 이야기로 많은 부분이 채워져 있는 것은 자칫 역사서적으로서의 중심을 잃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대사에 초점을 둔 기이 편과 불교의 역사와 관련 기록에 치중한 나머지 부분들을 분리해서 두 권의 다른 책으로 발행하였다면 각각의 성격이 또렷이 나타나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사료가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의 사(事)라는 글자가 역사 史자가 아닌 것으로 그 흠을 덮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해제에서의 표현처럼 ‘사실’이라기 보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하지만 그 속에는 분명 수 많은 ‘진실과 민족혼’이 살아 숨쉬는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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