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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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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3일 00시 57분 등록

1. 나에게 들어온 글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삼국유사>는 기전체 역사서의 체계를 세웠던 김부식의 <삼국사기>와는 달리, 단군 조선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사회를 불교 위주로 기술하여, 우리 나라의 무한한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 살아 있는 역사이자 불교사요 문화사이다. P6

일연은 중국이 지식인 사회를 지배하던 상황하에서 화이 관념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자주 문화적 관점에 의거한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의의를 갖는다. P8

일연은 우리 민족의 자존을 지키면서 중국 불교 문화를 수용, 활용하는 유연성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 문학과의 상호 교류를 통해 자리매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P9

그의 태도는 탈 유가적 가치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의 민중 의식은 인간평등이라는 자신의 불교적 가치관을 근본으로 하면서 피폐한 당시 사회에 대두된 민중에 대한 자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P12

일연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인물들을 현재에 살아있는 것처럼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P23

紀異第一
우리 개국 시조 단군의 존재를 처음으로 내세우면서 신이로움의 정당성과 비합리주의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으며 민족 자주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P33

“무릇 덕이 있는 자는 치아가 많다 하니, 마땅히 잇금으로 시험해 봅시다.”이에 떡을 깨물어 시험해보니, 왕의 잇금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즉위 하였다. 이런 연유로 왕을 잇금이라 하였다. – 제3대 노례왕 P75

“내가 이 나라에 오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인데 지금 어떻게 돌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짐의 비가 짜놓은 비단이 있으니, 이것을 가지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것입니다. – 연오랑과 세오녀 P82

“ 신이 듣건대, 임금에게 근심이 있으면 신하가 욕되고, 임금이 욕되면 신하는 그 일을 위해 죽어야 한다고 합니다. 만약 어려운가 쉬운가를 따져보고 행동하면 충성스럽지 못하다 하고, 죽을지 살지를 따져보고 나서 움직이면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왜왕이 노하여 제상의 발바닥 살갗을 도려낸 후 갈대를 베어다 놓고 그 위를 걷게 하였다.(오늘날 갈대에 핏자국이 있는 것을 세속에서는 제상의 피라고 한다.)– 내물왕과 김제상 P88

“나라의 흥망은 하늘에 달려있다. 만약 하늘이 고구려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내가 어찌 감히 바랄 수 있겠는가.” – 진흥왕 P100

“꽃 그림에 나비가 없어 향기가 없는 것을 알았다. 이는 당나라 황제가 배필이 없는 나를 놀린 것이다.” – 선덕왕이 미리 안 세가지 일 P108

유순한 자를 품어주고 배반한 자를 정벌하는 것이 선왕의 아름다운 법이요, 망한 것을 일으켜주고 끊어진 것을 이어주는 것이 과거 성현들의 공통된 규범이니, 일은 반드시 옛것을 본받아 역사책에 전해야 할 것이다. –태종 춘추공 P127

33천 가운데 한 사람이 신라에 내려왔으니 바로 김유신이다. P132

紀異第二
왕은 궁궐로 돌아와 그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월성 천존고에 보관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병이 낫고, 가물 때는 비가 내리고, 장마 때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잠잠해졌으므로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아 일컬었다. P154

“옛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하니, 바닷속 짐승인들 어찌 여러 사람들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수로부인 P161

“다른 사람의 윗자리에 있을 만한데도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아래에 앉아있는 사람이 그 하나요, 세력 있고 부유한데도 의복이 검소한 사람이 그 둘이요, 본래 귀한 세력이 있는데도 그 위세를 펼치지 않는 사람이 그 셋입니다.” –제48대 경문대왕 P182 (20050412)

이제 조서를 적어 보내니 바라건대 마음으로써 자세히 살피기를 바라오. 토끼와 사냥개가 모두 지쳐 피곤하면 마침내는 비웃음을 사게 되고, 조개와 황새가 서로 버텨도 역시 웃음 거리가 되니, 마땅히 잘못을 거듭하지 말라는 경계로 감아 후회하는 일은 스스로 초래하지 말아야 할 것이오. - 후백제의 견훤 P223

이에 수로왕은 국가를 다스리는 집을 정돈하여, 백성들을 아들처럼 사랑하였다. 그 교화는 엄숙하지 않아도 위엄이 있고, 그 정사는 엄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졌다. 더구나 왕이 왕후와 함께 사는 것이 마치 하늘에 땅이 있고 해에 달이 있으며, 양에 음이 있는 것과 비유 할 수 있었다. – 가락국기 P245

興法第三
하늘의 조화는 아득한 옛날로부터 전해 오니,
대체로 잔재주 부리기 어려워라.
나이 먹은 사람들은 절로 터득하여 노래 부르고 춤추며,
옆사람을 이끌어 눈을 뜨게 하네 –마라난타가 백제의 불교를 열다. P269

그는 대나무와 잣나무 같은 절개로 자질을 삼고 물과 거울 같은 지조에 뜻을 두었으며, 선행을 쌓은 가문의 증손으로 궁궐 안의 임금의 보좌가 될 것을 바라고 거룩한 조정의 충신으로 태평한 시절에 등용되어 보좌할 것을 원하였다. – 원종이 불법을 일으키고 염촉이 몸을 바치다. P282

성인의 지혜는 여태까지 만세의 계책이며,
구구한 여론은 가을 터럭 끝 같은 비방뿐이다. –원종을 위하여 P287

불교는 넓디넓은 바다처럼 끝이 없어,
백 갈래 유교, 도교를 모두 받아들이네.
우습구나, 고구려 왕은 웅덩이를 막았지만,
와룡이 바다로 옮겨간 것을 알지 못하네.
– 보장왕이 노자를 받들고 보덕이 암자를 옮기다. P297 (20050413)

塔像第四
지금도 사람들이 신선을 일컬어 미륵선화라 하고, 남에게 중매하는 사람을 미시라고 하는 것은 모두 진자가 남긴 풍습이다. - 미륵선화 미시랑과 진자사 P355

불교를 배우면 부처가 되어야 하고, 참된 마음을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얻어야 한다. 지금우리가 이미 머리 깎고 승려가 되었으니, 속세에 얽매인 것을 벗어버리고 무상의 도를 이루는 것이 당연한 노릇이거늘, 어찌 계속 티끌 같은 세상에 파묻혀 세속의 무리들과 함께 지내려 하는가? - 남백월의 두 성인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P359

이 전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지난 일을 곰곰이 돌이켜보니, 어찌 반드시 조신의 꿈만 그러하겠는가? 지금 모든 사람이 인간 세상의 즐거움을 알아 기뻐하면서 애를 쓰지만 특별히 깨닫지 못할 뿐이다.

즐거운 시간은 잠시뿐 마음은 어느새 시들어
남 모르는 근심 속에 젊던 얼굴 늙었네.
다시는 좁쌀밥 익기를 기다리지 말지니,
바야흐로 힘든 삶 한 순간의 꿈인걸 깨달았네.
몸을 닦을지 말지는 먼저 뜻을 성실하게 해야 하거늘
홀아비는 미인을 꿈꾸고 도적은 장물을 꿈꾸네
어찌 가을날 맑은 밤의 꿈으로
때때로 눈을 감아 청량의 세계에 이르는가.
- 낙산의 두 성인 관음과 정취, 그리고 조신 P376

‘나는 장차 입적 할 것이나 너를 위해 내 그림자를 남겨두겠다. 네가 만약 독한 마음이 생긴다면 그때마다 언제나 내 그림자를 보아라 그러면 그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 어산의 부처 그림자 P383

나는 괴이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부처의 위엄과 신령스러움이 현세에 이처럼 빨리 자취를 나타내어 만물을 이롭게 하는 것을 보았으니, 부처의 제자된 자로서 어찌 묵묵히 말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겠는가? – 백운자, 오대산 문수사의 석탑기 P411 (20050414)

義解第五
살생을 가려서 하는 것은 육제일과 봄, 여름에는 살생을 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시기를 가리라는 것이다. 부리는 가축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 소, 닭, 개를 말하는 것이다. 미물을 죽이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 고기가 한점도 되지 못하는 것을 말하니, 이는 바로 대상을 가리라는 것이다. 또한 죽일 수 있는 것도 꼭 필요한 양만큼만 죽이고 많이 죽이지는 말라 이것이 곧 세속의 좋은 계이다.

원광은 성품이 텅비고 고요한 것을 좋아하였으며, 말할 때는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얼굴에는 성난 안색을 보이지 않았다. P425 - 원광이 서쪽으로 유학가다.

상인께서는 고향으로 돌아가신 후 화엄경을 강연하여 법계가 없는 인연의 법칙으로 선양하며 겹겹의 제망으로 부처님의 나라를 새롭게 하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신다고 하니 기쁨이 뛸 듯이 깊어집니다. - 의상이 화엄종을 전하다 P465

神呪第六
<신주>편은 밀교 신승의 사적이란 뜻이며, 밀교승이 ‘신비스런 주문’을 외우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편에서 다뤄지는 밀본법사, 혜통, 명랑은 모두 밀교승이다. 말하자면 밀교는 불교의 세계를 거쳐 궁극에 이르는 세계이다. 일연은 현세에서 업과 고통을 없애고 복을 구하는 밀교에 비판적이지 않았다. P499

붉은색과 자주색이 휘날려 얼마나 적색을 어지럽혔던가,
아! 물고기의 논이 어리석은 자를 속였구나.
거사의 손가락이 가볍게 튕기지 않았더라면,
상자에 옥 같은 돌을 얼마나 담았을까. –밀본법사가 요상한 귀신을 꺾다 P503

感通第七
삼국유사 전체에서 이 편은 불교 신앙의 기적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의해>편과 유사하다. 평범한 불교 신자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 신라사회에서 일반인들에게 훨씬 친숙하게 다가선 불교의 위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모두 10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조 한 조 읽어 가면 불교를 사고의 중심에 두고 실천하려는 생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P512

계집종 욱면이 염불하여 극락으로 오르다. P517

경흥법사는 갑자기 병들어 한달이나 앓았다. 이때 한 여승이 찾아와 문안을 드리면서 <화엄경>가운데 있는 “착한 벗이 병을 고쳐준다.”는 설로 말하였다. “지금 법사의 질병은 근심으로 생긴것이니, 웃으며 즐거워하면 나을 수 있습니다.” –경흥이 성인을 만나다. P524

8년 정유년에 낙성회를 베풀고 효소왕이 직접 행차하여 공양하는데, 행색이 초라한 비구승이 몸을 굽히고 뜰에 서있다가 왕에게 청하였다. “소승도 이 재에 참석하고자 합니다.” 왕은 비구승에게 맨 끝자리에 앉기를 허락하였다. 재가 끝나갈 즈음 왕이 비구승에게 농담조로 말하였다. “이제 가거든 국왕이 직접 공양하는 재에 참여하였다는 말을 하지 말아라.” 비구승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진신 부처를 공양하였다는 말씀을 하지 마십시요.” -진신석가가 공양을 받다. P527

바람이 종이돈을 날려 저승 가는 누이의 노자를 삼게 하였고,
피리소리는 밝은 달을 움직여 항아를 머무르게 했네.
도솔천이 하늘처럼 멀다고 말하지 말라,
만덕화 한 곡조로 즐겨 맞이하리 - 월명사의 도솔가 P533

避隱第八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삶의 방식으로 내세 정토에 귀의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P547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여 이름을 다투고, 자신을 드러내어 남을 덮는 것은 뜻있는 선비가 할 일이 아니네. 마음을 가다듬고 다만 때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네.” – 물계자 P566

孝善第九
옛날 곽거가 아들을 땅에 묻으려 하자 하늘이 금솥을 내려주었는데, 지금 손순이 아이를 묻으려 하자 땅에서 돌종이 솟았으니 과거의 효도와 손순의 효도를 천지가 함께 본 것이다.
- 손순이 아이를 묻다(흥덕왕때) P580

처녀가 그런 사실을 말하자 어머니가 큰소리로 울고, 처녀는 어머니를 배만 부르게 봉양하고 마음은 기쁘게 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여 서로 붙들고 우는 것입니다. P581 (20050415)


2. 내 안에서 재창조된 생각들

이 책을 읽은 감상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라면 ‘재미’있었다. 이런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를 대하면서 단순히 ‘재미’있었다고 하면 너무 깊이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이 그렇다. 이러한 재미와 관심이야 말로 창조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재미있고 쉽게 읽히지만 한번 생각하고, 두 번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 그러한 것이 바로 삼국유사의 힘이자 사실의 기록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닌가 한다. 나에게는 ‘조신의 꿈’ 대목이 크게 다가왔다. 그토록 바라던 여인을 꿈속에서 만나 해로하지만 현세에서 바라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보여 주듯 모든 것은 꿈처럼 깨어나고 머리는 꿈속의 덧없는 세월처럼 하얗게 새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조신의 모습이 남 같지 않음은 그 동안 하나라도 더 가지기 위해 안달복달 하며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삼국유사의 위대함은 바로 이러한 ‘현재에도 반복되는’ 과거에 대한, 인간에 대한 기록이란 점이 아닌가 한다.

불교에 있어서도 기독교적 사고방식에 익숙한 나머지, 일견 편향된 시각으로 바라보았었는데, 불교에 있어서도 기독교에서처럼 많은 기적과 이사 등이 있었으며 이러한 것이 기록되고 전해 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채로웠다. 그리고 기독교 윤리가 서양 지배계급의 논리를 자발적이던 아니던 뒷받침 했던 것과는 달리, 불교의 사상은 많은 민중의 사상과 생각을 존중하는 평등 사상이 자리잡는 근본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소중하게 느껴 졌다.
‘불교를 배우면 부처가 되어야 하고, 참된 마음을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얻어야 한다.’는 노힐부득의 이야기는 불교의 진리에 대해 함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절대자를 향한 무조건 적인 순종과 희생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고 수련하며 실천해 가는 가운데 진리를 터득해 자신 안의 소우주를 발견해 가는 것은 어쩌면 현대인들에게 더 필요한 자기 성찰과 실천의 교리라는 생각이 든다.

단군을 역사의 시작으로 보고 대세의 흐름이었던 중국의 화의주의 사상과 유교를 거스르며 불교의 중요성과 평등 사상, 그리고 왕의 역사가 아닌 민중의 역사를 기록 하고자 하였던 일연은 그 당시에도 수로부인의 설화에서처럼 ‘여러 사람의 말은 무쇠도 녹인다’하는 생각을 기본으로 민중의 힘과 또 기록의 중요성을 깨달았던 것이다. 비록 이러한 문화재적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깊이 느끼지는 못하겠으나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이 어떤 배경하에서 나왔으며 그것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깊이 이해한다면 더 많은 것을 깨달 을 수 있었을 텐데, 사고의 좁음이 아쉬웠다.

삼국유사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특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감통, 피은과 효선등의 보통 사람의 이야기는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삼국유사의 신기한 어쩌면, 기묘한 이야기가 일전처럼 거부감 없이 이야기로 자연스레 받아들여 지는 것은 새로운 경험 이었다. 이는 이 책을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가 접해 왔던 이야기들이 단순히 현상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것이 그 당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작용하였으며 행동 규범의 하나로 어떻게 작용되었는지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사람들의 삶과 생각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그리하여 삼국유사속에 담긴 이야기가 어쩌면 내 피에도 자연스레 흘러내려 오는 나의 조상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가 된 것이다.


3. 저자의 관점 속으로

삼국유사에 관한 책을 쓴다면 제일 먼저 생각 났던 부분은 본문에 나오는 장소나 유적을 함께 보여 줄 수 있는 책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상상하면서 보는 재미도 있지만 유심히 접하지 않았던 것이어서 상상하는 것이 쉽지 많은 않다. 그림과 함께 설명이 된다면 더 관심 깊게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한가지는 관련된 설화를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서 어린 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게 ‘이야기 삼국유사’의 형식으로 재미있는 삽화와 함께 담아 내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앞의 두 가지의 구성은 이미 기존에 도서가 나와 있었다. 나의 무지함과 무관심으로 인한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삼국유사를 현대적 의미로 해석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기본으로 요즘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데 있어 과거 현인의 이야기를 ‘마중물’ 삼아 풀어 보는 것이다.

노신의 꿈 이야기를 통해서 부귀영화만을 추구하는 것의 허망함을 지적해 보거나, 피은의 사상을 집어 보면서, 고속으로 주행하던 자동차를 저속 기어로 바꾸듯이 생활의 패턴을 여유롭게 바꾸어 여가를 즐기고 삶의 질을 향상 시켜 만족을 추구하자는 ‘다운시프트(downshift)’의 삶의 자세를 찾아보거나, 감통의 이야기들을 통해 종교의 의미를 근원적으로 집어보는 것도 괜찮은 접근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독교의 오병이어의 의미와 불교에서 대성이 품팔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게 시주하는 등의 기적에서 모든 것을 내어 놓고 바칠 때 일어나는 기적을 통해 믿음과 종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집어 보는 것이 그것이다.

때로는 사실의 정확한 기술보다 한줄의 은유적인 글이 혹은 한번의 기적이 더 큰 감동을 줄 때가 있다. 어쩌면 역사는 실증적이고 자연적인 것과 사상적이고 초자연적인 것의 대립을 통해 발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깨달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접하는 일상에 있는데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효소왕과 진신석가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때로는 정말 소중한 것은 가까운데 있어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진리를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부터 그리고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로부터 찾을 때 참된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이유도 그러한 것일지 모른다. 후세에 남길 만한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더 소중히 하고 기록해 둔다면 현세의 자신의 삶도 풍요로워 질 것이며 자신의 깨달음을 후세에도 전할 수 있지 않을까? 기록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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