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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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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8일 21시 54분 등록
♤ 인용

[저자 서문]

지난 연구 경력을 돌이켜볼 때, 나의 가장 뛰어난 대학원생들은 최근 몇 년간 나와 함께 연구를 수행한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애초부터 불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상당수의 실험들은 이 학생들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한국어판 저자 서문]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연구나 이론은 후속 연구들을 통하여,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통하여 계속해서 수정 보완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한국판이 나오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서론

"중국 사람들은 사물은 늘 변화하며 언젠가는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고 믿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부분만을 떼어내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볼 때 서양 사람들은 훨씬 더 단순하고 기계적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큰 그림보다는 부분적인 사물 그 자체, 혹은 사람 자체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물의 행위를 지배하는 규칙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1. 동양의 도와 서양의 삼단논법
고대 그리스와 중국의 철학, 과학, 그리고 사회 구조 (과학과 수학)

본질(essence)이란 한 사물의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속성이다.
본질이 바뀌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사물이 아니다.
본질적이지 않는 속성은 '우연적(accidental)' 속성이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습관적으로 행한 작업 중 하나는 사물의 속성을
분석하고, 그 추상화된 속성에 의거하며 사물을 범주화하는 것이었다.
그런 후에 각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들에 근거하여 그 범주에 속하는
사물들의 특징과, 그 사물들의 행위의 원인을 설명하고자 했다.

혜성을 예로 들어보자. 그리스인들은 혜성의 다양한 속성을 파악하고
그 속성에 따라 혜성을 다양한 추상성의 수준에서 범주화했다.
즉, 특정한 '이 혜성(the comet)' , '혜성으 일종(a comet)', 혹은
'천체(a heavenly body)', '움직이는 사물(a moving object)'등과 같이
추상성의 정도가 다른 여러 수준에서 범주화하였다. 그리하여 각기 다른
수준의 범주를 지배하는 규칙에 근거하여 혜성의 운동을 설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사물 자체'를 분석과 주의(attention)의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의 철학 정신에 기인한다.


2. 동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현대 동양인과 서양인의 자기 개념
'개인은 각기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할 떄,
각각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이 된다"

동양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남들과 마찰 없이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치지만,
서양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도록 가르친다.

사물의 속성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훈련받은 아이들은 스스로 독립적인 행동을 하도록 교육받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훈련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영향을 받는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미리 예측하도록 교육받는다.



3.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세상을 지각하는 방법의 차이 (주의 과정과 지각 과정)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를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물들의 조합으로 생각했지만 고대 중국 철학자들은 우주를 하나의 연속적인 물질로 간주했다.

서양인들은 과거를 기억할 때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회상하지만,
동양인에게는 그런 경향이 약하게 발견된다.

장-독립적 (field-independent)' 장-의존적(field-dependent)'

서양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가 중요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일체감이 중요한 것이다.

동양인들은 사물이란 항상 변하는 존재이며 현재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해서 계속 그 방향으로 변하리라고 예측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믿는다.

동양인들은 전체 맥락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사건들 사이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데 익숙하며, 세상이 복잡하고 매우 가변적인 곳이라 믿는다. 또한 세상의 구성 요소들은 서로 얽혀 있고, 세상사는 양극단 사이에서 순환을 반복하는 형태로 진행되며 그러한 사건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동과 조정이 꼭 필요하다고 믿는다.

서양인들은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만 설명하려 든다.

4.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동양과 서양의 인과론적 사고 (인과적 추리)

서양인의 '단순성 추구 경향'과 동양인의 '복잡성 추구 경향'은 인과 관계에 대한 접근 방식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조직하는 방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5.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동양의 관계와 서양의 규칙 (지식의 조직화)
고대 중국의 철학자들이 범주화에 그리 관심이 없었고 대신에
'부분-전체'라는 각도에서 세상을 이해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직접적인 이유로 동양의 어린이들은 어릴 때부터 관계성에 주목하도록 사회화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서양에서 행위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동양인에게 행위란 다른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거나 주어진 상황에 자기가 적응한 결과이다.

언어의 효과와 무관한 문화의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화의 효과와는 독립적인 언어의 효과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언어 체계가 표상 체계와 관련되어 있는 한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인들은 세상를 '관계'로 파악하고 서양인들은 범주로 묶일 수 있는 '사물'로 파악한다.


6.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서양의 논리와 동양의 중용 (추론 과정)

1) 변화의 원리
- 동양의 사고에서 우주는 정적인 곳이 아닌 역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곳이다.
어떤 사건이 현재 특정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은 그 상태가 곧 변화할 것이라는 징후로 간주된다. 현실은 끊임없이 변동하기 때문에 현신을 반영하는 개념들 역시 고정적이고 객관적이기보다는 유동적이고 주관적이어야 한다.

2) 모순의 원리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대립(oppositions), 역설(paradoxes), 변칙(anomalies)이 늘 발생하며 신/구, 선/악, 강/약이 모든 사물 안에 동시에 존재한다. 대립은 사실상 서로를 완성시키고 보완하는 기능을 한다.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
변화와 대립에 대한 그러한 견해는 자연스레 어떤 사물도 다른 것들과 고립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다른 무수한 것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어느 하나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서는 그것이 연관되어 있는 다른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변화는 모순을 발생시키고, 모순은 다시 변화를 야기한다.
끊임없는 변화와 모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을 논하면서
다른 부분들과의 관계나 그것의 이전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변화의 원리'는 삶이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끊임없는 변화 과정이며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동양과 서양은 우주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가정이 다르고, 어디에 주의의 초점을 두는지도 다르고, 변인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하는 능력과 복잡한 환경에 놓여 있는 사물을 구별하는 능력에서 다르고, 행동의 원인을 설명하는 방식에서 다르고, 세상를 범주로 파악하는지 아니면 관계로 파악하는지의 여부에서도 다르고, 마지막으로 형식 논리의 규칙을 포함한 '규칙'을 사용하는 정도에서 다르다.


7. 동양과 서양의 사보 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
경제구조와 사회적 행위
인간 세상과 자연계의 본질에 대한 신념이 사회적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습관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자신을 사회적 의무와 인간 관계들로 이루어진 커다른 네트워크속에서 파악하면, 당연히 이 우주는 독립적이고 불연속적인 원자들의 결합이 아니라 연속적인 관계들의 유기체로 인식된다.

흥미롭게도 수렵과 사냥을 하는 사람들과 현대 산업 사회의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정도로 장독립적이다.


8.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
실생활에 주는 교훈

미국인들은 행동을 제약하는 상황의 힘을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한국인들은 이를 매우 잘 인식했다.
미국인들은 '규칙'에 의거하여 범주화했지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유사성을 근거로 사물들을 짝지었다.

한 나라의 변호사의 수 / 한 나라의 엔지니어의 수

중국의 판사는 법을 추상적인 실체가 아니라 각 개인에게 따로 따로
적용되어야 하는 융통성 있는 것으로 본다.
각 개인의상황에 맞게 적용될 수 없는 법은 인간적이지 못하며 결코 법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법이란 과학이 아니라 예술이다.

서양인들은 자유로운 아이디어 교환을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로 신봉한다.
아무리 해로운 사상일지라도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서 그 실체가 결국은 드러날 것이므로 결코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믿는다.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은 단순히 사회적 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또한 그 여파는 연구 논문의 수와 양적인 결과뿐만 아니라 수사학이나 커뮤니케이션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의 연구는, 상이한 사고방식을 가진 문화권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 어떤 문제든지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수렴될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네는 동양인처럼 행동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양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그 통합이 두 문화의 가장 좋은 특성들만을 모아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소감
자신과 세상에 대한 시각이 많은 부분, 이 책에서
동양이라는 체로 걸러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관계를 중시하는 문화에 익숙한 공동체, 이 테두리안에서 벗어갈 것이냐,
아니면 묻힐것이냐를 갈등하며 지내는 내모습을 본다.
상당부분을 그저 '모난 돌이 정맞는다'는 속담이 인지상정인듯이
전체를 위해 부분은 얼마든지 생략될 수 있다는 소리없는 힘에 눌려
나는 대체로 침묵보다는 함묵해온 것을 보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다는 아니다. 주변상황의 논리보다는 적절한 내 주장을
펼칠 논거가 제대로 적절한 시기에 작동되지 않아 이미 선택보다는
어쩔 수 없는 동의의 상태로 자신을 놓아 두었던 일이 다반사였다.
그리고 논리적 주장의 구조물을 세우는 데 턱없이 부족한 내 모습이
나만의 문제라기보다 동양적 성장배경속에서 지내는 누구나가 겪어나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을 시도를 했다는 것이
놀라왔다. 논리를 세우기 위해서 경험보다는 이상을 추구할 수 밖에 없었던
서양사람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그러한 문화적으로 습득된 시선이 경제 구조와 사회적 행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흥미로왔다.

특히 이 책은 서문속에서 저자의 치열한 고뇌가 느껴졌다.
독자들을 염두해 두고 쓰는 글이 독자에게 어떠한 사고를 불러일으키며
어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언급한 점들이
깊이 들어왔다.

선택이냐 동의냐.. 나는 동의도 선택이라고 생각해왔고,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선택을 하려면 다른 모든 것에 대해 배타적인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을 때 어떻게 그것을 해결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을 무시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아니라면,
내 스스로가 그 토대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마, 내 고민은 계속 될 것이다.


♤ 저자라면..

훗날에 마지막 결론부분에 그러면 어떠한 모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또 하나의 책으로 묶어내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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