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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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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5일 21시 26분 등록
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 2003)
: 리처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 저 / 최인철 역 / 김영사 /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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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와 나의 대화: 소고
하나. 일본과 미국 학생들에게 물고기가 중앙에 등장하는 물속 장면 애니메이션을 20초가량 보여주었다. 양쪽 모두 중앙의 물고기를 비슷하게 기억했지만 물풀이나 개구리, 우렁이 등 배경 요소에 대해서는 일본 학생들이 미국 학생보다 60% 이상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둘. 다른 사람에게 차(茶, tea)를 청하는 상황에서 중국인은 ‘더 마실래(Drink more)?’라고 묻지만, 미국 사람은 ‘차 더 할래(More tea)?’라고 묻는다. 중국인들의 관점에서는 그 상황에서 마시고 있는 것은 분명 ‘차’이기 때문에, 명사인 ‘차’를 문장 안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지만, 미국인들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동사인 ‘drink'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동양은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고, 서양은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본다.

셋. 중국 학생과 미국 학생에게 사람들 사이의 갈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상황을 분석토록 했다. 중국 학생들은 72%가 문제의 원인을 쌍방에서 찾으려는 양비론적인 의견을 내거나 대립하는 견해를 절충하려고 노력한데 반해, 미국 학생들은 26%만이 그런 식으로 문제를 분석했다. 서양은 양자택일(Either/Or)을, 동양은 종합과 융화(Both/And)를 지향한다. 나아가 서양은 논쟁을 중요하게 여기고 동양은 타협을 미덕으로 삼는다.


이상의 세 가지는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에 나오는 동양과 서양의 다른 점들 중 일부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루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동서양의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오, 동양은 동양, 서양은 서양, 그 둘은 결코 만날 수 없으리
지상과 천상이 신의 거대한 재판정에 함께 설 때까지
그러니 동양도, 서양도, 경계도, 양육도 탄생도 없으리라
세상의 양 끝에서 온 두 거인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때!”

오늘날 동양과 서양은 매일 어디서나 만났다. 세계의 무역, 정보와 통신 기술, 정치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제 동양과 서양이 만나지 않는 곳은 없다. 그러나 키플링의 글처럼 동양과 서양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지구 전체의 협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하나의 세계 속에서, 이러한 차이점을 알아내고 이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리처드 니스벳의 ‘생각의 지도’는 ‘동양과 서양은 무엇이 얼마나 다르고 왜 다른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그는 동서양의 비교라는 해묵은 과제를 다루지만, 그의 접근방법과 설명방식은 신선하다. 기존의 심리학 연구 성과를 인용하고 자신이 미시간대, 서울대, 베이징대, 교토대 등의 한국, 중국, 일본의 연구진과 진행한 실험 결과를 통해 동양이 서양이 어떤 부분에서 얼마나 다른지를 차근차근 알려 준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과학’이라는 절차와 틀로 밝혀 낸 그의 작업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

동양과 서양의 비교 연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철학, 심리, 문화, 정치, 경영 등의 분야에서 많은 연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양과 서양이 무엇에서 얼마나 왜 다른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연구자의 문화적 편견, 그리고 획일화된 연구 방식 때문이다. 동양을 연구하는 서양의 학자도 서양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연구자 자신도 나름의 전통적 사고방식과 문화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여러 문화 출신의 연구자들이 협력하여 연구하는 것이다. ‘생각의 지도’에 나오는 연구들의 대부분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기본적으로 신뢰도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책은 나와 남을 아는 데 큰 도움을 준다. 풍부하고 실증적인 연구결과를 통해 동양과 서양의 문화와 사고방식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동양과 서양이라는 이분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지 않는다. 그 대신 동서양 사이에서 실증적으로 발견되는 차이점들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동 · 서양 문화에 대한 상호이해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 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마치 요리의 재료들이 각각의 속성은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두 문화는 새로운 통합을 맞이할 r서이다. 그 통합이 두 문화의 가장 좋은 특성만을 모아 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나의 목소리: 저자되기
아마 책을 읽으면서 ‘분량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생각의 지도’를 읽고 나서 느낀 아쉬움이 이것이었다. 저자인 리처드 니스벳의 심도 있는 연구 방식과 출중한 역량에 비해 7장(‘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의 차이, 그 기원은?’)과 8장(‘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은 다소 미흡한 면이 없지 않다. 다른 장들에 비해 7장의 논리는 부족하고 주장은 약하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 이해하고 배워 긍정적인 결합을 이뤄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공감하지만,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앞으로 어떻게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지를 담고 있는 8장의 메시지는 충분하지 않다.

이 책에는 풍부하고 실증적인 연구 결과들이 다수 소개되어 있지만, 일상적인 사례와 국제관계를 포함한 심화 사례가 좀 더 추가하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면, 미국과 이라크 간의 전쟁, 일본의 역사왜곡과 주변 국가의 영토에 대한 소유권 주장 등도 다뤄봄직하다.

개인적인 바람이지만, 이 책이 정기적으로 개정되어 새로운 버전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또한 이 책을 출발점으로 해서 동양과 서양의 여러 국가들이 공동 연구프로젝트 형식으로 보다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관점을 가진 연구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저자의 목소리: 인용
- ‘[]’ 안의 숫자는 page를 지칭한다.
- ‘인용’에서 별다른 표기가 없을 경우, 저자의 말이다.
- ‘*’ 표시는 간단한 설명과 나의 느낌이다.

1. 동양의 도와 서양의 삼단논법
[31] “초기 유교 신봉자들에게 ‘나’라는 존재는 타인과의 관계 맺음과 그 속에서 부여되는 역할들의 총체일 뿐, 결코 독립된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그들의 정체성은 역할에 따라 결정되므로 역할이 바뀌면 정체성도 당연히 바뀐다. 즉, 완전히 ‘다른 나’가 되는 것이다.”
- 헨리 로즈먼트(Henry Rosemont), 철학자

[31] 그리스인들에게 행복은 ‘자신의 자질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것’이었지만, 중국인들에게 행복이란 ‘화목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었다.

[33] “훌륭한 요리사는 서로 다른 맛을 잘 섞어서 조화롭고 감미로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다. 이때 각각의 맛들은 자신의 고유한 맛을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 더 후륭한 맛을 만들어낸다.”
- 좌전(左傳) 중

[35] 본질(essence)이란 한 사물의 가장 핵심적이고 필수 불가결한 속성이다. 본질이 바뀌면 그것은 더 이상 그 사물이 아니다.

[36] ... ‘사물 자체’를 분석과 주의(attention)의 대상으로 삼는 그리스의 철학 정신에 기인한다. 그리스인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물질 역시 서로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실체로 간주했다. 그들은 사물 자체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음과 같은 경향을 갖게 되었다. 1) 사물의 속성 자체에 주의를 기울이고, 2) 그 속성에 근거하여 범주화하고, 3) 그 범주들을 사용해 어떤 규칙을 만들어, 4) 사물들의 움직임을 그 규칙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물’에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이 포함되지만 그리스 철학자들은 비인간, 즉 자연계에 더 관심이 많았다. ... 그리스 철학의 또 다른 특징은 세상을 쉽게 변하지 않는 고정된 것으로 보았다는 데 있다.

[37] ... 그리스 철학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직선적(liner)’ 사고와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에 집착했다.

[40] 음양(陰陽)의 원리란 ‘서로 반대되면서 동시에 서로를 완전하게 만드는 힘’, ‘서로의 존재 때문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힘’의 관계이다.

[38~39] ‘새옹지마(塞翁之馬)’ 이야기
[40] “행복은 불행 때문에 가능하고, 불행은 행복 속에 숨어 있다. 무엇이 불행이고 무엇이 행복인지 누가 알 수 있단 말인가? 확실한 것은 없다. 의로운 것이 갑자기 사악한 것이 되고, 선한 것이 갑자기 악한 것ㅇ디 된다.”
- 역경(易經) 중
[40]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원이며, 움직이지 않는 것은 모든 움직이는 것들의 근원이다.”
- 도덕경(道德經)
* 세상은 복잡하고 변화는 늘 일어난다.

[42] 어떤 개인에게 도교와 유교의 가르침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그가 처한 위치에 의해 결정된다.
[42] “모든 중국인은 성공하고 있을 때에는 유교도이고, 실패하면 도교도가 된다.”
- 중국격언.

[43] 유교, 도교, 불교 모두 ‘조화’, ‘부분보다는 전체’, ‘사물들의 상호 관련성’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세 철학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종합주의(holism)’는 우주의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종합주의라는 개념은 공명(resonance) 현상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반면 고대 그리스 철학의 중요한 특징인 ‘추상화(abstraction)에 대한 관심’은 고대 중국 철학에서 그리 쉽게 찾을 수 없다. ... 중국인들의 기본적인 우주관은 우주가 상호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물질이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우주가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44~45] 그리스인들은 개인을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보았고, 진리를 발견하는 수단으로서의 논쟁을 중시했다. 그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이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인들은 인간을 ‘사회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조화라고 생각했다. 그 조화란 도교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었고, 유교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화목’을 의미했다. ...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사를 개인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역시 불가능했다.
* 저자의 명확한 요약.

[46~47] 아리스토텔레스는 돌이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것은 ‘그 돌’이 ‘중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나무 조각이 물 위에 뜨는 것은 그 ‘나무 조각’이 ‘부력’이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두 경우 모두 초점은 오로지 대상 자체이며, 그 대상을 둘러싼 외부의 힘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이와는 달리, 중국인들은 우주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장(場)으로 보았기 때문에, 인과 관계를 설명할 때에도 장 전체의 복잡성에 주목했다.

[50] 그리스인들은 ‘모순’이라는 개념에 강박적이 할 만큼 집착했다. 어떤 주장이 다른 주장과 모순 관계에 있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그릇된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비모순의 원리(principle of noncontradiction)는 형식 논리에서 가장 기본적이다.

2. 도양의 더불어 사는 삶, 서양의 홀로 사는 삶
[54~55]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의 ‘저맥락(low context)' 사회와 ’고맥락(high context)' 사회.

[55] 동양인에게 있어서 행위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의해 조정되고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조화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 생활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된다.

[57] ‘개인은 각기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을 할 때, 각각의 상황에 따라 각기 다른 사람이 된다.’

[59~60] 사회심리학자인 스티븐 하이네(Steven Heine)와 그 동료들의 연구 결과.
* ‘자존감을 추구하는 서양인들과 자기비판을 통해 자기향상을 추구하는 동양인들’[59]. 일본 기업이 ‘개선’, ‘지속적인 개선’에 강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64] 다른 사람의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정도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에 대한 관점도 달라진다. 서양에서는 아이들에게 의사소통을 가르칠 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대화에 임해야 하며, 대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의 잘못이라고 강조한다. 이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동양에서는 아이들에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할 것을 강조한다.

[65~69, 72~73, 85~86, 238] 찰스 햄든 터너(Charles Hampden-Turner)와 앨폰소 트롬페나(Alfonso Trompenaars)의 연구
* 시사점이 많은 연구임. 따로 정리해둘 것.

[69] 서양 사람들의 ‘보편적인 규칙에 대한 집착’은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사이의 계약에 대한 생각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들은 계약이란 한번 맺어지면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설사 상황이 변해서 계약 내용이 한쪽에게 불리해지더라도 계약을 변경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호의존적이며 고맥락 사회인 동양에서는 상황이 변하면 계약의 내용도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77] 논재의 전통이 없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며, 그 전의 정부는 사람들이 북한에 대하여 말하는 것조차 금지시켰다. 이는 서양인인 나의 관점에서는 무척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한국은 지난 40여 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지만, 북한은 전적으로 실패한 체제를 고수해온 나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과 북한을 비교하고 서로의 장단점을 논하는 논쟁이 벌어진다면 모두가 한국의 우월성을 인정할 것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전통이 없는 한국인에게는 옮은 주장이 결국 승리하리라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과거 한국 정부는 북한에 관한 정보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고자 했고, 북한에 관한 어떠한 형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서양인의 관점에서는 북한의 실상을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자국민을 보호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것이다.
* 저자의 생각은 일리가 있다.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의도적인 무시와 막연한 두려움은 역효과가 더 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군인들이 장악했던 한국의 정권은 바로 이점을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용했을지도 모른다.

[79~80] 동양인들은 상호의존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self)를 전체의 일부분으로 생각하지만, 서양인들은 독립적인 사회에서 살기 때문에 자기를 전체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긴다. ... 동양인들은 모순과 논쟁을 회피하지만 서양인들은 법률, 정치, 과학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논쟁을 끌어들인다.
* 저자의 명확한 요약. 전문가의 전문성은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증명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3. 전체를 보는 동양과 부분을 보는 서양
[88] 동양인들은 주변 상황에 맞추어 행동하려고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에 서양인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89] 서양인들은 과거를 기억할 때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여 회상하지만, 동양인에게는 그런 경향이 약하게 발견된다.
[89] 동양인들이 사건에 대해 보다 종합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바라보려고 한다는 것은 ...

[98] 서양인들에게는 자신의 직접적인 통제가 중요하지만, 동양인에게는 누군가와 같은 배에 타고 있다는 일체감이 중요한 것이다.

[103] 서양의 직선적인(linear) 관점과 동양의 순환적인(circular) 관점은 장시간에 걸쳐 발생하는 변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 동양에서 죽음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서양에서 죽음은 ‘멀리 떠나는 것’이다.

[105] 현대의 동양인들은 고대의 동양인들처럼 세상을 종합적으로 이해한다. ...
이와는 반대로, 현대의 서양인들은 고대의 그리스인들처럼 세상을 보다 분석적이고 원자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
* 저자의 요약과 결론.

4. 동양의 상황론과 서양의 본성론
[126]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이해할 때, 다음의 두 가지 오류를 쉽게 범한다.
* 발생한 결과 이외의 다른 결과는 어차피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 발생한 결과를 미리 예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범하는 이러한 인지적 오류는 인지심리학자 바루크 피시호프(Baruch Fischhoff)에 의해 처음 증명되었다. 그는 실험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자신은 처음부터 어떤 사건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과잉 확신하는 경향’과 ‘그 때문에 당연히 놀라워해야 할 예외적인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도 별로 놀라지 않는 경향’이 있음을 증명해냈다. 이를 후견지명 효과, 심리학 용어로는 과잉 확신 편향(hindsight bias)이라고 한다.
* 서양인에 비해 동양인이 두 가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같은 표현을 자주 쓴다. 어떤 끔찍하고 특이한 사건에 대해서도 ‘예고된 참사’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한다. 이런 표현을 쓰면서도 그런 사건을 막지 못하는 것은 아니러니가 아닐까.

[130] 서양인들은 지나치게 단순한 모델을 가지고 세상을 파악하는 약점이 있지만, 반면에 동양인들은 수없이 많은 인과적 요인들 모두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예외적인 사건이 발생해도 그리 놀라워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서양인들의 단순한 세계관은 적어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매우 유용한 시각이다. 왜냐하면 단순한 모델은 검증이 쉽고, 따라서 개선의 가능성이 그 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130] 서양인들이 ‘과학에서 거둔 성공’과 ‘인과적 설명에서 범하는 오류’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란 다름 아닌 ‘개인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모델을 만드는 자유’, 그리고 ‘그 모델을 이용하여 결과로부터 원인을 추구하는 자유’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델은 사물과 그 사물의 속성에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탓에 맥락의 역할을 놓치고 있다. 따라서 맥락이 중시되는 상황에서 맥락을 무시함으로써 기본적 귀인 오류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인간 행동의 예측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 서양인은 단순성을 추구하고, 동양인은 복잡성을 추구한다.

5. 동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동양과 명사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서양
[135]... 고대 중국인들이 세상을 분류하고 범주화한 방식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방식과는 상이하게 달랐다는 점이다. 그리스인들은 공통의 속성을 지닌 것들을 같은 범주로 분류했지만, 철학자 도널드 먼로(Donald Munro)에 따르면 중국인은 그렇지 않았다. 중국인들은 서로 ‘공명(resonance)'을 통하여 영향을 주고받는 것들을 같은 범주에 속한 것으로 간주했다.

[135] 다섯 가지 색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눈은 멀게 되고
다섯 가지 음식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귀도 멀게 되고
다섯 가지 맛으로만 범주화하면, 우리 입맛은 짧아질 것이다.
- 도덕경(道德經) 중에서

[150] 동양의 언어는 ‘맥락’에 주로 의존한다. 동양어의 단어는 대개 다중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문맥에 따른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영어의 단어는 그 의미가 매우 제한적이며, 게다가 영어 사용자들은 단어를 사용할 때 가능하면 맥락의 도움 없이 이해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150] 서양의 언어는 맥락보다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영어는 ‘주어’에 매우 집착한다. ... 그러나 동양의 언어는 ‘주제’ 중심적이다.

[151] 서양에서 행위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나 동양인에게 행위란 다른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발생하는 것이거나 주어진 상황에 자기를 적응한 결과이다. 이러한 차이가 언어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령, 일본어나 중국어, 한국어에서는 ‘나(I)'를 표현하는 말이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다르다.
* ‘나는’ ‘내가’ ‘제가’ ‘저는’ ‘저희는’, 이렇게 다르다.

[152] 다른 사람에게 차를 더 청하는 상황에서도 동양과 서양의 언어적 차이가 잘 드러난다. 중국인들은 ‘더 마실래?(Drink more)’라고 묻지만, 미국 사람들은 ‘차 더 할래?(More tea?)’라고 묻는다. 중국인들의 관점에서는 그 상황에서 마시고 있는 것은 분명 ‘차’이기 때문에, 명사인 ‘차’를 문장 안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지만, 미국인들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동사인 ‘drink'를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155] 동양인들은 세상을 ‘관계’로 파악하고 서양인들은 범주로 묶일 수 있는 ‘사물’로 파악한다. 이러한 차이는 아이를 양육하는 방식에서의 문화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동양의 어린이들은 관계에 주목하도록 양육되고 서양의 어린이들은 사물과 그것들의 범주에 주목하도록 양육된다. 여기에 덧붙여, 언어의 문화 차이 또한 일정 역할을 한다.

6. 논리를 중시하는 서양과 경험을 중시하는 동양
[158] “논리학은 서양 문명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그 전통의 끈이 끊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앵거스 그레이엄, 철학자

[158] 중국 고전 교육의 목표는 분별력 있는 인간의 양성에 있었다. 중국 문화에서 교양인이란 건전한 상식과 중용의 도, 그리고 절제를 겸비한 사람이며 지나친 추상적 이론과 논리적 극단을 거부하는 사람이다.”
- 린위탕, 문예비평가

[165~166] ‘모순에 대한 선호’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매우 뿌리 깊은 근원을 갖고 있다. 고대 중국인들은 변증법적 사고라 부를 만한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장 큰 특징은 모순이 되는 주장들을 타협을 통해 수용하는 것이었다. 모순되는 두 주장 모두에서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 그 사고 방식의 핵심이다. 고대 중국인들의 이러한 변증법적 사고의 특징은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변화의 원리(The principle of change)
2) 모순의 원리(The principle of contradiction)
3) 연관성 혹은 종합론의 원리(The principle of relationship, or Holism)

[167]변화는 모순을 발생시키고, 모순은 다시 변화를 야기한다. 끊임없는 변화와 모순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개개의 사물을 논하면서 다른 부분들과의 관계나 그것의 이전 상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이 원리들에 따르면 동양인의 중요한 신조인 중용, 즉 극단적 명제 상이에서 끊임없이 중도를 탐색하는 노력이 왜 동양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지 알 수 있다.

[168] 서양 사고의 기본 원리 중 하나인 ‘동일률’은 상황이 변해도 달라지지 않는 일관성을 강조한다. 즉, A는 맥락에 관계없이 A인 것이다. 또한 비모순율은 한 명제와 그 명제의 부정이 동시에 참일 수 없음을 강조한다. 즉,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닌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동양의 ‘종합론 원리’는 맥락이 달라지면 어떤 사물이 전혀 다른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변화의 원리’는 삶이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의 끊임없는 변화 과정이며 따라서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는 것일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 2005년 들어, 일본의 역사왜곡과 독도 자국영토 주장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의 대립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 책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의 망언과 망행은 상황주의적 윤리관과 사고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문화나 사고의 차이로 치부할 수 없다. 자신들의 잘못을 의도적으로 잊고 미화하는 것은 절대로 옳은 행동이 아니다. 문화 간에 우위는 없다는 문화 상대주의 관점에서 봐도 일본의 행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화 상대주의는 한 문화가 다른 문화의 활동에 대해 ‘저속하다’거나 ‘고상하다’고 판단할 절대적인 기준이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각 문화는 자체의 활동에 대해서는 그런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또한 내려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 문화의 구성원은 그 문화 안에서 관찰자일 뿐만 아니라 행위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의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

[177] ... 사람들은 이런 뻔한 말을 해주는 심리학자나 점술가, 혹은 누가 되었든 간에 그 사람을 ‘족집게’로 믿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 부른다. 이 말은 ‘쉽게 속아 넘어가는 얼치기는 매순간 태어난다’라는 표현을 했던 어떤 서커스단 주인의 이름인 바넘에서 기인한 것이다.
* ‘외향적이지만 내성적이다’라는 주장은 모순이다. 대개 점쟁이는 모순된 이야기를 한다. 동양인들은 모순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점쟁이의 말은 동양인들에게 잘 먹힌다. 동양인이 서양인에 비해 바넘 효과에 더 취약할 수 있다.

8. 동양과 서양, 누가 옳은가?
[206] 동양인들의 시각에서는 다소 무례하고 불손해 보이는 방법이 서양에서는 진리에 이르는 길로 간주된다.

[212] 서양과 동양의 종교가 서로 다른 것은 서양 종교가 ‘옳고 그름(right/wrong)'의 구조로 되어 있는 반면, 동양 종교는 ’둘 모두/함께(both/and)'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동양 종교들은 타 종교에 대해 매우 관대하고, 서로의 교리를 흡수하는 것이 특징이다. ... 동양에서는 종교 전쟁이 거의 없지만 서양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격렬하게 진행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동양 종교는 순환과 윤회 사상이 특징적이며 타종교에 대해서도 대단히 포용적이다. 이는 서양의 유일신 사상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에필로그: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 충돌할 것인가, 통일될 것인가?
[224] 동양이 서구화될 것이다?
[225] 차이는 계속될 것이다?
[227]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수렴될 것이다?

[227] 서양은 점점 동양적인 것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 동양은 서양을 모방하고, 서양은 동양에 매료되고 있다.

[229]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이중문화적(bicultural)이다. 우리 안에는 다른 사람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상호의존적인 특징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려는 독립성이 혼재한다. 따라서 이 중 어떤 특성이 더 강하게 부각되는냐에 따라 서로 다른 문화적 특징을 보일 수 있다.

[230] 결국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는 동양인처럼 행동하고 어떤 경우에는 서양인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230] 나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서로의 문화를 수용하여 중간쯤에서 수렴될 것이라는 이 세 번째 견해가 ‘문화 차의 미래’에 대한 가장 타당한 견해라고 믿는다. 동양과 서양은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여 두 문화의 특성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 형태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마치 요리의 재료들이 각각의 속성은 그대로 지니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하나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듯이, 두 문화는 새로운 통합을 맞이할 r서이다. 그 통합이 두 문화의 가장 좋은 특성만을 모아 놓은 걸작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 저자의 결론이다. 그는 낙관적이다. 동양과 서양이 서로의 장점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존중이 중요하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 점에서 상대주의적 문화관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문화 상대주의는 수렴의 결론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화 상대주의의 관점에서 도양과 서양은 평행선을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 결합이고, 관건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다. 수렴은 일종의 관계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관계론’을 강조하는 동양 사상에게 수렴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미국을 포함한 서양이 동야에 대해 매력을 느낄수록 긍정적 결합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동양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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