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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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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5일 00시 54분 등록
소유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민음사, 2001)
The Age of Access.. by Jeremy Rifkin

<1부: 자본주의의 새로운 프론티어>

1. 접속의 시대가 오고 있다

시장에서 네트워크로, 소유에서 접속으로 이동이 일어나고, 물적 재산 대신 지적 재산이 부상하고 인간관계가 점점 상품화되면서, 재산의 교환이 경제의 일차 기능이었던 시대로부터 경험 자체가 완전한 상품으로 떠오르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산업 자본주의를 딛고 올라선 문화 자본주의는 이미 인간 사회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 통념을 수없이 뒤흔들어 놓고 있다. 재산 관계, 시장 교환, 물질 축적에 바탕을 둔 과거의 제도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문화가 가장 중요한 상품 자원이 되고 시간과 관심이 가장 귀중한 소유물이 되고 개개인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시장이 되어버리는 시대가 도래 하고 있다.

이제 <접속>은 사회생활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의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접속이란 말을 들으면 가능성과 기회로 가득 찬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구멍을 연상한다. 접속은 전진과 개인의 자아실현을 약속하는 입장권이 되었고 몇 세대 전의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울림이 큰 말, 정치적으로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이 되었다. 접속은 결국 구별과 분리의 문제다.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다. 접속은 우리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재고할 수 있는 막강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다가올 시대의 성격을 예고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가 되었다.

2. 시장이 네트워크에 밀리는 날

오늘날의 소비자는 새로운 과학, 제품, 서비스를 미처 경험할 시간이 없다. 어느새 더 개선된 후속 모델이 눈앞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소유라는 발상은 이런 초 경쟁상황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할부금을 다 갚기도 전에 구닥다리가 될 기술이나 제품을 구태여 왜 소유하겠는가?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임차 형태로 상품이나 서비스에 단기간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 것이 구입해서 장기간 소유하는 것보다 점점 매력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세계 전역에서 크고 작은 기업들이 날로 확산되는 상거래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기 위해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접속의 시대에 기업의 가장 큰 불안은 경제적 기회를 낳는 거미줄 같은 상거래 망에 끼어들지 못하는 것이다.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산업시대에 중요했던 것처럼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동맹관계가 끝없이 변하는 새로운 세계에서 네트워크로부터 탈락한다는 것은 곧 낙오를 의미한다.

3. 무게 없는 경제

재산과 돈의 탈물질화,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고 재고를 없애고 부동산을 털어내려는 안간힘, 개인 저축의 소멸, 이런 것들과 함께 나타나는 훨씬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재산의 형태이며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물리적 자본 자체가 많은 산업에서 부차적 지위로 밀려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본에 대해 <사용하되 소유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생각을 관리하고 파는 능력이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회계 장부를 보면 사태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난다. 물리적 재산은 점점 중요성을 잃고 가치도 떨어진다. 반면에 공기처럼 가벼운 지적 재산은 새로운 황금이 된다. 정신이 물질 위로 솟아오른다. 가벼운 제품, 소형화, 부동산의 비중 감소, 저스트인타임 재고관리, 리스, 아웃소싱, 이 모든 것은 물질성에 역점을 두었던 세계관이 쇠락하고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기심, 탐욕, 착취가 똑같이 감소하는 것은 아니다. 접속의 시대에는 착취가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4. 지적 재산의 독점

산업 시대에는 물리적 자본, 기계, 재산, 건물, 토지를 소유하고, 직원을 고용하고, 생산 공정을 관리하고, 물자와 서비스를 유통하는 것만으로도 사업 주체로서의 독립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형 자산보다는 무형 자산이 중시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노하우, 개념, 아이디어, 두뇌, 운영 기술을 가진 사람이 실질적 소유권자다. 체인의 경우, 경제적 지배력은 사업에 필요한 물리적 자산을 ‘직접’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상표, 아이디어, 체제 같은 무형 자산의 사용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행사된다.

산업 시대에는 화석 연료, 화학 약품, 금속, 광물처럼 재생 불가능한 자원을 순수 상품으로 변형시켰다. 땅에서 파낸 다음 추출하고 처리한 이 자원은 상품 시장에서 무게와 등급에 따라 팔렸다. 이런 자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사고 팔 수 있는 재산으로 다루어졌고, 그 소유권은 경제 과정의 단계를 거칠 때마다 판매자에게서 구매자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유전자는 이런 식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유전자는 팔지 않고 빌려줄 뿐이다. 사지 않고 빌릴 뿐이다. 유전자 정보는 특허의 형태로 공급자의 재산으로 남아 있다. 공급자는 이것을 사용자에게 잠시 빌려줄 뿐이다.

5. 서비스 세상

서비스는 물질이 아니며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그것은 수행되는 것이지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서비스는 실행되는 순간에만 존재한다. 보유하고 축적하고 상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자는 사는 것이고 서비스는 받는 것이다. 서비스 경제에서 상품화되는 것은 인간의 시간이지 장소나 물건이 아니다. 서비스는 사람과 물건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호소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과 사람의 접속도 점점 금전을 매개로 한 관계로 바뀐다. 인간관계의 구조가 소유물의 생산과 상업적 교환에서 상품화된 서비스의 관계로 탈바꿈하는 것은 본질적 변화라 할 수 있다.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관심이지 물건이 아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물건을 그냥 주는 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각광을 받을 것이다. 세상만사가 서비스 화된다는 것은, 자본주의가 상품을 교환하는데 바탕을 둔 체제에서 경험 영역에 접속하는데 바탕을 둔 체제로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자본주의에서는 물질의 차원보다는 시간의 차원이 훨씬 중요하다. 장소와 물건을 상품화하고 그것을 시장에서 거래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는 서로의 시간과 식견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고 필요한 것을 빌린다.

6. 인간관계의 상품화

산업 경제에서는 시장 거래가 불연속적으로 이루어졌고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재산이 오고 갔기 때문에 소비자는 소비 결정을 내릴 때마다 상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접속의 시대에는 시장에서 단기적으로 이루어지는 결정의 비중은 줄어들고 신뢰할만한 매개자에 의한 장기적 상업 관계가 주류로 부각된다. 기업은 이제 더 이상 물건을 팔지 않는다. 기업은 온갖 경험 영역으로 다종다양한 서비스를 침투시켜 여기서 진짜 수익을 얻는다. 이제 소비자는 서서히 주도권을 잃을 위험에 직면해 있다. 소비자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상업 관계의 촘촘한 그물망으로 편입되고, 상업 세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경제는 연결의 속도를 높이고, 지속 시간을 줄이고, 효율성을 향상시키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서비스 화함으로써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계가 상업적 관계로 변하고 모든 개인의 삶이 24시간 내내 상품의 틀에 갇혀 있을 때, 비상업적 관계, 다시 말해서 혈연, 이웃, 문화적 취향의 공유, 종교적 결사, 민족의식, 형제애, 시민의식에 바탕을 둔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시간 그 자체를 사고팔고, 삶이라는 것이 한낱 계약과 금전적 도구에 의해서 결합된 상업적 거래의 연속에 불과한 것으로 변질될 때, 애정, 사랑, 헌신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전통적 상호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7. 삶으로서의 접속

어디로 눈길을 돌리건 이제 접속은 사회적 관계의 잣대가 되었다. 차량, 부동산, 보건, 심지어는 곡식의 종자와 생물학적 과정까지도 접속 관계로 정의되는 새로운 세계를 수용하기 위한 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 접속은 사유재산과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접속은 거의 토론을 거치지 않으면서 어느새 정치기구 안으로 스며들었고 개인생활과 공공생활의 구석구석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소유에서 접속으로의 전환은 지엽적이고 말단적으로 보일 때가 많다. 그 변화는 너무나 미묘해서 사실상 눈에는 띄지도 않다가 지나놓고 보면 그때서야 투명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사실상 모든 것이 접속으로 바뀌는 사회에서, 소유에 수반되는 개인적 자부심, 책임감, 의무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자기 충족감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그만큼 독립적이라는 뜻이다. 재산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개인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런 재산을 소유하지 못하고 접속만 하게 될 때 우리는 타인에게 훨씬 더 의존하게 된다. 우리가 자꾸 남들과 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이 되면 우리의 자기 충족감은 약화되고 외부의 압력에 쉽게 허물어지는 것일까? 소유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좋지만 그 바람에 아예 우리가 만들고 쓰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마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상호관계의 네트워크에서 교감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바람에 칼자루를 쥔 기업들의 막강한 네트워크에 더욱더 의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2부: 문화를 고갈시키는 자본주의>

8. 자본주의의 새로운 문화

쿡은 관광을 패키지로 만들고 여행을 유료체험으로 전환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출발은 소박했다. 수백 명의 금주회 회원을 더비, 노팅엄 같은 중부 도시에서 대중 집회가 열리는 레스터까지 할인 철도 요금으로 수송하는 데서 그의 사업은 시작되었다. 쿡은 새로운 층의 고객을 여행으로 끌어들여서 여행과 관광이라는 문화체험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그가 일으킨 상업혁명의 여파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제 와서야 서서히 감지되고 있다.

다색 석판 인쇄가 대중문화 생산의 초석을 깔았다면 얼마 뒤에 등장한 영화는 문화생산을 자본주의 시장의 무시 못 할 주역으로 정착시켰고 상업적 오락물을 미국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영화와 함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는 <소비문화>로 변모했고 문화 자본주의가 탄생했다. 새로운 시대의 주역은 <근면>이 아니라 <창조>이며 사업은 일보다는 유희에 가까워진다. 문화사업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창조성과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해 모든 분야의 기업이 조직 환경을 재구축하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9. 문화의 광맥을 찾아서

소유관계는 소유하는 사람과 소유되는 사람을 구별한다. 접속관계는 연결되는 사람과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을 구별한다. 따라서 소유관계도 접속관계도 결국은 포함과 배제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세계 유수의 오락, 소프트웨어, 통신 회사들은 문지기 역할을 통해 거머쥘 수 있는 상업적 잠재력을 간파하고 새로운 전자상거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을 선점하는 한편, 많은 회원과 가입자를 거느린 검색엔진과 인터넷 서비스 제공사를 열심히 사들이고 있다. 그들은 누구든지 사이버스페이스의 관문을 장악하는 사람이 대중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인터넷 시대의 새로운 문화 중개자의 영향력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에 담긴 문화적 내용은 인터넷을 통해 많은 나라 사람들의 체험에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의 문화 중개자는 미국이나 일본의 다국적 기업에 정보를 제공하며 이 다국적 기업이 세계 곳곳에서 미디어 회로를 확보하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각 지역의 전통 문화는 상술에 의해 약탈당하고 망가질 것이며 더 심해질 경우 아예 깡그리 무시되어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올 만도 하다.

10. 탈근대

탈근대론자에 따르면 세계는 인간의 구성물이다. 기호학자들은 우리가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지어내는 이야기, 우리가 세계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방식에 의해 이 세계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한다. 이 새로운 세계는 객관적이지 않으며 우발적이다. 진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선택과 시나리오로 엮여 있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창조된 세계, 합의되고 공유되는 의미와 은유로 결속된 세계다. 언어, 의미, 은유는 시간 속에서 달라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달라진다. 현실은 우리가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 소통을 통해 지어내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바꾸어놓는데 기여한 요인의 수는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통신기술이 인쇄에서 컴퓨터로 바뀐 것이다. 인간의 의식에서 일어난 커다란 변화는 사회적 관계를 창조하는데 사람들이 이용하는 통신형태의 변화와 함께 일어났다. 컴퓨터 통신은 직선으로 전개되지 않고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순서와 인과는 밀려나고 그 자리에 연속적이고 통합된 활동의 총체적 장이 들어선다. 인터넷 세계에서 주체와 객체는 접속점과 네트워크로 바뀌며 구조와 기능은 과정 안으로 흡수된다. 컴퓨터의 조직 방식, 특히 병렬 계산은 문화 체제의 원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모든 층위에서 끊임없이 수정되고 쇄신되는 역동적 문화의 관계망 안에서 모든 부분은 하나의 접속점이 된다.

11. 접속자와 비접속자

글로벌 미디어 기업은 정치적 국경선을 가뿐히 뛰어넘는 통신망을 전 세계에 깔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치의 근본적 성격까지 바꾸어놓고 있다. 국민 국가의 현격한 위축을 가장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곳은 징세 부분이다.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활동이 증가하면서 세금을 산정하고 거두기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다. 많은 상품과 서비스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뿔뿔이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네트워크와 제휴관계를 통해 누적한 부가가치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자국 영토 안에서 이루어진 부가가치를 정확히 판별하여 세금에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정부는 없다고 보아도 좋다.

디지털 혁명은 첨단 기술 통신이 실어 나르는 음성, 데이터, 비디오를 하나의 웹으로 통합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의 통신은 점차 전자 네트워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문제가 중요한 것은 매체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다. 이런 매체를 통해야만 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접속의 문제가 갈수록 중요해지는 것이다. 같은 인간끼리 연락을 주고받고 거래를 맺고 관심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만들고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새로운 전자 통신의 힘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종래의 장소와는 성격이 다를지 모르지만 그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주고받는 엄연한 사회적 교류의 장이다. 앞으로 인간이 영위하는 문명 생활의 상당 부분은 전자 세계에서 일어날 것이다. 따라서 접속의 문제는 다가오는 시대가 성찰해야 할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가 된다.

12. 문화와 자본주의의 생태학을 향하여

시장 거래가 복잡한 상업 네트워크로 바뀐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재산을 소유하는 것보다 접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것이 더 중요한 세상, 우리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이 점차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이루어지는 세상, 문화 자체가 최고의 상품으로 각광받는 세상, 인간관계에 항상 돈이 개입되고 체험도 돈을 내야만 할 수 있는 세상, 자율성을 가진 자아는 물러나고 복수로 존재하는 인격, 연극 정신이 지배하는 세상, 사회는 연극적 용어로 파악되고 각 개인의 삶도 현실 무대와 가상 무대에서 공연되는 수많은 각본과 대본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되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접속의 시대는 인간의 경험을 조직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한다.

상업 영역은 깊은 공동체 의식과 개인적 변신으로 나아가는 관문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과시하지만 그것은 자기의 능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경제는 물질적 안녕, 육체적 안락, 특정한 지식, 오락과 유희 같은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하며, 이것들은 충만한 삶을 영위하는데 하나같이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는 문화와 인간성의 기본 틀을 세우는데 가장 중요한 가치와 감정, 다시 말해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만들어낼 능력은 없다. 상업 영역이 인간 문화와 체험의 조각조각을 닥치는 대로 짜깁기하여 제공할 때, 우리가 중요한 인간적 가치와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 우물은 독으로 오염될 위험성이 있다.

접속의 시대는 <우리는 타인과 맺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과연 어떤 방향으로 재설정하고 싶어 하는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우리를 내몰 것이다. 접속이라는 것은 참여의 수준만이 아니라 참여의 유형을 결정하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접속권을 얻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유형의 체험과 세계가 과연 접속할 만한 가치가 있고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를 따지는 물음이다. 21세기에 우리가 만들어나갈 사회의 성격은 이 답변에 좌우될 것이다.

***

우리는 하나의 종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우주의 신비 속에서 숨쉬고 있는 소우주들이다. 미처 상상하지 못하는 다양함이 공존하고 있기에 건강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더럽고, 추하고, 상처에 벌레가 생겨 악취가 풍기기도 하고, 썩은 고름이 흐르기도 하고, 다투고, 싸우고, 헐뜯고, 울부짖는, 힘겨운 모습일 수도 있다.

‘농부가 종자를 재사용할 수 없게 하는 종자 불임 기술의 특허’, ‘인간 유전자와 세포의 특허’, ‘돈으로 얽힌 놀이’, ‘인간관계의 상업화’, ‘거대 기업의 공공재산의 소유’ 등 나열하면서도 미쳐버릴 것 같은 짓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아름답다고 믿고 싶다. 아름다운 우주처럼 말이다. ‘스와핑 커뮤니티’가 있지만 ‘좋은 엄마와 좋은 아빠 모임’이 더 흔한 것처럼 말이다.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도 우리들 각자는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만들어지고 있고, 또 그렇게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는다. 상처 나고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믿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함께하기에 세상은 살만한 것이 아니겠는가.

‘진정한 자유는 소유가 아니라 공유에서 나온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자유와 행복과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It can buy a House, But not a Home
It can buy a Bed, But not Sleep
It can buy a Clock, But not Time
It can buy a Book, But not Knowledge
It can buy a Position, But not Respect
It can buy Medicine, But not Health
It can buy Blood, But not Life
It can buy Sex, But not Love

- So you see money is not everythi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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