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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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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0일 13시 10분 등록
"미국의 과거사 제대로 파헤치기"

리오 휴버만 지음/박정원 옮김/비봉출판사

1. 책이 내게로 왔다.(감상)

미국의 진보적 역사학자인 리오 휴버만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메이플라워호 이민에서부터 대공황, 제 2차 세계대전까지의 약 500년 동안의 미국의 역사를 흥미로운 소설책처럼 서사적으로 풀어냈다. 책 서문을 보면서 1947년에 출판된 역사책이 60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읽힌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역사책과는 다르게 이 책은 '영웅'들이 아닌 '민중'의 시각에서 역사를 조명한다. 'We the people'이라는 책 제목은 미국 헌법의 첫 문장이자, 국민의 주인의식을 암시한다. 또한 본문에 나오는 다음의 예화를 수록한 것은 저자가 역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서부의 한 집회에서 어떤 정부 관리들이 연단에 오르기 위해 군중 사이를 비집고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외쳤다. "길을 비켜 주십시오. 우리는 국민의 대표들입니다." "당신들이 비켜 가시오." 군중은 재빨리 응수했다. "우리는 국민이오."

이 책을 통해 얻은 큰 소득은 무엇보다 미국에 대한 이해의 폭과 깊이가 넓어졌다는 느낌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또렷이 다가온 느낌이다. 초강대국이면서 우리와 동맹관계인 미국에 대한 인식은 단편적이었다. 주로 특정 사건에 대해 갖는 느낌이 나의 미국에 대한 판단의 잣대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미국의 과거를 속속들이 파헤침으로써 미국에 대해 잘 알게 해준다. 참으로 이상한(?) 미국의 선거제도의 기원이 최초 연방을 구성하던 시기의 산물이었다는 점, 남북전쟁 시 북부에서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은 평등사상에 대한 전파라기 보다는 북부지역의 산업기반에 따른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점, 남북전쟁은 단순히 북부의 돈 주인과 남부의 땅 주인의 싸움이라는 점 등은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무엇보다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를 지원하고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추축국의 파시즘을 지원하는 이중적인 미국의 모습은 국가의 최우선의 목적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명제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특히 일본의 중국과 한국에 대한 잔학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모습은 러시아의 남하를 완충하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다. 지금도 일본의 역사교과서 망언과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는 것은 중국의 세력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

일주일 동안 책을 읽는 내내 흥미로웠다. 저자의 서술방식도 한 몫 했다. 매 장마다 그 시대 인물들의 이야기와 작가들의 묘사, 인용문 등이 수록되어 있어 문학적 향취를 느끼게 한다. 역사란 '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는 '왜' 일어났는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경제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돋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인 주식회사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공황의 원인에 대한 분석, 뉴딜 정책의 한계점 지적 등은 60년 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탁월한 분석이라 여겨진다.

개인적으로는 덫 사냥꾼의 변경 개척 정신과 생활방식이 퍽 흥미로웠다. '그들의 생활은 거칠고 위험했으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 알고 있었다. 그들은 힘들고 외로운 생활을 사랑할 줄 알았다.' 그들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만 생각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문명이 제공하는 생활방식을 내던지고 인디언의 차림새와 관습과 태도를 닮으려 했다고 한다.

'미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최근까지도 오직 정상(頂上)의 사람에게만 실현되었다.'고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말한다. 지금도 아메리카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아직 모두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아니다. 모두에게 약속이 실현되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코 아니다. 오늘날 미국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 개척시대부터 어려운 역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권익을 찾고자 했던 농민, 노동자, 부녀자, 어린이의 피와 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2. 역지사지(易之思之)-내가 저자라면

이 책은 1부에서 초기 이민과 개척시대에서부터 대공황 직전까지 미국의 성장과정을 설명을 하고 2부에서는 공황을 극복하고자 수정자본주의 노선을 택한 뉴딜정책에 대한 공과와 세계 2차대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 2부에서 뉴딜정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 것은 물론 성장일로에 있던 미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을 표현하고 싶은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동시대를 살고 있던 저자의 혜안이 집중적으로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1부와의 균형이 잘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뉴딜정책에 대한 내용이 너무 많았다.

지금 현재의 시각에서 보자면 저자가 신판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최근의 역사가 더 추가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동서냉전 시대의 미국의 전략, 베트남전을 둘러싼 반전 분위기, 냉전해체 이후의 미국 등이 추가되었으면 한다. 지금 미국의 모습을 보면 실제 민중의 역동적인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본인의 무지이기도 하거니와 휴버만 같은 민중의 시각에서 서술된 미국의 역사서를 찾아보기가 참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에 읽은 윌 듀런트의 '역사 속의 영웅들'과 비교가 된다. 둘 다 문학적 표현과 위트로 인해 흥미롭게 역사를 기술했으나 휴버만의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같은 친숙한 느낌이 든다.

또한 여전히 역사의 무대에서 소외되어 있으면서도 실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출간 시점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저자가 계급적 시각으로 미국사를 분석하고자 하는 집필동기가 엿보이지만 아무래도 2% 부족한 느낌이다.

한가지 더 지적하자면, 제목에 대한 한글 번역이 영 이상하다는 점이다. 출근길 전철에서 책을 꺼내 보는데 힐끗 책과 나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마치 내가 이민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오해 받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 '약속의 땅' 미국을 찾아 떠나는 이민자들의 모습을 담은 제 1장의 제목을 그대로 책 제목으로 삼았으나 '교육문제' 등으로 한국을 탈출하여 미국으로 골드러쉬하자고 부추기는 듯한 제목이다. 차라리 '그리고 부자의 문전에 거지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다' 라는 부제가 더 마음에 든다.


3. 책에서 끌어다 쓰기(인용)

[제 1장 가자, 아메리카로!]

미국에 오기를 원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뱃삯을 지불할 만한 돈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이 타고 온 배의 선장에게, 그들의 뱃삯을 대신 갚아 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지 몇 년의 기간 동안 하인으로 팔리는 데 동의했던 것이다. (P21)

이들 '뱃삯을 갚기 위해 고용살이 하기를 바라는' 불쌍한 사람들이 배의 선장과 맺은 계약을 '노역(勞役)계약'이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계약 노예노동자'라고 불렀다. (P21)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오랜 시간 동안 심사숙고하는 법이다. (P23,25)

"유럽에는 땅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미국에는 주인 없는 그야말로 공짜인 땅이 많이 있었다." (P25)

그들은 흑인들을 데려올 수 있는 아프리카로 눈을 돌렸다. 18세기 거의 전반에 매년 2만명이 넘는 노예들이 아프리카에서 실려 왔다. 흑인 노예무역은 이윤이 아주 많은 사업이었다. 영국의 많은 재벌들의 재산이 노예무역으로 이루어졌다. 그 유명한 예가 글래드스톤(Gladstone)가(家)이다. (P32)


[제 2장 새출발]

비옥한 토질, 더운 기후...... 전원(田園), 플랜테이션...... 초기에는 계약 노예노동자, 후에는 흑인 노예...... 공업 제품을 수입하고 쌀과 잎담배 등의 유일작물을 수출...... 무사안일의 부드러운 매너에 느린 말투와 귀족적인 태도의 느린 움직임, 토지 안에서 안정을 누리고 여유를 즐기는 농장주들...... 이것이 1760년의 남부였다. 남부를 그렇게 만든 것은 지리적 여건이었다. (P49)

후에 흑인 노예의 수입이 금지되었을 때 남부에서는 피부색이 검은 인간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고, 북부에서는 반대로 그것이 어느 면에서는 그릇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리적 환경이 서로 상반되는 사고방식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P57)


[제 3장 모든 인간은 평등한가?]

식민지에서는 유럽에서보다 더 빨리 한 계급에서 다른 계급으로 오를 수 있었다. 실상 그러한 차이는 상당히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도 최상위의 계급으로 오르기 전에는 항상 위로부터 지배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부자들의 지배권에 대해 도전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나? 진짜 도전은 변경(邊境)에서 왔다. 변경 개척자들은 정책 결정에 대한 발언권을 요구했다. 그들은 법을 만드는 데 그들 자신이 참여할 권리를 요구했다. 유럽에서도 이러한 사상이 논의된 바는 있었으나 처음으로 실천에 옮겨진 곳은 미국이었다.

문명의 끝과 미개의 시작이 만나는 곳, 이곳이 변경이었다. 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이곳의 개간지에서는 땅이 거저이거나 값이 아주 쌌다. 바로 문턱까지 황야가 닿아 있던 이곳에서는 인생을 처음부터 재출발할 수 있었다. (P67)

황야를 지배하게 된 지금 어떠한 상류계급의 명령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개척자) 자신의 일은 스스로 처리할 수 있다고 믿도 있었다. (P70)


[제 4장 당밀과 차(茶)]

1763년 선언법, 1764년 사탕조례, 1765년 인지조례. 식민지 내의 불경기. 무대는 이미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회오리의 시작은 멀지 않았다. (P89)

서민층은 그들의 주된 분쟁의 상대가 유산(有産)계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지가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유산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투쟁하도록 선동되고 있었다. 참으로 전통적인 수법이었다. (P91)

1773년 차조례 제정,
"차조례" 이전
동인도 회사 => 영국 상인 => 미국 상인 => 미국 소매상 => 미국 소비자

"차조례" 이후
동인도 회사......(2차에 걸친 이윤이 여기서 줄어든다) => 미국 소매상 => 미국 소비자 (P102)

"미국의 조국은 영국이 아니고 유럽이다..... 올바른 또는 합리적인 모든 것이 분리를 요구한다. 학살된 이들의 피가, 자연의 흐느낌 소리가 있다. "이제 떠날 시간이다"라고. 전능하신 분께서 영국과 미국을 두신 거리만 보더라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위에 군림한다는 것이 결코 하늘의 뜻이 아니었음을 자연이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상식 책 (P108)


[제 6장 총 한, 도끼 하나]

개척자에게는 도구가 필요했다. 그에게는 총 하나, 도끼 하나, 그리고 옥수수 한 자루가 있었다. (P144)

서부인들은 인심이 후했다. '네. 나도 우유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니 그만둡시다. 당신이 내게 돈을 줄 권리가 있는 만큼 나도 당신에게 우유를 드릴 권리가 있습니다.' (P150)

황야와의 그러한 투쟁이 개척자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 투쟁은 그들에게 자립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의 두 손으로, 오로지 자신의 힘에만 의존해서 낯선 상황과 맞섰고 그리고 정복했다. (P151)

황야와의 투쟁은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그는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었다. 서부 변경지대의 새로 생긴 주들에서는 백인 모두에게 똑같이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개척자는 사람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가 누구인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하는 것을 배웠다.

서부의 한 집회에서 어떤 정부 관리들이 연단에 오르기 위해 군중 사이를 비집고 나가고 있었다. 그들이 외쳤다. "길을 비켜 주십시오. 우리는 국민의 대표들입니다."
"당신들이 비켜 가시오." 군중은 재빨리 응수했다. "우리는 국민이오."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발명가가 된다. 동시에 미지의 것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개척자는 다방면의 기술자가 되었다. 그가 적응해야 했던 상황은 보통 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 적응했고, 따라서 이제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P152,153)


[제 7장 이상하고 다채로운 변경-그 마지막]

초원의 한가운데 떨어뜨려 놓거나 깊은 산중에 떨어뜨려 놓는다 해도 그들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길잡이가 될 만한 모든 것들을 알아 볼 수 있다. 변화 없이 지극히 단조로운 초원에서도, 산중의 가장 복잡한 미로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어떠한 위험도 어떠한 어려움도 그들을 놀라게 할 수 없다. 또한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불평하는 것을 경멸한다. (P180)

그러나 그 생활에는 때때로 모험이라는 자극제와 해마다 이같은 광란의 향연이 있어서 좋은 것이었다. - 덫사냥꾼 행사 (P182)

그들의 생활은 거칠고 위험했으나 자신을 돌보는 법을 배워 알고 있었다. 그들은 힘들고 외로운 생활을 사랑할 줄 알았다. 문명이 제공하는 생활방식을 내던지고 인디언의 차림새와 관습과 태도를 닮으려 했다. 말과 짐싣는 가축 두 마리, 총과 탄약, 덫과 칼, 커피 포트, 프라이팬, 담요, 알코올과 잎담배, 이것만 있으면 강인한 덫사냥꾼들은 산에서 1년간 생활할 수 있었다. (P183)

들소의 학살은 굉장한 것이었다. 1870년대 말경 들소는 사라졌다. 그와 함께 인디언들로부터의 위험도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가 그곳의 생활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인디언의 위협은 끝났다. (P194)


[제 8장 공업의 북부]

그러나 사람이란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전에는 큰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무엇이든 우리 기분에 맞고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면 항상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 (P204)

생산원가를 줄이는 데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는 개량된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방법 하나는 노동자로 하여금 같은 임금으로 더 많은 기계를 돌리게 하는 것이었다. (P217)


[제 9장 농업의 남부]

남부인들은 유일작물 재배와 흑인노예 노동력의 결합이라는 그들의 특수한 조건에 플랜테이션 제도가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그것을 채용했다.

"......노예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노예 노동력으로 이윤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노예가 일단 한 가지라도 배우고 나면, 일생 동안 그 배운 것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예가 사용되는 곳에서는 다양한 생산이란 있을 수 없다. 만일 잎담배가 생산되는 곳이라면 시장의 상태가 어떻든, 토양의 상태가 어떻든 잎담배만을 유일하게 생산해야 한다." - 영국의 경제학자 케언즈(J.E.Cairnes) (P224)


[제 10장 땅 주인과 돈 주인의 싸움]

산업혁명으로 인해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하고 있던 북부의 상인, 제조업자, 은행가 계급은 남부의 지주계급과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쟁은 60년 이상 계속되었고, 종국에는 '남북전쟁(the Civil War)'로 끝을 내렸다. (P247)

98도 선 서쪽의 땅은 메마른데다가, 기후가 면화를 재배하기에는 지나치게 건조했다. 남부는 노예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이동할 권리를 얻어냈으나 그 땅은 면화를 재배할 수 없는 지역이었다. 자연(自然)이 면화 왕국의 한계를 결정지은 것이다. 그 반면 '축적될 수 있는 자본액과, 발명될 수 있는 기계의 다양함과, 공업에 종사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에는 한계가 없었다. 승리는 북부의 편이었다. (P260)


[제 11장 자원, 인력, 기계, 돈]

자원, 인력, 기계, 그리고 자본 - 이 모든 것이 함께 어울려 미국을 세계 제일의 부국으로 만들었다. 남북전쟁과 함께 권력을 장악한 자본가들이 원동력 구실을 했다. 그들은 천연자원과 노동력과 자본을 합성하여 현대의 미국을 만들었다. 그들은 미국을 개발했다. (P270)

전문화는 동시에 워험한 것이기도 했다. 그는(농민) 말 그대로 "그가 가진 달걀 전부를 한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만일 바구니의 밑이 빠지게 되는 날이면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물이 흉작이었을 경우 그에게는 팔 것이 없었다. 그의 작물이 대풍년이면 그에게는 팔 것이 너무 많았다. 농업의 전문화는 농민을 기복이 심한 자본주의 경제에 휩쓸려 들게 했으므로 위험했다. 소비를 위한 생산과 교환을 위한 생산은 사뭇 다른 것이었다. 전문화된 농부는 그것을 깨달았다. (P285)

"월 가 (Wall Street)는 미국을 소유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아니다. 미국은 월 가의, 월 가에 의한, 월 가를 위한 정부가 되었다." - 캔자스의 메리 엘리자벳 리스 (P288)


[제 12장 더 많은 자원, 인력, 기계, 돈]

투자자가 주식회사에 이끌렸던 것은 책임의 유한성 때문이었다. 즉, 주식회사의 주주(株主)는 그가 회사에 출자한 금액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었고 책임은 지지 않았다.
주식회사가 또 하나 유리한 점은 주주권(株主權)을 쉽게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주식회사의 동업자는 순간적으로 물러날 수 있었다. 주식시장에 그의 주식을 내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어떤 사업에서 손을 떼기가 쉽다는 것은 기업가들이 그 사업에 좀 더 쉽게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주식회사의 유리한 또 다른 점은 회사가 가지는 영구적인 생명이었다. 법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 즉 법인(法人)은 회사를 구성하는 구성인들과는 분리된 존재이다. 그러므로 구성인들이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 있게 된다. (P306,307)

회사가 커질수록 그 힘도 커진다. 그 힘은 좋은 것일 수도, 나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힘이 통제되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집안에서의 예를 들어, 흔히 있는 집고양이를 보기로 하자. 장난스럽고 육류를 너무 좋아해서 탈이긴 하지만 그의 작은 몸집 때문에 집안에서 환영을 받는다. 만일 고양이가 갖고 있는 성품이나 기질에 조금도 변화가 없이 별안간 호랑이만한 크기로 확대된다면, 우리는 최소한 고양이에게 재갈을 물리고 발톱을 짧게 유지시키려 할 것이다. - 어떤 작가의 주식회사의 독점화에 대한 불안한 생각의 표현 (P313)


[제 13장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산업혁명은 노동자의 운명을 자본가의 손에 맡기도록 만들었다. 고용주는 공장과 값비싼 기계를 갖고 있었다. 근로자는 더 이상 자기가 먹을 양식을 생산하거나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을 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이제 생산도구가 없었다.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의 공장에 들어가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것이었다. (P318)

노동자 계급의 조직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성장했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협동과 상호교류라는 물리적 수단뿐만 아니라 계급 및 계급의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P322)


[제 14장 무일푼에서 백만장자로]

1898년 이후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는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식민지 쟁탈전에 뛰어 들었다. 미국은 세계 제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P351)


[제 15장 백만장자에서 무일푼으로]

1929년의 공황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원인은 오직 하나였다. 그것은 생산제도였다. 화폐제도, 투기, 부의 분배, 기술의 진보, 변경의 사라짐, 제 1차 세계대전의 후유증 등, 그리고 그 외에 경제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조작해 낸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려는 것들은 모두 핵심을 벗어난 얘기들이다. 왜냐하면, 그런 설명들은 병의 갖가지 증상들을 병 자체로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의사가 열이 있어 진찰을 받으러 온 환자에게 그 열이 환자의 혓바닥이 흰 때문이라거나 몸의 체온이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만일 그런 의사가 있다면, 그는 엉터리 의사가 될 것이다. 미국이 앓고 있던 질병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그것은 최고도로 발전한 최첨단의 자본주의였다. (P372,373)

그리고 부자의 문전에는 거지 나사로가 함께 살고 있었다. (P373)

경제의 생산기반은 소비기반을 능가한다. 다시 말해서, 너무 많이 생산된다. 필요한 이상으로 많은 것이 아니라. 이윤을 남기고 팔 수 있는 이상으로 많은 것이다. (P380)

그러나 그것은 무한정 지속될 수는 없었다. 확장은 그 자체로 축소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확장이 커질수록 그에 따르는 축소도 커진다. 1932년의 폭락을 설명하는 것은 1929년의 공황이었고, 1929년의 공황을 설명하는 것은 그 이전의 붐이었다. 더 많은 이윤, 더 많은 축적, 더 많은 축적.....의 연쇄사슬은 끊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가장 약한 고리에서 분명 끊어지도록 되어 있었다. 사슬은 끊어졌다. 가장 약한 고리의 역할을 한 것은 주식시장의 투기 소동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근본적인 요인은, 자본주의 체제가 그 존속을 무한한 확장, 생산력의 무한한 해방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미 무한한 확장에의 벽을 자동적으로 쌓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확장이 불가능할 때는 수축한다. (P383,384)


[제 16장 아무도 굶주리게 할 수는 없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New Deal) 정책"은 하나의 혁명이라 불렸다. 그것은 분명 하나의 혁명이었다. 그것은 관념적으로는 혁명이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혁명이 아니었다. (P385)

구호(Relief), 회복(Recovery), 그리고 개혁(Reform)은 뉴딜 정책의 3R이었다. (P389)


[제 17장 다시 일자리를 주기 위해]

뉴딜이 작물의 감축보다는 확장의 장기적인 계획으로, 모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고 모든 헐벗은 사람들을 입히는 정책을 추진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계획이 추진되자면 모든 면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했을 것이다. 즉, 이윤을 위한 생산에서 사용을 위한 생산으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P404)


[제 19장 세계적인 무법상태의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

우리의 대(對) 스페인 정책은 뉴딜의 기록상 최대의 오점이었다. 그것은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범죄였다. (P465)

수년 동안 미국의 대일(對日) 정책은 중국에서의 그들의 잔학행위에 항의하는 한편, 동시에 그들의 침략을 가능하게 한 석유, 면화, 철, 강철 및 기다 군수물자를 그들에게 공급하는 모순된 것이었다. 이 정책은 극동에서의 교착상태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할 것이라는 가정하에서 취해졌던 것이다. 우리는 일본이 중국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중국의 시장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는 일본의 패배를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일본을 소련에 대한 완충물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481)


[제 20장 일자리와 평화]

민중은 뉴딜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그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그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단결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일자리와 평화는 이윤(利潤)만을 위한 생산제도가 아닌, 사용(使用)을 위한 생산제도 하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을. (P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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